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 출발
정보는 사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고, 지식은 뒤죽박죽 섞인 사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지혜는 뒤얽힌 사실들을 풀어내어 이해하고, 결정적으로 그 사실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 지식은 안다. 지혜는 이해한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는 종류의 차이이지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다. 지혜는 실천하는 것이다. 6-7

철학은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도와주고, 바로 거기에 큰 가치가 있다. 11

우리에겐 느 ㄹ지혜가 필요하지만 삶의 단계마다 필요한 지혜가 다르다. 열다섯 살에게 중요한 ‘어떻게’ 질문과 서른다섯 살, 또는 일흔다섯 살에게 중요한 질문은 같지 않다. 철학은 각 단계에 반드시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14


1부 새벽

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망각이었다. 그는 온전한 삶을 살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독촉했다. 31-32

마르쿠스는 스스로에게 생각을 그만두고 행동에 나서라고 누차 촉구한다. 32



2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감정도 열차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주기적으로 한바탕 찾아오는 나의 우울은 난데없이 나타난 것처럼 보이지만 가만히 멈춰 서서 그 근원을 잘 살펴보면 숨은 원인을 찾게된다. 나의 슬픔은 바로 앞의 생각이나 감정에 원인이 있고, 이 생각이나 감정은 그 이전의 것에, 그 이전의 것은 1982년에 어머니가 한 말에 원인이 있다. 생각이 그렇듯이 감정도 결코 느닷없이 나타나지 않는다. 열차처럼 앞에서 감정을 끌어당기는 힘이 늘 존재한다. 41-42

사람들은 질문을 물어봅니다. 가끔은 질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질문과 씨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을 경험하지는 않습니다. 43

소크라테스에게 가장 최악위 무지는 지식의 가면을 쓴 무지였다. 48-49

우리는 종종 궁금해하는 것과 호기심을 같은 것으로 여긴다. 물론 두 가지 다 무관심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 방식은 서로가 다르다. 궁금해하는 것은 호기심과 달리 본인과 매우 밀접하게 엮여 있다. 우리는 냉철한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냉철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냉철하게 궁금해할 순 없다. 호기심은 가만히 있질 못하고 늘 눈앞에 나타나는 다른 반짝이는 대상을 쫓아가겠다며 위협한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그렇지 않다. 그 마음은 오래도록 머문다. 호기심이 한 손에 음료를 들고 안락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발을 올려둔 것이 바로 궁금해하는 마음이다. 궁금해하는 마음은 절대로 반짝이는 대상을 쫓지 않는다. 절대로 고양이를 죽이지 않는다.
궁금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좋은 식산 좋은 섹스처럼 절대 서두를 수 없다. 이러한 이유로 소크라테스도 절대로 대화를 재촉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상대가 점점 지치고 분노할 때초자 인내심을 갖고 대화에 임했다. 55-56

좋은 철학은 느린 철학이다. 57

멈춤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된 상황이다. 생각의 씨앗이다. 모든 멈춤은 인식의 가능성, 그리고 궁금해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57

문제를 경험하기 전에 해결하는 것은 식재료를 구매하기 전에 요리를 하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너무 자주 우리는 가장 빠른 해결책, 또는 가장 편리한 즐거움에 손을 뻗는다. 63

내 견해가 어떻게 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지 생각해본다. 다른 모든 교활한 지배자처럼 나의 의견 역시 내가 자기들을 불러들였ㄷ고 믿게 한다. 정말 내가 그랬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생각이 말도 없이 나타나서 멋대로 내 옷을 걸쳐 입은 걸까? ..
깊이 있는 질문은 느리고 더 깊이 침잠한다. 68

철학은 말뿐이야. 질문만 끝없이 늘어놓고 대답은 없어. 언젠 떠나기만 하고 도착하지는 않는 기차야. ..
철학도 분명 도착지에 관심이 있지만, 여행을 서두르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그저 똑똑한 대답이 아닌 ‘마음의 대답’에 도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69

좋은 질문은 그렇다. 사람을 단단히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프레임을 다시 짜서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한다. 좋은 질문은 문제의 해답을 찾게 할 뿐만 아니라 해답을 찾는 행위 그 자체를 재평가하게 만든다. 좋은 질문은 똑똑한 대답을 끌어내기도 하지만 침묵을 끌어내기도 한다. 71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는 내가 문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들어 있다. ..
‘이제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지? 솔직히 말하면 아직 이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고, 어쩌면 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안경의 도수를 다시 맞추었고, 이제 앞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72-73



3 루소처럼 걷는 법


철학자이자 황제인 마르쿠스가 대답을 해준다. ‘상상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삶은 더 이상 실패한 서사나 망쳐버린 결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진실이 아니다. 결말 같은 건 없다. 무한한 시작의 사슬만이 있을 뿐. 99



4 소로처럼 보는 법


소로가 동양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평범했다. 인생의 위기, 1837년이었다. 소로는 당시 관습이었던 체벌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콩코드 학교의 교사직에서 막 해고된 참이었다. 무일푼에 갈곳도 없었다. 그때 우연히 책 한 권을 만났다. 1000페이지에 달하는, 무려 “영국령 인도에 관한 역사적 기술적 해설”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소로는 묵묵히 책을 읽어내며 보석을 캐냈다. 책 속에 잇는 생경하고도 친숙한 아이디어들이 천천히 소로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소로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어느 정도는, 아주 가끔이지만, 나 또한 요가 수행자다.”
내 생각에 소로는 요가 수행자보다는 산야시(sannyasi)에 더 가깝다. 힌두교 전통에서 산야시는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내던진 사람으로, 모든 재화를 포기하고 오로지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숲에 틀어박힌다. 113-114

<월든>의 영웅이자 미국 설화의 사랑받는 아이콘, 환경주의의 주창자, 문학의 거성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개자식이었다. 소로를 아는 모두가 그렇게 말했다. 너새니얼 호손은 소로에게 “무쇠로 만든 부지깽이처럼 뻣뻣한 완고함”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호손만큼 친절하지 않았다. 소설가 헨리 제임스와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아버지인 헨리 제임스 시니어는 “소로는 평생 내가 만난 그 누구보다도 유치하고 개념 없고 뻔뻔한 이기주의자"라고 했다.
소로가 받는 혹독한 비난은 주로 위선에 관한 것이다. 소로는 숲속에서 홀로 자족하는 척하면서 몰래 엄마 집에 들러 파이를 먹고 빨래를 맡겼다.
그건 사실이다. 소로는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월든에 고립되어 살지 않았다. 엄마의 요리를 먹으려고, 또한 우체국과 카페에 들르려고 종종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마을로 향했다. 그렇다면 《월든》은 사기인가? 미국 전역의 중학교 3학년생은 그동안 기만당한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소로는 사회와의 끈을 전부 끊어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 <월든>은 숲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책이 아니다. <월든>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 관한 책이다. 115-116

가끔 우리는 의미를 너무 빨리 창출한다. .. 물건과 사람을 너무 빨리 정의 내리면 그것들의 유일무이함을 보지 못할 위험이 있다. 소로는 그러한 경향을 경계했다. “보편 법칙을 너무 성급하게 끌어내지 말 것.” 소로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한다. ‘특수한 사례를 더 명확하게 들여다 볼 것.” 눈앞에 보이는 것을 바로 규정하지 않고 기다리면 더 많은 것을 보게 된다. 120

