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인의 삶과 정신세계 : 베다시대
아리아인이 인도로 유입해 오기 전에 이미 인더스 강을 중심으로 상부에 자리한 하라파(Harappa)와 그보다 남쪽으로 약 644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모헨조다로(mohenjo-daro : 죽음의 언덕)라는 도시의 유적은, 인도 서부에 이미 거대한 국가 형태의 도시가 존재했음을 보여주었다.
하라파는 1856년 영국인 브룬튼 형제가 물탄(Multan)과 라호르(Lahore) 사이에 철도 부설 공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했다. 1921년이 되어서야 인도 고고학 탐사단의 영국인 총감독 존 마셜경이 하라파를 본격적으로  발굴하기 시작했고, 그 후 2년 뒤에 다시 모헨조라도를 발굴하기에 이르렀다. 두 도시의 고고학적 발굴성과는 인도의 고대 문명을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 당시의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관계로 인더스 문명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27

도시의 발전은 기원전 2500년에서 도시가 멸망하던 기원전 1500년경까지로 추측되고 있다. ..
두 유적지(하라파 모헨조다로)가 지하에 깊이 묻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대홍수로 인한 인더스 강물의 범람과 같은 재난으로 땅속에 묻힌 경우다. 다른 하나는 이민족의 침입이나 다른 전쟁으로 인해 멸망되었던 것이 오랜 세월 속에 폐허로 묻혀 있었을 것이라는 두 가지 추측이다.
만일 후자의 경우라면 아리안 족의 침입으로 인한 파괴의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아리안 족의 유입 시기도 기원전 1500년이고 보면, 고대 도시가 멸망하던 시기에 아리안 족이 침입하여 완전히 폐허로 만들고, 새로운 아리안 문명을 건설하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 후 오랜 세월을 거치는 과정에서 사막화가 진행되어 도시 문명 전체가 지하 속으로 묻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9

생산력을 중시하고 과시하는 남성 성기 숭배는 인더스 유적지의 여러 곳에서 발굴되는 ‘링가(lingas:생식력의 상징으로서의 남근상, 후대 힌두교에서 시바 신의 상징으로 등장한다)를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35

‘베다’의 의미는 ‘지식의 책’인 동시에 계시되었다는 점에서 ‘거룩한 가르침’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신들에 대한 찬가를 모은 문헌집 역시 베다라고 부른다. ‘지식’을 뜻하는 ‘베다’(veda)는 원래 고대의 현자(賢者)들에게 ‘계시’된 것을 뜻했기 때문이다.
초기 아리아인의 신은 ‘데바’(devas)라는 명칭 하나로 통칭되었으나, 그 신들의 수는 대략 33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신들의 이름은 후기로 갈수록 분화되어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해졌다. 신들의 숫자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들의 힘과 기능으로서, 어떻게 자연현상과 조우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신들의 역할과 기능에 따라 신의 정체성도 각각 다르다.
신들의 역할과 기능은 대개 세 그룹으로 구분된다. 천상(天上)의 신, 대기(大氣)의 신, 지상(地上)의 신으로, 이 세 영역이 신들의 거주지와 활동 무대가 되며 이런 구분은 자연의 힘과도 결부된다.  36


1 신을 부르는 노래, 베다 - 네 개의 베다

정통 힌두인은 초인적이고 신적인 권위에 베다의 기원을 두고 있다. 베다는 시대가 경과하면서 네 종류로 형성되었다. 가장 초기의 베다가 기원전 1500년경에 이루어진 <리그베다>(Rigveda : 시 모음집)이고, 그 후에 <사마베다>(samaveda : 노래집)와 <야주르베다>(Yajurveda : 제의문서), 그리고 훨씬 후기에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 : 불의 사제 아타르반의 베다)가 형성되었다.
이 네 권의 베다 가운데 <사마베다>와 <야주르베다>는 대부분의 내용이 <리그베다>의 내용을 용도에 맞게 재구성한 것이다. 이들 베다는 너무나 거룩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믿어졌기 때문에 기원전 600년경까지는 브라만 계층의 사제들의 입을 통해 구전되어 왔다. 그리하여 베다가 완전한 책의 형태로 편집이 된 것은 기원전 300년경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각각의 베다는 제의의 내용과 형식, 그리고 기원에 따라 다시 세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찬가의 모음집인 <상히타>(Samhita : 본집)와 그 해석서인 <브라흐마나>(Brahmana : 범서梵書), 그리고 제의의 지침서로서 <수트라>(Sutra :  안내서)가 있다.
이들 가운데 본집의 해석서인 <브라흐마나>에는 <아라냐카>(Aranyaka : 숲의 책)와 <우파니샤드>(Upanishad : 철학서)가 포함된다. 우파니샤드는 베다 사상을 철학적으로 심화시킨 최종적인 문헌이다. 각각의 베다는 지식을 다루는 부분(jnana kanda)과 실천 내용을 기술한 부분(Karma Kanda)으로 구분된다.  43-44

완전한 제사를 위해서 각각의 베다에 따른 제사장의 역할과 호칭이 달랐다.
<리그베다>를 사용하여 제의에 신을 초대하기 위해 시를 낭송하는 사람인 호트리(hotri : 신을 부르는 사람), <사마베다>의 노래를 부르면서 제사의 술인 소마를 바치는 우드가트리(udgatri : 노래를 부르는 사람), 제의문서인 <야주르베다>의 시와 찬미의 공식문구(yajus)를 사용하여 제의를 수행하는 일반 사제들인 아드바르유(adhvaryu), 그리고 <아타르바베다>를 노래하는 대사제인 브라흐민(brahmin : 바라문)이 각각 그에 해당하는 제의를 주관했다. 특히 대사제로서의 브라흐민은 <아타르바베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제의 전체를 주관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했다. 44-46

‘리그-베다’라는 말은 ‘찬양의 베다’라는 뜻이다. ‘리그’(rig)라는 말은 원래 산스크리트어로 ‘축제’를 의미하는 뜻에서 비롯되었는데, 일반적으로는 ‘노래 형태의 시’를 뜻한다. 축제에서 부르는 찬양의 노래(mantra)가 베다의 본문을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역을 하자면 ‘찬양의 지식’이 된다.  47

전10권으로 된 <리그베다>는 제1권부터 제7권까지는 매번 첫장마다 아그니에 대한 찬가로 시작된다. 그만큼 제사와 그들의 신앙생활에서 아그니의 위상이 높다는 뜻이다. 제8권은 인드라에 대한 찬가로 시작되고, 방대한 분량의 제9권 전체는 소마에 대한 찬가다. 제10권에서는 아그니에 대한 찬가로 다시 시작되지만 우주의 창조주에 대한 기사와 원형적 인간의 차조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47

33신들에 대한 찬미의 노래가 1,028개나 되지만 대부분이 인드라, 아그니, 소마 신에 대한 노래다. . 인드라는 아리아인의 적인 다스유스를 진멸한 권능의 신이며, 아그니는 불의 신이고, 소마는 식물의 음료의 신이다.  48

<사마베다>는 사제들이 제의를 올릴 때 부르던 찬가집이다. ..
<사마베다>의 사마(Sama)는 샤만(Saman : 멜로디)을 나타내는 말로, ‘달콤한 노래’ 또는 ‘거룩한 노래’라는 뜻을 지닌다. <사마베다>는 이 ‘노래(chants)의 모음집으로서, <리그베다>의 제8권과 제9권에서 주로 뽑아낸 작품들이다.  51

일정한 순서가 없는 찬가의 모음집이었으나, 일정한 시기가 지나면서 종교적 제의에 맞게 재구성되었다.  52

아리아인이 처음 인도에 왔을 때는 제의를 위한 안내책이 필요 없었을지라도, 정복과 정착 이후에는 점차 종교적 의례를 위해 정교하게 편집된 지침서가 필요했기에 사제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53

<사마베다>의 본문은 1,875개의 만트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반부 650개의 만트라 구절과 후반부 1,225개의 만트라로 구분된다. ..
신들에 대한 찬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베다에 언급되고 있는 신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없이는 <사마베다>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베다의 신들은 베다 후기에 나타나는 각종 경전(聖典 : puranas)이나 서사시들에서 볼 수 있는 신들과는 그 성격이 각기 다르다.  53-54

불의 신 아그니(Agni), 폭풍의 신 인드라(Indra) 또는 바람의 신 바유(Vayu), 그리고 태양신 수리아 등이 주요 신으로 등장한다. 이들 중 아그니는 지상(prithivi) 통치하고, 인드라나 바유는 공중의 대기(antariksha)를 통치하며, 수리아는 하늘(dyuloka)을 통치한다. 기원전 800년경에 살았던 베다의 주석가 야스카(Yaska)는 베다의 다른 수많은 신들도 결국 이 세 신의 현현(顯現)에 불과하다고까지 말했다.  54

베다에 나타나는 신들은 주로 지상, 대기, 하늘의 세 영역으로 구분하여 활동하는데, 규정된 신의 수는 베다마다 차이가 있다. 베다의 어떤 본문에서는, 11개의 신들이 각각의 영역(loka)에서 활동한다고 보고 33개의 신들로 규정하기도 하고, 어떤 본문에는 3,339개의 신들로 말하는가 하면, 후대의 푸라나(聖典)에는 신들의 수가 3억 3,000으로 늘어나기도 한다.
반면 모든 다양한 신들이 결국은 동일한 하나의 지고한 신성(supreme godhead)의 현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러한 단일신론(單一神論)적 주장은 특히 후대의 우파니샤드 사상에서 발견된다.  54-55

<야주르베다>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드바르유’(adhvaryu : 일반적인 사제) 사제들이 제의 때에 사용하던 문서로서 ‘제의의 지혜서’라고도 불린다. <야주르베다>는 신앙적 고백의 글이라는 뜻의 ‘야주스’(yajus)라는 말과 ‘베다’의 합성어다. 따라서 사제들이 제의를 드릴 때 불렀던 고백문으로서의 찬가집을 뜻한다. …
제사의 방법을 구체적으로 상술하고 있다는 것이 <야주르베다>의 특징이다.
<야주르베다>의 편집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기원전 1000년경에 편집된 <흑(黑) 야주르베다>(Black Yajurveda)가 그것이다.
<흑 야주르베다>는 ‘무질서한’ 혹은 ‘뒤섞인’ 본문이라고도 부른다. 이유는 찬가인 만트라 외에도 제의를 위한 신학적 해설서인 산문체의 <브라흐마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백 야주르베다>는 찬가인 만트라만을 수록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다양한 학파를 지니게 된 <야주르베다>는 <리그베다>보다 그 분량이 훨씬 방대하다.  60

<아타르바베다>는 바라문 가문의 이름인 ‘아타르바’(Atharva)에서 취한 이름이다. 네 개의 베다 중에 가장 나중에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제4의 베다’라고도 한다. 전승에 따르면, <아타르바베다>는 주로 브리구(Bhrigus)와 앙기라스((Angirasas)라는 두 현자의 집단에 의해 구성되었다고 전한다.  67

<리그베다>와 같이 전체가 찬가로 구성되어 있지만, 베다시대의 제의 전통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그것은 <아타르바베다>가 초기 베다와 구분되는 훨씬 후대에 편집된 것이기 때문이다. ..
베다의 내용은 사랑의 성공에서부터 지상에서의 열망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하는 문제 등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
<아타르바베다>가 질병의 퇴치 등에 관한 주술과 같은 독립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일부 찬가인 쿤타파수크티(Kuntapasuktini, 찬가 127~136)를 제외하고는 본집의 제20권 대부분이 <리그베다>의 문구를 그대로 인용할 정도로 똑같은 내용도 있다.  68

제17권은 사소한 관심사들에 대한 일상을 독립적으로 노래한 것이다. 제15~16권은 대부분이 사제들인 바라문의 산문이고, 제14권과 제18권은 각각 아타르반 사제가 주도하는 결혼과 장례에 대한 시로 되어 있다. 이 시는 대부분 <리그베다> 제10권의 만트라와 일치한다.
그런가 하면 제19권은 후대에 삽입된 것으로, 원문을 개악(改惡)하여 심하게 훼손된 것도 있다. <아타르바베다>의 제12권에는 우주 진화론적이며 신지학적인 노래가 실려 있는데, 땅의 여신에 대한 노래 가운데 “진리와 위대함, 우주적 질서, 힘, 정화, 창조적 열정, 영적 승화, 제의가 지구를 떠받치고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제1장부터 젱13장까지의 내용에서는 약물을 사용하는 치유가나 주술사가 등장하여 대부분 주문 형식의 기도를 올린다. 이는 다른 베다가 시인이나 사제들이 노래하는 찬가의 형식인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질병의 치유를 비는 기도 주문에서는 열병, 두통, 감기, 수종(水腫), 심장병, 만성병, 중풍, 유전병, 문둥병, 정신병 등에 대한 수많은 종류의 질병이 열거되고, 거기에 대한 처방으로서 갖가지 신들이 초대되기도 한다.  68-69

네 가지 베다의 총 분량은 그리스도교 <성서>의 여섯 배나 된다. 이 방대한 베다의 주된 구성은 이와 같이 신드에 대한 찬가아 제의의 방법을 다루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점차 베다 후기로 이어지면서 신화적인 내용이 우주적이 ㄴ차원에서 철학적으로 변해간다.  71



