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사랑이 그대들에게 손짓하거든 그를 따르십시오.
그 길이 험난하고 가파르다 하여도.
사랑의 날개가 그대들을 감사거든 몸을 내맡기십시오.
날개깃 속에 숨겨진 칼이 귿들을 찌른다 하여도.
사랑이 그대들에게 말을 걸거든 그를 믿으십시오.
거센 북풍이 정원을 휩쓸어 버린다 하여도.
그 목소리가 그대들의 꿈을 산산조각낸다 하여도.

사랑은 그대들에게 왕관을 씌우기도 하지만 그대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기도 합니다.
사랑은 그대들을 성장시키기도 하지만 그대들을 잘라 내기도 합니다.
사랑은 그대들의 머리 위로 올라가 태양 아래 흔들리는 여린 가지를 어루만져 주기도 하지만 그대들의 뿌리로 내려가 땅속에 붙박은 뿌리들을 흔들어 놓기도 합니다.
사랑은 곡식 단처럼 그대들을 거두어들일 것이요,
사랑은 그대들을 타작하여 알몸으로 만들 것이요,
사랑은 그대들을 체로 걸러 갑갑한 껍질을 털어 낼 것이요,
사랑은 그대들을 빻아 하얀 가루로 만들 것이요,
사랑은 그대들을 부드러워질 때까지 치댈 것입니다.
그러고는 그대들을 신성한 불속에 집어넣어, 신의 거룩한 만탄에 성스러운 빵으로 내놓을 것입니다.

사랑은 이 모든 일을 행하여 그대들 속에 있는 비밀을 일깨울 것이며, 그 깨달음은 그대들의 삶에서 한 조각의 심장이 될 것입니다.

허나 그대들이 두려움 때문에 사랑의 평화와 기쁨만을 좇는다면, 차라리 알몸으 ㄹ가리고 요동치는 사랑의 마당을 지나가는 편이 나을 것이빈다.
그리고 꼐절 없는 세상으로 가서 웃어도 온몸으로 웃지 못하며, 울어도 온 마음으로 울지 못할 것입니다.
사랑은 저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으며, 사랑은 저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소유하지 않으며 소유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다만 사랑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대들이 사랄에 빠진다면 “신이 내 마음속에 계신다.” 하지말고, “내가 신의 마음속에 있다.”라고 말하십시오.
또 그대들 스스로가 사랑이 향할 길을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랑이 그대들을 가치 있게 여긴다면 저절로 그대들의 길을 인도해 줄 것입니다.

사랑은 그 어떤 소망도 없이 자신을 채우려 할 뿐.
다만 그대들이 사랑에 빠져 소망을 품을 수밖에 없다면 다음의 것들을 소망하십시오.
녹아서 밤새도록 노래하며 흐르는 시냇물이 되기를.
넘치는 다정함으로 인한 고통을 알게 되기를.
스스로 알게 된 사랑으로 상처받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피 흘리기를.
날개 달린 마음으로 새벽에 일어나, 사랑할 날이 하루 더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를.
한낮에 휴식을 취하며 사랑의 황홀함을 되새기기를.
저녁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기를.
그리고 마음속으로 사랑하는 이를 위해 기도하기를.
그대들이 입술로 찬미의 노래를 부르며 잠들기를.  14-17


결혼에 대하여
함께하는 순간에도 서로 거리를 두고, 하늘의 바람이 그대 둘 사이에서 춤추게 하십시오. ..
허나 사랑의 서약을 맺지 말기를. ..
서로의 잔을 채우되 한 잔으로 같이 마시지는 마십시오.
서로에게 자신의 빵을 주되 한 덩어리를 같이 먹지는 마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하되 서로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십시오. 마치 기타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에 함께 떨릴지라도, 서로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서로 마음을 주되 서로의 마음을 가지려 하지 마십시오. ..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십시오.
사원의 기둥이 서로 떨어져 있듯이, 참나무와 사이프러스 나무도 서로의 그늘 아래서는 자라지 못하는 법입니다.  18-19


아이들에 대하여
그대들의 아이들은 그대들의 것이 아닙니다. ..
아이들은 그대들을 거쳐서 왔으나 그대들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며, 비록 그대들가 함께 지낸다 하여도 그대들의 소유물은 아닙니다.
아이들에게 그대들의 사랑을 주되 그대들의 생각까지 주지는 마십시오. 아이들 스스로도 생각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몸이 머물 집을 주되 영혼이 머물 집은 주지 마십시오. ..
아이들과 닮아 가려 애쓰되 아이들에게 그대들을 닮으라고 강요하지 마십시오.  20-21


주는 것에 대하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조금만 주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나누어 줍니다. 그 숨은 욕심 때문에 준 선물마저 불결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진 것은 적으나 전부를 내주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삶을 긍정하고 삶의 풍요로움을 믿습니다. ..

