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길은 우리가 걸어가는 데서 완성된다."

오직 장자만큼은 길이 미리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길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 당돌하게 외쳤습니다.  5


길의 끄트머리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이곳에 우리는 바로 타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장자가 우리에게 만들라고 이야기했던 길은 다른 것이 아닌 타자에게로 향하는길이었던 셈입니다.  6


장자가 매번 망각을 강조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오직 망각만이 우리 삶을 좀먹는 기억들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망각은 하나의 통과의례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인문학의 최종 목적은 사랑과 연대를 가능하도록 하는 새로운 기억들을 구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7


장자의 망각은 철학사상 가장 긍정적인 개념입니다. 그렇습니다. 망각이란 타자로 비약하기 위한 가벼움과 경쾌함을 얻기 위한 노력입니다. 간혹 장자가 비움을 뜻하는 '허(虛 빌 허)'라는 글자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8


타자로 비약하는 데 장애가 되는 모든 무거운 것들을 비운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우리가 타자에게 건너가는 데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망각과 비움은 타자에게 비약하는 데 있어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9


망각이나 비움이라는 개념.

장자가 문제 삼았던 것은 타자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우리의 판단 혹은 추측이라는 거지요.  23


장자의 소통(疏通 트일 소, 통할 통)이란 개념.

흔히 소통이라는 것은 마음과 뜻이 전해지는 것, 즉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번역어 정도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통이란 개념은 이보다 더 복잡한 것입니다. 이 개념은 '트다'라는 뜻의 '소'와 '연결하다'는 뜻의 '통'이란 글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소'라는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막혔던 것을 터서 물 같은 것이 잘 흐르도록 한다는 작용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왜 이 '소'라는 글자를 강조했는지 아시겠지요. '소'라는 개념은 우리 마음에서 건입견을 비운다는 것. 그러니까 장자가 말했던 망각 혹은 비움과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24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타자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그에게 비약하는 것뿐입니다.  26



서양 철학이 망각의 중요성을 발견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망각은 이미 니체(F. W. Nietzsche, 1844~1900)에 의해 진지하게 숙고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플라톤으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났던 철학자로 기억됩니다. 플라톤은 이데아에 대한 '상기'나 '기억'을 그것에 대한 '무지'나 '망각'보다 탁월한 상태라고 이야기 합니다.  36


니체가 이야기하는 망각은 기억을 초월하려는 능동적 힘, 기억을 벗어나려는 치열한 투쟁.  38


"물이 소용돌이쳐서 빨아들이면 저도 같이 들어가고, 물이 나를 물속에서 밀어내면 저도 같이 그 물길을 따라 나옵니다. 물의 도를 따라서 그것을 사사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물을 건너는 방법입니다."  49


우리는 물이 빨아들이면 그것에 저항하고, 혹은 물이 밀어내면 그것에 저항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과는 달리 땅은 우리를 빨아들이거나 밀어내지 않습니다.

물의 복잡하고 다양한 흐름들에 맞추어 '감각-운동'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51


땅에서 편안해하던 주체가 물에서도 편안해하는 주체가 되기 위해서, 그는 자신에 대한 기억 혹은 주체의 동일성을 망각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52


망각은 타자와의 소통을 방해하는 '의식의 자기동일성'만을 잊으려는 것이지, 삶 자체의 능동성을 잊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63


장자느 우리도 일종의 피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피리라면, 우리는 타자와 마주쳐서 그에 걸맞은 소리를 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소리를 내기보다 오히려 자신의 소리를 내기에 바쁩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속이 꽉 막힌 피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9


남곽자기의 섬세함 묘사.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걱정, 염려, 변덕, 고집, 아첨, 오만, 허세, 가식 등과 같은 사람의 마음은 음악이 비어 있는 곳에서 나오고 버섯이 습한 데서 나오는 것처럼, 밤낮으로 우리 앞에 번갈아 나타나지만, 그것이 어디서부터 싹터서 나오는지 알지 못하겠다!' 세계 모든 것이 그렇듯이, 사람도 하나의 피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피리를 마음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나무는 바람을 만나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나무가 비어 있는 구멍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79-80


결국 타자와 마주치지 않았는데도 발생한 소리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내는 소음일 뿐입니다.  80


우리는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소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81


비워질 때에만 나는 마주치는 타자에 걸맞은 소리를 낼 수 있는 피리가 될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의 피리는 오직 그 경우에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시작하겠지요.  82


소통(疏通)이란 개념은 '트다'는 뜻의 '소'와 '연결된다'는 뜻의 '통'이라는 글자로 구성되어 있는 말입니다. 막혔던 것이 터서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물길이, 그리고 막힌 구멍을 터서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된 피리를 생각해보세요. 남곽 자기의 입을 빌려 장자가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소통'이란 글자에 응축되어 있던 셈입니다.  83-84


'지인(至人 이를 지, 사람 인)의 마음씀은 거울과 같아 일부러 보내지도 않고 일부러 맞아들이지도 않는다. 그대로 응할 뿐 저장해 두려 하지도 않는다.' 자신 앞에 사람이 도래했는데도 거울이 직전에 비추고 있던 나무의 상을 지니고 있으려 한다면 어떨까요? 그것은 거울이 아닐 것입니다.  87


거울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지 않고, 철저하게 현재 마주친 타자를 지각하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장자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기대가 현재의 지각을 왜곡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88


장자가 이야기하는 '지인(至人)'이란 바로 과거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의 작용에서 가능해지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비워버린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인이란 일체의 허구적 매개 없이 혹은 미리 사변적으로 정립된 본질 없이 직접적으로 타자와 직면해서 조우해야 하는 삶의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89


기존의 생각, 혹은 기존의 의미를 비웠기 때문에 지인은 어떨 수 없이 새로운 의미를 채워야 할 숙명에 놓이게 된다고, 물론 새로운 의미는 타자와 마주쳐서 이 공백을 채우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92


'A=-A'는 A라는 규정과 -A라는 규정이 겹쳐지는 공간, 그래서 언어와 그것에 의해 작동하는 사유의 분별작용이 불가능해지는 공간입니다. 장자는 이 공간을 '도추(道樞 길 도, 지도리 추)'의 공간이라고 규정합니다. '도추'란 글자 그대로 '도의 지도리'를 의미합니다. '지도리'란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해주는 문의 회전축을 뜻합니다. 결국'도추'란 도가 새롭게 만들어질 수 있는 계기나 조건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장자에게 있어 도란 미리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가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장자는 "도는 우리가 걸어 다녀야 이루어지는 것"(도행지이성 道行之而成)이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115-116


사르트르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항상 내가 아닌 자로 존재하고, 나는 항상 내가 존재하는 자로 존재하지 않는다."  118


'원숭이를 키우는 사람'이 원수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성을 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성을 내다가 기뻐했다. (그 원수이 키우는 사람도) 있는 그대로를 따랐을 뿐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옳고 그름'(을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대립을 조화시키고, '천균'에 편안해 한다. 이를 일러 '양행(兩行 두 양, 다닐 행)'이라고 한다.  143


'알 수 없다'는 경험 혹은 실존의 상태는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판단을 중지하고, 타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만듭니다. 스스로 판단할 수 없으니, 이제 타자의 거동에 자신을 조율할 수밖에 없게 된 거지요. 장자는 이것을 '인시(因是 인할 인, 바를 시)'라고 부릅니다.  147


'롷고 그름(을 자유롭게 사용함)으로써 대립을 조화시킨다"는 표현이 '타자성의 테마'없이는 이해불가능한 것이라면, "천균(天鈞 하늘 천, 서른근 균)에서 편안해 한다"라는 표현은 '판단중지의 테마'없이는 이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장자에게 있어 이 두 가지 테마는 "둘이 함께 가는(兩行)"것입니다. 다시말해 타자성을 경험하게 되면 우리는 일종의 판단중지 상태에 이르게 되고, 역으로 일종의 판단중지 상태에 있게 되면 우리는 타자성을 경험하게 된다는 거지요.  151-152


판단중지에 대한 경험을 기술한 후 바로, 장자는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반드시 구분이 있다"고 말합니다...

