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말 - 울림의 공유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개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 1904년 1월, 카프카, [저자의 말] <변신> 중에서 


인간에게는 공유의 본능이 있다. 울림을 공유하고 싶다.



1강 시작은 울림이다


- 이철수 <산벚나무, 꽃피었는데-이철수 신작 판과 100선전>

  이철수 <마른풀의 노래>

  이철수 <이렇게 좋은 날>

  최인훈 전집 1

  이오덕 <나도 쓸모 있을걸>



저는 여느 독서가들과 비교했을 때 독서량이 평균에 미치지 못할 겁니다. 매번 읽은 책들을 메모해놓는데, 통계를 내보면 일 년에 읽는 책이 서른 권에서 마흔 권 사이입니다. 한 달에 세 권 정도 읽는 건데 독서량이 많은 건 절대 아니죠. 대신 저는 책을 깊이 읽는 편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꼭꼭 눌러 읽습니다. 여기 제가 써놓은 것들을 프린트해왔습니다. 

우선 저는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좋은 부분들, 감동받은 부분들에 줄을 치고, 한 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따로 옮겨놓는 작업을 합니다. 이 강의의 목표는 이런 방식의 책 읽기를 통해 제가 느낀 '울림'을 여러분께 전달하는 것입니다.  14


'땅콩을 거두었다

덜 익은 놈일수록 줄기를 놓지 않는다

덜된 놈! 덜떨어진 놈!'


이 한 줄만으로도 덜된다는 게 이런 얘기구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익으면 떨어지는데, 익지 않아 '덜 떨어진다'는 겁니다. 이 한 줄이 자연 현상이 인간사로 넘어오는 순간입니다. 현기증 나는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그냥 자연현상인데 순식간에 사람의 것으로 이입이 됩니다.

이철수는 또 저에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 동양의 삶의 태도와 서양의 삶의 태도를 가장 극명하게 비교하게 해주었는데요, 그것은 역시 판화 [가을사과]에 쓴 한 줄의 글이었습니다.


'사과가 떨어졌다

만유인력 때문이란다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과가 떨어진 걸 만유인력 때문이라고 기거이 과학적으로 밝혀내고야 마는 것은 서양의 장점입니다. 그리고 동양의 장점은 때가 되어서 떨어지는 걸 왜 안달복달 난리들이야 하며 자연을 아우르는 철학입니다... 서양의 장점이 가져다준 문명적인 혜택, 충분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자연적 재앙도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연현상을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파악하는 동양의 지예가 다시 힘을 발휘해야 할 때가 되었구나 생각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것이 통찰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창의력이 무엇이냐고 자주 묻는데, 저는 이런 통찰이 창의력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사과를 많이 봤지만, 뉴턴이나 이철수와 같은 생각은 한 번도 못해봤습니다.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생각할 줄 아는 것이 이 사람의 힘인 것이죠.  22-23


소설가 김훈에 따르면 글쓰기는 자연현상에 대한 인문적인 말 걸기라고 합니다. 자연은 자연이고 인간의 글은 인문(人文)이잖아요. 그런데 자연을 해석하려고 인문이 노력을 하는 겁니다. 쉽지 않죠? 조금 설명을 덧붙인다면, 

'산에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예전에는 김소월의 [산유화]라는 시를 좋은 줄 모르고 들었습니다. '그게 뭐야, 당연히 산에 꽃이 피지 뭐'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김훈이 이렇게 안내해줬습니다. "이 노래는 말을 걸수 없는 자연을 향해 기어이 말을 걸어야 하는 인간의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로 나는 들린다"라고 말이죠. 멋진 걸 보고 '우와'라는 표현밖에 못 하는 사람과 다르게 그들은 기어이 말을 걸고 싶은 인문적인 갈증이 있는 것입니다.  25


'깊은데 

 마음을 열고 들으면

 개가 짖어도 

 법문이다' - [개소리] 전문 26


어른들은 .. '지식'으로 세상을 봅니다.

아이들이 .. '감성'으로 본 겁니다.  36


'시골집 선반 위에

 메주가 달렸다.

 메주는 간장, 된장이 되려고

 몸에 곰팡이가 

 피어도 가만히 있는데,

 우리 사람들은

 메주의 고마움도 모르고

 못난 사람들만 보면

 메주라고 한다.' - 부산 감전국교 6년 이경애, [메주]


'껌은 빳빳하지요.

