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 삶의 투쟁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굳이 내 영혼 깊숙이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밝히자면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다.
호메로스는 내게는 아주 밝게 빛나는 평화로운 눈동자였다. 그는 마치 태양처럼 모든 것을 구원의 빛으로 비춰주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 괴롭고 어려웠던 철학적 문제들에서부터 나를 구원해준 사람이다. 니체는 나를 새로운 고뇌로 풍요롭게 해주었고 내 불행과 아픔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조르바는 내게 삶을 사랑하는 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만일 내게 인도인들이 “구루”라고 하고, 성산(聖山) 아기온오로스(그리스 북부 할키디키 지방에 있는 반도로, 수도승들이 자치권을 행사하는 곳이어서 여자나 동물 암컷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의 수도사들이 “예론다스(‘영감님’이라는 뜻)”라고 부르는 영적(靈的) 스승을 이 세상에서 꼭 한 사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조르바를 선택할 것이다.
조르바는 먹물들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높은 데서 먹잇감을 발견하여 낚아채는 원시인의 시력과, 매일 새벽마다 새로이 떠오르는 창조성, 그리고 매순간 끊임없이 바람, 바다, 불꽃, 여자, 빵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영원한 처녀성을 부여하는 순진무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확신에 찬 손과, 신선함으로 가득한 마음, 마치 내면에 자신의 영혼보다 더 높은 힘을 가지고 있는 듯, 자신의 영혼을 놀려대는 사나이다운 멋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창자보다 더 깊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아니 조르바의 나이 먹은 가슴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 나오는, 구원인 듯한, 거칠고 호쾌하게 껄껄대는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겁에 질린 불쌍한 인간들이 마음 놓고 편하게 살기 위해 주변에 세워놓은 윤리, 종교, 조국과 같은 모든 장애물을 한꺼번에 깨뜨려서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무너뜨리는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7-8

나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나는 한밤중에 욕정의 으르렁 소리를 내며 춤을 추면서, 나에게 도덕과 관습이라는 탈을 벗어던지고 먼 여행을 함께하자고 울부짖는 조르바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벌벌 떨면서 움쩍달싹도 하지 못했다.
나는 많은 순간, 최고의 미친 짓을, 삶의 본질을 “행하라”고 소리치는 내 영혼을 꼭 붙잡고 그렇게 하지 못한 내 삶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조르바 앞에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11




인간의 영혼은 진흙덩어리다. 모호하고 촌스러운 욕망들로 가득하고, 길들여지지도, 다듬어지지도 않고, 아무것도 분명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으며,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만약 예측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들의 이 헤어짐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24-25

“내가 스무 살 때였어요. 올림포스산 아래의 어떤 마을 축제에 갔다가 생전 처음으로 산투리 소리를 듣게 됐지요. ‘왜 그러는 거냐?’ 아버지께서 - 하느님께서 그의 영혼을 용서해주시길! - 내게 물었죠. ‘저는 산투리가 배우고 싶어요.’ ‘뭐라고? 부끄럽지도 않으냐? 네가 집시냐? 악기를 연주하게?’ ‘저는 산투리를 배우고 싶어요……’ 그때 내겐 기회가 되면 결혼하려고 모아둔 비자금이 있었어요. 유치하고 미친 짓이었죠. 혈기 왕성했던 나는 엉큼하세도 결혼을 하려고 했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다 주고 산투리 하나를 샀지요. 그게 바로 이거예요. 나는 이걸 가지고 테살로니카로 가서 ‘레쳅-에펜디’라는 터키인인 산투리 명인을 만났죠. 나는 그의 발아래 엎드렸죠. ‘뭔 원하는 거냐? 그리스 놈아.’ 그가 물었죠. ‘저는 산투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음,  그런데 왜 내 발 앞에 엎드린 거냐?’ ‘저는 수업료를 낼 돈이 없습니다.’ ‘너는 산투리에 대한 열정이 있느냐?’ ‘네,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도 수업료 따위는 받지 않겠다.’ 나는 일 년 동안 그의 곁에서 산투리를 배웠죠.  32

“나도 사람이오. .. 결혼했었죠. 악수를 둔 거죠. 가장이 되고 가정을 꾸렸죠. 애도 낳고요. 고문이었죠. 하지만 산투리가 있으면 됐죠, 뭐.”  33

“빌어먹을 정치!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르는군.” 그가 경멸조로 중얼거렸다.
“조르바, 빌어먹을 정치라니 무슨 뜻이오?”
“보쇼, 왕이니 민주주의니, 국회의원이니, 이 모든 얄팍한 속임수들을!”
조르바의 머릿속에서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이 이미 낡고 철 지난 고물들이었다. 그에게는 전보나 증기선과 철도, 도덕과 조국, 종교가 모두 때 지난 고루한 체제였다. 그의 영혼은 이 시대보다 훨씬 빨리 앞질러 가고 있었다. 39-40

늙어서 이빨이 다 빠진 뒤에나 찾아오는 평정심을 갖게 된 다음에야 올바르고 온전한 생각들을 하게 마련이죠.  47

마을을 지나고 있었는데 아흔 살은 먹은 할아버지가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라고요.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세요?’ 내가 물었죠. 그러자 그 허리가 꼬부라진 할아버지가 나를 보면서 말했죠. ‘얘야,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단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죠. ‘저는요, 매 순간 죽음을 생ㅇ각하면서 행동하죠.’ 우리 둘 가운데 누가 맞는거 같소, 대장?’
..
죽음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과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어쩌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르바가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을 미처 몰랐다.  70

“..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생각하자고요. 밥이 앞에 있으면 밥에 정신을 쏟고, 내일 우리 앞에 우리들의 갈탄이 있을 땐 갈탄에 정신을 쏟읍시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지 맙시다. 알겠죠?”  70

“대장, 어제 우리가 못된 짓을 저질렀어요. 못된 짓을 했다고요! 대장도 웃고 나도 웃고, 그리고 불쌍한 여자는 우리를 바라봤죠! 또 대장이 그렇게 그 여자를 천 살 먹은 호호할멈 대하듯 눈길도 안 주고 떠난 건 창피한 일이에요. 그건 예의가 아니죠, 대장, 인간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되죠. 이런 말 하는 걸 이해해주쇼. 그녀도 약해빠진, 불평꾼 여자란 말이오. 나라도 남아 그녀를 위로했기에 망정이죠.”
“조르바,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모든 여자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은 없다고 믿는 거요?”
“대장, 다른 생각은 절대 없죠! 본 것도 많고 겪은 일도 많고 해본 것도 많고, 그래서 말하자면 배운 것도 많은 이 사람 말 좀 들어보슈. 여자들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란 없다고요. 분명히 말씀드리죠. 여자들은 병약한 존재고 불평꾼이란 말이오. 만일 사랑한다고, 원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당장 울음보를 터뜨려요. 전혀 원하지 않거나 심지어 질색인 남자라도 말이오. 여자가 ‘싫어요’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전혀 별개의 문제예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여자들이란 항상 자기를 봐주고 탐내는 남자를 바란단 말이오. 그 불쌍한 것들은 그걸 원해요. 그러니 그것들에게 자비를 베푸쇼!”  89-90

조르바는 인부들을 다룰 줄 알고 책임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95

내 외할아버지는 크레타 시골에 살았는데 매일 저녁이면 등잔불을 들고 마을을 돌며 혹시 낯선 외지인이 있나 살폈다. 그런 사람을 찾으면 집으로 데려와서 신나게 먹고 마시게 대접하고는, 길고 납작한 의자에 앉아 긴 곰방대를 피워 물었다. 그러고는 손님에게 “자, 이제는 밥값을 치를 때가 됐소.” 하고 말하고는 명령조로 덧붙였다. “뭐든 말해봐요!” “무스토요르기스 할아버지, 대체 무슨 말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당신이 누구고, 어디서 왔고, 어떤 나라를 돌아다니며 당신 눈으로 어떤 것들을 봤는지 모두 다 얘기하슈. 자, 말해보슈.”
그러면 손님은 사실과 꾸며낸 이야기를 뒤섞어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외할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긴 의자에 편안하게 앉은 채로 곰방대를 빨며 그 손님과 함께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손님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으니 가지 마시고, 내일 하루 더 머무슈!”
외할아버지는 한 번도 고향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 이라클리온(크레타의 주도)에도 레팀노(크레타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에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고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그런 곳엘 가야 해? 레팀노 사람이나 이라클리온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우리 집에 와서 머물면 돼지. 내가 외지로 나갈 필요가 어딨어?”  96-97

외할아버지가 등잔불을 밝히고 지나가는 객을 찾아 모셨듯이 나 역시 한 손님을 모셔 떠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 한 끼의 식사 값보다는 훨씬 비싸게 들기는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매일 저녁 나는 조르바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오면 내 맞은편에 앉혀놓고 함께 식사를 하고는 돈을 치를 시간이 되면 그에게 말한다. “말해봐요!” 그러고는 파이프를 피워 물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 손님은 지구 곳곳을 돌아다녔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탐구했기에 나는 조금도 지루한 줄 모르고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르바, 계속하세요, 계속 얘기해요!”
그러면 마케도니아 전체가 내 앞에서 열리면서 조르바와 나 사이의 좁은 공간에 산과 숲과 강 들, 게릴라들과 부지런한 남성같은 여장부들과 강인하고도 무뚝뚝한 남자들을, 또 때로는 성산아기온오로스의 스물한 개의 수도원과 조선소들과 튼실한 엉덩어를 가진 게으름뱅이 수도사들을 펼쳐 놓았다. 성산 아기온오로스의 수도사 이야기를 끝낼 때면 조르바는 옷깃을 세워 몸을 세차게 흔들고 큰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대장을 당나귀 엉덩이와 수도사의 앞에 달린 물건으로부터 보살펴 주시기를……”
매일 밤 조르바가 나를 그리스로, 불가리아로,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의 그리스 이름)로 데리고 가면, 나는 그 장소들을 눈을 감은 채 보았다. 그는 수많은 수난을 겪은 혼란스러운 발칸 반도 지역을 돌아다녔고, 그의 조그만 눈은 마치 매처럼 재빠르게 모든 것을 이 잡듯 다 보았다. 그는 자주 논을 동그랗게 떴는데, 그러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주의하지 않고 보아 넘기는 것들이 그의 앞에서 엄청난 수수께끼로 되살아났다. 가령 그는 지나치는 여자를 보고 몸서리를 치며 멈춰 서서는 물었다. “이건 무슨 조화죠? 여자란 무얼까요? 어떻게 내 머리 꼭지를 돌게 만드는 거죠? 이건 또 뭡니까? 말 좀 해봐요.” 그는 어떤 때는 사람을, 어떤 때는 꽃이 핀 나무를, 또 어떤 때는 시원한 물이 담긴 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르바는 매일같이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 봤다.
한번은 그가 오두막집 밖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다가 몸을 돌려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대장, 이 붉은 액체는 또 뭡니까 말해봐요. 늙은 포도나무 줄기에서 새싹이 나면 시고 시시껄렁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탵양이 이것들을 익히면 꿀처럼 달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그걸 포도라고 부르죠. 그러 밟고 즙을 짜서 통에다 부으면 저 혼자 부글부글 끓어요. 10월이 되어 술 취한 성자 요르고스(11월 2일이 축일인 크레타의 성인. 다음 날인 11월 3일에는 새 포도주 통을 열어 모두에게 맛보게 한다)축일에 통을 열면 포도주가 나오죠! 이건 또 무슨 기적입니까? 그걸 마시면, 그 붉은 액체를 마시면 영혼이 대범해져서 천박한 것들이 더 이상 그 영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하느님한테 도전장을 내죠. 대장, 이게 뭡니까? 대답해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 온 세상이 처녀성을 회복한다. 모든 일상의 것들, 빛바랬던 것들이 하느님의 손을 처음으로 벗어나던 때처럼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강과 바다도, 여자도, 별도, 빵도, 태초의 신비스러운 근원으로 되돌아가고,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수레바퀴가 원초적 힘을 되찾곤 했다.  97-100

어느 일요일, 풍성한 식탁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조르바를 믿고 나의 비밀 계획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조르바는 내 이야기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가끔 화가 나서 머리를 거세게 흔들기는 했지만 내 말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는 내 말 첫마디에 술이 확 깨고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내가 말을 끝내자 그가 신경질적으로 콧수염 두가닥을 뽑아 던지며 말했다.
“날 이해하쇼, 대장. 내가 보기에 대장 머리는 밀반죽인 듯해요. 나이가 몇이오?”
“서른 다섯잉요.”
“아, 그럼 영글긴 영 그른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화가 나서 고집스럽게 말했다.
“당신은 인간을 믿지 않나요?”
“대장, 화내지 마쇼. 나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내가 인간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요. 그러면 아주 귀찮아지죠. 세상이 엉망이 되고 나는 궂은 일에 휘말려들 거예요, 대장.”
그러고는 입을 다물더니 모자를 벗고 머리를 미친 듯이 긁고는 콧수염을 뽑아버릴 듯 세차게 잡아당겼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참고 있는 듯했다. 곁눈질로 나를 몇 번 보던 조르바가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이렇게 소리치면서 화를 내며 지팡이로 돌을 내려쳤다. “사나운 짐승이죠! 당신은 귀하게 자라서 그걸 몰라요. 하지만 내게 묻는다면 대답하죠. 짐승이에요! 인간들을 혹독하게 다루면 그들은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하지만, 친절하게 대하면 당신의 눈알을 빼가죠.
거리를 두셔야 해요. 대장! 사람들 기를 살려주지 마세요. 그들한테 우리는 모두 하나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들은 당장 대장의 권리를 짓밝고, 밥그릇을 빼앗고, 대장이 굶어 죽도록 만든단 말예요. 거리를 두시라고요. 대장! 난 대장이 잘되기만 바랄 뿐이에요.”
“그러면 당신은 아무것도 안 믿는단 말이오?” 내가 화가 나서 항의했다.
“네, 저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며 번이나 말해줘야 해요? 나는 아무것도, 아무도 안 믿어요. 오직 조르바만 믿어요. 조르바가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절대요, 정말 절대로 더 낫지 않죠! 그놈도 짐승이에요. 하지만 내가 조르바를 믿는 까닭은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놈이기 때문이죠. 나는 오직 그놈만을 잘 알 뿐, 다른 것들은 모두 헛것들이에요. 조르바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조르바의 귀로 듣고, 조르바의 위장으로 소화하죠. 다른 모든 것은 다시 강조하지만 헛것이에요. 내가 죽는 순간 모든 것들도 죽죠. 조르바의 세계 전체가 바닥으로 사라지죠!”
“참으로 이기적이네요!” 내가 냉소적으로 비꼬았다.
“그럼 어떡합니까, 대장? 세상이 그런데요. 먹은 대로 싸는 거죠. 나는 조르바고, 조르바답게 말할 뿐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들이 채찍처럼 내몸을 때렸다. 나는 이토록 강인하고 사람들을 그렇게 지겨워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싸우고 인생을 살아갈 기분을 계속 잃지 않는 그가 자랑스럽다.  103-105

