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강 독서는 나만의 해석이다


- <문장론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독서에 관하여> 마르셀 프루스트



'다독(多讀 많을다 읽을독)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自害 스스로자 해칠해)다. 압력이 너무 높아도 용수철은 탄력을 잃는다.' ..

쇼펜하우어는 무분별한 지식으로 생각할 여력이 없어지는 사람의 모습을 용수철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어요. 읽기만 하지 말고 읽은 걸 느껴야 합니다.  17-18


'진정 스스로 사색하는 자가 되고 싶다면 무엇보다 그 소재를 현실세계에서 찾아야 한다. 그런데 독서는 어디까지나 작가에 의해 가공된, 인공적인 현실이다.'

즉, 내가 경험한 것으로부터 나만의 지혜를 찾아야 하는데, 남 얘기나 내가 직접 보지 않은 것에서 내 것을 찾는다는 말입니다. .. 독서가 내 주변의 제대로 봐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까닭에서 쇼펜하우어는 독서를 반대합니다.  18-19


바라보는 특별한 시선을 빌려 지금 내가 있는 곳으 살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겠다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 읽기가 내 생활에 들어와야 합니다. 쇼펜하우어도 아마 이런 부분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책을 읽지 말라고 반문한 게 아닐까요?  19


'많은 지식을 섭렵해도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면 그 가치는 불분명해지고, 양적으로는 조금 부족해 보여도 자신의 주관적인 이성을 통해 여러 번 고찰한 결과라면 매우 소중한 지적 자산이 될 수 있다.' ..

'호학심사 심지기의(好學深思 心知基意 좋을호 배울학 깊을심 생각할사 마음심 알지 터기 뜻의),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안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우리에게는 심사, 깊이 생각함이 빠져 있는 듯합니다.  20


'알기 위해서는 물론 배워야 한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여러 조건을 통해 스스로 깨달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앎은 깨닫기 위한 조건에 불과하다.'

내가 안 것을 깨닫기 위해서 '학(學 배울학)'도 필요하고 '호학(好學 좋을호 배울학)'도 필요합니다... 우리 내부에서는 바깥에서 들어온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읗 해야 합니다.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21


최근에 자주하는 생각인데 지혜란 것은 크고 넓은 것, 많이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한 움큼인 것 같아요.  22


'독서와 학습은 객관적인 앎이다. (중략)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이다.'

책에 쓰여 있는 것은 객관적인 앎입니다. 사색은 주관적인 깨달음인거죠. 이게 지식과 지혜의 차이 같아요. 독서는 주관적인 깨달음을 지향해야 합니다.  22


'나만의 고유한 사색에 의해 어떤 진리에 도달했으면, 비록 그 내용이 앞서 다른 책에 기재되었을지라도 타인의 사상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사색을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단순히 산 정사엥 도달했다는 물리적 결과만이 아니라 정상에 도달하는 동안 겪었던 체험도 포함되어 있다.'  23


'그대의 조상이 남긴 유물을 그대 스스로의 힘으로 획득하라.'  24


언제까지 읽기를 끝내야지 하고 목표를 정하지 마시고, 얼마만큼 내 것으로 만들 것인지에 방점을 찍으셨으면 합니다.  24


'읽기 쉽고 정확하게 이해되는 문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주장하고 싶은 사상을 소유'해야 한다.'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게 없이 원고지 12매를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25


'학식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쉽게 말하고, 학식이 부족할수록 더욱 어렵게 말한다.'  26


'"...(상략) 보는 법을 배우라!" 바로 그 순간 작가는 모습을 감춘다. 바로 이것이 독서의 가치이자 한계이다. 시작임에 불과한 것을 마치 규범인 것으로 여기는 것은 독서에 지나치게 큰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독서는 정신적인 삶의 도입부에 있다. 독서는 그러한 삶에 안내할 수는 있지만 그것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나와 다른 영혼이 개입하도록 허용하되, 그때 들어온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들어내는 과정도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28


책을 통해 알았으면 그것을 내 삶을 변화시키는 연료로 써야 하는 것이고, 삶에서 앎을 행하면서 바꿔나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

알랭 드 보통도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 "모든 독자는 자기가 읽은 책의 저자다."  29


책이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시선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33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말재주와 옷뿐인, 예술가인 체하는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만 조화로운 비율을 한 대상을 찾는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주변의 모든 것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작은 근육 하나조차 의미를 가진다.'

주변의 것을 아름답게 보는 시선, 예술의 역할이기도 해요.  38


처음 보는 사람한텐 정말 엄청난 물건인 거죠. 그러나 익숙한 우리에겐 그것이 전혀 새롭지 않아요. 흥미도 없고요. 관습 안에 갇혀 아름다움이 약해진겁니다. 그걸 일깨워주는 것이 예술이고 독서라는 게 프루스트의 이야기죠.  40





2강 관찰과 사유의 힘에 대하여


- <곽재구의 포구 기행> <길귀신의 노래>  곽재구

  <시를 어루만지다> 김사인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 법인


'나란히 누워 서로의 살갗을 부비는 집들, 담장들, 빤히 들여다보이는 이웃들의 꿈, 가난, 숨결들.'

별 볼일 없는 풍경, 그것을 주목하는 힘. 그게 삶의 지혜이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이자, 시인의 재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에요.  53-54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 여행한 사람은 경험상 행복한 사람입니다.' ..

짧은 길을 긴 시간을 들여서 여행하려고 노력하는 것, 많이 보려고 하지 말고 자세히 보려고 하는 것이 중요해요. 책 읽는 것도 마찬가지 같아요. 제가 다독 콤플렉스를 버리자고 자주 말하는데요. 자랑하려고 많이 읽는 게 핵심이 아니죠. 얼마나 체화했느냐, 얼마나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쳤느냐 이런 것들이 중요합니다.  57


우리의 삶은 모호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명료한 답을 원해요..."어떠한 일반론도 각자 삶의 특수성 앞에서는 무력하다"  61

'한국의 나폴리 ..(중략).. 이런 비유 당신도 좋아하나요. 소박하고 따뜻하고 성실한 자신의 무엇인가를 바보스럽게 위축시키는..'

우리가 무심히 쓰는 말들이죠. 들을 때마다 어딘가 좀 불편한, 한국의 스티브 잡스, 한국의 빌 게이츠, 한국의 누구누구, 이런 표현 속에는 언급하고 있는 그 개인의 존재감에 대한 배려가 없는것 같아요.  63


'살아 있음이란 내게 햇살을 드에 얹고 흙냄새를 맡으며 터벅터벅 걷는 일입니다.'

이 글을 보고 저는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건, 봄을 한 번 더 본다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66


거듭 말하지만 많이 읽는 것보다 제대로 읽는 게 저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71


'시를 쓰고 읽기 위해서는 개념의 운용 능력보다는 실물적 상상력의 운용 능력이, 공감과 일치의 능력이 더 긴요하게 연습되어야 한다.'

개념을 운용하는 능력은 법전 해석이나 논리적인 이야기에서는 중요하겠죠. 철학에서는 아주 엄밀하게 중요하겠죠. 철학에서는 이런 실물적 상상력은 배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학은요, 실물적 상상을 해야 하고, 정서적 공감을 하며, 거기에 내 마음을 일치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해요.  73


문학에 임하는 상상력은 이러한 표피적 사실 진술에 잘 만족하지 못한다. 그날 새벽 이순신의 조반상 위에는 어떤 음식이 올랐는지, 그의 심경이 어떠했을 것인지, 그날 바다 빛깔은 어땠는지, 세수는 제대로 했을 것인지, 옷차림은 어땠을 것인지, 방문을 나서는 그의 수염발이 동짓달의 바닷바람에 어떻게 쓸렸을 것인지, 휘하 병사들 하나 하나는 그 심경과 얼굴 표정이 어땠을 것인지 등등 까지를 궁금해한다.

쉽게 말해 4D 영화입니다. 시를 4D로 읽으라는 거예요. 2D로 읽지 말고 문장을 일으켜 세워서 바람도 느끼고, 물방울 튀는 것도 느끼면서 읽으라는 거죠.  74


법정스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지식은 밖에서 들어오지만 지혜는 안에서 우러나온다고요. 사유하는 시간을 갖기 않으면 내 안에서 자생적으로 우러나오는 것들을 못 건져냅니다.  84


'목표가 곧 인생의 목적이고 꿈이라고 착각하는 세상.'

'수행은 늘 깨어 있는 삶을 사는 일이다. 깨어 있다는 것은 늘 자신을 성찰하고 생각을 높이며 끊임없이 성숙시키는 것이다. 성찰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살피는 것이다. 사색은 사물과 일에서 참되고 깊은 의미를 찾는 일이다.'  86


'달은 어디에나 있지만 보려는 사람에게만 뜬다.'

친구가 되려면 시간이 걸린다는 조지아 오키프의 말처럼, 노력해야 해요.  89






3강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미성의 시간이다 


-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레프 톨스토이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볼테르



'세상사에 시선이 따뜻한 사람이 시인이다. 

시를 안 써도 시인이다.'  97


토스토이는 작품마다 자신이 살던 시대의 흐름, 당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을 등장인물들을 통해 투영해놨습니다. 저는 책을 읽을 때 스토리 중심으로 보기보다는 문장을 구석구석 살피며 작가가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 하며 읽습니다.  102


'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

저는 '사람은 물이다'라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사람은 고여 있지 않죠.  103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일상적 노도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알랭드 보통은 "우리는 아이를 위해 빵에 버터를 바르고 이부자리를 펴는 것이 경이로운 일임을 잊어버린다"고 말했습니다. 행복은 거기 있는 건데 말이죠.  104


'육체노동이 정신적인 삶을 가로막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육체노동을 할 때만이 지적이고 영적인 삶이 가능하다.'

그래서 몸을 번잡하게 만들어야 해요. 잘 살려면 몸을 번잡하게 하고 마음을 평화롭게 해야 합니다.  109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진리는 그저 몸에 살짝 붙어 있는 데 그치지만 스스로 발견한 진리는 몸의 진정한 일부가 된다.'  117





4강 시대를 바꾼 질문, 시대를 품은 미술


- <1417년, 근대의 탄생> 스티븐 그린블랫

  <시대를 훔친 미술> 이진숙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끊임없이 토론을 요청하며 질문을 던졌어요.  144


오직 하나만의 목적을 위해 질문을 내려놓은 시대, 중세와 닮아 있지 않나요?  146


불교에서 수행의 최종 목적은 황새잉 아니라 멸(滅 멸망할멸)이랍니다. 다시는 무엇으로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죠. 더 좋은 무엇으로 태어나도 연(緣 인연연)은 필시 생길 따름이고 그러면 삶은 또 다시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영원히 태어나지 않는게 목적이랍니다.  149


'모두들 기성 제도와 관습, 관행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기에 새로워져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다.'

이것에 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친부살해의 욕망입니다. 자기 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거예요. 자기 아버지를 죽여야 비로소 새로운 가치가 태어나는 거니까요.  173


시대가 너무 물질적인 가치만 따르며 가다 보니까 나는 다른 길을 찾겠어 한 거죠. 또 다시 친부살해이지요.

'미래를 얻기 위해서 현실과는 단절이 필수적이다. 추상은 구상의 억압과 배제 위에서 탄생한다.'

추상은 두 가지예요. 구상이 비구상화 되는 추상이 있고 시작부터 완전한 추사으로 출발하는 추상이 있어요.  174





5강 희망을 극복한 자유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기행문


- <스페인 기행> <영국 기행> <카잔차키스의 천상의 두 나라>(<일본 중국 기행>개정판) 니코스 카잔차키스


소재보다는 그 소재를 해석해내는 카잔차키스의 역량을 높이 봤스빈다.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을 읽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봐야 할 것이 그 부분입니다. 여행지 자체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여행지를 소재로 한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말이죠. ..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은 '대상에 대한 저자의 사색'이 주제가 됩니다. ..

카잔차키스의 기행문은 '어떻게 삶을 대할 것인가?'라는 한 가지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는 온몸이 촉수인 사람으로 살고 싶었습니다. 순간순간 예민하고 싶어 했죠. 

'나는 그런 영혼이오. 세계를 만지는 촉수가 다섯 개 달린 덧없는 동물.'  182-183


왜 온몸이 촉수인 삶을 살아야 할까요? 제 생각을 말씀드리면 어디에도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인 것 같아요. 현명하게 사는 방법은 그 순간을 온전하게 사는 것뿐이죠.  184


'행복은 하늘이나 땅의 딸이 아니라 인간의 딸이다.'

행복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므로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장자 얘기를 하나 인용해요.

'하늘 아래에는 가을의 작은 나뭇잎 이상 위대한 것은 없다!'

이것은 소재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185


'보고 듣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서둘러서는 안 된다. 서두르면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듣지 못할 것이다.'

한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영혼이 훈련이 된 사람들은 그 한 장면을 보고도 그 장면 속에서 많으 이야기들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비행기를 타고 여러 나라르 다녔다 할지라도 아무것도보지 않은 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는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한 다음에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성급함과 초조함과 서두름을 극복했다.'

'예술품의 완전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예술품이 태어난 나무와 물과 언덕 사이에서 그것을 보아야 한다.'  188


아무런 감정도 없고 깊은 접촉도 없이 세상을 냉담한 시선으로 보는 영혼에게는 '객관적인' 진리 - 그것은 얼마나 하찬ㅎ은 것인가! - 만이 존재할 뿐이다. 고통스럽게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은 신비로운 교접을 통해 자신이 보는 풍경과, 마주치는 사람과, 선택하는 사건과 소통한다. 따라서 모든 완벽한 여행자는 항상 자신이 여행하는 나라를 창조하는 것이다.'

풍경들을 객관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서 온전히 느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만의 여행을 할 수 있어요. ..내가 읽고 내 속에서 해석되어 의미를 찾을 수 있게 되면 비로소 그때에 좋은 책이 되겠지요. 

모두 똑같은 여행은 없습니다.  189


'다른 사람들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서 있게나.

자신 앞에서는 엄격한 얼굴로 서 있게나.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용감하게 서 있게나.

일상 생활에서는 기분 좋은 얼굴을 하게나.

사람들이 자네를 칭찬할 때면 무심하게나.

사람들이 자네는 야유할 때면 꼼짝도 하지 말게나.'  189-191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예요.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인생이니까 그런 겁니다. 세상의 모든 잘난 것들도 내 안의 입법자와 협의해서 동의가 되면 그때 받아들이는 거예요.  197


'사람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가 읽는 대목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단단하든 부드럽든 단어들의 껍질을 깨고, 그 단어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가 자신의 가슴속에서 폭발하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기술이란 인간의 정수를 알파벳 문자들에 압축해 넣는 마술,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독자의 기술은 그 마술적 장치들을 열고 그 속에 갇혀 있는 뜨거운 불이나 부드러운 숨결을 느끼는 것이다.'

김사인 선생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작가는 인간의 정수라 할 만한 무언가를 몇 개의 알파벳 속에 집어넣었어요. 그걸 우리가 제대로 읽으려면 그 문자를 풀어야 해요. 봉인을 해제해야 합니다. 이것은 문장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과 같은 의미죠.  202-203


'나는 이 세상에 왔던 것에 만족합니다. 내가 무수한 고난을 겪었음에, 중대한 실수들을 저질렀음에, 만족합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실수를 했다고 해도 결과를 받아들이며 다시 살아가죠. 아모르 파티(Amor fati)입니다.  203


'순간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그 순간이 완벽해야 한다.

부족함 없어야 하고 바라는 게 없어야 한다.

모든 희망의 극복이 필요하다.'

언젠가 노트에 적어놓은 메모입니다.  210






6강 장막을 걷고 소설을 만나는 길


- <커튼> 밀란 쿤데라


밀란 쿤데라는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예로 드는데요. 그 그림은 철저한 해석입니다. 들라크루아가 생각한 자유의 여신의 이데아를 그려놓은 작품이죠.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이 유명한 그림은 들라크루아가 선해석의 커튼에 있는 장면을 그대로 베낀 것이다. 바리케이드 위에서 한 젊은 여자가 심각한 얼굴로 가슴을 드러내놓고 겁을 주고 있다. 그 여자 옆에는 권총 한 자루를 손에 쥔 코흘리개가 있다.'

쿤데라가 보기에 이 그림은 키치의 전형입니다. 자유의 여신이 깃발을 들고 있는 바로 옆을 보세요. 옆에서 죽어가는 살마들의 비명소리나 피비린내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자유의 여신의 가슴은 전쟁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깨끗하잖아요. 이런 것들이 전부 키치인 거예요. 쿤데라는 이렇게 말을 잇습니다. 

'내가 이 그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이 그림이 명화의 대열에서 제외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226-228











''말 그대로의' 역사, 즉 인류의 역사는 이제는 없는 것들,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에 참여하지 않는 것들의 역사다. 예술의 역사는 가치의 역사이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 항상 현존하는 것, 항상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의 역사다. ..'

마차를 생각해보세요. 요즘 누가 마차를 타요. 없어졌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면 지금 우리는 아직도 몬테베르디라는 16세기의 작곡가도 만나고 스트라빈스키라는 20세기의 작곡가도 만나고 있어요. 이들은 각자 다른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진보의 역사를 잣대로 두고 판단한다면 몬케베르디의 음악은 없어졌어야죠. 과학이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better)'의 세계라면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different)'의 세계입니다. 남들과 어떻게 다를 것이냐.  234-235


키치는 앞에서도 언급했는데요, 다시 말하자면 편집입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겠다는 겆. 로맨티스트는 모두 키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로맨티스트는 어떤 상황이든 낭만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거든요. 지극히 주관적이죠. 로맨틱한 상황에 방귀 냄새가 나서 되겠어요? 로맨틱한 사람은 그 순간 농담을 던지면 뺨을 때리겠죠. 정신 못 차린다고 말입니다. 그렇지 때문에 재치라는 것이 매 순간 좋기만 한건 아니에요.  241


'그러나 몽상은 그만! 우리 모두는 출생의 날짜와 장소에 절망적으로 못박혀 있다. 우리의 '자아'는 우리 삶의 구체적이고 유일한 상황을 벗어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만 그리고 그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조건을 벗어나서 우리의 자아를 생각할 수 없어요. 상황이 중요한 거죠. 내가 어느 나라에서, 어느 시대에 태어나, 어떤 상황 속에 살고 있느냐에 못 박혀 있는 겁니다. 이런 것들을 주목한 사람이 프란츠 카프카입니다. 카프카는 이 사람이 귀족이든 아니든, 성격이 좋든 그렇지 ㅇ낳든,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고 당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소설을 씁니다. <성>과 같은 소설이 그렇습니다.  252-253



니체가 이런 말을 했죠.

'16세기에 교회의 타락이 가장 덜한 곳은 독일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바로 그곳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음을 지적한다. 오직 "타락의 초기에만 타락을 참을 수 없다고 느끼기"때문이다.'

이탈리아의 교회가 더 많이 타락했지만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거죠. 타락이 몸에 배면 익숙해지고 무뎌지게 되거든요.  

'카프카 시대의 관료주의는 오늘날과 비교할 때 순진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카프파는 관료주의의 끔찍함을 간파했고 그 후로 관료주의는 일상적이 되어 이제는 아무도 과심을 갖지 않는다.'

카프카가 그 시대의 관료주의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초기 관료주의의 끔찍한 모습을 예민하게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현실이 전혀 부끄러움 없이 되풀이된다면, 그 반복되는 현실에 직면한 사상은 결국 언제나 입을 다물게 되는 법이다.'

이게 참 무서운 것 같아요. 조심해야 할 거고요. 예를 들어서 약자를 대상으로 한 폭력들이 이 사회에 계속 존재하고 있는데, 시간이 갈수록 그런 문제들에 무덤덤해지는 거죠. 우리는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들이지만, 제3자의 시선에서 잡히는 문제들도 분명히 있죠. 시스템의 사회, 관료주의적 사회는 익명성의 시대로 이어집니다.

'예전에 우리 부모들이 휴가를 떠날 때면 기차가 출발하기 십 분 전에 역에서 표를 샀다. 그들은 시골 호텔에 묵었고 마지막 낳 주인에게 현금으로 숙박료를 지불했다. 그들은 아직 슈티프터의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휴가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난다.'

오늘날 그런 시대는 끝났죠. 나의 휴가는 다른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가 먹는 고기를 생각해보세요. 옛날에는 내가 먹는 고기가 어디서 온 건지 다 알고 먹었는데 지금은 모르죠. 익명성의 시대니까요.

'에어프랑스의 관리들과 노조 관리들 사이에 일어났던 분쟁이 파업으로 이어진다. 전화를 수없이 돌리고 난 후에야 에어프랑스에서 한마디 사과도 없이(K에게 사과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행정은 예의범절 저 너머에 있다.)환불을 받고, 기차표를 산다.'

이게 상황입니다. 누구를 욕하겠어요. 시스템 때문에 어쩔 수없는 거잖아요. 내가 에어프랑스 티켓을 샀으니 비행기를 타고 가는 건 내 권리예요. 그런데 내가 전혀 손을 쓸 수 없는 노조 문제가 생겼대요. 이때 나의 민원을 접수한 창구의 사람들은 나에게 미안해 하지 않아요. 그저 환불해주겠다고 간단히 말할 뿐이죠. 이런 얘기들이 이미 카프카의 소설에서 K를 둘러싼 상황을 통해 묘사되면서 예측됐던 것이죠.  254-256


익명성뿐만이 아닙니다. 자유의 개념도 예외 없이 바뀌었죠.

'자유의 개념. 측량사 K에게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기관은 없다. 그러나 정말로 완전히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을까? 모든 권리를 가진 시민이라 해도, 가장 가까운 자기의 환경, 자기 집 밑에 지어진 주차장과 창문 바로 맞은편에서 웅웅거리는 확성기를 과연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의 자유는 무한하지만 그만큼 무력하다.'

지금 우리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행동을 금지하는 기관은 없어요. 그러나 우리는 정말 자유로워졌나요? 사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법으로 사생활을 보장받고 있어요. 그러나 SNS를 통해 우리의 모든 것이 기록되고 있지 않나요? 진짜 사생활이 있는 건가요? 무력할 수밖에 없죠. 이런 시대로 들어섰어요. 시간의 개념도 변화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의 개념.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대립할 때는 동등한 시간 두 개가 대립한다. 덧없는 인생의 제한된 시간 두 개.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더 이상 사람 대 사람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과 맞닥뜨린다. 젊음도, 노화도, 피곤도, 죽음도 모르는 존재. 인간의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 인간과 행정은 서로 다른 시간을 산다.'

지난겨울 폭설로 무더기 결항이 된 제주공항 사태 때처럼 책임지는 사람 없이 개인이 바로 행정이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맞닥뜨리는 거예요. 결국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측량 기사 K를 짓누르는 것은 잔인성이 아니라 성의 비인간적 시간이다. 인간은 면담을 요청하고 성은 그것을 뒤로 미룬다. 소송은 길어지고 삶은 끝이 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겪는 일들이에요. 모험도 개념이 바뀌었답니다. 그 옛날의 모험은 내가 모험을 떠나겠어 하고 결심하면서 시작이 되었는데요.

