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독립 이후에 언어 분포를 조사하였는데, 인도 국민이 사용하는 언어가 179개이고, 방언도 544개나 존재한다고 한다. 현재 인도 정부가 공용어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산스크리트어(Sanskrit, 범어梵語)를 포함해서 18개에 이른다.

이 많은 언어를 크게 구분하면, 북부의 인도아리아 어군(語群)과 남부의 드라비다 어군으로 나눌 수 있다. '인도아리아어'는 인도 인구의 70퍼센트가 넘는 사람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산스크리트에서 파생된 것이다. 인도 아리아어도 다음의 몇 가지로 나누어진다.

1. 힌디(Hindi)는 인도의 북부 지방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언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체 인구의 40.22%가 사용하는 언어다. 수도 뉴델리(주민의 81.6%)를 비롯해서 하리아나(91%), 우타르프라데시(90.1%), 라자스탄(89.6%), 히마찰프라데시(88.9%), 비하르(80.9%), 마디아프라데시(85.6%), 찬디가르(61.1%) 등에서 주(州)의 제1공식어로 사용하고 있다. 또 네팔에서도 800만 명이 힌디를 사용한다.

2. 벵갈리(Bengali, 벵골어)는 캘커타(현재의 콜카타)를 중심으로 한 벵골 지방과 방글라데시에서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8.3%가 사용한다. 웨스트벵골 주의 공식어로서 이 주의 주민 86%가 벵갈리를 사용한다. 

3. 우르두(Urdu)는 펀자브 지방과 파키스탄에서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모슬렘) 언어로, 이 언어의 문자와 말은 아라비아어와 비슷하다. 인도 전체 인구의 5.18%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4. 구자라티(Gujarati, 구자라트어)는 서해안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구자라트 주민 91.5%가 사용한다. 그래서 구자라티는 '인도의 비즈니스맨의 언어'라고도 불린다. 구자라티는 인도 전체 인구의 4.85%가 사용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이 언어를 사용하는 인구는 6,0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5. 마라티(Marathi, 마라티어)는 인도의 경제 수도 봄베이(지금의 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마하라슈트라 지방의 언어로, 이 주의 주민 73.3%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인도 중부의 데칸 지역에서도 이 언어가 많이 쓰인다. 인도 전체 인구의 7.45%가 이 언어를 사용한다. 

6. 오리야(Oriya)는 동해안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이는 오리사 주민 82.8%가 사용하며, 많은 방언과 지방 사투리가 있는 것이 이 언어의 특징이다. 

인도이ㅡ 남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드라비다어는 인도 인구의 30% 정도가 사용하는 언어다. 드라비다어도 몇 가지로 구분된다. 

7. 텔루구(Telugu)는 동부 지방의 안드라프라데시 주민의 84.8%가 사용하는 언어이고, 또한 인도 제2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하이데라바드 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언어다.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7.89%가 사용한다.

8. 타밀(Tamil)은 마드라스(지금의 첸나이)를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언어다. 또한 타밀나두 주민의 86.7%가 사용하는 언어이고, 인도 전체 인구의 6.32%가 사용하는 언어다. 

9. 칸나다(kannada)s는 남서부의 마이소르(카르나타카 주) 지방에서 사용되는 언어로, 이는 인도 시리콘밸리 방갈로르에서 사용되며, 인도 전체 인구의 3.91%가 사용한다. 

10. 말라야람(Malayaram)은 인도의 가장 남쪽 케랄라 지방에서 쓰이는 언어로,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3.62%가 사용한다.

그 밖에도 11. 펀자비(Punjabi)는 펀자브 주민의 92.2%가 사용하고, 인도 전체 인구의 2.79%가 사용하는 언어다.

12. 아싸미스(Assamese)는 아삼 주민의 57.8%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1.56%가 사용한다.

13. 신디(Sindhi)는 구자라트 주 등, 인도와 파키스탄의 접경 지역에 사는 주민이 사용하는 언어로, 이는 인도 전체 인구의 0.25%가 사용한다.

14. 네팔리(Nepali)는 네팔의 국어다. 이는 네팔 인구의 90%가 사용하는 언어이며, 인도 전체 인구의 0.25%가 사용하는 언어다.

15. 콘카니는 고아 주민의 51.5%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21%가 사용한다. 

16. 마니푸리는 보석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마니푸르에서 사용되는 언어다. 이는 이 지역 주민의 60.4%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15%가 사용한다. 

17. 사큐미리(Kashmiri)는 잠무카슈미르 주에서 주민의 55%가 사용하는 언어로, 인도 전체 인구의 0.01%가 사용하는 언어이다.  32-35


2001년 발표된 인구 조사를 보면 인도의 주택 수는 모두 1억 7,900만 개이다. 평군 잡아 한 집에 6명이 사는 셈이다.  35


4만 루피의 연봉을 받는 사람은 한국의 화폐로 약 100만원 정도를 받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5~10배의 소득 효과가 잇다.

최근 인도인은 부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하고 있다. 이는 경제에 눈을 뜬 것이고, 그래야 자식 교육과 자신의 노후가 보장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39


1999년 현재, 350만의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감염자가 있다고 하고, 일부 비정부 기구에서는 800만의 감염자가 있다고 주장한다.  42


웬만한 중산층 가정의 경우 제대로 된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려면 신랑에게 '산트로(현대자동차)'정도는 지참금으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도의 여성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낼 수도 없다. 인도 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이 결혼하지 않는 것을 큰 수치로 받아들이고 있고, 독신 여성을 사회적으로 천시하고 있다.  48


사트푸라 마을에서는 차란 부인의 '사티'를 포함해서 지난 50여 년동안 4건의 '사티'가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 사티 기록을 대단한 자랑과 명예로 여기고 있다.  50


미망인이 끝까지 자결하는 것을 거부할 경우에는 천한 사람으로 낙인찍혀서 집안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 버림을 받았다. 버림받은 미망인은 죽을 때까지 힌두교 사원에 가서 가장 천한 막일을 하거나 심지어 창녀로 일해야 하며, 이렇게 해서 번 돈은 힌두교 사원에 바쳐야 했다.  51


인도에는 "과부가 먹다 남긴 음식은 개도 먹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과부가 다시 시집가는 것도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 과부는 시집에서만 아니라 친정에서도 배척을 받는다.

과부들이 브린다반의 사원에 모여들게 된 것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자신의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이다. 실제로는 남편이 죽자 집안에서 버림을 받고 브린다반으로 쫓겨 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52


인구 비례로 따지자면, 영어를 읽고 쓸 수 있는 인구는 4!10%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간단한 영어회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70%는 될 것으로 추정된다.  76



인도 역사를 크게 4시기로 구분하는 견해가 있다. 힌두시대, 이슬람시대, 영국식민지시대, 오느르이 독립국가시대이다.

인도의 한 소설가가 4가지 시대에 대해 재미있는 비유를 들어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이 소설가는 인도 민중을 참새 부부에 비유한다. 각 시대를 연대순으로 힌두 시대를 '금으로 만든 새장'으로 비유하고, 이슬람 시대를 '은으로 만든 새장', 영국의 식민지 시대를 '알루미늄으로 만든 새장', 오늘날의 독립국가 시대를 '삼색기(三色旗)로 만든 새장'으로 비유하였다.

필자는 '힌두시대'를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1시기는 아리아인이 인도에 정착한 시기인 '베다시대'이고, 2시기는 '도시국가'와 '영역국가'가 서로 경합을 벌이던 시대이며, 3시기는 '마우리아 왕조'에 의해서 통일을 이룬 때이고, 4시기는 '굽타 왕조'에 의해서 고전적 힌두 문화가 어느 정도 완성된 시대이다.  81-82


힌두교의 성격으로는 대체로 다음의 6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베다 종교를 계승한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多神敎)이다. 둘째, 힌두교는 다신교이지만, 여러 신의 배후에 최고신(最高神)을 설정한다. 이것이 브라흐마 비슈누 쉬바의 삼신일체(三神一體)로 나타난다고 한다. 셋째, 힌두교에서 아바타라(avatare, 化身)의 관념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이는 비슈누가 여러 신 인간 동물로 나타난다는 것인데, 이것을 통해서 여러 지방 부족 카스트의 신들을 통일할 수 있었다. 넷째, 신과 인간의 관계에서도 특징이 있다. 힌두교에서는 이슬람교나 유대교에 비해서 신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적다. 이는 '아바타라'의 관념에서 파생한 것이다. 다섯째, 힌두교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단(異端)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정통과 이단의 대립을 거의 볼 수 없다. 여섯째, 힌두교에 이단이 없다는 점은 힌두교가 다른 종교, 사상과 접촉하는 점에서 관용을 발휘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힌두교에서는 대립하는 모든 종교, 사상에 대해서 정면으로 대결하기보다는 자기영역에 있으면서 대항하지 않거나,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흡수하였다. 예컨대 사회적 신분제도에 저항했던 '불교'도 힌두교의 한 파(派)로 간주되어, 불타(佛陀)는 비슈누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렇지만 불교 자이나교 이슬람교 시타 토착적 요소가 어울려 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힌두교도로서 그 주체성을 잃지 않았다.

