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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지 버나드 쇼

생각/인물 2010. 8. 20. 22:10



쇼는 1856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옥수수 상인이었던 부친 조지 카 쇼와 루신다 엘리자베스 걸리 쇼 사이에서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더블린에서 학교를 다니다 부동산 사무소에서 일하던 그는 스무살이 되던 1876년 런던으로 이사갔다. 대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던 그는 대영박물관에서 책을 읽거나 당시 런던사회 중류계급 지식인들의 논쟁을 접하며 스스로 지식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19세기 말 유럽사회에서 널리 퍼지기 시작한 사회주의 사상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다. 페이비언 협회 활동과 함께 서평, 미술평론, 음악평론, 연극평론 등 왕성한 글을 쓰기 시작하며 문필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내가 죽을 때는 철저하게 소모된 다음 죽기를 원한다. 더 열심히 일할수록 더 오래 살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 자체를 즐긴다. 나에게 인생은 더이상 '곧 꺼질 촛불'이 아니다. 인생은 잠시들고 있는 영롱한 횃불같은 것이다. 다음 세대에게 그것을 넘겨주기 전에 가능하면 밝게 타오르게 하고 싶다. 삶 속에서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병들고, 피로하고 , 두렵다고 말하려 할때 잠깐 멈추자. 뭐든지 다 할수 있다고 미리 떠들어 대지도 말자. 대신 조용히 침묵하자 . 끊임없이 불평을 해대며 억지로 부담을 주려는 사람들과는 되도록 거리를 두자.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갖거나, 새로운 계획에 착수해 활기 있게 살자. 또는 일상적 삶을 즐기려 노력하자. 초라한 자아 이미지는 버리자. 자기를 훼손하는 꼬리표를 붙이거나 혹은 그런 언급을 하지 말자.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이상 그런식으로 인식되기를 윈치 않는다고 알리자..."


"결혼이란? 두 사람은 죽음이 자기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사람의 진을 빼놓는 비정상적인 흥분 상태를 유지하겠다고 맹세해야 한다."


“희망을 갖고 성공하는 사람들이란 자기가 바라는 환경을 찾아내는 사람들이다. 발견하지 못하면 자기가 만들면 된다.”


"재물을 스스로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쓸 권리가 없듯이 행복도 스스로
만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누릴 권리가 없다."


“민주주의는 부패한 소수가 정하던 것을 무능한 다수가 대체했다”




쇼는 평생 25만 통의 편지를 남겼는데 그 중에는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과의 편지도 있다. 덩컨이 “당신의 머리와 내 몸을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굉장하지 않을까요?”라고 편지를 보냈더니 쇼는 “거꾸로 내 육체와 당신의 머리를 가진 아이가 태어난다면 얼마나 끔찍할지 생각해 보십시오”라고 답장을 쓴다.

쇼는 노벨상과 아카데미상을 받은 유일한 작가이다. 그는 노벨상을 받으면서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것은 용서할 수 있지만 문학상을 생각해낸 것은 참 말이 안 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열렬히 원하면 원하는 대로 된다’는 ‘피그말리온 효과’와 관련이 있는 ‘피그말리온’이란 연극의 극본을 썼고, 이것을 영화화한 오드리 헵번 주연의 ‘MY Fair Lady’로 오스카상을 받았다.

한 신문 기자가 버나드 쇼에게 '금요일에 결혼하면 불행하다는데 그 말을 믿으시나요?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쇼는 "물론 믿지, 금요일이라고 예외일수는 없으니..."


"법률적으로나 실용적으로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사회주의란, 사유재산을 공공재산으로 전환시키고 이로써 얻게 되는 공공 수입을 모든 주민에게 차별 없이 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사유재산제를 완전히 철폐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유재산 즉 '물적' 재산은 최대한 축적하되 수입의 분배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 자본주의를 뒤엎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완전한 도덕적 전환을 수반한다."

"나는 젊었을 때 10번 시도하면 9번 실패했다. 그래서 10번씩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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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 사전에서 말하는 버나드 쇼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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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1856년 7월 26일 ~ 1950년 11월 2일)는 아일랜드의 극작가 겸 소설가이자 비평가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1925년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생애

모친으로부터의 영향으로 음악에 흥미를 가져서 받은 성악 레슨은 후에 연설자가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일반적인 학교교육을 받았으나 성적은 거의 최하위, 다만 작문은 뛰어났으며 쇼의 흥미는 문학, 음악, 그래픽 아트 등에 있었다. 가난하여 초등학교만 나왔을 뿐이나, 사환으로 일하면서 음악과 그림을 배웠으며 소설도 썼다.

