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어머니가 나의 어린 딸이 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어머니가 될 수는 없다.



작가의 말


나는 세르지에 있는 우리 집으로 어머니를 모셔 가기로 결심했다.  9


나는 어머니가 아직 우리 집에 머물렀던 바로 그 기간 동안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어머니의 여러 가지 행동들과 어머니가 한 말들을, 날짜도 쓰지 않은 채 종이 조각들 위에 적어두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처럼 피폐되어가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화가 나서 어머니에게 "제발 미친 짓 좀 그만 하세요!"라며 고함지르는 꿈을 꾸었다. 그후로 나는 퐁투아즈 병원에서 어머니를 문병하고 돌아올 때면 점점 더 절박하게 느껴지는 어머니의 말들과 모습을 어김없이 적어야만 했다.  10-11


나는 추호도 어머니 곁에 있었던 그 순간들을 수정해서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  12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이다.  13



1984년


1월


어머니는 더러워진 팬티를 베개 밑에 감추어둔다. 오늘밤 나는 예전에 어머니가 감추어두곤 했던 피투성이의 팬티들을 생각해보았다. 어머니는 세탁하는 날까지 창고 속에 넣어두는 더러운 속옷 더미 속에 그 팬티들을 깊숙이 파묻어두곤 했다. 그때 내 나이는 대력 일곱 살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황홀에 겨워 피 묻은 팬티들을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의 팬티는 똥투성이인 것이다.  18-19


나는 어머니가 전에 쓰기 시작했던 편지 한 장을 발견했다. '사랑하는 폴레트,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았어'라고 적혀 있었다. 어머니는 이젠 글마저도 쓸 수 없게 되었다. 이 편지의 글들은 마치 전혀 다른 여자가 써놓은 것 같았다. 어머니가 이 편지를 쓴 것은 바로 한 달 전의 일이었다.  19


토요일이다. 어머니는 커피를 토해내고는 기진맥진하여 꼼짝 않고 누워 있다. 한층 더 작아진 눈 주위가 붉게 가라 앉아 있었다. 옷을 갈아입히려고 어머니의 옷을 벗겨보니 아직까지도 살결이 희고 부드러웠다. 옷을 갈아입힌 후 나는 울었다. 예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지금 다름아닌 내 몸을 보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두렵다. 어머니가 세상에 없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었으면 좋겠다.  20-21


2월 25일 월요일

우리가 응급실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들것에 실려 누워 있었다. 그 사이 어머니는 오줌을 누었다...우리가 진찰실로 들어가 보니 어머니는 진찰대 위에 몸을 길게 쭉 펴고 누워 계셨다. 인턴이 복부까지 어머니의 잠옷을 걷어올리자 넓적다니, 음모가 없는 맨송맨송한 음부, 그리고 몇 군데 파열된 피부의 줄무늬가 눈에 띄었다. 대번에 내가 그처럼 적나라하게 전시되어 누워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열다섯 살 때 죽음 암고양이가 생각났다. 그 고양이는 죽기 전에 내 베개 위에다 소변을 보았다. 그리고 20년전 낵가 유산했을 때 쏟았던 피와 분비물들도 생각났다.  21


3월 28일 화요일

쭈글쭈글 흉하게 변해버린 어머니의 두 손. 관절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집게 손가락은 새의 발톱과 흡사하다. 어머니는 손가락을 깍지낀 채 비비적거렸다. 난 어머니의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24


4월 14일 토요일

어머니는 내가 가져온 딸기 파이를 먹고 있다. 크림 한가운데 들어 있는 과일을 파먹으면서 "여기서는 나를 소홀히 대접해. 검둥이처럼 일만 시키고 먹을 것도 잘 주질 않아" 하고 불평했다. 가난한 사람이 될까봐 두려웠던 어머니의 강박관념을 나는 잊고 있었다.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독일 포로 수용소 부헨발트의 유령처럼 바싹 말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어떤 여자가 무시무시하게 눈을 부릅뜬 채 아주 똑바른 자세로 우리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잠옷을 들추자 기저귀 찬 팬티가 보였는데 음부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이와 똑같은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방영된다면 소름끼치도록 혐오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비일비재한 이곳에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이건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일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여자인 것이다.  26


4월 부활절 일요일

어머니의 옆사람은 한 손을 팬티 속에 집어넣은 채 자고 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선 참혹한 모습이었다.  27


4월 29일 일요일

어머니는 일시적으로 제장신이 들자, "난 죽을 때까지 이곳에 있을 테다"라고 말한 후 "난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했다. 그런데 그 때문에 너는 한층 더 불행했을 거다"라고 말했다.  28


5월 13일 일요일

이곳 우스(발두아즈 내에 있는 마을로서, 이곳에 사설 양로원이 있다)는 퐁투아즈보다 환경 조건이 여러모로 열악하다. 간병인이 내게 "당신 어머니가 오줌을 누었어요. 방안 여기 저기에 오줌을 누고 다니니 어쩜 좋아요, 그래"라며 나무라듯 말한다.