진정한 인간은 이처럼 몇 가지 안 되는 물건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108

“엊그제 우리가 한 말을 기억하쇼? 민중을 계몽해서 눈뜨게 한다고요? ..
대장, 사람들을 좀 조용히 내버려두쇼. 그들이 그런 일에 눈뜨게 하지 말아요. 그들이 눈을 뜨면 보게 될게 뭐겠어요? 자신들의 불행과 처참함뿐이죠! 사람들이 눈이 먼 채 꿈을 꾸도록 내버려둬요!”
그가 잠깐 말을 멈추고는 생각에 잠겨 머리를 긁다가 말을 이었다.
“만약에 ….. 만약에 말이에요…..”
“뭐예요? 한번 들어봅시다.”
“만약에 그들이 눈을 떴을 때 대장이 보다 더 좋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럴 자신이 있나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어떤 것들이 무너져 내리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폐허 위에 어떤 것이 세워질지는 알지 못했다. ..
조르바는 나를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물론, 보여줄 수 있죠.” 내가 고집을 피우며 대답했다.
“보여줄 수 있다고요? 그럼 한번 말해보슈.”
“당신한테는 얘기할 수 없어요. 아마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참, 그렇다면 보여줄 수 없는 거예요!” 조르바가 머리를 저으며 대꾸했다. “대장, 내가 뭘 잘못 먹어 바보가 된 줄 아쇼? 대장은 속은 거예요. 나 역시 아나그노스티스 영감과 마찬가지로 배운게 없는 무식쟁이지만 난 결코 그 정도로 바보는 아녜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 그 순진한 인간과 그의 평생 반려자인 순한 마누라가 이해하겠소? 이 세상의 모든 아나그노스티스 영감들과 그 마누라들이 어떻게 그걸 이해한단 말이오? 그네들이 새로운 세상을 볼 것 같소? 그냥 그들에게 이미 익숙하고 길들여진 세상을 그대로 놔두슈. 보다시피 지금까지 잘들 살아왔지 않소. 그냥 살 뿐 아니라 아주 잘살고 있고 자식에 손자들까지 잘 낳고 살아들 가지 않소. 하느님이 그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해도, 그들은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진저!’ 하며 아우성을 쳐대죠. 이 가엾은 자들은 거기에 만족해 안주하는 거예요. 그들을 내버려두고 입을 다무세요.”  116-118

‘이 사람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머리가 타락하지 않았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행하고 겪으면서 정신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고, 태초의 호기를 잃지 않았구나. 이 사람은 그의 고향 선배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우리가 풀지 못하는 모든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한칼에 풀어버리는 구나. 이 사람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땅에 뿌리박고 있으니 절대로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들은 뱀을 숭배한다. 왜냐하면 뱀은 온몸을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기에 대지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뱀은 배로, 꼬리로, 남근으로, 머리로 그 비밀들을 캐낸다. 조르바도 그렇다. 우리 지식인들은 공중에 떠 있는 바보 같은 새들일 뿐이다.’  118

6
“대장이 먹은 게 무언지 말해보슈.” 한번은 조르바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대장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주리다. 어떤 작자들은 먹고 똥과 잡동사니만 만들고, 다른 작자들은 일과 의욕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내가 듣기로는, 하느님을 만든답디다. 인간이란 이 세 불 가운데 하나죠. 나는 말이오, 대장, 최악도 아니고 최고도 아니에요. 나는 중간 부류에 속하거든요. 내가 먹는 음식은 일과 의욕으로 바뀌어요. 그나마 다행이죠!”
이렇게 말하고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장, 당신은 말이오, 아마도 먹은 음식으로 하느님을 만들려고 애쓰는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아 보깨고 있는 거 같소. 대장은 수탉이 당했던 일을 당하고 있는 거요.”
“수탉이 무슨 일을 당했는데요, 조르바?”
“수탉이 말요, 처음에는 수탉ㅊ처럼 제대로 의젓하게 걸었죠. 하니만 어느 날 하루, 겉멋이 잔뜩 들어서는 두루미처럼 위풍당당하게 걷겠다고 선언했죠. 그때부터 이 불쌍한 수탉은 자기 고유의 걸음걸이를 잃고는 균형 감각이 엉망이 돼서 깡충깡충 두 발로 뛰게 됐죠.”  125-126

“대장, 당신은 여자들한테서 뭘 기대하슈? 여자들은 어떤 놈이든 만나는 놈의 아이를 낳아주죠. 그리고 남자들에게선 뭘 기대하슈? 남자들은 쥐덫에 걸려들죠. 모든 게 다 부질없는 일이에요, 대장!”  128

일을 마치고 그 망할 통통한 물개와 수작할 때면 - 그녀에게 행운이 있기를! - 갈탄과 대장에 관한 일 모두를 그녀의 목에 두른 리본에 매달아놓았죠. 나 자신도 그 리본에 매달아버리고 모든 걸 잊죠.  133

나는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내 삶은 실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펀지 하나를 들고서 그동안 읽은 모든 것을,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비워버리고 조르바의 학교에 다시 들어가 위대하고 진정한 알파벳을 배울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갔을 것이다! 내 오관과 피부 전체를 완벽하게 갈고닦아 즐기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뛰기, 싸움, 헤엄, 승마, 노 젓기, 자동차 운전, 사격을 배웠을 것이다. 내 영혼을 살로 채우고, 살을 영혼으로 채워, 드디어 나의 내면의 영원한 숙적인 이 둘을 하나로 화해시켰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잃어버린 내 삶을 기억해냈다. 열린 문 사이로 희미한 별빛 아래서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마치 한 마리 밤새처럼 바다를 응시하는 조르바가 보였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진리를 발견했다. 저 사람이 바로 길이다!’
먼 옛날 창세기 시절 조르바는 앞장서서 도끼로 길을 열던 부족장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영주들의 성을 돌아다니며 영주와 하인, 귀부인 들까지 모두 자신의 두꺼운 입술에 목매게 하는 유명한 음유시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배은망덕한 이 시대에 조르바는 굶주린 늑대처럼 우리 주위를 배회하거나 삼류작가로 전락하여 광대 노릇을 한다.  138-139

“대장, 나는 벌써 흰머리가 났어요. 이빨은 흔들리기 시작했고요. 이제 난 허비할 시간이 없어요. 대장은 아직 젊으니 좀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난 아뇨. 맙소사, 늙어갈수록 난 더 거칠어진다고요! 어떤 작자들이 주저앉아서 나이가 들면 불같은 성질이 죽고 저승스자를 만나도 목을 길게 쭉뻗고 ‘자, 이제 목을 치쇼!내가 성인이 되리다!’하고 말하게 된다고 지껄이죠. 하지만 나 이 조르바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사나워지고 있어요. 나는 절대 포기 안해요. 이 세상을 모두 먹어치우고 싶어요.”  142


7
“몇 번 결혼했어요, 조르바?” ..
“난 사람이 아니오? 나도 그 엄청난 바보짓을 했수다. 모든 기혼 남자들이 내가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에 동의할 거요. 그렇죠, 나도 그 엄청난 바보짓을 저질렀던 말이오. 결혼했었죠.”
..
“대장, 이런 말이 있소. 정식 결혼은 알맹이가 없다! 양념 없는 음식이죠. .. 우리 고향 마을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훔친 고기만이 맛있다.’ 마누라는 훔친 고기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 148-149


8
“비가 오면 마음이 우울해지죠.” 조르바가 말했다. “그러니 비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해요.”
그는 담장 아래쪽으로 몸을 굽혀 갓 피어난 야생 수선화를 꺾어서는 마치 수선화를 처음 보는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탐욕스럽게 살펴봤다. 그러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냄새를 맡다가 한숨을 쉬더니, 내게 그 수선화를 건넸다.
“대장, 우리가 돌과 꽃, 그리고 비가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아마도 우리에게 소리를 치는데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이것들이 못 알아듣고요. 대장, 언제나 이 세상의 귀들이 뚫릴까요? 언제나 우리들 눈이 열려 사물들을 보게 될까요? 언제 우리가 팔을 벌려 돌과 꼬과 사람이 서로 껴안게 될까요? 대장,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소?”
“빌어먹을!” 나는 사랑하는 조르바가 잘 쓰는 말을 골라 대답했다. “빌어먹을! 이렇게 쓰여 있죠. 다른 말은 없고요.”
조르바가 내 팔을 잡았다.
“대장, 좋은 생각이 났어요. 듣고 화내면 안 돼요. 대장이 가지고 있는 모든 책을 한곳에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립시다. 그러면, 혹시 알아요? 대장은 바보가 아니고, 또 좋은 사람이니까…… 그러면 대장도 뭔가를 좀 알게 되지 않을까요?”
‘맞아! 바로 그거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어!’
조르바가 망설이며 생각에 잠기더니 잠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죠. 뭔가를 좀 알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말해봐요, 조르바.”
“난들 알겠어요? 그냥 그렇게 생각될 뿐이죠. 뭔가 알 것 같아요…… 내가 그걸 이야기하려 들면, 엉마이 될 거예요. 언젠가 기분이 내키면 대장한테 춤을 춰서 보여줄게요.”  171-173

마침 그 순간에 한 여인이 젖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내려뜨리고, 까만 치마가 바람에 날려 무릎까지 훤히 드러난 상태로 카페 앞을 정신없이 뛰어 지나갔다. 그 여자는 옷이 착 들러붙어 펄떡거리는 물고기처럼 뇌쇄적인 싱싱한 몸매를 드러낸 채 도발적으로 몸을 흔들며 지나갔다.  176


“대장, 이쯤에서 대장에게 남자 망신시키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요. 신과 같은 악마가 이 맛있는 간식을 보낸 거예요. 이빨도 튼튼하니 그걸 그냥 내버려두지 마세요. 손을 뻗어 가지라고요! 창조주가 왜 우리 손을 만들었겠어요? 잡으라고 만든 거예요. 잡아채세요! ..”
“나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내가 화를 내며 대꾸했다.
..
“문제를 일으킥 싶지 않다고요?” 조르바가 놀란 듯 소리쳤다. “대장, 그렇다면 대체 뭘 원하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산다는 게 원래 문제투성인 거요.” 조르바가 계속 말을 이었다. “죽음은 문제가 전혀 아니고요. 사람이 산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아세요? 허리띠는 느슨하게 풀고, 남들하고 옳다 그르다 시비하는 거예요.”
나는 조르바가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은 나만의 혼잣말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
“너무 계산에 매달리지 마쇼, 대장!” 조르바가 집요하게 추궁했다. “숫자에서 좀 벗어나고, 그 발어먹을 저울을 던져버리쇼. 구멍가게를 때려치우란 말요. 지금이야말로 대장의 영혼을 구할것인지 아니면 파괴할 건지를 결정할 때요. 대장, 들어봐요. 손수건 한 장에다가 지폐가 아니라 눈이 부시게 만드는 금화 2, 3리라를 넣고, 매듭을 묶어서 미미토스 편으로 과부에게 보내쇼. 그리고 미미토스 놈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일러주쇼. ‘갈탄광 사장님이 보내서 왔습니다요. 이건 그분이 보내는 손수건이에요. 별것 아니지만 마음을 담아서ㅓ 보내는 거래요. ..
그렇게 하고는 바로 그다음 날 저녁에 그녀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빠를수록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쇠뿔도 단 김에 빼야죠.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길을 잃었는데 어두워졌으니 등잔불 하나만 빌려달라고요. 음, 아니면 갑자기 어지러워서 그런데 물 한 잔만 얻어먹을 수 없느냐고 하든지요. 더 좋은 건 다른 암양 한 마리를 사서 찾아가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말하세요. ‘부인, 여기 부인께서 잃어버린 암양이 있어요. 제가 찾아냈죠!’ 대장, 들어봐요. 그러면 과부가 보상을 해주기 위해 대장을 집 안으로 들일 거예요. .. 장담하건대, 대장은 말을 탄 채 천국에 들어갈 겁니다. 다른 천국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신부들을 믿지 마세요. 다른 천국은 없으니까요!”  184-186

“.. ‘이런 바보 같은 놈, 어떤 놈이든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는데도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그건 큰 죄를 짓는 거니까. 여자가 ㅊ침대에서 너를 부르는데 안 가면, 넌 영혼을 잃게 되는 거야! 그 여자가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 날에 한숨을 쉬면, 네가 누구든,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요, 그 한숨 소리가 너를 지옥에 빠뜨릴 테니까!’”
조르바가 한숨을 쉬었다.  188-189


9
“.. 예전에 내 별명 가운데 하나가 ‘흰곰팡이’였다고 말한 적 있죠? 왜냐하면 내가 어딜 가든 일을 엉망진창을 만들어버리곤 했기 때문이죠. 그러니 대장 사업도 망할 거예요. 그러니 내가 다시 말하지만 나를 당장 자르란 말예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좋아요, 조르바. 그러니 더 이상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하지만 대장, 나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넘칠 때도 있고, 모자랄 때도 있죠. 언제 그럴지 정확히 알면 얼마나 좋겠소? 어쨌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건 분명해요. 자, 대장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지요. 요즘 며칠 동안 밤이나 낮이나 그 과부 때문에 마음이 편할 새가 없어요. 하늘에 맹세코 나 때문은 절대 아니고요. 그 과부와 어울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난 내가 그녀를 만질 일이 절대 없을 거라는 걸 확실히 알아요. 그 과부는 나하고 맞질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그냥 버려지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녀가 독수공방하는 걸 참을 수 없다고요. 대장, 그건 올바른 일이 아니에요. 내 가슴이 저려온다니까요. 그래서 밤마다 그녀의 집 주위를 서성거렸죠. 그 때문에 내가 밤마다 사라졌던 거고, 대장은 어딜 갔었느냐고 내게 묻는 거고요. 이제 알겠어요? 난 밤이면 그녀가 어디를 다녀오는지, 어떤 놈이 그녀와 함께 뒹구는지 살펴보러 갔었던 거예요. 그러고 나야 편하게 잘 수 있었으니까요.”
나는 웃었다.
“대장, 웃지 마슈! 한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자 모두의 책임이에요. .. 하느님은 스펀지로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하지만 그 죄만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대장, 한 여자랑 잘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놈은 저주를 받아요. 그리고 한 남자랑 잘 수 있었는데도 자지 않은 년도 마찬가지고요. ..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난 환생을 믿지 않아요, 조르바.”
“나도 안 믿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자신이 봉사해야 할 일을 거절한 사람들이 - 그냥 도망자들이라고 합시다 - 그들이 다시 이 땅에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는지 아슈? 노새요, 노새(노새는 새끼를 낳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고 조르바는 입을 다물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고는 즐거워하며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모든 노새들이 그런 얼간이들일 수 있겠네요. 평생 남자로 살면서도 남자 구실 못 했고, 여자로 살면서도 여자 구실 못한 인간들 말예요. 그래서 노새가 된 거고요. 노새들은 그래서 고집이 세고 밤낮으로 발길질해대는 거고요. 대장, 어떨게 생각하슈?”  193-195

