"혁명은 운동으로는 안 일어나. 한 사람 한 사람 마음속으로 일으키는 것이라고!

집단은 어차피 집단이라고. 부르주아도 프롤레타리아도 집단이 되면 모두 똑같아.

권력을 탐하고 그것을 못 지켜서 안달이지!

개인 단위로 생각할 주 아는 사람만이 참된 행복과 자유를 손에 넣는 거얏!"

 

"모모코, 국가 교육이라는 건 애초에 잘모소디었어. 미국을 좀 봐라. 세계 곳곳엣 전쟁을 벌여 죄 없는 민중을 죽이고, 그러면서도 자기들만이 정의라고 하고 있잖아. 그거야말로 국가적인 사상 교육의 결과야. 일본은 그런 미국의 앞잡이 격이라고."

 

"그 섬은 어느 누구의 통치도 받지 않아. 자급자족으로 살아가고, 전쟁도 없고, 모두가 자유야. 아니, 국가 같은게 아니라니까. 그냥 커뮤니티야. 사람들의 모임, 어느 나라의 영토에도 속자히 않으려고 지도에 실리는 것도 거부한 거야. (중략) 호자 살더라도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들면 정치경제가 발생해.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걸 생각하지 않으면 정치가도 자본가도 필요 없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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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두 가지의 삶이 있다. 첫 번재는 세계에 나를 맞추는 삶이다.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고,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인생이다. 두 번째는 세계를 나에게 맞추는 삶이다. 세상의 질서와 시스템에 저항하고, 주어진 환경을 변화시키려 노력하는 인생이다.  4


나를 바꿀 것인가, 세계를 바꿀 것인가는 근원적인 대립니다. .. 사회는 개인을 유혹한다. 넓은 사회의 품에 안겨 쉬라고, 반대로 개인은 극복하고 싶다. 사회를 딛고 일어서려 한다. ..

시민은 그 단어 안에서 두 가지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 하나는 집단으로서의 전체성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으로서의 개체성이다. 쉽게 말해서, 시민은 사회 전체의 구성원인 동시에 독리적이고 자유로운 개별자다. .. 

현실의 팍팍함 속엣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고민할 시간적 여우가 없는 것이 문제다.  5


이 책은 합리적인 시민이 되자는 책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존재인 시민이 앞으로 진행할 선택에 대한 책이다.  8









세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사회의 방향성은 둘 중 하나다. 시장의 자유 또는 정부의 개입. 그리고 이 두 가지 방향성 중 하나를 선택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인은 세금이다 세금은 사회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근원이다.  16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곳이 시장이다. 그리고 시장에는 두 주체가 있다. 개인과 기업이다.  17


세금과 복지의 관계를 일반적으로 비례한다.  




통시적으로 파악하는가 아니면 공시적으로 파악하는가에 따라 발생. 통시적이란 시간의 흐름을 고려해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공시적이란 시간에 대한 고려보다는 현재 상황을 기준으로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26


세금을 높여 복지를 확대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부유층의 세금을 높여서 사회 전체의 복지 수준을높이는 방법. 그리고 국민 한 명당 세금을 일정하게 높여서 그것으로 복지를 실현하는 방법. 그래서 주의해야 한다. 정부나 특정 정당이 복지를 위한 증세를 말할 때, 특히 그 주어를 말하지 않을 때, 실제 주어가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30




문제는 누진세를 적용하는가 하지 않는가가 아니다. 그보다는 책정된 누진세율의 정도가 실제로 정당한지가 논쟁의 핵심이 된다.  36


특정 계층의 세금을 높이지 않고, 국민 전체의 세금을 동일하게 높이는 것. 이러한 세금을 간접세라고 한다.  41





개인의 소득을 고려했을 때는 간접세가 공평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개인에게 부과되는 주민세가 연간 1만 원이라고 해보자. 그리고 앞서 경비를 제외한 월 소득이 100만 원인 W씨와 1,600만 원인 Z씨를 비교해보자. 두 사람은 매해 1만 원을 공평하게 납부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소득을 고려하면 월 소득 대비 W씨는 1%를, Z씨는 0.0625%를 세금으로 납부하는 것이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소득만 놓고 생각했을때 W씨가 느끼는 1만 원의 가치는 Z씨에게 625원 정도로만 느껴질 수 있다. 소득을 기준으로 할 때, 간접세는 저소득자의 실질적인 부담을 증가 시킨다는 면에서 불평등한 세금이다.  42-43


직접세와 간접세 중에서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가? 그런것은 없다. 당시의 국내외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44


시민은 놀랍도록 참을성이 강해서 문제가 악화되는 시점까지 시다리는 경향이 있다. 가시적으로 문제가 발생해야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너무 늦어 악화되었을 때가 보통이지만, 시민의 움직임은 사회의 분위기를 역전시킨다. 

진짜 문제는 움직이지 않는 시민에게 있다. 상황이 악화되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지 못하는 부동의 시민들이 문제다. 그들이 사회의 절대다수일 경우 그 사회는 균형을 잃어버리고 특정 계층, 특정 계급의 이익만을 반복적으로 보장하는 부정한 사회로 변질될 수 있다.  45


한국은 간접세 비율이 높고 직접세 비율은 낮아서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50



최종 정리


첫 번째 질문은 '세금을 인상할 것인가'였고, 두 번째 질문은 '누구의 세금을 인상할 것인가'였다.

첫 번째 질문이 중요한 것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들의 근원에 세금에 대한 논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세금은 복지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세금의 인하는 복지의 축소를, 세금의 인상은 복지의 확대를 가져온다.  52


두 번째 질문인 '누구의 세금을 높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답변이 가능했다. 하나는 부유층의 세금을 누진적으로 높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민 전체의 세금을 일괄적으로 높이는 것이다.

부유층의 세금을 인상한다는 것은 누진세와 부유세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누진세는 개인의 소득에 부과하는 세금이고, 부유세는 개인의 재산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소득과 재산이라는 개인이 부에 직접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이 둘을 직접세라고 한다. 

다음으로 국민 전체의 세금을 인상한다는 것은 소비세와 주민세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세는 상품과 서비스에 붙는 세금으로, 개인이 소비한 만큼 발생한다. 주민세는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부과되는 세금이다. 이 둘은 간접세에 속한다. 간접세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여된다는 점에서 표면적으로 평등해 보이지만, 개인의 소득과 재산을 고려할 경우 상대적으로 가난한 살마들의 부담이 높아지는 불평등한 세금이라고 할 수 있다.  ..

