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그리스인 조르바>(1946)를 읽고 있노라면 통풍이 안 되는 답답한 병실에 있다가 싱그러운 5월 훈풍이 부는 시골 들판으로 뛰쳐나온 기분이다. .. 카잔차키스의 작중 인물들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신선한 해방감과 희열을 맛본다. 7


1 크레타섬의 이단아 니코스 카잔차키스

카잔차키스는 1922년 8월에 첫 번째 아내 갈라테아 알렉시우에게 보낸 편지에서 “.. 내 내면에서는 두려운 투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라고 밝힌다. 그가 여행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내적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카잔차키스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나는 그만 죽을 것만 같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 카잔차키스 사후에 철간된 <그리스인에게 보내는 보고서>, 거기서 카잔차키스는 여행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이렇게 회고하였다.
‘평생 나의 가장 큰 욕망 중 하나는 여행하는 것 - 미지의 나라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는 것, 미지의 바다에서 수영핳고,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새로운 땅과 바다와 사람들과 여러 관념을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관찰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천천히 바라보고 나서 두 눈을 감고 그 풍요로움을 기쁨에 따라 조용히 또는 격렬하게 내면에 저장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마침내 시간은 그것들을 촘촘한 체로 걸러 모든 희로애락에서 에센스를 얻어 낸다.’
카잔차키스에게 여행은 단순히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낯선 땅을 관찰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그는 그저 수동적으로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능동적으로 여행했다. “완벽한 여행자라면 하나같이 그가 여행하는 나라를 만들어 낸다.” 라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능동적으로 경험한 것을 촘촘한 체로 걸러 그 정수만을 소재로 삼아 작품을 썼다. 그래서 독자들은 그의 작품에서 인공 감미료가 아니라 설탕이나 당밀 같은 천연의 감칠맛을 느끼게 된다. 11-12

젊었을 적부터 선원 생활로 잔뼈가 굵은 멜빌에게 드넓은 바다는 그의 말대로 “하버드 대학이요 예일 대학”이었다.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던 20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 어니스트 헤밍웨이에게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교육장이었다. 카잔차키스의 교육장은 여행이었다. 그에게 여행은 단순히 지리적 여저잉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지적 모험이고 영적 순례였다. 그리고 그는 여행에서 보고 느낀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썼다. 그의 작품에서 향수 냄새보다는 흙냄새와 땀 냄새가 물신 풍기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18



2 <그리스인 조르바>의 구상과 집필 그리고 출간

화자가 조르바에게 배우는 소중한 인생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한마디로 ‘조르바주의(Zorbatism)’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조르바주의란 조르바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가리킨다. 화자는 조르바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조르바의 학교에 입학해 위대하고 진실한 문자를 새로 배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된다면 내 삶은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문자’로 번역했지만 원문에는 ‘알파벳’으로 되어 있다. 아주 초보적인 것부터 차근차근 배워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화자가 ‘조르바학교’에서 교육을 받되 교사의 말과 행동이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취사선택하여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거부할 것은 단호하게 거부한다. 작품의 결말에 이르러 화자가 자신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완전히 버리고 조르바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전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제 우린 헤어지는 건가요?” 그가 중얼거렸다. “어디로 갈 작정이오, 보스 양반?”
“외국으로 나갈까 해요. 내 배 속에 들어 있는 염소라는 놈이 아직 종이를 더 씹어 먹어야 성이 차겠다네요.”
“보스, 그렇게 일렀는데도 아직 못 알아들었소?”
“많은 걸 배웠어요. 아저씨가 체리를 잔뜩 먹어 그렇게 했듯이 난 책으로 그렇게 할 참이에요. 종이 나부랭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서 확 토해 버리고 나면 구원을 받게 될 테지요.”
화자는 조르바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고 고백하면서 고맙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신이 갈 길은 조르바가 갈 길과는 다르다고 분명히 말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헤어지면서 가야할 길이 서로 다르다는 뜻보다는 인생행로, 즉 인생관이 서로 다르다는 뜻이다. 화자가 “배 속에 들어 있는 염소라는 놈이 아직 종이를 더 씹어 먹어야 성이 차겟다네요.”라고 말하는 것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적인 삶을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이다. 화자가 인생관을 완전히 바꿀 수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조르바가 잘 알고 있다. 헤어지기 직전 화자가 자신이 자유로운 몸이라고 말하자 조르바는 곧바로 “아뇨, 보스는 자유롭지 않아요.”라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꾸한다. 그러면서 조르바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의 줄보다 좀 더 길어요. ……. 당신은 마음대로 오고 가니 자유롭다고 생각할지 모르죠. 하지만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라고 지적한다. 66-67

조르바는 원기 왕성하고 호색적이며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인다. 또한 비도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일을 서슴지 않고 신성 모독에 가까울 만큼 반기독교적인 말과 행동을 일삼는다. 지식인이요 작가인 화자는 조르바의 이러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그러한 성격을 닮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다. 그러면서도 화자는 조르바를 만나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를 맛보며 희열을 느낀다.
화자가 조르바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배운다기보다는 배우고 싶은 것만을 선별적으로 배운다고 말하는 쪽이 옳다. 작품 첫머리에서 화자는 단테의 <신곡>이 자신의 “길동무”라고 밝힌다. 그의 또 다른 길동무는 그동안 그를 사로잡고 있던 붓다였다. 그러나 조르바와 생활하는 동안 화자는 단테와 붓다를 멀리한 ㅊ채 조금씩 조르바의 삶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화자는 크레타섬 해변에서 조르바와 함께 지낸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파산했을지언정 자기 정신의 갱도에서는 삶의 지혜라는 값진 광석을 챙취했기 때문이다. 68-69

화자가 조르바에게서 발견하는 값진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를 붙잡아라(Seize the day.)’ 로 흔히 번역되는 이 구절은 서양의 해시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고대 로바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송가] 속 한 구절, “현재를 붙잡아라. 가급적 내일이라는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라는 시구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 구절에 쓰인 ‘카르페’라는 라틴어 동사는 사실 ‘붙잡다’보다는 ‘즐기다’로 옮기는 쪽이 더 어울린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전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의 현재 삶에 충실할 것을 부르짖는 것이다. 호라티우스가 에피쿠로스학파에 속한 시인이기 때문에 이 구절은 흔히 이 학파와 연계하여 이해해 왔다. 이 구절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맡은 한 고등학교 교사의 대사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학생들에게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소년들이여. 삶을 비상(飛翔)하게 하라.”라고 말했다. 이 대사는 아직도 할리우드 영화의 명대사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나 카잔차키스는 이 ‘카르페 디엠’의 생활 태도를 에피쿠로스보다는 프리드리히 니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평생 니체에 심취한 카잔차키스는 니체의 핵심적 사상 중 하나인 영원 회귀에 사상은 역설적으로 최선을 다하여 현재의 순간을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과 맞닿아 있다. 신이 사망하여 인간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런 무의미한 순간들이 영원히 반복된다면 인간은 현세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르바는 지나간 가거의 삶도, 다가올. 미래의 삶도 믿지 않고 오직 현재의 삶만을 굳게 믿는다. 적어도 현재의 삶에 충실하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그는 카르페 디엠의 인생관을 받아들이는 호라티우스의 애제자요 에피쿠로스학파의 멤버라고 할 만하다. 69-70

‘조르바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세상은 다시 숫처녀처럼 순결해지는 것 같았다. 광채를 잃어버렷던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손으로 처음 빚어졌을 때처럼 그 찬란한 빛을 되찾았다. 물도, 여자도, 별도, 빵도 신비스럽고 원시적인 근원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신성한 바퀴에 회전의 탄력이 붙었다.’
이 인용문을 읽고 있노라면 조르바의 현세주의가 단순히 관능적인 감각주의나 쾌락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삼라만상을 신선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그만큼 현세의 삶에 가치를 두고 그것을 만끽한다는 것을 뜻한다. ..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일수록 주위에 있는 단순하고 소박한 것에서 기적을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그런데도 조르바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한다. 74



3 프리드리히 니체와 앙리 베르그송 그리고 동양 사상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프리드리히 니체에게서 받은 영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하느님에 관한 견해, 둘째, 아모르 파티 (amor fati), 셋째,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관한 이론, 니체의 이 세 가지 이론은 카잔차키스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집필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크나큰 영향을 끼쳤다. 카잔차키스 전문가 안드레아스 풀라키다스는 “만약 카잔차키스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잘 알고 있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리스인 조르바>를 쓸 수 없었을지 모른다.”라고까지 주장하였다. 78-79

초인을 뜻하는 ‘위버멘쉬’란 단어는 그대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여 그것을 ‘뛰어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니체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에게 확신은 의심보다 훨씬 더 위험스럽다. 81

프리드리히 니체가 부르짖은 신의 ㅈㄱ음은 자연스럽게 ‘아모르 파티’ 개념으로 이어진다. .. “네 운명을 사랑하라!” 83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의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인다면 너의 삶은 오늘 이 순간부터 새로운 가능성의 바다로 열리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내 공식은 아모르 파티’라고.” 84

니체는 <즐거운 학문>에서 인간이 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세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였다. 세 비유란 낙타, 사자, 어린아이가 겪는 세 유형의 변신 과정을 말한다. 첫 단계인 낙타는 등에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견디는 수동적인 태도다. 사자는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는 두 번째 단계로, 자유정신을 상징한다. 마지막 단계인 어린아이 상태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태도다. 어린아이는 주어진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운명론적 모습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츼미를 찾아 초인처럼 끊임없는 변신을 꾀하는 단계다. 이렇게 무한한 긍정 정신을 상징하는 세 번째 단계가 바로 니체가 말하는 ‘아모르 파티’다. 84

조르바는 자신의 운명에 온몸으로 부딪치고 온몸으로 껴안으려는 능동적 인물이다. 니체의 말대로 조르바는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그에게 삶은 언제나 ‘새로운 가능성의 바다’로 활짝 열려 있다. 84-85

조르바는 언어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기 힘들 때 춤으로 표현하곤 한다. 그에게 춤을 단순히 흥에 겨워 몸을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감정과 생각을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편리한 도구이자 매체다. 86

프리드리히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삶을 움직이고 예술을 이끄는 두 가지 원칙으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들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아폴론은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과 빛의 신이다. 아폴론은 빛뿐만 아니라 형식, 질서, 조화, 균형, 절제, 완전성, 이성 등을 상징한다. 87

아폴론적인 것을 대표하는 예술은 조형 예술, 특히 조각이다.
그러나 니체는 인간이 아폴론적인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 지적하였다. 아폴론적인 것은 어떤 것을 다른 것과 구별 짓는 개별화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 인간에게는 도취와 망각이 필요할 때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술을 마시고 잔치를 벌여 흥을 돋우기도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디오니소스는 주신(酒神), 즉 포도주의 신이다. 포도주의 신일 뿐만 아니라 광기, 축제, 황홀경, 풍요, 야생, 본능, 자연, 다산 등을 상징하는 신이기도 하다. 87

니체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한 이상적 예술 충동을 ‘쿤스트리에벤(Kunsttrieben)’이라고 불렀다. 88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아폴론적인 인물과 디오니소스적인 인물을 뚜렷이 대비시킨다. 이 소설의 1인칭 화자인 ‘나’는 전자를 상징하고, 조르바는 후자를 상징한다. 88

조르바의 삶은 음식과 포도주, 산투리와 춤을 떠나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디오니소스적 삶이다. 92

베르그송은 생명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숙하는 힘을 ‘엘랑 비탈(elan vital)’이라고 불렀다. 그는 <창조적 진화>에서 “모든 생명예와 인간의 삶은 진화한다. 이 진화는 내적 충동력인 엘랑 비탈, 곧 생명의 비약으로 이루어지는 창조적 진화다.”라고 주장하였다. ‘약동하는 생명’을 뜻한는 엘랑 비탈은 진화를 추진하는 근본적인 힘을 말한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세계의 본질은 바로 생명의 창조적 진화에 있다. 그는 이 개념을 통해 그동안 수동적인 위치에 놓여 있던 생명체의 위상을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위치로 바꾸어 놓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94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주인공 알렉시스 조르바는 여러모로 베르그송이 말하는 ‘엘랑 비탈’의 정수이자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조르바는 아무리 큰 시련과 고통이 닥쳐와도 좀처럼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창조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인물이다. 95

화자에게 조르바는 책을 무더기로 쌓아 놓고 불을 질러 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화자는 바보가 아니니 그러고 나면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조르바의 관점에서 보면남의 생각과 사상을 기록해 놓은 책이야말로 개인의 창조적 진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기 때문이다. 95-96

카잔차키스는 일찍이 1914년에 칯ㄴ구요 시인인 안젤로스 시켈리아노스와 함께 아토스산에 산재한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이미 폐쇄적인 종교가 사회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치는지 깨달았다. 작가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이 경험을 살려 닫힌 종교의 폐해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조르바는 화자에게 그동안 자신이 겪은 일들을 들려주면서 아토스산의 수도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준다. 조르바는 흔히 ‘성산(聖山)’ 또는 ‘거룩한 산’으로 일컫는 아토스산에는 무려 스무 개가 넘는 수도원이 있고, 그 수도원에는 “엉덩이에 뒤룩뒤룩 살이 찐 기생충 같은 수도사들”이 살고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속에서 벗어나 정신 수양과 영혼의 고양에 힘써야 할 수도승들이 기생충처럼 뒤룩뒤룩 살이 쪘다는 것은 그만큼 타락했다는 의미다. 99

“왜? 우린 서로 동의하지 않았던가? 벌써 몇 해째 이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보지 않았냐 말이야? 자네가 사랑해 마지않는 일본인들이 그걸 뭐라 부르지? 후도신! 평정심, 냉정, 가면은 방긋 웃고 있지만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얼굴 표정 말이야. 가면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 그건 각자의 몱이지.”
‘후도신’이란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그냥 글자 그대로 ‘부동심’의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일본 문화에서는 좀 더 특별한 의미로 사용한다. 평정심에 가까운 이 개념은 어떤 것에도 흔들리거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안흔 평온한 정신 상태를 가리킬 수도 있고, 온갖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유연한 정신 상태를 가리킬 수도 있다. 103-104

카잔차키스가 말하는 후도신은 여러모로 그리스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아타락시아(ataraxia)’ 개념과 비슷하다. 이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피론이 처음 사용한 뒤 그 뒤를 이어 에피쿠로스가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피론은 모든 판단을 보류하여 무심한 마음의 평정을 얻어야 한다는 이론의 바탕 위에 회의주의 철학의 집을 세웠다. 에피쿠로스는 흔히 알려진 대로 쾌락주의나 향락주의를 설파한 철학이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순히 쾌락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행복하고 평온한 삶을 얻는 데 있었다. 그가 말하는 행복하고 펴온한 삶은 평정, 평화, 무통( 無痛), 공포로부터의 자유에서 오는 것이었다. 104-105



4 <그리스인 조르바>와 실존주의

카잔차키스는 대부분의 실존주의자들처럼 인간의 삶이 오직 한 번밖에는 살 수 없는 일회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첨예하게 깨닫는다. 신분이 높고 부유한 사람이든 신분이 낮고 가난한 사람이든 인간은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오직 한 번 밖에’ 살지 못한다. .. 조르바는 화자에게 “내가 죽으면 모든 것이 사라진다”라고 잘라 말한다. .. 내세나 피안을 전혀 믿지 않는 태도다. 125

조르바는 자리에 앉기만 하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생각하는 화자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조르바는 그에게 “행동! 행동! 그밖에 다른 구원 따위는 없어. 태초에 행동이 있었노라, 그리고 종말에도 역시.”라고 일갈한다. 134

니체가 <차루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언급하는 새를 짚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니체는 “사람은 대지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라고 밝힌다. .. 화자는 자신이 가벼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새가 된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양심 대신에 창백한 지식인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새가 된 것이다. 134-135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주인과 같소. 계속 계산하면서 장부에 이렇게 씁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고, 이 액수는 손실이고, 저 액수는 이익이다.’ 똑똑한 머리는 뛰어난 지배인과 같습니다.”라고 말한다. .. 이성과 합리성이 지난 2000여 년동안 쌓아 온 문명의 성을 하루아침에 깡그리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그래서 조르바는 차가운 머미로 사물을 바라보는 대신 뱀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맞부딪쳐 이해하려고 애쓴다. 135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인간이 의미있게 살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나 사회적 규범을 따르지 말고 오직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누가 언제 만들어 놓았는지도 잘 모르는 사회적 규범에 얽매여 노예처럼 살아간다. .. 하이데거는 이러한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를 만들어 낸 사람들을 ‘그들(Das Mann)’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정체성을 지닌 특정한 개인들이 아니라 익명의 불특정 다수다.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의 본질적 삶에서 벗어난 일조으이 허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그들’이 있었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들’이 있다. 특정한 개인은 아니지만 ‘그들’은 우리의 삶에 직접 간접으로 큰 영향을 끼친다.
사르트르는 불특정 다수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 규범에 얽매여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삶을 ‘중고품 인생’이라고 불렀다. 이러한 사람들은 남이 쓰다 버린 물건을 주워다가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 기존의 질서나 사회적 규범에 맹목적으로 따르다 보면 개인은 자칫 자신의 정체성과 자유를 상실하게 마련이다. 이러한 질서나 규범은 법ㅊ처럼 강합적인 외부의 힘에 이끌려 강제로 지텨야 할 때도 있지만, 도덕이나 윤리처럼 개인이 어렸을 적부터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한 나머지 인식하지도 못한 채 기계적으로 따를 때도 있다. 매 양들이 목자의 지팡이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다. 136-137

실존주의자들은 참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인의 정체성과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지적한다. 138

실존주의는 크게 유신론적 실존주의와 무신론적 실존주의로 나뉜다. 쇠렌 키르케고르는 전자를 대표하는 철학자인 반면, 장폴 사르트와 알베르 카뮈는 후자를 대표하는 찰학자들이다. 키르케고르는 인간이 비극적 인간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초월적 존재자인 신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전통적인 신을 부정하는 사르트르와 카뮈는 신이 없는 우주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했다. 실존주의라고 하면 유신론적 실존주의보다는 무신론적 실존주의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146

알베르 카뮈는 언젠가 “내세에 희망을 두는 것은 이 아름다운 현세를 배반하는 행위”라고 말한 적이 있다. 조르바도 카뮈처럼 기약 없는 내세에 소망을 걸기보다는 아름다운 현세의 삶에 훨씬 더 무게를 싣는다. 조르바의 세계에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거나 비록 존재한다 해도 이렇다 할 힘을 행세하지 못한다. 아니,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하느님과 악마가 함께 존재한다고 말하는 쪽이 더 옳을 지도 모른다. 147

조르바는 여성이나 섹스에 대한 태도에서도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경향을 보여준다. 153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지난 몇 세기 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기독교의 가치관과 신념을 반성하고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 것이다. 이 작품이 뭇 독자에게 그토록 신선한 충격을 주는 까닭은 작가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용기 있게 그 대안을 찾기 때문이다. 화자의 영적 지도자라고 할 알렉시스 조르바는 작가가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자유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
카잔차키스는 처음에는 불교에 심취에 있던 화자가 조르바와 함게 생활하면서 조금씩 불교의 정적주의나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예술가로 변모하는 과정에 무게를 싣는다. 154



5 녹색 소설로서의 <그리스인 조르바>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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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내 삶의 투쟁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굳이 내 영혼 깊숙이 흔적을 남긴 사람들을 밝히자면 호메로스, 베르그송, 니체, 그리고 조르바다.
호메로스는 내게는 아주 밝게 빛나는 평화로운 눈동자였다. 그는 마치 태양처럼 모든 것을 구원의 빛으로 비춰주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 괴롭고 어려웠던 철학적 문제들에서부터 나를 구원해준 사람이다. 니체는 나를 새로운 고뇌로 풍요롭게 해주었고 내 불행과 아픔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조르바는 내게 삶을 사랑하는 법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만일 내게 인도인들이 “구루”라고 하고, 성산(聖山) 아기온오로스(그리스 북부 할키디키 지방에 있는 반도로, 수도승들이 자치권을 행사하는 곳이어서 여자나 동물 암컷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의 수도사들이 “예론다스(‘영감님’이라는 뜻)”라고 부르는 영적(靈的) 스승을 이 세상에서 꼭 한 사람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조르바를 선택할 것이다.
조르바는 먹물들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높은 데서 먹잇감을 발견하여 낚아채는 원시인의 시력과, 매일 새벽마다 새로이 떠오르는 창조성, 그리고 매순간 끊임없이 바람, 바다, 불꽃, 여자, 빵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영원한 처녀성을 부여하는 순진무구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는 확신에 찬 손과, 신선함으로 가득한 마음, 마치 내면에 자신의 영혼보다 더 높은 힘을 가지고 있는 듯, 자신의 영혼을 놀려대는 사나이다운 멋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창자보다 더 깊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아니 조르바의 나이 먹은 가슴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터져 나오는, 구원인 듯한, 거칠고 호쾌하게 껄껄대는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겁에 질린 불쌍한 인간들이 마음 놓고 편하게 살기 위해 주변에 세워놓은 윤리, 종교, 조국과 같은 모든 장애물을 한꺼번에 깨뜨려서 단번에 무너뜨릴 수 있는, 그리고 실제로 무너뜨리는 웃음을 가지고 있었다.  7-8

