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 이야기를 펜시 고등학교를 떠나던 그날부터 시작하고 싶다.  10


잊어버리고 미처 말하지 못한 것이 있다. 난 학교에서 쫓겨났다.  13


인생은 운동 경기와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규칙에 따라서 시합을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교장선생님은 아주 좋게 대해주셨어요.  18


이번이 네번째로 옮긴 학교였으니까요..

그때 난 열여섯 살이었고. 지금은 열일곱 살  19


난 무식했지만, 책은 정말 많이 읽었다.  31


정말로 나를 황홀하게 만드는 책은, 그 책을 다 읽었을 때 작가와 친한 친구가 되어 언제라도 전화를 걸어, 자기가 받은 느낌을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32


난 겨우 열 세 살이었을 때, 차고의 유리를 전부 다 깨부수는 바람에 정신 분석 상담을 받기도 했었다. 그 일로 어른들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정말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그 애가 죽던 날 밤 차고로 숨어들어, 유리창을 전부 주먹으로 깨부쉈으니까.  58


난 겁이 많은 편이었으니까 말이다. 겁이 많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이 그랬다.  122


도둑맞은 장갑을 생각하다 내가 겁쟁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점점 더 절망스럽게 느껴졌다.  124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는 것 말이다.  125


나한테는 큰 문제가 있었다. 한번 끌어안아 본 여자는 모두 똑똑하다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다. 그 두 가지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지금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144


지나치게 무언가를 잘한다면, 자신이 조심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게 더 이상은 잘한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170


전쟁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나보고 전쟁터에 나가라고 한다면 정말 견디기 힘들 것만 같았다.  187


[정말이야? 넌 그래도 좋은 거야? 중국인인데도 말이야?]

[당연하지]

[어째서? 왜 그런지 알고 싶어. 정말 궁금해.]

[단지 서양철학보다는 동양철학이 좀더 깊이가 있다고나 할까. 굳이 대답하자면 말이지.]  195


좋아는 할 수 있는 거잖아. 죽었다고 좋아하던 것까지 그만들 수는 없는 거 아니야? 더군다나 우리가 알고 있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천 배나 좋은 사람이라면 더욱 말이야.  228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싶어?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말해 줄까? 만약 내가 그놈의 선택이라는 걸 할 수 있다면 말이야.]

[뭔데? 말 좀 곱게 하라니까.]

[너 '호밀밭을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는다면'이라는 노래 알지? 내가 되고 싶은 건...]

[그 노래는 '호밀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야] 피비가 말했다. [그건 시야. 로버트 번스가 쓴 거잖아.]

[로버트 번스의 시라는 것쯤은 알고 있어.]

그렇지만 피비가 옳았다. [호밀 밭을 걸어오는 누군가와 만난다면]이 맞다. 사실 난 그 시를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잡는다면'으로 잘못 알고 있었나 봐.] 나는 말을 이었다.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229-230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거야. 그러고는 단념하지. 실제로 찾으려는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단념해 버리는 거야.]  247-248


빌헬름 스테켈이라는 정신분석 학자가 쓴 글이다..]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248


[교육받고 학식이 높은 사람만이 세상에 가치있는 공헌을 한다는 건 아니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교육을 받고, 학식이 있는 사람이 재능과 창조력을 가지고 있다면, 불행히도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냥 재능 있고, 창조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훨씬 가치 있는 기록을 남기기 쉽다는 거지. 불행히도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아. 이들은 보다 분명하게 의견을 이야기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끝까지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거기에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학식이 없는 사상가들보다 겸손하다는 걸 들 수 있어.]  250


학교 교육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알게 해주고, 거기에 맞게 이용하게 해주는 거야.  251


사실 난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몰랐다.  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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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독자의 말 - 정이현

낭만적 사랑의 영속성을 굳게 믿는다면, 그 꿈에서 영원히 깨고 싶지 않다면, 이 소설의 첫 페이지를 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 싶다면? 말할 것도 없다.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하면 된다.


운명의 상대를 찾아 헤매다 드디어 서로를 알아 본 한 남자와 한 여자. 소설은 그 '끝'에서 시작된다. 결혼으로 완성된 그들의 사랑은 일상에서 어떻게 변해가는가, 즉 아름다운 해피엔딩 뒤에 펼쳐지는 리얼리티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다. 일부일처의 결혼제도 안에서 지극히 평범하게 살아가는 밴과 엘로이즈에게는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도,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해줄 반전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사랑은 그저 천천히 녹슬고 천천히 닳아갈 뿐이다.  4-5


작가의 말

혼자가 아니라는 발견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 남자의 시선으로, 그 남자의 관심과 고민을 통해 사랑을 탐구하고 세상을 바라보려 애썼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남자들이 얼마나 쉽게 사랑에 빠지고 또 쉽게 싫증내는지를.

이 소설은 '오래된 관계'에 관한 이야기다.

낭만적 사랑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사랑에는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까.  6-7



딱히 누군가와 사귀고 있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진지한 로맨티스트일지 모른다.  16


벤은 현재 결혼해서... 여섯살, 네살배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내 엘로이즈에게 깊은 애정을 느꼈지만, 자신의 감정 패턴을 분석해봤을 때 그녀를 향한 욕망이 늘 어떤 특정 맥락에서만 생겨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의 십 년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의 사랑의 진앙(震央)은 엘로이즈가 생면부지의 남이었던 때, 노팅힐의 어느 술집에서 처음 만난 직후의 순간에 머물러 있었다.  17


긴 시간을 지나오면서 전혀 아무런 느낌이 없었던 때도 많았다. 

사랑은 뜻밖의 순간에 되돌아와 다시금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 패딩턴의 병원 응급실로 실려간 엘로이즈는 급성패혈증 진단을 받았고, 담당 의사가 나중에야 알려준 사실이지만,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밤새워 기도하며 지켜보는 동안, 벤은 사랑의 존재를 추호도의심하지 않았다. 엘로이즈가 곁에 없다면 결코 다시는 삶의 의미나 기쁨을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 특권을 박탈당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확실해질수록 기이하게도 그 감정은 점점 더 불확실해졌다.  18-19


에로티시즘이란 결국 벌거벗은 몸과는 그다지 관련이 없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욕망하고 있다는 심리적 기대감에서 비롯되는데, 어쩌면 스키복과 모자로 꽁꽁 싸매고 나란히 리프트에 앉아 산기슭을 오르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텔레비전 화면 속 리포터가 피스타치오 코르네토 아이스크림을 격찬하는 동안, 방 안의 부부 침대에는 발트해의 누드비치 같은 무덤덤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22


방금 술집에서 만난 상대와 잠자리를 갖지 못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퇴짜에는 나름의 대처방법이 있다. 반면, 평생을 함께하기로 서약한 사람과 섹스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은 훨씬 더 기이하고 창피스러운 사태다. 벤과 엘로이즈가 마지막으로 섹스한 게 꼬박 팔 주 전이었다.  23


이제 벤은 그 날짜라면 귀신같이 기억했다. 지난번엔 육 주 만이었고, 지지난번엔 십 주 만이었다. 작년 한 해를 통틀어 벤과 엘로이즈는 여섯 번 했다.

