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일의 의미, 삶의 의미를 찾아서

 

우리가 가진 모든 연장들이 우리의 명령에 의해서든, 스스로 필요성을 인식해서든, 알아서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보라... 베틀의 북이 혼자서 앞뒤로 움직이고, 연주자가 저절로 움직이는 리라를 연주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러면 공장주들은 더 이상 노동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며, 노예의 주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쉬지 않고 일하는 로봇들에 의해 자동화된 공장을 보며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대다수는 그렇지 않다. 이 시대를 기쁨으로 맞이하는 대신, 우리는 전보다 더 필사적으로 일(work)에 매달린다. 우리 사회는 일을 지향하는 사회이다. .. 우리는 일을 축복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일을 없애려고 하는 모순적인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8

 

이 책은 우리 삶에서 일과 직장이 갖는 의미에 관한 책이다. 8

 

일은 우리의 지위뿐 아니라 사회적 상호작용까지도 결정한다.

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시장이나 고용주의 손에 맡겨두는 결과를 가져온다. 괜찮은 삶을 사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는 그 이상의 것(something more)’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주들은 자기개발이나 자아실현 같은 다양하고도 추상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방법을 찾는다. 9-10

 

오늘날의 일은 대부분 우리 사생활의 일부를 포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과거의 노동자들이 단지 과로했을 뿐이라면, 오늘날의 많은 노동자들은 과로할 뿐 아니라 과도한 통제를 받고 있다. 14

 

 

 

PART ONE 일의 의미와 역사

 

1 왜 일하는가?

 

잠시 동안 일하지 않는 생활을 상상하기는 쉽지만, 평생을 일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상상하기란 어렵다. 어떤 사람들에게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은 우스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한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합니다.” 이것이 대다수 사람들이 유급노동을 하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왜 사람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일을 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19

 

윌리엄 줄리어스 윌슨은 그의 저서 <일이 사라졌을 때>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일자리가 부족하면 사람들은 단지 빈곤으로 고통을 겪을 뿐 아니라 공식적인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소소감을 상실한다. 더는 일이 그들의 생활을 규제하는 규칙적인 힘으로 작동하기를 기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윌슨에 따르면,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단지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일은 규율, 소속감, 규칙성, 자기 효능감 같은 다양한 심리적 사회적 욕구를 만족시킨다. 그러나 과연 일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가? 왜 실직자들은 여가를 통해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가? 20-21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직자들이 여가를 갖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또 다른 통찰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는 평화나 적당한 미덕, 교육이 없이는 여가도 가질 수가 없다. “비즈니스에는 용기와 인내가 요구되며, 여가를 위해서는 철학이 요구된다. 절제와 정의는 두 가지 모두에 필요하지마 특히 평화와 여가의 시기에 더욱 요구된다. 절제와 정의는 두 가지 모두에 필요하지만, 특히 평화와 여가의 시기에 더욱 요구된다. 왜냐하면 전쟁은 사람들을 공정하고 절제하도록 만드는 반면, 평화와 함께 찾아오는 상당한 재산과 여가는 사람들을 오만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22

 

두려움, 물질적 필요, 책임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여가를 통해 스스로를 계발하는 자유를 누리게 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여가를 위한 교육을 통해 스스로에게 유익한 학습과 활동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인간을 동물과 구별짓는 것은 바로 이러한 활동들이기 때문이다. 그는 학생들이 읽기, 쓰기, 미술, 신체적 훈련, 음악 같은 과목들을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에 대한 이러한 견해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양인 학계(liberal arts)’의 기초가 된다. 로마의 키케로도 학예가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는 교육에서, 삶의 필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진리와 그 자체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지식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론적으로 볼때 교양은 일하는 방법이 아닌, 여가를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여가는 단순한 자유시간이상이다. 그것은 일에 대한 욕구와 필요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이며, 특정한 일으르 하기 위한 기회이다. 직업을 이맇었거나 직업을 가질 수없는 사람들은 결코 일에서자유로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일할자유를 갖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아무런 선택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3

 

인간의 가장 흥미롭고 독특한 점은 자신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고 난 에도 스스로 일하기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24

 

일을 통해 소득을 얻는다는 사실을 제외하더라도, 직업을 갖는 것이 우리 문화에서 그토록 바람직한 이유는 명백하다. 일은 우리에게 유용하기 때문이다. 일은 규율과 정체성, 가치를 제공한다. 일은 우리의 시간을 조직하고 우리의 삶에 리듬을 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 우리에게 매일매일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 준다는 점이다. 교육과 소득, 평화와 안전이 주어진다 해도, 유급노동이 일의 중심이 되는 문화에서 자발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매일매일을 만족감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활동으로 채울 수 있을까? 우리들 대다수는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몇몇 사람들이 일을 통해 만족과 행복을 얻는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일은 우리의 물질적 필요를 채워준다. 그러나 인간이 일 자체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많은 학자들을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장 자크 루소는 게으름이야말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이며, 생산활동의 필요성은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부지런한 습관은 일이 가져다주는 산물이며, 우리가 일을 통해 얻는 실용적인 교육이 무언가를 해야 할 필요성과 바쁜 습관을 만들어낸다고 저술하고 있다. 요컨대 우리는 타고난 기질 때문이 아니라, 훈련과 도덕적 조건화로 인해 일할 필요성을 느낀다는 것이다. 25-26

 

일의 의미를 탐색하기 위해서는 일의 가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27

 

개미와 같은 이런 유형의 사람은 은퇴를 위해 저축하며, 남은 20년 동안 이전의 고생에 대한 보상을 바라면서, 삶의 45년 내지 50년 동안 어느 정도의 즐거움을 저당잡힌다. 32

 

개미는 미래를 위해 살지만, 막상 미래가 왔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아는 것은 아니다. 33

 

개미와 달리 베짱이는 현재를 위해 살고 미래를 희생한다. 그의 놀이는 아무데에도 이르지 못하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노는 삶에는 즐거움이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의미 있는 삶인가? 꿀벌은 개미처럼 일하면서도 베짱이처럼 자신이 우추구하는 것을 즐긴다. 꿀벌은 다른 사람들이 고맙게 여기는, 훌륭하고 유용한 물건을 만들어내는 데서 기쁨을 얻고 의미를 찾는다. 꿀벌은 유용하고 보상을 주는 일을 상징한다(물론 실제 꿀벌의 삶은 이야기 속의 꿀벌의 삶과는 전혀 다르다). 개미는 일하는 삶, 안전한 삶의 표본인 반면, 베짱이는 놀이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경솔한 삶을 대표한다. 그렇다고 해서, 베짱이의 삶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34-35

 

버나드 수츠 <베짱이의 놀이, , 유토피아>.. 수츠의 주장에 따르면, 당신은 다음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될 때에만 일하면서 놀 수가 있다. 첫째, 당신은 일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둘째, 당신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방식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

이솝 우화의 꿀벌은 개미처럼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개미와 달리 꿀벌은 꿀을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거나, 꿀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즐기거나, 여전히 꿀 만들기를 즐긴다. .. 몇몇 생산적인 활동은 필요성은 없으나 만족을 준다. 36

 

매미의 노래처럼, 놀이를 하는 유일한 목적은 즐거움이다. 이솝 우화 속의 베짱이는 무책임해서 굶어 죽지만, 매미는 배고픈 예술가로 그려진다. 매미는 음악에 대한 사랑 때문에 굶어 죽는 것이다. 두 개의 우화는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예술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인다. 반면 일보다 노래를 더 좋아해서 죽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들 대다수에게 더욱 적절한 질문은 만약 당신이 개미처럼 산다면, 즉 나이 들어 쇠약해질 때까지 일해서 돈을 저축한다며, 그것은 의미 있는 인생인가?”이다.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주어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37

 

일은 일 이외의 삶을 잠식한다. 일 이외의 삶은 일하는 삶보다 더 많은 것을 제공한다. 44

 

 

2 일이란 무엇인가?

 

일의 의미를 탐색하기 위한 좋은 출발점은 일(work), 노동(labor), 수고(toil), 업무(job)와 같은 단어들의 뜻을 살펴는 것이다. 우리가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정의하는 방식을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어휘 사용이 시간이 지남따라 그 단어의 집합적인 이용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46-47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이거나, 어떤 것의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잠재적으로 강력한 행위이다. 당신이 어떤 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당신은 그것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48

 

일에 붙는 직함이나 사람들이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용하는 용어들은 직장에 대한 개념도를 형성한다. 고용주가 조직문화를 바꾸고자 할 때, 그들은 자주 재명명 방법을 사용한다. 49

 

필요성’.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 그것을 반드시 해야 하거나, 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51

 

모든 문화에서 일에 대한 태도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태국어에서는 을 뜻하는 단어와 파티를 뜻하는 단어가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

태국 사람들은 일이 진지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으며, ‘일 자체는 좋은 것이라는 견해를 갖고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도 태국인들은 결코 게으르지 않다. 그들의 문화는 재미를 뜻하는 사눅(sanuk)’에 큰 가치를 둔다. 모든 활동은 사눅(재미있는)’마이 사눅(mai sanuk:재미없는)’로 구분된다. 사눅은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근심없는 즐거움을 뜻한다. 일이건 놀이이건 상관없이 어떤 활동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 속성이 바로 사눅이다. 가령 태국의 어느 마을주민에게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단조로운 업무가 주어진다면, 그는 그 업무를 팽개치고 가버릴 것이다. 그것은 사눅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그 사람은 여러 날 동안 쉬지 않고 마을이 사원을 짓는 일을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일에서는 사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이 태국에 처음 공장을 지었을 때, 그들은 사눅의 중요성을 발견했다. 사실 초기에는 태국인들이 그다지 열심히 일하지 않았으며, 특히 아침마다 차려 자세로 서서 사가(社歌)를 부르는 의식을 싫어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관습을 버리고 공장에서 음악을 틀어주기 시작했드며, 더 많은 휴식시간을 주고 작업중에 할 수 있는 놀이도 가르쳐주었다. 태국인들의 의식 속에서 일이 사눅이 되자 생산성이 증가 했다. 일과 놀이에 대한 태국인들의 태도는 같다. , 작업 파티는 생일 파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53

 

(work)은 너무나 다양한 것을 의미한다. 정말이지 대단한 단어이다. 우리는 일(work)하고일터(work)간다.’일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소유하는것이며, 우리가 만들어내는것이다. 미술 건축 음악 문학 작품(work)’도 있다. 우리는 의사, 회계사, 자동차 수리공이나 카펫 판매원의 솜씨(work)에 감탄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어떤 공간이나 나뭇조각, 빵 반죽, 고장난 자물쇠 등을 가지고도 일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것의 해답을 내거나(work someone over), 운동을 하거나(work out), 좋은 일을 하거나(do good works), 누군가를 때려주거나(work someone over), 흥분하거나(get worked up), 자칫하면, 심지어 일벌레(workaholics)까지 될 수 있다.

이라는 단어는 동사이자 명사이며, 활동이자 활동의 산물이기도 하다. 55

 

노동(labour)’이라는 단어는 14세기 영어에서 최초로 등장했다. ..

동사노서의 노동(labor)은 행위만을 나타낼 뿐 행위의 대상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

농부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지만, 우리는 그가 딸기를 만들었다:고 말하지 안흔다. 비록 그의 행위가 딸기를 따는 이주 노동자보다는 훨씬 더 딸기를 만든 것에 가깝더라도 말이다. 화가가 그림 그리는 행위를 통해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과 달리, 노동하는 사람들은 대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는 육체적인 일을 하지만 직접 그것을 만들어내지는 않는다. 56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노동,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다루는 일을 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어떤 깨달음도 얻지 못하는 하인의 일과 같다고 생각했다. 노동과 일은 두 가지 요인에 의해 구분된다. 첫째, 노동은 일에 비해 육체적 노려고과 더 크게 관련된다. 둘째, 노동자와 노동 대상의 관계는 일하는 사람과 그 대상과의 관계와 다르다. ..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노동자의 첫번째 정의는 봉사행위로서, 혹은 생계를 위해 육체적인 노동을 행하는 살마인 반면 일하는 사람의 첫 번째 정의는 만들거나 창조하거나 생산하거나 고안해내는 사람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로 격하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이 한 개인에 의해, 그리고 개인을 위해 행해지는 것인 반면 노동이라는 단어는 무언가를 만들거나 행하는 데 대한 개인의 기여를 암시하기 때문에 사회적인 용어라고 말했다. ‘은 노동의 산물을 나타내는 명사이지만 노동은 일하는 사람들을 나타내는 명사이다. ‘노동은 육체적인 일을 하는 살마들의 집단을 가리키는 반면, ‘은 다양한 행위나 그러한 행위의 대상을 가리킨다. 우리는 일조합이 아닌, ‘노동조합을 결성한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일은 협동적이며 상호 의존적인 사람들의 집단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동터라는 말 대신 일터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집합적이고 육체적인 일보다는 개인적이고 비육체적인 일을 강조하는 것이다. 57

 