나는 감히 용기를 내지 못했다. 나는 한밤중에 욕정의 으르렁 소리를 내며 춤을 추면서, 나에게 도덕과 관습이라는 탈을 벗어던지고 먼 여행을 함께하자고 울부짖는 조르바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나는 벌벌 떨면서 움쩍달싹도 하지 못했다.
나는 많은 순간, 최고의 미친 짓을, 삶의 본질을 “행하라”고 소리치는 내 영혼을 꼭 붙잡고 그렇게 하지 못한 내 삶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조르바 앞에 있는 동안 나는 내 영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11




인간의 영혼은 진흙덩어리다. 모호하고 촌스러운 욕망들로 가득하고, 길들여지지도, 다듬어지지도 않고, 아무것도 분명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으며,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만약 예측할 수 있었더라면 우리들의 이 헤어짐도 전혀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24-25

“내가 스무 살 때였어요. 올림포스산 아래의 어떤 마을 축제에 갔다가 생전 처음으로 산투리 소리를 듣게 됐지요. ‘왜 그러는 거냐?’ 아버지께서 - 하느님께서 그의 영혼을 용서해주시길! - 내게 물었죠. ‘저는 산투리가 배우고 싶어요.’ ‘뭐라고? 부끄럽지도 않으냐? 네가 집시냐? 악기를 연주하게?’ ‘저는 산투리를 배우고 싶어요……’ 그때 내겐 기회가 되면 결혼하려고 모아둔 비자금이 있었어요. 유치하고 미친 짓이었죠. 혈기 왕성했던 나는 엉큼하세도 결혼을 하려고 했지요.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몽땅 다 주고 산투리 하나를 샀지요. 그게 바로 이거예요. 나는 이걸 가지고 테살로니카로 가서 ‘레쳅-에펜디’라는 터키인인 산투리 명인을 만났죠. 나는 그의 발아래 엎드렸죠. ‘뭔 원하는 거냐? 그리스 놈아.’ 그가 물었죠. ‘저는 산투리를 배우고 싶습니다.’ ‘음,  그런데 왜 내 발 앞에 엎드린 거냐?’ ‘저는 수업료를 낼 돈이 없습니다.’ ‘너는 산투리에 대한 열정이 있느냐?’ ‘네, 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나도 수업료 따위는 받지 않겠다.’ 나는 일 년 동안 그의 곁에서 산투리를 배웠죠.  32

“나도 사람이오. .. 결혼했었죠. 악수를 둔 거죠. 가장이 되고 가정을 꾸렸죠. 애도 낳고요. 고문이었죠. 하지만 산투리가 있으면 됐죠, 뭐.”  33

“빌어먹을 정치!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르는군.” 그가 경멸조로 중얼거렸다.
“조르바, 빌어먹을 정치라니 무슨 뜻이오?”
“보쇼, 왕이니 민주주의니, 국회의원이니, 이 모든 얄팍한 속임수들을!”
조르바의 머릿속에서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이 이미 낡고 철 지난 고물들이었다. 그에게는 전보나 증기선과 철도, 도덕과 조국, 종교가 모두 때 지난 고루한 체제였다. 그의 영혼은 이 시대보다 훨씬 빨리 앞질러 가고 있었다. 39-40

늙어서 이빨이 다 빠진 뒤에나 찾아오는 평정심을 갖게 된 다음에야 올바르고 온전한 생각들을 하게 마련이죠.  47

마을을 지나고 있었는데 아흔 살은 먹은 할아버지가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라고요.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세요?’ 내가 물었죠. 그러자 그 허리가 꼬부라진 할아버지가 나를 보면서 말했죠. ‘얘야, 나는 내가 죽지 않을 것처럼 행동한단다.’ 그래서 내가 대답했죠. ‘저는요, 매 순간 죽음을 생ㅇ각하면서 행동하죠.’ 우리 둘 가운데 누가 맞는거 같소, 대장?’
..
죽음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과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어쩌면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르바가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을 미처 몰랐다.  70

“.. 한 번에 한 가지씩만 생각하자고요. 밥이 앞에 있으면 밥에 정신을 쏟고, 내일 우리 앞에 우리들의 갈탄이 있을 땐 갈탄에 정신을 쏟읍시다. 일을 어정쩡하게 하지 맙시다. 알겠죠?”  70

“대장, 어제 우리가 못된 짓을 저질렀어요. 못된 짓을 했다고요! 대장도 웃고 나도 웃고, 그리고 불쌍한 여자는 우리를 바라봤죠! 또 대장이 그렇게 그 여자를 천 살 먹은 호호할멈 대하듯 눈길도 안 주고 떠난 건 창피한 일이에요. 그건 예의가 아니죠, 대장, 인간은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안 되죠. 이런 말 하는 걸 이해해주쇼. 그녀도 약해빠진, 불평꾼 여자란 말이오. 나라도 남아 그녀를 위로했기에 망정이죠.”
“조르바,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웃으며 말했다. “정말 모든 여자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은 없다고 믿는 거요?”
“대장, 다른 생각은 절대 없죠! 본 것도 많고 겪은 일도 많고 해본 것도 많고, 그래서 말하자면 배운 것도 많은 이 사람 말 좀 들어보슈. 여자들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란 없다고요. 분명히 말씀드리죠. 여자들은 병약한 존재고 불평꾼이란 말이오. 만일 사랑한다고, 원한다고 말하지 않으면 당장 울음보를 터뜨려요. 전혀 원하지 않거나 심지어 질색인 남자라도 말이오. 여자가 ‘싫어요’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건 전혀 별개의 문제예요.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여자들이란 항상 자기를 봐주고 탐내는 남자를 바란단 말이오. 그 불쌍한 것들은 그걸 원해요. 그러니 그것들에게 자비를 베푸쇼!”  89-90

조르바는 인부들을 다룰 줄 알고 책임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95

내 외할아버지는 크레타 시골에 살았는데 매일 저녁이면 등잔불을 들고 마을을 돌며 혹시 낯선 외지인이 있나 살폈다. 그런 사람을 찾으면 집으로 데려와서 신나게 먹고 마시게 대접하고는, 길고 납작한 의자에 앉아 긴 곰방대를 피워 물었다. 그러고는 손님에게 “자, 이제는 밥값을 치를 때가 됐소.” 하고 말하고는 명령조로 덧붙였다. “뭐든 말해봐요!” “무스토요르기스 할아버지, 대체 무슨 말을 하라는 말씀입니까?” “당신이 누구고, 어디서 왔고, 어떤 나라를 돌아다니며 당신 눈으로 어떤 것들을 봤는지 모두 다 얘기하슈. 자, 말해보슈.”
그러면 손님은 사실과 꾸며낸 이야기를 뒤섞어서 이야기를 시작했고 외할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긴 의자에 편안하게 앉은 채로 곰방대를 빨며 그 손님과 함께 여행을 했다. 그리고 그 손님의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으니 가지 마시고, 내일 하루 더 머무슈!”
외할아버지는 한 번도 고향 마을을 떠나본 적이 없다. 이라클리온(크레타의 주도)에도 레팀노(크레타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에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고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왜 그런 곳엘 가야 해? 레팀노 사람이나 이라클리온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우리 집에 와서 머물면 돼지. 내가 외지로 나갈 필요가 어딨어?”  96-97

외할아버지가 등잔불을 밝히고 지나가는 객을 찾아 모셨듯이 나 역시 한 손님을 모셔 떠나가지 못하게 붙잡고 있다. 한 끼의 식사 값보다는 훨씬 비싸게 들기는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매일 저녁 나는 조르바가 일을 끝내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오면 내 맞은편에 앉혀놓고 함께 식사를 하고는 돈을 치를 시간이 되면 그에게 말한다. “말해봐요!” 그러고는 파이프를 피워 물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 손님은 지구 곳곳을 돌아다녔고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탐구했기에 나는 조금도 지루한 줄 모르고 계속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르바, 계속하세요, 계속 얘기해요!”
그러면 마케도니아 전체가 내 앞에서 열리면서 조르바와 나 사이의 좁은 공간에 산과 숲과 강 들, 게릴라들과 부지런한 남성같은 여장부들과 강인하고도 무뚝뚝한 남자들을, 또 때로는 성산아기온오로스의 스물한 개의 수도원과 조선소들과 튼실한 엉덩어를 가진 게으름뱅이 수도사들을 펼쳐 놓았다. 성산 아기온오로스의 수도사 이야기를 끝낼 때면 조르바는 옷깃을 세워 몸을 세차게 흔들고 큰 웃음을 터뜨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께서 대장을 당나귀 엉덩이와 수도사의 앞에 달린 물건으로부터 보살펴 주시기를……”
매일 밤 조르바가 나를 그리스로, 불가리아로,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의 그리스 이름)로 데리고 가면, 나는 그 장소들을 눈을 감은 채 보았다. 그는 수많은 수난을 겪은 혼란스러운 발칸 반도 지역을 돌아다녔고, 그의 조그만 눈은 마치 매처럼 재빠르게 모든 것을 이 잡듯 다 보았다. 그는 자주 논을 동그랗게 떴는데, 그러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주의하지 않고 보아 넘기는 것들이 그의 앞에서 엄청난 수수께끼로 되살아났다. 가령 그는 지나치는 여자를 보고 몸서리를 치며 멈춰 서서는 물었다. “이건 무슨 조화죠? 여자란 무얼까요? 어떻게 내 머리 꼭지를 돌게 만드는 거죠? 이건 또 뭡니까? 말 좀 해봐요.” 그는 어떤 때는 사람을, 어떤 때는 꽃이 핀 나무를, 또 어떤 때는 시원한 물이 담긴 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르바는 매일같이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 봤다.
한번은 그가 오두막집 밖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다가 몸을 돌려 놀란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대장, 이 붉은 액체는 또 뭡니까 말해봐요. 늙은 포도나무 줄기에서 새싹이 나면 시고 시시껄렁한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탵양이 이것들을 익히면 꿀처럼 달게 되고, 그러면 우리는 그걸 포도라고 부르죠. 그러 밟고 즙을 짜서 통에다 부으면 저 혼자 부글부글 끓어요. 10월이 되어 술 취한 성자 요르고스(11월 2일이 축일인 크레타의 성인. 다음 날인 11월 3일에는 새 포도주 통을 열어 모두에게 맛보게 한다)축일에 통을 열면 포도주가 나오죠! 이건 또 무슨 기적입니까? 그걸 마시면, 그 붉은 액체를 마시면 영혼이 대범해져서 천박한 것들이 더 이상 그 영혼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면 하느님한테 도전장을 내죠. 대장, 이게 뭡니까? 대답해봐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을 들으면 온 세상이 처녀성을 회복한다. 모든 일상의 것들, 빛바랬던 것들이 하느님의 손을 처음으로 벗어나던 때처럼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강과 바다도, 여자도, 별도, 빵도, 태초의 신비스러운 근원으로 되돌아가고, 하늘에서는 하느님의 수레바퀴가 원초적 힘을 되찾곤 했다.  97-100

어느 일요일, 풍성한 식탁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조르바를 믿고 나의 비밀 계획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조르바는 내 이야기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가끔 화가 나서 머리를 거세게 흔들기는 했지만 내 말을 참을성 있게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는 내 말 첫마디에 술이 확 깨고 정신이 번쩍 든 것 같았다. 내가 말을 끝내자 그가 신경질적으로 콧수염 두가닥을 뽑아 던지며 말했다.
“날 이해하쇼, 대장. 내가 보기에 대장 머리는 밀반죽인 듯해요. 나이가 몇이오?”
“서른 다섯잉요.”
“아, 그럼 영글긴 영 그른 것 같네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화가 나서 고집스럽게 말했다.
“당신은 인간을 믿지 않나요?”
“대장, 화내지 마쇼. 나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내가 인간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요. 그러면 아주 귀찮아지죠. 세상이 엉망이 되고 나는 궂은 일에 휘말려들 거예요, 대장.”
그러고는 입을 다물더니 모자를 벗고 머리를 미친 듯이 긁고는 콧수염을 뽑아버릴 듯 세차게 잡아당겼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참고 있는 듯했다. 곁눈질로 나를 몇 번 보던 조르바가 마침내 결심을 한 듯 입을 열었다.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이렇게 소리치면서 화를 내며 지팡이로 돌을 내려쳤다. “사나운 짐승이죠! 당신은 귀하게 자라서 그걸 몰라요. 하지만 내게 묻는다면 대답하죠. 짐승이에요! 인간들을 혹독하게 다루면 그들은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하지만, 친절하게 대하면 당신의 눈알을 빼가죠.
거리를 두셔야 해요. 대장! 사람들 기를 살려주지 마세요. 그들한테 우리는 모두 하나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러면 그들은 당장 대장의 권리를 짓밝고, 밥그릇을 빼앗고, 대장이 굶어 죽도록 만든단 말예요. 거리를 두시라고요. 대장! 난 대장이 잘되기만 바랄 뿐이에요.”
“그러면 당신은 아무것도 안 믿는단 말이오?” 내가 화가 나서 항의했다.
“네, 저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며 번이나 말해줘야 해요? 나는 아무것도, 아무도 안 믿어요. 오직 조르바만 믿어요. 조르바가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사람이라서가 아니에요. 절대요, 정말 절대로 더 낫지 않죠! 그놈도 짐승이에요. 하지만 내가 조르바를 믿는 까닭은 내가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놈이기 때문이죠. 나는 오직 그놈만을 잘 알 뿐, 다른 것들은 모두 헛것들이에요. 조르바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조르바의 귀로 듣고, 조르바의 위장으로 소화하죠. 다른 모든 것은 다시 강조하지만 헛것이에요. 내가 죽는 순간 모든 것들도 죽죠. 조르바의 세계 전체가 바닥으로 사라지죠!”
“참으로 이기적이네요!” 내가 냉소적으로 비꼬았다.
“그럼 어떡합니까, 대장? 세상이 그런데요. 먹은 대로 싸는 거죠. 나는 조르바고, 조르바답게 말할 뿐입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르바의 말들이 채찍처럼 내몸을 때렸다. 나는 이토록 강인하고 사람들을 그렇게 지겨워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싸우고 인생을 살아갈 기분을 계속 잃지 않는 그가 자랑스럽다.  103-105

진정한 인간은 이처럼 몇 가지 안 되는 물건만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다.  108

“엊그제 우리가 한 말을 기억하쇼? 민중을 계몽해서 눈뜨게 한다고요? ..
대장, 사람들을 좀 조용히 내버려두쇼. 그들이 그런 일에 눈뜨게 하지 말아요. 그들이 눈을 뜨면 보게 될게 뭐겠어요? 자신들의 불행과 처참함뿐이죠! 사람들이 눈이 먼 채 꿈을 꾸도록 내버려둬요!”
그가 잠깐 말을 멈추고는 생각에 잠겨 머리를 긁다가 말을 이었다.
“만약에 ….. 만약에 말이에요…..”
“뭐예요? 한번 들어봅시다.”
“만약에 그들이 눈을 떴을 때 대장이 보다 더 좋은 세상을 보여줄 수 있다면 말입니다…… 그럴 자신이 있나요?”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어떤 것들이 무너져 내리리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폐허 위에 어떤 것이 세워질지는 알지 못했다. ..
조르바는 나를 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물론, 보여줄 수 있죠.” 내가 고집을 피우며 대답했다.
“보여줄 수 있다고요? 그럼 한번 말해보슈.”
“당신한테는 얘기할 수 없어요. 아마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참, 그렇다면 보여줄 수 없는 거예요!” 조르바가 머리를 저으며 대꾸했다. “대장, 내가 뭘 잘못 먹어 바보가 된 줄 아쇼? 대장은 속은 거예요. 나 역시 아나그노스티스 영감과 마찬가지로 배운게 없는 무식쟁이지만 난 결코 그 정도로 바보는 아녜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 그 순진한 인간과 그의 평생 반려자인 순한 마누라가 이해하겠소? 이 세상의 모든 아나그노스티스 영감들과 그 마누라들이 어떻게 그걸 이해한단 말이오? 그네들이 새로운 세상을 볼 것 같소? 그냥 그들에게 이미 익숙하고 길들여진 세상을 그대로 놔두슈. 보다시피 지금까지 잘들 살아왔지 않소. 그냥 살 뿐 아니라 아주 잘살고 있고 자식에 손자들까지 잘 낳고 살아들 가지 않소. 하느님이 그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해도, 그들은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진저!’ 하며 아우성을 쳐대죠. 이 가엾은 자들은 거기에 만족해 안주하는 거예요. 그들을 내버려두고 입을 다무세요.”  116-118

‘이 사람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어서 머리가 타락하지 않았구나.’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많은 것을 보고 행하고 겪으면서 정신은 열리고, 마음은 넓어지고, 태초의 호기를 잃지 않았구나. 이 사람은 그의 고향 선배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우리가 풀지 못하는 모든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한칼에 풀어버리는 구나. 이 사람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땅에 뿌리박고 있으니 절대로 쓰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프리카의 원시 부족들은 뱀을 숭배한다. 왜냐하면 뱀은 온몸을 땅에 붙이고 기어 다니기에 대지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뱀은 배로, 꼬리로, 남근으로, 머리로 그 비밀들을 캐낸다. 조르바도 그렇다. 우리 지식인들은 공중에 떠 있는 바보 같은 새들일 뿐이다.’  118

6
“대장이 먹은 게 무언지 말해보슈.” 한번은 조르바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대장이 어떤 사람인지 얘기해주리다. 어떤 작자들은 먹고 똥과 잡동사니만 만들고, 다른 작자들은 일과 의욕을 만들고, 또 다른 사람들은, 내가 듣기로는, 하느님을 만든답디다. 인간이란 이 세 불 가운데 하나죠. 나는 말이오, 대장, 최악도 아니고 최고도 아니에요. 나는 중간 부류에 속하거든요. 내가 먹는 음식은 일과 의욕으로 바뀌어요. 그나마 다행이죠!”
이렇게 말하고는 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대장, 당신은 말이오, 아마도 먹은 음식으로 하느님을 만들려고 애쓰는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아 보깨고 있는 거 같소. 대장은 수탉이 당했던 일을 당하고 있는 거요.”
“수탉이 무슨 일을 당했는데요, 조르바?”
“수탉이 말요, 처음에는 수탉ㅊ처럼 제대로 의젓하게 걸었죠. 하니만 어느 날 하루, 겉멋이 잔뜩 들어서는 두루미처럼 위풍당당하게 걷겠다고 선언했죠. 그때부터 이 불쌍한 수탉은 자기 고유의 걸음걸이를 잃고는 균형 감각이 엉망이 돼서 깡충깡충 두 발로 뛰게 됐죠.”  125-126

“대장, 당신은 여자들한테서 뭘 기대하슈? 여자들은 어떤 놈이든 만나는 놈의 아이를 낳아주죠. 그리고 남자들에게선 뭘 기대하슈? 남자들은 쥐덫에 걸려들죠. 모든 게 다 부질없는 일이에요, 대장!”  128

일을 마치고 그 망할 통통한 물개와 수작할 때면 - 그녀에게 행운이 있기를! - 갈탄과 대장에 관한 일 모두를 그녀의 목에 두른 리본에 매달아놓았죠. 나 자신도 그 리본에 매달아버리고 모든 걸 잊죠.  133

나는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없었다. 내 삶은 실패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펀지 하나를 들고서 그동안 읽은 모든 것을,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비워버리고 조르바의 학교에 다시 들어가 위대하고 진정한 알파벳을 배울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전혀 다른 길을 갔을 것이다! 내 오관과 피부 전체를 완벽하게 갈고닦아 즐기고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을 것이다. 뛰기, 싸움, 헤엄, 승마, 노 젓기, 자동차 운전, 사격을 배웠을 것이다. 내 영혼을 살로 채우고, 살을 영혼으로 채워, 드디어 나의 내면의 영원한 숙적인 이 둘을 하나로 화해시켰을 것이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잃어버린 내 삶을 기억해냈다. 열린 문 사이로 희미한 별빛 아래서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마치 한 마리 밤새처럼 바다를 응시하는 조르바가 보였다.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은 진리를 발견했다. 저 사람이 바로 길이다!’
먼 옛날 창세기 시절 조르바는 앞장서서 도끼로 길을 열던 부족장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영주들의 성을 돌아다니며 영주와 하인, 귀부인 들까지 모두 자신의 두꺼운 입술에 목매게 하는 유명한 음유시인이었을지도 모른다. 배은망덕한 이 시대에 조르바는 굶주린 늑대처럼 우리 주위를 배회하거나 삼류작가로 전락하여 광대 노릇을 한다.  138-139

