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의 말 - 내 인생 최고의 책 (피코 아이어)

로힌턴 미스트리의 이전 작품들을 접하지 못한 뉴욕의 한 영화 제작자는 찰스 디킨스를 새로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적절한 균형>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라 단언한다. 

소설이 폭로하는 내용은 봄베이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런던이나 뉴욕에 사는 누구에게라도 충격적이다. 

비평가이자 동료 작가며 펜이기도 한 내가 섣불리 꺼내기 힘든 말이 바로 이 소설로 인해서 당신의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플 거라는 사실이다.



"이 책을 손에 들고 부드러운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으면서 당신은 혼잣말로 이 책이 재미나겠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엄청난 불행에 관한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도 당신은 식사를 잘 할 것이고 본인의 무감동에 대해서 작가를 탓하고 그의 지나친 과장과 상상의 비약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이 비극은 허구가 아니라 모두 진실입니다." -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중에서



나라얀이 고향 마을로 돌아온 지가 6개월쯤 되던 어느날 아침, 벙기 카스트 한 명이 용기를 내서 오두막집으로 오고 있었다. 밖에서 불 위에다가 물을 끓이던 루파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남자를 보았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그를 막아서며 그녀가 소리쳤다.

"재봉사 나라얀을 찾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남자가 누더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뭐라고?" 그의 뻔뻔함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재봉사고 나발이고 그 입 다물어! 끓는 물로 네 놈의 더러운 몸을 지져 줄 테다! 내 아들은 너 같은 놈들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아!"

"어머니! 왜 그러세요?" 나라얀이 모두막집에서 나오며 소리쳤을 때 남자는 달아나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그는 남자를 따라가며 소리쳤다. 보복이 따를까 봐서 무서웠던 벙기는 더 빨리 달렸다.

"이봐요. 돌아와요! 괜찬하요!"

"다음에 오겠습니다. 내일쯤요." 겁에 질린 남자가 말했다. 

"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꼭 오세요." 오두막집으로 돌아간 나라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무섭게 노려보는 어머니를 무시해 버렸다.

"나한테 고개 젓지 마!" 화가난 그녀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내일 다시 오라고 왜 부른거야? 우린 그런 낮은 카스트 사람들을 상대하면 안 돼! 사람들 집이ㅔ서 똥이나 실어 나르는 작자의 몸 치수를 어떻게 재겠다는 거야?"

"전 어머니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전 브라만이든 벙기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으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게 네 생각이냐? 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보자! 브라만은 돼도 벙기는 안 돼!"

그날 저녁 루파는 둑히에게 아들의 터무니없는 생각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네 엄마 말이 맞다." 그가 나라얀에게 말했다.

"왜 저에게 재봉을 배우라고 보내셨던 거죠?"

"무슨 그런 멍청한 질문이 있냐. 네 인생이 잘되라고 그런 거지.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니?"

"그럼요. 카스트가 높은 사람들이 우리를 함부로 다루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그들처럼 행동하고 계세요. 그런 걸 원하신다면 전 읍내로 돌아가겠습니다. 전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루파는 그의 최후통첩에 깜짝 놀랐으며, 둑히가 그녀를 보면서 "쟤 말이 맞아"라고 하자 공포에 질렸다.  196-197


둑히는 나방이 등불 유리를 뚫고 들어가려고 연약한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을 지켜봤다.  211


"존엄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214


"쇠로 만든 선로가 아주 유용하죠." 이웃집 남자가 말했다. "발판 구실을 해요. 땅보다 높아서 똥이 쌓여도 궁둥이에 닿칠 않거든요."

"요령을 다 아는 모양이죠?" 그들이 바지를 내리고 철로에서 자세를 취할 때 옴이 이웃집 남자에게 물었다. 

"아, 이거야 금방 배우지." 그는 덤불에 있는 남자들을 가리켰다. "지금은 저기 앉으면 위험해. 독이 있는 지네들이 저기서 기어 다니거든. 나라면 저기서 볼일을 안 볼거야. 그리고 덤불에서 균형을 잃어버리면 궁둥이에 가시가 잔뜩 묻는다고."  245


옴은 문간에 앉아서 어제 디나의 방에 떨어져 있던 헝겊들 가운데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었던 시폰 조각을 만져 보았다. 매우 부드러운 천은 그의 손가락들 사이에서 매우 편한 느낌이 들었다. 왜 삶은 이렇게 부드럽고 매끄러울 수 없는 걸까?


아이들은 썩은 음식 덩어리를 살피던 까마귀 한 마리를 쫓았다. 고집 샌 새가 날아가지 않고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주위를 돌아가 썩은 음식으로 되돌아오자 아이들은 더욱 즐거워했다. 더럽고 발가벗고 굶주려 얼굴에는 부스럼이 나고 피부에는 뾰루지가 난 아이들이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 수 있는지 옴은 궁금했다. 이런 비참한 곳에서 웃을 일리 뭐가 있을까?  271


"불행, 카스트의 폭력, 정부의 냄담, 관리의 거만함, 경찰의 야만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면 울고 싶어질 때가 있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거고 그게 지극히 당연한 거죠.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W. B. 예이츠)이 말했듯이 너무 오랫동안 희생하다 보면 마음이 돌덩어리가 되죠."  334


'모든 것들은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며 그것들을 새로 만드는 일은 즐겁다.'

"예이츠 인가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선을 긋고 구획을 정해서 그것들으 넘지 않으려고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요. 때로는 실패를 성공의 징검다리로 삼아야지. 희망과 절망의 적절한 균현을 유지해야 하죠. 그렇지, 결국은 모든게 균형의 문제지."  336


"부잣집 자식아, 언제쯤 현실에 적응할래?"

"부자가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지벵 있는 화장실도 여기처럼 평범해요. 그래도 물통에 물은 있어요. 악취도 나지 않고요."