욕망을 해방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근래의 역사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믿음을 심어주는 데 초첨을 맞추어왔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볼품없는 의상으로 신체를 가릴 필요가 없으며, 원치 않는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될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섹스를 즐겁게 자주 맛보아야 할 감정적으로 풍요롭고 순수한 오락 이상의 다른 무엇으로 여길 필요는 전혀 없다.  24


로맨스와 에로스, 그리고 가족이라는 세 가지 황금요소를 완벽하게 융화시킨 궁극의 결혼도 당연히 있다. 종종 냉소주의자들은 행복한 결혼은 신화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렇게 섣불리 치부하고 단언할 수만은 없다.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긴 해도, 궁극의 결혼은 분명 존재한다. 결혼이 우리의 소망에 부응하지 말아햐 할 형이상학적 이유 같은 건 없다. 다만 상황이 우리에게 몹시 불리할 뿐이다.  35



벤과 엘로이즈의 경우 대략 일주일에 한 번은 자잘하게 싸웠고 보름에 한 번은 대판 싸웠다. 심각한 부부싸움은 그 자체로 너무나 불쾌한 일이라 일단 싸움이 끝나면 자신들이 어떤 지경까지 갔었는지 되돌아보는 일조차 끔찍했다.

다음과 같은 주제를 중심으로 벌어졌다.

여름휴가는 핵가족답게 노포크의 시골집에서 보낼지(벤의 입장) 아니면 가족 동반으로 스페인에 놀러가자는 친구들의 초대에 응할지(엘로이즈의 입장), 아이들에게 휴일처럼 특별한 날에만 아이스크림을 줄지(벤의 입장) 아니면 먹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주는 게 좋을지(엘로이즈의 입장), 현관 벽에 자전거 체인의 기름때가 묻었으니 수일 내로 페인트칠을 해야 할지(벤의 입장) 아니면 집 안의 다른 뭔가가 망가져서 전체적으로 새단장이 필요해질 때까지 몇 달이고 내버려둬도 괜찮은지(엘로이즈의 입장) 등이었다. 물론 가장 최근에 다뤄진 심각한 사안은,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묻지 않아도 되는지(벤의 입장) 아니면 그것은 단지 의지박약의 문제인지(엘로이즈의 해석)였다.  40-41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상대가 내 눈에 어떤 사람으로 비쳐야 하고 그와 함께하는 삶이 어떻게 펼쳐져야 마땅하다는 이상을 바탕으로 서로의 행복을 염원하는 것이다. 이는... 최고의 완벽을 구현하려는 시도다.  41


결혼생활하는 부부들은 화장실 타일을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남에게 사과할 때 구사해야 할 억양에 이르기까지, 삶의 전 영역에 걸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자에게 줄기차게 의견을 제시한다. 

평균적인 부부들은 커뮤니케이션, 요리, 미학, 교육, 정치, 패션, 섹스, 재정에 이르는 온갖 영역에서 끊임없이 상대에게 자신의 이상을 관철하려 든다.  42


우리는 자신의 학생을 구슬려 달래지도 못하고, 뭔가 배우고 싶도록 마음을 사로잡지도 못하며, 그렇다고 혼란스러워하는 상대를 이해해주거나 산만한 태도에 인내심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설명은 극도로 아끼면서, 시작부터 다짜고짜 화난 눈빛으로 목청을 한껏 높여 상대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꾸짖을 뿐이다. 그리고 뛰어난 간파력을 발휘해 상대를 괴롭히고 자존심을 건드린다. 자신의 가르침이 궁극적으로 성공인지 실패인지 여부에 그다지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훌륭한 교사의 전제조건 중 하나라고 할 때, 연인 사이란 이를 깨닫기엔 최악의 조건이다.  45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결혼해서 잘 사는 법을 굳이 배우지 않아도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비행기 착륙법이나 외과수술법을 직관으로 터득하길 기대해선 안 되듯이, 아무런 도움도 없이 더불어 살기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비결을 알아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  47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려고 할 때 우리는 대개 그럴듯하고 평범한 답변을 대려는 경향이 있다. 그 사람이 착하고 똑똑하고 예쁘고 건강하기 때문에 끌렸다고 말이다. 사랑은 후손을 낳고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기 위해, 즉 두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하나가 되도록 이끄는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내는 생각할 때마다 벤은 이런 통설에 의문이 들었다. 엘로이즈는 건강하고 매력적이며, 무럭무럭 잘 자라는 아이들도 낳아주었다. 그럼에도 그는 배우자를 선택할 때 뭔가 좀더 비합리적이고 모순된 힘이 자신에게 작용한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정신분석은 이에 대해 가혹하지만 타장한 의견들을 내놓았다. 우리가 사랑에서 기대하는 것은 행복이라기보단 친밀함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단순하게 그 자체로 좋은 것보다는 평범한 것을 더 선호한다. 왜냐하면 우리들 대부분은 이상적인 방식으로 양육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부모는 자식들에게 도덕적 강박과 히스테리, 깐깐함과 속물근성, 단호함과 신중함 등 서로 상충되는 요소들로 뒤범벅된 형태의 애정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보다 덜 이상적인 상황들을 참아내는 능력이, 더 나아가 그런 상황에 대한 '욕구'가 발달한다. 우리는 결혼한 상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만, 실은 감정적으로 훨씬 덜 힘들었던 다른 후보자들이 무수히 많았음에도 어떻게든 그들을 외면하려고 노력했다. 그들에게 어떤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결점이 충분히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완벽함에는 익숙하지 않은 편안함이 깃들어 우리를 소스라치게 만들었다.  56-57


벤의 입장에서 아내가 특별히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은 그런 두려움을 느낄 때였다.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또래의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을 그가 해내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당장 그를 무시하고 낙오자라는 판결을 내릴 것이다. 그 사실을 직시하고 겁에 질리는 순간, 아내에 대한 그의 감정은 더욱 애틋해졌다. 심지어 자신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 더 성공했더라면 덜 헌신적인 남편이 됐을 거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사랑은 가난과 치욕에 대한 두려움의 결과였다.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가 자본주의로 알고 있는 것은 부르주아가 발명했거나 적어도 그들의 강력한 옹호와 지지 덕분에 발전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낭만적 사랑도 부르주아의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관습은 서로 공생관계에 있다. 자본주의의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우리는 낭만적 사랑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 얼마나 성공하고 얼마나 많이 투자하고 생산하는가를 기준으로 존재를 가차없이 심판하는 시스템 솏에서, 더구나 이처럼 종교를 저버린 시대에 우리의 정신이 버텨낼 수 있으려면 비물질적인 가치에 초점을 맞춘 다른 평가방식이 절실해진다. 그 보루마저 없다면 심판의 위력이 어무나 막강해서 우리의 내면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유감스럽게도 사랑에 대한 우리의 낭만적 이상주의에는 사악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낭만적 이상주의는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방어해준다.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가치가 경제적 능력에 따라 준엄하게 평가되는 시스템으로부터 해방될 가능성 또한 차단해버린다. 낭만적 이상주의는 부와 사랑이 보다 골고루 아낌없이 분배되는 대안적 방식이 끼어들 여지를 주지 않는다. 만일 경제 시스템을 바꾼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필사적으로 짝을 찾아 헤매고 두려움에 떨며 서로에게 매달릴 필요를 훨씬 적게 느낄 것이다.  65-66


지하철 안에서 그는 남은 저녁시간을 근사하게 보내는 공상에 잠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두 아이, 조금 지친 아내, 그리고 모종의 위기.  68-69


그는 자기가 속한 시대의 보편적 견해를 충실히 따르게 되었다. 