“대장, 나는 벌써 흰머리가 났어요. 이빨은 흔들리기 시작했고요. 이제 난 허비할 시간이 없어요. 대장은 아직 젊으니 좀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난 아뇨. 맙소사, 늙어갈수록 난 더 거칠어진다고요! 어떤 작자들이 주저앉아서 나이가 들면 불같은 성질이 죽고 저승스자를 만나도 목을 길게 쭉뻗고 ‘자, 이제 목을 치쇼!내가 성인이 되리다!’하고 말하게 된다고 지껄이죠. 하지만 나 이 조르바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사나워지고 있어요. 나는 절대 포기 안해요. 이 세상을 모두 먹어치우고 싶어요.”  142


7
“몇 번 결혼했어요, 조르바?” ..
“난 사람이 아니오? 나도 그 엄청난 바보짓을 했수다. 모든 기혼 남자들이 내가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것에 동의할 거요. 그렇죠, 나도 그 엄청난 바보짓을 저질렀던 말이오. 결혼했었죠.”
..
“대장, 이런 말이 있소. 정식 결혼은 알맹이가 없다! 양념 없는 음식이죠. .. 우리 고향 마을에는 이런 말도 있습니다. ‘훔친 고기만이 맛있다.’ 마누라는 훔친 고기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 148-149


8
“비가 오면 마음이 우울해지죠.” 조르바가 말했다. “그러니 비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해요.”
그는 담장 아래쪽으로 몸을 굽혀 갓 피어난 야생 수선화를 꺾어서는 마치 수선화를 처음 보는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탐욕스럽게 살펴봤다. 그러고는 눈을 지그시 감고 냄새를 맡다가 한숨을 쉬더니, 내게 그 수선화를 건넸다.
“대장, 우리가 돌과 꽃, 그리고 비가 뭐라 말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아마도 우리에게 소리를 치는데 우리는 알아듣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이것들이 못 알아듣고요. 대장, 언제나 이 세상의 귀들이 뚫릴까요? 언제나 우리들 눈이 열려 사물들을 보게 될까요? 언제 우리가 팔을 벌려 돌과 꼬과 사람이 서로 껴안게 될까요? 대장,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소?”
“빌어먹을!” 나는 사랑하는 조르바가 잘 쓰는 말을 골라 대답했다. “빌어먹을! 이렇게 쓰여 있죠. 다른 말은 없고요.”
조르바가 내 팔을 잡았다.
“대장, 좋은 생각이 났어요. 듣고 화내면 안 돼요. 대장이 가지고 있는 모든 책을 한곳에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립시다. 그러면, 혹시 알아요? 대장은 바보가 아니고, 또 좋은 사람이니까…… 그러면 대장도 뭔가를 좀 알게 되지 않을까요?”
‘맞아! 바로 그거야! 나는 속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어!’
조르바가 망설이며 생각에 잠기더니 잠시 후에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죠. 뭔가를 좀 알 것 같아요.”
“그게 뭔데요? 말해봐요, 조르바.”
“난들 알겠어요? 그냥 그렇게 생각될 뿐이죠. 뭔가 알 것 같아요…… 내가 그걸 이야기하려 들면, 엉마이 될 거예요. 언젠가 기분이 내키면 대장한테 춤을 춰서 보여줄게요.”  171-173

마침 그 순간에 한 여인이 젖은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내려뜨리고, 까만 치마가 바람에 날려 무릎까지 훤히 드러난 상태로 카페 앞을 정신없이 뛰어 지나갔다. 그 여자는 옷이 착 들러붙어 펄떡거리는 물고기처럼 뇌쇄적인 싱싱한 몸매를 드러낸 채 도발적으로 몸을 흔들며 지나갔다.  176


“대장, 이쯤에서 대장에게 남자 망신시키지 말라고 말하고 싶네요. 신과 같은 악마가 이 맛있는 간식을 보낸 거예요. 이빨도 튼튼하니 그걸 그냥 내버려두지 마세요. 손을 뻗어 가지라고요! 창조주가 왜 우리 손을 만들었겠어요? 잡으라고 만든 거예요. 잡아채세요! ..”
“나는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요.” 내가 화를 내며 대꾸했다.
..
“문제를 일으킥 싶지 않다고요?” 조르바가 놀란 듯 소리쳤다. “대장, 그렇다면 대체 뭘 원하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산다는 게 원래 문제투성인 거요.” 조르바가 계속 말을 이었다. “죽음은 문제가 전혀 아니고요. 사람이 산다는 게 뭘 뜻하는지 아세요? 허리띠는 느슨하게 풀고, 남들하고 옳다 그르다 시비하는 거예요.”
나는 조르바가 옳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내 인생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은 나만의 혼잣말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길에서 벗어나 있었다. ..
“너무 계산에 매달리지 마쇼, 대장!” 조르바가 집요하게 추궁했다. “숫자에서 좀 벗어나고, 그 발어먹을 저울을 던져버리쇼. 구멍가게를 때려치우란 말요. 지금이야말로 대장의 영혼을 구할것인지 아니면 파괴할 건지를 결정할 때요. 대장, 들어봐요. 손수건 한 장에다가 지폐가 아니라 눈이 부시게 만드는 금화 2, 3리라를 넣고, 매듭을 묶어서 미미토스 편으로 과부에게 보내쇼. 그리고 미미토스 놈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일러주쇼. ‘갈탄광 사장님이 보내서 왔습니다요. 이건 그분이 보내는 손수건이에요. 별것 아니지만 마음을 담아서ㅓ 보내는 거래요. ..
그렇게 하고는 바로 그다음 날 저녁에 그녀의 집으로 가서 문을 두드리는 겁니다. 빠를수록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쇠뿔도 단 김에 빼야죠. 그리고 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길을 잃었는데 어두워졌으니 등잔불 하나만 빌려달라고요. 음, 아니면 갑자기 어지러워서 그런데 물 한 잔만 얻어먹을 수 없느냐고 하든지요. 더 좋은 건 다른 암양 한 마리를 사서 찾아가는 거죠. 그리고 이렇게 말하세요. ‘부인, 여기 부인께서 잃어버린 암양이 있어요. 제가 찾아냈죠!’ 대장, 들어봐요. 그러면 과부가 보상을 해주기 위해 대장을 집 안으로 들일 거예요. .. 장담하건대, 대장은 말을 탄 채 천국에 들어갈 겁니다. 다른 천국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신부들을 믿지 마세요. 다른 천국은 없으니까요!”  184-186

“.. ‘이런 바보 같은 놈, 어떤 놈이든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었는데도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그건 큰 죄를 짓는 거니까. 여자가 ㅊ침대에서 너를 부르는데 안 가면, 넌 영혼을 잃게 되는 거야! 그 여자가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 날에 한숨을 쉬면, 네가 누구든, 아무리 좋은 일을 많이 했어요, 그 한숨 소리가 너를 지옥에 빠뜨릴 테니까!’”
조르바가 한숨을 쉬었다.  188-189


9
“.. 예전에 내 별명 가운데 하나가 ‘흰곰팡이’였다고 말한 적 있죠? 왜냐하면 내가 어딜 가든 일을 엉망진창을 만들어버리곤 했기 때문이죠. 그러니 대장 사업도 망할 거예요. 그러니 내가 다시 말하지만 나를 당장 자르란 말예요!”
“하지만 나는 당신이 좋아요, 조르바. 그러니 더 이상 그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하지만 대장, 나는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요. 넘칠 때도 있고, 모자랄 때도 있죠. 언제 그럴지 정확히 알면 얼마나 좋겠소? 어쨌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건 분명해요. 자, 대장이 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지요. 요즘 며칠 동안 밤이나 낮이나 그 과부 때문에 마음이 편할 새가 없어요. 하늘에 맹세코 나 때문은 절대 아니고요. 그 과부와 어울릴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난 내가 그녀를 만질 일이 절대 없을 거라는 걸 확실히 알아요. 그 과부는 나하고 맞질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그냥 버려지는 것도 바라지 않아요. 그녀가 독수공방하는 걸 참을 수 없다고요. 대장, 그건 올바른 일이 아니에요. 내 가슴이 저려온다니까요. 그래서 밤마다 그녀의 집 주위를 서성거렸죠. 그 때문에 내가 밤마다 사라졌던 거고, 대장은 어딜 갔었느냐고 내게 묻는 거고요. 이제 알겠어요? 난 밤이면 그녀가 어디를 다녀오는지, 어떤 놈이 그녀와 함께 뒹구는지 살펴보러 갔었던 거예요. 그러고 나야 편하게 잘 수 있었으니까요.”
나는 웃었다.
“대장, 웃지 마슈! 한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자 모두의 책임이에요. .. 하느님은 스펀지로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하지만 그 죄만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아요. 대장, 한 여자랑 잘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놈은 저주를 받아요. 그리고 한 남자랑 잘 수 있었는데도 자지 않은 년도 마찬가지고요. ..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요?”
“난 환생을 믿지 않아요, 조르바.”
“나도 안 믿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자신이 봉사해야 할 일을 거절한 사람들이 - 그냥 도망자들이라고 합시다 - 그들이 다시 이 땅에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태어나는지 아슈? 노새요, 노새(노새는 새끼를 낳지 못한다)!”
그렇게 말하고 조르바는 입을 다물더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반짝이고는 즐거워하며 말했다.
“오늘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모든 노새들이 그런 얼간이들일 수 있겠네요. 평생 남자로 살면서도 남자 구실 못 했고, 여자로 살면서도 여자 구실 못한 인간들 말예요. 그래서 노새가 된 거고요. 노새들은 그래서 고집이 세고 밤낮으로 발길질해대는 거고요. 대장, 어떨게 생각하슈?”  193-195

“내가 일할 때에는 언제 빵 터질지 모르니 말을 걸지 마슈!” 어느날 저녁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빵 터진다고요? 조르바, 왜요?”
“또 왜냐고 따지슈? .. 나는 일을 할 때 내 전부를 쏟아요. 그러면 나는 바위 위나 지금 내가 투쟁을 벌이고 있는 석탄에 나 있는 금이나 산투리의 줄들처럼 손톰 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팽팽하게 바짝 긴장해요. 그때 누가 나를 살짝 건들거나 말을 걸어 돌아보게 하면 빵하고 터질 수가 있단 말이오. 알아듣겠소?”  200


10
“대장,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외양간에서 태어났다는 걸 믿으슈? 믿는 거요 아니면 세상 사람들한테 사기 치는 거요?”
“조르바, 그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믿지도 않고 안 믿지도 않아요. 조르바, 당신은 믿어요?”
“나도 도대체 뭘 믿는지 모르겠어요. 뭐라 말할까요? 어렸을 때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면 난 하나도 믿지 않았어요. 하지만 기은 감동을 느껴 마치 그 이야기들을 믿는 것처럼 울고 웃고 했죠. 수염이 나기 시작하면서, 옛날이야기들을 전혀 믿지 않게 됐고 오히려 비웃었죠. 하지만 나이가 지긋하게 든 지금 나는 노망이 들어서 그 이야기들을 다시 믿기 시작해요. …… 사람이란 알 수 없는 존재라니까요.”  210

“.. 바보같이 굴지 마세요. 언젠가 어떤 과학도가 내게 말해줬는데, 우리가 마시는 물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아주 조그만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걸 볼 거래요. 그 벌레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나면 물을 마시지 못하게 되고, 물을 못 마시면 목이 말라 갈증으로 죽어갈 거래요. 대장, 현미경을 깨버리세요. 그 괴물 같은 물건을 던져버리라고요. 그러면 벌레들이 당장 사라져서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갈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돼요.”  212-213

“.. 나의 여선장님이시여, 잘 먹고 마신 이 밤에 이 바닷가에서 제가 당신을 바라보니, 내 눈에 트여서 당신은 커다란 배의 인어이신 듯하군요. 그리고 나의 부불리나여, 나는 당신의 마짐막 항구요. 선장들이 와서 술을 마시는 카페입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요정이시여, 나는 이제 당신의 건강을 빌면서 이 가득 찬 술잔을 비우렵니다!”
마담 오르탕스는 뼛속까지 감동하여 눈물을 펑펑 흘리며 조르바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213


11
음식과 술, 여자, 춤, 이 네가지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필수 요소인데, 조르바는 강단 있는 그 몸뚱어리에 이 모두를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은 채 지니고 있었다.  223

“대장, 이건 또 무슨 조환가요?” 조르바가 몸을 돌리며 내게 말했다. “내가 하는 일은 온통 뒤죽박죽이에요. 내가 어렸을 때 사람들은 나를 보고 늙은이 같다고 했어요. 그때 나는 신중하고, 말수도 적고, 나이 들어 보이는 굵은 목소리로 말했거든요. 내가 할아버지를 닮았다고들 했죠.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점 더 가벼워졌어요. 스무 살 이 되자 나는 철없는 짓거리들을 시작햇지만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어요. 보통 정도의 및친 짓거리 정도였죠. 마흔이 되자 나는 젊음이 넘치는 걸 느끼면서 진짜 미친 짓을 많이 했죠. 그리고 지금 육심 줄에 들어서자, - 대장, 이건 비밀인데 내 나이가 지금 예순다섯이오, - 하여간 육십이 되자, 정말 날 믿으슈, 대장, 이걸 도무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 세계가 좁아서 나를 받아들이질 못한다우.”
그는 잔을 높게 들더니 자신의 숙녀를 향해 돌아서서는 모든 존경을 다 표하며 정중한 말투로 소리쳤다.
“나의 숙녀시여, 이 잔을 당신의 건강을 위해 바칩니다. 하느님께서 새해에는 다시 이가 돋아나게 하시고, 칼처럼 날카로운 눈썹이 다시 생기고, 피부가 다시 대리석처럼 매끄럽게 되게 하시며 당신 목을 감은 이 안 어울리는 띠를 던져버리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다시 크레타에 혁명이 일어나서, 오 나의 부불리나여, 각기 다른 향수를 부린 곱슬곱슬한 수염이 난 ‘쩨독’들이 지휘하는 세계5대 강대국의 함대가 다시 오기를, 그러면 나의 요정이시여, 당신은 다시 파도 위를 날아다니며 모래를 부르겠죠 - 아, 끝내주네! - 그러면 모든 함대가 이 무시무시한 둥근 바위 사이에서 난파할 거요.
조르바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큰 손을 내밀어 마담의 축처지고 말라비틀어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229-230

이 사람은 사나이다움과 단순함으로 세상과 조화를 이루었고, 육체와 영혼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여자와 빵, 정신, 잠, 이 모든 것이 기꺼이 살이 되어 조르바가 되었다.  238


12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조르바는 이미 없었다. 날씨는 추웠고 나는 별로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내 머리 위에 있는 조그만 선반으로 손을 뻗어 내가 좋아해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말라르메의 시집을 꺼냈다. 여기저기를 건너뛰며 천천히 시를 읽었다. 시집을 덮었다. 그리고 다시 열었다. 하지만 이내 멀리 집어던졌다. 오늘 처음으로 이 모든 시들이 핏기도, 향기도ㅡ 인간의 본질도 없는, 색바랜 하늘빛을 띤 허공처럼 텅 빈 낱말들로 느껴졌다. 그 시들은 미생물 한마리도 없고, 영양분도 없고, 생명이 결여된 순수한 증류수 같았다.
종교가 힘을 잃으면 그 종교의 신들이 시의 모티프가 되듯이, 아니면 인간의 고독이나 담벽의 장식이 되듯, 이 시들도 그랬다. 흙더미와 씨앗의 범벅이 되어버린 마음속 막연한 욕망은 진부한 지적 장난으로, 공중누각으로 변하고 말았다.
나는 다시 시집을 펼쳐 한 번 더 읽어보았다. 어떻게 이 노래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나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이 노래들은 너무도 순수했다. 이 노래들 속에서 인생은 피 한 방울조차 지탱하지 못하는 투명하고도 가볍기 이를 데 없는 장난으로 변했고, 성적 사랑과 육체의 살, 외침과 같은 인간적인 것들은 야비하고 마무리되지 못한 오염된 존재로서, 정신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비물질화되어 흩어지고, 연금술에 연금술을 거듭하여 지극히 비현실적인 추상적 개념들로 바뀌었다.
어째서 이 아치에 한때 나를 유혹하고 타락시켰던 이 시들이 모두 하나같이 사기꾼의 현란한 줄타기 속임수처럼 보이는 걸까? 문명의 종말은 한결같이 엇비슷하다. 그때가 되면 인간의 고뇌가 - 순수 시나 순수 음악, 순수 지각 등이 - 모두 대마법사의 능수능란한 속임수로 끝난다. 모든 믿음과 망상에서 자유로워진, 그래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마지막 인간, 그가 속한 모든 땅은 숨결이 되고, 그 숨결은 더 이상 뿌리를 내려 영양분을 줄 수도, 취할 수도 없게 된 마지막인간, 그 인간은 씨앗도, 똥도, 피도 다 비워버렸다. 그리고 모든 것은 낱말로, 장난기 어린 율동의 낱말들로 변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인간은 황무지의 끝자락에 앉아 음악을 침묵의 수학적 비율로 해체하고 있다.  239-240

떠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이곳 해변가에서 잘 지내고 있다. 이곳은 나를 잘 품어주어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어떤 욕망이 내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죽기 전에 더 많은 땅과 바다를 보고 만지고픈 욕망이 나를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249


13
나는 인간은 자기만의 고유한 냄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냄새들이 서로 섞이는 바람에 어느 냄새가 내 것이고, 또 어느 냄새가 네 것인지 알지 못할 뿐이죠. ..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여자라는 뻔뻔한 것들은 강아지처럼 촉촉한 코를 가지고 있어 누가 자기들을 애타게 원하고 누가 싫어하는지 냄새로 곧바로 잡아낸다는 것예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어느 도시를 가든, 내가 늙은이에다가 못생기고 옷을 초라하게 입고 있어도 계집 두세 명이 내 뒤를 졸졸 쫓아오죠. 아시겠어요? 냄새를 잘 맡는 암캐들이 - 하느님께서 그 계집들을 보살펴주시기를! - 내 뒤를 따라오는 거죠.  263

대장, 내가 대장한테 한번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있죠? 각자가 자기만의 천국을 가지고 있다고요. 대장의 천국에는 수많은 책과 아주 커다란 꿀단지가 있을 거고, 다른 사람의 천국에는 포도주와 우조, 코냑 통들이 있을 테고, 또 다른 사람의 천국에는 영국 금화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겠죠. 내 천국은, 색색깔의 치마와 향수 비누, 스프링 박힌 더블 침대, 그리고 내 옆에 암컷 하나가 있는 이 향수 냄새가 물씬 나는 조그만 방, 바로 여기죠.  267

“.. 어제 우리는 카스트로에서 벌어진 축제에 갔었죠. 그런데 악마 놈이 이게 어느 성인을 기리는 축제인지 안 가르쳐줬단 말입니다. 롤라가 - 아 참, 나와 함께 있는 계집을 소개하지 않았군요. 이름은 롤라예요 - 내게 말했죠.
‘할아버지(이 계집이 아직도 나를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하지만 애칭으로 부르는 거예요.), 할아버지, 나 축제에 놀라 가고 싶어.’
‘그럼 가봐, 할멈. 가보라고!’ 내가 대답했죠.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랑 같이 가고 싶어.’
‘난 안 가, 지겹거든. 그러니 너 혼자 가봐.’
‘치, 그러면 나도 안 가.’
내가 눈을 똥그랗게 뜨면서 말했죠.
‘안 간다고? 왜? 왜 안 가?’
‘할아버지도 간다면 나도 갈 거야. 하지만 할아버지가 안 가면 나도 가기 싫어.’
‘왜? 너는 자유인이잖아?’
‘아냐, 난 자유인 아냐.’
‘자유인이고 싶지 않아?’
‘아니, 싫어.’
대장, 내가 무슨 말을 하겠수? 나는 놀라 까무러칠 것 같았죠.
‘자유를 바라지 않는다고!’ 내가 소리 질렀죠.
‘나는 자유 싫어, 절대 싫어. 난 자유가 싫다고!’
대장, 나는 이 편지를 지금 롤라의 바에서 롤라의 편지지로 쓰고 있어요. 부탁이니 대장도 잘 생각해보슈. 나는 인간이란 자유를 바라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여자는 자유를 바라지 않아요. 그렇다면 여자도 인간 맞나요?
부탁하건대 즉시 답장해줘요. 대장께 사랑의 입맞춤을 듬뿍 보냅니다.
알렉시스 조르바백.”  269-270