"문제는 넌 너무 많은 걸 보고 너무 많은 냄새를 맡는다는 거요. 여긴 대도시야. 눈 덮인 아름다운 산들은 없다고. 넌 계집애 같은 눈과 코를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해."  349


"우리의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 모두는 완벽한 세계를 즐기기 위해서 맞춰져 있지. 그러나 세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감각들에다가 가리개를 씌워야 하는 거야."  350


언젠가 아비나시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체스라고 말했었다. 지금 그는 심각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졸 세개와 차하나를 가지고 제때에 왕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리고 디나 아주머니는 거실과 안쪽 방을 오가면서 재봉사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안흔 청량음료 경쟁자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녀깅 되자 방의 그림자가 짙어졌지만 마넥은 불을 켤 생각을 하지 않앗다. 체스에 대한 그의 변덕스러운 생각이 갑자기 어스름 속에서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띠었다. 모든 것이 위험에 처해 있었고 매우 복잡했다. 게임은 냉혹했다. 인생이라는 체스판에서 벌어지는 살육으로 인해서 인간들은 상처를 입는다. 아비나시의 아버지는 결핵에 걸렸고 글의 세 여동생들은 혼인 지참금을 기다리고 있다. 디나 아주머니는 자신의 불행을 이겨내려고 발버등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상심했고 희망이 꺾였지만 어머니는 그가 다시 강해져서 웃을 것이라고 가장했고, 아들이 1년 후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지하실에서 콜라 가문의 콜라를 만들게 되면 그드르이 삶이 기숙학교로 마넥을 보내기 전처럼 다시 한 번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될 거라고 가장해싿. 그러나 그렇게 가장하는 일은 동심의 세계에서나 통용될 뿐, 결코 예전 같은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할 뿐이고 너무 절망적인 듯했다.

그거 접는 체스판을 세게 닫자 바람이 훅하고 불어와 얼굴에  닿았다. 눈물로 젖은 뺨에 부딪친 바람은 차가웠다. 그는 눈물을 닦고 체스판을 마치 풀무처럼 열었다가 다시 세게 접었다. 그런 다음 체스판으로 부채질을 했다.

디나 아주머니가 마침내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 부르자 마치 감옥에서 해방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396-397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은 없죠. 걱정 마십시오."  407


"소음도 사람과 마찬가지네요." 이시바가 말했다. "한 번 알고 나면 친구가 되죠."  465


"신은 죽었어요. 독일 철학자가 책에 그렇게 썼어요."

그 말에 그녀가 충격을 받았다. "독일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말했겠지."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너도 그 말을 믿니?"

"예전에는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신이 거대한 이불을 만드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끝없이 다양한 디자인을 가진 이불 말이에요. 그런데 그 이불이 너무 크고 호란스러워서 디자인을 볼 수가 없고, 사각형과 다이아몬드형 그리고 삼각형이 ㄱ더 이상 잘 어울리지 않아서 모든 게 무의미해진 거죠. 그래서 신이 그걸 버린 거죠."  495


"넌 그 사람들(이시바와 옴)하고 정말 친구가 된 거지? 그래서 고향 마을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도 너한테 말해 준 거고."

그가 잠시 고개를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재봉사들이 매일 여기 앉아서 일했는데 나한테는 그런 말을 안 했어. 왜 그럴까?"

그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자꾸 어깨로 말할 거니? 너의 이불 만드는 신이 입 안에다가 혀를 꿰매기라도 했니? 재봉사들이 너한테는 말을 하고 나한테는 왜 말을 안 했냐니까?"

"아마도 아주머니가 무서웠겠죠."

"날 무서워했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은 내가 그 사람들이 무서웠어. 수출 회사를 찾아서 나를 제쳐놓을까 봐서 말이야. 안 그러면 더 나은 일을 찾을까 봐서. 때로는 실수를 지적하는 일조차 두려웠어. 재봉사들이 가고 나서 나 혼자 밤에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았지.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날 두려워했다는 거지?"

"아주머니가 더 나은 재봉사들을 찾아서 자기들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려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미리 나한테 말해 주지 그랬니. 그랬으면 안심시켜 줄 수도 있었는데."

그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496-497



너도 알다시피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라는 달걀을 몇 개 부숴야 해.(누스완의 말, 디나의 오빠)  541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 민주주의라는 달걀을 몇 개 수붜야 한다는 조금 전의 금언을 고민하며, 그는 머릿속에서 민주주의, 독재, 프라이팬, 불, 암탉, 계란 완숙, 식용유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뭔가 다른 말을 찾아보려고 했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은 민주주의라는 상표만 붙은 포악한 암탉이 낳은 달걀들로는 만들 수 없다는 말이었다.  543


살은 사람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다루며, 좋은 것들은 갈기갈기 찢어놓고 나쁜 것들은 냉장되지 않은 음식의 곰팡이처럼 계속 자라도록 만드는 걸까? 원고 교정자 바산트라오 발믹은 이것이 삶의 일부라면서 희망과 정말의 균형을 찾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살아남는 비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행과 파괴도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지 않다. 충분히 큰 냉장고만 있다면, 이 아파트의 행복했던 시절을 담아서 상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아파트의 행복했던 시절을 담아서 상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냉장이 불가능했다. 결국 모든 것은 상하고 만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633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시바가 말했다.

"이불이야 아무나 만드는 건데요 뭐, 당신들이 쓰고 남은 헝겊 조각들이에요." 그녀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조각들을 모으는 게 대단한 기술이죠."

"저거 봐요." 옴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맨 처음 작업했던 포플린 옷감이에요."

"기억나니?" 디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에 옷을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지 생각나? 난 정말 재봉 천재 두 명이 나타난 줄 알았단다."

"그때는 배가 고파서 손가락들이 빨리 움직였습니다." 이시바가 웃었다.

"그 다음에 저기 오렌지색 줄무늬가 있는 노란색 칼리코 천을 작업했죠. 옴이 그때 날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요. 사사건건 싸우고 말다춤을 했잖아요."