어머니를 때려주고 싶은 사디즘적 욕구가 솟구쳐 올라와 나 자신이 소름끼치도록 무서웠다...

오늘 내 안에서 비집고 올라왔던 사디즘적인 욕구는 돌이켜보면 내 어린 시절, 다른 소녀들에게 느꼈던 가학적 욕구와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어머니가 자꾸 나를 공포에 떨게 하므로 보상심리에서 내가 가학적 욕구를 갖는 것인지도 모른다.  30


6월 15일 금요일

내가 도착했을 때 어머니는 찌푸린 표정으로 승강이 옆에 앉아 있었는데 아주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복도에서 어머니는 허리를 반쯤 구부린 채 당신의 병실 쪽을 향해 걸어갔다. 어머니는 마카롱 과자를 주자 먹지는 않고 부스러뜨리기만 했다. 내게 이런 식으로 사랑을 요구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니 울고만 싶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는 사랑이란 이 이상 더는 충족시켜 드릴 수 없는 한계에 달한 사랑이었다.  35


6월 23일 토요일

1층 로비에는 파자마를 입은 한 노인이 항상 진을 치고 있었는데 전화를 걸려고 무척 애를 썼다. 어느 날 이 노인이 종이 위에 적힌 전화번호를 내게 보여주길래 그대로 다이얼을 돌려주었지만 틀린 번호였다. 하루 종이 ㄹ이 노인은 아마도 어떤 단체 혹은 자식들 중의 하나인 듯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싶어했지만 그것은 매일 아침 반복되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극도로 쇠약해진 어머니는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는다. 거의 타인과 격리된 상태이다. 어머니는 이젠 개인 소지품을 몽땅 잃어버리고도 찾으려 하지도 않는다. 모두 포기해버린 것이다. 어머니가 우리집에 있을 때 화장품 도구 세트를 찾아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애쓰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사물들에 집착함으로써 세상에 매달려 있고자 고군분투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제 아무것도 가진게 없다. 손목시계도 화장수마저도 없어지고 지금 갖고 있는 것이라곤 먹을 것 밖에 없다.  36-37


8월 24일 금요일

난 지금, 나도 모르게 치솟아 오르는 감정에 편승한 채 글을 쓰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하고 있다.  42


9월 29일 토요일

내가 식당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그 틈에 끼여 있던 어머니만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항상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어머니가 예측할 수도 없는 일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어머니가 드실 비스킷이 남아 있는지 확인하려고 머리맡 탁자의 서랍을 열었다. 나는 서랍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당연히 과자라고 생각하고는 집어들었다. 그것은 똥덩어리였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당황한 나머지 얼른 서랍을 도로 닫아버렸다. 곧이어 떠오른 생각은, 만약 내가 서랍 속에 똥덩어리를 그냥 내버려둔다면 사람들이 이를 발견할 테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가 얼마나 쇠퇴해졌는지를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주는 결과가 될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를 은근히 바랬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종이로 싸서 화장실로 가져갔다.  48


12월 크리스마스

어머니의 손톱을 깎아드렸다. 아프지 않도록 온갖 정성을 들여 조심스럽게 깎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지레 겁을 먹고 끙끙 신음소리를 낸다.  58




1985년 


1월 19일 토요일

어머니는 모든 기력을 총동원해서 게걸스럽고 억척스럽게 먹는 행동에 몰두한다.  61


6월 9일 일요일

어머니와 같은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사람은 자기의 벽장 속에 있는 물건들을 모조리 끄집어내어 반시간 동안이나 정돈한 다음 다시 전부 제자리에 갖다 넣는다. 도대체 이런 행동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집에서 치매 초기 증세를 보이실 무렵 어머니 또한 왜 이 노인처럼 행동하셨던 것일까? 그들의 정신 속에 부재하는 질서를 외부에서라도 바로 잡으려는 생각에서 그러는 것일까?...

어머니는 내 친구가 날 만나러 올 때면 "아니! 누가 찾아 왔다"고 하시며 기뻐하곤 했다. 어머니는 방문을 아주 중요시했다. 그것은 사랑의 증거이며 타인이 마음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징표라고 생각했다.  77


9월 19일 목요일

어머니는 받기보다는 주는 것을 좋아했다. 자신의 품위를 높이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인정받기 위해서 그랬던 것일까? 나 역시 어릴 적에는 사랑받고 인기를 누리고 싶어서 그림책과 사탕들을 나누어주길 좋아했었다. 그후론 준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을 쓴다는 것, 게다가 내가 지금 무언가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주는 방법이 아닐까? 