'모험의 개념. 예전에 이 단어는 자유와 마찬가지로 삶에 대한 찬미를 나타냈다. 개인의 용감한 결정으로 자유롭고 확고한, 놀라운 일련의 사건이 시작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의 피해자 유가족들은 지금 모험의 길에 올랐습니다. 그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민이 됐어요. 그 사람드의 성격이나 성향이 바뀌었습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상황입니다. 모험에 들어선 것은 그 사람의 의지인가요? 상황 때문이잖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돈키호테의 모험과는 전혀 다르죠. 그렇다면 그 모험은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찾아오는 일입니까? 아니죠. 그런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지만 나에게도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어요. 어쩔 수 없는 그 상황이 우리에게도 생긱고 나면 우리의 삶 역시 완전히 바뀔 겁니다. 이런 시대에 대한 이야기들은 <커튼>에 들어 있어요.

'싸움의 개념 역시 모험과 비슷하다. (중략) 몸 대 몸의 싸움은 없다. 보험, 사회보장, 상업조합, 법원, 국세청, 경찰, 도청, 시청, 우리의 적에게는 몸이 없다.'

어느 순간 다 우리의 적이 될 수 있는 것들이죠.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적이 될 수 있죠.

'그 모든 소동 후에 K는 지쳐서 죽는다.'

K에 우리 이름을 대입하면 딱 들어맞을 것 같지 않으십니까? 대단한 통찰이에요. 이게 바로 카프카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지금 우리들이 사는 시대와 꼭 들어맞습니다. 시대를 앞서 읽은 소설이네요.  256-258






7강 소설이 말하는 우리들의 마술 같은 삶


-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한밤의 아이들> 살만 루슈디







8강 나만을 위한 괴테의 선물, 파우스트


- <파우스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방황하지 않는다는 건 노력하지 않는 거죠. 삶을 향한 어떤 노력들과 그로 인한 방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풀어가야 하는지, 이 한 문장에 잘 나와 있어요.  329


'그러면 고서(古書 옛고 글서)들이 신성한 샘물과 같아서,

 그걸 한 모금 마시면 갈증을 영원히 진정시켜준단 말인가?

 그것이 자네 자신의 영혼에서 솟아나지 않는다면,

 결코 상쾌한 마음을 얻지는 못할 것일세.'

체화되지 않는 지식들은 무용합니다. 좀 더 자세히 들어가볼까요? 고서에 적힌 훌륭한 말들이 신성한 샘물처럼 여겨지겠지만 그것들이 갈증을 영원히 진정시켜줄 순 없습니다. 그 말이 내 내면 속에서 영혼속에서 계속해서 솟아나야만 갈증이 가랑앉겠죠. 책을 읽었으면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겁니다.  333


'그러나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다면,

 결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할걸세.'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노자가 말했죠. 진실한 말에는 꾸밈이 없고, 꾸미는 말에는 진실이 없다고요. 이걸 <파우스트> 버전으로 볼까요?

'이성이 있고 올바른 생각만 있으면,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연설은 저절로 나오는 법일세.

 자네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진지하다면, 

 말마디를 꾸미려고 애쓸 필요가 있겠는가?'  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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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 울림의 공유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개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인간에게는 공유의 본능이 있다.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



1강 시작은 울림이다


- 이철수 <산벚나무, 꽃피었는데-이철수 신작 판과 100선전>

  이철수 <마른풀의 노래>

  이철수 <이렇게 좋은 날>

  최인훈 전집 1

  이오덕 <나도 쓸모 있을걸>



저는 여느 독서가들과 비교했을 때 독서량이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겁니다. 매번 읽은 책들을 메모해놓는데, 통계를 내보면 일 년에 읽는 책이 서른 권에서 마흔 권 사이입니다. 한 달에 세 권 정도 읽는 건데 독서량이 많은 건 절대 아니죠. 대신 저는 책을 깊이 읽는 편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 읽습니다. 여기 제가 써놓은 것들을 프린트해왔습니다. 

우선 저는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좋은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에 줄을 치고, 한 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따로 옮겨놓는 작업을 합니다. 이 강의의 목표는 이런 방식의 책 읽기를 통해 제가 느낀 '울림'을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입니다.  14


'땅콩을 거두었다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덜된 놈! 덜떨어진 놈!'


이 한 줄만으로도 덜된다는 게 이런 얘기구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익으면 떨어지는데, 익지 않아 '덜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 한 줄이 자연 현상이 인간사로 넘어오는 순간입니다. 현기증 나는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그냥 자연현상인데 순식간에 사람의 것으로 이입이 됩니다.

이철수는 또 저에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동양의 삶의 태도와 서양의 삶의 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비교하게 해주었는데요, 그것은 역시 판화 [가을사과]에 쓴 한 줄의 글이었습니다.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과가 떨어진 걸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기거이 과학적으로 밝혀내고야 마는 것은 서양의 장점입니다. 그리고 동양의 장점은 때가 되어서 떨어지는 걸 왜 안달복달 난리들이야 하며 자연을 아우르는 철학입니다... 서양의 장점이 가져다준 문명적인 혜택, 충분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자연적 재앙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연현상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는 동양의 지예가 다시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것이 통찰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창의력이 무엇이냐고 자주 묻는데, 저는 이런 통찰이 창의력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사과를 많이 봤지만, 뉴턴이나 이철수와 같은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이 사람의 힘인 것이죠.  22-23


소설가 김훈에 따르면 글쓰기는 자연현상에 대한 인문적인 말 걸기라고 합니다. 자연은 자연이고 인간의 글은 인문(人文)이잖아요. 그런데 자연을 해석하려고 인문이 노력을 하는 겁니다. 쉽지 않죠? 조금 설명을 덧붙인다면, 

'산에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예전에는 김소월의 [산유화]라는 시를 좋은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그게 뭐야, 당연히 산에 꽃이 피지 뭐'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김훈이 이렇게 안내해줬습니다. "이 노래는 말을 걸수 없는 자연을 향해 기어이 말을 걸어야 하는 인간의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로 나는 들린다"라고 말이죠. 멋진 걸 보고 '우와'라는 표현밖에 못 하는 사람과 다르게 그들은 기어이 말을 걸고 싶은 인문적인 갈증이 있는 것입니다.  25


'깊은데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가 짖어도 

 법문이다' - [개소리] 전문 26


어른들은 .. '지식'으로 세상을 봅니다.

아이들이 .. '감성'으로 본 겁니다.  36


'시골집 선반 위에

 메주가 달렸다.

 메주는 간장, 된장이 되려고

 몸에 곰팡이가 

 피어도 가만히 있는데,

 우리 사람들은

 메주의 고마움도 모르고

 못난 사람들만 보면

 메주라고 한다.' - 부산 감전국교 6년 이경애, [메주]


'껌은 빳빳하지요.

 그러나 입속에 넣으면

 사르르 녹지요.

 아무리 나쁜 사람도

 껌과 같지요.


 모두가 나쁜 사람이라고 

 팽개쳐버려도

 누군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싸 주면

 껌과 같이 사르르 녹겠지요.

 딱딱한 마음이

 껌과 같이 되겠지요.' - 부산 감전국교 6년 김경숙 [껌 같은 사람]  39-40


사람은 물입니다. 조용한 데 이르면 조용히 흐르고, 돌을 만나면 피해가고, 폭포를 만나면 떨어지고, 규정된 성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 소설에 악당이 없다..  40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입니다.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대처 능력이 커지는 것이죠. 

요즘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고수들이 일상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구나 싶습니다. 박재삼이, 존 러스킨이, 헬렌 켈러가 같은 생각을 했어요. 사과가 떨어져 있는 걸 본 최초의 사람이 뉴턴이 아니잖아요. 사과는 늘 떨어져 있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겁니다. 상황에 대한 다른 시선, 절박함이 사과를 보고 이론을 정리하게 했죠.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45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순간의 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을 레이스로 생각합니다.  46


레이스가 된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죠.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47


중요한 것은 휘슬러의 <화가의 어머니>를 보면서 소름이 돋으려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이 "문화미와 예술미는 훈련한 만큼 보인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47-49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볼시 말이을이 아닐불 볼견 들을청 말이을이 아닐불 들을문).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거죠.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그저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을 하는 것이고요, 사계의 한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 건 견문이 된 거죠. [모나리자] 앞에서 '얼른 사진 찍고 가자'는 시청이 된 거고요,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에 얼어붙은 건 견문을 한 거죠. 어떻게 하면 흘려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가가 저에게는 풍요로운 삶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겁니다. 존 러스킨은 "당신이 보고 난 것을 말로 다 표현해보라"라고 했습니다. 나뭇잎을 봤다면, 나뭇잎의 균형감각이 어떻게 되어 있고, 앞뒷면의 촉감이 어떻게 다르고, 끝부분은 어떤 모양이고, 햇살이 떨어진 각도에 따라 나뭇잎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볼 줄 알면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49-50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51





2강 김훈의 힘, 들여다보기


- <자전거 여행>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자전거 여행2>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화장]<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바다의 기별>


구어가 곧 문어(文語 글월문 말씀어)라는 겁니다. 말로 나오는 문장을 그냥 받아적으면 글로 쓸 수 있는 정도입니다.

김훈의 특징은 사실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겁니다.  59


'탐사취재' 

정밀탐사 ...

김훈의 글은 형용사나 부사를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인 사실만 불러내서 정서를 전달하는데, 생각보다 그 힘이 굉장히 큽니다.  60


김훈은 무엇을 보든 천천히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64


'디자인은 단순한 멋 부리기가 아니다.

 디자인은 깊은 생각의 반영이고

 공간에 대한 배려다.'  68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조르바를 통해 "그에게 두려웟던 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었다"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 속에 정말 좋은 것들이 주변에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듣지 못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90


'식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밑동에서 살아 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 1정도에 해당하느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을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준다.'

지금 생명활동에는 아무런 관여를 하고 있지 않지만, 중심부가 있지 않으면 나무가 서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92


<바다의 기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당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서술은 몽매해집니다.'  93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왜군들은 군인으로 오지만 죽을 때는 개인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군들이 올 때는 군인이라는 집단명사로 옵니다. 나라를 위해서,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오는데 죽을 때는 일본 군인으로 죽는 게 아니라 가족과 헤어져 외롭고 고통스러운 슬픈 개인으로 죽습니다. 죽음은 전부 개별적이라는 이야기죠.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할 수 없어요. 그리고 위로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서오가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태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맞아요. [화장]에 아무리 사랑을 해도 아픔은 전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픔도 개별적이에요. 냉정하지만 사실이죠. 아무리 자식이 아프다고 해도, 아파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플 뿐이지 그 아픔을 진짜 느낄 수는 없어요. 철저히 개별적인 객체입니다. 평소에 너무 아프거나 추해서 의도적으로 보려 하지 않는 것들을 김훈은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렇게 각성과 새로운 시선을 전져주죠. 김훈은 말합니다.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96-97





3강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


- <불안>

  <우리는 사랑일까>

  <동물원에 가기>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개정판으로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우리 모두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서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사실 상대에 대한 전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대상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어떤 한 면을 봅니다. 말 한마디의 한 컷, 그 사람이 나에게 얘기했던 한순간만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예쁘다, 멋지다. 매력적이고 좋다고 생각한 뒤 나머지 부분은 다 상상으로 채우죠. 그 상상은 나의 욕망으로 채워집니다.  105


우리는 워홀이 통조림에 했던 발견을 자신에게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아마 통조림은 워홀을 사랑하고 평생의 연인으로 삼을 겁니다. 눈물을 흘릴지도 몰라요. 자기를 그렇게 아름답게 봐준 사람이 처음이니까요. 아무도 자기를 중요하게 혹은 예쁘게 안 봐줬어요. 그런데 워홀은 '너 대단히 예쁘다'라고 끌어서 액자 속에 걸어놓아줬어요.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얘기예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주목해주거나 다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가를 알아줬을 때 사랑에 빠진다는 거죠. 그걸 연결해서 알랭 드 보통은 워홀이 물감으로 한 일과 사라의 유사점에 대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합니다.

'워홀이 물감으로 한 일과, 오랫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코나 손의 점들을 애인이 칭찬해주는 일은 비슷하지 않을까?

애인이 "당신처럼 사랑스런 손목/사마귀/속눈썹/발톱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거 알아? 라고 속삭이는 것과 예술가가 

수프 통조림이나 세제 상자의 미적인 성질을 드러내는 것은 구조적으로 같은 과정이 아닐까?'

대단한 통찰이죠? 우리가 사람에게 하는 것이나 예술가들이 사물에 하는 것이 같은 과정이라는 메시지가 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또 공감할 만한 건 사랑이라는 게임에서 드러나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권력이라는 건 '뭔가 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게임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것', 그게 권력입니다. 만약에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둘 중 영화를 보고 싶거나 여행을 가고 싶거나 뭘 더 하고 싶은 쪽이 상대를 더 사랑한다는 겁니다. 사실 덜 사랑하는 쪽은 상관이 없는 거죠. "하고 싶은 거 해, 뭘 하든 상관 없어"라고 적당히 무관심한 듯 물러서서 아무 의견을 내지 않아요. 그래서 사랑에서의 권력은 무엇을 할 수 있는 느엵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이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115-116


옛날에는 시인을 볼 견(見 볼견)자를 써서 견자(見者 볼견 사람자)라고 했다죠. 들여다보는 사람,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들이 못보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는 뜻일 겁니다.  123


카프카가 한 말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129


책을 많이 읽고 인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들은 촉수가 민감해지죠.  130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 존 러스킨의 "말로 그림을 그려보라"라는 말을 인용했는데요. 그런 것이죠. 말로 그림을 그리듯 자세히 볼 줄 알아야 합니다.  134





5강 햇살의 철학, 지중해의 문학


- 김화영 <행복의 충격-지중해, 내 푸른 영혼> <바람을 담는 집>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김화영 예술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천상의 두 나라>

  로버트 카플란 <지중해 오디세이>

  알베르 카뮈 <이방인>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 <섬>

  릴케 <말테의 수기>


영혼을 구원한다는 이유로 신부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하자 뫼르소는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217





6강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키치의 세계는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기 때문이죠. 체제가 다를 뿐 모든 세계에 키치가 존재하는 겁니다. 작가는 키치에 의해 유발된 느낌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감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과감한 짓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

'그녀는 일생 동안 자신의 적은 키치라고 단언했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조차도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에 키치를 품고 살았던 것을 아닐까? (...) 텔레비전의 멜로드라마 속에서 배은망덕한 딸이 버림받은 아버지를 품 안에 껴안는 모습이나 행복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창문이 황혼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면, 그녀는 두 눈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266





7강 불안과 외로움에서 당신을 지켜주리니, 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2,3


'기계적 인문'. 기계적 인문은 제가 만든 말인데, 땅에 발을 디딘 현실적인 인문학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이론만 가지고 사회를 파악하려고 하는 인문을 말합니다. 기계적인 인문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부딪혀 문제를 풀지 않아요. 책으로만 배운 인문은 민중의 해방을 위해 민중을 교육시켜야해요. 그런데 민중이 일을 해야 하니 일을 하게 둬요. 그리고 밤늦게 일이 다 끝난 후 학습을 시켜요. 그 학습은 민중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시간 투자이기 때문에 절대 빠져서도 안 돼요. 그러니까 잠을 못 자게 하고, 술 한 잔도 정신이 흐트러져 안 된다고 금지하는 거예요. 민중은 그게 싫어요. 사실 그들은 대단한 미래를 바라지도 않아요. 현재도 충분히 행복하니까요.  286






8강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다


- 법정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손철주 <인생이 그림 같다-미술에 홀리느 손철주 미셀러니>(<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재출간)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미술이야기>

  오주석 <한국의 미 특강> ㅡ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 권 <그림 속에 노닐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한형조 <붓다의 치명적 농담>



'뼈빠지는 수고를 감당하는 나의 삶도 남이 보면 풍경이다.'

모든 삶이 그 사람한테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지만 멀리서 보면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까 모든 근경은 전쟁이고, 모든 원경은 풍경 같습니다.  322-323


벗나무 아래 엄숙할 것 없는 문명사. 자연사보다 결코 대단할 것 없는 문명사. 예술을 한 번도 동경한 적 없는 자연.  327


'형상이 드러나지 않은 여백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거기에는 마치 위대한 음악의 중간에 침묵의 몇 초를 기다리는 순간과 같은 마음 졸임이 있는 까닭이다.'

'침묵의 위대함은 앞뒤의 음향이 만든다. 그림 속 여백의 의미심장함은 주위의 형상이 조성한다.'  329


'예술의 격조란 정확히 감상자의 수준과 자세만큼 올라간다.'  334


우리는 책에 대한 긍정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책이면 다 좋다는 편견이죠. 하지만 읽는 시간이 아까운 글들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점수의 삶의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돈오하려면 깨달음을 줄 만한 좋은 책들을 찾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45


호학심사 심지기의(好學深思 心知基意 좋을호 배울학 깊을심 생각할사 마음심 알지 터기 뜻의),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안다는 뜻입니다. 비단 책뿐 아니라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촉수를 모두 열어놓으면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행복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잔디이론으로 봅니다. 저쪽 잔디가 더 푸르네,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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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개별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많은 사람들이 다소 의식적으로 '이방인은 모두 적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확신은 대개 잠복성 전염병처럼 영혼의 밑바닥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우연적이고 단편적인 행동으로만 나타날 뿐이며 사고체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인생을 얼마쯤 살다 보면 완벽한 행복이란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거소가 정반대되는 측면을 깊이 생각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즉 완벽한 불행도 있을 수 없다는 사실말이다. 이 양 극단의 실현에 걸림돌이 되는 인생의 순간들은 서로 똑같은 본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모든 영원불멸의 것들과 대립하는 우리의 인간적 조건에 기인한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늘 모자란 인식도 그중 하나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희망이라 불리고 어떤 때에는 불확실한 내일이라 불린다. 모든 기쁨과 고통에 한계를 지우는 죽음의 필연성도 그중 하나다. 어쩔 수 없는 물질적 근심들도, 이것들이 지속적인 모든 행복을 오염시키듯, 이것들은 또 우리를 압도하는 불행으로부터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돌려놓음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파편화하고, 그만큼 삶을 견딜 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18


위엄 있게 죽음을 맞을 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종종 그 소수는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이다. 침묵할 줄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의 침묵을 존중해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는다.  20


우리는 모두 그 문 안에 갇힌다. 머리를 박박 깎인 채 알몸으로 서 있다. 발이 물에 잠긴다. 샤워실이다.  29


아우슈비츠 근처 모노비츠에 와 있다.포로들은 일종의 고무인 부나(부나는 원래 부타젠과 나트륨의 첫 글자를 딴 것. 모노비츠에 있는 아우슈비츠 제3수용소에는 이 합성고무를 만들기 위한 공장이 있었는데 이를 부나 공장이라 불렀다)를 만드는 공장에서 일한다. 그래서 수용소 이름도 부나다.  31


종이 울리자 여전히 깜깜한 수용소가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갑자기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5분 동안의 축복이다. ..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뭔지 알 수 없는 넝마 조각들을 우리에게 던졌고 밑창이 나무로 된 신발 한 켤레 속에 우리의 두 손을 쑤셔넣었다. 상황을 이해할 시간도 없이 우리는 바깥에, 새벽녘의 푸르스름한 눈 위에 나와 있다. 맨발에 알몸으로, 손에는 옷과 신발을 든 채 우리는 1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다른 막사까지 달려가야만 한다. 우리는 그 막사에서 옷을 입을 수 있다.  33


우리 것은 이제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옷, 신발, 심지어 머리카락까지 빼앗아갔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마저 빼앗아갈 것이다.  34


해프틀링(포로). 나는 내가 해프틀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이름은 174517이었다. 우리는 새로운 이름을 받았고 죽을 때까지 왼쪽 팔뚝에 문신을 지니고 살게 될 터였다...

"숫자를 보여줘야만" 빵과 죽을 받을 수 있었다.  35


수용소의 고참들은 수인번호로 모든 것을 알았다. 수용소에 들어온 시기, 타고 온 기차, 국적이 수인번호에 나타났다. 3만에서 8만 대의 번호를 지닌 사람들을 보면 누구나 존경을 표하곤 했다. 이제 겨우 수백 명에 불과한 이들은 바로 폴란드 게토의(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 14세기 초부터 19세기까지 유럽 곳곳에 존재했다. 독일군은 1940년부터 동유럽의 주요 도시에 게토를 재건했는데, 그곳은 곧 기아와 질병 수용소로의 강제연행 등으로 비극적인 죽음의 무대가 되었다. 바르샤바의 게토에서는 1943년 봄 대규모의 봉기가 일어났으나 결국 그곳에 있던 거의 모든 유대인이 학살됨으로써 진압되었다.) 생존자들이었다.  36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수용소가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서는 그 사실을 빨리 그리고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38


막사마다 200~250명씩 수용되는 일반 해프틀링이 사는 곳이다...

공동 침실의 바닥 면적이 얼마나 좁냐 하면, 같은 B블록에 사는 사람들은 반 정도가 침대에 누워 있지 않는다면 전체가 동시에 그 공간에 있기도 힘들다. .

우리는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이 세 부류로 나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범죄자, 정치범, 그리고 유대인이었다. 모두 줄무늬 옷을 입고 있고 모두 해프틀링이지만, 범죄자들은 상의에 박힌 숫자 옆에 초록색 삼각형을 달고 다닌다. 정치범들은 빨간색이다.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은 빨간색과 노란색의 유대인 별을 단다.  44


우리는 음식물의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도 식사를 마친 뒤 반합의 바닥을 열심히 긁어내고 빵을 먹을 때는 부스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턱 밑에 반합을 댄다. 이제 우리는 죽통의 윗부분에서 푼 죽과 밑에서 푼 죽이 같지 않다는 것도 안다. 우리는 죽통의 크기에 따라 줄을 설 때 어느 죽통 앞에 서는 게 제일 유리한지 계산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쓸모가 있음을 배웠다. 철사는 신발을 묶는 데, 천 조각은 발을 감싸는 데 필요하고 종이는 추위를 막기 위해(불법으로) 상의에 대는 데 필요하다. 우리는 모든 물건을 도둑맞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금만 방심하면 반드시 도둑맞는다는 것을 배운다. 도둑맞지 않기 위해 반합부터 신발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강의에 집어넣어 보따리를 만들어 베개로 베고 자는 기술을 익힌다.  45


자신의 운명이 위태로울 때 이성적일 수 있는 인간은 매우 드물다. 운명이 위태로울 때 사람들은 극단적인 태도를 취한다. 성격에 따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잃었고 여기서는 살 수 없으며 종말이 눈앞에 다가왔다고 금방 확신하게 된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를 기다리는 삶이 힘겹기는 하지만 구원의 가능성이 있으며, 그것이 멀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믿음과 힘이 있다면 우리집으로 다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인 이 두 부류가 그렇게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불가지론자들이 많아서라기보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화 상대와 상황에 따라, 기억도 일관성도 없이 두 극단적인 입장 사이에서 동요하기 때문이다.  50


나는 수레를 밀었고, 삽질을 했고, 비에 젖었고, 바람에 몸을 떨었다. 내 육체는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배는 볼록하게 나왔고 팔다리는 장작개비 같았으며 얼굴은 아침이면 부었다가 저녁이면 홀쭉해졌다. ..