남이 부탁할 때 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허나 남이 부탁하지 않는데도 속마음을 읽어 주는 것은 더욱 좋은 일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사람은 베푸는 일보다 도움받을 사람을 찾는 일에서 더 큰 기쁨을 발견하는 법입니다.  23-24


일에 대하여
만약 그대들이 괴로운 나머지 태어남을 고난이라 부르고 몸으로 살아가는 일이 이마에 적힌 저주라 부른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만이 그곳에 적힌 저주를 씻어 버릴 수 있다고. ..
열망이 없는 한 삶은 진정 어둠에 불과하며, 지식이 없는 한 모든 욕망은 맹목적인 것입니다.
모든 지식은 노동이 없는 한 헛된 것이며, 모든 노동은 사랑이 없는 한 공허한 것입니다. ..
바람은 키 큰 참나무에게 다정하게 속삭이는 것만큼이나 자그마한 풀잎 하나하나도 똑같은 다정함으로 대합니다.  29-31


집에 대하여
그대들은 그 집에 무엇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대들이 문을 굳게 잠그고서 지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대들은 평화를 품고 있습니까.
그대들의 힘을 드러내고픈 고요한 열망을.
그대들은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까. ..
그대들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까. ..
말해 보십시오.
그대들의 집에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대들은 편안함만을 찾습니까.
편안함을 찾는 욕구는 손님처럼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다가, 결국 그대들을 노예처럼 부릴 것입니다. ..
진실로 평안함에 대한 욕구는 영혼의 열정을 죽이고, 활짝 웃는 얼굴로 장례식에 걸어 들어오는 것입니다.  35-36


옷에 대하여
그대들의 옷은 많은 아름다움을 감추지만, 아름답지 못한 부분은 가려 주지 않습니다.
그대들은 옷으로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려 하지만, 결국에는 밧줄과 사슬만 찾을 것입니다.  38


죄와 벌에 대하여
죄인은 때로 상처받는 희생자이며, 사형수도 죄없는 자와 비난할 것이 없는 자의 짐을 짊어지기도 합니다.
그대들은 정의로운 자와 정의롭지 않은 자를 나눌 수 없으며, 선한 자와 악한 자를 나눌 수 없습니다.
검은 실과 하얀 실이 한데 짜여 있듯이, 그대들은 하나같이 태양의 얼굴 앞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45-46


법에 대하여
자신의 허물은 벗지 못하면서 남 보고는 벌거벗고 부끄럼도 모른다고 하는 늙은 뱀은 어떻습니까.  50


자유에 대하여
그대들이 자유를 구하는 욕망조차 구속이라 여길 때, 자유를 하나의 목적이자 완수할 임무라 더 이상 말하지 않을 때, 비로소 자유로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
그대들이 몰아 내려는 것이 폭군이라면, 먼저 그대들 안에 세운 폭군의 왕좌가 무너졌는지 살피십시오.
만일 자유롭고 당당한 자들이 자신의 자유에 한 점의 포악함도 없으며, 자신의 당당함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면, 폭군이 어찌 이들을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대들이 벗어 버리려는 것이 근심이라면, 그 근심은 그대들에게 떠맡겨진 것이 아니라 그대들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대들이 떨쳐 버리려는 것이 공포라면, 그 공포는 두려워하는 자의 손아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대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진실로 만물이 그대들 안에 반쯤 뒤엉켜 있으니 그대들이 욕망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 혐오하믄 것, 아끼는 것, 추구하는 것, 달아나려 하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대들 안에서 움직이는 이것들은 마치 한 쌍의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 달라붙어 꿈틀거립니다.
그러니 그림자가 사라져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 남은 빛이 또 다른 빛의 그림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대들의 자유도 족쇄에서 벗어날 때, 더 큰 자유의 족쇄가 될 것입니다.  53-54


고통에 대하여
그대들 고통의 대부분은 스스로 택한 것입니다.
그대들 안의 의사가 아픈 자아를 치유하기 위해 지어 준 쓴 약입니다. 허니 의사를 믿고, 그가 준 약을 묵묵히 침착하게 받아 마십시오.  59


우정에 대하여
친구는 그대들의 공허함을 채우는 존재가 아니라, 그대들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66


말하는 것에 대하여
말이 많아지면 생각의 반은 죽게 됩니다.  67


선과 악에 대하여
그대들은 그대들 자신과 하나일 때 선합니다.
허나 그대들 자신과 하나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대들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 방향타 없는 배가 섬들 사이를 정처 없이 위태위태하게 떠돈다고 해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지는 않습니다.
그대들은 스스로를 내주려 애쓸 때 선합니다. ..
그대들은 활짝 깬 정신으로 말할 때 선합니다.
그대들은 목적지를 향해 굳세고 당당한 벌걸음으로 나아갈 때 선합니다. 허나 절뚝거리며 걸어간다고 해서 악한 것은 아닙니다. 절뚝거리는 사람이라도 뒤로 가지는 않습니다. ..
선이란 위대한 자아를 갈망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또 그 갈망은 모두 그대들 안에 있는 것.  71-73


아름다움에 대하여
그대들이 이야기한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채우지 못한 욕구일 뿐입니다.
무릇 아름다움이란 욕구가 아니라 황홀한 기쁨입니다. ..
아름다움은 그대들이 보았던 영상도, 즐겨 듣던 노래도 아닙니다. 오히려 눈을 감아도 보이는 영상이자, 귀를 막아도 들리는 노래인 것입니다.  84