1871년에는 더블린의 토지 중개사무소에 근무, 여러 신문잡지에 투고하였으며, 경제적 이유로 모친이 두 딸을 데리고 런던으로 나와 음악교사가 되자 쇼도 그들 뒤를 따라 1876년에 런던으로 나왔다. 이후 단기간의 에디슨 전화사 근무를 제외하고는 직업을 가진 일이 없었다. 런던의 예술가들과 사귀어 각 신문에 원고를 썼으나 수입이 적어 양친의 도움으로 생활했다. 1879년부터 83년에 걸쳐 5편의 소설을 썼으나 모두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고 그 가운데 4편은 친구의 잡지에 게재되었다.

1882년 9월, 헨리 조지의 연설을 듣고서 쇼는 사회주의로 나아갔다.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크게 감동받아 마르크스 연구를 비롯, 1884년 창설 직후였던 온건 좌파 단체 페이비언 협회를 협회에 참가하여 많은 사회사상가와 사귄다. 그 가운데에는 카를 마르크스의 딸 에레아놀 마르크스도 있었다.

비평가로서의 쇼

1885년부터 1898년까지 13년 동안 쇼는 신문 잡지의 비평란을 담당하여 주로 음악·미술·연극·문학의 시평(時評)을 했다. 모두가 영국 비평계의 최고 수준을 과시하는 것이며, 특히 1895년에 시작되는 <새터데이 레뷔>에서의 연극비평은 오늘날 모범이 될 만한 관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입센 옹호, 셰익스피어 비판, 당시의 인기작가 피네로(Sir Arthur Pinero) 비판은 다대한 반향을 일으켰다. 쇼의 평론으로는 <입세니즘의 진수(眞髓)>(1891, 1913), <예술의 정기(正氣)>(1895), <완전한 바그너파(派)>(1898) 등이 중요한 것으로 손꼽힌다.

극작가로서의 쇼

그는 스스로도 많은 극을 써서 연극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풍자와 기지로 가득 찬 신랄한 작품을 쓰기로 유명하다.

쇼가 극작에 전념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늦다. 1885년부터 쓰기 시작했던 최초의 희곡 <홀아비의 집>은 92년까지 완성되었으며 런던의 로열티 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이어 입센 스타일의 새로운 여성을 다룬 <사랑을 섭렵하는 사람>(1893), 근대 매춘기업을 폭로한 <워렌 부인의 직업>(1893)은 모두 극장측에서 상연이 거부되었으나 1894년에 상연된 <무기와 사람>으로 쇼는 극작가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그 뒤 <캔디다>(1894), <운명의 사람>(1895), <악마의 제자>(1897), <시저와 클레오파트라>(1898), <인간과 초인>(1903) 등으로 쇼는 세계적인 유행작가가 된다. 그러나 예술적으로는 이러한 전기의 작품보다 후기의 <하트브레이크 하우스>(1913-16)나 <성녀 존(Saint Joan)>(1923)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쇼의 인물은 거의가 작가의 대변자이며 그 작품은 자기 사상을 진술하는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라는 비난, 혹은 그와 반대로 쇼는 단순한 감상적인 오락작가에 불과하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그러나 표면적 사상선전극 및 오락극 내부에 깃들인 참된 아이러니스트로서의 쇼의 모습을 보지 못한다면 <바버러 소령>(1905)이나 <하트브레이크 하우스>가 지니는 독자적인 희극성을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확실히 그가 말했듯이 우선 그의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야 할는지 모른다.

"(나의 작품을 이해하려면) 나의 전작품을 적어도 2회 이상은 읽고 그것을 10년 동안 계속해달라"
 
— 조지 버나드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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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버나드 쇼 묘비명-



<버나드쇼의 명언>

◎ 남자는 많이 알수록, 여행을 할수록 시골소녀와 결혼하길 원한다.-버나드 쇼

◎ 가능한 한 일찍 결혼하는 것은 여자의 비지니스이고, 가능한 한 늦게까지 결혼하지 않
   고 지내는 것은 남자의 비즈니스이다. -버나드 쇼

◎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있다 는 것은 미련은 말이다. 건전한 육체는 건전한 정신
  의 소산이기 때문이다.-버나드 쇼

◎ 결혼은 그것이 최대 유혹과 최대 기회의 결합이기 때문에 인기가 있다.-버나드 쇼

◎ 그대가 할일은 그대가 찾아서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해야 할일은 끝까지 그대를   찾아 다닐것이다.-버나드 쇼

◎ 남자가 여자의 교양의 시금석은 싸울때 어떻게 행동하는가이다. -버나드 쇼

◎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버나드 쇼

◎ '로마에가면 로마 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라는 것'이 성공의 가장 확실한 길이다.-버나드 쇼

◎ 모든 행로는 무덤에서 끝난다. 무덤은 無의 입구이다.-버나드 쇼

◎ 인간이 호랑이를 죽이때는 그것을 스포츠라고 한다. 호랑이가 인간을 죽일때는 사람들
   은 그것을 재난이라고 한다.범죄와 정의와의 차이도 이것과 비슷한것이다. -버나드 쇼