또한 힌두교에서는 4가지 생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카마(kama)는 적당한 감각적 쾌락과 성적 향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애정의 기술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한 것이 <카마수트라>이다. 둘째, 아르타(artha)는 재물과 재산의 향유와 이득을 뜻한다. 이는 인생에서 부(富)의 추구가 인간의 정당한 행위라는 것이다. 셋째, 다르마(dharma)는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다. 이는 <마누 법전>과 여러 법률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다. 넷째, 해탈(moksa)은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이고, 열반에 들어가서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힌두교에서는 4가지 생활 목표와 상응해서 인새으이 4주기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범행기는 스승의 지도 아래 <베다>등의 학문을 배우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시기다. 둘째, 가주기는 결혼해서 가정을 돌보는 시기다. 이때 자식을 낳고 부를 추구하는 생활을 하면서 가장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한다. <마누법전>에 따르면 결혼한 남자에게 주어진 의무는 신, 브라만, 조상 등에게 제사를 성대하게 치르는 것이다. 셋째, 임주기는 재가자의 삶을 마치고 숲속으로 들어가서 은거하고 명상과 금욕생활을 하는 시기다. 이는 세속을 떠나 청정한 종교생활을 하는 시기다. 넷째, 유행기는 숲속에서 수행이 끝난 뒤에 탁발(걸식)하며 돌아다니는 시기다. 이때에는 모든 사회적 유대관계를 끊고 오로지 해탈의 세계만을 추구한다.  140-142


힌두교(브라만교)의 흐름은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에서 6파 철학으로 이어진다. 그 내용을 순서대로 살펴본다.

1. 우파니샤드(Upanisad)는 '가까이 앉는다'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이는 스승과 제자가 가까이 앉아 대화로 비밀스런 지식을 전수한다는 것이다. <우파니샤드>의 사상은 다양해서 일률적으로 개괄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우주의 근원인 '브라흐만(brahman)'과 진정한 자아인 '아트만(atman)'이 같다는 것(梵我一如)이 <우파니샤드> 사상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타이티리야 우파니샤드>에서는 5단계의 아트만을 주장한다. 첫째, 물질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음식을 가리킨다. 둘째, 동물과 식물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식물과 동물에 공통된 생명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셋째, 동물에만 공통된 지각 활동으로 이루어진 자아이다. 넷째, 인간만이 소유하고 있는 인식활동으로 된 자아이다. 다섯째, 희열로 이루어진 자아인데, 이는 인간의 깊은 곳에있는 브라흐만 그 자체이다. 이것은 인간 내면 깊은 곳에 간직되어 있는 희열이야말로 자신의 참 자아이며 우주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브라흐만'과 '아트만'이 같다는 주장이 의미하는 것을 읽을 수 있다.

2. <바가바드기타>은 힌두교의 바이블로 불릴 만큼 중요한 문헌이다. <바가바드기타>는 바수데바(Vasudeva)를 신봉하는 종파에서 작성한 시편(詩篇)인데 나중에 <마하바라타>에 편입되었다. '바가바드기타'는 '숭배할 만한 자' 혹은 '지극히 존귀한 자'라는 의미이고, '기타'는 '노래' 혹은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바가바드기타>는 체계적인 철학을 담고 있는 저술이라기보다는 실천적 성격이 강한 종교적 작품이고, 또한 요가의 고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바가바드기타>에서는 3가지 요가를 말하고 있다. 첫째, 지(知)의 요가(jnana-yoga)이다. 이는 뒤에 소개할 상키야학파처럼 영원한 정신으로서 '참 자아'와 '물질적 현상적 자아'를 구분하는 것이고, 또는 <우파니샤드>에서 주장한 것처럼 범아일여(梵我一如)와 신을 아는 지혜를 의미하기도 한다. 둘째, 신애(信愛)의 요가(bhakti-yoga)이다. 이는 신에게, 특히 비슈누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고 그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헌신을 통해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다. 셋째, 행(行)의 요가(karma-yoga)이다. 이는 윤리와 해탈 간의 긴장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참다운 체념은 '행위를 전혀 하지 않는 체념'이 아니라 '행위 하는 가운데 체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행위를 하지만 욕망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행위하는 한, 업보(業報)를 부르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3. 상키야(Samkhya)학파에서는 2원론을 주장하낟. 이 학파에서는 진정한 자아 푸루샤(purusa)와 현상적인 자아 물직적 근원인 프라크리티(prakrti)를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사람은 프라크리티를 진정한 자아라고 생각하고 잇다. 이것은 잘못이고 진정한 자아는 푸루샤라는 것이 이 학파의 주장이다. 이 학파에서는 프라크리티에서 육체와 세계가 전개되는 것을 설명한다.

4. 요가(Yoga)학파에서는 상키야학파와 형이상학을 같이하지만 두가지 점에서 다르다. 그것은 마음의 잠재적인 힘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무지(無知)를 주장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구체적 수행 방법으로 요가를 제시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유신론적(有神論的)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5. 바이셰쉬카(Vaisesika)학파는 다원론의 입장에 선다. 이 학파에서는 6범주 또는 7범주를 말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항목인 실체이다. 이 학파에서는 실체에 9가지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지, 수, 화, 풍, 공, 시간, 공간, 의근, 자아이다.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고, '허공'은 소릴는 성질이 어딘가에 있어야 하므로 이 점에 근거해서 추론되는 것이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와 젊음과 늙음을 인식하는 근거로서 추리되는 것이며, '공간'은 여기, 저기, 가깝다, 멀다 등을 인식할 수 있는 근거로서 추론되는 것이다. 의근(意根)은 내적 감각기관이다. 눈과 코 등의 외적 감각기관이 바깥 대상을 인식하듯이, 의근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다. 지각은 의근이 작동해야 이루어진다. 자아(영혼)는 인식현상의 밑바닥을 이루는 실체이다. 여기에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인 영혼인데, 이는 의지 욕망 기쁨 아픔 등의 여러 가지 정신적 상태에 근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안다"와 "나는 아프다"라는 말을 통해서 자아가 의식에 속하는 실체임을 알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최고 영혼으로서 신이다. 이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영혼으로서 모든 고통과 욕망에서 벗어난 존재이고 세계의 창조자라고 추리되는 존재이다.

6. 니야야(Nyaya)학파에서는 바이셰쉬카학파와 형이상학의 내용은 거의 같이한다. 이 학파에서는 괴로움의 근원이 그릇된 지식에 있다고 보고 올바른 지식을 얻기 위한 인식 방법에 관심을 집중한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논리학이 발달하였다.

7. 미맘사(Mimamsa) 학파에서는 <베다>에서 명령하는 행위를 왜 실천해야 하는지 그 의무에 대해 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학파에서는 무전력(無前力, apurva)을 주장한다. 베다에서 말하는 제사의 행위는 잠깐 동안 이루어지고 이내 끝나기 때문에 제사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이에 이 학파에서는 가설로서 '무전력'을 인정하면 제사의 행위에서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제사 지내는 행위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인 '무전력'을 생기게하고, 이 힘이 제사 드리는 주체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그 업에 해당하는 과보를 반드시 받게 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베다 성전을 '제사부'와 '지식부'로 구분하고 있다. '제사부'는 브라만교의 제사를 설명하는 부분인데, 이것을 중시한 학파가 미맘사학파이다. 뒤에 소개할 베단타 학파는 베다 성전의 '지식부', 곧 <우파니샤드>를 중시하는 학파이다.

8. 베단타(Vedanta) 학파는 힌두교(브라만교)의 사상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것이다. 이 학파는 과거 1,000년 동안 다른 학파의 활동을 누르고 압도적 지위를 차지하였다. 베단타라는 말은 본래 베다의 '끝' 혹은 '목적'을 의미하는 것이엇는데, 이는 <우파니샤드>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다가 '베단타'라는 말이 <우파니샤드>의 사상을 체계적으로 해석하고 발전시킨 사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베단타학파는  샹카라, 비슈누파, 쉬바파로 구분된다.