사나흘 만나지 못하면 서로를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우리 이탈리아인들은 매주 일요일 저녁 수용소 한쪽 귀퉁이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곧 그만두어야 했다 숫자를 세는 게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우리의 수는 매번 줄어들었고 매번 몰골이 더 사납고 더 비참해졌다. 모임에 나가려고 몇 발짝 떼어놓는 것도 힘이 들었다. 게다가 다시 만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기억을 떠올리고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  51


솔직히 고백하면, 수용소 생활 일주일 만에 나는 청결의 욕구를 잃어버렸다. 내가 세면장을 어슬렁거리고 있는데 거기에 쉰 살이 다 된 내 친구 슈타인라우프가 웃통을 벗고 서 있었다. 그는 몸을 문지르고 있으나 별 효과가 없다(비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목과 어깨를 씻는다. 슈타인라우프는 나를 보자 인사를 한다. 그러다 곧바로 정색을 하며 다짜고짜 내가 왜 안 씻는지 묻는다. 내가 왜 씻어야 한단 말인가? 그러면 내게 도움이라도 된다는 건가? 내가 누구의 마음에 더 들게 되기라도 한다는 건가?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더 오래 살 수 있단 말인가? 아니, 그 반대다. 오히려 수명이 더 짧아질 것이다. 씻는 일도 노동이고 에너지와 칼로리의 낭비니까. 슈타인라우프는 우리가 석탄 자루밑에서 30분만 낑낑대노라면 자기와 내가 구분조차 안 된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곰곰이 생각할수록, 이런 생활환경에서 얼굴을 씻는다는 것은 어리석고 심지어 무례하기조차 한 것 같다. 이것은 기계적인 습관일 뿐이다. 더 심하게 말하면, 절멸의 의례를 처량하게 반복하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것이다. 아니, 이미 죽기 시작했다. 기상과 노동 사이에 여우 시간이 10분밖에 없다면, 나는 그 시간을 다른 데 쓰고 싶다. 나 자신 속으로 침잠하여 결산을 하거나, 이것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하늘이나 바라보고 싶다. 아니면 아주 잠시나마 한가로움이라는 사치를 즐기도록, 그냥 그렇게 살아 있도록 내버려두고 싶다. 

하지만 슈타인라우프가 내 생각을 가로막는다. 그는 세수를 다 했고, 무릎 사이에 끼워두었던, 나중에 걸칠 아마포 상의로 몸의 물기를 닥는다. 그러고는 나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주는데, 그 와중에도 자기가 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56-57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도어서는 안 된다. 이곳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똑똑히 목격하기 이해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최소한 문명의 골격, 골조, 틀만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연히 비누가 없어도 얼굴을 씻고 윗도리로 몸을 말려야 한다. 우리가 신발을 검게 칠해야 하는 것은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한 존중과 청결함 때문이다. 우리는 나막신을 질질 끌지 말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걸어야 한다. 그것은 프로이센의 규율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마음씨 좋은 사람 슈타인라우프가 나에게 말해준 것이다.  57-58


카베는 크랑켄바우, 즉 위무실의 약자다. ..

회복의 기미를 보이는 사람은 카베에서 치료를 받고, 병이 점점 심해지는 사람은 가스실로 보내진다.

이 모든 게 우리가 다행히 '경제적으로 유용한 유대인'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이다.  65


카베의 삶은 림보(<신곡>의 지옥을 구성하는 아홉 개의 원 중 가장 형벌이 가벼운 제1원을 말한다.)의 삶이다. 굶주림과 질병 본래의 아픔 말고는 불편함이 상대적으로 적다. 춤지도 않고 일도 안 한다. 심각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구타를 당하지도 않는다.  72


11시 30분에 오늘 죽은 어느 정도일지, 맛은 어떨지, 죽통의 윗부분 혹은 아랫부분 중 어느 것이 우리 차지가 될지 하는 판에 박은 질문들이 시작된다. 난 이런 질문들을 하지 않으려 애쓰지만 그래도 그 대답에 탐욕스럽게 귀를 기울이고 부엌에서 실려오는 연기에 코를 킁킁거리지 않을 수 없다.  103


삶의 의미에 대한 믿음은 인간의 모든 힘줄 속에 뿌리 박혀 있다. 이것이 인간 본질이 지닌 속성이다. 자유로운 인간들은 이러한 목적에 많은 이름을 부여하며 그 성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토론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문제는 훨씬 더 단순하다.

오늘 그리고 여기서 우리의 목표는 봄에 도달하는 것이다. 지금은 다른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이제 이런 목표 뒤에 다른 목표는 아무것도 없다.  106


인간의 본성에 따르면 슬픔과 아픔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겪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에서 전부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원근법에 따라 앞의 것이 크고 뒤의 것이 작다. 이것은 신의 섭리이며, 그래서 우리가 수용소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삶에서, 인간이 만족할 줄 모르는 존재라는 말을 그토록 자주 듣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인간이 애초에 완전한 행복의 상태를 누릴 수 없어서라기보다 불행의 상태가 지니는 복잡한 성질을 늘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없이, 차례대로 늘어선 그 불행의 이유들이 단 하나의 이름을, 가장 큰 이유의 이름을 갖게 된다. 그 이유가 힘을 잃어버릴 때까지 말이다. 그런데 그 때 우리는 그 뒤로 또 다른 이유가 등장하는 것을 본다. 비탄에 잠길 정도로 충격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뒤로 또 다른 이유들이 줄을 서 있다.  110-111


민간 관리국은 부나에서 도둑질하는 것을 벌주지만, SS는 오히려 허용하고 조장한다. SS가 엄금하는 수용소 안에서의 도둑질이 민간인들에게는 정상적인 교환 행위로 간주된다. 해프틀링들 간의 도둑질은 일반적으로 처벌을 받으며, 도둑과 피해자가 동일한 강도의 벌을 받는다. 나는 '선'과 '악', '옳음'과 '그름'이라는 단어가 수용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지 한번 생각해보라고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다.  130


우리는 명백하고 손쉬운 추론을 믿지 않는다. 모든 문명적 상부구조가 제거되면 인간의 행동은 기본적으로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우둔하다는 추론 말이다. 이러한 추론에 따르면, '해프틀링'은 거리낌이 없는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 생각에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결론은, 궁핌과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 앞에서 수많은 사회적 습관과 본능이 침묵에 빠진다는 것뿐이다.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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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는 <안네의 일기>, 빅토르 프랑클의 <밤과 안개>, 엘리 비젤의 3부작 <밤> <새벽> <낮>과 함께 나찌 독일이 저지른 만행의 진상을 전하는 증언 문학의 대표작으로서 지금도 널리 읽힌다.  22


1987년 4월 11일에 또리노의 레 움베르또(Re Umberto)거리에 있는 자택에서 자살했다.  23


67세의 쁘리모 레비는 아파트 4층 난간을 넘어 아래층의 홀로 몸을 던졌다.  27


생전의 쁘리모 레비와 면식이 있던 타께야마 씨는 "내가 아는 레비는 명랑하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를 지닌 쾌활한 인물로, 눈에는 지적 호기심이 넘치고, 언제나 농담을 즐겨 했다.(...) 그런 그가 돌연 자살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고 회고한다.(<지금이 아니면 언제>의 역자후기)

그 부분을 읽을 때, 내가 바로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한나 아렌트의 [우리 망명자들]이라는 글이었다. 그 글은 <파리아(pariah, 차별받는자를 뜻한다)로서의 유대인>이라는 평론집에 수록되어 있다.

'우리 중에는 낙관적인 이야기를 한참 나눈 후, 집으로 가서 가스를 틀어놓거나 마천루에서 뛰어내리는 기묘한 낙관주의자들이 있다. 우리가 선언한 쾌활함이 죽음을 곧바로 받아들일 듯한 위험스러움과 표리일체임을 그들은 증명하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생명이야말로 최고의 선이며 죽음이 최대의 공포라는 확신 아래서 자랐는데, 생명보다 지고한 이상을 발견하지 못한 채 죽음보다도 나쁜 테러의 목격자가 되고 희생자가 되었다.'

한나 아렌트가 이 글을 쓴 것은 1943년이었다.  28-29


아렌트는 여기에서 망명 유대인드의 '동화' 지향, '성공' 지향을 비판하고 하이네, 카프카에서 채플린에 이르는 "'의식적 파리아'의 입장을 선호한 유대인 소수파의 전통"을 상기할 것을 주장했다. '파리아'라는 아이덴티티에 입각하여 차별과 억압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모든 '파리아'의 해방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과 통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아렌트는 망명 유대인의 자살 충동을 분석하고, "(그들은) 싸우는 대신에 또는 어떻게 하면 저항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대신에, 친구나 친척의 죽음을 바라는 것에 익숙해져버렸다"고 진술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누군가 죽으면 이제야 그 사람이 완전히 어깨의 짐을 벗었구나 하고 쾌활하게 생각하"곤 한다. 결국에는 "자신도 얼마나마 어깨의 짐을 벗을 수 있길 원하게 되고, 그래서 실제로 자살하고 만다"는 것이다. "이 표면상의 쾌활함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항상 자신에 대한 절망감과 싸운다. 그리고 결국 일종의 자기 본위로 죽음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29-30


1943년 7월 10일 연합군이 씨칠리아(Sicilia)섬에 상륙하자 이딸리아의 정세는 크게 역전되었다. 7월 25일에 파시스트정권은 내부적으로 붕괴하여 무쏠리니는 실각하고 바돌리오정권이 새로 들어섰다. 바돌리오정권은 독일과 관계를 끊고 연합국과 단독강화의 길을 찾아, 9월 3일 드디어 연합군과 비밀리에 휴전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9월 8일에 그것이 공표되자 독일군은 곧바로 북이딸리아를 점령해 감금되었던 무쏠리니를 구출하고, 그를 옹립하여 가르다(Garda)호반(湖畔 호수호 두둑반)의 쌀로(Salo)를 보넉지로, 흔히 '쌀로공화국'이라 불리는 '이딸리아사회공화국'을 수립했다...

그때부터 반파시즘 운동은 독일 점령군과 그들을 돕는 파시스트에 대항하는 무장투쟁의 시기로 접어든다.  35


1943년 12월 13일 쁘리모 레비는 스파이에게 속아 산중의 외딴집에 갇힘으로써 어이없이 체포되고 말았다. 부대에 참가한 지 불과 몇 주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38


즉결로 총살된 많은 빨치산과는 다르게, 유대인인 그는 다음 해인 1944년 2월 이딸리아의 포쏠리 디 까르삐(Fossoli di Carpi) 중계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죽음보다도 나쁜 테러의 목격자"가 되었다.  39


쁘리모 레비는 1919년 7월 31일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기사(技師 재주기 스승사)였다. 지적인 중산계급 가정에서 자란 레비는 지역의 명문 마씨모 다젤리오(Massimo D'Azeglio) 고등학교를 나온 후 역시 같은 지역의 또리노대학에 들어가 화학을 전공했다. 무쏠리니의 파시스트당이 정권을 쥔 때가 1922년임을 생각하면, 그는 소년기를 전부 파시스트체제 아래서 보낸 것이다.

''아리아인'이든지 유대인이든지, 나 혹은 우리 세대의 전반에는, 파시즘에 저항해야 하며 또 그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아직 확실하게 의식화되지 않았다.'<주기율>  50-51


레비는 대학의 화학과를 함께 다니던 친구 싼드로 델마스뜨로(Sandro Delmastro)에게 열띤 목소리로 말했다. 

'물질에 대항해 이긴다는 것은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며, 물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주와 우리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때문에 그때 피나는 노력으로 구명하던 멘젤레예프의 주기율이야말로 한 편의 시였으며, 고등학교 시절 암기해온 어떤 시보다도 장중하고 소중했다. (...)

사물을 생각할 수 있는 인간에게 그 무엇도 생각하지 말고 그냥 믿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치욕이라고 생각되지 않는가? 모든 독단, 증명 없는 단언, 유무를 대답할 수 없는 명령에 혐오감을 느끼지 않는가?' ([철], <주기율>)

쁘리모 레비에게는 화학과 물리학이 파시즘에 대한 대항물이었다. 그것은 '명료하며 하나하나가 증명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60


열여섯 살 때 화학에 심취한 그가 친구와 함께 몰래 전기분해 실험을 하는 이야기가 <주기율>의 [수소]라는 단편에 그려져 있다. 어린 쁘리모는 "부푸는 꽃봉오리나 화강암 안에서 빛나는 운모 그리고 자기 자신의 손을 보고" 마음속으로 부르짖는다.

"이것도 밝혀내고 말 테다. 하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바와는 다른 방법으로 모든 걸 밝혀내고 말 테다. 지름길을 밝혀 낼 테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를 만들고 말 테다, 문을 비집어 열어 보이겠어."

'이해'에 대한 간절한 욕망, 그것은 소년 시절부터 변함없이 쁘리모 레비의 생애를 관통하고 있다. 과학정신은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한 무기였다. 그는 비합리적인 정신주의에 대한 경멸과 혐오감을 통해 파시즘에 의한 부식으로부터 자신의 혼을 지켰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아우슈비츠라는 이해할 수 없는 역(逆 거스를 역)유토피아의 세계에 던져졌을 때, 역유토피아를 지상에서 실현한 '독일인'을 '이해'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져갔다.  61


쁘리모 레비의 선조는 1492년 대추방으로 인해 에스빠냐에서 쫓겨난 유대인이며, 남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을 거쳐 1500년경에 삐에몬떼 지방으로 왔다. 그들은 또리노에서 거부당해 삐에몬떼 지방 남부의 농업지대에 정착하며 견직 기술을 도입했지만, "최전성기에도 대단히 수가 적어, 소수파의 상태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73


쁘리모 레비는 또리노를 '진정한 고향'이라고 했는데, 실은 그가 태어난 1919년은 그의 선조 유대교도들이 또리노에서 살도록 허락되고부터 불과 70년 정도밖에 흐르지 않은 싯점이었다. '고향'은 오랜 기간 그들을 계속 거부해왔던 것이다.  74


무쏠리니의 파시스트정권도 당초는 유대인 배격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독일에서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이딸리아에는 망명 유대인이 유입되었고, 독일에서 압력이 강하게 들어왔다. 무쏠리니 측에서도 독일과의 동맹관계를 강화할 방침을 정했고, 1937년 11월에 일본, 독일, 이딸리아는 삼국 방공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1938년 9월에 파시스트 정권은 인종법을 제정하여 일련의 반유대 조치를 선포했다.

이 싯점에 이딸리아에는 전인구의 0.1% 전후에 해당하는 약 5만 7천 명의 유대인이 살았다. 그 가운데 약 1만명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망명한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도시에 살았으며, 1만 3700명이 살았던 로마를 필두로 밀라노, 뜨리에스떼에 이어서 쁘리모 레비의 고향인 또리노에는 네번째로 많은 3700명의 유대인이 살았다.  81-82


1939년 6월에 공포된 정부령에 따라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유대인은 유대인 고객과 환자만을 상대해야 했다. 또 유대인과 이딸리아인의 결혼을 금지하고, 유대인이 재산 소유, 특히 농지 소유를 제한했다. 1919년 이후에 국적을 취득한 귀화 유대인(쁘리모 레비의 일가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의 국적을 박탈하고, 외국 국적의 유대인과 귀화 유대인에게 1939년 3월까지 재산을 포기하고 이딸리아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 결과 1941년 말까지 7천 명의 사람들이 해외로 이주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귀화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이딸리아에서 반유대정책은 불완전하게 실시되었을 뿐이다. 법령은 외견상 독일에서 실시되던 것과 동일할 정도로 철저했는데, 이딸리아 정부는 그 법령을 철저하게 시행할 수 없었다. 실제 이딸리아에서는 유대교도와 기독교도의 '혼합물(混合婚 섞일혼 합할합 혼인할혼)' 비율이 높았고, 상당히 많은 유대인이 군의 장교나 고급관료, 고위정치가 같은 직책에 있었다. 이렇게 유대인이 이딸리아 사회로 통합되었기 때문에 유대인 박해는 심리적으로도 행정적으로도 곤란한 측면까지 있었다.(<절멸>)  82-83


쁘리모 레비는 자신을 유대인이라기보다 이딸리아인이라고 느꼈을 것이며, 그보다 이성에만 복종하는 '인간'의 일원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보편성 앞에서는 '유대인'인 것이 '주근깨'정도의 차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대학에 입학한 이듬해에 인종법이 공포되자, 기독교도인 학우와 교수는 대부분 쁘리모 레비에게서 멀어져갔다.  84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남서부의 고도(古都 옛고 도읍도) 크라쿠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이다. 본래 지명은 오시비엥침이지만 나찌 독일이 점령한 후 그와 같은 독일식 지명으로 개칭했다.  93


'아우슈비츠'라는 말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이 마을과 그 주변 지역에 위치한 45개 강제수용소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아우슈비츠'는 수인의 수용, 노역, 절멸과 같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 세 단계에 모두 대응할 수 있는 거대한 수용소복합체였다. ..

1942년 7월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이 이송되기 시작해, 종전까지 폴란드에서 30만 명을 비롯해서 네덜란드에서 6만 명, 프랑스에서 6만 9천 명, 헝가리에서 43만 8천 명 등 다수의 유대인이 이송 수감되었다. 그중 이딸리아에서 이송된 7500명은 이들 중에서도 '소수파'였다.

아우슈비츠에서 학살된 희생자 수는 110만 명 내지 150만 명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그중 90%는 유대인이었다.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될 때, 1백만 벌 이상의 의복, 7톤의 모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구두와 안경이 발견되었다. 그 싯점에 살아남은 수인은 6만 5천여 명, 그 대부분은 철수하는 나찌에 의해서 '죽음의 행진'에 연행되어갔기 때문에 해방된 수인은 약 7천 명에 불과 했다. 쁘리모 레비는 이 행운의 7천 명 중 한 사람이었다.  96-97


유대인 희생자의 총수는 6백만 명이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97


도시 안의 폐쇄된 좁은 지역에 유대인을 몰아넣는 '게토화'정책. ..

바르샤바에서는 1940년 10월 12일에 게토 설치를 명하는 법령이 공포되었다. 게토는 십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벽으로 외계와 완전히 격리되었고, 그로 인해 유대인과 비유대인의 접촉은 단절되었다. 바르샤바 전역의 2.4%밖에 안되는 좁은 지역에 시 전체 인구의 30%에 해당하는 4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갇혔다.

주거 환경은 콩나물시루 속과 같아서 4인 기준의 방에 보통 10명에서 15명이 생활했다. 게토에 공급되는 식료품은 심하게 제한되었기 때문에 수인들은 기아에 시달렸으며 열악한 위생 상태와 함께 발진티푸스 등의 전염병으로 하나둘 죽어갔다. 사체는 매장할 인력이 없어 며칠이나 도로에 방치되었다.  99


나찌 친위대(SS) 경제관리본부 본부장 오스발트 폴은 1942년 4월 30일 정부령에서 강제수용소에서의 노동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역(使役 부릴사 부릴역)이란 최고의 생산 상태를 얻기 위해서 말뜻 그대로 '소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해 9월 14일 법무장관 티라크가 괴벨스와 회담할 때 이 '소모'라는 말에 주석을 달아 "노동을 통한 절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반제 회의의 서기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의 증언에 따르면, 회의에서 '문제 해결의 여러 형태', 즉 여러 살해 방법이 솔직하게 토의되었고, 참가자들에게 "진심 어린 동의" 이상의 것을 얻어냈다. 회의는 한 시간 반 이상 걸리지 않았고, 그후에는 음식이 나와서 그들 모두는 점심 식사를 했다. "기분 좋고 조촐한 사교적 모임"이었다.

'아이히만에게 이 회의가 잊힐 수 없는 데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는 최종적 해결에 협력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이런 피비린내 나는 폭력에 의한 해결'에는 다소 마음속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 의문이 지금 풀린 것이다. "지금 이 반제 회의에서 당시 가장 높은 자리의 사람들이, 제3국의 법왕들이 발언했던 것이다." 히틀러, 하이드리히와 '스핑크스' 뮐러, SS나 당뿐만 아니라, 전통을 자랑하던 국가관료 엘리뜨들까지도 이 '피비린내 나는' 문제에서 서로 선두에 서려고 경쟁하는 것을 그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빌라도가 맛본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에게는 전혀 죄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01-102


영화 <쇼아>에도 등장하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필립 뮐러(Filip Muller)는 특별작업반으로서 사체 처리작업에 종사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가스실에서의 살육 모습은 다음과 같다. 

가장 먼저 몇 알의 치클론 B가 가스실 바닥에서 승화하면, 희생자들은 절규하기 시작했다. 빠르게 올라오는 독가스를 피해 도망치려고 힘센 사람은 약한 사람을 때려눕히고, 좀더 살겠노라고 아직 독가스에 오염되지 않은 공기를 찾아서 쓰러진 사람들 위로 올라섰다.

15분 내에 가스실 안의 전원이 사망했다.

약 30분 후에는 문이 다시 열렸다. 사체는 탑처럼 층층이 쌓여 있었고, 앉은 채로 죽은 자나 엉거주춤한 자세로 죽은 자도 있었다. 밑에는 아이나 노인의 사체가 있었다. 사체에는 녹색 반점이 있었고, 피부는 핑크빛으로 변해 있었다. 입에 거품을 문 사체나 코피를 흘리는 사체도 있었다. 대소변 배설물로 뒤범벅이 된 사체도 있었고, 임신중이 ㄴ여성 중에서는 출산이 시작된 경우도 있었다.

유대인으로 구성된 특별잡업반이 가스마스크를 착용하고 통로를 만들기 위해 문 근처의 사체를 잡아 끌어낸 후, 사체에 호스로 물을 뿌려, 사체 사이에 남은 독가스를 씻어냈다. 특별작업반은 그런 위에서 비로소 사체를 옮겼다. 

모든 수용소에서 사체의 구멍이란 구멍을 수색해 귀중품을 숨겼는지 확인했고, 죽은 자의 입에서 금니를 뽑았다.  105-106


약 9백만 명의 유럽 유대인 중 3분의 2가 살해되었다. 특히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유대인 주민의 9할이 살해되었다. 

특정한 인간 집단에 대한 이 특이하고 철저한 절멸정책은 오늘날 주로 '홀로코스트'라 불린다. 그 어원은 구약성서에 기술된 "구워서 신전(神殿 귀신신 대궐전)에 바치는 희생양"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라고 한다. 또한 최근에는 '대파괴, 파멸'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쇼아'가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107


레비의 팔에 새겨진 번호는 174517 이었다.

"수인번호에는 유럽 유대인의 말살 과정이 요약되어 있다." 10000부터 80000까지의 수인은 폴란드의 게토에서 몇 안되는 생존자였고, 119000부터 117000은 그리스의 쌀로니까(Salonica) 출신자였던 것이다. 이딸리아 유대인은 174000번대의 번호를 받았다.  117


인간이 어떻게 이토록 잔혹할 수 있을까?