“내가 일할 때에는 언제 빵 터질지 모르니 말을 걸지 마슈!” 어느날 저녁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빵 터진다고요? 조르바, 왜요?”
“또 왜냐고 따지슈? .. 나는 일을 할 때 내 전부를 쏟아요. 그러면 나는 바위 위나 지금 내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석탄에 나 있는 금이나 산투리의 줄들처럼 손톰 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팽팽하게 바짝 긴장해요. 그때 누가 나를 살짝 건들거나 말을 걸어 돌아보게 하면 빵하고 터질 수가 있단 말이오. 알아듣겠소?”  200


10
“대장,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외양간에서 태어났다는 걸 믿으슈? 믿는 거요 아니면 세상 사람들한테 사기 치는 거요?”
“조르바, 그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믿지도 않고 안 믿지도 않아요. 조르바, 당신은 믿어요?”
“나도 도대체 뭘 믿는지 모르겠어요. 뭐라 말할까요? 어렸을 때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 난 하나도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은 감동을 느껴 마치 그 이야기들을 믿는 것처럼 울고 웃고 했죠. 수염이 나기 시작하면서, 옛날이야기들을 전혀 믿지 않게 됐고 오히려 비웃었죠. 하지만 나이가 지긋하게 든 지금 나는 노망이 들어서 그 이야기들을 다시 믿기 시작해요. …… 사람이란 알 수 없는 존재라니까요.”  210

“.. 바보같이 굴지 마세요. 언젠가 어떤 과학도가 내게 말해줬는데, 우리가 마시는 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아주 조그만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걸 볼 거래요. 그 벌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고, 물을 못 마시면 목이 말라 갈증으로 죽어갈 거래요. 대장, 현미경을 깨버리세요. 그 괴물 같은 물건을 던져버리라고요. 그러면 벌레들이 당장 사라져서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요.”  212-213

“.. 나의 여선장님이시여, 잘 먹고 마신 이 밤에 이 바닷가에서 제가 당신을 바라보니, 내 눈에 트여서 당신은 커다란 배의 인어이신 듯하군요. 그리고 나의 부불리나여, 나는 당신의 마짐막 항구요. 선장들이 와서 술을 마시는 카페입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요정이시여, 나는 이제 당신의 건강을 빌면서 이 가득 찬 술잔을 비우렵니다!”
마담 오르탕스는 뼛속까지 감동하여 눈물을 펑펑 흘리며 조르바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213


11
음식과 술, 여자, 춤, 이 네가지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필수 요소인데, 조르바는 강단 있는 그 몸뚱어리에 이 모두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은 채 지니고 있었다.  223

“대장, 이건 또 무슨 조환가요?” 조르바가 몸을 돌리며 내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은 온통 뒤죽박죽이에요.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늙은이 같다고 했어요. 그때 나는 신중하고, 말수도 적고, 나이 들어 보이는 굵은 목소리로 말했거든요. 내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들 했죠.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가벼워졌어요. 스무 살 이 되자 나는 철없는 짓거리들을 시작햇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어요. 보통 정도의 및친 짓거리 정도였죠. 마흔이 되자 나는 젊음이 넘치는 걸 느끼면서 진짜 미친 짓을 많이 했죠. 그리고 지금 육심 줄에 들어서자, - 대장, 이건 비밀인데 내 나이가 지금 예순다섯이오, - 하여간 육십이 되자, 정말 날 믿으슈, 대장, 이걸 도무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 세계가 좁아서 나를 받아들이질 못한다우.”
그는 잔을 높게 들더니 자신의 숙녀를 향해 돌아서서는 모든 존경을 다 표하며 정중한 말투로 소리쳤다.
“나의 숙녀시여, 이 잔을 당신의 건강을 위해 바칩니다. 하느님께서 새해에는 다시 이가 돋아나게 하시고, 칼처럼 날카로운 눈썹이 다시 생기고, 피부가 다시 대리석처럼 매끄럽게 되게 하시며 당신 목을 감은 이 안 어울리는 띠를 던져버리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크레타에 혁명이 일어나서, 오 나의 부불리나여, 각기 다른 향수를 부린 곱슬곱슬한 수염이 난 ‘쩨독’들이 지휘하는 세계5대 강대국의 함대가 다시 오기를, 그러면 나의 요정이시여, 당신은 다시 파도 위를 날아다니며 모래를 부르겠죠 - 아, 끝내주네! - 그러면 모든 함대가 이 무시무시한 둥근 바위 사이에서 난파할 거요.
조르바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큰 손을 내밀어 마담의 축처지고 말라비틀어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229-230

이 사람은 사나이다움과 단순함으로 세상과 조화를 이루었고, 육체와 영혼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여자와 빵, 정신, 잠, 이 모든 것이 기꺼이 살이 되어 조르바가 되었다.  238


12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조르바는 이미 없었다. 날씨는 추웠고 나는 별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내 머리 위에 있는 조그만 선반으로 손을 뻗어 내가 좋아해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말라르메의 시집을 꺼냈다. 여기저기를 건너뛰며 천천히 시를 읽었다. 시집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하지만 이내 멀리 집어던졌다. 오늘 처음으로 이 모든 시들이 핏기도, 향기도ㅡ 인간의 본질도 없는, 색바랜 하늘빛을 띤 허공처럼 텅 빈 낱말들로 느껴졌다. 그 시들은 미생물 한마리도 없고, 영양분도 없고, 생명이 결여된 순수한 증류수 같았다.
종교가 힘을 잃으면 그 종교의 신들이 시의 모티프가 되듯이, 아니면 인간의 고독이나 담벽의 장식이 되듯, 이 시들도 그랬다. 흙더미와 씨앗의 범벅이 되어버린 마음속 막연한 욕망은 진부한 지적 장난으로, 공중누각으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다시 시집을 펼쳐 한 번 더 읽어보았다. 어떻게 이 노래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이 노래들은 너무도 순수했다. 이 노래들 속에서 인생은 피 한 방울조차 지탱하지 못하는 투명하고도 가볍기 이를 데 없는 장난으로 변했고, 성적 사랑과 육체의 살, 외침과 같은 인간적인 것들은 야비하고 마무리되지 못한 오염된 존재로서, 정신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비물질화되어 흩어지고, 연금술에 연금술을 거듭하여 지극히 비현실적인 추상적 개념들로 바뀌었다.
어째서 이 아치에 한때 나를 유혹하고 타락시켰던 이 시들이 모두 하나같이 사기꾼의 현란한 줄타기 속임수처럼 보이는 걸까? 문명의 종말은 한결같이 엇비슷하다. 그때가 되면 인간의 고뇌가 - 순수 시나 순수 음악, 순수 지각 등이 - 모두 대마법사의 능수능란한 속임수로 끝난다. 모든 믿음과 망상에서 자유로워진,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마지막 인간, 그가 속한 모든 땅은 숨결이 되고, 그 숨결은 더 이상 뿌리를 내려 영양분을 줄 수도, 취할 수도 없게 된 마지막인간, 그 인간은 씨앗도, 똥도, 피도 다 비워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낱말로, 장난기 어린 율동의 낱말들로 변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인간은 황무지의 끝자락에 앉아 음악을 침묵의 수학적 비율로 해체하고 있다.  239-240

떠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곳 해변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 이곳은 나를 잘 품어주어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욕망이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죽기 전에 더 많은 땅과 바다를 보고 만지고픈 욕망이 나를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249


13
나는 인간은 자기만의 고유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냄새들이 서로 섞이는 바람에 어느 냄새가 내 것이고, 또 어느 냄새가 네 것인지 알지 못할 뿐이죠.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자라는 뻔뻔한 것들은 강아지처럼 촉촉한 코를 가지고 있어 누가 자기들을 애타게 원하고 누가 싫어하는지 냄새로 곧바로 잡아낸다는 것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어느 도시를 가든, 내가 늙은이에다가 못생기고 옷을 초라하게 입고 있어도 계집 두세 명이 내 뒤를 졸졸 쫓아오죠. 아시겠어요? 냄새를 잘 맡는 암캐들이 - 하느님께서 그 계집들을 보살펴주시기를! - 내 뒤를 따라오는 거죠.  263

대장, 내가 대장한테 한번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죠? 각자가 자기만의 천국을 가지고 있다고요. 대장의 천국에는 수많은 책과 아주 커다란 꿀단지가 있을 거고, 다른 사람의 천국에는 포도주와 우조, 코냑 통들이 있을 테고, 또 다른 사람의 천국에는 영국 금화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겠죠. 내 천국은, 색색깔의 치마와 향수 비누, 스프링 박힌 더블 침대, 그리고 내 옆에 암컷 하나가 있는 이 향수 냄새가 물씬 나는 조그만 방, 바로 여기죠.  267

“.. 어제 우리는 카스트로에서 벌어진 축제에 갔었죠. 그런데 악마 놈이 이게 어느 성인을 기리는 축제인지 안 가르쳐줬단 말입니다. 롤라가 - 아 참, 나와 함께 있는 계집을 소개하지 않았군요. 이름은 롤라예요 - 내게 말했죠.
‘할아버지(이 계집이 아직도 나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하지만 애칭으로 부르는 거예요.), 할아버지, 나 축제에 놀라 가고 싶어.’
‘그럼 가봐, 할멈. 가보라고!’ 내가 대답했죠.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랑 같이 가고 싶어.’
‘난 안 가, 지겹거든. 그러니 너 혼자 가봐.’
‘치, 그러면 나도 안 가.’
내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말했죠.
‘안 간다고? 왜? 왜 안 가?’
‘할아버지도 간다면 나도 갈 거야. 하지만 할아버지가 안 가면 나도 가기 싫어.’
‘왜? 너는 자유인이잖아?’
‘아냐, 난 자유인 아냐.’
‘자유인이고 싶지 않아?’
‘아니, 싫어.’
대장, 내가 무슨 말을 하겠수? 나는 놀라 까무러칠 것 같았죠.
‘자유를 바라지 않는다고!’ 내가 소리 질렀죠.
‘나는 자유 싫어, 절대 싫어. 난 자유가 싫다고!’
대장, 나는 이 편지를 지금 롤라의 바에서 롤라의 편지지로 쓰고 있어요. 부탁이니 대장도 잘 생각해보슈. 나는 인간이란 자유를 바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여자는 자유를 바라지 않아요. 그렇다면 여자도 인간 맞나요?
부탁하건대 즉시 답장해줘요. 대장께 사랑의 입맞춤을 듬뿍 보냅니다.
알렉시스 조르바백.”  269-270

조르바의 편지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아니면 인생의 표피층을 다 초월해서 삶의 본질에 다다른 이 원시인을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논리니, 예의니, 명예니하는 인생을 편리하게 해주는 소소한 미덕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심연의 절벽 끝으로 대책 없이 자신을 밀어 넣어 아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편하고 아무도 바라지 않는 미덕만 남아 있었다.
글을 쓸때 참을 수 없는 충동 때문에 펜을 망가뜨리는, 이 무식한 노동자는 유인원에서 갓 벗어난 태초의 원시 인간처럼, 또는 위대한 철학자처럼,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압도당해 그 문제들을 몸으로 직접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또한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이 신기해하며 묻는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기적 같아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무와 바다, 돌, 새를 보면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기적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소리 지른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 나무는, 이 바다는, 이 돌은, 이 새는 무슨 의미를 갖는 거냐고 묻는다.  270-271


14
(아나그노스티스 영감) 그가 말라비틀어진 손을 내 어깨에 얹었다.
“당신은 아직 젊어요. 늙은이 말을 듣지 마시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늙은이 말을 듣는다면 얼마 못 가 망할 거요. 만약 어떤 과부 하나가 당신 앞에 나타나면 그냥 올라타시게!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주절랑 하질 마시게. 고통이란 진정한 사나이들을 위한거니까.”  290-291


16
“가난하면 즐겁게라도 살아야죠.” 조르바가 말했다.  315


17

“내가 말입니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면 어떤 짓을 하는지 아슈?” 그가 말했다. “그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는 그 생각을 안 할 때까지 질리도록 먹고 또 먹고, 포식하고, 과식합니다. 생각만 해도 역겨울 때까지요. 한번은 어렸을 때, 체리가 먹고 싶어 거의 미칠 지경이 된 적이 있어요. 돈이 없으니 조금씩 감질나게 사 먹는데 점점 더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밤이나 낮이나 온통 체리 생각만 나지 뭐예요. 그때마다 침이 질질 흐르고, 정말 고문이었어요. 그러는 내가 창피한 건지, 아니면 내게 화가 난 건지,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체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나를 가지고 놀면서 바보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 어떻게 해야 하지? 밤에 일어나 살금살금 다가가서 아버지 주머니를 뒤졌죠. 은화가 만져지더라고요. 그걸 훔쳤죠. 아침 일찍 일어나 과수원으로 가서 체리 한 광주리를 샀어요. 그리고 구석에 숨어서 먹기 시작했죠. 먹고 또 먹고, 배가 터지도록 처먹었죠. 그랬더니 배가 거북해지면서 구역질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모조리 다 토했죠. 대장, 다 토했다고요. 그러고 나서는 체리에서 완전히 해방됐죠. 다시는 눈길조차 주지도 않아요. 난 자유로운 인간이 됐단 말입니다. 그 후로는 체리를 보면 ‘너하고는 더 이상 별 볼일이 없다’라고 말해주죠. 술도 담배도 마찬가지죠. 아직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지만 내가 바라기만 하면 당장 끊을 수 있어요. 고향이나 조국도 마찬가지고요. 간절히 바라고, 지겨울 때까지 맘껏 즐기고, 토해버렸죠. 그렇게 해서 그것들에게서 벗어난 겁니다.”
“여자는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것도 때가 되면 관두겠죠. 빌어먹을 계집들! 그럴 때가 오겠죠. 일흔쯤 되면 그렇게 될 거요!”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든 듯 말을 바꾸었다.
“여든으로 합시다! 대장, 비웃응시는구려! 하지만 그리 오래 비웃진 못할 거요. 인간이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것뿐입니다. 수도사들처럼 금욕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물 나도록 실컷 즐겨봐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거라고요. 우리가 스스로 악마가 돼보지 않고 어떻게 그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요!”  342-343