이 학파의 근본경전은 <브라흐마 수트라>이다. 이 경전에서 말하는 내용은 브라흐만과 합일하여 해탈하는 것이다. 해탈을 얻는 방법으로, 명상을 통해서 브라흐만을 알게 되는 지(知)를 얻고, 이 '지'를 얻은 사람은 죽은 뒤에 신의 길을 따라 최후에 브라흐만에 이르러 브라흐만과 합일한다는 것이다.

이 <브라흐마 수트라>는 문구가 대단히 간결해서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렵다. 그래서 여러 주석서가 나왔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샹카라, 라마누자, 마드바이다. 샹카라는 가현설(假現說)을 주장했는데, 이는 영혼과 물질세계는 브라흐만이 나타난 것이어서 영혼과 물질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현설'이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이는 일원론에 속한다. 라마누자는 전변설(轉變說)을 통해서 영혼과 물질세계가 신에 의존해 있는 것이지만, 영혼과 물질세계에는 독자적 성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라마누자는 영혼과 미세한 물질은 실재로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라마누자의 주장은 2원론에 속한다. 마드바(Madhva)는 '가현설'과 '전변설'을 부정하고 현실의 차별적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자 하였다. 이 점에서 마드바는 다원론을 주장하였다. 라마누자와 마드바는 비슈누파에 속한다.  143-148


자이나교의 사상

초기 자이나교의 가르침은 7체(諦)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영혼(jiva)은 모든 만물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이 영혼은 청정하고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청정한 영혼이 업(業)에 의해서 속박당해 자신의 기능을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둘째, 영혼에 반대되는 비영혼(非靈魂, ajiva)을 설명한다. '비영혼'에는 5가지가 있다. 그것은 물질, 법, 비법, 허공, 시간이다.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법(法)은 원자가 움직이게 하는 원리이며, 비법(非法)은 원자가 정지하게 하는 원리이고, '허공'은 우너자가 놓여 있는 공간이다. '시간'은 초기 자이나교에서 조금 뒤에 추가된 것인데, 원자가 시간 속에서 작용한다는 의미다. 셋째, 유입(流入, asrava)은 몸, 이브 마음의 업으로 미세한 물질인 비영혼이 영혼을 둘러싸는 것이다. 넷째, 계박(繫縛, bandha)은 영혼을 둘러싼 미세한 물질이 미세한 신체를 이루어서 영혼을 속박하는 것이다. 다섯째, 제어(制御, samvara)는 영혼이 속박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새로운 업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이미 들어온 업은 없애는 것이다. 과거의 업을 없애기 위해서는 고행이 필요하다. 새로운 업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기 위해서는 '5대서(五大誓)'를 지켜야 한다. 그것은 살생하지 않는 것, 진실한 말을 하는 것, 도둑질하지 않는 것. 음행하지 않는 것, 무소유이다.

여섯째, 지멸(止滅, nirjara)은 수행이 완성되어 업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일곱째, 해탈(解脫, moksa)은 업의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은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는 것이다.  156-157


자이나교단은 뒤에 백의파와 공의파로 나뉘어졌다. 백의파(白衣派)는 흰옷을 걸치는 종파이고, 공의파(空衣派)는 옷을 걸치지 않는 종파이다.  157


불교는 한국인에게 친밀한 종교이지만, 인도의 불교에 대해서 한국인이 잘 알지는 못한다. 한국인에게 친숙한 불교는 중국불교와 한국불교이다. 물론 중국불교와 한국불교는 인도불교를 근간으로 한 것이므로 크게 보아서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한국불교는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분위기에서 분명히 인도불교와 중국불교, 한국불교에는 다른 측면이 있다. 그 핵심적 내용은 인도 불교에서 논리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또한 카스트제도를 비판하는 진보적 성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161


불교사상의 전개 과정

1. 초기불교의 사상은 3가지 내용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첫째는 사성제(四聖諦)이다. 이는 4가지 성스러운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고(苦)'는 인생의 현실은 고통스럽다는 것이고, '집(集)'은 인생이 고통스러운 원인은 잘못된 욕망에 있다는 것이며, '멸(滅)'은 인생의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고, '도(道)'는 인생의 고통을 없애는 길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도'는 팔정도(八正道)로 구성된다.

둘째는 삼법인(三法印) 또는 사법인(四法印)이다. '법인'은 불교의 징표, 불교의 증거라는 의미다. 이는 제행무상 등의 3가지 또는 4가지 조건이 갖추어지면 그 가르침을 올바른 불교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불교라는 도장을 찍는다는 의미이므로 그만큼 이 명제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삼법인 또는 사법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고, 모든 것은 고통스럽다는 것이며, 모든 존재는 무아(無我)라는 것이고, 열반(涅槃)의 경지는 고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연결해서 보면, 모든 것은 변하는데 그 변하는 것을 변하지 않는다고 집착하면 고통스럽다는 것이고,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에는 진정한 자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모든 것이 변하고 고통스럽고 무아임을 자각할 때, 진정한 열반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 삼법인 또는 사법인의 내용이다.

셋째는 연기설(緣起說)이다. 이는 사물이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상호 의존성'을 말하는 것인데, 경전에서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으며, 이것이 생기기 때문에 저것이 생기며, 이것이 멸(滅)하기 때문에 저것이 멸(滅)한다"라고 한다. 이는 이 세상 어떤 사물도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일상의 삶이 가능한 것은 누군가가 농사를 짓고 옷을 만들고 기름을 만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이 물건들은 내가 돈을 주고 사용하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만들지 않았다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것들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보자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에 철저히 기대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상호의존성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이 연기설을 더욱 발전시켜 12항목의 연기설을 주장한다. 그 요점은 중생이 고통을 겪고 윤회하는 원인은 지혜가 없는 무명(無明)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기불교의 경전은 <아함경(阿含經)>이라고 하는데, 이는 한역본과 팔리어본이 있다. 팔리어본은 '니카야(Nikaya)'라고 한다.

2. 불교 고단은 상좌부와 대중부로 나누어진다. 이는 계율문제를 두고 보수파와 진보파로 나누어진 것이다. 상좌부(上座部)는 보수파인데 불타가 정한 율(律)을 그대로 지키자는 쪽이고, 대중부(大衆部)는 진보파로서 불타가 정한 율이라고 할지라도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상좌부와 대중부는 10가지 문제를 놓고 대립을 하였는데, 그 중에 핵심적 사항은 금은을 보시(기증) 받을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상좌부는 금은을 보시 받아서는 안 된다는 쪽이고, 대중부는 시대가 바뀌었으므로 금은을 보시 받아도 된다는 쪽이다. 이렇게 2개의 부파로 나누어진 다음에 18개 부파로 나누어져 모두 20개 부파가 형성되었다. 그리고 상좌부 불교가 동남아로 전파되었다. 

3. 대승(大乘)불교는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경, 활발한 힌두교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새롭게 출현한 불교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보살(普薩)을 강조하였는데 여기에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범부(凡夫)보살인데 대승불교경전에 나오는 미륵, 관세음, 문수, 보현보살 등을 말하는 것이다. 이 대보살은 이미 수행을 완성한 존재이고 한편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있는 존재이다. 이 대보살은 힌두교에서 토착신앙을 포섭하고 대중성을 확보한 것에 대항하기 위해서 불교에서 신앙의 대상이 되는 존재를 제시한 것이다. 미륵(彌勒)은 미래에 태어난다는 부처님인데, 다음 생(生)에 부처가 되는 것이 결정되어 있고, 현재는 보살로서 도솔천(兜率天)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자비(慈悲)를 상징하는 존재이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지혜를,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실천행(實踐行)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불타관(佛陀觀)에도 변화가 있었다. 대승불교에서는 불타의 개념이 일반화하였고, 구제자로서 뛰어난 능력을 불타가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중에서도 아촉불(阿?佛), 아미타불(阿彌陀佛), 약사여래(藥師如來)는 많은 사람이 귀의하는 대상이었다. 이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조치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대승불교에서는 ,많은 경전을 제작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화엄경>, <법화경>, <무량수전>, 반야경전 계열, <유마경>, <승만경>, <해심밀경>, <열반경>이다. <화엄경(華嚴經)>은 불타가 되는 수행단계를 50단계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는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화엄종(華嚴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법화경(法華經)>은 소승(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의 조화를 말하는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천태종(天台宗)의 근본경전이 되었다. <무량수경(無量壽經)>은 중생을 극락정토에 태어나게 한다는 내용의 경전으로, 중국에 전해져서 정토종(淨土宗)의 근본경전의 하나가 되었다.