국가의 방향성을 선택한다는 것은 '세금 징수의 양'과 '세금 납부의 주체'를 결정함을 의미한다. ..

결과적으로 누구의 이익이 보장되는지를 확인하면 된다.  53-54






국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국가에 대한 저의는 정치적 실체를 말한다. 항구적인 영토와 국민을 기반으로 정치 조직으로서의 정부를 가지고 있는 정치적 실체 말이다. ..

국가에 대한 물음의 근저에는 '국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당위적 역할에 대한 물음이 깔려 있다. 우리가 국가에 대해서 정말 하고 싶은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이이어야만 하는가?"

두 종류의 국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최소한의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가 가능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국방과 치안에 힘쓰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의 방식이나 경제활동에는 간섭하지 않는 국가. 이러한 국가를 '야경국가'라고 한다. '야경'의 한자어를 풀어보면 '밤 야(夜)' '경계할 경(警)'으로, 국가는 야간에 경비를 서는 정도의 역할만을 한다는 의미다. ...

다음으로 생명과 재산 보호, 국방과 치안을 넘어 개인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국가가 그것이다. 국민이 배가 고프지 않은지, 어디가 아프지는 않은지 신경 쓰며 국민의 삶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진 국가다. .. 이러한 국가를 '복지국가'라고 한다. 여기서의 '복지'란 건강하고 윤택한, 궁극적인 행복의 상태를 의미한다.  60-61




오늘날의 국가들을단순하게 자유주의, 사회주의 혹은 야경국가, 복지국가로 단정하기를 쉽지 않다는 것이다.  63



공화제는 왕이 없다는 기본적인 전제만을 갖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국가체제로 나타날 수 있다. 우선 왕 대신 귀족이나 소수 엘리트가 집권하는 형태가 있다. 이를 일반적으로 귀족제라고 한다. 다음으로 다수의 인민들에 의해서 국가가 운영되는 형태가 있다. 이를 민주제라고 한다.

공화제의 주인은 왕을 제외한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다. 개념상 귀족이나 소수 엘리트가 독재하는 체제도 공화제라고 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민주제도 공화제라고 할 수 있다.  77-78


어떤 의미에서는 공화제와 민주제가 대립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공화제가 소수 귀족이나 엘리트에 의한 통치를 긍정하기 때문이다. 공화제와 민주제는 화해할 수 없는 부분을 갖는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엘리트주의와 민주주의 대립으로 알려져 있다.  79





자유


시민이 자유 그 자체.  99


정신은 두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우선 한 명 한 명의 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 있다. 이를 '주관적 정신'이라고 한다. 무엇인가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는 나의 정신 말이다. 다음으로 사회가 가진 정신도 있다. 법, 정의, 도덕, 인륜이 그것이다. 헤겔은 이를 '객관적 정신'이라고 불렀다...

헤겔은 두 가지로 구분한 주관적 정신과 객관적 정신을 다시 통합한다. 이 통일된 정신이 절대정신이다.  100


헤겔에게 세계 전체는 절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헤겔은 물질보다는 정신이 세계의 근본이라고 생각한 관념론자였다.

정신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을까? ..

정상적인 자신을 기준으로 반대되는 역을 상정한 뒤에 이를 통합해나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장해가는 운동 과정을 헤겔은 '변증법'이라고 불렀다. 


헤겔은 절대정신의 본성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자유'다. 절대정신은 역사 속에서 자유의 확장으로 드러난다. 세계의 역사는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되어온 것이다.   102


자유란 타자에게 간섭받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유의 정의다. 이러한 자유의 정의는 실제로는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 우선 앞 부분, 자유는 타자에게 간섭받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특정 국가나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주체적으로 존재하는 상태가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자유를 '소극적 자유'라고 한다. 다음으로 뒷부분,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음을 말한다. 자신이 지향하고 선택하는 것을 주체적으로 이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상태가 그것이다 이러한 자유를 '적극적 자유'라고 한다.  111


문제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의 개념이 국가체제나 경제체제의 쟁점과 연결되어 어른들이 먹고사는 문제에 깊게 관여한다는 데 있다.  112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는 실제 현실에서 다른 단어로 대체되어 사용된다. 우선 소극적 자유는 '자유'라는 말과 동일하게 사용된다. 바꿔 말해서 오늘날 '자유'라는 어휘에는 소극적 자유가 항상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가 들어간 단어들인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시장의 자유 등에는 작은 정부에 의한 소극적 자유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적그적 자유도 마찬가지다. 적극적 자유는 '평등' 혹은 '복지'라는 말로 대체되어 사용된다. 바꿔 말하면 오늘날 '평등' 혹은 '복지'라는 어휘에는 큰 정부에 의한 적극적 자유의 이념이 항상 내포되어 있다.  116


자본주의가 뭘 그렇게 잘못했지에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하고 실행하려 노력했던 것일까?

바로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생산수단의 개인소유' 때문이다. 

실제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에 대한 태도에 따라 구분된다.  120



마르크스는 이렇게 도래할 공산주의 사회를 두 단계로 구분했다. 우선 자본주의가 내적인 모순에 따라 무너지면 노동자들에 의한 독재가 이루어지는 프롤레타리아 독재국가가 발생한다. 이것이 낮은 단계의 공산주의다. 다음으로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사회가 안정적으로 생산력을 갖춰 모든 국가는 사라지고,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한다. 이 사회가 최종적인 모습으로, 마르크스는 이를 높은 단계의 공산주의라고 불렀다.  132


자유는 시민의 이름이었다.인류의 역사는 자유의 확장이라는 일관된 방향성을 갖고 있다. 단 한 명의 자유인이었던 왕에서부터 영주, 부르주아에 이르면서 자유인의 규모는 확대되어왔고, 결국 현대에 이르러 모든 사람이 정치적인 자유를 획득했다. 오늘날의 모든 자유인을 우리는 시민이라고 부른다. 시민은 우연히 탄생한 존재가 아니라, 역사의 필연적 귀결이다.

자유는 두 종류로 구분된다. 소극적 자유는 타자에게 간섭받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제약과 구속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 적극적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자신의 욕망과 선택을 실현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

자유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특징인 생산수단의 개인소유에 대한 자유였다. ..

자유는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용어다.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로움이라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그 무언가는 현실에 없다.  135-136





직업


"노동의 신성함에 대한 강조는 사회 구성원들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와 그렇지 못한 노동자가 있고, 이로 인해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래서 노동의 대가로 최소한의 삶만을 겨우 유지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면, 그 사회에서 노동의 신성함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비열한 행위는 없습니다."

시민이 말을 이었다.