2 우주와 인간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 베다의 창조와 진화

<리그베다>에서는 우주와 인간의 창조, 그리고 발전과정에 대해 크게 두 가지 각도의 관점으로 설명한다. 하나는 어떤 거대한 원리가 만들어낸다는 관점이고, 또 하나는 진화적 관점에서 발생해간다는 관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들이 상호 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두 가지 견해가 서로 결합되는 느낌도 있다.
하나는 어떤 원리가 우주와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견해로, 훌륭한 솜씨를 가진 장인(匠人)인 신이 목수처럼 신과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타파스’와 같은 열기가 발생하여 스스로 진화해가는 과정으로 우주의 창조를 설명한다.
시대와 계층을 달리하던 <리그베다>의 여러 시인들은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을 기초로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여러 신들이 제각각의 기능을 하며 수많은 세계의 요소들을 하나둘씩 만들어가는 것으로 설명한다.  73

한편으로는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탄생된 것도 아닌 스스로 우주의 제물이 되어서 우주를 발생시키는 제물로서의 창조자 푸루샤도 있다. 이 푸루샤의 몸에서 천지 사방과 인간이 탄생되었다는 신화다.
그런가 하면 신화 창조 개념보다는 다소 철학 개념으로 우주창조를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움직이고 정지하는 모든 것의 정신, 곧 아트마(atma)를 창조의 원리로 보는 것이다.  75

<리그베다>에서 창조에 관한 가장 유명한 기사는 우주 찬가 속에 나타난다. 일종의 진화적 측면에서 우주의 탄생을 말하는 것으로, 이른바 비존재(asat)에서 존재(sat)가 드러나는 창조적 진화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창조의 노래라고 불리는 유명한 나사디아(Nasadiya) 찬가다.
또 다른 각도에서 창조적 진화의 과정을 서술하고 있는 찬가도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타파스’라는 열기에 의해서 모든 것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76

초기 베다에서는 자연현상과 그 세계를 다스리는 자연적 요소, 즉 태양, 불, 천둥, 물 등이 신격의 지위로 격상되어 숭배를 받았다면, 이제는 관심의 초점이 이동되어 그 모든 현상의 배후에는 ‘누가’이 현상을 만들어내거나 조종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졌다.  83

타파스에 관한 한 우리는 적어도 두 가지 사실을 연역해낼 수 있다. 하나는 자연과 우주 차원의 열기이며, 또 하나는 인간에 관한, 특히 제사와 관련된 고행이나 금욕으로서의 열기하는 측면이다. 이 모두가 창조와 관련이 있다.  86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우주의 근원은 열기, 곧 불(火)이라 했던 것과도 상통한다. 그는 열기가 강해지면 태양처럼 뜨거워지고 식으면 물이 되거나 얼음처럼 변화되는 것이 우주 변화의 원리로 보았던 것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볼 때, 태양의 열기는 땅에서 물을 끌어올리고 비를 생산한다. 반면에 제사에 사용되는 불은 바쳐진 음식물을 끓여서 증기를 유발한다. 사제들이 열정적으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의 몸에서 땀이 솟는다. 태양의 열기든지 사제의 땀이든지 모두 타파스와 관련된다. 자연적 열기로서의 타파스는 태양이 과일을 익히듯이 불이 되어 제사의 음식을 익힌다. 과일이 태양의 열기에 먹기 좋게 익듯이, 제사음식도 먹기 좋게 익는다(pakva).
여기서 다시 ‘먹힘’의 미학을 보게 된다. 제사는 먹음과 먹힘의 사슬관계다. 먹힘이 없는 먹음은 없다. 먹고 먹힘의 구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타파스다. 다시 말해서 일체의 희생제의는 타파스의 열기로 가능하다. 우주적 희생제의는 바로 타파스로부터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86-87

베다의 창조와 관련된 일자나 타파스에 이어, 좀더 구체적으로 우주창조의 신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본문이 있다. 그것이 이른바 ‘황금의 모태’(the Golden Embryo) 신화다.
<리그베다> 제10권 제 121장에 따르면 태초에 ‘황금의 모태’로 표현되는 히란야가르바(hiranyagarbha)가 있었다고 한다.  88

히란야가르바는 ‘히란야’(hiranya)와 ‘가르바’(garbha)의 합성어로서, 황금과 태(胎)의 복합어다. 황금빛 나는 모태는 후기에 가서 ‘황금계란’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우주의 난생신화(卵生神話)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89

또 다른 이름의 창조주 비슈바카르만을 살펴보자. <리그베다> 제10권 제 81~82장에 따르면 우주를 창조한 신(deva), 곧 전능자로서의 ‘조물주’(造物主)인 비슈카르만(Visvakarman)이 언급되고 있다. 그 조물주는 자신을 위한 우주적 제의 속에서 여러 신성한 제의와 창조력을 지니게 된다. 그는 ‘거룩한 언어의 주’였던 바짜스파티(Vacaspati)와 동일시되기도 하면서, 용광로 같은 불속에서 천지를 창조해낸다. 천지가 부르이 제사를 통해 탄생했다는 이야기다.  93-94

현대 과학에서 우주형성의 기원을 말하는 빅뱅이론도 핵융합 반응의 결과라고 하니, 창조와 불의 신화적 상상력과 그 관련성이 허무한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는다.  94

“제사의 직무(Hotar)를 관장하면서 이 모든 세계를 제물로 바치는 현자, 우리의 아버지 그분께서는 풍요로움을 꿈꾸면서 지상에 사람들 가운데 오셨도다.
그가 거처로 삼은 것은 무엇이었던가? 무엇이 그를 지탱해주었던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졌다는 말인가? 비슈바카르만이 권능의 힘으로 만물을 바라보자 영광 속에 땅이 만들어지고 하늘이 드러났도다.
사방으로 눈, 입, 팔, 발을 가진 그가, 일자인 창조주 그가 그의 팔로 날갯짓을 하면서 천지를 만들었도다.
무슨 나무로, 무슨 목재로 그들이 천지를 만들었겠는가? 그대 생각이 깊은 자들이여, 스스로의 마음속에 자문해보라. 그가 만물을 창조할 때 어디에 서 있었겠는가?
가장 높은 곳이든지, 가장 낮은 곳이든지, 또 그 가운데 어떤 곳일지라도, 오, 비슈바카르만이여, 제사 속에서 그대의 친구들을 깨닫게 해주소서. 그대 자신의 법에 따라 사는 자여, 그대 자신의 몸을 희생시켜 그대를 위대하게 만들었도다.
공물을 통하여 위대해진 오, 비슈바카르만이, 자신의 몸인 천지(天地)를 희생시볐도다. 우리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이 어리석음에 빠져서 살지라도 우리는 너그럽고 풍요로운 후원자를 지니자.
사고(思考)만큼 빠른 거룩한 언어의 주(主), 비슈바카르만을 찬미하자. 오늘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돕도록. 의로운 일을 행하시고, 만인에게 자비르 베푸시는 그분께서 우리의 모든 청원을 기꺼이 도우시도록 하자.”(<리그베다> X 81. 1~7)  94-96

‘제사’야말로 우주의 시작이고 끝이다. 아니 그 끝없는 흐름의 연속이요. 우주생성과 생존의 비밀이다. 제사를 현대적 용어로 말하자면, 밥이 되어 ‘먹힘’이다. 먹힘으로써 다음 생이 이어진다. 먼저 창조된 제물의 존재는 후속으로 이어지는 다른 제물의 존재들에게 영광의 자리를 물려주고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이것이 우주생성의 비밀이다.
문제는 창조주 자신이 바로 이 세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된다는 또 하나의 기막힌 역설이다. 본문에서 조물주 비슈바카르만은 언어의 신 바크(Vac)와 동일시되면서 유일하게 “신들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자”이며 “하늘과 땅을 초월해 있는 자”다. 그리고 그는 ‘황금의 모태’로서 물속에서 우주를 잉태한 히란야가르바아 같은 창조주로서의 명성을 떨친다.
이처럼 비슈바카르만은 언어의 신 바크와 동일시되어, 모두가 물, 불, 사고 그리고 언어라는 각자의 요소가 지닌 창조력이 혼융된 형태로 드러난 ‘제일자’(第一者) 혹은 ‘제일원인(第一原因)이 되고 있다. 결국 만무르이 창조주인 비슈바카르만은 언어의 주(主)이자 동시에 제사를 집행하는 브라흐만(brahman)의 주이며, 불의 신 아그니와 제사를 만들어낸 물에서 진화한 최초의 모태가 된다. 제사의 형식을 통해 우주를 창조해가는 베다의 창조 관념은 베다가 얼마나 제사르 중시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실제로 창조주 삐슈바카르만은 제사의 주(主)이기도 하지만 제사행위 그 자체를 통해 우주를 창조한 것이기도 하다.  98-99

다자, 즉 우주의 생성이 이러한 변증법적 자기발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은 그리스도교에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는 과정의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창세기>에 따르면, 하나님은 ’언어’(말씀)로 ‘빛’과 천지를 창조하면서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한다. .. 그리스도교에서도 베다의 바크처럼 언어로 창조할 뿐 아니라, 자기 형상을 인간을 만드는 것도 일자에서 다자로의 우주적 전개라는 신적 의지가 ‘자기희생’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99

베다가 말하는 우주적 거인, 푸루샤(Purusa)에 대한 묘사는 ‘푸루샤 찬가’(the Purusa Sukta)에서 잘 나타난다. 이 찬가에 따르면 우주가 제사와 관련하여 창조되듯이 우주적 인간도 제사와 관련하여 창조되고 있다. 이 찬가는 두 가지 기본적인 구조로 묘사되는데, 첫 번째 부분은 우주적 인간, 곧 원초적 인간 푸루샤의 기원과 그 위대성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푸루샤의 희생제사다. <리그베다>의 제 10권 제 90장에 등장하는 이 유명한 찬가는, 신들이 우주적 거인인 푸루샤의 몸을 분할함으로써 세계의 일부가 탄생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101

“푸루샤는 천 개의 머리, 천 개의 눈, 천 개의 발을 가졌다. 사방 온 세계에 편만해 있는 그는 열 개의 손가락을 그 너머로 뻗치고 있다.
푸루샤는 정녕 이 모든 세계 그 자체이며, 세계로서 존재해왔고 또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는 (제사)음식을 통하여 탄생시킨 불멸(신들)의 세계를 통치한다.
이것이 푸루샤의 위대성이며, 동시에 푸루샤의 능력은 이것도 넘어선다. 모든 피조물은 푸루샤의 4분의 1에 불과하며 나머지 4분의 3은 하늘에 있는 불멸의 것들이다.
푸루샤의 4분의 3은 위로 올라가고 4분의 1은 여전히 지상에 남는다. 이 지상에서 다시 온 사방으로 뻗쳐 생물(먹는 것)과 무생물(먹지 않는 것)에게 침투한다.
푸루샤로부터 비라즈(Viraj)가 탄생되었고, 비라즈로부터 다시 푸루샤가 나왔다. 푸루샤가 탄생될 때, 그는 지구 너머 그 이면까지 뻗쳤다.” (<리그베다> X 90.1~5)..
대승불교사상 가운데 천수천안(千手千眼)의 보살(菩薩)이 등장하는데, 이것도 푸루샤의 전지전능성과 상징적 측면에서 유사한 일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이러한 불교의 상징적 수사(修辭) 또한 베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102-104

신들이 푸루샤를 분할했을 때, 몇 부분으로 나누었던가? 그들은 그의 입을, 그의 두 팔을, 넓적다리와 발을 무엇이라고 불렀던가?
그의 입은 브라만(Brahman) 이 되고, 그의 팔은 전사(戰士, Rajanya), 넓적다리는 평민(Vaisya), 발은 종(Sudra)이 되었다.
달은 그위 마음에서 생겨났고, 태양은 그의 눈에서 생겨났다. 인드라와 아그니는 그의 입에서 나왔으며, 바람은 그의 생명의 숨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배꼽에서는 중간 지대의 공간이 생겨났고, 그의 머리로부터는 하늘이 전개되었고, 그의 두 발로부터는 땅이, 그의 귀에서는 하늘의 사방이 펼쳐졌다. 이와 같이 신들은 세계를 질서 있게 창조했다.
푸루샤를 위해 일곱 개의 봉인된 막대기와 훌륭한 일곱 개의 땔나무가 준비되어 있었다. 신들은 희생제사를 차리면서 푸루샤를 제사용 짐승으로 결박했다.
제사를 통하여 신들은 제물에게 제사를 바쳤다. 이것이 첫번째 제의의 법칙들이다. 이러한 제의의 법칙으로서의힘은 고대의 신들인 사드야(Sadhyas)가 머무는 하느르의 둥근 꼭대기에 도달한다. (<리그베다> X 90.6~16)  106