장주일 때 날개를 휘저으며 날갯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나비일 때 인생에 대해 철학적 성찰을 할 수도 있습니다. 장자에게 어느 경우든 "구분이 없는 상태"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상태는 타자와의 소통은 커녕 일종의 착각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56-157


우리 자신과 타자 사이에 엄청난 틈을 긍정하고 이 심연을 건너가려고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의 철학이 지니는 깊이와 근본성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길은 걸어 다녀서 이루어진다" '길'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걸어감'이 먼저 있습니다. 태초에 '길'이라는 원리가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걸음'이라는 행동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162


자타(自他) 사이의 심연을 건너기 위해서는 일종의 결단과 비약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약이 가능하기 위해서 우리는 충분히 가벼워야만 합니다. 심연을 건너기에 충분히 가볍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을 비워야만 하는 거지요. 타자와의 소통을 가로막는 심연 앞에서 우리는 자신이 보물처럼 가지고 있었던 것들(선입견, 오만, 자의식, 사변적 사유 등등)과 경건하게 작별의식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심연을 건너는 데 장애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비워야만 우리는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벼움과 경쾌함, 도약의 힘을 얻을 수 있게 되지요.  163-164


비움의 수양은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단일 뿐 결코 타자와의 소통을 필연적으로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164


시간을 '지속'이라는 존재론적 원리로까지 승화시켰던 베르그손의 입장을 살펴보지요.

'모든 의식은 기억이다. 즉 현재 속에서의 과거에 대한 보관과 축적이다...'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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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에 사람들이 매혹당한 가장 큰 동기는 '가난한 사람들, 배를 곯는 사람들, 수탈당하는 사람들, 사회적인 불의를 견디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 자신의 '양심'입니다.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버젓이 곁에 있는데 자기는 '편하게' 지내고 있다는 불공평함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게 되고, 거기에서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한 사명감이 자라나지요.  10


아마도 마지막으로 일본인에게 '양심의 고통'을 느끼게 한 것은 베트남 전쟁 때 불에 타 죽은 베트남 농민이었을 겁니다. 일본이 베트남 전쟁의 후방 지원 기지로서 그들의 학살에 간접적으로 가담했고, 그 덕분에 일본인은 전쟁 특수로 인한 경제적 풍요를 누린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지요.

하지만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일본인은 '양심의 고통'을 느낄 만한 상대를 더 이상 찾을 수 없었어요. 그 후 처음에는 다소 미안한 듯 조심스러웠지만 나중에는 여봐란듯이, '우리는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이렇게 풍요를 누리고 있다! 이렇게 쾌적한 생활을 하고 있다!'면서 자랑스럽게 떠들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누가 마르크스를 읽겠어요?  11


단적으로 말해 돈을 갖는 것,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 호화로운 집에 사는 것, 비싼 옷을 입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능력 있는 인간이 우아하게 살고, 무능하고 힘없는 인간이 길거리에서 굶어 죽는 것을 자기 책임이라고 합니다. 능력 있는 인간이 높은 품격을 인정받고, 무능한 인간이 경멸당하거나 모욕을 받는 것을 매우 적절한 결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회적인 정의(fairness)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오피니언 리더가 된 것입니다. 

저는 그런 사고방식은 별로 '좋지 않다'고 봅니다.

공동체는, 가장 연약하고 가장 힘이 없는 사람들이라도 전체 구성원의 일원으로서 자존감을 갖고 각각의 입장에서 책무를 다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혈연이나 지연으로 엮인 소규모의 공동체든, 국민 국가나 국제 사회 같은 거대한 공동체든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운용해나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어느 정도의 '성숙한 어른'이 꼭 필요하지요. 충분한 능력도 있고, 지혜도 갖추고 있고, 주위에서 모두들 존경과 신뢰를 보내는 사람, 나아가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을 자기만의 이익이 아니라 주변의 힘엇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성숙한 어른'말입니다.  12


마르크스를 읽고,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어린애가 어른이 되는' 방법으로서 가장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마르크스를 읽지 않게 되고 나서부터 눈에 띄게 '성숙한 어른'이 줄었습니다. 나는 이 두가 현상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다고 봅니다.  13




마르크스 수사학의 결정체 <공산당 선언>

                                                                  (공산당 선언 전문 참고 하기 클릭)


초판 책자에는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는 저자의 이름도 실려 있지 않았고, 저자를 밝힌 것은 1850년이었다고 합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7년 모스라는 인물의 추천을 받아 이동맹에 가입했습니다. 동맹에서는 그해 6월에 열림 제 1회 대회(엥겔스참석)와 11월에 열린 제2회 대회(마르크스와 엥겔스 참석)-둘다 런던에서 개최-에서 강령 내용에 대해 상당히 오랫동안 논의를 거듭했습니다. 그리하여 제 2회 대회에서는 논의의 결과를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문서로 작성할 임무를 맡기기로 결정하죠. 다만, 당시 마르크스는 브뤼셀에, 엥겔스는 파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가 대표로 집필하기로 했어요. 마르크스는 그 전에 엥겔스가 집필한 <공산주의의 제 원리>(1847)등을 참조하면서 독일어로 이 글을 써냈습니다.  25-26


이 책은 네 개의 절로 이루어져 있다.

I. 부르주오와 프롤레타리아 - 부르주아는 자본가, 프롤레타리아는 노동자를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양자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중심으로 '근대 부르주아 사회'(당시 마르크스는 아직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어요)의 체제나 역사, 또 프롤레타리아 혁면(공산주의 혁명)의 필연성 등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II. 프롤레타리아와 공산주의자들 - 여기에서는 '공산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일반에 대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서 시작하여 공산주의 운동의 목적이나 공산주의 사회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III. 사회주의 문헌 및 공산주의 문헌 - 이 부분에서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불리는 다양한 조류에 대해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을 읽으면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본격적으로 논단이나 운동의 세계에 등장하기 이전에도 이미 수많은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들은 너무나 많은 얼굴을 한 정체불명의 '유령'으로 취급받았습니다. 

IV. 각종 반정부당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입장 - 여기에서는 공산주의자가 아닌 반정부당이나 혁명당에 대해 공산주의자의 당이 어떠한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논합니다.  27


마르크스는 현대 경제나 정치, 여성의 지위나 가족, 저출산 문제 같은 사회적 문제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힌트를 제공해주지요...

마르크스의 유물론 철학에서는 이론을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것으로 파악하는 사고를 신랄하게 비판하고있으니까요.  28


실은 만년의 엥겔스는(<1883년 독일어판 서문>) "<공산당 선언>을 관통하는 기본 사상, 즉 역사의 어느 시대라도 경제적 생산 및 거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편성이 그 시대의 정치적 및 정신적 역사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 따라서 (태곳적 토지 공유가 붕괴한 이후) 모든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즉 사회 발전의 여러 단계에서 착취당하는 계급과 착취하는 계급, 지배당하는 계급과 지배하는 계급 사이의 투쟁의 역사라는 것, 그러나 이 투쟁은 지금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계급(프롤레타리아트)이 착취와 억압 및 계급투쟁으로부터 사회 전체를 영국적으로 해방하지 않고서는 착취하고 억압하는 계급(부르주아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했다는 것, 이 기본 사상은 단 한 사람, 오로지 마르크스에게서 나왔다."  29-30


공산주의 혁명론을 몇 가지 소개하면.

1. 노동자의 정치권력 획득 - '공산주의자의 당면 목적'은 우선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겁니다. 여기에서 프롤레타리아트(노동자 계급)가 정치권력을 쥐어야 할 필요성을 주장하는 <공산당 선언>의 사상은 매우 독창적이었죠.