종교에 대하여
자신의 도덕을 보기 좋은 옷으로만 걸치려는 자는 차라리 벌거벗은 편이 나을 것입니다. ..
자신의 행도에 윤리의 잣대를 들이미는 자는 노래하는 새를 새장에 가두는 것입니다. ..
그대들의 일상이야말로 그대들의 사원이자 종교입니다.
그러니 그 속에 들어갈 때마다 그대들 전부를 가지고 들어가십시오.  87-88


작별
그저 나는 그대들 스스로가 생각으로 아는 바를 말로 한 것뿐이니. 말로 아는 지식이란 말 없는 지식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까. ..
허나 그대들은 그 불꽃을 활활 지피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그대들의 나날이 시들어 가는 것만을 슬퍼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명이 무덤을 두려워하는 몸속에 갇혀 생명을 찾아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
정녕 그대들은 알지 못하면서도 기뻐할 때가 많습니다.   97-98

사람이 멀리 서 보지도 않고 어찌 진정 가까워질 수 있겠습니까.  100

그대들의 눈을 가린 장막은 장막을 짠 손이 거두어야 할 것이며, 그대들의 귀를 막은 흙은 그 흙을 반죽한 손가락이 뚫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제야 그대들은 보고 듣게 될 것입니다.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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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사진미학>은 사진 저편의 숨은 이야기를 말하는 책이다.  4


찍는 것과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찍기는 쉬지만 표현하기는 어렵다.  5




한 장의 사진을 보다


전면을 통해서 초상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초상사진의 전면성(前面性 앞전 낱면 성품성). 이것을 우리는 파사드(facade)라고 부른다.

파사드는 건축에서 쓰이는 말로 건축의 중심, 퍼스펙티브의 중심을 의미한다.  13


사진에서 파사드라는 말은 전면을 통해서 대상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특별한 초상사진일 경우에만 쓴다... 

정면은 물리적인 방향을, 전면은 심리적인 형상을 의미한다. 또 정면이 모델과 카메라 앵그로가의 관계라면, 전면은 모델과 관객의 시선과의 관계이다.  14


사진가가 단순히 카메라를 향해 정면으로 설 것을 요구했다면 정면성의 사진이 되기 쉽다. 그러나 사진가가 인물의 전면에서 무언가를 읽고 찍었다면 전면성의 사진이 된다. 기념사진의 경우도 단순히 무언가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정면성의 사진이 되지만 인물들 개개의 특징이 드러나도록 찍었다면 전면성의 사진이 되는 것이다.  15-16


"자신을 찍어 보지 않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찍을 수 있지?"  21


사진의 주요 형식에는 구성과 조형이 이싿. 이 두가지 요소는 비슷하지만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먼저 구성(composition)은 화면 안 즉, 프레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각적 형식이다. 이에 비해 조형(modeling)은 화면 밖, 즉 카메라 밖에서 이루어지는 시각적 형식이다. 그러므로 구성과 조형의 가장 큰 차이는 촬영 이전이냐 이후이냐이다.  25


조형의 기초가 되고, 해체의 근간이 되는 해석이란 무엇일까? .. 페르낭 레제는 "스스로의 조형적 아름다움 속에서 피사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레제가 '스스로'를 강조하는 개인적이고 자율적인 조형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사진에 대입하면 진정한 사진의 형식은 주어진 구성에서 벗어나는 것, "자신에게 적합한 시점을 획득하는 것"이 된다. 고정불변의 규칙들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형식이라는 말이다.  27-28


영화감독 마야 데렌은 구축의 형식과 해체의 형식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구축의 형식은 사물을 조망하는 도구(카메라의 프레임)에서 파생되고, 해체의 형식은 조망된 이미지가 개인적인 경험과 관계된 철학과 정서 속에서 일체화된다."  28


에로티시즘은 정신적 관능이 육체를 통해서 발현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34


* 예술누드 - 미학은 안으로 정신과 영혼을, 그리고 밖으로 미의 형식과 표현을 다루는 철학이다... 미학이 예술누드에 부여한 품격과 숭고함은 무엇보다 정신의 관능이다.  35


사진의 깊이는 보는 자의 호흡에 의해 결정된다. 깊은 화면은 긴 호흡에서 나오고, 얕은 화면은 짧은 호흡에서 만들어진다.  49


세상이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기계적인 눈이 인간의 눈을 침범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고층빌딩이 인간의 시선을 가로막지 않았을 때 우리는 언제나 롱 테이크, 롱 디스턴스의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지평선 저 너머로 사라져 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었고, 저 멀리로 점점 작아져 가는 인간의 형상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망원렌즈와 줌렌즈, 그리고 하늘로 치솟는 고층건물에게 그것들을 빼앗겨버렸다. 주변보다는 중심이 강조되고, 상황보다는 대상이 강조되는 사진들이 우리 주변에 확산되면서 우리는 깊은 숨쉬기, 길은 거리감을 박탈당했다. 화면을 가득 채운 얕은 숨쉬기, 얕은 거리감에 그저 질식당했던 것이다.  52


사진의 형상은 결국 초덤을 어디에 두느냐 혹은 어떻게 선책하느냐에 달려 있다. 눈과 달리 중요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지 않을 수도 있으며, 부분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할 수도 있고, 또 전체를 선명히 할 수도 있다.  56


