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도전은 산소다!

마음의 비계


'래디컬'하다고 하면 '급진적'이란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래디컬'의 라틴어적 본래 의미는 '뿌리를 건드린다'는 뜻이다. 뿌리를 건드리면 아프다. 하지만 정신차려서 자신을 직시하고 자기 실존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더 먼 길을 제대로 가려면 오히려 어느 정도의 정지와 멈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은 몸이 먼저 늙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늙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건강검진은 받아도 마음의 건강검진은 받아볼 생각조차 안 한다.


인생의 산소는 크고 작은 도전에서 나온다. 도전하면 스스로 삶의 산소를 만들 수 있다. 삶의 산소가 있으면 그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호흡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걸음으로 갈 수 있고 진짜 자기 삶을 살 수 있다. 그게 애써 도전해야 하는 이유다.


도전하는 만큼 삶은 달라진다. 시들해가던 중년의 사내가 '산티아고 가는 길' 900여 킬로미터를 걷고 와서 다시 도전을 말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5-9



떠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떠날지는 정하지 못했다. 그저 떠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엇다. 이 '무작정'이란 게 무서운거다. 스스로를 백지상태로 만들어놓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후 차츰 무엇을 향해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 문득 떠오른 것이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언젠가 스쳐지나가듯 본 책을 통해 천 년 넘게 사람들이 걸어간 순례길이라는 것 정도만 알았지 그 길에 대한 정보 역시 말 그대로 백지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그 백지상태라는 것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앞고 가는 길은 재미없다. 모르고 가서 부딪치는 것이 진짜다.

그냥 '뚝' 끊고 떠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18



덜어내고 털어내고 비워낸다 해서 

사람이 가져야 할 멋을 잃게 되거나 

삶의 맛이 없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의 멋, 삶의 맛은 '채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되레 '비움'에서 오기 때문이다.  21



털어야 할 대목에서 털지 못하면 우리네 인생배낭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차버린다.

우리 인생길이 힘겨운 진짜 이유는 그런 잡동사니를 버리지 않고 인생배낭에 꾸역꾸역 구겨넣은 채 가기 때문이다. 그러니 미련, 후회, 회한, 미움, 증오, 시기 등의 찌꺼기 같은 잡동사니를 버리고 소망, 꿈, 도전, 화해, 사랑, 모험을 담아 자기의 인생배낭을 다시 꾸려야 하지 않겠나.  23


일단 짐을 덜어내기로 마음을 고쳐먹으면,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가를 치열하리만큼 생각하고 또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때비로소 깨닫게 된다. 진짜 꼭 필요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24


장 지오노가 <나무를 심은 사람>에서 말했듯이 "사람은 희망을 가져야만 일할 수 있다." 

자기 안의 또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희망이 있을 때 그래서 '어제와 다른 나', '오늘과 다른 내일'을 만들 희망에 차 있을 때 그 무엇도 두렵지 않다.  45


너 나 할 것 없이 우리가 걸어온 길은 결코 잘 닦인 아스팔트길이 아니었다. 자갈밭 아니면 진창길이었다.  57


인생은 화살표만 따라가는 길이 결코 아니다. 대개의 인생길 위에는 화살표도 없고 그것을 표시해주는 지도도 없다. 오직 내 안의 자기만의 방향감각만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뿐이다. 바로 그 자기만의 방향감각이 곧 내 안의 나침반인 셈이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돈키호테  87



인생은 때로 미쳐야 해. 우리는 너무 안 미치는 게 탈이야.  89


지미 카터는 "인생이란 점점 확대되는 것이지 축소되는 것이 아니다."  97


내버려둔다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이 쓸데없이 분주한 것은 내버려두기를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쓸데없이 분주한 까닭 뒤에는 어김없이 '불안'이란 것이 도사리고 있다. 자기 안의 불안을 떨치려고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우가 태반니다. 스스로를 내버려둘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그 불안에서 한 발 비켜 있을 때 가능하다. 아니 그 불안에서 벗어나 있을 때 비로소 내버려두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애일(愛日)'이란 말이 머리에 스쳤다. 사랑'애(愛)' 날'일(日)', 말 그대로 '하루하루를 아끼고 사랑하라'는 의미가 담긴 말이다. 본래는 늙은 부모가 오래오래 사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말이지 남은 하루하루가 아깝다는 뜻을 담아 '애일'이라 한 것이지만 오늘에 와서는 하루 하루 지나는 그 시간이 참으로 아까우니 제대로 시간을 잘 쓰라는 뜻으로 더 많이 통한다.  122


감동은 작은 데서 나오나 세상을 움직일 만큼 커진다.



한쪽에서 또다른 한쪽으로 

기울며 흐르는 게 사랑이다

'기우뚱한 균형'을 잡아가는 것 

그것이 사랑 아닐까 싶다.  137


본래 사랑은 평등하지 않다. 꼭 균형이 맞지도 않다. 왠지 기우뚱한 것처럼 보이기 일수인 것이 사랑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도 밑질 것 없어 보이는 사이는 사랑이 아니다. 그건 자칫 거래다. 둘 사이가 어느 쪽으론가 기울어야 사랑이다. 기우는 쪽으로 사랑은 흐른다. 