푸루샤가 크게 네 부분으로 갈라질 때, 입은 브라만이 되고 팔은 전사가 되며, 넓적다리는 평민, 그리고 발은 종과 같은 하인이 된다. 이것이 이른바 인도의 고대 전통사회를 형성하는 4성제도(四姓制度), 곧 카스트(ccaste)의 기초가ㅏ 된다.
푸루샤의 몸통 분할은 사회적 역할의 분할 또는 물리적 우주의 공간 배치라는 의의를 가진다. 예컨대 몸통의 최하위인 발에서 나온 섬기는 자 수드라는 사회의 기본을 이루는 층이 된다. 마치 땅이 우주의 기초가 되는 것과 같다.
넓적다리에서 나온 평민인 바이샤 계급은 왕성한 근육처럼 왕성한 사회 활동을 하는 부류다. 팔에서 생긴 크샤트리아는 무기를 다루고 사람을 지휘하는 전사와 지도자의 역할을 한다. 입에서 나온 브라만은 각종 시와 노래로 만트라를 암송하며 제사를 집행하는 사제의 역할을 담당한다.  107



3 모든 것은 제의의 불을 통해 - 베다의 제사

기원전 10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는 아리아인의 세계관에 변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제사에서 숭배되는 신들의 권력이동이다. 예컨대 인드라 신이 초기 베다에는 중심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점차 그 원위를 불의 신 아그니에게 물려주게 된다. 그리하여 부르이 신 아그니는 인드라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모든 신들의 왕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이는 생활 속에서 차지하는 불의 역할이 그만큼 더 중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13

천상(天上)의 신 바루나를 포함한 여러 신들에게서 다양한 권능을 넘겨받은 것은 인드라였다. 인드라는 바루나(Varuna) 신과 다른 열등한 신들(devas)의 권위를 모두 흡수하고 초기 베다시대 이후 오랫동안 신들 가운데서 최상의 권위를 차지해왔다.  
인드라는 신 중의 신으로서 유일신에 가까운 권위를 자랑하는 자리에까지 오르지만 결국 인드라의 권위도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무너진다. 대신 그 권력을 지상의 신들, 특히 희생제의를 주관하는 불의 신 아그니에게로 이양된다. 아그니가 제의의 중심이 되면서 최고 권위의 인드라와 대등한 위치 혹은 우위에 서게 된 것이다.
이는 점차 제사에 관한 관심과 중요성이 제사 그 자체의 행위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 불의 제의적 기능을 토앟여 인간은 그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신들에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114

언어를 떠나 과연 인간이 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인류는 분명 저급한 사고 수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언어로 수천 년의 문명사를 기록하고 발전시켜왔다. 오늘도 우리는 하루하루 언어로 집을 짓고 산다. 그러나 모호하고 불의(不義)한 소통은 무너질 수밖에 없는 ‘바벨탑’이 되어, 엄청난 역사의 퇴보를 가져온 일면도 있다.
소리의 신 바크가 죽음의 신 야마의 역할을 겸하는 이유도, 소리속에 정의가 담겨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크는 ‘정의의 신’이기도 하다. 이제 그 정의의 신은 제단에서 거룩한 소리가 되어 만트라 속에서 울려 퍼진다. 그리하여 소리는 내면의 소리이자 ‘일자의 소리’가 된다. 일자의 소리는 다시 지식의 근원이 된다. 그리스도교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라고 하는 말과도 통한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신앙은 지식의 출발이며, 참 지식은 정의로운 삶 속으로 참 신앙을 불러일으킨다.  124-125

베다에서 의례와 만트라는 고유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적절히 사용되면 원하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반면에, 그것이 부적절하게 사용될 때는 커다란 재앙을 초래한다고 믿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브라만 사제들이 제사의 행위를 적절히 감독하는 직분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126

작은 제사 하나도 우주적 제사행위와 관련되는 것이므로 제사행위를 위한 전문화 교육은 필수였고, 오직 정화되어 순수한 영혼의 사제에게만 창조적 실재인 ‘브라만’의 힘이 부여된다고 믿었다. 그러기에 이들 사제는 늘 순수성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
제사를 수행하는 자는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의 순수성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늘 자신의 몸을 정화시킨다. 목욕을 하거나 머리를 깎고 신선한 버터를 바름으로서 신선한 ‘배아(胚芽)의 상태’를 유지한다. 이때 사제는 <아이트레야 브랄흐마나>가 진술하고 있는 것처럼, ‘봉헌의 오두막(배아)집’을 마련하게 되는 셈이다. ..
사제는 정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심지어 자신의 몸이 가려워도 맨손으로 자신의 몸을 긁어서는 안 되며, 준비된 흑염소의 뿔을 이용해야만 한다.  1127

사제가 오두막에 감금되고 불 가까이에서 염소 가죽 같은 거적을 둘러쓰고 있는 이러한 행위는 제사를 드리는 봉헌자의 ‘열’(熱)을 발산하기 위함이다. 의례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땀이 흘러도 물을 마셔서는 안 되고 목욕을 할 수도 없다. 물은 오염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오직 열, 곧 타파스를 발산해야 한다. 파타스는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열기이기도 하지만 ‘고행’을 뜻하기도 한다. 수고와 고통 없이는 해산(解産)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다의 제식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바른 수행을 통해 ‘브라만’의 힘을 얻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행방법으로서 사제의 정화노력, 곧 타파스를 발산하는 일 등이 아주 중요한 제의의 요소가 된다.
이러한 고행의 단계를 거친 사제는 신들의 위치로 가는 힘 또는 신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하는 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결국 희생제의를 통해서 얻어진 이러한 ‘힘’으로, 인간이 마침내 우주 그자체를 통제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28

<사타파타 브라흐마나> 문서는 소바(Soma, 酒) 제의, 이를 테면 제단을 어떻게 세울 것인가 하는 등의 여러 가지 무넺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128

프라자파티는 열기인 타파스를 이용하여 만물을 창조했다. 앞에서 보았듯이 타파스는 모든 창조의 원리다.  131

오늘날 인도의 힌두 사원에서 불의 제사가 계속 행해지는 것이나 죽은 자를 화장(火葬)하는 제도 역시 이러한 관념에서 멀지 않다.  131

타파스가 이중적 의미, 곧 ‘열기’이자 ‘고행’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다시 생각해본다면, 창조의 과정은 단순한 열기만이 아니라 고행이 기초가 되고 있음도 읽어내야 할 것이다. 고행은 현대 용어로 ‘수행’(修行) 또는 ’수양’(修養)이라 번역해도 좋을 것이다.  131-132

말은 인도유럽계열에서 전쟁의 영웅으로 숭배되는 지고한 상징이다. <리그베다>에서 말(馬)은 광범위하게 걸쳐 칭송을 받는다. ..
말은 <리그베다>에서 3중의 기능을 한다. 우선 실제로 길들여진 말(馬)로서 인도 아리아인이 인도 유렵 세계를 정복할 때 사용된 군마와, 성(聖)과 속(俗) 사이를 달리는 경주용 말, 그리고 제사에 희생되는 제의의 말이 있다.  132



4 죽은 자가 가는 운명의 길 - 죽음과 환생의 노래

<리그베다>에서 죽음은 주요한 주제다. 창조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만큼 인간의 죽음 또한 외면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베다에는 제의에 대한 찬가가 주로 수록된 만큼 장례의 문제를 다루는 노래가 다양하게 나온다. 장례의 방식에 따라서 화장(火葬)식에서 부르는 노래, 매장(埋葬)식에서 부르는 노래 등이 서로 다르다.
베다에는 죽은 자가 가는 운명의 길이 몇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하늘나라로 가는 자,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자, 혹은 부활하는 자, 화신(化身)이 되는 길 등이 표현되고 있다.
베다의 기록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죽음 후에 각기 저마다 운명의 길을 가되, 하늘나라 혹은 조상들의 세계 등으로 편입되어 가기를 원한다.  145

베다에서 죽음을 관장하는 신은 야마(Yama)다. 야마는 사자(死者)의 왕으로서 죽음의 세계를 지배한다. 야마가 죽음이 신이 된것은 그가 처음으로 죽음을 맛보고 저승으로 간 자이기 때문이다.  145

“험준한 난관을 헤치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길을 찾아낸 비바스반(Vivasvan : 태양)의 아들,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자, 야마 왕에게 공물을 바치면서 그를 공경하라.
야마는 우리를 위해 처음으로 길을 발견한자니, 그곳은 영원히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곳은 우리의 조상들이 건너간 곳이며, 앞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도 각자의 길을 따라가게 되리라.” (<리그베다> X 14.1~2)  146

장례식의 화장터에서 사자의 주변을 떠돌며 사자를 먹으려고 달려드는 귀신들을 향해 명령하듯 사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버리는 형태의 노래도 있다.  “물러가거라. 쏙 물러갈지어다. 여기서 꺼져버려라. 조상들이 사자를 위해 이곳을 마련한 것이다. 야마가 그에게 낮과 물과 밤으로 장식한 안식처를 주었다.” (<리그베다> X 14.9)
고대의 인도인은 귀신들이 화장터에 살면서 사자의 타는 육체를 먹는다는 생각을 했던 듯하다. 귀신들이 불에 타는 사자를 먹기 위해 달려드는 이유는 두 가지로 해석된다. 하나는 귀신이 불에 타면서 새로운 형태의 몸을 입고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데, 이때 귀신이 그 몸을 빌려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적으로 달려든다는 생각이다. 또 하나는 후대의 힌두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고 있듯이 귀신들이 단지 사자의 시체를 먹기 위해 달려든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두 가지 생각은 점차 후대로 가면서 후자의 생각이 일반화되게 되었다.  149-150

불의 신 아그니는 베다 전체에서 인드라와 더불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신으로, 특히 제사에 관해서는 단연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만큼 제의와 관련항 아그니가 하는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죽음의 제의인 장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그니는 죽은 자를 조상에게 보내는 역할뿐만 아니라, 제사에 바쳐진 공물을 신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한다.  153

[죽은 자에 대하여]
”그대의 눈동자는 태양으로, 그대 영혼의 숨결은 바람으로 떠나시오. 그대의 업(業)에 따라 하늘로 가거나 땅으로 가시오. 아니면 그대의 운명이라면 물로 가시오. 가서, 그대의 손발은 식물의 뿌리가 되어 터를 잡으시오.” (<리그베다> X 16.3)
한 인간의 죽음을 두고, 죽음 그 이후에 우주로 환원되는 모습을 비유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비유는 실제적인 환생의 모습을 기원하고 있는 것이리라. 불꽃 속에서 한 줌 재로 사라져갈 인간이지만, 그 인간이 생전에 지니고 있던 신체의 모든 부분이 다시 우주속으로 귀환하는 것이다. ..
위의 베다 본무에서 우리는 인도 사상의 ‘업’(業) 개념을 발견하게 되는데, 인간이 살아생전의 활동에 따른 결과를 후과(後果)로서 죽음 이후에도 받게 된다는 ‘인연업보’ 개념이 형성되는 초기의 사상적 맹아(萌芽)를 볼 수 있다.  155-156

[아그니에 대하여]
“염소는 그대의 몫입니다. 그대의 열기로 염소제물을 태우소서. 그대의 눈부신 빛과 화염으로 제물을 태우소서. 오, 피조물을 아시는 이 자타베다여! 그대의 상서로운 친절한 모습으로 선한 행위를 한 이들이 살고 있는 경건한 나라로 이 사자(死者)를 인도하여 주소서.
아그니여, 우리가 바치는 제의의 소마즙과 함께 죽은 자가 그대에게 제물로 바쳐질 때 그를 다시 자유롭게 하여 조상들에게 보내소서. 그리하여 그가 새로운 생명의 몸을 입고 극의 자손이 번성케 하소서, 피조물을 아시는 이, 자타베다여!” (<리그베다> X 16.4~5)
죽은 자를 위한 장례식에서 염솟가 희생제물로 등장하고 있다. 죽은 자를 위해 소마즙과 함께 바쳐지는 희생물을 통핳여, 죽은 자는 아그니의 도움으로 조상들에게 보내지고 새 생명의 몸으로 자손을 번성케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죽은 자에 대한 기원의 노래가 이어진다.
[죽은 자에 대하여]
“까마귀가 와서 그대를 쪼아 먹든지, 개미나 뱀이 달려들든지, 아니면 그 어떤 짐승(자칼)의 먹이가 될지라도,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아그니가 그리고 사제들과 함께하는 소마가 그 상처를 온전히 지켜줄 것이오.
암소의 네발로 그대 몸을 감싸고 아그니의 화염 속에서 그대를 보호하시오. 두터운 지방질로 그대 몸을 덮으시오. 그리하여 그대를 완전히 불살라버리려고 하는 아그니의 맹령한 열기로부터 그대를 지키도록 하시오.”(<리그베다> X 16.6~7)
인도에는 유달리 커다란 까마귀가 많은 편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새가 와서 죽은 자의 시체를 뜯어 먹도록 하지만, 베다의 전통에서는 불로 화장을 함으로써 장례가 진행된다. 화장을 하되 시체가 가급적 온전히 유지된 상태에서 다음 생으로의 신생(新生)을 기약한다.  156-158