초점이 맞았기에 형상이 존재하고, 형상이 있기에 시선을 받는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물을 본다는 것은 거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거리가 있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초점이 존재한다는 말이며, 또 초점이 있어야 형상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형상은 곧 시선을 유도하는 '보는' 행위이자 사물이 드러나는 '보이는' 양태이다. 형상과 시선에 의해 사물은 존재성을 가지게 되며, 결국 인간의 감정을 이끌게 된다.  57


초점 안에 있으면 인포커스(in focus)라고 하고, 초점 밖에 있으면 아웃포커스(out of focus)라고 한다.  62


보인다고 해서 모두 읽히는 것이 아니듯이, 보아야 할 것이 적어질수록 때론 말해지는 것도 있는 법이다.  64


사진은 참의 리얼리티를 잃지 않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디지털은 새로운 표현을 확장해야 한다.  76


사진은 기억의 이미지가 아니라 존재의 이미지이다. 이미지의 기억은 잔상이고 파편이다.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변할 수 있지만 존재의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다. 또한 일시적 기억을 위한 이미지는 늘 밖으로 시간을 토하고 지우지만, 존재의 이미지는 언제나 시간을 삼키면서 시간 속에 산다. 사진은 영속적인 시간의 이미지이다. ..

사진과 디지털의 만남은 서로 약한 부분, 강한 부분을 보태고 나누는 데 의의가 있다. 사진은 바로 그것, 사물 그 자체를 지시하는 존재의 이미지이다. 디지털 프로세싱은 보다 쉽고 편리하게, 또 효과적으로 삶의 리얼리티를 발현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  77





한 장의 사진을 읽다


우리는 순간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 말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한순간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고도 한다. 결국 남는 것은 사진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는다는 것일까. 정지된 역사 속에서 실존했다는 증거인가. 과거에 있었던 무언가를 확증하기 위한 것인가. 아니면 부재할 수밖에 없는 순간에 대한 경의인가. 아마도 이 모든 것이리라.  91-92


'가까이 더 가까이 감동되어 셔터를 누르면 어둠이 가득한 자궁 속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한 생명을 잉태하듯이 한순간의 빛과 만나 필름에 그 피사체의 감동이 잉태되는 것이다. 잉태된 생명이 10개월의 임신 기간을 거쳐 태어나듯이, 한 장의 사진도 필름에 잠상이 맺혀 현상되기까지의 현상 시간을 거쳐 마침내 태어난다.' - 최광호 <나는 사진이다> 중에서  95


안도현 시인의 <사진첩>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추억이란 존재의 뿌리이다..."  100


타인의 사진을 본다는 것은 사진을 찍은 작가의 본래 의도를 분석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이다.  110


* 가다머 해석학 - 가다머는 사진의 수준, 내용, 의미, 가치는 사진 스스로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노력하는 그림자의 태도에서 드러나는 것이라고 했다.  113


정치적 풍경(political landscape)이란 .. 언뜻 보았을 때 자연풍경, 현실풍경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강한 정치적 동기, 정치적 의도를 내재한 인공적 혹은 가공적인 풍경이라는 것이다.  122


정치적 풍경의 특징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주 아름답거나 어떤 면에서는 달콤한 풍경사진일 경우가 많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사진 속의 '기둥' 자체는 정치를 상징하지 않기 때문에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은 정치적인 것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사진이 정치적인 풍경사진이라고 알아차리기 어렵다. 즉 정치적 업적을 상징하는 흰 기둥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가둬짐으로써 상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 곳곳이 공사 중이고 건설 중이다. 다리, 건물, 도로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 대부분의 공공 건축물, 건축 구조물은 정치적 상징성을 띠는 정치적 풍경이다. 마찬가지로 사진 속에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는 기둥이지만 정치적 동기에 의해 세워지고, 또 드러나지 않지만 정치적 목적으로 건설되고 있다는 사실을 장대한 구조물, 어둠 속엣 명명하는 교각이 말하고 있다.  123-124


* 사진의 정치성 - 사진의 권력은 대중들의 절대적 믿음에서 생겨났다. 발명 순간부터 사람들은 '사진은 거짓말하지 않느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말보다 사진을 믿었기에 이를 역이용한 정치적 사진들이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기생해 왔다. 독재정권을 위한 조작된 홍보용 사진,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한 날조된 사진, 실재 이상으로 과장되게 연출한 선전용 사진. 지금도 정치 집단 혹은 행정 집단이 실적주의, 성과주의, 여론 고취를 위해 이런 사진들을 부단히 활용한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맥락의 정치적 사진이 있다. 완전히 다른 입장에서 정치적 소재들을 활용하여 사회를 비판, 고발, 폭로하는 사진이다.  125


* 프레임 - 프레임에는 물리적인 프레임과 심리적인 프레임이 있다. 물리적인 프레임은 구성, 구도를 위한 파인더, 이미지 틀, 액자의 특이다. 대개 표현을 위한 물리적인 틀이다. 가장 오래된 프레임은 바늘구멍(pinhole, 원형)이다. 암상자(camera obscura) 소에서 세사을 보면 동그랗다. 이런 구형의 프레임이 점차 정사각형, 직사각형 모습으로 변해 갔다. 반면에 심리적인 프레임은 의미의 프레임이다. 보이지 않는 인식의 그릇과 같다. 물리적 프레임 못지 않게 중요한 프레임이다. 콘셉트와 의도는 심리적 프레임이다. 사진의 힘은 프레임에서 나온다.  131


들뢰즈는 추상에 대한 새로운 사유 방식을 요구하면서, 추상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진정한 추상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고, 또 그래야만 추상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으며, 진정한 추상을 창조해 낼 수 있다고 말한다...