"한 명의 개인은 선택하게 됩니다. 두 가지 삶만이 가능하죠. 나를 바꾸는 삶, 세계를 바꾸는 삶. 첫 번째 사람은 나를 바꿉니다. '생산 수단의 개인소유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해? 그렇다면 그걸 내가 가져야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인정하고 나를 그 시스템에 맞추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세계를 바꾸려 노력합니다. '생산수단의 개인소유가 그렇게 중요해? 그렇다면 누구도 그걸 독점해서는 안 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문제가 있으니, 그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142-143


주주 자본주의는.. 영국과 미국의 자본중ㅢ가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의 경영진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상품을 얼마나 생산하고 판매했느냐가 아니다. 주식의 시세 차익과 배당을 통해 주주의 이익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된다. ...

반면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기업과 연계된 사회적 이해관계자 전체를 고려하는 것이 기업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독일과 일본의 자본주의가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방향성을 가진 기없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주주의 이익이 아니라 모든 관계자와의 공존이다. 노조를 비롯하여 지역사회의 일반 주민들까지도 제한된 범위 내에서 기업 경영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물론 오늘날의 기업들은 극단적으로 한 가지 형태를 띠는 것이 아니라 혼합된 모습을 보인다. ..

문제는 방향성에 있다. 현재의 복합적인 기업 활동을 기준으로 기업의 방향성이 주주의 이익을 향하는지, 아니면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향하는지의 여부가 중요하다.  156-157


현실의 구체적인 쟁점들은 하나하나가 치열하게 논쟁되고 잇으며 복잡하기 때문에, 개인이 이를 이해하고 자기 나름의 해결 방안을 도출하기까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을 쪼개 써야 하는 바쁜 현대인들은 복잡하고 다채로운 사회적 쟁점에 자연스럽게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보통의 현대인들과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에 투쟁이 벌어진다. 바쁜 현대인들은 안 그래도 정신 사나워 죽겠으니 사회는 소란스럽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현대인의 무관심을 깨우기 위해서라면 소리를 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적 쟁점은 산으로 간다. 구체적인 실제 쟁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고 시위의 태도, 말하는 방식, 과격성, 이로 인한 불편 등이 이슈화된다.  159-160


"직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게 되는 겁니다. 좋아하는 일이라거나 잘하는 일이라거나, 산업화사회에 이르러서 그런 건 없습니다."

비서실장이 반문했다.

"아니, 왜 없나요? 누구나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직업을 선택하는 거 아닌가요?"

"운동화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일을 선택한 겁니까, 아니면 잘하는 일을 선택한 겁니까?"

...

".. 특정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잘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사회의 일반적인 직업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직업과 노도에서 보람과 성취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직업을 기대할 수 있는 보상은 오직 임금뿐입니다.  162-163


직업 선택에서 고려해야 하는 세 가지 측면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보람, 수익, 리스크가 그것이다. 우선 성취와 보람 면에서는 사업가와 투자가가 이를 향유할 수 있고 노동자가 배제됨을 보았다. 노동자는 그 대신 임금으로 보상 받는다. 

하지만 보상으로서의 수익에서도 노동자는 소외된다. 사업가와 투자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레버리지를 통해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직업으로서 임금노동자를 선택하는 것은 가장 비랍리적인 판단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들은 성취감에서 배제되고 수익도 낮다. 하지만 이들의 선택을 단순히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말할 수 는 없었다. 왜냐하면 성장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기업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자본가의 손실이 예상되기 때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받을 수 있는 임금노동자를 선택하는 것이 이익을 극대화하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래서 최근의 노동시장 유연화가 문제가 된다. 임금노동자가 그나마 다른 직업군에 비해서 만족스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리스크의 회피 때문이다. 성취와 보람 그리고 수익으로부터 배제되는 대신 안정을 선택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박탈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 노동시장의 유연화라고 할 수 있다.

비정규직 확대의 본질은 투자가와 사업가가 져야 할 리스트를 다수의 노동자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182


생산수단의 개인소유를 인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동시에 계급적 관계망 안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선택한 직업 안에서 발생하는 인간적인 문제를 비롯한 다양한 갈등은 우연적이라기보다는 직업군의 관계 양상이 민들어낸 결과물이다.  186






교육


교육은 구분된다. '교육의 내용'과 '교육의 형식'으로, 그중에서 일반적으로 교육의 형식은 교육의 내용보다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로 개인은 교육의 형식을 통해 배움을 체화한다.  193


벤담이 처음 파놉티콘을 제안했던 것은 단지 효율성 때문이었다. 그에 따르면 파놉티콘은 감옥뿐만이 아니라 학교, 병원, 공장, 병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설에 적용할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소수의 감시자만으로 다수의 사람들을 통제할 수 있으므로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벤담이 살던 시기에 파놉티콘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를 재조명한 것은 20세가 프랑스에서 활동했던 철학자 미셸 푸코였다. 푸코는 벤담의 파놉티콘을 재해석했다. 푸코에 따르면 파놉티콘은 단지 효율적인 감시도구를 넘어서 근대사회에서 규율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

근대사회가 되면 규율 권력은 세련되게 작동한다. 규율은 폭력이 아니라 감시의 시선과 이를 통한 자발적인 내재화로 작동한다. 우리는 서로를 감시함으로써 규율과 규칙을 자발적으로 준수하는 것이다. 파놉티콘은 근대사회의 규율 권력이 어떻게 개인에게 내재화 되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파놉티콘의 사례에서 환경이라는 형식이 어떻게 개인을 학습시키는지에 대한 힌트를 얻으려고 한다. ..

오늘날 학교라는 형식에서 우리가 실제로 교육받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진리에 대한 이념'과 '경쟁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체화한 채로 학교를 졸업한 후 사회에 나온다.  196-197


질리가 외부에 실재한다는 입장을 '객관주의 인식론'이라 한다. 이 관점을 토대로 하면 교육은 개인에게 진리를 주입하는 방법을 취한다. 인류의 지식과 지혜라는 진리가 실재하고 있으니, 교사는 학생들의 머릿속에 이것을 넣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는 교육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학생은 진리를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역할.  198


진리가 개인의 내부에서 구성된다는 입장을 '주관주의 인식론'이라고 한다. 이 관점을 토대로 하면 교육은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진릴르 만들어내는 것은 학생 스스로다. 따라서 교사는 학생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하고 도움을 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에 한정된다. 학생은 주체적으로 학습해나간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다양성을 길러낸다. 진리가 개개인에 의해서 구성되는 만큼 모든 개별자는 나름대로의 진리를 보유한 존재로 대우받는다. 이제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와 대화다. 교육은 토론 형식을 취한다. 




