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여행, 이토록 무의미한 아름다움이여.
여행은 우리 마음속에 아름다움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새벽 안개 가득한 거리, 홀로 걸어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였던 비엔나의 11월. 내겐 마음이 아직 남아있구나. 나를 글썽이게 만드는 이토록 무의미한 아름다움이여.
여행을 하며 나는 세상과 상관없는 일이 되어 가고 있다. 폭포는 끝없이 낙하하고 폐허는 점점 아름다워지고 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우린 모두 처음 살고 있으니까요.  5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건
‘잘해 보자’, ‘열심히 해 보자’ 이런 게 아니라
조금만 너그러워 지자.
어제보다 하루만큼 더 살아왔으니까 말이다.  15

파이팅!!! 같은 건 하지 말자.
그런 거 안 했지만 우린 지금까지 열심히 잘 달려왔잖아.
최선을 다하려고도 하지 말자.
그것도 하루 이틀이잖아.
매일매일 죽을 힘을 다해 달리려니까 다리에 쥐 난다.
지친 것 같다.
조금은 적당히.
조금은 대충대충.
좀 걸어 보는 건 어떨까.
걸으며 손도 잡고 주위도 돌아보고 그러자.
오늘부터는 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하면서 갖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가져가면서
생각하고 싶은 것들을 더 많이 생각하면서.  25

나는 좀 더 외로워져야겠다.
안개 뒤에서
길 위에서
불꺼진 창문 너머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1000번 광역 버스 안에서
더블린, 카이로, 루앙프라방, 도쿄 혹은 사파에서.  75

허물어진 사랑은 허물어진 대로
그대로 두겠다.
어쩌면 그것 또한 보기 좋을 것이니.  76

우리가 경험하는 여행은 논픽션이지만 우리가 추억하는 여행은 픽션이다.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는 것은 멋지게 이륙하는 비행기의 가벼운 각도다.
아쉬운 건 우리가 여행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여행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여전히 수백년 전의 여행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여행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매혹적인 일이다.
여행자는 생의 비밀을 엿보고 싶어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이즘(ism)을 설득하고 성취하기 보다는 그것을 살아버린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행과 음식, 숙소, 길, 삶의 태도와 방식에 대한 편견은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그들은 그것을 직접 몸으로 느끼고 스스로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 왔다. 해안선을 넓히고 고도를 높였다. 시간을 확장하고 공간의 깊은 곳을 탐색했다. 지도를 만든 것을 그들이다.

여행, 그것은 삶과의 달콤한 밀월을 즐기는 일이다.
우리의 여행이 서사를 장착할 필요는 없다. 교훈적일 필요는 더더욱 없다. 그건 각설탕 같은 것이다. 넣어도 그만 안 넣어도 된다. 우리의 여행은 단지 생의 체온을 조금 높이는 정도면 충분하다.
‘즐기고 탐닉하라’ 이것이 여행자의 첫 번째 행동강령이다.
여행은 고백의 한 양식, 익명적 중얼거림, 세상에 대한 깊이 없는, 그래서 가벼운 그렇기에 유쾌한 찰나적인 긍정.
여행이 자신을 위해 많은 일을 해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그러나 여행만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다고 믿어라. 문을 열고 나서는 순간, 우리는 처음 보는 생의 풍경을 문득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겁먹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마라. 그 풍경은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니까. 우리는 단지 설레기만 하면 된다.
누구나 자기만의 환상을 좇아 여행을 떠난다. 어떤 이는 환상을 깨기도 하고 어떤 이는 환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어떤 것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여행은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하던 시간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일이다. 그 시간 속에 슬며시 심장을 올려놓는 일이다.

길과 가장 잘 사귀는 방법은 외로움과 친구가 되는 거야.
나이가 든 여행자들을 존경하라. 그들 대부분은 인생의 교훈을 체득한 이들이다.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혹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어 여행을 시작한 이들이다. 이들은 낯선 풍물을 보며 신기해하지도 않고,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기대 따위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것이다.  
여행이란 생에 골몰하는 가장 유익하고 헌신적인 방법, 생과의 가장 완벽한 열애.
여행은 언제나 실패다. 성공적인 여행은 없다. 우리는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 기꺼이 여행을 떠나고 그 실패는 즐겁다.
이번 여행을 통해 당신이 긍정을 배웠으면 좋겠다.  139-141

여행의 정석
가장 빠른 달팽이처럼.  143

모든 여행은 아름답다. 아름다워야 한다. 현실의 반대말은 비현실이 아니라 여행이다. 여행작가는 그렇게 믿어야 하며 여행작가의 가장 소중한 책무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최선을 다해 보여주는 것이다.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독자를 피신시기는 것이다. 세상은 더 이상 외롭지 않고,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지평선 너머에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방법을 찾는 것은 커다란 배낭을 지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 지평선을 넘어가는 것밖에 없다는 것을 사진과 글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물음 : 여행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나요?
답 : 아, 이건 너무 어려운 질문이네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놓치기 싫어 그토록 손에 꽉 쥐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손에 쥔 모래알처럼 별것 아니었다는 것. 아마도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176

물음 : 훌륭한 여행이란 어떤 것일까요?
답 : 그런게 있을까요? 단지 취향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모험을 하든, 쇼핑을 하든, 미술관을 가든, 하루 종이 ㄹ호텔 수영장에 드러누워 햇빛을 쬐든, 타인의 여행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는 좀 그렇군요. 여행은 그냥 여행이지 ‘훌륭한’ 여행이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훌륭하다는 것, 과연 ‘누구’에게 훌륭한 것일까요? 훌륭한 여행보다는 좀 더 사려 깊은 여해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17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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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미학>은 사진 저편의 숨은 이야기를 말하는 책이다.  4


찍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찍기는 쉬지만 표현하기는 어렵다.  5




한 장의 사진을 보다


전면을 통해서 초상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초상사진의 전면성(前面性 앞전 낱면 성품성). 이것을 우리는 파사드(facade)라고 부른다.

파사드는 건축에서 쓰이는 말로 건축의 중심, 퍼스펙티브의 중심을 의미한다.  13


사진에서 파사드라는 말은 전면을 통해서 대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특별한 초상사진일 경우에만 쓴다... 

정면은 물리적인 방향을, 전면은 심리적인 형상을 의미한다. 또 정면이 모델과 카메라 앵그로가의 관계라면, 전면은 모델과 관객의 시선과의 관계이다.  14


사진가가 단순히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설 것을 요구했다면 정면성의 사진이 되기 쉽다. 그러나 사진가가 인물의 전면에서 무언가를 읽고 찍었다면 전면성의 사진이 된다. 기념사진의 경우도 단순히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정면성의 사진이 되지만 인물들 개개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찍었다면 전면성의 사진이 되는 것이다.  15-16


"자신을 찍어 보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찍을 수 있지?"  21


사진의 주요 형식에는 구성과 조형이 이싿. 이 두가지 요소는 비슷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먼저 구성(composition)은 화면 안 즉, 프레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각적 형식이다. 이에 비해 조형(modeling)은 화면 밖, 즉 카메라 밖에서 이루어지는 시각적 형식이다. 그러므로 구성과 조형의 가장 큰 차이는 촬영 이전이냐 이후이냐이다.  25


조형의 기초가 되고, 해체의 근간이 되는 해석이란 무엇일까? .. 페르낭 레제는 "스스로의 조형적 아름다움 속에서 피사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레제가 '스스로'를 강조하는 개인적이고 자율적인 조형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사진에 대입하면 진정한 사진의 형식은 주어진 구성에서 벗어나는 것, "자신에게 적합한 시점을 획득하는 것"이 된다. 고정불변의 규칙들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형식이라는 말이다.  27-28