인간은 왜 그리고 어떻게 이같은 잔혹함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을까?  137


'아우슈비츠'가 비교 불가능한 '유일무비(唯一無比 오직유 한일 없을무 견줄비)'의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우슈비츠'는 '비교 가능'한 사건이다. 비교 후에 도출된 대답은 그것이 과거 인간 또는 인간사회의 제도가 보여줄 수 있었던 냉혹함과 잔인함의 극한적 실례라는 것이다.  138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따라서 내일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얼굴을 씻고 이를 닦는다. 자기 자신에게 규율과 질서를 부과하고 자기 생활의 주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은 짐승과 다르다. 때문에 노예보다 못한 신분으로 추락하더라도 '덕과 지'를 구하는 것이다. 단떼를 상기하고, 오디쎄우스처럼 끝없는 고난의 항해를 이겨내려고 하는 것이다. 언젠가 다시금 지옥에서 인간세상으로 생환하여 증언하기 위해서.  155


장 아메리(Jean Amery)의 본명은 한스 마이어(Hans Mayer)라고 한다.  157


벨기에에서 추방된 유대인 2만 5437명 가운데 약 2만 3천 명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었다. 아메리는 불과 615명의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전후에는 오스트리아 국적을 회복했지만, 브뤼쎌에 계속 거주하며 저술가가 되었다. 본명인 마이어(Mayer)의 철자를 바꿔서 아메리(Amery)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1955년부터다. 1976년에 <자신에게 손을 내밀며 - 자살에 대해서>를 간행하고 그 2년 뒤인 1978년 10월 16일 잘츠부르크의 한 호텔에서 수면제를 먹고 자살했다. ...

쁘리모 레비에게 아메리의 자살은 틀림없이 대단히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159


아메리는 말한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제 수용소에 없다. 오히려 어떻게 죽을까 생각한다. 가스실에서 독가스의 효과가 나타나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해서 논쟁하거나, 페놀 주사에 의한 죽음의 고통을 추측하여 서로 대화하거나 하는 등.  161


1944년 크리스마스도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쁘리모 레비가 있던 모노비츠 수용소의 수인들은 점호를 받기 위해 광장에 정렬했다. 

투광기의 빛과 나무틀 교수대, 그런 도구들과 잔인한 의식은 그들에게 이미 낯설지 않았다. 쁘리모 레비는 그때까지 열세 차례나 교수형 장면을 목격했다. 예전에는 교수형이 보통 사소한 범죄나 주방에서의 절도, 태업, 탈주 등에 대한 징벌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공개 처형의 희생자는 비르케나우의 소각로를 파괴한 반란 집단의 일원이었다. 이 반란은 가스실에서 사체 처리를 강요받았던 유대인 특별작업반 340명이 감행한 것이었다. 머지않아 자신들도 처분될 거라 확신한 그들은 몇 개월 동안 준비해 경기관총 한 정, 권총 몇 정, 수제 폭탄, 톱, 도끼, 쇠지렛대, 호미 등을 가지고 1944년 10월 7일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제4소각로에 방화하고, 제2소각로의 설비를 파괴한 후 철조망을 절단하여 도주를 기도했다. 그러나 반란은 나찌 친위대의 공격을 받고 250명의 희생자를 내면서 결국 실패했다. 그날 밤, 또다시 2백 명의 유대인이 사살되었다. 친위대 쪽 희새자는 세 명이었다. 이 사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역사에서 유일한 무장 저항이었다.(<절멸>)  175-176


우리 생존자들은 진정한 증인이 아니다. .. 우리는 극히 적을 뿐만 아니라 이례적인 소수자이기도 하다. 우리는 눈속임이나 요령 혹은 행운에 의해서 심연의 바닥까지 가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다.(<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178


츠베땅 토도로프는 쁘리모 레비가 시달리던 수치의 감각을 '기억으로서의 수치' '살아남은 자의 수치' '인간이라는 수치'등 3단계에 걸쳐 분석한다. ...

저항의 의지조차도 전면적으로 파괴된 굴욕의 기억, 자신은 '카인'이라는 자기 고발. 증인으로 자신이 적격한지를 둘러싼 의혹(하지만 궁극적으로 '진정한 증인'은 죽은 자이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 자기 자신도 인간이라는, 수치심을 느껴야 할 종족의 일원이라는 생각... 이렇게 몇 겹으로 쌓인 수치의 감각이 자신의 몸을 갉아먹어가자 쁘리모 레비는 자신의 몸을 '심연의 바닥'에 내던진 것일까?  178-179


왜 아우슈비츠의 생존자가 '인간이라는 수치'에 시달려야 했을까? 수치스러움을 모르는 가해자의 수치까지도 피해자가 고스란히 받아서 시달려야 하는, 이 부조리한 전도가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 ...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에 희생된 까닭에, 그 사상을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사상으로 대치해야 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이다. '독일인'도 물론 '인간'에서 예외는 아니다. 한번 파괴된 '인간'이라는  척도를 재건하려고 하는 한, '인간'이 저지른 죄는 어김없이 그들 자신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다.  181-182


싸르트르의 이런 말이 떠올랐다. 알제리 해방전쟁중에 프랑스군이 알제리에서 자행한 고문이나 잔학 행위를 고발한 글의 한 부분인데,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적을지도 모른다.

'언제 어디서라도 그리고 어떤 안전책을 두더라도 모든 국민이, 인류 전체가 비인간적인 것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면, 실제 우리가 왜 인간이 되기 위해서 혹은 계속해서 인간의 위치에 있기 위해서 크게 괴로워하는 걸까? 비인간적인 것이 바로 우리의 진실이 되는 것이다. (...)

음침하며 허위에 가득 찬 그런 생각들은 모두 '인간은 비인간'이라는 동일한 원리에서 나온다([하나의 승리] <상황들>)  184


바르똘로뮤 라스 까싸스가 쓴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서>.

그들은 누가 단칼에 몸을 정확히 두 동강 낼 수 있는지, 누가 일격에 머리를 잘라낼 수 있는지, 내장을 파열시킬 수 있는지 등의 내기를 했다. 그들은 어머니에게서 젖먹이 아이를 빼앗아 그 아이의 다리를 잡고서 바위에 머리를 내려치기도 했다. (...)

그리고 그들은 겨우 발이 땅에 닿을 정도의 커다란 교수대를 만들고, 다른 방법도 있으련만 자신들이 구세주와 12명의 사도를 받들기 위해서라며 항상 13명씩 교수대에 걸고 그 밑에 장작불을 지폈다. 이렇게 그들은 인디오들을 산 채로 구웠다. (...)

보통 그들은 인디오들의 영주나 귀족을 다음과 같은 수법으로 살해했다. 땅속에 박아둔 4개의 봉 위에 가느다랗고 긴 봉으로 만든 석쇠 같은 것을 얹어놓고, 거기에 그들을 매달아 그 밑에서 약한 불을 지폈다. 그러면 영주들은 그 잔학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절망하다가 서서히 죽어갔다. (...)

기독교도들은 마치 미친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인류를 파멸로 내모는 사람들이었으며 인류 최대의 적이었다. 비인도적이고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도망쳐 살아남ㅇㄴ 인디오들은 모두 산속으로 숨거나 다른 방법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그러자 기독교도들은 그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사냥개를 사납게 훈련했다. 사냥개는 인디오를 한 명이라도 발견하면 순간적으로 그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들'이란 말할 것도 없이 에스빠냐 정복자를 가리킨다.

신대륙으로 건너간 에스빠냐 사람들은 원주민에게 공조(貢租 바칠공 구실조)를 요구하고, 그것이 부족하면 강제노동을 부과했다.  185-186


에스빠냐인은 기독교화라는 미명 아래 아스께까왕국이나 잉까제국을 정복한 후 원주민을 혹사하고 학살했다. ..

라스 까싸스는 1541년 국왕을 알현하고 자신의 견문에 기초한 보고서를 제출하여 정복 중지를 호소했다. 그 보고서를 훗날 가필하여 발간한 것이 바로 <인디언 파괴에 관한 간결한 보고서>다. 

라스 까싸스는 이 <보고서>에서 신대륙 도착 이후 40년 동안 1200만 명 내지 1500만 명의 원주민이 희생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지금 그 희생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미증유의 제노싸이드(대학살)였음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 또한 기독교화되지 않은 원주민은 인간 이하라는 사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186-187


대서양을 넘어 신대륙으로 '이송'된 아프리카인의 수는 1200만 내지는 2천만 명이라고 하지만, 이 숫자도 지금은 확정 불가능하다. 더구나 거기에는 노예사냥 도중에 죽은 사람이나 항해주엥 죽어서 바다에 버려진 사람들의 수는 포함되지 않았다(<신서 아프리카사>)  189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는 '일부 인간은 인간 이해'라고 하는 사상, '인간은 비인간이다'라는 원리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그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한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192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그는 이딸리아인 수인이나 포로 들과 함께 전쟁 말기의 오랜 혼란기 내내 폴란드와 소련의 영토 내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리고 거의 8개월 후에야 비로소 특별열차로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그리고 독일 영토를 거쳐 이딸리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귀환까지의 혼돈과 권태의 시간, 그 부조리하며 축제 갇기도한 나날을 그린 작품이 쁘리모 레비의 두번재 작품 <휴전>이다.  198


<주기율>의 [바나듐]이라는 단편에 ..

레비가 부나에서 실험실에 배치되었을 때, 거기에 출입하던 민간인 주에 뮐러 박사라는 인물이 있었다. ..

뮐러는 착하고 소심하며 정직하면서도 무기력했다. 대다수 독일인과 마찬가지로 당시 자신의 무관심이나 무기력을 무의식 속에서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나찌의 범죄에 가담하거나 그것의 수혜를 받은 인물이 희생자에게 무거운 말투로 '원수에 대한 사랑'이나 '인간에 대한 신뢰'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의 천박함, 아니 불쾌감 ..게다가 그가 완고한 나찌였다면 이야기는 간단했을 테지만, 그는 당혹스럽게도 '과거의 극복'을 바란다고 말한다.

'일단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준비는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개전의 태도를 확실히 보일 때, 즉 원수임을 포기할 때 가능하다고 밝혔다. 반대의 경우, 계속 원수로 존재하며 고통을 만들어내겠다고 고집할 경우에는 물론 용서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을 옳은 방향으로 고치려고 노력하고, 그 사람과 토론하는 것은 가능하지만(그래야 한다!), 그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 현실에서는 무장 집단이 존재했고, 아우슈비츠를 만들었으며, 정직하고 무기력한 사람들은 그것을 위한 정지(整地 가지런할정 땅지)작업을 했다. 그 때문에 아우슈비츠에 대해서 바로 모든 독일인에 그리고 인류 전체에 책임이 있으며, 아우슈비츠 이후 무기력한 것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레비가 뮐러의 만나자는 요청에 답하기 위해서 쓴 편지의 초안이다....

결국 이 편지를 우체통에 넣지는 못한다. 뮐러에게서 뜻하지 않게 전화가 걸려 와 만날 약속을 했는데, 그러자마자 그가 병사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세계는 여전히 단절된 그대로였다. 그뿐만 아니라 단절은 점차 절망적인 것이 되었다. 저편과 이편은 '사랑'이나 '인간'이라는 말의 의미조차 서로 통하지 않은 것이다.  200-206


나도 뮐러와 같은 일본인을 자주 만난 적 있다.

일본에는 예전부터 그때는 '시대'가 좋지 않았고 '전쟁'은 그런 것이며, 일부의 '광신적 군인'이 폭주한 것이지 국민도 천황도 이 '사실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조선의 식민지 지배에 관해서는 일본이 아니었으면 러시아가 그렇게 했을 것이라며, 결과는 불행했지만 일본은 뒤처진 조선인을 일본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 했고, 그 '선의'는 인정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편다. 하지만 나의 '뮐러'는 이 타입이 아니다.

나의 '뮐러'도 또한 내게 "왜 그렇게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라며 일견 성실한 듯 보이는 둔감함으로 묻곤 한다. 혹은 "왜 그러헥 화난 겁니까?"라든가 "왜 슬퍼하는 겁니까?"라든가... 그들은 자기 자신도 그 불안과 분노 그리고 슬픔의 원인과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지도 않는다.

그들은 대개 자신을 휴머니스트이며 평화 애호가라고 굳게 믿고 있다. 서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면, 한국에 여행한 적이 있다는 둥 친한 친구 중 '재일(조선인)'이 있다는 둥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은 자신을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둥 자신은 '재일일본인'이라는 둥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다도 좀 있으면 '도대체 언제까지 사회하면 되는 걸까요?'라는 흔한 질문을 슬쩍 던져본다. 그리고 이쪽이 무언가 말하려 하기 전에 지금은 '국제화' 시대이기 때문에 서로 '미래지향적'으로 '공생'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며 공소(空疎 빌공 트일소)한 키워드를 늘어놓는다. 

'뮐러와 같은 일본인'이라고 했지만 재일조선인 중에소 '뮐러'는 있다. 이 '뮐러'들은 한목소리로 '공생'을 위해서는 서로 '원한(ressentiment)'을 버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혼화한 어조로 그렇게 말함으로써 그들은 미리 자신들을 '원한'등과 같은 비생산적인 감정을 초월한 이성의 높은 위치에 두고, 어느새 이쪽의 위치에 저급한, 보복 감정을 지닌, 비이성적인 사람들이라는 레테르를 붙인다. 나는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원한'을 품는 이유를 얼마든지 댈 수 있지만, 그와 반대의 경우는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서로'라는 말이 어쩐지 수상쩍기만 하다. 이와 같이 그들은 실제 '증오'의 원인이 된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개선하려고 하기는 커녕 가해자의 책임을 모호하게 만들고, 상처를 치유할 수 없는 피해자에게 은근한 어조로 과거를 잊어버리라고 강요한다.  206-208


'죄'는 법적 개념이며, "엄밀한 의미에서 개인과 관련된다." 그와 다르게 정치 공동체의 성원이라면 누구나 짊어져야 할, 정치적 의미에서의 '집단적 책임'이 있다. 바꿔 말하면 '독일인'이라는 집단 중에서 '죄'를 지은 개인은 있지만 '독일인' 전체에 '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인 전체의 죄'라는 생각은 오히려 죄를 지은 개인을 은닉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독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독일이라는 정치 공동체의 행위에 '집단적 책임'이 있는 것이다.  212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의 권말에 젊은 독자와의 문답이 실려 있다. 거기에서 "독일인은 몰랐나요?"라는 물음에 레비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

'대다수 독일인은 알지 못했다.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았고 무지의 상태로 있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가가 행사하는 테러리즘은 분명 저항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무기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독일 국민이 전혀 저항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 일반 독일 시민은 무지한 채 안주하고, 그 위에 껍질을 씌웠다. 나찌즘에 동의한 것에 대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무지를 이용한 것이다. 눈, 귀, 입을 모두 닫고 눈앞에서 무엇이 일어나든지 상관하진 않았다. 때문에 자신은 공범이 아니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다...'  220-221


그는 '독일인'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지 20년 이상이 지나 유령처럼 나타난 뮐러, 정직하고 무기력한 평균적인 독일인인 그는 '과거의 극복'을 말하는 한편, I.G. 파르벤을 변호하고 유대인이 학살된 사실은 "몰랐다"고 한다. 부나에 있으 ㄹ때조차 유대인인 레비에게 "왜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느냐?"고 물은 인물이었다. 말살의 위협에 노출된 강제수용소의 수인이 매일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측의 사람에게 자신이 왜 불안한지 설명하기를 요구받은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그런 부조리를 전혀 "모른다"고 한다. 그런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227


쁘리모 레비는 생존자들이 두 부류로 나눠진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잊고자 애쓰면서도 강제수용소의 "악몽에 시달리며 양심의 가책을 받고 있는 사람들" 혹은 "제대로 잊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무(無)에서부터 다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편 두번재 부류의 생존자들은 "기억해내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하며, "그들은 잊으려고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사회가 망각해가는 것을 경계한다." 물론 레비는 자신을 두번째 부류로 규정했다. 그는 "판사보다 증인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이 보고 견뎌 이겨낸 것을 증거로 가지고 돌아오는" 일이 자신의 '의무'였다고 거듭 밝히고 있다.(<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다>)  242


수용소에서 쁘리모 레비를 매일 밤 고통스럽게 한 악몽은 현실이 되었다. '이편'으로 살아 돌아와보니 사람들은 오디쎄우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옥은 이미 종교적인 신념이나 몽상이 아니라, 집과 돌 그리고 나무처럼 현실적인 것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누구 하나 그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파리아로서의 유대인>)  244-245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계는 '인간'이라는 이념이 보편적으로 공유된 단순 명쾌한 세계가 아니다. 단절되고 금이간 세계다. 여기에서 '인간'이라는 말은 단절을 숨기는 미사여구일 뿐이다. 그렇더라도 단절 속에서 온몸으로 떨쳐 일어난 증인들이 '인간'의 재건을 위해서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이편'의 사람들은 보신이나 자기애 때문에, 천박함과 나약함 때문에, 상상력의 빈곤함과 공감대의 결여 때문에 증인들의 모습을 바로 보지 않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는다.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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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난 삶의 가느다란 실오라기를 엮어 하나의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바로 프랭클 박사가 독창적으로 고안해낸 '실존적 분석' 즉 '로고테라피'의 목표이자 과제이다.  15-16


오늘날 유럽은 프로이트의 정신의학에서 크게 방향을 전환해 실존적 분석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거부하지 않고, 그의 업적 위에 기꺼이 그 자신의 것을 쌓아올리는 것. 자기의 것과는 다른 형태의 실존적 치료법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논쟁하지 않고, 그들과 유대를 맺으며 공동보조를 해나가는 것. 이런 관대함이 프랭클 이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17






1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



감시하는 병사들보다도, 나치 대원들보다도 카포들이 수감자들에게 더 가혹하고 악질적인 겨우가 많았다. 물론 카포들은 수감자 중에서 뽑았다. ...

일단 카포가 되면 그들은 금세 나치대원이나 감시병들을 닮아갔다.  26


일정한 수의 수감자를 다른 수용소로 이동시킨다고 공식적인 발표가 났을 경우를 살펴보자. 그러면 사람들은 그 최종 목적지가 당연히 가스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감자 중에 병에 걸렸거나 쇠약해서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뽑아 가스실과 화장터가 있는 큰 수용소로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 해당자를 가리는 과정이 곧 개별적인 수감자들 사이에, 혹은 수감자 집단 사이에 벌어지는 무차별적인 싸움의 도화선이 된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희생자 명단에서 자기 자신의 이름이나 친구의 이름을 지우는 것이다. 한 사람을 구하려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27


이 수용소에서 저 수용소로 몇 년 동안 끌려다니다 보면 결국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양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마련이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잔혹한 폭력과 도둑질은 물론 심지어는 친구까지도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29


나는 수용소에서 마지막 몇 주를 제외하고는 정신의학자 노릇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의사 노릇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다.  31


나는 119104번 이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철로에서 땅을 파고 선로를 부설하는 일로 보냈다.  32


수용소 생활에 대한 수감자의 심리적 반응이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번째 단계는 수용소에 들어온 직후이며, 두번째 단계는 틀에 박힌 수용소의 일과에 적응했을 무렵, 그리고 세번째 단계는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후이다.

첫번째 단계의 특징적인 징후는 충격이다. 어떤 경우에는 수용소로 들어가기도 전에 경험하기도 한다.  33


정신의학에 보면 소위 

집행유예 망상(delusion of reprieve)'이라는 것이 있다.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갖는 것이다.  36


수용소에서 자살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객관적으로 계산을 하고, 모든 기회를 감안해 보아도 보통 수감자들이 살아나갈 가능성이 아주 희박했기 때문이다. 아무런 보장도 없이 자기가 수많은 선별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해 살아남는 극소수의 사람 중에서 하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다.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첫번째 단계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면 가스실 조차도 더 이상 두렵지 않게 된다.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  48-49


자기 '구역'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규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몇 주 먼저 이곳에 들어온 동료 한 사람이 몰래 내 막사로 숨어 들어왔다. .. 

그는 익살스러우면서도 저돌적인 말투로 우리에게 몇 가지 정보를 알려 주었다... 

"가능하면 매일 같이 면도를 하게. 유리 조각으로 면도를 해야 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지막 남은 빵을 포기해야 하더라도 말일세. 그러면 더 젊어 보일 거야. 뺨을 문지르는 것도 혈색이 좋아 보이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 자네들이 살아남기를 바란다면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어. 일할 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

그러니까 늘 면도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그러면 더 이상 가스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49-50


레싱이 이런 말을 햇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다."  51


두번째 단계는 상대적인 무감각의 단계로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감정과는 별도로 수용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며, 그 고통을 약하게 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무엇보다 먼저 찾아오는 것은 집과 가족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너무나 간절해서 그리워하는데 자기 자신을 완전히 소진시키고 말 정도가 된다.

그런 다음에는 혐오감이 찾아온다. 자기를 둘러싸고 잇는 모든 것에 대한 혐오감, 심지어 그저 생긴 모양에서도 혐오감을 느끼게 된다.  52


처음에 사람들은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줄지어 행진하며 단체기합을 받는 것을 보면 고개를 돌렸다. .. 며칠 혹은 몇 주가 지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

감정이 무뎌져서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단계가 된다.  53-54


두번째 단계의 주된 징후인 무감각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이 불확실하면 오로지 한 가지 과제에 모든 노력과 감정이 모아지게 된다. 즉 내 자신의 생명과 친구의 생명을 보존하겟다는 과제이다.  64


수용소 생활이 후반부에 이르렀을 때에는 하루에 한 번밖에 빵이 배급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빵을 어떻게 먹을까 하는 문제를 가지고 끝도 없이 논쟁을 벌였다. 생각은 두 편으로 나뉘었다. 그 중 한 편은 그 자리에서 빵을 다 먹어치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비록 잠깐 동안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극심한 굶주림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도둑맞거나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면에 다른 한 편은 배급받은 빵을 나누어서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편 중에서 나는 결국 후자에 들기로 했다.  69


어느 날 아침에는 평소 꽤 용감하고 의연한 것으로 알려진 한 친구가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우는 것을 보았다. 신발이 그가 신기에는 너무 작아 할 수 없이 맨발로 눈 위를 걸어 작업장까지 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료가 슬퍼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나는 다른 신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작은 빵 조각을 꺼내서 그것을 게걸스럽게 먹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70


우리는 어둠 속에서 큰 돌멩이를 넘고 커다란 웅덩이에 빠지면서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었다. 호송하던 감시병들은 계속 고함을 지르면서 총의 개머리판으로 우리를 위협했다. 다리가 아픈 사람은 옆 사람의 팔에 의지해서 걸었다. 한 마디도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얼음같이 차가운 바람 때문에 누구든 입을 열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높이 세운 옷깃으로 입을 감싸고 있던 옆의 남자가 갑자기 이렇게 속삭였다. 

"만약 마누라들이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는 꼴을 본다면 어떨까요? 제발이지 마누라들이 수용소에 잘 있으면서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일을 몰랐으면 좋겠소."

