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했었다. 

실패했었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더 잘 실패하라. -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 1906~1989)





스티븐 킹(Stephen King, 1947~)은 이렇게 단언한다. " 책을 별로 안 읽는 (더러는 전혀 안 읽는) 사람들이 글을 쓰겠다면서 남들이 자기 글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은 글을 쓸 시간도 (그리고 연장도) 없는 사람이다."  15


책 읽기는 이해와 공감의 능력을 키우는 지름길이다. 

글쓰기의 동기는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것을 자극하고 촉발하는 것은 다양한 책 읽기이다.  16


읽기와 쓰기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둘은 하나이다. 혹은 왕성한 책읽기는 글쓰기의 최소 원칙이다.  17


일관된 '맥락'에 따라 책을 골라 읽는 습관을 체득.

맥락의 독서는 보다 높은 차원의 책읽기 방법으로, 두서없이 아무 책이나 읽는 게 아니라 이 책과 저 책의 연관성 아래 책을 읽는 것을 뜻한다.  18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따져 묻고, 자의식에 대한 투명한 인식에 이른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다.  19


책을 읽는 동안 이야기들은 우리 안으로 스며들어온다. 그렇게 우리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온 이야기의 힘에 의해 망각되었던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여기서 기억이란 바로 삶의 다른 이름이다.

책 속의 이야기들이 우리 삶에 겹쳐질수록 우리 경험의 시공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24-25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Pascal Quignard, 1948~)는 이렇게 말한다. "그 선택은 오히려 틈새와 주름들 안에, 즉 고독, 망각들, 시간의 경계, 열정적인 생활 태도, 응달 지역, 사슴의 뿔, 상아 페이퍼 나이프들 안에 칩거하고자 한다. 그 선택은 오로지 자신들에게만 속하는, 짧지만 수많은 삶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다." (<은밀한 생> 217쪽)

그렇다. 책읽기에 빠져든 사람들은 고독 속에 칩거하며 저마다 '하나의 도서관'을 설립한 자들이다.  25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 의 <꿈꿀 권리> 는 그의 미술론을 모은 책으로 예술 작품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다.  29


바슐라르에 따르면, 예술가란 빈둥거리다가 벼락같이 영감이 올 때만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아니다. 예술가란 하루도 쉬지 않고 "인내와 열광의 불가사의한 피륙"을 빈틈없이 직조해내는 사람이다.  33


닥치는 대로, 손에 걸리는 대로, 가리지 않고, 게걸스럽게, 순서와 체계도 없이 책에 빠져들었던 독서 체험을 해보지 않은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모든 작가들은 작품을 쓰기 이전에 남보다 책을 많이 읽는 다독가들이었다." (정수복의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190쪽)  34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1961)도 예술가들에게 있어 '굶주림은 좋은 훈련'이라는 말을 남겼다. "굶주림에 지나치게 연연하지않도록 스스로를 더욱 통제할 필요가 있다. 굶주림은 좋은 훈련이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사람들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당신은 그들보다 앞서 있다. 그래 맞다. 지금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앞서 있기 때문에 제때 끼니도 떼우지 못할 형편이다.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가 좀 좁혀져도 나쁠 것 같진 않다." (헤밍웨이의 글쓰기> 96쪽)  46


작가가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굶주림을 견뎌라! 그것을 딛고 넘어서야만 비로소 작가의 길이 열린다.  49


미국의 농부이자 작가인 웬델 베리(Wendell Berry, 1934~)가 쓴 <시인이 되는 법>이라는 시의 첫 행은 "앉을 자리를 만들어라."이고, 두 번째 행은 "앉아라. 침묵하라."이다. 

글을 쓸 때 오롯한 고립과 고독은 필수 조건이다.  50


<글 잘 쓰는 기술>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작가와 고양이의 닮은 점들이다.

1. 계속 집중한다.

2. 신비주의를 고수한다.

3. 조용히 사냥한다(즉 기록한다).

4. 독립적이다.

5. 가만히 말없이 오랜 시간을 버틴다.  51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면 가혹한 풍랑이 자신만을 피해 가는 행운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 그보다는 웬만한 풍랑에도 끄떡도 하지 않을 단단한 체력과 강인한 심잘을 갖기를 바랄 일이다.  53


인생이란 길을 걷다보면 우회하거나 옆길로 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때론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방황은 성숙에 이르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59


당신의 목적지가 저 멀리 있고, 더러는 거기에 도달하는 게 불가능해 보일지 모른다 해도, 멈추지 말라. 계속 걷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목적지에 도착할 때가 오는 법이다. 다만 계속 걸어가는 법을 잊지 말길 바란다.  60


영국의 실존주의 비평가 겸 작가인 콜린 윌슨(Colin Wilson, 1931~2013)은 자기가 환자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은 자, 현상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유일한 살마을 가리켜 '아웃사이더'라고 불렀다. '다른 시각에서, 너무 많이, 너무 깊이 세상을 보는'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야말로 인간 존재의 의이와 진실한 삶을 찾는 탐구의 시작점이라고 말이다.  62


먼저 재능이 있어야만 한다. 그것도 많이. 키플링의 재능 같은 것이 필요하다. 그 다음에는 훈련이다. 플로베르가 했던 것처럼 부단히 훈련을 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파리에서 사용하는 미터 기준처럼 변하지 않는 절대 양심과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가짜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한 작가는 지적이고 이해관계를 초월한 공평무사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남아야 한다. 한 사람의 작가 안에 있는 이 모든 자질을 끌어내어 그를 압박하는 모든 세력을 통과하게 하라. 작가에게 가장 어려운 점은 살아남아 자신의 글을 끝내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다. (<헤밍웨이의 글쓰기> 16-17쪽)  65


작가로 태어나는게 아니라 작가로 키워진다는 말이 더 적절하다.  66


글을 쓰지 못하는 사람은 쓸 수 없는 100가지 이유를 대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변명하지 않는다. 오직 묵묵히 쓸 뿐이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면 모든 것은 글을 통해 말하라. 그리고 학습과 훈련을 게을리하지 말라.  67


독일 철학자 니콜라이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1882~1950)의 주장처럼 천재의 독창성은 본질적으로 '보는 방식'에 나타난다. 사물이건 경험이건 새롭게 보아야 새롭게 인지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낯선 시선으로 한번 바라보라!

쓰려고 하는 대상에 대해 오래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만 한 편의 글이 나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아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인 동시에 자아로부터 벗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편향이나 왜곡 없이 더 많이 사랑하라!  

'작가들의 미덕은 그들(선배 작가들)을 모방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비굴하게 저지르는 짓을 절대 하지 않는 데 있다. 그들은 세상을 자기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누넹 비친 세상을 글로 옮겨놓는다. 그들의 작품이 솔직하고 활기가 넘치는 이유는 그 어떤 편향이나 왜곡 없이 개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 141쪽)  70


글을 쓰는 사람에게 필요한 또 다른 덕목은 창의성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익숙한 현실을 낯설고 신기한 곳으로 생생하게 그려내라.

가장 나쁜 것은 관습적 사고에 기대는 것이다. 관습적 사고에 빠진 사람은 구태의연한 발상과 상투적 언어들을 쏟아낸다.

다르게 보기, 엉뚱하게 보기, 낯설게 보기에서 비롯된다. 그러려면 먼저 다양한 책읽기와 다양한 경험을 통한 폭넓은 정보의 감각 입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71


정보의 양과 창의성의 질은 대치으로 맞물려 있다. 학습을 통해 더 많은 인지적 정보를 습득하고, 이것이 쌓여 임계치를 넘어설 때 비로소 정보는 질적 전환을 이루고 여기서 양지르이 창의성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72


글쓰기의 1차 재료는 작가 자신의 경험이다. 특히 실패와 시련과 같은 경험이야말로 스스로를 담금질하는데 좋은 도구가 된다. 삶의 경험들이 들려주는 내밀한 목소리와 뜻밖의 직관, 찰나의 번쩍임에 주의를 기울여보라.  74


글쓰기에서 경험이란 "자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그것에 관여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75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는 '경험이 삶이고, 삶이 곧 문학'이라고 말한 바 있다. "진정한 삶, 마침내 '발견되고 해명된' 삶, 따라서 실제로 체험된 유일하게 진정한 삶, 그것은 문학이다." 아니 에르노 역시 이말에 동의하며 "말, 여행, 광경 등, 그 어떤 수단으로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을 글로 쓰면서 발견하는 것. 숙고 또한 홀로는 그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글쓰기 이전에는 현장에 없던 것을 발견하는 것. 바로 거기에 글쓰기의 희열이 있습니다." (아니 에르노의 <칼 같은 글쓰기> 200쪽)  75-76


글쓰기는 한마디로 '웃으면서 하는 전쟁'이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치르는 피와 종이와의 전쟁. 그 전쟁이란 곧 작가로서 관습적인 상상력과 사유에서 벗어나 진정한 독창성을 얻기 위한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최후의 일전을 치르러 가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추상 개념들과 관념들을 무작정 따라가지 말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구체적 경험에 귀를 기울여라.  77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보면 "당신의 무의식이 하루 1,000자(사실 분량이야 어느 정도이든 큰 상관은 없다) 쓰기에 익숙해지면 백지의 공포는 크게 수그러들 것이다. 규칙적인 글쓰기는 무에서 무언가를 생산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어도 첫날이 지난 후에는 말이다."  79-80


글이 형편없고 엉망이라고 느껴질 때조차 계속 해서 써나가라. 멈추지 않고 꺠속 써나가기, 이게 백지의 공포를 넘어서는 방법이다.  81


나탈리 골드버그(Natalic Goldberg, 1948~)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손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모든 면모를 기록하고 심장부로 뚫고 들어가도록 손을 계속 움직여야 한다."라고 말한다. 골드버그가 제안하는 글쓰기 연습의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손을 계속 움직여라. 

2. 마음 닿는 대로 써라.

3. 보다 구체적으로 써라.

4. 지나치게 생각하지 말라.

5. 구두점과 문법은 나중에 걱정하라.

6. 당신은 최악의 쓰레기라도 쓸 자유가 있다.

