욤비 씨는 콩고의 문베는 콩고만의 문제가 아니고, 아프리카의 문제는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제국주의 시절, 유럽 열강이 심어 놓은 분쟁의 씨앗이 오늘날 아프리카 문제의 뿌리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35


사람들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시대를 살고 있지만 어떤 공간에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너무나 다른 이해의 폭을 갖고 살아간다.  209


최종 판결일은 2008년 2월 20일.

드디어 2월 20일 아침이 밝았다. 선고는 오전 10시였다. 김종철 변호사와 아브라함이 함께 내곁을 지켜 주었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이 옆자리에 앉아 있던 김종철이 내 손을 한 번 꽉 잡았다. 아브라함이나 김종철이나 나만큼 긴장하며 또한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판사가 내 사건 번호와 이름을 호명했다. 

"이번 사건은 원고 승소하였습니다."

"와!"

옆에 있던 김종철 변호사와 아브라함이 소리를 지르며 나를 얼싸 안았다. 

'내가 이겼다. 아니, 우리가 이겼다!'

그 순간 우린느 한 형제나 다름없었다. 법정인 것도 잊었고, 창피한 것도 잊었다. 함께 얼싸안고 눈물을 쏟았다.

해맑게 웃는 아내의 얼굴과 라비, 조나단, 파트리시아가 기뻐서 펄쩍 뛰는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여보, 애들아! 우리 이제 만날 수 있겠구나.'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238-239


내가 [피난처] 사람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난민을 도와주는 건 좋지만 난민에 관한 정보는 그 누구와도 공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꼭 필요할 경우에는 먼저 난민에게 정보를 제공해도 될지 물어보는 게 순서라고 얘기했다. 선의로 시작한 일이 늘 선의로 끝나지 않는 게 난민들의 세계다.  268


본격적으로 한국 사회를 알아가고 한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국과 콩고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한국이 오랜 세월 일본의 식민지였던 것처럼 콩고도 벨기에에 의해 철저하게 수탈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두 국가 모두 내전과 쿠데타, 독재 저권을 경험했다. 불과 5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역시 주요한 '난민 발생국'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한국 사람 대부분이 전쟁 난민이었고, 세계 각지에서 지우너의 손길을 받았다. 그중에는 <유엔난민기구>와 유사한 <유엔한국재건단(UNKRA)>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의 불우했던 과거는 잊혀졌다. 지금의 한국을 보면서 50년 전의 한국을 떠올리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 짧은 기간 동안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278


왜 난민은 더 나은 삶을 꿈꾸먄 인 되는가? 왜 난민은 배움의 열망을 충족시킬 수 없는가? 나는 일자리를 얻고 돈을 벌어야 하지 않겠냐고 충고하는 친구들에게 도리어 묻고 싶었다.

배워야겠다는 열정은 단지 남들처럼 번듯한 직장을 갖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나는 한국을 배워 콩고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었다. 가족의 안정만큼이나 콩고의 미래도 나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아이들에게 사고 싶은 것 마음껏 사 주고, 학원도 보내 주고픈 마음이 나라고 왜 없겠는가? 그러나 지금 당장 우리 가족이 조금 여유로워진다고 해서 매년 수십만 명이 죽어 나가는 콩고의 사정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넬리에게 조금만 더 우리를 희생하자고,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을 훗날 콩고를 위해 쓰자고 이야기했다. 넬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고 또 미안했다.  280


피부색에 따라 사람들을 차별하는 일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298



 - 얼마 전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 선수에게 인종차별 발언을 한 축구 팬이 "인종차별금지법"에 따라 영국 검찰에 기소되었습니다. 만약 같은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요?  302



나는 나처럼 운 좋은 난민이 다시 없기를 바란다.  307


난민의 지원은 한 나라의 겨엦적인 수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차라리 인권 의식이 어느 정도냐의 문제와 더 관련 있는 것 같아요.  323




욤비 : 한국은 외국인이 설 자리가 없는 나라예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외국인은 따로 있죠. 돈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 투자하러 온 외국인들이요. 그래서 투자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만 신경을 쓰죠. 나머지 사람들, 특히 우리 같은 유색인종 사람들은 사람대접을 못 받아요.  325


욤비 : 이 책, 책에 담긴 이야기, 책에 있는 말들이 나만의 책, 나만의 이야기, 나만의 말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어요. 이 책은 한국에서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예요. 우리는 크든 작든, 비슷한 고민, 비슷한 어려움, 비슷한 고통 속에 삽니다. 그중에서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어요.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값진 사랑을 배웠으니까요. 대부분의 난민은 어쩌면 나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난민이 된다는 건 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도 아니에요. 난민은 또 난민이 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슬프게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쳐 난민이 됐을 뿐이에요. 이런 일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자들을 보세요. 여러분이 세계 초강대국의 국민이라 할지라도 어느 날 부지불식간에 난민이 될 수 있는 겁니다. 난민은 불쌍한 사람도, 죄를 지은 사람도 아닙니다. 난민은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1980년 5월 18일에 한국인들이 독재에 맞서 '아니오'라고 외치며 들고 일어섰듯이 난민 역시 자유를 위해, 권리를 위해, 자기 자신이나 가족보다 더 소중한 다른 가치를 위해 당당하게 '아니오'라고 말한 사람들입니다.  327-328



<유엔난민기구>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전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이 약 30%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2011년 1,011명이 난민 신청을 했고, 그중 340명만이 난민 심사를 받았으며 그 가운데 47명만을 난민으로 인정했습니다. 난민 인정률이 13%에 불과한 것이죠.  333


우리에게는 난민을 보호할 '법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6조에서는 정부가 비준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이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992년 난민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난민협약"을 비준했습니다. 그러니 난민들을 위한 적절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부의 의무입니다.  337-338


난민 제도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난민의 사회 통합입니다. 여기서 통합이란, 자신이 문화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한 사회의 핵심 가치를 수용해 적응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통합은 한 사회의 문화를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어 줍니다. 

난민의 사회 통합을 이야기하려면 우선 난민에게 그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해 줘야 합니다. 권리의 주체가 아니라 시혜의 객체에 머문다면, 난민들은 한국 사회에 섞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영원히 자신들만의 공동체에 머물 것입니다. 난민들이 자율적으로 살 수 있는 기회를 차단당한다면, 그들은 한국 사회에 통합하려는 어떠한 동기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사회 통합의결정적인 계기란 개인적인 관계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환대의 마음으로 난민을 대하고 난미의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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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라는 사선을 넘어왔지만 또 다른 사선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오기뿐만 아니라 자존심도 내려놔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했다.  28


탈북민은 한국에서 사회구성원으로 자리하고 인정받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탈북민사회의 호소와 집단행동을 통해 노력해왔다. 소수자가 피해자로 전락하면 안 된다는 외침으로부터 평등한 국민으로 봐달라는 호소까지, 통일의 동반자로 함께하고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기까지의 과정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해왔다고도 볼 수 있다.  30


2016년 기준 한국인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4.6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3년 연속 1위였다. 그런데 탈북민의 자살률은 그의 3배에 달한다. 2016년 9월 새누리당 김도읍 국회의원실에서 인용한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탈북민 중 2012년까지 모두 22명이 자살했는데, 2015년 한 해에만 9명이 자살했다. 이처럼 자살자가 급증하는 것은 '따뜻한 남쪽 나라'인 줄 알고 넘어왔던 한국에서의 삶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고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42


탈북민이 가장 문제로 꼽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나 정착 관련 정책보다 탈북민을 대하는 한국사회의 편견과 차별, 배제가 압도적이다. 이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배태하고 있는데, 첫 번째가 오랜 분단 시대가 만든 적대와 대립의 아비투스(habitus)로, 관습의 차원에서 유래한 것이다. 반공, 반북 의식의 오랜 관습은 북한 정부뿐만 아니라 탈북민에게까지 그대로 투영된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폭격 직후, 어느 면접장에서 "당신네 북한은 왜 저러녀?"라고 내게 묻던 면접관의 태도에서 배타적인 타자성을 보았다.

두 번째는 남북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우월적 인식에 기인한 태도다. 못나고 가난한 아우를 바라보는 묘한 승자적 감정이다. 탈북민은 일상의 자리에서부터 끊임없이 자신이 살아온 삶을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생존과 생계의 기회를 얻는다. 이를 강요하고 탈북민을 하대하며 가타르시스를 얻는 사람들을 직면하는 것은 언젠 불편한 일이다. 