영화감독 마야 데렌은 구축의 형식과 해체의 형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구축의 형식은 사물을 조망하는 도구(카메라의 프레임)에서 파생되고, 해체의 형식은 조망된 이미지가 개인적인 경험과 관계된 철학과 정서 속에서 일체화된다."  28


에로티시즘은 정신적 관능이 육체를 통해서 발현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34


* 예술누드 - 미학은 안으로 정신과 영혼을, 그리고 밖으로 미의 형식과 표현을 다루는 철학이다... 미학이 예술누드에 부여한 품격과 숭고함은 무엇보다 정신의 관능이다.  35


사진의 깊이는 보는 자의 호흡에 의해 결정된다. 깊은 화면은 긴 호흡에서 나오고, 얕은 화면은 짧은 호흡에서 만들어진다.  49


세상이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기계적인 눈이 인간의 눈을 침범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고층빌딩이 인간의 시선을 가로막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언제나 롱 테이크, 롱 디스턴스의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져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었고, 저 멀리로 점점 작아져 가는 인간의 형상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망원렌즈와 줌렌즈, 그리고 하늘로 치솟는 고층건물에게 그것들을 빼앗겨버렸다. 주변보다는 중심이 강조되고, 상황보다는 대상이 강조되는 사진들이 우리 주변에 확산되면서 우리는 깊은 숨쉬기, 길은 거리감을 박탈당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얕은 숨쉬기, 얕은 거리감에 그저 질식당했던 것이다.  52


사진의 형상은 결국 초덤을 어디에 두느냐 혹은 어떻게 선책하느냐에 달려 있다. 눈과 달리 중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 수도 있으며, 부분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할 수도 있고, 또 전체를 선명히 할 수도 있다.  56


초점이 맞았기에 형상이 존재하고, 형상이 있기에 시선을 받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물을 본다는 것은 거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거리가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초점이 존재한다는 말이며, 또 초점이 있어야 형상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형상은 곧 시선을 유도하는 '보는' 행위이자 사물이 드러나는 '보이는' 양태이다. 형상과 시선에 의해 사물은 존재성을 가지게 되며, 결국 인간의 감정을 이끌게 된다.  57


초점 안에 있으면 인포커스(in focus)라고 하고, 초점 밖에 있으면 아웃포커스(out of focus)라고 한다.  62


보인다고 해서 모두 읽히는 것이 아니듯이, 보아야 할 것이 적어질수록 때론 말해지는 것도 있는 법이다.  64


사진은 참의 리얼리티를 잃지 않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디지털은 새로운 표현을 확장해야 한다.  76


사진은 기억의 이미지가 아니라 존재의 이미지이다. 이미지의 기억은 잔상이고 파편이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지만 존재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다. 또한 일시적 기억을 위한 이미지는 늘 밖으로 시간을 토하고 지우지만, 존재의 이미지는 언제나 시간을 삼키면서 시간 속에 산다. 사진은 영속적인 시간의 이미지이다. ..

사진과 디지털의 만남은 서로 약한 부분, 강한 부분을 보태고 나누는 데 의의가 있다. 사진은 바로 그것, 사물 그 자체를 지시하는 존재의 이미지이다. 디지털 프로세싱은 보다 쉽고 편리하게, 또 효과적으로 삶의 리얼리티를 발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77





한 장의 사진을 읽다


우리는 순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한순간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도 한다. 결국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다는 것일까. 정지된 역사 속에서 실존했다는 증거인가. 과거에 있었던 무언가를 확증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부재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대한 경의인가. 아마도 이 모든 것이리라.  91-92


'가까이 더 가까이 감동되어 셔터를 누르면 어둠이 가득한 자궁 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한 생명을 잉태하듯이 한순간의 빛과 만나 필름에 그 피사체의 감동이 잉태되는 것이다. 잉태된 생명이 10개월의 임신 기간을 거쳐 태어나듯이, 한 장의 사진도 필름에 잠상이 맺혀 현상되기까지의 현상 시간을 거쳐 마침내 태어난다.' - 최광호 <나는 사진이다> 중에서  95


안도현 시인의 <사진첩>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추억이란 존재의 뿌리이다..."  100


타인의 사진을 본다는 것은 사진을 찍은 작가의 본래 의도를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다.  110


* 가다머 해석학 - 가다머는 사진의 수준, 내용, 의미, 가치는 사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노력하는 그림자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113


정치적 풍경(political landscape)이란 .. 언뜻 보았을 때 자연풍경, 현실풍경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강한 정치적 동기, 정치적 의도를 내재한 인공적 혹은 가공적인 풍경이라는 것이다.  122


정치적 풍경의 특징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아름답거나 어떤 면에서는 달콤한 풍경사진일 경우가 많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사진 속의 '기둥' 자체는 정치를 상징하지 않기 때문에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사진이 정치적인 풍경사진이라고 알아차리기 어렵다. 즉 정치적 업적을 상징하는 흰 기둥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가둬짐으로써 상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 곳곳이 공사 중이고 건설 중이다. 다리, 건물, 도로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 대부분의 공공 건축물, 건축 구조물은 정치적 상징성을 띠는 정치적 풍경이다. 마찬가지로 사진 속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 기둥이지만 정치적 동기에 의해 세워지고, 또 드러나지 않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장대한 구조물, 어둠 속엣 명명하는 교각이 말하고 있다.  123-124


* 사진의 정치성 - 사진의 권력은 대중들의 절대적 믿음에서 생겨났다. 발명 순간부터 사람들은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느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말보다 사진을 믿었기에 이를 역이용한 정치적 사진들이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기생해 왔다. 독재정권을 위한 조작된 홍보용 사진,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날조된 사진, 실재 이상으로 과장되게 연출한 선전용 사진. 지금도 정치 집단 혹은 행정 집단이 실적주의, 성과주의, 여론 고취를 위해 이런 사진들을 부단히 활용한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맥락의 정치적 사진이 있다. 완전히 다른 입장에서 정치적 소재들을 활용하여 사회를 비판, 고발, 폭로하는 사진이다.  125


* 프레임 - 프레임에는 물리적인 프레임과 심리적인 프레임이 있다. 물리적인 프레임은 구성, 구도를 위한 파인더, 이미지 틀, 액자의 특이다. 대개 표현을 위한 물리적인 틀이다. 가장 오래된 프레임은 바늘구멍(pinhole, 원형)이다. 암상자(camera obscura) 소에서 세사을 보면 동그랗다. 이런 구형의 프레임이 점차 정사각형, 직사각형 모습으로 변해 갔다. 반면에 심리적인 프레임은 의미의 프레임이다. 보이지 않는 인식의 그릇과 같다. 물리적 프레임 못지 않게 중요한 프레임이다. 콘셉트와 의도는 심리적 프레임이다. 사진의 힘은 프레임에서 나온다.  131


들뢰즈는 추상에 대한 새로운 사유 방식을 요구하면서, 추상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진정한 추상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고, 또 그래야만 추상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으며, 진정한 추상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들뢰즈는 추상이 "구상적이지 않다, 서술적이지 않다, 자연적이지 않다, 문학적이지 않다"라는 말에 반대하며, 추상은 구상의 반대도, 구상과의 단절도 아닌, 구상의 혼성과 중첩일 뿐이라는 논리를 편다. 실제로 카메라를 통해서 추상을 표현할 때는 들뢰즈의 말처럼 추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된다. 추상을 구체적인 형상을 지운 것, 혹은 구체적인 내용을 걷어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진정한 추상을 만나기도, 형상화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진정한 추상사진은 추상회화처럼 조형의 기교가 아니다. 형상이 부재하거나 결여된 것은 더욱 아니다. 추상사진은 들뢰즈가 추상론에서 말했듯이 구체적인 형상에 대한 '아니오'가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에 끊임없이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를 반복해 가는 것이다.  133-134


들뢰즈는 "에너지가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사물)는 근본적으로 추상이다. 그들은 무(無 없을무) 구속적이고, 탈(脫 벗을탈) 중심적이다. 그것은 개연성 없이 우연히, 형식 없이 작동하는 순수한 자율성이다."  134-135


* 들뢰즈의 추상론 - 한마디로 형태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관념적, 인식론적 추상이다.  137





한 장의 사진을 느끼다


사진을 알게 되면 처음엔 누구나 사지능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것은 일찍이 보지 못한 세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다...