2. 정치 혁명과 사회 혁명 - 혁명의 '첫걸음'으로서 정치권력을 획득한 공산주의자는 그 다음 사회의 개혁으로 나아가야 해요.

3. 공산주의 사회란 무엇인가. - 사회를 계급으로 분열시키는 경제적인 기반이 사라진다는 뜻이에요.."계급 및 계급 대립이 있는 낡은 부르주아 사회를 대신하여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가 나타난다." 공산주의 사회라고 하면, 소수의 엘리트(계급) 혹은 공산당이 국가를 장악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국민 전체를 계획적으로 관리하는 사회라는 이미지를 떠올릴지도 모르겟어요.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는 그러한 사회와 전혀 달랐어요.

4. 혁명의 방법에 대해 - 당시 유렵의 역사적 사정을 생각해볼 때. 겨우 스위스 정도만 국민 다수의 선거를 통해 권한을 가진 의회를 선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해요. 실제로 <공산당 선언>을 발행한 직후 각지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아닌 왕정 타도나 민족 독립을 요구하는 혁명이 일어나는데, 그것은 모두 '강제력'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한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1846년 노동자 계급의 선거원을 요구한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에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고, 그 후에도 마르크스는 만년에 이르기까지 의회를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방법을 쉬지 않고 탐구했어요.

5. 민주적 개혁과 공산주의 혁명 - 마르크스는 역사를 향해 언제 어디서든 공산주의 혁명을 밀어붙이는 것이 가능하다는 태도를 취하지 않아요. 우선은 "눈앞에 닥친 목적이나 이익의 달성"을 소중하게 여기고, 부르주아 혁명을 달성하기 위해 부르주아와 '공동으로' 싸워나간다고 하지요. 각각의 사회에 대해 각각의 역사적 단계가 필요로 하는 '현재의 운동'을 통해 야무지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운동의 미래', 즉 공산주의 혁명에 접근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냉철한 자세를 유지했어요.  31-36


마르크스의 경제 이론이나 정치 이론은 현실 정치에서 이미 '유효 기간이 지났다'고 여겨지고 있어요

만일 마르크스의 이론을 그대로 가져와서 적용하기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이런 기준으로 마르크스를 평가한다면, 마르크스의 '유효 기간은 지났다'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마르크스를 읽음으로써 지적인 활기를 얻고, 자신의 지성을 가두고 있는 '우리'의 구조를 깨달으며, 거기에서 빠져 나오려는 노력에 시동을 거는 사람드에게 마르크스의 유효기간 따위는 없을 거예요.  44




청년 마르크스를 만나다 <유대인 문제>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두 사람이 실제로 처음 맞대면한 것은 1842년 2월, 그러니까 엥겔스가 맨체스터로 가는 도중에 <라인신문> 편집부에 들렸던 때 라고 하는군요. 그러나 이 만남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거기서 나는 마르크스를 만났지요. 당시 우리는 지극히 냉랭한 분위기에서 인사를 했어요. 마르크스는 그때 바우어 형제를 반대하는 입장이었거든요.... 나는 바우어 형제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인지라 그들의 동맹자로 여겨졌고, 한편 마르크스는 그들에게 수상하다는 의심을 받고 있었던 것 같아요."(<엥겔스가 프란츠 메링에게 보낸 편지> 1895년 4월말)

이 시기 <라인신문>의 주필이던 마르크스는 프로이센 정부의 검열과 투쟁하는 등 구체적인 문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벌이는 논전을 중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탁상공론으로 보이는 추상적인 논의만 되풀이하는 청년헤겔학파와 심하게 대립하고 있었어요. 브루노와 에드가 바우어 형제가 대표적인 논자였죠.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 형제와 친하게 보이는 엥겔스에게 경계심을 가졌던 모양이에요.  66


두 사람 관계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독불연감>에 게재한 엥겔스의 논문 <국민경제학 비판 대강>에 마르크스가 강렬한 충격을 받고 나서부터입니다. 두 사람이 평생 변치 않는 교류를 나누며 공동의 역사를 이룩한 것은 그때부터라고 봐야겠죠.  67


<유대인 문제>

바우어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어요. '유대교도의 해방은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지만, 독일에서 억압받는 이들은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인민이다. 따라서 유대인 문제는 모든 독일인의 해방을 둘러싼 문제로 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독일인의 해방을 달성하려면 독일 국가가 기독교의 굴레를 버리고 근대 국가가 될 필요가 있으며, 아울러 독일의 인민 스스로 기독교나 유대교 같은 특정한 종교로부터 빠져나와 자유로운 자기 의식을 획득해야만 한다. 

이러한 논지에 대하여 마르크스는 '정치적 해방'과 '인간적 해방'이라는 두 가지를 구분하는 시각과 관련된 시각을 제기해요.

1 "독일의 유대인은 해방을 열망하고 있다. 어떤 해방을 열망하는가? 공민(公民)으로서의 해방, 정치적인 해방이다."(<전집>, 제1권, 384쪽)

2 하지만 "정치적 해방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 비로소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비판이 가능하며, 유대인 문제를 '시대의 일반적 문제'의 하나로 진정 해소시킬 수 있다."(앞의 책. 388쪽)

3 그런데 바우어는 "다만 '기독교 국가'만을 비판할 뿐 '국가자체'를 비판하지 않는다", "정치적 해방이 인간적 해방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연구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단지 정치적 해방과 일반적인 해방을 무비판적으로 혼동"하고 있다.(앞의 책 388쪽)  68-69


마르크스는 헤겔을 본받아 '시민사회'를 "욕망과 노동과 사리(私利)와 사적 권리의 세계"(앞의 책 406쪽)라고 불렀는데요. 그는 나중에 이것을 '자본주의 경제'라는 문제 영역으로 정리하고 이해해갔어요. 마르크스는 이 단계에서 근대 사회가 초래한 법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구별하고, 이 사회의 중심이 경제 활동의 새로운 주체가 된 부르주아로 옮겨 간 점이 일찍부터 착목했던 것이지요.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독일인의 '인간적 해방'을 위해서는 '이기적인 정신'으로 가득 찬 시민사회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70-71


기독교가 유대교의 '분파'로서 등장.

기독교도 이슬람교도 모두 유대교에서 파생한 종교이기 때문에 애초의 시발점부터 반유대교적이라는 것은 논리적인 필연인 것입니다.  81


마르크스가 역점을 둔 것은 유대인 해방 '그 자체'가 아니에요. '해방'의 전 단계에 포함되며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지 않은 것. 다시 말해 누구의 해방이며 무엇으로부터의 해방인지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에요...

상상해보면.. 인종 차별이 있는 어떤 나라에서 자유우의 성향의 정치가와 사회 활동가의 노력으로 '인종차별쳘폐법'을 제정했다고요. 의회는 법안을 가결하고 정부는 그 법을 엄숙하게 실행했어요. 자, 이런 경우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차별이 없어진 것 아니야?'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예, 차별이 철폐되었어요. 그뿐입니다. 하지만 의식하지 못하는 사시에 또 하나의 국민적 합의가 성립되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어요. 그것은 "우리 나라의 통치 시스쳄은 참 잘 돌아가고 있구나"라는 합의예요.

바꾸어 말하면, '그게 뭐 잘못인가? 합법적인 수순을 밟아서 차별을 철혜햇드면, 꽤 괜찮은 사호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니야? 그런 정치 시스템이라면 충분히 건전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 같은데...'하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그러한 무언의 동의가 성립되어버리는 것에 대해 강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86


바우어는 '정치적 해방이 인간적 해방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연구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단지 정치적 해방과 일반적인 해방을 무비판적으로 혼동'하고 있다.

마르크스가 이렇게 쓴 것은 곧, "이봐, '정치적 해방'과 '인간적 해방'은 다르단 말이야" 하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죠.