세 번째는 무한경쟁사회가 초래한 소외와 배제다. 탈북민은 한국이라는 처음 맞이하는 막막한 환경에서 홀로 서야 한다. 무한경쟁사회에서 탈북민은 애초부터 포용이 대상이 아니라 경쟁의 대상이 될 뿐이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경쟁에서 배제된 채 과연 홀로 선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43-44


오래전부터 북한 주민들은 당구그이 선전을 통해서든 탈북민을 통해서든 한국이 무한경쟁사회라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럼에도 탈북민은 한국이 북한보다는 나을 거라는 희망과 우리는 결국 한 동포라는 믿음으로 탈북을 감행한다. 하지만 탈북에 성공하더라도 한국사회에서 직면하는 지독한 편견과 차별, 배제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  44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에 온 것은 맞지만 탈북민도 똑같이 존중받고 살기 위해서는,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자각이었다.  44-45


나름 좋다고 하는 대학을 졸업했고 각종 자격증 취득이며 어학연수까지 다녀와 이른바 8대 스펙에도 거의 근접했다고 생각했는데,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 길 없이 어느 날 지원 서류를 다시 한 번 찬찬히 돌아보았다. 이력서의 군 복무 여부를 뭊는 칸에는 굳이 탈북민이라고 기재했고, 자기 소개서의 성장 과정과 입사 후 포부에서조차 나는 스스로 북한 출신임을 친절하게 밝히고 있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탈북민의 흔적을 깨끗이 지우고 입사 지원을 했다. 그때부터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서류를 제출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줄줄이 합격통지서가 날아왔던 것이다. 1차 서류합격만으로도 기쁨을 느낀다는 '서류가즘'이라는 신조어도 있지만 나에겐 그 따위에 비교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격한 슬픔과 비애가 온몸을 감쌌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숙한 의식 수준을 자랑한다는 한국에서 탈북민이라는 이름은 경쟁사회의 아웃사이더이자 분단사회의 주홍글씨와 같은 꼬리표엿던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며 백안시하는 태도를 애써 감추려 하지만, 실제 모습은 제도와 시스템속에 철저히 내재화되어 있었다. 여기에 물질과 이기의 논리가 덧칠해져 유사한 얼개로 괄시와 배척이 가중된다.

흔히 조선족 동포는 '이등 국민'이라는 이미지로 우리 사회에 굳어져 있다. 그동안 주민등록증을 가진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북쪽출신이라는 것을 밝히지 못하고 조선족 동포로 행세하며 일하는 탈북민을 종종 봐왔다. 조선족 동포라고 하면 취업이 가능하지만 탈북자임이 알려지면 취직이 어려웠던 까닭이다. 사실상 탈북민은 이등 국민도 아닌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에 가까웠다.  59-60


주민등록번호(000000- 125 0000) 하나로 탈북민인 것을 구별해내는 시스템도 신기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되어 어느 탈북민은 북한에서처럼 강가에서 자동차를 세차하다가 주변의 신고로 파출소로 연행된 적이 있었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던 경찰이 곧바로 북에서 왔냐고 소리쳐 당황했다고 한다. 범죄자가 아님에도 수배자처럼 탈북민을 바로 확인해내는 전산시스템을 마주하던 그때의 경험이 훗날 탈남을 결심한 계기였다고 그는 고백했다. 일반 국민과 탈북민을 이중적 공간으로 분리하고 마치 탈북민사회를 특수 집단으로 경계하는 제도와 시스템이 존재하는 한 한국사회에서 탈북민은 결코 당당해질 수 없으며 또한 이들을 향한 한국사회의 무시와 경시 또한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63


- 2009년 '북한 이탈주민 보호, 정착지원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하나원의 소재지를 기준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았던 탈북민은 한 차례에 한해 정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입국한 탈북민들도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125나 225로 시작하지 않는 번호를 부여받았다.  64


전부가 정한 공식적인 법적, 행정적 명칭은 '북한이탈주민'이고 별칭은 '새터민'이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탈북민이 호칭은 수십 가지가 넘는다. 이는 탈북민 정착 재도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현상이다.  67


수년 전 어느 연구 기관에 탈북민 박사 몇 명과 함께 북한과 통일 문제 연구 프로젝트의 자문으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북한과 통일 문제에 문외한인 담당 연구원들과 전문가이지만 실직자에 가까운 탈북민 자문위원들 간의 만남은 어색하고 불편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탈북민 박사가 "이런 꼴을 보자고 어렵게 학위를 취득한 것이 아닌데..."하고 탄식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외국에 나가면 우리를 난민이 아니라 정치적 망명자로 존중해줍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자 인문학 분야에서 최정상급으로 인정받는 네덜란드의 레이던 대학교에서 일개 탈북 작가인 저를 학과장 대우로 초빙했는데 국내에서는 어떤가요. 국내에 탈북민이 3만 명인데 북한학과에 탈북민 출신 교수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70-71


오랜 시간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지내는, 국책 기관에서 일하는 어느 ;탈북민 금수저'는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매번 골프 치러 가고 비싼 술을 먹는 것 같지만 매일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살고 있다. 직장에서 끊임없이 받는 경계심과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너는 상상하지 못할 거다." 탈북민사회에서 이들의 위치는 성골일지 모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결국 '탈북자'로 대접받고 있다는 고충의 토로였다. 탈북민사회에서 그들은 분명 금수저이지만 그들조차 긴장하며 살아야 할 곳이 바로 만만치 않은 한국사회라는 점도 확인했다.  72


2014년 오준 한국 유엔대사가 임기 마지막 연설에서 "북한 주민은 우리에게 남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한국과 세계의 언론들은 세계를 울린 연설이라고 극찬했다. 이를 지켜보던 한 탈북민 후배의 중얼거림이 지금껏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럼, 우린 남일까요?"  73


목숨을 걸고 입국한 한국을 다시 등지는 탈북민의 행렬은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정확한 통계가 공개된 적이 없어 구체적으로 알수는 없지만, 일각에서는 약 5,000명의 탈북민이 탈남했거나 탈남했다가 되돌아온 것으로 추산한다. 2017년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3만 명이니 6명 중 1명이 탈남했거나 탈남 경험이 있는 것이다.  89


배고파서 온 사람들이라서 배만 부르면 잘 정착할 것이라는 판단은 너무나 안일했다. 배고픔보다 더한 고통이 같은 민족으로부터 받는 차별이라는 것이 탈남과 재입북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92


2007년 작고한 이기택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식사 자리에서는 음식이 담긴 그릇을 앞에 두고, "그릇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함부로 만지지도 담지도 말라"는 또 하나의 당부를 하셨다. 만들어져가는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손자국을 낸다면 기형적인 모습으로 완성된다는 의미였다.  95


2007년 4월, 32명을 사살하고 17명이 넘는 이들에게 부상을 입혀 세계를 경악케 했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주범은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난 미국 영주권자였지만, 미국민들은 그를 한국인 모두와 동일시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미국인들의 분노가 한국과 한국인을 향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미국 언론들은 오히려 이 사건을 이민자 출신의 국민을 제대로 포용하지 못한 미국사회의 문제로 보도했다. 서독에서 간첨 사건이 터질 때 서독에 정착한 탈동독민은 불이익을 받거나 위축되지 않았다. 탈동족민도 서독의 국민이라는 이념적 포용력과 성숙한 인식이 서독사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독일이 보여준 성숙한 의식을 우리는 언제쯤 확인할 수 있을까.  98


학부 전공 수업에서 들었던 인상 깊은 문장이 아직까지도 뇌리에 남아 있다. "민주주의는 일방적 동화(同化)를 강요하지 않는다."  111


통일로 한 걸음씩이라도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한 사람들에게만 일방적 동화와 적응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북한을 모르고서는 함께 살아가야 할 통일도 없다. 독일 통일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도 국민이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베를린장벽 붕괴를 주도한 것은 동독 시민이었지만, 통일 국가를 위한 국민투표를 추동하며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라고 외쳤던 이들은 동독과 서독 시민 모두였다. 합법적 방식과 민주적 절차를 통해 동독은 자기보다 우월한 서독으로의 평화적인 체제 이행을 단행했다. 서독으로의 편입을 선택한 동독 시민에게는 통일 국가에서 동등한 주체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꿈이, 동독 시민을 받아들인 서독 시민에게는 민족의 소망을 이뤄내기 위해서라면 경제적 비용을 비줄하겠다는 각오가 있었다. 오늘날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통일 독일의 저력은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111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북한 사람들이 지금의 한국사회에 만연한 탈북민에 대한 자별과 배제를 목격하고, 자신들을 향한 천민자본주의적 행태를 경험한다면, 가까스로 통일을 이워내더라도 그 통일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옛 소련의 해체를 예언했던 정치학자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전쟁이 끝난다고 평화가 찾아오는 게 아니며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전쟁보다 더 잔인한 것일 수도 있다"라고 했다. ..