아이가 누누 단계에서 정서적으로 충분히 보살핌 받지 못하면 그것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치료하는 데 큰돈이 들며 시간도 오래 걸린다.  73


'부모 되기'란 겉보기엔 전혀 대수롭지 않은 일들, 가령 학교 숙제를 도와주거나 아이가 만든 레고 공항을 칭찬해주고 있는 순간에도 마천루의 기초를 다지는 작업만큼이나 까다롭고 고된 작업을 매일 수행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벤과 엘로이즈가 아이들을 키우며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이 세상에 한 인간을 부려놓은 존재들은 한 발짝 물러서서 편견 어린 시선으로 자신의 피조물에 감탄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 인간은 누군가 그를 사랑한다고 말햇을 때 상대의 말을 믿는 능력이 결여되어, 자기 자신에게도 없는 믿음을 다른 사람이 가졌다는 이유로 잔인하게 상대를 단죄하려 들 것이아. 그게 아니라면, 잠시잠깐 이라도 박수갈채가 멎으면 못 견뎌하고, 남들의 인정에 목말라하며,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과감한 선택 같은 건 절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그도 아니면, 정말 훌륭한 일을 해내더라도 스스로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느끼지 못화며, 삼십 년 또는 사십년 전에 자신이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다는 뼈아픈 생각에 괴로워하며 매일 밤 배갯잇을 적시다 잠들 것이다.  74


노아가 거실 바닥에 쿠션을 쌓아놓고 난파당한 선원 흉내를 내며 상어가 나타났다. 전갈에 물렸어, 살려주세요하고 소리지를 때 아이는 그저 밉살맞은 짓을 하는 게 아니었다. 아이는 장차 실연(失戀)을 이겨내고 좋은 직장을 얻는 데 유리하게 작용할 '무력감'과 '회복능력'이라는 상반된 감각을 탐구중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나가 주황과 파랑 색종이로 눈은 넷이고 얼굴은 새처럼 생긴 키 큰 여자의 콜라주를 만든 것은 엄마의 과도한 간섭에 시달리는 아이의 스트레스가 표출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부모는 자식이라면 쩔쩔매고 한없이 응석을 맏아주게 된다.  75


경제체제가 요구하는 자질은 자신감과 창조력 그리고 독창성이다. 이것들은 고대 스파르타의 우람한 근육이나 프리드리히 대체 시절 프러시아의 절제와 금욕과 마찬가지로, 우리 시대 사람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자질이다.  76


아이들을 얻기 전까지 벤은 항상 감정을 속이며 살아왔다. 그래야 점잖고 분별 있어 보이는 줄 알았다. 대부분의 상황에서 그가 느끼는 기분은 적절치 못하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 감정이 없었다. 생일파티에선 슬펐고, 휴일엔 우울하고 초조했으며, 장례식에선 쑥스러웠다. 섹스가 끝나면 멍해졌고, 어쩌다 소위 걸작이라는 문화예술품을 접해도 하나같이 지루햇다. 하지만 이제 아이들에 관한 한, 그가 반드시 느껴야 할 감정은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강렬하게 느꼈다.  81


엘로이즈와 사귀던 초창기에는 그녀에게 이런 비밀을 속속들이 보여줄 수 있었다. 장시간에 걸친 음란한 폴섹스도 해봤고, 외설적인 상상을 함께 즐겼고, 야한 옷도 입어보았다. 이런 것을 터놓고 할 수 있다는 기쁨에다, 자신의 비밀스러운 성적 판타지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더해지자 고통스럽게 혼자서만 느끼고 역겨워했던 감정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관계가 깊어질수록 섹스는 그가 엘로이즈에 대해 갖게 된 폭넓은 책임감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평생의 동반자가 될, 자신의 첫아이를 임신한 지 석달 된 여인에게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강제섹스 장면이 포함된 야설(冶說)을 보여주는 건 가당치 않았다. 그는 엘로이즈가 그런 행동은 그만두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그녀가 원하리라고 믿는 자신의 모습(에서 거의 빗나가지 않도록), 올곧은 인간의 이미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검열해야 할 것만 같았다.

벤의 성생활은 일찍이 그의 엄마나 할머니 같은 인생 초기의 여성상으로부터 그를 분리했고, 이제는 그를 그의 아내로부터 갈라놓았다. 그는 인생에서 극히 짧은 기간 동안만 자신이 성적으로 어떤 사람인지 감출 필요 없이 살았고, 그것은 광활한 거짓의 사막에 자리한 솔직함이라는 오아시스였다.  102-103


억압은 빅토리아시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와 영원히 함께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일하러 가야 하고 우리를 둘러싼 관계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저 우리는 성을 자유롭게 표현해선 안 된다. 그것은 우리를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단언컨대 그것의 본성 자체가 해방을 거부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103-140


우리가 섹스를 회피하는 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섹스의 쾌감이 가정생활에 수반되는 다른 많은 일들을 감내하는 우리의 수용능력을 위태롭게 할 만큼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107


섹스는 함께 가정을 꾸려나가는 동료 관리자와의 관계에 변화를 가져오고 균형을 무너뜨린다. 일단 섹스를 시작하려면 본인이 원하는 것을 말로 설명하려는 노력을 멈추고 자신이 절박하게 필요로 하는, 꽤 이상하게 비칠 것들을 스스로 폭로함으로써 약점을 드러내고 잠재적으로 굴욕적인 상태에까지 이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108


성적 욕구는 객관적으로 보면 터무니없고 경멸스럽게 여겨질 법한 많은 것들을 애걸하게 만든다. 그래서 결국은 일반적이고 품격 있는 삶을 영위해나가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의지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아예 이런 원초적인 욕구를 드러내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른다.  108


사랑하는 살마과 섹스할 수 있는 상대, 이렇게 둘로 구분하려는 욕망은 특히 남자들의 습성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마리아-창녀' 콤플렉스는(서로 다른 젠더간의 상호이해를 위해서라면 다행이겠지만) 결코 남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여성들에게선 흔히 '착한남자-나쁜남자' 콤플렉스가 발견된다. 여성들은 다정다감하고 세심하게 보살펴주며 대화가 잘 통하는 남성에게 끌린다는 데 이론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섹스가 끝나자마자 곧 다른 대륙을 찾아 떠나는 잔인한 악당이 성적으로 훨씬 매력적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못한다.  109-110