조르바의 편지를 다 읽고 나는 한동안 아무런 결정을 못 내리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화를 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아니면 인생의 표피층을 다 초월해서 삶의 본질에 다다른 이 원시인을 자랑스러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에게는 논리니, 예의니, 명예니하는 인생을 편리하게 해주는 소소한 미덕들은 다 사라지고, 오직 심연의 절벽 끝으로 대책 없이 자신을 밀어 넣어 아주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불편하고 아무도 바라지 않는 미덕만 남아 있었다.
글을 쓸때 참을 수 없는 충동 때문에 펜을 망가뜨리는, 이 무식한 노동자는 유인원에서 갓 벗어난 태초의 원시 인간처럼, 또는 위대한 철학자처럼,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압도당해 그 문제들을 몸으로 직접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그 또한 모든 것을 처음 보는 듯이 신기해하며 묻는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다 기적 같아서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나무와 바다, 돌, 새를 보면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 기적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고 소리 지른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 나무는, 이 바다는, 이 돌은, 이 새는 무슨 의미를 갖는 거냐고 묻는다.  270-271


14
(아나그노스티스 영감) 그가 말라비틀어진 손을 내 어깨에 얹었다.
“당신은 아직 젊어요. 늙은이 말을 듣지 마시오. 만일 세상 사람들이 늙은이 말을 듣는다면 얼마 못 가 망할 거요. 만약 어떤 과부 하나가 당신 앞에 나타나면 그냥 올라타시게!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주절랑 하질 마시게. 고통이란 진정한 사나이들을 위한거니까.”  290-291


16
“가난하면 즐겁게라도 살아야죠.” 조르바가 말했다.  315


17

“내가 말입니다. 뭔가를 간절히 바라면 어떤 짓을 하는지 아슈?” 그가 말했다. “그 욕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는 그 생각을 안 할 때까지 질리도록 먹고 또 먹고, 포식하고, 과식합니다. 생각만 해도 역겨울 때까지요. 한번은 어렸을 때, 체리가 먹고 싶어 거의 미칠 지경이 된 적이 있어요. 돈이 없으니 조금씩 감질나게 사 먹는데 점점 더 먹고 싶어지는 거예요. 밤이나 낮이나 온통 체리 생각만 나지 뭐예요. 그때마다 침이 질질 흐르고, 정말 고문이었어요. 그러는 내가 창피한 건지, 아니면 내게 화가 난 건지, 그건 나도 모르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체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나를 가지고 놀면서 바보를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 어떻게 해야 하지? 밤에 일어나 살금살금 다가가서 아버지 주머니를 뒤졌죠. 은화가 만져지더라고요. 그걸 훔쳤죠. 아침 일찍 일어나 과수원으로 가서 체리 한 광주리를 샀어요. 그리고 구석에 숨어서 먹기 시작했죠. 먹고 또 먹고, 배가 터지도록 처먹었죠. 그랬더니 배가 거북해지면서 구역질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모조리 다 토했죠. 대장, 다 토했다고요. 그러고 나서는 체리에서 완전히 해방됐죠. 다시는 눈길조차 주지도 않아요. 난 자유로운 인간이 됐단 말입니다. 그 후로는 체리를 보면 ‘너하고는 더 이상 별 볼일이 없다’라고 말해주죠. 술도 담배도 마찬가지죠. 아직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지만 내가 바라기만 하면 당장 끊을 수 있어요. 고향이나 조국도 마찬가지고요. 간절히 바라고, 지겨울 때까지 맘껏 즐기고, 토해버렸죠. 그렇게 해서 그것들에게서 벗어난 겁니다.”
“여자는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그것도 때가 되면 관두겠죠. 빌어먹을 계집들! 그럴 때가 오겠죠. 일흔쯤 되면 그렇게 될 거요!”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든 듯 말을 바꾸었다.
“여든으로 합시다! 대장, 비웃응시는구려! 하지만 그리 오래 비웃진 못할 거요. 인간이 욕망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것뿐입니다. 수도사들처럼 금욕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물 나도록 실컷 즐겨봐야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거라고요. 우리가 스스로 악마가 돼보지 않고 어떻게 그놈에게서 벗어날 수 있겠느냐고요!”  342-343

“어떤 여자도 이 세상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도록 모든 여자들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던 고대의 난봉꾼 신을 뭐라고 부르지요? 내가 들은 말이 있수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 신은 수염을 염색하고 팔뚝에는 하트와 인어를 문신하고, 깊은 동정심을 갖고, 때로는 황소로, 때로는 백조로, 숫양으로, 당나귀로 둔갑해서 모든 깨끗한 여자들의 정욕을 만족시켰다고 합디다. 그 신 이름이 뭔지 기분 내키면 한번 말해봐요.”
“틀림없이 제우스를 말하고 있는것 같은데 ..”
..
“그 신은 상당히 고통스러워했고 힘들어했죠. 그는 정말 위대한 순교자죠. ..”
..
“나는 오직 그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만 알아요. 그는 정말로 여자들을 사랑했죠. 하지만 엉터리 글쟁이들이 생각하는 식으로 사랑한 건 절대 아녜요. 절대로 아니죠! 제우스는 여자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느꼈죠. 그는 모든 여자들의 욕망을 다 알고 그녀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어요. 어떤 시골구석에 노처녀가 근심에 빠져 말라 죽어가는 꼴을 보거나, 육감적인 탐스러운 유부녀가 - 아니, 육감적이고 탐스러운 게 아니라 괴물 같더라도! - 남편이 자리를 비워서 잠들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이 동정심 많은 작자가 성호를 긋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그 여자가 생각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으로 자신을 바꿔서는 그녀 방으로 기어들어가죠.
대장, 내가 단언컨대 절대로 그가 성욕에 사로잡혀서 그러는게 아니었다고요. 대부분의 경우 완전히 진이 다 빠져도 정의감 하나로 버텼죠. 하지만 불쌍한 제우스가 어떻게 혼자서 온 세상을 다 구할 수 있겠습니까? .. 새벽녘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면서 중얼거리곤 했죠. ‘아이구, 언제나 나는 침대에 누워 잘 수 있단 말이오? 난 더 이상 서 있을 수도 없단 말이오!’ 그렇게 말하고는 침을 닦지요.
그런데 갑자기 저 아래 지구 한구석에서 웬 여자 하나가 침대 시트를 박차고 지붕 위로 나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예요. 그러자 그의 심장은 녹아버리는 것 같았죠. ‘아이고, 아이고, 다시 지구로 내려가자! 다시 내려가야지. 한 여자가 한숨을 쉬니 내려가서 위로해줘야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내려가죠.
하지만 여자들이 그를 너무 혹사해서 급기야 그의 허리가 끊어지고 말았죠. 구토를 하고 온몸이 마비가 되고, 그리고 끝내 숨이 끊어졌어요. 그때 그의 후계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옛신의 형편없는 몰골을 보고 말하죠. ‘여자들을 조심하라.’  380-382


20
내 할아버지는 나처럼 속물에 혼자 제일 잘난 대장이었어요. 이 불경스러운 양반이 ‘거룩한 무덤’(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을 뜻함)으로 성지 순례를 다녀와서 하지스(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다녀온 그리스도교인이나 메카 성지 순례를 다녀온 이슬람교인을 가리킴)가 되었단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할아버지의 속내를 알고 계셨ㄷ죠. 할아버지가 고향 마을로 돌아오자 염소 도둑에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친구 한 명이 말했죠. ‘아이구, 이 친구야, 거룩한 무덤까지 가서 나를 위해 성스러운 십자가의 아주 조그만 조각도ㅗ 안 가져오다니!’ ‘무슨 말이야?’ 영악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 할아버지가 응수했죠. ‘어떻게 내가 자네를 잊겠는가? 오늘 저녁에 우리 집으로 오게나, 그리고 올 때 축성식을 하게 신부님도 모시고 오게나. 그때 내가 그걸 자네에게 주겠네. 그리고 새끼돼지구이와 포도주도 가져오게나. 행운을 위한 거니까!’
할아버지는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서는 벌레가 갉아먹은 문짝에서 성냥 머리만 한 크기의 나무 한 조각을 떼어내서는 솜에 싸서 그 위에 기름을 떨어뜨리고 기다렸죠. 조금 있다가 그 친구분이 새깨돼지구이를 짊어지고 신부님과 함게 도착했고요. 신부님이 영대(정교회 신부들이 신성한 의식을 행할 때 목에서부터 다리까지 두르는 긴 천)를 두르고 축성식을 한 뒤에 신성하 ㄴ성 십자가 조각의 전달이 이루어졌고, 그러고는 모두들 새끼돼지고기에 달려들었죠. 그런데 대장, 믿을 수 있겠어요? 그 할아버지 친구는 성 십자가 조각에 경배를 드리고 목에 걸고 다니면서부터는 전혀 딴 사람이 되었대요. 완전히 변했죠. 산으로 들어가서 무장한 클레프테스의 일원이 되어 터키 마을을 기습해 태워버리고, 겁도 없이 총탄이 빗발처럼 쏟아지는 곳으로 뛰어들었다네요. 그가 두려울게 뭐가 있었겠어요? 자기 몸에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을 지니고 있으니 납덩어리 총알도 뚫지 못할 테니 말예요.”
조르바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죠.” 그가 말했다. “믿음이 있다면 다 망가진 문짝의 나뭇조각이 성스러운 십자가 조각이 되죠. 믿음이 없으면 성스러운 십자가 전체라도 망가진 문짝이 되고요.”  386-387

“고지식한 몸뚱어리에, 고지싟한 생각 …… 내가 무슨 얘길 하든 못 알아 들을 거요. 대장, 용서하슈!”
“무슨 말이에요?” 내가 항의했다. “조르바, 나도 알아들어요. 맹세코 다 알아듣난단 말이에요.”
“그럼요, 머리로는 다 알아듣겠죠. 그리고 ‘옳다, 그르다, 그렇지! 안 그렇지! 그건 당신이 옳고, 저건 당신이 틀리고!’ 이렇게 말하겠죠.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나옵니까? 난 말이오, 대장이 말 할 때 대장의 팔과 다리, 가슴을 본다우, 그런데 그것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다우. 마치 피가 없는 놈들처럼 말요. 도대체 대장이 그걸 어떻게 이해한단 말요? 머리로 이해한다고요? 풋!”  388

“조국으로부터 벗어나고, 신부들로붙도 벗어나고, 돈으로부터도 벗어나고, 탈탈 먼지를 털었죠. 세월이 흐를수록 난 먼지를 털어냅니다. 그리고 가벼워집니다. 뭔라고 말씀드려야 할까요? 난 자유로워지고, 사람이 돼갑니다.”
..
“한때는 이놈은 터키 놈, 저놈은 불가리아 놈, 또 이놈은 그리스 놈 하고 구분햇었죠. 대장, 난 조국을 위해서라면 대장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못된 짓을 저질렀다우. 멱을 따고, 약탈하고, 마을을 불태우고, 여자들을 강간하고, 온 가족을 몰살하고 …… 왜냐고요? 그건 그들이 불가리아 놈들이고 터미 놈들이었으니까죠. 난 자주 ‘이 악당 놈아, 나가 뒈져버려라! 이 바보 얼간아, 나가 뒈져버리라고!’ 하고 나 자신에게 말하면서 저주를 퍼부었죠. 하지만 대장, 이제는 나도 생각을 좀 하고 사람을 보죠.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고 저 사람은 나쁜 놈이다. 불가리아인인가 그리스인인가 하는 게 문젭니까? 이제 내게는 다 똑같아요. 이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아닌가만 묻죠. 그리고 정말이지 나이를 먹을수록, 밥을 더 많이 먹을수록, 난 점점 더 아무것도 묻지 않게 됩니다. 보세요, 좋은 놈, 나쁜 놈이란 구분도 잘 맞질 않아요. 난 모든 사람이 불쌍할 뿐이에요. 사람을 보면, 비록 내가 잘 자고 마음에 아무런 시름이 없어도,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누구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그리고 자신만의 하느님과 악마를 모시다가 뒈지면 땅에 쭉 뻗고 누울 거고, 그러면 구더기들이 그 살들을 파먹을 거고 …… 아, 불쌍한 인생!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에요. …… 구더기 밥인 고깃덩어리 들이라고요!
여자들은, 음, 그것들을 생각하면, 어이구 하느님! 난 울음이 나올 것 같아요. 대장은 가끔 내가 여자들을 너무 좋아한다고 놀리곤 하는데, 하지만 여보쇼, 내가 어떻게 여자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수? 여자들이란 약한 존재들이라 자기들한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데다, 일단 한번 그년들 젖꼭지를 움켜쥐면, 바로 그 순간에 모든 문이 열리고 그냥 모든 걸 내준다고요.  393-394

“.. 내 얘기도 들어보세요. 조국이란 게 있는 한, 사람들은 야수로 남아 있게 마련이죠.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로요. 하지만 난, 하느님께 영광이 있을지어다! 난 벗어났어요. 벗어났다고요, 끝났다고요! 하지만 대장은요?”  396


21
나는 생각했다. ‘남자들이란 얼마나 저항력이 없는 덧없고 어리석고 약한 바보 같은 존재들인가! ..’  412


24
“대장, 말해봐요. .. 이 모든 것들이 무얼 이야기하려는건지 말해봐요. 눈가 이런 짓을 하는 거죠? 또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건 뭐죠?(이 말을 할 때 조르바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에 차 있었다) 왜 우리는 죽는 거죠?”
“모르겠어요, 조르바.”
..
“모른다고요!” 조르바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어느 날 밤엔가 춤을 출 줄 아느냐는 그의 물음에 내가 모른다고 대답했을 때도 그는 저렇게 눈알을 굴렸었다.
그가 잠시 침묵했다가 갑작스레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대장이 읽는 그 빌어먹을 종이짝들은 다 뭐요? 왜 그런 걸 읽는 거요?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뭐에 대해 얘기하는 거요?”
“조르바, 당신이 지금 묻고 있는 것들에 대답하지 못하는 인간의 고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죠.” 내가 대답했다.
“그런 고뇌는 내가 다 삶아 먹어버릴 거요.” 조르바가 화를 내며 발로 돌을 차면서 말했다.
..
“나는 대장한테서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듣고 싶소. 대장은 그렇게 오랫동안 마법에 대해 연구하느라 야위었잖소. 그러느라 그동안 적어도 3, 4톤의 종이를 쥐어짰을 텐데 결국 어떤 즙을 짜낸 거요?”
..
나는 나의 도반에게 신성한 두려움이 무엇인지 이해시켜보려고 시도했다.
“조르바, 우리는 아주 거인처럼 커다란 나무의 조그만 잎사귀 위에 있는 아주 미세한 벌레에 지나지 않아요.” 내가 대답했다. “지구는 바로 그 나뭇잎이고요. 우리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잎사귀 위를 기어 다니며 절실하게 뭔가를 찾아다니죠. 우리는 그것의 냄새를 맡아보죠. 냄새가 나요, 악취가 납니다. 맛을 봅니다. 먹을 만해요. 그걸 두들겨봅니다. 그러면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소리를 질러요.
겁이 없는 몇몇 사라람들은 잎사귀의 가장자리까지 가죠. 그 가장자리 끝에서 눈을 똑바로 크게 뜨고, 귀를 크게 열고, 밑을 내려다보죠. 그 밑은 카오스예요. 무서워서 소름이 끼치죠. 저 아래에는 무시무시한 절벽이 있다고 우리는 지레 짐작합니다. 우리들은 가끔씩, 아주 가끔씩, 거인처럼 큰 나무의 다른 잎사귀들이 내는 속삭임 소리를 듣죠. 그리고 나무의 뿌리에서부터 수액이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우리들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그렇게 심연을 향해 몸을 숙이고 오놈으로, 완전히 공포에 빠졌음을 실감하죠. 바로 그 순간에 ……”
나는 말을 멈췄다. 나는 “바로 그 순간에 시가 시작되죠”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조르바가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을 멈췄다.
“뭐가 시작됩니까?’ 조르바가 조바심하며 물었다. “왜 이야기하다 마는 거요?”
“…… 아주 커다란 위험이 시작되죠, 조르바.” 내가 말을 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정신이 혼란스러워져서 헛소리를 하고ㅡ 또 다른 사람들은 겁에 질려 그들의 마음이 의지할 수 있는 해답을 찾으려고 노력하죠. 그리고 그 해답을 ‘하느님’이라고 부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잎사귀의 가장자리에서 심연을 조용히 내려다보면서 용감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 맘에 드는군!’”
조르바는 한도앙ㄴ 생각에 잠겼다. 내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난 말이죠.” 드디어 그가 말했다. “매 순간 죽음으 ㄹ응시합니다. 죽음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죠. 하지만 한 번도, 절대로 한 번도 ‘죽어도 좋아’라고 말하지는 않죠. 아뇨, 죽는 게 조금도 좋지 않아요! 나는 자유로운 존재 아닙니까? 그렇다면 난 절대로 내가 죽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소리쳤다.
“아니죠, 절대로 내 목을 양처럼 순하게 죽음의 신 카론에게 내놓고 ‘주여, 내가 축복을 받고 성자가 되도록 나를 죽여주시옵소서!’라고 말하지 않을 겁니다.”  468-470

“.. 난 지나간 일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요. 미래의 일도 신경 쓰지 않지요. 지금, 바로 이 순간, 바로 그것만 신경 씁니다. 난 스스로 이렇게 묻죠. ‘조르바, 넌 지금 뭘하고 있는 게냐? 잔다. 그럼 잘 자라!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일한다. 그럼 열심히 일해라! 조르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여자를 껴안고 있다. 그럼 그 여자를 꼭 껴안아라! 그리고 모든 걸 다 잊어버려라, 이 세상에는 그녀와 너 이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나게 즐겨라!’”  473

“.. 진정한 여자들은 남자들한테서 받는 기쁨보다는 자신들이 주는 기쁨을 더 행복하게 느낀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473

“나도 내 안에 대여섯 놈의 악마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조르바,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어요. 너무 놀랄 거 없어요. 그리고 많은 악마를 가지고 있을수록 더 좋고요. 단지 모두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똑같은 목표를 향해 가지만 하면 돼요.”
나의 이 말이 조르바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생각에 잠겼다.
“어떤 목표요?”
“조르바, 난들 알겠어요? 알기 어려운 걸 묻네요.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겠어요?”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좀 쉽게 말해보슈. 난 지금까지 내 안의 악마 놈들이 하고 싶은 건 뭐든지 하고, 가고 싶은 덴 어디든지 가게 내버려뒀수다. 그래서 어떠 ㄴ자들은 나보고 나쁜 놈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좋은 놈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바보라고 하고, 어떤 자들은 현명한 솔로몬이라고들 하죠. 그리고 난 그들이 말하는 그런 놈인 동시에 그보다 더한 놈이기도 한, 러시아 샐러드 같은 놈이죠. 그러니 가능하다면 말이죠, 무슨 목표인지 내가 알 수 있게 말 좀 해보슈. 어떤 목표죠?”
“조르바, 내 생각에는 말이죠. 물론 잘못된 새악일 수도 잇지만, 세 부류의 인간이 잇는 거 같아요. 우선은 소위 말하는 자신들만의 삶을 살기 위한 목표를 세우는 부류죠. 그들은 자신들만을 위해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부를 쌓고, 영광을 추구하죠…… 그리고 그다음에는 자신들의 삶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는 부류가 있죠. 그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라고 느끼면서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추리려고 노력하고, 모든 인류를 사랑하고 남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베푸는 살마들이죠. 그리고 끝으로 우주의 삶을 위해 목표를 세우는 부류가 있죠. 이 부류는 인간은 물론, 동물과 식물, 별 들도 모두 끔찍한 투쟁, 즉 물질을 승화시켜 정신으로 만들려는 투쟁을 하는, 동일한 본질을 지닌 동일한. 존재라고 생각하죠.”
조르바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난 멍청이라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네요…… 이봐요 대장, 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방금 한 말을 좀더 쉽게 소화해서 말해주슈!”
나는 절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이 절망적인 생각들을 춤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480-482


25
조르바와의 생활은 내 가슴을 넓혀주었고, 그의 말 몇 마디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내 고민에 절대적인 해법을 제시해줌으로서 내 정신을 평화롭게 만들어주었다. 이 사람은 절대로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직감과 매의 눈 같은 원초적인 눈으로 힘들이지 않고 지름길을 달려 노력의 정상에 우뚝 서는 ‘무위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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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대장은 어디로 갈 거요?”
“외국으로 갈 거예요. 내겐 아직도 내 안의 산양이 먹어치워야 할 종잇조각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대장,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셨수?”
“조르바, 정신 차렸죠. 당신 덕분이에요. 나도 당신의 길을 따를 거예요. 당신이 체리를 상대로 한 짓을 나는 책을 상대로 할 거예요. 토할 때까지 종잇조각을 잔뜩 먹어볼 작정이에요. 그리고 토하고 나서 종잇조각에서 자유로워질 거예요.”  517