사진을 알기 전에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감상할 수 있었는데, 사진을 알고부터는 오로지 사진적으로만 세상을 보려고 한다. 

이미지의 노예, 사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153


피사체가 스스로 말하는 사진이다. 이런 사진은 이미지의 노예에서, 사진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진정 사무로가 순수한 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155


사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것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다. 이런 것이 사진의 참 의미가 아닌가 한다. 무언의 사물과 말한다는 것, 그러니까 말없는 사물들에 다가서고, 귀 기울이고, 그리고 사진을 통해 인식의 통로를 여는 것, 이것이 사진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자 매력이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없다. 오로지순수한 눈과 마음을 지닌 작가만이 할 수 있다.  156


* 기억회로 - 사진은 기억을 재생시킬 뿐,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기록보다 우선하는 것이 '알아봄'이다.  


풍경이 사진가에게 한 장만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만큼 긴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풍겨을 여러 장 똑같이 찍었다는 말은 풍경과 호흡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186


풍경은 아무나 다가가서 찍을 수 있는 대상이지만 풍경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거나 그 속으로 풍덩 빠져들지 못하면 그 풍경 사진은 단순 복제에 불과하다.  187


* 힐링 포토 - 치유에 활용되는 사진은 대개 고요한 풍경사진, 그 가운데서도 흑백사진이다... 흑백사진이 좋다는 것은 현실의 색을 제거해서 요란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189


소쉬르라는 언어학자가 평생을 두고 고민했던 것은 언어의 자의성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언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언어의 진정성을 규정짓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말이다. 각기 다른 삶을 경험하고, 처해 있는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말도 저마다 다르게 표기하고 해석해 버림으로써 의미의 혼란, 해석의 실종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판단이 사람들의 인식의 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각각이 경험한 삶의 리얼리티가 다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람드이 현실을 인식하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삶의 차이가 현실을 인식하는 차이로 나타나고, 현실을 인식하는 차이가 세상을 해석하는 차이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맨 먼저 알게 된다. 그 점에서 우리가 쓰는 언어란 삶의 리얼리티라고 말할 수 있고 그 리얼리티의 차이가 곧바로 사진의 차이, 감상의 차이, 해석의 차이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진을 보는 관객이 저마다의 리얼리티에 따라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 과정에서 다행히 작가와 관객이 같은 리얼리티를 공유하고 있으면 좋은 느낌, 좋은 사진이 되고, 다른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으면 느낌 없는 사진, 별 감흥이 없는 사진이 된다. 시각언어인 사진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모든 사진이 다 좋을 수 없고, 또 반대로 다 나쁠 수는 없다. 그 모든 좋고 나쁨의 선택은 관객의 리얼리티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교육은 다양한 리얼리티를 경험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학습을 통해서 작품과 관객 간에 존재하는 리얼리티의 차이를 극복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리얼리티의 중재는 우리의 일상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때론 음악이, 때론 설명이, 때론 주변 상황이 리얼리티의 차이를 극복하게 만든다.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이 없었던 사진이 오래 보면 좋아지는 것은 반복해서 보는 동안 그 사진과 친숙해지기 때문이다. 또 어느 순간 급작스럽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진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주변 환경이 리얼리티를 중재해 주었기 때문이다.  191-192


"사람들 속에 같은 사람으로 살면서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도 나를 모른다."(강상훈) 작가가 카탈로그에 썼듯이 우리는 서로 몰랐던 것이다. 서로의 리얼리티가 달라 그의 사진이 내게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이고, 감흥이 없었기에 사진보다는 글이나 한번 읽어 보자고 한쪽으로 치워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얼리티를 공유하는 순간 이 사진은 내 마음에 와 닿았고, 새삼스레 진정한 리얼리티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193


진광불휘(眞光不輝 참진 빛광 아닐불 빛날휘), 참된 빛은 빛나지 아니한다. 통도사 주지이셨던 성파 큰스님은 순수의 뜻을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197


사진의 모드는 삶의 모드가 만들어 낸 형상이다.  210


작가는 자기 삶의 모드에 반하는 사진의 모드를 가져서는 안 된다.  211


* 치열함 - 작가(作家 지을작 집가)란 자기 집을 지슨 사람, 자기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213


* 뒷모습 - 삶에서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진실일 경우가 있다. '뒷모습이 진실이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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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빛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 알아봐준다.  133



참 우스운 얘기라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잡화점 주인이 뜬금없이 남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된 속사정은 다카유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튼 주간지에서 취재를 하러 왔을 정도인 것이다. 그 직후에는 상담 건수가 부쩍 늘기도 했다. 진지한 내용도 있지만 대개는 장난 비슷한 것이 많았다. 명백히 해코지로 보이는 편지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했던 것은 하룻밤 새에 서른 통이 넘는 편지가 날아온 일이다. 누가 보더라도 한 사람의 필적이었다. 내용은 모조리 엉터리로 지어낸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하나하나 답장을 해주려고 했다. 그때만은 다카유키도 아버지를 말렸다.

"이건 어떻게 보건 못된 장난질이에요. 진지하게 대해주는 게 바보짓이죠."

하지만 늙은 아버지는 전혀 짜증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딱하다는 듯이 다카유키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너는 아직도 뭘 몰라."

내가 뭘 모르느냐고 짐짓 불끈해서 따지고 들자 아버지는 서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뜷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로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157-159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167



중요한 것은 태어나는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만 행복해진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설령 남편이 있다고 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겠다.  204-205



가족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좋은 일로 잠시 헤어져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싫어져서, 그만 지겨워져서, 라는 이유로 서로 뿔뿔이 헤어진다는 것은 가족의 참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58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269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 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은 지도(地圖 땅지 그림도)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력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難問 어려울난 물을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 드림  447




옮긴이의 말 - 기적과 감동을 추리한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칭찬받을 만한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 힘에 버거워 가장 편한 길로 도망친 것이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450-451


이 소설은 2012년 '중앙 공론 문예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자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책 읽기를 무척 싫어하는 아이였다. 국어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불러 만화만 읽을 게 아니라 책도 읽을 수 있게 집에서 지도해달라는 충고를 하셨다. 그때 어머니가 한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 애는 만화도 안 읽어요." 선생님은 별수 없이, 그렇다면 만화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작품을 쓸 때, 어린 시절에 책 읽기를 싫어했던 나 자신을 독자로 상정하고, 그런 내가 중간에 내전지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한다.'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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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아무에게도 길을 물어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을 자유조차 잃게 되리라"라고 어느 현자를 말했다. 