어린 시절에 보앗던 광경이 떠오른다. 침대에서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누워 계신 아버지 쪽으로 몸을 돌리고 계셨다. 아버지는 웃음을 터뜨리며 "예쁘지도 않네"라고 했다. 어머니의 음부, 즉 세계의 근원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90-91


10월 18일 금요일

어머니가 그랬듯이 시자에서 구걸하는 장님에게 적선했다. 

"인생을 살면서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라는 어머니의 말에 비추어 본다면 적선을 하는 어머니의 행위는 그 동냥자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의무를 단념시키는 일을 한 결과가 된다. 자신의 인생에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이 말은 청춘 시절부터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터라 그때마다 얼마나 거부감을 일으켰는지 모른다.

어머니에 대한 환상적인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가게에서 일할 때 입었던 작업복과 평상시에 입던 새하얀 블라우스 자락이 내 뒤에서 끊임없이 나부낀다.  94


10월 21일 월요일

어머니는 항상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던지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곤 했다. "누구한테든지 말을 적게 해라"하고 말하곤 했다. 

나는 어머니의 사고방식과 사랑했던 방식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어머니의 관점에 따르면 섹스란 겉으로 보기에 절대적인 악이었다. 실제로도 그런 것일까?  95


11월 3일 일요일

어머니는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 양손이 생각대로 움직여주질 않아 한참 헤맨 후에야 두 손을 맞잡을 수가 있었다. 오른손이 마치 낯선 물체를 잡고 있는 양 왼손을 꽉 쥐고 있다. 과자를 먹으려고 시도할 때마다 입에 정확히 갖다 대지 못하고 빗나간다. 어머니의 손에 쥐어준 과자도 다시 떨어뜨리기 때문에 입 안에 넣어드려야만 했다. 어머니는 너무도 쇠약해졌고 그럴수록 동물적인 본능이 강하게 드러난다. 난 모든 것이 두렵다. 희미한 어머니의 눈빛, 어머니는 갓난 아이처럼 혀와 입술을 쪽쪽 빨아들였다 내밀었다 하다. 난 어머니의 머리를 빗기기 시작했고 머리를 묶을 고무줄이 없었기 때문에 머리 손질을 멈추었다. 바로 그때 어머니는 "난 네가 머리를 빗겨줄 때가 참 좋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말과 동시에 어머니의 모든 동물적 본능의 모습은 사라져버렸다. 말끔히 머리를 빗고 씻은 어머니는 다시 인간다운 모습을 회복한 것이다. 어머니의 머리를 빗겨주고 단장시켜주는 이 기쁨이여! 내가 병실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와 한 병실에서 생활하고 있는 옆사람이 어머니의 목과 다리를 쓰다듬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살아 있다는 건 어루만지는 손길을 받는다는 것, 즉 접촉을 한다는 것이다.  96-97




1986년


4월 7일 월요일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럽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울었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거기 제자리에 있건만 생각은 멈추어버렸다. 그렇다. 정지해버린 것이다. 이렇게까지 괴로울 줄은 미처 몰랐다. 어머니를 다시 보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 순간이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고 예측조차도 못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느니 차라리 미쳐서라도 살아 있기를 바랬다.

머리가 아프고 토할 것만 같다. 나는 어머니와 화해하려고 이 모든 시간을 보냈지만 충분히 화해하지 못했다. 어제가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114-115


4월 8일 화요일

일거수 일투족을 옮길 때마다 어머니와 관련되 추억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난 이렇게 나의 고통을 이야기하고 기록하여 진술함으로써 내부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의 뿌리를 끌어내어 고갈시켜버리고, 지쳐버린 고통이 더이상 작용하지 못하게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116


4월 10일 목요일

지하실로 내려가 보았다. 동전 지갑이 들어 있는 어머니의 여행용 가방과 흰색 여름용 핸드백, 머플러 몇 장이 있었다. 나는 여행용 가방을 벌려놓은 채 이러한 몇 가지 물건들을 앞에 두고서 멍하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내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 나 자신도 몰랐다.

내가 어머니에게 썼던 편지들도 거기에 있었지만 난 그것을 펼쳐보고 싶지 않았다. 차마 읽어볼 수가 없었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단지 두세 번 정도 이런 상태를 경험했다. 실연의 슬픔을 겪었을 때와 유산을 한 후에 나는 지금처럼 제정신이 아니었다.  118-119


4월 12일 토요일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의 어떤 여자는 10개월 된 어린딸아이를 잃어버리고서도 오후에는 미장원에 갔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여자의 심정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 기대를 망각해버리려는 그 심정을.  124


4월 20일 일요일

50세 때 찍은 어머니의 사진들을 들여다보았다. 생기가 넘쳐 흐르는 얼굴과 적갈색의 금발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어머니는 꼭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흑백 사진이었지만 햇빛이 내리쬐고 있어서 마치 컬러 사진을 보고 있는 것같았다.