"제가 언제요? 싸워요? 절대 그런 적 없는데."

"이 파란색, 흰색 꽃들 생각나요/ 제가 여기로 이사 왔을때 아주머니께서 만들던 치마에서 나온 거죠." 마넥이 말했다.

"정말?"

"그럼요. 그날 아시바 아저씨와 옴이 일하러 안 왔잖아요. 총리의 강제 모임에 납치됐던 날이요."

"아, 그래. 맞다. 옴, 이 예쁜 보일 옷감 기억나니?"

얼굴이 빨개진 옴은 생각나지 않는 척했다.

"아니, 생각 안 나? 어떻게 생각이 안 날 수가 있니? 네가 엄지손가락을 가위에 베어서 피를 흘린 천이잖아."

"전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마넥이 말했다. 

"네가 오기 한 달 전에 그랬지. 그리고 시폰도 재밌었었는데, 디자인을 맞추기도 힘들고 미끄럽다고 옴이 화를 냈었지."

이시바가 몸을 숙이더니 정사각형의 흰 삼베를 가리켰다. "이거 아시죠? 이 천을 가지고 작업한 첫날에 정부가 우리 집을 부쉈죠. 이걸 볼 때마다 슬퍼집니다."

"가위 가져와요. 잘라 버릴 테니까." 그녀가 농담을 던졌다.

"아닙니다. 그냥 두십시오. 아주 보기 좋습니다." 그는 삼베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과거를 떠올렸다."천 한 조각을 두고 슬프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보십쇼. 이 슬픈 조각이 저희가 베란다에서 자기 시작했을 때 작업하던 행복한 조각과 연결돼 있잖습니까. 그리고 그다음 조각은 차파티를 만들 때 작업하던 거교요. 그리고 이 보라색 비단은 저희가 매운 양념 화다 과자를 만들고 다 함께 요리를 하던 때 작업하던 거죠. 또 이 조젯 헝겊 조각은 거지 왕초가 저희를 집주인의 깡패들로부터 구해 줬을 때 작업하던 겁니다."

그는 복잡한 법칙을 명쾌하게 설명하기라도 한 듯이 기뻐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니까 기억해야 할 법칙은, 천 한 조각보다 전체 이불이 훨씬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와, 정말 멋지다!" 옴과 마넥이 박수를 치며 외쳤다. 

"정말 현명한 말이로군요." 디나가 말했다.  700-703


시간은 길이도 없고 넓이도 없어.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란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니? 바로 우리들의 삶이 합쳐졌다는 거야."

"이불의 헝겊 조각들처럼 말이죠." 옴이 말했다.  703


인간들은 왜 자신의 감정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걸까? 그것이 분노든 사랑이든 슬픔이든, 사람들은 항상 숨기려고 한다. 또한 어떤 인간들은 그들의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 크고 위대한 척한다. 그래서 작은 골칫거리에도 크게 분노하고, 미소와 웃음으로 충분한데도 히스테리를 부리며 웃는다. 모두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721


일요일 저녁이면 그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자, 다들 어서 모여!" 다섯 시가 되자 누스완이 즉시 그들을 불렀다. "카드놀이 시간이야."

그는 그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꿈을 카드놀이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는 세 명 뿐이어서 누스완은 러미 게임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의 행복을 끈질기게 찾고자 했다.

"카드놀이가 인도에서 처음 시작된 거 알고 있어?" 그가 물었다.

"정말요?" 루비가 놀랐다. 누스완이 그런 얙기를 할 때마다 그녀는 매우 감동했다.

"그럼, 그렇고 말고. 체스도 인도에서 유해된 걱야. 사실, 카드가 체스에서 시작됐다는 이론이 있지. 13세기에 중동을 거쳐서 유럽으로 전파됐어."

"세상에!" 루비가 감탄했다.

그가 패를 다시 배열하더니 카드 한 장을 엎어서 버리고 외쳤다. "러미!"

같은 종류의 카드를 다 모은 걸 보여 주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분석해 주었다. "거기서 하트의 잭을 내면 어떡하니, 그래서 네가 진 거야." 그가 디나에게 말했다.

"모험을 해 봤어요."

그가 카드를 모아서 섞었다. "자, 그럼 누가 패를 돌릴 차례지?"

"나예요." 디나가 카드를 받았다.  820-821


"재미없는 인생이란 없는 법이오."(마넥이 돌아와 바산트라오(변호사)를 만났을때 변호사의 표현)  859




옮긴이의 말 - 인도의 판타지, 로힌턴 미스트리의 리얼리즘

<적절한 균형>은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쿄 등 다양한 종교는 물론이고, 계층과 종족 그리고 성정 배경이 확연히 다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인도 현대사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파해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이 소설은 여러 개인들이 역사의 자장에 휩쓸려 맞게 되는 비극을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이러한 인도인들의 비극이 어느 한 시절에 국한된 게 아니라 독립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비극임을 보여준다.  877


소설은 인디라 간디가 선포한 국가비상사태 체제인 1975년에서 1977년을 주요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카스트 제도에 항거해 재봉사가 되는 불가촉천민들, 새로 그어진 국경선으로 큰 사업을 잃고 마는 파르시 기업가, 국가비상사태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가난한 학생 운동가, 신부 지참금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녀들, 구걸의 수익 증대를 위해서 아이들의 신체를 훼손하는 거지 왕초, 빈민굴 판잣집조차도 빼앗기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가난한 사람들,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생식력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폭압적인 관리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독립을 전후한 파란만장한 인도 현대사를 증언한다. 디나, 마넥, 이시바, 옴프라카시는 이런 엄혹한 역사 앞에서, 특히 국가의 폭력 앞에서 개인은 도무지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야만적인 국가 권력과 불화하는 개인들의 삶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로힌턴 미스트리만큼 실감나고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인도의 현대 작가는 드물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독자들은 역사와 국가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 개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진정한 인도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878


궁극적으로 <적절한 균형>은 개인과 역사, 개인과 국가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묻는다. 그 적잘한 균형 감각은 무엇일까? 소설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그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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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일컬어 흔히 '천의 얼굴'이라고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인도는 그토록 두텁고, 그토록 복잡한 인도의 한 조각일 뿐이다. 