'정치적 해방', 즉 법률에 의해 '인종 차별을 하면 안 됩니다'라고 정하는 것은 물론 '일보 진보'겠지요.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렇게 마랳요. "그건 하나의 '진보'일 뿐 종점은 아니야. 이야기를 거기에서 끝내버리면 안 된다고, 유대인은 정치적으로는 해방되었어도 인간적으로는 아직 해방이 안 되어 있거든."  87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가 인간 해방이 실현된 이상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시민 사회에서 시민들이 누리고 있는 것은 '고립의 자유'예요.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대신 누구도 폐를 끼치지 못하게 할 권리. '고립되어 자기 안에 콕 틀어밖혀 잇는 모나드(단자)로서 누리는 인간의 자유'(앞의 책 43쪽)라고나 할까요. 인간과 인간이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거리를 두는 것에서 더욱 커다란 가치를 찾는 것이 근대 시민이라고 마르크스는 생각했어요. 시민사회의 기초는 "'자신의 재산, 자신의 소득, 자신의 노동 및 노무의 성과를 임의대로 향수하고 처분할' 권리"(앞의 책 44쪽)에 있다고 말이죠.  90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시민들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아니에요. 정부에 자신의 권리 일부를 맡기고 법률을 제장하거나 법을 준수하며,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세금을 내고, 징병령이 떨어지면 무기를 들고 조국을 위해 싸우기도 해요. 이런 시민의 모습을 마르크스는 '공민'이라고 부르지요. 이는 공적인 기능이란 측면에서 규정한 시민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시민을 '속마음에 충실한 시민'이라고 한다면, 공민은 규칙에 따라 의무를 다하는 '원칙에 충실한 시민'이라고 하겠지요. 요컨대 시민은 '사인(私人)'과 '공민'이라는 두 얼굴을 갖게 되지요. 사인으로서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공민으로서는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식으로...  91


마르크스의 정의에 따르면 '유적 존재'란 "현실의 개체적 인간이 추상적인 공민을 자기 안에서 되찾은" 상태를 가리켜요. 시민사회에서는 '공사의 혼동'이 어디까지나 '공보다 사는 우선한다'는 것임에 비해, 유적 존재는 공과 사를 문자 그대로 일치시킨 상태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93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추구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의 행복과 이익에 신경 쓰는 만큼의 열의로 이웃의 행복과 이익에 신경을 쓰는 '유적 존재'가 되는 것을 '인간 해방의 완수'라고 봤어요.  94


마르크스는 사회 전체를 '특별한 의미에서 해방하는 입장'에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이 텍스트를 통해 끄집어내려고 해요. 프롤레타리아론은 마르크스의 사회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간과 관련있는 테제인데요...

마르크스는 스스로를 '족쇄밖에 잃을 것이 없는' 프롤레타리아라고는 여기지 않았으니까요.(마르크스에게는 족쇄 이외에도 가족이나 친구, 동지 같은 '좋은 것'이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에게 모든 권리를!' 같은 테제를 증여의 구문으로 썼어요. 이 테제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니라 마르크스가 '자신의 소유물'을 선물로 내주면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윤리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나는 프롤레타리아'라고 자칭하는 인간이 '프롤레타리아에게 모든 권리를!'하고 주장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어요. 논리적으로는 옳지만 윤리적으로는 옳지 않거든요. 인간은 자기가 손에 넣고 싶다고 바라는 것을 우선 다른 사람에게 증여함으로써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것. 이것도 내가 오랜 시간 살아오면서 확신하게 된 교훈의 하나예요.  102-103




인간에 대한 연민, 그 위대한 시작 <경제학-철학 수고>


'소외된 노동'

"노동자는 자신의 생명을 대상에 쏟아붓는다. 그러나 대상에 쏟아부은 생명은 이미 그의 것이 아니라 대상의 것이다... 그의 노동이 들어간 생산물은 그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생산물이 커지면 커질수록 노동자 자신은 그만큼 가난해진다.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물을 외화한다는 것은 그의 노동이 하나의 대상에, 하나의 외적인 현실 존재가 된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그의 노동이 그의 외부에, 그에게서 독립한 소원한 형태로 존재하며 그에 대해서 자립적인 힘이 되는바, 그가 대상에 부여한 생명이 그에 대해 적대적이고 소원하게 대립한다는 의미이다.  147


마르크스 자신은 부르주아였으니 그가 인용한 가혹한 노동의 경험 같은 것은 안 해봤을 테지요. 하지만 강렬한 공감려고가 상상력을 가지고 있었어요.  148


소외론의 출발점이 '자신의 비참함'이 아니라 '타인의 비참함'을 목도한 경험이었어요. 마르크스는 "우리를 소외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자"고 주장한 것이 아니랍니다. "그들을 소외된 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은 우리의 임무"라고 주장한 것이지요.  149


'유적존재'

'나만 좋으면 나머지는 상관없다'는 본심만 내세우며 살아간다면, 인간은 다른 사람들을 도구로 이용하고 수탈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인간을 바꿀 것인가, '유적 존재'를 지향하면 바뀐다." 이것은 제3초고의 제2장 [사적 재산과 코뮌주의]의 중심논점이에요.

지금 내가 인용하고 있는 책에서는 보통 '공산주의'라고 번역하는 Kommunismus를 '코뮌주의'라고 옮겨놓았어요. '코뮌(Kommune)'이란 공동체를 가리키는데요. 나라나 지방 정부 같은 상명하달 시스템과 달리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범위, 목소리가 들리는 범위 안에서 합의를 통해 제도를 만들고 규정을 정리하며 자치를 행하는 단위예요. 비교적 규모가 작고 중앙 집권적이지 않은 통치 기구를 말하지요. 이러한 조건을 정치 제도의 기본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코뮌주의'인데요. 이것을 '공산주의'라고 해버리면 역사적으로 현존했던 '공산당'이나 '국제 공산주의 운동' 같은 것과 어쩔 수 없이 연관시켜 이해하게 되지요. 그래서 그러한 구체적인 역사적 존재가 등장하기 이전에 아직 막연한 관점에 지나지 않았던 시기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서 굳이 '코뮌주의'라는 번역어를 갖다 쓴 것 같아요.(혼자만의 추측에 부로가하지만)  150-151


마르크스가 지향하는 것은, 가장 인간적이고 훨씬 문명적인 코뮌주의입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적인 본질의 현실적 획득으로서의 코뮌주의(앞의 책 349쪽)"  152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독일 이데올로기>


<독일 이데올로기>의 구선은 제1권 <최근의 독일 철학 비판>, 제2권 <독일 사회주의 비판>으로 되어 있어요.

제1권에서는 포이어바흐, 브루노 바우어, 막스 슈티르너를 검토하고 있지요. 이 세 사람은 모두 청년헤겔학파의 멤버로 한동안 마르크스와 헤겔이 높이 평가했었지요. '헤겔 좌익'이라고도 부르는 청년헤겔학파는 헤겔의 철학을 계승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자 ㅇ혁신적인 흐름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헤겔의 철학에는 '변증법'이라 부르는 변혁의 정신이 내재해 있는데, 현실 세계에 대해 헤겔은 정치도 그렇고, 종교도 그렇고, 현재 세계의 모습을 훌륭하다고 옹호하는 보수적-현상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어요. 청년헤겔학파는 이른바 헤겔의 언행 불일치에 불만을 품고, 특히 종교 분야에서 낡은 체제에 도전했어요.

그러나 그들도 대부분 자유나 민주주의 문제 같은 것을 당시 독일의 구체적인 정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관념의 세계에서 벌이는 투쟁(공중전)으로 현실의 개혁 문제를 풀어나가려 한 약점을 갖고 있었어요.

이런 대목이 의견의 차이를 낳게 되어 마르크스는 <라인신문>의 편집을 둘러싸고 바우어 형제와 심하게 맞붙었고, 엥겔스와 함께 쓴 <신성 가족>에서 브루노 바우어를 집중적으로 비판하게 되지요...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우선 문제를 관념의 세계에서 인간이 매일 생활하는 현실 세계로 끌어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2권에서는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진정한 사회주의라는 사상적 조류를 비판하고 있어요. 프랑스나 영국에서 이러한 조류는 자기 나름대로 현실 세계를 직시한 결과 생겨난 사회주의 사상이었지만, 독일로 수입되면서 독일의 독특한 관념 세계와 결부되어 버린 것이지요.  172-173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에는 처음부터 비판적인 의미가 들어 있었어요. 

