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서평, 책을 가장 잘 기억하는 방법

생각이란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상태입니다. 글이나 말로 구체화하기 전에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습니다.  5


서평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읽은 책을 기억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책을 좀 더 깊이 읽게 되고, 나의 생각과 더 가까이 마주하게 됩니다. 이 과정이 개인적인 독후감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를 생각하는 서평으로 나아갈 때, 또 하나의 이유가 덧붙여집니다. 바로 소통입니다.  6-7




①어떤 책을 ②어떻게 읽었고, ③왜 처천하는지, 이 세 곡짓점을 정리했다면 서평으로서의 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14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듯 책을 읽는 겁니다. 일종의 훑어보기랄까요. 당연히 읽고 나면 남는 게 적겠지요.  20


한나 아렌트가 말한 '무사유의 죄'  21


주입식 교육, 인터넷에서의 편의적 읽기에 길들여진 성인에게 주체적 공부와 글쓰기는 거쳐야 할 숙제입니다.  22


메이지 대학교 사이토 다카시 교수는 <1분 감각>에서

'세상에는 무리해서 끝가지 책을 읽고도 그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것은 출력을 전제로 입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이라면 아무리 입력해도 좀처럼 몸에 익지 않을 것이다. 출력을 하려면 입력과 동시에 가공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들을 때도 그것을 제삼자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을 전제로 듣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키워드와 핵심에 집중해서 들을 수 있다. 입력할 때 어떻게 출력할지도 의식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5


과식하듯 이것저것 들춰보고 다 읽은 듯한 착각에 빠져봤자 3일을 못 갑니다.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체화하기 위해서도 토존과 서평은 필수 입니다. 생각을 진지하게 정리하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37


<기다림>의 작가 하진은 명문장가로 유명합니다. 중국인임에도 완벽한 영문소설을 쓰는 작가죠. 퓰리처상을 받은 그의 문장은 담백하며 유려합니다. 어느날, 우연히 하진의 작품을 담당했던 편집자를 만났습니다. 그의 팬이라는 제게 편집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문장을 100번쯤 고친다고 합니다." 순간, 아찔했습니다. 하진의 치열한 태도에 반하고 만 것입니다. 타고난 재능이 아닌 꾸준한 퇴고로 완성한 문장이니까요. 마치 수행자처럼 자기 문장을 고치는 작가의 얼굴을 떠올리니 뭉클했습니다.  43






책은 최소 두 번은 정성 들여 읽어야 합니다. 1차 독서 후엔 밑줄과 표시를 따로 빼서 정리합니다. 필사나 발췌 연습이 되겠지요. 

1차 독서 후에는 '조사'단계로 들어갑니다. 무엇을 조사할까요? 그렇죠. 이 작품의 배경, 작가 연구, 작품 해석, 언론이나 일반 독자의 서평을 살펴보는 과정입니다. 물론, 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나름대로 해석해보려 했는데 관련 자료와 리뷰에 휘둘린다면 조사 결과를 생략해도 됩니다. 하지만, 다른 리뷰를 보고 오히려 보는 관점이 넓어졌다면 조사 과정을 거쳐야겠지요. 다른 글을 읽으면서도 나의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내 생각을 단단히 곧추세우는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다시 책을 펼 차례입니다. 다시 편 책의 상태는 어떨까요? 1차 독서할 때 밑줄 긋거나 표시하거나 메모한 부분이 있을 수 있겠지요. 자칫 그 부분만 대충 읽게 될 수 있어요. 이땐, 표시한 부분을 다시 보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책의 핵심적인 내용인지 집필 의도가 잘 반영된 부분인지, 아니면 내 생각을 잘 표현한 구절인지 객관적으로 봐야 합니다. 또한 표시하지 않은 부분을 더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밑줄을 치거나 표시를 하지 않은 경우는 공감을 하지 못했거나 어려워서 넘어가게 되니까요. 내가 알지 못하거나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렇게 꼼꼼히 2차 독서를 하면서, 빠른 독자는 서평의 얼개를 짜기도 합니다. 그게 어려운 분들은 2차 독서에서 발견한 이 책의 주요 키워드 혹은 내 서평에 담고자 하는 주제 키워드를 찾으시면 됩니다.  46-47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며 그곳의 교육 현장을 몸소 경험한 박성숙의 이야기도 귀 기울여 들을 만합니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보면 독일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작문 수업이 이루어지고, 단순한 이야기 짓기에서 시작해 학년이 올라갈수록 작품 분석과 비평까지 수업에서 배운다고 합니다. 교사들은 꼼꼼하게 과제를 첨삭하고 평을 달아주며 채점을 하고, 아이들은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연습하고 훈련한 후 대학 시험에 임한다고 합니다.  56


독해 능력은 모든 지적 활동의 출발점입니다.  59


일본의 독서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객관적인 정보를 주는 것이 서평의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의 대표적 인터넷 서평꾼 로쟈 이현우도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객관적인 서평 쓰기를 지향합니다. 이밖에도 신문 매체에 실리는 저널리즘적 서평도 대체로 객관성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북섹션에서 볼 수 있는 서평은 다양한 형태를 띱니다. 한 문단 내용 요약 소개부터 필자의 생각이나 관점이 드러나는 칼럼형 서평까지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62


서평의 3분의 2는 객관적 정보, 나머지 3분의 1은 주관적 평가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우선 서평에서는 책에 대한 정보를 스토리텔링하듯 요약 정리하면 되고, 그 다음에 책에 대한 평가를 덧붙이면 됩니다.  

쉽고 명쾌하게 쓰면 됩니다.  63


글쓰기에도 경험과 훈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줄리아 카메론은 <아티스트 웨이>에서 아침마다 일어나 손이 움직이는 대로 글을 써보라고 권합니다. '모닝 페이지'라고 부르는 이 방법은 글쓰기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자신 속에 잠재된 창의력을 일깨우기도 하지만 글 자체를 더 나아지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77


독후 활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읽은 책은 자신의 사고와 성찰의 영양분이 되지 못할 채 지식의 창고에 무질서하게 쌓여가기만 한 것입니다.  83


책을 읽는 목적은 다양합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정보를 취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책을 읽는 목적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사고를 확장시키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이같은 목적은 결국 책을 읽고 사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유의 순간을 붙잡는 것이 바로 독후 활동입니다.  87


책이나 작가, 독자, 주인공을 데려와 '그들의 언어'로 말을 건네는 것이 바로 서평입니다.  93




서평을 쓰는 이유는 자기 관점을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서평과 관점의 관계는 세 가지로 추릴 수 있습니다. 첫째, 뚜렷한 관점으로 서평을 쓰는 경우. 둘째, 서평을 쓰면서 관점이 정리되는 경우. 셋째, 모호한 관점으로 마무리하는 경우 등입니다. 셋 다 나름의 소득이 있습니다.  99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저자 최진석 교수는 '인문적 통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도대체 인문적 통찰을 하는 관건은 뭐냐? '자기가 자기로 존재하는 일'입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신념을 뚫고 이 세계가 자기 스스로 우뚝 서는 일, 이것이 바로 인문적 통찰을 얻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102



'나의 서평은 신변잡기적인 내용은 거의 없으며, 책의 내용에 관한 정보만을 채워 넣는다. 쓸데없는 것은 생략하고, 유효한 정보만을 압축하여 넣는다. 그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가 없는가, 읽을 가치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요약과 인용을 통해 책 자체로 말한다. 나는 서평을 쓸 때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의 몇 배나 되는 노력을, 소개하려는 책을 고르고 요약하고 인용하는 과정에 쏟아붓는다. 목표는 그 책을 읽고 싶다는 기분이 들게 하여, 펼쳐보도록 하는 데 있다. 사야겠다는 기분까지는 들게 하지 목하더라도 어떤 책인가를 알려주어, 생각지도 못한 지식의 세계를 경험하게 하고, 지적 우주를 확대해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 책을 읽는 즐거움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오호라' 하며 마음속에서 놀라움의 탄성을 지를 수 있게 하는 한 구절을 만났을 때의 기쁨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136-137



서평 쓰기의 팁


① 책 내용을 '전부' 요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②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지 정하라. 할 이야기가 명쾌하지 않은 서평은 단숨에 읽히지 않는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장황한 서평'은 고역이다.