인도의 특성, 다원성이 적용 되지 않는 단 하나의 영역이 있으니 바로 '느림'이다.  10


'느리다', '빠르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도인에 대한 '느림'과 '게으름'은 누구의 기준인가?  11


자기의 안경으로만 인도를 본 영국은 인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12


인도인에게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반복되고 다시 돌아오며,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고리이다.  13


어쩌면 시간은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내게로 날아오는 부메랑인지도 모른다. 

20세기 최대의 이데올로기인 발전은 환경 파괴라는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14


알고 보면 위생이니 뭐니 하는것도 목적은 향상시키지 않고 수단만을 강조하는 서양의 산물이 아닌가?  15


볼일이 끝나고 나서는 가까운 강이나 개울로 간다. 진흙으로 몸의 더러워진 부분을 문질러 닦고 물로 헹군다. 두세 차례 반복. 그런 다음 왼손부터 시작하여 손과 발을 진흙으로 여러번 씻는다 다시 다른 흙으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도시에서는 진흙이 아닌 비누를 쓴다. 자, 이래도 비위생적인가?  19


인도인은 '음식은 먼저 눈으로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 다음에 입과 혀로 맛을 느낀다.'  20


인도인은 발을 천시한다. 가장 천한 발을 다른 사람의 머리에 대거나 신발로 머리를 때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최대의 모욕이다.  23


발에는 절대 금 장신구를 하지 않는다. 허리 아래에는 은으로 된 장신구만 착용한다.  24


반대로 머리는 신체 중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남자들은 쇠똥이나 재, 또는 빨간 가루를 이마에 찍어 카스트를 표시하기도 하고, 시바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수평선을, 비슈누 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수직선을 그어 소속된 종파를 광고한다.  24


머리와 발의 차이가 하늘과 땅인 만큼 브라만과 수드라의 차이도 엄청난 것이다.  25


강가의 상류 하리드와르와 리시케시, 중류인 바라나시, 그 끝인 벵골만까지 나는 강가를 열번도 더 보았다. 

강가는 눈 덮인 히말라야를 출발하여 하리드와르와 칸푸르를 지나 알라하바드로 흘러든다. 그곳에서 진흙탕물인 강가는 델리와 아그라를 지나온 그보다 맑은 야무나 강과 합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 사라진 사라스와티 강과도 손을 잡는다. 세 강이 만나는 알라하바드는 힌두들의 순례지이다.  39-40


시바 신은 무려 8천 4백만 가지의 다양한 체위를 고안했는데, 숭배자들에게 알려진 건 겨우 8만 4천 가지! 이러니 시바는 다산의 신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56


'카주라호'와 '시바 링감' 그리고 '카마수트라'의 인도. 위성방송이 안방에다 공개적으로 섹스를 팔고, 콘돔이(가장 유명한 콘돔 제품은 당연하게도 '카마수트라'라는 상표를 달고 있다) 무차별 광고를 해대는 곳. 매춘부가 수백만 명이고 에이즈 환자가 3,000,000명이 넘는 나라. 이렇듯 성이 넘치는 에로스의 천국으로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명상과 금욕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58


브라만 성자와 요가수행자의 공동 목표는 자웅동체이다.  59


옛날 인도에 비폭력을 뿌리내리게 한 인물이 바로 유명한 정복자 아쇼카 황제.  63

'보이지 않는 사랑'은 아름답지만 '보이지 않는 폭력'은 끔찍하다.  66


인도인의 계산을 보자. 먹은 음식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와 골수가 되었다가 30일이 지나면 정액으로 바뀐다. 40방울의 피가 한 방울의 정액이 되는데, 한 번의 사정으로 14그램 정도의 정액이 소요된다. 이는 27킬로그램의 음식이 만든 에너지와 같다. 한 번의 성관계는 24시간의 정신노동이나 72시간의 육체노동과 동일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69


해방 후, 인도에서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지방은 벵골, 케랄라. 트리푸라 3개 주이다.

테레사 수녀가 '수고하고 짐진 자'를 보살피는 곳이 바로 벵골 지방이다.  79


영국의 통치가 온건하지도 않고 결코 '은혜'와 '축복'이 아니었다는 점은 얼마든지 예증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근이다. 영국이 인도에 오기 전에는 대기근에 관한 기록이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이 발을 디딘 이후 기근은 종종 찾아왔고, 1943년 벵골 지방에서는 2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인도의 부가 해외로 유출된 게 주요 원인이었다. 1930년에 영국이 해외에 투자한 자본의 4분의 1은 인도에 투입되었다. 물론 인도에서 근무한 영국 관리들의 봉급과 연금 지급은 처움부터 식민지 인도의 몫이었다. 영국은 참깨를 쥐어짜듯 인도를 쥐어짜 이득을 챙겼던 것이다.

영국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이해 세운 계획도시 뉴델리에 있는 '인도의 문'에는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위해 싸우다 숨진 8만여 명 인도 청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뿐인가. 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인도군은 지배국 영국을 돕기 위해 '치와 땀'을 흘렸다. 인도군은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20여만 명이었으나 전쟁이 끝난 1945년에는 그 열 배인 22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전쟁기간 동안 소요된 영국의 국방비 역시 절반은 인도가 떠맡았다.

이 열불나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영국을 '미워 미워 미워'하지 않는 이유는 영국 통치의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구를 익르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인도는 영국에 모종의 빚을 졌다고 간주하고 있다. 영국이 도입시킨 의회제도, 철도제도, 교육제도를 인도는 고맙게 생각하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산업발전의 기반을 다진 것에도 좋은 점수를 준다. 각종 제도와 정책을 도입한 식민 정부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결과적으로 인도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영어와 반영운동이 인도를 통합시켰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83-84


인도인은 대개가 종교에 깊이 중독된 중증 환자들이지만, 그 대다수는 브라만의 베다나 우파니샤드를 모르거니와 고상한 힌두 철학에도 깜깜이다.