죽은 자를 장사지내는 매장식(埋葬式)에서, 사제는 죽음에 대하여, 또는 유족에 대하여 충고나 권면의 노래를 부른다. <리그베다> 제10권 제18장 제1~14절 전체에 걸친 매장식의 노래에 담긴 이야기를 중심으로 본문을 분석해보자.
[죽음에 대하여]
“죽음이여 떠나가거라. 신들의 길과는 다른 너의 길로 떠나거라. 눈을 가지고 귀를 가진 너에게 말하노니, 우리의 자녀와 인간(용사)을 해치지 말라.” (<리그베다> X 18.1)  161

“이 광활한 땅, 친절하고 온화한 어머니 - 땅(地母) 속으로 살며시 들어가시오. 어머니 대지는 젊은 여인이오. 공물을 바치는 누구에게나 양털처럼 부드러운 분이오. 어머니 - 땅으로 하여금 날름거리는 ‘파멸’의 혓바닥으로부터 그대를 지키게 하시오.
땅이여, 가슴을 열고 죽은 자를 받아 덮고 무겁게 짓누르지 마시오. 가슴을 열고 죽은 자를 받아 덮고 무겁게 짓누르지 마시오. 편안하게 굴 속에 들어가 그곳에 거하게 하소서. 땅이여 어머니가 아들을 치맛자락으로 감싸듯이 죽은 자를 감싸고 보호하소서.” (<리그베다> X 18.10~11)
<성서>의 표현대로 육신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지만, <리그베다>처럼 죽은 자에 대하여 어머니 같은 포근하고 온화한 대지로 돌아갈 것을 축원하는 모습은 참으로 이색적잉고 따뜻한 느낌을 갖게 한다. ..
망자를 위로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산 자에게도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덜게 하고 살아생전 대지에 대한 고마움을 잃지 말고 살라는 교훈으로 들리기도 한다. 어머니 대지를 사랑하는 자는 땅속에서 ‘파멸’이라는 두 번의 죽음을 겪지 않고, 보호받는다는 뜻이다.  168

“나는 그대 주위를 흙으로 돋우고, 이 흙덩이를 내리면서 그대를 상하지 않게 할 것이오. 조상들이 그대를 위해 이 기둥을 굳게 붙잡아줄 것이오. 야마가 그대를 위해 이곳에 집을 지어줄 것이오.” (10.18.13)  169



5 최상의 권위를 자랑하는 위대한 권력자 - 천상(天上)의 신들

<리그베다> 제6권 제50장은 전체 1~15절로 ‘여러 신들’에 대한 찬가가 함께 섞여 있다. .. 불과 1, 2절에서만 해도 아디티, 미트라, 바루나, 아리아만, 사비트리, 브하가, 수리아, 다크샤, 아그니라는 아홉 신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모두 ‘아디티야’(Adityas)로서 ‘태양신들의 집단’이 되는 ‘빛’ 또는 ‘태양’과 관련이 있는 신이다.  181

9명의 아디티야 가운데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신이 바루나다. 바루나는 1,000개의 눈을 가지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빛나는 황금 외투를 입고 있다. 바루나와 미트라를 태양빛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팔로 천상에서 마차를 운전한다. 천상은 1,000개의 기둥과 1,000개의 문이 달려 있는 곳이다.  183

모든 우주적 통치의 역하 ㄹ가운데서도 특별히 바루나는 비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자주 언급되며, <리그베다>에서는 바다의 물과 관련해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
왕이자 도덕적 통치자이던 태양신은 후기 문헌인 <아타르바베다>에 가서는 성격이 다르게 변화된다. 예컨대 미트라와 바루나는 각각 낮과 밤의 대명사가 되는 것이다. 미트라는 낮의 해가 되고, 바루나는 밤의 달이 되는 것이다.  184-186

낮과 밤의 역할을 떠맡은 미트라와 바루나는 점차 후기로 가면서 다시 그 역할이나 기능이 축소되어간다. 바루나는 천사의 빛의 왕좌에서 다시 물을 통제하는 자로 바뀌어가고, 그의 황금의 집도 이제는 물속에 있게 된다. 바루나가 빗물을 내리면서 바루나와 미트라는 ‘물의 주(主)’가 된다. 바루나의 천상통치는 비를 내리는 행위처럼 점점 물과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 바루나가 달과 관계가 깊어지는 것도 역시 물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186

바루나의 역할과 기능데 비해 미트라는 상재적으로 베다에서 적게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미트라와 바루나가 동시에 찬양을 받고 있는데, <리그베다>에서 미트라의 역할을 독자적으로 소개한 곳은 유일하게 제3권 제59장뿐이다.  186

아디티야는 다소 한계가 분명하지 않은 신들의 집단이다. <리그베다>의 몇몇 곳에서 태양신 아디티야의 이름은 경우에 따라서 일곱 개 혹은 여덟 개로도 묘사된다. 그러나 대체로 일곱 개인 것이 지배적이다. 이들은 미트라, 아리아만, 브하가 , 바루나, 다크샤, 수리아, 사비트리다. 이밖에도 ‘빛’의 그룹에 속하는 신 푸산 등이 있는데 이들은 뒤에서 별도로 살펴보겠다.
아디티야라는 명칭은 인드라에게도 적용되고 있을 만큼 의미영역이 광범위하다. 물론 인드라 신의 위대성이 점점 터져갈 때 아디티야의 이름에 흡수된 것이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다양하게 표현되는 태양신 아디티야의 여러 가지 위상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신은 역시 바루나다. 그 다음이 미트라이고 세 번째가 아리아만이다.
이들은 모두 천상의 빛의 신으로서 각 이름의 의미처럼 밝고, 빛나면서 졸지도 않고, 흠 없고 순수하고 거룩한 황금빛의 신이다. 이 태양신들은 적을 가두고 신봉자를 보호해주며, 죄인은 형벌하지만 나약함을 용서해주기도 한다. 동시에 질병르 퇴치하고 장수와 자손의 번성을 도와준다.  187-188

바루나와 미트라에 대한 묘사와 마찬가지로 수리아는 ‘하늘의 눈’으로 표현되는데, 멀리 내다볼 수 있어서 인간들의 행위를 감시하는 자가 된다. 수리아는 아디티야의 하나이지만 동시에 아디티야와 구별되는 독특한 성질을 지닌다.
..
무엇보다 태양신 수리아의 진가는 힘의 세력을 신과 인간을 위해 세계를 비추는 빛에 있다. 그의 빛으로 어둠을 물리치고 어둠과 사악한 힘의 세력을 정복하는 것이다. 수리아는 신들의 사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미트라와 바루나 앞에서 인간들의 무죄를 선언하도록 요청을 받기도 한다. .. 천둥과 폭ㅍ풍수의 신 인드라가 태양을 가리게 하는 힘을 가지고 저마 위력이 커지면서 수리아는 차선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189

사비트리는 눈, 손,혀, 팔이 모두 황금으로 된 황금의 신이다 사비트리는 황금의 손을 펼쳐서 인간들에게 생명을 선사한다. .. 사비트리는 노란 머리칼을 하고 황갈색의 겉옷을 입고서 황금 마차를 타고 있다. ..
사비트리는 맑은 길을 따라 하늘을 날면서 영혼을 의로운 곳으로 안내하며, 신과 인간에게 불멸을 제공한다.  194

사비트리의 역할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역시 인간들이 각각 자신의 몫을 감당할 수 있도록 고무시키고 격려하는 일과 사제들이 제의를 집행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이었다.  195

풍요로움을 주는 푸산은 인색한 자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역할뿐만 아니라, 승리의 길을 만드는 자, 야비한 자의 심장을 찌르는 자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된다. 다른 찬가에서 푸산은 일반적으로 힘과 영광, 지혜, 관용성 등으로 상징된다.  196

<리그베다>에서 비슈누는 다른 신에 비해 극히 제한적으로 찬미되고 있다. 특히 수백 편이 넘는 찬가만을 지니고 있다. 인기 있는 다른 신들이 수천 번 넘게 호명되는 데 비해 비슈누는 100번도 언급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비슈누는 폭풍의 신 루드라와 같이 크게 존경을 받고 있고 후기로 갈수록 인기는 더해간다  
비슈누는 젊은 신으로 거대한 몸집을 하고 있고, 보폭이 넓어 세 번의 큰 걸음으로 악마로부터 세계를 구출해낸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비슈누의 세 걸음은 지상과 공중, 그리고 천상의 가장 높은 곳으로 구분해 설명되는데, 이 걸음은 새로운 우주 공간을 창조해낸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첫 번째 걸음은 땅의 영역을, 두 번째 걸음은 상층부 하늘, 세 번째 걸음은 가장 높은 천상의 세계로 비슈누가 거주하는 곳이다. 이 세걸음은 새벽과 정오와 석양이라는 태양의 세 가지 현상에 대한 상징적 은유다. 이는 새벽의 여신 우사와 길의 태양신 푸산, 그리고 석양의 태양신 사비트리를 연상하게 한다. 비슈누의 걸음을 ‘비카르마’(vikarma) 또는 ‘파다’(pada)라고 하는데, 특히 후자에는 많은 은유적 해석이 따른다.
첫 번째 해석으로는 ‘발’(foot)이라는 의미로 라틴어의 ‘페스’(pes)에 해당한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어떤 장소에 머물러 있는 동작을 포함하여 발의 동작에 따른 ‘발걸음’(step)이나 ‘족적’(footprint)으로 해석한다. 셋째는 ‘파다’가 인간과 신이 함께 거주하는 실제적인 장소를 뜻하거나, 소의 바랒국이 찍힌 자국에 무링 고이듯 그곳에서 꿀샘이 솟아나는 장소를 만드는 발걸음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처럼 비슈누의 발걸음은 그 보폭으로 인하여 유명할 뿐 아니라, 걸음마저 다양하게 해석된다. ..
<리그베다> 제 1권 제155장에서는 비슈누-인드라 신을 나란히 영웅적인 신으로 찬양하기도 한다.  197-198

비슈누는 처음에는 빛의 신으로 출발하여 후기 베다시대에 갈수록 점점 인기가 높아져 힌두교의 최대신인 창조자 브라흐마, 파괴와 재새으이 신 시바, 그리고 유지의 신 비슈누라는 삼위일체의 최고신 자리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높은 지위와 인기를 누리게 된 배경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비슈누 신이 인간과 동무르이 종족 번식에서 가장 중요한 태아(胎兒)를 보호해주는 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점은 다른 어떤 태양신에게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으로, 가축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번영을 기원하는 인간과 사제들에게 더욱 인기 있는 신으로 각광을 받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더구나 비슈누는 그의 큰 세 걸음으로 후기에 가서는 악마의 대부로 여겨지는 아수라(Asura)로부터 세계를 보호하는 등, 땅과 공중, 천상이라는 세 개의 세계를 모두 정복한다. 때문에 여러 신에게 제사를 드리지만 대부분은 비슈누에게 바쳐진다. 바로 이 점이 점차 비슈누가 가장 위대한 신이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특히 베다 후기 문서에서 자주 발견되듯이 비슈누가 에무사(Emusa)로 불리는 수퇘지로 화신(化身])하여 지구를 물에서 건져올리는 모습이라든가, 인도 고대 설화집인 <푸라나>(Purana)에서 거북이가 비슈누의 화신잉 된다는 표현 등은, 모두 희생 행위 또는 제물로서의 비슈누를 위대하게 평가한 것이다.
비슈누의 인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인도 신화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바가바드 기타>의 주인공 크리슈나(Krishna)로 화신하여 인류의 평화를 가져오는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결국 ‘희생제의’의 존재로서 비슈누가 인류와 우주를 건지고 보호하는 가장 위대한 신으로 숭배받게 되었던 것이다. 맟치 그리스도교에서 예수가 십자가의 희생제의를 통해 인류의 구세주로서의 위치로 승격되었듯이 말이다.  201-202

<푸라나>에 따르면, 마누는 14대의 긴 기간에 걸쳐서 공중에 거처하면서 인간의 의식을 각성시키는데, 그 일곱 번째 시기에 해당하는 마누의 이름이 비바스바트라고도 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비바스반 아디티야(Vivasvan Aditya)의 후손이 된다. 이간은 태양의 아들인 셈이다.
<리그베다>에서는 비바스바트를 신들의 아버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의 아내는 장인(匠人)의 신 트바스트리의 딸 사라뉴(saranyu)다. 사라뉴와의 사이에서 야마와 마차를 이끄는 천상의 신 아쉬빈을 낳는다.  204

아쉬빈은 <리그베다>에서 인드라, 아그니, 소마 다음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찬양을 받는 신이다. 아쉬빈(asvin)이라는 산스크리트어의 의미는 ‘마차꾼’이라는 뜻이다. ..
아쉬빈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두 개의 눈, 두 개의 손, 두 개의 발, 두 날개, 그리고 쌍으로 같이 있는 동물들과 비교된다는 점이다. 이들 쌍은 빛나고 기민하며 젊고 아름답다. 또한 붉은색을 띠면서 강한 힘을 자랑하고 법칙을 강화하기도 하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전지자(全知者)라 불리기도 한다.  205-206



