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선승 앙산은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부엌에서 계속 일을 했다고 하지 않은가. 그 이유를 묻는 스승에게 앙산은 대답하고 있다. '저는 지금 소가 채소밭으로 달려가지 않도록 고삐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는 중입니다.'

진정한 자유가 내적 절제에 있음을 말해 주는 일화.(엮은이)  16


무섭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다.  18


홀로 있음으로써 함께 있을 수 있다.  19


보지 않고 듣지 않음으로 마음 쓸 일도 없다.  20


자기 존재에 대한 그때그때의 물음, 나는 누구인가, 어떤 것이 내 온전한 마음인가, 거듭거듭 물음으로써 삶이 조금씩 개선되고 삶의 질도 달라진다.  21


현대 문며의 해독제는 자연밖에 없다.  21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낡은 생각에서, 낡은 생활 습관에서 떨치고 나오라는 것이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다.  23


불편하다는 것, 그것이 좋은 것이다.  25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28


사랑은 껴안는 행위 너머에 있다.(엮은이)  32


청빈의 덕을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따뜻한 가슴을 지녀야 한다. 우리 둘레에 편리한 물건의 더미는 한 없이 쌓여 있지만 그것들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일상적인 물건들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과연 행복한가. 단추 하나만 눌러도 밥이 되고 냉장이 되고 세탁이 된다. 이렇게 편리한 연장을 쓰면서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행복을 느끼고 있는가. 그런 사실에 대해 고마음을 느끼고 있는가.

사람은 머리만 갖고는 제대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머리의 회전만을 중시하는 세상은 더없이 냉혹하고 차갑다. 이 사회는 머리만이 존재할 뿐 따뜻한 가슴이 끼어들 틈이 없다. 보라. 온갖 종류의 부정과 비리, 사기와 속임수, 그 밑바탕에는 간교한 머리가 작용하고 있다. 

심장은 그런 데 관여하지 않는다. 가슴은 그런 일에 관계하지 않는다. 사람을 뽑는 대학에서 머리만 중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머리의 회전만을 중요시하는 사회는 문제를 안을 수밖에 없다. 

믿음은 머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가슴에서 온다. 머리에서 오는 것은 지극히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다. 머리는 늘 따지고 의심한다. 그러나 가슴은 받아들인다. 열린 가슴으로 믿을 때 그 믿음은 진실한 것이고 또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인간의 신뢰와 성실성도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온다.  34-25


삶의 질이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따뜻한 가슴에 있다. 진정한 삶의 질을 누리려면 가슴이 따뜻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마음써야 할 것은 만나는 이웃에게 좀더 친절해지는 것이다. 내가 오늘 어떤 사람을 만났다면 그 사람을 통해서 내 안의 따뜻한 가슴이 전해져야 한다. 그래야 만나는 것이다. 

따뜻한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야말로 모든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하낟. 우리가 보다 더 친절하고 사랑한다면 우주는 그만큼 선한 기운으로 채워질 것이다. 

우주는 한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고 옹졸하게 산다면 그만큼 비좁아지고 옹색해진다. 마음을 활짝 열고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사랑한다면 그만큼 바기 자신이 선한 기운으로 활짝 열리게 되는 것이다.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면 내 자신이 기뻐지고, 누군가를 언짢게 하거나 괴롭히면 내 자신이 괴로워진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메아리이다. 마음의 뿌리는 하나이기 때문에 그렇다.  35-36


행복의 비결은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옛말에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는 말이 있다.  37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사랑스러움과 고마음을 잃어 버렸다.  38


행복은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서 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39


욕망은 분수 밖의 바람이고, 필요는 생활의 기본 조건이다.  39


내가 사는 집의 부엌 벽에다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소하게' 하고 낙서를 해놓았다.  41


텅 빈 공의 세계.. 단순과 간소는 다른 말로 하면 침묵의 세계이다.  41


청빈의 상대 개념은 부가 아니라 탐욕이다. 한자로 '탐(貪)'자는 조개 '패' 위에 이제 '금'자이고, 가난할 '빈(貧)'자는 조개 패 위에 나눌 '분'자이다. 탐욕은 화폐를 거머쥐고 있는 것이고, 가난함은 그것을 나눈다는 뜻이다. 따라서 청빈이란 뜻은 나눠 갖는다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만일 가난이 없었다면 나눠 가질 줄도 몰랐을 것이다. 내각 가난해 봄으로써 우리 이웃의 가난, 어려움에 눈을 돌리게 된다.  43


누구에게나 삶의 고민이 있다. 그것이 그 삶의 무게이다. 그것이 그 삶의 빛깔이다.  45


세상이 달라지기를 바란다면 우리들 한 사람 한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내 자신부터 달라져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모습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이 달라진다. 내 자신이 세사으이 일부이기 때문이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의 일부이다.  47


그릇을 키우려면 눈앞의 이익에 매달리지 말고 마음을 닦아야 한다.  60


지난 십여 년 동안 나는 많은 영적 스승을 접하고 여러 명상센터를 순례했다. 그 도중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참된 스승은 우리에게 지식이든 에고든 무엇을 더 보태 주는 것이 아니라 현재 갖고 있는 것마저도 최대한으로 버리라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어떤 것에도 스스로 소유당하지 말며, 자신의 삶을 살되 삶에 휘둘리지 말라고 그 스승들은 일깨운다.(엮은이)  70-71 