7. 급소를 찔러라.  81-82


문장을 어렵게 써서는 안 된다. 꼬아서도 안 된다. 어렴풋하게 써서도 안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사실들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에두르지 말고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풀어놓아야 한다.  95


문장에서 형용사나 부사를 피하라! 접속사도 빼버려라! 그것들은 마음에 쓸데없는 근심과 허위의식이 있음을 드러내는 일일 뿐이다. 생략해도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 것들은 굳이 없어도 그만인 잉여이다. 97


글쓰기는 벽돌을 한 장, 한 장 쌓아 올리듯이 문자을 만들어 쌓는 것이다. 문장을 만드는 벽돌이란 곧 생각의 조각들이다. 이 생각의 구조적 배열을 통해 하나의 문장이 탄생한다. 매혹적인 문장은 구조화가 잘된 생각이 매끄러운 언어로 표현될 때 나온다. 즉 문장을 이루는 언어의 선택과 배열에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 완벽한 질서는 바로 영감과 명확한 사고에서 나온다.  99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졸작이라도 '쓸 수 있는 용기'이다. 졸작은 누구나 쓸 수 있지 않은가. 그러니 써라,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101


문장은 간결할수록 좋아진다. 거기에 '힘'을 불어넣으면 문장에 생기가 돈다. 그런 문장을 만드는 '힘'은 진실에서 나온다.  102


작가의 삶은 흔히 ' 기다림'의 연속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쓰는 것에 앞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독서와 발견의 시간을 통해 본질을 통찰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한 알의 씨앗이 발아되기 위해 기다려야 하듯이. 하나의 문장, 하나의 아이디어가 착상되길 기다려야 한다. 

그 다음은 착란의 시간이 필요하다. 불행과 농담이 뒤섞이고, 처억과 망각이 삼투하면서 화학 작용을 일으키는 그 어지럽고 어수선한 시간들을 견뎌야 한다.  111


글쓰기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노동이다.

글쓰기는 몸을 써서 하는 육체노동이다!  115


여행을 떠나라! '이곳'이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다. 떠나보면 알게 된다. 여행이 곧 글쓰기임을.

여행과 글쓰기는 어디서 출발하는지는 분명히 알 수 있지만, 어디에 도착할지는 가봐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  125


여행의 첫 번째 소득은 습관화된 삶의 양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낯섦 때문에 영감이라는 불꽃이 켜질 것이다. 더불어 익숙한 관습적 이해와 사유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사고나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니 길 잃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길을 잃었다면, 오히려 그것을 세계의 또 다른 측면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라. 현명한 여행자는 모든 사물을 마치 세상을 처음 만난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다.  127


여행은 세계라는 책을 펼쳐서 읽는 것이다. 즉 책읽기란, '떠나지 않고 하는 여행'이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1885)는 "독서가 여행이고, 여행이 독서다."라고 말한다.

"글쓰기와 여행은 언제나 서로를 잡는다. 이 둘은 모두 상상 세계를 향해 떠날 준비를 마쳤거나 모든 가능한 세계를 이미 탐험한 이들, 그러니까 '다른 곳을 열망한 이들'의 부름에 대한 대답인 것이다." (장 피에르 나디르 도미니크 외드의 <여행 정신> 112쪽)  128


쓰다 보면 안다, 무엇이 부족한가를. 부족한 것을 알면 그걸 채우면 된다.  133


모든 글에는 필적(筆跡 붓 필,발자국 적)이 남듯이 당신이 쓴 글에도 문체라는 내면의 필적이 남는다. 똑같은 필적이 없듯이 똑같은 문체란 없다. 물론 필적을 위조하듯이 남의 문체를 흉내 낼 수는 있다. 그것은 위조에 지나지 않는다.  135


문체란 자기만의 어조, 자기만의 리듬, 자기만의 스타일이 드러나는 문장의 특색이다.  136


자신만의 문체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137


좋은 글을 찾아보라. 좋은 글은 글쓴이의 의도가 명쾌하게 드러난 문장으로 이루어진다. 좋은 글들을 찾아 읽고 정확한 낱말과 문법에 맞는 문장을 쓰는 연습을 하라. 그 한 가지 방법은 글을 필사하는 것이다.  138


좋은 문체는 사유와 감각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정확한 문장에서 비롯된다.  141


쓴다는 것은 제 삶의 공백을 글쓰기라는 노동으로 채워나가는 일이다.

왜 사람들은 쓰질 못하는 걸까? 그건 어쩌면 다른 사람이 저를 대단한 사람, 유식한 사람, 좋은 사람, 혹은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알아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144


뭐가 있는 체 해도 아는 체 해도 안 된다. 감정을 조작하지 말고, 보고 듣고 느낀 바대로 담백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솔직하게 쓰는 것이 바로 재능이다.  145


무의식으로 하여금 쓰게 하고, 의식으로 하여금 고치게 하는 것.

'쓰다'라는 동사는 작가들이 따라야 할 궁극의 도(道)이다. 결국 다소 뻔뻔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진실과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용기, 쓰고야 말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자신의 글을 쓴다. 저를 드러내지 못하고, 진실을 감추는 자는 영원히 글을 쓸 수가 없다.  149


작가들은 자기 작업의 결과물에 항상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쓰고, 또 쓰고, 앞에 쓴 것들을 지우고 다시 고쳐 쓰는 일은 형벌과도 같다. 작가들은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지우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다시 시도한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위대한 실패를 하기 위해서.  152


"나는 일단 어떤 작품을 시작하면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중에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는 일이 없다. 날마나 꼬박꼬박 쓰지 않으면 마음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생기를 잃기 시작한다..."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 186 쪽)  153


글쓰기는 더도 덜도 아닌 육체적 행위이다. 몸안에 있는 것들을 몸을 통해 펼쳐내는 것, 이것이 글쓰기이다. 이말인즉슨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몸을 글쓰기에 잘 맞게 '포맷'해야 한다는 뜻이다.  

몸으로 쓴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첫째, 말 그대로 몸을 사용 한다는 것이다.  

둘째, 몸으로 글을 쓴다는 것은 몸으로 겪은 것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은 것들, 즉 몸에 입력된 감각들로 글을 쓰는 것이다.  156-157


한 편의 시, 한 편의 소설은 감동을 통해 인간의 기쁨과 슬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새로운 사유로 읶느다. 즉 무엇이 인간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론적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183


문학은 지식을 주입하지 않고 향유로 독자를 이끈다. 문학은 세상의 대의들과 강령들을 외치지 않고 다만 있는 그것, 즉 삶과 세계를, 혹은 있을 수 있는 형태로 제시하고 보여준다. 현실을 깐깐하게 따지고, 양심에 따라 고발하고, 모두가 대의라고 믿고 따르는 것을 의심하고 물음을 던진다.  186


미국의 지성이자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수전 손택은 이렇게 말한다. "따라서 문학은 (여기서 저는 단순히 그렇다고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자의식이고, 회의고, 양심의 거릮미이고, 깐깐함입니다. 또한 (이번에도 역시 그럴 뿐 아니라 그래야 한다는 뜻입니다) 노래고, 자발성이고, 찬미고, 환희입니다."  187


김연수는 소설을 쓸 때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소설가의 일> 217쪽)  190


헤밍웨이는 "만일 작가가 관찰하는 것을 멈춘다면 그는 끝장난 것이지요."

<파리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작가에게 가장 근본적인 재능은 '빌어먹을 상황들을 발견하는 장치'라고 꼽았던 그는 "글쓰기가 항상 힘들고 종종 불가능했었다."라고 고백했다. 세계적인 작가에게조차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던 셈이다.  209


소설은 간 길이 아니라 가야 할 길에 대한 선험적 검증이다. 이미 지나온 길을 시시콜콜하게 적는 것은 역사이다. 소설은 역사가 아니라 역사의 여백을 탐색하는 자리이다. 역사가 소설이 되려면 상상과 허구가 섞여야 한다. 지나온 길이 지나갈 길이 되어야 소설이 되는 것이다. 역사 소설은 단순히 지나온 과거나 역사의 재현이 아니라 진실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그것을 다시 보기한 것이다.  227


고양이들은 계파나 조직 따위를 만들 줄도 모르고 항상 독립적으로 생활하는데, 이것이 작가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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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책을 읽는 행위는 인풋(input)이고, 책을 써내는 ㅇ리은 아웃풋(output)이다. 인풋의 밀도가 촘촘해야만 아웃풋도 좋아 진다. 당연한 일이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선생님의 말처럼 "인생은 뒤돌아볼 대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바로 그런 까닭에서 나이가 들수록 서재는 인생에서 중요성이 더 커진다. 책은 인생을 돌아보고 곰곰이 씹어보는 데 유용하지만, 그보다 앞을 향해 살아가는 지침을 구하고 예지력을 키우는 데 더 쓸모가 있다.  


더 자주 책을 읽어라. 더 자주 웃어라. 더 자주 사랑하라.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남아 있다는 것, 아직 삶에 채워넣어야 할 것이 존재한다는 건 스트레스가 아니라 축복이다... 중요한 건 살아야 할 이유와 보람이다.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와 보람을 찾는 일에 노력하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늙을 시간이 없다.  - 가와기타 요시노리 <마흔 살의 철학>  15-16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결정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도무지 살 수 없는 것들. 그게 남겨야 할 짐들이다. 짐을 가볍게 하라!

'짐을 가볍게 한다는 것은 제 손으로 삶을 정돈한다는 것, 외적 혼란으로부터 탈출한다는 것, 삶의 주된 목저고가 무관한 많은 소유물을 포기하는 것'(<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이다.

"여행의 이익은 단지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처음 보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오히려 평소 낯익은 것,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던 것에 경이를 느끼고 새롭게 다시 보는 데 있다... 여행하는 사람은 행하는 자가 아니라 보는 사람인 것이다. 이와 같이 순수하게 관상적으로 됨으로써 평소 이미 알고 있는 것, 자명한 것이라고 전제하던 것에 대해서 우리는 새롭게 경이감을 느끼거나 호기심을 느낀다. 여행이 경험이며, 교육인 것도 이 때문이다.  - 미키 키요시 <어느 철학자가 보낸 편지>  19


오로지 사람만이 경이를 느낀다. 더 많은 경이를 느끼는 사람이 더 풍요롭게 사는 사람이다. 경이는 예민한 감응력이 있을 때 일어나는 마음의 파동이다.  20


공자는 네 가지를 끊었다고 했다. 억측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고루하지 않고, 아집을 버렸다.  26


청나라 초기의 문장가 장조(張潮)는 "하루의 계획으로 파초를 심고, 한 해의 계획으로 대나무를 심고, 십 년의 계획으로 버들을 심고, 백 년의 계획으로 소나무를 심는다."고 햇다. 시 쓰기는 파초를 심는 것이고, 책 읽기는 백 년의 계획으로 소나무를 심는 것에 견줄 수 있겠다.  34


지켜지지 않은 것, 수정해야 하는 것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과감하게 인생의 초안을 수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마음 안에 새 꿈을 써 붙여야 한다.