 그러나 입속에 넣으면

 사르르 녹지요.

 아무리 나쁜 사람도

 껌과 같지요.


 모두가 나쁜 사람이라고 

 팽개쳐버려도

 누군가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싸 주면

 껌과 같이 사르르 녹겠지요.

 딱딱한 마음이

 껌과 같이 되겠지요.' - 부산 감전국교 6년 김경숙 [껌 같은 사람]  39-40


사람은 물입니다. 조용한 데 이르면 조용히 흐르고, 돌을 만나면 피해가고, 폭포를 만나면 떨어지고, 규정된 성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 소설에 악당이 없다..  40


창의성과 아이디어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일상'입니다. 일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고, 대처 능력이 커지는 것이죠. 

요즘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고수들이 일상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구나 싶습니다. 박재삼이, 존 러스킨이, 헬렌 켈러가 같은 생각을 했어요. 사과가 떨어져 있는 걸 본 최초의 사람이 뉴턴이 아니잖아요. 사과는 늘 떨어져 있지만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은 겁니다. 상황에 대한 다른 시선, 절박함이 사과를 보고 이론을 정리하게 했죠. 답은 일상 속에 있습니다. 나한테 모든 것들이 말을 걸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들을 마음이 없죠. 그런데 들을 마음이 생겼다면, 그 사람은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45



행복은 지금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삶은 순간의 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삶을 레이스로 생각합니다.  46


레이스가 된 삶은 피폐하기 이를 데 없죠.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래서 저는 순간순간 행복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행복은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그러나 풍요롭기 위해서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얼마만큼 감상할 수 있느냐에 따라 풍요와 빈곤이 나뉩니다. 그러니까 삶의 풍요는 감상의 폭이지요.  47


중요한 것은 휘슬러의 <화가의 어머니>를 보면서 소름이 돋으려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이 "문화미와 예술미는 훈련한 만큼 보인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47-49


시이불견 청이불문(視而不見 聽而不聞 볼시 말이을이 아닐불 볼견 들을청 말이을이 아닐불 들을문).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시청은 흘려 보고 듣는 것이고 견문은 깊이 보고 듣는 거죠.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그저 지겹다고 하는 것은 시청을 하는 것이고요, 사계의 한 대목에서 소름이 돋는 건 견문이 된 거죠. [모나리자] 앞에서 '얼른 사진 찍고 가자'는 시청이 된 거고요, 휘슬러 [화가의 어머니]에 얼어붙은 건 견문을 한 거죠. 어떻게 하면 흘려보지 않고 제대로 볼 수 있는가가 저에게는 풍요로운 삶이냐 아니냐를 나누는 겁니다. 존 러스킨은 "당신이 보고 난 것을 말로 다 표현해보라"라고 했습니다. 나뭇잎을 봤다면, 나뭇잎의 균형감각이 어떻게 되어 있고, 앞뒷면의 촉감이 어떻게 다르고, 끝부분은 어떤 모양이고, 햇살이 떨어진 각도에 따라 나뭇잎의 색깔이 어떻게 다른지 볼 줄 알면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49-50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동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51





2강 김훈의 힘, 들여다보기


- <자전거 여행>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자전거 여행2>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화장]<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바다의 기별>


구어가 곧 문어(文語 글월문 말씀어)라는 겁니다. 말로 나오는 문장을 그냥 받아적으면 글로 쓸 수 있는 정도입니다.

김훈의 특징은 사실적인 글쓰기를 한다는 겁니다.  59


'탐사취재' 

정밀탐사 ...

김훈의 글은 형용사나 부사를 별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인 사실만 불러내서 정서를 전달하는데, 생각보다 그 힘이 굉장히 큽니다.  60


김훈은 무엇을 보든 천천히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64


'디자인은 단순한 멋 부리기가 아니다.

 디자인은 깊은 생각의 반영이고

 공간에 대한 배려다.'  68


니코스 카잔차키스도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조르바를 통해 "그에게 두려웟던 것은 낯선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이었다"라고 얘기합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익숙한 것 속에 정말 좋은 것들이 주변에 있고,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듣지 못한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90


'식물학자들의 설명에 따르면 나무밑동에서 살아 있는 부분은 지름의 10분의 1정도에 해당하느 바깥쪽이고, 그 안쪽은 대부분 생명의 기능을 소멸한 상태라고 한다.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있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준다.'