대신 인도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대상을 경애하고 숭배한다.  103


구루 나낙(1469~1539)이 세운 시크교는 힌두교와 이슬람의 장점을 따서 만든 종교로서 유일신을 믿고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다. 힌두처럼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지만 카스트를 거부하고 갠지스를 순례하지도 않는다. 모두 같은 성을 갖는 것도 카스트의 구분이 없다는 뜻이다.(1500만명이 넘는 그들의 성씨는 모두 '싱', 결혼한 여자는 미세스 싱이 아니라 모두 '카우르'가 된다) 시크는 근면하기 때문에 거지가 없다.

펀자브 지방은 시크의 분리주의 운동이 있었다. 

인도에 갔다가 마약에 돈 떨어지고 담배꽁초까지 떨어지면 시크사원(구루드하라)을 찾아가라. 관용과 사랑을 실천하는 시크 사원에서는 거저 먹여주고 재워주니.  113


시크 못지 않게 돈 버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배화교도(조로아스터교도)의 후예들이다.  114


고아지방은 포루투갈인과 인도 여인 사이에서 난 혼혈이 많아 이국적이다. 이곳 여인들은 사리보다 스커트를 많이 입고 생활 방식도 다른 지방과 달리 자유롭다.  115


힌두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은 무슬림이엇다. 인도를 통치한 무슬림 지배자들은 자기드로가 구분하여 인도(옛 이름은 힌드)에 사는,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몽땅 힌두라고 불렀다. 전체 인구 - 무슬림 = 힌두였다. 그 뒤를 이어 인도를 지배한 영국도 무슬림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그들 이외의 인구를 힌두로 뭉뚱그렸다. 

힌두교는 종교의 창시자나 예언자가 없음은 물론 자신을 힌두라고 생각하는 살마에게 '하라. 하지 말라'는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도 않는다. 힌두교에서 성서로 여기는 베다나 푸라나를 읽는 힌두는, 아니 그 이름이라도 아는 사람은 5%밖에 안된다. 일정한 예배의 형식도 없는 자유 그 자체이다.  120


이질적이고 잡다한 생활방식을 모두 인정하는 힌두교는 기원전 1500~500년경에 성ㄹ힙되었다. 중심 사상은 베다의 전통을 따르는 브라만 중심의 브라만교이지만, 여기에 북부 인도에 존재하던 다양한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대중을 이끄는 독자적인 종교 이념으로 발전했고, 세월이 가면서 전 인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즉 힌두교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브라만교의 독선에 반기를 든 인도의 프로테스탄트, 불교와 자이나교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한 지방에서 동거를 해온 이방의 종교인 이슬람교까지도 포용한다. 

수천 년 동안 무엇이든 받아들여온 힌두교에는 헤브라이즘에서 볼 수 있는 '정통'이나 '이단'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존재하는 살마의 수만큼 신이 존재하고 그 수만큼 다양한 믿음을 인정하는 융통성이 바로 힌두교의 생명이요 진리이다.  121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달리 힌두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강조한다.

힌두는 구원이나 해탈도 나 스스로 이룬다고 생각한다.  122


카르마(業) - 카르마는 힌두 사회의 수많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125


윤회사상은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다르마)를 다하면 카르마가 좋아진다고 유혹한다. 의무를 다하는 불가촉민은 브라만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불가촉민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126


알 수 없음과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최선을 부추긴다. 더 열심히 살아서 아예 이 아리송한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탈이며 구원이다. 그리하여 힌두에게 해탈은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127


예전보다도 많이 약화되었지만 카스트는 아직 살아 있다. 집에서,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힌두 사원에서 여전히 그 힘을 행사한다. 카스트는 포루투갈어로 혈통을 의미하지만 인도인들은 색깔이라는 뜻의 '바르나'라고 부른다. 이 제도는 모든 인간이 불평등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132


'자티'는 오랜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카스트가 서로 갈리고 나뉘어 3~5천 개의 작은 집단으로 분류된 것으로 한층 세분화된 개념이다. 같은 카스트 안에서도 자티에 따라 다른 위상을 갖고 다른 규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는것은 동일한 자티 안에서 이루어진다.

쉽게 설명하면, 북부지방의 브라만과 남부의 브라만은 동일한 계급이 아니다. 두 브라만 가의 갑순이와 갑돌이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의 수드라 사이에는 같은 계층이라도 연대의식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한 마을에 사는 수드라 내부에도 상하 귀천의 구별이 있다. 대장장이, 옹기장아, 세탁부, 이발사는 자신과 브라만이 다르듯이 서로가 서로를 다르다고 여긴다. 심지어는 같은 청소부라도 거리를 청소하 자티와 '변소 쳐!'를 외치는 자티는 다르다.  133~134

소를 먹이는 집안의 경우는 소 먹이는 자티가 규정한 세밀한 규칙의 속박을 받고, 또 옷감을 짜는 집안의 직녀는 그 자티의 규정을 따르면서 신분에 맞는 제약과 대접을 받는다. 

계층이 낮을수록 부정하게 여겨지며, 금기사항도 적다. 똑같은 수드라 내부에서도 더러운 일에 종사하는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보다 위상이 낮다.  134


'언터처블(Untouchable)' 불가촉민(不可觸民), 접촉을 하면 부정을 타므로 접촉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부지방의 남부드리 브라만은 천민을 보기만 해도 부정 탄다고 생각한다.  137

따라서 그들은 몸에 방울을 달아 순수 브라만이 그 소리를 듣고 사전에 피하거나 눈을 감을 수 있게 한다.

우파니샤드를 보면 개나 돼지처럼 취급되는 '찬달라'라는 천민이 있다. 