들뢰즈는 추상이 "구상적이지 않다, 서술적이지 않다, 자연적이지 않다, 문학적이지 않다"라는 말에 반대하며, 추상은 구상의 반대도, 구상과의 단절도 아닌, 구상의 혼성과 중첩일 뿐이라는 논리를 편다. 실제로 카메라를 통해서 추상을 표현할 때는 들뢰즈의 말처럼 추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요구된다. 추상을 구체적인 형상을 지운 것, 혹은 구체적인 내용을 걷어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한, 진정한 추상을 만나기도, 형상화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진정한 추상사진은 추상회화처럼 조형의 기교가 아니다. 형상이 부재하거나 결여된 것은 더욱 아니다. 추상사진은 들뢰즈가 추상론에서 말했듯이 구체적인 형상에 대한 '아니오'가 아니라. 구체적인 형상에 끊임없이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를 반복해 가는 것이다.  133-134


들뢰즈는 "에너지가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사물)는 근본적으로 추상이다. 그들은 무(無 없을무) 구속적이고, 탈(脫 벗을탈) 중심적이다. 그것은 개연성 없이 우연히, 형식 없이 작동하는 순수한 자율성이다."  134-135


* 들뢰즈의 추상론 - 한마디로 형태의 방향을 예측할 수 없는 관념적, 인식론적 추상이다.  137





한 장의 사진을 느끼다


사진을 알게 되면 처음엔 누구나 사지능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것은 일찍이 보지 못한 세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다...

사진을 알기 전에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감상할 수 있었는데, 사진을 알고부터는 오로지 사진적으로만 세상을 보려고 한다. 

이미지의 노예, 사진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153


피사체가 스스로 말하는 사진이다. 이런 사진은 이미지의 노예에서, 사진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진정 사무로가 순수한 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가능하다.  155


사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그것을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다. 이런 것이 사진의 참 의미가 아닌가 한다. 무언의 사물과 말한다는 것, 그러니까 말없는 사물들에 다가서고, 귀 기울이고, 그리고 사진을 통해 인식의 통로를 여는 것, 이것이 사진의 또 다른 아름다움이자 매력이다. 물론 아무나 할 수 없다. 오로지순수한 눈과 마음을 지닌 작가만이 할 수 있다.  156


* 기억회로 - 사진은 기억을 재생시킬 뿐, 사건 그 자체가 아니다. 그래서 기록보다 우선하는 것이 '알아봄'이다.  


풍경이 사진가에게 한 장만을 요구한다는 것은 그만큼 긴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풍겨을 여러 장 똑같이 찍었다는 말은 풍경과 호흡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186


풍경은 아무나 다가가서 찍을 수 있는 대상이지만 풍경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거나 그 속으로 풍덩 빠져들지 못하면 그 풍경 사진은 단순 복제에 불과하다.  187


* 힐링 포토 - 치유에 활용되는 사진은 대개 고요한 풍경사진, 그 가운데서도 흑백사진이다... 흑백사진이 좋다는 것은 현실의 색을 제거해서 요란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189


소쉬르라는 언어학자가 평생을 두고 고민했던 것은 언어의 자의성에 관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언어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언어의 진정성을 규정짓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말이다. 각기 다른 삶을 경험하고, 처해 있는 상황도 다르기 때문에 같은 말도 저마다 다르게 표기하고 해석해 버림으로써 의미의 혼란, 해석의 실종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판단이 사람들의 인식의 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각각이 경험한 삶의 리얼리티가 다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람드이 현실을 인식하는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삶의 차이가 현실을 인식하는 차이로 나타나고, 현실을 인식하는 차이가 세상을 해석하는 차이로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언어를 통해서 맨 먼저 알게 된다. 그 점에서 우리가 쓰는 언어란 삶의 리얼리티라고 말할 수 있고 그 리얼리티의 차이가 곧바로 사진의 차이, 감상의 차이, 해석의 차이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진을 보는 관객이 저마다의 리얼리티에 따라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은 정당하다. 그 과정에서 다행히 작가와 관객이 같은 리얼리티를 공유하고 있으면 좋은 느낌, 좋은 사진이 되고, 다른 리얼리티를 가지고 있으면 느낌 없는 사진, 별 감흥이 없는 사진이 된다. 시각언어인 사진이 우리 앞에 놓였을 때 모든 사진이 다 좋을 수 없고, 또 반대로 다 나쁠 수는 없다. 그 모든 좋고 나쁨의 선택은 관객의 리얼리티에 따라 자의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교육은 다양한 리얼리티를 경험하게 하는 매개체이다. 학습을 통해서 작품과 관객 간에 존재하는 리얼리티의 차이를 극복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리얼리티의 중재는 우리의 일상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 때론 음악이, 때론 설명이, 때론 주변 상황이 리얼리티의 차이를 극복하게 만든다. 처음 보았을 때 느낌이 없었던 사진이 오래 보면 좋아지는 것은 반복해서 보는 동안 그 사진과 친숙해지기 때문이다. 또 어느 순간 급작스럽게 좋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사진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주변 환경이 리얼리티를 중재해 주었기 때문이다.  191-192