강의식 교육과 전통적 교실 구조 그리고 객관적 평가가 진행되는 A학교에서 성장한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진리가 실재한다는 절대주의적 진리관을 가진 어른이 된다. ..

이들은 개인적인 문제에 봉착하거나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전문가를 찾는다. 정답을 아는 사람이 있을 테니까.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들 간에 이익이 충돌하면, 이들은 옳고 그름을 기준으로 논쟁한다. 그리고 보통은 틀렸다고 전제하지 않으므로, 우선은 상대방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사고방식은 자신의 세계를 선으로 타자의 세계를 악으로 상정하는 세계관으로 발전한다. 나는 합리적이고 열린 사고를 가졌으므로 타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만, 다른 정당, 다른 종교, 다른 이념, 다른 체제, 다른 가치관은 사실 틀렸다고 이미 상정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타협과 양보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다만 이러한 교육을 통해 성장한 어른들은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교육 방식으로 훈련된 까닭에 학습 능력이 우수하고, 사회의 관려적 시스템이 주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수 있는 인내력을 갖춘다. 험난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203-204


토론식 교육과 원탁형 교실 구조 그리고 서술식 평가가 진행되는 B학교에서 성장한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진리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적 진리관을 가진 어른이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어른들 간에 이익이 충돌하면, 이들은 우선 상대방을 쉽게 악으로 규정하려는 극단적인 태도를 지양한다. 그리고 문제 해결을 위한 길고 지루한 조율과 설득의 과정을 돌입한다. 대화가 발생시키는 피로감은 인내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교육을 통해 성장한 어른들은 제도화되고 획일화된 평가 기준에서 좋은 성과를 드러내기 어렵고, 사회의 관료적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표준화와 효율성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에 적합한 노동자로 성장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4-205


'경쟁'이라는 교육의 형식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학생들은 자신의 평가 결과와 무관하게 교육의 형식을 통해 경쟁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  206


안타깝게도 경쟁의 정당성에 대한 믿음을 개인이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오랜 시간 동안의 의무교육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경쟁의 정당성을 내재화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교과 내용에 경쟁의 정당성이 나온다는 것이 아니다. 시험과 평가라는 학교 교육의 형식이 아이들을 가르친다. ..

경쟁률을 발생시킨 사회구조에 주목해야 한다. 평가 결과에 따른 우선적인 책임은 사회에 있다. 중간 성적에 속한 학생들이 칭찬받고, 중간 정도 노력하는 사람이 취업할 수 있고, 중위 소득에 속하는 사람이 먹고살 수 있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다. 이러한 사회에서 이루어진 경쟁이라고 할 때에만, 우리는 그 결과의 책임을 비로소 개인에게 물을 수 있다.  212-213


교육 문제의 근본은 구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구조란 경제체제를 말합니다. 경제체제가 교육의 형태와 문제를 규정합니다.  215


교육의 본질은 자기 수양과 학문에의 정진이라고 생각할 수동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교육은 직업 획득의 문제, 개인의 경제생활 영위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일자리의 양과 소득격차의 수준은 그 사회의 교육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일자리가 적고 소득격차가 커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양질의 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사회라면 학생들과 취업자들이 심각한 경쟁 환경에 던져지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223


'유연안정성'이라는 개념이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flexibility)'과 고용의 '안정성(security)'을 조합해서 만든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라는 개념이다. 덴마크를 비롯해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이 개념은 시장 자유와 정부 개입의 두 가지 특성을 적절하게 조합하고 있다.

기업이 노동자를 쉽게 해고하고 고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덴마크는 강력한 노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가 쉽게 해고될 수 있다. 그래서 전체 노동자의 평균 근속 기간은 8년여 정도에 불과하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쉬운 해고가 고용을 창출하는 효과를 발생시킨다. 기업은 쉽게 구조조정을 할 수 있으므로 시장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만큼 채용에서도 적극적이게 된다. 실제로 덴마크의 고용률은 75%로, 유럽 평균인 65%를 상회한다.

하지만 이러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가능한 것은 노동자들이 희생을 감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국가가 강력한 고용 안정성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높은 세율과 포괄적인 복지가 이루어지는 까닭에 개인은 실직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는다. 덴마크는 해고된 노동자에게 최장 4년 동안 이전 급여의 90%를 지급한다. 단, 실직 기간 동안의 직업교육이 필수 의무이며, 정부가 제공하는 일자리는 특별한 이유 없이 지속적으로 거부할 경우 실업급여는 중단된다.  225


교육은 경제가 결정한다. 경제적 상황과 환경, 구체적으로는 일자리와 소득격차의 정도가 어떠한가에 따라 교육의 모습이 결정된다.  227






정의


아리스토텔레스.

정의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하는 것을 '배분적 정의'라고 한다. 그리고 같은 것을 같게 대하는 것을 '평균적 정의'라고 한다.  239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될 때가 가장 이상적인 상태일 것이다. 문제는 개인, 집단, 국가에 따라 어디까지를 같다고 보고, 어디까지를 다르다고 볼 것인지를 규정하는 기준이 상이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정의는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특정 사안에서 평등함을 기준으로 정읠르 판단해야 한다는 관점과, 반대로 차등을 중심으로 정의를 평가해야 한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

윤리에서의 정의는 '정의로움'으로, 경제에서의 정의는 '분배'로, 정치에서의 정의는 '선택'으로 드러난다.  240


정의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이 있다. 수직적 정의관과 수평적 정의관. 어떤 사람들은 정의로움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수직적 질서를 준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대우를 받는 것은 옳지 않다. 노력한 사람과 노력하지 않은 사람, 법을 준수하는 사람과 준수하지 않는 사람, 같은 민족과 다른 민족을 분명하게 구분하고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이 정의인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다른 것은 다르게' 분배해야 한다는 '차등적 정의관'에 부합한다.  248


다른 사람들은 정의로움이 수평적인 평등을 이루는 거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성별, 인종, 나이, 지역, 부에서 어떠한 차별도 받아서는 안 된다. 특히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고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면 그들의 인권은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가서 정부는 그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같은 것은 같게' 분배해야 한다는 '평등적 정의관'에 부합한다.  249


자유주의는 자연적으로 발생한 현재의 분배 상태를 인정함으로써 개인의 재산권을 보장하는 것이 정의롭다는 이념이다. 사회주의는 인위적인 노력으로 부에 대한 강력한 재분배가 이뤄지는 것이 정의롭다는 이념이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분배 방식의 다른 이름이다.  256


자유주의적 이념에 뿌리를 두는 경제체제가 있다. 초기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수정 자본주의가 그것이다. 다음으로 사회주의 이념에 뿌리를 두는 경제체제가 있다. 사회문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가 그것이다.  257


근대라는 시대를 열어젖힌 것이 초기 자본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258


베른슈타인은 엥겔스 사후에 영향력을 얻기 시작했다. 그는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주장에 반대했다. 대신 점진적인 개혁을 주장했다. ..