"이데올로기는 분명 이른바 사상가가 의식적으로 행하는 과정이지만, 그 의식은 잘못된 의식입니다. 사상가를 움직이는 본래의 추진력을 그 자신은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결코 이데올로기적 과정이 아닐 것입니다."(<엥겔스가 메링에게 보맨 편지> 1893년 7월 14일)  174


"그들이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은 그들의 생산, 즉 그들이 무엇을 생산하고 또 어떻게 생산하는가 하는 것과 일치한다."(<신판 독일 이데올로기> 31쪽)

사적유물론을 '한마디'로 설명하라고 하면(무리한 주문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만큼 유명한 구절이죠.  211


예를들어 '근본부터 사악한 인간'이 있다고 쳐봐요. 그런데 이놈이 어쩌다가 '선행'을 했어요(전철에서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든가, 뭐... 이런 일은 엄밀히 말해서 '생산'은 아니지만요). 사적유물론의 견지에서 말하면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에요. 마르크스는 이 사람이 '사실은 어떤 놈인가' 같은 한쪽으로 치우친 이야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아무리 근본이 돼먹지 않았다고 해도 선행을 하면 선인이고 아무리 근본이 선량하다해도 나쁜 짓을 하면 악인이라는 것이죠.  212


마르크스는 '현실적이고 역사적인 인간'이야말로 인간의 본바탕이어야 한다고 말해요. '현실적이고 역사적으로' 변변치 못한 일을 한 인간은 '변변치 못한 인간'이라고 말이에요.

나는 이치의 옳고 그름보다도 윤리적으로 마르크스가 우월하다고 생각했어요.  213


"인간들이 이야기하는 것, 상상하는 것, 표상하는 것에서 출발하여, 또한 이야기하고 사유하고 상상하고 표상하는 대상이 되는 인간들로부터 출발하여, 거기에서 생겨난 진정한 인간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인간들을 출발점으로 삼아, 또 그들의 현실적인 생활 과정으로부터 이 생활 과정의 이데올로기적 반영과 반향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도 해명할 수 있는 것이다."(앞의 책 42쪽)  216


마르크스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요약하면, '인간들이 이야기하는 것, 상상하는 것, 표상하는 것'이 적절한가 아닌가는 '현실적으로 활동하는 인간들'에 따라 '그들의 현실적인 생활 과정으로부터' 검증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어요.  217


"의식이 생활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의식을 규정한다."(앞의 책 42쪽)

멋진 말 아닌가요? 'A는 B가 아니라 B가 A다'라는 수사법은 마르크스의 십팔번이었어요. 논리학적으로는 무리를 범하는 일도 가끔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마르크스는 이런 수사를 애용했어요. 마치 입버릇인 것처럼 말이죠. 아마도 이런 표현이 '자연물처럼 보이는 조작물'의 정체를 폭로하는 데 지극히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마르크스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218


"공산주의 사회에서 각자는 그런 까닭에 고정된 어떤 활동 범위에 갇히지 앟고, 어디라도 좋아하는 분야에서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을 수 있도록 사회가 생산 전반을 통제하고 잇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오늘은 이것, 내일은 저것을 하며, 아침에는 사냥하고 낮에는 낚시하며,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며, 저녁 밥을 먹은 뒤에는 비평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게다가 반드시 사냥꾼, 어부, 목동, 비평가가 되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신판 독일 이데올로기> 67-68쪽)

분업에 의해 인간이 '어떤 특정한 범위에만 머무르는 것'을 강요받고, 특정한 직업에 속박당할 때, 그 노동은 '그에게 소원하고 적대하는 힘'이 된다. 마르크스는 이런 표현을 동원하여 분업을 비판했어요. 동시에 사냥꾼이자 어부이자 목동이자 비평가(이것은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사람, 즉 내가 앞에서 한 이야기에 따르면 '액자를 대는 사람'= 지식은을 가리킵니다)이기도 한 인간을 이상으로 삼은 대목은 아마도 내가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가장 감동 받은 부분이 아닐까해요.

마오쩌둥은 힘들고 고된 연안 장정 시기에 홍군 병사들을 향해 동시에 군인이자 농부이자 기술자이자 정치사상가이자 교사가 되라고 요구했겠지요. 그는 '공(工)농(農)상(商)학(學)병(兵)'이 한 사람 안에 통합되어 있는 모습을 인간의 이상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219-220




'지성을 단련하는' 일은 물론 마르크스를 달달 외우거나 옳다고 믿는 것이 아니에요. 마르크스는 도대체 현실 세계-그것은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고 잇는 자본주의 사회의 초기 단계였어요-의 어디를 보고 무엇을 찾아내려고 했을까? 성장하고 변화해가는 마르크스이 언어를 따라가면서 그 점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그 결과 마르크스가 도달한 지점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히면 그것이 진정 옳은 것이었는가를 자신의 머리로 판단해가는 일, 그런 훈련을 해나가기 위해서 마르크스를 재료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지성의 단련'이겠죠.

어찌 된 일인지 마르크스한테는 '벼락치기'가 통하지 않아요.

상대가 마르크스든 아니든, 글을 읽을 때는 거기에 쓰여 있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그냥 받아들이기만 해서는 두뇌를 단련시킬 수 없어요. '모든 것을 의심하라'고 말한 마르크스 자신이야말로 항상 그런 자세로 비판적인 정신을 가지고 선배 사상가들의 지적 성과와 씨름하고자 한 사람이었어요.

한편, 이 책을 훑어봤다면 느꼈을 테지만, 마르크스는 글을 쓰면 쓸수록 그 내용이 확확 변해가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내용이 변화하고 탐구의 깊이가 심화되어 갈수록 더욱 사안을 정교하고 치밀하게 파악할 뿐 아니라 이전의 사고 방식을 과감하게 전환시키기도 하고, 과거에 도달한 지점을 가차없이 내던져버리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졌어요.  222-223



마르크스의 저작 나이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 <유대인 문제> 25세

<경제학-철학 수고> 26세

<독일 이데올로기> 28세

<공산당 선언> 29세

<프랑스의 계급투쟁> 32세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33세

<임금, 가격, 이윤> 47세

<자본론> 제1권 48세

<프랑스 내전> 53세     224-225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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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곡식만으로도 세계가 다 먹고 남는다는데,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어야 하는가...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내용이다.
책 내용은 결코 누군가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기심과 이윤추구를 위해서라고 한다.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이라는 부제로 그의 경험을 통해 바라본 세계의 실태와 오만한 그들의 실상을 밝히고자 했다.

국내에 이 책이 번역되어 들어오기까지 만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왜 그럴까...생각해 본다..
이유야 정확히 알 수 없을지 몰라도.. 대충의 짐작은 책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한국... 대한민국.. 이란 나라는 참 독특한 나라이다. 
930여회의 외세의 침략을 받고도 결국은 버티어 낸 나라.
긴 세월동안 (물론 동남아시아에 비하면 많이 짧긴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황폐되었고,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졌음에도 굳건히 버티고 ..
급속한 발전으로 지금 세계경제 10위권에 머물르게 된 나라이다.
정말 대단한 나라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불과 몇 십년전 외국에서 원조를 받아야만 했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원조를 해주는 나라가 되었다.
전 세계를 보더라도 원조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가 된건 한국이 처음일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단하다.