비움은 마음에 채운 욕심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한다.  36


인류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다 이기주의가 숨어 있다. 나와 남은 불이(不二)이다.

비우려는 자는 먼저 맹목적인 탐욕을 버려야 하고 자발적 가는에 처하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  37


즐거움은 물질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에 있다.  39


쉼은 빈둥거림이 아니다.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바쁜 시간이다.  41


오스트리아 사회학자 헬가 노보트니는 "휴식은 나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 사이의 일치를 뜻한다"라고 말한다. 덜 바빠야 더 행복하다.  42


'발터 벤야민은 깊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새"라고 부른 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 한병철 <피로사회>


'많은 사람이 물질적인 부를 자기 인생의 반영이자 자신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여긴다. 이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자신의 정체서오가 이미지를 자기가 소유한 것과 연결짓는다. 더 많이 소유할수록 더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게 탐욕의 대상이 된다.'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55


'삶의 본질은 물건을 통해 구현되지 않는다. 필요 이상의 것을 절제하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가 되려면 정신적이고 지적인 짐 가방을 꾸릴 줄 알아야 한다. 많이 소유하지 않으면 실제로 삶의 질이 개선된다.'  - 도미니크 로로 <심플하게 산다>  58


시골에 들어온 첫 해에 나는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금광호수의 물을 날마다 바라보았다. 물은 언제나 물로써 변화가 없었다. 나는 그 변화 없음을 지루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변화 없음 속에서 번득이는 변화들을 보았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바람이 물을 밀면서 나아가고, 바람이 없는 날에 물은 잔잔했다. 물을 바라보면서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보았다. 마음 안에 있는 마음을 분별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있는 그대로 보라! 무분별의 분별 속에 있을 때 내려다보는 물은 평화롭고 고요했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커다란 모름 속의 앎으로 오롯할 때 평화롭고 고요했다.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도 않고 더 나쁜 사람이 되고자 하지도 않았다. 본디 그러함 속에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두고자 애썼을 뿐이다.  76


더러는 읽은 것들이 걸을 때 새로워진다. 사유와 산책은 한짝이다. 걷는 사람은 대개는 사유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의 걷는 모습에서도 마음은 작열한다.  77


시골집에서 혼자 밥을 끓이고 사는 내게 사람들은 외롭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자주 던진다. 외롭지는 않다. 읽어야 할 많은 책들, 듣고 싶은 음악들, 산책한느 길들, 그리고 숙고해야 할 인생의 후반부가 오롯하게 남아 있다.  79


시인 릴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한 가지다. 고독, 위대한 내면의 고독 말이다. 몇 시간이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자신 속에 머무를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혼자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일이다.  82


자발적으로 선택한 고독은 일상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심리적 피난처"를 찾는 일이다. 대개 작가나 예술가들이 창작을 위해 스스로 고립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내 고독을 추구한다. 이때 고독은 "위안과 새로운 활력, 내적 평온"이라는 선물을 준다. 명상, 휴식, 기도와 같은 황동도 고독을 동반한다. 이때 고독은 일상의 번잡함에 매여 지친 영혼을 다래고 내적인 여유와 평화를 가져다준다.

또 다른 고독으로 사회적 고독과 감정적 고독이 있다. 고독은 사회적 고립과 정서적 고립이 합쳐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83-84


고독은 그 본질에서 혼자 있는 능력이다. 혼자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혼자 있는 능력은 귀중한 자원이다.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내면 가장 깊은 곳의 느낌과 접촉하고, 상실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하고, 태도를 바꾼다."(<고독의 위로>) 창의성의 발현과 개인 자아의 발달은 자기 내면을 돌아보는 혼자 있는 능력 속에서 길러진다.

자발적 고독은 욕망과 두려움의 지배에서 벗어나 심ㄹ리적 평형 속에서 안정된 인격을 갖춘 사람들의 태도이다.  85


"고독을 회피하는 것은 나 자신을 회피하는 것"(<고독의 심리학>?. 차라리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기는 태도를 배우라. 고독을 즐기고 그것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려면 먼저 있는 그대로의 고독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질 것, 타인에게 의존하지 말 것,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낼 것, 철저하게 자기 자신이 될 것 등이 필요하다.

고독은 질병이 아니다. 고독은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적 시간을 선물로 마련한다.  86



잘 살기 위한 바탕은 끊임없이 '생각함'이다. 늘 새롭게 생각함 속에서 좋은 삶이 나온다.  101


양적 조건이 충족된 다음에야 질적 전환이 일어난다.  102


'융통성, 판단력, 비전이 탁월한 학습 주도형 인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첫 번째, 지식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베이스캠프가 낮으면 산 정상에 도달하는 게 더 힘들죠. 집효한 학습으로 지식의 총량이 많아지면, 즉 판단력의 기준 바탕이 높아지면 삶의 예측은 더 정확해집니다.

두 번째, 질문을 품어서 성장시켜야 합니다. 질문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죠. 예부터 선사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도를 깨치기 위해서는 의심 덩어리가 커야 하고, 강렬한 내적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의심 덩어리를 함부로 노출한다든지 간단히 해결했을 때는 공부, 학습의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그런 질문은 만들기도 어려우며 한번 얻은 질문은 적어도 5년, 10년 이상 내적으로 질문의 강도를 높여서 학습의 추진력으로 삼아야 합니다. 질문의 힘으로 대상을 보기 시작하면 결국 그 질문이 스스로 답을 찾죠.

세 번째, 학문에 미쳐야 합니다. 어느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는 미친 듯이 몰아붙여야 하는 겁니다. 보통은 5년, 좀 더 어려운 분야는 10년 단위로 계획하여 스스로 각 분야를 조망할 만큼 학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술이 되었든 철학이 되었든 자연과학이 되었든 어떤 분야를 5년, 10년씩 완결하여 50년 공부할 것 같으면 적어도 다섯 가지 이상의 다른 분야를 섭렵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가 중요합니다. 학습의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의 비율을 7 대 3 정도로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과학은 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수학이라는 것은 숫자를 헤아리는 데서 출발하죠. 우리는 수 개념을 본능적으로 파악합니다. 뇌의 진화 덕분이죠. 자연과학은 40대가 되기 전에 공부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는 시작할 수 없습니다. 철학이나 문학 같은 분야는 나이가 들어서도 등단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미분, 적분, 일반상대성이론을 6, 70 먹은 노인이 취미로 공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을 겁니다.

다섯 번째, 목표량이 중요합니다. 임계치를 넘어서면 양은 질로 바뀝니다. 그 임계치를 책으로 치면 3천 권 정도 될 것입니다. 자연과학 대 인문과학, 7 대 3으로 해서요. 50대가 될 때까지 3천 권 정도 집요하게 읽다보면 정보가 서로 링크 되면서 정보들 사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양이 질로 바뀌는 거죠. 그리고 좋은 정보와 좋은 책을 구별할 수 있을 때부터 학습에 가속이 붙습니다.' - 박문호 <뇌, 생각의 출현>  103-104


책을 읽는 행위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프로세스에 의지하는 게 아니라 후천적인 학습과 훈련의 결과로 이루어진다. 책을 읽으려면 "주의와 기억 그리고 시각, 청각, 언어 프로세스"(<책 읽는 뇌>)를 작동하면서, '나'라는 존재 지평을 넘어가야 한다.  117-118


책을 읽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주의, 지각, 개념, 언어 및 운동의 프로세스로 이루어진" 인지 수준(cognitive level)에서 "언어 정보와 개념 정보를 모두 연결한 뒤 당신은 각자의 배경 지식과 관여(engagement)에 기반을 두고 나름대로 고유한 추론과 가설을 생성"(<책 읽는 뇌>)해야만 한다. 뇌의 뉴런 회로들을 책을 읽기에 필요한 수준으로 최적화시켜야만 한다. 한 마디로 책 읽는 뇌로 포맷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한 쪽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118


반가통(半可通 반 반, 옳을 가, 통할 통)이 사물의 이치를 어렴풋하게 깨닫는 세계라면, 전가통(全可通 온전할 전)은 사람이 깨치고 알아야 할 사물의 이치와 앎들을 분명하게 추구하는 세계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는 반가통만으로 통용되는 사회이다.  125


비움은 내 안의 것을 덜어냄이지만, 덜어낸 것을 남에게 베풀 때 더욱 빛난다. 비움의 능동적 실천이야말로 저를 고귀하게 한다.  163



천재란 뇌 속에 보다 많은 지식이 아니라 보다 큰 느낌의 세계를 갖고 있는 살마을 가리킨다.  174


깊이 생각함 없이 사는 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문자를 모른체 사는 것과 같다. 생각의 문맹자들은 의외로 많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즉물적인 삶을 산다. 그들은 먹고 사는 것이나 돈되는 것의 밖에 있는 일들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모란과 작약은 왜 봄마다 꽃을 피우는 것인지, 파도는 왜 왔다가 돌아가는지, 달은 왜 커졌다가 다시 작아지는지, 지구의 자전축은 왜 항상 태양계의 공전 궤도면에 대해 23.5도의 각도를 유지하는지에 대해 무관심하고 냉담하다. 그들은 오로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 즉 주식, 부동산, 음식, 쾌락에 함몰되어 있다. 왜 그럴까. 미래가 중요하지 않기 땜누이 아니라 미래를 보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지나치게 버겁거나 영혼에 음악이 없을 때 우리는 미래를 회피한다.  175


우리는 사색 속에 자신을 누일 수 있어야 한다. 사색은 삶의 수평을 맞추며 우리를 내적 평형으로 이끌고 우리 안에서 새로운 것이 태어나게 한다.  176


사색이란 마음, 의식, 생각의 작동이다.

사색의 기반은 고요함. 177


정말 게으름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나는 이런 생각들이 공리주의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퍼뜨린 게으름에 대한 일종의 편견이라고 여긴다....

게으름에도 분명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부분이 있다. 게으름은 일손을 놓고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게으름은 자기를 비우고 자기를 무(無) 속에 방임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타고난 바 자유를 누리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천천히 되새겨보는 느림 속의 자기 방기가 바로 게으름이다.  202


'말하자면, 게으르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내버려둔다는 것이다. 그것은 슬기로움이나 너그러움의 한 형태다. 물러났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이렇나 삶의 방식은 한가로이 거닐기, 남의 말 들어주기, 꿈꾸기, 글쓰기 따위처럼 사람들이 별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버려진 순간에 깃들어 있다.  - 피에르 쌍소 외 <게으름의 즐거움>  203


쓰기 위해 일하고 일하다 보니 쓰지 못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나라.