섹스에 적극적일 수 있는 능력을 가로막는 근심거리가 또 있다. 나의 파트너가 실제로 나와 얼마나 자고 싶어하는가에 관한 문제 말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욕구에 극도로 예민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필립 로스의 신작 소설이나 루이스 부뉴엘의 새 영화를 보고 있는 상대방을 본의 아니게 귀찮게 하지는 않을까 저어하게 된다. 사랑은 우리가 평소 섹스를 나누고 있는 상대에게 폐를 끼칠까봐 매우 신중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고 만다.  110


다방면에서 결혼생활에 매우 이롭게 작용했다. 온화한태도, 비위맞추기, 평등의정신, 가정생활의 각종 허드렛일을 독단적으로 분배하는 것에 대한 거부등의 수확을 이끌어낸 것이다. 부엌에서 더 많은 공감과 이해를 장려한 덕분에 이제 침실에서의 섹스는 더 어려워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12


한 명의 파트너와 장기간 성생활을 하는 데사 오는 현대의 위기는 대개 누가 먼저 시도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한쪽이 원하지 않을까봐 양쪽 모두 감히 시작할 엄두를 못 댄다. 섹스할 기회를 잡는 일 자체가 너무나 소모적인 것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섹스를 원할 때조차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일깨워줄 다른 누군가가 필요해진다. 우리의 정신은 이성적인 문제들만으로도 너무나 바빠서 보다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내면의 충동들로부터 차단된 채 살아가고 잇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본능에 가까운 진정한 자아에 더 가까워지도록 우리를 되돌려줄 사람이 절실해지는 것이다.  113


벤은 베키를 다시 보기 않길 바랐다. 그녀에게 못마땅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가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결혼한 사람이 기회 될 때마다 바람피우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얼마나 비겁한 사람인지를 정확히 아는 데서 오는 겸손함 때문이다. 결혼생활이 그들에게 깨닫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통찰이다.  126


그는 점심에 뭘 먹었는지 거짓말할 수 있을 것이다. 꾀병을 불리 수도 있고, 있지도 않은 고객 얘기를 지어낼 수도 잇고, 출장 간다고 속일 수도 있다. 예금계좌를 숨길 수도 있고, 딴 살림을 차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가 유독 이 일탈을 고백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면, 이유는 바로 자신의 감쪽같은 거짓말이 드러낸 진실, 즉 자신이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각에서 비롯된 현기증을 덜고 싶어서였다. 그렇긴 해도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129


배신당한 사람의 분노는 기본적이고 불가피한 진실과 맞닥뜨리지 않으려는 시도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진실 말이다.  132


의도의 근본적 '오류'는 결혼의 경우와 동일하게 그 속에 담긴 이상주의에서 비롯된다. 비뚤어지고 가만 없어 보이는 일에 말려드는 것 같지만, 사실 외도는 마음속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외도가 결혼의 불충분한 요소들을 마술적으로 정리해주고, 잘 지어낸 알리바이로 복잡미묘한 기대들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하지만 밖에서 누군가와 자면서 결혼생활 안에서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망가뜨리지 않을 순 없다.  138


지금까지 보아온 대로, 현대의 결혼은 섹스, 사랑, 가족이라는 세 가지 욕구를 조화시킬 수 있는 무대로 정의되었다. 그러나 사실 이들은 각각 다른 것들에 위협이 되고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그와 섹스하는 능력을 위태롭게 한다. 특별히 사랑하진 않지만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누군가와 섹스하는 것은 사랑하지만 더이상 흥분되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 아이를 갖는 것은 사랑과 섹스 모두를 위태롭게 한다. 그리고 사랑과 섹스에만 몰두하는 것은 다음 세대의 육체와 정신의 안녕을 위태롭게 한다.  139


침대 시트가 말끔히 정된되지 않듯이, 결혼생활 역시 어느 한 가지를 완벽하게 만들거나 개선하려 들면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한 귀퉁이의 구김살을 펴려 하면 다른 귀퉁이들이 헝클어지게 되어 있다.  140


아이들은 대개 세 가지 이유에서 좌절감을 느끼고, 그래서 화를 내고 컨트롤이 안 되는 것이었다. 첫째,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표현할 수도 없다. 둘째, 그들에게 충분히 귀기울여주지 않았다. 셋째, 부모가 아이들의 불합리한 요구에 제대로 선을 긋지 않았다. 이때 요구란, 하고 오플린 부인은 다 안다는 듯 웃으며 재빨리 덧붙였다.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은 누구나 끊임없이 세상을 알아가고 싶어하지요."  151-152


이상화된 어린 시절의 모델레 맞춰 사랑을 감상적으로 묘사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 시절에 맛본 안온한 느낌을 되살려줄 성인은 어디에도 없으며,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고 연약함과 불안을 막아줄 사람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실패하게 된다.

어른의 사랑은 아이일 때 어떻게 사랑받았는지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상상해보는 것이어야 한다.  157


진정한 용기는 불안에 시달린다고 쉽사리 파괴되지 않는 것이다. 상대의 약한 모습에 좌절하여 상처주지 않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을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들로 보는 것이다. 자신과 같은 죄에 오염되었다고 아이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다. 미치거나 자살하지 않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라는 엄청나게 어려운 과제를 그럭저럭 계속해나가는 단순한 일, 이것이 진짜 용기이며 영웅주의다.  165




작가 대담 - 정이현 & 알랭 드 보통 : 사랑을 말하다

<연인들>이야말로 연애의 초라한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에요. 

인물드르이 사랑에 감정이입을 할수록 낭패감을 느끼게 되죠.  169


보통 씨가 결혼한 지 오래된 기혼 남녀의 사랑을, 저는 결혼을 꿈꾸는 미혼 남녀의 연애를 다룬다는 출발선이 그어져 있었던 거죠.  171


벤은 '낭만적 사랑'이 얼마나 미화되고 왜곡된 신화인지를 역설하고, 사랑과 정욕과 결혼이 각기 다른 영역에 속한 일이라고 말하지요. 그럼에도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향한 사랑을 지키려는 의지가 굉장히 강해요. 민아와 준호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소소한 것임에 비하면, 벤은 일부일처의 결혼제도가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거듭 말하면서도 엘로이즈와 아이들에 대한 사라으이 감정을 유지하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죠. 심지어 그의 인터넷 포르노 중독이나 외도의 경험조차 그러한 의지적 노력의 일부로 볼 수 있어요. 충족될 수 없는 갈망을 채우기 위해 지치지 않고 거듭 시도하는 정력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벤은 역설적으로 굉장한 로맨티스트가 되지요.  173


제가 생각한 벤은 다중적인 성격의 인물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다지 일관되진 않은 취향, 원칙, 가치관 들로 뒤범벅인 유동적인 존재가 아닐까 싶어요.  179


벤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어요.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거라는 걸 알아요. 사랑하는 법은 그냥 자연스럽게 아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벤도 제 생각에 동의하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일부러 배우지 않아도 결혼해서 잘 사는 법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이에요. 하지만 직관만으로 비행기를 조종하거나 외과수술하는 법을 알 수 없듯이, 함께 사는 방법을 저절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됩니다. 순수한 감정이 다칠까 무서워서 사랑이라는 영역에선 너무 이성적이거나 체계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더욱 유감스러운 일이고요. 현대의 연인들은 아직도 자기들의 삶에 의식적인 절차를 도입하고 외부의 도움을 받는 걸 주저해요. 너무 많이 생각하면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잇다는 만츠라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죠. 하지만 끊임없이 많이 생각하지 않으면 결국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고 말 겁니다.  185