살다보면 기우는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면서 '기우뚱한 균형'을 잡아가는 것! 그것이 사랑 아닐까 싶다.  139-140


음식은 사람과 사람을 자연스럽게 이이주고 통하게 만든다.  153


우리는 늘 착각한다.  181



인생 레이스는 속도 경재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다.  


인생 레이스의 7가지 원칙

제1원칙은 '자기 페이스를 잃지 말라'는 것이다. 살아오면서 그 누구나 인생 레이스에 임하는 나름의 주법 혹은 보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이는 보폭을 크게 하며 초반부터 전력 질주를 한다. 옆에 있는 사람들도 덩달이 속도를 낸다. 하지만 그 중 8할은 중도에서 주저앉는다. 자기 페이스를 잃었기 때문이다. 주법 혹은 보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주법 혹은 보법이든 최고의 인생 레이스를 펼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다.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오버 페이스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페이스가 뭔지조차 모르고 인생 레이스에 임하낟. 자기 강점이 무너지, 자신의 최고 속도는 얼마인지, 자신의 지구력은 어느 정도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옆에서 보폭을 넓혀 빨리 달려나가면 엉겹결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죽자살자 따라붙는다. 그러곤 팔진해 풀썩 주저앉기 일쑤다. 그러니 인생 레이스의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페이스를 잃지 않는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을 겆는 것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생 레이스의 제2원칙은 '구간기록을 체크하라'는 것이다. 인생 레이스는 길다. 결코 짧지 않다. 한숨에 달려갈 길이 아니다. 레이스 전체를 머릿속에 큰 그림으로 그릴 필요는 잇지만 정작 뛰거나 걸을때는 전체 구간을 토막내서 한 구간 한 구간씩 차근차근 나아간다는 기분으로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속에서 지레 주눅 들고 힘겨워하며 또다디 포기하고 싶은 심정에 풀썩 주저앉기 십상히다. 그래서 인생 레이스엔 스스로 구간 설정을 할 필요가 있다. 사람과 형편에 누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그 구간에서 펼친 레이스의 기록을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왜 하냐고? 미래를 위해서다! 그 기록에는 성취와 성공만이 아니라 실수와 실패도 담겨 있기 마련이다. 성취와 성공의 기록은 뿌듯한 것이지만 정작 인생 레이스를 펼친 기억이 아니라 실수하고 실패했던 것의 아픈 교훈들이다. 그 실수와 실패의 아픈 경험들을 기억하고 기록해야 미래를 대비하고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 레이스의 제3원칙은 '이미 지난 레이스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 레이스를 펼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경험하는 것이 있다. 이미 지난 구간의 레이스에 집착하면 지금 하는 레이스를 망친다는 사실이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시선은 앞을 보면서 정작 생각은 발뒤꿈치에 잡혀 있다면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앞서 달린 구간기록을 체크하는 것은 과거에 연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늘 그리고 미래에 더 잘 뛰기 위해서다. 그러니 이미 지난 레이스에 집착하지 마라. 지금 하고 있는 레이스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나아갈 수 있고 또 이길 수 있다.

인생 레이스의 제4원칙은 '길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라'는 것이다. 인생 레이스를 펼치다보면 연도에 선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기 어렵다. 다름아닌 내 주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때론 그들의 관심과 격려, 박수와 환호 그리고 미소와 칭찬이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손가락질을 받거나 야유와 험담을 들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칫 길가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다보면 오버 페이스를 하거나 아예 발이 꼬여 넘어지기 쉽다. 그러니 레이스를 펼칠 때는 길가의 시선과 주위의 시선을 넘어서야 한다. 너무 의식하지 마라. 아니 그 시선으로부터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라. 그래야 제대로 뛸 수 있다.

인생 레이스의 제5원칙은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레이스를 펼치라'는 것이다. 인생 레이스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지금 왜 이렇게 힘들여서 뛰고 걸으며 가고 있는 거지?'하는 회의가 갑자기 봇물 터지듯 몰려올 때가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그때를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 이 인생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힘든 레이스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을 생각하면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그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는 인생 레이스를 뛰는 각자의 사람들이 잘 안다. 아니 느낀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다. 가족이다. 아이들과 아내다. 

인생 레이스의 제6원칙은 '상대를 보지 말고 목표를 보고 나아가라'는 것이다. 토끼와 거북이의 레이스를 알 것이다. 빠른 토끼가 느린 거북이에게 진 이유는 간단하다. 거북이는 산등성이의 깃발, 곧 목표만을 보고 나아갔고 토끼는 상대인 거북이만 보고 뛰었기 때문이다. 토끼는 빨리 내달렸지만 어느 지점에 가서 뒤처져 오는 거북이를 보고는 풀섶에 들어가 잤다. 물론 잘 수도 있다. 하지만 토끼는 어디를 가겠다는 목표보다 뒤에 오는 상대인 거북이만 본 것이다. 반면에 거북이는 느렸지만 계속 전진했다. 풀섶에서 자고 있는 토끼도 힐끗 봤다. 하지만 거북이는 상대인 토끼를 보고 멈추지 않았다. 그는 상등성이의 깃발, 곧 목표를 보고 계속 나아갔다. '상대'를 보는 사람이 '목표'를 보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생 레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기는 사람은 목표를 보고 나아가는 사람이지 상대만 보고 멈추는 사람이 아니다.  

