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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31 클레오파트라 7세
  2. 2010.11.09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 Chapter6. 유혹, 소리 없는 점령군
클레오파트라 7세(기원전 69년 - 기원전 30년)는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여성 파라오이다.

생애

기원전 69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2세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부왕이 죽은 뒤(기원전 51년) 18살에 15세 된 남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3세(재위: 기원전 51~47년)와 결혼, 공동 파라오가 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재위: 기원전 47~44년)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권력 기반인 그리스계의 외면으로 자리에서 일시 물러났다.

기원전 48년 10월, 클레오파트라 7세는 폼페이우스와 권력투쟁을 벌이다가 이집트에 온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협상하였다. 다시 파라오 자리에 복귀한 클레오파트라는 정치적 반대자들을 물리친 후 정치에 몰두하였다.

기원전 47년 3월 27일 승리를 거둔 카이사르는 이후 2주일 동안 클레오파트라와 지낸 뒤 이집트를 떠났다. 클레오파트라의 아들 카이사리온이 실제로 카이사르의 아들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기원전 44년에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에는 기원전 42년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협동하였으며 3년 후 결혼하였다. 결혼 후 그녀는 남편 안토니우스의 권력투쟁을 경제적으로 도운 대가로 페니키아유다등의 쓸모 있는 영토를 할양받아 확장하였다.

권력구조의 변화로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레피두스와의 삼두정치가 깨지자 클레오파트라 7세는 BC 31년 9월 2일 명분상 자신에게 선전포고한 옥타비아누스에 대항하여 안토니우스와 함께 악티움 해전을 결행했다.

하지만 전쟁은 실패하였고 자신을 일개 이집트 여인으로 취급하는 옥타비아누스와 연합할 수 없음을 직감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했다. 에 물려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독가스를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자살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옥타비아누스가 죽여놓고 뱀에 물려 자살했다고 발표해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려고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뱀에 의한 자살, 독가스에 의한 자살, 타살, 에이즈(AIDS) 감염에 의한 병사(病死)등등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평가

클레오파트라는 지식인인 블레즈 파스칼조차도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다고 할 정도로 남성들에게 성적인 관점에서 평가받았다. 그리고 살아 있을 때에도 옥타비아누스로부터 로마를 짓밟는 이집트 여인 취급을 받은 일이 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가 강대국 로마 제국을 이용하여 나라를 보전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그녀의 진짜 모습은 미모로 남성들을 유혹하는 요녀가 아니라, 궁전 밖의 세계를 다스리고자 한 여걸(女傑)이었다는 관점이 있다. 



클레오파트라



기원 전 50 년경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상 그 어떤 여인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다. 한 편의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그녀의 흥미진진한 생애와 러브스토리는 지금껏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하는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
파라오 율법에 따라남동생들과 두 번씩이나 결혼해 왕좌에 올랐고 왕권을 쟁취하기 위해 남편이며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치열한 권력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리했다.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여왕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그녀의 생애는 소설보다 더 흥미롭다.
클레오파트라의 생애 중에서 일반인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부분은 그녀가 로마의 지배자인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차례로 유혹한 과정이다. 당대 최정상에 오른 두 남자를 어떻게 그처럼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기원 전 48년 클레오파트라는 남편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의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후 강제로 폐위되어 유배된 상태였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를 침공한 카이 사르의 막강한 힘을 빌어 왕권을 되찾는 계획을 세웠다. 그녀는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로마의 최고 실력자인 카이사르와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졌다. 위 그림에서 보면 클레오파트라는 알렉산드리를 정복한 카이사르가 이집트 왕궁에 묵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삼엄한 경계를 뚫고 몰래 그에게 접근하려던 그녀는 기막힌 계락을 떠올렸다. 스스로 양탄자 위에 드러누운 뒤 충복에게 자신의 몸을 양탄자로둘둘 말 것을 명령했다. 충복은 어깨에 맨 양탄자를 호위 병사들에게 보인 후 집정관에게 줄 값진 선물을 가져왔다고 둘러댔다. 큼직한 양탄자는 카이사르의 눈길을 끌었고 호기심이 발동한 카이사르는 서둘러 양탄자를 풀게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양탄자를 펼치기가 무섭게 눈부시게 아름다운 반라의 여왕이 비너스처럼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완전히 반한 카이사르는 연인이 되었음은 말한 나위가 없고 여왕의 정적을 모두 제거하고 그녀를 왕좌에 앉혔다. 여왕은 카이사르의 권력을 이용해 왕권을 되찾고 피맺힌
복수를 감행할 수 있었다..  
 
