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06'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8.06.06 나의 친애하는 적 - 허지웅 2016 문학동네 03810



작가의 말

주변 세계를 친애하는 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확실히 도움이 되어 주었습니다. 6


좋은 빛들이 있다. .. 느닷없이 알게 된다. 그 빛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 또한 그 빛을 그저 나를 밝히기 위해 이용했다는 걸 말이다. 그러고 나면 그 빛이 슬퍼 보인다. 슬프게, 보인다. 15


천장이 슬프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하늘이 내려앉아 쥐어짰고, 나는 텅 비고 말았다. 19


'현실주의자가 되자. 하지만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68혁명 당시 체 게바라가 한 말이라고 대중에 알려진 글귀이지만 대개의 유명한 펀치라인이 그러하듯이 실제 화자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

이 생각은 내게 참 소중했다. 내가 만난 많은 어른들은 정확히 그와 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으로 몽상가처럼 세상에 관한 따뜻하고 근사한 말을 늘어놓되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단 한 치의 손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뜨거움으로 그를 믿어 왔던 주변의 많은 이들을 집어삼켰다. 21


나는 불행하게도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나보지 못했다. 그것이 사회 일반의 반영인지 혹은 그저 나의 박복함의 결과인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최악의 어른이란 늘 갱신되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25


타인의 정상성을 의심하고 억지로 분류할 때 공동체의 정상성은 훼손된다. 반대로 타인의 정상성을 의심하고나 분류하지 않고 그럴 수 있는 삶의 일부로 받아들였을 때 공동체의 성상성은 굳건해진다. 32


내가 경험해보지 않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곧 비정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기 때문이다. 33


청소보다 중요한 건 정리다. .. 정리가 직관적으로 잘되어 있으면 매일 하는 청소에 드는 시간은 십 분이면 충분하다. 정리가 되어 있는 집은 청소를하루 이틀 하지 않아도 티가 나지 않는다. 정리의 묘는 얼마나 잘 감추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버리느냐에 달려 있다. 49


부동산 취득 자격먼허 같은 걸 만들어서 시험장에서 혼자 청소할 수 있는 최대 평수를 측정해 딸 수 있게 하면 좋겠다. 사람의 욕심을 다스릴 수 있는 가장 기능적인 목적의 면허가 아닌가. 52


나는 늘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이해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115


좋은 다큐는 반드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진실에 관해 스스로 한 번 더 의심한다. 그리고 그런 의심의 사유를 통해 관객이 영화를 찬양하게 만드는 대신 관객이 영화에 당황하게 만든다. 그런 종류의 당황은 필연적으로 관객의 고민과 깊은 울림을 이끌어 낸다. 229


누구나 그럴듯한 상황과 환경이 주어지면 사랑을, 혈연을, 우정을, 금전을, 위계를 빌미로 악을 행사한다. 그 자신만이 그것을 악으로 인식하지 않고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 혹은 선의로 인식할 뿐이다. 악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자행되지 않는다. 261


문제는 가해자를 승자인 채로 피해자를 패자인 채로 남겨두고 사회 통합이라는 알량한 거짓말을 들어 침묵하고 지워버리는 태도에 있다.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이 공히 주장하는 건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짊어진 사회는 반드시 곪아 부패한다는 것이다. 294


가치관이 충돌하는 사안에서 균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관계를 두고는 균형을 찾을 이유가 없다. 확실한 사실관계를 두고도 무게중심을 찾는다며 진영논리를 끄집어내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라. 그들은 용돈을 받았다. 298


대중매체는 현실을 조명하는 데 게으르다. 혹은 겁을 먹는다. 시청자들이 스크린에서까지 현실을 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317

Posted by W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