건성으로 보지 말고 유심히 바라보라. 그러면 거기에서 자연이 지니고 있는, 생명이 지니고 있는 신비성과 아름다움을 캐낼 수가 있다.  72


마음이 열리지 않으면 이미 열려져 있는 세상을 내가 받아들일 수 없다.  75


문제는 어떻게 변해 가느냐에 달려 있다. 자신의 중심을 들여다봐야 한다. 중심은 늘 새롭다. 거죽에 살지 않고 중심에 사는 사람은 어떤 세월 속에서도 좌절하거나 허물어지지 않는다.  76


고추는 처음 장에서 모종을 갖다 심었는데 갑자기 냉해가 닥쳐 얼어 죽었다. 내가 사는 곳이 해발 한 8백 미터쯤 되는 곳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다시 스무 포기 정도를 사다 심었다. 

그런데 며칠 전 고추를 따면서 새삼 느낀 점이 있다. 내가 고추를 돌본 것은 단지 모종을 두 번 심어 주었고 풀 조금 매주었고, 지난 여름 몹시 가물었을 때 장에서 비닐 호스를 사다가 물 준 일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른 체했는데 고추밭에 가보니까 고추가 그토록 많이 열려 있었다. 스무 포기에서 한 자루가 넘는 고추를 따냈다. 

그래서 고추 보기가 참 부끄러웠다. 전혀 손질도 안해 주고 모른체 했는데, 단지 내가 해준 거라곤 가뭄에 물 좀 주었고 김 좀 매주었을 뿐인데 이렇게 많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것이다. 이것이 흙의 은혜다. 또 생명의 신비이다. 

농경사회에선 이런 일들을 수시로 경험했기 때문에 자연의 질서와 도리를 삶의 원리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는 시장에 가서 편리하게 사다 먹으니까 생명의 신비와 자연의 순리로부터 자꾸만 멀어져 간다.  77-78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홀가분한 마음, 여기에 행복의 척도가 있다. 79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궁색한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아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때 우리는 보다 홀가분한 삶을 이룰 수가 있다.  80


'풍요로운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삶에 대한 투철한 각성 없이는 그 감옥에서 벗어날 기약이 없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자신이 지금 깨어 있는지 잠들어 있는지 수시로 물어야 한다.  85


어느 수도원에는 이런 팻말이 붙어 있다고 하지 않은가. 

'침묵에 보탬이 되지 않는 말이면 하지 말라.'

그것을 스님이 늘상 쓰시는 말투로 바꾸면 이렇다.

'단순하고 간소한 생활에 보탬이 되지 않는 물건이면 어떤 것이든 소유하지 말라.'(엮은이)  90


그렇지 않아도 시끄러운 세상을 우리들 자신마저 소음이 되어 시끄럽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93


사실 인간과 인간의 만남에서 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꼭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어야 한다. 안으로 말이 여물도록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밖으로 쏟아내고 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생각이 떠로른다고 해서 불쑥 말해 버리면 안에서 여무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내면은 비어 있다. 말의 의미가 안에서 여물도록 침묵의 여과기에서 걸러 받을 수 있어야 한다.  94


불교 경전은 말하고 있다. 입에 말이 적으면 어리석음이 지혜로 바뀐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을 참을 수 있어야 하낟. 말의 무게가 없는 언어는 상대방에게 메아리가 없다.  94


인간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이다. 우리들은 지금 이렇게 이 자리에 앉아 있지만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다. 늘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날마다 똑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남을 판단할 수 없고 심판할 수가 없다.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 판단을 한다는 것은 어떤 낡은 자로써, 한 달 전이나 두 달 전 또는 며칠 전의 낡은 자로써 현재의 그 사람을 재려고 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비난은 늘 잘못된 것이기 일쑤이다. 우리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 때 그는 이미 딴사람이 되어 있을 수 있다.

말로 비난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우리 안에서 사랑의 능력이 자란다. 이 사랑의 능력을 통해 생명과 행복의 싹이 움트게 된다.  95


우리들의 목표는 풍부하게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풍성하게 존재하는 데 있다. 삶의 부피보다는 질을 문제삼아야 한다.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텅 비울 수 있어야 한다.  98


제자가 스승에게 묻는다. 해탈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스승이 되묻는다. 누가 너를 일찍이 묶어 놓았느냐. 이것이 답이다. 누가 너를 일찍이 묶어 놓았는가. 인간은 본래부터 자유로운 존재이다. 그런데 일상적인 생활 습관이 잘못 들어 그 소용돌이에 스스로가 말려들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것이다.  99


어제와 오늘이 똑같다면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것이다. 한 달 전의 나와 한 달 후의 내가 똑같다면 나 스스로를 그렇게 가두고 있는 것이다. 