결혼의 곤란한 점은,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도 느낄 수도 경험할 수도 없는 것들투성이라는 겁니다. 결혼한 살마들만이 맛볼 수 있는 기쁘거나 행복한 순간도 가끔은 있지만, 많은 시간 그것은 짐작보다 훨씬 더 씁쓸하고 고달프고 무미건조하고 짐스럽습니다. 결혼은 노동과 마찬가지로 고난과 시련으로 가득하지만, 그 속에서 어떤 기쁨을 찾아내는 것은 각자의 몫이죠. 저는 이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부부들을 위한 책, 동지적 연대감을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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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책이다. 영화로도 드라마로도 뮤지컬로도 연극으로도 ...
참 많이 공연되는 작품중의 하나이다.
책을 보지 않았어도 이야기는 들어본 이름이다.
그리고 인간의 내면속의 선과 악에 대한 묵직한 주제를 간단하게 다루면서도 철학적이고 종교적이기까지한 책.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 예전과는 또 다른 생각들을 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대적 상황에서 읽을 수도 있고, 현대 개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심리적인 요소, 계층화 되어가는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에 공통적으로 적용해 볼 만한 것도 있고....

나는 18XX년에 매우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태어난데다 근면함과 지혜로움, 그리고 선함까지 갖추고 있었기에 언제나 주위 사람들의 칭ㅊ찬을 들으며 성장했다. 따라서 내가 모든 면에서 명예롭고 선택된 미래를 보장받았으리라는 걸 미우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나였지만 내게는 큰 결점이 있었다. 나는 때로 퇘락의 유혹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렇게 쉽사리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는 사실이 남들 앞에서 내 자신을 내세우고 싶어하는 오만함과 상충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그것은 사람들 앞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과도 어울릴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때부터 나는 내 욕망을 숨기기 시작했다.  97

난 철저한 이중인격자였지만, 절대 위선자는 아니었다. 난 내 안에 있는 두 가지 인격 모두에 대해 철저하게 충실했다.  98

난 궁극적으로 인간의 내면에는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독립된 자아들이 서로 다투며 공존하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도덕성으로부터 인간의 근본적이고 철저한 이중성을 깨달았다. 내 의식세계에서 두 가지 본성이 다투고 있는 것을 보았다. 둘 중 어느 하나가 더 나다운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사실 그런 다춤이 있었던 이유는 내가 두 가지 본성을 다 극단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과학적 발견을 통해 그런 기적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는 진지한 가능성이 제기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 요소들을 분리한다는 생각을 자주 떠올리며 재미있어했다. 만약 각각의 자아를 서로 다른 육체에 거하게 할 수 있다면, 인생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악한 자아는 자신의 짝인 선한 자아의 이상이나 후회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갈 것이고, 선한 자아는 옳은 길을 끈기있고 안전하게 걸어갈 것이다. 선한 자아는 착한 일을 하며 즐거움을 느낄 것이고, 더 이상 이질적인 악의 유혹을 받아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을 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런 극단적이고 이질적인 이란성 쌍둥이가 의식 세계라는 고통스런 자궁 안에서 끊임없는 투쟁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인류에게 있어서 저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둘을 분리시킬 것인가?  99

사람의 정체성을 지켜주는 육체라는 요새를 뒤른들고 지배할 수 있는 약이라면, 극소량이라도 더 복용하거나 약을 적절한 순간까지 기다렸다가 먹지 않는다면,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불안정한 육체가 형테도 알아볼 수 없이 파괴될 수도 있다.  101

내가 에드워드 하이드의 육체를 하고 있을 때, 나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항상 눈에 띌 정도로 육체의 괴로움을 느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인간은 선과 악이 뒤섞인 존재인 데 반해 오직 에드워드 하이드만이 인류 역사상 유일하게 백퍼센트 순수한 악으로만 된 존재여서 그럴 것이다.  103

때때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몸과 평판에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하면서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 불한당들을 고용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스스로의 쾌락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경우는 내가 처음일 것이다. 사람들의 진심 어린 존경을 받으며 공인으로 살면서 순식간에 학교 갔다 온 아이처럼 모든 것을 던져 버리고 바다같이 넓은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철저하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기에 안전하게 그걸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간전히 바라는 쾌락은 이미 말한 것처럼 고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106

내 영혼에서 비롯된 이 대리인이 자신의 맘대로 쾌락을 추구하도록 내버려둬보니 그자는 말할 수 없이 사악했고 극악부도했다. 그의 모든 행동과 생각은 지극히 이기적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면 할수록, 그는 짐슨 같은 탐욕을 더욱 크게 드러내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돌로 만들어진 자처럼 무모했다. 헨리 지킬은 에드워드 하이드의 행동에 여러번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지만, 처한 상황이 일반적인 법칙을 가지고 말할 문제가 아니었기에, 점차 양심의 가책이 무뎌졌다. 무엇보다 죄를 짓는 것은 지킬이 아닌 하이드인 것이다. 지킬운 전혀 악해지지 않앗다. 그가 다시 지킬이 되었을 때, 그의 선한 성품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것 같았다. 지킬은 심지어, 가능한 경우에는, 하이드가 저지른 악행들을 바로잡으려고 분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에 지킬은 점점 죄의식이 없어졌고, 그의 양심은 마비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107

어제밤 분명 헨리 지킬의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에드워드 하이드의 모습으로 깬 것이다.  109

분명하게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전이해가는 문제를 만난 것이다.  111

지킬은 뜨거운 화로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 같은 금욕이라는 괴로움을 겪어내야 하지만, 하이드는 자신이 뭘 잃엇다는 것조차 인식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의 경우도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더 선량한 측면을 선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지켜내는 내면의 힘이 부족한 처지가 되어버렸다.

난 나이들고 불만도 많지만, 친구들에 둘러싸여 선량한 희망을 가슴에 품는 의사를 선택했다. 그리고 내가 하이드의 가면을 쓰고 즐긴 자유, 상대적인 젊음, 가벼운 발걸음, 뛰는 맥박과 은밀한 쾌락 같은 것들에 단호한 작별을 고했다. 이렇게 결정은 했지만, 아마 무의식중에는 어느 정도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난 소호에 있는 집을 포기하지도 않았고, 에드워드 하이드의 옷들도 내 밀실 안에 그대로 남겨뒀기 때문이다.  112

시나브로 처음 가졌던 경계심이 흐릿해져갔다. 양심적인 삶에 대한 칭찬도 차차 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하이드가 자유를 갈망하며 몸부림치는 것처럼, 나도 주체할 수 없이 왔다갔다하는 마음과 갈망 때문에 괴로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내 도덕심이 약해진 때를 틈타, 난 다시 변신하는 약을 만들어서 삼키게 되었다.

약을 들이켜는 순간, 난 완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악을 향해서 더더욱 미친 듯이 달려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내 불행한 피해자가 정중하게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에도, 나는 참을 수 없는 조급함에 사로잡혀 영혼이 송두리째 뒤흔들렸던 것이라 생각한다.  113

난 스스로 약을 마심으로써 내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본성을 다 벗겨버렸다.

