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훌륭한 교사였던가!  23


아이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소소한 오락거리들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학교의 탓이 크다. 일관성 없는 독서 지도, 시대착오적인 교과 과정, 교사들의 자질 부족, 시설의 낙후성, 도서관의 부족.

턱없이 부족한 문화부 예산!..  35


우리들의 대화는 이러했다. 그것은 세태의 어둠을 밝혀줄 언어의 영원한 승리이자, 말하지 않음으로써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는 금과옥조와도 같은 침묵이었다. 늘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온갖 정보에 귀를 기울이는 만큼, 우리는 결코 이 시대에 기만당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전 세계가 우리의 말에 담겨 있으며, 온 세상이 우리의 침묵으로 밝혀진다. 우리는 현명하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현명함을 열렬히 사랑한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나서도 어렴풋이 남아 있는 이 우울함은 무슨 까닭일까? 손님들이 가고 집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건만 한밤중까지 이어지는 이 침묵은? 단지 설거지 걱정 때문일까? 게다가... 저녁 모임을 마치고 수십 킬로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우리의 친구들에게도 똑같은 침묵이 이어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흠뻑 취해 있던 그 현명함의 열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신호등 앞에 멈춰 서 있는 차 속의 부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 침묵은 마치 간밤의 취기가 서서히 가시는 떨떠름한 뒷맛처럼, 혹은 마취가 풀려날 때의 감각처럼, 의식이 깨어나면서 조금씩 제 자신으로 돌아오는 바로 그 느낌 같다.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가 한 대화 속에 진정한 우리는 없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고통스런 자각인 것이다. 우리는 거기 없어싿. 거기엔 우리를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있었으며, 논지 또한 확고했으나 - 게다가 그 논지의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주장한 바가 전적으로 옳았음에도 불구하고 -, 우리는 거기 없었다. 의심할 나위 없이 현명함이라는 자기 최면을 부단히 연마하느라 또 하루 저녁을 탕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우리는 서서히 우리 자신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속마음은 조금 전 식탁에 둘러앉아 하던 이야기들과는 너무도 딴판이었다. 핏발을 세워가며 독서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은 제 방에 틀어박혀 책이라곤 한 줄도 읽지 않는 아이의 언저리만 맴돌고 있었다. 아이로 하여금 책읽기를 싫어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불가피한 시대적 요인들을 이것저것 늘어놓으면서도, 여전히 우리와 아이를 갈라놓는 책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해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줄곧 책에 관해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오로지 아이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36-37


갖은 노력을 다했다. 시대를 규탄하고, 텔레비전을 고발하면서... 필경 또 텔레비전 끄는 것도 잊은 채.

너무도 '비주얼'한 20세기라는 시대 탓인가? 그렇다면 19세기는 너무 묘사적이라고 할 참인가? 또 18세기는 너무 합리적이고, 17세기는 너무 고전적이라고? 16세기는 너무 르네상스적이고, 푸슈킨은 너무 러시아적이고 소포클레스는 너무 한물 갔다고? 마치 사람과 책의 관계가 소원해지기까지 수 세기가 필요했다는 소리 같다...

일단 지적 항해의 첫발을 내딛고 나면, 아무일도 없었던 듯 예전처럼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억제된 즐거움일지라도, 모든 독서에는 의당 읽기의 즐거움이 자리한다.  51-52


아이가 고작 몇 개의 단어에 흥미를 보인다고 하여 마치 당장 온갖 책을 섭렵할 수 있게 된 듯 착각에 빠졌던 것은 아닐까? 걸음마를 익히고 말을 배우듯, 책 읽는 습관도 때가 되면 저절로 익히리라고 생각했던 건 아닐까?  56


아이가 맨 먼저 배우는 것은 책읽기가 아니라, 책 읽는 시늉일 뿐이다.  57


아이에게는 저마다 책읽기를 체득해나가는 자신만의 리듬이 있다. 때론 그 리듬에 엄청난 가속이 붙기도 하고, 느닷없이 퇴보하기도 한다. 아이가 책을 읽고 싶어 안달을 하는 시기가 있는가 하면, 포식 뒤의 식곤증처럼 오랜 휴지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60-61