그의 연인이 되어 아들 카이사리온까지 낳고야망을 키우던 클레오파트라에게 
찬 물을 끼얹는 사건이 발생했다. 기원 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의 무한한 권력에 
위협을 느낀 정적들이 카이사르를 암살하였다. 클레오파트라는 다음 상대로 
카이사르의 암살 이후로마 최고의 실력자로 부상한 안토니우스를 점 찍었다. 
삼두 정치인 중 한 사람인 안토니우스가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 사령관 에 오른 후 
동방 원정길에 나섰다는 정보를 입수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신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묘안을 짜냈다. 위의 그림에서 앨마 테디마는 그리스의
 역사가 플루타르크가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만남을
묘사한 글을 토대로 이 그림을 그렸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첫 만남을 
가진 장소는 타르수스다. 오늘날에는 터키의 한 지방 도시에 불과하지만 고대의 
타르수스는 소아시아에서 
가장 손꼽히는 대도시였다. 시가지는 강으로 이어져 있었는데클레오파트라는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 배를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와 안토니우스를 만났다. 
선체는 황금빛이요, 바람을 받아 크게 부풀어 오른 돛은 가장 값비싼 색깔인 
자주색이었으며 갑판 중앙에는 금실로 수놓은 장막이 좌우로 열려 있고 그 아래 
옥좌에 사랑의 여신 비너스로 분장한 
클레오파트라가 앉았다. 노예들은 은으로 만든 노를 저으며 피리와 하프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고 배에서는 형용할 수 없는 향기가 바람을 타고 진동했다. 
이 화려한 첫 만남에 안토니우스는 
그만 혼을 뺏기고 말았다. 정신이 나간 안토니우스가 벌떡 일어서서
두려움과 경이로움이 가득 찬 눈길로
클레오파트라를 바라본다. 클레오파트라는 금으로 장식된 이동 닫집 아래 
비스듬히 몸을 기대고 앉아요염한 눈초리로 안토니우스를 탐색한다. 
안토니우스와 극적인 첫 만남을 가진 이후 클레오파트라는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행여 안토니우스가 권태를 
느낄새라 늘 새로운 쾌락을 개발했고 날마다 산해진미에악사와 무희를 동원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런 생활이 10년이 넘도록 이어지자 클레오파트라는 
연인을 아예 자신 곁에 못 박아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려  
안토니우스의 사랑이순간적인 열정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끝내 신분과 국적 동양과 서양이라는 인종적인 차이를 무시하고 
이국의 여왕과 혼인식을 올릴만큼 안토니우스는 철저하게 여왕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안토니우스는 결혼 선물로 여왕에게 엄청난 
이권이 걸린 오리엔트 지방의 통치권을 주었다. 로마의 권력자를 
애인으로 둔 덕분에 그녀는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재물과 권력을 
소유한 여왕이 되었다. 