마르크스주의를 '공산주의'로, 베른슈타인주의를 '사회민주주의'로 불렀다.  266-267




오늘날의 한국은 경제체제의 스펙트럼상에서 신자유주의에 위치해 있다. 이에 대한 근거는 세율에서 찾을 수 있다.  272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국가의 세율은 대략 20%대다.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 일본, 한국이다. 수정 자본주의를 추구하는 국가는 이보다 높아져서 대략 40%대의 세금이 부과된다. 프랑스, 영국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다음으로 사민주의는 50~60%대의 세금이 부과된다. 북유럽 국가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273








미래


인플레이션은 물가의 점진적인 상승을 의미하고, 디플레이션은 물가의 점진적인 하락을 의미한다. 

그런데 물가 하락이 무조건 디플레이션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기존에 인플레이션이 급하게 이루어졌고 이것이 정상화되는 과정에 있다면, 이러한 상태는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디스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디스인플레이션을 넘어서 물가가 마이너스가 되기 시작하면 이를 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가 강기간 지속되어서 격국 극단적으로 경기가 불황에 머무르는 상태를 '불경기'라는 뜻으로 디프레션이라고 한다.  201-291








'아비투스(Habitus)'라는 개념.

아비투스는 20세기에 프랑스에서 활동한 사회학자인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이다. 보통 '습관'이나 '습속'으로 번역되고, 영어에서 습관을 의미하는 'Habit'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습관이라기보다는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형성되는 습관을 의미한다. ..

나의 행동과 취향과 선택은 정말 나의 개인적인 것일까? 부르디외는 그러한 일관된 행동 패턴으로서의 습관은 계급적이고 구조적인 사회적 환경이 나에게 내재화된 것이라고 말한다. 즉, 나의 취향은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 아니라 계급적인 취향이다. ..

노동자는 노동자처럼 말하고, 노동자처럼 생각하고, 노동자처럼 행동한다...

자본가는 자본가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우리가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생각해왔던 나의 취향과 성향과 선택은 나의 것이 아니라 계급적인 것이다. 이것이 아비투스다. 사회적 계급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 나의 사고와 행동의 패턴. ..

문제는 지배적 위치를 점유한 계층이 아비투스를 이용해서 지배를 정당화하고 지배질서를 유지한다는 점에 있다. 부르디외는 이를 '상징적 폭력'이라고 부른다.  327-328


자본가와 노동자의 아비투스를 나눌 수도 있지만,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의 아비투스를 나눌 수도 있다. 부모 세대는 성장하는 사회를 경험하면서 그 속에서 성장하는 사회의 아비투스를 내재화한다. 타인보다 노력함으로써 성공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이를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 하고, 저축과 투자를 함으로써 부를 쌓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내재화된다.

반면 자녀 세대는 앞으로 정체된 사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성장하지 않는 사회의 아비투스를 내재화할 것이다. 노력이 성공을 보장하지 않으며, 최소한의 권리도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음에 만성적인 피로를 느낄 것이다. 이로 인해서 경쟁과 성공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안정적인 직장도 없고 저축과 투자도 의미 없다.  329


문제는 사회의 중심을 차지한 부모 세대의 가치관이 주변부를 맴도는 자녀 세대에게 상징적 폭력으로 주입된다는 점에 있다.  330






에필로그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 일곱 가지 분야는 한 명의 시민이 탄생했을 때, 그가 현실 세계에서 만나는 것들이다.  340


시민은 그 자체로 자유다.  345


세계를 복잡하게 이해하려다 지치지 말고, 세계를 관통하는 단순함에 집중해야 합니다.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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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스키 미래의 정부를 말하다

저자
노암 촘스키 지음
출판사
모색 | 2006-02-01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사적 권력과 사적 제국들이 지배하는 산업사회에서 진정한 국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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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좀 난해한 면이 있다는것이 첫 느낌이었다. 


생성문법 이론의 창시자로 언어학자인 저자는 분야 뿐 아니라 철학 인지학 심리학등의 학문적연구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전반적인 통찰력을 보여 주는 석학이다.

이 책은 한마디로 국가론에 대한 고전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상적인 국가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대해 논하고 있다.

선진 산업사회에서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하려 하면서 4가지 입장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libertarian socialism), 국가사회주의(state socialism),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그는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구상은 기본적으로 올바르며 고전적 자유주의를 선진 산업사회라는 현 시대에 맞게 적절하면서도 자연스럽게 확장한 개념이다.
그에 반해서 국가사회주의, 국가자본주의는 퇴행적이고 매우 부적절한 사회이론이라 주장한다.

이 4가지 입장에 대해 서술하는 내용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그는 책에서 여러 철학자들과 좌파 우파들 그리고 학자들의 글들을 인용하면서 서술하는데 '결론 자체보다는 추론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글을 전개하였다. 