그런데 한국은 절대 행복하지 않은 나라이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한국은 돈은 가졌으나 행복은 가지지 않은 나라라고 표현된다. 
우리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수긍되고 인정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세계의 약자들을 바라보며 좀더 올바른것은 무엇인지 .. 말로만 교육하는 것으로 넘어가지 않고, 실제로 바라보고 경험하고 같이 아파하며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인의예지' ... 우리에게는 좀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런 굶주림은 거대한 횡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들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 아니다.'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분명 돌아올 수 있는 아픔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조금더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돌보며, 의식을 성장시켜 나갈때 조금이라도 아픔이 줄어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를 깊이 반성하게 한다..
이정도의 고통이 분명 지금의 우리에게는 오지 않을 확률이 크다. 
그렇다고 남의 일이 아니다. 이들의 아픔은 분명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슷한 아픔으로..!!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이 황폐되면 될 수록 우리에게는 새로운 고통들을 주게 된다. 책 내용처럼 그렇다고 우리가 이들이 먹고 살기위해 또는 기업이 자기이 득을 위해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세워줄 때 이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해제 - 기아에 관한 어느 국제 전문가의 비망록(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기아와 관련된 일을 현장에서 자신의 천명으로 알고 활동하는 사람에게 소속이 어디인가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그리 많지 않은 어린이 기아 관련 저술 중에서 내가 아는 한 이 책은 가장 고급의 정보를 담고 있고, 몇 가지 점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한 책이다.  9
책은 현재 기아의 현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보고 있고, 그런 이득들이 어떻게 재생산되며 더욱더 많은 어린이들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있는가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10
기아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거의 초보적 수준이다.  10
이 책은 전체적으로 지글러가 어린이 무덤에 바치는 참회록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 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 수많은 어린이 무덤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연 제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16
'승자독식' , '교육노동' ... '워싱턴 합의'가 그 근본원인이다.  17

한국어판 서문 -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 Food and Agricultule Oganization)는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2005년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를 집계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굷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이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2000년 이후 1,200만 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전인구의 36%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북한의 상황도 절망적이다.  18
'지구의 허파' 아마존은 현재 국제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콩 경작자에 계속 자리를 내주고 있으며, 그에 따라 지구 기후의 파국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20
2006년 유럽 연합 국가들... 보조금으로... 과잉생산.. 아주싼 가격으로 남반구에 수출... 아프리카 각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을 동질의 아프리카 농산물의 절반이나 3분의 1 가격에 살수 있다.... 아프리카 농가에서는 온 가족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하루 열다섯 시간씩 악착같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생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프리카 53개국 중 37개국이 거의 순수한 농업국가다.  21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풍요가 넘쳐나는 행성에서 날마다 10만 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  22
변화된 의식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이다.  23

동남아시아에서는 인구의 18%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아프리카에서는 인구의 35%,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약 14%가 굶주리고 있지.  
숫자로 따지면 아시아에 기아인구가 더 많단다.  33

문제의 핵심은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죽고 있는거야.  37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41
1798년 영국국교회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법칙에 관한 논문을 발표.
맬서스는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어. 맬서스는 질병과 배고픔은 가슴아픈 일이기는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단다. 지구상의 인구를 자연적인 수단이라는 얘기였지.
책은 출판되자마나 유럽의 지배층에서 널리 읽혔고, 산업화 초기의 국민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단다. 맬서스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어. ...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41-42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
난민캠프 병원... 한 아버지가 주름이 깊게 파인 걱정스런 얼굴로 병원 앞에 서 있었어. 발치에는 아들이 누워 있었지. 열두 살 아니면 열다섯 살? 아이의 사지는 정말이지 거미다리처럼 너무도 가늘었어. 그 아이를 보면서 너는 떠올렸지. 현지의 유일한 의사인 타마르트 망게샤가 그 아이를 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어. 너무 늦어서 어떤 도움도 소용이 없었던 거야. 그 아이는 곧 죽음을 맞게 될 상태였지. 아버지는 전신을 떨었어. 눈물이 하염없이 뺨 위로 흘러내렸어. 아버지는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의사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어. 의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지. 아이는 더는 생명을 구할 수 없는 상태였어. 결국 그 아버지는 허리를 굽히더니 가만히 아들을 안고는 가버렸어.  53
에티오피아는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이 128달러로 현재 지구상의 최빈국에 속해.  54

'구조적 기아'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  
'구조적 기아'는 선진국에는 없거나 이미 오래전에 퇴치된 전염병이나 질병이 창궐하는 것으로도 드러난단다. 예를 들어 크와시오르코르(쇠약증)나 기생충감염증 같은 것도 그런거야. 크와시오르코르는 사람의 신체를 서서히 손상시키는 질병으로 주로 어린아이들에게 찾아오는데, 이 벼에 걸리면 성장이 멈추게 되지. 처음에는 머리카락이 붉어지다가 나중에는 점차 빠지면서 배도 불러오고, 이가 흔들리다가 빠지게 되고. 이런 식으로 서서히 죽어가게 된단다.  60-61

시카고 곡물거래소... 사실 거래는 몇 안되는 거물급 곡물상의 손에서 결정돼. 그들은 몇 사람 안 되지만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 '화이트칼라 강도들'이라고 부르기도..  74
투기꾼들... 가격은 단 한 가지 원칙에 복종해. 바로 이윤극대화라는 원칙이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매주 수백만 달러를 더 벌어들이는 것이지. 배고픈 자들의 고통? 맙소사. 그들을 위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적십자가 있잖아 하는 식이란다.
중요한 것은 첫째는 수확량이고, 둘째는 시카고 거래소의 투기꾼들이 유엔이나 세계식량계획, 여러 인도적 지원단체, 그리고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에 제시하는 곡물가격이야.  75-76

유럽연합은 자국의 농민드을 살려야 하고, 그 때문에 농산물가격을 높게 유지해야 해.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것은 FAO나 WFP의 과제일 따름이지.  80

구호단체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활동하고, 갖가지 모순들과 싸워야 해. 그러나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는 없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지.  93

대개는 국가적인 폭력이 자행되는 나라에서 배고픔을 무기로 삼는단다.  94

다국적 기업들도 그런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99

굷주림을 국가 테러의 무기로 사용한다.  103

사막화로 인한 환경난민  107

지금 전세계는 '농촌사회의 종언과 지구 규모의 도시화'라는 혁명 와중에 있단다.  125
세계 총인구의 증가율은 1.6퍼센트인 데 비해 도시인구의 증가율은 4.7%에 달하지. 
도시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어. 농지의 피폐화나 사막화. 그리고 각국의 농산물수출 확대정책도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어. 또한 농업의 집중화. 기계화, 공업화가 강력하게 추진되면서 농업 생산이 확대되는 한편, 인력이 불필요해진 농촌에서 농밀들이 방출되어 대도시로 흘러 들었던 거야.  126

식민 정책으로 단일화 집중재배 시스템은 나라의 성장을 저해  131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자들은 점차 망각의 제물이 되고, 문제 자체의 존재마저 잊혀버리지. 그리고 깊은 고독 속에서 죽어가게 돼. 처음에는 강했던 국제적인 연대감도 시들해지고.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152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153


에필로그
모든 생물체는 살기 위해 먹어야만 하므로, 먹을 것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것이었다.  155

신 자유주의의 큰 문제는, 그런 주장이 자세히 검토되지도 않은 채 세계에 침투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은 채, 그러 '경제 합리성'이라는 구호만이 난무하고 있다.  164

우리는 기아에 의한 생명파괴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1) 인도적 자원의 효율화
2)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모든 혁명의 목표는 희생자를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자로, 역사의식을 가진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3) 인프라 정비    164-168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서로 책임져 주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171

후기
세계 무역의 규모는 지난 해 6조 달러를 넘어섰다. 그중 3분의 1이 각각 다국적기업들 내부에서 이루어진 무역이었다.
세계 무역의 또 다른 3분의 1은 다국적기업 상호간에 행해졌다. 그리고 3분의 1, 그러니까 2조 달러 정도만이 전통적인 무역 거래에 해당되었다.  173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부족한 물, 전염병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세 재앙의 기사들이다. 네 번째 재앙의 기사는 바로 전쟁.  174