“어떤 여자도 이 세상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도록 모든 여자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던 고대의 난봉꾼 신을 뭐라고 부르지요? 내가 들은 말이 있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신은 수염을 염색하고 팔뚝에는 하트와 인어를 문신하고, 깊은 동정심을 갖고, 때로는 황소로, 때로는 백조로, 숫양으로, 당나귀로 둔갑해서 모든 깨끗한 여자들의 정욕을 만족시켰다고 합디다. 그 신 이름이 뭔지 기분 내키면 한번 말해봐요.”
“틀림없이 제우스를 말하고 있는것 같은데 ..”
..
“그 신은 상당히 고통스러워했고 힘들어했죠. 그는 정말 위대한 순교자죠. ..”
..
“나는 오직 그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만 알아요. 그는 정말로 여자들을 사랑했죠. 하지만 엉터리 글쟁이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사랑한 건 절대 아녜요. 절대로 아니죠! 제우스는 여자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느꼈죠. 그는 모든 여자들의 욕망을 다 알고 그녀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어요. 어떤 시골구석에 노처녀가 근심에 빠져 말라 죽어가는 꼴을 보거나, 육감적인 탐스러운 유부녀가 - 아니, 육감적이고 탐스러운 게 아니라 괴물 같더라도! - 남편이 자리를 비워서 잠들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이 동정심 많은 작자가 성호를 긋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그 여자가 생각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꿔서는 그녀 방으로 기어들어가죠.
대장, 내가 단언컨대 절대로 그가 성욕에 사로잡혀서 그러는게 아니었다고요. 대부분의 경우 완전히 진이 다 빠져도 정의감 하나로 버텼죠. 하지만 불쌍한 제우스가 어떻게 혼자서 온 세상을 다 구할 수 있겠습니까? .. 새벽녘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면서 중얼거리곤 했죠. ‘아이구, 언제나 나는 침대에 누워 잘 수 있단 말이오? 난 더 이상 서 있을 수도 없단 말이오!’ 그렇게 말하고는 침을 닦지요.
그런데 갑자기 저 아래 지구 한구석에서 웬 여자 하나가 침대 시트를 박차고 지붕 위로 나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러자 그의 심장은 녹아버리는 것 같았죠. ‘아이고, 아이고, 다시 지구로 내려가자! 다시 내려가야지. 한 여자가 한숨을 쉬니 내려가서 위로해줘야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내려가죠.
하지만 여자들이 그를 너무 혹사해서 급기야 그의 허리가 끊어지고 말았죠. 구토를 하고 온몸이 마비가 되고, 그리고 끝내 숨이 끊어졌어요. 그때 그의 후계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옛신의 형편없는 몰골을 보고 말하죠. ‘여자들을 조심하라.’  380-382


20
내 할아버지는 나처럼 속물에 혼자 제일 잘난 대장이었어요. 이 불경스러운 양반이 ‘거룩한 무덤’(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을 뜻함)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 하지스(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다녀온 그리스도교인이나 메카 성지 순례를 다녀온 이슬람교인을 가리킴)가 되었단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할아버지의 속내를 알고 계셨ㄷ죠. 할아버지가 고향 마을로 돌아오자 염소 도둑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친구 한 명이 말했죠. ‘아이구, 이 친구야, 거룩한 무덤까지 가서 나를 위해 성스러운 십자가의 아주 조그만 조각도ㅗ 안 가져오다니!’ ‘무슨 말이야?’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할아버지가 응수했죠. ‘어떻게 내가 자네를 잊겠는가?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오게나, 그리고 올 때 축성식을 하게 신부님도 모시고 오게나. 그때 내가 그걸 자네에게 주겠네. 그리고 새끼돼지구이와 포도주도 가져오게나. 행운을 위한 거니까!’
할아버지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벌레가 갉아먹은 문짝에서 성냥 머리만 한 크기의 나무 한 조각을 떼어내서는 솜에 싸서 그 위에 기름을 떨어뜨리고 기다렸죠. 조금 있다가 그 친구분이 새깨돼지구이를 짊어지고 신부님과 함게 도착했고요. 신부님이 영대(정교회 신부들이 신성한 의식을 행할 때 목에서부터 다리까지 두르는 긴 천)를 두르고 축성식을 한 뒤에 신성하 ㄴ성 십자가 조각의 전달이 이루어졌고, 그러고는 모두들 새끼돼지고기에 달려들었죠. 그런데 대장, 믿을 수 있겠어요? 그 할아버지 친구는 성 십자가 조각에 경배를 드리고 목에 걸고 다니면서부터는 전혀 딴 사람이 되었대요. 완전히 변했죠. 산으로 들어가서 무장한 클레프테스의 일원이 되어 터키 마을을 기습해 태워버리고, 겁도 없이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곳으로 뛰어들었다네요. 그가 두려울게 뭐가 있었겠어요? 자기 몸에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을 지니고 있으니 납덩어리 총알도 뚫지 못할 테니 말예요.”
조르바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가 말했다. “믿음이 있다면 다 망가진 문짝의 나뭇조각이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이 되죠. 믿음이 없으면 성스러운 십자가 전체라도 망가진 문짝이 되고요.”  386-387

“고지식한 몸뚱어리에, 고지싟한 생각 …… 내가 무슨 얘길 하든 못 알아 들을 거요. 대장, 용서하슈!”
“무슨 말이에요?” 내가 항의했다. “조르바, 나도 알아들어요. 맹세코 다 알아듣난단 말이에요.”
“그럼요, 머리로는 다 알아듣겠죠. 그리고 ‘옳다, 그르다, 그렇지! 안 그렇지! 그건 당신이 옳고, 저건 당신이 틀리고!’ 이렇게 말하겠죠.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나옵니까? 난 말이오, 대장이 말 할 때 대장의 팔과 다리, 가슴을 본다우, 그런데 그것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우. 마치 피가 없는 놈들처럼 말요. 도대체 대장이 그걸 어떻게 이해한단 말요? 머리로 이해한다고요? 풋!”  388

“조국으로부터 벗어나고, 신부들로붙도 벗어나고, 돈으로부터도 벗어나고, 탈탈 먼지를 털었죠. 세월이 흐를수록 난 먼지를 털어냅니다. 그리고 가벼워집니다. 뭔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난 자유로워지고, 사람이 돼갑니다.”
..
“한때는 이놈은 터키 놈, 저놈은 불가리아 놈, 또 이놈은 그리스 놈 하고 구분햇었죠. 대장, 난 조국을 위해서라면 대장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못된 짓을 저질렀다우. 멱을 따고, 약탈하고, 마을을 불태우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온 가족을 몰살하고 …… 왜냐고요? 그건 그들이 불가리아 놈들이고 터미 놈들이었으니까죠. 난 자주 ‘이 악당 놈아, 나가 뒈져버려라! 이 바보 얼간아, 나가 뒈져버리라고!’ 하고 나 자신에게 말하면서 저주를 퍼부었죠. 하지만 대장, 이제는 나도 생각을 좀 하고 사람을 보죠.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저 사람은 나쁜 놈이다. 불가리아인인가 그리스인인가 하는 게 문젭니까? 이제 내게는 다 똑같아요. 이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아닌가만 묻죠. 그리고 정말이지 나이를 먹을수록, 밥을 더 많이 먹을수록, 난 점점 더 아무것도 묻지 않게 됩니다. 보세요, 좋은 놈, 나쁜 놈이란 구분도 잘 맞질 않아요. 난 모든 사람이 불쌍할 뿐이에요. 사람을 보면, 비록 내가 잘 자고 마음에 아무런 시름이 없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누구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그리고 자신만의 하느님과 악마를 모시다가 뒈지면 땅에 쭉 뻗고 누울 거고, 그러면 구더기들이 그 살들을 파먹을 거고 …… 아, 불쌍한 인생!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에요. …… 구더기 밥인 고깃덩어리 들이라고요!
여자들은, 음, 그것들을 생각하면, 어이구 하느님! 난 울음이 나올 것 같아요. 대장은 가끔 내가 여자들을 너무 좋아한다고 놀리곤 하는데, 하지만 여보쇼, 내가 어떻게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수? 여자들이란 약한 존재들이라 자기들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데다, 일단 한번 그년들 젖꼭지를 움켜쥐면, 바로 그 순간에 모든 문이 열리고 그냥 모든 걸 내준다고요.  393-394

“.. 내 얘기도 들어보세요. 조국이란 게 있는 한, 사람들은 야수로 남아 있게 마련이죠.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로요. 하지만 난,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난 벗어났어요. 벗어났다고요, 끝났다고요! 하지만 대장은요?”  396


21
나는 생각했다. ‘남자들이란 얼마나 저항력이 없는 덧없고 어리석고 약한 바보 같은 존재들인가! ..’  412


24
“대장, 말해봐요. .. 이 모든 것들이 무얼 이야기하려는건지 말해봐요. 눈가 이런 짓을 하는 거죠? 또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건 뭐죠?(이 말을 할 때 조르바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에 차 있었다) 왜 우리는 죽는 거죠?”
“모르겠어요, 조르바.”
..
“모른다고요!” 조르바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어느 날 밤엔가 춤을 출 줄 아느냐는 그의 물음에 내가 모른다고 대답했을 때도 그는 저렇게 눈알을 굴렸었다.
그가 잠시 침묵했다가 갑작스레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대장이 읽는 그 빌어먹을 종이짝들은 다 뭐요? 왜 그런 걸 읽는 거요?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뭐에 대해 얘기하는 거요?”
“조르바, 당신이 지금 묻고 있는 것들에 대답하지 못하는 인간의 고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내가 대답했다.
“그런 고뇌는 내가 다 삶아 먹어버릴 거요.” 조르바가 화를 내며 발로 돌을 차면서 말했다.
..
“나는 대장한테서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듣고 싶소. 대장은 그렇게 오랫동안 마법에 대해 연구하느라 야위었잖소. 그러느라 그동안 적어도 3, 4톤의 종이를 쥐어짰을 텐데 결국 어떤 즙을 짜낸 거요?”
..
나는 나의 도반에게 신성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이해시켜보려고 시도했다.
“조르바, 우리는 아주 거인처럼 커다란 나무의 조그만 잎사귀 위에 있는 아주 미세한 벌레에 지나지 않아요.” 내가 대답했다. “지구는 바로 그 나뭇잎이고요. 우리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잎사귀 위를 기어 다니며 절실하게 뭔가를 찾아다니죠. 우리는 그것의 냄새를 맡아보죠. 냄새가 나요, 악취가 납니다. 맛을 봅니다. 먹을 만해요. 그걸 두들겨봅니다. 그러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소리를 질러요.
겁이 없는 몇몇 사라람들은 잎사귀의 가장자리까지 가죠. 그 가장자리 끝에서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귀를 크게 열고, 밑을 내려다보죠. 그 밑은 카오스예요. 무서워서 소름이 끼치죠. 저 아래에는 무시무시한 절벽이 있다고 우리는 지레 짐작합니다. 우리들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거인처럼 큰 나무의 다른 잎사귀들이 내는 속삭임 소리를 듣죠. 그리고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수액이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들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그렇게 심연을 향해 몸을 숙이고 오놈으로, 완전히 공포에 빠졌음을 실감하죠. 바로 그 순간에 ……”
나는 말을 멈췄다. 나는 “바로 그 순간에 시가 시작되죠”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르바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을 멈췄다.
“뭐가 시작됩니까?’ 조르바가 조바심하며 물었다. “왜 이야기하다 마는 거요?”
“…… 아주 커다란 위험이 시작되죠, 조르바.” 내가 말을 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이 혼란스러워져서 헛소리를 하고ㅡ 또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그들의 마음이 의지할 수 있는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그 해답을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잎사귀의 가장자리에서 심연을 조용히 내려다보면서 용감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맘에 드는군!’”
조르바는 한도앙ㄴ 생각에 잠겼다. 내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난 말이죠.” 드디어 그가 말했다. “매 순간 죽음으 ㄹ응시합니다. 죽음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죠. 하지만 한 번도, 절대로 한 번도 ‘죽어도 좋아’라고 말하지는 않죠. 아뇨, 죽는 게 조금도 좋지 않아요! 나는 자유로운 존재 아닙니까? 그렇다면 난 절대로 내가 죽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소리쳤다.
“아니죠, 절대로 내 목을 양처럼 순하게 죽음의 신 카론에게 내놓고 ‘주여, 내가 축복을 받고 성자가 되도록 나를 죽여주시옵소서!’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468-470

“.. 난 지나간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의 일도 신경 쓰지 않지요. 지금, 바로 이 순간, 바로 그것만 신경 씁니다. 난 스스로 이렇게 묻죠. ‘조르바, 넌 지금 뭘하고 있는 게냐? 잔다. 그럼 잘 자라!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일한다. 그럼 열심히 일해라!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여자를 껴안고 있다. 그럼 그 여자를 꼭 껴안아라! 그리고 모든 걸 다 잊어버려라, 이 세상에는 그녀와 너 이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나게 즐겨라!’”  473

“.. 진정한 여자들은 남자들한테서 받는 기쁨보다는 자신들이 주는 기쁨을 더 행복하게 느낀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473