2세기 불교도 자나카도 마을 밖에 격리되어 사는 천민집단을 언급했다.

마누 법전에도 동구 밖에서 따로 거주하며 햇빛이 있는 낮에는 마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11세기의 알비루니도 마을밖에 살며 더루운 일에 종사하는 집단을 기록했다.

1990년대로 와도 인도의 불가촉민의 삶은 별 차이가 없다.  138

불가촉민은 마을 사람들과 우물이나 강물을 함께 쓰지 못한다. 가까운 마을의 우물을 두고 몇십 리씩 물을 길러 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39

1991년의 인구 센서스를 보면 불가촉민은 1억 5천만 명으로 인도 총 인구의 약 17%이다.  141


마하트마 간디는 신에게서 버림받은 이들에게 '하리잔(신의 자식)'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지어주고 독립 세력을 이루고 떠나가는 이들을 힌두 세계로 끌어들였다.

여전히 건재하는 높디높은 벽 앞에서 일부 불가촉민은 간디가 지어준 '하리잔'이라는 이름대신 자신을 '달리트(학대받는 자들)'라고 부른다.  142



마누 법전에는 이상적인 남편과 아내의 연령 차이가 16~18세라는 기록이 보인다.  169


힌두의 악습으로 오랫동안 지탄을 받아온 사티 제도, 즉 죽은 남편과 함께 살아 있는 아내를 불에 태우는 것도 실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두려움에서 나왔다고 한다.  170


사티는 본래 수많은 아내를 가진 시바 신의 '퍼스트 레이디'였다. 사티는 아버지가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대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173



1993년에 마무리된, 장장 8년에 걸친 인도 사회 조사에 따르면 인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각 집단의 88%가 육식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9


인도인들은 대개 모든 것을 인정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음식에 관한 한 타협이 없다. 그중 채식을 고집하는 힌두와 쇠고기를 먹는 무슬림의 심한 갈등이 단적인 예이다. 

힌두는 음식을 감염체로 간주한다.  211


인도에는 2천 개의 기차역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222


영화를 보러 가면 인도가 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의 반대가 바로 인도의 현실이다.  235

인도의 영화는 사회적 가치를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권선징악의 도덕이 그렇고 전통적인 여성상이 그렇다.  236


자와하르랄 네루

공화국과 세습제는 정치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두 얼굴의 공존이 가능했다. 1947년의 독립 후 50년 도안 네루 집안이 인도를 통치한 기간은 38년. 자와하르랄 네루는 1964년까지 무려 16년 9개월이나 장기집권했다. 

그의 딸 인디라 간디는 1966~77년과 1980~84년 두 차례 정권을 잡았고 인디라의 아들 라지브 간디는 어머니가 암살된 1884년에 사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 5년간 총리를 지냈다.  241


비하르와 우타르 프라데시 같은 지방은 인구의 반이 빈공층이며 천만 뭄바이 시민의 절반이 슬럼에서 산다.  259

인도의 도시화는 아직 낮아서 인구의 25%가 인구 5천 명 이사으이 도시에 살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그 도시 인구의 4분의 1이 슬럼에 거주하고 대도시는 그 비율이 훨씬 높다. 수도 델리의 인구 중 3분의 1은 오늘도 슬럼가에서 하루를 쓸어담는다.  269


인도인은 흰색을 선호한다.  262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검은 까마귀보다 백로를 아꼈던 우리처럼 사람은 보편적으로 검은색보다 흰색을 선호한다. 유럽에서도 흰색은 즐겁고 매력적인 성질을 상징하고 검은색은 그 반대로 대개 불길함과 죽음을 상징한다. 인도 신화에는 시바 신이 아내 파르바티의 검은 피부를 놀리자 그녀가 황금색 피부를 얻기 위해 금욕적인 수행을 하는 장면이 보인다. 여성의 흰 피부에 대한 동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한 모양이다. 인도에서도 흰색은 순수와 정결을 뜻한다. 사라스와티 여신은 늘 흰 옷을 입고 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단정한 모습이다.  264


이기의 삶에서 이타의 삶으로....  296

인도를 구경하는 것은 동시에 여러 시대와 여러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312



후기 

'인도를 일주일 여행한 사람은 책을 한 권 쓰고 일곱 달을 머문 사람은 글을 한 편 쓰지만 인도에 7년 동안 거주한 사람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알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다원적인 인도의 특성 때문이다.  314-315


천의 얼굴 인도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분명하게 결론을 내리려 드는 20세기의 합리주의를 향해서 비웃음을 던진다. 사실 이 세상에 분명한 것이 어디 있는가? 한낱 내 기분도 아침과 저녁에 다르거늘.

한 길 사람 속도 알기 어려운데 수천 년의 역사와 10억의 인구가 빚어내는 다양한 사회의 집합체인 인도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만용을 넘어 무모함에 가깝다.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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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의 종교성은 현실 생활에서 어떻게 반영되는가? 생활의 단순성, Simple Living이다.  18


인도인들은 자신에게 불쾌하게 대해도 좀처럼 그들과 관계를 끊고 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인도 사람들은 싫은 사람들과도 끝까지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남을 돕는 데 마음을 쓰지만 절대로 돈을 써서는 돕지 않는다. 돈에 대해서는 아주 인색하다.  20-21


흥미로운 것은 이 '돈' 문제가 현실에서 잘 먹고 잘 살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종교의례를 따라 살려니까 돈이 드는 것이다.  21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는 알주나와 인간의 모습을 한 신 크리슈나가 전쟁을 앞두고 벌이는 논쟁이 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바가바드 기타이다.  30


논쟁에는 어느 한쪽의 절대적인 승리라는 것이 없다. 내용에 관한 것이든지 절차에 관한 것이든지 논쟁에서 이겨도, 긴 쪽의 의견은 남게 된다. 그래서 논쟁을 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가져온 것이다.  

인도인에게 침묵은 금이 아니다. 말하는 게 금이다.  31


수많은 인도 신화들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다.  