자신의 범죄에 흡족해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저지를 또다른 범죄를 가벼운 마음으로 궁리하는 한편, 누가 복수하러 따라오고 있는 건 아닌지 귀를 기울이며 긴장하는 등 마음이 분열되어 거리르 빠르게 걸어가고 있었다.  114

이제부터 하이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난 이제 내 존재의 좀더 나은 자아가 되어 사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맘을 정하고 나니까 기쁨이 밀려왔다! 자발적으로 자신을 낮추고 새로운 삶에 대한 제약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결심을 굳게하고, 지금까지 자주 드나들던 문을 잠그고, 그 열쇠까지 구두 뒤축으로 밟아버렸다!  115

참회하는 예리한 양심의 날이 무뎌지자, 오랫동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지내다가 최근에야 겨우 묶어 놓은 내 마음에 자리잡고 있던 저질이 자유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116

난 아주 자연스럽게 타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117

날 괴롭히는 것은 교수대에 서는 공포가 아니라 하이드가 돼버리는 것이었다.  120

난 다시 한번 하이드의 격정에 사로잡혀 마음껏 농락당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내 자신으로 돌아오는 데 이전에 마신 양의 두 배가 필요했다.  121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건 바로 다른 자아에 대한 공포엿다

하이드의 힘은 지킬이 약해져 있을 때,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지킬과 하이드를 갈라놓는 증오도 지금은 확실히 양쪽에 같은 정도로 있었다.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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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의 책은 많이 읽지는 않았으나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엮은이가 서문에서 말한것처럼 여러 사람들은 소로를 두고 에머슨을 따라 하는 그림자일 뿐이라는 말들을 듣긴하지만,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도 에머슨만큼 사유의 시간이 있었고, 에머슨에게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며, 그가 따라한것만은 아닐것이다.

마지막으로 읽은 소로의 책은 월든인데, 꾀나 오래전에 읽었었다.
그의 생각을 엿보고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었고, 작년쯤에는 그 책이 오래되었음에도 선물로 들어와 책장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선물로 받았을때 옛 기억을 떠올리며 몇개의 문장들을 찾아보고 살펴보면서, 조만간 다시 한번 읽자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몇 달전쯤 우연히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책을 훑으면서 집에 꽃혀있는 책을 읽기전에 이 책을 읽어봐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폈다.
그리고 꾀나 쉽고 재밌게 읽었다.
엮은이가 발췌하여 자신의 해석도 달아두었기에 어떤 내용은 소로의 글만 어떤 내용은 소로의 내용과 엮은이의 해설을 함께 읽어가며 다른이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기 위하여 지식을 쌓는다고는 하지만 지식이 지혜가 되기 위한 과정은 밟지 않는경우가 다반사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다시금 나의 지식이 지혜가 될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게 된다.


소로는 1937년 10월 22일부터 45세로 요절하기 1년 전인 1861년 11월 3일까지 거의 매일 저널을 기록하였다. 이렇게 적은 저널의 양이 공책으로 무려 39권에 이른다.
1845년 7월 4일부터 1847년 9월까지 월든 호숫가의 통나무 오두막집에서 생활하였다. 

자연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움이란 로마나 아테네 그 어디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끼는 마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라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저널>
(이 글에서 소로는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느끼는 마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있다고 밝힌다. 주위에 있는 자연을 두고 아름다움을 찾아 멀리 여행을 떠나는 것이리석다고 말하는 까닭이다.)  19
계절이 순환하는 대로 저마다의 계절 속에서 살도록 하라. 계절의 공기를 호흡하고 계절의 음료를 마시며 계절의 과일을 맛보아라. 각 계절의 영향에 당신 자신을 맡겨라. 계절이 당신의 유일한 식품이며 음료며 약초가 되게 하라.... 자연은 우리를 건강하게 하기 위하여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자연은 그 외의 다른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을 거부하지 마라.... 그러나 자연 자체가 우리 모멩 좋다는 것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연'은 건강의 또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으며, 각각의 계절은 건강의 각기 다른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중에서 특정한 계절이 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그것이 계절 탓이 아니라 자기 자신 탓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살아간다.<저널>  35-36
산택은 그 자체로 하루의 일과요 모험이다... 산택을 할 때에는 걸으면서 되새김질하는 유일한 동물인 낙타처럼 산택하여야 한다.<산책>
(오늘날 많은 사람은 운동 삼아 산책을 하지만 소로가 말하는 산책은 운동과는 크게 다르다. 그에게 산책은 사색하는 시간이요 자연과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낙타가 먹은 음식을 토하여 다시 되새김질을 하듯이 소로도 일상에서 겪은 일을 산책을 하면서 되새긴다. 소로는 하루에 적어도 4시간 이상 숲이나 언덕 또는 들판을 산책하였다.)  53
건강은 사회에서는 찾을 수 없고 오직 자연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 환자에게 자연은 환자처럼 느껴지지만 건강한 사람에게는 건강의 샘처럼 여겨진다. 자연의 아름다운 특징을 응시할 줄 아는 영혼에게는 어떤 피해나 실망도 생길 수 없다.<메사추세츠 주의 자연사>  63
자연은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자연의 체계는 일정한 걸음걸이로 진행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가장 사소한 일에 그렇게도 서둘러 대는 것일까?  ..... 현명한 사람은 초조하거나 조바심 내는 법이 없이 휴식을 취한다. 순간마다 그는 그가 존재하는 곳에 머문다.<저널>
(인간은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그 목표를 향하여 매진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일직선적인 세계관에서는 진보와 발전을 기대할 수는 있어도 쉽게 절망을 느낀다. 강강술래처럼 원무(圓舞)를 추며 움직이는 순환론적 세계관에서는 비록 진보와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을망정 좌절과 절망을 느끼지 않는다. 소로는 자연에서 느림의 미덕을 배울 것을 권한다.)  68
나는 필요 이상으로 나의 손을 바쁘게 놀리고 싶지 않다. 나의 머리가 손과 발이다. 나는 가장 훌륭한 기능이 이 머릿속에 모여 있음을낀다.<월든>  74
나는 구태여 바람을 쏘이기 위하여 밖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 집안의 공기가 조금도 신선함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월든>  76
평범한 계절에 작은 과일이 무르익듯 내 삶의 과일도 무르익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제나 자연과 교감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절마다 꽃피는 자연의 특성에 맞추어 나도 함께 꽃피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저널>
(소로는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가장 보람 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자연은 변화하면서도 한결같기 때문이다.)  78
나는 내 귀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자연의 소리를 언제나 듣고 있지만 겨우 그 첫 멜로디를 들을 뿐이다. 자연은 내가 한 발 다가서면 어김없이 한 발 뒤로 물러서고는 한다. 뒤로, 뒤로, 자연과 그 속에 감긴 의미는 언제나 그렇게 뒤로 물러서 있다. 그러나 자연의 신념과 기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귓가에 들려오는 것이 아닐까? 나는 끝내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법이 아닌가.<저널>
(자연은 눈으로 보고 귀를 들을 수 있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쉽다. 그러나 소로는 감각을 통하여 느낄 수 있는 자연 말고도 귀로 듣고 손으로 만져 볼 수 없는 자연도 얼마든지 있다고 말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도 "귀에 들리는 음악보다는 귀에 들리지 않는 음악이 더 달콤하다."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79
내가 자연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이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진 은신처기 때문이다. 인간의 제도는 자연을 통제할 수도 없고 자연을 감염시킬 수도 없다. 자연은 인간 세상과는 다른 종류의 권리로 가득 차 있다. 자연 속에서 나는 완전한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만약 이 세상이 온통 인간의 것으로 가득 차 있다면, 나는 기지개를 켤 수 없을 것이고,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나에게 인간은 구속인 반면 자연은 자유다. 인간은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한다. 그러나 자연은 나를 이 세상에 대하여 만족하게 한다. 자연이 주는 기쁨은 인간의 통치와 정의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저널>
(소로의 자연관과 인간관을 단적으로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81