그 말을 듣자 아내 생각이 났다. 빙판에 미끄러져 넘어지고, 수없이 서로를 부축하고,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일으켜 세우면서 몇 마일을 비틀거리며 걷는 동안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었다. 모두가 지금 아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76-77


그때 한가지 생각이 내 머리를 관통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그렇게 많은 시인들이 자기 시를 통해서 노래하고, 그렇게 많은 사상가들이 최고의 지혜라고 외쳤던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그 진리란 바로 사랑이야말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이고 가장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그것이 비록  아주 짧은 순간이라고 해도)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단적으로 소외된 상황에서 자기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천사들은 한없는 영광 속에서 영원한 묵상에 잠겨 있나니.'  77-78


나는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랐다.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수용소에는 오는 편지도 가는 편지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내 사랑의 굳건함, 내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때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나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내의 모습을 떠올리는 일에 내 자신을 바쳤을 것이다. 나와 그녀가 나누는 정신적 대화 역시 아주 생생하고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한 것이라고."  79-80


외부 사람들 중에는 강제수용소에 예술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술뿐만 아니라 유머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더욱 더 놀랄 것이다. 비록 그 흔적이 아주 희미하고, 몇 초 혹은 몇 분 동안만 지속되지만, 유머는 자기 보존을 위한 투쟁에 필요한 또 다른 무기였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유머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능력과 초연함을 가져다 준다.  86-87


유머 감각을 키우고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보기 위한 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면서 터득한 하나의 요령이다. 고통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수용소에서도 이런 삶의 기술을 실행하는 것이 가능하다.  88


이 말은 곧 아주 사소한 일이 큰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그 예로 아우슈비츠에서 다카우에 있는 한 수용소로 갈 때 체험했던 일을 얘기해 보겠다...

우리가 비교적 작은 규모(수용인원이 2,500명밖에 안 되었다)의 이 수용소에 도착했을 때, 나이 많은 살마으로부터 드은 첫번째 주요 뉴스는 그곳에는 살인용 오븐도, 화장터도, 가스실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곧 몰골이 '회교도'로 변한 사람도 곧바로 가스실로 갈 염려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아우슈비츠로 돌려 보내기 위한 '환자수송차'가 올 때까지는 적어도 안전하다는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이 우리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아우슈비츠에 있던 우리 고참 관리인이 소망하던 것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아우슈비츠와는 달리 '굴뚝'이 없는 그 수용소로 가능한한 빨리 뛰어 들어갔다. 그 후 몇 시간 동안을 아주 힘들게 보내야 했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웃으면서 연신 농담을 주고받았다.

도착 후 인원점검을 하면서 한 사람이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우리는 없어진 사람을 찾을 때까지 몇 시간 동안 차가운 바람과 비를 맞으며 밖에 서 있어야 했다. 그는 막사 안에서 발견되었다. 피곤에 지친 나머지 그만 잠에 곯아떨어진 것이다. 그 다음 점호는 기합 행렬로 바뀌었다. 오랜 여행의 긴장도 풀지 못한채 우리들은 밤을 꼬박 새우고 이튿날 아침 늦게까지 꽁꽁 언 채로 비를 맞으며 밖에 서 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했다. 이 수용소에는 굴뚝이 없고, 또 아우슈비츠는 여기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88-90


우리는 아주 작은 은총에도 고마워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를 잡는 시간을 준다는 것도 우리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물론 이를 잡는 일 자체는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를 잡기 위해서는 천장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린 추운 막사에서 옷을 벗고 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를 잡는 도중에 공습경보가 울리지 않아 전등불이 나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고마워했다. 만약 이 시간에 이를 제대로 잡지못하면 하룻 밤의 절반을 꼬박 깨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 - 쇼펜하우어가 '시련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했던 - 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91-92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항상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끄는 강요된 공동생활을 하다 보면 때로는 잠시 동안만이라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 때가 이싿.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은 혼자 있게 되기를, 혼자서 사색에 잠길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했다. 그들은 자기만의 개인적인 공간, 혼자있는 고독을 열망했다. 그런데 소위 말하는 '요양소'로 옮긴 후, 나는 한번에 5분 정도 혼자 고독을 즐기는 흔치않은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98


수용소에서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가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지 이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

중요한 것은 오로지 번호 뿐이다. 오로지 죄수번호를 가지고 있을 때에만 그 사람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람은 글자 그대로 번호가 되었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 '번호'의 생명은 철저하게 무시된다. 그 번호의 이면에 있는 것, 즉 그의 삶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못 된다.  100-101


수용소에 살아남은 사람들, 여전히 일할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해야만 했다. 그들은 절대로 감상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이 전적으로 감시병들의 기분 - 운명의 노리개라고나 할까? - 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들 자신을 환경에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다.

아우슈비츠에 있을 때, 나는 내 자신을 위한 하나의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자 그 후 내 동료들도 모두 이 규칙에 따랐다. 나는 대체로 모든 종류의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을 하는 편이다. 하지만 딱 꼬집어서 질문을 받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다. 만약 누군가 내 나이를 물으면 나는 나이를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내 직업을 물었을 때는 다른 수식어를 붙이지 않고 그냥 '의사'라고만 대답했다.  102


환자 호송계획이 세워졌다...

그날 저녁 10시 15분 전에 평소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던 주치의가 다가오더니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당직실에 얘기를 잘 해두었소. 당신을 리스트에서 빼도록 했으니 10시까지 당직실로 가보시오."

나는 그에게 이것이 내 길이 아니라고, 나는 운명이 정해 놓은 길로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나는 내 친구들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의 눈이 연민의 빛을 띠었다. 마치 내 운명을 알고 있기나 하는 것처럼, 그는 말없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것은 삶을 위한 악수가 아니라, 삶과 작별하는 악수였다. 나는 천천히 걸어서 막사로 돌아왔다. 막사에는 친한 친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 정말로 그 사람들과 함께 가기를 원하나?"

그가 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다네. 나는 갈 거야."

그러자 그의 눈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그런 다음 할 일이 있었다. 유언을 하는 것이었다.

"잘 듣게, 오토.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네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 주게. 내가 매일같이 매시간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 세번째로 내가 그녀와함께 했던 그 짧은 결혼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오토. 자네는 지금 어디에 있나? 아직 살아있나? 우리가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 후 자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 자네 아내를 다시 만났나? 그리고 기억하나? 자네가 어린 아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에도 내가 자네에게 내 유언을 한마디 한마디 외우에 했던 것을.  104-105


이튿날 아침, 나는 호송자들과 함께 그것을 떠났다.

가스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요양소로 가는 것이었다.  105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나는 그 전의 수용소에 있던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자기가 수용소의 보안원으로 시체 더미에서 없어진 인육 조각을 어떻게 찾아냈는지를 나에게 말해 주었다. 요리 중인 냄비 안에서 찾아내 압수했다는것이다. 기아에 시달린 나머지 드디어 수용소 안에서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발생했던 모양이다. 내가 때맞추어 그 수용소를 잘 떠난 셈이다.  106


수용소에서의 체험을 통해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입증해 주는 예(이런 이야기는 종종 영웅적인 성격을 띠게 되는데) 즉 무감각 증세를 극복하고, 불안감을 제압한 경우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우리들은 수용소에도 막사를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거나 마지막 남은 빵을 나누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120


수면부족과 식량부족 그리고 다양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이 수감자를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말을 자주 머리 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는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121-122


수감자 중에서 아주 적은 사람만이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시련을 견딤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얻었다.  123


수감자들을 심리학적으로 관찰해 보면 내면세계가 간직하고 있는 도덕적, 정신적 자아가 무너지도록 내버려둔 사람이 결국 수용소의 타락한 권력의 희생자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26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130


평범하고 의욕 없는 사람들에게는 비스마르크의 이 말을 들려 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강제수용소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자기들에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 놓았더 ㄴ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 수도 있었다.  131


내가 실제로 경험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날 나는 거의 눈물을 흘릴 정도의 극심한 통증(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겼다)을 겪으며 긴 행렬에 끼어서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날은 추웠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우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나는 우리의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만약 특별배급으로 소시지가 나온다면 그것을 빵과 바꾸어 먹을까? 2주일 전에 상으로 받았던 담배 한 개비를 수프 한 그릇과 바꾸어 먹을까? 한쪽 신발끈이 끊어졌는데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하지? 시간 안에 작업장에 가서 평소에 내가 일하던 작업반에 낄 수 있을까? 그렇지 않고 다른 작업반에 들어갔다가 거기서 고약한 감독을 만나면 어떻게 하지? 이렇게 매일 긴 행렬에 끼어서 작업장에 가지 않고 대신 수용소안에서 일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주는 카포는 없을까? 그 카포와 잘 사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다가 매일같이 시시각각 그런 하찮은 일만 생각하도록 몰아가는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다. 갑자기 나는 불이 환희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었다. 내 앞에는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서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강제수용소에서의 심리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어느 정도 내가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긴느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다. 나 자신과 문제는 내가 주도하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대상이 되었다. 스피노자가 그의 <윤리학>에서 무엇이라고 했던가?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미래 - 그 자신의 미래 - 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린 수감자는 불운한 사람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것과 더불어 그는 정신력도 상실하게 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퇴화시키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퇴락의 길을 걷는다.  132-133


수용소주치의로부터 들었던 말에 의하면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에 이르기까지 일주일간의 사망률이 일찍이 볼 수 없었더 ㄴ추세로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주치의는 이 기간 동안 사망률이 증가한 원인은 보다 가혹해진 노동조건이나 식량 사정의 악화, 기후의 변화, 새로운 전염병 때무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성탄절에는 집에 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시간이 다가오는데도 희망적인 뉴스가 들리지 않자 용기를 잃었으며, 절망감이 그들을 덮쳤다. 이것이 그들의 저항력에 위험한 영향을 끼쳤고,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기에 이른 것이다.  136


니체가 말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137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일반적인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삶'이란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138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비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라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142


니체는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  145


"그대의 경험, 이 세상 어떤 권력자도 빼앗지 못하리!"

경험뿐이 아니다. 우리가 그 동안 했던 모든 일, 우리가 했을지도 모르는 훌륭한 생각들, 그리고 우리가 겪었던 고통, 이 모든 것들은 비록 과거로 흘러갔지만 결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을 우리 존재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간직해 왔다는 것도 하나의 존재방식일 수 있다.  146


우리가 처한 가혹한 현실에 과감하게 직면하자고 했다.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되고, 우리들의 가망 없는 싸움이 삶의 존엄성과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누군가가 - 친구나 아내, 산 사람, 혹은 죽은 사람, 혹은 하나님 - 각각 다른 시간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했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그 사람은 우리가 자기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의연하고 비굴하지 않게 시련을 이겨내고, 어떤 태도로 죽어야 하는지를 알기를 바란다고.  147


심리적 반응의 세번째 단계, 즉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에 대해 설명할 차례가 되었다.  148


지단과 집단 사이의 경계선이 서로 겹쳐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천사, 저 사람들은 악마라고 부르면서 문제를 단순화시키려고 해서는 안 된다.  151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렇게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성에서도 선과 악의 혼합이라는 인간 본연의 특성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모든 인간을 관통하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단층은 아주 심오한 곳까지 이르러 인간성긔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강제수용소라는 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된다.  152


극도로 긴장했던 며칠이 지난 후 수용소 정문 위에 흰 깃발이 펄럭였던 그날 아침의 경험담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리고 하겠다.

우리가 미친 듯이 기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오산이다.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우리들은 피곤한 발걸음으로 몸을 질질 끌다시피 하며 수용소 정문으로 걸어갔다. 조금씩 사방을 둘러보고, 의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과감하게 수용소 밖으로 몇 발자국 걸음을 옮겨보았다. 우리에게 고함을 치며 명령하는 사람이 없었다.

세상세! 감시병들이 우리에게 담배를 권하고 있지 않은가! 처음에 우리는 그들을 거의 못 알아보았다. 왜냐하면 재빠르게 민간인 복장으로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천천히 수용소 밖으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우리는 절뚝거리며 걸었다. 자유인의 눈으로 그 전까지 미처 보지 못했던 수용소 주위를 한번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유. 우리는 스스로 몇 번이나 이 단어를 되뇌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지난 몇 년간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면서 얼마나 자주 이 단어를 입에 올렸는지 이제는 그것이 의미를 잃고 말았다. 현실이 우리의 의식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자유가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었다.

드디어 꽃이 만발한 초원에 이르게 되었다. 꽃이 만발해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알았지만 거기에서 아무런 감흥도 느낄 수 없었다. 우리가 처음으로 불꽃 튀는 것 같은 기쁨을 느낀 것은 꼬리에 여러 가지 색깔의 깃털을 단 수탉을 보았을 때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모두 막사에 모였을 때,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말해 보게. 자네 오늘 기뻤나?"

우리 모두 똑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그 사람이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아니야."

우리는 글자 그대로 기쁨을 느끼는 능력을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앞으로 천천히 그것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이렇게 갇혀 있다가 석방된 죄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정신의학적인 용어로 '이인증(depersonalization, 離人症 떠날이 사람인 병증세증)'이라고 할 수 있다.  154


육체는 마음보다는 거부감이 적은 법이다. 육체는 처음부터 새롭게 얻은 이 자유를 잘 활용했다. 드디어 우리 육체가 게걸스럽게 먹어대기 시작한 것이다. 몇 시간 동안, 며칠 동안, 그리고 심지어는 한밤중에도 우리는 먹었다. 한 사람이 먹어치우는 음식의 양이 심히 놀라웠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이웃에 있는 친절한 농부의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갔는데, 거기에도 그는 먹고 또 먹고 그리고 커피까지 마셨다. 그리고 이것이 그의 혀를 풀리게 했다. 그는 몇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몇 년 동안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마침내 사라진 것이다. 그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알았을 것이다. 그에게 말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는 것을.  155


수용소에서의 마지막 며칠 동안 견뎌야 했던 극도의 정신적 긴장(예를 들어 게슈타포의 혹독한 심문 같은 것)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길이 아무런 장애 없이 순탄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에게는 더 이상 정신적 치료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생각이다. 그렇게 심한 정신적 압박을,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받았던 사람에게는 자유를 얻은 후에도 그전과 똑같은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특히 그런 정신적 억압상태에서 갑자기 벗어난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이런 위험은 정신위생학적인 의미에서 일종의 잠수병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물 속의 잠함에서 일하던 잠수부가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다가 갑자기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이런 심리적 단계에서 원색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수용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야만성의 영향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156-157


어느 날 나는 다른 친구와 함께 들을 가로질러 수용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 앞에 농작물이 자라고 있는 밭이 나타났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친구가 내 팔을 잡고 나를 밭으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더듬거리면서 어린 농작물을 짓밟지 말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러자 그는 짜증을 냈다. 화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그런 말 하지 말게. 그만큼 빼앗아쓰면 충분한 거 아니야? 내 아내와 아이는 가스실에서 죽었어. 그것으로 더 이상 할 말 없는 거 아니야? 그런데도 자네는 내가 귀리 몇 포기 밟는다고 뭐라고 하다니!"

이런 사람들은 아주 천천히 평범한 진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자신엑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한 권리는 어느 누구에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주어야 한다.  158


정신적 억압에서 갑자기 풀려나게 되었을 때, 도덕적 결함이 보이는 현상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의 성격에 손상을 입힐 수 있는 두 가지 기본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을 때 겪에 되는 비통함과 환멸이다.

비통함은 그가 살던 마을로 돌아왔을 때 그가 부딪치게 되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보면 그저 어깨를 으쓱하거나 상투적인 인사치레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 그는 점점 비통해지면서 자기가 과연 무엇 때문에 그 모든 고통을 겪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거의 모든 곳에서 거의 똑같은 말을 듣는다. "우리는 그것을 몰랐어요." 그리고 "우리도 똑같이 고통을 받았어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저 사람들은 정말로 나에게 할 말이 없는 것일까?"

환멸을 경험하는 것은 이와는 또 다른 문제다. 여기서 그가 환멸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그들의 상투성과 감정결핍이 너무 혐오스러워서 마침내 구멍으로 기어들어간 것처럼 사람들을 더 이상 보려고도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도 하지 않게 된다.)이 아니라 그토록 잔인해 보이는 운명 그 자체이다. 몇 년 동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시련과 고난의절대적인 한계까지 가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시련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59-160





2 로고테라피의 기본 개념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갖고 있는 의미에 초점을 맞춘다는 말이다.(로고테라피는 이렇게 의미에 중점을 둔 정신치료법이다) 동시에 로고테라피는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하는 악순환 형성과 송환기재를 약화시킨다. 그렇게 해서 정신질환 환자에게 전형적인 자기집중증상이 발생하고 심화되는 것을 막는다. ...

로고스(Logos)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로고테라피' 혹은 다른 학자들에 의해 '빈 제3정신의학파'로 불리는 이 이론은 인간 존재의 의미는 물론 그 의미를 찾아나가는 인간의 의지에 초점을 맞춘 이론이다.  167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도 좌절을 당할 수 있다. 이것을 로고테라피에서는 '실존적 좌절'이라고 한다. 여기서 '실존적'이라는 단어는 다음의 세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1) 존재 그 자체, 즉 인간 특유의 존재방식 2) 존재의 의미 그리고 3) 각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 즉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말한다.

실존적 좌절 역시 정신질환을 초래할 수 있다. 정신의학에서는 그 동안 이것을 심인성 노이로제(psyshogenic neurosis)라고 했지만 로고테라피에서는 이것을 누제닉 노이로제(noogenic neurrosis)라고 부른다.  170-171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의 좌절이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한다.  171


갈등을 겪는다고 해서 다 신경질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의 갈등은 정상적이고 건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고통도 역시 모두 다 병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특히 그 고통이 실존적 좌절 때문에 생긴 경우에는 그것을 신경질환 증세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성취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람이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거나 아니면 그런 것이 과연 있을까 하고 의심하거나 간에 이런 현상이 병 때문에 생긴다거나 혹은 이것 때문에 결국은 병이 생길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나는 단호하게 부정한다. 실존적 좌절 그 자체는 병적인 것도 병원적인 것도 아니다. 가치 있는 삶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그것에 대한 절망도 실존적 고민이지 정신질황은 아니다.  172-173


로고테라피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 주는 것을 그 과제로 삼고 있다. 그렇게 하려면 환자의 실존 안에 숨겨져 있는 '로소스'를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하는데, 이것은 상당한 분석과정을 필요로 한다. 이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분서고가 유사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로고테라피가 환자에게 어떤 것을 다시 깨우쳐 주는 과정에서는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잡고 있는 본능적 요소에만 국한하지 않고 그의 실존적 현실, 즉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의 의지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취되어야 할 실존의 잠재적 의미까지도 고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분석이든, 심지어 치료과정엣 정신론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는 분석일지라도 환자가 자기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 정말로 소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것은 중요하다. 

로고테라피에서는 인간을 그저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쾌락을 얻거나 서로 갈등하고 있는 이드와 자아, 초자아를 정충시키거나 혹은 사회와 환경에 그저 순응하고 적응하는 데에만 관시을 갖는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 주된 관심사하 어떤 의미를 성취한느 데 있다고 보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로고테라피는 정신분석과 구별된다.  173-174





3 비극 속에서의 낙관



명심해야 한다. 낙관적인 생각이 명령이나 지시를 받아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220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21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듯이 사람이 삶의 의미에 도달하는 데에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일을 하거나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서이다. 두번째는 어떤 것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나는 것을 통해서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의미는 일을 통해서 뿐만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의미로 들어가는 세번째 길이다.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없는 운명에 처한,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무력한 희생양도 그 자신을 뛰어넘고, 그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 인간은 개인적인 비극을 승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230-231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233


한번은 한 미국 여자로부터 이런 비난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어떻게 아직도 책을 독일로 쓸 수가 있지요? 그건 아돌프 히틀러가 쓰던 말 아닙니까?"

이 말에 응수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자기 집 부엌에 칼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녀가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당황스럽고 놀랍다는 제스처를 쓰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살인자들이 칼을 가지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찌르고 죽였는데 어떻게 아직도 칼을 사용할 수가 있지요?"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더 이상 내가 독일어로 책을 쓰는 것을 비난하지 않았다.  236


어떤 상황에서 심지어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이 잠재적으로 의미 있는 것으로 남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의 가치는 언제나 그 사람과 함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사람이 과거에 실현시킨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그 사람이 쓸모 있느냐 없느냐 하는 조건에 기반을 둔 것을 절대 아니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이런 유용성은 그 사람이 사회에 이로운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기능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정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사람이 이루어낸 성과를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 특히 젊은 사람을 숭배하는 것이 요즘 사회의 특징이다.

실제로 이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가치는 무시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과,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하는 것 사이에 놓여 있는 엄청난 차이를 애매모호한 것으로 만든다.

만약 이런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인간의 가치가 오로지 현재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용성에서 나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히틀러의 계획에 따라 자행된 안락사, 즉 나이가 들어서, 불치의 병에 걸려서,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해서, 혹은 고통스러운 어떤 장애 때문에 사회적으로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사람들을 죽였던 '자비로운' 행위에 대해 변명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오로지 개인적인 모순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  239


"Sed omnia praclara tam difficilia quamrara sunt(그러나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 스피노자 <윤리학>의 마지막 문장이다.  242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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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 리영희 선생은 말한다. 진실, 진리, 끝없는 성찰, 그리고 인식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신념과 지조. 진리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는 용기. 지식인은 이런 것들과 더불어 산다.  47-48



우리 모두는 갖가지 편견과 고정관념을 지니고 산다. 이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한 모든 종류의 통념이 논리적, 경험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일일이 시험하고 검토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많은 경우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념과 사고방식을 어느 정도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맬서스와 얼마나 다른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 내 신념을 받치고 있는 수많은 통념들 가운데 그릇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을 것인가? ..

<인구론>과 맬서스는 금이 간 거울이다. 내 생각도 그릇된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일그러져 있지 않은지 경계하면서, 거기에 나를 비추어 본다. 생각은 때로 감옥이 될 수 있다!  90-91



배불리 먹고 편안하게 지내기만 하면서 배우지 않으면 백성은 짐승에 가까워지므로...  126



마르크스는 사회를 "대립하는 계급의 통일"로 보았다. 그의 세계에는 언제나 투쟁이 진행 중이며 혁명이 준비되고 있다. 그는 부르주아 독재를 타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혁명이 필연적이며 그것이 역사의 진보라고 믿었다.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마르크스가 혁명의 소용돌이에 몸소 뛰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베블런의 세계는 유한계급과 생산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러나 그의 세계는 매우 안정되어 있다. 여기서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 인습과 제도의 진화가 있을 뿐이다. 보수성은 지배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다. 유한계급의 규범과 생활양식은 모든 사람의 삶을 지배하는 명예로운 표준으로 통용된다. 하층계급은 유한계급을 타도하기보다 그 일원이 되기를 원하며 그들을 흉내 내려고 애쓴다. 사회와 인간을 이렇게 보면 세상의 소란에 신경 쓰지 않고 이방인으로 살다 가는 쪽이 자연스럽다.  238-239


폭력이 '무지'에서 발생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무지'란 "처지를 바꾸어놓고 생각해보는 능력의 전적인 결여"를 의미한다.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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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then, at an uncertain hour, 

That agony returns,

And till my ghastly tale is told

This heart within me burns.

그때 이후, 불확실한 시간에

고통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나의 섬뜩한 이야기가 말해질 때까지

내 안의 심장은 불타리라.