노동이나 수고같은 단어어비해 업무(job)’라는 단어는 상당히 유쾌하게 들린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명사 ‘job’덩어리(gob)’라는 단어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려준다. .. 17세기까지.. ‘업무란 영구적인 고용이 아니라, 일시적인 일을 의뢰받거나 잠시 고용되는 것을 가리켰다. 60

 

업무라는 단어는 대개 명사로 사용되는 반면 일하다라는 동사의 형태와 그들의 일에서와 같은 명사의 형태가 거의 비슷하게 사용된다. .. ‘업무의 또 다른 차이는 일은 보수를 받는 것과, 받지 않고 행하는 활동까지 가리키는 반면, ‘업무는 보수나 소득을 얻는 일에만 구체적으로 관련된다는 것이다. 61

 

업무라는 단어는 보수를 받기 위해 하는 도구적인 활동을 나타낸다. 그것은 일, 노동, 수고, 고역과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업무의 정의는 일하는 살마과 그 산출물 간의 연관성을 암시하지 않는다. .. 일의 양에 대해서 ..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이 보수를 받기 위해 하는 한정된 양의 활동이라는 점이다. 62

 

 

3 일의 역사

 

살기 위해 일한다는 우리의 인식은 어떻게 해서 일하기 위해 산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을까? 64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일은 저주였다. ... 기원전 4세기의 역사가인 크세노폰은 사람들이 생의 좋은 것들을 누리는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일이라고 기록했다. 만약 일이 신들의 저주라면, 그것은 정복당한 적이거나 포로가 된 외국인, 혹은 노예의 아이들이라는 이유로 저주받은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편이 가장 낫다. 노예는 부유한 고대 그리스인들을 일에서 해방시켰다. 그리스인들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모든 활동을 노예의 일로 여겼다. 노예제도는 인간의 지위를 강등시켰을 뿐 아니라 일의 사회적 도덕적 가치까지도 격하시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일이란 가능하면 노예들에게 떠맡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이득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저주가 되리 수 있다고 믿었다. 재산(땅과 노예들)을 소유하는 것과 일하지 않는 것, 이 두 가지야말로 그가 생각한 인간적인 삶의 기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집 안에서 사용할 물건을 만드는 일과 상업적 이득을 위한 일을 구분했다. 그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 집에서 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인간의 필요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도 유한하다고 말했다. ..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소매업이나 금전적인 이득을 위한 일은 인간의 욕망(want)을 위해 실행되는 것이므로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욕망은 인간의 필요(need)와 달리 무한한것이다. .. 돈을 벌거나 지키는 일에 평생을 바치는 사람들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사는 것 자체에만 열중할 뿐 잘 사는데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 어떤 것을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야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여가 활동의 정의이다. 게다가 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는데, 그들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얻기 위한 일은 결코 중단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65-66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개인의 생각과 견해가 그의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 평범한 거리의 그리스인은 유용한 상품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우리는 그들이 정말로 그랬을지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평범한 살맘들은 역사에 남을 만한 일을 하기 전에는 역사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원전 여러 동양 문화에서도 물질적인 세계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세계보다 덧없고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들이 을 경멸한 것은 아니다. 67

 

정신적 수양을 위한 한 가지 방법이었다. 일의 과정은 결과보다 더 중요했다. 부처에게는 바닥을 쓸고 닦고 연료를 모으는 것 같은 가장 비천한 일조차도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될 수 있었다. 68

 

종교나 문화에 따라 일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혹은 중립적인 가치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동일한 문화 내에서도, 서로 다른 종류의 일은 상이한 영적 도덕적 사회적 가치를 지닐 것이다. 모든 사회에는특정 유형의 일에 대한 고유한 편견이 존재한다. 68

 

고대 그리스인들은 다른 살맘들에 대한 봉사와 일반적인 육체노동에 대해 강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회가 필요로 하는 봉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들만이 시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학>에서 그는 장인과 노동자들은 공동체의 하인들, “꼭 필요한사람들이기 때문에 시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장인이 시민이 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로는 그들 대다수가 노예였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조각의 황금기에 이 책을 저술했지만 조각가들이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조각은 격렬한 육체노동을 포함하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조각을 노예 예술(servile art)’로 여겼다. 고대 그리스에서 육체노동자들은 시민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몇몇 훌륭한 조각가들은 시민권을 부여받았다. 반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육체적인 노력을 덜 필요로 했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람이 행하는 학예(學藝)로 간주되었다. 학예는 깨끗하고 지적인 일일 뿐 아니라, 자유로운 사람의 일을 암시했다. ..

육체노동에 대한 편견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지속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그림이 학예와 노예 예술의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생각한 반면 조각은 여전히 노예 예술이었다. 69

 

생업이 목수였던 그리스도는 직업이란 무의미한 것이라고 설교했다. ...

신약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질서와 정당한 보상, 수양을 위한 일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그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규칙적으로 살라고 충고한다. “여러분 가운데는 무절제하게 살면서 일을 하지는 않고 만들기만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고 하는데, 다른 이들의 빵을 먹음으로써 그들에게 짐이 되지 말라.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 여기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있다. 첫째, 일은 생활 리듬의 일부이며 사람들을 시끄러운 문제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둘째, 개미에 관하 이솝 우화에서처럼 일하지 않는 자가 먹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71

 

교회는 을 세 가지 정도로 구분했다. 그것은 삶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 다른 이들을 위한 일, 개인적인 이득이나 물질적 이득을 얻기 위한 일이다. 72

 

우리가 태만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기력이라는 뜻의 아시디아(acedia)’를 대략적으로 번역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태만을 게으름이나 일하기 싫어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시디어의 본뜻이 아니다. 태만은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 게으름에 대한 비난이 아니며, 일의 가치에 대한 긍정도 아니다. 태만은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73

 

단순한 노동에 불과했던 이 두러지게 긍정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이다. .. 529년 성 베네딕트는 몬테 카시노의 꼭대기에 수도원을 지었다. ...

성 베네딕트 이전의 수도사들은 자신의 잘못을 속죄하기 위해 힘들고 고통슬운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러나 베네딕트는 육체적인 일에 보다 긍정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의 규정집의 주제는 오라 에 라보라(ora et labora)’, 기도하라, 그리고 일하라이다. 베네딕트는 수도사들에게 신에 대한 헌신의 한 방버브으로서 무슨 일을 하든 착월함을 추구하라고 장려했다. “무엇보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지 그것을 완전하게 해주십사 하고 신에게 진심으로 기도하라.” 74

 

성 베네딕트에게 일은 직업이나 소명(calling)이 아니라, 일종의 눈에 보이는기도였다. .. 베네딕트 교단은 유럽 전역에 걸쳐 퍼져나갔으며, 중세의 마으로과 도시를 발전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베네딕트회 수도사들은 중세 초기의 가장 능숙한 농부이자, 장인이자 기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서는 노동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수도사들 중 가장 낮은 지위로 간주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일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일과 신앙심 사이에 일련의 관계가 있음을 발견햇다 베네딕트 수도회의 전통에서 비롯된 노동윤리는 기독교인의 영적 미덕을 수공업을 비롯한 다른 직업에 까지 확대시켰다. 75

 

12세기에 이르러, 그 사람의 직업과 동일시한 성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베이커(빵 굽는 사람), 카펜터(목수), 대처(이엉장이), 스미스(대장장이), 위버(베 짜는 사람), 골드스미스(금 세공인), (요리사). 77

 

개인 및 집단의 정체성이 직업에 따라 새로이 형성되자 교회의 정책도 자신들의 일에 대해 보다 존중해 달라는, 조합과 중산층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교회는 기꺼이 실용적인 태도를 취했다. 한 예로, 교회는 이 무렵 증가하는 중산층을 위한 중간 단계의 집으로서 연옥을 만들어냈다. 연옥은 중산층에게 천국과 지옥, 힘 있는 자들과 가난한 자들,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 존재하는 그들만의 진정한 영적 지위를 부여하였다. 연옥의 개념은 15세기 이전까지는 별로 유행하지 않았다. 15세기에 이르자 비록 비참하기는 해도 훌륭한 자금조달 장치(gimmick)인 연옥이 소곡(小曲)을 통해 찬미되었다. “금고에 동전 소리가 울리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솟아오른다.” 78

 

일에 관해 말할 때 우리가 가장 애용하는 묘사, 창조로서의 일은 르네상스 시대에 등장했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으며 인간은 음악과 미술을 비롯한 아름다운 거슬의 창조자이다. .. “예견하다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프로메테우스.. 고대인들에게 프로메테우스는 인류를 고된 노동으로 몰아넣은 사기꾼이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면 인류가 운명을 붙잡을 수 있도록 허락한 영웅이 된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신의 섭리를 막연히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고 느끼기 시작하면서, 일이 지니는 가치도 커졌다. 14세기의 피렌체는 우리에게 세계를 만들어내고 자연의 형태를 바꾸는 창조자로서의 인간, 즉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이미지를 선사했다. .. 만약 종교가 중세의 아편이었다면 창조성과 미는 르네상스 시대의 각성제였다.

르네상스 시대는 고유한 노동윤리를 가지고 있었다. .. 자신의 돈으로 무엇인가를 도모하되 구두쇠처럼 돈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부자가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

육체와 정신을 룬련시켜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믿음에, 르네상스는 손을 훈련시키는 것을 더했다. 81-82

 

15세기 인문주의자 로렌조 발라는 중세의 전통과 교황이 누리는 현세의 권력을 공격했다. 진정한 선의 본질에 대한 그의 저서 <쾌락에 대하여>에서 발라는 쾌락과 덕을 재정의함으로써 쾌락과 아름다움을 가득 찬 삶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 학파와, 소박함과 자기 절제를 명하는 스토아 학파 사이에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 .. 그는 덕()쾌락으로 환원될 수 있는 요소(calculus pleasure)”라고 주장했다. 쾌락은 짐승 같은 충동이 아니라 이성과 통찰의 원리이며, 덕은 재능이자 인내하는 능력이었다. 82-83

 

1516년에 저술된 모어의 <유토피아>는 공리주의 원칙에 입각한 공산주의 사회를 이상향으로 그리고 있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는 청소나 도살, 사냥과 같이 시민들이 비천하고 창피스럽게 여기는 일은 모두 범죄자와 노예들이 도맡아 했다. 따라서 시민들은 보다 흥미로운 일에 종사할 수 있으며, 하루에 여섯 시간만 일해도 된다. ..

1602년에 쓰여진 캄파넬라의 <태양의 도시>는 공동체 생활과 과학적인 사회 질서를 강조했다. 캄파넬라의 이상향에서는 모든 사회 계층이 평등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그곳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캄판넬라는 가장 고귀한 사람들은 한 가지 이상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

일이 인간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일을 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르네상스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갖고 성취를 이룬 사람이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고 자신의 일을 조절할 수 있는 사라이다. 따라서 전형적이 르네상스인은 오늘날의 인간관과는 급격한 대조를 이룬다. 83

 

16세기부터 18세기 사이에는 노동자의 자살을 금지하는 법이 확산되었다. 이는 당시 사회가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했고 그만큼 노동자 가치가 증가한 반면 노동자들의 절망 역시 더 커지고 있음으로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지표이다. 84


루터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게으른 거지와 부랑자들을 꾸짖었다. 그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집이 없는 이유는 그들이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믿었다.(바로 이 시점부터 오늘날까지, 몇몇 사람들은 계속해서 이러한 관점을 고수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다른 주요 종교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 관점에서 크게 이탈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코란에서는 거지들을 세상의 자연스런 질서의 일부라고 생각했으며 자선은 도덕적 영적 의무라고 생각했다. 85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 자체를 위한 일이라는 개념과 휴식과 쾌락에 대한 혐오는 칼뱅과 루터로부터 비롯된 거이다. 이것은 노동윤리라고 불리는 것의 수많은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다. 85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일과 모든 노동자들을 똑같이 존중하도록 가르쳤다는 점이다. .. 루터와 칼뱅의 노동윤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람들을 구속해온 믿음은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선하고, 일하지 않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이다. 86

 

종교 개혁가들은 모든 일을 베루프(Beruf, 시간을 차지하는 이르 직업이라는 의미의 독일어), 소명으로 정의했다. 소명은 일의 종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에 대한 태도를 일컫는다. ... 모든 일이 신의 명령이라는 생각은, 일이 아무리 고통스럽고 불쾌하며 보수가 적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보증해주었다. .. 프로테스탄트의 소명 개념은 일에 영적인 차원을 부여했다. 그것은 결코 일이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 ‘소명이라는 개념은 이제 우리의 일상 언어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현재는 종교적인 직업을 일컫는 데 주로 사용되고 있다. 대신에 소명이라는 말은 천직(vocation)’이라는 말로 세속화되었다. 우리는 때로 소명천직을 번갈아 사용하지만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창가 있다. 당신의 소명은 신이 결정하지만 천직은 당신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다. 87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가 일의 도덕적 가치를 형성해온 과정을 살펴보앗다. 고대인들은 일을 강제적인 것이자 저주로 보았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일에 단순한 위엄(simple dignity)’을 부여했다.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일에 매력을 부여했다. 그러나 신교도들은 일을 의미와 정체성, 구원의 징표를 찾는 과정으로 만들었다.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일, 즉 소명으로서의 일 개념은 일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특징을 강조했다. 일은 일종의 기도가 되었다. 일은 삶의 수단을 넘어 삶의 목저이 되어싸다. 일은 저주에서 소명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르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수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88