③ 서평 쓰기 전에 밑그림 그리는 작업 즉, 구조 짜는 과정을 거쳐라.

④ 구조를 짜면서 '주제'가 살아 있는지 점검하라. 여기서 말하는 주제는 책의 주제가 아니라 서평의 '주제'다. 왜 이 서평을 쓰는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스스로를 설득시키지 못하면, 독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⑤ 서평의 '제목'에는 하고 싶은 말, 즉 주제가 드러나면 좋다.

⑥ 좋은 글은 고속도로처럼 빠르다. 중간에 '턱턱' 걸리거나, 장황하면 좋은 글이 아니다.  144-145



서평 구조 짜는 법

① 책을 읽은 후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갖는다.

② 생각의 시간을 통해, 서평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 정리한다.

③ 서평에 담고 싶은 키워드를 백지에 정리해본다.

④ 이 중 가장 하고 싶은 말 '한 가지'를 고른다. 나머지 키워드는 과감하게 '축소'한다.

⑤ 몇 단락으로 쓸 것인지, 단락 구성은 어떤 순서로 할 것인지 계획한다.

⑥ 단락 순서가'유기적으로' '매끄럽게' '단숨에' 연결되는지 살펴본다. 

⑦ 만들어 놓은 '구조'가 서평을 통해 하고 싶은 말, 즉 '주제'를 잘 전달하고 있는지를 점검한다.  145-146



퇴고란 글을 더 좋게 만드는 일입니다. 한 번에 좋은 글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글쟁이들도, 작가들도 초고는 '쓰레기'라고 말할 정도로 퇴고는 필수 불가결합니다.  179


퇴고를 잘하기 위해 중요한 또 한 가지 조건은 글을 보는 안목을 높이는 일입니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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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당신과 함게 있으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게, 모든 것이 제대로 된 듯 느끼면서 당신이 없는 것보다 좋아요."  546


".. 난 시도해보고 싶어요. 당신과 나요. 엄청난 실수였다고 생각하면서 끝맺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할 거예요."  547



대수의 법칙과 결합한 확률 법칙에 따르면, 불리함을 극복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으려면 어떤 일을 점점 더 많이 반복해야 한다고 한다.  

더 많이 할수록 성공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엄마에게 설명한것처럼, 때로는 그냥 계속해서 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노먼을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서 이번 주에만 86번째로 공을 던졌다. 노먼은 여전히 그 공을 물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언젠가는 해낼 거라고, 나는 믿는다.  55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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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살의 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확신이 없다. 사실 일자리를 잃을 때까지는 그런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  27


사랑한다면 끝까지 곁에 있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뭐 그런 거?  77



"그쪽은 그쪽이 더 잘 안다고 생각했겠죠. 다들 나한테 뭐가 필요한지 자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해..."  81



투석기로 발사된 돌덩이처럼 완전히 다른 삶 속에 처박히게 되면, 아니 적어도 얼굴이 유리창에 닿아 짜부라질 정도로 심하게 등 떠밀려 남의 인생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게 된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84



세상에는 훨체어를 탄 사람과 같이 다니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이 잇다. 하나는 포장도로 상태가 얼마나 거지 같은가 하는 실감이다. 여기저기 푹푹 파인 데를 엉망진창으로 땜질해 놓았거나 아예 울퉁불퉁하다..

또 하나는 사려 깊은 운전자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보도 진출입로를 아예 막고 주차를 하거나 너무 빽빽하게 차를 붙여 놓아서 실제로 훨체어가 도로를 건널 길이 아예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98



보통 사람의 시간이 있고 병자의 시간이 따로 있다. 시간은 정체되거나 슬그머니 사라져 버리고 삶은, 진짜 삶은, 한 발짝 떨어져 멀찌감치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14



"당신은 지나치게 똑똑해. 지나치게 흥미 진진하고." 그는 나를 보던 눈길을 돌렸다. "인생은 한 번밖에 못 사는 거요. 한 번의 삶을 최대한 충만하게 보내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요."  277


"행복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찾아서 내가 원하는 일이 뭔지를 알아내고, 그 두 가지 일이 가능한 직업의 훈련을 받은 겁니다."

"당신 말만 들으면 참 간단해 보이네요."

"간단해요. 문제는, 굉장히 힘이 든다는 겁니다. 글너데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고 싶지 않은 거죠."  291



"사람들은 대체로 나처럼 사는 게 세상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태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그렇지만 더 나빠질 수도 있어요. 혼자 숨을 쉴 수도 없는 지경이 될 수도 있고, 말도 못 하게 될지도 몰라요. 순환계에 문제가 생기면, 팔다리를 잘라내야 한다는 뜻이죠. 무한정 입원하게 될 수도 있어요. 지금도 사실 산다고 하기엔 형편없는 삶이지만, 클라크.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는지 생각하면... 어떤 날 밤에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진짜로 숨이 안 쉬어지기도 해요."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이런 거 알아요? 아무도 그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거. 아무도 두렵다든가, 아프다든가, 무슨 멍청하고 뜬금없는 감염으로 죽게 될까봐 무섭다는 얘기는 원치 않아요. 다시는 섹스를 할 수 없고 자기 손으로 만든 요리를 다시는 먹을 수 없고 절대 자기 자식을 안아볼 수 없게 되면 기분이 어떨지, 그런 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이 휠체어에 이렇게 앉아 있다보면 가끔 죽도록 답답해져서, 이렇게 또 하루를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해도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고 싶어진다는 걸,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 말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실낱 같은 희망에 매달려 살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 아버지를 사랑하는 내가 용서가 안 돼요. 동생은 이번에도 또 나 때문에 자기가 뒷전이 됐다는 사실 때문에 날 원망하고 있지만... 내가 불구가 됐다는 얘기는, 어렸을 때부터 죽 그래왔던 것처럼 나를 제대로 미워할 수도 없다는 뜻이죠. 우리 아버지는 그냥 싹 다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고, 궁극적으로, 그 사람들은 다 밝은 면만 보고 싶어 하는 거죠. 그래서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해줘야 하는 거고."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정말로 재앙에도 밝은 면이라는 게 있다는 믿음이 꼭 필요한 거죠."  358-359



".. 그 친구가 행복하기를 세상 그 무엇보다 바라지만 나는... 나는 도저히 그가 하려는 일을 감히 내 잣대로 판단할 수가 없어요. 그건 그 친구가 선택할 일이에요. 그가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444


"아니요. 그 친구가 살면 좋겠어요." 

"하지만.."

"하지만 그 친구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 살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억지로 살라고 하는 건, 당신도, 나도, 아무리 우리가 그 친구를 사랑해도, 우리는 그에게서 선택권을 박탈하는 거지 같은 인간 군상의 일원이 되어버리는 거예요."  445-446



"어떻게든 되겠죠." 내가 말했다. "우리 둘이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을 거예요."