'교육자'를 자처하지만, 실은 우리는 아이에게 성마르게 빚 독촉을 해대는 '고리대금업자'와 다를 바가 없다. 말하자면 얄팍한 '지식'을 밑천 삼아, 서푼어치의 '지식'을 꿔주고 이자를 요구하는 격이다. 되돌려주어야만 한다. 아무런 조건없이, 될수록 빨리! 그렇지 않으면 누구보다 바로 우리 자신부터 의심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61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좋아하는 마음'에 뭔가 손상을 입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적절한 표현인 듯하다.  62


어른들은 읽기를 익히게 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는데에만 열을 올린다. 그럴듯한 공부방을 꾸며주고, 독서 카드를 만들고, 출판사를 무색케 할 만큼 온갖 전집류로 도배를 한다. 참 딱한 노릇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도 까맣게 잊고 있으니 말이다. 요는 아이에게 배움에 대한 갈망을 갖게 하는 일이다. 우선 아이에게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심어준 다음 책상을 마련해주어도 줄 일이다. 그제서야 어른들이 동원하는 온갖 방법이 제구실을 할 것이다. 

당장의 흥미, 이것만이 아이를 가장 확실하고 지속적으로 이끌어갈 유일한 동인이다.  66-67


'조급하게 얻으려고 서두르지 않는 것이 곧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얻는 길이다.' 루소  67


아이는 누구나 훌륭한 독자가 될 자질을 타고난다. 그리고 주위의 어른들이 몇 가지 지침만 잊지 않는다면 아이는 언제까지고 훌륭한 독자가 될 것이다. 우선은 어른들이 자신의 능력만을 내세우려 들기보다는, 아이에게 열정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무조건 암기와 복습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아이의 열의를 북돋워주어야 할 것이다. 모퉁이에 서서 아이가 도착하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아이와 함께 노력하는 자세를 가져볼 일이다. 어떻게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들기보다는, 기꺼이 아이에게 저녁 시간을 내어주어야 한다. 미래를 담보로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기보다는 아이의 현재가 한껏 펼쳐질 수 있도록 마음 써야 한다. 한때틑 아이의 더없는 즐거움이었던 일이 결코 마지못해 하는 고역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자면 아이가 그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도록 기다리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적어도 아이 스스로가 그 즐거움을 의무로 사목자 할 때까지는 말이다.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의무란 모든 교양이나 문화 수업이 그렇듯 무상성을 전제로 한다. 그렇게 해서 어른들 자신도 그 무상의 즐거움에 다시금 새롭게 잠겨볼 일이다.  69-70




"여러분 스스로 경험에서 우러난 예증을 드시오"  94


다들 한결같은 의견이라는 건 어쨌든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01


학교는 능력과 기능만을 필요로 한다. 

삶은 다른 곳에 있다.  102


요즘의 우리들은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책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설파한다. 때로는 주석자, 해석가, 분석가, 비평가, 전기 작가, 해설자를 두루 자처하여 이루 다 할 수 없는 극진한 찬사로 작품의 위대함을 증언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작품들은 말이 없다. 워낙 우리의 역량이 차고 넘치다 보니, 어느샌가 우리의 말이 책 속의 말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124




책읽기의 즐거움이란 결코 멀리 있지 않았다. 다만 읽어도 모를까 봐 지레 겁을 먹었던 그 말 못할 두려움으로 인해 줄곧 사춘기 아이들의 기억 저편에 묻혀 있었을 뿐이다.

아이들은 이를테면 소설이란 무엇보다 하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소설은 '소설처럼' 읽혀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말해 소설 읽기란 무엇보다 이야기를 원하는 우리의 갈구를 채우는 일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151


책을 읽어주는 선생님의 목소리 덕분에 다시 '글'과 친숙해지고,..

소설이 주는 진정한 즐거움은 작가와 나 사이에 형성된느 그 역설적인 친밀감을 발견하는 데 있다.  155


혼자만의 책읽기에 친숙해지려면, 읽어봤자 이해할 수 없으리란 강박증 말고도 또 다른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즉 시간에 대한 공포감 말이다.  156


책 읽을 시간이 고민이라면 그만큼 책을 읽을 마음이 없다는 말이다. 책 읽을 시간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활은 독서를 가로막는 끝없는 장애물이다.  159


책 읽는 시간은 언제나 훔친 시간이다..