 

 

4 일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

 

우리가 물려받은 노동윤리는 단일한 개념이 아니라 세 가지 개념이 융합된 것이다. 가장 오래된 첫 번째 개념은 공정함과 사회적 책임의 원칙이다. 건강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을 부양할 의무를 갖는다. .. 두 번째 요소는 우리의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일해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루터와 칼뱅의 독특한 견해로 일 자체가 도덕적이고 영적인 가치를 지니며, 모든 사람은 살면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하도록 신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일은 그것이 아무리 비천해도, 또한 보수가 얼마든 간에 좋은것이다. .. 공정함, 개인의 탁월성, 개인의 선함이라는 이 세 가지 기본 개념으로부터 일은 고역아니라 의미 있는 것이라는, 일에 대한 낭만적 개념이 생겨났다. 그리고 우리는 일을 통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89-90

 

18세기, 벤자민 프랭클린은 프로테스탄트의 관점과 계몽주의의 이상을 조합하여 새로운 노동윤리를 만들어냈다. 그는 사람들이 인도적인 방법으로 부를 사용하여 사회를 돕기 위해서는 우선은 부를 얻으려고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그는 종교적 의무가 아닌,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일을 강조했다. 92

 

막스 베버는 프랭클린이 노동윤리로부터 윤리학을 이끄르어냈다고 생각했다. 프랭클린의 노동윤리가 낳은 윤리학은 두 가지 도덕적 개념에 기반하였다. 첫 번째는 공리주의이다. .. 두 번째 도덕적 개념은, ‘유용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는 것이다. 92-93

 

프랭클린은 자서전에서 성공을 위해 필요한 열한 가지 미덕을 열거하는데 절제 침묵, 규율, 결단, 성실, 중용, 청결, 평정, 순결, 겸손이 그것이다. 그는 현세에서의 금욕주의를 설교했지만 또한 돈이 목적에 이르기 위한 수단이라고 믿었다. 그 목적은 바로 생을 즐길 수 있는 자유였다. 93

 

1836년부터 1900년 사이에 모든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맥거피가 엮은 <간추린 어린이 독본> 시리즈를 읽었다. 이 시리즈는 칼뱅의 신학을 강조했으며 고된 노동과 근면, 검약의 윤리를 찬양했다. 94

 

메인 주 출신의 목사이자 교육자인 자콥 애벗은 1832롤로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이야기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족 내에 자리잡은 프로테스탄트의 노동윤리를 명확히 표명했다. 예를 들어 <일하는 롤로>에서 롤로의 아버지는 그에게 한 시간 동안 못을 분류하라고 했다. 롤로는 그 일이 매우 지루하다고 불평했고, 그러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한 가지 일에 꾸준히, 끈이 있게 몰두하는 능력을 가져야 해. 어린 소년들은 일이 놀이처럼 재미있을 거라는 잘못된 기대를 하더구나.” 롤로의 아버지에 따르면, 진정한 남자는 일이 노력과 자제력을 요구하며, 고되고 지루한 것임을 안다.

1950년대 중반, 산업화가 시작될 무렵부터 아이들의 동화는 바뀌기 시작했다. ..

1800년대 중반에 등장한 싸구려 소설은 올리버 옵틱을 비롯한 수많은 아동문학가들로 하여금 이야기의 색채를 바꾸게 만들었다. 지나치게 교훈적인 이야기들은 본격적인 모험소설만큼 잘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옵틱은 범죄나 잃어버린 친척, 인디언 전쟁 등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 이들의 모험은 단지 주인고으이 도덕적 개선이라는 진짜 이야기이 배경이 뿐이라며 독자들을 설득한 것이다. 옵틱의 새로운 영웅들을 여전히 도덕적 모범이 되었지만, 그들의 규범은 부지런히 일하는 것에서 용감한 행동으로, ‘개인적인 절제에서 추진력으로 변화했다. 95

 

일에 대한 교훈이 가득한 아동용 동화들은 미국 남부에서는 제대로 뿌리내린 적이 없었다. 그곳에서는 누구나 땅과 노예를 소유하고 싶어했고, 그들은 돈보다 혈통을 더 중시했다. 97

 

경제 전문 기자(business jounalists)의 수가 증가하면서 많은 이들이 사업가들을 추켜세우기 시작했다. 나중에 스코틀랜드 이민자인 버티 찰스 포브스는 덕 잇는 사업가에 대한 찬양을 영구적인 예술의 형태로 표현했는데, 그것은 일과 미덕, 부는 행복과 사회적 이이긍로 이어진다는 프랭클린의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1916<포브스>지를 창간하면서 그는 이 간행물이 사업과 인생 전반에 더 많은 인간애, 기쁨, 만족을 줄것이라고 설명했다. 98

 

위대한 사업가의 신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기가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저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99

 

예일 대학교 출신의 콘웰은 1888년 필라델피아에 템플 대학교를 설립한 침례교 전도사였다. 그는 오늘날 사람들이 동기부여자(motivational speaker)”라고 부르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 콘웰 목사는 도덕적 충고와 사업상의 건전한 충고를 혼합했다. 그는, 돈을 버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내어 그 욕구를 채워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

18세기와 19세기의 노동윤리 옹호자들은 강한 도덕성이야말로 부에 이르는 열쇠라고 설교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는, 데일 카네기가 1936년에 쓴 <카네기 인간 관계론>에 나타나듯이 개인의 성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도덕성이 아니라 심리학이 성공에 이르는 열쇠가 된 것이다. 99-100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19세기의 많은 작가들과 설교자들, 심지어 몇몇 정치가들은 상업을 칭송하고 정치를 비방했다. 제임스 A. 가필드는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69, 워싱턴 전문대학의 졸업반 학생들에게 고전 학문을 가르치는 대학은 젊은이들의 직업 생활 준비에 완전히실패했다고 이야기했다. 100

 

19세기 미국을 방문한 유럽인들은 미국인의 에너지와 근면성에 아연실색했다. 특히 그들은 유한계급이 없다는 것에 대해 놀아워했다. 빈의 이민자인 프란시스 그룬트는 미국에서 상업이 주된 쾌락과 즐거움의 원천이라는 데 주목했다.

활동적인 직업은 그들 행복의 주요 원천이자 그들 국가를 위대하게 만드는 근원이다. .. 그들은 돌체 파르 니엔테(dilce far niente : 게으름의 달콤함)’대신, ‘게으름의 공포만을 알고 있다. 상업이야말로 미국인의 정수이다. .. 모든 인간 행복의 원천으로서 그것을 추구한다. .. ’. 101

 

과거의 사람들은 자신의 일과 스스로를 동일시했고, 심지어 자기 이름까지 일에 맞추어 지었다. 반면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는 일과 정체성에 대한 두 가지 새로운 견해를 내세웟다. 일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를 발견하거나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1

 

산업화 이후부터는 이리에 대한 두 가지 유형의 견해가 존재했다. 첫 번째 견해는 계몽주의적인 것, 즉 과학과 지식이 진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산업화 이전에 일은 거칠고도 육체적으로 고된 노역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 두 번째 견해는 장 자크 루소와 같은 비평가들이 말한 것으로, 일이 일종의 은총받은 상태로부터 타락했다는 것이다. ‘은총으로서의 일이란, 자율적인 장인이 자신의 기술을 사용하여 유용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내고,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농부가 자신의 풍성한 녹색 들판에 씨를 뿌리고 수확하면서 조용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18세기의 저작에서, 루소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임금을 받기 위해 일하는 산업 사회의 몇몇 문제점을 예견했다. 루소는 인류가 타인의 노동으로부터 이득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부터 일의 황금기는 끝났다고 믿었다. ..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창조성과 일하고자 하는 욕구를 잃었다. .. <에밀>에서 루소는 최상의 삶의 방식으로서 장인의 기능을 강조했다. 그의 낭만적 이상은 농부처럼 일하고 철학자처럼 사고하는 인간으로, 말에 편지를 박는 동안 진리와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하는 목가적인 르네상스인이었다. 102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유재산과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일로부터 얻는 창조적이고 사회적인 보상과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을 사용하는 기쁨으로부터 인간을 소외시켰다. 마르크스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일과 동일시하는 것을 위험하다고 여겼는데, 특히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하고 매우 세부노화된 일을 할 때 그러했다. .. 마르크스는 루소를 흉내내어 이러한 세계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내가 오른 한 가지 일을 하고 내일은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 사냥꾼이다. 어부, 소 치는 사람이나 비평가가 되지 않고도, 마음먹은 대로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고기를 잡으며 저녁에는 소를 사육하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비평을 할수 있는 세상이다.’ 103

 

중요한 점은 이러한 세계 속에서 사람들은 한 가지 직업의 정체성에 갇혀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일과 정체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를 극단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림 그리는 사람만 있을 뿐 화가는 없을 것이다. 103

 

마르크스의 이상적인 세계에는 단 한 사람의 전문가도 없는 것일까? 병을 고치는 사람만 있을 뿐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마르크스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만약 당신이 청소부로 고용되어 있는 동시에 교회 집단의 우두머리이자 조각가라면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을 그저 청소부로만 여기기를 원하겠는가?... 마르크스는 사람들의 살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일이 유급고용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04

 

윌리엄 모리스는 당대의 르네상스인이자, 도이시대인들의 묘사에 따르면 일벌레였다. 그는 설계자, 장인, 시인, 번역가로서 탁월성을 발휘했다. 1884년 모리스는 사회주의 연맹을 창설하고 자본주의 노동체제와 생산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모르스는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을 공유했지만, 동시에 일 자체의 심미적 가치에도 관심을 가졌다. 한 편지에서 모리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나는 왜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살 수 없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네.... 정말이지 나는 행복하게 일한다네. 그런 나의 시간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그저 운명지워진 것, 칭찬받거나 보상받지 못하는 단조로운 고역일 뿐인 것과 비교하면, 부끄러움을 느낀다네.’

산업화된 영국의 짙은 매연과 보기 흉한 건물을 보며 경악한 모리스는 작업장에 아름다운 정원을 꾸밀 것을 제안했다. 그는 또한 대량생산된 상품들의 흉한 모습을 조롱했다. 그는 기계가 노동을 절약해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생각하는 손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 자체가 주는 심미적 가치는 유용성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데서 오는 만족감에서도 비롯된다고 믿었다. 104-105

 

일의 의미에 대한 모리스의 흥미로운 통찰 가운데 하나는 가치 있는 일에 대한 그의 설명이다. 모리스는 일이 삶의 빛이 될 수도, 혹은 삶의 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둘의 차이점은 첫 번째 경우에는 희망이 있는 반면 두 번째 경우에는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모리스에 따르면,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원하도록 하고 그 일을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희망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저술했다. “가치 있는 일은 휴식의 즐거움에 대한 희망, 일을 통해 만든 것을 사용함으로써 느끼게 되리 즐거움에 대한 희망, 그리고 일상적인 창조의 기능에서 느끼는 즐거움에 대한 희망을 수반한다.” 105

 

가치 있는 일이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희망이 잠재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일뿐 그 실현 가능성 여부는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주관적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만든 물건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리스의 논점은 만약 그들이 그럴 수 있다면 그들은 그것을 사용하거나 소유하는 데서 즐거움을 느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사람들은 다양한 창조적 기술을 이용하여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할지에 대해 제각기 다른 희망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분한 여가와 고품질의 유용한 산물, 기술을 연마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직업을 갖고 싶어하리라는 점에서 가치 있는 일은 객관적이다. 106

 

인간이 실제로 하는 에는 두 가지 이상적인 유형이 있다. ‘장인의 일혹은 손을 이용해서 하는 일과, ‘전문가의 일혹은 정신을 가지고 하는 일이 그것이다. 106

 

전문가( professional)’ 라는 단어는 원래 성직에 들어가는 사람이 공식적인 선서를 하는데 사용된 공언하다(profess)’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107

 

중세의 유일한 전문직은 대개 학자이자 법률가이자 의사였던 성직자들이었다. 전문직의 근저에는 세 가지 기준이 존재했다(이러한 기준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첫 번째, 모든 전문직은 공식적인 기술교육과 그러한 훈련을 확인시켜주는 일정한 제도적 인증 과정을 요구했다. .. 두 번째 기준은 전문직에서 사용하기 위한 기술을 발전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 세 번째로, 전문가는 그 전문직이 사회적으로 책임감 있게 이용되도록 보장하는 일종의 제도적 수단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성원들의 윤리적 행위를 보증할 수 있는 조직화가 이뤄져야 한다. 미국의 변호사협회나 의사협회의 목적이 그러한 것이다. ..

사회학자 탈콧 파슨스는 “”기업인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에 상관없이 사리사욕만을 이기적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반며느 전문가는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타인의 이익을 위해 이타적으로 봉사한다.” 이것은 그가 50년 전에 쓴 글이다. ...