내가뭘 원하는지 깨달은 흐로, 그 말이 내 캐치프레이즈였다.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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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의 목표는 오로지 '집중'하는 것이다.  17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책은 바로 '단순함(simplicity)'이다. 약간의 고요함과 약간의 체계, 그리고 약간의 경외심이 필요할 뿐이다.  18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언제 어디서건, 아끼는 펜이 있건 없건 글을 쓸 수는 있다. 하지만 다음의 기본적인 조건만큼은 인정하고 넘어가자. 

'의자, 테이블, 닫힌 문, 컴퓨터 혹은 노트, 약간의 경외심, 창문을 가릴 커튼, 가볍게 흥분한 두뇌'  21


적당한 모든 공간에서, 그리고 적당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에서도 글을 써보라.  29



일부 시간은 형편없는 글일지언정 반드시 글을 써라.  43


글쓰기는 생각하기, 느끼기, 그리고 갈겨쓰기에 관한 것이며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서도 충분히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53


당신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는 건 꽤나 위험할 수 있다.  62


작가에게 기다림이란 위험하고 치명적인 게임이다. 그러나 기다리지 말고 다음과 같은 규칙을 따라보면 어떨까?

네 시간에 한 번씩, 말하자면 약 먹을 시간이 되면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듯이, 오전 8시와 정오와 오후 4시와 저녁 8시에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자.

"지금 내가 처한 바로 이 상황에서, 15분 동안 글을 쓸 수 있을까?"

만약 대답이 "아니오"라면 왜 안된다는 대답을 했는지 자신에게 설명해보라. 만약 대답이 "그렇다"이긴 한데 글쓰기를 시작하고 있지 않다면 왜 글을 쓸 수 있는데도 쓰고 있지 않은지 물어야 한다. 대답이 "그렇다"이고 글을 쓰고 있다면 스스로에게 솔직히 물어보자. "만약 이런 식의 실험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정말 이 시간에 글을 쓰고 있었을까?"

이 실험을 시도한 사람들은 입을 모아 다음처럼 말한다.

"그렇다고 네 시간에 한 번씩 꼭 글을 쓰지는 않았어요. 솔직히 너무 인위적이고 강압적이잖아요. 제 하루 일과나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면 이루기 힘든 일이죠. 하지만 글쓰기를 더 많이 의식하긴 했어요. 그래서 이 시간제 글쓰기 활동을 하지 않았던 때와 비교하면 확실히 그 전보다는 더 많이 쓰게 되는것 같아요."  62-63


지금 비록 다리미판을 꺼내고 인터넷 뱅킹으로 고지서들을 처리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항상 글쓰기를 내 마음의 가장 앞이나 중심으로 꺼내놓고 있으면 글을 써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63


짧지만 규칙적인 글쓰기 시간을 정해놓으면 어찌 되었건 그 시간에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찾아오고 내면과 대화를 하게 된다.

글쓰기에 대해서 아예 생각하지 않는 것보다는 당연히, 몇 배나 낫다.

소설가인 조안은 말한다. 

"글을 쓰겠다는 목적의식을 계속 품고 있으면 글쓰기가 생활 전면에 더 자주 등장하게 되죠. 하루에도 몇 번씩 다음 문단을 고민하고 틈틈이 머릿속으로 글을 다듬고 내 소설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지 생각합니다. 이런 규칙적인 '목적의식 인식하기'는 자유로이 글쓰기에 대해 생각하고, 실제로 글을 쓰고, 또 글을 계속해서 쓸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65


우리는 삶이 아무 의미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흘러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스피드가 문제가 아니다. 시간도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삶의 질이다. 

글쓰기 공간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꿈을 꼭 붙잡고 글쓰기에 전념하면 시간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74


스승과 제자가 길을 걷고 있었다. 걸어가다 수심이 깊고 빠른 냇가 앞에 다다랐을 때 한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치마를 적시기 싫어서였는지 오도 가도 못하고 있던 그녀는 스승에게 자신을 안고 냇가를 건너달라고 부탁했다. 제자는 그들의 그욕주의적인 신조에 따라 스승이 당연히 안 된다고 말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승은 그녀를 안아서 건네주었다. 스승과 제자는 가던 길을 계속 갔고 제자는 스승이 여자를 안았다는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부러움마저 잃었다. 사원에 돌아오고 나서 제자는 스스엥게 따져 물었다. 

"어떻게 그러실 수가 있지요? 우리는 여자를 만져서도 안 되잖습니까!"

스승은 순진하게 웃어 보였다.

"너는 아직까지 그 여자 생각을 하고 있느냐? 나는 아까 강둑에서 그 여자를 내려주고 왔다. 너는 지금가지 그 여자를 계속 안고 다니고 있구나?"  105


쓸데 없는 잡념에 지배되지 않은 자유로운 뉴런은 차분히 다른 일에 할애할 수 있는 뉴런이다. 모든 뉴런을 다시 돌아오게 하자. 그렇게 하면 우리에겐 침묵의 시간, 실존하는 시간, 상상력이 자유롭게 비상하는 마음의 공간이 생긴다. 

너무 많은 뉴런을 도둑질 당한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이곳에 실재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106


창조적 마음챙김.

당신이 케이크를 먹고 있다고 치자. 이때 마음챙김의 목표는 오로지 케이크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반면 창조적 마음챙김의 목표는 케이크 먹는 일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소설을 계속 쓰는 것이다. 케이크 먹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아니라는 뜻이다.  120-121


자아는 지속적으로 성숙시키지 않는다면 퇴행하게 되어 있다. 우울증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중독이 승리하기 시작하며 상상력은 시들시들해지고 결과물은 줄어들고 소외감은 커지고 절망이 깊어진다.  157



그곳이 당신에게 의미가 있다면, 그곳에서 머물고, 앉아 있고, 바라보고, 걷고, 글을 쓰는 상상이 당신 마음을 휘젓는다면 그곳이 바로 글을 쓰기 위해서 꼭 가야 하는 장소이다.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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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는 "위험하게 살아라. 베수비오 화산의 비탈에 너의 도시를 세워라"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평온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베수비오 화산처럼 가혹해지기를 바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과 대결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보다 강하고 깊은 존재로 고양시킬 수 있습니다.  12


근대는 사람들이 겪어야만 하는 운명의 부담을 가능한 한 줄여 주려는 시대입니다. 자연마저도 과학과 기술을 통해서 인간을 위한것으로 길들이고, 사회도 빈곤과 불평등을 줄여서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안락한 삶을 보장하려는 것이 근대의 경향입니다. 또한 근대는 사람들이 투쟁하지 않고 서로를 동정하고 도우면서 평온하게 사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라고 여깁니다.  13


장영희씨는 <노인과 바다>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정신을 상기시킵니다. 스스로 위험한 투쟁을 택하기보다는 남의 전리품을 약탈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하는 상어 떼의 정신입니다. 상어 떼는 노인이 힘겹게 잡은 대어에 달려들어 수비게 그 고기를 뜯어 먹습니다.... 니체는 이렇게 쉽고 안락하게만 인생을 살려는 정신을 '말세인들의 정신'이라고 일컫습니다.  16


저는 이 책에서 니체라면 우리가 사는 것을 버겁게 느끼면서 던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질문들에 어떻게 답했을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많은 살마들은 니체가 주창하는 정신을 예수나 부처가 설파하는 사랑과 자비의 정신으로 해석하곤 합니다. 또한 헝가리의 철학자 루카치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니체가 주창하는 정신을 약한 자들에 대한 지배와 정복을 정당화하는 제국주의의 정신으로 해석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저는 니체가 주창하는 정신은 예수나 부처식의 사랑이나 자비의 정신도 아니고 제국주의적인 정신 역시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약한 자들에 대한 사랑과 동정을 주창하는 근대인들이 망각하고 있는 강건한 정신으로, 고통과 험난한 운명을 자신의 고양과 강화를 위해 오히려 요청하는 패기에 찬 정신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니체가 말한 초인(超人 뛰어넘을초 사람인)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



첫 번째 질문 - 내 인생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을 경멸하라


초조가 세상을 뒤엎고 있다. 