굳이 말하자면,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의무의 시간들에서이다.  160


프랑스에서는 '읽다'를 속된 말로 '꼼짝없이 매였다'고 한다.  162


아이들이 자연스레 책읽기에 길들게 하려면 단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즉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163


일단 책과 가까워지면 그때부터 아이들은 스스로 길을 찾아나설 것이다.  164





무엇을 어떻게 읽든... - 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


1 책을 읽지 않을 권리


2 건너뛰며 읽을 권리


3 책을 끝까지 읽지 않을 권리

좋은 책들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좋은 책들이 책장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동안 나이를 먹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다. 그 책들을 읽어도 좋을 만큼 충분히 성숙했다고 여겨질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새로이 시도를 한다.  205


4 책을 다시 읽을 권리

다시 읽는다는 건 아무런 이유도, 조건도 따르지 않는 무상의 행위일 뿐이다. 우리는 그저 반복하여 읽는 즐거움, 다시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리려고, 친밀감을 새삼 확인하려고 다시 읽는다.  207


5 아무 책이나 읽을 권리

감상과 선전성을 적당히 버무려 장사를 하려 드는 유의 문학이 존재한다. 나는 이를 '산업 문학'이라 부르려 한다. 말하자면 세간의 화제로부터 온갖 소재를 그러모아 시류에 편승하는 세태 소설을 만들어내는 문학이다...

정해진 틀에 자 맞추어져 덩달아 우리들까지도 그 틀에 가두고자 하는, 오로지 '즐기기 위해 만드어진' 일회용 문학이다.  209


6 보바리즘을 누릴 권리 - 책을 통해서 전염되는 병

'보바리즘'이란 뭉뚱그려 얘기하자면 '오로지 감각만의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충족감'에 다름 아니다. 즉 상상이 극에 달해 온 신경이 떨려오고 심장이 달아오르며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는 가운데 주인공의 세계에 완전 동화되어, 어처구니없게도 대뇌마저 (잠시나마) 일상과 소설의 세계를 혼동하기에 이르는...

독자라면 누구나 처음 한동안은 빠져들기 마련인.

더없이 감미로운 경험인 것이다.  212


자기 나름대로 독서의 한 단계를 거치고 있는 아이에게 억지로 다른 책을 쥐어준다는 것은 우리 자신들이 겪었던 성장기로 부인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며, 이는 결국 아이와 우리 사이에 깊은 단절을 가져올 뿐이다.  213


보바리즘은 세상 누구나가 공유할 수 있는 지극히 보편적인 현상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보바리즘만을 맹렬히 몰아 세운다. 청소년들의 형편없는 독서 수준을 개탄하면서도, 정작 우리 자신은 텔레지번에 자주 나오는 인기 작가를 맹종하다가 유행히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작가에 대해서 핏발을 세우기가 일쑤다.  214


7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8 군데군데 골라 읽을 권리


9 소리내어 읽을 권리


10 읽고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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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슈퍼마켓에 가고, 영화를 보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고, 책을 읽고, 원고를 손보기도 하며서 저노가 다름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급곤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끔찍스럽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상마저 내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11


신문에서 그 사람의 나라에 관한 기사를 읽는다.  12


책을 읽을 때 나의 마음을 휘어잡는 문장은 남녀관계를 묘사한 대목이었다. 그런 내용은 내게 A에 관한 무언가를 가르쳐주었고, 사실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들에 확신을 주었다. 가령, 그로스만의 <삶과 운명>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포옹할 때 눈을 지그시 감는다"라는 구절을 읽으면, A가 나를 안을 때 그렇게 하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가 나를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 씌어 있는 그 밖의 다른 내용들은 그 사람과 다시 만날 때까지의 빈 시간을 메워주는 수단일 뿐이었다.