"사람들 속에 같은 사람으로 살면서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러나 그들도 나를 모른다."(강상훈) 작가가 카탈로그에 썼듯이 우리는 서로 몰랐던 것이다. 서로의 리얼리티가 달라 그의 사진이 내게 감동을 주지 못했던 것이고, 감흥이 없었기에 사진보다는 글이나 한번 읽어 보자고 한쪽으로 치워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얼리티를 공유하는 순간 이 사진은 내 마음에 와 닿았고, 새삼스레 진정한 리얼리티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193


진광불휘(眞光不輝 참진 빛광 아닐불 빛날휘), 참된 빛은 빛나지 아니한다. 통도사 주지이셨던 성파 큰스님은 순수의 뜻을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197


사진의 모드는 삶의 모드가 만들어 낸 형상이다.  210


작가는 자기 삶의 모드에 반하는 사진의 모드를 가져서는 안 된다.  211


* 치열함 - 작가(作家 지을작 집가)란 자기 집을 지슨 사람, 자기 집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213


* 뒷모습 - 삶에서 보이는 부분보다 보이지 않는 부분이 진실일 경우가 있다. '뒷모습이 진실이다'라는 말이 여기서 나온다.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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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꾸준한 여행 동안 깨달은 것은, 멋있는 풍경을 봤다고 멋있는 사람이 된다거나, 넓은 세상을 봤다고 넓은 마음을 가지게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좋은 식당은 고급스럽고 비싼 곳이 아니라(비싸면 오히려 더 경직될 수도 있음) 여행자들이 그 안에서 만큼은 자신의 식사를 편히 즐길 수 있게 해 주는 곳이다.  



두둥실 떠 있는 것만 같은 느낌.

내 주위의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여행자들끼리의 은밀한 눈짓.

나 행복하다고 말해도 될까요...



지나고 보면 시간과 망각이 모든 걸 치유해 주진 않은 것 같다. 단지 익숙해질뿐.



기억을 위한 기록을 하다보면 정작 즐겨야 할 순간을 놓쳐버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록과 기억에 대한 강박이 여행을 장식하지 않게 균형을 잡는게 가능할까?



기록이 가장 빛을 발할 때는, 그것이 현재의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순간이 아닐까. 여행의 기록을 통해 확인하고 싶은 것은 사진 혹은 일기 속의 '박제된 나'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과한 '지금의 나' 자신일 테니.

여행의 기록은, 당시의 자신을, 그리고 후에 그 여행을 돌아볼 미래의 자신을 감응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게으르면 게으른 대로 한 줄, 부지런하면 부지런한 대로 여러 장, 번거롭거나 귀찮거나 의미 없다고 생각된다면 굳이 기록의 의미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많이 안다고 해서 반드시 애정도가 상승하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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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재앙처럼 충격을 주는 책, 깊이 슬프게 만드는 책,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숲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자살처럼 충격을 주는 책이 필요하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가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언제나처럼, 즐거움과 도피를 위해 읽었다. 하지만 이제는 잊기 위해서도 읽는다. 반 시간만이라도 언니가 겪고 있는 현실을 잊기 위해 읽었다. 언니는 담도암 진단을 받았다. 암은 무자비하고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고통과 함께 무력감, 공포감이 뒤따랐다.  17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 - 시릴 코널리<조용하지 않은 무덤>



내 경우는 갈수록 더 커지는 질문이 있었다. 

나는 왜 살아갈 자격을 가졌는가? 언니가 죽었고 나는 살아 있다. 삶의 카드는 왜 내게 주어졌으며, 난 이걸로 뭘 해야 하는가?

달아나기를 멈추어야 했다. 끊임없는 활동 속에서 이런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작을 멈추고 시간을 들여 둘로 나뉜 나를 다시 합쳐야 했다. 

도피하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도피하기 위해 읽는 것이다. 20세기의 작가이자 평론가인 시릴 코널리는 "말은 살아 있고 문학은 도피가 된다. 그것은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삶 속으로 들어가는 도피이다"라고 말했다. 내가 책을 활용하고 싶었던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다. 살으로 되돌아가는 도피 말이다. 나는 책에 풍덩 빠졌다가 다시 온전해져 나타나고 싶었다.  35


나는 공책을 갖고 다니면서 내 생각들을 끼적거리기 시작했다... 난 교외의 이웃들을 염탐하기보다는 내 생각을 공책에 쓰는 편에 더 흥미가 있었으니까.  37


나는 독서를 하나의 규율로 정해두려고 한다. 독서에는 즐거움도 있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어떤 일정에 맞출 필요가 있다. 그렇게 몰두하지 않으면 삶의 다른 부분들이 슬금슬금 침범해 들어와 시간을 훔쳐 가버릴 수 있다. 읽고 싶은 만큼 읽지 못할 수도 있고, 필요한 만큼 충분히 읽지 못할 수도 있다. 책을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면 도피는 불가능하다. 청소해야할 먼지라든가 개켜야 할 옷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우유도 사야 하고 저역 식사도 마련해야 하며 설거지도 해야 한다. 하지만 1년 동안은 그런 일이 절대로 나를 방해하지 못한다. 나는 1년 동안 달리지도 않고 계획도 세우지 않고 가족도 돌보지 않으려고 한다. 1년 동안 '.... 하지 않기'를 하려 한다. 걱정하지 않기, 규제하지 않기, 돈을 벌지 않기. 물로 ㄴ우리 가족은 다른 수입원을 가질 수도 있지만, 워낙 오랫동안 한 사람의 수입으로만 살아왔으니 한 해 더 그렇게 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외의 지출은 뒤로 미루고 지금 가진 것으로 지낼 것이다.  43