오후 서너 시쯤 되면 2주일 전 어머니가 살아 있었던 그 마지막 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128


4월 28일 월요일

오늘 아침, 계산서에 적혀진 막힌 물이라는 말을 읽으면서 내가 예닐곱 살 적에 이 말을 꽉 막힌 놈이라고 부르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부르던 어머니의 별명이었다. 눈물이 흘러 내린다. 유수 같은 세월의 흐름 때문이다.  128-129




옮긴이의 말


이 작품에서 에르노는 자신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 소재를 깊이 있게 응축하는 데 단문과 극도의 생략법을 사용하고 있다...명사 혹은 부사로 압축되어 끝나는 단호한 문장들은 어머니의 죽음을 인식해가는 작가의 절박한 심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또, 작가의 침묵적 고백, 이것은 인간의 삶 속에 필연적으로 내재된 실존적 고독감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31-132


글쓰기를 통해 현실적 삶의 고통에 밀착되어 떠나지 않으려는 작가의 의지는 독자로 하여금 소중하고 경건한 고통의 의미를 깨닫게 해주는 동시에 삶에 대해 끝없는 희망을 가질 의무를 부여해 준다.  133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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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어했다. 나는 죽고, 더이상 심판할 사람이 없기라도 할 것처럼 글쓰기, 진실이란 죽음과 연관되어서만 생겨난다고 믿는 것이 어쩌면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9



육 년간의 관계를 끝내고 몇 달 전 W를 떠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열여덟 해 동안의 결혼생활 뒤 다시 얻게 된 자유를 그가 처음부터 애타게 원했던 동거생활과 맞바꿀 수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싫증이 나서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후로도 계속 전화 연락을 주고 받았고, 가끔씩 만나기도 했다. 어느 저녁 그는 내게 전화를 걸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나와서 한 여자와 함께 살 거라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의 휴대전화로만 해야 하고, 만나는 것도 저녁이나 주말에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듯한 감각 속에서도 나는 새로운 무언가가 솟아올랐음을 깨달았다. 그순간부터 이 다른 여자의 존재가 나를 온통 사로잡았다. 그녀를 통해서가 아니면 더이상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11-12


어떻게 해서든 그 여자의 성과 이름, 나이, 직업을 알아내야만 했다. 개인을 정의하기 위하여 사회가 파악하는 이런 요소들은,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알고자 할 경우 별 흥미로운 요소가 아니라고 흔히들 경솔하게 주장하는 것과는 반대로, 오히려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었다.  13


내가 만나는 여성들의 육체가 그 여자의 육체로 탈바꿈하는 현상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내 눈에는 '가는 곳마다 그 여자가 보였다.'  16


질투를 할 때 가장 이상야릇한 것은, 한 도시가, 온 세상이 결코 마주쳤을 일이 없는 하나의 존재로 가득 차게 된다는 것이다.  17


나는 그와의 헤어짐으로 인해 고통받기 시작했다.

그 여자에게 사로잡힌 상태가 아닐 때면, 나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의미를 띠게 된, 우리가 함께 보낸 과거를 악착같이 상기시키는 외부세계의 공격 표적이 되었다.  19


난 무엇보다도 우리 관꼐가 막 시작되던 무렵을, 내 일기에 적혀 있듯이 그의 페니스가 벌이는 '굉장한' 기교를 추억하곤 했다. 결국 내가 내 자기에 세워놓는 사람은 다른 여자가 아니라, 다시는 그렇게 될 수 없을 나, 사랑에 빠져서 그의 사랑을 확신하고 있으며 아직 우리 사이의 그 모든 일이 일어나기 직전의 나였다.

나는 그를 다시 소유하고 싶었다.  22


시나리오가 어떻든 간에 여주인공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여배우의 육체를 빌려서 끔찍스럽게 배가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고통이었다. 어찌나 고통스러운지, 영화가 끝나면 안심이 될 정도였다. 어느날 저녁에는 일본 흑백 영화를 보다가, 내 고뇌의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고 느꼈다. 전후를 배경으로 한 그 영화에서는 끝도 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고통이 펼쳐지는 것을 봐도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육 개월 전이었다면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싿. 사실, 열정의 폐해를 겪어보지 못한 살마들만이 카타르시스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23-24


우리는 변함없이 카페나 내 집에서 만나곤 했다.  25


만약 사회가 내 안에 잠재해 있는 충동에 재갈을 물리지 않았다면 내가 저지를 수도 있었을 행위들, 예를 들면 단순히 인터넷에서 그 여자의 이름을 찾아보는 대신 "갈보 같은 년! 더러운 년! 잡년!"이라고 울부짖으며 권총으로 그녀를 마구 쏘아대는 등의 행위들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게다가 권총만 들지 않았다 뿐이지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종종 그런 짓을 저질렀지 않은가. 결국 내가 겪는 고통, 그것은 그 여자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31