나는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다시 타오르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그 통일은 한밤중에 얻는 '대박'보다는 시나브로 '작은 통일'이 모여 결실을 맺는 끈기와 인내의 열매여야 한다.  114-115


공문서와 여권 등에 새겨진 각인은 점차 지워지고 있지만, 한국사회 안에서의 주홍글씨는 더욱 선연해지고 있다.

언젠가 북한 말투를 고쳐 신분을 세탁해보려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표준말을 따라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크게 울었던 날이 있었다. 그날 깨달았던 것은 분단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탈북자'란 꼬리표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121



서북청년단은 해방 직후 북한이 단행한 친일 숙청과 토지개혁등에 의해 탄압받고 재산을 빼앗긴 이북의 청년들이 남한으로 내려온 후 만든 반공단체다. 지주, 자본가, 개신교도, 민족주의자, 친일파 등으로 구성된 이들은 대부분 황해도와 평안도 출신들이었다. 공산당에 의해 재산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쫓겨나듯 도망쳐야했던 아픈 경험 탓에 북한의 공산당뿐만 아니라 남한의 진보적인 세력까지도 '빨갱이'로 매도하며 거부감과 증오를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특히 남한에 내려온 후 아무런 기반도 없는 처지와 경제적 궁핍함으로 인해 생존이 막막한 현실이 서북청년단의 잔혹성을 키웠다. 서북청년단은 점차 폭력과 테러 등을 통해 존재를 과시했다. 

학자들은 해방 후 한국전쟁까지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온 월남자 숫자를 80~100만 명 정도로 추정한다.(신윤동욱, "박근혜 이후를 묻다", [한겨레21] 1153호, 2017) 이들은 북한에 대한 피해 의식으로 반공, 반북 이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미군정과 우익 세력은 이러한 성향을 간파하고 이들을 최대한 이용했다.  130


서북청년단은 창단 직후부터 미군정과 경찰의 비호를 받고 서북 출신 재력가들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무소불위의 세력이 되었으며 잔악한 활동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131


1949년 6월 26일 정오 무렵, 서북청년단의 간부였던 안두희는 경교장에 들어가 백범 김구를 암살했다. 그들은 정치 지도자뿐만 아니라 좌편향이란 혐의를 씌워 현직 검사에게 테러를 감행했으며 문화계 인사들이 모인 부산극장에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기도 했다. 큰 공로를 세운 단원들은 경찰과 군에 취직이 되었고, 이들처럼 출세하려는 이들의 부역 활동은 더욱 극렬해졌다.

서북청년단의 대표적인 만행이 바로 제주 4.3 사건 중에 일어났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민간이 6명이 사망한 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소요 사태와 무력 충돌,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당시 30만 명 정도였던 제주도민 중 3만 명 이상이 학살되었는데, 제주도를 피로 물들게 한 이 학살을 주도한 것이 바로 서북청년단이다. 얼마나 끔찍한 학살과 엽기적 만행이 있었는지 지금까지도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  132-133


서북청년단은 이 시기에 벌어진 광기의 학살에 가담한 테러 조직이라는 역사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오죽하면 당시 민군정청 사령관이었던 존 리드 하지(John Reed Hodge)마저 서북청년단의 만행을 보고 진저리를 치며 단체 해산을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이들의 존재는 이승만 정권에게도 정치적 부담으로 다가왔고, 1948년 12월 모든 청년 단체를 통합해 대한청년단을 출범시켜 서북청년회를 해체해버렸다. 이후 서북청년단 출신 중 남한에서는 출세한 이가 거의 없었다.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경제적 보상도 없이 토사구팽의 신세로 전락했다.  135



남쪽이 방종이 만연한 사회였다면, 북쪽은 부자유가 숨통을 조이는 사회였다.  139


지금도 남북한 어디에도 참여할 수 없는 낯선 이방인들이 있다. 탈북민은 아직 광장을 마음것 누리지 못한다. 탈북민은 아직도 '이명준(최인훈<광장>)'으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광장으로 초대받는 데 실패한 이들이, 자신이 어디에도 속할 수 없다고 깨달을 때 할 수 있는 선택이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이 ㄹ수밖에 없다. 제3국으로의 탈남, 아니면 북한으로의 재입북, 다시 재탈북.... 아니면 이명준과 같은 최후의 선택.

1950년대의 이명준처럼, 탈북민은 지금도 북한과 관련된 안 좋은 사건이 터지면 빨갱이라는 말을 듣고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한다. 끌려가서 린치를 당하는 일은 없지만 온라인 댓글과 오프라인에서의 수군거림은 기실 폭력보다 더 매섭고 아프다. 취업도 어렵고 저임금 3D 업종에도 감사하라고만 한다. 차별과 편견에 대해 입을 열면 곧바로 너희의 조국인 북한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나한에 입국 후 얼마간은 안도감을 느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탈북민은 고통스럽고 힘들어한다.  143


유엔난민기구(UNHCR)가 2017년 6월에 발표한 [연간 글로벌 동향 보고서]에 의하면, 외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탈북민이 1,422명, 난민 지위를 받으려고 신청 대기 중인 탈북민이 533명에 달한다.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통계와 이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는 탈남하는 이들이 난민 심사에서 탈락해 강제 추방되거나 해외 정착에 실패할 것을 대비해 임대아파트 등은 정리하지 않고 떠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2000년대부터 탈북민사회에서는 '탈남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한동안 해외의 남민 심사에서 한국 국적을 가진 탈북민의 추방 조치가 강화되자 탈남 바람이 주춤하기도 했지만, 최근 캐나다와 영국처럼 한국 국적의 탈북민도 신변의 위험과 위협 등의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난민과 이민 신청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목숨 걸고 경계선을 넘어 한국에 왔으나 극심한 빈곤을 겪고 다시 한국을 떠나려는 사람들, 다시 목숨을 걸고 북한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 한국도 북한도 마땅치 않아 다른 나라에 난민 신청을 하는 사람들... 과연 그들은 자유와 전엄의 땅에 닿을 수 있을까.  188-189


나는 이곳에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것들을 겪었다. 아프고 힘들었던 경험도 재산이라고 스스로 위로로 삼았다. 인내하며 얻어낸 여러 성취의 결과에도 감사하고 있다. 그러나 탈북민에 대한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민낯 앞에서 나는 여전히 절망하고 좌절한다. 대학교수로 일하는 나조차도 보통의 시민들을 제대로 마주 보거나 말을 건네기가 조심스럽다. 나도 이러한데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탈북민이나 사회적 지위가 빈한한 이들은 얼마나 힘들까.  189




맺는말


대부분의 국민들이 통일을 말하지만 이를 준비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먼저 온 통일'이라 했던 탈북민이 3만 명을 넘어섰지만 그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가물다. 탈북민에 대한 무관심만큼이나 통일 이후에 대한 고민도 극히 적다.  191


1945년 8월 15일 해방되자 백범 김구 선생은 "아, 왜적 항복! 이것은 내게 기쁜 소식이었다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었다."라고 통탄했다. 이역만리에서 풍찬 노숙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해왔건만 조선의 해방은 우리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해방을 이룬 것이 아니라 해방을 당한 것이라는 그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고 새로운 비극인 분단이 찾아왔다.  195-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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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인상적인 표현이다.
'세계는 지금처럼 주유한 적도 없었지만 지금처럼 가난한 적도 없었다'
(이 표현을 보면서 물질적인 기아에 대한 생각과 정신적인 기아에 대한 생각이 함께 떠오르기도 하였다)


프랑스 인문 예술 주간지인 <La Vie 라비>의 편집장을 지냈던 저자는 199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기아'에 주목하고 2005년부터는 절박한 기아의 실생활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첫페이지에서 책은 기아추방행동(ACF, Action Contre la Eaim)의 지원을 받아 출판될 수 있었다는 표현처럼 그는 좀더 체계적으로 기아의 현실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 볼 수 있도록 가능하면 중립적 입장을 고수하려 노력한것 같다.
읽는 이로 하여금 실상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극적인 요소는 없다. 그러면서도 서로다른 주장을 하는 내용들을 함께 다룸으로 읽는이로 하여금 편파적이 되지 않도록 지적하고 있는 듯하다.
당연한것일지 모르지만 데이터에 의한 자료와 실제적인 문제점이 한 두가지의 요인이 아니라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다루고 어쩌면 실제적인 현 주소를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개선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많이 회자되고 있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극적인 요소가 여러가지 들어있고 데이터와 경제문제들(특히 신 자유주의체제의 문제성)을 통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면, 이 책은 기아가 발생한 이유와 예전의 기아와 현재 기아의 차이점 그리고 현대의 상세한 데이터 등을 조금은 더 체계적으로 다루어 주고 있다. 
이 두 책을 함께 읽는다면 기아에 대한 이해를 더 잘 하고 생각해볼 점들을 머리속에서 그려볼 수 있을 듯싶다.