남들이 백 번도 더 지나간 길에서, 틀에 박힌 생각에서, 그림엽서처럼 뻔한 풍경과 집단 수용 천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제 '우연'에 진심 어린 존경을 표하고 본래의 권위를 돌려줘야 할 때가 왔다.  9




딴 데 가서 알아봐 - 프랑스인들은 '딴 데 가서 알아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성가신 사람을 멀리 쫓아낼 때 쓰는 이 표현은, 누구라도 들으면 기분이 언짢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한 말이라면, 이 '딴 데 가서 알아봐'는 여행자의 지상 목표가 된다. 그런데 이곳을 떠나 당신을 둘러싼 환경이 달라졌는데도 정작 당신 자신은 달라지지 않았다면 그 여행은 망쳤다는 뜻이다.  16-17


은인 - 한 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현지인 친구를 사귀는 것만 한 방법이 없다. 이들이 보여주는 일상적인 친절과 배려는 가이드가 늘어놓는 청산유수 같은 설명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치게 경계심을 품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요컨대 분별이 관건이다.  21


출항 - 프랑스 소설가 폴 니장(Paul Nizan)은 "여행은 돌이킬 없는 상실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26


오지 - 낯선 지역, 어쩌면 덜 알려진 지역을 가리킬 때 쓰는 용어, 이런 지방은 관광지 바깥에 위치한다. 이처럼 가게 뒷방에 깊이 숨겨진 보석 같은 고장에 찾아가 자신의 머릿속에 박혀 있는 고정관념을 뒤른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26



"여행은 젊은이를 가르치고 노년을 미리 경험하게 한다." - 프랜시스 베이컨(Bacon Francis, 1561~1626)



짐 - 비행기에 탈 때 짐이란 짐은 다 덜어내도 마음의 짐은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아니 불행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짐의 무게는 어느 항공사에서도 재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나 할까?  38



"그러나 진정한 여행자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떠나는 자들 마음은 풍성처럼 가볍게 숙명은 결코 떨치지 못한 채 그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늘 '가자!라고만 말하네." - 샤를 보들레르(Baudelaire Charles, 1821~1867)



베르베르족 속담 - 여행은 자기 삶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41


지도 -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자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쉬아레스는 이런 말을 남겼다.  63


기분 전환 - "우리는 장소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 여행한다." 이폴리트 텐(프랑스의 비평가, 역사가)  71


사냥꾼 - 홀로 나와 바람 냄새를 맡으며 우연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은 '즉흥 사냥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길을 가다 자신이 원하는 것뿐 아니라 예상치 못한 만남도 얻는다.  71


길 위에서 - 여행은 삶과 같다. 목적지가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길이 중요하다. 시간에 쫓기며 정해진 목표를 향해 서둘러 갈 권리도 있겠지만, 길가에서 경험하는 경이와 아름다움을 놓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72


중국 속담 - 진정한 여행자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75


세상 끝에 사는 친구 - "여행자란 어떤 사람인가? 세상 끝까지 가서 말 한마디라도 나눠보려고 훌쩍 떠나는 이가 아닌가!" 쥘 바르베 도르비이(프랑스의 소설가)  82


호기심 - 두뇌와 오감을 사용하는 여행이야말로 호기심 많은 사람이 맛보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경이에 대한 욕구가 없고, 여행자의 시선으로 길가에 널린 놀라움을 거둬들일 줄 모른다면, 자기 방에서 멀리 떠나 모험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87


현지에서 작업 걸기 - 어떤 나라를 속속들이 알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현지인과 살을 맞대보거나 적어도 감정이 오가는 관계를 만드는 게 최고다. 현지 풍속과 언어를 속속들이 알기 위한 이런 여행 방식이 기혼 여행자의 정조 관념과 갈등을 빚지 않는다면, "항구마다 기다리는 애인 한 명씩은 만들어라"라는 유명한 말은 진정한 탐험가들이 응당 마음에 품을 법한 것이며 앎에 대한 목마름에 훌륭히 부합한다고 하겠다.  106


여행작가 - 여행작가와 글도 쓰는 여행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여행 작가의 시선은 깐깐하다 못해 열정과 비판으로 남들을 불편하게 만들지만, 글도 쓰는 여행자는 보통 타협적이고, 자신이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최상급 형용사들을 줄줄이 늘어 놓는다...

글쓰기와 여행은 언제나 서로를 사로잡는다. 이 둘은 모두 상상 세계를 향해 떠날 준비를 마쳤거나 모든 가능한 세계를 이미 탐험한 이들, 그러니까 '다른 곳을 열망한 이들'의 부름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111-112


깨어남 - "자신이 꿈꾸는 여행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참다운 여행이 아니다. 이때 말하는 꿈은 정신을 잠재우는 꿈이 아니라, 땀에 흠뻑 젖고 목이 메면서, 수염이 자라 덥수룩해진 채로 몸을 부르르 떨며 깨어나게 되는, 이야기할 수 없는 꿈, 너무나 아름다워서 나이를 먹는 것조차 멈춰버리는 그런 꿈이다." 다니엘 메르메(프랑스의 언론인, 작가)  120


청년 교육 - "여행은 젊은이들을 가르친다"라고 몽테뉴는 말했다.

현재를 눈부시게 만들고 자기 앞의 생을 환히 밝히기 위해 여행을 하다 보면 내면이 풍요로워진다.  125



"독서가 여행이고, 여행이 독서다." - 빅토르 위고(Hugo Victor, 1802~1885)



"또다시 우리의 울퉁불퉁한 여행 가방이 보도 위에 쌓였다. 우리 앞에는 가야 할 길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길이야말로 삶인 것을." - 잭 케루악(Kerouac Jack, 1922~1969)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집에만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 러디어드 키플링(Kipling Rudyard, 1865~1936)



세계를 읽다 -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을 한 쪽밖에 읽지 못한 셈이다." 외젠 다비(프랑스 소설가)  170


거꾸로 여행 - "진정한 여행은 어딘가에 가는 행위 그 자체다. 일단 도착하면 여행은 끝난 것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끝에서부터 시작한다." 위고 베를롬(프랑스 작가)  171


책 - "모든 책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은 세상에 한 권뿐이며, 세계 모든 나라의 국경을 열어주는 8절판의 작은 책, 바로 내 여권이다." 알랭 보레(프랑스 비평가, 여행 작가)  177



"여행을 많이 하고 자신의 생각과 삶의 형태를 여러 번 바꿔본 사람보다 더 완전한 사람은 없다." - 알퐁스 드 라마르틴(Lamartine Alphonse, 1790~1869)



"여행은 문과 같다. 우리는 이 문을 통해 현시렝서 나와 꿈처럼 보이는 다른 현실, 우리가 아직 탐험하지 않은 다른 현실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다." - 기 드 모파상(Maupassant Guy de, 1850~1893)



무어인 속담 - 여행하지 않는 살마은 인간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  196


앙리 드 몽프레 - "삶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고, 모험을 결코 두려워하지 말며, 우연과 행운과 운명을 신뢰하라. 길을 떠나 다른 공간과 다른 희망을 정복하라. 그러면 나머비는 덤으로 주어지리라."  203


테오도르 모노 -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이 어디인지는 잘 알지만, 언제, 어떻게, 어떤 길로 그곳에 이르게 될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 미리부터 너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두고 보면 알게 된다."  203


미셸 에켐 드 몽테뉴 - "왜 여행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나는 늘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내가 무엇을 피하는지는 잘 알지만, 내가 무엇을 찾는지는 잘 모른다'라고 말이다. 자신의 생각을 타인의 두뇌에 문질러 다듬기 위해서라도 여행을 해야 한다."  203


베트남의 해변 도시, 나짱 - '삶의 운치'를 즐긴다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다른 모험을 향해 전속력으로 당신을 떠밀어대는 안내책자의 프로그램은 그럴 계획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다음 기회에... 이런 식의 여행은 '바보 같은 여행'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딱할 뿐이다.  206-207