거기에 더해 
부록에서는 '부시행정부의 제국주의 거대전략' 2003년 10/11월호 [보스턴리뷰(Boston Review)]의 기고글과
'선진교수, 노암촘스키에게 묻다' 2003년 2월 11일 [뉴욕타임즈 매거진] 인터뷰글
'세계 최고의 대중적 지식인, 촘스키와 우리의 선택' [Profit ower People(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출간당시의 로버트 맥체스니가 작성한 서문을 싣고 있다. 
이 내용에서 그는 반복되는 내용들이긴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부분을 언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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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 허만과 나는『여론의 조작 Manufacturing Consent』이라는 언론 관계 책자를 공저했는데, 이 책에서 "프로파간다 모델Propaganda Model"이라는 자명한 이치를 설명했습니다. 이 모델을 적용해보면, 언론 기관은 그들의 이익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업으로서 오랫동안 존속하지 못할 거니까. 그래서 프로파간다 모델이 언론의 형태를 분석하는 유익한 도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뭐 그리 심오한 도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론의 조작』에서 우리는 두 개의 모델(① 언론이 마땅히 기능해야 하는 방식, ② 언론이 실제로 기능하는 방식)을 대비시켰습니다. ①의 모델은 전통적인 것입니다. 이것은『뉴욕 타임스』가 최근에 자사 발행의 『북 리뷰』에서 "정부를 견제하는 제퍼슨식 언론의 역할"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정치 과정에서 일반 대중이 의미 있는 통제를 가하도록 돕기 위하여, 까다롭고, 고집 세고, 어디에서나 출현하는 언론, 그리하여 당국의 권력자들을 괴롭히는 그런 언론이 바로 ①의 모델입니다. 바로 이것이 미국 내의 표준적인 언론 모델이고 언론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들은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②의 모델은 언론이 실제 행동하는 방식으로서, 국내의 경제를 장악하고 나아가 정부까지 상당 부분 통제하고 있는 특혜 그룹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아젠다를 보호하고 확충하는 세계관을 대변하는 언론입니다. ②의 모델에 따르면, 언론은 기사를 선정하는 방식, 관심사를 분배하는 방식, 문제의 틀을 정하는 방식, 정보를 여과하는 방식, 분석기사를 집중하는 방식, 그 밖의 다양한 테크닉을 통하여 그들의 사회적 목적에 봉사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어느 때든 국가 정책에 일방적으로 동의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정부 권력의 장악은 우리 사회 내의 다양한 엘리트 그룹들 내에서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제계의 어떤 부분이 어떤 특정 기간에 정부를 장악했다는 사실은, 엘리트들이 지배하는 정치 스펙트럼의 한 부분이 그런 힘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엘리트들끼리도 전략적 의견 불일치가 때때로 생겨날 수 있습니다. "프로파간다 모델"은 이렇게 예측합니다. 언론에는 정치 스펙트럼의 어느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반영된다. 따라서 언론에 의해서 포섭되지 않는 정치 스펙트럼은 없다.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고요? 물론 이것은 거대하면서도 복잡한 주제입니다. 우선 네 개의 기본적 관찰 사항을 얘기하고 그 다음에 좀더 자세히 들어가 보기로 합시다. 첫 번째 사항은 프로파간다 모델이 엘리트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서방의 엘리트 민주 사상가들 사이에는 그런 전통이 강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이 사상가들은 언론과 지식인 계급이 프로파간다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른바 "대중의 정신the public mind"을 통제함으로써 일반 대중을 주변화해야 한다고 보았던 겁니다. 이 사상은 300년 동안 영미 민주사상의 핵심 주제였고 현재까지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사상의 근원을 소급해 보면 서구의 최초 민중민주 혁명이었던 1640년대의 영국 내전(1642~1648년 동안 영국의 정권 장악을 놓고 왕당파와 의회파가 벌인 무력 충돌)까지 올라갑니다.

 

당시의 영국 내전에는 두 파의 엘리트가 참여했습니다. 한 파는 의회의 편을 든 지주 계층과 신흥 상인 계층이었고, 다른 한 파는 전통적인 엘리트 그룹인 왕당파였습니다. 이 두 파는 엘리트 갈등의 맥락에서 발달한 대중들의 움직임을 우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모든 권위-주종 관계, 국가 당국자의 권위 등-에 도전하는 민중운동이 생겨났던 겁니다. 그 당시 인쇄기가 막 발명되었기 때문에 과격한 책들이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영국 내전의 양쪽 엘리트들은 일반 대중이 갑자기 통제 불능의 상태로 빠져드는 것을 굉장히 우려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반 대중은 너무 호기심이 많고 너무 거만하여 민간 통치에 승복하려는 겸손한 마음이 조금도 없다." 이처럼 왕당파와 의회파는 일반 민중을 힘으로 찍어누르는 능력을 상실해갔고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취한 첫 번째 조치는 힘으로 찍어누르는 능력을 다시 도입하는 것이었고 그리하여 당분간 철권통치하는 절대국가가 들어섰습니다. 그런 다음에 왕정이 다시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정은 모든 것을 회복시키지는 못했고 정권을 완전 장악하지도 못했습니다. 민중 운동이 치열하게 투쟁했던 목표들이 상당수 영국의 정치적 민주주의에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이후 민중운동은 기존의 권력을 어느 정도 해체하는 데 성공해 왔습니다. 그러자 서방의 엘리트들 사이에는 이런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무력으로 국민을 통제할 힘이 점점 사라져간다면, 대안으로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나가야 하겠다. 이러한 인식은 미국으로 건너와서 그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20세기에 들어와 미국 사상에는 이런 주요한 흐름이 형성되었습니다. 그것은 정치학자, 언론인, 홍보 전문가 등 권력가 밀착된 사람들의 주요 사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 사상은 국가가 힘으로 국민을 강제할 능력이 없으니까, 엘리트가 앞장서서 공공의 마음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프로파간다를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미국 언론계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의 생각입니다. 그는 일반 대중을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무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리프먼은 이 대중들 사이에 "합의의 조성manufacture of consent"을 이루어내야 한다고 말했는데 더 쉽게 말하자면 여론조작을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무력으로 안 되니까 계산된 "합의의 조성"으로 통제를 계속해나가자는 것이었지요.

 

1920년대 당시 홍보산업의 주요 교범은 아예 제목이『프로파간다』였습니다(그 당시 사람들은 좀더 정직했었지요). 이 교범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대중의 습관과 의견을 의식적이고도 조직적으로 조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민주 체제의 핵심 특징이다. 그 책의 문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어 교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소수 지식인들intelligent minorities"의 임무는 대중의 습관과 의견을 이런 식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으뜸 원칙인 겁니다. 다시 말해 힘으로 사람들을 통제할 능력이 없다면 세뇌indoctrination가 가장 좋은 방식이라는 것이지요. 바로 이것이 프로파간다 모델의 첫 번째 사항입니다. 이것은 엘리트들의 지적 전통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아온 사상입니다.

 

두 번째 사항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습니다. 프로파간다 모델은 일종의 사전 개연성prior plausibility을 갖고 있습니다. 언론의 구조를 살펴보면 대기업 언론사들은 미국 사회처럼 기업이 지배하는 사회의 프로파간다 기능에 복무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 사항은 일반 대중이 프로파간다 모델의 기본 특징에 동의하는 경향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것과는 다르게,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일반 대중들은 언론이 권력에 너무 순종적이고 복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언론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이미지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지만 아무튼 일반 대중은 언론을 그렇게 보고 있는 겁니다.