약속 시간을 알려올 그사람의 전화 외에 다른 미래란 내게 없었다. 내가 없을 때 그의 전화가 올까봐 그가 알고 있는 일정에 한해서, 일에 관계된 어쩔 수 없는 용건을 제외하고는 가능한 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또 행여 전화벨 소리를 못 들을가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사용하는 일조차 피했다.  13


그 사람을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해서 우리의 약속이 깨지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시달렸다.  15


나는 이 남자와 함께 침대에서 보낸 오후 한나절의 뜨거운 순간이, 아이를 갖는 일이나 대회에서 입상하는 일, 혹은 멀리 여행을 떠나는 일보다 내 인새에서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음을 가지러 부엌에 들어가서 문 위에 걸려 있는 벽시계를 쳐다보며 "두 시간밖에 남지 않았어" "이제 한 시간..." 혹은 "한 시간 후면 저 사람은 가고 나만 혼자 남게 되겠지"하는 말들을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도대체 현재란 어디에 있는 걸까?"하고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16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품고 있기 위해 다음 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  17


그날 밤을 나는 그 사람의 품 안에 잠들어 있는 듯한 반수(半睡 반반 잘수) 상태로 지냈다. 날이 밝자 그 사람이 내게 해준 말과 애무를 한없이 되새기면서 마비 상태로 또 하루를 보냈다...PER(파리와 외곽을 잇는 고속 전철) 안에서나 슈퍼마켓에서도 그 사람이 "당신 입으로 거길 애무해줘"하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이런 몽롱한 상태에서 서서히 벗어나면, 나는 다시 전화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만난 날짜에서 멀어질수록 고통과 불안은 점점 커졌다... 그의 전화를 받지 못한 채로 여러 날이 지나면 그 사람이 나를 떠난 게 틀림없다고 단정 짓곤 했다.  18


가끔, 이러한 열저을 누리는 일은 한 권의 책을 써내는 것과 똑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완성해야 하는 필요성,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한다는 점이 그랬다. 그리고 몇 달에 걸쳐서 글을 완성한 후에는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이 열정이 끝까지 다하고 나면-'다하다'라는 표현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겠다-죽게 되더라도 상관없을 것만 같았다.  19-20


그 사람과 사귀는 동안에는 클래식 음악을 한 번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중가요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예전 같으면 관심도 갖지 않았을 감상적인 곡조와 가사가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23


일상생활에서 가끔 일어나는 귀찮고 짜증스러운 일에도 나는 무덤덤했다...

나는 도로가 막히거나 은행 창구가 붐벼도 조용히 기다렸고, 직원들이 불친절해도 화는 내지 않았다.  24


요즈음 나는 내가 매우 소설적인 형태의 열정을 지닌 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5


그 사람의 전화만 기다리며 고통을 겪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그와 헤어지기를 원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그 사람과 헤어지는 순간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으며 사는 나날들이 되풀이되겠지. 나는 결국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 사람에게 다른 여자, 아니 여러 여자가 있다고 하더라도(그의 곁에 있는 여자가 한 명일 경우 내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 사람과의 만남을 계속하기로 했다.  39


그 사람은 6개월 전 프랑스를 떠나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45


몇 주 동안,

나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아침까지 깨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생각을 할 수도 없는 몽롱한 상태로 있곤 했다. 푹 자고 싶었지만 그가 계속 내 몸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47


A가 떠난 지 두 달쯤 지난 후부터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A와의 관계에 관련된 것들은 무엇이든 정확히 기억할 수 있었다....

글을 쓰는 시간은 열정의 시간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어떤 영화를 볼 것인지 선택하는 문제에서부터 립스틱을 고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이 오로지 한 사람만을 향해 이루어졌던 그때에 머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페이지부터 계속해서 반과거 시제를 쓴 이유는, 끝내고 싶지 않았던 '삶이 가장 아름다웠던 그 시절'의 영원한 반복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52


글에는 자신이 남겨놓고자 하는 것만 남는 법이다....

써 놓은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놀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59


그 사람이 돌아와주기를 간절히 기원했었다. 

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65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663


단지 그 사람의 존재 그 자체로 인해 내게로 온 단어들을 글로 표현했을 뿐이다.  66




해설 - 지난 세기말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문학의 흐름을 정리한 문학사는 이 시기의 주도적 현상을 '자아의 글쓰기'라는 용어로 요약했다.  69


문학사에 따르면 자전적 예술이 이토록 확대된 것은 두 가지 현상이 맞물려 작동한 결과이다. 우선 소위 거대 담론의 붕괴로 인해 작가의 시선이 집단에서 개인으로, 구조에서 주체로 이동한 것이 그 첫번째 현상이라면, 이와 더불어 그간 예술적 관심사에서 외면당했던 평범한 개인의 낮은 목소리와 사소한 몸짓이 부각되면서 일상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는 현상이 그 두번째일 것이다.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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