이 방대한 베다는 경이롭게도 글귀에 큰 모순이 없이 스승들에게서 제자들에게 구전되어 온 것이다.

마하바라타 한 작품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합친 것의 7배가 넘는다.  32-33


아시아 교육은 암기를 중시하는데, 인도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인은 머리로 외워서 손으로 쓰지만, 인도인은 머리로 외워서 입으로 말한다. 

그 많은 것들을 정확하게 구전하기 위해서 인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암기력을 중요하게 여길 뿐만 아니라 효과적으로 암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천연약재까지 개발해냈다.  33


인도의 언어 종류는 가히 기록적이다. 공용어 18개, 외국어 103개를 포함하여 상용하는 언어만 1,652개를 유지하고 있다. 이 중에 백만 명 이상 사용하는 언어는 33개 이상이다.  36


인도의 전통적인 말하기 문화는 서구 민주주의를 적응하기에 더 궁합이 잘 맞았다.

민주주의는 근본적으로 국민이 자신들의 의사를 말하는 데서 시작한다.  38


맣 많이 하는 것이 약점은 아니다. 말만 많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약점이다.  39


인도인들은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미루어 놓고 명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명상을 통해서 문제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러고 나서 그 내용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하고, 분석하고 논박해 낸다. 

명상에 들어갈때는 먼저 사념을 버린다. 자연히 감정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한다. 이 명상은 마음의 평정을 이루어 주고, 자신들의 문제를 차분히 정리 접근하게 돕는다. 명상을 하면 자기주장의 논거가 분명해진다.  39


현재 인도인의 말 잘하기 교육은 Debate Competition(토론대회) 이다.  40


인도인의 문화에 대한 우월감. 인도인은 세계에서 자신들보다 앞선 문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도의 풍부한 신화도 자료 및 사고 공급에 한 몫을 한다.  41


인도인들의 말하는 방법들.

  - 주도적이다.

  - 책임을 지는 언급은 피한다.

  - 상대의 약점을 노출한다.

  - 감정적인 표현을 피한다. 인도인은 일을 단계적으로 처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정을 담지 않고 말한다.  42-43


바가바드 기타. 인도인이 가장 중시하는 경전이다. 여기서 마야(Maya), 모(Moh), 크로드(Krodt) 이 세 가지를 주의하도록 가르친다.

마야는 돈을 의미한다. 돈을 주의하라는 말은, 돈은 필요하지만 돈을 쫓는 삶을 살지 말라는 말이다.

모는 세상 것들에, 예를들면 세상 명리나 색에 유혹되지 말라는 것이다. 

크로드는 분노로서, 내면을 가라앉혀 화를 내지 말라는 말이다.

물질을 쫓거나 주색을 추구하는 삶, 화를 내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중 앞의 두 가지는 유혹에 대한 반응이지만 세 번째 것은 자기 통제를 잃은 경우에 대한 반응이다.

인도인들은 첫째로 화내는 사람은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라고 판단한다.

인도인들은 화내는 사람을 어떻게 취급할까? 먼저, 인격 훈련이 덜된 사람으로 판단한다.

둘째는 화내는 사람에 대해 그 상황에서는 힘이 없다고 판단한다.

셋째는 화내는 사람이 자기 잘못을 감추려고 화를 내고 있다고 판단한다.  52-53


감사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은 이 사람들이 특별히 외국인인 우리를 대하여만은 아니다. 인도인 사이에도 감사 표현이 별로 없다. 

이유는?

첫째는 종교적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오늘의 선행은 내세를 위한 준비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은 신이 죽복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자신을 위해 하는 일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둘째로 사회 관습상 인도인은 감사의 관계를 기억한다는 것이다.

감사를 서둘러 말로 할 필요가 없다. 인도인들은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감사를 마음에 새긴다. 인도인들은 도와주고 나서 금방 선물을 받으면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선물 대신 지속적이고 끈끈한 관계를 더 원하기 때문이다. 인도인을 도우면 어떤가? 감사하단 말도 하지 않고 선물도 안 준다. 그런데 후에 자기 지위를 이용하여 도움을 준다. 그 당시에 표현하지는 않지만 그 일은 일단락된 것이 아닏. 그 일로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55-60


거짓말을 옳다고 하는 인도인도 없지만 그르다고 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68


델리대 정문에서 마주보이는 야산 공원에는 원숭이들이 수천 마리가 산다 아침저녁으로 사람들은 최소한 200~300루피 어치의 바나나를 사서, 산속을 누비며 원숭이들에게 던져 준다. 그러면 주변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이 원숭이와 싸워가며 몇 개씩 집어간다. 바나나를 던져준 사람들은 큰소리로 아이들을 야단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새들을 위해 콩을 가져다가 모이로 던져 준다. 르거면 또 아이들이 쫓차가 흙투성이의 콩을 줍는다. 사람들은 심한 욕설을 하며 아이들을 쫓아낸다.

동물은 먹이는데 사람은 먹이지 않는 인도인의 윤리와 도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동물에게는 측은지심을 보이는데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다니!

이와 같이 윤리관의 문제를 제가히는 건거의 하나는 카스트다.  70


바가바드 기타에 이러한 업의 고리를 끊는 방법이 두 가지가 보인다. 