기아의 해결에 대한 모범 답안은 어쩌면 없을 수 밖에 없다.
발전하는 세계화와 기아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절대 정비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책은 열악한 자연조건 때문에 기아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지적한다. 인간들 때문이다.
책은 '무조건 이래야 합니다.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하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 개인에게 호소한다.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그렇기에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채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 가장 마지막 문장은 나에게는 가장 와 닿은 표현이다.
'기아 문제를 그냥 둔다면 미래의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174)

문득 이 표현은 이렇게도 변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말을 듣지 않기위해 관심 자체를 끊어버리면 되는 것, 삶이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가질 수 없을 만큼 힘들게 한다고...
또는 당장 내 주변도 돌아보기 힘든 세상인데 ..
또는 <왜 ..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표현처럼 '그들을 위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적십자가 있잖아'...

맞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눈 앞만 보고 있는 아니 눈 앞에 것만 보게만드는 세상에 세뇌되었기 때문일것이다.
멀리 보라. 
관련 책들이 한결같이 언급하지만, 그것이 아니어도 이런 고통은 결국은 우리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아니 더 중요한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우리의 자식들 우리의 후손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음에도 피한다면 그것만큼 아둔한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어느 한 철학자의 표현처럼, 우리는 고통을 피하기위해 주저 앉아서 피한다는 생각이 들어 꺼림직한 느낌을 없애기 위해 앉은 자리에 있는 작은 꽃을 바라보며 그것에 집중하는 그런 모습으로 숨어버린다면 그 고통은 점점 더 커져서 어느 순간 그 앉아 있어도 피할 수 없고 피신처처럼 보이던 작은 꽃 마저도 사라져 그때서 '아! 그때 반응을 했더라면 지금의 고통의 이십퍼센트도 없었을 걸'하며 후회하게 될지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게 후회하게 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표현은 인간의 게으름과 회피정신을 야단친다. 
생각해야만 할 문제이다.



추천서문 - 기아에 대해 아는 것, 그것이 행동의 시작이다. (장 크리스토프 뤼팽, 의사이자 작가며, 기아추방행동의 명예 회장)
일부 사람들은 기아를 진부하다 못해 낡아빠진 1960년대 화제로 치부한다. 
통계수치를 들여다보면, 기아가 그런 인식과는 반대로 최근 수 십년간 가장 주목해야 할 (가장 비극적인) 불변상수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7
모든게 바뀌었는데 기아는 그대로다.  8
기아는 ... 인간 사회와 나란히 가면서 그 사회의 불평등을 폭로하는, 현재 엄연히 진행되고 있는 과정이며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9
기아 문제에 있어서는 아는 것, 바로 그것이 행동의 시작이다.  11


1부 기아라는 말 뒤에 숨은 잔혹한 현실 
모든 사람은 식량을 포함하여 자신 미치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유지하는 데에 충분한 생활 수준을 누릴 권리가 있다. - 세계인권선언 제25조(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채택)  23
2000년 9월 열린 새천년개발목표(MDG, Millennium Development Goals)에서 첫째로 내건 정치적 약속은 세계의 절대 빈곤과 기아를 감소시키겠다느 것이었다.
'지금부터 2015년까지 하루 소득이 1달러 미만인 세계 인구 비율과 기아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비율을 절방느로 줄이고,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사람들의 비율 역시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일 것을 결의한다.'
이 말은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때 작성된 세계인권선언에서부터 포함되었던 내용이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세계 인구 일곱 명 중 한 명은 식량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  27
'FAO 사무총장 자크 디우프가 연구서 서두에서 지적한 대로, 개발도상국의 기아 인구는 1990~1992년간 산출된 기아 인구에 비해 300만 명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통계 오차로 봐도 될 만큼 너무나 적은 숫자다.' -<세계 식량 불안의 현황, 세계 기아추방, 세계 식량 정상 회의 10년 결산>, 2006년
* 세계 식량 정상 회의의 목표는 밀레니엄 정상 회의의 첫 번째 목표보다 더 야심적이었다. 왜냐하면 세계 인구의 지속적 증가로 인해 영양 결핍 인구 비율이 절반보다 훨씬 더 많이 감소되어야 목표에 도달할 수 있기때문이다. 새천년개발 제1목표가 2015년에 달성된다 하더라도 영양실조 인구는 여전히 약 5억 8,500만 명이 남게 되며, 세계식량정상 회의의 목표가 달성되면 그보다 1억 7,300만이 적은 4억 1,200만 명이 남게 된다.  29





FAO가 집계한 후진국 영양 결핍 인구는 1990~1992년 중에는 8억 2,300만이었고 2001~2003년 중에는 8억 2,000만이었다. 사실상 같은 수치나 다름없긴 하지만 인구에 따른 영향이 내포되어 있음을 감안해야 하는데, 같은 시기의 세계 인구가 1996년 58억에서 2006년 66억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5억 8,200만 명은 2015년에도 여전히 기아로 고통받을 것이고, 1996년 정상 회의의 목표가 달성된다 하더라도 4억 1,200만 명이 고통받을 것이다.  32
세계 인구 일곱 명 중 한 명은 배고플 때 먹지 못하며, 20억 명은 철분이나 비타민A, 요오드, 아연 같은 미량영양소 결핍에 의한 '보이지 않는 기아'에 시달린다.  33
1년에 사망하는 약 6,000만 명의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기아나 영양 결핍에 따른 질병으로 죽는다. 따라서 기아 추방은 현재 가장 시급한 일이다.  35
오늘날의 대(大)기아는 절대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 위기의 산물이다.  38
현재 우리는 기후변화를 탓할 수 없는 반복되는 기아의 시대에 살고 있다. 크메르루주 정권(캄보디아 공산당, 현재는 민주 캄푸챠당이란 이름)의 캄보디아나 김정일 정권의 북한에서 국민을 굶주리게 만든 것은 바로 중앙정권이다. 라이베리아, 소말리아, 콩고민주공화국, 시에라리온에서는 경쟁 세력들간의 내전이 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지아가 자연의 힘에 의한 대량 참사인 것은 여전하지만, 가장 비극적으로 발현되는 기아의 뒤에는 무엇보다도 인간의 공모가 자리하고 있다.  39
현재 WHO의 전문가들은 한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2,100~2,200킬로칼로리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생명 유지에 필요한 최소한의 한계, 즉 기초대사량은 1,200~1,300킬로칼로리로 본다. 서구 국가의 '표준적인' 1일 열량 섭취량은 성인은 2,400, 청소년은 2,900, 7세 아동은 1,830킬로칼로리로 정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그 수치는 평균 1,700으로 내려간다. 그런 '1일 열량 섭취량'은 적어도 기초대사량에 필요한 에너지의 1.4배는 되어야 하며, 또한 탄수화물 55%, 지방 30%, 단백질 15%의 비율로 구성되어야 이상적임을 고려해 균형있고 다양하게 구성되어야 한다.
기아는 단지 음식을 충분량 먹지 못하는 상황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FAO가 집계한 현재 세계 영양 결핍 인구 약 8억 5,400만 명 가운데 92%가 그런 '만성 기아'에 놓여 있으며, 나머지 8%는 기근에 따른 '급성 기아'를 겪고 있다.  42
질적 접근으로 보완되어야 한다. 결핍으로 나타나는 많은 수.
마라스무스에 걸린 아이는 '뼈와 가죽'밖에 남지 않은 비쩍 마른 몸에 '늙은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콰시오커(kwashiorkor)는 피부 손상을 동반한 양측성(兩側性) 부종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아이들은 마라스무스와 콰시오커가 혼합된 소모성 콰시오커 증상을 보인다.  47