바람이 몰고 다니는 겨울철 나뭇잎들처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몸, 손짓, 몸짓까지도 다 기억하려 하지만 얼마 못 가 그 사람의 눈빛이 파랬는지 까맸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인생은 얼마나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인가 하고 생각했다.  519

“대장! 대장은 자유롭지 않수다. 대장이 매여 있는 줄은 다른 사람들 것보다 조금 더 길기는 하지만 그쁜이오. 대장, 대장은 조금 긴 끈을 갖고 있어 왔다 갔다 하면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끈을 잘라내지는 못했수다. 만약 그 끈을 잘라내지 못하면……”
“어느 날엔가는 그 끈을 잘라 낼 거예요.”
..
“대장, 그건 어렵수다. 아주 어려워요. 그러려면 미쳐야 하는데, 듣고 있수? 미쳐야 한단 말요. 모든 걸 걸어야 해요! 하지만 대장, 당신은 머리가 있어 그게 대장을 갉아먹고 있죠. 정신이란 식품점 주인 같은 거요. 장부를 팔에 끼고서는 얼마 들어왔고 얼마 나갔고, 이건 이득이고 저건 손해고, 일일이 기입하죠. 정신은 알뜰한 주부 같아서 모든 걸 포기하지 못해요. 뭔가 하나는 꼭 숨겨놓죠. 정신이라는 놈은 결코 끈을 놓지 않아요. 절대로! 그 악당은 손아귀에 그 끈을 꽉 쥐고 있답니다. 그 끈을 놏히면 그놈은 망하는 거니까요. 불쌍하게도 사라지는 거죠! 하지만 그 끈을 자르지 않으면, 대장, 인생에 뭐가 있겠수? 캐모마일 차, 맛있는 캐모마일 차 정도? 세상을 뒤집어엎을 럼주는 절대 아니죠.”
그가 말을 멈추고는 다시 술을 따랐다. 하지만 곧 마음을 바꿨다.
“내장, 날 용서하슈. 난 시골 촌뜨기요. 진흙이 발에 들어붙어 있듯 말들이 이빨에 붙어 있수다. 난 말을 멋있게 하지도 예의 바르게 하자도 못하우. 그렇게 할 수 없수다. 그러니 대장이 이해하슈.”
그는 잔을 비우고 나를 바라보앗다.
“아시겠소?” 마치 갑자기 분노가 터져 나온 것처럼 그가 소리쳤다. “아시겠냐고요? 이게 바로 대장을 잡아먹고 있수다. 그걸 모르면 대장은 행복하 ㄹ거요. 뭐 부족한 게 있수? 젊겠다, 돈도 있겠다, 머리도 좋겠다, 몸도 튼튼하고, 사람 좋고, 대장에겐 부족한게 하나도 없수다. 아무것도 아쉬운 게 없지. 빌어먹을 악마 놈! 딱 한 개만 빼고 말이우. 미친 짓을 벌이는 광기 말요. 광기가 없으면, 대장……”
그는 다시 머리를 젓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520-522

“저는 시골 교사입니다. 지금 저는 이곳에서 마그네슘 광산을 운영하고 있던 알렉시스 조르바 씨의 슬픈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알렉시스 조르바 씨는 지난 일요일 저녁 6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가 죽음과 마지막 싸움을 하고 있을 때 저를 불러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선생님, 그리스에 내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내가 죽거들랑 내가 죽는 그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또 그를 기억했다고 편지를 보내주슈. 그리고 난 내가 평생 한 짓에 대해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도 말해주슈. 그리고 잘 지내시고 이제는 정신 좀 차릴 때가 됐다고 쓰슈…… 그리고 만약 신부가 내 고해성사를 듣고 종부성사를 해주러 온다고 하면, 제발 내쫓고 내가 저주한다고 전하슈! 난 평생 하고, 또 하고, 또 했지만 결국 한 일은 별거 없수다. 나 같은 인간은 천 년을 살아야 마땅한데 …… 잘 있으슈!”
이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러고는 곧바로 베개에 기대 일어나서는 침대 시트를 벗어던지고 위로 펄쩍 뛰었습니다. 그의 부인 리우바와 나, 그리고 힘센 이웃들 몇 명이 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습니다만 그는 이를 뿌리치고 침대에서 내려와 창문까지 갔습니다. 그곳에서 창틀을 쥐고 서서는 먼 곳 산을 바라보며 눈알을 굴리더니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말 같은 신음 소리를 내다가 창틀에 손톱을 꼿꼿이 박아 넣고는 똑바로 서서 죽었습니다.
그의 미망인 리우바는 당신께 인사를 전하라고 하면서, 고인이 계속 당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자기가 죽으면 당신께서 고인을 기억하게 자신의 산투리를 당신께 드리라고 유언했다고 전하랍니다.  537-538




작가 소개 - 니코스 카잔자키스(1883~1957)
1915년에도 그는 그리스 전역을 여행하고, 다시 아기온오로스에 가서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요르기오스 조르바스(조르바의 본명)를 만난다. 조르바스는 카잔자키스에게 인생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1917년에 카잔자키스와 조르바스는 마니(펠로폰네소스 남쪽 지방) 지방의 프로스토바에서 갈탄광 개발을 시도했지만 경제성이 없어 실패한다.  544-545

그의 마지막 작품인 <엘 그레코에게 바치는 보고서(영혼의 자서전)>에서 그는 인간의 가치는 승리에 있지 않고 승리를 향한 투쟁에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평생에 걸친 여정은 오르막길이었으며, 하느님과 구원 역시 그에게는 하나의 오르막길이었다고 고백한다.  548




조르바와 카잔자키스, 니체

대부분의 살마들이 선택하는 삶은 기존 관습에 따라 기존 사회가 제공한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낙타처럼 수동적으로 사는 것이다. 니체는 그런 사람을 밑바닥 인간(Letzter Mensch)’이라고 불렀다. 이와 반대로 관습이나 전통적 가치관을 거부하고 사자처럼 적극적으로 모든 삶을 자신의 찬단 아래 ‘치열하게’ 꾸려 나가는 사람을 니체는 ‘빼어난 인간((ubermensch)’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빼어난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이루기 위해서는 홀로 모든 것을 해나갈 수 있는 ‘힘에 대한 의지(Wille zur Macht)’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힘에 대한 의지는 우연을 의도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물을 고정된 죽은 것으로 보지 않고 부단히 변화하는 살아 있는 것으로 본다. 빼어난 인간은 힘에 대한 의지로 모든 사물을 음미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새로운 갗치를 창조한다. 그래서 빼어난 인간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사랑한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되풀이(ewigen Wieederkunft)’로 이루어져 있다. 삶 속에서 위대한 것이든 사소한 것이든 모두 끊임없이(ad inifitum) 역겨울 정도로(ad nauseam) 되풀이된다. 빼어난 인간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삶을 적극적으로 인정해 받아들이고 사랑한다. 아니,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무구함으로 매 순간의 삶을 기쁘게 바라보고 평범한 일상에서 놀라도록 새로운 면을 찾아내고는 감탄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인 현재뿐이다.
니체가 말하는 삶을 산 사람이 바로 조르바다.  569-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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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대가리에 잉크를 뒤집어 쓴 채 종이나 씹으면서 있겠다는 것인가? 나와 함께 가세. 저 멀리 카프카스에, 위험에 처한 수많은 동포가 있잖아. 함게 가서 구해 주자고... 자네는 이렇게 설교하지 않았는가, '자신을 구하는 유일한 길은 남을 구하려고 앴는 것이다'라고.. 그럼 구해야지."  ...

배가 세 번째로 고동을 울렸다.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면서 헛소리로 제 감정을 가렸다. 

"Au revoir(다시 보세), 이 책벌레야!" ...

서로를 좋아했지만 우리는 살가운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우리는 짐승처럼 장난을 치며 서로를 할퀴었다. 친구는 이지적이고 냉소적인 문명인이었고, 나는 야만인이었다. 


인간의 영혼은 육체라는 뻘 속에 갇혀 있어서 무디고 둔한 것이다. 영혼의 지각 능력이란 조잡하고 불확실한 법이다. 그래서 영혼은 아무것도 분명하고 확실하게는 예견할 수 없다.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우리 이별은 얼마나 다른 것일 수 있었을까.

?

친구가 나를 '책벌레'라고 불렀을 때, 불쑥 솟아로르던 그 분노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당시 내가 영위하고 있던 삶에 대한 나의모든 역겨운 감정이 그 말로 형상화되었다. 그토록 강렬하게 인생을 사랑한다면서 어떻게 책 나부랭이와 잉크로 더렵혀진 종이에다 자신을 그리도 오랫동안 내박쳐 둘 수 있단 말인가! 그 이별의 날, 내 친구는 내가 나 자신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해준 셈이었다. 속이 후련했다. 병통을 알았으니 이제는 쉬 정복할 수 있으리라. 이제 그것은 모호하지도 막연하지도 않았다. 이름과 형태가 있으니 그에 맞서 싸우기도 훨씬 수월할 터였다.

 

나는 종이 나부랭이를 팽개치고 행동하는 인생으로 뛰어들 구실을 찾게 되었다. .. 크레타 해안에 폐광이 된 갈탄광 한 자리를 임차했다. .. 들뜬 마음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나는 내 삶의 양식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 미완성 원고와 마주쳤다. .. 나는 아기를 싸듯이 조심스럽게 그 원고를 포장하여 다른 짐 속에 넣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무슨 일을 하십니까?"

"닥치는 대로 하죠. 발로도 하고 손으로도 하고 머리로도 하고.. 하지만 해본 일만 해가지고서야 어디 성이 차겠소!"


"스무 살 때였소. 우리 마을에서 처음 산투르 소리를 들었지요. 혼을 쭉 빼놓는 것 같습니다. .. 있는 걸 몽땅 털고 몇 푼 더 보태 산투르를 하나 샀지요. ... 산투르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나는 전혀 딴사람이 되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을 때나 빈털터리가 될 때는 산투르를 칩니다. 그러면 기운이 생기지요. 내가 산투르를 칠 때는, 당신이 말을 걸 수도 있겠지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린다고 해도 대답을 못해요. 하려고 해도 안 돼. 할 수가 없어."

"정열이라지요. 바로 그게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산투르를 치려면 온갖 정성을 산투르에만 쏟아야 해요. 알겠어요?"

조르바야말로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언어, 예술, 사랑, 순수성, 정열의 의미는 이 노동자가 지껄인 가장 단순한 인간의 말로 내게 분명히 전해져 왔다. 


"마음이 내키면. 알죠? 마음이 내키면 말이오. 일이야 당신이 바라는 만큼 해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르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르는 짐승이오.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마음이 내키면 칠 거요. 또 노래도 할 거요. .. 나한테 강요하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2


조르바는 창백해진 얼굴을 찡그린 채 뱃머리의 밧줄 타래 위에 앉아 있었다. 그는 레몬 한 알을 들고 냄새를 맡으며, 그 큰 귀로 국왕과 크레타 출신 정치가 베니젤로스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승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말고는 고개를 내저으며 침을 탁 뱉고 빈정거렸다. 

"시덥잖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자식들, 창피한 줄도 모르는 모양이야."

"시덥잖은 소리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조르바?"

"무슨 뜻이냐 하면, 임금이니, 민주주의니, 국민 투표니, 국회의원이니 해봐야 다 그게 그거니까 하는 소리요." 

...

그의 정신은 세상보다 더 빨리 달리고 있었다. 


그의 왼손 집게손가락이 반 이상 잘려 나간 걸 알았다. ...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고 싶은 건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건지 아시요? 프르르! 녹로를 돌리면 진흙 덩익 동그랗게 되는 겁니다. 흡사 이런 말을 알아들은 듯이 말입니다.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지, 아니 램프는 만들까,  귀신도 모를 물건을 만들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 말이요!" ...

"참, 그게 녹로 돌리는 데 자꾸 거치적거리더란 말입니다. 이게 끼어들어 글쎄 내가 만들려던 걸 뭉개어 놓지 뭡니까. 그래서 어느 날 손도끼를 들어.."

"아프지 않던가요?"

"그게 무슨 말이오! 나는 목석이 아니요. 나도 사람입니다. 당연히 아프지요. 하지만 이게 자꾸 거치적거리며 신경을 돋우었어요. 그래서 잘라 버렸지요."


1896년..

"총을 들고 크레타 반란군에 가담했지요.."

"그때는 내 피가 뜨거웠어요. 도무지 '왜'라든지 '어째서'같은 걸 생각해 볼 수가 없었으니까요. 사물을 제대로 보고 생각하려면 나남없이 나이 처먹어 분별이 좀 생기고 이빨도 좀 빠져야 합니다. 이빨 하나 없는 늙은이라면, '안 돼, 얘들아. 깨물면 못써'하고 소리치긴 쉽습니다. 그러나 이빨 서른두 개가 말짱할 때는.. 사람이란 젊을 동안은 아주 야수 같은가 봐요. 그애요, 두목. 사람 잡아먹는 야수 말이오!"


"우리는 반란군이 되어 그 지랄을 했는데, 사기 치고, 훔치고, 죽이고 했는데, 그 덕분에 게오르기오스 왕자가 크레타로 왔답니다. 그러고는 자유라니!"...

"우리가 이 더러운 놈의 세상에서 자유를 누리고 싶으면 살인을 저지르고 사기를 치고 해야 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하나의 정열에서 풀려나와 다른 더 고상한 정열의 지배를 받는 것, 그러나 이 역시 예속의 한 형태가 아닌가? 이상을 위하여, 종족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다? 우리의 지향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더 길어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훨씬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의 한계에 이르지 않은 채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자유일까?


붓다의 노래가 내가 선 대지에서 솟아나 내 존재의 심연으로 들어왔다. '내 언제면 혼자, 친구도 없이, 기쁨과 슬픔도 없이, 오직 만사가 꿈이라는 신성한 확신 하나에만 의지한 채 고독에 들 수 있을까? 언제면 욕망을 털고 누더기 하나만으로 산속에 묻힐 수 있을까? 언제면 내 육신은 단지 병이며 죄악이며 늙음이며 죽음이란 확신을 얻고 두려움 없이 숲으로 은거할 수 있을까. 언제면, 오, 언제면?'



3


수 세기 동안 사라센인들로 이루어진 코르세르 해적은 이슬람 국가 정부의 묵인 아래 이 아프리카에 면한 크레타 해안을 기습하여 기독교인들의 양과 여자와 아이들을 노략질하지 않았던가. 해적들은 붉은 혁대로 희생자들을 묶어 선창에 처넣고는 알제, 알렉산드리아, 베이루트 등지에 팔아넘겼다. 그 해변에서 물이 빠진 일이 없었으니 수 세기 동안 크레타 여자들의 곡소리는 끊일 날이 없었을 터이다.  


"시장하지 않으시다! 하지만 아침부터 아무것도 안 들지 않았어요?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좀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 싣는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다 두목을 팽개치고 말 거라고요."


"만일 고개를 들어 받를 보거나 나무를 보거나 여자를(늙은것이라도 말입니다)보면, 그때까지 하던 계산이나 숫자가 확 날아가 버려요. 날개를 달고 날아가 버리면 나는 또 쫓아가야 하고.."

"하지만 그거야 당신 잘못이죠, 조르바." 나는 그를 놀려 주려고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정신 집중을 못하니까."

"두목 말씀이 옳으리도 모르지.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거든요. 현명한 솔로몬 대왕도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봅시다, 어느 날 나는 조그만 마을로 갔습니다. 갔더니 아흔을 넘긴 듯한 할아버지 한 분이 바삐 아몬드 나무를 심고 있더군요. 그래서 내가 물었지요. '아니, 할아버지! 아몬드 나무를 심고 계시잖아요?' 그랬더니 허리가 꼬부라진 이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리며, '오냐, 나는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단다.' 내가 대꾸했죠. '저는 금방 죽을 것처럼 사는데요.' 자, 누가 맞을까요, 두목?"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왜 대답을 못하시나?"

나는 조용히 있었다. 두 갈래의 똑같이 험하고 가파른 길이 같은 봉우리로 이끌 수도 있다.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사는 거나,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으로 사는 것은 어쩌면 똑같은 것이다. 그러나 조르바가 물었을 때 나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영혼이라는 이름의 짐을 지고 다니는 육체라는 이름의 짐슨을 실컷 먹이고 마른 목은 포도주로 축여 주었다. 음식은 곧 피로 변했고,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고, 우리 옆에 앉은 여자는 시시각각으로 젊어져, 얼굴의 주름살도 사라져 가고 있었다.  



4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반드시 그 여자를 갈망해야 해요. 그것이 발 여자라는 가여운 동물이 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겁니다."


지나가는 여자를 봐도 그는 말을 멈추고 큰일이나 난 듯이 말한다.

"대체 저 신비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는 묻고 또 묻는다. "여자란 무엇인가요? 왜 이렇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지요? 말해 보시오, 나는 저 여자란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고 있는 거요."

그는 남자나, 꽃핀 나무, 냉수 한 컵을 보고도 똑같이 놀라며 의문을 갖는다. 조르바는 모든 사물을 매일 처음 보는 듯이 대하는 것이다.


"두목, 이렇게 말한다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만 마쇼. 당신 대가리는 아무리 봐도 아직 여문 것 같지 않소. 올해 몇이시오?"

"서른 다섯이오."

"그럼 앞으로도 여물긴 텄군."

그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이 일격에 얼떨떨했다.

"조르바, 당신은 사람을 너무 믿지 않는 것 같은데요?" 내가 반격했다.

"두목, 화내지 마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소. 내가 사람을 믿는다면, 하느님도 믿고 악마도 믿을 거요. 그럼 온통 그것밖에 없어요. 두목, 그렇게 되면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고 골치 아픈 문제가 무더기로 나한테 닥쳐요.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이에요. 두목같이 고매하신 양반은 이걸 모르시겠지. 즘승한테는 모든 게 너무 쉬워요. 거리낄 게 없으니까요. 아니라고요? 짐승이라니까요! 짐승은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조녕하고 두려워해요.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도 뽑아 갈 거요. 두목, 거리를 둬요! 놈들 간덩이를 키우지 말아요. 우리는 평등하다, 우리에겐 똑같은 권리가 있다, 이따위 소리는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을 거예요.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내버려 둘 거요. 정말이지 두목을 위해 충고하건대, 거리를 둬요!"

"아니,당신은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나는 격분해서 소리쳤다. 

"안 믿지요. 아무 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그놈이 유일하게 내가 아는 놈이고, 유일하게 내 수중에 있는 놈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모조리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거요.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

... 

내 머리는 조르바에게 동의하고 있었지만 내 가슴은 거부했다.



5


"두목, 사람들 좀 그대로 놔둬요. 그 사람들 눈뜨게 해주려고 하지 말아요! 그래, 눈의 띄워 놓았다고 칩시다. 뭘 보겠어요? 자기들 비참한 처지밖에 더 봐요? 두목, 눈 감은 놈은 감은 대로 놔둬요! 꿈꾸게 내버려 두란 말이에요!"


"만의 하나, 그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지금의 암흑 세계보다 더 나은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다면 또 모르겠소. 보여 줄 수 있어요?"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타파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폐허에 무엇을 세워야 하는지, 그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나는 생각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을 고스란히 품은 채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에 단단히 뿌리박고 선 이 조르바의 겨냥이 빗나갈 리 없다. 아프리카인들이 왜 뱀을 섬기는가? 온몸으로 땅을 쓰다듬는 뱀은 대지의 모든 비밀을 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뱀은 배로, 꼬리로,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의 경우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 오히려 공중을 나는 새들처럼 골이 빈 것들일 뿐.



6


"먹는 음식으로 뭘 하는가를 가르쳐 주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말해 줄 수 있어요. 혹자는 먹은 음식으로 비계와 똥을 만들어 내고,혹자는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드렁 내고, 혹자는 신을 만드어 낸다나 어쩐다나 합디다. 그러니 인간에게 세 가지 부류가 있을 수밖에요. 두목, 나는 최악의 인간도 최선의 인간도 아니오. 중간쯤에 들겠지요. 나는 내가 먹는 걸로 일과 좋은 기분을 만들어 냅니다. 뭐,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요!"

그는 장난기 있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두목, 당신은 말이오..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먹는 걸로 신을 만들어 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소. 그러데 그게 잘 되지 앟으니까 괴로워하는 거고. 까마귀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까마귀에게 일어난 일이라니, 그게 뭡니까 조르바?"

"말씀드리지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 거지요. 그 이후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步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절뚝절뚝 걸을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오."