프랑스 최대 여행사, 누벨 프롱티에르 - 오늘날 고객은 한곳에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특별히 피하는 곳도 특별히 가고 싶은 곳도 없이 특정 브랜드를 고수하지도 않고, 그저 일종의 소비요겡 이끌려 '기획 상품'만 찾는 뚜렷한 경향을 보인다.  210


길을 잃을 자유 - "아무에게도 길을 물어보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을 자유조차 잃게 되리라" 랍비 나흐만 드 브라트슬라브가 남긴 이 경구는 진정한 여행자, 곧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은 호기심으로 가슴 설레는 사람에게 마음의 지주가 된다.  232


페르시아 속담 - 우리가 여행에서 가져올 수 있는 최고의 기념품은 건강하고 무사한 자기 자신이다.  234


긴 여정, 짧은 산책 - 한가로이 거닐면서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우연을 누릴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여행 그 자체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노자는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비행기 덕분에 완전히 거꾸로 여행할 수 있게 된 만큼, 그러니까 한 걸음에 천리 길을 갈 수 있게 된 만큼, 수천 킬로미터 거리를 훌쩍 날아간 뒤에 한 발짝 한 발짝 디딜 때마다 여행의 꽃이 활짝 피어난다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235-236


해변 -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임을 내세우는 곳은 수십군데지만, 문제는 그것이 객관적인 평가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242



"무언가를 발견하는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으려는 여행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을 가지려는 여행이다." - 마르셀 프루스트(Proust Marcel, 1871~1922)



추구 - "여행은 동기가 없어도 된다. 여행 그 자체만으로 족하다는 것이 이내 입증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여행이 당신을 만들거나 당신을 해체하는 것이다." 니콜라 부비에  252


만남 - "우리는 자신을 피하기 위해서 여행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자신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다." 장 그르니에  268


추억 - 여행은 추억을 만들어내는 공장이다. 가장 빛나는 추억은 현재에 만들어진다는 것을 때때로 망각할 정도다. 기억은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는 만큼 지금 이 순가에 머물기를 잊고 추억을 모으는 데만 급급해한다면 껍데기만 남는다. 무엇보다도 그토록 먼 곳까지 가서 찾고 느끼려했던 것들을 놓쳐버릴 수 있다. 그러니 '카르페 디엠', 현재를 즐겨야 한다. 받아들일 줄만 안다면 덧없는 한순간보다 더 지속적인 것도 없다.  28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나는 어딘가에 가려고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여행한다. 그러니까 여행하는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여행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움직이는 것이고, 삶의 필요서오가 난처함을 더 가까이 느끼는 것이다."  284


여행자의 인사, "스토 칼로" -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건네는 그리스의 인삿말이다. '스토 칼로 나파스(Sto kalo nappas)'의 준말인 이 표현은 선(善)과 아름다움을 향해 가라'라는 뜻이다. 여행자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줄 만한 좋은 말이다.  285


티베트 속담 - 여행은 본질로의 회귀다.  296


투아레그족 속담 - 첫 번째 여행에서 우리는 발견을 하고, 두 번째 여행에서 우리는 풍요로워진다.  299


관광객 - '관광객'이라는 말은 이탈리아 산책 수첩에 "어느 관광객의 회상록"이라는 제목을 붙인 스탕달에 의해 처음으로 생겨났다. 이후 그의 뒤를 이어 떠나는 방문객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때로는 이들이 낯선 곳의 '점령자'가 되는 지겨엥 이르렀다. 이 점령자들이 자신이 방문하는 장소를 변화시킬 때 여행자는 새로운 발견의 여지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이때 여행자는 풍경에 어우러지기보다는 풍경에 거치적거리는 존재가 돼버린다.

여행의 민주화는 사회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의미하지만, 이러한 진보의 정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온전한 풍경을 더 이상 일그러뜨리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302-303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에 있다." - 폴 발레리(Valery Paul, 1871~1945)



여행필수품 - 스페인의 시인 안토니오 마차도는 이런 말을 남겼다. "행복으로 이끄는 길은 없다. 행복이 바로 길이다.", "여행자여, 길은 바로 그대의 발자취다."  321


잔스카르 속담 - 여행은 그대의 아버지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찾았을 때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그 땅은 그대의 어머니다.  339


에밀 졸라의 겉치레 말 - "여행만큼 지성을 함양하는 것은 없다"라고 이 작가는 말했다. 관광산업의 유혹에 넘어가 여기저기 우르르 몰려 다니기를 낙으로 삼는 이들이 흡족해할 만한 말이다.  하지만 그저 움직였다고 여행을 한 것일까? 예전에는 어떤 사람의 지성이 그가 주파한 거리와 비례할 수 있었는지 몰라도, 불행히도 이런 시대는 지나가지 않았는가!    341-342




옮긴이의 글

모든 것을 계획하고 떠나며 꿈꾸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는 여행과 정반대의 여행이 있다. 마음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이곳이 아닌 다른 하늘 아래로 몸을 피해야 숨이라도 겨우 쉴 듯한,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는 여행.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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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나가는 여자들을 쳐다보는 법이 없다. 맨해튼에는 여신처럼 아름다운 여인들이 많지만 내 눈은 그녀들의 얼굴에 가닿지 않는다. 난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믿지 않는다.

그런 내가 이번에는 좀 이상하다. 살아가면서 적어도 한 번쯤은 체험하는 기이한 순간이다. 마침내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 그 낯설면서도 분명한 인식...

나에게 기회를 잡을 시간은 단 3초만이 주어진다.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다. 난 무턱대로 입을 연다.  129


인생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순간은 우리가 기억하는 순간들이다. - 장 르누아르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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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 만남

여행밑줄 2012. 11. 22. 13:07

어떤 여행을 하든 만남의 연속이다. 그리고 '여행 좀 해봤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인정하고 공감하는 단어가 '만남'이다.

어떤 만남들이 있는가?

당연히 만남하면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인데. 이런 질문을 하다니... 

글을 시작하면서 나역시 사람과의 만남을 생각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사람과의 만남만 만남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 여러가지의 만남이 있음을 정리해 보고자 하는 질문을 해본다.


우리의 인상 생활에서도 숱한 만남의 연속이다. 생활은 선택의 연속이란 표현처럼, 만남의 연속도 되지 않는가.

선택을 한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접점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접점이 만남의 순간이다.

이처럼 우리의 여행은 익숙한 만남들에 더해 새로운 만남들의 시간이다.

새로운 건물과의 만남, 새로운 숲과의 만남, 새로운 나무, 새로운 카페, 새로운 교토으 새로운 시장, 새로운 과이르 새로운 숙소, 새로운 침대, 새로운 욕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것들과의 향연이다.

이처럼 만남의 순간들이 여행에서도 이루어진다. 그 만남들은 때론 스쳐지나가기도하고, 감탄을 주기도하고, 때론 실망을 주기도하고, 때론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가장 큰 기억을 남기는 만남은 어떤 만남일까?

누구나 공감하듯 사람과의 만남일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가장 생생한 것이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그렇다고 좋은 기억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여행자들을 노리는 사기꾼들은 어디나 존재한다. 소매치기도 존재하며, 비싼값을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조차 시간이 흐르면 하나의 추억으로 자리한다. 

힘들때, 도와주었던 사람, 헤매일때 길을 함께 해준 사람, 처음봤음에도 초대하고 방을 내어주던 사람, 여행자로 만나 이야기가 통해 함께 여행을 다닌사람, 힘든삶을 살지만 여행하느라 고생한다며 음료하나를 건네던 사람, 배낭이 무거워 보인다며 함께 들어주던 사람, 가던 길을 멈추어준 사람.. 이러한 사람과의 만남은 풍경보다 더 갚진 기억으로 자리잡는다.