2부 기아는 도대체 왜 발생하나?
굶주림은 분명 일련의 요인들이 빚어낸 결과다.  59



영양실조를 세계적인 차원에서 고찰하는 접근법은 전통적으로 두 가지가 있는데 둘다 위험한 결론에 이른다. 
하나는 '굶주리는 사람이 있는 것은 인간의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먹을 게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우리에게 남는걸 보내주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73
기아에 이르는 과정에서 숙명적인 요소는 별로 없다. 
기후, 메뚜기 떼의 습격, 거듭되는 가뭄은 우선 보기에는 자연적인 현상이지만 영양실조의 원인은 대부분 인간의 공모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해당 국가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배경을 기아의 개념적 도식의 테두리 안에서 연구하면 유익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면 오랜분쟁이나 민족적 종교적 차별이 원인이 된 경우도 드러난다. 오늘날 식량 위기의 대부분은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요소가 원인이다.  75-76
기아에 대한 개입은 긴급한 상황뿐만 아니라 모든 개발 영역에 걸쳐 장기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79
빈곤의 구렁텅이에서 근근이 살아가도록 방치되어 있는 이들을 구해내는 일은 세계적인 결속을 통해서만 기대할 수 있다.
국민들 앞에 약속한 진보를 위해 일할 책임은 각 개발도상국 정부에게 있지만 그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전 국제사회의 지원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93
기아 문제는 인류 발전을 위한 전 영역에 자리하고 있다.  94

3부 세계 곳곳에 포진한 기아의 현주소
영양 결핍의 세계를 1,000명의 주민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마을로 가정해 본다면 주민 248명(전체 인구의 4분의 1, 2억 1,200만 명)은 인도 사람일 것이고 241면(역시 4분의 1, 2억 600만 명)은 아프리카 사람일 것이다. 나머지 절반 중에는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 소속이 190명(1억 6,200만 명), 중국 사람이 176명(1억 5,000만 명), 중남미나 카리브해에 소속된 사람이 61명(5,200만명), 근동이나 마그레브에 소속된 사람이 45명(3,800만 명)일 것이다. 29명(2,500만 명)은 구소련 같은 체제 전환국 출신의 사람이고, 10명(900만 명)은 선진국 출신의 사람이다.  97



다르푸르, 문제의 땅
네팔, 마오주의와 봉건주의 사이
몽골, 기후적 기아?
니제르,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기아로의 복귀
라이베리아, 거듭되는 위기
미얀마, 민족 차별이 부른 기아
아프가니스탄, 실추된 인도주의
(소제목들만 올린다. 실제 내용은 읽어보거나 관련서적들에 다양하게 올라와 있기에 직접 읽어볼 때 상태의 심각성이나 실질적인 아픔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원인과 새로운 원인이 중첩되어 있는 오늘날 새로운 기아의 모델이다.  115

4부 기아와의 전쟁
수출을 위해 세계시장을 자유화하려는 선진국과 지역 농업을 지키려는 후진국 사이에 뚜렷한 대립이 생기기에 이른다.  135





한편에서 주장하는 자유주의와 또 다른 한편에서 주장하는 식량 주권.
오늘날 재해 중의 재해에 해당하는 기아에 효과적으로 맞서 싸우는 방법은 그 두 가지 용어 안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141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세계화 체제의 중심을 부가 아닌 빈곤에 다시 맞추어야 한다.  144
현재 좋은 반응을 억고 있는 마이크로크레디트와 공정무역이 있다.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은행)
하지만 아직도 미미한 정도이다. 
선진국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연대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공정 무역이 효과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후진국 생산자들을 실제적으로 돕는 방법에 관해서도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154
일상적인 테두리 안에서든 인도주의적 위기의 테두리 안에서든, 피해가 큰 사람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  160
(조제된 치료용 우유 F100, 포동포동 살찐 땅콩이라는 뜻의 폴럼피너트같은 고열량 식품으로 대체하여 영양실조를 치료하는등의..)

2015년에 실현하려는 새천년 목표의 첫 번재 약속인 기아의 제거는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선택이다.
물론 개발도상국이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낭비, 부패, 독재, 파벌주의 역시 빈곤과 영양실조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아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중의 활동에 속하며 국제사회의 의무인 동시에 후진국 정부들의 의무다. 함께 나누어야 할 책임이다.  모든 인권에 대해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166-167

맺는글 - 반드시 이겨야 할 전쟁
'세계 8억 5,000만 명의 사람들이 굷주림에 절규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바로 당신은 어떻습니까?' - ACF 홈페이지(www/actioncontrelafaim.org)

여론이 움직여야 한다. 우리가 움직여야 한다.  169
기아로 고통받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라는 아주 간단한 이유에서도 기아의 존재는 논리에 맞지 않는다.  171
'사람들의 생계 수단을 보전, 보호하고 성장과 다양화와 발전을 위해 자체적인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개발도상국 정부들의 개입 원칙이 무역 자유화와 규제 완화, 민영화보다 우선시되어야 한다.' - 1996년 식량 정상회의 10주년 기념 선언  172
그러므로 행동해야 한다.
기아 문제를 그냥 둔다면 미래의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알고 있으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요?"  174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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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곡식만으로도 세계가 다 먹고 남는다는데, 왜 이토록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어야 하는가...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내용이다.
책 내용은 결코 누군가의 이기심 때문이라고 설명하지 않는다.
그들의 이기심과 이윤추구를 위해서라고 한다.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이라는 부제로 그의 경험을 통해 바라본 세계의 실태와 오만한 그들의 실상을 밝히고자 했다.

국내에 이 책이 번역되어 들어오기까지 만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왜 그럴까...생각해 본다..
이유야 정확히 알 수 없을지 몰라도.. 대충의 짐작은 책 내용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한국... 대한민국.. 이란 나라는 참 독특한 나라이다. 
930여회의 외세의 침략을 받고도 결국은 버티어 낸 나라.
긴 세월동안 (물론 동남아시아에 비하면 많이 짧긴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황폐되었고,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졌음에도 굳건히 버티고 ..
급속한 발전으로 지금 세계경제 10위권에 머물르게 된 나라이다.
정말 대단한 나라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불과 몇 십년전 외국에서 원조를 받아야만 했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원조를 해주는 나라가 되었다.
전 세계를 보더라도 원조를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나라에서 원조를 해주는 나라가 된건 한국이 처음일것이다.
그만큼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단하다.

그런데 한국은 절대 행복하지 않은 나라이다.
최근 뉴스에 의하면 한국은 돈은 가졌으나 행복은 가지지 않은 나라라고 표현된다. 
우리의 지난 역사를 살펴보면 수긍되고 인정하게 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세계의 약자들을 바라보며 좀더 올바른것은 무엇인지 .. 말로만 교육하는 것으로 넘어가지 않고, 실제로 바라보고 경험하고 같이 아파하며 우리 선조들이 가졌던 '인의예지' ... 우리에게는 좀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런 굶주림은 거대한 횡포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다.
'이들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 아니다.'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분명 돌아올 수 있는 아픔이란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조금더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돌보며, 의식을 성장시켜 나갈때 조금이라도 아픔이 줄어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나를 깊이 반성하게 한다..
이정도의 고통이 분명 지금의 우리에게는 오지 않을 확률이 크다. 
그렇다고 남의 일이 아니다. 이들의 아픔은 분명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비슷한 아픔으로..!!
지구의 허파인 아마존이 황폐되면 될 수록 우리에게는 새로운 고통들을 주게 된다. 책 내용처럼 그렇다고 우리가 이들이 먹고 살기위해 또는 기업이 자기이 득을 위해 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세워줄 때 이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해제 - 기아에 관한 어느 국제 전문가의 비망록(우석훈, 성공회대 외래교수)
기아와 관련된 일을 현장에서 자신의 천명으로 알고 활동하는 사람에게 소속이 어디인가가 뭐 그렇게 중요하겠는가?
그리 많지 않은 어린이 기아 관련 저술 중에서 내가 아는 한 이 책은 가장 고급의 정보를 담고 있고, 몇 가지 점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한 책이다.  9
책은 현재 기아의 현장에서 어떤 사람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보고 있고, 그런 이득들이 어떻게 재생산되며 더욱더 많은 어린이들을 굶주림으로 내몰고 있는가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10
기아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나라는 거의 초보적 수준이다.  10
이 책은 전체적으로 지글러가 어린이 무덤에 바치는 참회록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곡물 잠재량 만으로도 전세계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고, 프랑스의 곡물생산으로 유럽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전세계적 식량과잉의 시대에 수많은 어린이 무덤이 생겨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연 제 정신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16
'승자독식' , '교육노동' ... '워싱턴 합의'가 그 근본원인이다.  17