소로는 말한다.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것을 멈출 때에야 나는 비로소 그 대상을 보기 시작한다.” ..
소크라테스처럼 소로도 철저하게 의식적인 무지를 중요하게 여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유용한 무지를 전파하는 모임”을 만들겠다고 했다. 128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고 싶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본질적인 실상에 직면하고 싶어서, 그것들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죽음을 맞이 했을 때 내가 제대로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지 않아서였다.” 132

관점을 바꾸면 어떻게 보느냐뿐만 아니라 무엇을 보느냐도 바뀐다. “제대로 된 관점에서 보면 모든 폭풍과 그 안에 든 모든 빗방울이 무지개다.” 133

매일 틀에 박힌 것만 보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소로는 자신의 관점을 바꾸었다. 133

“무엇이든 제대로 보려면 거리를 두어야 한다.” 143



5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그의 저서 <의지의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전부 제시되어 있다. .. 20대 때 완성한 이 작품을, 쇼펜하우어는 “한 가지 생각의 산물”이라고 칭했다. 153

책만 열면 바로 해답이 있는데 골머리를 썩일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쇼펜하우어는 대답한다. 왜냐하면 “스스로 생각해서 해답을 내놓는 것이 100배는 더 가치있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과 함께 머무르지 않고 너무 자주 책 앞으로 달려간다고 말했다. “책은 자기생각이 고갈되었을 때만 읽어야 한다.”
‘읽다’를 ‘클릭하다’로 바꾸면 현재 우리가 겪는 고충이 된다. 우리는 데어터를 정보로 착각하고, 정보를 지식으로, 지식을 지혜로 착각한다. ..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썼다. “정보는 그저 통찰로 향하는 수단일 뿐이며 정보 그 자체에는 거의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자 한다. 이런 과도한 양의 데어터(사실상 소음)는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이며, 통찰의 가능성을 없앤다. 소음에 정신이 팔린 사람은 음악을 듣지 못한다. 179





2부 정오

6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삶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마라. 만약 그 성취가 네 이웃에게 알려진다면 그 때문에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명령에 언짢아하는 추종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이들에겐 감출 것이 하나도 없었다. 194

에피쿠로스는 경험론자였다. 그는 우리의 감각을 통해, 오로지 우리의 감각만을 통해 세상을 알 수 있다고 믿었다. 194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주요 원칙은 “네 가지 치료법”이라는 뜻의 테트라파르마코스(tetrapharmakos)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약처럼 철학도 일정 간격을 두고 처방된 양을 섭취해야 한다. 약처럼 철학에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어지러움, 방향 감각 상실, 그리고 때때로 조증 삽화까지. 194-195

진정해. 에피쿠로스가 말한다. 그리고 즐기라고. 그는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인 쾌락을 옹호했다. 그리고 도발적으로 덧붙였다. “만약 내게서 맛의 쾌락을 빼앗는다면, 성적 쾌락을 빼앗는다면, 듣는 쾌락을 빼앗는다면, 아름다운 형태를 보았을 때 느끼는 달콤한 감정을 빼앗는다면, 선을 어떻세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196

“나는 명예가 있는 자와 헛되이 그들을 찬양하는 자에게 침을 뱉는다.” 쾌락은 우리가 그 자체로서 욕망하는 유일한 것이다. 그 밖의 모든 것, 심지어 철학까지도, 쾌락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한 수단이다. ..
어린아이는 무엇에 반응하는가? 쾌락과 고통이다. ..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ataraxia)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平靜)주의자’ 였다. 197

현재 우리는 쾌락의 황금시대를 살고 있다. 클릭 한 번이면 우리를 애태우는 수많은 것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고급 요리, 메모리폼 매트리스, 변태 같은 섹스, 다양한 종류의 기기들, 에피쿠로스라면 이 모든 것이 다 우리를 유인하는 가짜 쾌락이라고 말할 것이다. 201-202

에피쿠로스와 부처의 가르침은 놀라울 만큼 유사하다. 두 사람 다 욕망을 고통의 근원으로 보았다. 두 사람 다 평정을 수행의 궁극적 목표로 보앗다. 두 사람 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에피쿠로스에겐 정원이, 부처에겐 수행공동체인 승가가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숫자 4를 좋아했던 것 같다. 부처에겐 사성제(四聖諦)가, 에피쿠로스에겐 네 가지 치료법이 있었다. 205



7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관심에 대해 깊이 고민한 이 철학자는 자신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보고 싶어 했으나 보이는 것은 원치 않았다. 기차를 타거나 공장에서 일을 할 때 자신의 목표는 익명성, “사람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도록 사람들 속에 섞여 들어가서 사라지는 것”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 221

관심은 중요하다. 다른 무엇보다도 더, 관심은 우리의 삶을 형성한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지금 당장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인 것만이 우리 앞에 존재한다. ..
관심의 질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 어디에 관심을 기울이기로 결정했느냐, 더 중요하게는 어떻게 관심을 기울이느냐가 곧 그 사람을 보여준다. 222

가장 강렬하고 너그러운 형태의 관심에는 다른 이름이 있다. 바로 사랑이다. 관심은 사랑이다. 사랑은 관심이다. 이 두 가지는 같은 것이다. “불행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시네게 관심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베유는 말한다. 보답에 대한 기대 없이 타인에게 온전한 관심을 쏟을 때에만 우리는 이 “가장 희소하고 순수한 형태의 너그러움”을 베풀게 된다. 227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관심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은 매우 희귀하고 갖기 어려운 능력이다. 그건 거의 기적에 갂바다. 아니, 그것이 바로 기적이다.” 228

베유는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하진 않다고 말한다. 짧은 질문 한마디가 마음을 녹이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지금 무슨 일을 겪고 계신가요?” 베유는 이 질문이 강력한 힘을 지닌 이유가 고통 받는 사람을 “집합체의 한 단위, 또는 ‘불행하다’라는 딱지가 붙은 사회 범주의 한 표본으로서만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그저 어느 날 고통이 특별한 흔적을 남겼을 뿐인 한 명의 인간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28-229

관심은 집중이 아니다. 집중은 강제할 수 있다. 얘들아, 잘 좀 들어! 하지만 관심은 강제할 수 없다. 집중할 때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해보라. ..
집중은 수축한다. 관심은 확장한다. 집중은 사람을 피로하게 한다. 관심은 피로를 회복시켜준다. 집중은 생각을 한곳에 모으는 것이다. 관심은 생각을 유보하는 것이다. 베유는 이렇게 쓰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생각은 텅 빈 채로 기다려야 하고 그 무엇도 추구해서는 안 된다. 그저 자신의 생각에 침투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이 문장에 그리 당혹스럽지 않다면, 베유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든 문제는 수동성의 결여에서 생겨난다.”라고 선언한다. 233

관심은 우리가 행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동의하는 것이다. 헬스보다는 요가에 더 가깝다 베유는 이를 “소극적인 노력”이라고 불렀다. 베유는 진정한 관심이란 일종의 기다림과 같다고 믿었다. 베유에게 이 두 가지는 사실상 같은 것이었다. “우리가 가장 귀중한 선물을 얻는 것은 그것을 찾아 나설 때가 아니라 그것을 기다릴 때다.” 관심의 반대말은 산만함이 아니라 조급함이다. 234

우리가 종종 너무 서둘러 판단을 내리듯이 우리는 관심을 기울이는 데도 너무 성급하다. 어떤 대상이나 생각에 너무 빨리 혹하고, 그 대가를 치른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아름다움이나 친절한 행동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베유는 알지 못하는 상태, 생각하지 않는 상태를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인내심이 필요하다. 234-235