현대인들은 너나없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20


쇼펜하우어,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22


과학은 우리가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를 알려줍니다. 

이에 반해 철학은 우리가 이미 삶 속에서 체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는 것을 확실하게 개념화해서 우리 눈앞에 보여줍니다.  27


'아름다움이란 우리 인간이 자신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세계에 나눠주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40


우리는 흔히 고난과 고통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을 고통스럽게하는 고난이 일어나지 않고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이와 함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43



두 번째 질문 - 의미 있게 살기 위해서 무엇일 필요합니까?

인생, 의미를 찾지 않을 때 의미 있는 삶이 된다


니체는 '인간의 정신은 낙타의 정신에서 사자의 정신으로, 그리고 사자의 정신에서 ㅇ라이의 정신으로 발전해가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47


니체가 말하는 낙타의 정신은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절대적인 진리로 알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정신을 뜻합니다.  48


니체는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는 못한다'라고 이야기했지요. 기존의 가치와 의미가 붕괴된 자리에 남아 있는 가치와 의미의 공백 상태는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기존의 가치와 의미가 무너지고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결여된 상태를 두고 니체는 니힐리즘(nihilism, 허무주의)이라 명명.  50-51


아이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말은 곧 인생을 유희처럼 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어떤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왜 이 놀이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놀이가 재미잇어서 놀 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왜 이 놀이를 해야 하지?'라며 놀이의 의미를 묻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놀이의 재미가 사라졌는데도 계속해서 그 놀이를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 하나의 재미있는 놀이로 여겨지는 사람은 '이 놀이를 계속해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그저 삶이라는 놀이에 빠져서 그것을 즐길 뿐이지요. 우리가 삶의 의미를 묻게 되는 것은 삶이 더 이상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때입니다.  60


중력의 정신이란 우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려는 두려움과 걱정, 시기와 원한과 같은 부정적인 정신을 뜻합니다.  70



세 번째 질문 - 내 맘대로 되는 일은 왜 하나도 없을까?

위험하게 사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운명에 대해서 우리가 취할 수 이쓴 태도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운명의 존재를 부정하면서 인간이 노력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극단적인 자유의지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하면 된다'는 철학이지요. 

그런데 니체는 이러한 극단적인 자유의지의 철학을 '단죄(斷罪 끊을단 허물죄)의 철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자유의지의 철학은 사회적으로 실패한 사람을 단죄합니다. '그대가 실패한 것은 그대의 노력 부족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공부 재능이 없다면 아이에게 주어진 다른 운명적 소질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계발시켜줘야 하고, 이렇다 할 아무런 재능도 없으면 평범하게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자세를 키워줘야 하겠지요.  77-80


두 번째 태도는 숙명론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패배주의로서 모든 것을 운명 타승로 돌리는 태도에 해당합니다. 자유의지의 철학은 사람들을 단죄하지만 숙명론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80


세 번째 태도는 운명을 긍정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역경을 오히려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하면서 험난한 운명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운명애(運命愛 옮길운 목숨명 사랑애)의 철학은 언뜻 보면 자유의지의 철학과 동일한 것 같지만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그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이런 철학은 힘든 운명을 하나의 기회로 승화시키려고 합니다.  81


운명애의 사상에 엄습되었을 때 니체는 그의 책이 거의 팔리지 않을 정도로 전혀 유명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런 자신의 인생에 만족했고 그것을 긍정했습니다.  85



네 번째 질문 - 사람들 사이의 갈등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 

당신의 적을 경외하라


적과 대등하다는 것 - 이것이 대개 성실한 결투의 첫째 전제다. 상대방을 얕보고 있는 경우, 전쟁은 할 수 없다.  103


니체는 강간 등 여러 가지 사회악을 만들어낸다고 해서 성욕을 제거하려 하거나, 경쟁심이 인간들 간의 갈등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경쟁심을 제거하려는 시도는 치통을 막기 위해 치아를 빼버리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라고 말합니다.  111



다섯 번째 질문 - 신을 믿지 않으면 불행해지는 걸까?

당신을 위한 신은 어디에도 없다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 있다! 그리고 신을 죽인 자는 바로 우리다! 살해자들 중의 살해자인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위호할 것인가?' 

'신은 죽었다' 니체의 이 말은 매우 역설적입니다. 신이 인간과 달리 신일 수 있는 이유는 죽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이 죽었다'라는 니체의 말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징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그것은 근대에 들어와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게 되엇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서양의 중세 시대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딪힌 문제들을 신에 의지하여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와서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 합니다. 인간이 겪는 고통은 보통 자연 또는 사회에서 오는 것이지요. 폭우나 가뭄처럼 자연으로부터 오는 재해가 있는가 하면 전쟁이나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고통이 있습니다. 

근대인들은 자연에서 비롯되는 재해에 대해서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또 잘못된 사회구조에서 비롯되는 고통에 대해서는 사회구조의 개혁을 통해서 극복하려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부딪힌 문제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인간의 노력은 많은 부분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고 이에 따라 인간은 신보다는 잣니의 힘을 더 믿게 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근대에 들어와 과학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굳이 신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도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벼락을 신의 진노라고 해석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것을 자연법치겡 따라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또 인류학이나 민속학 같은 사회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굳이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 민족들도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에 따라 그리스도교가 서양 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은 중세 시대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작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두고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119-121


니체는 종교를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죄책감을 강요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힘을 강화시키고 고양시키는 종교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른 하나는 바울이 만들어낸 그리스도교처럼 지상의 힘이나 쾌락을 죄악시하고 끊임없는 회개를 강요하는 종교입니다. 

니체는 종교란 결국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합니다.  135



여섯 번째 질문 - 살아가는 데 신념은 꼭 필요한 걸까? 

신념은 삶을 짓누르는 짐이다


변화하는 세계를 하나의 이론 체계로 완전히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점에서 니체는 체계를 만들려는 의지는 모두 불성실하다고 보았습니다.  166


확신이란 감옥이다. 

가치와 무가치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 아래에 - 그리고 자기 뒤에 - 오백 가지나 되는 확신들을 봐야 한다.  167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것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특정한 종교적 혹은 정치적 이념에 대한 독단적인 확신이 아닌가 합니다.  173


확신은 확신에 사로잡힌 인간을 지탱해주는 기둥이다. 여러 가지 사물들을 보지 않는다는 것, 어떤 점에서도 공평하지 않다는 것, 철저하게 편파적인 입장을 취한다는 것, 모든 가치를 하나의 엄격하고 필연적인 관점에서 본다는 것 - 이것만이 확신에 사로잡힌 인간이 존속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그는 진실한 인간과 진리에 반대하고 그것에 적대하는 자가 된다.  174-175


어떤 독단적인 이념을 확신하는 사람은 자신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이념이 자신의 삶에 확고한 의미와 방향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믿습니다.