한국어판 서문 -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유엔식량농업기구(FAO : Food and Agricultule Oganization)는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2005년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를 집계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굷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이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2000년 이후 1,200만 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전인구의 36%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북한의 상황도 절망적이다.  18
'지구의 허파' 아마존은 현재 국제시장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는 콩 경작자에 계속 자리를 내주고 있으며, 그에 따라 지구 기후의 파국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20
2006년 유럽 연합 국가들... 보조금으로... 과잉생산.. 아주싼 가격으로 남반구에 수출... 아프리카 각국...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등지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을 동질의 아프리카 농산물의 절반이나 3분의 1 가격에 살수 있다.... 아프리카 농가에서는 온 가족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하루 열다섯 시간씩 악착같이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저생계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아프리카 53개국 중 37개국이 거의 순수한 농업국가다.  21
그렇다면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희망은 서서히 변화하는 공공의식에 있다.  
풍요가 넘쳐나는 행성에서 날마다 10만 명이 기아나 영양실조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간다.  22
변화된 의식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식량을 확보하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 기아로 인한 떼죽음은 참으로 끔찍한 반인도적 범죄이다.  23

동남아시아에서는 인구의 18%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아프리카에서는 인구의 35%,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에서는 약 14%가 굶주리고 있지.  
숫자로 따지면 아시아에 기아인구가 더 많단다.  33

문제의 핵심은 사회구조에 있단다. 식량 자체는 풍부하게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확보할 경제적 수단이 없어. 그런 식으로 식량이 불공평하게 분배되는 바람에 안타깝게도 매년 수백만의 인구가 굶어죽고 있는거야.  37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41
1798년 영국국교회 성직자였던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 법칙에 관한 논문을 발표.
맬서스는 세계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여 25년마다 두 배가 되지만, 식량의 증가는 산술서열을 따르므로, 가난한 가정은 자발적으로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조나 지원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했어. 맬서스는 질병과 배고픔은 가슴아픈 일이기는 해도 이 사회에 필수적인 기능을 한다고 주장했단다. 지구상의 인구를 자연적인 수단이라는 얘기였지.
책은 출판되자마나 유럽의 지배층에서 널리 읽혔고, 산업화 초기의 국민경제학자들과 기업인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단다. 맬서스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어. ... 맬서스 이론은 근본적으로 틀렸지만, 심리적 기능을 충족시키거든.  41-42

'경제적 기아'와 '구조적 기아'
'경제적 기아'는 '돌발적이고 급격한 일과성의 경제적 위기로 발생하는 기아.'
난민캠프 병원... 한 아버지가 주름이 깊게 파인 걱정스런 얼굴로 병원 앞에 서 있었어. 발치에는 아들이 누워 있었지. 열두 살 아니면 열다섯 살? 아이의 사지는 정말이지 거미다리처럼 너무도 가늘었어. 그 아이를 보면서 너는 떠올렸지. 현지의 유일한 의사인 타마르트 망게샤가 그 아이를 보고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어. 너무 늦어서 어떤 도움도 소용이 없었던 거야. 그 아이는 곧 죽음을 맞게 될 상태였지. 아버지는 전신을 떨었어. 눈물이 하염없이 뺨 위로 흘러내렸어. 아버지는 한 마디 말도 못한 채 의사를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어. 의사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저었지. 아이는 더는 생명을 구할 수 없는 상태였어. 결국 그 아버지는 허리를 굽히더니 가만히 아들을 안고는 가버렸어.  53
에티오피아는 연간 1인당 국민소득이 128달러로 현재 지구상의 최빈국에 속해.  54

'구조적 기아'는 장기간에 걸쳐 식량공급이 지체되는 경우.'  
'구조적 기아'는 선진국에는 없거나 이미 오래전에 퇴치된 전염병이나 질병이 창궐하는 것으로도 드러난단다. 예를 들어 크와시오르코르(쇠약증)나 기생충감염증 같은 것도 그런거야. 크와시오르코르는 사람의 신체를 서서히 손상시키는 질병으로 주로 어린아이들에게 찾아오는데, 이 벼에 걸리면 성장이 멈추게 되지. 처음에는 머리카락이 붉어지다가 나중에는 점차 빠지면서 배도 불러오고, 이가 흔들리다가 빠지게 되고. 이런 식으로 서서히 죽어가게 된단다.  60-61

시카고 곡물거래소... 사실 거래는 몇 안되는 거물급 곡물상의 손에서 결정돼. 그들은 몇 사람 안 되지만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고 있지.... '화이트칼라 강도들'이라고 부르기도..  74
투기꾼들... 가격은 단 한 가지 원칙에 복종해. 바로 이윤극대화라는 원칙이지.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매주 수백만 달러를 더 벌어들이는 것이지. 배고픈 자들의 고통? 맙소사. 그들을 위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적십자가 있잖아 하는 식이란다.
중요한 것은 첫째는 수확량이고, 둘째는 시카고 거래소의 투기꾼들이 유엔이나 세계식량계획, 여러 인도적 지원단체, 그리고 만성적인 기아에 시달리는 나라에 제시하는 곡물가격이야.  75-76

유럽연합은 자국의 농민드을 살려야 하고, 그 때문에 농산물가격을 높게 유지해야 해.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것은 FAO나 WFP의 과제일 따름이지.  80

구호단체는 극단적인 조건에서 활동하고, 갖가지 모순들과 싸워야 해. 그러나 어떤 대가도 한 아이의 생명에 비할 수는 없어. 단 한 명의 아이라도 더 살릴 수 있다면 그 모든 손해를 보상받게 되는 것이지.  93

대개는 국가적인 폭력이 자행되는 나라에서 배고픔을 무기로 삼는단다.  94

다국적 기업들도 그런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99

굷주림을 국가 테러의 무기로 사용한다.  103

사막화로 인한 환경난민  107

지금 전세계는 '농촌사회의 종언과 지구 규모의 도시화'라는 혁명 와중에 있단다.  125
세계 총인구의 증가율은 1.6퍼센트인 데 비해 도시인구의 증가율은 4.7%에 달하지. 
도시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는 데는 몇 가지 원인이 있어. 농지의 피폐화나 사막화. 그리고 각국의 농산물수출 확대정책도 주된 원인이라고 볼 수 있어. 또한 농업의 집중화. 기계화, 공업화가 강력하게 추진되면서 농업 생산이 확대되는 한편, 인력이 불필요해진 농촌에서 농밀들이 방출되어 대도시로 흘러 들었던 거야.  126

식민 정책으로 단일화 집중재배 시스템은 나라의 성장을 저해  131

비극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어.
시간이 지나면서 희생자들은 점차 망각의 제물이 되고, 문제 자체의 존재마저 잊혀버리지. 그리고 깊은 고독 속에서 죽어가게 돼. 처음에는 강했던 국제적인 연대감도 시들해지고.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각국이 자급자족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하는 것 외에는 진정한 출구가 없다고 아빠는 생각해.  152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153


에필로그
모든 생물체는 살기 위해 먹어야만 하므로, 먹을 것은 언제 어디서든 필요한 것이었다.  155

신 자유주의의 큰 문제는, 그런 주장이 자세히 검토되지도 않은 채 세계에 침투되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은 채, 그러 '경제 합리성'이라는 구호만이 난무하고 있다.  164

우리는 기아에 의한 생명파괴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1) 인도적 자원의 효율화
2)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모든 혁명의 목표는 희생자를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자로, 역사의식을 가진 주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3) 인프라 정비    164-168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서로 책임져 주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171

후기
세계 무역의 규모는 지난 해 6조 달러를 넘어섰다. 그중 3분의 1이 각각 다국적기업들 내부에서 이루어진 무역이었다.
세계 무역의 또 다른 3분의 1은 다국적기업 상호간에 행해졌다. 그리고 3분의 1, 그러니까 2조 달러 정도만이 전통적인 무역 거래에 해당되었다.  173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부족한 물, 전염병은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세 재앙의 기사들이다. 네 번째 재앙의 기사는 바로 전쟁.  174

소리 없이 매일 많은 사람을 죽이는 기아에 대한 범 세계적 투쟁이 어려운 것은 또한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 기금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다.  180

유엔의 특별 기구들, 개발프로그램, 기금, 위원회, 금융 기관들은 매일 매일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5대륙으로 자기 모슨을 알고 활동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는 전염병과 싸우고, 유엔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계획과 유니세프는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의 생명을 되살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유엔개발기구는 저개발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세계무역기구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국가 및 공동체에 적대적인 민영화와 규제 철폐 정책으로 제3세계 나라들의 가뜩이나 약한 구조를 황폐화시키고 있다.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는 이런 모순을 제거하기에는 너무 우유부단하고 유약하다.
기아와의 투쟁은 이런 대립을 끝낼 수 있는가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182-183