6 공중의 세력을 관장하는 대기의 힘 - 대기(大氣)의 신들

<리그베다>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려긍ㄹ 행사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인드라가 바로 이 대기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신이다. 천둥번개를 일으키며 공중의 세력을 관장하는 인드라와 바람의 신 바유, 폭풍의 신 마루트와 루드라도 대표적인 대기의 신들이다. ..
인드라(Indra)는 ‘대기’(大氣)의 현상을 인격화한 공중의 신이다. <리그베다>에서 가장 위대한 신으로서 ‘신들의 왕’으로 군림한다. ..
인드라는 날씨를 관장하는 주(主)로서 천둥 번개를 일으키며 비를 내려준다. 비를 내려줌으로써 다산(多産)의 신으로 존견을 받지만, 동시에 폭풍을 일으키는 신으로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한다.  213

<리그베다>에서 인드라에 대한 찬가는 250개나 된다. 이것은 <리그베다> 전체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214

그가(인드라) 즐기는 음식은 소마인데, 태어나던 날도 소마를 마셨다고 한다. .. 바람의 신 바유나 창조자 브리하스파티, 또는 아그니도 소마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만, 단연 최고의 애주가(Soma-drinker)로는 역시 인드라가 꼽힌다.  216

사회, 정치적 배경에서 탄생한 인드라 신은 천둥번개를 가진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그를 숭배하는 자들에게 비와 불로 은총을 가져다 주는 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후기 베다시대로 가면서 인드라는 최고신의 지위에서 비교적 낮은 신으로 떨어진다. 비록 작은 신들의 왕으로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긴 하지만, 이른바 인도의 주요한 3신, 즉 브라흐마(Brahma), 비슈누, 시바보다는 열등한 2인자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후기에 가서 인드라는 신들이 살고 있는 하늘(Swarga)의 통치자로 묘사되면서, 이 단계에서 인간의 여러 가지 나약함을 보살펴주는 자가 되기도 한다.  235

폭풍의 신 루드라(Rudra)는 인드라나 아그니처럼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리그베다>에서는 루드라에 대한 찬가가 독립적으로 편집된 곳이 단 세군데뿐이다. .. 그러나 루드라는 후대에가서 힌두교에서 가장 위대한 세 신 가운데 하나인 시바(Siva)로 불리며 역할이 승격된다.  236-237

루드라가 자주 불리지는 않지만 칭송을 받을 때는 다른 여러 신들에 비해 독립적으로 높이 찬양받으며 최고신의 대접을 받는다. 이는 인도 베다신화의 대표적인 특징이기도 한데, 예배를 드리는 자가 필요에 따라 그때마다 정한 신에게 최고의 칭호와 찬사를 부여하는 것이다.  241

마루트는 루드라의 아들들이기 때문에 루드리야(Rudriyas)라 불리기도 한다. 마루트는 폭풍의 아들이자 바람의 신으로서 인드라의 위대함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루드라보다 더욱 많이 칭송되었다.  241

바유는 이름 자체가 ‘불다’라는 뜻의 어근 ‘바’(va)에서 생긴 단어로, 바람의 신으로서 공중의 최고 신인 인드라와 깊은 관계가 있다.  248

친구 인드라와 같이 바유도 순수한 형태의 소마를 즐긴다. 바유는 신들 가운데서도 가장 빠르기 때문에 소바를 처음 마신 자가 되었다. ..
이에 비해 바타는 바람의 힘을 과시하고 거대한 먼지 구름을 일으킨다. 형태는 보이지 않으나 소리는 우렁차며, 신들의 호흡이자 신성한 생령(生靈-살아있는 일반 국민)으로서 공물로 섬김을 받는다. 또한 번개와 태양의 출현을 알리는 전령사이기도 하다. 불그스름한 빛을 만들고 새벽을 빛나게 한다. ..
후기로 갈수록 바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248




7 생명을 살리는 제의의 불과 음료 - 지상의 가장 위대한 신

지상에서 가장 인기 있는 최고 신으로 찬양받고 있는 대표적인 신들로는 단연 아그니와 소마를 들 수 있다. 불의 신 아그니와 술(음료)의 신 소마는 불과 물로 상징되는 만큼이나 서로 관계가 긴밀하다. ..
불과 물은 성질상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인도-유럽적 개념에서 물과 불은 ‘뜨거운 연금술의 액체’와 같이 하나로 융합되어 설명되기도 한다. ..
아그니와 소마는 베다의 시인들에게 제사와 인생의 의미를 찾고 이해하게 하는 주요한 영감을 준다. 아그니가 제의의 생산적 측면과 관련한 ‘아폴론적 영감’을 준다면, 소마는 제의의 파괴적인 요소와 관련해 인생의 비전을 설명한다는 측면에서 ‘디오니소스적인 영감’을 준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251

아그니는 제사행위에서 가장 먼저 초대되는 신이다.  252

또 다른 <리그베다> 본문에서는 아그니의 찬생이 물과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아그니는 물의 아들로 탄생되는데, 이는 마치 구름에서 번개가 치는 이치와 같다. 조로아스터교의 성전 <아베스타>(Avesta)에 나오는 깊은 물속의 정령처럼, 아그니는 물에서 탄생한다. 그리하여 아그니는 물의 아들(Apam Napat)이 된다.  265

<리그베다>의 시인 사제들은 아그니 못지 않게 소마에 대하여 많은 부분에서 길고도 장황하게 다루고 있다. 소마는 제의에서 가장 중요한 음료로서 신들이 즐기는 술이기 때문이다. ..
<리그베다> 제9권은 114편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시 전체가 오직 소마에 대한 찬가, ‘소마 파바마나’(Soma Pavamana : 정화시키는 자)로 편집되어 있다. ..
제의에 바쳐지는 음료 소마는 일종의 약초인 소마나무의 즙을 내어 만든다.  267

소마의 다양한 변형은 모두 물과 관련이 깊다. 구름, 암소의 우유, 꿀, 음료, 그리고 식물의 수액이나 동물(황소)의 정액(분비물, 씨앗), 술 등이 모두 물의 이미지와 관계가 깊고, 그 물은 언제나 제의의 한복판에서 신의 음료나 음식으로서 기쁨을 얻게 한다.  271

소마는 신들의 연회에 없어서는 안 될 제의의 기본요소인 술의 신이지만, 인간들에게 힘과 명성을 부여하는 신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불의 신 아그니와 함께, 술의 신 소마는 인두라는 칭호를 부여받으며, 물의 아버지가 되기도 하고 물의 아들이 되기도 한다.
인두는 ‘빛나는 물방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인더스(Indus) 강도 바로 이러한 명칭의 뜻을 지닌 ‘빛나는 물줄기’를 반영한 것이다. 소마는 다른 <리그베다>의 본문에서도 종종 인두라는 별칭으로 불리는데, 이두는 이때, 천지간에 보물과 부요함과 물을 가져다 주는 자다.  274



8 천지자연의 신성을 노래하라 - 천지와 자연의 신

<리그베다>에서 천지(天地)의 신은 각각 하늘의 신과 땅의 신으로 숭배를 받기도 하지만, 짝을 이루어 하나의 명사처럼 ‘천지의 신’으로 숭배받기도 한다. 하늘의 신 디야우스(Dyaus)나, 땅의 신 프리티비(Prthivi)는 각각 아버지(pitara)와 어머니(mataa)의 형태로 숭배를 받는데, 둘이 하나로 합쳐진 자웅동체(雌雄同體)의 디야우스프리티비(천지)라는 이름의 신으로도 <리그베다> 여섯 곳에서 독립적으로 찬미되고 있다.  285

천지가 디야우스프리티비라는 한 쌍으로 숭배를 받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서 땅만이 독립적으로 찬양을 받는 시편도 있다. 이른바 땅의 신, 프리티비에 대한 찬가다. 이는 그리스의 지모신(地母神) 가이아(Gaia)에 비교될 수도 있다.  290

“오, 피리티비, 언덕을 나누는 연장을 지닌 지니리의 그대여! 땅을 활기 있게 하는 풍부한 급류를 지닌 전능자여. 오, 자유로운 방랑자여, 밝은 낯빛으로 그대에게 소리 높여 찬미하나이다. 부풀어 오르는 구름같이, 우는 말처럼 달리는 오, 빛나는 색조의 말달리는 자여. 위대한 힘으로 강한 나무륻을 땅위에 붙들며, 구름으로 번개르 일으켜 하늘에서 비의 홍수를 내리는 그대를 찬미하나이다.” (<리그베다> V 84.1~3)  291

흥미로운 것은, <리그베다>에서 아수라가 하늘의 힘 있는 신으로 평가를 받았지만, 벌써 후기 문서에 속하는 <아타르바베다>에 이르러서는 아수라의 위상이 다른 신에게 정복당하는 위치로 전락한다. 땅의 여신마저 아수라가 설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  신들의 권력이동과 선악구별의 기준이 후대에 갈수록 점차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 시대에 와서 아수라가 악마적 요소로 변형되는 것도 이 시기를 거치면서다.  293

<리그베다> 본문에는 리부스(Rbhus)의 이름이 100여 곳이 넘게 불리는데, 그중 11편의 찬가에서 독립적으로 등장한다. ..
리부스의 성격을 특징짓기는 어렵지만 인드라를 돕는 신의 역할을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신들을 장식하는 목수로서 장인(匠人) 역할을 하고 있다. ..
리부스가 자랑하는 훌륭한 기술의 특징은 다섯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아쉬빈을 위해 말도 없고 고삐도 없이 세 개의 바퀴로 공간을 여행하는 수레를 만드는 일. 둘째, 인드라를 위해 두 마리 적갈색 군마를 장식하는 일. 셋째, 브리하스파티를 위한 신비의 암소를 제작하는 일. 넷째, 그들의 늙어가는 부모인 천지(天地)를 회춘시키는 일. 다섯째, 트바스트리가 만든 신들의 컵 한개를 흔들어 네 개로 만드는 일이다.  294-295

베다에서 동물은 다른 신들에 비하면 극히 제한적으로 숭배받는다. 그것도 동물에 대한 직접적인 숭배라기보다는, 여러 신들이 동물의 몸을 입고 나타나는 상징적인 비유의 형태다. 그러나 점차 후기로 갈수록 동물에 대한 숭배가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306

동물 가운데서는 무엇보다 말과 소가 가장 많이 등징하여 칭송을 받고, 염소, 멧돼지, 원숭이, 거북이가 비슈누의 화신이 된다. 뱀 또한 숭배의 대상이 되는데, 이는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뜻에서 달래는 차원의 숭배다. 이밖에도 독수리와 같은 새가 인드라나 태양에 비유되면서 신적 존재로 찬미를 받는다.
동물 가운데서 다디크라(Dadhikra) 또는 다디크라반(Dadhikravan)이라고 하는 말(馬)은 <리그베다>에서 가장 유명한 말인데, 네 번에 걸쳐서 독립적으로 찬미를 받는다. 여러 가지의 말 가운데서 다디크라는 그 빠르기로 인해 독수리와 동일시되면서 칭송받고 있다.  307

원숭이는 힌두 신화에서 원숭이 신 하누만(Hanuman)과 연결되는데, 원숭이의 왕인 하누만은 주인에게 충성하는 종(dasya)의 상징이다.  310

동물들 가운데서 들짐승이나 물짐승 외에 하늘을 나는 새는 종종 태양에 비유된다. 태양 새 가루다(Garuda)는 새들의 왕으로서 절반은 인간이고 절반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루다는 비슈누의 수레가 되고 뱀과 대적한다. 머리와 꼬리, 날개는 독수리의 것이고, 몸통과 다리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  311



9 남성 우월 신화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여신 - 베다의 여신들

<리그베다>에서 여성이 대부분 종속적 위치인 것은 사실이지만, 가끔씩은 주체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 가운데 가장 탁월한 여신은 천상의 위대한 신 가운데 하나인 새벽의 여신 우사(Usas)다. 우사는 천상의 위대한 신들에 비하면 낮은 서열에 불과하여, 다른 신들처럼 소마의 제의를 함께 나누지는 못한다. 하지만 여신 가운데는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
우사(Usas)는 산스크리트어로 새벽을 뜻한다.  313

새벽의 여신 우사는 그녀의 어머니가 해준 화려한 차림을 하고 인간에게 살짝 가슴을 보여주는 가냘픈 처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사는 거듭거듭 태어나면서 영원히 늙지 않는 젊음을 유지하여 어제와 같이 지금도 빛나지만 미래도 계속해서 빛날 것이다.   313-314

연인이 사랑하는 여인을 뒤따르듯이 태양은 새벽을 따른다. 새벽의 신 우사는 태양신 수리아의 아내다. 그러나 몇몇 다른 자료에서는 우사가 수리아의 어머니로 표현되거나, 우사가 수리아에게서 탄생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곳도 있다.  314

<리그베다>의 다른 본문에 따르면, 사라스바티가 쏟아낸 거대한 눈물이 파도가 산에서 홍수처럼 흘러내려 산과 들을 적신다. 사라스바티의 강둑에는 왕과 백성들이 살고 있고, 시인과 사제들은 이런 축복을 주는 사라스바티가 멀리 타국으로 떠나지 말고 늘 가까이에서 축복을 더해달라고 기원한다. 사라스바티는 천상의 태양신 푸산이나 대기의 신 인드라, 그리고 특히 인드라를 돕는 전사 그룹 마루트와 더불어 많은 찬미를 받는다.
새벽의 여신 우사나 강의 여신 사라스바티의 강력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여전히 여신이기 때문에 주목받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다.  322-323