지적 조급함은 물에 빠진 사람이 칼이라도 붙잡으려 하는 것처럼 나쁜 아이디어라도 붙잡으려고 한다. 베유는 우리의 모든 실수가 “생각이 아이디어를 너무 성급하게 붙잡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이렇게 일찍 차단되면 진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238



8 간디처럼 싸우는 법


간디는 폭력을 혐오했지만 그가 폭력보다 더 싫어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비겁함이다. 둘 사이에서 골라야 한다면 간디는 폭력을 선택했다. “비겁한 사람은 남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간디의 진정한 목표는 인도의 잃어버린 남성적 힘을, 인도만의 방식으로 되찾는 것이었다. 간디는 그렇게 하면 자유가 자연히 따라오리라 믿었다. 275

간디는 새로운 형태의 비폭력 저항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사티아그라하. 사티아(satya)는 산스크리트어로 '진실'이라는뜻이고, 아그라하(agraha)는 '결의' 또는 '단호히 하다'라는 뜻이다. 진리의 힘('영혼의 힘'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이다. 이것이 바로 간디가 품고 있던 것이었다. 여기에는 수동적이거나 물렁한 면이 전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능동적인 힘이다. 사티아그라히, 즉 비폭력 저항가는 무장한 병사보다도 더 능동적이며,더 용감하다. 간디는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는 그 어떤 위대한 용기도, 지능도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오직 진정으로 용감한 사람만이 인간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자발적으로 고통을 겪는다. 간디의 병사들은 다른 병사들처럼 대의명분을 위해 기꺼이 죽으려했다. 하지만 다른 병사들과는 달리 대의명분을 위해 다른 사람을 기꺼이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혁명을 하다 보면 이런 일도 생깁니다." 레닌은 자신의 집단학살 명령을 변호하며 이렇게 말했다. 간디의 혁명은 그렇지 않았다. 간디는 피비린내 나는 수단을 이용해 인도의 독립을 쟁취하느니 계속 영국의 속박을 받는 것이 낫다고 보았다. 간디는 "구덩이 안으로 내려가지 않고 구덩이를 팔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말했다. 다른 이를 잔인하게 대하는 사람은 곧 스스로를 잔인하게 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혁명이 결국 실패로 끝나는 것이다. 수단과 목적을 혼동한 사람은 스스로를 집어삼킨다. 간디가 보기에 목적은 절대로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했다. 수단이 곧 목적이었다. “불순한 수단은 불순한 결과를 낳는다. 정확히 뿌린 대로 거두게 되는 법이다." 유독한 땅에서 장미나무를 키울 수 없듯이, 피 묻은 땅에서는 평화로운 국가를 세울 수 없다. 284-285

간디는 절대로 비폭력을 하나의 전략으로, “마음대로 걸쳤다 벗었다 하는 옷”으로 여기지 않았다. 비폭력은 하나의 원칙이며, 중력의 법칙처럼 침범할 수 없는 법칙이다. 287

1959년,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인도에서 간디의 가족을 포함한 간디의 추종자들을 만났다. 킹은 이 여행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고, 몇 년 후 흑인 인권운동에서 비폭력 저항의 “단호한 사랑”을 활용했다. 비폭력은 1980년대의 필리핀, 1990년대 초의 동유럽처럼 다른 곳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약 300건의 비폭력 운동을 종합적으로 살핀 연구에서 연구원 에리카 테노웨스와 마리아 슈테판은 이 전략이 절반 이상의 사례에서 효과를 나타냈음을 발견했다(또한 비폭력 전략은 이들이 연구한 사례의 4분의 1에서 부분적 성공을 거두었다). 287-288

간디는 폭력을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상대편을 친구로 바꿀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의 폭력은 부도덕ㅎㄴ 충동이 아닌 상상력의 부족에서 비롯된다. 폭력적인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힘들게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고 주먹을 날리거나 총에 손을 뻗는다. 너무나도 빤한 반응이다. 290

간디가 말한 깨끗한 생각은 “베일을 쓴 폭력”에서 자유로운 사고를 의미했다. 어떤 사람 앞에서 평화롭게 행동하더라도 그 밑에 폭력적인 생각이 깔려 있으면 그것은 깨끗한 게 아니다. 간디는 추종자들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창피한 줄 알라”고 소리치는 것을 금지한 적이 있다. 오늘날 자기가 싫어하는 정치인의 식사를 방해하는 사람들을 간디는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시위자들은 신체적으로는 그 누구도 해치지 않을지 몰라도 사실은 그저 “비폭력의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292

자기 원칙을 타협하는 것은 곧 굴복하는 것, “모두 주고 하나도 얻지 못하는 것”이라고, 간디는 말했다. 더 나은, 더 창의적인 해결책은 양측이 자신이 원하는 줄도 몰랐던 것을 얻게 되는 것이다. 295





3부 황혼

11 니체처럼 후회하지 않는 법


“모든 진실은 구불구불하다.” 니체가 말했다. 모든 삶도 맟찬가지다. 우리는 모든 것이 지난 후에야 과거를 돌이켜보며 서사를 매끄럽게 다듬고 패턴과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모든 것이 지그재그다. 여백도 있다. 과거의 자신을 막 모습을 드러낸 미래의 자신과 갈라주는 텍스트 사이의 빈 공간. 이 여백은 무언가가 누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여백은 무언의 과도기이며, 우리 삶의 흐름이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다. 372

니체는 읽기 즐거우면서 동시에 읽기 버겁다. 니체가 읽기 즐거운 것은 문자으이 명료함과 상쾌한 단순함이 쇼펜하우어에 맞먹기 때문이다. ..
니체는 철학이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니체는 장난기 넘치고, 통렳게 웃기다. 니체는 모든 진실에는 최소한 한 번의 웃음이 따라와야 한다고 말했다. ..
니체가 읽기 버거운 것은 소크라테스처럼 니체도 확고한 신념에 의문을 품으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며, 그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375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르게 생각하는 법 …… 다르게 느끼는 법을 배워야 한다.” 376

어떤 철학자는 충격을 준다. 많은 철학자는 논증을 한다. 일부 철학자는 영감을 준다. 오직 니체만이 춤을 춘다. 니체에게 패기와 아모르파티, 즉 운명애를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것은 없었다. “나는 춤추는 법을 아는 신만을 믿을 것이다.” 니체는 말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미친 것처럼 열렬히, 일말의 자의식도 느끼지 않고 춤을 춘다. 377

니체는 영원한 지옥이라는 기독교 개념을 들며 “어떤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부서지고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옥은 실재하지 않을 수 있지만 지옥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의 행동 동기가 된다. 영원회귀를 증명하지 않아도 마치 진짜인 것처럼 행동할 수 있다. 그러고 나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는 것이다. 380

영원회귀는 사고실험이다. ..
영원회귀는 .. 전부냐 전무냐, 둘 중 하나다. 인생이 하나의 패키지다. 당신의 삶은 정확히 똑같이 반복된다. 니체는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토록, 다른 것은 하나도 없다.” 편집은 불가능하다. 모든 결함과 지루한 대화가 그대로 들어 있는 이 삶을 다시 살아야만 한다. 감독판이다. 니체는 이 시나리오가 당신을 당황시키고 부끄럽게 하리란 걸 안다. 당신이 몇 개 장면은 삭제하고, 다른 장면을 집어넣고, 컴퓨터로 몇 가지 더 바꾸고, 몸매 좋은 대ㅐ역배우를 써서 삶을 수정하고 싶어 하리란 걸 안다. 381