                     -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늙은 뱃사람의 노래> 582~585행




서문 


라거에 대한 진실을 확산시키지 않았다는 것이야말로 독일 민족이 저지른 가장 중대한 집단 범죄의 하나이며 히틀러의 테러로 인해 독일 민족이 다다른 비겁함을 가장 명백하게 증명해주는 것이다. 관습 속으로 들어와버린 비겁함, 너무나 깊어서 남편이 아내에게, 부모가 자식에게도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드는 비겁함이다. 이 비겁함이 없었더라면 그토록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고 유럽과 세상은 오늘날 달라져 있을 것이다.  14


라거의 악행을 알고 있던 수많은 잠재적 '민간인' 증인들 역시 의도적인 무지와 두려움으로 침묵했다.  15


생존자들 가운데는 포로생활중에 어떤 특권을 누린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여러 해가 지난 오늘날, 라거의 역사는 거의 전적으로 나처럼 바닥까지 가보지 못한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고 단언할 수 있다. 바닥까지 가본 사람은 돌아오지 못했거나, 자신의 관찰 능력이 고통과 몰이해로 마비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특권층' 증인들은 확실히 더 나은 관측소를 이용했다. 적어도 더 높은 곳에 있었고, 따라서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그 특권에 의해 크게든 작게든 그 또한 왜곡된 것이었다.  17


나치의 라거로부터 해방된 지 이미 40년 이상이 흘렀다. 이 상당한 간극은 사건을 명확하게 밝혀줄 모순적인 결과들을 가져왔는데, 아래에 열거해보겠다. 

첫째는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정제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

세월의 흐름은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또 다른 결과를 낳고 있다. 원고와 피고 측 증인 대다수가 이미 사라지고 없으며, 아직 남아 있는, 그리고(자신들의 가책이나 저마다의 상처를 극복하고) 여전히 증언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흐릿하고 정형화된 기억을 갖게 된다. 이는 종종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책을 읽거나 타인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하면서 나중에 알게 된 정보로부터 영향받은 기억들이다.  19


또 다른 정형화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에게, 우리 생활자들에게, 아니 더 정확하게는 우리 가운데 생환자로서 자신의 조건을 가장 단순하고 가장 덜 비판적인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라거 내부는 복잡하게 얽히고 계층화된 소우주였다. 내가 앞으로 말하게 될 "회색지대"는 어느 정도는, 또 어쩌면 좋은 의도에서 당국에 협조한 포로들의 층으로 결코 얇지 않았다. ..

처음 받은 위협, 첫 모욕, 첫 구타는 SS로부터 온 게 아니라 다른 포로들, '동료'들, 갓 입소한 사람들이 방금 갈아입은 것과 똑같은 줄무늬 유니폼 차림의 그 불가사의한 인물들로부터 왔던 것이다.  20-21




이 책은 아직까지도 분명치 않아 보이는 라거 현상의 몇 가지 양상들을 밝히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 보다 야심찬 목적도 있다. 좀 더 급박한 질문, 우리의 이야기를 읽을 기회가 있었던 모든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다. 노예 제도나 결투 의식이 그랬던 것처럼, 수용소 세계는 어디까지 사멸했으며 더 이상 되돌아오지 않을 것인가, 어디까지 되돌아왔거나 되돌아오고 있는가, 위협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적어도 이러한 위협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우리들 각자는 무엇을 할 수있는가?  21





1 상처의 기억


인간의 기억은 놀라운 도구인 동시에 속이기 쉬운 도구이다. ..

세월이 흐르면서 지워지고 종종 변형되며 심지어 상관없는 일들을 껴 넣으면서 자라나기도 한다. 

동일한 사건의 두 목격자가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또 같은 말로 묘사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23


오스트리아 철학자 장 아메리(한스 마이어)는 벨기에 레지스탕스 운동을 하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게슈타포에게 고문당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글은 우리를 경악에 빠뜨린다.

'고문당한 사람은 고문에 시달리는 채로 남는다... 고문당한 사람은 더 이상 세상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25


사건들이 과거 속으로 멀어질수록 편리한 진실의 구축은 점점 더 커지고 더 완벽해진다.  28


내가 보기에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데 익숙한 자는 결국 사적인 자리에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도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을 평안하게 살도록 해주는 편리한 진실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선의와 악의를 뚜렷이 구분하는 데는 큰 비용이 요구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온전히 솔직할 것을 요구하며 지적이고 도덕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29


우리가 자라난 체제는 자율적인 결정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 대신 결정을 내렸고 다른 식으로는 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정하는 능력을 거세당했기 때문이다. ..

근대적인 전체주의 국가가 개인에게 행사할 ㅅ 있는 압력은 무시무시하다. 그 무기는 본질적으로 세 가지이다. 교육, 지도, 대중문화로 위장한 프로파간다 또는 직접적인 프로파간다. 정보의 다원주의에 반하는 봉쇄, 그리고 테러가 바로 그것이다.  30 


저지른 죄에 대한 기억을 변형하는 극단적 경우로는 기억의 제거가 있다. ..

기억의 존재를 부인함으로써 그는 배설물이나 기생충을 몰아내듯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로운 기억을 몰아냈다.  32


히틀러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진실로의 길을 봉쇄했다. 모든 도박꾼들이 그러하듯이 그는 미신적인 기만들로 짜인 무대를 자기 주변에 구축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이 모든 독일인에게 요구했던 바로 그 광신적인 믿음을 결국 스스로도 믿게 되었다. 곧 히틀러의 몰락은 인류의 구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진실이 조작될 때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34


방어의 목적에서, 현실은 기억 속에서뿐만 아니라 그것이 일어나는 행위 자체에서도 왜곡될 수 있다.  35





2 회색지대 


보통 '이해하다'의 의미는 '단순화시키다'라는 말과 일치한다. 심오한 단순화 과정이 없다면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정의할 수 없고 끝도 없이 얽히고 설킨 실타래와 같을 것이다. 이는 곧 우리의 방향설정 능력과 행동결정 능력을 위협할 것이다. 요컨대,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인식 가능한 것들을 도식적으로 축소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는 역사도 단순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건들이 정렬되는 도식이 언제나 분명하게 규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9


민중사는 물론 학교에서 배우는 정식화된 역사도 중간색과 복합성을 피하는 이러한 이분법적 경향에 영향을 받는다. 즉 인간 세계의 넘쳐흐느는 사건들을 갈등으로, 갈등은 대결로, 우리와 그들, 아테네인과 스파르타인, 로마인과 카르타고인 등과 같은 대결로 축소시키는 경향이 있다. 바로 이것이 축구, 야구, 권투와 같은 두 팀 또는 두 명으로 이루어진 스펙터클한 스포츠가 엄청난 인기를 누리는 이유이다. 뚜렷이 구분되고 확인 가능하며 경기가 끝나면 승자와 패자로 갈리기 때문이다. ..

단순화의 욕구는 정당화되지만, 단순화가 언제나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40


굶어 죽거나 굶주림에 비롯된 질병으로 죽는 것이 포로들의 일반적인 운명이었다. 오로지 추가적인 음식 숩취를 해야만 이 운명을 피할 수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특권을 손에 넣어야 했다...

수용소의 현실에 맞닥뜨린 최초의 충격은 예견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누군가의 공격이었느넫, 관리자 포로라는 새롭고 이상한 적으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44-45


죄인은 길들여지거나 죽을 때까지 체계적이고 분노에 찬 구타를 당한다.  45


관리자 포로라는 혼성 계층은 수용소의 골격을 형성하며, 동시에 극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주인과 하인의 두 영역을 나누는 동시에 연결하는, 경계가 불분명한 회색지대이다.  46


'프로텍치아'('특권'을 가리키는 이디시어 방언이자 폴란드어 protekcja)와 협력의 회색지대는 다양한 뿌리로부터 탄생한다. 첫째, 권력층의 그 폭이 좁으면 좁을수록 그만큼 외부의 조력자가 더 필요해진다. ..

두 번째는 억압이 거셀수록 억압받는 사람들 사이에 기꺼이 권력에 협력하려는 의향이 더욱더 확산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향은 미묘한 차이들과 다양한 동기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칭송 일색의 성인전 같은 수사학적인 어떤 정형화와는 대조적이다. 공포, 이데올로기적 유혹, 승자를 곧이곧대로 모방하는 것, 어떤 권력이건 간에 -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시간과 장소에 제한된 권력이라 할지라도 - 그것을 향한 근시안적 욕망, 비겁, 명령이나 규율 자체를 교묘하게 피하려는 철저한 계산에 이르기까지 그 동기는 다양하다.  46-48


"선동가들, 탄압자들, 어떤 식으로든 타인을 해치는 모든 자들은 유죄다. 그들이 저지른 악행 때문만이 아니라 상처받은 사람들의 영혼을 타락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한 만초니(Alessandro Manzoni)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억압당하는 환경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니다.  49


카포(우두머리, 태장)는 누가되었나?

첫째, 가능성이 주어진 사람들, 즉 라거의 사령관이나 그의 대리인들이(흔히는 뛰어난 심리학자들이었는데) 협력자로서의 잠재력을 알아본 사람들이다.

둘째, 감옥에서 차출해온 일반 범죄자들이다. 그들에게 간수일은 수감생활의 훌륭한 대안을 제공했다. 

셋째, 5~10년의 고통의 세월에 쇠약해진, 아니면 어쨌든 도덕적으로 약화된 정치범들이다. 나중에는 유대인들도 카포가 되었는데, 자신들에게 주어진 보잘것없고 미미한 권력에서 '최종 해결책'을 피할 유일한 방법으로 찾게 된 사람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원했다. 특히 사디스트들이 권력을 원했다. 물론 숫자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커다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특권의 지위란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통과 굴욕을 가할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좌절한 사람들도 권력을 원했다. 그리고 이 역시 라거라는 소우주 속에 전체주의 사회라는 대우주를 재현하는 특징이다. 당국에 경의를 기꺼이 표하는 자에게 권력이 자비롭게 주어지며, 이런 식으로 그들은 달리는 도달할 수 없는 사회적 진급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억압받는 사람들 중의 많은 이들이 권력을 원했다. 그들은 억압하는 자들로부터 전염되었고 무의식적으로 억압하는 자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53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살인자가 도사리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나는 내가 무고한 희생자였고 살인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안다. 나는 살인자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일에서만이 아니라는 것도, 은퇴했거나 여전히 현역으로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54


협력의 극단적 예는 아우슈비츠와 기타 절멸 수용소의 존더코만도스(Sonderkommandos)에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특권을 말하기가 머뭇거려진다. 존더코만더스에 속한 사람은 특권층이었지만 부러움을 받는 자리였기 때문에 특권층이었던 것을 물론 아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특혜란 몇 달 동안 충분히 먹을 수 있다는 것 정도였다. SS(Schutz-Staffel의 약자, 나치스 친위대. 1929년 히틀러의 경호대로 창설되었다. 그후 독일군 내에서도 나치스 이데올로기르 광신적으로 체현한 특수군으로서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SS의 임무는 유대인을 포함한 나치스의 적들을 탐색하고 체포하는 것, 강제수용소의 관리와 방어 등이었다. - <이것이 인간인가> 13페이지에서)는 "특수부대"라는 적당히 애매한 이름으로 포로들의 한 그룹을 지정한 뒤 화장터의 운영을 맡겼다.  56


한 명은 이렇게 단언했다. "이 일을 하게 되면 첫날 미쳐 버리든가 아니면 익숙해지든가 둘 중 하나다." 반면에 또 다른 사람은 "나는 스스로 죽거나 죽임을 당하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살아남고 싶었다. 복수하기 위해 그리고 증언하기 위해. 여러분은 우리가 괴물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당신들과 같은 사람들이다. 단지 훨씬 더 불행할 뿐"이라고 했다.  59-60


특수부대를 기획하고 조직한 것은 국가사회주의의 가장 악마적인 범죄였다.

이러한 기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히 말하자면 희생자들에게 죄의 짐을 떠넘기려고 시도한 것이다.  60


특수부대의 베테랑들을 대하는 SS의 태도는 달랐다. 그들은 이 베테랑들을 확장된 동료로 인식했다. 곧, 이제는 자신들만큼이나 비인간적인 존재, 어쩔 수 없이 부과된 공범성이라는 추악한 굴레에 묶인 한 배에 탄 동료로서 말이다.  62


우리의 판단 욕구와 판단력은 특수부대 앞에서 흔들린다. 

왜 그들은 그 임무를 받아들였는가? 왜 그들은 반항하지 않았는가? 왜 그들은 차라리 죽음을 원하지 않았는가?  66


우리가 알고 있는 저 비참한 학살 실행자들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다. 곧 즉각적인 죽음보다도 다만 몇 주라도 삶을(도대체 무슨 삶인가!) 연장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다. ..

나는 누구든지 감히 심판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추론적 실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67


베펠노트슈탄트(Befehlnotstand), 즉 '명령에 따른 강제 상태'  68


억압에 의해 치명적으로 유발된 인간의 모호성이라는 근본 주제에 관한 굉장히 웅변적인 이야기.  69


나치의 게토는 중세의 반종교개혁적인 게토 체제를 나치의 근대적인 잔혹성으로 인해 더욱 악화된 모습으로 복구시킨 형태였다.  70


실패로부터 도덕적 힘을 끌어내는 사람들은 소수인 것이다. 정치적 강압은 모호함과 타협의 불분명한 영역을 만들어내며 이것은 거의 필연적이다.

모든 절대 왕좌의 발치에는.. 인간들이 한 줌의 작은 권력을 움켜쥐기 위해 몰려든다. 이것은 되풀이되는 광경이다. ..

처음에는 맹목적이었다가 나중에는 범죄자가 되었고, 죽어가는 사악한 한 줌의 권력을 나눠가지려고 맹렬히 싸웠다. 권력은 마약과도 같다. 권력에 대한 욕망도, 마약에 대한 욕구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러나 우연하게라도 한 번 시작한 뒤에는 중독되고 필요한 투여량은 점점 더 많아진다. 또한 현실에 대한 부정과 전지전능을 갈구하는 유아적 꿈으로 돌아가는 일도 나타난다. ..

즉, 중독은 너무나 강해서 개인의 모든 의지의 불씨를 꺼뜨릴 정도로 보이는 환경에서조차 만연한다는 사실 말이다.  77-78


국가사회주의와 같이, 무시무시한 부패 권력을 행사하는 지옥같은 체제로부터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체제는 자신의 희생자들을 타락시키고 그들을 자신과 비슷하게 만든다. 크고 작은 공범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매우 단단한 도덕적 뼈대가 필요하다...

만약 불가피하게 몰릴 때, 동시에 유혹이 무리 마음을 부추길 때 우리들 각자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78


권력과 위신에 현혹되어 우리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잊어버린다. 우리 모두 게토 안에 있다는 것을, 게토 주위엔 담벼락이 둘려 있고 그 밖에는 죽음의 주인들이 있으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기차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우리는 자발적이든 아니든 간에 권력과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  80





3 수치


"기쁨은 괴로움의 자식"이 아니다. 괴로움이 괴로움의 자식이다.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단지 운좋은 소수나 굉장히 단순한 영혼들에게만 잠시 환희를 가져왔을 뿐, 거의 언제나 불안의 양상과 겹쳐져 있었다.  82


독일인들은 모르던 수치심,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앞에서 의로운 자가 느끼는 수치심이었다.  84


우리 각자가 객관적으로든 주관적으로든 자기 방식대로 라거를 경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원해서도 무기력해서도 아니었고 죄가 있어서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수개월 또는 수년을 동물적인 수준에서 살았다. 우리의 나날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배고픔과 피로와 추위, 두려움으로 채워져 있었고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기 위한 성찰의 자리는 없어졌다. 우리는 더러움과 사샐활의 결핍과 자기 존재의 축소를 정상적인 삶이었을 때보다는 훨씬 덜 괴로워하면서 견뎠다. 우리의 도덕적 잣대가 변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도둑질을 했다. 부엌에서 , 공장에서, 운동장에서, 요컨대 '다른 살마들에게서', 상대편에게서 훔쳤지만, 그래도 도둑질은 도둘질이었다. 소수의 몇몇 사람들은 심지어 자기 동료의 빵까지 훔치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나라와 문화뿐만 아니라 가족과 과거, 우리가 그렸던 미래 또한 잊어버렸다. 왜냐하면 우리는 동물들처럼 현재의 순간에만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해방은 어쨌든, 반성과 우울함이라는 해일과 함께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비에트 수용소들을 포함해서 라거를 연구하는 많은 역사학자들은, 포로생활 도중에 자살이 일어난 경우는 드물다는 사실에 동일하게 주목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시도되었다. 나는 세 가지 해석을 제시하는데, 이 해석들이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첫째, 자살은 동물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행위라는 점이다. 즉, 심사숙고한 행위이고, 자연스럽지도 않고 충동적이지도 않은 하나의 선택이다. ..

둘째, "생각할 다른 일이 있었다"는 점이다. 하루 일과는 빡빡햇다. 허기를 채우고, 어떤 식으로든 피로와 추위를 피하고 구타를 피할 생각을 해야 했다. 늘 코앞에 닥쳐온 죽음 때문에 죽음에 대한 생각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 ..

셋째, 대부분의 경우, 자살은 어떤 형벌도 덜어주지 못한 죄책감에서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처럼 포로생활의 힘겨움은 형벌로 인식되었고 죄책감은(형벌이 있다면 죄가 있다는 것이므로) 해방 후에 다시 나타나기 위해 제2선으로 밀려나 있었다.  87-89


동료에게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고 빼앗고 구타한 데 대해 자신의 유죄라고 느낀 생존자들은 소수이다.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은(카포들, 그러나 그들만이 아니다) 그 기억을 지운다. 그에 반해 거의 모든 사람들은 도움을 베풀지 않은 데 대해 자신이 유죄라고 느낀다. 더 약하고 더 서툴고 더 나이가 많거나 아니면 너무 어린 옆자리의 동료는 도움을 청함으로써, 또는 단순히 '있다'는 사실(이미 그 자체로 간청하고 있다)만으로 집요하게 괴롭힌다. ...

보통 그런 요구를 받는 사람도 자기 입장에서는 도움이 필요한 처지에 있었다.  91


뒤늦은 수치심은 합리화될 수 있을까, 없을까?  95


자신을 찬찬히 검토하고, 자신의 기억들을 모두 되살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또 그 기억들 중 무엇도 가면을 쓰고 있거나 위장하고 있지 않기를 바라면서 스스로를 점검해본다. 

명백한 범법행위를 발견하지 못한다. 누구의 자리를 빼앗은 적도 없고, 누구를 구타한 적도 없으며(그럴 힘이라도 있었겠는가?), 어떤 임무를 받아들인 적도 없고(맡겨지지도 않았지만..), 그 누구의 빵도 훔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각자가 자기 형제의 카인이라는 것, 우리 모두가(나는 이번에는 매우 광대한, 아니 보편적인 의미에서 "우리"라고 한다) 자기 옆 사람의 자리를 빼앗고 그 사람 대신에 산다는 것은 하나의 상상, 아니 의심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상상이 우리의 정신을 갉아먹는 것이다. 좀벌레처럼 우리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고 들어앉아 갉아먹으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낸다.  95-96


라거의 '구조된 자들'은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곻난 사람들, 메시지의 전달자들이 아니었다. 내가 본 것, 내가 겪은 것은 그와는 정반대임을 증명해 주었다. 오히려 최악의 사람들, 이기주의자들, 폭력자들, 무감각한 자들, '회색지대'의 협력자들, 스파이들이 살아남았다. ..

내 눈앞에서, 남들의 눈앞에서 끝없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려고 애쓰고 있다고 느꼈다. 최악의 사람들, 즉 적자(適者 맞을적 사람자)들이 생존했다. 최고의 사람들은 모두 죽었다.

크라코비아의 시계상이자 신실한 유대인이었던 하임은 죽었다. 그는 외국인인 나에게 언어의 어려움에도 나를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면서, 사악함으로 가득한 첫 며칠의 고비에서 수용소의 기본적인 생존 법칙들을 설명해주려고 애썼다. 과묵한 헝가리 농부 사보도 죽었다. 키가 거의 2미터여서 누구보다도 배가 고팠지만, 기력이 있는 한 더 쇠약한 동료들이 밀고 당기는 것을 도와주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주위로 용기와 믿음을 발산하던 소르본느 대학의 교수 로베르도 죽었다. 5개 국어를 할 줄 알앗던 그는 자신의 놀라운 기억 속에 모든 것을 기록하려 애썼고 만약 살아남았다면 내가 답할 수 없는 여러 의문들에 답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리보르노 항구의 부두 하역부였던 바루크도 죽었다. 첫날 바로 죽었느넫, 처음 날아온 주먹에 주먹으로 답했기 때문이다. 연합한 세 명의 카포들에게 살해당했다. 이들과 다른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용기에도 불구하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용기 때문에 죽은 것이다.  97-98


반복 하지만 진짜 증인들은 우리 생존자가 아니다. ..

우리 생존자들은 근소함을 넘어서 이례적인 소수이고, 권력 남용이나 수완이나 행운 덕분에 바닥을 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닥을 친 사람들, 고르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끔찍한 모습의 세 자매 괴물. 스텐노, 에우리알레, 메두사. 그 중 메두사는 고르곤을 대표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는데, 그 얼굴을 본 사람은 돌이 되었다고 한다)을 본 사람들은 증언하러 돌아오지 못했고, 아니면 벙어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바로 "무슬림들", 가라앉은 자들, 완전하 증인들이고, 자신들의 증언이 일반적인 의미를 지녔을 사람들이다. 그들이 원칙이고 우리는 예외이다.  98-99


끊임없이 잠을 설치게 하는 이름 모를 불편함 때문에 모두가 시달렸다. 그것을 "노이로제"라고 정의하는 것은 너무 환원주의적이고 우스꽝스럽다.  100


좀 더 광범위한 수치심이 있다. 곧 세상에 대한 수치심이다...

타인과 자신의 죄 앞에서 그 죄를 보지 않도록, 그래서 느낄 수 없도록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히틀러 치하의 12년간, 보지 않는 것이 모르는 것이며 모르는 것이 공모와 묵인에 대한 자신들의 부담을 덜어줄 것이라는 환상 속에서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그렇게 행동했다. 자발적인 무지의 장막. ..