일하지 않는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의 가치를 발견하라.  205



나날의 욕구와 필요에만 갇혀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에게 고립되어 있는 사람이다. 대개는 편협한 세계관에 갇힌 사람들이고 그들의 자아는 단단하게 개별적인 껍데기 속에 웅크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다만 성욕과 식욕과 사치스런 생활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려는 데 써버린다. 금욕과 고행의 가치에 대해 전혀 모르며 그렇기 때문에 탐욕에 쉽게 빠지는데, 그것은 곧 자아가 타락했다는 증거이다.

나와 너는 연결된 존대이다. 더불어 소통하고 함게 살도록 태어난 존재들이기 때문에 나와 네가 마음을 닫고 불통한다면, 그런 세계가 잇다면 그곳이 바로 지옥이다. 나의 행복이 너의 불행을 담보해야만 한다면 나는타자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아니 소규모의 끔찍한 재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재앙이 되지 않으려면, 한 시인의 어법을 빌려 나는 너에게 가서 꽃이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려면 마음을 열고 소통해야 한다. 마음을 열지 않고, 손을 잡고 나란이 걷지 않는다면, 우리는 겨울의 추위와 잿빛 하늘 아래서 저마나 신음하다가 죽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열ㄹ고 손을 잡아야만 비로소, 봄은 온다.  240


사람은 낱낱으로 분리되어 '자기성'에 갇힌 섬이 아니다. 살마은 '자기성'에 갇힌 존재이면서 동시에 숱한 타자들과 연루되고 그 연관성에 놓인 맥락에서 산다. 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으로 연결된 이 세계 안에서 산다는 뜻이다.

나 아닌 타인을 향해, 세계를 향해 열린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 어떻게?

타인을 '영접'하고 '환대'함으로써. 타자의 필요와 욕망에 반응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감응할 수 있는 능력이 좋은 사람됨의 증표이다.  241


''배움'은 외면을 가리키며 사물을 알아가는 것을 뜻한다. 반면 '생각'은 내면을 말하며 이치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밖으로는 배움을 추구하고 안으로는 성창하는 것, 인생의 길을 걸을 때도 이 두 가지가 반드시 균형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 동리자 엮음 <논어의 인생박물지>  256


진실이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잇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이다.  261



즐풍목우 -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빗물로 목욕한다는 말.  273


장자는 칠원리(漆園吏 옻 칠, 동산 원, 아전 리)라는 말단 관식에 종사하면서 초야에 은둔하여 가는을 낙으로 삼고 살았던 철학자이다.  275


'잔꾀를 부리는 사람은 불성실하게 되고 모든 일에서 지름길을 찾고자 하며 그 어떤 고생도 하려 하지 않는다. 어떤 일을 끝까지 견지하지 못하는 사람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은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향락을 누리고자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를 닦고자 하며 본인은 두 가지 모두 잘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결국은 향락도 도 닦기도 모두 실패한다.  - 자오유얼 <인생사계>  301


'과대망상에 빠진 만물박사, 거드름쟁이, 헛똑똑이, 이것이 인간의 현 모습이다. 우리는 이보다 훨씬 더 괜찮은 살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지만 도시에 외톨이이기도 하다. 전쟁꾼이면서 평화중재자이고, 베풀면서 빼앗아 가고, 파괴하면서 재건하고, 풍요 속에 있으면서 빈곤하고, 행복하면서도 절망하고, 구도자이면서 찾기를 단념한 이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또 호기심이 많지만 발견의 기쁨을 상실한 자, 단 몇 시간 내에 아름다운 지구 전체를 활활 타오르며 폭발하는 지옥의 불덩어리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지구를 살아 있게 하고 삶에 필수적인 것들을 지구로부터 야금야금 빼앗아 가는 유일한 존재가 우리 인간이다.'  - 게랄트 휘터 <우리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  3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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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재산이며 건물이며 토지와 같다 - 로자 룩셈부르크


'젊은 남자의 냄새에서 육체적 행복을 느낍니다.' - <감각의 박물학> 다이앤 애커먼 백영미 옮김 작가정신 2004

감각 지각이 없다면 이 세계는 무미건조한 회색빛 감옥이나 화산재로 뒤덮인 황무지나 다름없을 것이다.  14

눈과 귀와 혀와 살갗을 즐겁게 하는 이 모든 대상 세계의 물질들을 감각적으로 향유함으로써 사람은 비로소 개별 존재로 거듭나며 자기 삶을 산다.  15


'모든 성스러운 장소에는 침묵이 있다' - <침묵예찬> 마르크 드 스케트 김화영옮김 형대문학 2007

문명사회란 대체로 소란스럽다.

문명사회란 갖가지 소움들을 만드는 사회다.

사람들 대부분은 소움 속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소움은 선(腺), 내장, 심장, 혈관 같은 신체의 내부기관에 영향을 미친다. 지속적인 소움에 노출된 사람은 혈액순환, 심장체계, 선 분비에 장애를 겪는다. 초저주파음과 초음파들도 불안, 두통, 이명 등을 유발하며, 소음이 일으키는 피자극성, 공격서으 초조감을 오래 방치하면 정신분열증이나 편집증 환자가 될 수도 있다. 소움은 청각만이 아니라 몸 전체를 집요하게 위협한다. 소음의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소움의 토대 위에 세워진 문명사회의 음모다.  17

소음고해에 무감각해진 그들은 텔레비전이 '기총소사하듯' 타타타타타 끝없이 쏟아내는 소음 속에서 휴식을 취한다. 어쩌면 도시인들은 항구적 난청자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소리의 부재상태를 견디지 못한다. 주위가 조용하면 그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심적 동요를 감추지 못한다.  18

문명사회에서 침묵은 오로지 소수자의 것이다.  19

말 속에도 침묵이 깃든다. 말들은 그 내부에 긴 침묵과 짧은 침묵을 갖고 있다. 건성으로 듣는 사람들은 소리만 듣지만, 깊이 경청하는 사람들은 말 속에 숨은 침묵에 귀를 기울인다.

책을 읽을 때 집중하면 할수록 주변의 소음을 잠재우는 힘은 강력해진다. 

무엇보다도 책 자체에 깃든 침묵, 문체상의 침묵을 눈여겨볼 수 있다. "생략법의 글쓰기, 불명확한 재현, 단속적인 대화체, 그리고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말없음표"등은 가장 흔한 침묵의 양태들이다. 말줄임표는 통사적 망설임, 판단유보의 기호다.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는 그 침묵들은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읽히는 침묵, 그것은 음향적 현실에 겹쳐지는 하나의 부ㅈ제., 자아에 대한 성찰과 세계 인식의 장소다."  20


'죽음은 죽은 자와 관련된 산 자의 문제다.' - <애도> 베레나 카스트 채기화옮김 궁리 2007

죽음이란 무엇인가? 철학자 레비나스는 죽음을 존재가 "할 수 있음을 더이상 할 수 없음"의 상태라고 말한다.  22

죽음은 개체적 현존을 잃는 생물학적 사건이다. 아무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태어나는 순간에 이미 사람의 시간은 죽음을 향해 움직인다. 사람은 상하는 존재인데, 그 사유를 통해 원자와 무한한 것들을 분류한다.  23

죽음은 그 죽음을 겪은 당사자의 문제이기보다는 죽은 자와 관련된 자의 문제다. 

정당한 애도는 사랑하는 이의 죽음으로 인해 빚어진 상실반응과 병적 슬픔, 그 위기들에서 벗어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애도자의 상실 반응은 일차적으로 삶과 운명의 불가해성에 부딪치며 일어난다. "애도자는 대부분 과거에 몰입하고, 그럼으로써 당연히 한층 더 현실세계에서 소외도니다." 특히나 죽은 자와 심리적, 실제적으로 깊은 공생 관계에 있었다면 그 상실은 '내면의 커다란 공동'과 '전체 인격의 분열'을 가져올 만큼 큰 충격을 불러일으킨다. 많은 애도자들은 의미 존재 신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의심에 빠지고, 더는 살아야 할 이유들을 찾지 못한 채 허우적이게 된다. 세상에서 저 혼자만 고립되었다는 느낌에 빠져들며 소외 속으로 표류하는 애도자들이 겪는 "자기감의 손상"은 매우 심각하다. 따라서 그들이 비정상적인 무의미함 불안 분노에서 벗어나 다시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삶으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애도의 과정을 밟도록 이끌어야 한다.  25

죽은 자가 떠난다고 혼자 남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이미 우리의 일부가 되고, 죽은 자의 애도도 새로운 삶을 만드는 기회다. 그러니 이별함을 넘어서서 상실과 변화를 견디는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한다. 그것은 '자신을 지지하고 수용하는 환경을 자기 인격을 절충하는 그 무엇으로 내재화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조금ㅆ기 죽는다. 오늘의 삶은 내일을 살기 위해 죽음에 지불하는 대가다. 그게 사실이라면 죽음이 넘실대는 세계 속에서 매일 '세상에 먹히고 낡아'지며 죽을 준비르 하고 사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26

'사람은 정말 혼자 살 수 있을까?' - <덧없는 행복> 츠베탕 토도로프 고봉만옮김 문학과지성사 2006

카프카는 말한다. "만약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정수리를 내려치는 타격으로 우리를 깨우지 않는다면, 그걸 무엇 때문에 읽어야 하겠어?" 그렇다. "우리 내부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책"만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나는 부지런히 책을 구해 읽었으니, 이것은 책으로 유폐하는 것이요. 책으로 망명하는 것이고, 책속의 위리안치였다.  38

뼛속까지 파고드는 정한, 급하게 처리해야 할 아무 업무도 없는 그런 오롯한 자유, 손발을 부지런히 움직여 나를 조각조각 쪼개 분주함 속에 흩뿌리지 않아도 되는 오직 나만을 위해 쓸 수 있는 집중력 속에서 책을 읽는 일은 행복했다. 그 행복이 덧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다른 무엇과 바꾸고 싶지 않았다.  39

루소 철학에서 '현대성'을 엿보려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비평가 츠베탕 토도로프의 안내로 루소 철학의 ㄹ오솔길을 돌아 나왔다. 토도로프는 루소의 사상을 해석하고 재구성하면서 많은 것들을 버리고 오늘에 맞는 것만을 취한다.  41

루소는 늘 혼자이길 바라고, 오롯한 자기 속에서 세계 전체를 향유하길 바랐다. 재미있는 사실은 정작 루소는 은자로 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역시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으며 살고 싶어했던 것이다. 루소는 사람이 불완전하고, 그 불완전성 때문에 '나약한' 존재라고 보았다. 