 

(중략)

 

자, 다시 세 가지 초기 관찰 사항으로 돌아갑시다. 네 번째 관찰 사항은 프로파간다 모델의 경험적 타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사태의 핵심이지요. 프로파간다 모델이 기술하는 사항은 정확한가? 다시 말해 언론은 "전통적 제퍼슨 식 역할(민중의 등불)"을 수행하고 있는가, 아니면 "프로파간다 모델"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흡족하게 대답하기 위해서는 조사를 많이 해야 하고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섭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주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방법의 윤곽만 간략히 말씀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여론의 조작』에서 프로파간다 모델을 검사한 첫 번째 방식은 그 모델을 가장 엄격한 테스트에 회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반대파들에게 그들이 검사받을 대상을 직접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비판가들이 언제나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은 자기 주장에 유리한 사례만을 뽑았군." 그래서 반대파들에게 검사 대상을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스펙트럼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언론의 반정부적 자세를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사례들, 그들이 그들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뽑아낸 사례들-가령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기타 등등-을 검사 대상으로 삼아서 그들이 프로파간다 모델을 따르는지 아닌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맨 먼저 이런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우리는 반대파에게 검사 대상을 선택하도록 시켰고 그래서 우리가 엉뚱한 사례를 집어들어 우리의 주장을 증명하려 한다는 시비를 사전에 차단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검사한 결과, 여전히 프로파간다 모델이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행한 또 다른 조사 방식은 언론에 실린 의견들의 범위를 문서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류 언론에서 표현 가능한 생각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살펴보려는 거였지요. 우리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면밀히 살폈습니다. 우리는 서로 유사하여 짝을 이루는 듯한 사례를 언론이 어떻게 다루는지 조사했습니다. 물론 역사는 조사연구자들 좋으라고 통제 가능한 실험 사항들을 일부러 제공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로 비슷해 보이는 역사적 사건들이 많습니다. 언론이 그 두 사건을 어떻게 다루는지 비교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우리는 적성국가들이 저지르는 잔학행위와 비슷한 규모로 미국이 저지른 잔학행위를 언론이 어떻게 다루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적성국과 우방국의 선거 결과나 자유의 문제를 어떻게 보도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가 조사한 토픽들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우리는 생각해낼 수 있는 여러 방법론적 관점들로부터 많은 사례들을 연구했습니다. 우리의 연구는 프로파간다 모델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주장을 확인해주는 다른 사람들의 책자나 논문들도 수천 건에 달합니다. 그래서 나는 프로파간다 모델이 사회과학에서 가장 잘 입증된 명제의 하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알기로 이 명제에 반대하는 의논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류 문화는 이런 사실("언론은 프로파간다 모델을 따른다")에 대하여 오불관언("나하고는 관계없음")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가 사회과학 분야에서 아주 확실하게 정립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주류 문화는 그들과 무관한 것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자연과학 수준에서 증명해도 주류 기관들은 여전히 배척할 겁니다. 왜 이렇게 배척하는가 하면 프로파간다 모델이 옳은 주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모델은 아무리 잘 증명되어도 엘리트 문화 내에서는 이해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말이지요, 이 모델이 밝혀내는 바가 아주 효율적이고 유익한 이데올로기적 제도를 뒤흔들기 때문이지요. 그런 제도에 역기능을 하니까 배제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촘스키, 세상의 물음데 답하다 1」中 프로파간다 모델의 시험 50-57p, -

*1989년 4월 15-16일, 메사추세츠 주 로우에서 열린 주말 공개 토론회를 바탕으로 엮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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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파간다의 힘에 대해서 

행인과 일월산(이하 존칭 생략), 두분의 대화를 오늘 비로소 자세히 읽어보았습니다. 저에게도 많은 공부가 되는 대화입니다. 특히 일월산에게 구체적 해법에 대해서 추궁하는 것은 '일월산이 제대로 임자 만났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두분이서 서로 내용을 채워가는 좋은 대화를 나눠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행인의 마지막 글 [프로파간다가 세상을 변혁하나?]를 읽고 문득 드리고 싶은 말이 두가지 정도가 있어서 글을 씁니다. 그 두가지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식권력, 2) 구체성의 정체...이런 두가지입니다. 

1) 지식권력 없이는 변혁은 불가능하다
먼저 행인의 질문 [프로파간다가 세상을 변혁하나?]에 대해서 저는 아주 명확한 대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프로파간다와 그렇지 못한 프로파간다가 있다"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프로파간다>...이것은 모든 정치투쟁의 필수요소입니다. 저는 이것을 군사력과 맞먹는 또는 더한층 질기고 지속적인 권력으로 규정합니다. 저는 이것을 <지식권력>이라고 부릅니다. 토마스쿤의 패러다임이나 맑시즘 계열의 이데올로기 또는 주체화 양식 또는 담론권력 등등, 뭐라고 불러도 저에겐 동일한 하나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들입니다(토마스 쿤의 패러다임은 원래 물질과학에 대한 것이지만 저는 그것을 계급담론의 인식투쟁에도 적용가능하다고 봅니다). 그것은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프로파간다>입니다. 그것은 기본의 지배이데올로기가 훈육시키고 세뇌시킨 <주체화의 양식>을 거부하게 하고, 새로운 또다른 대안적인 주체화로 시민들을 이끌어 들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이 바로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패러다임이다'라는 프로파간다>가 등장했따는 사실 자체가 어딘가 기존 주체화양식이 자기모순에 봉착했음을 보여줍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존 지식권력의 주체화양식의 모순을 헤집고 들어간다는 게 맞겠습니다. 예를 들면, 상식-원칙-합리를 표방한 '진보개혁 신주류'가 <국익, 국가이성, 민족평화, 국민통합>이라는 명분으로 <전쟁반대 파병찬성>같은 자가당착을 저지른다거나, 평화와 휴머니즘 교육으로 철저하게 강조해 왔던 그간의 미국교육계가 이번 자국 정부의 전쟁광기와 학살로 곤욕스러워 하는 것이라든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평등을 떠들던 구 사회주의 사회가 실제로는 퇴화된 국가노예제가 되어버리는 것 등이 그런 예입니다. 

이처럼 한 사회의 기본적인 생활관계가 질곡을 드러내면, 지배적인 지식권력의 주체화양식의 자기모순과 균열을 치고 들어가면서 새로운 대안을 내세우는 가지각색의 지식권력'들'이 출현합니다. 그리고 현실세계에서 정치세력들의 군웅할거처럼 지식권력들 역시 자신들의 부족적 진리와 진영 멘탈리티를 '선험화하고 보편화하려는' 투쟁에 돌입합니다. 지식권력이 되고자 하는 이런 다양한 시도들 가운데 오직 극소수만이 유능하고 실력있으며 세력있는 부족원들을 규합해 냅니다. 80년대 민주화 과정에서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는 그러한 대안적인 지식권력들이었습니다. 지식권력으로의 정립을 위한 여러가지 선전선동 및 의식화과정 자체가 새로운 주체화양식의 작동이지만, 그 실내용은 그리 고상한 것이 아닙니다.