Cleopatra 사랑에 눈이 먼 안토니우스는 로마의 아내 옥타비아에게 
이혼을 요구하는 편지를 쓰고 또 다른 권력자인 옥타비아누스에게 
로마의 지배권을 동서로 양분할 것을 요구했다.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자 
로마인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국사를 돌보기는 커녕 
힘들게 정복한 식민지에서 나온 귀한 수입을 이집트 여인에게 몸땅 
안겨주는 사령관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특히 로마의 상속자요, 
양자인 옥타비아누스는  여왕의 노예로 전락한 안토니우스를 로마의 
수치로 생각했다. 그는 두 남녀를 국가의 명예를 더럽힌 탕아와 
국제적인 창녀의 야합으로 매도한 후 안토니우스를 제거하기 위한 
전쟁을 벌였다. 결국 옥타비아누스는 기원전 31년에 벌어진 악티움 해전의 
승자가 되었고 패전 사령관이 되어 벼랑 끝에 몰린 안토니우스는 자결하였다.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만큼 갑작스럽고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안토니우스의 묘를 참배하고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최후를 맞았고 역사가들은 그녀가 독사에 물려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클레오파트라를 그릴 때는 독사가 벌거벗은 여왕의 젖가슴을 무는 자극적인 
장면을 선택하는 것이 관습처럼 되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에로티시즘이 
강하게 풍겨 나오는 것은 죽음과 성을 한 쌍으로 묶어 표현했기 때문이다. 
The Death of Cleopatra 클레오파트라가 팜므 파탈의 원형이 된 것은 정치적인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권력의 최정상에 앉은 남자들을 차례로 유혹해 희생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을 이용해 왕권을 
차지했고 애인들의 막강한 힘을 빌어 정적을 제거하고 부귀영화를 누렸다. 
플루타르크는 클레오파트라의 신비로운 죽음에 대해 여왕의 갑작스런 죽음은 
탐스런 무화과 바구니를 든 농부가 여왕을 방문한 직후에 일어났다. 무화과 
바구니에 맹독성이 강한 독사가 들어 있었던 것일까? 라고 강한 의문을 던졌다. 
들라크루아는 클레오파트라를 방문한 농부의 바구니 속에 숨겨져 있는 뱀을 
그려 넣어 극적인 죽음을 예견하고 있다. 우리가 클레오파트라 라고 부르는 
여왕은 클레오파트라 3세 이다 
이집트 왕조에서는 여왕이 제법 있었는데 고대 이집트 역사 연대기 문헌을 보면 
클레오파트라의 시대가 제법 있었다 
몇 명의 클레오파트라 라는 이름을 가진 여왕들 중 가장 활약상이 두드러졌던 여왕이 
클레오파트라 3세 였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 파스칼의 유명한 말처럼 
 
클레오파트라는 세계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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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의 노래, 귀뚜라미의 울음, 반딧불이의 불빛, 노루의 사향, 이 모두가 유혹의 다양한 수단과 방식이다. 유혹은 생명력의 발현이고, 생명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즉, '유혹한다'는 것은 '생동(生動)한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사람은 주로 '말'로써 상대방을 유혹한다. 유혹이란 단어에서 '꾈 유(誘)'자가 '말씀 언(言)'자에 '빼어날 수(秀)'자를 합친 것이라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역사도 증명하고 있는데, 성경의 시초부터 나온다. 여자는 뱀에게 유혹당하고, 그 여자는 남자를 유혹한다. 