부록으로 
남반구에서는 기아 희생자들의 피라미드가 쌓이고 있는 반면에, 북반구에서는 다국적 금융자본과 그과두제가 부를 쌓아가고 있다.
지은이는 이런 끔찍한 기아에 대한 범세계적 투쟁이 어려운 것은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 국제통화기금 등의 무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신자유주의를 말한다 - 주경복 (건국대 교수)

1995년에 WTO가 공식출범하고, 김영삼 정부에서 '세계화'를 선언하며 신보수주의 개혁 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논쟁이 본격화하였다. 교육계에서는 1995년 5월 31일 교육개혁안이 발표된 뒤로 그런 소용돌이가 첨예하게 분출하였다. 정부가 '시장', '경쟁', '구조조정', '수요자 중심' 등의 개념을 이용하며 펼치는 개혁 논리 속에 신자유주의 요소들이 깊이 스며있었기 때문이다. 정책입안자들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좋은 모형들을 도입하는 것뿐이지 신자유주의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으나 원래 미국이나 영국의 정책들 속에 이미 신자유주의 논리가 많이 스며있었기 때문에 의도와 상관없이 신자유주의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사회 각 분야에서 끝없는 토론과 논쟁이 이어졌기 때문에 오늘날 웬만큼 사회참여 활동을 수행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자유주의 개념은 상식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큰 주저 없이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해 오고 있다. 나도 그런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틈틈이 신자유주의에 관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그 용어법이나 개념의 엇갈린 해석과 오해가 생기는 일을 겪으며 난감할 때가 있었다. 나 스스로는 큰 오류 없이 이해하며 사용하고 있다고 믿지만 혹시는 잘못된 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생겼다. 세계화나 신자유주의에 관한 독서도 꽤 하고 내 나름대로 관점을 정리해 오기는 했지만 너무 안일했거나 타성에 젖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경직된 관념을 지니게 된 것은 아닌지 반추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친 김에 내가 이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를 한번 정리하여 객관화하면서 주위의 검증도 받아 볼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신자유주의 개념에 아직 익숙하지 않거나 관점의 차이 때문에 다소의 오해가 생길 수 있는 네티즌들과도 공유할 것은 공유하고 서로 확인하여 보완할 것은 보완하며 합리적인 소통을 이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너무 이론적인 문제나 세부적인 이야기를 깊이 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가 있으므로 상식적인 선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총체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는 매우 복잡한 흐름 속에서 진화하였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편의상 일정한 무리를 감수하면서라도 큰 줄기만 잡아 단순화시켜 서술해 본다.

원래 '자유'라는 말은 그 정확한 시원을 추적하기 힘들만큼 오래된 것이다. 그 만큼 자유라는 개념은 인류의 삶에 일찍부터 깊이 녹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라고 할 때는 보편적 자유를 애호하거나 추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특수한 의미의 개념을 갖게 되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상식 속에 자라잡은 '자유주의'는 대개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고전적 자본주의와 연관하여 이해되고 있다. 정부의 통제를 최대한 줄이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질서를 염두에 둔 개념이다. 말하자면, 자본 활동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이어서 일반 대중이나 모든 개인의 보편적인 자유와는 꽤 거리가 있는 것이었다. 벤담(Jeremy Bentham)이나 밀(John Stuart Mill) 등 다소 진보적인 자유주의자들이 부를 골고루 분배하고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등 자유의 공공적 관리를 통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주창함으로써 대중의 자유까지 보호하며 포괄하려는 공공적 자유주의도 나타났으나 역시 고전적 자유주의 흐름에서는 스미스 식의 방임적 자유주의가 대세를 이루었다. 인류 역사 속에서 언제나 영주, 왕, 국가 등의 지배와 관리 속에서 구속받으며 활동하던 인간들에게 '간섭 없는' 자유라는 개념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었다. 특히,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거추장스러운 책무 없이 마음껏 부를 축적하며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이 더 없이 반가운 이야기였다.

산업혁명 이후 경제활동이 매우 활발해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방임적 '자유주의' 논리는 처음에 상당한 호응을 받았다. 자유주의는 시대를 가로지르는 지배담론이자 하나의 도그마로 기능하였다. 그러나 방임적 자유의 폐해가 노출되기 시작하면서 그런 자유주의는 도전을 받기 시작하였다. 자유를 빙자한 자본의 횡포와 독점이 발생하고 빈부격차가 커져서 서민의 구매력이 감소하여 경기가 침체하는 등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의 존재와 역할에 회의를 느끼며 방임적 자유보다 정부의 적극적 관리와 개입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런 흐름에서 자유주의는 여러 가지 형태로 수정되는 길을 걸었다.

1912년에 미국 대통령 후보로 나선 윌슨은 무분별한 '부당' 경쟁을 통해 경제의 독점 현상이 나타나고 부작용이 만연하는 것을 억제하여 새로운 방식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새로운 자유(New Freedom)' 정책을 제시하며 당선되었다. 1930년대 세계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 정책'도 '새로운 자유' 정책의 흐름으로 꼽힌다. 이 때 이야기되는 ‘새로운 자유 정책(New Freedom Policy)’을 가끔 '신자유주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오늘날 세계화 담론과 결부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는 사뭇 다른 것이다. 앞에서 말하는 '새로운 자유' 정책은 정부가 나서서 경제문제를 챙기는 것이고, 뒤에서 말하는 '신자유주의'는 정부는 가급적 나서지 말고 민간 자본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자를 후자와 구별하기 위해 '새로운 자유주의(New Liberalism)'라 부르고 후자를 요즘 부르는 용어 그대로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고 부르면 좋을 듯 하다.

1920년대 무렵 독일의 오이켄(Walter Eucken)을 비롯한 프라이부르크학파에서는 경제질서의 완전한 자유를 이루려면 경쟁질서가 공정해야 하는데 자유를 방임해서는 그것을 실현할 수 없으므로 생산, 소비, 직업선택 등에 대해서는 자유경쟁을 가급적 보장하되 시장형태 등을 포함한 사회질서의 관리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질서자유주의(Ordo Liberalismus)’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것도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수정이라는 점에서 신자유주의 흐름의 하나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 역시 요즘 논란이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는 구별된다. 그냥 넓은 의미의 '새로운 자유주의' 흐름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현실 정치에서나 경제학 이론가들 사이에서나 아담 스미스가 제시한 자유주의 경제 모형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이론들이 여러 각도로 모색되는 가운데 대표적 대안 이론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케인즈의 수정주의 이론이다. 자본가의 자유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도 국가가 나서서 관리하고, 빈부격차가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복지정책을 도입하고, 경기가 침체되면 공공투자를 늘려 유효수요를 증대시키는 등 자유의 공공성을 지향하였다. 국가가 개입하여 자본의 방임적 자유를 통제하는 '개량'의 흐름이 다시 주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도 고전적 자유주의를 수정한 것이므로 편의에 따라서는 '신자유주의'라고 부를 수도 있겠으나 대개 '케인즈주의', '수정자본주의' 또는 '개량(자본)주의'라고는 불러도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신자유주의(Neo-liberalism)'라는 명칭은 케인즈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판논리로 등장한 흐름에 붙여지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정부가 자본의 흐름에 개입하며 경제활동을 간섭하는 것이 경제적 '효율'을 떨어트린다는 부정적 시각에서 다시 제약 없는 자유를 주장하는 이론이 생겨났는데, 그 내용이 고전적 자유주의 와 꼭 같은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케인즈주의와는 더욱 같지 않기 때문에 이론가들 스스로나 주위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J.바이너, H.D.사이몬스, F.A.하이에크, F.H.나이트, M.프리드먼, G.J.스티글러 등 이른바 시카고 학파의 경제이론가들이 주도하였는데, 그 가운데서도 하이예크나 프리드먼 같은 인물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이들은 생산 ·가격 · 고용 등 경제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서 통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물가조절, 자원배분 등을 비롯한 대개의 경제 운영은 시장기능을 통해 수행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정부의 개입보다는 민간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중시하였다. 이런 이론과 주장 또는 그 논리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신자유주의' 담론의 뿌리인 것이다.