니체는 말했다. “나는 반드시 필요한 것을 아름다운 것으로 보는 법을 앞으로 더욱더 배우고 싶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될 것이다.” 고통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사랑하지 말라고, 바로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사랑하라고, 니체는 말한다. 385



12 에픽테토스처럼 역경에 대처하는 법


“매가 난파 됐을 때 난 정말 좋은 항해를 했어.” 이 말은 훗날 스토아학파의 핵심 주제가 된다. 바로 고난을 통해 강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 로마의 정치가이자 스토아 철학자였던 세네카는 이렇게 말했다. “바람에 수없이 시달리지 않은 나무는 땅에 튼튼하게 뿌리박히지 못한다. 바람에 흔들려야 땅을 더욱 강하게 움켜쥐고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 고난은 덕을 함양할 수 있는 기회다.” 400-401

스토아학파는 유리잔에 물이 반이나 차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잔이 있다는 사실을 기적으로 여긴다. .. 애초에 유리잔을 가져본 적 없는 삶을 상상한다. 친구의 부서진 유리잔과 그때 자신이 줄 수 있는 위로를 상상한다. ..
라이트 주립대학의 철학 교수ㅜ이자 스토아철학을 실천하는 윌리엄 어빈이 말한다. “스토아철학을 실천하면 작은 기쁨을 더 섬세하게 느끼게 된다. 우리는 뜬금없이 우리가 우리라서, 우리가 우연히 살게 된 이 우주 안에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살고 있어서 기쁨을 느낀다.” 402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몸이 아픈데도 행복하고, 위험에 처했는데도 행복하고, 죽어가고 있는데도 행복하고, 나쁜 평판을 듣는데도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내게 보여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게 데려오라! 신들의 이름으로, 그렇다면 나는 스토아 철학자를 보게 될 것이다!” 404-405

에픽테토스는 기원후 55년에 오늘날 터키 지역에서 노예로 태어났다. 로마 황제의 고문이었던 에픽테토스의 주인은 그를 때렸다. 에픽테토스는 태연하게 고통을 참았다. 406

에픽테토스는 소크라테스를 존경했고, 많은 면에서 그를 모방했다. 소크라테스처럼 에픽테토스도 작은 오두막에 매트리스 한 장만 놓고 간소하게 살았다. 소크라테스처럼 에픽테토스도 형이상학에는 관심이 없었다. 에픽테토스의 철학은 철저하게 실용적이었다. 소크라테스처럼 에픽테토스도 무지를 진정한 지혜로 향하는 길에 반드시 필요한 단계로 여겼다. 철학은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삶의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 바깥에 있지만,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지배할 수 있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충동, 욕망, 혐오감, 즉 우리의 정신적 감정적 삶이다. 우리 모두에게는 헤라클레스의 기운과 슈퍼히어로의 파워가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내면세계만을 제어할 수 있다. 내면세계를 지배하라, 그러면 “천하무적”이 될 것이라고, 스토아철학은 말한다. 407-408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스스로를 바꾸는 것이 훨씬 쉽다. 408

스토아철학은 이렇게 말한다. “해야 할 일을 하라. 그리고 일어날 일이 일어나게 두라.” 408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 것은 문제 자체가 아니라 그 문제에 대한 그들의 판단이다.” ..
스토아학파는 우리의 감정이 이성적 사고의 산물이라고 믿지만 그 사고에는 결함이 있다고 본다. 사고방식을 바꿈으로써 자신의 느낌도 바꿀 수 있다. 스토아철학의 목표는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느끼는 것이다. 409

고전 연구자 A. A. 롱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보통 아무 이유 없이 화가 나거나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 자신이 나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내 것이어야 할 성취를 다른 사람이 가져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감정을 느낀다.” 우리 생각과 해애동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듯 우리 감정에 대한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 감정은 우리가 내리는 판단의 결과이며, 이 판단은 틀린 경우가 많다. 우리가 잘못 이해했거나 갈피를 못 잡는다는 뜻이 아니다. 스토아학파는 그런 판단이 말 그대로 실제 경험과 다르다고 말한다. 410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한 장면에서 피터 오툴이 연기한 로렌스는 엄지와 검지로 태연하게 성냥불을 끈다.
동료 장굑 똑같이 하려다 고통에 소리를 지른다. “아야, 이거 엄청 뜨거운데요.” 동료가 말한다.
“물론 뜨겁지.” 로렌스가 대답한다.
“어떻게 한 거예요?”
로렌스가 말한다. “비결은 뜨겁다는 데 마음을 쓰지 않는 거야.”
로렌스의 대답은 스토아철학을 잘 보여준다. 당연히 로렌스는 고통을 느꼈지만 그 고통은 날것의 감각, 반사적 반응에 그쳤다. 이 반응은 본격적인 감정으로 발달하지 않았다. 로렌스는 말 그대로 고통에 마음을 쓰지 않았다. 몸이 경험한 것을 마음이 경험하고 증폭시키도록 두지 않았다. 412

에픽테토스는 조언한다. 만약 공중목욕탕에 간다면 “그곳에는 물을 튀기는 사람들, 거칠게 떠미는 사람들, 욕을 하는 사람들, 물건을 훔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몸이 물에 젖는다고, 누가 물건을 훔쳤다고 놀라선 안 된다. 416

스토아 진료실에서 놔주는 또 다른 백신은 프리메디타치오 말로룸(premeditatio malorum), 즉 ‘최악의 상황에 대한 예상’이다. 417



13 보부아르처럼 늙어가는 법


프랑스의 자랑스러운 지식인인 보부아르는 ‘잘 늙어갈 수 있는 열 가지 방법’같은 목록은 절대로 만들지 않을 것이다. 자랑스러운 사람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닌 나에게는 그런 거리낌이 없다.
1. 과거를 받아들일 것
2. 친구를 사귈 것
3. 타인의 생각을 신경 쓰지 말 것
4. 호기심을 잃지 말 것
5. 프로젝트를 추구할 것
6. 습관의 시인이 될 것
7. 아무것도 하지 말 것
8. 보조리를 받아들일 것
9. 건설적으로 물러날 것
10.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



14 몽테뉴처럼 죽는 법


내가 여행에서 만난 철학자들은 전부 내게 말을 건다. 481

죽음은 우리 모두를 철학자로 만든다. .. 죽으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죽음은 두려워할 일인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지? 죽음은 진정한 철학을 가리는 테스트다. ..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482

크세주(Que sais-je). ‘나는무엇을 아는가?’ 486

몽테뉴는 죽음을, 자기 자신의 죽음을 온전히 직면하지 않고선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없다고 말한다. “죽음에서 낯선 느낌을 제거하고, 죽음을 알고, 죽음에 익숙해지자. 다른 무엇도 죽음만큼 자주 생각하지 말자. 매 순간 죽음의 모든 양상을 상상하자. 말에서 떨어질 때, 건물 타일이 떨어질 때, 아주 살짝 바늘에 찔릴 때, 즉시 이렇게 생각하자. 지금 내가 죽는다면?” 489