이상적으로 생각하자면 전문가들은 일에 대한 보수를 받지 않아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문가는 업무를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수행하기 위한 비용을 보조받는것이기 때문이다. 108

 

대중이 전문가들의 비윤리적 행위에 분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여전히 전문가들이 사회에 대해 공식적 서약을 맺는다고 암묵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109

 

일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우리가 하는 일과 우리가 되고 싶은 것, 혹은 얻고 싶은 것에 달려 있다. 일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는 모리스의 말은 옳았다. 그러나 일을 원하려면 먼저 미래에 대한 어느 정도의 희망 혹은 믿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노예와 농노들, 그리고 지독하게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힘 없는 사람들에게 노동윤리는 결코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111

 

 




PART TWO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 바로가기



PART THREE 일과 삶 바로가기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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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미래를 바꾸는) 학교 혁명 - 켄 로빈슨 루 애로니카 21세기북스 2015  03370



실수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라.

그렇지 않으면 독창적인 것을 해낼 수 없다. - 켄 로빈슨


모든 아이는 예술가로 태어난다. 자라면서 그 예술성을 지키는 것이 문제다 - 피카소




들어가는 글 - 자정 1분 전


이 책에서 나는 표준화 문화가 학생과 학교에 어떻게 해를 끼치는지 설명하면서 교육에 대한 차별화된 사고방식을 제시하려 한다. 또한 당신이 어떠너 사람이고 어디에 살고 있든 당신에게는 제도를 변화시킬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8


나는 교사, 연구자, 강연자, 심사관, 자문관 등으로 활동하며 40년 넘게 교육계에 몸담아왔다. 그 과정에서 교육계의 온갖 사람들과 부딪히고 온갖 기관과 조직에서 일했다. 기업, 정부, 무노하단체와 두루두루 협력해보기도 했다. 학교, 교육구, 정부를 도와 실용적 구상을 이끌고 나가기도 했다. 대학에서 교편도 잡아봤고, 새로운 단체의 설립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을 펼치는 내내 나는 교육에 대해 지금까지보다 더 균형 잡히고 개인 맞춤형이며 창의적인 접근법을 찾아왔다.  10


어떤 사람들은 나의 온라인 강연 영상을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제도의 변화를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지 않아 아쉽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런 이들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대답은 세 가지다. 첫 번째, 대화 시간이 18분밖에 없어서 어쩔 수가 없었으니 너그러이 넘어가주기 바란다. 두 번째, 내 생각에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그동안 내가 발표한 책, 보고서, 전략집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지 모른다. 마지막 세 번째, 바로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무엇인가?  11


혼동을 야기하는 몇몇 용어에 대해 간략히 정리해보자.

'학습(learning)' 이란 새로운 지식과 역량을 습득하는 과정이다... 학습 욕구를 계속 북돋우는 일이야말로 교육 혁신의 열쇠다.

'교육(education)'이란 체계적인 학습 프로그램이다. 정규교육의 전제는, 청소년들 스스로에게 맡겨두면 터득하지 못할 것들을 알고, 이해하고, 실천하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훈련(training)'은 교육의 한 종류로서 특정한 기술의 습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말하는 '학교(school)'는 으레 아이들과 십대들을 위한 곳으로 여겨지는 전통적 시설으로만 제한되지 않는다. 서로 배우기 위해 사람들이 한데 모인 공동체라면 뭐든 학교다. 즉 이 책에서 학교란 홈스쿨링, 언스쿨링(un-schooling : 집이나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 배우는 것- 옮긴이), 직접적 대면 형태나 온라인 형태의 비공식적 모임까지 아우르는 개념이다.  12-13


좋은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보수가 높고 자기만의 사무실이 있는 전문직 일자리를 보장받는다. 한편 지능이 비교적 떨어지는 학생들은 당연히 학교 성적도 떨어진다... 나름의 재능에 맞게 그런대로 괜찮은 서비스직이나 노동직에 들어가기도 한다. ..

전세계의 수많은 정책 입안자들이 실제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따져보면 이들 학교와 학부모와 정책 입안자들은 이런 상황을 외면한 채 현재의 교육제도가 건전하다고 믿는 듯하다.  14


이 이야기는 위험한 허상이다. 그토록 많은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허상 때문이다. ..

하지만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오히려 악화 일로로 치닫고 있다. 왜일까? 이런 문제들은 대개 제도 자체가 원인이기 때문이다.  15


문제를 해결하려면 증상과 원인을 구별해야 한다. 현재 교육 침체를 보여주는 수많은 증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런 증상들은 그 근본적인 문제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해결할 도리가 없다. 그런 문제 중에 하나는 공교육의 산업저 특징이다. 사실 대다수의 선진국은 19세기 중반에야 대규모의 공교육제도를 만들었다. 이런 제도의 발전은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측면이커서 대량생산의 원칙에 따라 구성됐다. 표준화운동(정부 주도로 표준 교육과정을 보급하려는 운동-옮긴이) ..  16


전통적 표준을 높이는 식의 교육 개선으로는 지금 우리가 직면한 도전을 충족시키기 힘들다. .. 

표준화운동에 탄력이 붙으면서 훨씬 많은 학생들이 낙제의 희생을 치르고 있다.  17


어떤 식으로든 교육에 관련돼 있다면 변화에 동참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비평,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비전, 다른 방향으로 이동할 변화론이다.  18


혁명은 입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

당신이 어떤 식으로든 교육에 연관돼 있다면 당신에게는 세 가지의 선택이 가능하다. 제도 내에서 변화를 일구거나, 제도에 대해 변화를 촉구하거나, 앞장서서 제도의 틀을 깨거나.  19-20





우리 교사들은 교실에 들어가면 아이들 앞에서 '다들 수학 시험에 통과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아요.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죠. '밴드 활동을 하고 싶지? 수석 자리에서 연주하고 싶지? 수학을 잘하면 도움이 될 거야.' 부탁조로 말하는 게 좋아요.  35


과거에는 국가 교육정책이 주로 국내적 문제였는데 요즘에는 정부들이 각국의 교육제도를 국방정책만큼이나 눈에 불을 켜고 주시하고 있다.  36-37


교육이 이렇게 뜨거운 정치적 이슈오 오르내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다. 지난 25년 사이에 기업 형태에 혁신이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제조, 서비스 부문에서 경쟁이 심화됐다. ..

두 번째는 문화적 이유다. 교육은 공동체가 고유의 가치와 전통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달하는 주된 수단이다. 또한 경우에 따라 교육이 외부 세력에 맞서 문화를 지키는 수단이 되거나 문화적 관용을 촉진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

세 번째는 사회적 이유다. 공교육의 공공연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배경과 환경의 차별 없이 모든 학생에게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시민으로 성공할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공교육에는 정부에서 바라는 실질적 목표도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사회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태도와 행동을 장려하는 것이다. ..

네 번째 이유는 사적인 것이다.

실제로 교육의 공공정책 관련 문구를 보면 그것이 무슨 의식이라도 되듯, 모든 학생이 자신의 잠재성을 깨달아 만족스럽고 생산적인 삶은 살아야 한다는 등의 구절이 들어가 있기 일쑤이지 않은가.  39-40


학업이 국가 경제의 구세주로 부상한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43


정규교육을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커리큘럼, 지도, 평가다.  44


표준화운동이 지도의 측면에서 선호하는 방식은 조별 활동보다는 학급 전체를 모아놓고 사실에 입각한 지식과 기술을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방식이다. .. 정형화된 필기시험과 객관식 문제의 포괄적 활용을 중시한다.  45


시헙의 목표 중에 하나는 학생, 교사, 학교 간의 경쟁 강화다. 이는 경쟁이 높아지면 자연히 표준도 올라갈 것이라는 가정에 따른 것이다.  45


2014년 4~6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미국의 대학 졸업생은 평균 2만~10만 달러의 빚을 떠안고 있었다.  50


학력적, 직업적 카스트제도는 교육에서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  51


리더들이 직원들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은 변화에 대한 '적응성'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창의성' 이었다.  54


미국은 세계에서 투옥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대략 성인 35명당 한 명이 수감, 보호관찰, 가석방의 형태로 교정제도의 관리 대상이다. ..

미국에서 한 명의 고등학생을 교육시키는 데 매년 평균 1만 1,000 달러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런데 교도소에 수감시킬 경우 1인당 연간 2만 달러 이상이 들어간다.  58


당신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년 고객의 3분의 1 이상이 빠져나간다고 치자. 이쯤 되면 진짜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즉 고객이 문제인지 당신의 회사가 문제인지 의문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59


표준화운동은 낮은 학업 성적에 대한 우려에서 시작됐다.  60


아무튼 원인이 무엇이든 여러 조사와 실질적 경험을 통해 거듭 드러난 바에 따르면, 학생의 학업성취도를 높여주는 결정적 요소는 학생 자신의 동기와 기대다. 학업성취도를 높일 최선의 방법은 지도의 질을 향상하고, 균형 잡힌 커리큘럼을 마련하고, 유익한 평가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치적 대응은 이와는 반대 방향을 향해왔다. 다시 말해 커리큘럼을 편협하게 짜고 교육 내용, 지도법, 평가를 최대한 표준화시켜 왔지만 이런 대응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증명되고 있다.  61


표준화운동은 대부분 실패 중이며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 많은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

표준화운동이 추진 중인 원칙과는 다른 원칙에 기초한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이런 교육이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기본이란 특정 과목도, 특정 지도법이나 평가 전략도 아니다. 원래 역할에 충실한 교육의 근원적 목적을 가리킨다.  62


대안교육 프로그램에서는 .. 자기가 똑똑하지 못하가도 생각했던 학생이 자신이 똑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어른들의 관심, 열정, 전문지식 그리고 학생들의 신뢰, 의지, 헌신이 함께 필요하다.  71


대체로 유럽에서는 100여 년 전에 추진됐던 산업혁명의 일환으로 19세기 중반에야 공교육이 출현했다.  72


애초부터 대중 교육은 사회적 목적성도 높았다. ..토머스 제퍼슨은 "문명국가에서 국민들이 무지하면서도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존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삶을 기대하는 것이다."

이렇듯 대중 교육을 사회 통제의 한 방법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교육은 사회적 기회와 공평성을 촉구하는 수단이었다.  75


산업주의에서는 대학 졸업자보다 육체 근로자가 더 많이 필요했다.  76


산업 제조의 목적은 똑같은 상품을 동일한 형태로 생산하는 것이다. 

대중 교육제도도 학생들을 특정 조건의 틀에 짜 맞추려는 의도로 설계됐다... 산없적 방법에서는 특정 규칙과 표준에 따른 획일성을 요구한다. . 표준화운동만 해도 커리큘럼, 지도법, 평가에 대한 순응을 바탕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산업적 방법은 '선형(線形 줄선 형상형) 구조'를 띤다. 원재료가 연속적 단계를 통해 상품으로 만들어지고, 각각의 단계마다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관문으로서 일정 형태의 테스트를 거친다. 대중 교육도 일련의 단계로 설계돼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를 거쳐 그 상위 단계의 교육까지 쭉 이어진다. 학생들은 전형적으로 출생일에 따라 별개의 학년으로 나뉘어 일괄적인 제도에 따라 진학한다. ..

산업 생산은 '시장 수요'와 결부돼 있다. 시장 수요가 높아지거나 낮아지면 제조업자는 그에 맞춰 생산량을 조정한다. 산업 경제에서는 행정직과 전문직 근로자가 비교적 소수만 필요했기 때문에 대학 정원이 엄격히 통제됐다. 반면에 현재는 지적 근로자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면서 대학 진입의 문이 활짝 열리고 대졸자가 사회로 진입하는 물결이 증가 추세다. ..

학교, 특히 고등학교와 고등교육은 공장에서 흔히 그렇듯이 '분업' 중심의 구조로 짜여 있다. 고등학교는 일과가 대개 일정 간격으로 나뉘어 있다. 종이 울리면 모든 학생이 다른 과목을 공부하거나 종종 교실을 바꿔 다른 수업을 받는다. 교사들은 특정 과목을 담당해 하루 종일 이 학급 저 학급을 가르친다.

이런 원칙은 상품을 제조하는 분야에서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사람을 교육하는 분야에서는 온갖 문제를 유발하기 십상이다.  77-78


교육의 획일성이 문제되는 이유는 사람들이 애초부터 표준화돼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   78


내가 획일성에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교육에서의 제도화된 경향, 즉 하나의 표준 능력으로 학생들을 판단하고 그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학생들을 '저능아'나 '부진아'라는 낙인을 찍으며 정상이 아닌 것으로 취급하는 경향이다. 이런 의미에서 획일성에 맞설 대안은 사회 분열을 묵과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양성을 살리는 방식이 되어야 맞다. ..