“나도 내 안에 대여섯 놈의 악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르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어요. 너무 놀랄 거 없어요. 그리고 많은 악마를 가지고 있을수록 더 좋고요. 단지 모두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똑같은 목표를 향해 가지만 하면 돼요.”
나의 이 말이 조르바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생각에 잠겼다.
“어떤 목표요?”
“조르바, 난들 알겠어요? 알기 어려운 걸 묻네요.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어요?”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좀 쉽게 말해보슈. 난 지금까지 내 안의 악마 놈들이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하고, 가고 싶은 덴 어디든지 가게 내버려뒀수다. 그래서 어떠 ㄴ자들은 나보고 나쁜 놈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좋은 놈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바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현명한 솔로몬이라고들 하죠. 그리고 난 그들이 말하는 그런 놈인 동시에 그보다 더한 놈이기도 한, 러시아 샐러드 같은 놈이죠. 그러니 가능하다면 말이죠, 무슨 목표인지 내가 알 수 있게 말 좀 해보슈. 어떤 목표죠?”
“조르바, 내 생각에는 말이죠. 물론 잘못된 새악일 수도 잇지만, 세 부류의 인간이 잇는 거 같아요. 우선은 소위 말하는 자신들만의 삶을 살기 위한 목표를 세우는 부류죠. 그들은 자신들만을 위해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부를 쌓고, 영광을 추구하죠…… 그리고 그다음에는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는 부류가 있죠. 그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라고 느끼면서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추리려고 노력하고,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남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베푸는 살마들이죠. 그리고 끝으로 우주의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는 부류가 있죠. 이 부류는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 별 들도 모두 끔찍한 투쟁, 즉 물질을 승화시켜 정신으로 만들려는 투쟁을 하는, 동일한 본질을 지닌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하죠.”
조르바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난 멍청이라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이봐요 대장,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방금 한 말을 좀더 쉽게 소화해서 말해주슈!”
나는 절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이 절망적인 생각들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80-482


25
조르바와의 생활은 내 가슴을 넓혀주었고, 그의 말 몇 마디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내 고민에 절대적인 해법을 제시해줌으로서 내 정신을 평화롭게 만들어주었다. 이 사람은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직감과 매의 눈 같은 원초적인 눈으로 힘들이지 않고 지름길을 달려 노력의 정상에 우뚝 서는 ‘무위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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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대장은 어디로 갈 거요?”
“외국으로 갈 거예요. 내겐 아직도 내 안의 산양이 먹어치워야 할 종잇조각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대장,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수?”
“조르바, 정신 차렸죠. 당신 덕분이에요. 나도 당신의 길을 따를 거예요. 당신이 체리를 상대로 한 짓을 나는 책을 상대로 할 거예요. 토할 때까지 종잇조각을 잔뜩 먹어볼 작정이에요. 그리고 토하고 나서 종잇조각에서 자유로워질 거예요.”  517

바람이 몰고 다니는 겨울철 나뭇잎들처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몸, 손짓, 몸짓까지도 다 기억하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 사람의 눈빛이 파랬는지 까맸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인생은 얼마나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가 하고 생각했다.  519

“대장! 대장은 자유롭지 않수다. 대장이 매여 있는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조금 더 길기는 하지만 그쁜이오. 대장, 대장은 조금 긴 끈을 갖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끈을 잘라내지는 못했수다. 만약 그 끈을 잘라내지 못하면……”
“어느 날엔가는 그 끈을 잘라 낼 거예요.”
..
“대장, 그건 어렵수다. 아주 어려워요. 그러려면 미쳐야 하는데, 듣고 있수? 미쳐야 한단 말요. 모든 걸 걸어야 해요! 하지만 대장, 당신은 머리가 있어 그게 대장을 갉아먹고 있죠. 정신이란 식품점 주인 같은 거요. 장부를 팔에 끼고서는 얼마 들어왔고 얼마 나갔고, 이건 이득이고 저건 손해고, 일일이 기입하죠. 정신은 알뜰한 주부 같아서 모든 걸 포기하지 못해요. 뭔가 하나는 꼭 숨겨놓죠. 정신이라는 놈은 결코 끈을 놓지 않아요. 절대로! 그 악당은 손아귀에 그 끈을 꽉 쥐고 있답니다. 그 끈을 놏히면 그놈은 망하는 거니까요. 불쌍하게도 사라지는 거죠! 하지만 그 끈을 자르지 않으면, 대장, 인생에 뭐가 있겠수? 캐모마일 차, 맛있는 캐모마일 차 정도? 세상을 뒤집어엎을 럼주는 절대 아니죠.”
그가 말을 멈추고는 다시 술을 따랐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내장, 날 용서하슈. 난 시골 촌뜨기요. 진흙이 발에 들어붙어 있듯 말들이 이빨에 붙어 있수다. 난 말을 멋있게 하지도 예의 바르게 하자도 못하우. 그렇게 할 수 없수다. 그러니 대장이 이해하슈.”
그는 잔을 비우고 나를 바라보앗다.
“아시겠소?” 마치 갑자기 분노가 터져 나온 것처럼 그가 소리쳤다. “아시겠냐고요? 이게 바로 대장을 잡아먹고 있수다. 그걸 모르면 대장은 행복하 ㄹ거요. 뭐 부족한 게 있수? 젊겠다, 돈도 있겠다, 머리도 좋겠다, 몸도 튼튼하고, 사람 좋고, 대장에겐 부족한게 하나도 없수다. 아무것도 아쉬운 게 없지. 빌어먹을 악마 놈! 딱 한 개만 빼고 말이우. 미친 짓을 벌이는 광기 말요. 광기가 없으면, 대장……”
그는 다시 머리를 젓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520-522

“저는 시골 교사입니다. 지금 저는 이곳에서 마그네슘 광산을 운영하고 있던 알렉시스 조르바 씨의 슬픈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알렉시스 조르바 씨는 지난 일요일 저녁 6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가 죽음과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저를 불러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에 내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내가 죽거들랑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또 그를 기억했다고 편지를 보내주슈. 그리고 난 내가 평생 한 짓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도 말해주슈. 그리고 잘 지내시고 이제는 정신 좀 차릴 때가 됐다고 쓰슈…… 그리고 만약 신부가 내 고해성사를 듣고 종부성사를 해주러 온다고 하면, 제발 내쫓고 내가 저주한다고 전하슈! 난 평생 하고, 또 하고, 또 했지만 결국 한 일은 별거 없수다. 나 같은 인간은 천 년을 살아야 마땅한데 …… 잘 있으슈!”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베개에 기대 일어나서는 침대 시트를 벗어던지고 위로 펄쩍 뛰었습니다. 그의 부인 리우바와 나, 그리고 힘센 이웃들 몇 명이 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창틀을 쥐고 서서는 먼 곳 산을 바라보며 눈알을 굴리더니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말 같은 신음 소리를 내다가 창틀에 손톱을 꼿꼿이 박아 넣고는 똑바로 서서 죽었습니다.
그의 미망인 리우바는 당신께 인사를 전하라고 하면서, 고인이 계속 당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자기가 죽으면 당신께서 고인을 기억하게 자신의 산투리를 당신께 드리라고 유언했다고 전하랍니다.  537-538




작가 소개 - 니코스 카잔자키스(1883~1957)
1915년에도 그는 그리스 전역을 여행하고, 다시 아기온오로스에 가서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요르기오스 조르바스(조르바의 본명)를 만난다. 조르바스는 카잔자키스에게 인생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1917년에 카잔자키스와 조르바스는 마니(펠로폰네소스 남쪽 지방) 지방의 프로스토바에서 갈탄광 개발을 시도했지만 경제성이 없어 실패한다.  544-545

그의 마지막 작품인 <엘 그레코에게 바치는 보고서(영혼의 자서전)>에서 그는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지 않고 승리를 향한 투쟁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평생에 걸친 여정은 오르막길이었으며, 하느님과 구원 역시 그에게는 하나의 오르막길이었다고 고백한다.  548




조르바와 카잔자키스, 니체

대부분의 살마들이 선택하는 삶은 기존 관습에 따라 기존 사회가 제공한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낙타처럼 수동적으로 사는 것이다. 니체는 그런 사람을 밑바닥 인간(Letzter Mensch)’이라고 불렀다. 이와 반대로 관습이나 전통적 가치관을 거부하고 사자처럼 적극적으로 모든 삶을 자신의 찬단 아래 ‘치열하게’ 꾸려 나가는 사람을 니체는 ‘빼어난 인간((ubermensch)’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빼어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이루기 위해서는 홀로 모든 것을 해나갈 수 있는 ‘힘에 대한 의지(Wille zur Macht)’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힘에 대한 의지는 우연을 의도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물을 고정된 죽은 것으로 보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는 살아 있는 것으로 본다. 빼어난 인간은 힘에 대한 의지로 모든 사물을 음미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새로운 갗치를 창조한다. 그래서 빼어난 인간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사랑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되풀이(ewigen Wieederkunft)’로 이루어져 있다. 삶 속에서 위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모두 끊임없이(ad inifitum) 역겨울 정도로(ad nauseam) 되풀이된다. 빼어난 인간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을 적극적으로 인정해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아니,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함으로 매 순간의 삶을 기쁘게 바라보고 평범한 일상에서 놀라도록 새로운 면을 찾아내고는 감탄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인 현재뿐이다.
니체가 말하는 삶을 산 사람이 바로 조르바다.  569-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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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 쓴 채 종이나 씹으면서 있겠다는 것인가? 나와 함께 가세. 저 멀리 카프카스에, 위험에 처한 수많은 동포가 있잖아. 함게 가서 구해 주자고... 자네는 이렇게 설교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앴는 것이다'라고.. 그럼 구해야지."  ...

배가 세 번째로 고동을 울렸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면서 헛소리로 제 감정을 가렸다. 

"Au revoir(다시 보세), 이 책벌레야!" ...

서로를 좋아했지만 우리는 살가운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우리는 짐승처럼 장난을 치며 서로를 할퀴었다. 친구는 이지적이고 냉소적인 문명인이었고, 나는 야만인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

친구가 나를 '책벌레'라고 불렀을 때, 불쑥 솟아로르던 그 분노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시 내가 영위하고 있던 삶에 대한 나의모든 역겨운 감정이 그 말로 형상화되었다. 그토록 강렬하게 인생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렵혀진 종이에다 자신을 그리도 오랫동안 내박쳐 둘 수 있단 말인가! 그 이별의 날, 내 친구는 내가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해준 셈이었다. 속이 후련했다. 병통을 알았으니 이제는 쉬 정복할 수 있으리라. 이제 그것은 모호하지도 막연하지도 않았다. 이름과 형태가 있으니 그에 맞서 싸우기도 훨씬 수월할 터였다.

 

나는 종이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게 되었다. ..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 한 자리를 임차했다. .. 들뜬 마음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나는 내 삶의 양식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 미완성 원고와 마주쳤다. .. 나는 아기를 싸듯이 조심스럽게 그 원고를 포장하여 다른 짐 속에 넣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무슨 일을 하십니까?"

"닥치는 대로 하죠. 발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고 머리로도 하고.. 하지만 해본 일만 해가지고서야 어디 성이 차겠소!"


"스무 살 때였소. 우리 마을에서 처음 산투르 소리를 들었지요. 혼을 쭉 빼놓는 것 같습니다. .. 있는 걸 몽땅 털고 몇 푼 더 보태 산투르를 하나 샀지요. ... 산투르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나는 전혀 딴사람이 되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빈털터리가 될 때는 산투르를 칩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내가 산투르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 수도 있겠지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해요. 하려고 해도 안 돼. 할 수가 없어."

"정열이라지요. 바로 그게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산투르를 치려면 온갖 정성을 산투르에만 쏟아야 해요. 알겠어요?"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마음이 내키면. 알죠? 마음이 내키면 말이오. 일이야 당신이 바라는 만큼 해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마음이 내키면 칠 거요. 또 노래도 할 거요. .. 나한테 강요하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2


조르바는 창백해진 얼굴을 찡그린 채 뱃머리의 밧줄 타래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레몬 한 알을 들고 냄새를 맡으며, 그 큰 귀로 국왕과 크레타 출신 정치가 베니젤로스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승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말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침을 탁 뱉고 빈정거렸다. 

"시덥잖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자식들, 창피한 줄도 모르는 모양이야."

"시덥잖은 소리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르바?"

"무슨 뜻이냐 하면, 임금이니, 민주주의니, 국민 투표니, 국회의원이니 해봐야 다 그게 그거니까 하는 소리요." 

...

그의 정신은 세상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었다. 


그의 왼손 집게손가락이 반 이상 잘려 나간 걸 알았다. ...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고 싶은 건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건지 아시요? 프르르! 녹로를 돌리면 진흙 덩익 동그랗게 되는 겁니다. 흡사 이런 말을 알아들은 듯이 말입니다.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지, 아니 램프는 만들까,  귀신도 모를 물건을 만들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 말이요!" ...

"참, 그게 녹로 돌리는 데 자꾸 거치적거리더란 말입니다. 이게 끼어들어 글쎄 내가 만들려던 걸 뭉개어 놓지 뭡니까.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어.."

"아프지 않던가요?"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목석이 아니요. 나도 사람입니다. 당연히 아프지요. 하지만 이게 자꾸 거치적거리며 신경을 돋우었어요. 그래서 잘라 버렸지요."


1896년..

"총을 들고 크레타 반란군에 가담했지요.."

"그때는 내 피가 뜨거웠어요. 도무지 '왜'라든지 '어째서'같은 걸 생각해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사물을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면 나남없이 나이 처먹어 분별이 좀 생기고 이빨도 좀 빠져야 합니다. 이빨 하나 없는 늙은이라면, '안 돼, 얘들아. 깨물면 못써'하고 소리치긴 쉽습니다. 그러나 이빨 서른두 개가 말짱할 때는.. 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 같은가 봐요. 그애요, 두목. 사람 잡아먹는 야수 말이오!"


"우리는 반란군이 되어 그 지랄을 했는데, 사기 치고, 훔치고, 죽이고 했는데, 그 덕분에 게오르기오스 왕자가 크레타로 왔답니다. 그러고는 자유라니!"...

"우리가 이 더러운 놈의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를 치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나의 정열에서 풀려나와 다른 더 고상한 정열의 지배를 받는 것, 그러나 이 역시 예속의 한 형태가 아닌가? 이상을 위하여, 종족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다? 우리의 지향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더 길어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훨씬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의 한계에 이르지 않은 채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자유일까?


붓다의 노래가 내가 선 대지에서 솟아나 내 존재의 심연으로 들어왔다.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속에 묻힐 수 있을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까. 언제면, 오, 언제면?'