우리가 누리는, 혹은 누리고 싶어하는 행복은 우리를 가깝고 먼 데서 동심원처럼 두르고 있는 타인들에게서 나온다. 나의 현존과 행복에는 전적으로 타인이 필요하고, 우연적일 수밖에 없는 까닭에 덧없다.  42


'걷기는 산이 사람에게 내린 선물이다' - <걷기의 철학> 크리스토프 라무르 고아침옮김 개마고원 2007

걷는다는 것은 육체로 된 삶을 되돌려받는 것이다. 더 많이 자연과 접촉하며 자연과 닿은 감각의 접점에서 일어나는 기쁨과 쾌락들을 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걷기는 고독한 행위다.  44

걷기의 진정한 기쁨을 느끼려면 혼자 걸어야 한다. 혼자 걸으며 세계의 침묵을 음미해 보아야 한다.

혼자 걸을 때 자연은 우리에게 말하기보다 겨청하는 자질을 더 키우게 한다.  45

걷기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예기치 않은 만남들, 아울러 돌연한 기후 변화, 즉 돌풍, 폭풍우, 첫눈과의 만남을 예비한다. 

걷기는 우연의 경험들을 선물로 준다.  46

걷기에 태만해짐으로써 우리는 구체적인 세계와의 감각적인 교섭이 크게 줄어들었다.

걷기와 사유하기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걷는 동안 우리는 주변의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고 저절로 사유에 빠져든다. 느리게 걸을 때 '나'와 세상은 사용과 소유의 관계가 아니라 평등한 관계 속에서 감각적 교섭을 한다. '나'의 시선이 자연 속으로 뻗어가고, 자연은 '나'의 안으로 들어온다. 이 상호교섭에서 사유의 씨앗들이 뿌려지고 이것들이 발아해서 싹을 내민다.  47

걷기는 신이 사람에게 내린 공짜 선물이다. 걷기는 근육을 강화시키고 무와 공허 속에서 헤매는 나약한 정신을 굳세게 세운다. 걷기는 생명의 근본됨을 깨닫게 하고, 세계를 몸의 범주 안으로 불러들인다. 걸을 때 불행과 두려움이 작아지고 기쁨과 뜻은 크고 굳세진다면 왜 굳이 걷지 않겠는가?  48


'옷과 함께 시작한 인생, 옷과 함께 끝난다' - <나를 벗겨줘> 카트란 주베르, 사라스탠 이승우 옮김 은행나무 2007

이 책은 옷이란 무엇인가라는 도발적인 물음에 대한 응답이다.  49

제 방에서 혼자 있을 때는 벌거벗고 있어도 괜찮지만 바깥(사회)으로 나올 때는 옷을 입어야 한다. 자연과 본능은 문명 세계 안에서는 숨기고 가려져야 하는 그 무엇이다. 사람을 사회적 존재로 규정할 때, 그 본질은 옷을 입은 존재들이라는 뜻이다.  50

속옷, 특히 팬티는 여성에게 옷차림의 시작이자 기본이다. 이것을 벗는다는 건 어떤의미가 있을까? 한 여성이 미술과에서 검정 정장 아래 감춰져 있는 제 팬티를 남몰래 벗고 돌아다닌다. 여자는 "모든(몸의) 감각(이)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이상한 흥분과 함께 마음이 심하게 동요하는 기분을 만끽한다. "이날 이후, 기회가 생길 때마다 나는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지루한 점심 약속, 너무도 심각한 모임, 길어지곤 하는 칵테일파티 등에서 슬쩍 팬티를 벗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남 몰래 팬티를 벗어던진 여자가 누리는 심리적 해방감에는 성적 판타지도 얼마간은 섞여 있을 터다. 저자들은 팬티를 벗는 것은 관습의 금기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것, 자아의 성장으로 나아간다는 것, 특히 "세상과의 관계를 형성시켜온 모성애적 금지사항"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51

사람들은 옷차림이 저마다 독특한 심미 취향이나 개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사회가 관습으로 혀용하는 한계 안에서 서로 모방하거나 그 모방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에 지나지 않느나.

인류의 복장사는 최초의 인류가 금지된 선악과를 따먹은 뒤 낙원에서 추방되자 마자 나뭇잎으로 제 몸을 가린 데서부터 시작한다. 몸은 수치스러운 것, 가려야 마땅한 무엇이라는 인식이 옷이라는 필요를 만든 것이다. 그 뒤로 옷은 수많은 금기와 위반 사이의 이항대립을 하며 끝없이 진화해온다.  52


'나는 쇠고기 앞에서 왜 구역질이 날까?' - <육식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신현승옮김 시공사 2002

나는 우리 식탁에 올라올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얼마나 많은 호르몬과 살충제 따위의 화학물질로 오염되고, 그 운송과 도축 과정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반생명적인지를, 그리고 미국산 쇠고기가 위생적인 검역을 거쳤을 것이란 믿음이 그릇된 환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리프킨은 축산업자들은 정상 사료에 톱밥, 닭장이나 돼지우리의 분뇨, 산업 오수와 기름 등을 섞고, 조만간 시멘트 가루도 사료첨가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면 비용을 줄이고, 소들의 체중으 ㄹ더 빨리 불려 비싸게 팔 수 있기때문이다. 또한 미국의 느슨해진 위생 검역기준은 질병으로 폐기되거나 가축용 사료로 쓰일 고기조차 소비자용으로 미국 농무부(USDA)의 승인 도장을 받게 한다. 그 결과 미국산 쇠고기는 디스토마, 농양, 낭충증 등 더러운 질병에 감염된 고깃덩이라도 겉 보기에 멀쩡하면 합법적으로 위생 포장육으로 가공된다.

한미 FTA의 체결이 미래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는 논리와 이것을 지지하는 자들이 제입맛에 맞는 것만 제시하는 통계자료들의 연막 아래에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재앙이 되고 말 그 욕망의 추악함은 숨는다.  63

쇠고기는 우리 입맛을 바꾸어 놓을 것이고.. 그 대가들은 과도한 동물성 지방과 콜레스테롤을 지속적으로 삼켜 생긴 비만과 심장병, 유방암, 당뇨병, 뇌졸증과 같은 '풍요의 질병'들이다. 막대한 곡물 사료로 생산한 쇠고기는 "불에 찬 삼림, 침식된 방목지, 황폐해진 경작지, 말라붙은 강이나 개울을 희생시키고 수백만 톤의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 메탄을 허공에 배출시킨 결과"다.  64

육식의 중단은 고름 "비육자오가 도살장에서의 고통과 모욕"에서, 그리고 "뿔 제거, 거세, 발정 억제, 호르몬 주입, 항생제 가다 복용, 살충제 살포, 자동화된 도살장의 해체 공정에서의 무의미한 죽음"에서 해방시키는 "상징적 실천적의미를 지닌 인도적인 행위"다.  65


'우리는 브랜드 제품을 쓰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 닐 부어맨, 최기철 윤성호옮김 미래의 창 2007

로고가 말하는 진실은 무엇인가? 우리가 자발적으로 기업의 로고를 달고 다니는 그 자리는 옛날 노예뜰이 누군가가 제 소유주임을 증명하는 기호나 글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던 자리다. 노예 상인들은 노예의 이마나 가슴팍에 불로 달군 쇠로 낙인을 찍었다. 비싼 돈을 주고 사서 자랑스럽게 쓰는 브랜드는 그것이 곧 우리의 소유주임을 증명하는 우리 신체에 찍힌 낙인과 다르지 않다.

제품 광고는 교묘한 방법으로 우리의 욕망과 기호들의 내용을 결정하고, 결국은 우리의 의견과 관습을 지배한다. 광고들은 우리가 특정한 브랜드의 제품을 씀으로써 자아 성취와 성공과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설득한다.  69

닐 부어맨은 블내드 제품들을 공개적으로 불사른 뒤 브랜드가 없는 아주 값싼 제품들을 사 쓰며 불편하게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가 버린 것은 쇼핑의 쾌감과 명품 소유에서 오는 헛된 만족감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덜 쓰고 덜 일하라는 것, 그리고 소비주의에 굴종하지 말고, 온전한 자기 삶을 살리는 것이다.  71


'양심적 병역거부자 혹은 가혹한 편견' - <평화의 얼굴> 김두식 교양인 2007

<평화의 얼굴>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 책이다. 이 놀랍도록 진지하고 감동적인 책을 서가에서 다시 꺼내 읽는다. 이 책은 총을 들지 않을 자유와 양심의 명령에 따를 수 있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에 대한 시종일관 뜨거운 옹호로 읽는 이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73

양심적 병역거부는 이미 일제시대 때인 1939년에 여호와의 증인인 옥응련과 최용원 등이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해서 처벌을 받았다. 천황에 대한 충성서약을 거부하고, 전쟁에 나가 총으 ㄹ들고 싸우는 것을 거부하고 감옥으로 갔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 대부분은 안식교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다.  74

미국과 영국은 징병제가 없지만, 헌법에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다. 아예 징병제를 실시하지 않는 나라들이 70여 개국이고, 독익, 덴마크,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노르웨이, 핀란드,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폴란드, 헝가리, 키프로스, 브라질 등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인정하는 나라다. 그리스는 민간 대체복무를, 러시아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헌법으로 인정한다. 쿠바는 청소년 노동부대를 대안으로 따르게 하고, 타이완도 2000년도부터 대체복무를 허용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가혹하게, 가장 많은 병역거부자들을 감옥에 가둬 온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는 김두식은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니다.  75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병역"문제만이 아니라 누구나 양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기본권 확대에 대한 시금석이다. 

소수자의 인권을 지키고 그것을 키우는 일에 반대하고 불관용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권리에 대한 포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타자의 권리가 아니라 바로 우리가 누리고 지켜야 할 권리인 까닭이다.  77


'일본을 타자의 시선으로 분석하다' -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 김윤식오인석옮김 을유문화사 1974

일본인은 처음부터 일본인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어린 시절의 훈육에 의해서 일본인으로 가공된다. 훈육은 본서을 억압하고 타자(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자기 수련들로 채워진다. 그래서 본성(본마음)위에 여러 번 덧칠되어 만들어진 가공된 인격이 나타난다. 일본인의 예의바름은 옷칠과 같이 가공된 인격의 표현이다. 그드르이 이중적인 태도들은 본마음과 가공된 인격 사이의 균열에서 나온다 "그들은 그들 마음속에 숨을 죽이고 있는 반항심에 두려움을 품고, 궅으로 부드러운 태도를 가장하여 그것을 숨긴다. 그들은 때때로 그들의 진짜 감정을 의식하는 것으 방지하기 위하여 쓸데없는 일에 몰두한다. 그들은 훈련에 의해 매우게 된, 그들에게는 실제로 전혀 무의미한 일상적 일을 단지 기계적으로 수행한다." 일본인의 이중성은 비난받아야 할 패덕이 아니다. 그것은 타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을 명예로 알고 그에 따라 훈육된 결과물이고 시네으 표면에 각인된 관습이다.