“죽음은 우리가 타고난 조건이다. 우리의 일부다. 죽음에서 도망치는 건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치는 것이다.” 우리는 죽음 쪽으로 방향을 재설정해야 한다. 죽음은 우리 밖에 있는 ‘무엇’이 아니며 우리는 죽음의 희생자가 아니다. 493

죽음의 해결책은 더 긴 삶이 아니다. 절망의 해결책이 희망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과 절망 모두 같은 약을 필요로 한다. 수용이다. 보부아르처럼 몽테뉴도 결국 받아들였다. 마지못한 수용이 아니라 완전하고 관대한 수용이었다. 죽음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수용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다. 자신의 긍정적 성격에 대한 수용이자(“자신을 실제보다 낮추어 말하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어리석은 짓이다”) 자신의 결점에 대한 수용이었다. 497






“춤이 끝나면 이렇게 말할 것. 아니, 외칠것. 다 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번.” 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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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행을 떠나려 할까?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려면, 즉 우리의 여행 동기를 정확히 알려면 먼저 여행 동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다음으로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한 뒤 자신의 여행 동기가 어떤 특징을 띠는지를 파악해봐야 한다.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질문의 구조는 단순하다. 먼저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질문을 하고 다음으로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고 물은 뒤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라고 자문해보는 것이다.  22


메릴랜드 대학의 이소 아홀라(Sepp.o E. Iso-Ahola)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유래한 접근-회피 동기 개념을 이용해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질문에 답함으로써 여행 동기 연구에 오랜 기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하려는 '접근 동기'에 따라 행도에 나서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피하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회피동기'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는 언제나 동시에 나타나서 일정한 비율로 조합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A를 얻는 것과 B를 회피하는 측면이 전부 있기 때문이다. 

이소 아홀라는 여행도 이와 똑같다고 말한다. 여행은 무엇인가를 피하려는 회피 활동인 동시에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는 접근 활동이다. 여행은 도피이지 탐색이며 탈출이자 추구이다. 따라서 여행을 통해 도피하고 탈출하려는 대상과 여행을 통해 탐색하고 추구하려는 대상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23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가 각기 어느 정도 비중으로 조합되느냐 하는 것도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두 동기의 조합 양상이 여행의 양상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여행의 양상은 여행자의 성격과 가치, 여행자가 수집한 정보, 여행지의 이미지, 타인의 영향, 여행 기술, 돈, 시간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결정되는데,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의 비율도 여기에 고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24


성격 5요인(또는 '빅 파이브').

성실성이란 계획성과 끈기, 목표 지향성을 뜻하는 성격 특성이다.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항상 시간을 잘 지키고, 꼼꼼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자기 통제력이 강한 사람이다. 성실성이 낮은 사람은 게으르고 주의가 산만하며 의지가 박약한 사람을 뜻한다.

우호성은 대인 관계 상황에서 어떤 감정과 행동을 나타내는지에 대한 성격 특성이다. 우호성이 높은 사람은 상냥하고 친절하며 스스로 솔직하면서 남을 잘 믿는 사람이다. 우호성이 낮은 사람은 냉소적이고 교활하며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신경증 성향은 정서적 안정성/불안정성을 나타내는 성격 특성이다. 신경증 성향이 높은 사람, 즉 정서적 불안정성이 높은 사람은 매사 자신이 없고 건강염려증이 있으며 항상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신경증 성향이 낮은 사람, 즉 정서적 안정성이 높은 사람은 차분하고 강인하며 편안한 사람이자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32


외-내향성은 대인관계나 직장 생활, 여가 활동 등에 폭넓고 강한 영향을 끼치는 성격 특성이고, 당연히 여행의 동기와 여행자의 행동에도 강한 영향을 끼친다. 외향인은 지루한 일상가 답답한 인간관계에서 탈출하여 신나고 자극적인 경험과 강렬한 육체적 활동, 새로운 사람들과의 열렬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여행을 떠난다. 

반면 내향인은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과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느끼고 자기를 성찰하며 친밀한 살마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여행을 즐긴다. 

개방성은 특히 새로운 시직을 습득하고 다양한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미적, 예술적 생활을 즐기는 양상과 큰 관련이 있는 성격 특성이다. 즉 어떤 사람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 또는 미술가를 좋아하거나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을 읽고 있다면 이 사람이 오타쿠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보다는 이 사람의 개방성이 높을 것이라 짐작하는 편이 낫다. 

개방성은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문화에 접촉하고 새로운 지식과 현상을 탐사하는 특성을 띠는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여행을 통해 지적, 예술적 호기심을 충족하려 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문화의 틀을 체험하려 한다. 

반면 개방성이 낮은 여행자들은 고향에서 가깝고, 문화적인 차이가 작고, 안전하고 깨끗한 여행지를 찾아내서 그곳을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며 만족스러운 여행을 즐긴다.  37-38


외-내향성과 개방성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곧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게 된다.  38


기대감이란 우리가 어떤 기대를 하고 있든 바로 그 기대가 충족되리라는 희망적인 예측에서 오는 것이다.  45


다양한 긍정 정서와 행복감 체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행은 우리가 인생의 다양한 부분에서 더 큰 만족감을 경험하게 해준다.  46


관계 강화의 측면은 여행의 큰 매력 중 하나이다. 

여행학 연구가 다루는 중요한 여행 행동 가운데 하나로 '반복 방문'(또는 '재이용')이라는 것이 있다. 반복 방문이란 어떤 사람이 자기가 벌써 가봤던 여행지를 다시 찾는 현상으로, 공급자 처지에서는 그 원인과 촉진 조건이 매우 궁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47


사람들이 어떤 여행지를 두 번 이상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았으니까" "한번 가본 곳이라 친숙하고 편하니까" "어려움이 없고 별다른 계획을 짜지 않아도 되니까" "이미 검증되었으니까" "다른 곳은 잘 모르니까" 등등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리처드 기텔슨(Richard J. Gitelson)과 존 크럼프턴(John L. Crompton)은 이런 이유들 외에 한 가지 뜻밖의 요인을 밝혀냈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방문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좋다고 느꼈던 경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 사람 손을 잡아끌고 그곳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자기가 마음에 들어했던 음식을 누군가에게 맛보여주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간다. 혼자서 봤던 멋진 축제를 함께 감상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이를 함께 느끼기 위해 돌아간다. 아름답지 않은가?  48


여행은 우리를 다방면에서 한층 성장하게 한다...

매슈 스톤(Matthew J. Stone)과 제임스 페트릭(James F. Petrick)은 여행이 '경험학습'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런 자기 성장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경험학습이란 우리가 기존의 지식이나 경험 또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실험을 하고, 실험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경험을 하며, 이 경험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면서 추상적인 개념을 도출해내는 학습 과정을 뜻한다.  49


여행을 통해 우리의 정서지능이 상승한다.

우리는 각종 정서를 더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고("이게 행복이로구나!") 정서가 발생한 원인을 잘 추론할 수 있으며("날이 더우니까 아무한테나 화를 내게 되네!") 각 정서가 낳는 결과가 무엇인지도 이해하게 된다("아무 데서나 화를 내면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도 하는구나!"). 마찬가지로 정서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타인을 바라보며 타인의 정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50-51


여행은 물론 문화지능의 상승과도 깊은 관계를 맺는다.  51


2011년, 세니자 코셰비치(Senija Causevic)와 폴 린치(Paul Lynch)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여행 산업이 수행하는 역할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처럼 전쟁과 학살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을 '불사조 여행'이라 정의한다. 여행자들이 여행지의 사회공동체가 잿더미를 딛고 다시 피어나도록 돕기 때문이다.