다시 자유로워지는 것, 내 안에 자리잡으 ㄴ이 무게를 바깥으로 던져버리는 것이 문제였기에,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 목적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W가 나를 사귀게 되면서 버렸던 여자가, "바늘을 꽂아서 방자(남에게 재앙이 내리도록 귀신에게 비는 행위) 하겠어"라고 분노에 떨며 말했다던 그 여자가 생각났다. 빵의 말랑말랑한 부분으로 사람 형상을 만들어서 핀을 꽂을 수도 있다는 것이 더이상 천치 같은 생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동시에, 두 손으로 빵을 주무르고 머리나 심장 자리에 정성들여 핀을 꽂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가엾고 순진한 한 여자를 보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내려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려가보고 싶은 유혹에는, 우물 안으로 몸을 수그려 저 깊숙한 곳에서 떨고 있는 자신의 영상을 바라볼 때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면서도 무시무시한 그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여기에 글을 쓰고 있는 행위도, 어쩌면 바늘을 꽂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32-33


그 여자와 W가 살고 있는 건무의 모든 입주장게 전화를 걸어보는 것-미니텔에서 이름과 전화번호를 찾아 명단을 만들어두었다-은 내가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또한 가장 두려운 일이었다... 

어느 날 저녁, 나는36 51(발신자 제한번호)을 누른 다음 꼼꼼하게 모든 전화번호를 눌러보았다.  35


전화를 걸어본 이름들 중에 자동응답기에 자신의 휴대전화번호를 남겨놓은 도미니크 L이라는 여자가 있었다.  36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알고자 하는 욕망에 시달리던 내게, 제쳐놓았던 단서들이 갑작스럽게 다시 의미심장한 것이 될 때가 있었다. 잡다하기 짝이 없는 사실들을 끼워맞춰 인과관계를 부여하는 나의 능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그가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던 우리의 약속을 미루자고 한 날 저녁에 일기예보를 듣다가, 진행자가 "내일은 성 도미니크 축일입니다"라는 말로 일기예보를 마치는 순간, 그 여자의 이름이 도미니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내 집으로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일은 그녀의 축일이니 함께 레스토랑에 갈 것이고, 촛불을 밝히고 저녁 식사를 한다든가 뭐 그런 일들을 해야 할 테니까. 이 추론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도미니크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갑작스럽게 차가워진 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은 나의 추론이 옳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러한 탐색과 광적으로 여러 단서들을 짜맞추는 행위를 보며 지능의 탈선적 사용이라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차라리 지능의 시적 기능, 문학과 종교 및 편집증엣 작동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그 기능이라고 하고 싶다.  38


나는 일기에다가 "다시는 그를 보지 않기로 결심했다"라고 적었다. 이 말을 적는 순간에는 더이상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글쓰기로 인해 고통이 가벼워진 것을 상실감과 질투가 끝난 것으로 혼동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기장을 덮자마자, 그 여자의 이름을 알고 싶으며, 그 여자에 관한 정보들을, 여전히 고통을 낳게 될 모든 것을 알아내고 싶다는 욕구에 다시금 시달렸다.  41


글쓰기를 통해 나의 강박증과 고통을 여기에 노출하고 있는 행위와, 랍 대로에 가면 그들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노출을 두려워하던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글스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엣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 나의 얼굴, 나의 육체, 나의 목소리, 나라는 인간의 특징을 형성하는 이 모든 것을 나와 마찬가지로 집어삼킬 듯 바라보고는 내팽개쳐버릴 누군가의 눈앞에 드러내는 것은 더없이 잔인한 짓이라고 생각했던 만큼이나, 지금은 내 강박증을 드러내고 헤집어보는 일이 전혀 거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반항심도 전혀 없다. 진실을 말하자면, 난 정말이지 아무 느낌도 없다. 나는 나를 본거지로 삼았던 그 질투가 꾸며내는 온갖 상상과 행동들을 묘사하려고만 애쓰며, 개인적이며 내밀한 것을 느낄 수 있고 알 수 있는 실체로 변모시키려고만 애쓰고 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 형체 없는 익명의 사람들이 아마도 그것들을 제 것으로 삼을 것이다.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더이상 나의 욕망, 나의 질투가 아니라 그저 욕망, 질투에 속하는 것이고,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곳에서 작업하고 있는 것이다.  43-44


유일하게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그가 아직도 나를 만나고 있으며, 가령 얼마 전에 내 생일선물로 브래지어와 T팬티를 선물했다는 사실을 그 여자가 알게 되는 상상을 할 때였다. 그러면 온몸의 긴장이 풀어졌고, 진실이 드러났다는 지극한 행복감 속에 잠겨들었다. 마침내 고통이 육체를 바꿔 탄 것이다. 난 그녀가 느낄 고통을 상상하면서 내 고통을 일시적으로나마 덜 수 있었다.  49