지금 생명활동에는 아무런 관여를 하고 있지 않지만, 중심부가 있지 않으면 나무가 서 있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92


<바다의 기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내가 쓴 장편소설 <칼의 노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입니다. (...)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당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이것을 구별하지 못하면 나의 문장과 서술은 몽매해집니다.'  93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는 못한다.'

왜군들은 군인으로 오지만 죽을 때는 개인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군들이 올 때는 군인이라는 집단명사로 옵니다. 나라를 위해서,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오는데 죽을 때는 일본 군인으로 죽는 게 아니라 가족과 헤어져 외롭고 고통스러운 슬픈 개인으로 죽습니다. 죽음은 전부 개별적이라는 이야기죠. 보편적 죽음이 개별적 죽음을 설명할 수 없어요. 그리고 위로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서오가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태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맞아요. [화장]에 아무리 사랑을 해도 아픔은 전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픔도 개별적이에요. 냉정하지만 사실이죠. 아무리 자식이 아프다고 해도, 아파하는 걸 보면서 마음이 아플 뿐이지 그 아픔을 진짜 느낄 수는 없어요. 철저히 개별적인 객체입니다. 평소에 너무 아프거나 추해서 의도적으로 보려 하지 않는 것들을 김훈은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렇게 각성과 새로운 시선을 전져주죠. 김훈은 말합니다.

'나는 사실만을 가지런하게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96-97





3강 알랭 드 보통의 사랑에 대한 통찰


- <불안>

  <우리는 사랑일까>

  <동물원에 가기>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개정판으로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우리 모두는 불충분한 자료에 기초해서 사랑에 빠지며, 우리의 무지를 욕망으로 보충한다.'

사실 상대에 대한 전체적인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사랑에 빠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대상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어떤 한 면을 봅니다. 말 한마디의 한 컷, 그 사람이 나에게 얘기했던 한순간만 보고 사랑에 빠집니다. 그리고 예쁘다, 멋지다. 매력적이고 좋다고 생각한 뒤 나머지 부분은 다 상상으로 채우죠. 그 상상은 나의 욕망으로 채워집니다.  105


우리는 워홀이 통조림에 했던 발견을 자신에게 해주는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아마 통조림은 워홀을 사랑하고 평생의 연인으로 삼을 겁니다. 눈물을 흘릴지도 몰라요. 자기를 그렇게 아름답게 봐준 사람이 처음이니까요. 아무도 자기를 중요하게 혹은 예쁘게 안 봐줬어요. 그런데 워홀은 '너 대단히 예쁘다'라고 끌어서 액자 속에 걸어놓아줬어요. 사랑의 감정이 싹트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얘기예요.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것은 상대가 다른 누구도 주목해주지 않았던 어떤 부분을 주목해주거나 다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던 진가를 알아줬을 때 사랑에 빠진다는 거죠. 그걸 연결해서 알랭 드 보통은 워홀이 물감으로 한 일과 사라의 유사점에 대해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합니다.

'워홀이 물감으로 한 일과, 오랫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코나 손의 점들을 애인이 칭찬해주는 일은 비슷하지 않을까?

애인이 "당신처럼 사랑스런 손목/사마귀/속눈썹/발톱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거 알아? 라고 속삭이는 것과 예술가가 

수프 통조림이나 세제 상자의 미적인 성질을 드러내는 것은 구조적으로 같은 과정이 아닐까?'

대단한 통찰이죠? 우리가 사람에게 하는 것이나 예술가들이 사물에 하는 것이 같은 과정이라는 메시지가 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습니다. 

또 공감할 만한 건 사랑이라는 게임에서 드러나는 '권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권력이라는 건 '뭔가 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란 게임에서만큼은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것', 그게 권력입니다. 만약에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둘 중 영화를 보고 싶거나 여행을 가고 싶거나 뭘 더 하고 싶은 쪽이 상대를 더 사랑한다는 겁니다. 사실 덜 사랑하는 쪽은 상관이 없는 거죠. "하고 싶은 거 해, 뭘 하든 상관 없어"라고 적당히 무관심한 듯 물러서서 아무 의견을 내지 않아요. 그래서 사랑에서의 권력은 무엇을 할 수 있는 느엵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이 능력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115-116


옛날에는 시인을 볼 견(見 볼견)자를 써서 견자(見者 볼견 사람자)라고 했다죠. 들여다보는 사람,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다른 사람들이 못보는 것을 발견하는 사람이 바로 시인이라는 뜻일 겁니다.  123