획일성이라는 편협한 관점을 들이대면 필연적으로 제도로부터 퇴짜 맞거나 구제 대상자로 낙인찍히는 비순응자들이 다수 양산되게 마련이다.  79


우리 인간은 적절한 환경만 갖춰진다면 상상력과 창의력이 대단히 풍부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획일성의 문화에서는 이런 상상력과 창의력이 적극적으로 억제되며, 심지어 괘씸하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선형 원칙은 제조 분야에서는 효과적이지만 사람에게 대입하면 그렇지 못하다. 연령별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이 '제조일'이라는 가정에 따르는 셈이다.  80


산업적 농업과 마찬가지로 산업적 교육에서도 생산성과 수확이 중요시돼왔고 현재는 그 강도가 더 높아지는 추세다.  89


교육을 개선하려면 반드시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교육 역시 살아 있는 제도라는 점과 사람은 성장 환경에 따라 잘 자라기도 하고 그러지 못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90


학교 문화에 활력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문화로 끌어올려야 한다. .. 문화를 실현시키려면 무엇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아야 할까? 내 생각에는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개인적 목적의 네 가지다.  91


경제적 목적 - 교육은 학생들이 경제적으로 책임감 있고 독립적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학교가 교육의 경제적 목적에 제대로 관여하기 위헤서는 청소년의 재능과 관심사를 아주 다양하게 길러줘야 한다. 학업과 직업훈련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 두 분야를 똑같이 중요시해야 한다. 또한 청소년들이 여러 종류의 직업 환경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직업 세계와의 실용적 파트너십을 촉진해야 한다.  91-94


문화적 목적 -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문화를 이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게 이끌어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은 인간을 더욱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들어주는 요소다. 모든 공동체는 자신의 문화와 더불어 다른 문화의 관행과 전통을 기림으로써 좀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

학교가 문화적으로 우선시해야 할 세 가지는 학생들 자신의 문화를 이해시키고 나아가 다른 문화들을 이해시킴으로써 문화적 관용과 공존에 대한 인식을 장려하는 것이다. 학교들이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은 편협하고 빈약한 커리큘럼이 아니라 광범위하고 다채로운 커리큘럼이다. 

94-97


사회적 목적 - 교육은 청소년이 능동적이고 온정적인 시민으로 성장하게 해줘야 한다.  97


개인적 목적 - 교육은 청소년이 주변의 세계뿐만 아니라 내면의 세계에소 관심을 갖게 해줘야 한다. .. 교육이 살아 있는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것이라는 점을 잊으면 다른 목적들도 충족될 수가 없다. .. 인간으로서 우리는 누구나 두 개의 세계에 산다. 먼저 당신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당신이 오기전부터 있었고 당신이 떠난 후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사물, 사건, 다른 사람들로 이뤄진 당신 주변의 세계다. 또 하나의 세계는 당신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는 세계다. 당신 자신의 생각, 감정, 지각의 사적인 세계, 즉 당신 내면의 세계다. 이 세계는 당신이 태어나는 순간 탄생됐고 당신이 숨을 거두는 순간 소멸된다. 우리는 우리 내면의 세계를 통해서만 우리 주변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다시 말해 감각과 생각을 통해 주변의 세계를 지각하고 분간하면서 비로소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100



원칙적으로 노스 스타는 학교에 다니고 있지만 절망을 느끼고 학교에 가기 싫어하는 십대들을 위한 곳입니다...

사람을 그냥 내버려주는 것, 스스로 선택하게 해주는 일에는 뭔가 심오함이 배어 있어요. 

이제 저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제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를 물어봅니다. 아이들도 아직은 잘 모르기 때문에 답을 찾기 위해 갖가지 시도를 해봐야 합니다. 그중 하나가 모든 것에 '아니요'라고 말하며 삶을 철저히 비워낸 다음 한동안 아무것도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방법이에요 해보면 정말 재미있습니다.  107-108


켄과 노스 스타는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학습 방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 아이들 모두를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칠 수 없으며, 가장 잘 맞는 학습 방법으로 가장 흥미를 느끼는 것을 가르쳐 줄 때 학생들은 비약적으로 도약한다는 것을 잘 안다.  109


어떤 상황을 혁신시키려면 세 가지를 이해해야 한다. 현재의 방법에 대한 비평, 바람직한 모습에 대한 비전, 다른 방향으로 이동할 방법에 대한 변화론이다.  111


핀란드의 모든 학교는 의무적으로 예술, 과학, 수학, 언어, 인문과학, 체육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하고 균형 잡힌 커리큘럼을 따라야 하지만 그 수행 방법에 관해서는 학교와 교육구에 상당한 재량권이 주어진다. 핀란드에서는 학교들이 실용적 프로그램, 직업훈련 프로그램, 창의성 양성에 높은 우선순위를 둔다. 또한 교사들의 훈련과 발전을 위해 그동안 막대한 투자를 해왔소 덕분에 교직은 위상이 높고 안정적인 직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학교 교장들은 학교 운영에 폭넓은 재량권을 갖는 한편 전문적인 지원도 받는다. 핀란드는 학교와 교사들에게 경쟁보다는 협력을 장려하면서 자원, 아이디어, 전문 지식을 서로 공유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학교들이 지역 공동체와 학부모를 비롯한 학생의 다른 가족들과 긴밀한 유대를 맺도록 장려한다.

핀란드는 모든 국제적 평가에서 꾸준히 높은 표준 성취도를 보이고 있지만 고등학교 말에 딱 한 번 실시되는 시험 말고는 표준화된 시험이 없다.  113-114


교육은 산업적 제도가 아니라 유기적 제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116




아이들의 타고난 학습 능력은 얼마나 대단할까? 수가타 미트라는 1999년에 이 의문을 풀기 위해 뉴델리 빈민가에서 실험을 실시했다. 그는 벽에 컴퓨터를 설치하고 전원을 켜서 인터넷을 연결해놓은 다음 아이들이 이 컴퓨터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봤다. 그곳 아이들은 모두 컴퓨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웹브라우저는 아이들이 알지도 못하는 언어인 영어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컴퓨터 다루는 법을 아주 금세 뚝딱 배우더니 자기들끼리 서로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게임을 하고 자기들만의 음악을 녹음하고 능숙하게 인터넷 서핑을 즐겼다. 당시에 트위터가 있었다면 그 달 만쯤에는 아이들에게 50만 명의 팔로워가 생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수가타는 더 야심찬 실험을 시도했다. 이번엔 컴퓨터에 음성-문자 변환 프로그램을 설치한 후 텔루구족 억양이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 인도 아이들에게 주었다. 아이들은 컴퓨터에게 자신들의 말을 해독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요령을 몰랐다. 수가타는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 뒤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주고 떠났다가 두 달 뒤에 다시 찾아갔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컴퓨터가 이해하도록 프로그램돼 있던 영국의 억양에 맞춰 자기들의 억양을 교정한 상태였다.

얼마 후에 수가타는 인도 타밀어를 말하는 12ㅅ의 아이들이 영어로 생물공학을 독학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번에도 그는 두 달의 시간을 주었고 그 자신조차 결과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저는 이렇게 생각했죠. '가서 시험을 보게 하면 당연히 0점을 받겠지. 교재를 주고 나중에 다시 가서 시험을 봐도 똑같이 0점이 나올 거야. 그러면 나는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생각하겠지. 경우에 따라서는 교사가 필요하다고.'

두 달 후에 다시 가봤더니 26명의 아이들이 아주 아주 얌전한 표정으로 걸어왔어요. 제가 먼저 물었어요. '그래, 좀 봤니?' 아이들은 이렇게 대답했죠. '네, 봤어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니?' '아니요, 전혀요.' '그랬구나, 얼마나 연습하다가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매일 봤어요.' '두달 동안 아해도 안 되는 내용을 계속 봤다고?' 그 말에 한 여자아이가 손을 들더니'DNA 분자의 부적절한 복제가 유전병을 유발한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이해를 못했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수가타는 정말로 많은 아이들이 효율적인 도구만 주어지면 혼자서도 학습할 수 있다는 증거를 그뒤로도 계속 발견하게 되었다.  134-136


아이들이 이처럼 타고난 학습자라면 학교에서 잘 따라오지 못하고 쩔쩔매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 걸까? 학교 공부에 지루해하기만 하는 아이들은 왜 또 그렇게 많을까? 여러 면에서 볼 때 학교에 만연된 제도와 관습이 문제다.  136


현재의 학업은 크게 세 요소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는 철학자들 사이에서 이른바 '명제적 지식'으로 통하는 지식, 이른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미국의 독립선언서가 1776년에 서명됐던 사실이 이런 명제적 지식의 예에 해당된다. 두 번째 요소는 개념, 절차, 가정, 추측 등의 이론적 분석의 강조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와 자유의 본질, 운동의 법칙 소네트의 구조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세 번째 요소는 손재주, 신체적 기술, 눈과 손의 협응 능력, 도구의 사용 등이 수반되는 기술적이고 실용적이며 응용적인 공부 보다는 주로 읽기, 쓰기, 수리가 수반되는 책상머리 공부의 강조다. 

명제적 지식은 때때로 '노잉 댓(knowing that: 방법을 아는 것-옮긴이)'와 구별된다. 절차적 지식은 뭔가를 만들고 실질적 일을 할 때 활용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릴 줄 몰라도 미술사를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악기를 연주할 줄 몰라도 음악 이론을 학문적으로 공부할 수는 있다. 미술 활동이나 음악 활동도 사실상 공부해야 할 부분이 있으므로, 방법을 아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을 아는 것도 필요하다. 절차적 지식은 공학에서부터 의학과 무용에 이르기까지 모든 실용적 분야에서 필수적이다. 사람에 따라 학문적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특정 분야의 학문에 열정을 느끼기도 하며 아이디어와 기술의 실용적 응용에 흥미를 느끼면서 특정 실용 분야에 열정을 갖기도 한다.  137-138


모든 학생에게는 학문적 공부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138


우리의 학교제도를 떠받치는 조직적 의식과 지적 습관이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적절히 반영해주지 못하는 탓이다.

단지 이런 식의 제도에 잘 맞지 않을 뿐인데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거나, 자신이 별로 똑똑하지 못하다거나, 학습에 결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다.  139


가족의 지지는 받았지만, 온전한 관심은 받지 못한..  142


개인 맞춤형 교육이란 어떤 교육일까?

 - 인간의 지능이 다양하고 다각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 학생들이 자신만의 특별한 관심사와 장점을 살릴 수 있게 해주기.

 - 시간표를 학생들의 저마다 다른 학습 속도에 맞춰주기.

 - 개인별 진도와 성취도를 격려해주는 방식으로 학생들을 평가하기.  147


우리 인간은 다른 종들처럼 세상을 직접적으로 살지 않는다. 즉 인간은 세상을 개념과 가치라는 틀을 통해 바라본다. 세상에 대한 개념과 이론을 세우고 그에 따라 세상을 해석하며 그에 따라 스스로나 서로를 바라본다. 이런 상상과 창의성은 지구상의 다른 생물과 인간을 구별짓는 몇 가지 안 되는 특징이지만, 바로 그 특징이 큰 차이를 만들어낸다.  148


집에 새 가전기기를 들여놓고 모든 가족에게 작동법을 알아내보라고 하자. 당신의 배우자는 바로 제품 사용설명서부터 들여다보고, 한 아이는 온라인에 접속해 그 기기와 관련된 유튜브 동영상을 검색하고, 또 다른 아이는 기기를 켜서 무작정 조작해볼지 모른다 이처럼 새로운 물건을 터득하는 방식이 제각각인 것은 각자가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렇게 제각각인 모든 사람을 똑같은 방법으로 그것은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비효율적이다.  153-154


개개인의 학업성취도를 높이려면 학생들을 개개인으로서 수업에 참여시켜야 한다.  155


느린 교육 운동의 핵심은 어떤 방식이건 학습 과정을 개별화시키고 학습자에게 자신의 열정과 장점을 발견할 여지와 시간을 허용해주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느린 교육 운동에서는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진심 어린 학습이 중요합니다. 교사와 학습자의 참여의 질이 학생을 재능과 시험 성적만으로 판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이 포인트예요."  159


여러 형태의 놀이는 삶의 모든 측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놀이의 추방은 표준화교육이 밎은 대비극 중 하나다. 

생물 진화적 관점에서 놀이를 연구해온 보스턴대학교의 심리학 연구교수 피터 그레이에 따르면 아이들은 다른 책임들에 얽매이지 않으면 다른 포유동물과 비교해 훨씬 많이 놀며, 이런 놀이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얻는다.  160-161


피터 그레이는 "아이들은 본래부터 어른의 간섭 없이 혼자 힘으로 놀고 탐험하도록 태어난 존재다. 아이들이 성장하려면 자유가 필요하다. 자유가 없으면 괴로워한다. 자유롭게 놀고 싶은 충동은 기본적이고 생물학적인 충동이다."

그레이 박사의 말마따나 자유로운 놀이의 결핍은 음식, 공기, 물의 결핍처럼 육체를 죽이지는 않는다 해도 영혼을 죽이고 정신적 성장을 방해한다.