밤의 여신 라트리(Ratri) 또한 자매인 새벽의 여신 우사와 같이 하늘의 딸로 불린다. 밤이지만 어두운 것만이 아니라, 무수한 별빛이 밝게 흐르는 별이 빛나는 밤이다.  323

밤의 여신은 새벽의 여신과 자매로서 빛으로 어둠을 정복하고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자들에게 안내자가 되어준다. 밤의 여신은 우르미야라는 또 다른 명칭으로 존경받는다.  325

<리그베다>에서 아파(apah : 물)에 대한 신격화는 소마를 비롯하여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물은 특히 인간의 생명을 유지해주고 새로이 깨끗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여신으로 불린다.  326

베다의 시인은 물을 자애로운 어머니에 비유하여, 아기에게 젖을 주듯이 생명력과 치유력이 풍부한 물의 활력을 얻게 해달라고 기원한다.  327

잠들 줄 모르는 아파는 우주 하늘의 바다가 그 기원이고, 인드라가 개척한 수로를 따라 끊임없이 흐르며 인간들을 이롭게 한다. 이 물은 하늘에서 내려와 산과 들로 흘러 강을 이룬다. 물의 여신 아파는 거대한 강줄기(sindhu, 또는 Indus)를 따라 바다로 향한다. 그 바다는 하늘의 바다이기도 하고, 지상의 바다이기도 하다.
흐르는 물을 따라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고 오염된 인간은 물의 여신을 통해 죄악을 씻는다. 이런 사상 아래 오늘날도 힌두인은 갠지스나 인더스 강에서 목욕을 통해 죄를 정화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비는 것이다.  328-329



10 민중을 위한 주술에서 베단타 철학으로 - <아타르바베다>와 <브라흐마나>

베다의 네 종류 중에서 가장 후기에 속하는 <아타르바베다>(Atharvaveda)는 주술(呪術, magic)적 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무려 731개가 <리그베다>에서 인용해온 것이다. 그밖의 많은 본문 내용도 출처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민간의 주술적 내용들을 혼합하고 있어서 한때는 위경(僞經, apocryphal) 취급을 받기도 했다. ..
제사를 집행하는 아타르반(Atharvan)이 속죄를 비는 제의나 저주(詛呪)에 관한 문헌, 또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에서 사용하는 의례적 문구 등이 많다. 아타르반은 고대 인도의 초기 사제들을 지칭하는 말로, 후대의 브라만 사제들의 선조가 되는 셈이다. ‘아타르바베다’라는 말도 여기서 따온 것이다.  345

비록 <아타르바베다>는 <리그베다>에 비해 그 중요성이 뒤지기는 하지만 대부분 <리그베다>에서 뽑아낸 찬가들로 구성된 노래집(saman)인 <사마베다>나 ‘제의의 기도문(yajna)으로 구성된 <야주르베다>에 비하면 그 비중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
<아타르바베다>가 이렇게 인기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인도 고대의 원시적인 대중 신앙과 미신들을 여과 없이 생생하게 다루어 주는데다가 초기 인도-아리아인의 하층민 생활상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
<리그베다>가 비교적 고대인도-아리아인 상류층의 종교적 신념과 행위들을 봉여주고 있던 데 비해, <아타르바베다>는 고대인도의 주술적 경향과 하층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줌으로써 <리그베다>를 보충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345-346

<아타르바베다>에는 특히 저주를 위한 주문이 많다. 이 때문에 <아타르바베다>는 ‘저주의 베다’(Cursing-Veda)라고도 불린다.  349

<아타르바베다>는 네 개의 베다 가운데 가장 후대에 기록된 문서로, 민중의 생활과 가장 가깝다.  351

재미있는 기도문들을 조금 더 언급해 보자면, 집을 건축할 때 비는 기도문, 씨앗을 뿌릴 때 축복하는 기도문, 곡식의 성장을 촉진하는 주문, 들판의 곡식에 몰려드는 해충 떼를 몰아내기 위한 주문, 곡식이 번개 맞는 것을 막기 위한 주문 같은 것이 있다.
가축의 보호와 번식을 위한 주문, 불의 위험을 막는 주문, 새로운 수로로 강물을 끌어들이기 위한 주문도 있다. 그밖에 상인의 기도, 도박이나 주사위 놀이에서 성공을 비는 기도, 잃어버린 재산을 찾기 위한 주문, 죄와 신성모독의 속죄를 위한 주문 등 그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351

이밖에도 <아타르바베다>에는 사제들인 바라문의 억압에 대해 저항하는 저주의 기도문이 상당수 있어 흥미롭다. 권력으로 민중을 억압하는 바라문을 이렇게 저주한다.
“바라문을 온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죽여라. 신들을 욕되게 하고 생각 없이 재물만 탐하는 자, 그의 심장에 인드라가 불을 지피리라. 그가 살아 있는 한 천지가 그를 증오하리라. …… 바라문의 혀는 활이 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화살촉에 걸리는 줄이 되리라. 그리하여 그의 숨통과 이빨이 거룩한 불로 태워져 패대기쳐지리라. 이들 바라문과 같이 신들을 욕되기 하는 자들도 그러하리라. 심장을 꿰뚫는 강한 화살로 신들이 이들을 벌하리라.” (<아타르바베다> V 18.5,8)
제사풍속이 만연한 고대사회에서 사제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아지면서 자세가 본연의 자세를 잃고 종교적 권력으로 민중을 압제하자, 점차 이에 저항하는 저주의 목소리가 높아갔던 것을 짐작하게 한다.   352

통제해야할 대상이 더 클수록 정보와 지식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러한 희생제의의 주술적 개념은 점차 우주적 관념으로 확대되었으며, 그 겨로가 ‘제의의 철학’인 베다의 마지막 철학, 즉 초기 형태의 우파니샤드(베단타 철학)로 나타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베단타 철학은 <리그베다>의 말기 사상으로서, 우주의 최고원리를 일신교(一神敎) 또는 일원론으로 설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경향은 베다의 가장 후기 저술인 <아타르바베다>의 후반부에서부터 드러난다.  353

후기에는 브라만을 우주의 최고 원리로 내세우는 사상이 더욱 환영받게 되면서 우파니샤드의 원리로 발전한다. 우주적 최고 원리인 브라만을 인간 내면 속의 자아, 곧 아트만(atman, 自我)과 동일시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사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실로 푸루샤(아트만)를 아는 자는 ‘이것이 브라만이다’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 모든 신격(神格)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소가 외양간에 앉아 있는 것과 같이.” (<아타르바베다> V 11.8.32)
우주 최고의 원리인 브라만이 인체의 내부에 도사리고 앉아 있다는 이 사상은 인간이 바로 브라만이라는 사실을 통찰하게 하는 우파니샤드 최고의 진술의 사상적 맹아를 말해주는 것이다. 이미 <아타르바베다>의 시인은 인간 내부에서 우주적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355

<브라흐마나>는 베다의 본집을 해석한 주석서로서, <리그베다>를 포함한 4개의 베다 본문에 대한 각각의 해설서다. 특히 제사의 구체적인 방식과 절차는 물론, 그 의미를 자세히 서술한 사제들의 기본적인 지침서가 주를 이룬다.  356

<브라흐마나>를 다시 내용적으로 구분해보면, 제사의 방식과 규범을 다룬 지침서인 ‘비디’(Vidhi, 儀軌)로 이루어져 있다. 제사의 기원과 전설을 설명해준 아르타바다에서 베단타 철학이 출발하는데, 이것이 우파니샤드 철학의 시작을 알리게 된다.
아르타바다의 논의는 베다의 주석서인 <브라흐마나>의 끝부분으로서, 제사에 관한 최종적인 철학적 논의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베다의 끝’(end of the Veda)을 의미하는 ‘베단타’(Vedanta = Veda + anta)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베다의 마지막 문헌 <브라흐마마>, 그리고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아르타바다를 더욱 깊이 숙고하여 철학화한 작품이 바로 <아라냐카>(Aranyakas, 密林書)로서,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사상체계의 과도깅에 해당한다.  357

<브라흐마나>의 주된 사상은 무엇보다 ‘제사 만능주의’다. 베다의 본집이 주로 시인의. 노래와 찬가 형식의 만트라로 구성된 데 비해, <브라흐마나>는 주로 사제들의 편집물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제사가 주축이 되고 제사가 모든 사상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학식이 있으며 베다에 정통한 바라문(브라만)은 인간이라는 신이다.” (<사타파타 브라흐마나> II 2.2, 6)
사제 즉, 바라문(婆羅門, Brahman)은 신들을 대신하여 제식(祭式)을 주관하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권위는 점점 더 높아만 갔다. 당시의 세계관에서는 제식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고, 제식이야말로 신들을 강제하거나 우주의 현상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베다의 세계관에서는 신들마저 제식을 수행해야만 비로소 불멸성을 획득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이유로 제사를 집행하는 바라문의 권위는 단순히 신에게 봉사하는 경건한 봉사자의 차원을 넘어서 독자적이고 전문적인 지위를 확보했다. 따라서 제식의 힘으로 신들을 지배하는 자인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신, 곧 신인(神人)의 위치로 격상되었다.  358

예컨대 제의 전 과정을 주관하며 총감독의 위치에 있는 리트비즈(Ritvij), <리그베다>의 찬가를 낭송하는 호트리(Hotri), <사마베다>의 노래를 부르는 우드가트리(Udgatri), <야주르베다>의 노래를 부르는 아드바르유(Adhvaryu), 그리고 <아타르바베다>의 사제인 브라민(Brahmin, Brahman)이다.  360

브라만은 사제 계급을 의미하고, 동시에 사제 그 자체를 뜻하는 브라만으로도 혼용하고 있다. 이러한 혼동을 피하고자 사제로서의 브라만을 구분지어 설명하는 용어가 브라민이다.  360

오늘날 힌두교에서 제의를 수행하는 사제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은 브라민(브라만) 외에도 가정에서 가족을 위해 제사를 드리는 프로히타(Purohita), 브라만 외의 다른 계급에서 자신들의 제사를 드리는 사제인 잔가마(Jangama), 성지순례를 오는 자들을 위해 힌두 사원에서 제의를 안내하고 집행하는 판디야(Pandya), 사원이나 성소에서 주로 의례의 절차와 푸자(puja ; 봉헌 또는 예배)를 담당하는 푸자리(Pujari) 등 다양한 명칭이 있다. 이는 제사의식의 전문화와 사제계급의 분화를 설명해주는 다양한 본보기다.
제사가 점차 중시되면서,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신들이 아니라, 올바른 제사를 드리는 행위 자체로 변해갔으며, 그 제사행위를 제대로 수행하는 사제들의 권위도 높아져갔다. 따라서 제사는 우주적 힘을 지닌 것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사고는 후대에 인도의 정통 철학파의 하나로 제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푸르바 미맘사(Purva mimamsa) 학파에서 계승되었다. 제의 속에서 신(神)의 존재 가치는 점점 퇴색하고 있다.  361

프라자파티는 자신을 제물로 삼고자 했다. 그리하여 손을 비비자 희생제물로 버터가 나왔다. 처음 나온 버터는 머리카락이 빠져 있어서 제물로 바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첫 버터를 불에 쏟아버리며, “태워서 마시자”(osa dhaya)라고 했다. 이 “오사드야”라는 ‘말’ 속에서 ‘식물’(osadhayas)이라는 말이 나왔다
온전한 제물을 위하여 두 번째 손을 비비자, 깨끗한 버터와 우유가 나왔다. 이것을 제물로 바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생각하자 “그것을 제물로 바쳐라”라는 심중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프라자파티는 깨달았다. 자신에게서 나온 말, 그 언명의 위대성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sva)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위대한 명령의 언어(aha), 그 소리를 깨닫고 프라자파티는 “스바하!(Svaha)라고 외친다. 스바하는 직역하면, ‘그 자신의 소리’지만, 의역하자면 “그렇게 되라”(So be it!)는 의미다. 이것이 불교에서 ‘사바하’라는 염불(念佛)의 끝을 장식하는 종식언어로 번역됐다. 그리스도교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아멘’에 해당한다.
프라자파티가 “스바하”를 외치자 태양이 일어나 뜨거워졌고 바람이 크게 불었으며, 아그니는 돌아가버렸다. 프라자파티는 계속 제의를 수행하여 자손을 번식시켰으며, 자신을 삼키려고 달려드는 아그니로부터 자신을 구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불의 제사(Agnihorta)를 드리는 자는 누구든지 프라자파티처럼 자손을 번식하게 된다고 알게 되었다. 누구든지 죽어 불에 던져 화장(火葬)하면, 부모에게서 태어나듯이 다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불은 오직 그 몸만을 불태울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
창조의 원동력은 고행, 즉 타파스가 기초이고, 그 고행을 통해 불의 신 아그니와 내면의 힘, 언어가 탄생되며, 자신을 산 제물로 바칠 때 비로소 만물이 번식하면서 ‘존재’의 지속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369-370