카프카가 한 말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왜 우리가 그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냐.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129


책을 많이 읽고 인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들은 촉수가 민감해지죠.  130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 존 러스킨의 "말로 그림을 그려보라"라는 말을 인용했는데요. 그런 것이죠. 말로 그림을 그리듯 자세히 볼 줄 알아야 합니다.  134





5강 햇살의 철학, 지중해의 문학


- 김화영 <행복의 충격-지중해, 내 푸른 영혼> <바람을 담는 집>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김화영 예술기행>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천상의 두 나라>

  로버트 카플란 <지중해 오디세이>

  알베르 카뮈 <이방인>

  앙드레 지드 <지상의 양식>

  장 그르니에 <섬>

  릴케 <말테의 수기>


영혼을 구원한다는 이유로 신부가 당신을 위해서 기도하겠다고 하자 뫼르소는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너에게는 없지 않느냐? 나는 보기에는 맨주먹 같을지 모르나 나에게는 확신이 있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확신.'  217





6강 결코 가볍지 않은 사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키치의 세계는 보고 싶은 것만 골라서 보기 때문이죠. 체제가 다를 뿐 모든 세계에 키치가 존재하는 겁니다. 작가는 키치에 의해 유발된 느낌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 의해 공감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과감한 짓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

'그녀는 일생 동안 자신의 적은 키치라고 단언했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조차도 자신의 존재 깊숙한 곳에 키치를 품고 살았던 것을 아닐까? (...) 텔레비전의 멜로드라마 속에서 배은망덕한 딸이 버림받은 아버지를 품 안에 껴안는 모습이나 행복한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의 창문이 황혼 속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면, 그녀는 두 눈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266





7강 불안과 외로움에서 당신을 지켜주리니, 안나 카레니나


-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2,3


'기계적 인문'. 기계적 인문은 제가 만든 말인데, 땅에 발을 디딘 현실적인 인문학이 아니라 기계적으로 이론만 가지고 사회를 파악하려고 하는 인문을 말합니다. 기계적인 인문을 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부딪혀 문제를 풀지 않아요. 책으로만 배운 인문은 민중의 해방을 위해 민중을 교육시켜야해요. 그런데 민중이 일을 해야 하니 일을 하게 둬요. 그리고 밤늦게 일이 다 끝난 후 학습을 시켜요. 그 학습은 민중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시간 투자이기 때문에 절대 빠져서도 안 돼요. 그러니까 잠을 못 자게 하고, 술 한 잔도 정신이 흐트러져 안 된다고 금지하는 거예요. 민중은 그게 싫어요. 사실 그들은 대단한 미래를 바라지도 않아요. 현재도 충분히 행복하니까요.  286






8강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다


- 법정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손철주 <인생이 그림 같다-미술에 홀리느 손철주 미셀러니>(<그림 보는 만큼 보인다> 재출간)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미술이야기>

  오주석 <한국의 미 특강> ㅡ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 권 <그림 속에 노닐다>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한형조 <붓다의 치명적 농담>



'뼈빠지는 수고를 감당하는 나의 삶도 남이 보면 풍경이다.'

모든 삶이 그 사람한테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지만 멀리서 보면 행복해 보인다는 것이죠. 그러고 보니까 모든 근경은 전쟁이고, 모든 원경은 풍경 같습니다.  322-323


벗나무 아래 엄숙할 것 없는 문명사. 자연사보다 결코 대단할 것 없는 문명사. 예술을 한 번도 동경한 적 없는 자연.  327


'형상이 드러나지 않은 여백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것도 보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거기에는 마치 위대한 음악의 중간에 침묵의 몇 초를 기다리는 순간과 같은 마음 졸임이 있는 까닭이다.'