어떤 이념을 독단적으로 신봉하는 것은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자신에게 삶의 위안을 주기 때문입니다.  175


니체가 말하는 자유로운 정신은 곧 독단적인 이념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위안을 값싼 위안으로 간주하여 거부하면서 세계와 사물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176



일곱 번째 질문 - 예술이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

예술은 삶의 위대한 자극제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오래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짧게 살더라도 충만하게 사는 것입니다.  187


'인간은 근본적으로는 사물에 자기 자신을 반영시키며, 자신의 모습을 되비추어주는 모든 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오직 인간만이 아름답다'라고, 이것이야말로 모든 미학의 제1의 진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에 상응하여 제2의 진리에 해당되는 것은 '퇴락한 인간 이외에는 아무것도 추하지 않다'라고 니체는 이야기합니다.  193


니체는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감정은 우리가 자신에 대해 느끼는 기쁨과 분리될 수 없다고 봅니다.  195


그는 예술이 삶의 위대한 자극제라고 생각했습니다.  196



여덟 번째 질문 - 죽는다는 것은 두렵기만 한 일일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절정이다


니체는 삶을 사랑하는 자라면 우연하거나 돌연하게가 아니라 자유로우면서도 의식적으로 죽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29



아홉 번재 질문 - 나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너만의 꽃을 피워라


니체는 우리의 타고난 성격과 소질에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스타일을 부여할 것을 요구합니다.  229


사람들은 틀에 맞추어지지 않는 자신을 악한으로 간주했고 되책감에 시달렸습니다.  

'도덕이 삶에 대한 고려나 배려 그리고 삶의 의도에서 비롯되지 않고 그 자체로 단죄하는 한, 도덕은 동정할 여지가 없는 특수한 오류이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해를 끼친 퇴락한 자들의 특이체질이다.'  233


'우리 다른 사람들, 비도덕주의자들은 정반대로 모든 종류의 이해와 파악 그리고 긍정에 우리의 가슴을 활짝 열어 놓았다. 우리는 쉽게 부정하지 앟으며 긍정하는 자라는 점에서 명예를 찾는다. 우리는 성직자와 성직자의 병든 이성의 거룩한 무지가 배격하는 그 모든 것을 필요로 하며 이용할 줄 아는 경지에 갈수록 더 눈이 열리게 되었다.'

니체는 인간을 교육하는 방법을 길들이는 방식과 길러내는 방식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누고 있습니다. 길들이는 방식은 인간을 특정한 틀에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인데, 이런 방식을 인간을 병들게 만들고 위축되게 합니다. 이에 반해 길러내는 방식은 인간의 타고난 소질과 성향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식입니다.  234-235


니체는 '그대 자신이 되어라'라고 말합니다.

우리 자신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는 주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235



열 번째 질문 - 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감정을 다스리는 것을 넘어 몸을 다스려라


우리는 보통의 경우 초인이 아니라 안일을 탐하는 말세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기 극복을 하려면 자기 자신과의 전쟁이 필요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승리다... 전쟁을 일으키는 삶을 살도록 하라! 오래 연명하는 삶에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는 '모든 위대한 것과 충일한 힘은 끊임없는 자기극복을 통해서 형성된다'라고 말합니다.  250


니체는 자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생각을 다스리는 것을 넘어서 신체를 다스려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힘들다고 해서 함부로 눕지 말고 그때마다의 상황에서 요구되는 적절한 자세를 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단순히 감정과 사상을 훈련하는 것으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가장 먼저 설득시켜야만 하는 것은 바로 신체다.'  255


신체를 완전히 우리의 지배 아래 둘 수 있을 때에야 우리는 본능까지 건강하고 기품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본능이 건강한 사람은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도 건강하게 만드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건강한 본능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경쾌하고 가벼우며 필연적이고 자유롭게 건강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257


그는 우리가 고귀한 인간이 되려면 보는 법과 생각하는 법 그리고 말하고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보는 법을 배우는 것'에 대해서 니체는 '눈에 평정과 인내의 습관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성급하게 속단하지 않고 판단을 유보하면서 하나하나의 경우를 모든 측면에서 검토하고 조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258-259


보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람들은 대체로 서두르지 않게 되고, 쉽게 믿지 않게 되며, 낯설고 새로운 것을 접하더라도 우선을 적의를 품은 평정과 함께 그것을 대하게 됩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은 생각하고 쓰는 법인데, 니체는 이것을 '무용을 배우듯'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탁월한 무용수는 섬세하고 우아한 몸짓으로 춤을 춥니다. 그런 몸짓 하나하나를 언어로 표현하기는 불가능하지요. 그런에도 우리가 사유하고 글을 쓸 때에는 사물들이 갖는 섬세한 뉘앙스를 느끼면서 그것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59




에필로그

니체의 시각에서 보면 오늘날의 사회는 거대화되고 있는 반면 그 안의 각 개인은 갈수록 왜소해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사회가 잘 굴러가는 데 필요한 나사 부품이 되는 대가로 안락과 향락을 누릴 수 있는 물자를 받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아무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기 바라는 소심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늘날의 현실을 니체는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대지는 작아졌고, 모든 것을 작게 만드는 '말세인'이 그 위에서 날뛰고 있다.   263-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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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무렵의 우리들은 잊은 것이 많다. 우리의 시간, 우리의 추억, 우리의 꿈, 모두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 뿐이다. 상처를 입으며 버틸 뿐이다. 문제는 상처를 입고서도 상처를 입었는지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이다.  12


글을 쓰자. 글쓰기는 당신이 잊은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당신의 상처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글쓰기는 당신이 잊어버린 시간들을 알려준다.  13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 일대일로 만나는 행위다.  26


내 마음과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글씨기만 한 것이 없다.  28


부딪히면서 배워요. 배운다는 건 그런 거예요. 온몸을 내던지는 것. (오소의 외 <지금은 서툴러도 괜찮아>)  41



바르게 글을 쓰기 위한 기본 실천 사항

1. Cut : 문장 자르기 - 긴 문장 쓰기 말 것.

2. Easy : 쉬운 말 쓰기 - 어려운 어휘, 난해한 수식을 피할 것.

3. Read : 소리 내서 읽어 보기 - 읽을 때 자연스럽지 못한 표현을 지울 것.

4. Rewrite : 고쳐 쓰기 - 잘 썼다고 생각이 들 때도 반드시 다시 써볼 것.  94



사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곧 사전을 찾는 행위다.  109


스토리, 즉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있어야 한다.

1. 사건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 즉,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

2. 앞 사건에 대하여 뒤의 사건이 일어난 이유가 분명해야 한다. 즉,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3. 결말이 있어야 한다. 즉, 글쓴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한다.  142


스토리텔링 글쓰기를 잘하기 위한 왕도는 없다. 좋은 연습 방법 중 하나는 카메라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쇼핑몰, 고궁, 뒷골목에서 찍은 사진 파일들을 출력해놓고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다. 12장의 사진으로 이야기 한 편을 만들어보고, 24, 36장의 사진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라. 저 위의 원칙을 염두에 두고 말이다.(142 페이지의 원칙)  143-144


우리가 글을 쓰기 위해선 글의 재료가 있어야 한다. 글 재료는 오랜 시간 동안의 자료 찾기에서 나온다. 자료 찾기는 연구, 관찰, 사색의 총합이다.  145


무조건 자료를 많이 찾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자기만의 잣대, 룰이 있어야 하며 그 룰을 찾기 위해 질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149


아무 종이나 한 장 펼쳐놓고 자신의 프로필을 써보자. 내가 책을 내서 그 책에 넣을 프로필을 쓴다고 가정하고.  150


자신의 프로필을 써보면 많은 걸 깨닫게 된다. 내가 이렇게 보잘것 없는 사람인가? 내가 이렇게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인가? 나는 뭐하며 살았나?...  151


쓰려면 생각해야 한다. 쓰려면 관찰해야 한다. 내 괴로움에 대해 쓰려면 그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대신에 내 눈앞에 갖다놓고 요모조모 뜯어봐야 한다. 일이 이러저러하게 되어서 내가 이렇게까지 되었다고 쓰려니 저절로 인과관계, 개연성을 따지게 되었다. '가만있자, 이건 좀 오버인데? 응? 이건 그거랑 아무 상관없는 일이잖아.'