인간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 보고, 오직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하며, 삶이 가르쳐 줘야 하는것을 내가 배울 수 없는지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삶을 체념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삶을 깊이 있게 살기를 원하였고, 삶의 골수를 모두 빨아먹기를 원하였으며, 스파르타 인처럼 강인하게 살아서 삶이 아닌 모든 것을 내쫓아 버리고 싶었다..... 우리는 삶을 사소한 일로 흐지부지 헛되게 쓰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셈을 헤아릴 때 열 손가락 이상을 사용할 필요가 거의 없으며, 극단의 경우에는 발가락 열 개를 더 사용하면 될 것이고, 그 이상은 하나로 묶어 버리면 될 것이다.<월든>  86
우리의 삶에는 정말로 아무런 죄다 없었나? 생각이나 행동에서 동료 인간이나 짐승에 대하여 우리는 '비인간적(非人間的)으로' 살지 않았는가? 우리는 매주 이렇게 스스로 물어 볼 필요가 있다.<저널>  86
소박하게, 소박하게, 소박하게 살도록 하라! 내가 힘주어 말하거니와 그대의 일을 두 세 가지로 줄일 것이며, 백 가지나 천 가지가 되지않도록 하라.... 문명 생활이라는 이 험난한 바다 한가운데에서는 구름과 태풍, 유사(流砂) 따위 수많은 상황을 살펴야 하기 때문에 배가 침몰하여 바다 밑에 가라 앉아 목적지에 입항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오직 추측(推測) 항법(航法)으로써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뛰어나게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국가도 외적이고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않는 이른바 내적 개선에도 여전히 걷잡을 수 없이 비대해진 조직체에 지나지 않는다. 이 나라의 수많은 가정처럼 이 조직체는 지금 가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어 자기가 쳐 놓은 덫에 걸려 있는 상태에 있으며, 사치와 무모한 낭비 때문에 그리고 치밀한 계산과 가치 있는 목적이 없어 파산 상태에 이르렀다. 이러한 가정과 이러한 국가를 치유하는 길은 엄격히 절약하고 방법밖에는 없다.<월든>  88
(월든 전편에 흐르는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소박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대의 삶이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하더라도 그것과 맞서서 살도록 하라. 삶을 회피한다든지 고약한 이름으로 욕하지 마라. 그대의 삶은 그대만큼 그렇게 엉망이지는 않다. 그대가 가장 부자일 때 그대의 삶은 가장 가난하게 보인다. 헐뜯기 좋아하는 사람은 심지어 천국에 가서도 헐뜯는다. 그대의 삶이 아무리 보잘것없다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그대가 비록 구빈원(救貧院)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신바람 나는 멋진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과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밝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마찬가지로 녹는다. 삶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서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하고 즐겁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들은 기분을 상하기 않고서도 남의 도움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넓은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을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것을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부정한 방법으로밖에는 돈을 벌어 생활할 수 없는데, 그것이야말로 훨씬 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월든>
(소로의 낙과주의적 인생관과 세계관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삶이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그렇게 엉망이지 않다고 위로한다.)  94-95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면에서 1.8미터 깊이를 파 본적도 없고, 공중으로 1.8미터를 뛰어올라 본 적도 없다. 우리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더구나 우리는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깊은 잠으로 보낸다. 그런데도 우리는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지구의 표면에 제도화된 질서를 세우고 있다. 참으로 우리는 심오한 사상가며 야심만만한 영혼이 아닌가!<월든>  101
내가 사람들과 멀어진 까닭은 자연과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자연의 아름더운을 명확히 깨닫는 바로 그 순간 정신은 인간 사회로부터 멀어진다.<저널>  101-102


문명
자신을 개발하려고, 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려고 그토록 애태우지 마라. 그것도 모두 낭비다. 겸손은 어둠이 그러하듯 천상의 빛을 드러나게 한다.... 궁핍한 삶이 가장 달콤한 법이다. 당신은 일생을 빈둥거리는 건달이 되지 안도록 보호받게 된다. 어떤 사람도 높은 수준에서 너그럽다고 하여 낮은 차원에서 손해를 보지 않는다. 남아도는 재산으로는 쓸모엇는 것들밖에는 살 수 없다. 영혼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 필수품을 사는 데에는 돈이 필요 없다.<월든>
(소로에게 가난과 청빈은 수치가 아니라 자랑이다. 가는은 불편할 뿐이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111-112
과거의 지혜건 현재의 지혜건 이미 세상에 알려진 지혜는 내 옆으로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기 전까지는 허위에 지나지 않는다.<저널>
(소로에게 '나'를 떠난 지혜는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다. 소로가 <월든>을 출간할 때 '나'를 뜻하는 일인칭 단수 대명사를 너무 자주용한 나머지 인쇄소에 그 활자가 모자랄 정도였다고 한다.)  114
문명인들은 거의 습관적으로 집을 소유하고 있다. 인간의 집은 감옥이다. 그를 압박하고 속박하는 감옥이다. 그를 보호해 주는 편안한 안식의 쉼터가 아니고 말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살아간다. 그리고 마치 벽이 금방이라도 무너져 자신을 덮칠 것처럼 온갖 무장을 하고 있고, 발은 저 밑 지하실을 기억하고 있다. 근육은 결코 긴장을 푸는 법이 없다. 집을 정복하고 그 속에서 편안히 앉아 있는 법을 배우며 지붕과 바닥과 벽이 하늘과 나무와 땅처럼 자연스럽게 서로를 안고 잇는 일은 아주 드물다.<저널>  117
가난 하게 사는 것이 내 계획은 아니다. 다만 생계를 유지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치면서 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생계 수단은 지금 거의 마련되어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하여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은 백만명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만약 돈을 쓰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돈을 벌지 않았을 것이다.<저널>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단과 목적이 서로 뒤바뀌어 있다.)  121
나그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나그네는 나그네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우리 인생을 가장 잘 상징하는 말이 '나그넷길'이 아니겠는가. 개인의 역사란 결국 '어디'에서 '어디'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저널>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을 굳이 빌릴 필요도 없이 인간이란 결국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여 걸어간다. 이 죽음을 향한 행진이 곧 삶인 셈이다. 소로에게 삶이란 먹고 마시는 행위 이상의 의미가 있다.)  123
우리는 사실 지금 얼마나 무지함에 빠져 있는가. 불과 300년 전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환경이 어떠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저널>  127
삶이란 궁극적으로 자기 혼자가 아니던가!... 부모와 친척이 아이들을 위로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부모나 친척이 운명의 시련을 막아는 방파제 노릇을 할 수는 없다. 삶의 변함없는 진리이다.<저널>
(에머슨을 비롯한 초월주의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자기 의존이요 자기 독립이다.)  130
모험적인 정신의 소유자에게는 어떠한 장소도 하나같이 프리몬트와 케인이 그렇게 멀리 탐험하는 '미개척지'일 뿐입니다. 게으르고 패배한 영혼에게는 심지어 대영제국과 북극성도 한낱 시시한 장소에 지나지 않습니다.<서간문>
(그가 참으로 바라는 모험이란 황무지나 불모지 새척이 아니라 정신의 미개척지 탐험이다.)  134
길지 않은 내 삶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만약 '외형적인'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이 만든 제도였다.<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138
눈이 상한 학생들 이야기를 많이 들어 왔지만, 그들이 만약 아주 늦게까지 자지 않고 책을읽는 대신에 바바초롬 충분히 잠을 잔다명 지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산책>  146
흔히 사람들은 건전한 양심을 갖기보다는 유행에 맞는 옷, 적어도 깨끗하고 기운 자국이 없는 옷을 입는 데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월든>  160