이처럼 우리는 유혹 속에서 숨 쉬고, 먹고, 잠들고, 살아간다. 실제로 모든 인간은 유혹해야 살아남는다. 연인이든, 정치인이든, 상품이든, 기업이든 유혹 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유혹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로버트 그린(Robert Greene)은 <유혹의 기술(The Art or Seducation)>에서 대표적인 유혹자 유형 9가지를 정리한다.
1. 코케트(the Coquette) - 냉담한 나르시시스트 형
붗잡을 수 없는 그림자와 같은 유형을 말한다. 마음을 주는 척하다 갑자기 돌아서서 상대를 혼란스럽게 만들어 매달리도록 만드는 유형. 열띤 선ㄷㅇ 뒤에 갑자기 모습을 감춰 대중과의 거리를 유지했던 마오쩌둥, 부탁을 들어줄 듯 말듯하면서 늘 상대를 달아오르게 만들었던 나폴에롱의 연인 조세핀, 앤디워홀, 엘리자베스 1세등이 대표적인 인물.
2. 카리스마(the Charismatic) - 열정적인 신념가 형
불꽃처럼 사람을 강하게 끌어당기며, 분명한 목적과 신비감이 열정과 결합해 흡인력 있는 자석이 된다. 말콤엑스(미국 흑인 해방운동의 급진파 지도자), 크리슈나무르티(사상가이자 종교 지도자), 드골(프랑스의 군인이자 정치가), 잔 다르크, 나폴레옹 등이 대표인물.
2. 스타(the Star) - 신비로운 우상 형
돋보이는 형상을 유지하여, 그로인해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을 보고, 느끼고 싶어 하는 것을 느낀다. 진짜 힘은 대리만족이다. 영화배우 마를렌느 디트리히, 존 F. 케네디 대통령, 생베르맹 백작(불사신이라 불렸던 18세기의 연금술사) 같은 유형.
4. 세이렌(the Siren) - 요부 형
성적인 매력을 극대화해 물처럼 유연하고 매혹적이다. 클레오파트라, 마릴린 먼로, 폴린 보나파르트(나폴레옹의 여동생, 색정증의 화신으로 불렸다.), 서시(西施, 춘추 시대 월나라의 미인) 등이 있다.
5. 레이크(the Rake) - 바람둥이 형
남자지만 세리렌처럼 관능적이 매력으로 마음을 잡는다. 돈 후안, 엘비스 프레슬리, 가브리엘레 단눈치오(이탈리아 문학가), 리슐리외(프랑스 정치가) 등이 유형.
6. 아이디얼 러버(the Ideal Lover) - 헌신적인 연인 형
낭만, 모험, 정신적 교감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강하게 다가간다. 즉 깨진 꿈을 다시 실현시켜줄 것 같은 구원자의 모습. 카사노바는 단순히 여성을 유혹하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만나는 그 순간부터 상대를 연구하고 원하는 바를 미리 파악해 상대의 기분을 맞춰주었을 뿐만 아니라, 재빠르게 그 부분을 행동으로 채워주었다. 카사노바, 퐁파두르 부인, 세르게이 살티코프(러시아 예카태리나 2세의 연인으로 그녀를 위해 수많은 역경과 위험을 감수한다)등이 있다.
7. 댄디(the Dandy) - 창조족 스타일리스트 형
이들은 누군가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의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댄디 형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스스로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유혹적인 존재다.
8. 내추럴(the Natural) - 천진난만 형
천진난만한 모습은 경계심이 아닌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들은 어린 아이의 특성을 가진 존재로, 누구나 이들 앞에서는 편안하게 자신을 열고 장난기 어린 마음으로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환상에 젖는다. 버킹엄 공작, 찰리 채플린 등이 대표 유형.
9. 차머(the Charmer) - 능란한 외교가 형
간접 조명 같은 존재, 차머는 자신을 감추고 상대를 관심의 대상으로 내세웠다. 상대를 스타로 만들어주면서, 상대로 하여금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고, 그럼으로써 상대의 뒤에서 빛을 발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총리로, 그가 없었다면 빅토리아 여왕도 없었을 것이다. 저우언 라이없이는 마오쩌둥도 없었다. 

효과적인 유혹의 기술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 상대를 안심시킨 후 허를 찔러라.
둘째, 대비 효과를 누려라. 지미 카터의 우유부단한 모습은 로널드 레이건의 자신감 넘치는 이미지를 더욱 부각 시켰던 것처럼, 상대의 단점과 나의 장점을 대비시킬 때 유혹의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셋째, 상대의 방어 본능을 잠재워라. 상대의 경직된 마음을 누그러뜨려 방어 본능을 저하시키고, 내면 깊숙이 들어가 상대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넷째, 유머와 풍자로 상황을 반전시켜라. 
다섯째, 이야기를 통해 유혹의 힘을 지속시켜라. 스토리를 끊임없이 이어가는 능력은 대단한 힘이자 무기다.
여섯째, 감각적인 최면 효과로 유혹하라.