소리 없이 매일 많은 사람을 죽이는 기아에 대한 범 세계적 투쟁이 어려운 것은 또한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 기금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다.  180

유엔의 특별 기구들, 개발프로그램, 기금, 위원회, 금융 기관들은 매일 매일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5대륙으로 자기 모슨을 알고 활동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전염병과 싸우고,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과 유니세프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엔개발기구는 저개발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국가 및 공동체에 적대적인 민영화와 규제 철폐 정책으로 제3세계 나라들의 가뜩이나 약한 구조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는 이런 모순을 제거하기에는 너무 우유부단하고 유약하다.
기아와의 투쟁은 이런 대립을 끝낼 수 있는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182-183


부록으로 
남반구에서는 기아 희생자들의 피라미드가 쌓이고 있는 반면에, 북반구에서는 다국적 금융자본과 그과두제가 부를 쌓아가고 있다.
지은이는 이런 끔찍한 기아에 대한 범세계적 투쟁이 어려운 것은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등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를 말한다 - 주경복 (건국대 교수)

1995년에 WTO가 공식출범하고, 김영삼 정부에서 '세계화'를 선언하며 신보수주의 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논쟁이 본격화하였다. 교육계에서는 1995년 5월 31일 교육개혁안이 발표된 뒤로 그런 소용돌이가 첨예하게 분출하였다. 정부가 '시장', '경쟁', '구조조정', '수요자 중심' 등의 개념을 이용하며 펼치는 개혁 논리 속에 신자유주의 요소들이 깊이 스며있었기 때문이다. 정책입안자들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좋은 모형들을 도입하는 것뿐이지 신자유주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원래 미국이나 영국의 정책들 속에 이미 신자유주의 논리가 많이 스며있었기 때문에 의도와 상관없이 신자유주의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사회 각 분야에서 끝없는 토론과 논쟁이 이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웬만큼 사회참여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자유주의 개념은 상식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큰 주저 없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 오고 있다.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틈틈이 신자유주의에 관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그 용어법이나 개념의 엇갈린 해석과 오해가 생기는 일을 겪으며 난감할 때가 있었다. 나 스스로는 큰 오류 없이 이해하며 사용하고 있다고 믿지만 혹시는 잘못된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겼다.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에 관한 독서도 꽤 하고 내 나름대로 관점을 정리해 오기는 했지만 너무 안일했거나 타성에 젖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직된 관념을 지니게 된 것은 아닌지 반추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내가 이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한번 정리하여 객관화하면서 주위의 검증도 받아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신자유주의 개념에 아직 익숙하지 않거나 관점의 차이 때문에 다소의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네티즌들과도 공유할 것은 공유하고 서로 확인하여 보완할 것은 보완하며 합리적인 소통을 이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너무 이론적인 문제나 세부적인 이야기를 깊이 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으므로 상식적인 선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총체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는 매우 복잡한 흐름 속에서 진화하였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편의상 일정한 무리를 감수하면서라도 큰 줄기만 잡아 단순화시켜 서술해 본다.

원래 '자유'라는 말은 그 정확한 시원을 추적하기 힘들만큼 오래된 것이다. 그 만큼 자유라는 개념은 인류의 삶에 일찍부터 깊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라고 할 때는 보편적 자유를 애호하거나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특수한 의미의 개념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상식 속에 자라잡은 '자유주의'는 대개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고전적 자본주의와 연관하여 이해되고 있다. 정부의 통제를 최대한 줄이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질서를 염두에 둔 개념이다. 말하자면, 자본 활동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이어서 일반 대중이나 모든 개인의 보편적인 자유와는 꽤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벤담(Jeremy Bentham)이나 밀(John Stuart Mill) 등 다소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들이 부를 골고루 분배하고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등 자유의 공공적 관리를 통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창함으로써 대중의 자유까지 보호하며 포괄하려는 공공적 자유주의도 나타났으나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 흐름에서는 스미스 식의 방임적 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영주, 왕, 국가 등의 지배와 관리 속에서 구속받으며 활동하던 인간들에게 '간섭 없는' 자유라는 개념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특히,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책무 없이 마음껏 부를 축적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 더 없이 반가운 이야기였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활동이 매우 활발해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방임적 '자유주의' 논리는 처음에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자유주의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지배담론이자 하나의 도그마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방임적 자유의 폐해가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자유주의는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자유를 빙자한 자본의 횡포와 독점이 발생하고 빈부격차가 커져서 서민의 구매력이 감소하여 경기가 침체하는 등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와 역할에 회의를 느끼며 방임적 자유보다 정부의 적극적 관리와 개입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런 흐름에서 자유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로 수정되는 길을 걸었다.

1912년에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선 윌슨은 무분별한 '부당' 경쟁을 통해 경제의 독점 현상이 나타나고 부작용이 만연하는 것을 억제하여 새로운 방식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새로운 자유(New Freedom)' 정책을 제시하며 당선되었다. 1930년대 세계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 정책'도 '새로운 자유' 정책의 흐름으로 꼽힌다. 이 때 이야기되는 ‘새로운 자유 정책(New Freedom Policy)’을 가끔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오늘날 세계화 담론과 결부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사뭇 다른 것이다. 앞에서 말하는 '새로운 자유' 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경제문제를 챙기는 것이고, 뒤에서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정부는 가급적 나서지 말고 민간 자본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자를 후자와 구별하기 위해 '새로운 자유주의(New Liberalism)'라 부르고 후자를 요즘 부르는 용어 그대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부르면 좋을 듯 하다.

1920년대 무렵 독일의 오이켄(Walter Eucken)을 비롯한 프라이부르크학파에서는 경제질서의 완전한 자유를 이루려면 경쟁질서가 공정해야 하는데 자유를 방임해서는 그것을 실현할 수 없으므로 생산, 소비, 직업선택 등에 대해서는 자유경쟁을 가급적 보장하되 시장형태 등을 포함한 사회질서의 관리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질서자유주의(Ordo Liberalismus)’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것도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수정이라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흐름의 하나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 역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는 구별된다. 그냥 넓은 의미의 '새로운 자유주의' 흐름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나 경제학 이론가들 사이에서나 아담 스미스가 제시한 자유주의 경제 모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이론들이 여러 각도로 모색되는 가운데 대표적 대안 이론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케인즈의 수정주의 이론이다. 자본가의 자유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도 국가가 나서서 관리하고,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복지정책을 도입하고, 경기가 침체되면 공공투자를 늘려 유효수요를 증대시키는 등 자유의 공공성을 지향하였다. 국가가 개입하여 자본의 방임적 자유를 통제하는 '개량'의 흐름이 다시 주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도 고전적 자유주의를 수정한 것이므로 편의에 따라서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대개 '케인즈주의', '수정자본주의' 또는 '개량(자본)주의'라고는 불러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명칭은 케인즈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논리로 등장한 흐름에 붙여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정부가 자본의 흐름에 개입하며 경제활동을 간섭하는 것이 경제적 '효율'을 떨어트린다는 부정적 시각에서 다시 제약 없는 자유를 주장하는 이론이 생겨났는데, 그 내용이 고전적 자유주의 와 꼭 같은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케인즈주의와는 더욱 같지 않기 때문에 이론가들 스스로나 주위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J.바이너, H.D.사이몬스, F.A.하이에크, F.H.나이트, M.프리드먼, G.J.스티글러 등 이른바 시카고 학파의 경제이론가들이 주도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하이예크나 프리드먼 같은 인물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이들은 생산 ·가격 · 고용 등 경제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서 통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물가조절, 자원배분 등을 비롯한 대개의 경제 운영은 시장기능을 통해 수행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정부의 개입보다는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중시하였다. 이런 이론과 주장 또는 그 논리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신자유주의' 담론의 뿌리인 것이다.