3


수 세기 동안 사라센인들로 이루어진 코르세르 해적은 이슬람 국가 정부의 묵인 아래 이 아프리카에 면한 크레타 해안을 기습하여 기독교인들의 양과 여자와 아이들을 노략질하지 않았던가. 해적들은 붉은 혁대로 희생자들을 묶어 선창에 처넣고는 알제, 알렉산드리아, 베이루트 등지에 팔아넘겼다. 그 해변에서 물이 빠진 일이 없었으니 수 세기 동안 크레타 여자들의 곡소리는 끊일 날이 없었을 터이다.  


"시장하지 않으시다! 하지만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들지 않았어요?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 싣는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두목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만일 고개를 들어 받를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여자를(늙은것이라도 말입니다)보면, 그때까지 하던 계산이나 숫자가 확 날아가 버려요. 날개를 달고 날아가 버리면 나는 또 쫓아가야 하고.."

"하지만 그거야 당신 잘못이죠, 조르바." 나는 그를 놀려 주려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정신 집중을 못하니까."

"두목 말씀이 옳으리도 모르지.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현명한 솔로몬 대왕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봅시다, 어느 날 나는 조그만 마을로 갔습니다. 갔더니 아흔을 넘긴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바삐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아니,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시잖아요?' 그랬더니 허리가 꼬부라진 이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단다.' 내가 대꾸했죠. '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데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대답을 못하시나?"

나는 조용히 있었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로 이끌 수도 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조르바가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영혼이라는 이름의 짐을 지고 다니는 육체라는 이름의 짐슨을 실컷 먹이고 마른 목은 포도주로 축여 주었다. 음식은 곧 피로 변했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고, 우리 옆에 앉은 여자는 시시각각으로 젊어져, 얼굴의 주름살도 사라져 가고 있었다.  



4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반드시 그 여자를 갈망해야 해요. 그것이 발 여자라는 가여운 동물이 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겁니다."


지나가는 여자를 봐도 그는 말을 멈추고 큰일이나 난 듯이 말한다.

"대체 저 신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는 묻고 또 묻는다. "여자란 무엇인가요? 왜 이렇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요? 말해 보시오, 나는 저 여자란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거요."

그는 남자나,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의문을 갖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두목, 이렇게 말한다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만 마쇼. 당신 대가리는 아무리 봐도 아직 여문 것 같지 않소. 올해 몇이시오?"

"서른 다섯이오."

"그럼 앞으로도 여물긴 텄군."

그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 일격에 얼떨떨했다.

"조르바, 당신은 사람을 너무 믿지 않는 것 같은데요?" 내가 반격했다.

"두목, 화내지 마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내가 사람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요. 그럼 온통 그것밖에 없어요. 두목,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고 골치 아픈 문제가 무더기로 나한테 닥쳐요.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이에요. 두목같이 고매하신 양반은 이걸 모르시겠지. 즘승한테는 모든 게 너무 쉬워요. 거리낄 게 없으니까요. 아니라고요? 짐승이라니까요! 짐승은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조녕하고 두려워해요.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도 뽑아 갈 거요. 두목, 거리를 둬요! 놈들 간덩이를 키우지 말아요. 우리는 평등하다, 우리에겐 똑같은 권리가 있다, 이따위 소리는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을 거예요.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내버려 둘 거요. 정말이지 두목을 위해 충고하건대, 거리를 둬요!"

"아니,당신은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나는 격분해서 소리쳤다. 

"안 믿지요. 아무 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그놈이 유일하게 내가 아는 놈이고, 유일하게 내 수중에 있는 놈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 

내 머리는 조르바에게 동의하고 있었지만 내 가슴은 거부했다.



5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눈의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자기들 비참한 처지밖에 더 봐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또 모르겠소. 보여 줄 수 있어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에 단단히 뿌리박고 선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온몸으로 땅을 쓰다듬는 뱀은 대지의 모든 비밀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6


"먹는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어 내고,혹자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드렁 내고, 혹자는 신을 만드어 낸다나 어쩐다나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로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냅니다. 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그는 장난기 있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두목, 당신은 말이오..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먹는 걸로 신을 만들어 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소. 그러데 그게 잘 되지 앟으니까 괴로워하는 거고. 까마귀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까마귀에게 일어난 일이라니, 그게 뭡니까 조르바?"

"말씀드리지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 이후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步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절뚝절뚝 걸을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오."


"여자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한다는 짓이, 처음 만난 사내와 붙어 새끼를 까놓는 게 고작이오. 사내에게서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사내들이란 그 덫에 걸리고 맙니다."


지금 세상이 아닌, 좀 더 원시적이고 창조적인 시대였다면, 조르바는 한 종족의 추장쯤은 넉넉히 했으리라. 


"두목, 나는 벌써 대가리 꼭대기가 하얗게 세어 있고 이빨도 흔들거리기 시작해요. 그래서 미적거릴 시간이 없어요. 당신은 젊으니까 참고 기다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감히 선언합니다만, 나이 먹을수록 나는 더 거칠게 살 겁니다. 어느 놈도 사람일ㄴ 나이를 먹으면 침착해진다는 소릴 못하게 할 겁니다. 죽음이 오는 걸 보고는 목을 쑥 내밀고 '날 잡아 잡수, 그래야 천당 가지' 이런다는 것도 안 될 말이지요!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나는 반항합니다.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정복해야 하니까요!"


"인생이란 늙은 부불리나와 아주 똑같습니다. 늙었지요? 그래요. 하지만 묘미가 없지 않아요. 사람을 껄떡 넘어가게 하는 쪽으로는 아주 조예가 깊다니까요. 눈을 감으면 스무 살짜리 계집을 안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말지요. 맹세코 말하지만, 불 끄고 그 짓 할 때 저 늙은 것은 영락없는 스무 살이에요.

당신은 이렇게 반문하겠죠. 무르익다 못해 쉬어 터진 여자 아니냐, 어디 좀 많이 방탕하게 살고, 어디 한두 명하고 놀아났냐.. 제독, 선원, 군인, 농부, 유랑 극단 단원, 목사, 신부, 경찰관, 학교 선생, 치안 판사! 그래서 뭐요?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저 여자는 금방 잊어버려요. 저 늙은 갈보가 그렇다고요. 옛날 애인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할 때마다 달라져요. 절대 농담 아닙니다. 할 때마다 다정한 비둘기가 되었다가 순결한 백조가 되었다가 상큼한 종달새가 되었다가.. 그리고 낯빛을 붉혀요. 그래요, 정말 그런다고요. 처음 하는것인 양 낯빛을 붉히고 파르르 떨어요! 두목, 여자라는 건 참 알다가도 모를 동물이지요? 천 번을 깔려도 천 번을 처녀로 다시 일어서는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기억을 못 하니까 그렇죠!"


나는 앵무새란 놈이 카나바로 이름을 부르는게 기분 좋은걸 어쩝니까? 밤에 저 늙은 죄인은 앵무새 새장을 침대 머리에다 걸어 놓습니다. 이 작은 악마에겐 어둠을 뚫어보는 힘이 있어서 둘이서 기분을 내자마자 소리를 지릅니다. '카나바로! 카나바로!' 하고.

내 맹세코 말씀올립지요만, 두목, 쓰레기 같은 책만 잔뜩 집어넣어 놓은 당신 머리가 이해할 턱이 없겠소만, 이건 정말 맹세할 수 있어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발에는 에나멜 장화가 척 신겨서고, 머리에는 깃털 모자가 씌워지고, 보드라운 수염에서는 파촐리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답니다. 'Buon giorno! Buona sera! Magiate macaronia!(좋은 아침! 좋은 저녁! 마카로니 드세요!)' 나는 진짜 카나바로가 되는 겁니다. 나는 수천 발의 총탄을 맞은 역전의 기함(旗艦)에 척 올라 떠나가는 겁니다... 보일러에 불을 댕겨! 포격 개시!"

조르바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두목, 나를 용서해 주셔야겠소. 아무래도 나는 우리 알렉시스 할아버지 닮았어. 하느님께서 그의 유택을 지켜 주시기를! 할아버지는 백 살 되던 해에도 문 앞에 앉아 우물로 물 길러 가는 처녀 아이들에게 추파를 던지고는 했지요. 그러나 시력이 좋지 않아 똑똑히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처녀 아이들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지요. '어디 보자, 네가 누구더라?' '마수트란도니 집 딸 크제니오예요.' '가까이 오너라. 어디 좀 만져 보자. 오래두. 겁낼 것 없느니라!' 처녀 아이는 예의에 맞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다가갑니다. 그러면 우리 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천천히, 그리고 아주 육감적으로 얼굴을 쓰다듬지요. 그럴라치면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린답니다. '할아버지, 왜 우세요?' 내가 언제 할아버지께 여쭈어 봤지요. '얘야, 내가 저렇게 많은 계집아이들을 남겨 놓고 죽어 가는데 울지 않게 생겼니?'

후유~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 말씀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아시오? 나는 이따금 이렇게 한탄하지요. '아, 제기랄! 참한 계집들은 나 죽을 때 몽땅 죽어 버렸으면!' 하지만 그 잡것들은 계속 살아 있을 거고, 여전히 뜨끈뜨끈하게 재미 보고, 사내들은 그런 것들을 끼고 주물럭거리겠죠, 나는 그것들이 밟고 다닐 흙이 되어 있을 텐데!"



7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포도주 한 잔, 군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나는 남자 아닌 줄 아시오? 딴 놈들처럼 나도 저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고 말았지요. 나는 결혼을 그렇게 부릅니다(결혼한 자들이여, 나를 용서하시라)!"


여자는 맑은 샘물과 같습니다. 거기 들여다보면 모습이 비칩니다. 마시면 되는 겁니다. 뼈마디가 녹신녹신할 때까지 마시면 되는 겁니다. 이윽고 목이 마른, 다음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도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마시면 되는 겁니다.



8


그는 울타리 곁을 지나다 갓 핀 수선화 한 송이를 꺽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그 꽃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수선화를 생전 처음으로 보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더니 한숨까지 쉬었다. 그는 꽃을 내게 건네주었다.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쩌면 우리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두목, 언제면 우리 귀가 뚫리까요? 언제면 눈을 떠서 볼 수 있을까요? 언제면 우리가 팔을 벌리고 만물 - 돌, 비, 꽃 그리고 사람들 - 을 안을 수 있을까요? 두목,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이 읽은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나는 조르바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대답했다. "악마나 물어 가라고 합디다! 그래요, 악마나 물어 가라고 합디다. 당신 말마따나. 딴건 없어요."

조르바가 내 팔을 잡았다.

"두목, 내 생각을 말씀드리겠는데, 부디 화는 내지 마시오. 당신 책을 몽땅 쌓아 놓고 불이나 확 싸질러 버리쇼. 그러고 나면 누가 압니까. 당신은 바보가 아니고, 당신은 착한 사람이니까... 뭔가 썩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 대목에서 두목한테 한번 믿고 맡겨 봅시다. 자, 수컷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지 마시오! 신과 악마가 이 기찬 음식을 당신에게 내린 겁니다. 당신에게 이가 있지요? 그럼 이를 박아요. 손을 내밀어 저 과일을 따 먹어요! 조물주가 손을 뭣하라고 달아 놓았겠어요! 손을 내밀어 취하라고 달아 놓은 거지! 그러니까 잡아요! 살아오면서 별별 여자를 다 보아 왔습니다. 그렇지만 저 망할 년의 과부는 교회뾰족탑도 족히 흔들어 놓을 것 같습디다!"

"말썽이 생기는 건 질색이에요!" ...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9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정네들의 잘소잉에요. 우리는 최후의 심판 날에 우리가 한 짓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 여자와 잘 수 있는데도 자지 않는 사내에게 화 있을진저! 남자와 잘 수 있는데도 안 자는 여자에게 화 있을진저!"



10


"도대체 누가 만들어 내었는가? 이 주저의 미로를, 이 추측의 사원을, 이 죄악의 물주머니를, 천 가지 기만이 파종된 이 밭을, 이 지옥의 문을, 잔꾀로 넘쳐 나는 이 바구니를, 꿀맛이 나는 이 독을, 중생을 땅에 묶어 놓는 이 사슬을 - 바로 여자를!"

나는 화덕 앞 바닥에 앉아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이 붓다의 노래를 옮겨 적고 있었다. 마(魔 마귀마)를 몰아내려는 몸부림이었다. 내 마음속에 들어앉은 비에 젖은 여인의 몸, 그 영상을 떨쳐 내려 기를 썼다.  


"이 세상일은 간단한 거예요.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해요? 간단한 걸 가지고 자꾸 복잡하게 만들어 헷갈리게 하지 말래도!"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 어떤 줄 알아요? 언젠가 기술자 하나가 가르쳐 줍디다. 물에는 맨눈으로 보이지 ㅇ낳는 쬐그만 벌레가 우글거린답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 안 마시면 목이 마르지... 두목, 확대경을 부숴 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시원해지는 거지!"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나는 허망한 기분으로 지난 일을 생각했다. 허공중에서 바람을 받은 한 조각 구름처럼 내 인생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갔다.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이고, 모였다가는 다시 모습을 바꾸어, 차례로 백조가 되고, 개가 되고, 악마가 되고, 전갈이 되고, 원숭이가 되었다. 구름은 하염없이 흩날리고 찢겼다. 하늘의 바람에 밀리며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오늘나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12


내가 좋아해서 여기까지 가져온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말라르메의 시집이었다. 천천히 마음 내키는 대로 읽다가 책을 덮었고, 다시 펼쳤다가 결국은 내려놓고 말았다. 그의 시는 핏기도 없고 냄새도 없고 인간의 본질을 비켜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경험한 느낌이었다. 그의 시가 창백한 진공 속의 공허한 언어로 보였던 것이다. 박테리아 한 마리 없는 완벽한 증류수였지만 영양분 역시 하나 없는 물 같은 것, 요컨대 생명이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창조의 섬광을 상실한 종교에서 제신(諸神 모두제 귀신신)은 결국 인간의 고독과벽면을 치장하는 시적 모티프나 예배 용품으로 전락했다.  


인간의 본질은 야만스럽고, 거칠며 불순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살과 고통의 절규로 이루어진 것이다.


전에는 그토록 나를 매혹하던 이 모든 것들이 이날 아침에는 지적인 곡예. 세련된 협잡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문명이 쇠퇴하는 모습니다.


아무렴.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기가 선택한 대로만 행동하네.'(아프리카에 있는 친구 카라얀니스의 편지 내용 중에서)


나는 죽기 전에 되도록 많은 땅과 바다를 보고 만지고 싶었다.