교육
배우지 못한 사람의 지식은 울창한 숲과 같다. 생명력이 넘쳐도 이끼와 버섯 따위에 덮여 대개는 쓸모가 없다. 과학자의 지식은 공공사업을 위하여 마당에 내놓은 목재와 같다. 잘하면 이곳저곳에서 유용하게 쓸 수도 있지만 쉽게 썩는 결함이 있다.<저널>  165
젊은이들이 즉시 삶을 실험헤 보는 것보다 살아가는 방법을 더 잘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수학공부 만큼이나 그들의 정신을 단련시키게 될 것이다. 
한 소년이 가령 예술이나 과학에 대하여 좀 알고 싶어 한다면, 나는 그를 이웃에 있는 어떤 교수에게 보내는 일반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교에서는 삶의 기술을 제외한 것을 가르치고 실습한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세계를 관찰하는 방법은 가르치지만, 육안으로 직접 세상을 보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다. 화학은 가르치되 자기 빵이 어떻게 구워지는가는 가르치지 않으며, 기계학은 가르치되 빵을 어떻게 버는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는다. 해왕성의 새로운 위성은 발견해 내지만 자기 눈의 티는 보지 못하며, 식초 한 방울 안에 살고 있는 괴균(怪菌)을 연구하면서도 자기 주위에서 우글거리는 괴물들에게 자신이 잡아먹히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월든>  168
오늘날 철학 교수들은 있지만 철학자들은 없다. ..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심오한 사색을 한다거나 어떤 학파를 세우는 일이 아니라, 지혜의 가르침에 따라 소박하고 독립적이며 너그럽고 믿음직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삶의 문제 중 어떤 것을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해결한다는 것을 뜻한다.<월든>
(소로는 철학 교수와 철학자를 구분 짓는다. 철학 교수가 단순히 지식을 전수하는 사람이라면 철학자는 글자 그대로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철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였건 연구하지 않았건 삶을 깊이 통찰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철학자가 될 수 있다.)  172
'일반 교양 교육'이란 말은 본디 자유민에게 어울리는 교육을 뜻하였다. 포괄적이고 진정한 의미엣 교육은 바로 일반 교양 교육이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교육, 즉 사람들이 생계를 꾸려 가기 위하여 또는 특정한 일에 적응하기 위하여 고안된 상업과 직업과 관련한 지식은 '노예의 교육'이다.<저널>
(중세기에 '트리비움'이라고 일컫는 논리학, 문법학, 수사학 3과목에 '콰드리비움'이라는 수학, 천문학, 음악, 지리학의 4과목이 추가 되어 이른바 '자유7과'가 오늘날 일반 교양 교육이 모태가 되었다. 그런데 소로는 지나치게 실용적인 과목을 가르치는 교양 과목이 오늘날 자유인을 양성하기는 커녕 오히려 노예를 만들고 잇다고 지적한다.)  181
아주 작은 포도주 한 방울이 포도주 잔 전체를 붉게 물들이듯 아주 작은 진리가 우리의 삶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 진리란 결코 혼자 떨어져 나거나 주식(株式)에 돈이 불어나듯 불어나지도 않는다. 참다운 발전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전에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 것을 버리고 다시 새롭게 배운다. 한 줄로 늘어선 수백 개의 돌을 하나하나 드어 올려 바구니 속에 담는 사람처럼, 우리는 진리이 파편을 집어들어 나란히 옆에 놓는다.<저널>
(진리는 신의 계시처럼 갑자기 오듯이 통째로 큰 더어일로 오지도 않는다. 마치 꿀벌이 이 꽃 저 꽃에서 조금씩 꿀을 모으듯이 진리도 아주 조금씩 얻는다. 그러나 소로는 비록 아주 작은 진리라도 우리의 삶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183


예술
훌륭한 문장은 어쩌다 우연하게 쓰이지 않는다. 글에는 어떠한 속임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쓴 가장 훌륭한 작춤은 그의 가장 훌륭한 인격을 나타낸다. 모든 문장은 오랜 시련에서 생겨난 결과다. 속표지엣 맨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책속에는 글쓴이의 인품이 속속 배어 있다... 우리의 다른 행위도 마찬가지다. 삶이란 행위 하나하나를 점점이 이은 선, 곧은 자로 줄을 그은 선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도약을 하였느냐에 관계없이 그선은 언제나 직선이다. 우리의 삶은 극히 사소한 일을 얼마나 잘하였는가에 따라 평가받는다. 삶의 이 사소한 일의 최종적인 손익 계산이다.<저널>  188-189
만약 당신이 작가라면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각오로 글을 써야 한다. 이제 남아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당신 영혼에 맡겨진 순간순간을 잘 활용하라. 영감(靈感)의 잔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마셔 비우도록 하라. 영감의 잔을 비우는 일에서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 하고 두여워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월이 흐른 뒤 후회하게 될 것이다.<저널>  192
마음속이 뜨겁게 달아오를 때 글을 써라. 농부가 소의 멍에에 구멍을 뚫으려면 화로에 달군 쇠로 재빨리 멍에로 쓸 나무를 가져야 한다.  일각(一刻)이라도 지체하면 쇠로 나무를 뚫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달궈진 쇠는 즉시 사용하지 않으면 아무 슬모가 없게 되고 만다. 생각을 기록하는 일을 뒤로 미루는 작가는 식은 쇠로 멍에에 구멍을 뚫는 사람과 같다. 그러한 작가는 독자의 마음을 뜨겁게 태울 수 없다.<저널>  196-197
우리는 읽을 책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책은 우리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훌륭한 책을 읽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전혀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 보낸 일주일>  198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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