"자유로운 놀이는 아이들에게 학습 수단이다. 자유로운 놀이를 통해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삶을 전반적으로 통제하는 요령을 배운다. 또한 놀이를 통해 자신이 자라는 문화에서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신체적, 지능적 기술을 연습하고 습득하기도 한다. 그 무엇을 해준다 해도 빼앗은 자유를 보상해줄 수는 없다. .. 아이들이 자유로운 놀이 속에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들은 다른 식으로는 가르칠 수 없는 것들이다."  162-163


'지름길은 없다'

"제가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면 저 자신이 가장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좋습니다."  169


정규 교육의 3대 요소는 커리큘럼, 지도, 평가다. 대체로 표준화운동은 커리큘럼과 평가에 초점이 집중돼 있다. 지도는 표준을 전하는 역할쯤으로 치부되고 있다. 우선순위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커리큘럼이 얼마나 상세한지, 시험에 얼마나 비용을 들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교육 혁신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지도의 질이다.  172


표준화운동은 교사들에게 서비스직 종사자의 역할을 맡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교사들이 택배기사나 되는 듯이 표준을 '배달'하는 역할에 치중돼 있다.  173


아이들이 타고난 학습자라면 굳이 교사들이 필요할까? ..

교육은 살아 있는 과정으로서 농업이 가장 적절한 비유가 된다. 농부들은 자신들이 식물을 자라게 해주는 것이 아님을 안다. 농부들이 식물에 뿌리나 잎사귀를 붙여주거나 꽃잎에 색을 칠해주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식물은 스스로 자란다. 농부가 할 일은 식물이 스스로 자랄 최적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174


아이들은 원래 호기심이 많다. 학습 의욕을 자극하려면 아이들의 호기심을 북돋워야 한다. 질문 중심의 실용적인 지도법이 큰 효과를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련한 교사는 학생들이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의문을 품도록 자극해서 탐구 의욕을 부추긴다.  181


학생들은 유대감을 주는 교사를 필요호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믿어주는 교사를 필요로 한다.  184




커리큘럼은 정규 커리큘럼과 비정규 컬리큘럼으로 구분되는데 정규 커리큘럼은 의무적인 과정인 만큼 시험을 치르고 평가받는 절차가 수반된다. 비정규 커리큘럼에는 모든 자발적 활동이 포함된다. 

커리큘럼의 목적은 학생들이 배워야 할 내용들에 대해 일종이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커리큘럼에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학교들이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지, 모든 구성원의 시간과 공간의 이용을 어떻게 배열할지를 결정하는 데도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217


내 생각에 교육의 4대 기본 목적에 비추어 학교가 정말로 학생들의 성공적 삶을 돕고 싶다면 여덟 가지 핵심 능력을 개발해 주어야 한다. 

 - 호기심(curiosity)

   인간이 이뤄낸 성취는 탐구하고 시험해보고 싶은 욕망,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고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욕망, '왜'라는 의문과 '만약'이라는 의문을 풀고 싶은 욕망이 그 동력이다.

 - 창의성(creativity)

 - 비평(criticism)

   비평적 사고는 형식논리만으로 갖춰지는 능력이 아니다. 의도의 해석, 맥락의 이해, 감춰진 가치와 감정의 간파 동기 판단, 편견 간파, 간결하고 타당한 결론 제시 등도 갖춰야 할 능력이며 이 모두는 연습과 지도가 필요하다.

 - 소통(communication)

   우수한 읽기, 쓰기, 산술 능력. 이와 더불어 분명하고 자신 있게 말하는 능력,, 일명 '구술 능력(oracy)' 역시 중요하다.

 - 협력(collaboration)

   학교 밖에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 능력이 지역 공동체를 강화시키고 집단적 도전에 맞서는 데 중요한 요소다... 청소년에게 협력 능력을 키워주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호기심이 자극되며 창의성과 성취도가 긍정적인 사회적 행동이 촉진 된다.

 - 연민(compassion)

   연민의 뿌리는 감정이입이다. 단순한 감정이입만은 아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대접하라'는 황금률을 실제로 표현하는 것이다. 감정이입의 실천이기도 하다.

 - 평정(composure)

 - 시민성(citizenship)

   청소년이 사회의 작동 방식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특히 법적, 경제적, 정치적 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그런 제도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 시민성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획일성과 현상 유지가 아니다. 그보다는 평화롭게 살기 위해 동등한 권리, 의견 차이의 가치, 자신의 자유와 타인의 권리 사이에서 균형잡기 등을 장려해야 한다.  222-230


학교의 커리큘럼 구상에 관해 나는 학과라는 개념을 훤씬 선호한다. 학과는 이론과 실용이 조합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231-232


내 견해로는 균형 잡힌 커리큘럼이 되려면 예술, 인문, 언어, 수학, 체육, 과학에 대해 공평한 자격과 자원을 부여해야 한다.  232


표준화시험이 교육의 주된 책무가 되면 커리큘럼을 정하고 지도의 초점을 맞추는 기준으로서 시험을 활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교과목의 테스트 방법은 교과목을 가르치는 방법의 모델이 됩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학교가 시험 준비 프로그램으로 전락하는 셈이죠."  260


시험을 강조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타고난 창의성과 모험가적 재능을 어떻게 활용할지 가르쳐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61


전체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험 성적이 좋지 못할 것 같은 학생들을 낙제시킬 소지도 있다.  262


평가란 학생들의 발전과 성취의 정도를 판단하는 과정이다. 내가 <내 안의 창의력을 깨우는 일곱 가지 법칙>에서도 주장했듯이 평가는 서술과 평가의 두 가지로 나뉜다. 어떤 사람이 1마일(약1.6km)을 4분 만에 달릴 수 있다거나 불어를 말할 줄 안다고 하면, 이것은 그 사람의 실력에 대한 중립적 서술이다. 반면 어떤 여학생이 그 교육구에서 달리기를 가장 잘한다거나 원어민 뺨치게 불어를 잘한다고 말할 경우에는 평가가 된다. 평가가 서술과 다른 점은 개인의 실력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특정 기준에 대비해 판단한다는 것이다.

평가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우선 진단적 역할을 해서 교사가 학생들의 적성과 발달 수준을 파악하게 해준다. 또한 발달 형성적 역할을 통해 교사가 학생들의 공부와 활동에 대한 정보를 모아 발달을 북돋우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학업 프로그램 말기에 전반적 수행 능력을 판단하게 해주는 총괄적 역할을 한다. 

문자와 성적을 활용하는 평가제도의 문제는 대체로 서술의 비중이 약하고 비교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때때로 그 의미도 잘 모른 채 성적을 받고 교사들은 때때로 그 이유를 확신하지 못한 채 성적을 매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단 하나의 문자나 숫자로는 복합적 평가를 총괄적으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 또한 문제다. 게다가 일부 성과는 이런 식으로는 적절히 표시할 수가 없다. 저명한 교육자 엘리엇 아이즈너(Elliot Eisner)는 말했다.

"중요한 것이라고 해서 모두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측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서 모두 중요한 것은 아니다."  272-273


실질적 학습은 상당히 다루기 힘든 일이다. .. 학교의 주된 초점을 성적이 아니라 학습에 맞추려면 학습과 사람들을 숫자로 전락시키지 못해 안달하는 강박을 버려야 한다.  274


현재 전세계적으로 몇몇 교육구들이 문자와 숫자로 표시되는 성적을 폐지하고 보다 통합적인 평가 방식을 채택하는 시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283


학교에서 쩔쩔매는 학생들이 그렇게 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이 개인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생들 특유의 장점이 발견되지 못하거나 고려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의 깊게 살펴보는 부모라면 담임 교사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들보다도 자신의 자녀를 더 잘 알기 마련이다.  326


인생은 일직선이 아니다  327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참여는 사회경제적 위치나 문화적 배경과 상관없이 동기부여와 성취에 직결된다. <증거의 새로운 물결>에 따르면 부모가 "아이들과 학교 문제를 얘기하고, 아이가 잘할 거라고 기대해주고, 대학 진학 계획을 도와주고, 과외 활동을 건설적으로 하도록 확인해주면 아이들은 학교에서 더욱 실력 발휘를 한다.  328


홈스쿨링은 지난 수년 사이에 탄력을 얻으면서 한때는 별난 사람들의 전유물로 취급됐으나 이제를 주류로 들어서고 있다. 미국 교육부에 따르면 2011~2012학기에 학령기 아동의 약 3퍼센트가 홈스쿨링을 받았다고 한다. 홈스쿨링을 매력적 대안으로 선택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 중 한 가지만 들어보면, 앞에서 교육의 개인 맞춤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뤘던 여러 가지 문제를 홈스쿨링이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즉 표준화시험에 매달리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가장 끌리는 열정과 관심사를 발견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학습의 해>에서 저자 퀸 커밍스는 그녀의 딸 앨리스에게 홈스쿨링을 했던 체험담을 풀어놓았다. ' .. 딸이 지성을 한껏 과시하며 자신감을 펼치길 바라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딱히 가야 할 곳도 할 일도 없이 멍하니 긴 우호의 따분함을 기분 좋게 즐기기도 바랐다.'  346-347




"저는 아이들이 세 유형으로 나뉜다고 봅니다. 먼저 기술의 수동적 소비자형이 있어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그런 프로그램을 소비만 할 뿐, 기술은 이해하지 못하는 유형이죠. 그다음으로 똑똑한 소비자형이 있어요. 분별력 있게 웹을 활용할 줄 아는 아이들이죠. 기술에 대해 더 잘 알지만 실천은 하지 않아요. 마지막 유형은 생산자형 아이들이에요. 오픈소스 활용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유형이죠. 아이가 창의성을 갖길 바란다면 프로그램 짜는 요령을 가르쳐줘야 해요. 컴퓨터가 없는 아이에게 컴퓨터는 정보기술 외 다른 학습으로의 활용 면이나,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면으로 활용도가 뛰어난 기구예요."  371


창의성의 풍토를 촉진시키기 위해 활용하는 한 가지 방법은 모든 관련자들을 찬찬히 살피며 "어떤 제안거리가 있는지 알아주고,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저마다의 독특한 재능을 발견해주면서 성장을 유도해주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도 있다.  376




나오는 글 - 모든 사람을 위한 혁명


마리아 몬테소리는 의사이자 교육자였다... 다음과 같이 개인 맞춤형 교육을 강조했다. "교사는 아이가 흥미를 갖는지 안 갖는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 어떻게 관심을 보이고 얼마나 오래 관심을 보이는지 관심을 기울이며 얼굴에 드러난 표정까지도 잘 살펴봐야 한다. 교사는 자유의 원칙을 어기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아이에게 부자연스러운 활동을 부추길 경우 아이의 자연스러운 활동이 뭔지를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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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25일 비즈니스 카페 재팬이 주최한 최고경영자 모임에서 있었던 강연입니다. 비즈니스 카페 재팬은 나의 오랜 친구 히라카와 카츠미가 설립한 회사로, 컨설턴트를 주 업무로 하고 있습니다.  21



1. 공부로부터 도피하기


교육 받을 기회로부터 스스로 달아난다는 말은 머지않아 '하류사회'로 계층이 내려가는 것을 뜻한다.  25


학령기 자녀를 둔 어른들은 무의적으로 자기 자식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의 학력이 내려가면 자기 아이에겐 이익이 된다는 기대감을 자기고 있다. 그런 무의식적인 욕망이 아이들의 학력저하를 심리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31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잠시 보류해 둠으로써 지성이 활성화되는 인간적인 기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인상을 받는다.  36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모른다'는 것보다 이처럼 '모르는 것이 있어도 개의치 않는 '것이 위기의 징후로 여겨진다.  37


의미를 몰라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다.  38


어두운 밤 갑판 위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항해사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바다 위에 떠 있으면 긴장한다. 하지만 만약 시야게 들어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투성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상황에서는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또 하나 새로 등장한다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40


'최근 우리는 하나에서 열까지 돈이 들어가는 생활을 처음으로 경험한다.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각종 미디어에서 정보가 들어오는 생활도 처음이다. 돈이 돈을 낳는 경제구조 속에 완벽하게 말려들어가 있다. 아이들이 일찍부터 '자립'의 감각을 체득하는 것도 이러한 경제 사이클 속에 깊숙이 들어가 있어 '소비주체'로서의 확신을 갖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현재의 경제 구조가 보내오는 메시지를 여과 없이 곧바로 받고 있다. 학교가 오늘날의 사회를 가르치고자 '생활주체'나 '노동주체'로서의 자립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들은 어엿한 '소비주체'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있다. 이미 경제적인 주체인데 학교에 들어가면 새삼스레 교육의 '객체'가 된다는 것은 아이들 입장에서 내키지 않는 일일 것이다.' 스와 테츠지 <왕자와 공주가 되어가는 아이들>

이 부분은 내가 최근 십년 동안 읽었던 교육 관련 글 중에서 가장 계몽적이다. '아이들은 이미 취학 전에 소비주체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있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과 삼십 년 전 아이들 사이에 가장 큰 차이점은 처음 사회관계에 들어설 때 노동을 통해 들어가는가, 소비를 통해 들어가는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벌써 사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우리들이 어렸을 때 사회적인 활동은 먼저 노동주체로서 자기를 세우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사회적으로 무능력한 어린아이가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사회적 인정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가사노동이었다. 식사가 끝난 후 밥그릇을 부엌까지 갖다놓거나, 마당을 쓸거나, 화초에 물을 주거나,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거나,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놓거나, 이처럼 가정에는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있었다. 부모는 당신들이 분담해야 할 가사노동을 아이들이 적게나마 줄여주니까 당연히 "고맙다"거나 "참 잘했어" 하고 칭찬해준다. 아이들은 그 칭찬이 기쁘고 자랑스럽다.