"여자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한다는 짓이, 처음 만난 사내와 붙어 새끼를 까놓는 게 고작이오. 사내에게서 뭘 기대할 수 있겠어요? 사내들이란 그 덫에 걸리고 맙니다."


지금 세상이 아닌, 좀 더 원시적이고 창조적인 시대였다면, 조르바는 한 종족의 추장쯤은 넉넉히 했으리라. 


"두목, 나는 벌써 대가리 꼭대기가 하얗게 세어 있고 이빨도 흔들거리기 시작해요. 그래서 미적거릴 시간이 없어요. 당신은 젊으니까 참고 기다릴 수 있겠지요. 하지만 감히 선언합니다만, 나이 먹을수록 나는 더 거칠게 살 겁니다. 어느 놈도 사람일ㄴ 나이를 먹으면 침착해진다는 소릴 못하게 할 겁니다. 죽음이 오는 걸 보고는 목을 쑥 내밀고 '날 잡아 잡수, 그래야 천당 가지' 이런다는 것도 안 될 말이지요! 오래 살면 오래 살수록 나는 반항합니다. 나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정복해야 하니까요!"


"인생이란 늙은 부불리나와 아주 똑같습니다. 늙었지요? 그래요. 하지만 묘미가 없지 않아요. 사람을 껄떡 넘어가게 하는 쪽으로는 아주 조예가 깊다니까요. 눈을 감으면 스무 살짜리 계집을 안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말지요. 맹세코 말하지만, 불 끄고 그 짓 할 때 저 늙은 것은 영락없는 스무 살이에요.

당신은 이렇게 반문하겠죠. 무르익다 못해 쉬어 터진 여자 아니냐, 어디 좀 많이 방탕하게 살고, 어디 한두 명하고 놀아났냐.. 제독, 선원, 군인, 농부, 유랑 극단 단원, 목사, 신부, 경찰관, 학교 선생, 치안 판사! 그래서 뭐요? 뭐가 어쨌다는 겁니까? 저 여자는 금방 잊어버려요. 저 늙은 갈보가 그렇다고요. 옛날 애인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할 때마다 달라져요. 절대 농담 아닙니다. 할 때마다 다정한 비둘기가 되었다가 순결한 백조가 되었다가 상큼한 종달새가 되었다가.. 그리고 낯빛을 붉혀요. 그래요, 정말 그런다고요. 처음 하는것인 양 낯빛을 붉히고 파르르 떨어요! 두목, 여자라는 건 참 알다가도 모를 동물이지요? 천 번을 깔려도 천 번을 처녀로 다시 일어서는 겁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기억을 못 하니까 그렇죠!"


나는 앵무새란 놈이 카나바로 이름을 부르는게 기분 좋은걸 어쩝니까? 밤에 저 늙은 죄인은 앵무새 새장을 침대 머리에다 걸어 놓습니다. 이 작은 악마에겐 어둠을 뚫어보는 힘이 있어서 둘이서 기분을 내자마자 소리를 지릅니다. '카나바로! 카나바로!' 하고.

내 맹세코 말씀올립지요만, 두목, 쓰레기 같은 책만 잔뜩 집어넣어 놓은 당신 머리가 이해할 턱이 없겠소만, 이건 정말 맹세할 수 있어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내 발에는 에나멜 장화가 척 신겨서고, 머리에는 깃털 모자가 씌워지고, 보드라운 수염에서는 파촐리 향수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답니다. 'Buon giorno! Buona sera! Magiate macaronia!(좋은 아침! 좋은 저녁! 마카로니 드세요!)' 나는 진짜 카나바로가 되는 겁니다. 나는 수천 발의 총탄을 맞은 역전의 기함(旗艦)에 척 올라 떠나가는 겁니다... 보일러에 불을 댕겨! 포격 개시!"

조르바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두목, 나를 용서해 주셔야겠소. 아무래도 나는 우리 알렉시스 할아버지 닮았어. 하느님께서 그의 유택을 지켜 주시기를! 할아버지는 백 살 되던 해에도 문 앞에 앉아 우물로 물 길러 가는 처녀 아이들에게 추파를 던지고는 했지요. 그러나 시력이 좋지 않아 똑똑히 볼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처녀 아이들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지요. '어디 보자, 네가 누구더라?' '마수트란도니 집 딸 크제니오예요.' '가까이 오너라. 어디 좀 만져 보자. 오래두. 겁낼 것 없느니라!' 처녀 아이는 예의에 맞는 표정을 지으려 애쓰며 다가갑니다. 그러면 우리 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천천히, 그리고 아주 육감적으로 얼굴을 쓰다듬지요. 그럴라치면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 내린답니다. '할아버지, 왜 우세요?' 내가 언제 할아버지께 여쭈어 봤지요. '얘야, 내가 저렇게 많은 계집아이들을 남겨 놓고 죽어 가는데 울지 않게 생겼니?'

후유~ 불쌍한 우리 할아버지! 내가 할아버지 말씀에 얼마나 공감하는지 아시오? 나는 이따금 이렇게 한탄하지요. '아, 제기랄! 참한 계집들은 나 죽을 때 몽땅 죽어 버렸으면!' 하지만 그 잡것들은 계속 살아 있을 거고, 여전히 뜨끈뜨끈하게 재미 보고, 사내들은 그런 것들을 끼고 주물럭거리겠죠, 나는 그것들이 밟고 다닐 흙이 되어 있을 텐데!"



7


행복이란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 것인지 다시금 느꼈다. 포도주 한 잔, 군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다 소리. 단지 그뿐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행복이 있음을 느끼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


"나는 남자 아닌 줄 아시오? 딴 놈들처럼 나도 저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고 말았지요. 나는 결혼을 그렇게 부릅니다(결혼한 자들이여, 나를 용서하시라)!"


여자는 맑은 샘물과 같습니다. 거기 들여다보면 모습이 비칩니다. 마시면 되는 겁니다. 뼈마디가 녹신녹신할 때까지 마시면 되는 겁니다. 이윽고 목이 마른, 다음 사람이 옵니다. 그 사람도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며 마시면 되는 겁니다.



8


그는 울타리 곁을 지나다 갓 핀 수선화 한 송이를 꺽었다. 그러고는 한동안 그 꽃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보아도 성이 차지 않는다는 듯이, 수선화를 생전 처음으로 보는 사람처럼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눈을 감고 냄새를 맡더니 한숨까지 쉬었다. 그는 꽃을 내게 건네주었다. 

"두목,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어쩌면 우리를 부르고 있는데 우리가 듣지 못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두목, 언제면 우리 귀가 뚫리까요? 언제면 눈을 떠서 볼 수 있을까요? 언제면 우리가 팔을 벌리고 만물 - 돌, 비, 꽃 그리고 사람들 - 을 안을 수 있을까요? 두목, 어떻게 생각해요? 당신이 읽은 책에는 뭐라고 쓰여 있습니까?"  

나는 조르바가 즐겨 쓰는 표현으로 대답했다. "악마나 물어 가라고 합디다! 그래요, 악마나 물어 가라고 합디다. 당신 말마따나. 딴건 없어요."

조르바가 내 팔을 잡았다.

"두목, 내 생각을 말씀드리겠는데, 부디 화는 내지 마시오. 당신 책을 몽땅 쌓아 놓고 불이나 확 싸질러 버리쇼. 그러고 나면 누가 압니까. 당신은 바보가 아니고, 당신은 착한 사람이니까... 뭔가 썩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이 대목에서 두목한테 한번 믿고 맡겨 봅시다. 자, 수컷을 불명예스럽게 만들지 마시오! 신과 악마가 이 기찬 음식을 당신에게 내린 겁니다. 당신에게 이가 있지요? 그럼 이를 박아요. 손을 내밀어 저 과일을 따 먹어요! 조물주가 손을 뭣하라고 달아 놓았겠어요! 손을 내밀어 취하라고 달아 놓은 거지! 그러니까 잡아요! 살아오면서 별별 여자를 다 보아 왔습니다. 그렇지만 저 망할 년의 과부는 교회뾰족탑도 족히 흔들어 놓을 것 같습디다!"

"말썽이 생기는 건 질색이에요!" ...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조르바의 말이 옳다는 건 나도 알았다. 그러나 그럴 용기가 내겐 없었다. 나는 아무래도 인생의 길을 잘못든 것 같았다 타인과의 접촉은 이제 나만의 덧없는 독백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나는 타락해 있었다.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에 대한 책을 읽는 것 중에서 택일해야 한다면 책을 선택할 정도로 타락해 있었다. 



9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정네들의 잘소잉에요. 우리는 최후의 심판 날에 우리가 한 짓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 여자와 잘 수 있는데도 자지 않는 사내에게 화 있을진저! 남자와 잘 수 있는데도 안 자는 여자에게 화 있을진저!"



10


"도대체 누가 만들어 내었는가? 이 주저의 미로를, 이 추측의 사원을, 이 죄악의 물주머니를, 천 가지 기만이 파종된 이 밭을, 이 지옥의 문을, 잔꾀로 넘쳐 나는 이 바구니를, 꿀맛이 나는 이 독을, 중생을 땅에 묶어 놓는 이 사슬을 - 바로 여자를!"

나는 화덕 앞 바닥에 앉아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이 붓다의 노래를 옮겨 적고 있었다. 마(魔 마귀마)를 몰아내려는 몸부림이었다. 내 마음속에 들어앉은 비에 젖은 여인의 몸, 그 영상을 떨쳐 내려 기를 썼다.  


"이 세상일은 간단한 거예요. 몇 번이나 말씀드려야해요? 간단한 걸 가지고 자꾸 복잡하게 만들어 헷갈리게 하지 말래도!"


"확대경으로 음료수를 들여다보면 어떤 줄 알아요? 언젠가 기술자 하나가 가르쳐 줍디다. 물에는 맨눈으로 보이지 ㅇ낳는 쬐그만 벌레가 우글거린답디다. 보고는 못 마시지... 안 마시면 목이 마르지... 두목, 확대경을 부숴 버려요. 그럼 벌레도 사라지고, 물도 마실 수 있고, 시원해지는 거지!"


나는 내 인생을 돌아보았다. 미적지근하고 모순과 주저로 점철된 몽롱한 반생이었다. 나는 허망한 기분으로 지난 일을 생각했다. 허공중에서 바람을 받은 한 조각 구름처럼 내 인생은 끊임없이 모습을 바꾸어 갔다. 흩어졌다가는 다시 모이고, 모였다가는 다시 모습을 바꾸어, 차례로 백조가 되고, 개가 되고, 악마가 되고, 전갈이 되고, 원숭이가 되었다. 구름은 하염없이 흩날리고 찢겼다. 하늘의 바람에 밀리며 무지갯빛으로 물들었다.


오늘나에야 나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행위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가를 깨닫는다.



12


내가 좋아해서 여기까지 가져온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말라르메의 시집이었다. 천천히 마음 내키는 대로 읽다가 책을 덮었고, 다시 펼쳤다가 결국은 내려놓고 말았다. 그의 시는 핏기도 없고 냄새도 없고 인간의 본질을 비켜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경험한 느낌이었다. 그의 시가 창백한 진공 속의 공허한 언어로 보였던 것이다. 박테리아 한 마리 없는 완벽한 증류수였지만 영양분 역시 하나 없는 물 같은 것, 요컨대 생명이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창조의 섬광을 상실한 종교에서 제신(諸神 모두제 귀신신)은 결국 인간의 고독과벽면을 치장하는 시적 모티프나 예배 용품으로 전락했다.  


인간의 본질은 야만스럽고, 거칠며 불순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살과 고통의 절규로 이루어진 것이다.


전에는 그토록 나를 매혹하던 이 모든 것들이 이날 아침에는 지적인 곡예. 세련된 협잡에 불과한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문명이 쇠퇴하는 모습니다.


아무렴. 무릇 위대한 환상가와 위대한 시인은 사물을 이런 식으로 보지 않던가! 매사를 처음 대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기가 선택한 대로만 행동하네.'(아프리카에 있는 친구 카라얀니스의 편지 내용 중에서)


나는 죽기 전에 되도록 많은 땅과 바다를 보고 만지고 싶었다.


'열정과 광기로 싸우는 자가 행복하다면,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 자네 식으로 말하면, 나는 행복을 내 키에 맞게 재단했는지 어쩐지 잘 모르겠네. 용케 그렇게 했다면, 그렇다면 나는 위대한 사람일 것일세. 나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에 맞추어 키를 늘이고 싶네.... 친구여, 행동하기 싫어하는 내 스승이여. 행동, 행동... 구원의 길은 그것뿐이네.'(책 초반에 떠난 친구의 편지 내용)



13


'사람에겐 바보 같은 구석이 있게 마련입니다. 가장 바보 같은 놈은, 내 생각에는 바보 같은 구석이 엇는 놈일 것입니다.'(칸디아로 간 조르바의 편지 내용 중에서)


'모험은 건강에 아주 좋습니다.'(칸디아로 간 조르바의 편지 내용 중에서)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여.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칸디아로 간 조르바의 편지 내용 중에서)



14


"젊은이들이야 까짓 말썽 같은 걸 겁낼 필요 없지!"



15


"무슨 음식을 특히 좋아하십니까, 영감님?"

"아무거나 다 좋아하지요.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고 하는 건 큰 죄악이지요."

"왜요? 골라서 먹을 수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안 되지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안됩니까?"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지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끄러웠다. 내 마음은 일찍이 그런 품위와 연민의 높이에 이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몸을 떨었다. '영원'이라는, 식인(食人)의 단어에 잡아먹힐 위험에 처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영원'이라는 단어에 거의 빠질 뻔했다. 또 '사랑', '희망', '국가', '하느님' 같은 숱한 단어에도 빠질 뻔했다. 그 단어 하나하나를 정복하고 지날 때면 나는 흡사 위험에서 빠져나와 전진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나는 겨우 단어를 바꾸어 놓고 그것을 구원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2년 전부터는 '붓다'라는 말의 가장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이제 확실히 느낀다. 조르바 덕분이다. 붓다는 최후의 우물, 마지막 낭떠러지 단어가 될 것이며, 이제 나는 영원히 해방될 것이라고. 영원히? 그거야 우리가 늘 하는 말이다.


'명상도 일종의 광산이 아닌가. 그럼 나도 파야지.' ..



16


'자기 자신 안에 행복의 근원을 갖지 않은 자에게 화 있을진저!'

'남을 즐겁게 하려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금생(今生 이제금 날생)과 내생(來生 올래 날생)이 하나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나는 붓다, 하느님, 조국, 이상, 이 모든 허깨비들에게서 풀려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붓다, 하느님, 조국, 이상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지 못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17


"이게 사람이 자유를 얻는 도리올시다. 내 말 잘 들어요. 터질 만큼 처넣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금욕주의 같은 걸로는 안 돼요. 생각해 봐요, 두목. 악마를 이기려면 자기가 악마 한 마리 반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18


조르바가 구석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게 네 번째 이론이 있소이다!"

나는 불안스럽게 조르바를 바라보았다. 주교도 그를 돌아보았다.

"말씀해 보시오. 당신의 이론 역시 축복을 받으시기를! 그래, 무엇이오?"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는 것!" 조르바가 엄숙하게 말했다.

주교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이론도 있지요, 영감님." 조르바는 말을 이었다. "무엇이냐 하면, 둘 더하기 둘은 넷이 아니라는 거요. 어때요, 영감님. 내기 한번 해봅시다! 하나 고르시지!"

"나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주교는 떠듬거리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시선을 내게로 던졌다.

"나도 모르겠소!" 조르바가 이렇게 말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세만트론의 달콤한 소리에 매혹되었다. 이런 생각이 스쳤다. 삶의 고양된 리듬은 심지어 그것이 쇠락했을 때조차 그 감동적이고 고귀한 외적 형식을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구나. 정신은 떠나고, 오랜 진화 끝에 조개껍데기처럼 정교해진 정신의 커다란 집만 뒤에 남았다.



20


"만사는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그가 조금 뜸을 들이고는 말을 계속했다. "믿음이 있습니까? 그럼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뭇조각도 성물(聖物)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나요? 그럼 거룩한 십자가도 그런 사람에겐 문설주나 다름이 없습니다.


"당신에게는 아무래도 쇠귀에 경 읽기가 될 수밖에 없겠어요."

내가 항변했다. "뭐라고요? 나도 이해할 건 이해하는 사람인데.. 그건 좀 잊지 말고 삽시다."

"그래요, 당신은 그 잘난 머리로 이해라는 걸 합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이건 옳고 저건 그르다, 이건 진실이고 저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옳고 딴 놈은 틀렸다.' 그래서 어떻게 된다는 겁니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당신 팔과 가슴을 봅니다. 그래, 팔과 가슴이 뭘 합니까? 침묵한다 이겁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아요. 흡사 피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 같다 이겁니다. 그래,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건가요? 머리로? 웃기지 맙시다!"


"사람이라는 게 언제쯤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게 될까요? 우리는 바지를 입고 셔츠를 걸치고 칼라를 세우고 모자를 씁니다만 그래 봐야 아직 노새 새끼, 여우 새끼, 이리 새끼, 돼지 새끼를 못 면해요. 하느님 형상으로 만들어졌다고? 누가? 우리가? 나 같으ㅕㄴ 인간의 그 멍청한 쌍통에도 침을 탁 뱉겠소!"


"내 조국으로부터 해방되고, 신부들로부터 해방되고, 돈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나는 짐을 덜기 시작했습니다. 있는 족족 덜어 버린 겁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내 짐을 덜었습니다. 자, 이런 걸 뭐라고 하던가요? 나는 구원의 길을 찾는 겁니다. 나는 인간이 되고 있습니다."


"내게는, 저건 터키 놈, 이건 불가리아 놈, 요건 그리스 놈,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두목, 나는 당신이 들으면 머리카락이 쭈뼛할 짓도 조국을 위해서랍시고 태연하게 했습니다. 나는 사람의 멱도 따고 마을에 불도 지르고 강도 짓도하고 강간도 하고 일가족을 몰살하기도 햇습니다. 왜요? 불가리아 놈, 아니면 터키 놈이었기 때문이지요. 나는 때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습니다. '염병할 놈, 지옥으로 곧장 가라, 이 돼지 같은 놈! 싹 꺼져버려. 이 병신아!' 요새 와서는 이 사람은 좋은 사람, 저 사람은 나쁜 놈, 이런 식입니다. 그리스인이든 불가리아인이든 터키인이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좋은 사람이냐, 나쁜 놈이냐? 요새 내게 문제가 되는 건 이것뿐입니다. 나이를 더 먹으면 - 마지막으로 입에 들어갈 빵 덩어리에다 놓고 맹세합니다만 - 이것도 상관하지 않을 겁니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놈이든 나는 그것들이 불쌍해요. 모두가 한가집니다. 태연해야지 하고 생각해도 사람만 보면 가슴이 뭉클해요. 오, 여기 또 하나 불쌍한 것이 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자 역시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두려워한다. 이자 속에도 하느님과 악마가 있고, 때가 되면 뻗어 땅 밑에 널빤지처럼 꼿꼿하게 눕고, 구더기 밥이 된다. 불쌍한 것! 우리는 모두 한 형제간이지. 모두가 구더기 밥이니까!"


"내 조국이라고 했어요? 당신은 책에 쓰여 있는 그 엉터리 수작을 다 믿어요? 당신이 믿어야 할 것은 바로 나같은 사람이에요. 조국 같은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나는 그 모든 걸 종헙했습니다. 내게는 끝났어요. 당신은 어떻게 되어 있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조르바라는 사내가 부러웠다. 그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로 산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


그 역시 봄 풍경에 화들짝 놀란 것이었다. "저게 무엇이오?" 그가 놀라도 크게 놀라면서 물었다. "두목, 저기 저 건너 가슴을 뭉클거리게 하는 파란 색깔, 저 기적이 무엇이오? 당신은 저 기적을 뭐라고 부르지요? 바다? 바다? 꽃으로 된 초록빛 앞치마를 입고 있는 저것은? 대지라고 그러오? 이걸 만든 예술가는 누구지요? 두목, 내 맹세코 말하지만, 내가 이런 걸 보는 건 처음이오!"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그를 불렀다. "조르바, 혹 돌아 버린 건 아닌가요?"

"무얼 비웃고 있어요? 당신 눈에는 안 보이는가요? 두목, 봐요. 저 모든 기적 뒤에 도사리고 있는 마술을 말이오."


"대가리는 안 달고 있어도 상관없는데, 모자는 제대로 된 걸 써야 한단 말입니다..! 이 미친놈의 세상에서는!"


“모든 문제가 일을 어정쩡하게 하기 때문이에요.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건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끈하게 하는 겁니다. 못을 박을 때도 한 번에 제대로 때려 박는 식으로 해나가면 우리는 결국 승리하게 됩니다.”