인생 레이스의 제7원칙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달리라'는 것이다. 제아무리 훌륭한 주법과 보법을 구사하고, 구간기록이 좋으지라도 결승점에 골인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허사다. 그래서 최고의 인생 레이스는 완주(完走)하는 것이다. 기록이 좀 나빠도 괜찮다. 어차피 빠르나 늦으나 그것은 기록일 뿐이고 인생 대사엔 별 상관 없는 일이다. 기록상 1등이든 꼴등이든 인생의 마지막 종착점에서는 똑같다. 적어도 인생 레이스를 완주한 사람들은 모두 뭔가를 이뤄낸 것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그러니 속도상의 빠름과 느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포기했느냐 오나주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어던 경우에도 포기하지 마라.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끝까지 가라. 그게 인생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인생 레이스는 속도 경쟁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산티아고 가는 길은 인생 레이스를 닮았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생 사에서도 남보다 빨리 가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10년 빨리 출세하면 10년 빨리 놀게 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자기 페이스를 알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느리면 어떠하랴. 그것이 자기 걸음이라면 느린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다. 남들이 한 달에 걷는다는 길을 나는 두 달 걸려 걷는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행복했다. 그러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닐까. 인생사도 마찬가지다. 애써 서두르지 마라. 자기만의 속도, 자기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라. 그리고 때로 멈출지언정 결코 포기하지는 마라. 그 걸음으로 꾸준히 가는 거다. 그게 자달 중요하고 제일 무서운 거다.  189-193



나는 탭을 열어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었다. 얼굴은 탭으로 가렸지만 바닥에 떨어지는 눈물은 가릴 수 없었다. 바닥에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감출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그때였다. 옆 테이블에 있던 알랭이 내게 다가왔다. 그러곤 여전히 울고 있던 나를 한껏 껴안아 주었다. 아무 말없이...

그러면서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 누구나 힘든 거야. 하지만 괜찮아. 괜찮다구. 그냥 울고 싶을 때 울어. 남 신경 쓰지 말고." 나는 그때 확실히 느꼈다. 그도 아프다는 것을, 아니 아파봤다는 것을. 아파보지 않고는 그렇게 남의 아픔을 감싸 안을 수 없다. 아마 그도 아파봤고 울어봤기에 나를 감싸 안아 가슴 깊이 포옹해줄 수 있었던 것일 게다. 그의 지중해의 미풍 같은 미소는 그런 아픔을 모두 견뎌낸 삶의 증표였으리라.  240-241



어딘가를 둘러보고 다녀본 것은 여행(旅行)이다. 어딘가를 걸어보고 느겨본 것은 기행(紀行)이다. 하지만 그 여행과 기행을 역사 속에 담그고 시대 속에 아우르며 오늘 나의 현존 가운데 재위치시키는 것은 '생(生)의 철학'이다. 고로 이 책은 나의 철학이다.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녹여낸 내 생의 철학이다.  258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는 스콧 니어링의 좌우며도 내려노흔 삶에 걸맞다. 

노자는 그릇을 비워야 쓸모가 있다고 했다. 자고로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이다.  271



자고로 큰 지혜는 멈춤을 알고, 작은 지식은 계략을 안다 했다.  274


'멈춤을 안다'는 뜻의 한자어 '지지(知止)'  277


'눈물의 무게'가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내 삶의 무게였다.  287


헤르만 헤세의 시 중에 <혼자>라는 시가 있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길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도착지는 모두가 같다.

말을 타고 갈 수도 있고, 차로 갈 수도 있고, 

둘이서 아니면 셋이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291



"근데 왜 아빠는 그 길을 걸으려고 하는 건데?"

"어제와 다른 나를 만나고 또 어제와 다른 나를 새롭게 만들고 싶어서"다. 

'어제와 다른 나'는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그것은 날마다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날마다 차이를 만들면 언젠가는 그것이 진짜 '다름'이 된다. 그 다름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다.  292



법정스님은 어느 해인가 길상사 봄 법화에서 행한 법문 중에서 "천지간에 꽃이지만 꽃구경만 하지 말고 나 자신은 어떤 꽃을 피우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꽃을 피운다는 것은 생식과 생명 황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꽃을 피움으로써 식물은 자기 생명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다. 꽃은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생존을 위한 진한 몸부림의 소산이다. 꽃이 피어야 그 안에 있는 암술과 수술의 수정이 가능하고 씨라는 자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꽃을 피우느냐 못 피우느냐는 멋부리는 감상이 아니라 살아남느냐 죽어 사라지느냐의 절박한 실존의 문제인 셈이다.  



목표지향적인 것이 아니라 그 궤적 속에서 깊이를 느끼고 그 둘레를 더듬는 의미지향적인 일이어야 마땅하다.  

 

산티아고로 가는 길 위에서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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