코셰비치와 린치가 설명하는 불사조 여행의 작동 단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전쟁과 학살을 겪은 장소는 여행자들에게 삶과 인간성, 국가와 공동체에 대해 숙고하게끔 하는 고유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 여행자들은 이러한 통찰을 얻는 동시에 전쟁에 지친 여행지 민중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와 같은 장소를 여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일단 여행자들이 유입되면 여행지 민중은 여행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공동체를 재생할 수 있다. 여행자와 상호작용하기전, 즉 여행지 민중이 전쟁의 참상을 자기들끼리만 끌어안고 있는 상태에서는 전쟁의 참상이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로만 남아 있다. 즉 무너진 집은 여전히 '무너져버린 내 집'이고 학살의 희생자들은 여전히 '죽어버린 우리 가족'이다. 반면 전쟁의 폐허와 학살의 장소를 여행자들에게 공개하고 나면 여행지 민중은 이제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두 번째 장례'를 치러줄 수 있게 된다. 여행자들과 대화하고, 폐허와 학살지를 관광지로 정비하면서 여행지 민중은 전쟁의 '상처'를 아물어가는 '흉터'로, '살해당한 가족'을 '돌아가신 역사적 인물'로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즉 여행지 민중은 전쟁과 학살을 비로소 과거의 일로 묻어두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따라서 불사조 여행을 하는 여행자는 전쟁과 학살을 겪은 여행지에 경제적 도움과 심리적 지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여행지 민중이 자기들의 아픈 경험을 객관화하고 역사화할 수 있게끔 돕는다. 전쟁 후 보스니아를 여행한 사람들은 이렇게 보스니아 사람들이 오늘날 다문화주의와 다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화합과 재생을 강조하는 공동체를 수립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54-56


여행의 만족이나 행복은 항상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62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가 막힌 궁합만은 아니다.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고, 행복한 여행을 하게 해주는 마음가짐을 체득할 필요가 잇으며, 행복한 여행을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행동 규범을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기술과 심리적인 자질을 갖추고 올바른 규범을 익힌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고 여행의 가치과 효과를 최대한 누리며 전파하는 '좋은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좋은 여행자가 된다면 우리가 앞서 품었던 마지막 의문인 "여행이 딱히 그런 의미와 가치는 없는 것 같은데?"라는 의구심 또한 자연스럽게 해소될 거싱다.  63




여행은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맞춰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내가 터득한 요령을 세 가지만 적어보고자 한다.  80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공동체의 복지를 증진하고 문명의 진화를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항상 문화적 접촉과 교류를 통해 다채로운 대안을 섭취하고, 이를 변용하거나 자신의 문화와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발명품, 새로운 지식과 이론, 새로운 사회 제도를 창조해왔다. ..

물론 '선진국'으로 떠나는 여행에서도 다양한 지식을 습들하고 많은 문화적 아이디어를 습득할 수 있다. ..

문화적 교류는 상대적으로 덜 발전한 지역이 더 발전한 지역의 문화를 '공부'해서 일방적으로 수입해 쓰는 식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매우 창조적인 존재이며, 남이 잘 만들어놓은 것을 베껴서 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한테서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서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낼 줄 안다. 피카소는 아프리카의 공예품에서 문화적 아이디어를 취해 입체파를 개창했고, 이로써 서구의 회화 양식에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현대를 사는 우리도 여전히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당장 아시아에만 나가보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공존이라는 가치를 느낄 수 있고, 인도 펀자브에서는 근면과 봉사의 정신을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태국에서는 관용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문활르 경험하고, 일본에서는 철저한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목도할 수 있다. 태국과 인도네이사의 색다른 패션, 일본의 아기자기한 공예품, 인도의 색감과 영화, 노래, 춤, 각국의 다양하고 고유한 음식들에 이르기까지 신선한 자극을 주는 문화적 요소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심지어 여행지의 문화에서 이런 장점들을 읽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곳의 문화에서 안타깝다 싶은 점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는 있다.  87-89


문화충격을 완화하여 생경한 문화를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치료제는 대략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시간, 둘째는 문화 지능, 셋째는 여행자의 성격과 동기이다.

먼저 시간. 고전적인 문화충격 연구자들은 우리의 문화충격 경험이 시간에 따라 4단계로 전개된다고 말한다. 1단계는 새로운 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장벽에 직면하는 단계이다. 이때 우리는 아직 낯설고 이국적인 문화에 호기심과 흥미를 간직하고 있다. 반면 2단계에 접어들면 이제 낯설고 이국적인 문화에서 적대감과 실망을 느끼고 고국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게 된다. 이때 우리 입에서는 "이 사람들 너무 더러워서 안 되겠어. 역시 한국이 위생 면에서는 최고야" "애들이 너무 싸가지가 없네. 이걸 보면 한국이 그래도 교육은 잘 시킨단 밀이야" 등등의 말이 튀어나온다.

여행 기간이 매우 짧을 경우, 우리는 가히 주화입마(走火入魔 달릴주 불화 들입 마귀마)의 단계라 할 수 있는 이 문화충격 2단계에 접어든 채 여행을 마치게 된다. 여행지의 문화에 대한 반감과 여행에 대한 불만족을 품에 안은 채로. 그러나 여행 기간을 조금만 더 길게 가져간다면 우리는 문화적 적응도가 향상되고 긴장감이 감소하는 문화충격의 3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 어떤 지역을 석 달 이상 장기간에 걸쳐 여행한다면 현지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진정한 다문화주의를 취할 수 있는 문화충격의 4단계(더는 충격이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이다)를 체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시간은 문화충격의 좋은 치료제 중 하나라는 것이 고전적인 이론가들의 견해이다.  

반면 최근의 심리학자들은 단순한 시간 요인보다 문화지능을 더 중시한다. 문화지능이란 상이한 문화에 접촉했을 때 어떤 지식과 행동이 필요한지 파악해서 이런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실제로 적용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즉 문화지능이 높은 사람은 "외국에 나가면 인사법이나 예절을 잘 알아야 해. 난 이번에 일본에 가니까 일본식 예절을 좀 연습해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이를 잘 실천해내는 사람이다. 

문화충격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화되듯 문화지능 또한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쭉쭉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문화지능의 측면에서도 오직 시간이 약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화지능은 우리가 여행에 나서기 전에 웬만큼 확보할 수 있는 여행 자원이기도 하다. 아주 간단한 현지어 회화를 익히고 현지 역사에 관한 간략한 소개 글을 읽고 친구들의 심플한 조언에 귀 기울이기만 한다면 우리의 문화지능은 향상되고 여행 첫날의 문화충격은 큰 폭으로 감소한다. 여행지에 흥미를 느껴서 공부하면 할수록 실제 여행에 나섰을 때의 문화적 충격이 신선하고 기분 좋은 놀라움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오래 할 필요도 없고 여행지를 많이 공부할 필요도 없이 이국 타향의 문화를 그저 즐겁게 향휴하기도 한다. 문화충격에 관여하는 마지막 요인인 성격과 동기의 개인차라는 것 때문이다. 이는 바로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다양성을 중시하며 이질적인 것에 관용을 보이는 특성인 개방성의 차이이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이국의 문화와 접촉하는 상황에서 남들보다 훨씬 적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훨씬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다.  89-92


우리가 역사 유적을 좋아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깊은 심리적 뿌리가 있다...