<브라흐마나>의 또 다른 특징은 제사의식을 올바로 행해서 얻게 된다는 필연적 결과에 대한 믿음이다. 제사행위의 인과적 보상법칙을 믿는다는 것이다. <리그베다>에서 ‘자연의 법칙’을 의미하던 개념 ‘리타’는 이제 ‘행위의 법칙’을 의미하게 되었다.
후기 인도철학 전반에 가장 큰 특징으로 드러나는 카르마, 즉 행위의 결과에 대한 보응으로서의 업(業)에 대한 개념은 바로 이러한 제사주의 성격에서 발전한 것이다. 이밖에도 <브라흐마나>에서는 인간의 본질도 정신과 육체로 구분하여, 정신을 각각 아트만, 마나스(manas, 意根(온갖 마음의 현상을 이끌어 내는 근원)), 프라나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372



맺음말 - 영원히 열린 계시의 책, 베다

베다는 한국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베다의 위대한 신인 인드라는 불교에서 제석천(帝釋天, Sakra devanam Indra)으로 해석되었고, 이는 단군신화에서 환인(桓因)의 개념으로 전용된다.  373

베다는 각각 본집과 그 본집에서 채택한 의례를 위한 해설서인 <브라흐마나>와 함께, 이를 더욱 심층적으로 토론하고 철학적으로 해명한 ‘숲의 책’, <아라냐카>로 구성되는데, 이것이 곧 베다에 대한 최종적인 철학적 해설서인 우파니샤드로 정립되게 되었다.  374

베다에서 말하는 우주창조론은 <성서>의 창조 기사와 마찬가지로, 다소 후기에 기록된 것일 가능성이 많다. 아리아인의 인도 정복시기에 가장 숭배를 받았던 인드라와 같은 전쟁영웅 신이 점차 기능을 상실해갈 즈음에, 고대 인도인은 우주의 발생에 관해 더 깊고 철학적인 사색을 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추측이다.
베다의 우주발생의 기원설은 여러 가지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현자들이 각각 다양한 시각에서 우주 발생에 대한 상상력을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한 기원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어떤 원리의 신이 목수처럼 우주라는 건축물을 만들어내면서 여러 기능을 지닌 신들이 창조의 과정에 협조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타파스’와 같은 열기가 발생하여 스스로 진화해가는 과정을 말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견해들이 상호배타적 관점인 것은 아니고, 두 가지 견해가 서로 결합되기도 한다.  377-378

베다의 또 하나의 관점은 제사의 기능이었다. 제사의 주된 기능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관한 모든 분야를 관장하면서, 축복과 장수를 신에게 비는 것이었고, 그 제사를 담당하는 역할을 떠맡은 자가 사제였다. ..
처음에는 모두 순수한 예언 기능과 시인으로서의 통찰력을 지닌 현자들이었으니, 제사사의 기능이 점차 세속화되어가면서 제사를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고 부를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
점차 후대로 갈수록 제사의 기능은 약화되고, “나는 누구인가?”라는 궁극적인 물음부터 시작하여, 인간과 우주의 근원에 대한 탐색이 깊어지면서, 베다의 끝인 우파니샤드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379-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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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말 - 내 인생 최고의 책 (피코 아이어)

로힌턴 미스트리의 이전 작품들을 접하지 못한 뉴욕의 한 영화 제작자는 찰스 디킨스를 새로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적절한 균형>이야말로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라 단언한다. 

소설이 폭로하는 내용은 봄베이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런던이나 뉴욕에 사는 누구에게라도 충격적이다. 

비평가이자 동료 작가며 펜이기도 한 내가 섣불리 꺼내기 힘든 말이 바로 이 소설로 인해서 당신의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플 거라는 사실이다.



"이 책을 손에 들고 부드러운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으면서 당신은 혼잣말로 이 책이 재미나겠다고 할 겁니다. 그리고 엄청난 불행에 관한 이 이야기를 읽고 난 후에도 당신은 식사를 잘 할 것이고 본인의 무감동에 대해서 작가를 탓하고 그의 지나친 과장과 상상의 비약을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어주십시오. 이 비극은 허구가 아니라 모두 진실입니다." - 오노레 드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중에서



나라얀이 고향 마을로 돌아온 지가 6개월쯤 되던 어느날 아침, 벙기 카스트 한 명이 용기를 내서 오두막집으로 오고 있었다. 밖에서 불 위에다가 물을 끓이던 루파가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남자를 보았다. "도대체 어딜 가는 거야?" 그를 막아서며 그녀가 소리쳤다.

"재봉사 나라얀을 찾고 있습니다." 겁에 질린 남자가 누더기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뭐라고?" 그의 뻔뻔함에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재봉사고 나발이고 그 입 다물어! 끓는 물로 네 놈의 더러운 몸을 지져 줄 테다! 내 아들은 너 같은 놈들을 위해서는 일하지 않아!"

"어머니! 왜 그러세요?" 나라얀이 모두막집에서 나오며 소리쳤을 때 남자는 달아나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그는 남자를 따라가며 소리쳤다. 보복이 따를까 봐서 무서웠던 벙기는 더 빨리 달렸다.

"이봐요. 돌아와요! 괜찬하요!"

"다음에 오겠습니다. 내일쯤요." 겁에 질린 남자가 말했다. 

"그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꼭 오세요." 오두막집으로 돌아간 나라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를 무섭게 노려보는 어머니를 무시해 버렸다.

"나한테 고개 젓지 마!" 화가난 그녀가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내일 다시 오라고 왜 부른거야? 우린 그런 낮은 카스트 사람들을 상대하면 안 돼! 사람들 집이ㅔ서 똥이나 실어 나르는 작자의 몸 치수를 어떻게 재겠다는 거야?"

"전 어머니가 틀렸다고 생각해요. 전 브라만이든 벙기든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으 위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게 네 생각이냐? 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면 뭐라고 하시는지 들어보자! 브라만은 돼도 벙기는 안 돼!"

그날 저녁 루파는 둑히에게 아들의 터무니없는 생각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네 엄마 말이 맞다." 그가 나라얀에게 말했다.

"왜 저에게 재봉을 배우라고 보내셨던 거죠?"

"무슨 그런 멍청한 질문이 있냐. 네 인생이 잘되라고 그런 거지. 그것 말고 다른 이유가 있니?"

"그럼요. 카스트가 높은 사람들이 우리를 함부로 다루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금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그들처럼 행동하고 계세요. 그런 걸 원하신다면 전 읍내로 돌아가겠습니다. 전 이렇게는 더 이상 살 수 없습니다."

루파는 그의 최후통첩에 깜짝 놀랐으며, 둑히가 그녀를 보면서 "쟤 말이 맞아"라고 하자 공포에 질렸다.  196-197


둑히는 나방이 등불 유리를 뚫고 들어가려고 연약한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을 지켜봤다.  211


"존엄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습니다."  214


"쇠로 만든 선로가 아주 유용하죠." 이웃집 남자가 말했다. "발판 구실을 해요. 땅보다 높아서 똥이 쌓여도 궁둥이에 닿칠 않거든요."

"요령을 다 아는 모양이죠?" 그들이 바지를 내리고 철로에서 자세를 취할 때 옴이 이웃집 남자에게 물었다. 

"아, 이거야 금방 배우지." 그는 덤불에 있는 남자들을 가리켰다. "지금은 저기 앉으면 위험해. 독이 있는 지네들이 저기서 기어 다니거든. 나라면 저기서 볼일을 안 볼거야. 그리고 덤불에서 균형을 잃어버리면 궁둥이에 가시가 잔뜩 묻는다고."  245


옴은 문간에 앉아서 어제 디나의 방에 떨어져 있던 헝겊들 가운데 호주머니에 슬쩍 집어넣었던 시폰 조각을 만져 보았다. 매우 부드러운 천은 그의 손가락들 사이에서 매우 편한 느낌이 들었다. 왜 삶은 이렇게 부드럽고 매끄러울 수 없는 걸까?


아이들은 썩은 음식 덩어리를 살피던 까마귀 한 마리를 쫓았다. 고집 샌 새가 날아가지 않고 깡총깡총 뛰어다니며 주위를 돌아가 썩은 음식으로 되돌아오자 아이들은 더욱 즐거워했다. 더럽고 발가벗고 굶주려 얼굴에는 부스럼이 나고 피부에는 뾰루지가 난 아이들이 어떻게 저렇게 행복할 수 있는지 옴은 궁금했다. 이런 비참한 곳에서 웃을 일리 뭐가 있을까?  271


"불행, 카스트의 폭력, 정부의 냄담, 관리의 거만함, 경찰의 야만에 관한 기사를 읽다 보면 울고 싶어질 때가 있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낄 거고 그게 지극히 당연한 거죠. 그러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W. B. 예이츠)이 말했듯이 너무 오랫동안 희생하다 보면 마음이 돌덩어리가 되죠."  334


'모든 것들은 무너지고 다시 만들어지며 그것들을 새로 만드는 일은 즐겁다.'

"예이츠 인가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선을 긋고 구획을 정해서 그것들으 넘지 않으려고 하면서 살 수는 없는 거요. 때로는 실패를 성공의 징검다리로 삼아야지. 희망과 절망의 적절한 균현을 유지해야 하죠. 그렇지, 결국은 모든게 균형의 문제지."  336


"부잣집 자식아, 언제쯤 현실에 적응할래?"

"부자가 아니라고 말했잖아요. 지벵 있는 화장실도 여기처럼 평범해요. 그래도 물통에 물은 있어요. 악취도 나지 않고요."

"문제는 넌 너무 많은 걸 보고 너무 많은 냄새를 맡는다는 거요. 여긴 대도시야. 눈 덮인 아름다운 산들은 없다고. 넌 계집애 같은 눈과 코를 억제하는 법을 배워야 해."  349


"우리의 시각, 후각, 미각, 촉각, 청각 모두는 완벽한 세계를 즐기기 위해서 맞춰져 있지. 그러나 세계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감각들에다가 가리개를 씌워야 하는 거야."  350


언젠가 아비나시는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체스라고 말했었다. 지금 그는 심각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졸 세개와 차하나를 가지고 제때에 왕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리고 디나 아주머니는 거실과 안쪽 방을 오가면서 재봉사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안흔 청량음료 경쟁자들을 상대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저녀깅 되자 방의 그림자가 짙어졌지만 마넥은 불을 켤 생각을 하지 않앗다. 체스에 대한 그의 변덕스러운 생각이 갑자기 어스름 속에서 음산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띠었다. 모든 것이 위험에 처해 있었고 매우 복잡했다. 게임은 냉혹했다. 인생이라는 체스판에서 벌어지는 살육으로 인해서 인간들은 상처를 입는다. 아비나시의 아버지는 결핵에 걸렸고 글의 세 여동생들은 혼인 지참금을 기다리고 있다. 디나 아주머니는 자신의 불행을 이겨내려고 발버등치고 있었다. 아버지는 상심했고 희망이 꺾였지만 어머니는 그가 다시 강해져서 웃을 것이라고 가장했고, 아들이 1년 후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 지하실에서 콜라 가문의 콜라를 만들게 되면 그드르이 삶이 기숙학교로 마넥을 보내기 전처럼 다시 한 번 희망과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될 거라고 가장해싿. 그러나 그렇게 가장하는 일은 동심의 세계에서나 통용될 뿐, 결코 예전 같은 시절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삶은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할 뿐이고 너무 절망적인 듯했다.

그거 접는 체스판을 세게 닫자 바람이 훅하고 불어와 얼굴에  닿았다. 눈물로 젖은 뺨에 부딪친 바람은 차가웠다. 그는 눈물을 닦고 체스판을 마치 풀무처럼 열었다가 다시 세게 접었다. 그런 다음 체스판으로 부채질을 했다.

디나 아주머니가 마침내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 부르자 마치 감옥에서 해방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396-397


"아무 문제도 없는 사람은 없죠. 걱정 마십시오."  407


"소음도 사람과 마찬가지네요." 이시바가 말했다. "한 번 알고 나면 친구가 되죠."  465


"신은 죽었어요. 독일 철학자가 책에 그렇게 썼어요."

그 말에 그녀가 충격을 받았다. "독일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말했겠지." 그녀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데 너도 그 말을 믿니?"

"예전에는 그랬죠. 그런데 지금은 신이 거대한 이불을 만드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끝없이 다양한 디자인을 가진 이불 말이에요. 그런데 그 이불이 너무 크고 호란스러워서 디자인을 볼 수가 없고, 사각형과 다이아몬드형 그리고 삼각형이 ㄱ더 이상 잘 어울리지 않아서 모든 게 무의미해진 거죠. 그래서 신이 그걸 버린 거죠."  495


"넌 그 사람들(이시바와 옴)하고 정말 친구가 된 거지? 그래서 고향 마을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도 너한테 말해 준 거고."

그가 잠시 고개를 들고 어깨를 으쓱했다.

"재봉사들이 매일 여기 앉아서 일했는데 나한테는 그런 말을 안 했어. 왜 그럴까?"

그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자꾸 어깨로 말할 거니? 너의 이불 만드는 신이 입 안에다가 혀를 꿰매기라도 했니? 재봉사들이 너한테는 말을 하고 나한테는 왜 말을 안 했냐니까?"

"아마도 아주머니가 무서웠겠죠."