내 계획에 따르면 매일 책 한 권씩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마흔 여섯 살 생일에 시작된다. 그날 첫째 권을 읽고 다음 날 첫 서평을 쓴다. 한 해 동아느이 계획은 단순했다. 어떤 저자의 책도 한 권 이상은 일지 않는다. 이미 읽은 책은 읽지 않는다. 읽은 책에 대해서는 모두 서평을 쓴다. 새 책, 새 저자의 책을 읽는다. 좋아하는 작가의 옛날 책을 읽는다. 예를 들면 <전쟁과 평화>는 안 되겠지만 톨스토이의 최후작인 <위조 쿠폰>은 읽을 수 있다. 할 수만 있다면 언니와 내가 함께 읽을 만한 책이라면 좋겠다. 함께 이야기하고, 논의하고, 동의했을 법한 책이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읽히기 위해 얼마나 열심인지 알 것이다. 그런 열성이야 당연히 좋지만, 어른들에게는 왜 매일 읽으라고 닦달하지 않는가? 왜 어른들에게는 매일 책 읽기를 권장하지 않는가?  44


사람들은 여기서 지금 살아간다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종종 이야기한다. 어린아이들이 과거나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주저 앉지 않고 즐거운 순간을 누리는 것을 부러워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행복한 순간을 회상하고 다시 행복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경험, 이미 살아본 삶이다. 한순간을 다시 살아내는 능력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종으로서 인간의 생존은 기억하는 이 능력에 달려 있다(어떤 나무 열매는 먹지 말 것, 이빨 가진 큰 동물에게는 접근하지 말 것, 불에 가까이 다가가기는 하되 건드리지 는 말 것등등). 하지만 우리 내면의 자아의 생존 역시 기억데 달려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가 왜 예리한 후각을 가졌겠는가?  55


병이 위중하면서도, 자신도 조만간 죽으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언니는 자신은 자살 충동을, 스스로 생명을 끊게 만드는 우울함에 대한 완전한 굴복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어찌 절망으로 끝내는 걸까?"

그녀가 옳았다. 절망에게 해줄 대답은 항상 있다. 장래에있을 아름다움에 대한 약속이 그것이다. 과거에 아름다움을 보았고 느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또 오리라는 것을 안다.  62-63


뒤를 돌아보면 내 현재 삶의 전체가 보인다. 지금 있는 곳에 오기 위해 무엇이 필요했는지, 아직 내 앞에 남은 삶에서 무엇을 갖고 싶은지를 보여준다. 큰 그림, 넓은 전망. 내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알기 위해 뒤를 돌아봄으로써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64


'뒤돌아 보기'는 지혜를 얻어서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나도 나의 한 해를 계속할 것이다. 현재의 독서, 과거의 기억, 미래의 지혜이다.  65


나는 내가 찾은 모든 행복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75


슬픔을 진정시키는 유일한 향유는 기억이다. 누군가를 죽음으로 잃는 고통을 덜어주는 유일한 진통제는 죽기 전에 존재했던 삶을 인정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기억한다고 해서 문자 그대로 그들이 되돌아오지 않고, 또 너무 일찍 죽은 사람에게 그들이 잃은 삶의 가능성을 모두 보상해주기에는 불충분하다. 하지만 기억은 회복력의 몸뚱이 주위에 구축되는 뼈대이다....

삶의 진실은 죽음의 불가피성으로써가 아니라 우리가 살았다는 경이에 의해 입증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과거로부터 삶의 기억하는 것이 점점 더 그 진실을 승인한다. 내가 자랄 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다. "행복을 찾지 마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다." 그의 말뜻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살아온 삶의 가치, 산다는 것의 순전한 가치가 그것이다.  100



누군가의 어깨에 일단 올라앉은 죄책감은 쉽게 떨쳐지지 않는다.  - 마틴 코릭 <우연히>



<우연히>의 첫머리에는 다음의 물음을 던진다. "이해하는 데 관심이 없다면 소설의 주제는 뭔가? 그저 시간 때우기 용인가?" 하지만 그는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 위대한 문학의 목적은 숨겨진 것을 드러내고 어둠 속에 있는 것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118


우리가 좋아하여 읽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어떤 책을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책이 우리 자신의 어떤 면모를 진정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131



한 권을 끝내기 싫어 가슴이 찢어진 적이 있는가? 마지막 페이지가 덮이고 한참 뒤까지도 계속 당신의 귀에서 속삭이고 있는 그런 작가가 있었는가?  - 엘리자베스 매과이어 <열린문>



아버지가 하신 말씀. "삶에서 행복을 찾지 말아라. 삶 그 자체가 행복이거든."  146


감옥을 방문한 동안 그랜트는 제퍼슨이 대모에게 말하는 것을 듣는다. "상관없어요... 아무것도 상관없다고요." 