바로 카르마(Karma)와 박티(Bhakti)다. 카르마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업보에 따른 수행이고, 박티는 헌신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행위의 실천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결과는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다. 즉, 성공이나 실패에 얽매이지 말고 냉철하게 그리고 욕망과 목적을 버리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74-75


일을 잘해 내는 데 신경을 쓰면서 결과를 중시하지 않는 태도는 현대 인도의 경제, 정치, 안보에 중요한 기준이다. 우리는 요구하는 결과를 고정시켜 놓고 이에 맞추어 나가려면 원치 않는 길을 걸어야 할 때가 많다. 이에 비해 인도인은 힌두신앙의 영향으로 결과를 덜 중시한다. 결과를 중시하지 않으며 카르마에 맞는 행동을 중시한다. 공사를 구분하는 자세와 비슷하다. 자세로는 좋은데 자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하면서 힌두의 이익, 인도의 이이그 자기 가족의 이익, 마지막으로는 자신의 이익을 따라서 행동하면, 상대방이 피해를 입고, 피해를 입힌 자신은 양심의 가책을 별로 받지 않는다. 이같이 인도인은 상황에 따라 자신을 합리화,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하다.  78


인도 여성은 자기 방어에 철저하다. 자기 몫 또는 안전을 챙겨야 하는데, 하다못해 오토릭샤를 타도 여성은 항상 공격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자기 것을 철저히 챙기는데 강하다. 자신이 희생해서 남을 위해 해 주는 일이 드물다. 즉, 남을 이용하는 데 강하다는 말이다.

인도 여성의 성격은 부정적인 듯하지만, 개인의 성품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살기 위해 사회화 과정에서 형성되는 공통 성품이다.  98


실제로 인도인들을 사귀어 보면 필요한 도움을 주고 섬세히 배려를 해 주는 편이다.  129


인도인이 남을 도와주는 것은 언젠가는, 누구를 통해서인가는 혜택이 돌아온다고 믿는 적선(積善) 개념이 깔려 있다.  131


부분적으로 인도에서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은 힘이 없는 사람의 짓으로 보인다. 

한국인은 권력을 쥐고 눈에 드러나게 과시하면 촌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인도인은 조그만 권력이라도 쥐면 반드시 과시한다.  153


인도인의 미신적 성격은 어디서 왔는가? 몬순이다.  168

자연적 여건이 좋은 반면 자연재해도 크게 일어날 수 있다. 인도응 홍수나 가뭄 때문에 엄청난 재해를 입는 나라에 속한다. 그리고 사람의 노력이 별로 무슨 일을 할 수 없을 만큼 자연재해가 거대하고 혹독하기도 하다.  169

이러한 자연현상에 대해 미리 알고 싶어 발전한 것이 점성술이다. 

점성술에 대한 인도인의 신뢰는 대단하다.  170


모든 사람이 꺼리는 동물은 고양이와 까마귀다. 특히 까만 고양이.  176



인도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질문

아는 사람을 밖에서 만났을 때 "어디 가느냐?" , "왜 가느냐?"라고 묻는 것은 힌두 미신으로 볼 때 큰 실례다. 

나가는 인도인들에게 어디(Where), 왜(Why)라고 물으면 안 된다. 그 대신에 구체적으로 "학교에 가느냐?" , "회사에 가느냐?"라고 물어야 한다.  177



인도인과 요일

월요일은 파괴의 신 시바를 섬기는 날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귀는 사람이 시바 숭배자인 경우 월요일은 금식을 하므로 초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화요일은 원숭이 신 하누만의 날이다. 하누만은 물리적인 힘을 상징하는데, 여성들은 힘의 권원으로 샥티(Shakti)를 섬기는 날이다. 화요일은 거의 모든 힌두인들이 오후에 사원에 가서 원숭이 신을 섬긴다. 이날은 머리도 깎지 않고 손톱도 깎지 않으며 면도도 하지 않는다.

목요일에는 스스의 날(Guru day)인데 신들의 스승을 존경하는 의미로 옷을 빨지 않는 날이다. 정 빨아야 하면 비누 없이 빨 수는 있다. 목요일은 보전의 신 비슈누의 날이기도 하다.

수요일은 코끼리상의 신 가네샤의 날로 새로운 것을 사거나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날이다. 

금요일은 산토시 신의 날로서 시대가 바뀌면서 근대에 영입된 신이다. 이날은 락슈미를 섬기기도 한다. 이날 힌두들은 아무 일도 시작하지 않는다. 무슬림들이 성스럽게 여기는 날이란 점도 있다. 

토요일은 인도인들이 전반적으로 불길하게 생각하는 날이다. 이날은 샤니 데이(Shani day)라고 해서 토성(土星)의 신 샤니의 날이다. 이 신은 아주 위험하고 화를 잘 내는 시능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신이 질투하지 않도록 토요일에는 모든 새것을 피한다. 이날은 머릿기름도 바르지 않는다. 육식도 금하고, 와인도 마시지 않는다. 계란조차 먹지 않는다. 

일요일은 태양신 수리야를 섬기는 날로서, 브라만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날이다. 일요일 중에도 우타르프라데시나 비하르주에는 차트라고 하여 4월과 11월에 한 번씩 24~36시간 동안 물도 한 모금 안 마시는 금식을 하면서 첫날의 일몰, 둘째 날의 일출을 숭배하는 날들이 있다.  179-181


인도인들은 다양한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상대의 실수를 받아준다.  187

인도인은 외국인을 속일 수는 있어도 무시하지는 않는다.  188


인도인의 관대함의 사회적 근거는 대가족 제도에서 찾을 수 있다.  193


인도인에게 음식은 재료가 고기인가 채소인가가 문제지 냄새는 문제가 아니다. 채식 재료에서 나는 냄새는 무엇이든 괜찮다.  199


혼란스럽게도 오늘날 대부분의 인도인은 카스트 안팎의 두 세계를 오가며 살고 있다.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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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은 흰색으로서 힌두교 사제 계급

크샤트리아는 붉은 색으로서 힘, 정열, 용기를 상징

수드라는 검은색

바이샤는 노란색.  21


인도에는 전통적으로 샤쉬트라뜨(Shashtrath)라고 하는 토론 시간이 있다. 스승이 선문(禪門)을 하면 제자가 다시 질문 형태로 공손히 다른 의견을 제시해보는 논쟁 교육이다.  62


물질적으로 외국인은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는 존재이지만, 종교적으로는 다른 종류의 불가촉천민일 뿐이다.  209


인도인들의 결혼은 윤회와 관계가 있다.

힌두들은 결혼이 없으면 윤회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본다.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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