"날 무서워했다고?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사실은 내가 그 사람들이 무서웠어. 수출 회사를 찾아서 나를 제쳐놓을까 봐서 말이야. 안 그러면 더 나은 일을 찾을까 봐서. 때로는 실수를 지적하는 일조차 두려웠어. 재봉사들이 가고 나서 나 혼자 밤에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았지.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날 두려워했다는 거지?"

"아주머니가 더 나은 재봉사들을 찾아서 자기들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려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했다. "미리 나한테 말해 주지 그랬니. 그랬으면 안심시켜 줄 수도 있었는데."

그가 다시 어깨를 으쓱했다.  496-497



너도 알다시피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라는 달걀을 몇 개 부숴야 해.(누스완의 말, 디나의 오빠)  541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을 만들기 위해서 민주주의라는 달걀을 몇 개 수붜야 한다는 조금 전의 금언을 고민하며, 그는 머릿속에서 민주주의, 독재, 프라이팬, 불, 암탉, 계란 완숙, 식용유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뭔가 다른 말을 찾아보려고 했다. 한 가지가 떠올랐다. 민주주의라는 오믈렛은 민주주의라는 상표만 붙은 포악한 암탉이 낳은 달걀들로는 만들 수 없다는 말이었다.  543


살은 사람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다루며, 좋은 것들은 갈기갈기 찢어놓고 나쁜 것들은 냉장되지 않은 음식의 곰팡이처럼 계속 자라도록 만드는 걸까? 원고 교정자 바산트라오 발믹은 이것이 삶의 일부라면서 희망과 정말의 균형을 찾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이 살아남는 비결이라고 했다. 하지만 불행과 파괴도 받아들여야 할까? 그렇지 않다. 충분히 큰 냉장고만 있다면, 이 아파트의 행복했던 시절을 담아서 상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아파트의 행복했던 시절을 담아서 상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냉장이 불가능했다. 결국 모든 것은 상하고 만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633


"정말 아름답습니다." 이시바가 말했다.

"이불이야 아무나 만드는 건데요 뭐, 당신들이 쓰고 남은 헝겊 조각들이에요." 그녀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이것저것 조각들을 모으는 게 대단한 기술이죠."

"저거 봐요." 옴이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우리가 맨 처음 작업했던 포플린 옷감이에요."

"기억나니?" 디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에 옷을 얼마나 빨리 만들었는지 생각나? 난 정말 재봉 천재 두 명이 나타난 줄 알았단다."

"그때는 배가 고파서 손가락들이 빨리 움직였습니다." 이시바가 웃었다.

"그 다음에 저기 오렌지색 줄무늬가 있는 노란색 칼리코 천을 작업했죠. 옴이 그때 날 얼마나 힘들게 했는데요. 사사건건 싸우고 말다춤을 했잖아요."

"제가 언제요? 싸워요? 절대 그런 적 없는데."

"이 파란색, 흰색 꽃들 생각나요/ 제가 여기로 이사 왔을때 아주머니께서 만들던 치마에서 나온 거죠." 마넥이 말했다.

"정말?"

"그럼요. 그날 아시바 아저씨와 옴이 일하러 안 왔잖아요. 총리의 강제 모임에 납치됐던 날이요."

"아, 그래. 맞다. 옴, 이 예쁜 보일 옷감 기억나니?"

얼굴이 빨개진 옴은 생각나지 않는 척했다.

"아니, 생각 안 나? 어떻게 생각이 안 날 수가 있니? 네가 엄지손가락을 가위에 베어서 피를 흘린 천이잖아."

"전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마넥이 말했다. 

"네가 오기 한 달 전에 그랬지. 그리고 시폰도 재밌었었는데, 디자인을 맞추기도 힘들고 미끄럽다고 옴이 화를 냈었지."

이시바가 몸을 숙이더니 정사각형의 흰 삼베를 가리켰다. "이거 아시죠? 이 천을 가지고 작업한 첫날에 정부가 우리 집을 부쉈죠. 이걸 볼 때마다 슬퍼집니다."

"가위 가져와요. 잘라 버릴 테니까." 그녀가 농담을 던졌다.

"아닙니다. 그냥 두십시오. 아주 보기 좋습니다." 그는 삼베를 손가락으로 만지며 과거를 떠올렸다."천 한 조각을 두고 슬프다고 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보십쇼. 이 슬픈 조각이 저희가 베란다에서 자기 시작했을 때 작업하던 행복한 조각과 연결돼 있잖습니까. 그리고 그다음 조각은 차파티를 만들 때 작업하던 거교요. 그리고 이 보라색 비단은 저희가 매운 양념 화다 과자를 만들고 다 함께 요리를 하던 때 작업하던 거죠. 또 이 조젯 헝겊 조각은 거지 왕초가 저희를 집주인의 깡패들로부터 구해 줬을 때 작업하던 겁니다."

그는 복잡한 법칙을 명쾌하게 설명하기라도 한 듯이 기뻐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니까 기억해야 할 법칙은, 천 한 조각보다 전체 이불이 훨씬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와, 정말 멋지다!" 옴과 마넥이 박수를 치며 외쳤다. 

"정말 현명한 말이로군요." 디나가 말했다.  700-703


시간은 길이도 없고 넓이도 없어. 중요한 건 시간이 지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거란다. 그래, 무슨 일이 있었니? 바로 우리들의 삶이 합쳐졌다는 거야."

"이불의 헝겊 조각들처럼 말이죠." 옴이 말했다.  703


인간들은 왜 자신의 감정을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걸까? 그것이 분노든 사랑이든 슬픔이든, 사람들은 항상 숨기려고 한다. 또한 어떤 인간들은 그들의 감정이 다른 사람보다 크고 위대한 척한다. 그래서 작은 골칫거리에도 크게 분노하고, 미소와 웃음으로 충분한데도 히스테리를 부리며 웃는다. 모두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721


일요일 저녁이면 그들은 카드놀이를 했다. "자, 다들 어서 모여!" 다섯 시가 되자 누스완이 즉시 그들을 불렀다. "카드놀이 시간이야."

그는 그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꿈을 카드놀이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실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는 세 명 뿐이어서 누스완은 러미 게임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족의 행복을 끈질기게 찾고자 했다.

"카드놀이가 인도에서 처음 시작된 거 알고 있어?" 그가 물었다.

"정말요?" 루비가 놀랐다. 누스완이 그런 얙기를 할 때마다 그녀는 매우 감동했다.

"그럼, 그렇고 말고. 체스도 인도에서 유해된 걱야. 사실, 카드가 체스에서 시작됐다는 이론이 있지. 13세기에 중동을 거쳐서 유럽으로 전파됐어."

"세상에!" 루비가 감탄했다.

그가 패를 다시 배열하더니 카드 한 장을 엎어서 버리고 외쳤다. "러미!"

같은 종류의 카드를 다 모은 걸 보여 주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실수를 했는지 분석해 주었다. "거기서 하트의 잭을 내면 어떡하니, 그래서 네가 진 거야." 그가 디나에게 말했다.

"모험을 해 봤어요."

그가 카드를 모아서 섞었다. "자, 그럼 누가 패를 돌릴 차례지?"

"나예요." 디나가 카드를 받았다.  820-821


"재미없는 인생이란 없는 법이오."(마넥이 돌아와 바산트라오(변호사)를 만났을때 변호사의 표현)  859




옮긴이의 말 - 인도의 판타지, 로힌턴 미스트리의 리얼리즘

<적절한 균형>은 조로아스터교,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쿄 등 다양한 종교는 물론이고, 계층과 종족 그리고 성정 배경이 확연히 다른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인도 현대사의 문제들을 정면으로 파해친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이 소설은 여러 개인들이 역사의 자장에 휩쓸려 맞게 되는 비극을 담담하게 그리면서도, 이러한 인도인들의 비극이 어느 한 시절에 국한된 게 아니라 독립 훨씬 이전부터 존재한 비극임을 보여준다.  877


소설은 인디라 간디가 선포한 국가비상사태 체제인 1975년에서 1977년을 주요 역사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 카스트 제도에 항거해 재봉사가 되는 불가촉천민들, 새로 그어진 국경선으로 큰 사업을 잃고 마는 파르시 기업가, 국가비상사태로 의문의 죽음을 당하는 가난한 학생 운동가, 신부 지참금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녀들, 구걸의 수익 증대를 위해서 아이들의 신체를 훼손하는 거지 왕초, 빈민굴 판잣집조차도 빼앗기고 노숙자로 전락하는 가난한 사람들, 국가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생식력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폭압적인 관리 등 많은 인물이 등장하여 독립을 전후한 파란만장한 인도 현대사를 증언한다. 디나, 마넥, 이시바, 옴프라카시는 이런 엄혹한 역사 앞에서, 특히 국가의 폭력 앞에서 개인은 도무지 온전하게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야만적인 국가 권력과 불화하는 개인들의 삶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거대한 폭력 앞에서 만신창이가 된 개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을 로힌턴 미스트리만큼 실감나고 감동적으로 그려내는 인도의 현대 작가는 드물 것이다. 

<적절한 균형>을 통해서 독자들은 역사와 국가의 폭력에 굴하지 않는 개인들의 끈질긴 생명력에 진정한 인도의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878


궁극적으로 <적절한 균형>은 개인과 역사, 개인과 국가가 어떠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묻는다. 그 적잘한 균형 감각은 무엇일까? 소설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그 균형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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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숨을 고른 다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난 평생으 ㄹ두고 노새나 다름없는 취급을 당했어. 내 아들놈 하나-딱 하나만이라도- 인간답게 사는 것,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야."  49


"어린 친구가 아주 똑똑하고 정직하고, 활발하구먼, 도둑과 등신들이 우글거리는 이 무리에서 말이야. 어떤 정글엘 가더락도 가장 희귀한 짐승이 뭔지 아니? 한 세대에 딱 한 번만 나타나는 동물 말이다."

저는 잠시 생각했다가 대답했습니다.

"화이트 타이거요."

"그래, 바로 네가 화이트 타이거다. 이 험한 정글의 화이트 타이거."  54


옛날 옛적의 인도에는 천 개의 카스트와 천 개의 숙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딱 두개의 카스트만 남았어요. : 배때기가 커다란 남자들 그리고 배때기라곤 없는 남자들.

그리고 숙명 또한 딱 두 가지뿐이랍니다. 먹거나, 먹히거나.  85


자유로운 사람들도 자유의 가치를 모르는 것, 문제는 바로 그겁니다.  142


짐승들은 짐승답게 살도록 내버려두고, 인간들은 인간답게 살도록 하는 것. 한 마디로 그것이 저의 철학이랍니다.  314


인도 혁명이라굽쇼?

아니요, 각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 나라 국민들은 자기네 자유를 위한 전쟁이 다른 어디에선가부터 - 정글이나, 산이나, 중국이나, 파키스탄으로부터 올 거라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거든요. 그런 일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거룩한 도시 베나라스를 만들어야만 합니다. 

인도의 젊은이들이여, 그대 혁명의 책은 바로 그대드르이 뱃속에 들어있도다. 그것을 배출해내서 읽으라!

하지만 대신에 그들은 전부 칼러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크리킷 게임이나 샴푸 광고 따위를 보고 있지요.  344


제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 인간이 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361


저는 말할 것입니다. 단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아니, 단 일 분이라도, 하인으로 살지 않는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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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교육 제도 : 10 - 2 - 3

10년 - 초등(소학교)과 전기중등(하이스쿨)

 2년 - 후기중등(하이어 세컨더리 스쿨)

 3년 - 고등교육(college)


10학년과 12학년에 치르는 전국공통시험(한국 수능형태)

10학년시험에서 문과, 상경, 이공계열 선택

12학년 시험에서 대학 및 학부결정


인도 영어 사용자층의 인구는 약10%정도 - 공립학교 영어교육은 형식적, 사립학교의 영어교육은 체계적이고 스파르타식모방.


인도인들은 처음 만났을때에는 우선 영어로 인사를 한다. 이후 대화에서 서로 동일한 모어의 사용 확인후에는 모어로 대화한다.

인도인의 경우 모든 사람이 최소한 세 가지 언어는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출신지언어와 영어 그리고 애인이나 부인(남편)의 모어.


인도의 출산률은 여전히 높지만 이러한 문제는 빈곤층에 집중. 

그럼에도 계속 아이를 낳는 이유 중에는, 단 한 사람이라도 반듯한 직정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른 가족도 덕을 볼 수 있다는 일종의 보험과 같은 사고 방식이 작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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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만은 흰색으로서 힌두교 사제 계급

크샤트리아는 붉은 색으로서 힘, 정열, 용기를 상징

수드라는 검은색

바이샤는 노란색.  21


인도에는 전통적으로 샤쉬트라뜨(Shashtrath)라고 하는 토론 시간이 있다. 스승이 선문(禪門)을 하면 제자가 다시 질문 형태로 공손히 다른 의견을 제시해보는 논쟁 교육이다.  62


물질적으로 외국인은 더 많은 돈을 낼 수 있는 존재이지만, 종교적으로는 다른 종류의 불가촉천민일 뿐이다.  209


인도인들의 결혼은 윤회와 관계가 있다.

힌두들은 결혼이 없으면 윤회가 완성되지 않는다고 본다.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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