우리 가운데 의로운 사람들은(더도 덜도 아니고, 여느 인간 집단에 있는 딱 그만큼 존재했다) 자신들이 아닌 타인들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그리고 자신들이 거기에 연루됐다는 생각 때문에 가책과 수치심이라는 고통을 느꼈다.  101





4 소통하기


의사소통이 금지된 나라에서는, 또 그런 시대에는 다른 모든 자유도 곧 시들게 된다. 토론은 영양실조로 죽게 되며, 타인의 견해에 대한 무지가 만연하고 강요된 견해들이 맹위를 떨치게 된다. 토론의 부재 속에, 20년간 수확을 망쳤던 리센코(Trofim Lysenko, 러시아의 농업생물학자, 가을에 심는 밀을 인위적으로 저온에 저장하여 봄에 심는다는 춘화처리법을 실시했다. 이후 농업생산 분야에서의 부진과 과도한 정치적 행동 때문에 비판받았다.)가 소련에 설파한 말도 안 되는 유전학은 이에 대한 유명한 예이다(리센코의 반대자들은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비관용은 검열의 경향을 띠고, 검열은 타인의 논지에 대한 무지, 즉 비관용 자체를 증폭시킨다. 이것은 깨기 어려운 단단한 악순환의 고리이다.  124





5 쓸데없는 폭력


2주간 지속될 수도 있는 여행(살로니카에서 이송되는 유대인의 경우)을 위해 독일 당국은 식량도, 물도, 나무 바닥을 덮을 깔개나 짚도, 생리현상을 해결할 용기도, 글자 그대로 아무것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또한 지역 당국이나 집결수용소의 책임자들(있을 경우)에게 이송 상황을 알리고 어떤 식으로든 병참 물품을 조달하는 데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통지를 하는 것에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바로 이러한 체계적인 태만은 결국 쓸데없는 잔인함으로, 고통 자체가 목적인 고통의 고의적 유발로 변모했다.  132


우리의 역설적인 행운(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행운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망설여진다) 덕분에, 우리의 화물칸에는 몇 개월 안 된 아기들을 데리고 탄 두 명의 젊은 엄마가 있었고 그녀들 중 한 명이 요강을 가지고 있었다. 여행한 지 이틀이 지나고 나서 우리는 판자벽에 박힌 못들을 발견했다. 못 두 개를 빼내 한쪽 구석에 다시 박고 줄을 쳐서 담요를 걸고 임시변통으로 몸을 가릴 곳을 만들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 짐승이 아니라는, 우리가 저항하려고 노력하는 한 우리는 짐승이 안 될 것이라는.  134


거대한 공동화장실, 의무적으로 정해진 짧은 시간, 차례를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익숙해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고 적지 않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서서, 참을성 없이, 때로는 애원하며, 또 때로는 윽박지르면서 10초 마다 "하스트 두 게마흐트(Hast du gemacht, 아직 멀었어?)라고 물어온다. 그럼에도 몇 주 안에 불편함은 줄어들더니 결국 사라졌고, 그 자리에 익숙함이(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고!) 찾아왔다. 이는 인간에서 동물로의 변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말해주는 자비로운 방식이었다.  135


배설에 대한 강압과 비슷한 것이 바로 나체에 대한 강압이다.  136


공개적이고 집단적인 나체화... 쓸데없는 과도함 때문에 모욕적인 하나의 폭력이었다. ..

의복이 없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인간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차라리 스스로를 땅바닥에 기어다니는 지렁이처럼 벌거벗고 느리고 비천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라도 짓이겨질 수 있다고 느낀다.

포로생활 첫 며칠 동안 숟가락이 없다는 사실은 이와 똑같은 무력감과 박탈감을 불러일으켰다... 숟가락 없이는 매일 죽을 개처럼 핥지 않고는 먹을 수가 없었다.  137


라거의 SS들은 교묘한 악마라기보다는 둔감한 야수들이었다. 그들은 폭력적이 되도록 교육받았다. 

그들의 얼굴에서, 그들의 몸짓과 언어에서 폭력은 새어나왔다. '적'에게 굴욕감을 주고 고통을 겪에 만드는 것이 날마다 하는 그들의 업무였다. 이런 것들에 대해 그들은 이성적 사고를 하지도 않았고, 다른 목적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146-147


하루에 수톤 씩 화장터에서 나온 인간의 재는 대개 치아나 척추 뼈가 들어 있었기 때문에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습지대를 메우기 위해, 목조 건물의 벽 사이에 넣을 단열재로, 심지어 인산비료로 말이다. 특히 수용소 옆에 위치한 SS 군의 마을길을 포장하는데 자갈 대신에 사용되었다. 나는 이것이 순전한 냉담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 재의 출처 때문에, 곧 그것이 짓밟아야 할 재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151


트레블링카의 전(前 앞전) 사령관 프란츠 슈탕글과 지타 세레니의 긴 인터뷰(<그 암흑 속에서>, 아델피 출판사, 밀라노, 1975)에서 발췌한 다음과 같은 두 문장 속에 축약되어 있는 것 같다.

"그들을 어차피 다 죽일 것이었는데... 굴욕감을 주고 잔혹행위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나요?" 뒤셀도르프의 감옥에서 종신형에 처해 있던 슈탕글에게 작가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실질적으로 임무를 수행해야 했던 사람들을 길들이기 위해서, 그들에게 자신들이 하고 있었던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다른 말로 하자면 희생자는 죽기 전에 인간 이하로 비하되어야 했다. 죽이는 자가 자신의 죄의 무게를 덜 느끼게끔 말이다. 이것은 전혀 터무니없는 설명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쓸데없는 폭력의 유일한 유용성이라고 하늘에 외치고 있다.  151-152





6 아우슈비츠의 지식인


장 아메리(한스 마이어)는 .. 이탈리아인들은 거의 희귀할 정도로 소수였기 때문에, 게다가 내가 라거에서 마지막 두 달간 기본적으로 내 일을, 화학자로서의 일을 수행했고 이는 훨씬 더 희귀한 경우였기 때문에 그는 나를 잊지 않고 있다고 했다.  157


가스실 선발이나 공중 폭격 같은 결정적 순간들에서뿐만 아니라, 고된 일상 속에서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았다. 아메리와 나, 우리 둘 다 그것을 알아차렸다. 종교적 믿음이든 정치적 믿음이든 그들의 믿음이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가톨릭 사제나 개신교 목사, 다양한 정통성을 가진 랍비들, 전투적 시오니스트, 순진한 마르크스주의자 또는 진화된 마르크스주의자,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의 믿음 속에서 구원의 힘을 얻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우주는 우리의 우주보다 더 방대하고, 시간과 공간 속에 더 확장되어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열쇠와 기댈 버팀목이 있었다. 자신의 희생이 의미를 가질 수 있게 해줄 천년왕국의 내일이 있었으며, 천상이나 지상의 어딘가에 정의와 연민이 승리르 거둔(또는, 멀지만 확실한 미래에 승리를 거둘) 장소가 기다리고 있었다. .. 그들의 굶주림은 우리의 굶주림과 달랐다. 그것은 신의 형벌이나 속죄, 봉헌물, 또는 자본주의의 부패의 결과였다. 그들 마음속의 고통이나 그들 주위의 고통은 해석 가능한 것이었고, 따라서 절망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연민의 눈길로, 때로는 경멸의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들 중 일부는 힘든 노동의 막간에 우리를 전도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어떻게 믿음이 없는 사람이 '시의적절한' 믿음을 단지 시의적절하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받아들이거나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177-178


반쯤 죽은 사람들의 섬들, 아마도 교양 잇는 사람들이었거나 믿음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 질문을 하지 않는 사람들의 섬들, 그런 그들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의미 없고 잔인한 일이다.  179


아메리가 지적하기를, 지식인은(나는 여기서 '지식인'을 젊은 지식인이라고 명시하고 싶다. 아메리와 내가 체포되어 포로생활을 했던 그 시절처럼) 자신의 독서로부터 아무런 냄새도 없고 아름답게 장식된 문학적인 죽음의 이미지를 끌어냈다고 했다. ..

아우슈비츠에서의 죽음은 사소하고 관료적이며 일상적인 일이었다. 언급되지도 않았고 "눈물로 위로를 받지도" 못했다. 죽음 앞에서,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죽음 앞에서 문화와 비문화의 경계는 사라졌다. 아메리는 죽게 될 지에 대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 생각했다고 말한다.

'가스실의 독이 그 효과를 발휘하는 데 필요한 시간에 대해 토론을 벌이곤 했다. 페놀 주사에 의한 죽음의 고통스러움에 대해 짐작해보곤 했다. 뒤통수를 한 대 맞고 죽는 것을 바라야 할까, 아니면 의무실에서 기력이 소진해서 죽는 것을 바라야 할까?' ..

아마도 내가 좀 더 젊고 그보다 더 무지했기 때문에, 아니면 좀 덜 괴로웠거나 죽음을 덜 의식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거의 한 번도 죽음에 바칠 시간을 가져보지 못했다. 나는 다른 수많은 일들로 쉴 틈이 없었다. 빵 조각을 찾는다거나, 무지막지한 노동을 피한다거나, 신발을 덧댄다거나, 빗자루를 훔친다거나, 내 주위의 얼굴들과 징후들을 해석하는 일 따위로 말이다. 삶의 목표는 죽음에 저항하는 최선의 방어이며, 이는 라거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179-181





7 고정관념들


포로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리고 훨씬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가혹한 경험을 한 모든 사람들은) 중간지대가 거의 없이 두 가지 범주로 뚜렷이 나뉜다 곧 침묵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양쪽 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단순화해서 내가 "수치"라고 부른 저 심적 불편함을 더 깊이 느끼는 사람들, 자기 자신과 평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 또는 상처라 아직도 화끈거리는 사람들은 침묵한다. 반면 다른 쪽 사람들은 서로 다른 충동에 이끌려 말을 한다(대개는 말을 많이 한다). 그들이 말을 하는 것은 다양한 의식 수준에서 삶의 중심이, 또 좋건 나쁘건 자신들의 전(全 온전할전) 존재에 중요한 획을 그은 사건이 자신들의 포로생활(이미 먼 옛날 일이 되었다 할지라도) 속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자신들이 세계적이고 세기적인 규모의 재판에 증인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며, (이디시어 속담에 있듯이) "지나간 고난을 이야기하는 것은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182


왜냐고 묻는 어떤 질문들에 대답하기가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역사가도 아니고 철학자도 아니며 단지 증인들이다. 어쨌든 인간 만사의 역사가 엄격한 논리적 도식을 따른다고 말할 수 없으며, 모든 변화가 한 가지 이유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없다. 단순화는 학교의 교과서에만 적합한 것이다. 이유들은 많을 수 있고, 서로 혼란스럽게 얽혀 있거나 알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으며, 심지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184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된 나라들에서,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자유를 어떤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하나의 선(善 착할선)으로 생각한다. 자유 없이는 살 수 없고, 자유는 당연하고 명백한 권리이며, 게다가 건강이나 숨 쉬는 공기처럼 공짜로 갖는 것이라고, 이와 같은 선천적인 권리가 거부되는 시대와 장소는 그들에게 멀고 낯설며 이상해 보인다. 따라서 그들에게 감금이라는 개념은 도망이나 저항과 결부되어 있다. 포로의 조건은 부당하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요컨대 탈출이나 반란으로 치유되어야 할 질병처럼 말이다.  184-185


감금과 탈출의 이러한 도식적 이미지는 강제수용소의 상황과는 유사한 점이 거의 없었다. 강제수용소라는 용어를 보다 넓은 의미로 이해해보면(즉, 이름이 만천하에 알려져 있는 절멸 수용소들 외에도, 군인 포로들과 다양한 피억류자들이 있던 수많은 수용소들을 포함하여), 독일에는 노예 상태에 있던 수백만의 외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노동의 피로에 지쳐 있었고, 멸시를 받았으며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또 제대로 입지도 보살핌을 받지도 못한 채 조국과의 접촉으로부터도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그들은 '전형적인 포로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강직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의기소침하고 쇠약해진 사람들이었다.  186


그들은 짐을 실어 나르는 가축들보다도 더 가치가 없었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다. 그들은 빡빡 깎은 머리에 당장에 알아볼 수 있는 꾀죄죄한 옷을 걸쳤고, 빠르고 조용한 걸음을 방해하는 나막신을 신고 있었다.  187


노예 한 명의, 특히 "생물학적 가치가 열등한" 종에 속하는 노예의 도주는 말 그대로 패배한 자의 승리와 신화의 붕괴를 타나내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더 현실적으로 말해서, 각 포로는 세상이 알아서는 안 될 것들을 본 사람이기 때무넹 이는 객관적 피해이기도 했다.  188-189


탈주자를 산 채로든 죽은 채로든 찾을 때까지, 막사의 동료들이나 때로는 수용소의 모든 포로들은 시간 제한도 없이 며칠이고,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뙤약볕이 내리쬐든 점호 광장에 서 있어야 했다.  189


'그곳'에서의 실제 상황과 개략적으로 책이나 영화, 신화들이 키워낸 현재의 상상력에 의해 표현되는 상황 사이의 간극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이러한 상상력은 치명적인 단순화와 고정관념으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이러한 현상이 가까운 과거에 대한 인식이나 역사적 비극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는 훨씬 더 일반적이고, 타인의 경험을 인지하는 데 잇어 우리가 가진 어려움이나 무능력의 일부를 보여준다. 타인의 경험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또 질적으로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이러한 어려움이나 무능력은 더 심해진다. 우리는 타인의 경험을 '주변'의 경험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아우슈비츠에서의 굶주림이 한 끼를 건너뛴 사람의 배고픔인 것처럼, 또는 트레블링카에서의 탈출이 로마 감옥에서의 탈출과 비슷한 것처럼 말이다. 연구되는 사건들로부터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넓어지는 이러한 간극을 메우는 것은 역사가의 과제일 것이다.  192


불편한 진실은 그 길이 험한 법이다. 

감금과 탈출의 결합과 마찬가지로 억압과 반란의 결합 역시 하나의 고정관념이다. 이것이 전혀 유효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언제나 유효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반란의 역사, 그러니까 '소수의 권력자'에 대항하는 '억압받는 다수'의 아래로부터의 봉기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또 그만큼 다양하고 비극적이다. 승리를 거둔 몇몇 소수의 반란이 있었고 많은 반란들은 패배로 끝났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다른 반란들은 역사에 자취를 남기지도 못하고 일찌감치 진압되었다. ..

어떤 경우든 간에 가장 억압받는 개인들은 운동의 선봉에는 결코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오히려 보통은 대담하고 편협하지 않으며, 개인적으로는 안정적이고 평온하며, 심지어 특권을 누릴 수도 있는 삶을 살 가능성이 있음에도 관대함으로(또는 야망으로) 투쟁에 투신하는 지도자들이 혁명을 이끈다.  194-195


세기말이자 천년의 끝자락을 지나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확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  202





8 독일인들의 편지


나는 특정한 독자를 생각하고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내게 그 들들은 내 안에 들어 있었던, 나를 압도하고 있던 무엇이었고 나는 그것들을 밖으로 쫓아내야 했다. 그것들을 말해야 했다. 아니 지붕 위에서 소리소리 질러야 했다. 그러나 지붕 위에서 소리 지르는 사람은 모두에게 외치는 것이자, 아무에세도 외치는 것이 아니다. 사막에서 외치는 아우성이다. 그 계약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모든 것이 변했고, 내게는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그 책을 물론 아탈리아어로, 이탈리아 사람들을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위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서, 자발적으로든 아니든 인간성에 대한 침해에 동의했던 사람들을 위해서 썼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수신자는, 마치 무기처럼 이 책이 겨냥하고 있던 사람들은 바로 그들, 독일인들이었다.  205


내 임무는 이해하는 것,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소수의 중범죄자들이 아니라 그들, 그 국민들, 내가 가까이에서 본 사람들, 자신들 중에서 SS대원으로 차출된 바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 가운데 믿었던 사람들과 믿지 않으면서도 침묵했던 사람들을, 우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작은 용기, 우리에게 빵 한 조각을 던져주거나 인간적인 말 한 마디를 나지막이 중얼거릴 작은 용기도 없었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206


독자들은 두 부류로 명확히 구분된다. 첫 번째는 기분 좋은 부류이고 다른 하나는 불쾌한 부류이다. 중간에 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전자에 속하는 사람들은 기쁨을 주고 가르침을 준다. 그들은 책을 주의 깊게, 흔히는 한 번 이상 읽은 사람들로, 때로는 작가 자신보다도 더 책을 잘 이해하고 사랑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책을 통해 자신들이 풍요로워졌다고 밝히며, 자신들의 견해와 때로는 비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들은 작가에게 작품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며 흔히는 작가에게 답장 쓸 필요가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지루함을 주고 시간을 낭비하게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과시하며 잘난척한다. 흔히는 서랍 안에 자신의 습작들을 넣어두고 있으며, 담쟁이덩굴이 나무둥치 위로 기어오르듯이 책과 작가 위로 기어올려는 의도를 슬며시 드러낸다. 또는 허세를 부리느라, 아니면 내기를 해서, 아니면 작가의 사인을 받기 위해서 편지를 쓰는 어린이나 청소년도 있다.  222


그녀의 첫 편지에 나는 내 책이 독일에서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내 책을 읽을 필요가 덜 한 독일인들 사이에서였다고 썼다. 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죄 없는 사람들이 뉘우치는 편지들을 내게 보내왔던 것이다. 죄인들은 당연히 침묵했다.  237





결론


모든 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  247


그들은 평균적 인간이었고, 평균적 지능을 가졌으며, 평균적으로 악한 사람들이었다.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그들은 괴물이 아니었으며 우리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된 교육을 받았다. ..

모두가 크든 작든 책임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독일 국민들 대다수는 정신적 나태함 때문에, 근시안적 타산 때문에, 어리석음 때문에, 국민적 자부심 때문에 애초에 히틀러 대장의 "아름다운 말들"을 받아들였다. 히틀러에게 행운이 따른 동안에 그를 추종했고 아무런 가책도 없이 그를 지지했다.

바로 그런 독일 국민들 대다수의 책임도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다.  251-252





부록 - 프리모 레비와 <라 스탐파>지의 인터뷰 : 이해하는 것이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왜 프리모 레비는 문학적 경험을 포함하여 다른 많은 경험을 한 뒤에 다시 이 주제를 선택한 것일까? 진실에 대한 필요 때문이라고 그는 주저 없이 대답한다.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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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모르는 자가 바다를 얕본다. 바다를 얕보는 자, 바다에 데기 마련이었다.  31


은주는 해질녘 놀이터에 익숙한 아이였다. 아이들과 그들의 활기가 빠져나간 자리에도 익숙했다. 어두운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등에 업은 막냇동생을 재우는 일이 갓 여덟 살이 된 그녀의 일상이었으므로, 다섯 살배기 여동생 영주는 가로등 밑에서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두 살 배기 기주는 별사탕 같은 손으로 은주의 머리칼을 마구 잡아당기곤 했다. 은주는 그 따분하고 쓸쓸한 시간을 간절한 기도로 보냈다. 시간이 마구 점프하기를, 하루빨리 어른이 되기를, 그리하여 이 지겨운 집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폐차버스를 개조해서 탁자 몇 개 놓고 막걸리를 파는 왕대폿집도 '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지니네 왕대포'의 여주인 지니는 젓가락장단의 고수였다. '목포의 눈물'을 이난영보다 더 간드러지게 부르는 여자였다. 불망 한복저로기 깃이 다 들릴 만큼 젖가슴이 큰 여자였다. 가슴골로 손이 들어오든, 돈이 들어오든 사내의 것이라면 사양하지 않는 여자였다. 코를 찡긋거리며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어주는 여자였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오리처럼 둥싯둥싯 걷는 여자였다.  18


제 몸 간수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딸에게 제각각 씨가 다른 여동생과 갓난쟁이 남동생을 떠안긴 여자였다. 은주를 낳은 여자였다.

은주는 막내인 기주가 잠들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은주는 지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아마도 도덕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생은 '자유의지'라는 단어를 칠판에 적더니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는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다."

그날 은주는 자신을 꼼꼼하게 평가해봤다. 가진 밑천이 무언지, 잘할 수 있거나, 그럭저럭 해낼 수 있는 일이 뭔지, 무엇을 갖춰야 하고 갖출수 있는지. 손바닥만 한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자신이 배우가 될 재목이 아님을 인정했다. 귀여운 구석이야 있었지만 지나가는 남자를 기절시킬 만큼 예쁘지는 않았다. 수재가 아니라는 건 성적표를 통해 확인했다. 예술이나 운동에도 재능이 없다는 걸, 수업을 통해 깨우쳤다. 그녀는 음치였고, 몸치였고, 일기 한 줄 그럴싸하게 쓰지 못했다. 그러나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니처럼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타고난 근성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 정도면 자신의 미래를 믿을 근거로 충분한 것 같았다.은주는 계획을 세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열여덟 살까지 지니네 왕대폿집에 붙어 있을 것. 지니의 빨강 브래지어를 훔쳐다 팔아서라도 고교졸업장을 손에 쥘 것. 취직에 필요한 자격증을 모두 따둘 것. 취직하면 바로 튈 것. 3년 안에 전세방을 얻을 것. 폐차버스를 돌아보지 말 것.  131-132



그의 손은 은주의 뺨으로 날았다. 은주는 이삿짐 사이로 날아가 떨어졌다. ...

그는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자신이 뭔 짓을 저지를지 몰라 두려웠다. 무작정 걷다가 도착한 곳이 동네 소줏집이었다. 술이 들어가자 한 남자가 기억났다. 술만 마시면 살림을 뒤엎고 처자식을 죽사발로 만들던 구척 거한. 월남에서 돌아온 용감한 '최상상'. ..

은주 표현에 의하면, 통제가 안 되는 그의 왼손은 힘이 남아돌아 어쩔 줄 모르는 '오랑우탄'이었다. 최상사가 그의 몸에 남긴 유전자였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최상사의 아들임을 상기시키는 저주의 징표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최상사처럼 살지 않았다. 다르게 살아왔다고 믿었다.  142-143



아이들 말로, 세령은 '전교생의 왕따'였다. 5년째 다니는 미술학원에서도 외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

그의 세계에 속한 세령과 세상에 속한 세령의 모습이 딴판으로 다르다는 것. 그가 아는 세령은 제 엄마 축소판이었다. 고집 세고, 영악하며, 당돌한 계집애. 세상 속 세령은 지나치게 내성적인 아이였다.  147



난 말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참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야. 내 맘대로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고.  289-290



한 집안의 가장 노릇하는 미래가 제 앞에 있었어요. 그것이 삶이긴 하겠지만 과연 나 자신일까, 싶었던 거죠. 나와 내 인생은 일치해야 하는 거라고 믿었거든요.

현수는 자신의 손끝에서 깜박거리는 담뱃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인생과 그 자신이 일치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삶 따로, 사람 따로, 운명 따로,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  323


몇 달 전, 유럽여행을 다녀온 처제부부가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선물이라고 사온 것이 칼바도스였다.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술이라 형부 생각이 나서 샀다고 했다. 그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처제부부가 돌아간 뒤, 은주는 있는 대로 성미를 부렸다. 분노의 몸통은 아니꼬움이었다. '집도 없는 것들이 유럽씩이나 나다니는 정신 나간 행태'에 속이 뒤집혀 있었다.  328



그 시절엔 집안일이 다 내 몫이었어. 동생들 치다꺼리에 집안 청소, 아버지 식사 차려드리는 일. 어머니가 퇴근을 해야 비로소 거기서 해방이 되는 거지. 문제는 내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 일상이 불편해졌다는 거야. 운동을 하고 집에 가는 날마다 죽도록 매를 맞았어.  372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총을 가지면 누군가를 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천성이라고.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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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세상에는 끝없이 무한한 것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주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하지만 우주가 실제로 끝이 없는지에 대해서 나는 여전히 확신할 수 없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7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완전한 바보다.  8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즉 인간은 본질적으로 아주 결함이 많은 존재이며 어리석음 때문에 그 결함을 장점으로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라는, 또한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분야에서 더 많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죽어라 노력하고 잇다고 말이다.  8-9


지난 몇십 년에 걸친 지식의 폭발적 증가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어리석은 존재라는 우리의 확신을 깨는 데 아무런 반증이 되지 못했다.  9


지난 천 년 동안 인간 개개인의 지적 능력은 크게 즈악되지 않았고 단지 지식이 널리 보급되었을 뿐이다.  10





1장 지식 중독


우리는 왜 지능  테스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22


교과과정을 만든 사람들이 학생 평가의 기준을 잘못 설정한 것은 아닐까?

정해진 교육 계획을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을 위한 자리는 없다. 