어느 시골 마을 궂이 숙소를 잡아 돈쓰지 말고 자신의 집에서 편하게 쉬라던 노부부는 두분의 일주일치는 되어보이는 음식들을 내어주시고, 통하지 않는 언어였지만 눈빛과 마음으로 충분한 교감을 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시골 마을에서는 이제 갓 스무살이 된 아가씨가 집으로 초대하여 가족을 소개시켜주고 잠잘방을 제공해 주었다. 다음날은 조부모님들의 집으로 다니면서 인사시키고, 가옥들을 둘어볼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였다.(혹 이성적으로 접근한것이란 생각이 든다면, 그것이 아님을 밝힌다. 그녀는 이미 남자친구도 있었고 영어를 배울 필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순수한 마음을 보여준것이다.)

처음보는 낯선 이방인을 위해 일가족이 모두 모여 파티아닌 파티를 열어 주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이틀동안 잠을 자지 못하고 이동하여 피곤이 온 몸을 휘감고 있을때, 그들의 피로회복제 한병을 건네던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의 눈빛도 잊혀지지 않는다.


숱한 사람들과의 기억들은 잊히지 않는다. 

그 만남의 접점에서 정이 나왔고, 정이 나오는 그 지점이 여행자에게 하나의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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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언니였다면 나는 지난 일 같은 건 그냥 아름답게 간직해 버리고 말 거야. 노래방 같은 데서 노래 부를 때만 조금 생각하고 나머지는 다 잊어버릴 거라고."

"잊는다고?"

내가 물었을 때 록이는 맥주잔을 들다 말고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잊는 거, 잊어버리는 거 말이야."

잊는다는 건 꿈에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내가 잊으려고 했던 것은 그가 아니라, 그를 사랑했던 내 자신이었다.  26


그때 나는 그의 곁에 있느 모든 여자를 질투했었다. 칸나라는 여자는 물론이고, 그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있던 뚱뚱한 아주머니까지. 공원을 걷다가 그가 일으켜 세워 주었던, 넘어진 열 살짜리 꼬마 아이까지. 그게 누구든 그가 나 이외의 모든 여자에게는 찡그린 표정만 보여 주었으면 했던 것이다. 그게 터무니 있든 없든 그랬다. 나는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살고 싶었다. 그의 호주머니 속에 들어가 그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고 싶었다. 가끔 그의 손이 내가 살고 있는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오면 그의 손가락을 만지작 거리며 잠들고 싶었다. 어릴 때 피아노 뚜껑을 덮어 버려서 흉터가 남은 그의 손가락에 내 얼굴을 대고 싶었다. 

"그건 사라잉 아니라 스토킹이야. 집착일 뿐이라고."

나중에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자 친구 지희가 말했었다.  29


그는 부지런했다. 그가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엇다. 나주엥 생각한 일이지만 그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슬픔이라는 점령군에게 마음의 영토를 다 빼앗길까 봐 두려워하고 있던 것도 같았다.  33


"너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어. 언젠가 너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었어."

준고는 무슨 말이든지 하라는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을 열려고 하는데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눈가로 몰려왔다. 피가 얼굴 앞ㅉ고이로 몰려드는 것처럼 아주 무거운 기분이었다.  

담담하고 당당하게 말하려고 햇는데 나는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입을 열면 지난 칠 년을,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내려 앉았던 빨간 심장을 다 토해 버릴 것만 같았다. 

기다렸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 휴대전화를 장만하고 나서 그가 당연히 내 전화번호가 바뀌고, 한국의 전화번호는 세 자리 국번에서 네 자리 국번으로 바뀌어 버렸는데도 심장은 내 머리를 비웃으며 그렇게 덜컥거렸다. 사무실에서든 집에서든 전화를 받아 들고 그 소리의 주인공이 여보세요. 하기까지 전화벨은 고통이 시작되는 신호였다. 그렇게 혹시라도 기적처럼 그가 전화를 걸어 와 베니, 넌 잘 있니? 하고 물으면, 그러면 나는 대답하고 싶었다. 

'응, 잘 있어. 나는 최홍이고, 나는 씩씩한 여자고, 나는 잘 있어. 준고. 어쩔 수 없이. 안간힘을 다해서, 필사적으로 그렇게 잘 있단다.'

그리고 나는 꼭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울고 있는 나를 내버려 두었니? 왜 붙잡지 않았니? 잡지도 않고 찾지도 않고 그리고 왜 이제야 여기에 온 거니?'  45


아침에 좀 더 신경을 쓰고 나올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도 머리도 좀 더 예쁘게 하고 옷도 좀 더 화사하게 입고 올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아무런 반짝거림도 없이 그저 시들어 가는 노처녀처럼 보였던 것은 아닐까. 내 자신이 싫어졌다. 더도 덜도 아니고 그가 가슴 아플 만큼만, 그가 후회할 만큼만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 이건 민준을 만나면서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다.  51-52


준고는 늘 바빴다. 아르바이트를 다섯 개나 한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까 어떤 때는 임시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것 같았다. 그래야 학비를 번다니. 

"너희 아버지는 뭐 하셔? 너 혹시 고아 아니니?" 나는 물었다.

"아버지는 첼리스트야, 가난한..." 그가 말했다. 

"혹시 가짜 부모님?"

내가 묻자 그가 하하. 하고 웃었다.  66


"베니, 네 얼굴은 늘 이상한 생기로 가득 차 있어. 일이 힘들어지면 나는 늘 네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 빛을 기억해." 

그건 준고가 한 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나이가 든 필자 선생님이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말했었다. 

"최홍 씨는 가끔 참 어두워. 세상을 다 살아 버린 사람 같아." 그때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

"선생님에게는 독한 추억이 있나요?"

나는 조금 술에 취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시비 걸듯이 대꾸할 수가 없었을 테니까.

"아무리 몸을 씻어도 아무리 딴 생각을 해도 지워지지 않는 취기 같은, 그런 독한 기억이 있느냐고요?"  76


"엄마는 아빠를 아직도 사랑해?" 내가 물었다. 내가 뺨을 대고 있는 엄머의 등이 잠시 굳어졌다.

"... 사랑은, 하지. 그런데 좋아하지는 않아."  77


"사람이 사는데, 꼭 나쁘다는 것이 과연 존재할까? 더구나 누구를 사랑하는데. 그건 말이야, 그저 과거의 일일 뿐이야. 되돌릴 수도 없는 거, 그냥 오늘을 살고 내일을 바라보고 그러는 게 좋지 않겠니?"(민준의 말)  87


엄마는 말이 없어진 내게 그렇게 말했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야. 그건 지옥으로 들어가는 거지. 결혼은 좋은 사람하고 하는 거야."  91


혼자서 그의 집을 나오던 그날 밤, 공원 길을 걸어 기치조지역을 향해가면서 나는 중얼거렸었다. 

"대체 왜 그러느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느냐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천진한 눈으로 그렇게 묻지는 마... 내가 너보다 많이 슬펐고, 내가 너보다 많이 기다렸고, 내가 너 보다 많은 걸 걸었으니까. 그러니 이제 나를 잊어. 칸나를 잊듯이. 벚꽃이 일제히 지듯이 그렇게... 더 많이 사랑햇던 사람하고, 더 아팠던 사람하고, 정말 처음이었던 사람들이 이미 불행하기로 되어 있었던 걸 너는 모르겠지. 영영 그렇게 모르겠지. 그러니 잊어. 하나도 남김없이 잊어."