◎ 미인이란 처음으로 볼때는 매우 좋다. 그러나 사흘만 계속 집안에서 상대해 보면 더보
  고 싶지가 않게된다.-버나드 쇼

◎ 비겁자가 되지 않고는 영웅이 될수 없다. -버나드 쇼

◎ 살아 있는 실패작이 죽은 걸작보다 낫다. -버나드 쇼

◎ 선행이란 악행을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바라지 않는 것이다. -버나드 쇼

◎ 애국심이란 자기의 조국이 다른 모든 나라보다 고귀하고 우월하다고 믿는 신앙을 말한
   다. -버나드 쇼

◎ 어버이라는 것은 하나의 중요한 직업이다. 그러나 여지껏 일찍이 아이들을 위해, 이 직
  업의 적성검사를 한적이 없다. -버나드 쇼

◎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표피 3cm에속는 사람이다. -버나드 쇼

◎ 수치스러운 집안의 비밀에서 벗어 날수 없다면 차라리 그것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버나드 쇼

◎ 사리를 아는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적응시키고, 사리를 모르는 사람은 자기에서 세상
   을 적응시켜려고 한다.-버나드 쇼

◎ 어리석은 자는 수치스러운 일을 할때에도 그것이 언제나 그의 의무라고 선포한다.
   -버나드 쇼

◎ 나는 상황이나 환경을 믿지 않는다. 이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들이 원하는 상황이나 환경을 찾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상황이나 환경을 찾지 못할경우에는, 그들이 원하는 상황이나 환경을 만든다.-버나드쇼

◎ 꿈꾸지 않는 자에게는 절망은 없다.-버나드 쇼

<버나드쇼의 일화들>

1. 어느날 직업을 불문하고 영국의 사회 지도층 인사들에세 전보를 보냈다고한다.
   "다들통 났음,. 빨리 도망쳐라." 때문에 영국이 한동안 마비 되었던 건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그들의 불륜을 알고 있다는 사기꾼들의 협박전화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2. 그는 누군가가 가장 유명한 소설가 10명을 적어 달라는 요청에 자기 이름을 열번 적
    으며."남들이 오만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정도의 자신감은 쓸모 없다" 라고 말했다.

3. 밤새 집필 작업을 마치고 새벽녘에 잠이 든 버나드 쇼의 방에 그의 부인이 들어 왔다.
    부인이 그의 원고를 읽고 나서,
   "당신의 글은 쓰레기 감이에요!" 하고 소리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맞아. 하지만 , 일곱번째 교정을 마친 후에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거라고"

4. 한 신문사 기자가 "금요일에 결혼하면 불행해진다는 속설을 믿으시나요?" 란 질문에
    그는 " 물론이지. 금요일이라고 예외일수는 없지" 라고 대답했다

5. 버나드쇼(1856-1950)가에 반한 희대의 무용수 이사도러 던칸(1856-1927)이 쇼에
  게 작업을 걸었다.
   "우리 두사람이 결혼하면 쇼 선생님의 명석한 두뇌와 소년의 미모를 합한 2세가 태어
   날터인데 좋은일 아닙니까?" 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시한다.
    쇼가 말하길
    "그것 참 좋은 생각이요. 다만 한가지가 걱정되는 구료"
    던칸이 생각하기로 쇼 선생도 별것 아니야 내미모에 안넘어 갈리 없지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그런데 쇼가 한말,
    "내 이 못생긴 얼굴에 당신의 그머리 합해서 애가 태어나면 가관일 것이요."
     얼굴이 벌게진 던칸은 말없이 물러갔다.

<버나드쇼의 어록>

내가 죽을 때는 철저하게 소모된 다음 죽기를 원한다.

더열심히 일할수록 더 오래 살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삶 자체를 즐긴다.

나에게 인생은 더이상 '곧 꺼질 촛불'이 아니다.
인생은 잠시들고 있는 영롱한 횃불이같은 것이다.
다음세대에게 그것을 넘겨주기 전에 가능하면
밝게 타오르게 하고 싶다.

삶속에서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병들고, 피로하고 , 두렵다고 말하려 할때 잠깐 멈추자.
뭐 든지 다 할수 있다고 미리 떠들어 대지도 말자.
대신 조용히 침묵하자
끊임없이 불평을 해대며 억지로 부담을 주려는 사람들과는 되도록 거리를 두자.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갖거나, 새로운 계획에 착수해 활기 있게 살자.
또는 일상적 삶을 즐기려 노력하자.
초라한 자아 이미지는 버리자.
자기를 훼손하는 꼬리표를 붙이거나 혹은 그런 언급을 하지 말자.
당신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이상 그런식으로 인식되기를 윈치 않는다고 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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