가장 커다란 행복처럼 가장 커다란 고통도 타자로부터 오는 것 같았다. 나는 두려움 때문에 그 고통을 피하려고 앴는 사람들을 이해한다. 그들은 그 고통을 두려워하여 적당히 사랑하거나, 음악이나 정치참여, 정원이 있는 집과 같은 관심사의 일치를 더 중시하거나, 혹은 삶과 유리된 쾌락의 대상으로 여러 명의 섹스 파트너를 둠으로써 그것으로부터 도망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이 육체적 사회적 고통에 비하면 비이성적이며 심지어 물의를 일으킬 만한 것일지라도, 하나의 사치일지라도, 나는 생의 평온하고 유익했던 몇몇 순간보다도 그 고통을 더 사랑할 것이다.  50


욕망이란 필요한 모든 것을 논거로 끌어다 사용하는 놀랄 만한 능력을 갖고 있어서,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잡지 속에나 굴러다니는 상투적이며 진부한 생각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 여자의 딸이 엄마보다도 훨씬 어린 엄마의 연인을 참아내지 못해서, 혹은 딸아이가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되어서 그들이 더이상 함께 살 수 없게 될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기에 이르렀다.  52


유일하게 진실한 것, 결코 말하지 않을 진실은 "난 당신과 섹스하고 싶고, 그 여자를 잊게 만들고 싶어"라는 말이었다. 그밖의 것은, 엄격하게 말하자면 모두 허구였다.  53


어느 일요일 오후, 프랑스에 잠깐 들른 L과 극장에 갔다. 그를 다시 보는 것은 친 년 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서로에게 저절로 이끌려 그의 부모 집 거실에 놓여 있는 소파 위에서 섹스를 했다. 그는 내가 아름다우며, 기가 막히게 잘 빨더라고 말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자신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종종 성행위를 통해 얻고자 했던 '정념의 정화'-"아! 네 물건을 어서 넣어줘/ 그리고 끝장내버려/ 아!/ 그 이야기는 이젠 그만"과 같은 외설적 유행가가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성적 쾌락엣 모든 것을, 쾌락 이상의 것을 기대했다. 사랑, 융합, 무한, 글쓰기의 욕망, 이제껏 내가 그에게서 얻어냈다고 여기는 최상의 것, 그것은 냉철함으로, 감상주의에서 탈피해 갑자기 단순하게 세계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56-57


이제 나는 "당신, 페니스 좋아하지, 그렇지? 아무 페니스나 말고, 당신 거" 따위의, 예전엔 거리낌없이 서로 속삭이던 대화를 전화로 나누고 싶어져도 참게 되었다. 그런 말들이 지금의 그의 페니스를 부풀게 하기는 커녕 흥분을 싹 가시게 하는 외설스러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62


(학교에서 문학 텍스트의 구절들에 제목을 붙이듯이, 자기 삶의 순간들에 제목을 붙이는 것은 아마도 삶을 통제하는 수단이 아닐까?)


우리는 가끔씩, 순전히 의례적으로 전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것 역시 끝났다.

그의 페니스가 생각날 때면, 첫날 밤에 본 모습이 그대로 떠오른다.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눈앞에, 거대하고 강력하며 끝이 버섯 갓 모양으로 부푼 채 불끈 솟아 있던 그의 페니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낯선 사람의 페니스를 보는 것 같다.  67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그것은 청소년기에 고해하러가던 것과 유사한 습관으로, 일종의 정화의식이 되었다.

이젠 그 여자에 관해서 이름은 물론 그 어떤 것도 알아내고 싶은 욕망이 조금도 없다(혹시라도 친절하게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길지도 모르니, 미리 정중히 거절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이다). 마주치는 모든 여자들이 그 여자처럼 보이는 일도 없어졌다. 파리의 거리를 걸을 때도 이제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는다. [해피 웨딩]이 흘러 나와도 라디오 채널을 돌리지 않는다. 가끔씩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이 들지만, 더이상 담배나 약물에 의존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사람과 흡사한 정도다. 


글쓰기는 더이상 내 현실이 아닌 것, 즉 길거리에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엄습하던 감각을 간직하는 방식, 그러나 이제는 '사로잡힘'이자, 제한되고 종결된 시간으로 변해버린 그것을 간직하는 방식이었다.  67-69





옮긴이의 말 - 질투의 심연에서 만난 치열한 글쓰기


'그'가 떠나갔다. '나'는 '그'를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홀몸의 자유를 포기할 정도로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미적지근한 연인관계를 유지해오던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한들, 그것이 '나'의 삶에 무에 그리 영향을 미치겠는가? 하지만 '그'가 '나'를 떠나기로 결심한 이유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어서라면? 갑자기 '그'에 대한 '나'의 빛바래가던 감정은 애초의 생생한 색깔을 되찾는다. '나'와 '그'의 관계를 규정짓던 타성과 습관은 어느새 그 힘을 상실하고, '그'를 되찾고자 하는 '나'의 무시무시한 눈먼 욕망만이 길길이 날뛴다. 