21


나는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조르바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다. 바다, 여자, 술, 그리고 맹렬한 노동! 일과 술과 사랑에 자신을 던져 넣고, 하느님도 악마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것이 젊음이란 것이다!" 그러면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처럼 나는 조르바의말을 계속 되뇌면서 걸었다.  


시원한 초록 바닷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육체적 행복가밍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내 정신이 이 육체의환희를 가로채어 제 틀에 욱여 넣고 그것으로 생각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내 온몸이 한 마리 짐승처럼 환희를 즐기도록 내버려 두었다. 



22


"이놈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같이 불의, 불의 , 불의입니다! 나는 이놈의 세상에 끼지 않겠어요. 암, 나 조르바, 벌레 같은 놈, 굼벵이 같은 놈이지만 어림없고말고! ..." 

"두목, 참을 수가 없어요. 산택 좀 하고 와야겠어요. 산을 두어 번 오르내려 내 몸을 피로로 잔뜩 채워야 오늘 밤 잠잠할 겁니다. 오, 과부여! 내 그대를 위해 미롤로그를 불러야 할 것 같구나!"

그는 밖으로 뛰어나가 산 쪽을 향하더니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침대에 누워 등불을 껐다. 그리고 내 졸렬하고도 비인간적인 습관에 ㄸ라 다시 한 번 현실을 왜곡하기 시작했다. 현실에서 피와 살과 뼈를 제거하여 추상적 관념으로 환원시키고, 그것을 일반적 법칙들과 연결시켜 지금 일어난 일은 결국 필연적이었다는 끔찍한 결론에 도달했다. 더 나ㅏ가, 오늘의 비극은 우주적인 조화(調和 고를조 화할화)에 기여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거라는 최종의 가증스러운 위안에 이르렀던 것이다.


자기 위안 단계에 이른 나는 과부 이야기를 하려 했다. 조르바는 그 긴팔을 쑥 내밀어 손바닥으로 내 입을 막아 버렸다.

"닥쳐요!" 그가 구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닥쳤다. 부끄러웠다. '진짜 사내란 이런 거야...' 나는 조르바의 슬픔을 부러워하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채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



23


이게 인생이거니... 변화무쌍하고, 요령부득이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그러나 마음대로 안 되는... 무자비한 인생 ... 무지몽매한 크레타 농사꾼들은 지구 저쪽 끝엣 온 퇴물 카바레 가수를 둘러싸고 죽어 가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치 그 여자는 한 인간이 아니라는 양 비인간적으로 즐거워 하고 있었다. 흡사 온 마을 사람들이 해변으로 몰려와, 하늘에서 떨어진 낯선 새가 날개를 부러뜨리고 퍼덕거리며 죽어 가고 있는 꼴을 구경하는 형국이었다. 부인이 늙은 공작새, 늙은 앙고라 고양이, 병든 물개나 되는 것처럼...



24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누가 이들을 창조했을까요? 왜요? 그리고 무엇볻도." 여기에서 조르바의 목소리는 분노와 공포로 떨었다. ".. 왜 사람들은 죽는 것일까요?"

"모르겠어요, 조르바." 내가 대답했다. 부끄러웠다. 가장 단순한질문, 가장 기초적인 질문을 받고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 같아서였다.

"모르신다!" 조르바는 놀라움으로 눈을 둥그렇게 뜨고 소리쳤다.

"아니, 두목, 당신이 읽은 그 모든 빌어먹을 책들.. 그것들은 대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건 왜 읽어요? 책이 그런 걸 알려 주지 않으면 도대체 뭘 알려 주는데요?"

"인간의 당혹감에 대해 알려 주죠. 당신이 나한테 던진 발 그런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할 수없는 이간의 당혹감 말이에요."


"두목, 제발 설명해 주시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오랜 세월 당신은 청춘을 불사르며 마법의 주문이 잔뜩 쓰인 책을 읽었어요. 모르긴 하지만 종이도 한 3톤은 족히 씹고 또 씹었을 거예요! 거기에서 뭔가 얻어 낸 게 있을 것 아닙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너무나도 깊은 비통함이 묻어 있어서 나는 가심이 미어졌다. 아, 이 사라에게 대답할 능력이 내게 있었다면!


"나는 매순간 죽음을 생각해요. 죽음을 보는 거지, 무서웧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절댈, 절대로, 나는 저게 좋아하ㅗ는 하지 않아요. 아니, 전혀 좋지 않아요!"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얼마 후 그는 말을 계속했다.

"부불리나가 살아 있을 동안 말입니다. 그 어떤 카나바로도 나만큼 그 여자를 기쁘게 해준 사람은 없습니다. 이 쪼그랑 망태기 같은 조르바만큼 말입니다. 이유를 알고 싶어요? 이 세상의 모든 카나바로는 그 여자에게 키스하면서도 자기 함대나, 왕이나, 크레타나,훈장이나, 마누라나... 이런 걸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걸 깡그리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할망구도 그걸 알고 있었어요. 유식한 양반한테 하나 가르쳐 드리는데, 여자에게 그 이상의 기쁨은 없는 법입니다. 진짜 여자는.. 잘 들어 두시오, 도움이 될 테니까..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기쁨을 받는 것보다 자기가 기쁨을 주고 있다는 데서 더 큰 기쁨을 느끼는 법이에요."


"조르바, 사람이란 누구나 뱃속에 악마 몇 마리쯤은 갖고 있으니 그건 걱정 마세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거지요. 중요한 건, 이 악마들의 최종 목적이 같아야 한다는 거죠. 가는 방법은 다르더라도."

이 말이 조르바를 감동시킨 모양이었다. 그는 그 큰 머리를 무릎 위에 올리고 생각했다. 

"무슨 목적?" 그가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조르바,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너무 어려운 걸 물어보네요. 그걸 내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그냥 간단히 말해 봐요. 나도 좀 알게. 지금까지 나는 내 속에 든 악마가 하고 싶다는 대로 하게 내버려 뒀고, 가고 싶다는 대로 가게 내버려 뒀지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엉큼하다 하는가 하면 정직하다 하고, 또 날 보고 미쳤다 하는가 하면 솔로몬처럼 지혜롭다고 해요. 그것들이 다 내가 맞고, 그보다 훨씬 많은 걸 더해야 나라는 인간이 돼요. 그러니까 완전 잡탕이야. 자, 그러니 두목, 날 좀 도와주슈. 이 문제 좀 풀어 보게.. 무슨 목적이오?"

"조르바, 내 말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세 부류의 사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소위, 살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돈 벌고 명성을 얻는 걸 자기 생의 목표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또 한 부류는 자기 삶을 사는 게 아니라 인류의 삶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어서 그걸 목표로 삼는 사람들이지요. 이 사람들은 인간은 결국 하나라고 생각하고 인간을 가르치려 하고, 사랑과 선행을 독려하지요. 마지막 부류는 우주 전체의 삶을 살려는 목표를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나무나 별이나 우주 만물, 우리는 모두 하나다, 우리 모두는 무시무시한 하나의 싸움에 가담한 하나의 실체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요. 무슨 싸움일까요? .. 물질을 정신으로 바꾸는 싸움이지요."


나는 생각했다. 추상적 생각이 지극한 경지에 이르고 나서야, 그래서 한 편의 이야기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었으면! 그러나 오직 위대한 시인만이 그 경지에 이르고, 범부는 수백 년 묵묵히 노력해야만 그런 경지에 이르는 걸 어찌하랴.



25


인간이라는 불운한 존재는 작고 초라한 자신의 삶 둘레에 난공불락이라고 믿는 방벽을 쌓아 올린다. 그 안을 피난처로 삼아, 삶에 미미한 질서와 안정을 부여하려 애쓴다. 미미한 행복을 말이다. 거기에서는 모든 것이 밟아 다져진 길들을, 신성불가침의 반복적 일상을 따라야 하며, 안전하고 단순한 규칙들을 지켜야 한다. 알 수 없는 것들의 무서운 침범을 막으려 요새처럼 방비한 그 테두리 안에서, 자잘한 확신들이 지네처럼 꼬물꼬물 기어다니며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적이 딱 하나 있다. 모두가 죽을 듯이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그 적의 이름은 '거대한 확신'이다. 지금, 이 거대한 확신이 내 존재의 장벽을 뚫고 들어와 내 용혼을 덮치려 한 것이다.



26


"나도 당신 방법을 써볼 거예요. 당신은 버찌를 정복했으니 나는 책으로 책을 정복할 참이에요. 종이를 잔뜩 먹으면 언젠가는 구역질이 날 테지요. 구역질이 나면 확 토해 버리고 영원히 손 끊는 거지요."


"나, 당신과 함께 여기 있을 수도 있어요.." 나는 조르바의 절망적인 애정에 당황하고 말았다. "당신과 함께 어디론가 떠날 수도 있고. 나는 자유로우니까."

조르바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보다 좀 길 거예요.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매달려 있으니까, 이리저리 다니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언젠가는 자를 거요!"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당신한테는 무식이 좀 필요해요. 무식, 아시겠어요? 모든 걸 걸고 도박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은 머리가 힘이 세니까 항상 그 머리가 당신을 이겨 먹을 거라고요. 인간의 머리란 구멍가게 주인과 같은 거예요. 계속 장부에 적으며 계산을 해요.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아주 좀상스러운 소매상이지요. 가진 걸 몽땅 거는 일은 절대 없고 꼭 예비로 뭘 남겨 둬요. 머리는 줄을 자르지 않아요. 아니, 아니지! 오히려 더 단단히 매달려요, 이 잡것은! 붙잡고 있던 줄을 놓치기라도 하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하다가 완전 끝장나 버려요. 그런데 사람이 이 줄을 끊어 버리지 않으면 산다는 게 무슨 맛이겠어요? 노란 카밀러 맛이지. 멀건 카밀러 차 말이오. 럼주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요. 럼주는 인생을 확 까뒤집어 보게 만드는데!"


조르바의 말은 구구절절 옳았다. 어릴 때에는 나도 미친 충동과 초인적인 욕망이 넘쳐, 세상이 못마땅했다.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조용해졌다. 나는 한계를 정하고,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가르고, 내 연(鳶 솔개연)을 꼭 붙들고는 놓치지 않으려 했다. 


오라지게 추워 할 수 없이 결혼했습니다.(조르바의 편지 중에서)


나는 곧잘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의 이성보다 더 깊고 더 자신만만한 그의 긍지에 찬 태도를 존경했다. 우리들이라면 고통스럽게 몇 년을 걸려 도달할 정신의 경지에 그는 단숨에 가닿았다. 그래서 우리는 말했다. '조르바는 위대한 인간이다!' 때로 그는 그 경지를 훌쩍 넘어 더 멀리 나가 버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말했다. '조르바는 미쳤다!'




역자해설 - 20세기의 오디세우스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구체적인 체험으로서의 여행이 추상적인 꿈을 심화시키고 그 꿈이 여행의 무대를 확장시키듯...


3단계 투쟁, 혹은 3단계 깨달음의 과정..

‘압제자 터키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1단계 투쟁, 우리 내부의 터키라고 할 수 있는 무지, 악의, 공포 같은 모든 형이상학적 추상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2단계 투쟁, 우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 우리가 섬기는 중에 우상이 되어 버린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3단계 투쟁...’


카잔차키스의 삶은, 보이는 존재와 보이지 않는 존재,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 내재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사색과 행동 등등의, 영원히 모순되는 반대 개념에서 하나의 조화를 창출하려는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다.


그가 베르그송에게 경도된 것은, 인간 존재란, 신이 어떤 목적에 따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딛고 넘어가게 마련된 단계에 불과한 것, 따라서 ‘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 도약의 디딤돌로 인간이 창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자기의 예감을 베르그송의 생철학에서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야생마 같은 주인공 조르바는 실제 인물이다. 

조르바라고 하는 호쾌한 기인이 있었다. 행적이 대체 얼마나 기이했는지, 조르바의 어록을 기억나는 대로 옮겨보면 대략 이렇다. 

‘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거치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 버렸어요.’

‘하느님요? 자비로우시고말고요. 하지만 여자가 잠자리로 꾀는데도 이거 거절하는 자는 용서하시지 않을걸요. 거절당한 여자는 풍차라도 돌릴 듯이 한숨을 쉴 테고, 그 한숨 소리가 하느님 귀에 들어가면, 그자가 아무리 선행을 많이 쌓았대도 절대 용서하시지 않을 거라고요.'

'도 닦는 데 방해가 된다고 그걸 잘랐어? 이 병신아, 그건 장애무링 아니라 열쇠야, 열쇠.'

'결혼 말인가요? 정당하게는 한 번 했지요. 부정하게는 1천 번, 아니, 3천 번 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하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 확 부숴 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려.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그의 인생과 작품의 핵심에 위치하는 노른자위 개념이자 그가 지향하던 궁극적인 가치의 하나인 '메토이소노(聖化)'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메토이소노'는 '거룩하게 되기'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 물질과 정신의 임계 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 이것이 '메토이소노'다. 물리적, 화학적 변화 너머에 존재하는 변화, '거룩하게 되기'가 바로 이것이다.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무리적인 변화다.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聖體)'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다. 




2011년에 본 <그리스인 조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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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권의 책에 인생을 묻다..
저자의 인새에 도움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젊은 청춘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책들을  추천하고 있다. 
우선 소개된 책들중에 반정도는 읽은것 같다.
대체로 익히 들어봤음직한 책들 위주로 추천한 듯한 생각을 하였다.
다시말해 그렇게 어려운 책들은 배제시키고 읽기에 어렵지 않은 책들을 추천하였다는 생각을 한다.

'젊음'.. 이것이 주는 특권은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지나봐야지만이 알 수 있는것이 사람이며, 저자는 그것을 지나지 않고도 알차게 보낼 수 있기 위한 자신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띄운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아직 내 나이로도 젊은 시절이긴 하지만 .. 문득문득... 좀더 젊었을때 왜 안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내가 몇 년정도 더 어렸다면... 이런 생각자체가 의미없음에도 나는 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하면 되지 않겠느냐...ㅎㅎ

근래 들어 독서광들의 독서에 관한 책들을 관찰하고 있다.
이 책역시 그렇게 읽게 되었다. 이 뿐 아니라 몇몇의 책들을 읽어볼 생각이다.
그들의 젊음의 책이 어떻게 읽혔는지 그리고 그들에게 끼친 영향은 어떤것인지에 대해 알고 싶고, 그 책들을 나도 읽어 보려한다.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걸까?
내가 읽는 책들이 형편없다는 생각에서일까?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혀 없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읽어야 겠다는 고전에 대해 막연하게 손이 잘 가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프롤로그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청춘에 대한 배반이다!
좌절학 있는 젊음의 생존법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독서라고 감히 단언한다.
읽고, 읽고, 또 읽어라. 당신만의 대학을 세우고 이 세상 어떤 명문대학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 당신만의 지식으로 무장하라.  5
당신의 심장과 영혼을 두드릴 독서목록을, 당신 영혼의 연대기가 될 당신만의 독서목록을 작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7


1부 넘어지고 깨지는 것은 젊음의 특권이다.
1. 실패를 경험하지 않은 청춘은 청춘이 아니다.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을 청춘이라 부를 수 있을까?  17
..시간을 따져 물어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청춘이라고 정의내릴 수는 없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모색하는 시간이 청춘의 시간인 것이다.'  18
'인생에서 가장 큰 회한은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 때 생긴다.'
모든 성공의 가능성에는 모든 실패의가능성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19
'일단 가보자고 결심했죠. 얼핏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어딘가에 길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21
방황에도 종류가 있다. 나를 좀더 성장시키는 생산적인 방황이 있는가 하면, 시간낭비일 뿐인 소모적인 방황도 있다.  23
하루키의 20대는 도서관에서 고전들과 함께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온몸을 부딪쳐 방황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진짜배움, 진짜대학'이 되었다.  25
'나는 사물을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실제로 몸을 움직여서 생각하는 사람이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사람이다.  26
다치바나 다카시<청춘표류>, 무라카미 하루키<슬픈 외국어>

2. 잃어버린 꿈을 찾는 몇 가지 방법
'어떤 사람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 "왜 그럴까?"하고 묻는다. 반면에 나는 예전에는 없었던 것들을 꿈꾸면서 "그건 왜 안 되지?"하고 묻는다.'
'진정한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담배를 끊고 싶은데..."처럼 말하는것이 아니라,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아예 배제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결단을 내린다는 것은 어떤 결과를 도출하기로 결정을 내려서 다른 선택의 가능성을 잘라버린다는 뜻이다. 더 좋은 결단을 내리는 방법은 결단을 많이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결단에서 확실하게 배워라.'  33
우리는 모든 불가능한 요소들을 먼저 따지고 꿈을 다듬고 깎는데 반해 아이들은 어떠한 한계도 생각하지 않고 가능성의 모든 것을 자유롭게 탐험한다. 당신을 감동시킬 수 있는 것, 다른 사람이 자신의 꿈을 듣고 비웃지나 않을까 고민하지 않고 진정으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것, 그것을 모두 적어야 한다.
위대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고, 위대해지려면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35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기 때문이다.'  37
헨리무어는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칠 만한 일을 찾는것이 삶의 비결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이루지 못할 만한 일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슴 뛰는 일을 끝내 발견하지 못한다 해서 조바심내거나 괴로워할 필요는 엇다는 것이다. 반드시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  39
파울로 코엘료는 정신의 길을 나아가는데 가장 힘든 두 가지 시험은 제때를 기다리는 '인내'와 자신이 찾은 것에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라 했다.  40
앤서니 라빈스<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한비야<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스튜어트 에이버리 골드<핑!>

3. 지상 최대의 발견은 나를 알아내는 것이다.
소로는 왜 숲속으로 들어간 것일까? 그는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43
자신과 마주치는 것은 진정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44
'어떤 사람이 불행한 것은 바로 게으름 때문이라고요.'  45
가장 중요한 '나'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자신이 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꿈과 소망도 찾지 못할 것이다.  46
읽을 때마다 나를 눈물짓게 만든 소로의 구절이 있었다. 그는 말한다. 당신은 언제나 옳다고.
그것을 믿어라. 당신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당신 자신을 잃게 되는 것, 그뿐이다.  47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군중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려라.  51
나를 연기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쉬운 일이다. 나를 잃어버리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한 일이다.  52
헨리 데이빗 소로<월든>, 공지영<상처 없는 영혼>, 전혜린<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

4. 당신은 영원한 청춘이다.
법정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늙음이나 죽음이 아닌 녹슨 삶이다.  61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이 세상에 인간의 힘으로 이해 못할 인간의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65
잉게보르크 바하만<삼십세>, 정이현<달콤한 나의 도시>, 김연수<청춘의문장들>

5. 진짜 공부는 지금부터다.
'사람은 왜 배우는가?  ... 인간의 두뇌는 과거에 습득한 것의 극히 일부밖에 기억해내지 못하게 되어 있다. ..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지혜라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71-72
언제나 그렇듯 출발의 시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출발선상에서 발을 뗐다는  그 사실이다.
'꿈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실현하기에 불가능해 보일지라도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으면 은연중에 꿈을 이루어 보려고 하는 힘이 생기거나, 또 그런 꿈을 가지고 잇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이 가치있어 보이기도 한다.'  73
'목표를 확실히 갖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사람의 성장은 상당히 달라진다. 그 목표에 도달하는 자체가 중요해서가 아니라 목표가 그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되어, 일을 하게하고 발전, 진보시키기 때문이다.'  
결과를 함부로 예측하기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아닐까.  75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공부법
첫째, 보다 큰 관점, 즉 인생이라는 거다란 숲의 관점에서 '공부'의 목표를 정할 것!
둘째, 불절불굴의 끈질긴 노력을 할 것! 
셋째, 살아있는 내내 부단히 배울 것을 찾을 것!  76-77
내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배우는 것이다.  
'지금 이 삶에서 어떤 배움을 얻는가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다음 삶을 선택한다.'  77
배우면 배울수록 배워야 할 것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78
히로나카 헤이스케<학문의 즐거움>, 홍정욱<7막 7장>, 신창호<함양과 체찰>