'국화'와 '칼'이라는 비대칭적인 은유는 일본인의 이중적 인격을 잘 드러낸다.  80-81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의인 한 사람' - <스콧 니어린 자서전> 스콧 니어링 김라합옮김 실천문학사 2000

스콧 니어링은 타고난 비순응주의자로, 반자본주의, 친사회주의,ㅡ 반전, 친평화의 길을 걸어간 반전운동가, 평화주의자, 저술가, 채식주의자로 살았던 사람이다.

헬렌 니어링(스콧 니어링의 아내)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을 일을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접촉을 유지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자기 길을 걸어간다..."  86-87

우리에게 권고하는 삶의 방식은 

1.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2.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라.

3.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4. 집, 식사, 옷차림을 간소하게 하고 번잡스러움을 피하라.

5. 날마나 자연과 만나고 발 밑에 땅을 느껴라.

6. 농장일 또는 산책과 같이 힘든 일을 하면서 몸을 움직여라.

7. 근심을 떨치고, 하루하루씩 살아라.

8. 날마나 다른 사람과 무엇인가 나누라. 혼자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무엇인가를 주고 어떤 식으로든 누군가를 도와라.

9. 삶과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라. 할 수 있는 한 생활에서 유머를 찾아라.

10. 모든 것에 내재해 있는 하나의 생명을 관찰하라.

11. 모든 피조물에 애정을 가져라.  88-89


'눈물로 읽은 홀로코스트의 대서사시' - <이것이 인간인가> 프리모 레비 이현경옮김 돌베개 2007

수용소에서 수인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3개월이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프리모 레비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127

한 열차로 이송된 포로들은 분리작업을 거치는데, 유용한 노동력으로 분류된 100명 남짓의 사람은 살아남고, 다른 쪽으로 분류된 500여 명이 훨씬 넘은 사람들은 이틀 후까지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다.  128

나치의 수용소는 절멸의 수용소요, 살아 있는 사람이 가는 연옥이다. 수백만의 유대인을 그 연옥에 가두고 죽인 히틀러와 그의 수하들은 말들을 바꿈으로써 저들이 하는 짓의 비열함을 가린다. 학살은 최종 해결책으로, 강제 이송느 이동으로, 가스실 살해는 특별처리로, 말 바꾸기는 그 행위의 더러움과 최악을 가리려는 상징 조작이다. 가족, 집, 자신의 오래된 습관, 옷, 신발, 이름, 심지어는 머리카락까지 다 빼앗긴 채 누더기를 걸치고 유령처럼 서 있는 사람들. 가혹한 노동과 굶주림과 질변과 피로, 그리고 학대와 수모에 지틴 그들은 이제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존엄성이나 이성적인 판단력도 잃고 오로지 고통과 앙상한 생물학적 욕구만 남은 짐승이고 벌레들이다.  129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가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마지막 남은 것이기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지켜내야 한다. 그 능력이란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내일 살아남을 기약기 없기에 '내일 아침'이라는 말이 금기어가 된 이 연옥에서 청결엣 대한 ㅇㄱ구는 뜻없는 사치가 아닐까. 그는 '수용소는 우리를 동물로 격하시키는 거대한 장치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몸 씻기는 사치가 아니라 사람다움을 말살하려는 자들의 음모에 저항하는 행위다.  130

안타깝게도 프리모 레비는 1987년 4월 11일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프리모 레비는 죽기 한 해 전에 '우리는 어떤 근본적인 뜻밖의 사건을 집단적으로 목격했다. 뜻밖이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예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것이다... 과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131


'질서, 균형, 비율, 우아함이 한데 어우러진 건축은 교향악이다' - <행복의 건축> 알랭 드 보통 정영목옮김 이레 2007

보통의 책을 읽을 때 오는 기쁨과 보람들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독창성, 해석의 도발성과 신랄함, 문학적 수사의 뛰어남, 핵심을 찌르는 점잖은 유머들에서 비롯된다.  140

보톤은 집이 기억과 이상의 저장소라고 말한다. 삶이 피할 수 없는 고난이며 저주받은 시간이라면 집은 그 고난에 대한 따뜻한 보상이며 저주받은 시간들에 대한 위로다.  141


'작고 단순한 클립도 사색의 대상으로 부족함이 없다' - <사물들과 철학하기> 로제 폴 드루아 박선주옮김 동문선 2005

사람들은 사물들 속에서 태어나고 이것들 사이에서 살다가 죽는다. 사람은 평생을 사물 사용자로 산다. 사물에 대한 사유는 어느 순간 그것의 사용자에 대한 사유로 이동한다. 그 이동은 기발하면서도 유쾌하다. 산다는 것은 사물 사용자로 산다는 뜻이다. 사람은 사물을 만들고, 그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사물들의 소리없는 혼합속에서 우리는 숨쉬며 살아간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사물 사용자로서 그 의무를 다했다는 뜻이다.  199


'공항과 기차역에서 이방인을 만나다' - <다른곳에서 사유하자> 니콜 라피에르 이세진옮김 푸른숲 2007

낯익은 것들은 편안하다. 그 편함에 길들여지면 편한 것을 규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화는 편협함게 빠지기 십상이다. 편협함에 사로잡힌 자는 자기 지역의 관습과 체험을 우상으로 섬긴다. 그러면 차이에 대한 열린 마음을 잃고 폐쇄적인 지역주의자가 될 수 있다. 몽테뉴는 그런 사람을 이렇게 꼬집는다. "저마다 자기의 관습이 아닌 것을 야만이라 부른다. 우리는 자기가 사는 고장의 풍습이나 견해에서 얻은 사례나 관념만이 오로지 진리나 이성의 규볌인 것처럼 생각한다." 모험과 변화를 거부하는 정주(定住)는 폐쇄, 범주, 분류, 위계, 배열의 관념 속에 자기를 가둔다. 어차피 현대사회는 안주를 쉽게 허락하지 않느다. 세계는 점점 더 이곳저곳을 떠돌며 사는 운명으로 우리를 밀고 나간다. 이미 정주의 역학보다는 이동, 이주, 이산, 망명, 유배 들에서 비롯된 전환적 사고가 오늘의 삶을 만드는 더 중요한 조건이다.  206


'삶의 무게, 그것은 무거울까 가벼울까?' - <무거움과 가벼움에 관한 철학> 베르트랑 베르줄리 백선희옮김 개마고원 2008

예술의 가치를 판단할 때 그 척도의 하나가 깊이의 있음과 없음이다. 무엇이 깊이인지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모든 것이 깊이를 통해 정의되기에 그 무엇도 깊이를 정의내릴 수 없다. 따라서 깊이는 정의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며, 삶이 품은 무한의 내면에서 말을 한다."

무거움과 가벼움은 어느 한쪽만으로 완전하지 않다. 둘은 조화와 균형 속에서 빛난다. 무거움이 사물의 깊이와 정신의 진지함이라는 미덕으로 찬미된다면, 가벼움은 사물의 높이와 정신의 자유라는 미덕으로 찬미되어야 한다. 슬픔은 무겁고 웃음은 가볍다. 땅은 무겁고 하늘은 가볍다. 몸은 무겁고 영혼은 가볍다.  212

가벼움은 세상의 균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소다. 가벼움을 잃을 때 마음은 침울해지고 세상은 칙칙해진다.  213

마냥 가벼운 것이 아니고 무거움을 이상으로 품은 가벼움, 혹은 마냥 무거운 것이 아니고 가벼움을 이상으로 품은 무거움, 경쾌하게 진지해지기. 현실은 그 모순형용이 아타나는 지점이다.  214

잘 살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끝없이 성찰해야 한다. "자신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 안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바로 거기에 가벼움의 힘이 있다. 무거움과 단절할 줄 아는 힘이다. 가벼움이 가벼울 때 무거움도 깊어진다." 무거움의 반동은 가벼움을 , 가벼움의 반동은 무거움을 부른다. 존재의 위대함에 다가가는 길은 가벼움도 아니요 모거움도 아니고, 깊이와 높이 사이에 걸쳐져 있는, 무거운 가벼움, 혹은 가벼운 무거움의 길이다.  215


'정주민이 아니라 유목민으로 살아라!' - <천개의 고원>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김재인옮김 새물결 2001

세계는 거대한 사막이고 책은 오아시스다. 나는 오아시스를 찾아 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자다. "책에는 대상도 두체도 없다. 책은 갖가지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과 매우 다양한 날짜와 속도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이 어떤 주체의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이 질료의 구실과 이 질료의 관계들의 외부성을 무시하게 된다. 지질학적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선한 신을 꾸며낸다. 다른 모든 것들처럼 책에도 분절선, 분할선, 지층, 영토성 등이 있다. 하지만 책에는 도주선, 탈영토화운동, 지각변동 운동들도 있다. 이 선들을 좇는 흐름이 갖는 서로 다른 속도들 때문에, 책은 상대적으로 느려지고 엉겨 붙거나 아니면 반대로 가속되거나 단절된다. 이 모든 것들. 즉 선들과 측정 가능한 속도들이 하나의 배치물을 구성한다. 책은 그러한 배치물이며, 그렇기에 특정한 누군가의 것이 될 수 없다. 책은 하나의 다양체이다." 책은 동일성이 아니라 차이의 들판으로 나가게 만들며, 있음을 넘어서서 생성으로 나를 이끈다. 책은 혈통 모델이 아니라 이질성의 집합체인 반(反)계보로 나를 이끌어 나의 내면 형질을 바꾸고 새로운 세계와 접속하게 하고 끊임없이 재배치한다. "책은 세계의 탈영토화를 확실하게 해주지만 세계는 책을 재영토화하며, 다시 책은 스스로 세계 안에서 탈영토화된다." 나는 하나의 지층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책과 더불어 탈영토화하고, 세계에 의해 재영토화했다가, 다시 책과 더불어 탈영토화하는 존재다.  217


''앎의 거인'으로 추앙받는 다치바나 다카시' - <피가 되고 살이되는 500권,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다치바나 다카시 박성관옮김 청어람미디어 2008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왜 시간이 없을까?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많은 시간을 별 소용이 없는 걱정을 하는 데 써버린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늘 시간이 없다.