반야(般若)경전 계열은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는 공(空)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경전이다. <유마경(維摩經)>은 출가하지 않는 재가 거사 유마힐(維摩詰)이 등장해서 불교이 가르침을 말하는 경전이다. 이는 재가 중심의 대승불교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경전인데, 중국에서는 <유마경>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승만경(勝?經)>은 출가하지 않은 재가의 여인 승만(勝?) 부인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가르침을 말한 경전이다. 이것도 재가 중심의 대승불교 정신을 잘 보여주는 것이고,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성향이 강한 인도에서 매우 이례적인 경전이라고 할 수 있다.

<열반경(涅槃經)>은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는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는 경전이다. <열반경>은 경전이지만 논서의 치밀함을 보이는 경전이다. <해심밀경(解深密經)>은 인도 대승불교의 유식학파에서 중시하는 경전으로 심층무의식으로서 아뢰야식(阿賴耶識)을 말하고 있다. <능가경(楞伽經)>은 모든 중생이 여래(부처)가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여래장사상과 유식학파의 사상을 결합한 경전이다. 이 <능가경>은 중국에 전해져 초기 선종(禪宗)에서 중요시하는 경전이 되었다.

또한 대승불교에서는 2대 학파가 있다. 그것은 중관학파와 유식학파이다. 중관(中觀)학파에서는 공(空)사상을 강조하고 범부의 집착을 논리적으로 깨뜨리려고 하였다. 그 대표적 저술이 용수의 <중론(中論)>이다. 유식(唯識)학파에서는 범부의 마음에 주목해서 8식설을 주장하였다. 세친의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이 유식학파를 대표하는 저술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승불교가 중국, 한국, 일본, 베트남에 전파되었다.

4. 기원후 7세기와 8세기에 접어들어 힌두교가 인도에서 완전히 주류 문화가 되자 이에 대응하고자 나타난 불교의 흐름이 밀교(密敎)이다. 대승불교도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밀교는 힌두교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은 것이다. 밀교를 대표하는 경전은 <대일경>과 <금강정경>이다. <대일경(大日經)>은 중관사상의 영향을 받은 밀교경전이고, <금강정경(金剛頂經)>은 유식사상의 영향을 받은 밀교경전이다. 그 뒤를 이어서 무상유가(無上瑜伽) 탄트라가 등장했는데, 이는 인도의 탄트라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밀교 계열의 가르침이 티베트에 전래되었다.  161-166


불교와 힌두교의 차이점

불교는 인도의 문화 토양에서 자라났지만, 힌두교(브라만교)와는 4가지 점에서 구분된다. 첫째, 불교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와 남녀차별을 부정하고 모든 인간의 평등을 주장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힌두교는 기본적으로 인도의 문화와 토양에 국한되는 '인도의 종교'로 머물렀지만, 불교는 인도의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는 세계 종교로서 보편성을 나타내고 있으며, 국제적인 포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힌두교에서는 통일된 교리가 없고 믿음의 체계가 여러 가지라고 한다면, 불교는 가르침이 명료하고(철학적 내용은 복잡하지만) 교리체계도 일관성이 있다는 점이다. 넷째, 힌두교는 통일된 조직이 없는 느슨한 종교이지만, 불교는 교단을 구성하고 불교대학을 설립하여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종교활동과 포교활동에 나선다는 점이다.  166


시크교

시크교는 힌두교에 기초를 두고 이슬람교의 사상을 받아들여서 이 두 가지 사상을 결합시킨 개혁종교이다. 이 종교를 처음 일으켜 세운 사람은 나나크(Nanak, 1469~1539)이다. 그는 카비르(Kabir, 1440~1518)의 사상에 강한 영향을 받았고, 이슬람교 신비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나크는 진정한 종교는 내면성에 있고 또한 진정한 종교는 신을 만나기 위한 심성의 준비라고 보았다. 이 때문에 그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형식적인 의례를 부정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하며 고행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나크는 만물은 신의 피조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카스트와 성적 차별도 부정하였다. 그래서 시크교에서는 어떠한 카스트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함께 동일한 음식물을 먹고 음식물에 관한 금지조항을 만들지 않았다.

또한 나나크는 내면적 청정의 중요성, 곧 종교의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였는데, 그래서 술, 마약, 담배를 금지하였고, 보통의 직업에 종사해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것을 권장하였다. 이것이 바로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자기중심성이 강한 사람은 자아에 결사적으로 집착하여 탐욕과 분노와 집착과 자만에 지배당하고 언제나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러한 자기중심성을 극복할때 평호를 얻어 자기 자신의 본래적 원만함에 돌아오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신(神)과 하나가 되는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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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교통질서는 인도 도시들에 비하면 양반 중의 양반임을 확인할 수 있다. 교통질서와 관련해 인도 도시는 카오스 그 자체다.  21


인도인들은 끼어들기의 명수다.

경적도 어디서나 시끄럽게 빵빵 울려댄다. 트럭 등 인도 자동차 뒤에는 '앞지르려면 경적을 울려달라(Please blow horn)'는 문구가 적혀 있다.  22

근본적인 이유는 남보다 빨리 가고자 하는 기본 욕구 때문이다.

한마디로 남보다 앞서가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몸에 배어 있다.

새치기를 하고도 미안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시한다. 새치기를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만, 지적당했다고 해서 줄 뒤로 돌아가지 않는다. "알았다"며 그냥 그대로 서 있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심한 것도 생존본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24

인도인들의 '소탐대실' 상관습도 마찬가지다. 인도인들은 '한 달 뒤의 닭 한 마리보다 당장의 달걀 1개'를 선호하는 편이다. 

인도인들의 말 잘 하고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속성도 생존본능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있다.

인도인들은 말을 잘 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듯 하지만 남의 말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의 잘못을 말로써 지적하고 남 앞에 나서 무수한 다중 가운데 두각을 나타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25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인도인들은 갈등이 있어도 좀처럼 큰소리를 내거나 멱살 잡고 싸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도 운전사들은 서로 먼저 가려고 아무 때나 들이밀고 새치기도 잘 하지만 남이 자기보다 조금이라도 앞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면 상대에게 스스럼없이 양보한다.  27


뭄바이(옛 봄베이)의 다라비(Dharavi) 슬럼가는 아시아 최대로 알려져 있다.  31


인도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 법인장은 필자와의 만남에서 인도 경제의 급등세를 보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인도 국민의 평균 소득도 낮고 대도시 길거리에 사람드르이 행색은 누추해 한심해 보이지요. 그러나 인도는 지금 금융, 산업 등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지요. 이런 추세로 가면 우리가 조만간 인도를 상전으로 모시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87


인도에 가면 출신에 관계없이 서로 잘 어울려 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도시에선 서로 다른 카스트 간 결혼도 점증하는 추세고, 부모들도 이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하위 카스트가 상위 카스트와 식사를 하거나 함께 앉는 것이 철저히 금지됐으나 요즘은 식당에서 밥도 같이 먹고, 버스나 기차도 함께 탄다. 대중 사회가 되다 보니 타인의 카스트를 알 수도 없고, 굳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145


하위 카스트가 상층 카스트가 되려는 노력이 있는가 하면, 최근에는 상층 카스트가 하층 카스트화하려는 움직임도 강하다. 정부가 하층 카스트에 부여하는 혜택 때문이다.

대도시에선 카스트 대신 교육과 실력, 경제적 능력이 가장 중요한 파워로 등장했다. 그래서 요즘 인도 사람들은 "돈이 카스트다", "교육이 카스트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높은 카스트로 태어났다고 해도 교육을 못 받고 돈이 없으면 하위 계층으로 전락한다.  146


브라만 중에 기도를 해주고 일어서는 노인이 있었다. 기도를 바치는데 매우 힘들어했다. 80세는 족히 넘어 보이는 그 노인에게 굳이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대답이 돌아왔다.

"내 나이 올해 81세인데, 늙어서 나도 이 일을 더 이상 안 했으면 하지요. 그런데 아들이 2명이나 있는데도 애들이 나 하나 부양을 못해요. 살아가기 위해선 이 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지요."

다른 힌두교 사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사원의 후문에는 브라만들이 늘어서 사람들에게 잔돈이 있으면 달라고 구걸했다. 어떤 브라만은 일자리를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요리사, 심지어 시체를 화장할 때 쓰는 장작 나르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간청했다. 이런 일은 불가촉천민 등 최하층 카스트가 하는 일인 데도 말이다.  162


인도 시골에서는 여전히 카스트가 힘을 발휘하는 곳이 많다.  165


인도에서 20년 가까이 생활한 프랑스 언론인 프랑수와 고티에(Francois Gautier)는 오늘날 브라만의 추락한 위상을 실감나게 전해준다. 그는 2006년 '브라만은 현대의 달리트인가'란 글에서 "오늘날 브라만들의 지위는 불가촉천민인 달리트 못지않게 추락했다"고 강조했다. 그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통적인 달리트 직업인 화장실 청소부나 인력거꾼 일을 하는 브라만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델리 공중화장실 청소부의 50%가 브라만이고, 델리 파텔 나가르 지역 인력거꾼의 거의 절반이 브라만이었다. 뿐만 아니라 힌두교의 성지로 유명한 바라나시의 인력거 꾼 대부분도 브라만이다.