그러면서 나는 아마도 뒤돌아보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가 실은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인 줄도 모르고 이제 그를 떠나야 한다는 결심과 제발 그가 다가와 날 붙들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팽팽히 맞서는 것을 느끼며 그곳을 떠나왔던 것이다.  101


사랑받지 못하는 것보다 더 슬픈 건 사랑을 줄 수없다는 것.  109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111


"그런데 지희야, 혹시 사람에겐 일생 동안 쏟을 수 있는 사랑의 양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닐까? 난 그걸 그 사람한테 다 쏟아 버린 거 같아... 그리고 내 표정이 아무리 이상해져도 앞으로도 늘 이렇게 말해 줘. 그런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해 줘. 부탁이야!"  119


이 호숫가는 적어도 그가 없었던 공간,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여기에는 추억이 없으니까. 여기에는 처음부터 나 혼자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그가 여기 들어섬으로써 나는 기억을 갖게 되어 버렸다. 그러자 그를 용서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칠 년 동안 나를 기다리게 해 놓고. 뭐 딱히 그가 나보고 그러라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해놓고 겨우 내가 한 바퀴를 도응 동안도 더 기다리지 못하고 돌아가 버린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125-126


가끔은 하늘도 마음을 못 잡고 비가 오다 개다 우박 뿌리다가 하며 몸부림치는데 네 작은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해도 괴로워 마.(지희의 메일 내용중에서)  130


"..모범 답안으로만 살명 진짜 무엇인 옳은지 모르는 거야."  132


언제나 어린 동생처럼 보였는데 록이가 훌쩍 큰 듯 느껴졌던 것은 아마 내 마음이 누구에게든 기대고 싶을 만큼 지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134


그가 나를 위해 힘겨운 아르바이트를 다섯 개씩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비싼 음식들을 먹으로 가자고 졸랐던 것은 그의 짐작대로 내가 돈 걱정 없이 자라서가 아니라 말하자면 멋진 남자와 사랑할 때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들, 그러니까 좀 더 쾌적하고 로맨틱한 장소에 그와 나의 사랑이 머물렀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와 직원들을 모두 내보낸 부도 직전의 출판사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자장면만 먹으며 일할 때 나는 준고를 생각했었다.

차비 한 푼도 힘겹던 시간이었다. 지희가 남자 친구를 데려와 소개했을 때 이차로 마신 생맥주 값을 나보고 내라고할까 봐 잊어버린 일이 있는 듯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오면서 나는 준고를 생각했었다. 내가 로맨틱한 카페에 가서 프랑스스기 음식을 먹자고 조를 때 그의 눈에 비치던 그 곤혹스러움..., 그가 캔 커피를 사서 공원에서 마시자고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하는 것도 떠올랐다. 미안하다고, 내가 너무 철이 없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미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버린 뒤였다.  137


'최홍. 너, 여기서, 대체, 뭐하고 있는 거니?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암전되어 버린 것처럼 아찔해졌다. 그 어둠 속에서 나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시 거역할 수 없는 물음이 들려왔다. 

'윤동주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겟다던 너는, 대체,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고?'

마취에서 깨어난 것처럼 온몸이 아파 왔다. 가슴 한구석이 갈라지는 듯했다. 나는 긴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사방을 둘러보았다. 검은 장막이 서서히 걷히며 어렴풋이 사물들의 윤곽이 보였다. 이곳은 좁은 욕실, 준고의 아파트였다. 도쿄였고 일본이었다. 나는 여기서 오전에는 일본어 학원을 다니고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준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196-197


이제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결심을 해야 했다. 나는 준고에게 한국으로 가자고 할 셈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인사를 드리자고 하고 싶었다. 내가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나 인사했듯이 그를 한국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내가 할아버지 이 사람은 좋은 일본인이에요. 하면 할아버지도 빙그레 웃어 주실 것 같았다.


그날 역시 늦게 돌아온 준고는 피곤하다는 듯이 물을 한 잔 마시더니, 자자. 하고 자리에 누웠다.

"할 이야기가 있어."

내가 말을 꺼내자 그는 돌아누우며 제니 내일. 하더니 이불을 뒤집어썼다.

"대체 너에게 나는 누구니?"

등을 돌리고 누운 준고의 뒷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대체 너에게 나는 무슨 의미인 거냐고!"

그가 가늘게 코를 고는 소리가 바다 위에 내리치는 번개처럼 밤새 내 망막에 푸른빛으로 번쩍번쩍했다.

"오늘은 안 되고 내일은 시간이 나니까, 홍. 우리 맛있는 거 먹으로 가자."

아침이 되자 미안하다는 듯 그가 말했다. 나는 침을 한 번 삼키고 그래, 그럴게. 했다.  198-199


내 생애의 첫 사람인 그..

'하느님 준고를 살려주세요. 원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에요.' 격정적인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두 손을 모은 채 얼마가 지났을까. 마음이 싸늘히 식어 내리면서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다시 한 번 다짐했었다. 준고는 약속을 그렇게 허투루 어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약속을 어길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뒤에 순간이었지만 만일 그런 사람이 약속을 어긴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의 메시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202


"끝내자, 준고." 내가 말했다.

준고는 마치 낯선 외국어라도 들은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었다. 실은 나는 그가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 주기를 바랐던 것일까? 그랬을 것이다. 우리 지금은 힘든 시간이니까 조금만 이 고비를 넘겨 보자고 말해 주기를 기다렸던 것일까? 그랬을 것이다. 아니, 그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 서투른 동거와 이국 생활의 외로움에 나는 지쳐 가고 있었다. 그가 내 손을 잡고 다정하게 흥, 이야기를 해봐, 하고 말한다 해도 나는 떼를 쓰듯 우겼을지도 모른다. 한국으로 갈래, 한국으로 갈래, 하고. 그때 나는 생이 우리에게 얼마만큼 냉정하게 모든 행위에 대해 해명과 책임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스물둘이었다.

'준고, 함께 한국에 가자. 가서 할아버지께, 일본 여자랑 결혼하려던 아빠를 반대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너처럼 좋은 일본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자. 우리 세대는 다르다고 말하자. 응?'

나는 그렇게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는 묻지 않았다. 피곤함과 짜증이 섞인 그의 눈빛이 침묵 속에서 비수처럼 나를 찌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슬픈 얼굴이 내 눈앞을 가로막았다.  204-205


"그래 그럴게. 행복해라..."

그가 말했다. 응, 너도. 라고 말하려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내 마음이 아니었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착한 여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 자신이 싫을 것 같았다.  219


"그래, 정말로 달렸어. 그것밖엔 할 수가 없었거든. 말로 분명하게 설명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먼 길을 돌아오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지만 계속 달렸기 때문에 그때 네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알게 되었지.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넌 혼자서 달렸다는 걸... 난 그때 너와 함게 달렸어야 했다. 난 너에 대해 뭐든 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알지 못했던 거야. 내가 생각이 모자랐어. 미안해. 내가 나빴다... 내가 나빴어. 널 외롭게 해서."  235



지은이 후기

사랑한다는 것은 그가 사람이라는 이야기고 살아 있다는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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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삶의 매 순간 한 발은 동화 속에, 또 한 발은 나락 속에 담근 채 살아가고 있으니..  15


삶은 아주 빠르다. 삶은 우리를 천국에서 지옥으로 데려다 놓는다. 단 몇 초 사이에.  24


하룻밤 동안 그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350스위스프랑쯤 낭비하는 것은 그들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룻밤? 마리아, 과장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그건 사십오 분 정도에 불과해. 아니, 옷 벗고, 예의상 애정 어린 몸짓을 하고, 하나마나한 대화 몇 마디 나누고, 다시 옷 입는 시간을 빼면, 섹스를 하는 시간은 고작 십일 분밖에 안 되잖아."

