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녀 입장에서 제일 못마땅한 건 사내라면 누구나 꼬시려고 든다는 그런 게 아냐." 훌리아가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보다는, 이혼녀니까 로맨틱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사내들은 이혼녀하고는 시시덕거리지도 않고 달콤한 헛소리를 속삭이지도 않아. 그저 아주 저질스럽게 자기네 욕구가 뭔지를 대놓고 까발린다니까. 정말 넌더리가 나. 그게 바로 내가 나이든 놈팽이하고 춤추러 가기보다는 너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이유야."  29


예술가에게는 온 세상이 다 고향.  86


보르헤스의 작품처럼 엄정히 객관적이고 지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쓰고 싶었다.  90


서머싯 몸의 작품처럼 가볍고 재미있는 것이나 아니면 모파상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비꼬인 사랑 얘기 같은 것으로.  96


연인과 애인이라는 정반대의 두 범주 중간쯤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애인들의 고전적인 특성-내밀함, 남의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우리가 대단한 모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공유했지만, 그러면서도 성관계는 가진 적이 없었으므로(그런데 하비에르는 나중에 우리가 서로를 '애무한'적도 없다는 걸 알고 몹시 놀랐다) 정신적인 애인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그 당시 미라플로레스의 청춘남녀들이 지키고 있던 고전적인 연인들의 의례들(영화 보러 가기, 영화 보는 중에 키스하기, 손잡고 길거리 쏘다니기)을 존중했으며 우리의 행동 또한 순결하고 정숙했다. (그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미라플로레스의 처녀들 대부분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까지 숫처녀였고, 연인에게 가슴이나 사타구니를 만지도록 허용하는 것도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어 연인이 약혼자로 격상된 다음이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상당한 나이 차와 서로 인척 간이라는 엄연한 사실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겠는가?) 우리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엉뚱하고 애매한지를 알게 되자 우리는 장난 삼아 그런 관계를 빗대기에 적당한 재미있는 이름들을 생각해냈고, 우리의 관계를 영국식 약혼이니 스웨덴식 로맨스니 터키식 드라마니 하고 불렀다.  178-179


마크 트웨인부터 버나드 쇼, 하르디엘 폰셀라, 그리고 페르난데스 플로레스에 이르기까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유머러스한 작품들은 닥치는 대로 다 읽었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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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저자
헤르만 헤세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09-01-2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저자의 자전소설. 슈바츠발트라는 작은 마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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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기벤라트라는 우리의 아버지를 보았고, 기벤라트라는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버지 기벤라트는 지극히 평범한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상이다. 

아들 기벤라트는 우리의 어린 시절을 꽤나 닮아있는 모습이다.


분위기는 내내 고독하다.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의 내면의 변화에 대해 따라가며 뭔가 주눅들어 있는듯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로 주위의 기대에 발맞추어가는 모습. 

친구에 영향을 받는 모습. 그러면서 거기에서 위안을 얻어가는 모습. 

여인을 알아가면서 그의 심적인 두근거림, 기분좋은 불안과 즐거움과 가슴뒤며 기다려기는 그 감정에 같이 따라가다가 ..

순간 사라지는 여인을 통해 더 큰 공허함을 느끼게 되는 모습.


자신도 모른채 무의식에서는 고민을 하며 그것이 몸을 야위게 만들어 가고, 그것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는 주위의 모습에 맞추어 가는 모습.

그곳에서도 만족되지 않아 술을 마시고 길가에 누워 자신의 무기력감에 노래를 중얼거리며 흐느끼는 모습..


무언가 오늘날의 젊은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수레바퀴를 끌고 가는 우리가 아닌 신자유주의적 세계속에서 무한경쟁만이 살아남는다고 세뇌받으며 무엇인가 하지 못하면 죽는줄 아는 수레바퀴 아래에서 고통만 받아가야 하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란 유행어처럼 1등이 아니면 안되는 듯한 승자독식 사회에서 살아남아야만 한다는 쫓김..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차 생각하지 못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허무하지만 슬픔을 간진한 책이다.


옮긴이는 '왜 한스는 스스로 죽음을 택해야만 했는가! 어째서 그는 힘겨운 파멸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는가! 무엇 때문에 그는 <수레바퀴 아래서> 신음해야만 했는가! 과연 한스가 짊어졌던 수레바퀴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쩌면 우리는 수레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운명을 짊어진 수레바퀴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생각을 해볼것을 권한다.


지금 우리 자신의 수레바퀴는 무엇일까... 

읽을 때 보다 읽고나서, 읽고 나서 보다 시간이 더 흐른뒤에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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