또 한ㄸ 카슈미르 판디트라고 존경을 받던 카슈미르 꼐곡의 4만여 브라만들은 지금 슬럼가에서 근근이 살고 있고, 인도 남부 안드라 프라데시주 가정 청소부와 식모의 75%가 브라만이다. 상당수의 브라만들이 오늘날 불가촉천민 못지않은 하층 계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브라만의 나라' 인도에서 특권 계급 브라만의 해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167-168


평소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것 같은 인도인들이 어떤 계기가 있으면 폭발해 군중 폭력을 자주 야기한다. 군중의 힘으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내포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를 '정의를 위한 군중폭력(Mob Justice)'이라고 부른다.   185


인도에서 군중 폭력이 만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이 경찰이나 주 정부를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움을 요청해도 경찰 등 당국이 신속히 대응하지 않는 탓이 크다. 그래서 자신의 안전이나 재산은 자신들이 지킨다는 자위 의식이 지나치게 강화됐다. 인도인들이 군중 폭력에 휩쓸리는 또 다른 주요 이유는 그들의 욕구가 평소 크게 억눌려 있기 때문이다. 

한 유명한 심리학자는 이렇게 분석했다. "인도의 많은 대중들은 신분이나 재력, 권력 등 여러 요인에 의해 억눌려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계기에 의해 불만을 표출할 기회가 생기면 순간적으로 군중심리에 의해 폭력에 쉽게 가담합니다. 이 때 군중들은 사건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게 누구든 평소 억눌린 자신들의 욕구를 분출시킬 대상이 필요한 것이죠."

셋째, 군중 폭력에 가담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점도 군중 폭력을 조장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군중들이 폭력을 행사해도 경찰이나 정부는 이들 군중을 엄벌하지 않았다. 그저 '사소한' 경범죄로 처리한다. 기소해도 하지 않고 관용을 베푸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니 폭력에 가담한 군중들은 죄의식 없이 다시금 폭력에 휩싸인다.  186-187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티야 센(Amartya Sen) 하버드대 교수는 해결책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현재의 인도 법률체계와 경찰 조직은 일반 국민들에게 많은 좌절감을 줍니다. 이런 좌절감을 줄이기 위해선 공정성과 정의에 바탕을 둔 법률적, 사회적 개혁을 실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도 국민들의 특징이었던 비폭력과 온건함을 회복시킬 수 있는지 여부는 인도 정부의 개혁 의지와 실천에 달려있다고 할 것입니다."  191


술 마시는 인도인들이 실제로 그렇게 많을까 하고 의문을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정말 많은 인도인들이 음주를 즐긴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주기적으로 술을 마시는 인도인 수는 2억 명이 넘는다. 이 숫자는 해마다 약 20%씩 늘고 있다. 음주를 즐기는 2억명 가운데 여성은 20% 정도인 4,000만 명에 이른다. 

마시는 술 종류는 주로 맥주나 위스키, 럼주 등이다. 2008년 인도에서 판매된 맥주는 자그마치 3억 박스가 넘는다. 위스키는 9,000만 박스가 팔렸다. 한 박스당 12병이 들었으니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다.  194-195


인도는 세계에서 선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가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지만, 매춘 시설이나 매춘 인력은 거의 전무한 편이다. 아주 없지는 않지만, 우리 나라나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 비하면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213


카마수트라는 4세기경에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성애(性愛)에 대한 경전이자 교과서다. 성애의 기교, 소녀와의 교접(交接), 나애의 의무, 남의 아내와의 통정(通精), 유녀(遊女), 미약(媚藥)등에 관해 자세히 설명해 일반시민을 성지식(性知識)의 경여에서 오는 위험으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책이다. 카마수트라는 섹스가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강력한 욕망으로 이를 통해 깨달음에 도달 할 수 있다고까지 설파했다. 카마수트라는 불교문화와 함께 중국에 전해졌고, 이는 유명한 소녀경(素女經)의 원조가 되었다. 또 카마수트라는 유럽에도 흘러 들어가 서구 사회에 성의 혁명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다. 인류의 성 지식을 고양시킨 성에 대한 바이블이라 불릴 만하다.  217


과거 힌두교에선 섹스의 자유분방함을 강조했다.  219


인도에서 언제부터 섹스에 대한 이런 자유스런 분위기가 바뀌었을까. 그것은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부터다. 영국이 인도를 통치하게 되는 17세기 영국의 통치 왕조는 빅토리아 왕이었다. 이때 유럽은 프로테스탄트가 기세를 떨칠때였다. 

성을 자유분방한 것으로 여기는 힌두교는 사회 도덕을 훼손하는 하위 종교라고 비난 받았다. 

영국의 끊임없는 힌두교 비난에 힌두교 지도자들의 성에 대한 생각도 빠르게 보수화됐다.  220


인도인 개인들의 섹스 생활은 어떨까? 

개인들의 성생활은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세계 최대 콘좀회사인 듀렉스(Durex)가 전 세계 26개국 2만 6,000명을 대상으로 한 '섹스생활 만족도에 대한 글로벌 서베이' 결과다. 이에 따르면 인도 도시인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인 섹스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인들은 파트너와의 섹스 대화도 세계에서 가장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한다고 조사됐다. 

예를 들어 인도 도시인들의 4명 중 3명(74%)은 침실에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섹스 방법 등에 대해 매우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눈다. 이에 비해 세계 평군은 58%, 영국은 49%에 그쳤다. 특히 인도인들의 3분의 2(68%)는 자신들의 섹스 생활이 만족스럽다고 답변했다. 반면 영국인이나 프랑스인들의 섹스 만족도는 각각 38%, 36%에 불과했다.

주목되는 사실은 인도인들이 다양한 기교와 형태의 섹스를 즐긴다는 점이다. 인도인드르이 63%는 체위나 성생활 만족을 위해 섹스 기구나 섹스 인형 등 다양한 형태의 섹스를 즐긴다고 답변했다. 인도인처럼 다양한 섹스를 즐긴다고 답변한 영국인은 47%, 일본인들은 단지 9%에 그쳤다. 게다가 인도인들은 앞으로 만족한 성생활을 위해 인터넷 정보를 활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또한 인도인들의 부부 간 정절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높았다. 인도인드르이 평생 섹스 파트너 수는 3명에 그친데 반해 영국인들은 16명이었고, 전 세계 평균은 13명이었다. 부부간 섹스 횟수도 세계적이었다. 하루에 1회 이상 성관계를 갖는 '변강쇠&옹녀'족들이 10%나 됐고, 80%가 1주일에 2~3회 이상 섹스를 갖는다고 답변했다. 이 통계만보면 인도는 부부 섹스의 세계챔피언 감이라 할만하다.

부부 정절도와 관련해 인도 중산층은 매우 높지만 상류층은 그렇지 않다는 소문도 많다. 필자가 만난 많은 인도인들이 이를 지적했다. 예를 들어 상류층들이 주로 드나드는 고급호텔 등에서 상류층 간의 혼회 정사가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정확한 실태는 잘 모르겠으나, 실제로 인도 언론에서도 상류층 간의 불륜 사례가 종종 보도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인도인들은 비록 혼회정사나 매춘 등에선 매우 보수적이지만, 자신의 침실에서만큼은 세계 최첨단이다. 부부간 섹스에서 카마수트라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221-223


인도의 교육 특징은 소수만을 선택해 키우는 엘리트 교육 방식이다.  226


인도 엘리트 교육은 교육시설에 대한 대규모 투자보다 두뇌에 혜택을 주는 정책이었다. 고등교육의 기회는 경쟁을 뚫고 살아남은 소수 학생들에게만 주어졌다. 선택 받은 이들 소수에게는 거의 무료로 교육했다. 장학금을 주어 돈 걱정 없이 공부에만 열중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런 정책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인도 엘리트 교육은 어릴 적부터 이루어진다. 인도 학교는 공립학교(Goverment or State Schools), 사립학교(Private Schools), 준(準) 사립학교(Deemed Private Schools) 등 3개로 나뉜다. 공립학교는 약 70% 정도로 다수를 차지하나 교육의 질은 상당히 낮다. 교사 숫자가 많이 부족하고, 설사 교사가 있더라도 수업을 빼먹은 교사가 많다고 한다. 시설도 열악하지 짝이 없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교육 서비스 질이 형편없어 경제적 능력이 있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낸다. 