11분. 겨우 11분을 축으로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117


그 모든 걸, 하루에 단 11분을 위해! 세상에서! 코파카바나에서 경험을 쌓은 마리아는 이제 자신만 외로운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갈증은 일 주일을, 허기는 이 주일을 참을 수 있고, 집 없이 몇 년을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외로움은 참아낼 수 없다. 그것은 최악의 고문, 최악의 고통이다. 그 남자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지내고자 했던 다른 모든 남자들도 그녀처럼 파괴적인 감정, 자신이 이 땅 위에 사는 어느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에 시달리고 있었다.  119-120


자유는 사랑이 있을 때에만 존재하니까. 자신을 전부 내주는 사람. 스스로 자유롭다고 느끼는 사람은 무한하게 사랑할 수 있다. 그리고 무한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낀다.

나는 사랑했던 남자들을 잃었을 때 상처를 받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오늘, 나는 확신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누가 누구를 잃을 수는 없다는 것을.

진정한 자유를 경험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소유하지 않은 채 가지는 것.  122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지? 사는 것? 아니면, 사는 척하는 것? 지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누군가가 비판도 토도 달지 않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준 오늘 오후가 내가 여기서 보낸 오후들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었다고 말하는 것? 아니면 빛을 발하는, 의지로 충만한 여자의 갑옷으로 무장하고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가버리는 것?' 

그와 함께 산티아고의 길을 걷는 동안,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동안, 마리아는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삶의 큰 선물이었다.  148-149


정열은 예기치 못한 것이 가져다주는 흥분, 열렬히 행휘하고픈 욕망, 꿈을 실현시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 속에도 있다. 정열은 삶을 인도하는 신호들을 보낸다. 그 신호들을 해독하느냐 마느냐는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  151-152


삶은 때때로 아주 인색하다. 새로운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 며칠, 몇 주, 몇 달, 몇 년이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다 한 번 문이 열리면, 랄프 하르트를 만난 마리아처럼, 그렇게 열린 공간으로 봇물 터지듯 많은 것들이 쏟아져들어온다. 한순간 텅 비어 있다가, 다음 순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 이상의 것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185


사드 후작은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경험은 그를 극한으로 이끌어가는 경험이라고 말했죠. 우리는 바로 그런 극한경험을 통해서 뭔가를 배우게 되죠. 그것은 우리가 가진 모든 용기를 요구하니까요. 직원을 모욕하는 사장이나 아내를 모욕하는 남편은 단지 심성이 비겁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행위를 통해 삶에 복수를 하는 겁니다. 용기가 없어서 감히 자기 영혼의 밑바닥을 들여다보지 못하는거죠. 그들은 야만적인 짐승을 해방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어디서 오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고, 섹스, 고통, 사랑이 인간에게 극한경험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죠. 경계를 아는 자만이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겁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승에서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 시간을 보내고,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 늙고 죽을 뿐이죠.  196-197


사드의 작품을 단 한 줄도 읽은 적이 없지만, 사디즘에 대해 사람들이 하는 말, 인간은 자신의 한계에 도달할 때에야 비로소 자신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기도 하다. 반드시 자신에 대해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인간 존재는 앎만을 추구하기 위햇 태어난 것이 아니다. 땅을 경작하고, 비를 기다리고, 밀을 심고, 곡식을 거둬들이고, 밀가루를 반죽해 빵을 만들기 위해서도 태어난다.  198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에 따르면, 천지창조 초기에는 남녀가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고 해요. 하나의 몸, 하나의 목, 그리고 각자 반대 방향을 바라보는 두 개의 얼굴이 있는 남녀 양성의 존재들만 있었죠. 마치 두 피조물의 등이 붙어 있는 것처럼 성기가 둘이고 팔 다리는 네 개씩이었다오.

그런데 질투심 많은 신들이 그 피조물은 팔이 네 개라 일을 훨씬 더 많이 하고, 얼굴이 두 개라 번갈아 잠을 잘 수 있는 바람에 몰래 공격할 수 없고, 다리가 넷이라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도 오래 서 있거나 먼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소.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그 피조물이 양성(兩性)이어서, 어느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스스로 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소. 올림포스 신전의 최고 주인 제우스는 '나에게 저들의 힘을 빼앗을 방도가 있다'고 말하고는 벼락을 던져 그 피조물을 둘로 쪼개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버렸소. 이렇게 해서 지상의 인구는 훨씬 늘어난 반면, 그들은 힘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소. 이제 그들은 잃어버린 반쪽을 되찾아 다시 결합해야만 예전의 힘, 습격을 피하는 능숙함, 피곤과 일을 견뎌내는 지구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어요. 두 개의 육체가 서로 뒤섞여 하나가 되는 결합, 그걸 섹스라고 부르오."  206


사랑의 자유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데에 있으니까.  214

"늘 꿈꾸었던 사람을 찾아 자세히 관찰해본 사람은 섹스 에너지가 성관계에 우선한다는 사실을 알아요. 가장 큰 쾌락은 섹스가 아니라 섹스에 담겨 있는 정열이죠. 정열이 월등할 때, 섹스를 통해 그 춤을 완수하게 되죠. 하지만 섹스는 결코 본질적인 게 아니에요."  214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욕망에 따라 산다. 욕망이 그의 보물이다. 그것이 상대방을 멀어지게 만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가오게 만든다. 욕망은 내 영혼이 선택한, 너무나 강렬해서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전염될 수 있는 마음의 동요이다.

나는 매일 내가 더불어 살고자 하는 진실을 택한다. 나는 실용적인고 효율적이고 전문적이려 애쓴다. 하지만 늘 욕망을 동무 삼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의무감 때문도, 내 생활의 외로움을 완화시키기 위해서도 아니다. 단지 좋기 때문이다. 그렇다. 욕망은 아주 좋다.  216


어쨌거나 험담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성공한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222


이곳을 찾는 사람들과 교제하다보니 그들이 섹스를 다른 마약들과 똑같은 용도로, 현실에서 도피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잊고, 긴장을 풀기 위해 사용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다른 마약들과 마찬가지로 섹스 역시 유해하고 파괴적이다. 

누군가가 섹스든 마약이든 뭔가에 취하고 싶어한다면, 그 행위의 결과는 그의 선택에 따라 더 행복할 수도 덜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문제일 경우에는 '제법 좋은'과 '최고'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 손님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섹스는 아무 때나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각자 내적인 시계가 있어서,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는 각자의 시곗바늘이 동시에 같은 시각을 가리켜야 한다. 그런 일이 매일 일어나지는 않는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성적 행위에 의존하지 않고도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잇는 두 사람은 놀이와 '연극'을 통해 그들의 시곗바늘을 맞추어야 하고, 사랑을 나누는 것이 단순한 만남 이상이라는 것을, 생식기의 '포옹'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것이 중요하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존재는 매 순간 희열을 느낀다. 그에게는 섹스가 전혀 아쉽지 않다. 그가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은 뭔가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의 잔이 다 채워져 넘쳐 흐르기 때문이다.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삶의 부름에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만, 오로지 그 순간에만 통제력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5-226


"스승이 제자로 하여금 뭔가를 발견하게 할 경우, 스승 역시 뭔가를 발견하게 되는 법이죠."  228


그는 서로 다가가기를 원하지만 서로 고통을 줌으로써만 그것이 가능한 두 존재 사이의 신비로운 관계를 자신이 처음 경험했을 때를 떠올렸다. 

저 바깥에는 수백만의 부부들이 매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도마조히즘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일 일터로 갔고, 돌아와서는 모든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남편은 아내를 괴롭히거나 아내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그들은 자신이 비참하다고 느꼈지만 그들 자신의 불행에 깊이 얽매여 있었고, 하나의 몸짓, 한 번의 '더는 못 참겠어' 로도 충분히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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