글을 쓰면서 자신이 객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자기에 대해 글을 쓰면 자기를 바라보게 된다. 바라보면 보인다.  170


글을 쓰면 다른 사람도 바라보게 된다. 보여야 쓸 수 있다. 가족도 바라보고 친구도 바라본다. 주변 사람들을 가만히 관찰하다 보면 그들이 좀 더 입체적으로 보인다.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왜 그런 어이없는 말로 사람 염장을 지르는지, 왜 사사건건 시비를 걸며 나를 복장터지게 하는지 그 사람을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느끼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상처도 덜 받는다.  171


글쓰기는 내가 살아버린 인생, 살고 있는 인생에 의미를 준다.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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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놈베코)는 어머니의 바통을 이어받아아, 무서운 현실에 대한 화학적 방패를 만드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았다. 하지만 장례식 후에 봉급을 받게 되었을 때, 그녀는 일단 먹을 것을 샀다. 배고픔이 가라앉자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문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 일상이 힘들고, 먹을것이 궁하면, 먹기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먹고나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자본주의는 먹고나면 다시 먹을것을 걱정하게, 먹을것이 풍부해지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생각을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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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했었다. 

실패했었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더 잘 실패하라. -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스티븐 킹(Stephen King, 1947~)은 이렇게 단언한다. " 책을 별로 안 읽는 (더러는 전혀 안 읽는) 사람들이 글을 쓰겠다면서 남들이 자기 글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도 (그리고 연장도) 없는 사람이다."  15


책 읽기는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글쓰기의 동기는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자극하고 촉발하는 것은 다양한 책 읽기이다.  16


읽기와 쓰기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둘은 하나이다. 혹은 왕성한 책읽기는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다.  17


일관된 '맥락'에 따라 책을 골라 읽는 습관을 체득.

맥락의 독서는 보다 높은 차원의 책읽기 방법으로, 두서없이 아무 책이나 읽는 게 아니라 이 책과 저 책의 연관성 아래 책을 읽는 것을 뜻한다.  18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따져 묻고, 자의식에 대한 투명한 인식에 이른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  19


책을 읽는 동안 이야기들은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그렇게 우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온 이야기의 힘에 의해 망각되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여기서 기억이란 바로 삶의 다른 이름이다.

책 속의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 겹쳐질수록 우리 경험의 시공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24-25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 1948~)는 이렇게 말한다. "그 선택은 오히려 틈새와 주름들 안에, 즉 고독, 망각들, 시간의 경계, 열정적인 생활 태도, 응달 지역, 사슴의 뿔, 상아 페이퍼 나이프들 안에 칩거하고자 한다. 그 선택은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속하는, 짧지만 수많은 삶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다." (<은밀한 생> 217쪽)

그렇다. 책읽기에 빠져든 사람들은 고독 속에 칩거하며 저마다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 자들이다.  25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 의 <꿈꿀 권리> 는 그의 미술론을 모은 책으로 예술 작품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29


바슐라르에 따르면, 예술가란 빈둥거리다가 벼락같이 영감이 올 때만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술가란 하루도 쉬지 않고 "인내와 열광의 불가사의한 피륙"을 빈틈없이 직조해내는 사람이다.  33


닥치는 대로, 손에 걸리는 대로,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순서와 체계도 없이 책에 빠져들었던 독서 체험을 해보지 않은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작가들은 작품을 쓰기 이전에 남보다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들이었다." (정수복의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190쪽)  34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도 예술가들에게 있어 '굶주림은 좋은 훈련'이라는 말을 남겼다. "굶주림에 지나치게 연연하지않도록 스스로를 더욱 통제할 필요가 있다. 굶주림은 좋은 훈련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람들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당신은 그들보다 앞서 있다. 그래 맞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앞서 있기 때문에 제때 끼니도 떼우지 못할 형편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가 좀 좁혀져도 나쁠 것 같진 않다." (헤밍웨이의 글쓰기> 96쪽)  46


작가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굶주림을 견뎌라!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만 비로소 작가의 길이 열린다.  49


미국의 농부이자 작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 1934~)가 쓴 <시인이 되는 법>이라는 시의 첫 행은 "앉을 자리를 만들어라."이고, 두 번째 행은 "앉아라. 침묵하라."이다. 

글을 쓸 때 오롯한 고립과 고독은 필수 조건이다.  50


<글 잘 쓰는 기술>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작가와 고양이의 닮은 점들이다.

1. 계속 집중한다.

2.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3. 조용히 사냥한다(즉 기록한다).

4. 독립적이다.

5. 가만히 말없이 오랜 시간을 버틴다.  51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가혹한 풍랑이 자신만을 피해 가는 행운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보다는 웬만한 풍랑에도 끄떡도 하지 않을 단단한 체력과 강인한 심잘을 갖기를 바랄 일이다.  53


인생이란 길을 걷다보면 우회하거나 옆길로 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방황은 성숙에 이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59


당신의 목적지가 저 멀리 있고, 더러는 거기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해 보일지 모른다 해도, 멈추지 말라. 계속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오는 법이다. 다만 계속 걸어가는 법을 잊지 말길 바란다.  60


영국의 실존주의 비평가 겸 작가인 콜린 윌슨(Colin Wilson, 1931~2013)은 자기가 환자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자,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살마을 가리켜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다. '다른 시각에서, 너무 많이, 너무 깊이 세상을 보는'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의이와 진실한 삶을 찾는 탐구의 시작점이라고 말이다.  62


먼저 재능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도 많이. 키플링의 재능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훈련이다. 플로베르가 했던 것처럼 부단히 훈련을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파리에서 사용하는 미터 기준처럼 변하지 않는 절대 양심과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가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작가는 지적이고 이해관계를 초월한 공평무사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한다. 한 사람의 작가 안에 있는 이 모든 자질을 끌어내어 그를 압박하는 모든 세력을 통과하게 하라. 작가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살아남아 자신의 글을 끝내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헤밍웨이의 글쓰기> 16-17쪽)  65


작가로 태어나는게 아니라 작가로 키워진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66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쓸 수 없는 100가지 이유를 대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변명하지 않는다. 오직 묵묵히 쓸 뿐이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모든 것은 글을 통해 말하라. 그리고 학습과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라.  67


독일 철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1882~1950)의 주장처럼 천재의 독창성은 본질적으로 '보는 방식'에 나타난다. 사물이건 경험이건 새롭게 보아야 새롭게 인지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낯선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라!

쓰려고 하는 대상에 대해 오래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만 한 편의 글이 나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아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인 동시에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편향이나 왜곡 없이 더 많이 사랑하라!  

'작가들의 미덕은 그들(선배 작가들)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비굴하게 저지르는 짓을 절대 하지 않는 데 있다. 그들은 세상을 자기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누넹 비친 세상을 글로 옮겨놓는다. 그들의 작품이 솔직하고 활기가 넘치는 이유는 그 어떤 편향이나 왜곡 없이 개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 141쪽)  70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또 다른 덕목은 창의성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익숙한 현실을 낯설고 신기한 곳으로 생생하게 그려내라.