'침묵의 위대함은 앞뒤의 음향이 만든다. 그림 속 여백의 의미심장함은 주위의 형상이 조성한다.'  329


'예술의 격조란 정확히 감상자의 수준과 자세만큼 올라간다.'  334


우리는 책에 대한 긍정적인 편견이 있습니다. 책이면 다 좋다는 편견이죠. 하지만 읽는 시간이 아까운 글들도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점수의 삶의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돈오하려면 깨달음을 줄 만한 좋은 책들을 찾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45


호학심사 심지기의(好學深思 心知基意 좋을호 배울학 깊을심 생각할사 마음심 알지 터기 뜻의), 즐겨 배우고 깊이 생각해서 마음으로 그 뜻을 안다는 뜻입니다. 비단 책뿐 아니라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촉수를 모두 열어놓으면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을 즐기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행복은 선택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잔디이론으로 봅니다. 저쪽 잔디가 더 푸르네, 저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346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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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끌렸다. 그래서 내용을 보지도 않고 골랐다. 물론 도서관이니까...
고전.. 많은 사람들이 열망하지만, 열망하는 만큼 봐지지는 않는 책이 아닐까 싶다.
정보 홍수의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와 매일매일 새로이 출판되는 지식의 책들..
우리는 이 속에서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매우 버거울 정도이다.

우리는 농경시대로 시작하여 산업혁명을 거쳐 서비스산업에서 정보화 사회, 그리고 이제는 창조적인 상상력의 시대에 와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정보화 사회라고 생각하는것이다.
정보화 시대는 이미 수년전에 마감하였다.
어느 정보학자에 의하면 2014년쯤에는 어느시점에서의 정보의 2배가 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그 날로부터 80여일 후 라고 한다.
정보의 양은 범람하고 있다. 그것들에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고 가꾸어 새로운 자신만의 독창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 우리시대의 요구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우리의 책 읽기는 정말 예전으로 돌아가야 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고전은 길고 긴 시간동안 살아남아 있는 만큼 세대를 아울러 시대에 맞는 생각꺼리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정보에 힘겹게 따라갈때 깊은 지혜를 깨달을 수 있는 책이 더욱 필요한 건 아닐까...!!

이 책은 그런 생각에서 많이 접하지 못하지만 늘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고전이라는 단어에 끌려 골랐다.
종교학자의 고전읽기는 다분히 종교적인 색깔을 띠고 있기도 하지만, 저자의 생각들을 엮어놓은 부분들에서 다시읽기를 통해 자신이 더욱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였다.
비교적 젊은 편에 속하는 나에게 '되읽음'이라는 책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이라면 어느것이든 되읽음이 필요하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그 책이 고전이라면 더욱 깊이 있을 것이다.

책은 8가지의 책의 되읽기를 통해 저자의 생각들이 정리되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일연 <삼국유사>
허먼 멜빌 <모비 딕>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노신 <아Q정전>
니체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0년, 20년, 어느것은 40년의 간격을 두고 되읽은 것이었는데, 그것은 실은 '되읽음'이 아니었습니다. 역설적인 말입니다만 그것은 '되읽은 처음 읽음'이었습니다. 작품도 저도 모두 '이전의 작품. 이전의 나'가 아니었습니다.
회상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지난 과거를 지금 이 자리에 현존하게 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처음이게 한다는 회상에 대한 존재론적 서술이 그대로 낯설지 않은 내 삶의 현실로 다가온 것입니다.  10
어떤 이야기가 '처음 읽기'와 '한 번 읽기'를 넘어 '되읽기'의 자리에 이르러 비로소 권위를 확보하고, 그로부터 경전이 출현한다는 사실.  11

경험은 만남에서 비롯합니다. 그런데 만남은 지녀지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기도 합니다. 지녀지는 것은 경험으로 남지만 스친 것은 사라집니다. 그것은 만남이되 만남이 아니고 맙니다. 그런데 알 수 없습니다. 사라짐이 결코 무화(無化)일 수 없다는 사실을 터득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지 않은 듯합니다. 우리는 흔히 그러한 일을 겪습니다. 언젠가 겪었던 것 같은 일을 지금 다시 겪는다고 느끼는 일은 누구나 당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이 막연한 '그럴 것 같음'이 아니라 분명한 '그러함'이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25

책의 평가도 보는 이의 자리에 따라 높낮이와 무게가 서로 다릅니다.  69
삶이 '지금 여기'로 점철된 지평을 넘어서 지금 여기에 담을 수 없는 이상스러움에 담기기까지, 그렇다는 것이 기이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실은 역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다. 역사를 역사이게 한 뿌리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96
사람들은 '큰 것'을 동경한다. 그러나 막상 커 빼어나게 되면 한 없이 외롭다. 짝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의 '이야기'속에는 이렇듯 '거인(巨人)' 또는 '거녀(巨女)'의 이야기가 어디, 어느 때나 자리잡고 있다. 무릇  사람들은 누구나 짝할 이가 없을 만큼 자기 나름의 빼어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까? 그렇다고 믿기 때문일까?  99