인도 엘리트들의 산실인 사립학교는 등록금이 공립학교에 비해 매우 비싸다. 우리 돈으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 만 원에 이르는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입학 경쟁률도 아주 치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기 위해 안달한다. 사립학교에 다녀야 부모 위신도 서고, 자녀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인도 사립학교는 초등학교가 따로 있는게 아니라 보통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함께 붙어 있다. 단지 몇 학년인가로 초등학생인지 중학생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준 사립학교는 민간에서 설립했으나 재정이 어려워 연방정부 혹은 주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학교를 말한다. 준 사립학교는 정부의 지원과 그에 따른 간섭을 받긴 하지만 정부 간섭은 많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사립학교와 준 사립학교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30% 정도다.  228-230


인도 사립학교는 수업을 대개 영어로 한다. 영어는 인도에서 성공을 위한 필수 언어처럼 여겨진다. 영어를 확실히 배울 수 있고, 교육의 질도 뛰어나 인도 사립학교 졸업자들은 인도 국내 유명대학은 물론 미국 유럽 등 구미 저명대학에도 많이 입학한다. 

인도 경제가 발전하고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사립학교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고 있다. 경제적으로 하류 계층에서 신흥 중산층으로 편입된 부모들도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기존 사립학교보다 학비가 저렴한 신흥 사립학교도 급증하는 추세다. 신흥 사립학교 중에는 시설이 공립학교보다도 못한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비록 시설은 떨어진다고 해도 교사의 숫자가 많고 교사들의 열의가 강해 교육의 품질은 공립학교보다 우수하다.  

사립학교를 졸업한 엘리트들은 국내 혹은 해외 명문대학에 진학한다. 인도 내에 대학은 2007년 현재 371개가 있다. 

인도 명문대학은 대개 국립이다. 인도공과대학교(IIT), 인도경영대학원(IIM), 인도의과대학교(AIMS), 국립면역학대학교(NII) 등 인도 정부가 최고 전문 인력을 키우기 위해 설립한 대학은 물론 델리대학교와 뭄바이대학교,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콜카타대학교, 푸네대학교 등 많은 대학이 국립니다.  230-231


열악한 시설에도 불구하고 인도 대학이 명성을 가진 이유는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 덕분이다.  233


인도 엘리트 교육의 어두운 이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 엘리트 교육에만 치중한 결과 국민 전반의 교육에는 소홀했기 때문이다.

인도느 대학입학 비율이 10%에 불과하고, 문맹률도 30%선으로 여전히 매우 높다.

요즘도 인도에는 초등학교조차 마치지 못하는 어린이가 많다. 의무교육임에도 불구하고 6~14세 어린이의 70% 만이 학교에 다니는 걸로 추산된다.  234 


인도인들은 어떻게 해서 영어를 잘하게 됐을까?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충분한 대답은 아니다. 

2000년 초반만 하더라도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비율은 5%가 채 안 됐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영어 인구가 10%(약 1억 2,000만명)가까이 급증했다고 할다.  238

인도의 주요 영어교육 기관은 외국인 학교(설립자가 외국인인 학교)와 사립학교다. 이들 학교는 대부분 유치원 때부터 모든 과목을 영어로만 가르친다.  239


인도 지식인 사회에서 혹시라도 영어를 못하면 왕따를 당한다.  241


간디는 독립운동 기간 동안 산업화를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반대했다. 산업화를 반대했다니, 믿기 어렵지만 사실이다. 

"산업화는 인간에게 저주가 될 것이다."(<젊은 인도> 1931년)

"산업화는 농촌 사회에 치열한 경쟁을 초래하기 때문에 반드시 농촌 사람들에 대한 착취로 귀결될 것이다.")<하리잔> 1936년)

간디가 산업화에 반대한 이유는 인간의 이상적 삶의 형태가 목가적 시골생활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영구구 식민 정부는 인도를 산업화시키겠다고 선전했지만, 산업화의 이익은 대부분 영국 자본가들에게 돌아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를 직접 목격한 간디로선 산업화를 저지하고 반대하는 것이 당연했다.  245-246


간디의 산업화, 도시화, 서구문물에 대한 반대가 종합적으로 나타난 산물이 유명한 스와데시(Swadeshi)운동이다.

영국 상품을 배척하는 국산품 애용운동.

영국에서 기계로 만들어진 값싸고 대량생산된 직물들이 인도에 홍수처럼 들이닥치자 농촌 지역 직물장인들은 일자리를 잃고, 마을경제는 수렁에 빠졌다. 간디는 농촌의 가내 직물업이 다시 소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간디의 반(反) 산업화, 반 테크놀로지, 반 도시화, 반 외국상품 운동은 인도인들을 자각시키고, 독립을 달성하는 큰 힘이 되었다.  247


네루 총리는 경제 발전 측면에서 인도 사회에 간디보다 더한 부정적 유산을 남겼다.  248

임기 4년인 총리직을 그는 장장 17년간이나 수행했다. 물론 국민의 신임을 바탕으로 한 합법적인 재직이었다.

네루는 인도를 종교적으로 세속주의(世俗主義),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로 이끌었다. 세속주의란 기구나 관습들이 종교나 종교적 믿음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인간 활동이나 정치적인 의사결정이 종교에 의해 간섭 받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와 사실에 기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택한 것은 그가 어릴 적부터 영국에 유학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당연하게 생각된다. 영국에서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를 충분히 맛보았기 때문이다.

네루는 인도의 전통적 자영업자와 고리대금업자인 바니아들의 탐욕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사회주의가 이들의 탐욕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인도에서 돈과 돈 버는 것에 대해 경시하는 풍조가 존재하는 현상은 상당 부분 네루 책임이다.

네루의 이상적 국가 경제상(像)은 자립경제였다. 그는 인도가 충분히 자립경제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간디가 매달렸던 자립경제, 즉 스와데시를 네루는 국가 정책으로 추진한다.

자립경제를 이루기 위해 네루 정부는 또 국영 제철소와 알루미늄 제련소, 대형 수력발전 댐 건설 등 중공업 육성에 몰두했다. 그는 심지어 핵무기 개발에도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이 같은 중공업 육성이 인도의 국력과 산업 발전상을 과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사업은 대부분 큰 적자를 내고 소중한 국가 재정을 축냈다. 당시 인도는 극심한 빈곤, 높은 문맹률, 만연한 질병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네루 정부는 이들 시급한 문제는 제쳐둔 채 너무 큰 사업에만 매달렸다.

사회주의 경제를 신봉한 네루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기업과 산업에 대한 정부 통제란 형태로 나타났다.

간디의 후계자였던 네루의 인도 농촌에 대한 해법은 간디와 비슷했다. 네루는 간디의 "농촌이 인도 사회의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정책을 통해 충실히 수행했다.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 간디와 네루의 긍정적 업적은 지대하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했듯이 이들이 남긴 부정적 유산 역시 적지 않다.  249-253


1966년 인도는 제1차 외환위기를 겪는다.  254

1991년 제2차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

자립경제란 자존심은 만신창이가 됐다. 제2차 외환위기를 계기로 인도는 자립경제정책을 벗어 던지고 개방적 시장경제로 대전환을 시도한다. 네루 이후 40년간 이어져온 스와데시와의 결별이었다.

아직도 인도 엘리트 사이에선 간디와 네루의 유산이 깊게 남아 있다. 이들은 시장경제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 뛰어나와 간디-네루 철학의 부활을 시도할 세력들이다.  255


한국인들의 인도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접촉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층민이기 때문인 이유도 크다.  285


인도인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인도에 산 기간이 짧은 사람일수록 더 강하다. 이헌 부정적 관념은 한국에서부터 싹 텄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도에 가기 전 읽은 인도인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쓰인 책이나 얘기를 듣고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그후 인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그렇군. 인도인들은 소문대로 역시 문제군'이라고 단정하고 자신의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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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일컬어 흔히 '천의 얼굴'이라고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인도는 그토록 두텁고, 그토록 복잡한 인도의 한 조각일 뿐이다. 

인도의 특성, 다원성이 적용 되지 않는 단 하나의 영역이 있으니 바로 '느림'이다.  10


'느리다', '빠르다'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인도인에 대한 '느림'과 '게으름'은 누구의 기준인가?  11


자기의 안경으로만 인도를 본 영국은 인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12


인도인에게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과거에 일어난 일은 반복되고 다시 돌아오며,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는 순환고리이다.  13


어쩌면 시간은 직선으로 날아가는 화살이 아니라 나를 떠났다가 다시 내게로 날아오는 부메랑인지도 모른다. 