아이들이 가족이라는 최초의 사회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유용한 구성원으로 인지되기 시작하는 것은 가사노동을 분담하면서부터이다. 작지만 가족에게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감사와 인정을 보상으로 획득하면서 어리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다져간다. 이러한 데서 예전에 아이들은 사회화 과정을 밟아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좀더 자라면 가사노동에 머물지 않고 바깥 사회활동에도 참가하는데, 타인에게 뭔가 도움되는 일을 하면서 그에 대한 감사와 사회적 승인이라는 대가를 받는 교환 행위를 통해 자기 정체성의 기초를 만들어간다는 점에서는 가사노동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노동의 작은 분담자로서 사회관계 속에 자기를 등록하면서 아이들은 먼저 노동 주체로 자기를 세운다. 아니 이렇게 하는 것 말고는 달리 자기를 세울 방법이 없었다. 적어도 196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아이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노동주체로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은 사뭇 다르다. 지금 아이들은 노동 주체라는 형태로 사회적 인정을 받아 스스로를 세울 수 없다. 그럴 기회를 구조적으로 빼앗겼다.

둘러보면 오늘날 가사노동 자체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남은 가사 일이라는 것도 그리 생산적인 일이 아니다. 가령 청소나 빨래처럼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집안이 엉망이 되어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노동은 남아 있지만, 그 일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거나 성취감을 얻거나, 또는 사회성을 기르고 자연스레 학습과 연결되는 일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개를 산책시키고 화초에 물을 주고 풀을 뽑는 일상적인 일들은 자연과 연결되는 일로, 많든 적든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있었지만 이제는 가정에서 그런 일을 찾기가 힘들다. 부모들 입자에서는 아이들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도 일거리가 없어서 가사노동을 시킬 수가 없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가사노동 분담이라는 작은 선물을 할 수도 없고, 가정이라는 시스템에 작게나마 자신도 공헌하고 있다는 기쁨을 누릴 기회도 없다. 

오히려 지금의 아이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다. 아이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자체가 집안 질서를 어지럽히는 요소여서, 가능하면 그들에게 할당된 공간 안에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공헌이 되었다. 이런 가정이 매우 많다고 본다. "됐으니까 너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줄래!" 하는 엄마들의 화난 목소리는 요즘 다든 익숙할 정도로 많이 듣는 거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금지는 우리들이 어렸을 때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어린아이의 미약한 도움일지라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고, 그 고사리 같은 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었다. 일본 속담에 '고양이 손이라도 비리고 싶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바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부탁할 만한 생산 활동이 거의 없어졌다. 반면에 아이들의 소비활동은 아주 이른 시기부터 촉발된다.  48-51


한 사람 몫으로 사회관계의 장에 등장하는 경우, 만일 그가 네 살짜리 어린아이라면 그를 교섭 상대로 대등하게 대우해줄 어른은 없다. 하지만 돈을 쓰는 사람으로서 등장한다면 그 사람의 나이나 식견, 사회적 능력 따위의 속인적 요소는 기본적으로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쓰는 돈이 얼마인지가 중요하지, 돈을 쓰는 자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고려하지 않는다. 바로 이것이 '돈의 투명성'이라는 특권적 성격이다. 사회적 능력이 거의 제로에 가까운 어린아이가 여기저기서 쥐어주는 용돈을 가지고 소비주체로 시장에 등장할 때 처음 느끼는 소감은 '법을 뛰어넘는 전능함'일 것이다.  52-53


* 니트(NEET) : 용국 정부가 노동정책상 인구 분류로 정의한 용어로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의 약자이다. 교육을 받지 않고, 노동을 하지 않고,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니트는 일반적으로 '일할 의욕이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63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해라" 또는 "학원이나 가라"는 요구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국영수 학원에 가거나 예체능 학원에 간다. 그리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면 지쳐 말할 기운도 없고, 가족들을 신경 쓸 여력도 없다. 그저 온몸으로 피로와 불쾌함을 표현함으로써, 아이도 아이 나름대로 주어진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엄마 아빠가 그렇듯이 자신도 충분히 기분이 언짢은 상태라는 것으로, 자신도 불쾌함을 견디고 있고 따라서 집안에 보탬이 되고 있음을 과시한다.

가족 중에서 '누가 가장 집안에 보탬이 되는가'를 '누가 가장 기분이 나쁜가'로 측정한다. 이것이 현대 일본 가정의 기본 규칙이다.  65


'시장 원리를 기초로 할 때 배움은 일어나지 않는다'  68


배움이란 자기가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모르고, 그것이 어떤 가치와 의미와 유용성을 갖는지도 말할 수 없는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71


자신의 유아적 욕망을 가슴에 품고, 결코 성장하거나 변화하지 말고 그저 소비주체로 안주할 것. 시장원리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존재하길 요청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을 외계의 변화에 적응해 살아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77


30센티미터 자로 잴 수 없는 것들, 예컨대 무게나 빛, 탄력 같은 것들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가진 거라곤 30센티 자밖에 없어 오로지 그 잣대로 세상의 모든 것을 계량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어린아이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겠는가?  82




2. 리스크 사회의 약자들


얼마만큼 노력하면 얼마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노력과 성과의 안정적인 관계가 붕괴하기 시작한 것, 이것이 리스크 사회의 특징이다.  89


리스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생존 전략의 선택에 따라서 양극화는 더욱 진행된다.  90


리스크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이것이 국민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라고 정부틑 선언하고 있음에도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위정자와 교육행정 책임자, 대중매체 지식인들은 '리스크를 제거하라'고만 가르치지, 어떻게 '리스크를 방어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중앙교육심의회의 답신이나 교육학자의 제언 중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리스크 헤지 방법을 교육할 것인가'를 다룬 내용을 본 적이 없다. 리스크 사회가 도래했다고 경종을 울리면서 아무도 '리스크를 헤지하는 법'을 국민들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105


우리들은 지금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실업을 당해도, 노숙자가 되어도, 병이 들어도 모든 것이 이러한 리스크가 있는 삶을 선택한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은 리스크란 개인적인 것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왜냐하면 리스크 헤지는 자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05-106


중국인은 자식들을 일본이나 미국, 호주 등지로 뿔뿔이 유학을 보내 그곳에서 사업을 하게 한다. 어느 한쪽이 전쟁이나 공황으로 재산을 잃거나 인종박해로 추방을 당해도 다른 나라에 있는 친족이 지원하거나 받아줄 수 있도록 안전망을 쳐놓는다. 이것은 역사적 경험 속에서 갈고닦은 리스크 헤지의 기법이다. 

유대인도 마찬가지다. 로스차일드 재벌의 창시자 마이야 로스차일드는 다섯 명의 아들에게 유럽 네 도시에 은행을 열게 했다. 장남은 창업지인 프랑크푸르트 본점에 남겨두고, 둘째는 빈, 셋째는 런던, 넷째는 나폴리, 다섯째는 파리에 지점을 열게 했다. 그로부터 2백년이 흐르는 동안 본저모가 나폴리 지점은 폐업하고, 빈 지점은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할 때 망했다. 하지만 런던 지점과 파리 지점은 살아남아서 일족의 이름을 현재까지 전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과 두 차례에 걸친 유럽 대전에서도 살아남았기에 이것이야말로 리스크 헤지의 교과서 같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들에서 알수 있듯이, 리스크 헤지는 '살아남기'를 목표로 집단이 합의한 계획에 따라서 행동하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그러므로 '개인이 리스크 헤지를 하고, 발생한 리스크에 개인이 대처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개인이 리스크 헤지를 한다는 것은 원리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리스크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들은 '살아남는 것을 집단의 목표로 내걸고 상부상조하는 집단에 속한 사람들'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스크 사회를 살아간다'는 의미는 항간에서 이야기하듯 '자기가 결정하고 그 결과도 혼자서 책임진다'는 원리로 사는 게 결코 아니다. 자기가 결정하고 결과도 자신이 책임지라는 말은 리스크 사회가 약자에게 강요하는 삶의 방식(또는 죽음의 방식)이다.  107-108


고립된 아이가 혼자서 학교라는 시스템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자기 가치관을 학교 시스템에 대등한 것으로 대치시킨다. "이것을 왜 배워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이댄다. 스스로 배울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지 못하면 아이는 배움을 거부한다. 이것이 자기결정이다. 배우지 않음으로써 초래되는 리스크를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사칙연산을 못하고, 알파벳을 모르고, 한자를 못 읽는다. 흥미 있는 영역에 대한 사소한 지식은 있을지라도 흥미가 없는 분야는 아예 모른다. 벌레가 파먹은 듯 의미의 구멍이 숭숭 뚫린 세상이 별로 불쾌하지 않다는 듯 살고 있다. 이렇게 아이들은 계층 하강의 리스크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115


오늘날의 교육 문제는.. 아이들이 나태해서 초래된 결과가 아니라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이다. 학력저하가 아이들의 나태와 주의산만의 결과라면 그 보정은 교육기술 차원의 문제에 지나지 않지만, 현실에서 상당수의 아이들이 학습을 포기하고 공부로부터 도피하는 데서 자신감과 성취감을 얻는다면, 그리고 그 수가 계속 늘어난다면, 이 문제는 교육기술이나 방법을 바꾸는 식의 기술적 차원으로는 해결하기 힘들다. 사회 전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이는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보이지 않는다.  120-121




3. 노동으로부터 도피하기


젊은 회사원에 대한 얘기다. 평소 그의 일솜씨를 높이 평가한 상사가 새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어보라고하자 그는 그 길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으면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자기 일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가지결정권에 대한 고착이다. 자기가 결정한 것이라면, 그 결정이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불이익을 초래할지라도 상관없다. 일종의 '자기결정 페티시즘'이다.  125


선택을 강제하면서 선택한 것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것을 강요한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조리하다.  128


니트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문제화된 사회현상이다. 하지만 일본의 니트 문제는 영국의 경우와는 많이 다르다. 영국은 전형적인 계급사회여서, 하층계급 사람들은 취학 기회나 취업훈련 기회에서 불이익을 받고 있다. 학습 의욕은 있지만 사회적으로 상승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이민을 대량으로 받아들인 사회에서 이민자의 아이들은 교육 기회와 문화자본에서 구조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파리 근교에는 HLM(저가 임대 주택)이라는 거대한 주택단지가 있다. 그곳에는 이민자를 비롯한 빈곤층 주민들이 지리적으로 격리되어 살고 있다. 예전에 이런 교외지역에서 중학교 교사를 하던 프랑스 여성에게 들었는데, 이런 거대 단지에는 도서관이나 미술관, 책방, 극장, 콘서트홀 같은 문화시설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문화를 접할 기회가 없다고, 설령 예술적 재능이 있다 해도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기회 조차 없는 셈이다. ..

유럽의 니트는 계층화의 한 증상이다. 사회적 상승 욕구가 있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일본의 니트는 유럽과 사뭇 다르다. 사회적 상승의 기회가 열려 있느넫도 아이들이 스스로 그 기회를 포기하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본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자진해서 차별적인 사회구조를 강화하는데 가담하는 방법으로 계층화가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 약자가 자신의 사회적 입장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세계에서도 예외에 속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129-130


공교육의 이념은 유럽의 시민혁명기에 제창되었지만, 일찍이 제도적으로 정비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00년 당시 미국 고등학교 (14세~17세) 취학률은 8.4%였다. 같은 시기 유럽에서 중등하굑 취학률은 3.8% 미만이었다. 그보다 반세기 전 1840년에 초등학교 취학률은 미국 전국 평균이 38.4%였다. 단, 이 경우 '취학자'는 단 하루라도 학교에 갔던 사람까지 포함하고 있고, 당시 미국의 보통학교 개강일은 연간 40일 정도였다(카리야 타케히코 <교육의 세기>)

근대의 초등교육 기관은 부모에 의한 사적 수탈과 지배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피난소'라는 공적 기능도 함께 수행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적인 공교육 사상을 기초로 한 일본 헌법에서는 교육받을 권리를 정한 제26조 다음에 '아동을 혹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제 27조가 따라온다. 헌법에 이러한 규정이 있는 것은 산업혁명 이후 근대 산업사회가 취학 기회를 갖지 못한 아동을 '저가노동'으로 혹사시켰던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고 있다.  131


지금 아이들에게 교육을 받는 것이 '권리'인지 '의무'인지를 묻는다면 아마 90%늬 아이들이 '의무'라고 답할 것이다. 이 대답에는 교육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강제하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그 의무를 위반하는 것을 일종의 정치적 이의제기'로 보는 시각도 성립한다....