어리석은 교과과정으로 인해 수많은 가능성들이 묻히고 있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분명히 두 가지의 형태를 지닌다. 하나는 어리석은 교과 형식으로 인해 학생들이 받아야 할 괴로우모가 그 결과로 얻는 저조한 성적이다. 그 성적은 IQ와는 그다지 상관도 없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 사람이 가진 약점이나 장점, 한계와 가능성을 포함하여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이로 인해 파괴되는 것은 학교 생활뿐이 아니다.  28


인간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 사회적 동물이다. 우리는 어떤 행동이 옳고 또 어떤 행동이 그른지를 알려주는 타인에 의해 형성되며 많은 시도와 실패를 겪는 가운데 사회에 적응한다.  30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 오스트리아 작가)은 1937년 어리석음에 관한 대담에서 이렇게 말햇다. 방금 이야기한 두 종류의 어리석음은 사실 근본적으로 다르다. 첫번째 예는 낮은 지능지수가 문제였는데, 현대의 교육이론에서는 이로 인한 사회적 낙인을 우려해 지능이 낮다고 해서 더 이상 '멍청하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두 번째의 사례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인식하기를 거부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무질은 "정직하고 단순한 어리석음이 있는 반면 역설적인 어리석음이 있는데, 이것은 일면 똑똑함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전자는 낮은 지능으로 인한 것이며 후자는 오히려 지능은 높지만 무엇인가가 결여된 것으로서 이런 종류의 어리석음이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31


모든 것이 비교 가능한 수치와 가치로 평가될 때 오히려 교육은 어리석음으로 물들고 잘못된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닐까?  32


푀펠 교수는 "PISA(Programmes for Internationally Student Assessment, 국제학업성취도 프로그램)의 상위 순위에 올리기 위한 방식으로 교육을 전환시킨다는 것은 인간의 수많은 다른 재능들은 썩어가도록 방치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것은 사회를 망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

교육적 관점에서 에른스트 푀펠은 누구나 자신의 영역에서만큼은 남에게 조롱당하지 않을 정도의 깊이 있는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자기 분야와 동떨어진 영역에서도 위축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식견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인문학에 조예가 깊고 그 방면에 전문적이고 심오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연과학이나 수학 혹은 통계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이는 지향적 지식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는 이러한 지향적 지식을 거의 가르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대학 당국의 나태함도 문제지만 가르치는 이들이 어리석은 탓도 크다.  34-35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분석하는 대신 선다형 문제의 답을 찾는 것을 배운다.  40


사람은 제각기 다른 성향과 능력과 재능을 갖고 있다.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그 능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44


사과와 배는 비교가 불가능하다. 다만 기준이 확실할 때 어떤 것이 더 나은지는 말할 수 있다. 과즙으로 따지면 배가 더 맛있다. 식감에서는 사과가 더 나을 수 있다. 하지만 순위를 매기기 시작하면 이 명백한 원칙이 무시된다. 최고의 의사와 최고의 대학, 최고의 휴양지와 최고의 여행 코스 등 실제로 있지도 않은 비교 기준이 활개를 친다.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창의적인 연구진이 많은 대학과 시장에 적합한 현실적 지식으로 무장한 엔지니어들을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을 어떻게 서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  45


사회의 시스템은 알게 모르게 속임수를 부추긴다. 우리는 일정 선을 벗어나지 않는 규격화된 사고 방향으로 헤엄치고 있으며 그러다 보면 진정으로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알려주기란 거의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개척해 나가는 부분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기존 견해를 단순히 반복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단련시키기고 한 단계 앞서 사고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게임을 하듯이 일단 기존 사고에 대한 반대의 논점을 개진해보라. 창의성을 발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50-51


창조의 과저에서 생겨나는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비판과 창조하를 두 가지 측면을 두 개의 창구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우선 새로운 생각과 정의를 정리해서 끝까지 저술한다. 이때는 자유롭고 창의적이며 비정상적인 생각도 과감하게 기술한다. 그런 다음 자신이 저술한 부분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거나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여주어라. 이런 식으로 분리해놓으면 창의성을 발휘할 때에는 비판적 사고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51


칸트가 말한 '자기 마음을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요기를 가져라!' 다른 책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스스로 진실의 정점을 찾아가는 것과 같다. 또한 언제든지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것이 바로 계몽의 핵심이다.'  57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는 것이 많아진다고 무식함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상하리만큼 무지함이 증가한다. 지식이 진보할수록 인간이 알아야 할 근본적인 지식과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한다. 그렇다면 연구 작업을 일절 중단하고 새로운 지식을 철저히 멀리하는 게 좋을까? 이것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58





2장 속도 증가


컴퓨터의 신속한 거래 방식은 이 사회에 어떠한 이익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이로 인해 엄청난 돈을 버는 거래자가 생기기는 했지만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아무런 이익도 챙기지 못했다.  67


시간의 속도와 압력이 지나치게 되면.. '극도의 무기력' 상태에 놓이게 될 것이다. 이것을 '만성 피로로 인한 우울 상태' 혹은 '번아웃'상태라고 부른다.  69


지나치게 패턴화된 행동으로 바쁘다 보니 결국은 쓸데없는 행동만 하는 셈이다. 이는 또한 '극도의 무기력 상태'이기도 하다.  70


극도의 무기력 상태를 경험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복잡함을 줄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몇 개만 골라 거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멈춤의 시간을 가져야 가능하다.  71


빨리 빨리 해서 시간을 절약하는 동안 더 많은 시간이 파괴된다는 것을. .. 20분을 걷는 대신 택시를 타면 시간을 쪼개게 된다. 택시를 잡고 택시에 오르고 운전사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하고 돈을 지불하고 내리고 이 모든 행동들이 필요하다.  72-73


달리는 사람은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이동하는 것밖에 못한다. ..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말해 걸으면서 그 걸음에 집중하는 것이다.  74


사람이 지금 이 순간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며, 어리석기 짝이 없는 속도광의 반대 지점에 서 있다는 뜻이다.  77


이미 2000년 전에 로마의 호라티우스는 송시 11번에 그 유명한 '카르페 디엠' 즉 '오늘을 즐겨라'라는 문장을 남겼다. 오늘은 제대로 쓰고 하루를 창조적으로 보내라. 창조적 생산은 속도에 미친 어리석음에 대항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이기 때문이다.  77


즉각적이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쌓인 것이건, 감정적 반응에는 공통된 부분이 있다. 즉 두뇌 속에 이미 정형화된 패턴으로 기억된다는 것이다. 항상 두뇌 속에 각인되어 있으면서 특정 자극에 의해 분출되는 것이다. 이 분출은 어느 정도의 한계치가 작용한다. 다정한 말 한마디에 곧바로 사랑이 생기지 않듯이 거친 말 한마디가 곧 바로 분노를 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특정 자극이 어느 정도로 계속 쌓이면 감정의 분출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존에 필요한 감정의 경우에는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곧바로 반응이 분출된다. 하지만 그다지 속도가 중요하지 않은 감정의 경우, 분출하는 데는 많은 자극이 필요하다.  82


두뇌 구조가 외부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을 각인이라고 부른다. 이 두뇌의 각인은 감정을 분출하는 한계치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따라 어떤 상황은 편하게 받아들이지만 또 어떤 상황은 충동적으로 강하게 받아들인다. 또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따라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즉 두뇌에 각인된 것 이외에도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83


세상에 즉석 행복이란 없다. 자기 행동을 후회하고 있다면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감정적 안정은 시간을 들여야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조급함은 진실한 감정의 친밀도를 파괴한다.  86


우리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마음에 호소하며 먼 미래에 경고장을 보내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오히려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즉 미래의 모습을 현재에 대입시켜 감정적으로 느껴보는 것이다.  93





3장 편견 


두뇌는 도전을 받는 영역만 발전한다.  103


중요한 문제든 작고 사소한 문제든, 관점을 바꿔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공고한 위치나 확심을 버리기란 쉽지 않다. 또한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생각의 든든한 초석이 꼭 필요하다. 하지만 종종 우리는 자신의 지평을 넘어서서 보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고집스럽고 어리석은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109-110


관점 바꾸기 훈련은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젊은이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 관점을 옹호하는 토론을 해보는 것이다...

저이는 어떻게 저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 또 그 생각들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  122


중요한 것은 자기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한번 서보는 것이다.

한번 해보시라.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창조적 활동의 새로운 원천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23


관점을 바꾸려면 우선 자신이 그 관점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서 한 발짝 물러나서 자신을 새로운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자신의 견해와 편견이 객관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보다 효과적이고 정직하게 다른 사람의 입장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의 견해를 따르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127





4장 친구 중독


다른 사람과 함께할 때의 내 모습이 여러 가지로 다르다는 것은 타인이 내 감정과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타인은 내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을 보완해주고 내 안의 또 다른 모습이 형성되는 데 많은 역할을 한다...

에른스트 푀펠에 따르면 언제 어디서나 똑같은 행동을 한다는 건, 고집스럽다기보다는 오히려 편협함의 신호에 가깝다. 다른 사람이 우리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라는 사실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136


사람의 경험은 후성유전학적 관점에서 볼 때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각인된다. 태아기와 세 살에서 열 살까지, 그리고 사춘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때 겪은 경험과 부모 혹은 조부모의 경험이 한 사람의 유전자가 활성화 혹은 불활성화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외에도 일생을 살며 겪은 트라우마는 후성유전학적 구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후성유전학을 통해 우리는 같은 세포 속에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있음에도 마치 다른 생을 사는 타인처럼 우리의 도플갱어들이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유를 알 수 있다.  141


당신의 선택이 무엇이건, 둘 중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지만 더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당신이 선택한 것이 무엇이건, 당신의 자아는 그로 인해 변화되었다.  141-142


지나친 자기반성은 과잉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자신의 변화를 유머러스하게 바라보고 현재를 즐겨야 한다. 자신 속에 있는 여러 면들, 사랑받지 못하는 모습들과 싸워봤자 소용없다. 그저 그것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의미 있고 나를 더 자유롭게 만드는 길이다.  142


친구 맺기에 대한 욕망의 이면에는 사회적 존재라는 인간의 본성이 도사리고 있다. 진화론적 유산에 의해 우리 인간은 안정감을 위해 친구와 소속 단체를 필요로 한다. 정기적으로 같이 훈련하고 모임을 갖는 스포츠 동호회가 필요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또 어떤 사람들은 늘 같은 사람이 모이는 길모퉁이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선호한다. 나이 든 남자들에게는 정기적으로 앉아 있을 자리가 중요한데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부족 간의 친밀함으로 보이기도 한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며 안전함을 느끼는 것이다.  146


진정한 우정은 서로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상대의 신뢰를 얻는 데 필요한 내적 교류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서로를 알아가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다 관계가 지속되면서 서로에게 유연해지는 시기가 온다. 두뇌는 서로를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받아들이고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낸다.  153


패스트푸드 식의 우정...  167





5장 완벽에의 강박


어째서 사람들은 결정하기를 두려워하는가? 매우 간단하다. 결정한다는 것은 주어진 가능성 중에 하나 혹은 여러 개를 포기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74-175


일을 시작하거나 끝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은 단지 게으름 탓만은 아니다. 실패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이 그 이면에 숨어 있다.  177


우리는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하나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직관이다.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장점과 단점을 사로 비교해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직관은 떠오르는 생각이나 영감 혹은 내면의 소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사실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178


우리가 뭔가를 가슴속에서부터 느낀다는 것은 그 속에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정신적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179


머리와 가슴 중 어떤 것이 더 나은 선택일지를 결정하는 데는 그동안 우리가 경험을 통해 얻은 지식이 큰 역할을 한다.  ...

경험이 풍부할 때 직관은 아주 유용하지만 경험이 적을 때는 그렇지 않다.  180


사이코패스는 외부의 관점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186


결정이란 늘 합리적이면서도 감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때론 강하고 때론 약하게 서로 결부돼 있다. 이때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여러 고려사항이나 요소들이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모든 사항을 의식적으로 일일이 확인하고 지각하기란,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무리다.

물론 그 과정이 복잡하다고 해서 결정을 내리지 않는 건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우리는 합리성과 느낌이 서로 일치할 경우 대체로 올바른 결정이 내려진다는 것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 둘이 서로 다른 결론을 내놓을 경우는 어떻게 될까? 이때에는 시간이라는 제3의 요인을 고려해 봐야 한다.  187


우리 스스로가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아니면 결정이 스스로의 방향을 정하는 것일까? 두뇌 연구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답은 명확하다. 결정이 스스로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의식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무엇'인가가 결정하는 것이다. 결정의 크고 작음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모두는 무의식적인 결정의 과정에 굴복하는 것이다.  194


하나의 결정은 언제나 복잡한 관계의 그물망을 통해 이루어진다. 에른트 푀펠 교수는 이것을 2008년에 펴낸 저서 <타고난 결정자. 기업 운영자의 두뇌 연구>에서 결정에 대한 E-피라미드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198




전략적 목표는 모든 결정을 관통하는 기본 목표를 말하며, 개인적 삶이나 사회생활에서 균형을 찾는 것일 수 있다...

전략적 목표는 분명하게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199


맨 윗부분이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라면 피라미드의 가장 낮은 부분은 인간의 기본적인 조건, 개인적 사회적으로 안정감을 얻을 수 잇는 조건을 가리킨다.  201


E-피라미드의 바탕에는 경제적 이해 부분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는 돈을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으며, 이런 외부 요인과 동떨어진 삶을 살 수 없다.  203


결정을 못함으로써 병이 생기고 불만이 늘어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꾸려가는 데 방해가 된다.  204-205






6장 전문성에 대한 맹신


오늘날 대부분의 주제는 아주 복잡해서 전문가들조차 자기 영역에 속하는 지식의 일부분밖에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229


두뇌 연구 분야의 경우 매년 10만 건 가량의 학술물이 출간된다. ..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해도 겨우 1% 정도밖에 읽을 수 없다.  234


전문가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단지 만나보는 것만으로 그 사람의 실수나 속임수를 간파할 수 있을까? 대답은 예스다. 재정문제나 보험 혹은 인테리어 문제로 전문가를 만나 상담할 때 당신이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자세히 캐물어보라.  240





7장 독서 중독


어째서 독서가 사람을 멍청하게 만단다는 걸까? 

인간에게 내재된 능력이 아닌 인공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읽기 능력은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유전되지 않는다. 읽기 능력을 개발시키기 위해서는 두뇌의 특정 부위가 원래의 목적에서 이탈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시각적인 것을 해석하는 후두엽의 시각 피질 부분이다. ..

알파벳 글자를 읽든 그림글자(픽토그램)을 읽든 두뇌에서는 항상 같은 영역이 원래의 목적과 상관없이 사용된다. 이것을 통해 두뇌는 최선을 다해 개인에 맞도록 최대한의 업적을 달성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독서를 위해 혹사당하고 있다고, 독서 기능을 위해 두뇌는 본래의 감각 정보를 지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착취당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247-248


책벌레인 푀펠 교수는 "독서는 사람을 지적으로 풍요롭게 만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순수한 관점을 앗아가고 그 자리에 간접 경험이 대신 들어앉게 되지요."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더 이상 예전처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요. 시각적으로 내 앞에 열려 있는 다채롭고 풍요로운 세상에 눈을 감은 채 무딘 채로 살아가는 일이 많아요. 눈앞의 색채를 알아보지만 더 이상 경험하지 못하는 겁니다."  249


이자르(뮌헨 지역에 있는 계곡과 강) 계곡의 아름다음을 설명해놓은 가이드북을 들여다보느라고 실제 경관을 놓쳐버리는 관광객과 똑같은 것이다. 이 세상을 간접적이고 보조적인 장치를 통해서 접하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직접 세상을 경험하지 않고 묘사해놓은 것들을 읽기만 하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무엇인가를 할 때도 사람들은 주위를 돌아보는 것을 잊어버린다. 보조 수단이 우리의 눈과 귀, 코를 비롯한 다른 감각들이 제대로 활동하는 것을 막아버리는 것이다.  251


어째서 운전자들은 자기 마음보다 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을까? 아마 그것은 신호와 시각적 보조 장치에 의존해 세상을 보기 시작한 습관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맹목적으로 주어진 질서에만 순응할 뿐 '직접' 자신의 눈으로 마주보려고 하지 않는다.  253


인간의 지식은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명백하게 활자화된 의미론적 지식으로, 쓰기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될 수 있다. 이러한 지식은 순수한 사실만을 다루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별다른 문제없이 공유될 수 있는 지식이다. 하지만 인간의 지식은 또한 그림 지식이라는 형태로도 표현될 수 있다. 살아가는 동안 감정적 인상을 바탕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한 그림이 머릿속에 저장된다. 이는 언어로 전달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마지막으로 암시 혹은 직관적 지식이 있는데, 이는 언어를 넘어서는 부분이다. 우리가 표현할 수 없는 형태의 몸 언어나 두뇌의 알 수 없는 곳에서 진행되는 지식의 유형이기도 하다.  262


우리가 무엇인가를 읽는다는 것은 개인적인 경험으로 그 텍스트에 접근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독자들이 읽는 것은 쓰인 그대로의 내용이 아니라 자신이 세운 뼈대 속의 내용인 것이다. 이러한 뼈대는 독자의 기대나 의견, 편견 등을 먹고 자란다.  269


우리는 작가가 쓴 것과는 달리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비추어 텍스트의 내용을 읽는다. 독자들은 책에 쓰인 내용을 읽는 것이 객관적인 지식을 전달받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 착각이야말로 독서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일 뿐이다.  269-270


'책의 운명은 독자의 손에 놓인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이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기 때문이다.  271





8장 인간


왜, 어째서 왜인가?


1000킬로그램은 왜 1톤인가?

3 곱하기 3은 왜 7이 아닌가?

왜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도는가?

에르나는 어째서 요네가 아니라 에르나인가?

어째서 그 녀석은 나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는가?


어째서 교수는 모든 것을 잘 알고 있는가?

어째서 연미복에는 검정 넥타이를 할 수 없는가?

왜 우린 모든 것을 알 수 없는가?

왜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가?

왜 남자들은 지저분한 농담을 좋아하는가?


왜 우리는 돈을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가?

어째서 가끔씩 자살을 하면 안 되는가?

왜 우린 겨울에 겨울옷을 입는가?

왜 누가 죽으면 웃으면 안 되는가?

왜 사람들은 항상 왜, 라고 묻는가?

 

                             - 에리히 캐스트너  291


집착


아이는 엄마한테 목을 매고

농부는 땅에 

청교도는 루터에

유화는 벽에 

포도송이는 포도덩굴에

개는 주인의 시선에

어떤 사람은 삶에 목을 매고

또 어떤 사람은 밧줄에 목을 맨다.

   

                             - 하인츠 에르하르트  292



누가 알겠는가


열정의 시를 쓰는 사람이라도 

그 마음속에 깃든 것이 다 표현되지 못하듯

신이라 할지라도

그가 상상한 세계는

창조한 세계보다 더 멋진 것이 아니었을지.

            

                              - 에우겐 로스  296


생명의 시작에 대해서는 역시 자연 과학자들도 답변할 수 없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첫 번째 단계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또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아직까지도 커다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300


모든 두뇌에는 크게 세 종류의 신경 세포가 있다. 첫 번째는 외부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투입된 정보를 책임지는 세포다(감각세포 혹은 수용세포), 그 다음에는 근육과 내부기관을 통제하고 관리하면서 외부에 정보를 내보내는 세포로, 이들은 정보의 출력을 책임진다. 마지막으로 이 두 가지 세포 사이에서 정보를 조정하고 이동시키는 역할을 하는 세포가 있다. 일부 신경 해부학자들은 이 신경세포들을 '거대한 중개 정보망'이라고 부른다.  317


관찰의 추상적인 단계(영혼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찰하는 단계)에서 우리는 정신의 레퍼토리를 단 네 개의 기능적 영역으로 묘사할 수 있다. 즉 인식과 기억, 느낌과 의도라는 영역이다. 그 이상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생각 또한 앞서 말한 네 범주에 기초한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이 네 가지 영역이 우리가 '생각'하는 내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331


모듈 형태의 정보 처리 방식은 두뇌의 모든 영역에 해당되며, 이는 배움과 기억에도 적용된다. 어떤 정보를 받아들여 오래도록 기억 저장소에 두려 할 때 두뇌에 자리 잡은 특정 장소의 신경프로그램이 새로운 정보의 저장을 책임진다. 가령 우리가 의식적으로 인용하려는 참고지식의 저장을 위해서는 측두엽 해마부의 기능이 중요하다.  333


여러 문화의 비교 연구를 통해 우리는 세계 어디에서나 인류 공통으로 표정을 통해 드러나는 여섯 가지 기본 감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여섯 가지 감정은 모든 문화에 동일하게 표현되는데, 인간의 유전자 속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표정을 보면 알겠지만 그것은 기쁨과 놀람, 공포와 귀찮음, 환멸 그리고 슬픔이다.  335


정신세계를 더 잘 이해하려면 신경학적으로 서로 다르게 자리 잡은 두 가지 기능 영역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이 기능하는가'라는 내용적 측면과 '어떻게 기능하는가'라는 형식적 측면이다.

내용적 측면은 다시 세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지는데 활동과 집중, 시간적 구성이다. 활동은 소위 두뇌에 '전력 공급'이 됨으로써 정신 활동이 가능해지고 우리가 의식이라는 것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한다. 전력 공급이 없으면 보거나 듣는 것, 기억이나 느낌, 의도나 희망 등을 갖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  340-341


정신건강을 위해 주의 집중을 통제하고 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씩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정신적 사건의 경로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사라지게 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대상에 집중할 수 있는 반면 집중하는 대상에서 마음의 눈을 분리시킬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343


우리 인간에게는 이 세상에서 자기 길을 찾아가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드는 문제가 있는데 바로 단선적 인과관계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문제의 원인을 찾으면서도 하나의 원인을 발견하면 그것에 만족해버린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가진 '병'은 두 모습을 보인다. 하나는 이유에 대한 갈망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원인을 찾았을 때 그것에 만족하는 모습이다.  365


하나의 원인 혹은 하나의 해석 안에 모든 것을 귀결시키는 태도야말로 단선적 인과관계의 좋은 예일 뿐 아니라 학문적 어리석음을 보여주는 예다.

물론 상황을 단순하게 설명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하지만 너무 단순화시키는 것이 문제다.  366


어리석음이 인간 모두가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가 아니라면 이 전 세계적 질병과 싸우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하나의 강구책으로 '상호보완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2500여 년 전에 상호보완을 일종의 생성원리로 설명했다. 그는 모든 만물은 하나이며 서로 반대되는 것도 하나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고대 중국에서도 음양의 개념.  367



우리는 어째서 모든 것에 '왜'라는 질문을 해야 하며 

사물을 '왜'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인간은 어리석게 태어난 존재여서 

아무리 열심히 배운다 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똑똑해지거나 하지 않는다.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항상 모른 채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 중 한 부분이다.  373




옮기고 나서 - 어리석음을 위한 변명


저자들에 의하면 인간의 어리석음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선천적이고 생물학적인 한계에 의한 어리석음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고 쌓아온 경험적, 후천적 어리석음이다.  402


생물학적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주체적이고 자율적인 노력을 통해 어리석음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는 잇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주체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명상이나 자기 반성을 통해 지나치게 외부의 자극에 의존하고 통제받는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도 좋다. 또한 자신의 어리석음을 들여다보고 조롱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되면 어리석음의 함정에 거듭 빠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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