대모는 대답한다. "내게는 상관있어, 제퍼슨... 넌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넌 내게는 중요한 사람이야. 이 말을 읽으면서 나는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게 바로 사랑의 핵심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해지는 것. 다른 모든 존재 중에서 내게 중요한 하나의 존재. 뭔가 개인적이고 특별한 어떤 것을 한 인물이 설명해줄 수 있다. 우리는 변해도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제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사랑받는다. 

한 사람에 대한 욕망은 그 고유한 평가와 그에 대한 필요를 느끼는 것과는 다르며, 애정과도 다르다. 욕망은 커졌다가 시들고, 애정은 오랜 헌신이 없어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넌 내게 중요해"라는 것은 긴 기다림이 받아들여지고,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나는 지금부터 쭉 너를 데려가고, 안아주고, 갈채를 보낼 것이다. 너는 내게 의지할 수 있다. 너를 보살피기 위해 내가 여기 있을 것이다. 네가 가고 난 뒤에도 난 여기서 너를 기억할 것이다.  163-164


잊힌다는 것은 용서받는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교훈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172


온갖 종류의 인간의 경험을 목격한다는 것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게 무엇이 중요한지 규정하는 것, 누가 중요하고 왜 중요한지를 규정하는 데 그것은 필요하다.  177


독서를 통해 나는 삶이란 고통이 고르지도 않고 무한정 부담을 져야 하는 것임을 발견했다. 비극은 제멋대로, 불공정하게 떠안겨진다. 편안한 시간이 오리라고 약속했지만 거짓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어떤 나쁜 일이 오더라도 그것이 부담은 될 수 있겠지만 올가미는 아닐 것이다. 책은 삶을, 내 삶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이제 나는 내게 일어났던 모든 나쁘고 슬픈 일들, 내가 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들이 모두 인간의 회복 능력의 대가이자 증거하는 사실을 이해한다. 

상상한 것이든 실제의 것이든, 경험의 가치는 우리가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살지 않을지를 보여주는 데 있다. 상이한 개릭터들과 그들의 선택이 낳는 결과에 대해 읽으면서 나는 나 자신이 바뀌었음을 깨달았다. 삶의 슬픔과 기쁨을 영위하는 새롭고도 분명한 방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178


욕구는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읽고 있던 책에 따르면 그것은 신체적, 정신적인 자극의 여러 지점에서 온다. 말은 가슴을 쓰다듬는 손길만큼이나 확실하게 열정을 휘저어놓는다. 하지만 욕구를 붙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욕구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에서 오며, 두 사람 사이의 연대를 복구시키기도 한다.  201


언니를 기억함으로써 나는 가장 지독한 죽음에도 저항하는 보증서를 쥐고 있는 셈이다. 그녀의 재미있는 행동을 기억하면서 웃고, 친절함을 생각하면서 미소짓고, 내일과 앞으로의 나날을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기억이 있는 곳에 진공은 없다.  210


인간은 희망과 사랑이 있는 곳에서 성장한다.  217


최악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보라는 것이다. 실망에 맞서는 회복력을 가지라는 것이다.  221


언제든 좋다. 무엇이든 좋다. 모든 게 다 좋다. 

내 반응은 내게 달려 있다. 적절한 종결이란 삶이 그에게 무엇을 주는가가 아니라 삶이 주는 것을 그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지만 삶이 빼앗아가는 것에 관해서는 뭐라고 해야 하나? 언니를 잃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갈까. 그 반응 역시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다.  246


우리는 질서를 발견할 수 있고, 또 발견한다. 책에서든 친구에게서든 가족에게서든 아니면 믿음에서든 말이다. 질서는 우리가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의해 규정된다. 질서는 삶이 제시하는 것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의해 창조된다. 질서는 모든 물음에 답이 있지는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발견 된다.  247


저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사람들을 서로 나누는 분열에 다리를 놓아주는 친절함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비슷하다.  256



무슨 책이든 읽으라. 그것을 다시 집어들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면 그렇게 하라.  - 닉 혼비 <집안일과 더러움의 대결>



매일의 책을 읽는 것은 항상 기쁨이었다. 독서의 한 해 내내 하루도 아픈 적이 없었다. 즐거움에 흠뻑 젖은 덕분에 면역성이 생겼다.  259


톨스토이는 이렇게 썼다. "삶의 유일한 의미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삶의 한 가지 사실이라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며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남는 것은 우리가 서로에게 해주는 것들이다.  278


책을 통해 나는 내 삶의 모든 아름다운 순간들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있는 방법을 배웠다. 

나 자신과 주위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웠고, 그들의 '힘든 짐'이 그저 지나가기를 애쓰도록 말이다.  279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을 치료해줄 수 있는 약은 없다. 또 있어서도 안 된다. 슬픔은 질병도 아니고 감염도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이며, 우리가 삶 그 자체를, 그 모든 경이와 전율과 아름다움과 만족감을 얼마나 귀중하게 평가하는지에 대한 긍정이다. 슬픔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살아가는 것이다.  280


"우리는 경이감 속에서 살고, 열정과 염려의 순환 속에서 타오른다." 나는 시인 캐럴린 키저의 이 말이 맞는다는 것을 안다.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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