변화가 없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삶이 침체된다. 삶에 나날이 변화를 가져오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 일상이 진부하고 지루하고 따분해진다. 삶은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늘 유동적인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강물처럼 흐르는 존재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되어 가는' 과정 속에 있다. 이미 되어 버린 것이 아니다. 

삶은 늘 가변성을 지니고 있다. 그것이 우주의 실상이다. 위로 오르든 날고 떨어지든 되어가는 어디에도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매달려 버리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 정지해 버린다.  100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은 결코 아니다. 그건 한때일 뿐이다. 욕망은 새로운 자극으로 더 큰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욕망을 채워가는 삶은 결코 가치 잇는 삶이라고 할 수 없다. 가치 있는 삶이란 의미를 채우는 삶이다. 그리고 내게 허락된 인생이, 내 삶의 잔고가 어디쯤에 왔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 스스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거듭거듭 새롭게 시작할 수 있어야 한다. 날마다 새롭게 피어나는 꽃처럼 그렇게 살 수 있어야 한다.  102


조고각하(照顧脚下), 비칠 '조', 돌아볼 '고', 다리 '각', 아래 '하'. 자기가 서 있는 자리를 살피라는 뜻이다. 자기가 서 있는, 지금 자기의 현실을 살피라는 뜻이다.  109


행위 없는 이론은 공허한 것이다.  109


문사수(聞思修). 들을 '문', 생각 '사', 닦을 '수'. 들었으면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자기 것을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 생각하라는 것은 자기를 여과시키라는 뜻이다. 자신의 체로 걸러 받음이다. 그리고 나서 행하라는 것이다. 그것을 일상에 옮기라는 것이다.  112


만남은 시절 인연이 와야 이루어진다고 선가에서는 말한다. 그 이전에 만날 수 있는 씨앗이나 요인은 다 갖추어져 있었지만 시절이 맞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 만날 수 있는 잠재력이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가 시절 인연이 와서 비로소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만남이란 일종의 자기 분신을 만나는 것이다. 종교적인 생각이나 빛깔을 넘어서 마음과 마음이 접촉될 때 하나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마음이다. 마음이 열리면 사람과 세상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115


일본의 자연농법가 후쿠오카 마사노부는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이라는 저서에서 '나는 가능하면 무엇을 어떻게 안 할까를 고민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가능하면 무엇을 할까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할까를 고민햇다는 것이다. 그것은 게으름을 피우려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는 농사'에 접근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하지 않고 나서지 않고 꾸미지 않는 무위 자연의 삶의 태도가 스님의 일상 생활에서 실천되고 있음을 나는 본다. 그 대신 그분은 더 소중한 것, 이를테면 우리가 죽으면 나무가 도고 대지가 되고 바람이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또한 우리가 살아 있을 때도 나무이고 대지이고 바람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가르친다.

내가 믿건대, 여기 모아 놓은 스님의 이 짤막한 어록집은 끝없이 행위를 추구하고 더 발전하고자 하고 속도 지향적이며 연거푸 생산하고 소비하는 우리의 문명에 대한 강력한 해독제이다. 우리는 본질로부터 달아나 쓸데 없는 것에 몸과 마음이 파묻히려는 습관적인 병에 걸려 있지 않은가.(엮은이)  123


내 마음이 지극히 맑고 청순하고 평온할 때 중심이 잡힌다. 내 중심이 잡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온전한 내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중심이 잡히지 않을 때는 늘 흔들린다.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중심이 잡히지 않은 것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없는 일도 저지르게 되고 불쑥불쑥 어떤 충동에 우리가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이 '불쑥'이라는 한 생각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 따라서 한 생각을 어떻게 갖는가 이것이 갈림길이다.  127


친절과 사랑은 우러나는 거이다. 우리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사람은 친절과 사랑 안에서 성장한다. 자비를 베풀라. 사랑해야. 여러 말이 있지만 친절하다는 것, 이것이 인간의 미덕이다.  129


상인의 길은 곧 인간의 길이다. 단지 물건만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팰요한 상품이기 때문에 인정이 고고가야 한다. 다시 말해 사고파는 차디찬 그런 거래가 아니라 인정이 오고갈 수 있는 인간의 길이 되어야 한다.  133


사랑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 지극히 일상적이고 사소한 마음씀이다. 낯선 이웃에게 너그러워지는 일이다. 낯선 이웃에게도 우리가 너그럽게 대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따뜻한 미소를 보내는 것, 이것도 사랑이다. 부드럽고 정다운 말씨를 쓰는 것, 이것도 사랑이다. 

우리의 마음만 열리면 늘 그렇게 살 수가 있다. 마음이 겹겹으로 닫혀 있기 때문에 그런 씨앗을 내 자신이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걸 펼쳐 보이지 못하는 것이다. 너는 너, 나는 나, 그렇게 단절되어서 살고 있다.

바로 이런 일상적인 실천들이 사랑이며 친절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으로서 그 도리를 다하는 것이 친절이고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자식은 자칫 파괴수단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그 자신까지도 파멸시키고 만다.  134


삶이란 우리가 누구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귀ㅏ로 듣고 이해하면서 새롭게 펼쳐가는 어떤 기운 같은 것이다.  135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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