실제로 우리가 역사 유적과 유물에서 매력을 느끼는 메커니즘은 우리가 마법에 혹하게 되는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다. 

제임스 G. 프레이저의 유명한 인류학 시리즈인 <황금가지>는 마법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이론서 중 하나이다. 프레이저는 특히 마법의 '유사성 원리(law of similarity)'와 '감염 원리(Law of contagion)'에 주목한다. 

유사상 원리는 비슷한 행동이나 현상이 비슷한 결과를 부른다는 인간의 원초적 믿음에 바탕을 둔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가뭄이 들었을 때 땅이나 강에 물을 뿌리는 행동(비가 오는 것과 비슷하다)으로 기우제를 대신하고 부채질(바람만 씽씽 부는 가뭄과 비슷하다)을 금지하기도 했다. 반면 감염 원리란 "한번 접촉한 것은 영원히 접촉된 것이다"라는 믿음을 뜻한다. 즉 세종대왕이 만졌던 물건은 그가 죽고 사라진 뒤 몇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세종대왕의 손길이 남아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108-110


폴 로진(Paul Rozin)을 비롯한 여러 심리학자는 우리가 여전히 유사성 원리와 감염 원리 같은 미신적인 사고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빠르게 쑥쑥 자라는 콩나물을 먹으면 우리 키도 쭉쭉 자랄 것이라 생각하고, 인간의 성기를 닮은 음식을 먹거나 정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동물으 ㄹ먹으면 정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험을 보기 전에는 물건이 떨어지는 게 너무 싫고 미끌미끌한 미역국도 먹기가 싫다. 우유로 세수하면 피부가 하얘질 것만 같다. 이처럼 우리는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것이다.  110


이런 생각과 느낌은 모두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런 비합리성을 아름다운 문화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작가가 유사성 원리를 잘 활용하면 멋진 복선과 암시, 상징을 만들어낼 수 있다("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안개다"). 또한 감염 원리를 문화적으로 승화시키면 위대한 역사 유적과 고귀한 유물을 갖게 된다. 우리는 경주 토함산 석굴암에서 장엄함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신라 사람들의 숨결과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연결의 느낌을 바탕으로 유저고가 유물에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에 따라 석굴암은 시날의 역사와 신라 사람들의 수학적인 능력과 한국인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장소가 된다.  111


결론적으로 말해서 역사 유적은 감염 원리에 따라 강한 힘을 부여받은 여행의 요소이며 시각적 경외감, 판타지 세계에 들어간 듯한 느낌, 역사적 의미, 지적 흥미 등의 다양한 만족감을 두루 제공한다. 그러나 모든 역사 유적이 저마다 다른 매력이 있다는 점은 꼭 기억해두자.  112


여행 중에 산 물건은 실용서오가는 거리가 있다. 대신 그 나라 옷을 사 입고 그 나라를 여행할 때는 자신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한 몸에 수용하는 개방적 여행자임을 표현할 수 있다. 예전 여행에서 산 낡은 티셔츠를 여행 떠날 때마다 꺼내 입는 것은 자신이 모허모가 도전을 좋아하는 장기 여행자라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

기억을 촉진하는 기능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기능은 구입한 물건의 실용서오가는 별 관련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여행 중에 쇼핑하는 사람들은 물건의 질보다는 어떤 물건이 각 여행지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고유한 물건인지에 더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124




여행의 사회적 효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행자들의 행동 또한 여행자 대상 범죄를 낳는 다양한 요인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여행자가 여행지를 평가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가끔 그 반대도 당연한 일임을 깜빡하곤 한다. 현지인들도 여행자를 평가한다는 사실 말이다.  139


세상에는 두 가지 혐오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초적인 의미의 혐오로, 더러운 것이나 썩은 것이 입에 닿거나 입안에 들어오거나 몸에 닿았을 때, 또는 이런 가능성이 감지될 때 우리가 느끼는 강렬한 불쾌함을 뜻한다. 이런 원초적 혐오는 심리학 용어로 '핵심 혐오(core disgust)'라고 하며, 몸에 좋지 않은 썩은 시체나 독극물을 먹지 않게끔 하여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준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주로 썩거나 맛이 고약한 음식물, 배설물, 사람과 동물이 사체나 장기, 곤충, 쓰레기 등의 모습이나 냄새에서 혐오를 느낀다. ..

핵심 혐오는 공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타고난 본능과 평생 동안의 학습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정서이다.  151-152


두 번째 혐오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우리는 썩은 음식과 시체, 배설물 외에 또 어떤 것에서 혐오를 느낄까? 살인자, 강간범, 가정폭력범, 아동성추행범, 동물 학대범, 무식을 자랑하는 자, 예의 없고 상스러운 자,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자, 무능한 리더, 혹세무민하는 자와 곡학아세하는 자, 모리배, 시정잡배 등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사회공동체에 해로운 사람들이나 이들의 행동을 혐오하는 마음은 썩은 음식물이나 동물의 사체, 배설물을 혐오하는 마음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회적, 규범적, 인격적 혐오감을 따로 '도덕적 혐오' 또는 '경멸'이라 일컫는다.

대신 경멸의 신체적, 행동적인 반응은 혐오와 똑같다.  154-155




여행을 떠나 최상의 날씨와 만나면, 더는 다른 것이 필요 없을 정도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뜨겁고 습하거나 주야장천 비가 내리는 날씨 등은 여행의 다른 모든 요소를 압도하여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169


좋은 음식은 여행에 만족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음식이 생각나서라도 그걸 먹었던 곳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만들곤 한다. 심지어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미식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다.  182


진짜 경치가 제공하는 원대하고 깊은 입체감과 우리 피부에 와닿는 그곳의 바람, 나무 향기와 풀 냄새, 강과 폭포의 소리, 그리고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어울리며 자아내는 황홀함은 어떻게 달리 재현할 수가 없다. 결국 그곳에 직접 가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멋진 경치와 맞닥뜨리게 된다.  192


일단 경치에 이끌려 어떤 여행지에 도착한 뒤에는 이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어떤 행복한 홀동을 할 수 있는지가 경치 자체보다 훨씬 중요해진다. 즉 경치는 다른 활동과 조합됨으로써 여행의 행복을 증폭시키는 '배경'이자, 문화와 음식 및 각종 액티비티 등 각 지역의 다양한 여행 요소들을 결합하여 여기에 통일성과 주제를 부여하는 '틀'이지 여행의 목적 자체는 아니다.  195


여행자는 자신의 성격, 목표, 자원, 각종 여행 요소를 대하는 태도 등을 종합하여 자신에게 딱 맞는 완벽한 숙소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205


여행 동반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동반자들의 성격과 취향의 유사성은 사실 그렇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동반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주 소통하고, 서로의 욕구와 취향과 가치를 절충하거나 공유함으로써 좋은 여행을 만들어나가려는 의지가 있느냐이다.  216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심리학자 중 한 명인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는 .. 지식과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지식과 기술 말고도 뭔가를 '잘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들이 있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자기 효능감은 공부건 일이건 분야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하다.  228


지식과 기술, 자기 효능감 신념, 목표의 특성, 자기 평가 표준을 중시하는 밴듀라의 이론을 사회인지 이론이라고 한다.  229



여행 중의 기술에는 왕도가 따로 없다. 여행자 한 명 한 명이 여행 경험을 통해서 체득하는 고유한 노하우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주누가 여행 중에 활용하면 좋을 기술도 두 가지 정도는 있다. 하나는 '마음을 챙기며 여행하기'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 정서에 휩쓸리지 않기'이다. ..