'배움'이란 본시 아이들이 먼저 나서서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요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것을 고역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132


교육의 '권리'를 '의무'로 바꿔서 읽는 도착 행위가 일어난 이유는 경제적 합리성이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했기 때문이다.  133


노동에의 가치에 비해 임금이 낮은 것은 원리상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임금이란 노동자가 창출한 노동가치에 비해 항상 적다. 당연하다. 그렇지 않다면 기업이 이윤을 낼 수가 없고, 주주에게 배당도 할 수 없으며 설비투자도 불가능하고, 연구개발도 할 수 없다. 경제활동에 들어가는 자금은 모두 노동자로부터 '수탈'한 노동가치에서 조달된다. 노동자가 자신이 창출한 노동가치보다 더 적은 임금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경제의 기본 원리다. 여기서 발생한 잉여가 교환을 가속시키고, 그 결과 시장이 형성되고 분업이 이루어지며 계급과 국가가 생겨난다. 인간은 이런 방식으로 사회를 만들어왔다.  141-142


배움의 본질은 지식과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방법에 있기 때문이다.  155

 

졸업생은 '대학이라는 공장'에서 송출한 '제품'이며, 이 제품을 기업이 '매입'한다는 또 하나의 소비모델이 존재한다.  157




4. 이들을 어떻게 도울까


히라카와 : 지식은 일본에서도 활용할 수 있고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교환 가능성에 입각하여 표준화됩니다. 모든 것을 표준화해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앞에서 언급했던 '자기 찾기'가 꽤 화재를 모았는데, 모두가 표준화되면 이제 '나'라는 것은 없어집니다. 옆 사람과 나의 차이를 측정하는 도구로 경제적 잣대밖에 없다면, '자기다움'이란 애당초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가 붕괴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일한 척도인 돈을 양적으로 불려서 자기붕괴를 막고자 합니다.  168


우치다 : 아동학대 사례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만, 이 현상은 육아를 등가교환 관점에서 생각하는 습관이 낳은 피연적인 결과로 보입니다. 육아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엄마들은 육아를 긴 안목으로 생각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극히 짧은 안목으로 생각합니다. 아마도 육아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식은 자기가 만들어낸 '제품'이며, 부모의 서오가는 이 제품에 어떤 부가 가치를 덧붙이느냐에 따라 평가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서오가가 평가를 받으면 부모는 '육아의 성고'이라는 형태로 사회적인 자기실현을 다했다고 여깁니다. 회사가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의 매출이나 평가에 일희일비하는 것과 같은 심리입니다.  

처음에는 똥오줌을 가린다거나, 말을 한다거나, 걸을 수 있다는 식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 아이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 다음에는 영어를 구사한다거나, 피아노를 친다거나, 명문학교에 입학했다거나, 역시 눈에 보이는 형태로 아이들의 부가가치를 높이고자 합니다. 아이들에게 부가된 가치를 부모인 자식의 '사업' 성과로 가시적, 외형적으로 과시하려고 하는 한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 학력이나 자격과 같은 외형적으로 주위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누넹 보이는 성과' 이외의 것은 육아의 부가가치로 쳐주지 않습니다.

자식이 있으면 이해하시겠지만 본래 육아는 시간이 아주 많이 걸리는 일로, 육아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는 20년이 걸려도 잘 모르는 법입니다. 잘 모르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육아 노동의 성과를 1~2년안에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내 보이라고 압력을 가해서는 곤란합니다. 짧은 시간에 측정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부모들은 눈에 보이는 형태로, 수치화할 수 있는 형태로, 정량적인 형태로 육아의 서오가를 올리라고 재촉당하고 있습니다. 부모 스스로 이런 압력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을 느긋하게 기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종종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합니다. 또 가닭 모를 행동도 합니다. 이럴 때 "이 아이가 뭘 하는 걸까?"라며 아무 말 없이 그냥 바라보는 것이 옳은 양육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양육법은 오늘날 허용되지 않습니다. 

정시노가 의사에게서 들은 얘기인데, 사춘기 때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의 부모에게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아이가 "기분이 좀 나빠요"라거나 "이건 싫어요"같은 불쾌한 메시지를 발신할 때 부모가 이런 메시지는 선택적으로 배제해버립니다. 아이가 심신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정보는, 말하자면 '제품'이 소음을 내고 있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제품이 소음을 낸다는 것은 제품 공정에 하자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부모는 자신의 '육아 실패'라는 기호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니 귀를 막아버리는 것이지요. ...

아이들은 몸과 마음에 이상이 오면 위험신호를 보냅니다. 그런데 부모는 그 신호를 청취하면 자신의 육아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정하기가 싫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발신하는 '도와주세요'라는 신호에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립니다. 이렇게 둔감한 부모와 살고 있는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무너집니다. 

어린 아이들은 아직 자기가 느끼는 몸과 마음의 불쾌감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이 보내오는 위험신호가 도대체 무슨 뜻인지 잘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신호가 아니라 소음으로 들리니까요. 하지만 여기에서 부모가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바로 아이들이 발신하는 소음을 신호로 변환시키는 일입니다. 아이들과 긴 시간을 함게 지내다보면 어느 순간에 아이들이 내는 소음이 신호로 들리게 됩니다.

이것은 아이가 모국어를 습득하는 과저오가 똑같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지속적으로 해주는 의미 불명의 말들을 분절하여 해독함으로써 마침내 모국어를 습득합니다. 다시 말해 무의미하게 들리던 소음이 의미 있는 신호로 바뀌는 것이지요. 이건 흔히 말하는 커뮤니케이션과는 다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기초가 되는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을 일으키는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음을 신호로 변환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목숨을 건 도약'입니다.  169-172


전후 60년 동안 일본 사회는 약자의 안전망이었던 중간적인 공동체를 계속해서 무너뜨렸습니다. 지역공동체, 친족, 주종관계, 사제관계 전부 다 무너뜨렸습니다.  201


아이들이 노동주체로 출발할지 소비주체로 출발할지 학교에 들어가기전에 이미 결정됩니다.  211


요로 타케시(해부학자, 도쿄대 명예교수, 마음의 문제나 사회현상을 뇌과학, 해부학을 비롯한 의학, 생물학 영역의 다양한 지식으로 설명하는 저술 활동으로 폭넓은 독자층을 얻고 있다.) 선생님께서 "이제는 삶의 매뉴얼이 없는 시대여서 각자가 연구해야 합니다"라는 내용으로 1시간 30분 정도 강연을 하셨는데 한 질문자가 "선생님, 매뉴얼이 없는 시대에는 어떻게 살면 될까요?"라고 물어서 아연실색하셨다고 합니다. 저 역시 때때로 강연을 하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받는 적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도대체 내가 지금까지 한 이야기에서 무엇을 듣고 있었을까?"라고 말이빈다. 그런 사람은 그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이전부터 자신이 갖고 있던 틀 속으로 모두 집어넣으려고 합니다. 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 부분은 다 잘라버리고 자기 식으로 이해한 부분만 취합니다. 그래서 가끔 "내가 이런 사고방식은 좋지 않다"고 거론한 부분을 거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설이 있는데, 그런 건 경솔하게 말하는 게 아닙니다"라고 얘기했는데, 나중에 "좀 존에 선생님은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하면서 확인하러 옵니다. 그때 "아닙니다"라고 말하면 깜짝 놀랍니다. 자기가 동의할 수 있는 내용만 잘라서 듣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꾸 늘어나고 있습니다.  220


히라카와 : 체험교육이라고 할까 수련이라고 할까, 이런 전통적인 교육 기술을 통해 지금은 잃어버린 능력을 계발하는 방법을 어떻게 교육 시스템 안에 다시 한 번 프로그램화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가 지역사회에 합기도 도장을 연 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설계한 교육 프로그램에는 나름대로 확신이 있지만, 어떻게 이 프로그램을 누구에게든 적용할 수 있는 좀 더 보편적인 형태로 전개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계획이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일단 제자를 많이 길러내어 제 프로그램을 충분히 체험한 제자들이 도장을 열고 이를 통해 이런 내용을 널리 알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수 서당식 체인점 같은 방식으로 말입니다.  226-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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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루카스 요더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헌신적으로 도와준 아내, 그러면서도 전혀 짜증이나 불만의 기색을 안 비치던 아내였다.  19


책이 세상에 나왔다가는 곧 날개 찢긴 새처럼 퍼덕거리다가 죽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더욱이 네 번씩이나 그러한 고통을 경험하다니! 정말 불운한 세월이었다.  60


요즈음 책은 출판되기도 전에 성공을 보장받는 경우가 많다. 북 클럽, 영화, 텔레비전 연속극 등등, 이 모든 것들이 책의 성공을 보장해 주는 것들이다.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는 만큼 공정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미국 전역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다. 좋-지-않-다-.  61


사실 글을 쓸 때나 쓴 글을 수정할 때면 온 신경과 힘을 다써야..  126


6월의 한 주가 몽땅 아무 한 것도 없이 그냥 지나가 버리자 나는 <돌담>을 수정하는 데도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는데 과연 교정쇄나 제대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튼 나는 이용 가능한 시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열심히 작업은 계속했으며, 이따금씩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내 손놀림을 보고는 내 스스로 감탄까지 하곤 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이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권태롭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이번이 내 소설을 완벽에 가깝도록 고칠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떤 때는 글쓰는 일이 마치 무슨 지고한 영감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람 웃기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은 심정이 들기도 했다. 정말 글쓰기란 고된 노동인 것이다.  153


나는 엠마에게 원고가 인쇄기로 들어가 책으로 나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모든 작가는 다 처음 글을 쓸 때의 심정과 다를 바 없다고 일러주었다.  168






편집자 이본 마멜


문학 박사인 파인슈라이버 교수님은 내가 학교를 떠나던 그 슬픈 날 이렇게 말씀하셨다. "... 자네의 가슴과 정신에 이 거대 도시가 무료로 제공하는 풍성함을 받아들이게. 그러면 결국에 가선 자네가 우리 모두들보다 더 훌륭한 교육을 받을 셈이 될걸세."  180


나는 인파 한가운데 멈춰서서 중얼거렸다. "내가 이런 식의 삶에 묻혀 버릴 순 없어. 책의 세계, 사상의 세계가 있잖아.."  181


"영화와 책 둘다 중요합니다. 예, 중요하지요. 그렇지만 위대한 창작의 비밀을 파헤치려면 음악과 그림에도 관심을 쏟아야 할 겁니다."

"인생이 길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 많은 걸..."

"인간 노력의 최고 진수를 탐구하는 것. 그것 말고 삶의 진정한 의미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가 소설이라는 허구의 창조에 있어서 최고의 목표라고 설파한 것은 참다우면서도 온당한 인물의 창조였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의 창조란 온갖 역경 속에서 그 인물이 겪게 되는 정신적 변호를 여실하게 그림으로써 당성된다고 그는 믿었다. "소설은 곧 성장을 보여 주는 겁니다." 그는 몇 번이고 이 말을 강조하였다.  203


"전 소설이 진정 무엇인지 어렵게 어렵게 배웠어요. 조김스럽게 선택된 약6만 개 정도의 단어들. 그것들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종이 위에 옮겨 놓지 못한다면 소설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요."  262


나의 두 남자, 래트너와 요더 씨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때면 요더 씨는 칼럼니스트들이 말하듯 [출판계에 부를 모아다 주는 작가]이며 가장 확실하게 성공을 보장해 주는 작가이지만 사실 그가 쓰는 소설들에서 지적인 만족을 느낄 수는 없었다. 그의 그렌즐러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유제품 제조 판매소>에 대한 그의 구상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따분만 것이었다. 똑같은 공식에 똑같은 인물들, 펜실베이니아 독일인들에 관한 매력적이긴 하나 똑같은 내용들, 그리고 거의 변함이 없는 우스꽝스러운 방언들의 흩뿌림. 그런 소설이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가 소설을 쓴다고 해서 그 소설이 이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인지 그것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에반 케이터 교수와 베노래트너가 설파한 소설에 대한 이념들이었다. 그들은 소설을 어떤 폭발적인 것, 즉 경이로움과 장엄한 계시적 광경으로 가득 차 있고, 평범한 행위에 대한 시적인 해석과 기묘하게 보이는 것에 대한 산문적 설명이 꽉 들어차 있는 것으로 보았다. 나는 베노가 꿈꾸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소설이 지닌 무한한 지평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생경한 이념들로 불꽅이 일 듯 활기에 넘치고, 수많은 도전으로 폭풍이 일 듯 힘이 넘치는 소설. 내가 이제 소설에서 구하는 것은 그렌즐러 지역에 관한 또 하나의 산문시가 아니라, 나 같은 지각 있는 사람이 어떻게 베노 래트너와 같이 자기 파괴적인 사람과 살면서 그 많은 세월을 허비할 수 있는지, 아무에게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렇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그런 묘한 삶에 대한 설명이다. 이와 같은 내 의식의 놀라운 전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때면 나는 이렇게 중얼거린다. 

자릴르 지키세요. 루카스. 경이로운 친구여. 날카로운 칼날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신뢰할 만한 그대. 이 세상에서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사람. 선한 일만 할 당신. 그러나 래트너, 당신이 옳았어요. 채겡 관한 모든 토론에서 당신은 항상 옳았어요. 당신은 우리들이 꿈도 꿔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죽은 거예요. 당신은 꿈은 꿨지만 그 꿈을 6만 개의 잘 꾸며진 단어들로 전환 시키지 못했어요.  274-2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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