아니 에르노의 <집착>은 이렇듯 '나-작가'가 겪은 질투에 관한 이야기이다.  73-74


에르노의 <집착>은 '자전적 허구'를 작가들의 노출 욕구나 배출 통로쯤으로 치부하던 독자들에게는 하나의 예외로 다가온다. 우선, 에르노의 글은 치열하다. 작가는 자신의 삶을 가장 내밀한 부분가지 올올이 드러낸다...

'글쓰기, 그것은 무엇보다도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서 행하는 것이다'라고 못박는 에르노에게 글쓰기란 타인의 시선에서 놓여난 시공간엣 행해야 할 작업이다.  75


에르노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계산할 줄 아는 작가이다. 끊임없이 군더더기를 떨어내고, 치밀하게 자르고 다듬어 완벽하게 아귀를 맞추어놓은 문장들 사이에는 세워놓은 바늘을 바라보는 듯한 아슬아슬한 균형이 자리잡는다. 심심치 않게 눈에 띄는, 주어와 동사를 품지 않은 문장들은 이 벼리기 작업의 가시적 결과이다. 에르노의 글은 푸근하지 않고, 정련된 문장들이 안져주는 정신의 긴장을 즐기는 독자들로부터 그래서 더욱 인정을 받는다.  77


작가는 '주요 관심사'나 '점령'을 의미하는 'L'occupation'이란 제목을 고름으로써, '질투'의 두 가지 양상을 겨눈다. 하나는 질투의 메커니즘이 작동한 뒤로 어떤 다른 일에도 정신을 쏟지 못하고 '그 여자'를 찾아내는 일이 '나'의 '주요 활동'이 되어버린 것이며, 다른 하나는 마치 무엇엔가 들리기라도 한듯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 여자'의 존재에 완전히 사로잡혀버린 '나'의 상태이다.  7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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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즐겨읽는편이 아니었기에 위화의 소설은 처음접했다. 
사실 소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건 누구나 아는 사실일 것이다. 
어쩌면 너무 쉬운 생각을 아니 변명을 하였는지 모르겠다. 소설을 읽다보면 그 재미에 다른 책들을 읽지 못할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멀리하였었다. 
그렇기에 인문을 다루는 큰 영역을 무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근래 몇 가지의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이 단순히 재밌게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님을 느낀다.
문학작가들의 그 심오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물흐르듯 흘러가는 단어들은 매료시키면서 많은 생각들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런 소설중에 위화의 인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고 인생에 푹 빠져 울고 웃을 수 있게 해주었다.
별로 관심없던 중국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중국에 관련한 여러 도서들을 읽으면서 중국의 문제와 발전과정과 의식들을 알게 되고, 소설로는 삼국지나 초한지 서유기등 워낙 대중적인 책들외에 처음 접하는 책이다.
마오쩌둥 시절의 문화대혁명도 언급되고 그 시대의 중국의 모습을 바라보는 듯.. 
아니 어쩌면 지금 우리의 부모님 조부모님 시절의 한국의 이야기이기도 한듯한 그 내용은 가족과 이웃과 나를 그리고 환경에 의한 사람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읽어야만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나의 눈물이 볼을 타고 내릴때 나는 어머니를 아버지를 생각한듯하다. 아니 우리의 선조들의 아픔을 생각한건 아닐까 싶다.. 민족주의를 주창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가족은 부모는 자식은 모두... 그런 존재일 것이다..

중국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상태에서 보았기에 더 가까이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덮으면서 다시금 몇 가지의 내용들을 검색해 보기도 하였다.
위화라는 작가는 참 유명한 사람이다. 그걸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위화의 책들을 여러권 더 읽어보고 싶을 만큼 책은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듯하다.

푸구이 와 자전 펑샤 유칭 춘성 라오취안 대장 얼시 쿠건 
푸구이의 삶이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허나 그는 끝까지 살아남아 지나온 시대를 비춰주고 있다.
그렇기도 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순응만 하거나 반항만한 삶이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살아남아 운명을 개척한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의 삶에서 안타까움만 느낀것이 아니라 .. 그 아픔들을 기꺼이 자신이 삼켰다는 점이 더욱 끌린다.
우리가 한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솔하게 생각하게 한다. 