고전을 권하는 것만으로도 '얻는 것'이 적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누구나 압니다. 그리고 쉽게 살면 편한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읽은 이들'이 고전을 '고전 읽기의 문화 틀'에 담지 않으려는 것은 그 고전들이 별로 귀하지 않음을 그분들이 '드디어' 터득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분들이 저어하고 삼가는 것은 글의 숨쉽이 당위성으로 단단해진 권위의 벽 안에 갇혀 자칫 사람들이 '질식할 책'을만날지도 모른다는 사려 깊음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읽은 이는 고전 읽기를 고백의 언어'에 담지만 '읽지 않은 듯한 이는 그것을 인식의 언어'에 담는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25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추억 앞에서조차 현존하지 못하는 말과 글의 얄팍함을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마로가 글이 감당할 수 없는 추억의 무게를 말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 어떤 흔적도 없이 오로지 생을 지탱하려다 '흩날리는 물방울'로 사라져도 행복한 자의 뿌듯함을 말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경이에 가득 찬 일' 과 '깊은 추억'이란 내 생에 속에 전혀 없었노라고 말해야 하는것인가?  152

범죄가 누구나 범할 수 있는 것이듯 참회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범죄를 누구나 미워하듯이 참회를 누구나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범죄자의 참회에 대한 분노는 이른바 의로운 자의 일상이다. 이것은 참 슬픈 그림이다.  199
잔인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잔인하게 잔인해야 잔인해진다.  201

책을 쓴 사람은 그 모델이 있든 엇든 이러한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절실한 동기가 있어 이 책을 썼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소재가 시시하다고 이 책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209

그녀는 헤어진 레옹을 다시 만난다. 그리고 다시 몸과 모음을 태운다. 그러나 그 만남 역시 불꽃이 남겨 놓은 재임에는 아무 다름이 없다. 마지막 남은 일은 자신에게 스스로 '최면(催眠)'을 거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고 있어"라고.
욕망은 그러한 것인가? 기대와 절망을 넘나들면서 그녀는 여전히 완벽하게 욕망을 충족시켜줄 사람을 기다린다. 미소 뒤에 숨은 권태의 하품, 환희와 그 뒤에 이어지는 저주, 쾌락을 뒤쫓는 혐오, 황홀한 입맞춤이 끝나면 더 커지는 실현될 수 없는 관능, 그런 것에 대한 분명한 인식. 그러나 그녀는 달라지지 않는다.
욕망은, 일탈한 욕망은, 그런 것일까?
그녀는 그것도 모르지 않는다. 뒤에 그녀는 결혼 생활의 진부함을 간통 속에서도 그대로 발견하고 이렇게 말한다. "이러한 행복의 저속함에 굴욕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음' 인간이 발언할 수 있는 마지막 정직. 욕망은 그 정직함 속에서 배태되고 또 소멸한다. 모든 도덕은 그 '어쩔 수 없음'의 정직을 억제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245
삶은 산문적 현실에 담기는 것이지 시적 진실에 담기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얼마나 전자를 견딜 수 없으면 후자로 채색하여 대강 보아 넘기려는 것일까? 그러나 끝내 간과되지 않는 현실, 웃고 끝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자신을 끝내 속일 수 없었던 정직을 '절망적'으로 웃는 일밖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248

어쩌겠는가? 보고 싶은 대로 세상을 보는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은 "그저 마음대로 생각하십쇼" 뿐인 것을! 그런데 세상에는 그러한 사람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그저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말하면서 산다. 우리는 모두 타인에게는 산초 빤사이고 자신에게는 돈 키호테이다.  287
'날조한 망상'을 현실로 생각하는 것처럼 현실적인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현실에 대한 상상적 인식처럼 정직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돈 키호테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다. 다만 '망상이 만든 현실'을 '상상이 만든 현실'을 정직하게 자신의 현실이라고 여겼을 뿐이다.  288
돈 키호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를 자기의 심장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세상에는 때로 돈 키호테와 같은 행운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그러한 행운아가 되도록 하는 산초 같은 종자도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행운아가 '돈 키호테이기 때문에'산초가 있었다는 사실은 잊고 있다.  292

노예 근성은 꿇어앉는 것이다. 설 수 없는데 서라고 하는 명령 앞에서는 누구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노예 근성은 불가항력이다. 힘 앞에서는.  334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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