2부 우리가 가진 전부는 '지금, 이순간' 뿐이다.
6. 인생의 형식은 끝이 없는 현재이다.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진 채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소중한 '지금 이 순간'을 무시하고 조롱합니다. 마음속에만 존재하며 실재하지 않는 미래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금'을 축소해 버리면서 매번 그 짐을 더욱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 살면서 잠깐씩만 '지금 이 순간'에 들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살면서 실제로 필요한 경우에만 과거와 미래를 잠깐씩 방문하도록 하십시오.'  86
'시간은 전혀 귀중한 것이 아닙닏. 환상에 불과하기 대문입니다... '지금'만이 마음이 제한하는 범위 너머로 우리를 데리고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87
에크하르트 톨레는 놀랍게도 서른살이 될 때까지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사람이다.  88
'여기'에 있으면서 '거기' 있기를 바라는 모순으로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된다. 무수한 '지금'들이 모여 내일이 되고 미래가 된다. 
사소한 시간들일지라도 그것을 함부로 여긴다면 우리 인생 전체가 걷잡을 수 없이 사소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89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거나 신이 나에게만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느껴질 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지는지 까마득할 때 고전은 이 모든 것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놓고 우리를 기다린다.  91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이 책을 통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것은 다름아닌 '현재'의 소중함이다.  91
'너에게 닥친 일, 그리고 너의 행동, 원칙, 말의 의미에 정신을 집중하라. 너는 마땅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너는 오늘 올바른 사람이 되려고 하기보다는 내일 올바른 사람이 되기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가장 큰 취약점이 바로 이 점이다.  93
에크하르트 톨레<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명상록>

7. 자발적 아웃사이더가 되어라.
'당신은 자신의 내면이 아닌 바깥을 보고 있습니다. .. 자기 자신 속으로 파고들어 보세요.'
타인의 충고나 도움을 기대하지 말라. 내 마음을 울릴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하다.  99
릴케는 가볍고 즐겁기만 한 삶을 경계할 것을 당부한다.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계산을 하지도, 햇수를 세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나무처럼 무성하도록 하십시오, 나무는 억지로 수액을 내지 않으며, 봄의 폭풍속에서도 의연하게 서 있습니다. 혹시나 그 푹풍 뒤에 여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갖지도 않습니다.'  100
조지 버나드 쇼는 '이성적인 사람은 그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킨다. 비이성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적응스키려고 꾸준히 노력한다. 그러므로 모든 진전은 비이성적인 사람에게 달려있다.'  102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에는 '미친 사람이란 자기 세계 속에서 사는 사람이야.'
미쳤다느 건 다시 말해 나 자신이 걸어 갈 수 있는 길의 끝까지 닿아보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미쳣다는 말을 좋아한다. 무언가에 미쳤다. 누군가에 미쳤다. 어딘가에 미쳤다.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으니까. 미쳐야만 미칠 수 있기 때문에..  107
세상이 명령하는 대로 따르거나 맞추지 말고 당신 자신의 길을 걸어라.  108
라이너 마리아 릴케<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빈센트 반 고흐<반 고흐, 영혼의 편지> <반 고흐, 우정의 대화> 

8. 이 세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그런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
한때는 세상 모든 것에 관해 의문을 품으며 살았던 것 같다. 어쩌면 책 읽는 습관을 갖게 된 계기는 세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110
'네게 중요한 것은, 네가 이 세계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그런 사람과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다.... 슬픈 사실은 우리가 자라면서 ...  이 세계 자체에 길들고 있는 거다.'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자신이 가진 가치만이 절대적이고 옳은 것이라 여기며 살다보면 어느 순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된다.  111
단 한 시간이라도 조용히 홀로 앉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 언제인지를 고민해보자.
자신만의 대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13
요슈타인 가아더는 우리에게 훌륭한 철학자가 되는데 필요한 오직 한 가지는 놀라워할 줄 아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114
요슈타인 가아더<소피의 세계>, 공자<논어>, 에릭 호퍼<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9. 고통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고통 속을 통과하는 것이다.
'당신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이제 당신이 죽을 때는 세상은 울고 당신은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121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길을 선책할 수 잇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  124
'당신의 인생을 두 번재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당신은 첫 번째 인생을 형편없이 행동함으로써 망쳐버렸는데, 이제 두 번째 인생을 살면서 지난 번의 과오를 지금 막 다시 되풀이라혀 하고 잇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행동하라.'  127
나느 새롭게 할 수 있는 순간은 5분마다 한 번씩 찾아온다고 했다. 그말은 곧 최고의 내가 될 수 있는 기회는 매순간마다 찾아온다는 말이다.  128
빅터 프랭클<죽음의 수용소에서>, 헤이든 헤레라<프리다 칼로>, 알프레드 뮈세<오월의 밤>

10. 죽어라, 그대라 죽기 전에
여행도 하고, 독서모임도 갖고, 허접하고 후지지만 어쨌든 일자리도 찾으며 주어진 삶으로 돌아온다. 자살하기 직전에 비해 아주아주 조금 더 행복해졌을 뿐이지만 마치 그 정도면 삶으로 복귀하는데 충분하다는 듯이  137
과거의 내가 의심할 여지없이 실패한 인생을 살았단, 방황만 하며 꽃 같은 청춘을 탕진했든,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의 삶 전체를 온전히 껴안고, 음악을 연주하는 기분으로 순간순간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  138
우리는 많은 시간을 쉽게쉽게, 설렁설렁, 어영부영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러면서도 성공이나 행복을 순전히 '날로' 먹기를 원한다. 한번도 진정으로 살아보지 못한 채 삶이 나를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140
앤소드 드 메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채 태어나고 잠든 채 살며, 잠 속엣 혼인하고 잠 속에서 자녀를 낳으며, 깨어나 본 적이라곤 없이 잠 속에서 죽는다고 이야기한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도 스스로가 잠들어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은 듯 살지 말고, 죽을 듯 열심히 살아라.  143
닉 혼비<딱 90일만 더 살아볼까>, 앤소니 드 멜로<일분 헛소리>, 파울로 코엘료<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11. 가끔은 멈춰 서라.
자장면이 맛없는 건 참을 수 있어도 배달이 늦는 건 못 참는다는 우리 한국인들. 우리는 어려서부터 쟁취하고 경쟁하는 법은 배웠어도 삶을 즐기며 느리게 걷는 법은 모른다.  146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가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에서 나오는 것이며, 또한 삶의 길을 가는 동안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능력과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147
'모든 인류에게 똑같이 부여된 이 삶이라는 특권을 참되게 누리기 위해서, 나는 나만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 오직 시간에 쫓기는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149
피에르 쌍소<느리게 산다는것의 의미>, 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조화로운 삶: 헬렌과 스코트 니어링이 버몬트 숲속에서 산 스무해의 기록>


3부 생이 당신에게 허락한 모든 것을 경험하라.
12. 할 수 있는 만큼 높이, 멀리 날아라.
'우리를 제약하는 모든 것을 우리는 제거해야만 한다... 너는 여기서, 지금, 네 자신이 되는 자유, 즉 너의진정한 자아가 될 자유를 가지고 있는거야. 그리고 아무것도 너의길을 방해할 수는 없어. 그것이 바로 '위대한 갈매기의 법칙'이야. 존재하는 '법칙'말일세.'  160
리처드 바크<갈매기의 꿈>, 강영우<우리가 오르지 못할 산은 없다>

13. 여행은 나만의 파랑새를 찾아 나서는 일!
법정 스님은 '여행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자기 정리의 엄숙한 도정이요, 생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이다. .. 가끔은 자기가 살던 집을 떠아볼 일이다.'  164
'사막에 숨어 있는 비밀의 오아시스처럼 인생에서 가장 달콤한 오아시스는 표시가 되어 있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발견된다.'  
진짜 여행이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박이 섞인 비를 만나기도 하고, 진탕에 빠져 울먹이고 잇는데 톰 크루즈 같은 남자의도움으로 쉴 곳을 찾기도 하다가, 알고 보니 그 남자가 사기꾼임을 알고 또 다시 기차를 타고 낯선 도시로 떠나는, 뭐 그런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로 이루어진 여행이 아닐까 싶다. 그런 순간들을 최대한 즐기고 느끼는 것, 그것이 사막과 닮은 우리 인생 여행의 해답일 것이다.  168
여행지에서의 나는 날마다 새로운 인생을 맞는 것 같은 기분이다. 
사탕 하나를 사는 것도 처음 하는 기분으로 하게 되고, 이정표 보는 법도 다시 배우게 되고, 짐을 정리하는 법도 새로 익히고... 그렇게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무얼하며 있는지를 깨닫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171
이 세상에 정답은 없다는 사실도 나는 여행을 통해서 배웠다.  172
나느 생이 내게 허락한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 책상머리에 앉아 죽어있는 지식만 머릿속에 집어넣는 공부가 아닌, 생생히 살아있는 '진짜공부'를 해보고 싶다.  174
'항상 불안정한 상태에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것이 여행이라면,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길을 걸어가는 여정은 인생과 같다.'
당신은 세계지도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는가?  175
스티브 도나휴<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 박준<On the Road: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알랭 드 보통<여행의 기술-알랭 드 보콘의 여행 에세이>, 무라카미 하루키<먼 북소리>

14. 나와의 로맨스르 즐겨라.
숨막히게 황홀한 나와의 연애를 시작하라.  179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만 맞춰 나를 판단한다면 나는 어쩌면 2등급, 혹은 3등급쯤의 인간일 수도 있다.  181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꼬리표를 선택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어떤 식으로든 꼬리표를 붙일 작정을 했다는 사실이다.'  182
다른 사람과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잣대로 자신을 점수 매기는 어리석은 행동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186
웨인 다이어<행복한 이기주의자>, 쉐럴 리차드슨<나는 좀 더 이기적일 필요가 있다>

15. 죽은 뒤의 모습을 계획하라.
'어떻게 죽어야 좋을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되니까.'  192
모든 '척'을 그만두라.  196
미치 앨봄<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데이비드 퀘슬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상실수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안녕이라고 말하는 그 순간까지 진정으로 살아 있어라>

16. 인간이 만들어 낸 가장 위대한 세계는 책의 세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왜 책을 읽는지조차 정확히 모른다.'  201
'책은 오직 삶으로 이끌어 주고 삶에 이바지하고 소용이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202
뻐기기용 독서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깨닫게 해주지 못한 독서는 모두 허탕이다.  203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인의 존재와 사고방식을 접해 그것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그를 친구로 삼는 것을 뜻한다.'  204
헤르만 헤세<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애너 퀸들런<독서가 어떻게 나의 인생을 바꾸었나?>

17.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긍정적인 마인드도 습관이다.
'우리의 '분수'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것이다.'  215
조엘 오스틴<긍정의 힘>, 니코스 카잔차키스<그리스인 조르바>


4부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다.
18. 완벽은 없다 할지라도 나는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리라.
주세페 베르디의 나이는 여든 살. 새벽 4시부터 오후 4시까지 커피 한 잔만을 마신 채 작곡에만 열중하는 무서운 노력파이기도 했다.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썻지만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228
'살아가는 동안 완벽은 늘 나를 피해가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늘 완벽을 추구하리라.' 피터 드러커
10분 후와 10년 후의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며 순간을 완성해 나가기.  229
중요한 것은 '오나벽' 그 자체가 아니다. '완벽에의 추구'가 중요한 것이다. 위대한 잠재력을 깨우는 힘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것은 단지 최선을 다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목숨을 걸고 하고자 하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바치는 것이다. -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과연 목숨을 바칠 각오로 임했는가?  230
'실패했더라도 더 높이 올라가고자 하는 용기만 있다면 실패를 발판으로 새로운 단계로 오를 수 있다. .. 한가지 대죄(大罪)가 있다면 그건 범용(mediocrity)이다.'
범용이란 '평범함'을 말한다.  235
피터 드러커<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의 자기경영노트>, 하워드 가드너<열정과 기질>

19. 가장 큰 실패는 도전하지 않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생을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래서 행복하고 만족하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도 그다지 행복해 하지도 않는다.  246
'삶은 무모한 모험이거나 또는 아무것도 아니다.'  헬런 켈러  248
아베 피에르<피에르 신부의 고백>, 칼리 피오리나<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힐러리 로댐 클린턴<살아있는 역사> 

20. 한계의 의미를 재정의하라.
'내가 포기하는 순간 불가능은 확정된다.'  253
성공에는 운, 인맥, 목표의 크기나 추진력, 열정 등 많은 다른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밑바탕은 바로 노력이다.
인생에서 딱 3년쯤 '아, 이러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을 만큼 어떤 일에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가 바라고 꿈꾸는 거의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57
고승덕<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오토다케 히로타다<오체불만족>

21. 돈을 꽃으로 만들어야 한다.
돈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훈련. 무일푼으로 전락한대도 언제든 다시 일어설 수 잇게 만드는 훈련.
기요사키의 말에 따르면 가난 한 사람이 평생 가난한 이유는 그것이 그들이 아는 유일한 세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지루함을 싫어해 계속 더 흥미롭고 재미잇는 것을 찾으려 하는데 돈을 모으는 일은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많은 인내와 배움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루함의 반복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자가 되지 못한다.  268
우리는 무엇보다도 돈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평생 받아야 한다. 
돈에 의해 행복이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돈은 가장 더러운 휴지조각이 될 수 있지만 또 가장 아름다운 꽃처럼 사용될 수도 있음을 기억하자.  272
로버트 프랭크<리치스탄: 새로운 백만장자의 탄생과 부의 비밀>, 로버트 기요사키<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22. 성공을 위해 갖추어야 할 습관들
나만의 성공의 정의도 갖고 있지 못하면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큰 모순.  
진정한 성공은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74
'우리가 자신의 태도와 행동에 지엽적인 변화만 주는 것을 그만 두고, 그 대산 자신의 태도나 행동의 근본 뿌리인 패러다임을 변화시킬 때라야 비로소 획기적 개선을 달성할 수 있다.'  276
'주도적으로 산다'는 말의 정의를 스티븐 코비는 '이것은 단순히 솔선해서 사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이 말의 의미는 스스로의 삶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하는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지, 결코 우리를 둘러싼 여건들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감정보다 가치를 우위에 놓을 수 있다. 책임도 질 수 있다.'  277
당신 인생의 최후의 순간을 늘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가라는 말이다.  278
우리 손에 쥐고 잇는 지도는 이미 완성된 지도가 아니라 길을 걸으며 끊임없니 고쳐서 완성해야 하는 지도라는 것을 말이다.  279
'성공적인 인간은 실패자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기꺼이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필요에 의해 해야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싫어하는 일도 목적이 분명하면 수행한다.'
삶의 가치관과 방향감각이 정확하면 '해야만 하는 일들'을 묵묵히 수행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280
우리는 보통 어떠한가? 진단하기 전에 처방부터 하지 않는가?  281
스티븐 코비<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M. 스캇 펙<아직도 가야 할 길>

23. 시간이 곧 삶이다.
삶을 즐길 때는 땀 방울이 맺히도록 즐기며 놀고, 공부나 일을 할 때는 옆집 공사를 해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몰두해서 하고, 또 잠을 잘 때도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만 취하는것, 이것이 바로 '류비셰프식 시간관리법'이 아닌가 싶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여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시간관리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292
다닐 알렉산드로비치 그라닌<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사이쇼 히로시<아침형 인간>


5부 사랑하라, 목숨을 다해 사랑하라.
24. 당신이 행복하지 않은 진짜 이유
'진정한 행복은 원인이 없습니다.'  303
우리는 일생을 통해 이유 없이 행복해지는 법을 익혀야 한다.  306
세상이 프로그래밍해 놓은 행복의 조건에 당신을 맞추지 말라.  307
달라이 라마는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나와 똑같이 고통 받고 있고, 똑같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들임을 이해하는 일에서부터 출발하라고 이야기 한다.  308
엔소니 드 멜로<깨어나십시오>, 프리드리히 니체<프리드리히 니체 - 인생론 에세이 어떻게 살 것인가>, 앤소니 드 멜로<사랑에 이르는 길>, 달라이 라마<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25. 누군가의 영혼을 끌어안아본 적이 있는가?
겉만 맴도는 말과 허위의식만 가득한 제스처로 이루어진 '가짜 관계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떠올려 보자. 당신에게는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 앞에서는 미친 듯이 울어도 흠이 안 되고, 때론 이유 엇는 침묵도 이해해 주는 그런 사람이 있는가? 실수를 섣불리 비난히자도 않고 성공을 무턱대고 치켯우지도 않는사람. 진심으로 나의 성자오가 발전을 기도해주고 함께 성장하길 원하는 사람. 당신은 이런 사람을 가졌는가?  317
'세상의 슬픔에 자기의 슬픔 하나를 더 보태기 보다는 자기의 슬픔을 타인들의 수많은 비참함의 한 조각으로 생각하는 겸허함을 배우려 합니다.'  320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아픔'을 공유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봅니다.'  322
허울뿐인 관계들만 맺으며 가짜 인생을 살지 말자.  323
마누엘 푸의<거미여인의 키스>, 신영복<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6. 신은 우리가 얼마나 용서했는지에 따라 우리를 용서하신다.
달라이 라마는 '상처의 진정한 치유는 용서에서 오며, 용서란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큰 수행'이라고 말했다.  331
인생의 문제가 곧 선택의 문제이듯 용서 역시 선택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과거를 바꿀 수 잇는 능력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일어난 불행에 대한 기억을 삭제하는 기능도 우리 삶에는 없다. 용서밖에는 열쇠가 없다.  334
이청준<벌레이야기>, 루이스 스머즈<용서의 기술>

27.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우리들은 필요게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도니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339
법정스님은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340
'잘 산다는 것은 결코 편리하게 사는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341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던 ... 필요하지 않는 것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으니 최고의 사람인 것이다.'  343
성공하기 위해 반드시 성공한 부모를 가져야 할 필요가 없듯이 행복하기 위해 반드시 돈이 많아야 하는것은 아니다.  345
아잔 브라흐마<술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법정<무소유>, E.F. 슈마허<자발적 가난>

28.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사람들이 내게 "왜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는 걸까요?" 라고 물으면 나는 그저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지요."'  349
톨스토이의 말처럼 우리는 악기 연주하는 법을 배우듯 사랑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  351
남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놓고 스스로 행복하고 감사해 하는 것. 이것을 사회학자들은 '마더 데레사 효과(Teresa Effect)'라고 부른다.  352
'없어도 지장이 없는 것을 주는 게 아니라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나 살고 싶지 않은,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을 주십시오.'  354
피에르 신부<단순한 기쁨>, 마더 데레사<마더 데레사의 단순한 길>

29. 모든 사랑은 남는 장사다.
사랑을 위해 태어난 영혼은 사랑 이외의 것으로는 절대 구원받을 수 없다.  372
스탕달<스탕달의 연애론>, 장 그르니에<섬>, 아니 에르노<단순한 열정>, F.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신경숙<깊은 슬픔>


에필로그 책은 지상에서 가장 위대한 세계다!
인생의 모든 길에서 답을 물을 수 있는 위대한 친구를 발견한 것이다.  377
독서를 단순히 취미 수준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생존방법으로 받아들이며 훗날 세상을 움직일 위대한 사람이 될 내공을 쌓았다.  378
책 읽기를 멀리하고 위대한 꿈을 꾸는 당신의 모습은 마치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 포부만 키우는 것처럼 커다란 모순이다.  
당신의 영혼에 좀 더 커다란 풍경을 보여주고 싶다면 당신이 취할 수 잇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다. 특별한 삶을 영위하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리더를 꿈꾸고 있다면 당신은 책읽기를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379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
책을 읽으면서 네 가지 유익한 점을 깨달았다.
첫째, 조금 배고플 때 책을 읽으면 소리가 두 배로 낭랑해져서 책 속에 담긴 이치와 취지를 잘 맛보게 되니 배고픔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둘째, 조금 추울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소리를 따라 몸 안으로 흘러 들어와 평안해져 추위도 잊을 수 있게 된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와 함께 하나가 되고 마음은 이치와 더불어 모이게 되니, 천만 가지 생각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
넷째, 기침이 심할 때 책을 읽으면 기운이 통하여 막히는것이 없게 되니 기침 소리가 순식간에 그쳐버린다.  384
책을 볼 때는 서문, 범례, 저자, 교정자 그리고 권질(卷帙)이 얼마 만큼니고, 몰록이 몇 조목인지를 먼저 살펴서 그 책으 체재를 구별해야지, 대충대충 넘기고서 책을 다 읽었다고 하면 안 된다.  385
공부하는 방법
첫째, 경문을 충분히 외워야 하고
둘째, 여러 사람의 학설을 다 참고하여 같은 점과 다른 점을 구별해서 장점과 단점을 비교해야 하며
셋째, 깊게 생각해서 의심나는 것을 풀이하되 자신감을 갖지 말고
넷째, 밝게 분별해서 그릇된 것을 버리되 감히 스스로만 옳다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388
모름지기 벗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라. 책과 함께 노닐면 될 것이다.  390
당연함이란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으로, 이치게 맞는 것을 말한다. 하늘의 이치를 잃지 않은 것, 이것을 이치에 맞는다고 하는 것.
내가 밤낮으로 당연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당연한 일로는 배우는 것만큼 당연한 것이 없었다.  394
빌려주지 않는 것은 인자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읽지 않는것은 지혜롭지 못하기 때문이며, 햇빛을 쏘이지 않는 것은 부리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395
비록 말은 잘하지 못하더라도 행실은 마땅히 말을 실천하고도 남음이 있어야 한다.  397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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