사람들은 제 삶의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낸다. 그러고는 항상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더 단순하게 살라. 삶을 단순화시키면 자기를 위해 쓸 수 있는 더 많은 시간들을 찾아낼 것이다.  272

책은 인류 문화사 안에서 최고의 발명품이다. 문화는 그 본질에서 놀이다. 책을 미친듯이 읽는 행위가 앎에 대한 욕구와 상관이 있다면, 책에 몰입하는 행위는 놀이의 즐거움 속에서 자아를 구속하는 현실의 모든 제약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해방과 자유에 대한 꿈과 상관이 있을 것이다.  274

그 역시 젊은 시절 미혹과 방황을 거듭하다가 책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275


'글쓰기는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나탈리 골드버그 권진욱옮김 한문화 2000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글쓰기를 "매번 지도 없이 떠나는 새로운 여행"이라고 한다. 팔다리가 튼튼한 사람이면 누구나 걸을 수 있듯이 몸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글을 쓸 수가 있다. "언어가 배꼽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을 느끼라. 머리를 위 속으로 끌어내리고 소화시키라. 당신 육체가 양분을 빨아들이도록 내버려두라. 인내심을 가지고 한결같은 균형을 유지하라. 생각이라는 단계 밑에 있는 무의식의 세계속으로 당신의 핏줄 속으로 글쓰기를 삼키라."  283

글쓰기는 자기를 표현하는 일이자 수행이다.

"만약 당신 몸이 진정으로 글쓰기에 실려 있다면, 거기에는 글을 쓰는 사람도 없고, 펜도 없고, 생각도 없다. 모든 것은 사라지고, 오직 글 쓰는 행위만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글이 글을 쓰도록 하라. 당신은 사라진다."

글쓰기를 방해하는 첫 번째 장벽은 망설임과 근거없는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로 재능이 없다거나 시간이 없다고 변명하지만 그 본질은 두려움이다. 그 장벽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결코 글을 쓸 수가 없다. 이 두려움은 얕은 앎과 이성에서 나온다. 

망설임과 두려움을 넘어서서 곧바로 글쓰기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게 용기다.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것은 지식이나 영감이 아니라 제 자신의 실체를 똑바로 볼 수 있는 용기다.

두번째 장벽은 게으름이다. 글을 쓰려면 해야 될 일들이 마구 떠올라 마음을 흐트러뜨린다. 진실은 내 앞에 널린 일들이란 진짜 해야 될 일들이 아니고, 글쓰기에서 도망가려는 마음이 만든 핑곗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골드버그는 "바보가 되어 시작하라. 고통에 울부짖는 짐승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시작하라." 

글쓰기의 또 다른 장벽은 내면의 검열관이다. 이 검열관은 끊임없이 글쓰기에 끼어들어 온갖 잔소리를 하고 간섭을 한다. 이 검열관은 결국 글쓰기의 의욕을 꺾고 글쓰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그 장벽을 넘어서는 방법은 내면의 검열관이 가진 눈과 입을 막아버리는 일이다. 이 내면의 검열관이 간섭하게 놔두지 마라. 그를 내면에서 쫓아내버려라. 너무 잘 쓰려고 하지도 마라. 뭔가를 쓰려고 하면 마음에 길이 열린다. 두려움을 버리고 그 길을 걸어가면 된다. 멈추지 말아야 한다.

"뼛속까지 내려가 자기 마음의 본질적인 외침을 적어내라!"  285-286


'햄릿을 읽지 않고도 그 잡품을 말할 수 있는가' -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김병욱옮김 여름언덕 2008

문명사회에서 책을 읽지 않는 일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며, 타인에게 어떤 책들을 읽지 않았다는 고백은 마치 고해성사에 견줄 만한 무의식적 죄책감을 수반한다.  287

이 책은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 말하는 사술을 가르치거나 비독서를 권장하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바잘적 책읽기를 장려하고, 독서와 비독서 사이의 불확실한 경계, 책을 읽는다는 것의 진정한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혀준다.

한 권 한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책에 관한 총체적 시각을 갖고, 책과 책 사이의 소통과 연결선들을 하는 것이다. 교양은 책을 읽어내는 능력과 책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에서 길러진다.  288


'먼 나라, 아름다운 도시와 사랑에 빠지다' - <도시의 기억> 고종석 개마고원 2008

나라 밖 도시들을 스치면서 그 영혼과 눈이 맞아 나눈 연애의 기억들, 그 소통과 교감의 기억들, 종종 자유를 넘어 방종으로 치닫는 향연들 속에서 이루어진 여러 겹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은 에세이다.  349

거기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그 시간의 두께는 아무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단 한순간, 하루만에도 싹트고 열매를 맺는다.  351


'우리 삶은 가보지 않은 길이 이끌고 간다' - <열대 오지에서 보낸 한 달 안식월> 김수영글 박병혁사진 황소자리 2008

이 책은 필리핀 오지에서 보낸 한 달의 기록이다.

이 책은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이며, '나'를 묶고 있는 것들에서 자유를 찾으려는 분투기,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하고 회복으로 나아가는 자기고백서다.  360



- 나의 독서편력기

책과 친해지고,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나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먼저 책에 몰입한다. 몸과 마음을 이완하고 책에 흠뻑 빠져든다. 몰입을 통해서 마침내 책과 하나가 되면 마치 무릉도원에 든 듯 행복해진다.

둘째, 책읽는 즐거움 그 자체를 소중하게 여긴다. 책읽기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지속하기 어렵다. 

셋째, 책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읽어야 할 책들을 꼼꼼하게 고르고 그것들을 사들인다. 책들을 고르는 과정에서 이미 책읽기는 시작한다. 

넷째, 읽은 책들을 다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읽은 것들을 다 기억할 수도 없을뿐더러 기억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기억은 상상력을 한정하지만, 망각은 무한상상력의 텃밭을 일구는 쟁기다. 그런 까닭에 망각은 풍요화로 나아가는 길이다.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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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첵, 세상을 탐하다>를 읽었었다. 그러면서 이 책을 다시금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었는데, 이제서야 다시금 펴게 되었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도서로 두 책의 스타일은 틀리다. '탐하다'는 책벌레들로 선정된 사람들이 간략히 자신의 생각을 적은 책이고, 이 책 '훔치다'는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를 만나서 그들이 생각하는 책과 도움을 주었던 책들 그리고 근황들에 대해 적은 글이다.
그러고 보면 책 제목에서 그 성향이 확연히 구분된다.
책을 탐하는것은 본인이 스스로 하는 과정이고, 훔치는 것은 상대의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려는 시도일 것이다.

나는 왜 이 책 두권을 연결하여 보려 했는지 생각해 본다. 
나는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차지한 그들에게서 쉽게 영향을 받고자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책과 그들에게 영향을 준 책들을 통해 내가 읽어 나가야 할 책의 길들을 점검하고 수정 보완하려 했으리라 생각을 해본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
평상시 나의 생각은 틀렸었다.
책은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순간 분야의 확장이 이루어지고 그것이 다시 확장으로 이루어지면서 통합적인 사고의 과정들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다면 평상시의 생각과 책을 읽으려한 생각은 위배되는 생각이다.
어쩌면 나는 그 인고의 과정에서 조금은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지름길이 있을까.. 
사고의 깊이는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어느 정도로 하느냐에 따라 정해질 것인데도 불구하고,, 지름길을 찾는 나 자신을 보면 이해가 되면서도 한심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느 책이든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질높은 책은 더 많은 도움을 준다. 아직은 질높은 책만을 골라내는 능력이 없다. 
그렇기에 이들에게서 질높은 책들을 추천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더 넓어 지기는 하나....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바로잡아 본다.
질 높은 책을 골라 내는 능력역시도 자신의 경험치가 쌓여야 나오게 된다고, 그러니 훔치려 말고 도움을 약간만 받고 알아 나가자고,,,
결국은 타협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지만 ... 이미 읽어버린것을 어쩌랴.. 
새롭게 보고 싶은 책들도 생기고.. 인고의 과정을 계속해 나가리라.


책 머리에 - 바위도 독서를 한다.
독서는 궁극 너(대상 세계)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독도법'인 셈이다.
이 책은 교보문고에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펴내는 월간 <사람과 책>에 2004년 7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연재한 <나의 서가 이야기>를 모은 인터뷰 글들이다.
나는 이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독서는 골방에서 하지만 얼마나 강렬하게 세상과 소통하는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광대한 독서로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 영문학자 장영희
아무리 어려운 전공 분야일지라도 비전공자도 알아들을 수 있게 써야 한다는 것이죠.  19
'모비 딕'은 우리 뒤에 숨어서 야비하게 우리의 영혼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알지 못할 힘을 상징해요.  21
독서란 대리 경험이에요. 작중 인물들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공감하게 되죠. 저에게 독서는 세상과 연결하는 통로였어요. 저의 인간성을 구축해주었죠.... 독서 자체가 제 삶의 기본이 되었어요.  22

책에서 길어 올린 행복을 배달하는 사람 아침편지 문화재단 이사장 고도원
아버님은 책이 손에거 안 떨어지는 분이었습니다. 어머니와 부부싸움을 하면서까지 책을 사서 모으기도 하셨지요. 중학교 때 아버님께 매를 맞아가면서 읽은 책들이 제 독서의 시작이었습니다.
독서는 밥과 똑같아요. 어제 먹은 좋은 밥 한 그릇이 평생을 보장못합니다. 다시 또 맛있는 밥을 먹어야 합니다.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때가 되면 읽어줘야 합니다. 책은 사람을 촉촉하게 해줍니다. 촉촉해야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넉넉하고 맑아질 수 있습니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원한다면 끼니끼니 밥 먹듯 책을 읽어야 합니다.
독서를 통하여 물줄기를 발견하고, 샘을 파고, 샘물을 길어 올리는 즐거움.
그가 궁극 바라는 바 또한 독자들이 저마다의 울 안에 자신만의 우물을 갖게 되는 것일 터이다.  35

시를 짓듯 카메라로 세상을 담다 사진가 김홍희
용서하면 삼류로 떨어지죠. 추호도 용서가 안 되는 자기 기준이 있어야 해요. 그 기준이 어디서 나오냐면 그 기준을 바로 '나'예요.
'나'의 기준은 지식의 힘이죠. 지식이란 이미 증명된, 누구나 용인하는 동족 코드죠. 그것을 바탕으로 사진을 골라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남이 이해할 수 없는 자기 위안에 그치고 말죠. 그러나 동족 코드만 있으면 찬박해지고 그 너머 나만의 무엇이 있어야 합니다.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말로 표상해낼 수 있는 도는 항구불변한 본연의 도가 아니고, 이름지어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참다운 실재의 이름이 아니다. <노자>)의 무언가 있어야 하죠.  44

책을 벗 삼아 세상을 노래하는 가수 김창완
삶에 가장 영향을 준 책을 세권만 꼽으면..
먼저 G. 레이코프와 M. 존슨의 공저 <삶으로서의 은유> - 나는 늘 사물의 본질에 다가갈수록 모호해지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었어요.그 책을 통해서 우리는 본질을 은유적으로 파악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깨우침은 제가 많은 예술잘품들을 만날 수 있게 하는 통로가 되었지요.
두 번째로는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의 따뜻했던 날들> - 이 책은 인디언들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들인데요, 비단 인디언들뿐만 아니라 스러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을 갖게 만들어주었죠.
세 번째로는 생땍쥐베리의 <어린왕자> - 진짜 행복하게 해주는 책이에요.