'열정과 광기로 싸우는 자가 행복하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자네 식으로 말하면, 나는 행복을 내 키에 맞게 재단했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네. 용케 그렇게 했다면, 그렇다면 나는 위대한 사람일 것일세.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맞추어 키를 늘이고 싶네.... 친구여, 행동하기 싫어하는 내 스승이여. 행동, 행동... 구원의 길은 그것뿐이네.'(책 초반에 떠난 친구의 편지 내용)



13


'사람에겐 바보 같은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바보 같은 놈은, 내 생각에는 바보 같은 구석이 엇는 놈일 것입니다.'(칸디아로 간 조르바의 편지 내용 중에서)


'모험은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칸디아로 간 조르바의 편지 내용 중에서)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여.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칸디아로 간 조르바의 편지 내용 중에서)



14


"젊은이들이야 까짓 말썽 같은 걸 겁낼 필요 없지!"



15


"무슨 음식을 특히 좋아하십니까, 영감님?"

"아무거나 다 좋아하지요.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하는 건 큰 죄악이지요."

"왜요? 골라서 먹을 수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안 되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안됩니까?"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내 마음은 일찍이 그런 품위와 연민의 높이에 이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몸을 떨었다. '영원'이라는, 식인(食人)의 단어에 잡아먹힐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원'이라는 단어에 거의 빠질 뻔했다. 또 '사랑', '희망', '국가', '하느님' 같은 숱한 단어에도 빠질 뻔했다. 그 단어 하나하나를 정복하고 지날 때면 나는 흡사 위험에서 빠져나와 전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는 겨우 단어를 바꾸어 놓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2년 전부터는 '붓다'라는 말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 확실히 느낀다. 조르바 덕분이다. 붓다는 최후의 우물, 마지막 낭떠러지 단어가 될 것이며, 이제 나는 영원히 해방될 것이라고. 영원히? 그거야 우리가 늘 하는 말이다.


'명상도 일종의 광산이 아닌가. 그럼 나도 파야지.' ..



16


'자기 자신 안에 행복의 근원을 갖지 않은 자에게 화 있을진저!'

'남을 즐겁게 하려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금생(今生 이제금 날생)과 내생(來生 올래 날생)이 하나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나는 붓다, 하느님, 조국, 이상, 이 모든 허깨비들에게서 풀려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붓다, 하느님, 조국, 이상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7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내 말 잘 들어요.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두목. 악마를 이기려면 자기가 악마 한 마리 반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18


조르바가 구석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게 네 번째 이론이 있소이다!"

나는 불안스럽게 조르바를 바라보았다. 주교도 그를 돌아보았다.

"말씀해 보시오. 당신의 이론 역시 축복을 받으시기를! 그래, 무엇이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는 것!" 조르바가 엄숙하게 말했다.

주교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이론도 있지요, 영감님." 조르바는 말을 이었다. "무엇이냐 하면, 둘 더하기 둘은 넷이 아니라는 거요. 어때요, 영감님. 내기 한번 해봅시다! 하나 고르시지!"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주교는 떠듬거리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시선을 내게로 던졌다.

"나도 모르겠소!" 조르바가 이렇게 말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만트론의 달콤한 소리에 매혹되었다.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삶의 고양된 리듬은 심지어 그것이 쇠락했을 때조차 그 감동적이고 고귀한 외적 형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구나. 정신은 떠나고, 오랜 진화 끝에 조개껍데기처럼 정교해진 정신의 커다란 집만 뒤에 남았다.



20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그가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聖物)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아무래도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밖에 없겠어요."

내가 항변했다. "뭐라고요? 나도 이해할 건 이해하는 사람인데.. 그건 좀 잊지 말고 삽시다."

"그래요, 당신은 그 잘난 머리로 이해라는 걸 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그래, 팔과 가슴이 뭘 합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사람이라는 게 언제쯤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게 될까요? 우리는 바지를 입고 셔츠를 걸치고 칼라를 세우고 모자를 씁니다만 그래 봐야 아직 노새 새끼, 여우 새끼, 이리 새끼, 돼지 새끼를 못 면해요. 하느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누가? 우리가? 나 같으ㅕㄴ 인간의 그 멍청한 쌍통에도 침을 탁 뱉겠소!"


"내 조국으로부터 해방되고, 신부들로부터 해방되고, 돈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나는 짐을 덜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족족 덜어 버린 겁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내 짐을 덜었습니다. 자, 이런 걸 뭐라고 하던가요? 나는 구원의 길을 찾는 겁니다. 나는 인간이 되고 있습니다."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이건 불가리아 놈, 요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햇습니다. 왜요?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이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염병할 놈, 지옥으로 곧장 가라, 이 돼지 같은 놈! 싹 꺼져버려. 이 병신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 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쓰여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그 모든 걸 종헙했습니다. 내게는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게 되어 있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그 역시 봄 풍경에 화들짝 놀란 것이었다. "저게 무엇이오?" 그가 놀라도 크게 놀라면서 물었다. "두목, 저기 저 건너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 파란 색깔, 저 기적이 무엇이오? 당신은 저 기적을 뭐라고 부르지요? 바다? 바다? 꽃으로 된 초록빛 앞치마를 입고 있는 저것은? 대지라고 그러오? 이걸 만든 예술가는 누구지요? 두목, 내 맹세코 말하지만, 내가 이런 걸 보는 건 처음이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그를 불렀다. "조르바, 혹 돌아 버린 건 아닌가요?"

"무얼 비웃고 있어요? 당신 눈에는 안 보이는가요? 두목, 봐요. 저 모든 기적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술을 말이오."


"대가리는 안 달고 있어도 상관없는데, 모자는 제대로 된 걸 써야 한단 말입니다..! 이 미친놈의 세상에서는!"


“모든 문제가 일을 어정쩡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을 박을 때도 한 번에 제대로 때려 박는 식으로 해나가면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21


나는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조르바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맹렬한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넣고, 하느님도 악마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것이 젊음이란 것이다!" 그러면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나는 조르바의말을 계속 되뇌면서 걸었다.  


시원한 초록 바닷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육체적 행복가밍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내 정신이 이 육체의환희를 가로채어 제 틀에 욱여 넣고 그것으로 생각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내 온몸이 한 마리 짐승처럼 환희를 즐기도록 내버려 두었다. 



22


"이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같이 불의, 불의 , 불의입니다! 나는 이놈의 세상에 끼지 않겠어요. 암, 나 조르바, 벌레 같은 놈, 굼벵이 같은 놈이지만 어림없고말고! ..." 

"두목, 참을 수가 없어요. 산택 좀 하고 와야겠어요. 산을 두어 번 오르내려 내 몸을 피로로 잔뜩 채워야 오늘 밤 잠잠할 겁니다. 오, 과부여! 내 그대를 위해 미롤로그를 불러야 할 것 같구나!"

그는 밖으로 뛰어나가 산 쪽을 향하더니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등불을 껐다. 그리고 내 졸렬하고도 비인간적인 습관에 ㄸ라 다시 한 번 현실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피와 살과 뼈를 제거하여 추상적 관념으로 환원시키고, 그것을 일반적 법칙들과 연결시켜 지금 일어난 일은 결국 필연적이었다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했다. 더 나ㅏ가, 오늘의 비극은 우주적인 조화(調和 고를조 화할화)에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거라는 최종의 가증스러운 위안에 이르렀던 것이다.


자기 위안 단계에 이른 나는 과부 이야기를 하려 했다. 조르바는 그 긴팔을 쑥 내밀어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아 버렸다.

"닥쳐요!" 그가 구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진짜 사내란 이런 거야...'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23


이게 인생이거니... 변화무쌍하고, 요령부득이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러나 마음대로 안 되는... 무자비한 인생 ... 무지몽매한 크레타 농사꾼들은 지구 저쪽 끝엣 온 퇴물 카바레 가수를 둘러싸고 죽어 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치 그 여자는 한 인간이 아니라는 양 비인간적으로 즐거워 하고 있었다. 흡사 온 마을 사람들이 해변으로 몰려와, 하늘에서 떨어진 낯선 새가 날개를 부러뜨리고 퍼덕거리며 죽어 가고 있는 꼴을 구경하는 형국이었다. 부인이 늙은 공작새, 늙은 앙고라 고양이, 병든 물개나 되는 것처럼...



24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볻도." 여기에서 조르바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로 떨었다. ".. 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조르바." 내가 대답했다. 부끄러웠다. 가장 단순한질문,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받고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아서였다.

"모르신다!" 조르바는 놀라움으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소리쳤다.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모든 빌어먹을 책들.. 그것들은 대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건 왜 읽어요? 책이 그런 걸 알려 주지 않으면 도대체 뭘 알려 주는데요?"

"인간의 당혹감에 대해 알려 주죠. 당신이 나한테 던진 발 그런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없는 이간의 당혹감 말이에요."


"두목, 제발 설명해 주시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오랜 세월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어요.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3톤은 족히 씹고 또 씹었을 거예요! 거기에서 뭔가 얻어 낸 게 있을 것 아닙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너무나도 깊은 비통함이 묻어 있어서 나는 가심이 미어졌다. 아, 이 사라에게 대답할 능력이 내게 있었다면!


"나는 매순간 죽음을 생각해요. 죽음을 보는 거지, 무서웧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절댈, 절대로, 나는 저게 좋아하ㅗ는 하지 않아요. 아니, 전혀 좋지 않아요!"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얼마 후 그는 말을 계속했다.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그 어떤 카나바로도 나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 쪼그랑 망태기 같은 조르바만큼 말입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나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훈장이나, 마누라나...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할망구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유식한 양반한테 하나 가르쳐 드리는데, 여자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는 법입니다. 진짜 여자는.. 잘 들어 두시오, 도움이 될 테니까..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기쁨을 받는 것보다 자기가 기쁨을 주고 있다는 데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 법이에요."


"조르바, 사람이란 누구나 뱃속에 악마 몇 마리쯤은 갖고 있으니 그건 걱정 마세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거지요. 중요한 건, 이 악마들의 최종 목적이 같아야 한다는 거죠. 가는 방법은 다르더라도."

이 말이 조르바를 감동시킨 모양이었다. 그는 그 큰 머리를 무릎 위에 올리고 생각했다. 

"무슨 목적?"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조르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너무 어려운 걸 물어보네요. 그걸 내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그냥 간단히 말해 봐요. 나도 좀 알게. 지금까지 나는 내 속에 든 악마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하게 내버려 뒀고, 가고 싶다는 대로 가게 내버려 뒀지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엉큼하다 하는가 하면 정직하다 하고, 또 날 보고 미쳤다 하는가 하면 솔로몬처럼 지혜롭다고 해요. 그것들이 다 내가 맞고, 그보다 훨씬 많은 걸 더해야 나라는 인간이 돼요. 그러니까 완전 잡탕이야. 자, 그러니 두목, 날 좀 도와주슈. 이 문제 좀 풀어 보게.. 무슨 목적이오?"

"조르바, 내 말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 부류의 사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우주 전체의 삶을 살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우주 만물, 우리는 모두 하나다, 우리 모두는 무시무시한 하나의 싸움에 가담한 하나의 실체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무슨 싸움일까요? ..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이지요."


나는 생각했다. 추상적 생각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고 나서야, 그래서 한 편의 이야기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었으면! 그러나 오직 위대한 시인만이 그 경지에 이르고, 범부는 수백 년 묵묵히 노력해야만 그런 경지에 이르는 걸 어찌하랴.



25


인간이라는 불운한 존재는 작고 초라한 자신의 삶 둘레에 난공불락이라고 믿는 방벽을 쌓아 올린다. 그 안을 피난처로 삼아, 삶에 미미한 질서와 안정을 부여하려 애쓴다. 미미한 행복을 말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밟아 다져진 길들을, 신성불가침의 반복적 일상을 따라야 하며, 안전하고 단순한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 알 수 없는 것들의 무서운 침범을 막으려 요새처럼 방비한 그 테두리 안에서, 자잘한 확신들이 지네처럼 꼬물꼬물 기어다니며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적이 딱 하나 있다. 모두가 죽을 듯이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그 적의 이름은 '거대한 확신'이다. 지금, 이 거대한 확신이 내 존재의 장벽을 뚫고 들어와 내 용혼을 덮치려 한 것이다.



26


"나도 당신 방법을 써볼 거예요. 당신은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 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나, 당신과 함께 여기 있을 수도 있어요.." 나는 조르바의 절망적인 애정에 당황하고 말았다. "당신과 함께 어디론가 떠날 수도 있고. 나는 자유로우니까."

조르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보다 좀 길 거예요.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매달려 있으니까, 이리저리 다니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당신한테는 무식이 좀 필요해요. 무식, 아시겠어요? 모든 걸 걸고 도박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머리가 힘이 세니까 항상 그 머리가 당신을 이겨 먹을 거라고요. 인간의 머리란 구멍가게 주인과 같은 거예요. 계속 장부에 적으며 계산을 해요.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아주 좀상스러운 소매상이지요. 가진 걸 몽땅 거는 일은 절대 없고 꼭 예비로 뭘 남겨 둬요. 머리는 줄을 자르지 않아요. 아니, 아니지! 오히려 더 단단히 매달려요, 이 잡것은! 붙잡고 있던 줄을 놓치기라도 하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하다가 완전 끝장나 버려요. 그런데 사람이 이 줄을 끊어 버리지 않으면 산다는 게 무슨 맛이겠어요? 노란 카밀러 맛이지. 멀건 카밀러 차 말이오. 럼주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요. 럼주는 인생을 확 까뒤집어 보게 만드는데!"


조르바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어릴 때에는 나도 미친 충동과 초인적인 욕망이 넘쳐, 세상이 못마땅했다.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조용해졌다. 나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가르고, 내 연(鳶 솔개연)을 꼭 붙들고는 놓치지 않으려 했다. 


오라지게 추워 할 수 없이 결혼했습니다.(조르바의 편지 중에서)


나는 곧잘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의 이성보다 더 깊고 더 자신만만한 그의 긍지에 찬 태도를 존경했다. 우리들이라면 고통스럽게 몇 년을 걸려 도달할 정신의 경지에 그는 단숨에 가닿았다. 그래서 우리는 말했다. '조르바는 위대한 인간이다!' 때로 그는 그 경지를 훌쩍 넘어 더 멀리 나가 버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말했다. '조르바는 미쳤다!'




역자해설 - 20세기의 오디세우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구체적인 체험으로서의 여행이 추상적인 꿈을 심화시키고 그 꿈이 여행의 무대를 확장시키듯...