20세기 최대의 이데올로기인 발전은 환경 파괴라는 부메랑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14


알고 보면 위생이니 뭐니 하는것도 목적은 향상시키지 않고 수단만을 강조하는 서양의 산물이 아닌가?  15


볼일이 끝나고 나서는 가까운 강이나 개울로 간다. 진흙으로 몸의 더러워진 부분을 문질러 닦고 물로 헹군다. 두세 차례 반복. 그런 다음 왼손부터 시작하여 손과 발을 진흙으로 여러번 씻는다 다시 다른 흙으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도시에서는 진흙이 아닌 비누를 쓴다. 자, 이래도 비위생적인가?  19


인도인은 '음식은 먼저 눈으로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 다음에 입과 혀로 맛을 느낀다.'  20


인도인은 발을 천시한다. 가장 천한 발을 다른 사람의 머리에 대거나 신발로 머리를 때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최대의 모욕이다.  23


발에는 절대 금 장신구를 하지 않는다. 허리 아래에는 은으로 된 장신구만 착용한다.  24


반대로 머리는 신체 중에서 가장 신성한 곳이다. 남자들은 쇠똥이나 재, 또는 빨간 가루를 이마에 찍어 카스트를 표시하기도 하고, 시바 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수평선을, 비슈누 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수직선을 그어 소속된 종파를 광고한다.  24


머리와 발의 차이가 하늘과 땅인 만큼 브라만과 수드라의 차이도 엄청난 것이다.  25


강가의 상류 하리드와르와 리시케시, 중류인 바라나시, 그 끝인 벵골만까지 나는 강가를 열번도 더 보았다. 

강가는 눈 덮인 히말라야를 출발하여 하리드와르와 칸푸르를 지나 알라하바드로 흘러든다. 그곳에서 진흙탕물인 강가는 델리와 아그라를 지나온 그보다 맑은 야무나 강과 합류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이미 사라진 사라스와티 강과도 손을 잡는다. 세 강이 만나는 알라하바드는 힌두들의 순례지이다.  39-40


시바 신은 무려 8천 4백만 가지의 다양한 체위를 고안했는데, 숭배자들에게 알려진 건 겨우 8만 4천 가지! 이러니 시바는 다산의 신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56


'카주라호'와 '시바 링감' 그리고 '카마수트라'의 인도. 위성방송이 안방에다 공개적으로 섹스를 팔고, 콘돔이(가장 유명한 콘돔 제품은 당연하게도 '카마수트라'라는 상표를 달고 있다) 무차별 광고를 해대는 곳. 매춘부가 수백만 명이고 에이즈 환자가 3,000,000명이 넘는 나라. 이렇듯 성이 넘치는 에로스의 천국으로 보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명상과 금욕이라는 또 다른 얼굴을 갖고 있다.  58


브라만 성자와 요가수행자의 공동 목표는 자웅동체이다.  59


옛날 인도에 비폭력을 뿌리내리게 한 인물이 바로 유명한 정복자 아쇼카 황제.  63

'보이지 않는 사랑'은 아름답지만 '보이지 않는 폭력'은 끔찍하다.  66


인도인의 계산을 보자. 먹은 음식은 피가 되고 살이 되고 뼈와 골수가 되었다가 30일이 지나면 정액으로 바뀐다. 40방울의 피가 한 방울의 정액이 되는데, 한 번의 사정으로 14그램 정도의 정액이 소요된다. 이는 27킬로그램의 음식이 만든 에너지와 같다. 한 번의 성관계는 24시간의 정신노동이나 72시간의 육체노동과 동일하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69


해방 후, 인도에서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지방은 벵골, 케랄라. 트리푸라 3개 주이다.

테레사 수녀가 '수고하고 짐진 자'를 보살피는 곳이 바로 벵골 지방이다.  79


영국의 통치가 온건하지도 않고 결코 '은혜'와 '축복'이 아니었다는 점은 얼마든지 예증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기근이다. 영국이 인도에 오기 전에는 대기근에 관한 기록이 한번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이 발을 디딘 이후 기근은 종종 찾아왔고, 1943년 벵골 지방에서는 2백만 명이 굶어 죽었다. 인도의 부가 해외로 유출된 게 주요 원인이었다. 1930년에 영국이 해외에 투자한 자본의 4분의 1은 인도에 투입되었다. 물론 인도에서 근무한 영국 관리들의 봉급과 연금 지급은 처움부터 식민지 인도의 몫이었다. 영국은 참깨를 쥐어짜듯 인도를 쥐어짜 이득을 챙겼던 것이다.

영국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이해 세운 계획도시 뉴델리에 있는 '인도의 문'에는 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위해 싸우다 숨진 8만여 명 인도 청년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그뿐인가. 2차 세계대전 기간에도 인도군은 지배국 영국을 돕기 위해 '치와 땀'을 흘렸다. 인도군은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20여만 명이었으나 전쟁이 끝난 1945년에는 그 열 배인 22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전쟁기간 동안 소요된 영국의 국방비 역시 절반은 인도가 떠맡았다.

이 열불나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인도가 영국을 '미워 미워 미워'하지 않는 이유는 영국 통치의 긍정적인 영향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인구를 익르고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인도는 영국에 모종의 빚을 졌다고 간주하고 있다. 영국이 도입시킨 의회제도, 철도제도, 교육제도를 인도는 고맙게 생각하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산업발전의 기반을 다진 것에도 좋은 점수를 준다. 각종 제도와 정책을 도입한 식민 정부의 목적이 순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결과적으로 인도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영어와 반영운동이 인도를 통합시켰다는 점도 빠뜨리지 않는다.  83-84


인도인은 대개가 종교에 깊이 중독된 중증 환자들이지만, 그 대다수는 브라만의 베다나 우파니샤드를 모르거니와 고상한 힌두 철학에도 깜깜이다.

대신 인도 사람들은 자기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대상을 경애하고 숭배한다.  103


구루 나낙(1469~1539)이 세운 시크교는 힌두교와 이슬람의 장점을 따서 만든 종교로서 유일신을 믿고 우상 숭배를 하지 않는다. 힌두처럼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지만 카스트를 거부하고 갠지스를 순례하지도 않는다. 모두 같은 성을 갖는 것도 카스트의 구분이 없다는 뜻이다.(1500만명이 넘는 그들의 성씨는 모두 '싱', 결혼한 여자는 미세스 싱이 아니라 모두 '카우르'가 된다) 시크는 근면하기 때문에 거지가 없다.

펀자브 지방은 시크의 분리주의 운동이 있었다. 

인도에 갔다가 마약에 돈 떨어지고 담배꽁초까지 떨어지면 시크사원(구루드하라)을 찾아가라. 관용과 사랑을 실천하는 시크 사원에서는 거저 먹여주고 재워주니.  113


시크 못지 않게 돈 버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있다. 배화교도(조로아스터교도)의 후예들이다.  114


고아지방은 포루투갈인과 인도 여인 사이에서 난 혼혈이 많아 이국적이다. 이곳 여인들은 사리보다 스커트를 많이 입고 생활 방식도 다른 지방과 달리 자유롭다.  115


힌두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사람은 무슬림이엇다. 인도를 통치한 무슬림 지배자들은 자기드로가 구분하여 인도(옛 이름은 힌드)에 사는,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을 몽땅 힌두라고 불렀다. 전체 인구 - 무슬림 = 힌두였다. 그 뒤를 이어 인도를 지배한 영국도 무슬림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그들 이외의 인구를 힌두로 뭉뚱그렸다. 

힌두교는 종교의 창시자나 예언자가 없음은 물론 자신을 힌두라고 생각하는 살마에게 '하라. 하지 말라'는 정확한 가이드라인을 주지도 않는다. 힌두교에서 성서로 여기는 베다나 푸라나를 읽는 힌두는, 아니 그 이름이라도 아는 사람은 5%밖에 안된다. 일정한 예배의 형식도 없는 자유 그 자체이다.  120


이질적이고 잡다한 생활방식을 모두 인정하는 힌두교는 기원전 1500~500년경에 성ㄹ힙되었다. 중심 사상은 베다의 전통을 따르는 브라만 중심의 브라만교이지만, 여기에 북부 인도에 존재하던 다양한 민간신앙이 결합되어 대중을 이끄는 독자적인 종교 이념으로 발전했고, 세월이 가면서 전 인도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즉 힌두교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브라만교의 독선에 반기를 든 인도의 프로테스탄트, 불교와 자이나교를 수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한 지방에서 동거를 해온 이방의 종교인 이슬람교까지도 포용한다. 