가장 나쁜 것은 관습적 사고에 기대는 것이다. 관습적 사고에 빠진 사람은 구태의연한 발상과 상투적 언어들을 쏟아낸다.

다르게 보기, 엉뚱하게 보기, 낯설게 보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려면 먼저 다양한 책읽기와 다양한 경험을 통한 폭넓은 정보의 감각 입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71


정보의 양과 창의성의 질은 대치으로 맞물려 있다. 학습을 통해 더 많은 인지적 정보를 습득하고, 이것이 쌓여 임계치를 넘어설 때 비로소 정보는 질적 전환을 이루고 여기서 양지르이 창의성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72


글쓰기의 1차 재료는 작가 자신의 경험이다. 특히 실패와 시련과 같은 경험이야말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 삶의 경험들이 들려주는 내밀한 목소리와 뜻밖의 직관, 찰나의 번쩍임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74


글쓰기에서 경험이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것에 관여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7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경험이 삶이고, 삶이 곧 문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해명된' 삶, 따라서 실제로 체험된 유일하게 진정한 삶, 그것은 문학이다." 아니 에르노 역시 이말에 동의하며 "말, 여행, 광경 등, 그 어떤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는 것. 숙고 또한 홀로는 그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 200쪽)  75-76


글쓰기는 한마디로 '웃으면서 하는 전쟁'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치르는 피와 종이와의 전쟁. 그 전쟁이란 곧 작가로서 관습적인 상상력과 사유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창성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후의 일전을 치르러 가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추상 개념들과 관념들을 무작정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구체적 경험에 귀를 기울여라.  77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보면 "당신의 무의식이 하루 1,000자(사실 분량이야 어느 정도이든 큰 상관은 없다) 쓰기에 익숙해지면 백지의 공포는 크게 수그러들 것이다. 규칙적인 글쓰기는 무에서 무언가를 생산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첫날이 지난 후에는 말이다."  79-80


글이 형편없고 엉망이라고 느껴질 때조차 계속 해서 써나가라. 멈추지 않고 꺠속 써나가기, 이게 백지의 공포를 넘어서는 방법이다.  81


나탈리 골드버그(Natalic Goldberg, 1948~)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모든 면모를 기록하고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골드버그가 제안하는 글쓰기 연습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손을 계속 움직여라. 

2. 마음 닿는 대로 써라.

3. 보다 구체적으로 써라.

4.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라.

5. 구두점과 문법은 나중에 걱정하라.

6. 당신은 최악의 쓰레기라도 쓸 자유가 있다.

7. 급소를 찔러라.  81-82


문장을 어렵게 써서는 안 된다. 꼬아서도 안 된다. 어렴풋하게 써서도 안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사실들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에두르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풀어놓아야 한다.  95


문장에서 형용사나 부사를 피하라! 접속사도 빼버려라! 그것들은 마음에 쓸데없는 근심과 허위의식이 있음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생략해도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 것들은 굳이 없어도 그만인 잉여이다. 97


글쓰기는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듯이 문자을 만들어 쌓는 것이다. 문장을 만드는 벽돌이란 곧 생각의 조각들이다. 이 생각의 구조적 배열을 통해 하나의 문장이 탄생한다. 매혹적인 문장은 구조화가 잘된 생각이 매끄러운 언어로 표현될 때 나온다. 즉 문장을 이루는 언어의 선택과 배열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 완벽한 질서는 바로 영감과 명확한 사고에서 나온다.  99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졸작이라도 '쓸 수 있는 용기'이다. 졸작은 누구나 쓸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써라,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101


문장은 간결할수록 좋아진다. 거기에 '힘'을 불어넣으면 문장에 생기가 돈다. 그런 문장을 만드는 '힘'은 진실에서 나온다.  102


작가의 삶은 흔히 '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쓰는 것에 앞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독서와 발견의 시간을 통해 본질을 통찰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한 알의 씨앗이 발아되기 위해 기다려야 하듯이. 하나의 문장, 하나의 아이디어가 착상되길 기다려야 한다. 

그 다음은 착란의 시간이 필요하다. 불행과 농담이 뒤섞이고, 처억과 망각이 삼투하면서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그 어지럽고 어수선한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  111


글쓰기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노동이다.

글쓰기는 몸을 써서 하는 육체노동이다!  115


여행을 떠나라!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다. 떠나보면 알게 된다. 여행이 곧 글쓰기임을.

여행과 글쓰기는 어디서 출발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지만, 어디에 도착할지는 가봐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125


여행의 첫 번째 소득은 습관화된 삶의 양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낯섦 때문에 영감이라는 불꽃이 켜질 것이다. 더불어 익숙한 관습적 이해와 사유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사고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 길 잃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길을 잃었다면, 오히려 그것을 세계의 또 다른 측면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라. 현명한 여행자는 모든 사물을 마치 세상을 처음 만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127


여행은 세계라는 책을 펼쳐서 읽는 것이다. 즉 책읽기란, '떠나지 않고 하는 여행'이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독서가 여행이고, 여행이 독서다."라고 말한다.

"글쓰기와 여행은 언제나 서로를 잡는다. 이 둘은 모두 상상 세계를 향해 떠날 준비를 마쳤거나 모든 가능한 세계를 이미 탐험한 이들, 그러니까 '다른 곳을 열망한 이들'의 부름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장 피에르 나디르 도미니크 외드의 <여행 정신> 112쪽)  128


쓰다 보면 안다, 무엇이 부족한가를. 부족한 것을 알면 그걸 채우면 된다.  133


모든 글에는 필적(筆跡 붓 필,발자국 적)이 남듯이 당신이 쓴 글에도 문체라는 내면의 필적이 남는다. 똑같은 필적이 없듯이 똑같은 문체란 없다. 물론 필적을 위조하듯이 남의 문체를 흉내 낼 수는 있다. 그것은 위조에 지나지 않는다.  135


문체란 자기만의 어조, 자기만의 리듬, 자기만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문장의 특색이다.  136


자신만의 문체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137


좋은 글을 찾아보라. 좋은 글은 글쓴이의 의도가 명쾌하게 드러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좋은 글들을 찾아 읽고 정확한 낱말과 문법에 맞는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하라. 그 한 가지 방법은 글을 필사하는 것이다.  138


좋은 문체는 사유와 감각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정확한 문장에서 비롯된다.  141


쓴다는 것은 제 삶의 공백을 글쓰기라는 노동으로 채워나가는 일이다.

왜 사람들은 쓰질 못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다른 사람이 저를 대단한 사람, 유식한 사람, 좋은 사람, 혹은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44


뭐가 있는 체 해도 아는 체 해도 안 된다. 감정을 조작하지 말고, 보고 듣고 느낀 바대로 담백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솔직하게 쓰는 것이 바로 재능이다.  145


무의식으로 하여금 쓰게 하고, 의식으로 하여금 고치게 하는 것.

'쓰다'라는 동사는 작가들이 따라야 할 궁극의 도(道)이다. 결국 다소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진실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 쓰고야 말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글을 쓴다. 저를 드러내지 못하고, 진실을 감추는 자는 영원히 글을 쓸 수가 없다.  149


작가들은 자기 작업의 결과물에 항상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앞에 쓴 것들을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일은 형벌과도 같다. 작가들은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지우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다시 시도한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대한 실패를 하기 위해서.  152


"나는 일단 어떤 작품을 시작하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없다. 날마나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186 쪽)  153


글쓰기는 더도 덜도 아닌 육체적 행위이다. 몸안에 있는 것들을 몸을 통해 펼쳐내는 것, 이것이 글쓰기이다. 이말인즉슨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몸을 글쓰기에 잘 맞게 '포맷'해야 한다는 뜻이다.  