지배적 지식권력에 세뇌되고 훈육된 대부분의 노예들-쁘띠들의 지적 수준은 대단히 빈약합니다. 왜냐면 부르조아는 결코 이들이 피착취 대상물질에 적당히 머물 정도로만 교육시키지, 진짜 부르조아 지식권력의 핵심인 반동적 유물론-이기적 실용주의를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부르조아들은 이들 쁘띠들을 <바른생활>하는 도덕적 관념론자들로 사육하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 유지에 더욱 도움이 되는 것을 정확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식권력투쟁들은 태반이 이미지-상징조작의 심리전에 심혈을 기울이게 됩니다. 쁘띠들은 정확하게 리얼리티를 보지 못하며, 이미지-상징으로 조작된 <사연들의 세계> 속에서 흥청망청대기 때문입니다. 이점을 행인이 잘 이해했으면 합니다. 프로파간다의 대상층의 특징 말입니다. 이들은 다음과 같은 3가지 인식심리 상의 특징을 지닙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이미 쓴 글들 '불공정'이란 키워드로 내용검색바랍니다)

1) 인식할당을 불공정하게 합니다
2) 좌파상식에 대한 전이해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3) 잇슈들의 신분차별에 젖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변혁시킬 수 있는 프로파간다>가 되려면 지배적 지식권력의 주체화 양식 하에서 철저하게 쁘띠들의 골수에 새겨진 이 3가지 인식심리를 돌파해야 합니다. 어떻게? 여기서 제가 하고 싶은 두번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 구체성의 정체
행인이 일월산에게 집요하게 요구하는 '구체적 해법'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구체적 해법의 난점이 나타납니다. 말 그대로 구체적 해법이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반드시 갖추어져야 합니다. 여기서의 전문성은 교수나 자격증 소지자가 아니라, <해당 문제의 해결을 마련키 위해 철두철미하게 전념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한 인간이 모든 분야에 전문적일 수 없다>는 난점과 충돌합니다. 왜 이게 <프로파간다>에 큰 장애가 되느냐하면 이렇습니다.

<구체적 해법을 제시못하면 주디질 고마해라>가 행인의 주장이라면 그것은 <전문적이지 않다면 해법을 제시할 수 없다>가 됩니다. 구체적 해법이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해당 문제의 전문성을 갖춘 자들만이 주디질할 수 있고, 나머지는 걍~ 관련 사연들이나 읊조려라고 한다면, 이것 속에는 <거대서사는 무용하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프로파간다는 무용하다>라는 이론적 허무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저는 이미 아나키와 오늘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이론적 허무주의에 대해서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나무에 대한 집중과 함께 숲을 보는 통찰력 또한 필요합니다. 길을 가는 자들이 지도나 나침반없이 어떻게 여행을 하겠습니까? <전문성에 대한 강조>가 <거대서사에 대한 일방적 부정>으로 이어진다면 이런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불필요한 적대관계가 빚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그간 상대적으로 빈약한 구체적 해법의 절대부족이라는 작금의 문제를 무시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구체적 해법>이 할 수 없는 역할, 즉 전략적 지도map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 추상적 거대서사> 역시 지식권력 형성에 중요합니다. 특히 지식권력은 쁘띠들 가운데서 선진적인 의식층들의 이탈로부터 형성됩니다. 이들 선진적인 의식층들의 특징은 <새로운 통찰과 안목의 요청>입니다. 이것이 이미지-상징조작에 세뇌된 대부분의 하수 쁘띠들과 다른 선진적인 의식층들의 특징입니다.

게다가 띠리한 이들 하수 쁘띠들은 <구체적 해법> 그자체에도 별반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면 이미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식할당의 불공정, 좌파상식 전이해 결여, 잇슈의 신분차별>에 푹 젖어서 살기 때문에 백날 설득해 보았자 이해를 못합니다. 헛수고 입니다. 오히려 이들 쁘띠 하수들에게 유효한 지식권력 프로파간다 방식은 행인이 말한 <구체적 해법의 실천 사업-제도화>입니다. 이 미묘한 차이가 이해됩니까? <구체적 해법의 프로파간다>는 무용지물이며, 오로지 <구체적 해법의 사업-제도화>만이 하수 쁘띠들에게 먹힌다는 점입니다.

즉, 인터넷 상에서의 담론교환행위 자체가 일정 이상의 쁘띠 선진층들 이상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구체적 해법>의 토론과 축적이 사실상 넷 좌파의 지식권력에 별반 관심도 관련도 없는 하수 쁘띠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것이라는 묘한 어긋남이 있습니다. 지들을 위해 애를 쓰는 자들에게 정작 일반 쁘띠 하수들은 무관심하게 대합니다~^^ 이것이 바로 지배적 지식권력의 주체화에 세뇌된 쁘띠들의 오늘 현실입니다. 이렇습니다. <구체적 해법의 축적>은 대단히 소중합니다. 저는 그렇기에 <불온이스크라>가 일상에 숨겨진 정치의 발견이자, 초국적 금융자본 단계의 노동계급형성을 위한 새로운 거대서사의 제조창이자 그것이 다성적이고 다양한 미시적 구체적인 해법들의 집적소이길 기대하는 것입니다. 

끝으로 <관계의 정치>를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좌파적 모든 대안의 철학은 <관계가 건강해지면 (그 관계의 총체인) 개인도 건강해진다>이지 그 반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자칫 <구체적 해법과 전문성 강조>가 근시안적인 축소로 인해서 누락시키기 쉬운 <관계의 정치>를 <일반적 추상적 거대서사>가 튼실하게 생산하기 때문입니다. 이해 되시지요? 자본주의는 고립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고립조차도) 관계의 그물망입니다. (생산의 사회적 성격) 그러므로 자칫 <구체적 해법>은 자기가 다루는 분야의 사안에만 집중한 나머지, 해당 사안이 전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같은 관계의 걉과 폭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좌파의 정치가 <관계의 정치>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구체적 해법>과 <관계의 전략적 통찰>, 이 양자가 둘 다 소중합니다. 특히나 변모된 초국적 금융자본의 공세 속에서 <새로운> 패러다임과 전략들 그리고 해법들의 조속한 성장과 축적이 절실합니다. 두분 사이의 좋은 대화를 기대합니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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