책이 다리 놓은 미술과의 만남 화가 김점선
열심히 책을 읽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내게 아주 훌륭한 스승이 있었다면 책을 안 읽어도 되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내겐 그런 스승이 없으니 책을 읽어야 했어요. 책은 가장 훌륭한 인류애의 발현입니다. 보도 듣도 못한 사람에게 자기 지식의 정수를 전하는 거잖아요. 독서는 혼자서는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을 깨어줍니다.  71

세계를 아우르는 한국의 대표 지성 문학평론가 이어령
언론인이자 작가인 오효진은 '우리는 5,000년 역사상 이렇게 괴물처럼 괴력을 가진 창조적 인물을 가져본 적이없다'고 했는가 하면, 작가 이병주는 '이런 인물이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나라엔 운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극소수의 인물 가운데 그가 끼인다.'고 했다.  78
요즘 유행하는 독서 지도에 대해서 한마디 하자면, 나는 어린이들에게 다이제스트본을 읽히는 것은 권하고 싶지 않아요. 모짜르트는 너댓 살 때 본격적인 피아노 교향곡을 치고 작곡도 하고 그랬지요. 천재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고급 정보도 소화할 수 있어요. 내용이려우면 상상하게 됩니다. 나는 내가 지닌 독창성과 상상력의 원천은 어려운 책들을 읽으면서 모르는 부분을 끊임없이 메우려는 것에서 생겨났다고 봅니다. 또 억지로 세운 독서 계획보다는 즐거움 속에서 가리지 않고 책을 읽도록 해야 합니다. 책은 악서와 양서가 없어요. 읽는 사람이 양인이 있고 악인이 있을 뿐이지.
독서란 한마디로 산소입니다. 독서를 안 하는 사람은 하느님이 주신 풍부한 산소를 마시지 않고 숨을 안 쉬겠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경제인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그 삶의 불행이 아니라 그 사회의 불행입니다.  85

책 향기 가득한 사유와 묵상의 공간, 수졸재 시인 장석주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작은 도서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책들은 서가에서 흘러넘쳐 탁자 위로, 바닥으로 덤블링을 하다가 인기척을 느끼자 '그대로 멈춰라'가 된 듯하다.   92
그의 하루 일과는 매일 책 읽고, 산책하고, 글 쓰고, 이것이 제 삶의 패턴입니다. 저녁 아홉 시나 열 시쯤 자고 새벽 네시에 일어나죠, 이때부터 점심때까지는 거의 매일 글을 씁니다. 오후에는 명상을 하고 다시 책을 읽고요. 보통 하루 한 권 정도 읽습니다.
하루 한 권이면 일 년에 365권이다. 놀라운 독서량이다. 이 정도면 국내 최정상급의 독서가가 아닐까 싶다고 말하자 그도 '그럴 것'이라고 답한다.  95
독서의 즐거움은 장대높이뛰기 선수가 한 경지를 넘은 느낌, 눈이 번쩍뜨이는 느낌이 듭니다.  99

독서 전도사로 나선 바람의 딸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한비야
육체가 매일매일 밥을 먹듯이 책은 정신의 에너지를 제공해 줍니다. 자기와 비슷한 생각으로부터는 격려를, 다른 생각으로부터는 도전을 받지요.  106

만화를 창작하는 진지한 놀이터 만화가 홍승우
잠이 올 때 불을 끄기 싫으면 책으로 얼굴을 덮기도 하지요. 또 책 모서리로 이도 쑤시고 발톱 밑을 긁을 때 쓰기도 해요. 저는 좋아하는 책이라면 잘 모셔두는 것보다 너덜너덜해지도록 친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가 제 책을 화장실에 두고 본다고 이야기하면 제일 기분이 좋아요. 그만큼 편하게 생각하는 거잖아요.  119

책에서 피어나는 건축적 상상력 건축인 김진애
책을 읽으면 점점 의문이 선명해져요. 물론 해답을 찾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여러 분야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갖고 있던 이런 과점을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점들을 발견하게 되죠.
의문이 선명해지면 고정불변의 답이 한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관점의 움직이는 답들을 발견해낼 수 있을 것이다.  135

독서 영재 푸름이 아빠의 책사랑 자녀사랑 푸름이닷컴 대표 최희수
푸름이 독서 발달 4단계
1단계(0세~12개월)는 책과 친숙해지는 시기입니다. 입으로 빨고, 물고, 찢고, 집어던지면서 책과 친해져요.
2단계(12개월~18개월)는 그림책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시기입니다. 사물 인지를 많이 시켜주는 게 중요해요. 
3단계(18개월~36개월)는 동화책을 읽어주고 한글을 깨우치게 하는 시기입니다.
4단계(36개월~50개월)는 독립적으로 책을 읽어야 할 시기입니다.  144
어린 시절의 6개월은 성인의 10년에 맞먹습니다. 한글을 일찍 배워서 독립하면 엄청나게 지식 습득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또 한글 독립을 하면 독서 환경만 조성해주고 부모는 부모대로 자기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147
아이들은 태어나서 6개월까지 안대로 눈을 가리면 영원히 시력을 잃습니다. 언어도 36개월까지만 안 가르치면 습득이 불가능합니다.
지성은 책으로 키우고 감성은 칭찬과 놀이와 스킨십으로 키웁니다.(배려 깊은 사랑)
충분한 사랑과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자란 아이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받은 사랑을 부모와 사회에 환원하게 된단다. 아이가 누군가를 괴롭히거나 따돌림당하거나 하는 것은 가정에서 배려 깊은 사랑을 받지 못했지 때문이라고.  148

일본 문학을 우리말로 풀어내는 즐거운 지성 번역문학가 김난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다는 것이 굉장히 언어의 폭을 좁히고 있어요. 무조건 '어려운 말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어요. 몰라도연스럽게 넘어가거나 문맥을 이해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161
어렵고 낯선 단어는 그것과의 접촉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지 회피하는 게 능사가 아닌 것이다. '어린이의 눈높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혹 '어른의 선입견'은 아닌지 숙고할 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163

소박한 서가에서 광활한 문화를 꿈꾸는 돈키호테 서울문화재단 대표 유인촌
가장 영향을 미친 책을 한 권 꼽으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이건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굉장히 음미할 만한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172
꼭 어려운 책이 아니더라도 자기가 읽고 있는 바로 그 책 속에 보물이 있습니다. 책읽기는 보물을 발견해내는 즐거움입니다.  175

책을 통한 자기설득 파워 앵커 백지연
초등학교 때는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50여 권의 위인전집을 거의 다 읽었어요.
처음 독서의 영향인지 그이는 소설을 잘 읽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소설보다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읽는데 좋단다.  183

근육과 땀의 문학 작가 유용주
저는 촌놈으로 자란 게 최고로 풍요로움 문학적 자산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산골 중 하나인 전북 장수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년을 마쳤습니다. 곰과 오소리가 어슬렁거리고, 꿩이 푸드득 나는 곳에서, 뱀을 잡아 어깨에 두르며, 눈 떠서 눈 감고 잘 때까지 헤집고 다녔습니다. 내 문학은 그 열두 살 동안 생성되었습니다. 그때 배운 것들이 통째로 나오고평생을 갑니다. 그리고 이 돈암시장에서 또 7년을 일했지요. 그것이 내 문학의 뿌리입니다.  198

일상의 축제를 꿈꾸며 화가 황주리
저는 삶이 대부분의 일상과 짧은 축제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돌, 백일, 생일, 결혼식 등 각종 기념일들이 짧은 축제라면 나머지 시간들을 일상들이지요. 짧은 축제를 즐기는 것은 누구나 가능하지만, 길고 지루한 일상을 들어올리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소하고 익숙해서 놓쳐버리기 쉬운 일상의 순간들을 포착해서 그림으로 형상화하고 있어요.  208

독서는 내 영화의 자양 영화감독 박찬욱
독서가 영화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요?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으로는 알렉상드르 뒤마의 <몽테크리스토 백작>이 있지요. 
그 책에는 복수 이야기가 지닌 매력이 다 들어 있지요. 주인공이 감옥헤서 만난 신부에게서 모든 지식을 전수받고, 그의 시신과 바꿔치기가 되어서 탈옥을 하죠. 그 책에서 느낀 배신과 감금과 복수의 감동은 오래도록 제 가슴속에 남아 있다가 제 작품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어요.
나는 그가 만든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등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223-224

책을 통해 웃음과 사회의 봉우리에 오르다 개그맨 김미화
그는 '책과 거리가 멀었던 전력'을 숨기지 않는다. 그 솔직함과 당당함이 바로 김미화다. '산과 들을 뛰어다녔다'는 말에서 은근한 동류의 의식마저 든다. 산골 촌놈인 나도 책보다 산과 들의 문자를 먼저 배웠다. 자연은 수천만 권의 장서를 갖춘 서가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책갈피며, 햇살 번뜩이는 계곡의 물비늘 문장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의 서적이야 가장 나중에 읽어도 좋을 것들인지도 모른다. 산에 사는 새들조차 실로 엄청난 독서가들이다.
정작 독서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개그맨이 되고 나서였어요. 저는 그리도 꿈꾸던 내가 되어서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사람들은 코미디를 저질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좀더 깊이 있는 연기를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233
영상은 흘러가지만 글은 깊이 새겨볼 수 있지요. 문자는 더뎌도 '느림의 미학'을 깨닫게 해주죠.  235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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