'마음 챙김(mindfulness 또는 sati)'이란 원래 불교적 명상 수행과 관련한 개념인데.. 핵심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집중하며 마음을 열기'라는 점에는 대략적인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

여행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 챙김이란 여행 중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항상 호기심을 품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하여 능동적인 해석을 내놓는 것이다.  245-246


우리가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개방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여행 중에는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절대 마음을 닫아서는 안 된다.  247


마르시알 로사다, 바버라 프레드릭슨 같은 연구자는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의 비율이 최소 3 대 1 정도가 되어야 행복하고 번창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48


그런데 주의할 점이 있다. 부정 정서는 긍정 정서보다 더 강렬하게 체험되고, 더 강렬하게 기억되는 편이라는 사실이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부정 정서의 이런 강력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 정서 경험을 오래도록 간직할 필요가 있다...

감사 편지 쓰기는 고마운 사람을 날마다 떠올려보며 이들에게 감사 편지를 쓴느 것을 뜻한다.  249


만약 여행 중 부정 정서를 경험하는 날이 생긴다면, 그날이 저물어갈 즈음 하루 동안 있었던 긍정적인 경험을 떠올려보거나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서로의 행복한 여행을 응원해주자.  250


우리는 우리 여행을 여러 편의 재미난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 

우리가 여행 중 겪었던 여러 가지 좋은 일과 여러 가지 나쁜 일의 세세한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이야기 안에 배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좋았던 일은 강렬한 추억이 되고, 나빴던 일은 귀중한 배움이 된다. ..

어떤 사람의 여행은 아름답고 의미가 있어서 여행기로 쓸 만하고, 다른 사람의 여행은 그럴 가치가 없어서 여행기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여행은 여행기로 쓰인 뒤에야 아름다워지고 모두와 공유할 만한 의미를 얻는다. 적어도 우리 마음속에서 크고 작은 여행기로 집대성되지 않은 여행이야말로 진정 무가치하고 의미가 없는 여행이다.  251


"여행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는 여행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판단, 취향, 가치관이 묻어난다. "여행에서는 어떤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우리가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지 그렇지 앟은지가 드러나고, 여행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노출된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는 우리가 항상 행복한 여행을 하는 좋은 여행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중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떤 것을 잘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신념과 기대가 바로 이것이다. 앨버트 밴듀라는 이를 '자기 효능감 신념'이라 표현한다.  253-254


자기 효능감 신념을 증진하는 중요한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는 모델링 학습이라고도 하는 '관찰 학습'이다.  255


여행에 나서면 더욱 다양하고 훌륭한 모델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256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 또 다른 대표적인 메커니즘은 작은 성공 경험을 스스로 직접 쌓아나가는 것이다. ..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직접적인 여행 경험을 통해 효능감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바로 무슨 일이든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배워나가려 하는 '학습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다.  257


어떤 사람이 학습목표를 지향할 것인지 수행목표를 추구할 것인지는 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에 대한 신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사람의 능력이란 유동적이고 경험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학습목표를 지향하게 된다. 반면 사람의 능력은 고정된 것이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자기가 타고난 능력 한도 내에서 최대한 남들에게 잘 보이며 살아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살마은 수행목표를 취하게 된다. 이런 점을 특히 강조하는 연구자는 심리학의 거장 중 한 명인 캐럴 드웩(Caro; Dweck)이다. 드웩은 능력이 향상한다고 믿는 사람을 능력에 대한 '증진 이론'을 가진 사람이라 정의하고, 반대로 능력이 타고난 상태로 고정된다고 믿은 사람을 능력에 대한 '실체 이론'을 가진 사람이라 정의했다.  258


여행은 우리의 능력을 증명하는 활동이 아니다. 여행의 목표는 행복과 성장이다. ...

또한 여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한국에서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여행을 떠나 하나하나 시도하고 적용해보면서 몸으로 익혀나가는 것이다.  260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은 평가 표준도 모호해서, 자기가 여행을 잘하고 있는지,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를 파악하지 못한다. 또한 여행지가 제공하는 다양한 여행 요소와 그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엉뚱한 표준을 엉뚱한 곳에 들이밀 수도 있다. ..

여행에 대한 학습목표가 있는 살마은 늘 "나는 지금 다양한 여행 경험을 통해 여행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나?"라는 기준으로 자기를 평가하는데, 이는 갈수록 좋은 여행을 할 수 있게끔 보장해주는 좋은 평가표준이다.  268


윤리적 여행이란 여행지의 환경을 보호하고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며 여행지 경제에 정의로운 기여를 하는 세 가지 요소를 이루어 진다고 볼 수 있다.  269


에밀 저번(Emil Juvan)과 세라 덜니커(Sara Doincar)는 "사람들은 윤리적 여행의 표준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이를 잘 지키지 않을까?"라는 문제를 분석해 보았다. 저번과 덜니커가 내린 결론은 윤리적 표준을 잘 지키지 못하는 여행자들의 행동 패턴에는 '인지부조화'라는 유명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인지부조화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현지 아이들에게 적선을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이 강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어느 날 캄보디아를 여행하던 중 그 많은 아이들의 공세에 시달리다 못해 볼펜 한 자루와 우리나라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3달러어치 사고 말았다. 그러면 우리 머릿속에서 부조화가 발생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적선을 하는 사람이야 안 하는 사람이야?" 

이처럼 우리의 태도 또는 신념과 우리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쪽은 우리의 행동이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원초적이다. 태도와 신념은 바꾸면 되지만 일단 저질러버린 행동은 없었던 것으로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이 때문에 우리는 태도와 행동의 부조화가 발생했을 때 간단히 태도를 수정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즉 위의 상황에서는 "사실 아이들한테 적선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라는 식으로 우리의 윤리적 표준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274


저번과 덜니커는 여행자들이 인지부조화에 따라 태도를 변화시킬 때 전형적으로 보이는 여섯 가지 부조화 해소(즉 변명) 양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는 우리가 기존의 표준에 어긋나는 일을 하긴 했지만, 알고 보면 그게 그렇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의 부정' 패턴이라고 한다. .. 

둘째는 '하향 비교'이다. 우리 자신도 뭔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우리보다 훨씬 심한 자들이 있으니, 우리 잘못을 잘못 축에도 못 든다는 식의 변명 양상이다...

셋째는 '책임의 부정'으로, 이는 어떤 행동이 현지인들 때문에 발생했다고 변명하는 것을 뜻한다...

넷째는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거기에선 꽁초를 거기에 버렸어야 했다고"라는 식으로 말하는 '통제의 부정'이다. 즉 책임의 부정이 현지인 탓을 하는 패턴이라면, 통제의 부정은 상황을 탓하는 패턴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는 "휴가는 예외라고요. 여기 나와서까지 윤리 같은 걸 신경 써야 해요?"라고 말하는 '예외 형성'이다. ..

여섯째 패턴은 "사실 나는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을 더 많이 해요"라고 말하는 '보상'이다. 이는 아주 교묘하고 기가 막히게 잘 먹히는 변명 양상이다.  275-276


우리는 완벽할 수도 없고, 변명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위의 여섯 가지 변명은 그저 변명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적어도 좀 더 나은 여행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을 변명하는 것은 괜찮다. 다음에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다면 말이다.  277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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