위쪽이 다르게 생겼으면 그 각각에 대한 내 마음도 다 달라지니 난들 어쩌겠나.
예봉을 감추고 에두르는 말로 나를 일깨웠지.
아버지의 신발도, 자전의 요리도 내 발목을 붙잡지는 못했다네.  31

가만 생각해보니 겨우 하루 돈을 나르고도 사지가 다 풀릴 정도로 힘든데, 그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상들이 고생했을까 싶더라구. 그제야 난 아버지가 왜 은화가 아니라 동전을 고집했는지 알게 됐지. 바로 그런 이치를 깨닫게 하려고, 그러니까 돈을 번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하려고 그러신 거야.  50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종일 초가집 앞마당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거나 한숨을 푹푹 쉬거나 하며간을 보냈지.
"사람은 즐겁게 살 수만 있으면 가난 따위는 두렵지 않은 법이란다."  57

당장의 위급함은 도와도 가난은 돕지 않는다고 했네.  67

춘성, 스스로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죽지 않아.  96

사람이 이 네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된다네. 말은 함부로 해서는 안 되고, 잠은 아무데서나자서는 안 되며, 문간은 잘못 밟으면 안 되고, 주머니는 잘못 만지면 안 되는 거야.  200

여자들은 하나밖에 몰라서 한 번 그렇다고 생각하면 누구도 마음을 돌릴 수 없는 법이야. 나는 춘선을 마을 어귀까지 바래다주며 말했다.  209

"당신이 돌아온 다음 모든 게 다 좋아졌어요."  228



도저히 자신의 힘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불현듯 닥쳤을 때 운명을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정말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얼마나 그것과 맞붙어야 운명과의 우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흙먼지  풀풀 날리는 길을 함께 걷고 진흙탕을 같이 뒹굴며 체념이 아니라 그 운명의 존재, 그림자의 존재를  인정하듯 그것의 불가해한 존재 자체를 인정해야 한다면... 그리고 인정한 만큼 그것을 진정한 삶의향으로 이끌기 위해 그것과 정정당당하게 맞붙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사람은 지금까지 살아온 것보다는 훨씬 넉넉한 가슴과 깊은 눈매로 제 삶을 되돌아보고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더욱 준엄하고 살갑지 않을까.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적 삶의 문제를 진솔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역사성과 삶의 진실이라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접목하고, 그 속에서 한 가족사를 통한 중국 현대사 읽기를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푸구이가 운명으로 받아들이지만 자기 해체 과정을 농민이라는 존재로서의 삶을 통해 극복해내고 있고, 그것이 땅과 노동에 대한 강렬한 희구와 그 현실적 노력 속에서 정채롭게 그려지고 있다.

농민으로서의 삶은 푸구이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가족간, 지기 간의 사랑과 우정이라는 관계적 삶을 회복하게 하여 인간성 회복의 차원을 획득하게 한다.

위화는 중국 혁명과 대약진, 문화대혁명에 이르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대목드을 당시의 대다수 중국민의 입장에서 일상적 삶이라는 창을 통해 투시해보고자 하였다. 총알과 돌아갈 여비, 쓰레기 취급당한 채 죽어간 부상자들과 만터우, 국민당군과 해방군을.

굶주린 사람에게 뜨거운 만터우를,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에게 여비를, 중국 혁명 해방의 정당성을 이 소설은 그처럼 날카롭게 포착해 낸 것이다.
위화가 소설 속에서 개인과 그의 운명을 이야기하고자 할 때, 그 개인은 어디까지나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개인이고 집체로서의 가족이다. 따라서 그 운명은 역사적 현실이 된다. 

주인공 푸구이는 그 운명을 거역하지도 않지만 결코 그것에 무릎 꿇지도 않는다.

궁극적 삶이라는 결론을 끝이 아닌 과정이요, 해답이 아닌 살아감이라는 궤적이라고 이 소설은 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단정적 평가가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간 수많은 사람들의 치열한 삶의 내력에 굳은 신뢰라는 방점을 찍으면서 따뜻하게 끌어안으려는 것이 이 소설을 쓴 위화의 깊은 속내가 아닐까 한다.

사랑과 우정, 인간의 그 보편적 삶의 방식이 소설의 서사적 근간을 이루면서 따뜻하게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역사적 현실이든 운명이든 그것이 삶의 아픔으로 다가올 때, 사람은 사회적 존재의 고나ㅏ계망 속에서 사라오가 우정의 힘으로 역사적 현실이자 운명에 맞서고 바대끼고 때로는 어깨를 걸치고 한 걸음 한 걸음 삶의 도전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이 소설은 나직이 이야기 하고 있다.

위화는 삶이란 이 원론과도 같은 사라오가 우정을 힘으로 운명, 역사적 현실 앞에서 때로는 물러서기도 하지만 결코 늦출 수 없는 긴장 속에서 이마를 맏대고 나아가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총괄하자면 <인생>은 1990년대 중국 문단에서 신역사소솔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그 진수를 보여준 측면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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