수천 년 동안 무엇이든 받아들여온 힌두교에는 헤브라이즘에서 볼 수 있는 '정통'이나 '이단'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존재하는 살마의 수만큼 신이 존재하고 그 수만큼 다양한 믿음을 인정하는 융통성이 바로 힌두교의 생명이요 진리이다.  121


다른 사람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와 달리 힌두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강조한다.

힌두는 구원이나 해탈도 나 스스로 이룬다고 생각한다.  122


카르마(業) - 카르마는 힌두 사회의 수많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개념이다.  125


윤회사상은 이 세상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의무(다르마)를 다하면 카르마가 좋아진다고 유혹한다. 의무를 다하는 불가촉민은 브라만은 될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나은 불가촉민으로 환생할 수 있다는 논리다.  126


알 수 없음과 두려움이 사람들에게 최선을 부추긴다. 더 열심히 살아서 아예 이 아리송한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해탈이며 구원이다. 그리하여 힌두에게 해탈은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영원히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다.  127


예전보다도 많이 약화되었지만 카스트는 아직 살아 있다. 집에서, 거리에서, 사무실에서, 힌두 사원에서 여전히 그 힘을 행사한다. 카스트는 포루투갈어로 혈통을 의미하지만 인도인들은 색깔이라는 뜻의 '바르나'라고 부른다. 이 제도는 모든 인간이 불평등하다는 데서 출발한다.  132


'자티'는 오랜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카스트가 서로 갈리고 나뉘어 3~5천 개의 작은 집단으로 분류된 것으로 한층 세분화된 개념이다. 같은 카스트 안에서도 자티에 따라 다른 위상을 갖고 다른 규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결혼을 하고 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는것은 동일한 자티 안에서 이루어진다.

쉽게 설명하면, 북부지방의 브라만과 남부의 브라만은 동일한 계급이 아니다. 두 브라만 가의 갑순이와 갑돌이는 결혼을 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지역의 수드라 사이에는 같은 계층이라도 연대의식이 없다. 그뿐이 아니다. 한 마을에 사는 수드라 내부에도 상하 귀천의 구별이 있다. 대장장이, 옹기장아, 세탁부, 이발사는 자신과 브라만이 다르듯이 서로가 서로를 다르다고 여긴다. 심지어는 같은 청소부라도 거리를 청소하 자티와 '변소 쳐!'를 외치는 자티는 다르다.  133~134

소를 먹이는 집안의 경우는 소 먹이는 자티가 규정한 세밀한 규칙의 속박을 받고, 또 옷감을 짜는 집안의 직녀는 그 자티의 규정을 따르면서 신분에 맞는 제약과 대접을 받는다. 

계층이 낮을수록 부정하게 여겨지며, 금기사항도 적다. 똑같은 수드라 내부에서도 더러운 일에 종사하는 계층이 그렇지 않은 계층보다 위상이 낮다.  134


'언터처블(Untouchable)' 불가촉민(不可觸民), 접촉을 하면 부정을 타므로 접촉해서는 안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남부지방의 남부드리 브라만은 천민을 보기만 해도 부정 탄다고 생각한다.  137

따라서 그들은 몸에 방울을 달아 순수 브라만이 그 소리를 듣고 사전에 피하거나 눈을 감을 수 있게 한다.

우파니샤드를 보면 개나 돼지처럼 취급되는 '찬달라'라는 천민이 있다. 

2세기 불교도 자나카도 마을 밖에 격리되어 사는 천민집단을 언급했다.

마누 법전에도 동구 밖에서 따로 거주하며 햇빛이 있는 낮에는 마을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11세기의 알비루니도 마을밖에 살며 더루운 일에 종사하는 집단을 기록했다.

1990년대로 와도 인도의 불가촉민의 삶은 별 차이가 없다.  138

불가촉민은 마을 사람들과 우물이나 강물을 함께 쓰지 못한다. 가까운 마을의 우물을 두고 몇십 리씩 물을 길러 나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39

1991년의 인구 센서스를 보면 불가촉민은 1억 5천만 명으로 인도 총 인구의 약 17%이다.  141


마하트마 간디는 신에게서 버림받은 이들에게 '하리잔(신의 자식)'이라는 역설적인 이름을 지어주고 독립 세력을 이루고 떠나가는 이들을 힌두 세계로 끌어들였다.

여전히 건재하는 높디높은 벽 앞에서 일부 불가촉민은 간디가 지어준 '하리잔'이라는 이름대신 자신을 '달리트(학대받는 자들)'라고 부른다.  142



마누 법전에는 이상적인 남편과 아내의 연령 차이가 16~18세라는 기록이 보인다.  169


힌두의 악습으로 오랫동안 지탄을 받아온 사티 제도, 즉 죽은 남편과 함께 살아 있는 아내를 불에 태우는 것도 실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두려움에서 나왔다고 한다.  170


사티는 본래 수많은 아내를 가진 시바 신의 '퍼스트 레이디'였다. 사티는 아버지가 남편에게 퉁명스럽게 대한 데 대한 항의의 표시로 분신자살을 기도했다.  173



1993년에 마무리된, 장장 8년에 걸친 인도 사회 조사에 따르면 인도 전역에 흩어져 있는 각 집단의 88%가 육식을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9


인도인들은 대개 모든 것을 인정하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음식에 관한 한 타협이 없다. 그중 채식을 고집하는 힌두와 쇠고기를 먹는 무슬림의 심한 갈등이 단적인 예이다. 

힌두는 음식을 감염체로 간주한다.  211


인도에는 2천 개의 기차역이 전국에 흩어져 있다.222


영화를 보러 가면 인도가 보인다. 영화에 나오는 장면의 반대가 바로 인도의 현실이다.  235

인도의 영화는 사회적 가치를 주입하는 역할을 한다. 권선징악의 도덕이 그렇고 전통적인 여성상이 그렇다.  236


자와하르랄 네루

공화국과 세습제는 정치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두 얼굴의 공존이 가능했다. 1947년의 독립 후 50년 도안 네루 집안이 인도를 통치한 기간은 38년. 자와하르랄 네루는 1964년까지 무려 16년 9개월이나 장기집권했다. 

그의 딸 인디라 간디는 1966~77년과 1980~84년 두 차례 정권을 잡았고 인디라의 아들 라지브 간디는 어머니가 암살된 1884년에 사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혜성처럼 등장. 5년간 총리를 지냈다.  241


비하르와 우타르 프라데시 같은 지방은 인구의 반이 빈공층이며 천만 뭄바이 시민의 절반이 슬럼에서 산다.  259

인도의 도시화는 아직 낮아서 인구의 25%가 인구 5천 명 이사으이 도시에 살고 있는 정도다. 그러나 그 도시 인구의 4분의 1이 슬럼에 거주하고 대도시는 그 비율이 훨씬 높다. 수도 델리의 인구 중 3분의 1은 오늘도 슬럼가에서 하루를 쓸어담는다.  269


인도인은 흰색을 선호한다.  262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검은 까마귀보다 백로를 아꼈던 우리처럼 사람은 보편적으로 검은색보다 흰색을 선호한다. 유럽에서도 흰색은 즐겁고 매력적인 성질을 상징하고 검은색은 그 반대로 대개 불길함과 죽음을 상징한다. 인도 신화에는 시바 신이 아내 파르바티의 검은 피부를 놀리자 그녀가 황금색 피부를 얻기 위해 금욕적인 수행을 하는 장면이 보인다. 여성의 흰 피부에 대한 동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동소이한 모양이다. 인도에서도 흰색은 순수와 정결을 뜻한다. 사라스와티 여신은 늘 흰 옷을 입고 흰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단정한 모습이다.  264


이기의 삶에서 이타의 삶으로....  296

인도를 구경하는 것은 동시에 여러 시대와 여러 문화를 경험하는 것이다.  312



후기 

'인도를 일주일 여행한 사람은 책을 한 권 쓰고 일곱 달을 머문 사람은 글을 한 편 쓰지만 인도에 7년 동안 거주한 사람은 아무것도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알수록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다원적인 인도의 특성 때문이다.  314-315


천의 얼굴 인도는 '이것이다. 저것이다'라고 분명하게 결론을 내리려 드는 20세기의 합리주의를 향해서 비웃음을 던진다. 사실 이 세상에 분명한 것이 어디 있는가? 한낱 내 기분도 아침과 저녁에 다르거늘.

한 길 사람 속도 알기 어려운데 수천 년의 역사와 10억의 인구가 빚어내는 다양한 사회의 집합체인 인도를 한마디로 정의하는 건 만용을 넘어 무모함에 가깝다.  315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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