3단계 투쟁, 혹은 3단계 깨달음의 과정..

‘압제자 터키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1단계 투쟁, 우리 내부의 터키라고 할 수 있는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2단계 투쟁, 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우리가 섬기는 중에 우상이 되어 버린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3단계 투쟁...’


카잔차키스의 삶은,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색과 행동 등등의,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그가 베르그송에게 경도된 것은, 인간 존재란, 신이 어떤 목적에 따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딛고 넘어가게 마련된 단계에 불과한 것, 따라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도약의 디딤돌로 인간이 창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의 예감을 베르그송의 생철학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야생마 같은 주인공 조르바는 실제 인물이다. 

조르바라고 하는 호쾌한 기인이 있었다. 행적이 대체 얼마나 기이했는지, 조르바의 어록을 기억나는 대로 옮겨보면 대략 이렇다. 

‘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거치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하느님요? 자비로우시고말고요. 하지만 여자가 잠자리로 꾀는데도 이거 거절하는 자는 용서하시지 않을걸요. 거절당한 여자는 풍차라도 돌릴 듯이 한숨을 쉴 테고, 그 한숨 소리가 하느님 귀에 들어가면, 그자가 아무리 선행을 많이 쌓았대도 절대 용서하시지 않을 거라고요.'

'도 닦는 데 방해가 된다고 그걸 잘랐어? 이 병신아, 그건 장애무링 아니라 열쇠야, 열쇠.'

'결혼 말인가요? 정당하게는 한 번 했지요. 부정하게는 1천 번, 아니, 3천 번 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하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 확 부숴 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려.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그의 인생과 작품의 핵심에 위치하는 노른자위 개념이자 그가 지향하던 궁극적인 가치의 하나인 '메토이소노(聖化)'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메토이소노'는 '거룩하게 되기'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 이것이 '메토이소노'다. 물리적, 화학적 변화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 '거룩하게 되기'가 바로 이것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무리적인 변화다.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다. 




2011년에 본 <그리스인 조르바>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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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미소

여행밑줄 2012. 11. 18. 11:18

여행에서 누구나 사진을 남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느 대륙을 막론하고,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여행에서 사진을 남기지 않는 사람은 없다. 이렇게까지 확실할 수 있을까?

아... 그건 아닌것 같다. 여행을 하면서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는 사람을 몇 번 본 기억이 있다. 그에게 때론 이유를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며 들었던 생각은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나오는 조르바였다. 

얽메이지 않으면서 본성에 충실하고 세사을 떠돌며 그것에서 배워가는 조르바같은 모습 말이다.

아무튼 그러한 극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사진을 남긴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사진에는 사람을 많이 찍는다. 장소를 배경으로 찍고, 동행들과도 찍고, 다른 여행자들과도 찍고, 현지인들과도  찍고, 아이들을 찍기도 한다. 때론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기 위해 그들의 모습을 몰래 찍기도 한다. 몰카아니냐고 몰카 맞다. 그런데 대체로 이내 눈치를 채고 카메라를 든 나를 쳐다본다. 

보통은 크게 두가지 반응이 나온다. 부끄러워 모습을 감추거나, 모델이 되어주거나 이다.

어떠한 상황이든 흥미로운 점은 웃는다는 점이다. 쑥스러워하며 웃거나, 포즈를 취하며 웃거나, 웃으면서 슬쩍 자리를 피하거나, 활짝 웃어주거나, ...

이것 역시 남녀노소 불문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격하게 싫어하거나 화를 내며 찡그리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다.

당연히 냉전 상태의 지역이거나 내분에 의해 경직된 나라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한 나라여도 일반 시민들은 대체로 웃어준다. 아무튼 초상권 운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외국인 여행자들이 우리 모습을 찍으면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기도 하다.


한국 사람이 말없이 한국 사람을 찍으면 변태로 몰린다. 일상적인 모습이라 할지라도 넷상에 무단으로 올리지도 못한다. 그러니 무서워서 찍기 힘들다. 정중히 부탁하고 찍어야 한다. 


그런데 왜 타국인들에게는 관대한가?

그리고 왜 미소를 지어주는걸까?


우리가 여행을 가면 마음이 넓어지고 소통하려하는 이유와 동일하지 않을까.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관대해지는것 같기도 하다. 


그럼 '미소'는? 이것 역시 타국인이기에 그럴 수도 있을것이다.

다른 이유는 없을까?

미소는 만국 공통어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미소는 뭘까?

미소는 희망, 미소는 여유, 미소는 사랑(애정), 미소는 즐거움, 미소는 만족, 미소는 표현, 미소는 소통, 미소는 이유없음, 미소는 이웃, 미소는 마음, 미소는 초대, 미소를 허락, 미소는 따뜻함, 미소는..

언뜻 떠올려보는 것을 적어보니... 그렇구나!

미소는 어쩌면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소가 답이라면 우리의 여행은 삶이 되어야 하는건 아닐까. 삶이 여행처럼 되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이 각박해지니 나역시 각박해질 수 밖에 없다는 건, 핑계일뿐. 따라가기만 하기보다 새롭게 바라보는 태도가 삶을 여행처럼, 여행을 삶처럼 만들어 주는건 아닐까...!!!


별것 아닌 미소가 정답이란 생각... 여행을 통해서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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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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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여행지에서 어느 영국인 친구를 통해 알게 되어 읽게 되었다.
당시 그 친구는 자신의 반팔티 셔츠에 '조르바'라고 써 놓았었고, 이야기 하던 중에 자신의 진짜 이름은 조르바가 아니지만 자신은 조르바라는 사람처럼 살고 싶어서 여행중에는 조르바라고 불리기를 원하였다.
나는 그때 까지 조르바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열변을 토하는 그 친구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되고 추천받아 읽게 되었었다.
그리고 근래 다시금 책을 읽었다.

일원적인 사고의 조르바와 다원적인 사고의 '나'의 상반된 스타일을 통해 나는 조르바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단순하게 일원적인 사고에 의해서가 아니라 고민할 필요없는 것은 고민하고 않고 고민해야 할 것은 고민하는 단순함과 그것을 통해 할 수 있었던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녹아내린 지혜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즐거움과 희열을 안겨준다. 

조르바는 '나'에게 무수히 잔소리를 한다. 
현재를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잡다한 고민과 생각들을 버리고 현재를 관찰하고 감상하라. 
책으로만 세상을 보려하지 말고 움직여서 직접 세상을 보라. 
어정쩡하게 하지 말고 할 것은 확실하게 하라.
......

이런 조르바의 지혜를 '나'는 열렬히 환호하고 영향을 받지만 결국은 조르바와 헤어지고는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 버린다.

사람은 변하기가 어렵다.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변할 수 있는 것도 단 5%정도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5%로 인해 삶이 달라진다고 한다.

우리는 '나'와 많이 닮아있다.
해야하는지 알면서도 좋은지 알면서도 미적거린다. 그리고 자극이 조금만 멀어져도 회귀본능에 의해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저자는 이런 우리에게 자신의 경험을 통해 조르바의 충고를 전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살아 있는 가
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 였다.  19

"산투리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21
 
우리가 살인자라고 부르는 것, 나쁜 짓이라고 부르는 것도 세계의 자유를 위한 투쟁에는 필요한 것이라고 해야 한단 말인가..  30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시키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좀더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을 벗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  32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란다." 
내가 대꾸했죠. "저는 제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살고 있지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43

여자란 건강에 해롭고 토라지기 잘하는 동물이랍니다. 누가, 사랑한다, 갖고 싶다고 하면 여자는 웃음을 터뜨립니다. 여자는 당신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당신이 여자에게 입맛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여자가 싫다고 할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그건 문제가 안 됩니다.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자란 가엾게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겁니다.  56

두목, 이 빨간 물이 대체 뭐요? ... 시간이 지나고 태양이 이 열매를 익히면 마침내 꿀처럼 달콤한 물건이 되지요. 이게 포도라고 하는 겁니다.... 나는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서, 세상이 다시 태초의 신선한 활기를 되찾고 있는 기분을 느꼈다.  62

인생이란 오르탕스 부인처럼 단순하고, 살아 볼 만한 것이며, 진부하지만 느긋하고 너그러운 것인 듯했다.  64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65

강인했기 때문에 그토록 인간을 경멸하면서도 동시에 그들과 함께 살고 일하려는 그를 나는 존경했다. 나라면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려면 금용주의자가 되었거나 그들을 가짜 깃털로 꾸며 놓을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았다.  66

집은 일견 텅 빈 것 같지만 이 안에 필요한 건 다 있는 걸 보면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별로 많지 않나 보다.  67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오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74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
步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오.  79

인생이란 늙은 부불리나와 아주 똑같습니다. 늙었지요? 그래요. 하지만 양념 맞은 거기 다 있어요. 저 늙은 것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수작을 두어 가지 알고 있답니다. 눈을 감으면 스무살짜리 계집을 안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말지요. 맹세코 말하지만, 불끄고 그 짓 할 때 저 늙은것은 영락없는 스무 살이에요. 익어도 과하게 익었다고 해봐야 소용없어요. 사는 걸 좀 눈부시게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요. 제독, 선원, 군인, 농부, 유랑 극단 단원, 목사, 신부, 경찰관, 교장 선생, 치안 판사들과 놀아나다 보니 그렇게 된 것뿐이지요.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뭐가 남았다는 겁니까? 저 늙은 것은 금방 잊어버린답니다. 늙은 화냥년이라는 게 원래 그렇지요. 옛날 애인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할때마다(나는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저것은 앙증맞은 비둘기, 순진무구한 백조, 새끼 비둘기가 되어 얼굴을 붉히지요. 그래요. 처음하는 것인 양 낯빛을 붉히고 파르르 떨기까지 한대요! 두목, 여자라는 건 참 알다가도 모를 동물이지요? 천 번을 깔려도 처녀로 다시 일어서는 겁니다. 자, 그러니 어때요? 기억을 못 하는데.  91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94

여자가 별 것인줄 아는데...... 하기야 별것은 별것이지. 여자는 인간이 아니에요! 그런데 뭣 하러 감정을 품어? 여자는 불가사의한 거예요.  103

나더러 책벌레라고 했던 말 기억할 걸세... 종이에다 끼적거리는 버릇을 집어치우고 나 자신을 행동하는 삶 속에다 던져 넣을 결심을 했다네. -(카프카스로 떠난 친구에게 보낸 답장에서의 내용)  105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네! -(카프카스로 떠난 친구에게 보낸 답장에서의 내용)  106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부르고 있는지도, 우리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 거예요. 두목, 언제면 우리 귀가 뚫릴까요! 언제면 우리가 팔을 벌리고 만물(돌, 비, 꽃, 그리고 사람들)을 안을 수 있을까요? 두목,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이 읽은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습디까?  109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118

시간 낭비 하지 말고..... 두목, 이 세상일은 간단한 거예요.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 해요? 간단한 걸 가지고 자꾸 복잡하게 만들어 헷갈리게 하지 말래도!  133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언젠가 기술자 하나가 가르쳐 줍디다) 물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쬐그만 벌레가 우글거린답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 안 마시면 목이 마르지.... 두목, 확대경을 부숴 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정신이 번쩍 들고!  136

최후의 인간(모든 믿음에서 모든 환상에서 해방된, 그래서 기대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어진)은 자신의 원료가 되어 정신을 산출한 진흙이며, 이 정신이 뿌리내리고 수액을 빨아올릴 토양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인간이다. 최후의 인간은 자신을 비운 인간이다. 그 몸에는 씨앗도 똥도 피도 없다. 모든 것은 언어가 되고, 언어의 집합은 음악이 되어도 최후의 인간은 거기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절대의 고독 속에서 음악을 침묵으로, 수학적인 방정식으로 환원시킨다.  155

친구여, 행동하기 싫어하는 내 스승이여. 행동, 행동 .... 구제의 길은 그것뿐이네.  163

모험은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  174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  175

그는 영원히 놀라고, 왜, 어째서 하고 캐묻는다. 만사가 그에게는 기적으로 온다.  176

그와 함께 있으면 일은 포도주가 되고 여자가 되고 노래가 되어 인부들을 취하게 했다.  207

두목, 반쯤 악마가 되지 않고 어떻게 악마를 다룰 수 있겠어요?  224

당신은 나를 그 잘난 머리로 이해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팔과 가슴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254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저건 불가리아 놈, 이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 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했습니다. 왜요?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이기 때문이지요.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염병할 놈, 지옥에나 떨어져, 이 돼지 같은 놈! 싹 꺼져 버려. 이 병신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258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259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  262-263

그렇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힘든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넣고, 하느님과 악마를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것이 젊음이란 것이다!  269

저항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필연을 극복하여 외부적 법칙을 영혼의 내부적 법칙으로 환치시키고 존재하는 것을 깡그리 부정하고 자기 정신의 법칙에 따른 새 세계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긍지에 찬 돈키호테적 반동이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었을 뿐, 그 따사로운 밤에 무엇인가가 내 내부에서 성숙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을 뿐이었다.... 나는 변화하는 나 자신을 보았다.  307

조르바에 따르면, 인간이나 사물의 목적은 쾌락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면 영원불멸을 그리는 우리의 끝없는 염원은 우리가 영원불멸하다는 사실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짧디 짧은 우리 인생에서 무엇인가 영원불멸한 것을 섬기는 데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308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보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309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내면 못쓰느니라!  316

조르바, 갑시다. 내 인생은 바뀌었어요. 자, 놉시다!  328

어느날 밤, 눈으로 덮인 마케도니아 산에는 굉장한 강풍이 일었지요. 내가 자고 있는 오두막을 뒤흔들며 뒤집어엎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진작 이걸 비끄러매고 필요한 곳은 보강해 두었지요. 나는 불가에 홀로 앉아 웃으면서 바람의 약을 올렸어요. <이것 보게, 아무리 그래 봐야 우리 오두막에는 들어올 수 없어. 내가 문을 열어 주지 않을 거니까. 내 불을 끌 수도 없겠어. 내 오두막을 엎어? 그렇게는 안되네.>
 조르바의 이 몇 마디 안 되는 말에서 나는 인간이 취해야 할 도리와 강력하면서도 맹목적인 필연에 부딪혔을 때 우리가 맞서 대적할 어조를 감득했다.  331

조르바. 당신 덕택이에요. 나도 당신 방법을 채용해 볼까합니다. 당신은 버찌를 잔뜩 먹어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 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337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뿐이지.....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339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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