몸으로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첫째, 말 그대로 몸을 사용 한다는 것이다.  

둘째, 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몸으로 겪은 것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은 것들, 즉 몸에 입력된 감각들로 글을 쓰는 것이다.  156-157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은 감동을 통해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새로운 사유로 읶느다. 즉 무엇이 인간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론적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183


문학은 지식을 주입하지 않고 향유로 독자를 이끈다. 문학은 세상의 대의들과 강령들을 외치지 않고 다만 있는 그것, 즉 삶과 세계를, 혹은 있을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고 보여준다. 현실을 깐깐하게 따지고, 양심에 따라 고발하고, 모두가 대의라고 믿고 따르는 것을 의심하고 물음을 던진다.  186


미국의 지성이자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문학은 (여기서 저는 단순히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자의식이고, 회의고, 양심의 거릮미이고, 깐깐함입니다. 또한 (이번에도 역시 그럴 뿐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노래고, 자발성이고, 찬미고, 환희입니다."  187


김연수는 소설을 쓸 때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소설가의 일> 217쪽)  190


헤밍웨이는 "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에게 가장 근본적인 재능은 '빌어먹을 상황들을 발견하는 장치'라고 꼽았던 그는 "글쓰기가 항상 힘들고 종종 불가능했었다."라고 고백했다. 세계적인 작가에게조차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셈이다.  209


소설은 간 길이 아니라 가야 할 길에 대한 선험적 검증이다. 이미 지나온 길을 시시콜콜하게 적는 것은 역사이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여백을 탐색하는 자리이다. 역사가 소설이 되려면 상상과 허구가 섞여야 한다. 지나온 길이 지나갈 길이 되어야 소설이 되는 것이다. 역사 소설은 단순히 지나온 과거나 역사의 재현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것을 다시 보기한 것이다.  227


고양이들은 계파나 조직 따위를 만들 줄도 모르고 항상 독립적으로 생활하는데, 이것이 작가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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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서가를 들여다보면 주인의 흥미와 성격이 보인다. 

캐나다 소설가 로버트슨 데이비스는 말했다. "진정 위대한 책은 어려서 읽고, 커서 다시 읽고, 점심 때 보고, 달빛 아래 다시 봐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내 아이들이 집안 장식은 필요한 만큼의 책꽂이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 작가 애나 퀸들러(Aanna Quindle)



"책은 가구가 아니지만 그만큼 집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는 것은 없다." 19세기 중반 성직자 헨리 워드 비처의 말이다.  



"책이란 무엇인가? 전부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니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보는 눈이다." 에머슨



우리가 평생 동안 읽은 책들은 우리의 취향, 관심사, 과거사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주는데, 그런것을 내보이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비평가 애너톨 브로야드의 말, "나는 책을 빌려줄 때, 결혼하지 않고 남자와 동거하는 딸을 보는 아버지의 심정이 된다."



"책을 친구 삼으라. 그대의 책꽂이가 유원지가 될게 하라." 12세기 유대인 철학자 유다 이븐 티본



미국 성직자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은 <읽지 않은 책들> 에서 책꽂이가 부족해 목수를 불렀을 때의 일을 이야기한다. 목수가 그에게 "정말 이 책들을 다 읽으셨어요?" 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은 도구 상자에 있는 도구들을 다 쓰시오?" 물론 아니다. 도구란 나중에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서재는 읽은 책을 보관해두는 곳이 아니라 필요할 때를 대비하는 공구상자에 가깝다.  



서적광-그는 독서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은 서재를 채우기 위한 사냥을 포기하지 못한다. 책에 대한 열망은 가려운데도 긁을 수 없는 부위와도 같다. 작가 발터 베냐민이 보았듯 "어떤 사람들은 책을 잃어버렸을 때 환자가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책에 대한 욕망 때문에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정신적으로 좀 더 균형 잡힌 수집가들은 관심사를 중심으로 책을 수집한다.  



100여년 전 하버드 대학 총장 찰스 W. 엘리엇은 정전의 개념을 한층 다듬었다. 그는 하루 15분 동안 정선된 책 50권을 읽으면 누구나 훌륭한 '교양 교육'을 받은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그 50권의 책은 이후 하버드 클래식 '5피트짜리 책꽂이' 시리즈로 거듭났다. 여기에는 플라톤, 밀튼, 벤저민 프랭클린, 다윈, 단테, 애덤 스미스,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앤 패디먼은 매력적인 에세이 <서재 결혼 시키기>에서 자신과 남편의 책 정리법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한다. "남편의 책은 문학이라는 지나치게 포괄적인 깃발 아래 자유롭게 뒤섞여 있다. 수직으로 세워진 것도 있고 수평으로 뉘어진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다른 책 뒤에 들어가 있기도 하다. 내 책은 국적과 주제별로 발칸 반도처럼 분열되어 있다."

이런 문제에 간단히 해결책을 제시하자면, 가장 일반적인 해결책은 장르별(예를 들면, 예술, 여행, 과학, 디자인)로 책을 나누고, 같은 장르 내에서 다시 작가명 순으로 정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시 (보기 좋은 쪽이 사용하기 좋은 쪽보다 중요하다면) 새뮤얼 피프스가 자신의 책 3천 권을 정리했던 방법대로 크기별 혹은 색깔별로 정리한다.



독자가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면, 책은 영혼의 음식이다. 

1980녀대 말 이탈리아에서 맥도날드의 확산을 반대하며 슬로푸드 운동을 시작한 카를로 페트리니는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가 아르마니 바지를 입는다 해도 바지가 내 일부가 되진 않는다. 하지만 햄 한 조각을 먹으면 햄이 내가 된다. 그것이 내가 음식에 돈을 쓰는 이유다,"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사무실에서 힘든 한 주를 보낸 뒤, 멍청한 텔레비전 앞에 앉아 괴상한 즉석식품을 먹으며 쉰다. 하지만 이들의 귓가에 들려오는 전자레인지의 '띵'하는 소리, 미리 녹음된 TV의 웃음소리는 정성껏 조리된 찜요리와 잘 쓰인 소설 한 편이 주는 심오한 만족감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소설가 해럴드 브로드키는 좋은 책에 빠지는 것을 연애에 비유하면서, 책 읽기란 "그 경험 안에 파묻혀 있고, 곧 다시 태어난다는 점"에서 임신과도 비슷하다고 햇다. 한 세기 전에 랠프 월도 에머슨은 "책은 치료 효과가 좋고, 가혹하고, 혁명적이고, 믿을 만하다는 점에서 인생으로 치면 부모와 애인, 연애 경험들과 나란히 놓을 수 있다"고 썼다.  



"책이 없는 집은 창이 없는 방과 같다. 책을 살 돈이 있는데도 아이들 주변에 책을 두지 않고 아이들을 키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청소년기에는 감수성이 예민하기 때문에 책이 인생의 진로뿐만 아니라 인성에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탈로 칼비노가 썼듯이, "그것은 미래의 경험에 하나의 츨을 제공하여 하나의 모범, 비교의 대상, 분류의 틀, 가치 척도, 미의 전형을 마련해 준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읽은 책은 내용을 잊어버려도 영향력이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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