유혹의 대가 5인
- 클레오파트라
그녀는 지적수준과 독특한 화장법, 그리고 상상을 넘어선 쾌락으로 국가를 유지하였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유혹함으로 실현시켰다.
- 엘리자베스 1세 
그녀는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유혹해야 함을 알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결혼 문제를 논란거리로 삼는 전략을 펼쳤다. 그녀는 균형잡힌 유혹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연민, 동정, 인내, 경청등 여성적인 특성과 동시에 대담하고 결단력 있고 야심찬 남성적 특징까지 고루 갖추고 있었다.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그에게 전쟁은 곧 정치이자 거대한 유혹이었다. 그의 일차적인 승리 비결은 민첩성에 있었지만 결정적인 승리의 비결은 적의 심리적 균형을 허무는데 있었다. 
- 존 F. 케네디
빛나는 미소와 자연스러우면서도 깔끔한 이미지, 핵전재의 위협 속에서도 외교적 승리를 이끈 두둑한 배짱, 무엇보다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고 움직인 강렬한 호소력 등이 매력이었지만, 그의 진정한 매력은 바로 '목표'에 있었다. 
- 에바 페론(에비타)
후안 페론 대령을 결국은 대통령으로 올리며 "나는 다른 사람들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내 꿈을 접었습니다. 나는 내 영혼을 내 민족의 제단 앞에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 나는 온몸을 바쳐 여러분 모두를 미래의 행복으로 이끄는 다리 역할을 하겠습니다. 나를 밟고 지나가세요. 해로운 조국의 웅장한 미래를 향해서요." 라며 아르헨티나 전체를 유혹하였다. 

우리 앞에 펼쳐진 시장은 '감각의 제국'과 다름없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오감을 활짝 열고, 유혹의 심리학, 아니 유혹의 관계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결국 유혹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첫째, 남을 따라하는 대신 자신만의 맛과 멋을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이다. 
둘째, 싫증나지 않는 새로움을 약속해야 한다.
셋째, 스스로지치지 않게 유혹 그 자체를 즐겨야 한다.
넷째, 지체하지 말고 유혹의 결실을 만끽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쉬지 말고 다시 유혹해야 한다.

유혹은 천천히 스며들 뿐, 결코 대상을 부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용한 유혹은 결국 상대의 삶을 소리 없이 점령해 버린다. 바로 유혹은 하나의 소프트 파워 '딱딱하지 않은 말랑말랑한 것'의 힘이다.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푸 나이는 <소프트 파워>에서 "소프트 파워란 강제나 보상보다는 마음을 끄는 힘, 즉 유혹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얻는 능력을 말한다." 라고 하였다. 
즉 진정한 힘은 '얼마나 적을 죽일 수 있는가?'라는 하드 파워의 영역이 아니라, '내 편에 설 협력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라는 소프트 파워에 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진정한 나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나의 소프트 파워는 무엇인가? 나의 말랑말랑한 힘은 무엇인가?' 를 치열하게 고민해 보는 일이다.



진정한 유혹이란 것은 저자가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처럼 파괴하여 얻는것이 아니라 협력자를 얻는것이다.
지금의 시대는 소통의 관계를 원한다.
소통과 관계. 이것은 진정한 소프트 파워인 동시에 유혹의 핵심이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말처럼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것이 힘이 든가를 우리는 잘 알고있다.
어렵다고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속을 알려고만 하면 알 수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알기위해서는 그의 마음이 나를 향하도록 해야한다. 
그렇게 되었을때 그의 속은 물속 보다 잘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굳이 속을 알지 못해도 되는것 아닌가? 
상대의 마음이 나를 향하게 된다면 알지 않아도 될듯하다.
꼭 연인의 마음 뿐 아니라 나와 관계를 하는 많은 사람들을 총칭해서 보라.. 
내가 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가..관계속에서 원활한 소통을 이루어 나가면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향하는 것을 알게된다.
그러기 저자가 결론에서 '치령하게 고민해 보는'것이라 한것처럼, 노력을 끊임없이 해 나가는 것이 사람의 속을 알려하는 것보다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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