이런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 논리들이 일찍이 1950년대부터 경제학의 이론으로서 전문가들의 주목은 받았지만 세간의 관심과 호응을 일으키며 현실 정책에 그대로 즉시 반영되지는 않았다. 세계 국가들의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확산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70년대 초반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경제정책에 신자유주의 요소를 도입하여 '닉소노믹스(Nixonomics)'를 낳았지만 시도의 차원에 머물렀고, 그나마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중도 사임하는 등으로 일관된 시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뒤 1979년 영국에서 집권한 대처 수상이 매우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여 '대처리즘'을 탄생시키고, 1980년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한 레이건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도입하여 '레이거노믹스'를 탄생시키면서 드디어 신자유주의가 '스타'처럼 국제사회의 인기 있는 담론과 정책으로 부상하였다. 각종 규제를 풀어 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주고 자본주의 판단에 따라 쉽게 구조조정을 가하며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하여 침체되었던 경기를 많이 활성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것은 곧 신자유주의가 매우 유효하다는 심증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신자유주의가 각광을 받게 된 사전 배경에는 1970년대에 세계 국가들이 겪은 석유파동, 스태그플레이션, 실업난 등 경제의 전반적 악조건이 작용하였다. 무엇이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 위기의 원인을 케인즈주의 경제정책 탓으로 돌리면서 그 대안으로서 신자유주의를 제창하여 급부상한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유효한 역할을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데다가 여러 가지 규제들 때문에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늘어났다. 그래서 규제를 최대한 풀며 정부의 역할을 가급적 축소시키고 시장기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규제 완화', '세금축소', '공기업민영화', '노동 시장 유연화', '복지정책축소' 등 신자유주의 조치들은 자본가들의 환영과 지지를 받았다.

이렇게 세상의 주목과 사랑을 받으며 유행처럼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그 주창자와 순수한 이론가들마저 놀랄 만큼 자가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은 일종의 신화를 낳아 가고 있다. 놀라운 마력을 가진 어떤 주문처럼 그것을 외치고 표현하면 무엇이든 해결점이 나올 것 같은 환상을 자아내는 경향도 보인다. 그렇게 범람하는 흐름에는 시대적 상승 요인이 맞물린 또 다른 배경이 있다. 바로 '세계화'의 물결이 합세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성취의 욕망이 있고, 인류는 태초부터 집단팽창의 욕망을 지녀왔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국가들은 제국주의 야망을 불태웠고, 현대에 와서도 강대국들은 끊임없이 국제적 헤게모니를 확대하고 싶어 한다.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자국의 이익추구에 유리한 무역의 확대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20세기 들어서 탄생한 GATT는 바로 그런 배경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GATT는 여러 가지 한계들 때문에 강대국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개방수준을 달성하기 힘들었다. 그런 교훈을 바탕으로 GATT 체제를 대폭 보완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세계무역기구(WTO)’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을 일정한 절차로 개방해 나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IMF, IBRD, OECD, ASEM, APEC, FTA 등도 WTO와 함께 세계화 기제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전후하여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용어와 개념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런 세계화의 흐름에 이론적 무기로 작동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국가의 관리로 존재하는 모든 국경들을 허물고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여 오직 시장기능만이 모든 경제활동과 삶을 밑받침하게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 것이다.

이런 세계적 신자유주의를 배경에서 지원하고 움직이며 가장 많이 혜택을 누리는 것은 초국적 자본이다. 각 국가에서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하나의 시장으로 삼아 언제 어디서든 돈벌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되어 가는 것이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세례를 받으며 흐름에 동참하여 무척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도 국가인 미국이나 영국보다 분위기에서는 더 신자유주의적이고 더 세계화를 쫓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영삼 정부가 다분히 의식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뒤로, 김대중 정부가 IMF정국 타개를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흐름을 이어받았고, 노무현 정부도 처음에는 적지 않은 망설임을 보였으나 점차 신자유주의 요소가 짙은 정책으로 흘러왔다.

이 세상에 절대선과 절대악은 별로 없다. 대부분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본질을 규정하냐에 따라 긍정되거나 부정된다.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가 지니는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세 가지만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 활동의 제약을 최소화함으로써 자유롭게 시장 원리에 따라 이윤을 추구함으로써 투여한 자본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성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부의 창출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둘째, 시장의 적자생존 원리에 따라 모든 경제주체가 긴장하며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함으로써 기능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한 눈 팔지 못하고 자신이 지닌 능력을 취대한 발휘하게 하여 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셋째, '욕망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성취욕을 자극하여 일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적 본능이나 이기심을 자극하여 더 많이 이루고자 하는 에너지를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단점도 매우 많다. 세 가지 정도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의 전제가 잘못되어 그 개념과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모든 간섭을 없애고 자유를 줄 테니 알아서 마음껏 하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할 수 있는 조건이 다른데 알아서 하라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쪽은 무장을 단단히 하고 나서는데 다른 쪽은 맨 손으로 알아서 싸우라거나 헤비급 선수와 라이트급 선수를 구분 없이 섞어 놓고 알아서 싸우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괴롭힘이자 억압이 되어 버린다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기능을 통해 경쟁의 공정성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그 때의 관리는 경쟁 활동의 공정성을 관리하는 것이지 경쟁의 전제조건을 관리하지는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개인과 국가의 편차나 특수한 조건을 무시하며 인권, 생존권, 주권 등을 초월하려는 개념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또는 사회적 자유가 아니라는 개념적 비판을 받게 된다.

둘째, 지나친 경쟁주의로 치달으며 약육강식의 냉혹한 질서가 자리 잡아서 다수의 약자들이 소외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시장으로 내몰며 자유롭게 벌어먹으라고 하므로 경쟁이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는데 경쟁의 조건이 처음부터 불공평하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낳으며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또는 세계화를 20:80의 질서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의 혜택 받는 사람들을 위해 80%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희생시킨다는 이야기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자본가들의 자유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셋째, 자본의 욕망이 끝없이 확대되어 불필요한 영역들까지 시장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인간의 모든 삶에서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시장논리가 만병통치약처럼 통하다보니 문화, 교육, 예술 등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영역들도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며 정책으로 옮기기 때문에 삶의 체계를 건조하게 만들며 인류문화를 황폐화시킨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가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한편 없는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내막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서민이나 그들 편에서 애쓰는 진보적 활동가들 중에서도 화려한 자본의 담론에 이끌려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시장'과 '경쟁'의 논리를 새로운 희망처럼 추종하는 경향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그 개념과 논리상 자본의 자유와 기득권을 지키거나 확대하고자 하는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여서 사회적 자유와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데, 정부 정책이나 기업운영 등이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는 일이 원체 많다보니 그것을 비판하는 일도 너무 많아지고 일상화하다보니 때로는 ‘비판을 위한 비판’ 또는 ‘개혁을 반대하기 위한 비판’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생긴다. 원래 불평등과 소외의 모순이 존재하는 현실을 변혁하려는 목표가 강한 것은 진보주의 쪽인데 자본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잘못된 개혁 방향을 비판하다보니 얼핏 보기에는 보수주의가 오히려 더 개혁적으로 느껴지고 진보주의가 더 수구적으로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결국 정책을 주도하는 주체가 어떤 흐름에 서서 개혁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요즘 보-혁 전도의 아이러니가 자주 나타나는 것은 정부의 정책들이 대개 진보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말하자면 서민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오히려 가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정책이 더 많이 표출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사족을 달자면, 대안 없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결국 경쟁을 피하며 보신주의에 빠지거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 쉽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진보적 활동가들이 깊이 고민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신자유주의 비판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부조리하게 조장되는 경쟁의 모순을 뛰어넘어 창조적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는 더 본질적인 목표가 있다. 그러나 그 목표가 구체적인 담론과 기획물로서 제시되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의 충정이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가끔은 일단 다가오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비판'이라는 형식으로 표출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며, 또한 그런 경우가 아니고 진정한 비판일지라도 이제는 모순을 파헤치거나 혁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변혁을 이루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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