이런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 논리들이 일찍이 1950년대부터 경제학의 이론으로서 전문가들의 주목은 받았지만 세간의 관심과 호응을 일으키며 현실 정책에 그대로 즉시 반영되지는 않았다. 세계 국가들의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이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확산된 것은 1980년대부터이다. 70년대 초반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경제정책에 신자유주의 요소를 도입하여 '닉소노믹스(Nixonomics)'를 낳았지만 시도의 차원에 머물렀고, 그나마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중도 사임하는 등으로 일관된 시행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뒤 1979년 영국에서 집권한 대처 수상이 매우 강력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여 '대처리즘'을 탄생시키고, 1980년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한 레이건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도입하여 '레이거노믹스'를 탄생시키면서 드디어 신자유주의가 '스타'처럼 국제사회의 인기 있는 담론과 정책으로 부상하였다. 각종 규제를 풀어 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해주고 자본주의 판단에 따라 쉽게 구조조정을 가하며 자유롭게 기업활동을 할 수 있게 하여 침체되었던 경기를 많이 활성화시켰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그것은 곧 신자유주의가 매우 유효하다는 심증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신자유주의가 각광을 받게 된 사전 배경에는 1970년대에 세계 국가들이 겪은 석유파동, 스태그플레이션, 실업난 등 경제의 전반적 악조건이 작용하였다. 무엇이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 위기의 원인을 케인즈주의 경제정책 탓으로 돌리면서 그 대안으로서 신자유주의를 제창하여 급부상한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유효한 역할을 못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데다가 여러 가지 규제들 때문에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늘어났다. 그래서 규제를 최대한 풀며 정부의 역할을 가급적 축소시키고 시장기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규제 완화', '세금축소', '공기업민영화', '노동 시장 유연화', '복지정책축소' 등 신자유주의 조치들은 자본가들의 환영과 지지를 받았다.

이렇게 세상의 주목과 사랑을 받으며 유행처럼 확산된 신자유주의는 그 주창자와 순수한 이론가들마저 놀랄 만큼 자가발전을 거듭하여 지금은 일종의 신화를 낳아 가고 있다. 놀라운 마력을 가진 어떤 주문처럼 그것을 외치고 표현하면 무엇이든 해결점이 나올 것 같은 환상을 자아내는 경향도 보인다. 그렇게 범람하는 흐름에는 시대적 상승 요인이 맞물린 또 다른 배경이 있다. 바로 '세계화'의 물결이 합세한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기 성취의 욕망이 있고, 인류는 태초부터 집단팽창의 욕망을 지녀왔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국가들은 제국주의 야망을 불태웠고, 현대에 와서도 강대국들은 끊임없이 국제적 헤게모니를 확대하고 싶어 한다. 경제통상 분야에서는 자국의 이익추구에 유리한 무역의 확대라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20세기 들어서 탄생한 GATT는 바로 그런 배경을 갖는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GATT는 여러 가지 한계들 때문에 강대국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개방수준을 달성하기 힘들었다. 그런 교훈을 바탕으로 GATT 체제를 대폭 보완하여 탄생한 것이 바로 ‘세계무역기구(WTO)’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을 일정한 절차로 개방해 나가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IMF, IBRD, OECD, ASEM, APEC, FTA 등도 WTO와 함께 세계화 기제를 구성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을 전후하여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용어와 개념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런 세계화의 흐름에 이론적 무기로 작동하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이다. 국가의 관리로 존재하는 모든 국경들을 허물고 전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여 오직 시장기능만이 모든 경제활동과 삶을 밑받침하게 한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 것이다.

이런 세계적 신자유주의를 배경에서 지원하고 움직이며 가장 많이 혜택을 누리는 것은 초국적 자본이다. 각 국가에서 무한에 가까운 자유를 지향할 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하나의 시장으로 삼아 언제 어디서든 돈벌이를 쉽게 할 수 있도록 되어 가는 것이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세례를 받으며 흐름에 동참하여 무척 빠른 속도로 적응해 나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주도 국가인 미국이나 영국보다 분위기에서는 더 신자유주의적이고 더 세계화를 쫓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영삼 정부가 다분히 의식적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한 뒤로, 김대중 정부가 IMF정국 타개를 위해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흐름을 이어받았고, 노무현 정부도 처음에는 적지 않은 망설임을 보였으나 점차 신자유주의 요소가 짙은 정책으로 흘러왔다.

이 세상에 절대선과 절대악은 별로 없다. 대부분 장점과 단점을 함께 지니고 있는데 그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본질을 규정하냐에 따라 긍정되거나 부정된다. 신자유주의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가 지니는 장점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많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세 가지만 꼽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본 활동의 제약을 최소화함으로써 자유롭게 시장 원리에 따라 이윤을 추구함으로써 투여한 자본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성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부의 창출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둘째, 시장의 적자생존 원리에 따라 모든 경제주체가 긴장하며 최선을 다해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함으로써 기능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한 눈 팔지 못하고 자신이 지닌 능력을 취대한 발휘하게 하여 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셋째, '욕망하는 존재'로서 인간의 성취욕을 자극하여 일의 성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적 본능이나 이기심을 자극하여 더 많이 이루고자 하는 에너지를 생성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단점도 매우 많다. 세 가지 정도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의 전제가 잘못되어 그 개념과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모든 간섭을 없애고 자유를 줄 테니 알아서 마음껏 하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할 수 있는 조건이 다른데 알아서 하라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쪽은 무장을 단단히 하고 나서는데 다른 쪽은 맨 손으로 알아서 싸우라거나 헤비급 선수와 라이트급 선수를 구분 없이 섞어 놓고 알아서 싸우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괴롭힘이자 억압이 되어 버린다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기능을 통해 경쟁의 공정성을 관리한다고 하지만 그 때의 관리는 경쟁 활동의 공정성을 관리하는 것이지 경쟁의 전제조건을 관리하지는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개인과 국가의 편차나 특수한 조건을 무시하며 인권, 생존권, 주권 등을 초월하려는 개념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또는 사회적 자유가 아니라는 개념적 비판을 받게 된다.

둘째, 지나친 경쟁주의로 치달으며 약육강식의 냉혹한 질서가 자리 잡아서 다수의 약자들이 소외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시장으로 내몰며 자유롭게 벌어먹으라고 하므로 경쟁이 치열해 질 수 밖에 없는데 경쟁의 조건이 처음부터 불공평하니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빈익빈부익부 현상을 낳으며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또는 세계화를 20:80의 질서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의 혜택 받는 사람들을 위해 80%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희생시킨다는 이야기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자본가들의 자유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셋째, 자본의 욕망이 끝없이 확대되어 불필요한 영역들까지 시장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인간의 모든 삶에서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시장논리가 만병통치약처럼 통하다보니 문화, 교육, 예술 등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영역들도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며 정책으로 옮기기 때문에 삶의 체계를 건조하게 만들며 인류문화를 황폐화시킨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가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 한편 없는 사람에게는 거부감을 갖게 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내막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서민이나 그들 편에서 애쓰는 진보적 활동가들 중에서도 화려한 자본의 담론에 이끌려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시장'과 '경쟁'의 논리를 새로운 희망처럼 추종하는 경향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그 개념과 논리상 자본의 자유와 기득권을 지키거나 확대하고자 하는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여서 사회적 자유와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는 진보주의자들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데, 정부 정책이나 기업운영 등이 신자유주의를 채택하는 일이 원체 많다보니 그것을 비판하는 일도 너무 많아지고 일상화하다보니 때로는 ‘비판을 위한 비판’ 또는 ‘개혁을 반대하기 위한 비판’으로 오해 받는 경우가 생긴다. 원래 불평등과 소외의 모순이 존재하는 현실을 변혁하려는 목표가 강한 것은 진보주의 쪽인데 자본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잘못된 개혁 방향을 비판하다보니 얼핏 보기에는 보수주의가 오히려 더 개혁적으로 느껴지고 진보주의가 더 수구적으로 느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결국 정책을 주도하는 주체가 어떤 흐름에 서서 개혁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진다. 요즘 보-혁 전도의 아이러니가 자주 나타나는 것은 정부의 정책들이 대개 진보성을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말하자면 서민을 위한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오히려 가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정책이 더 많이 표출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사족을 달자면, 대안 없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결국 경쟁을 피하며 보신주의에 빠지거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비난을 받기 쉽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진보적 활동가들이 깊이 고민하며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신자유주의 비판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부조리하게 조장되는 경쟁의 모순을 뛰어넘어 창조적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자는 더 본질적인 목표가 있다. 그러나 그 목표가 구체적인 담론과 기획물로서 제시되지 못하기 때문에 비판의 충정이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가끔은 일단 다가오는 변화에 대한 거부감을 '비판'이라는 형식으로 표출하는 경우도 없지 않으며, 또한 그런 경우가 아니고 진정한 비판일지라도 이제는 모순을 파헤치거나 혁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며 새로운 변혁을 이루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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