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카뮈

2023. 1. 27.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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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해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가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에서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작인 <이방인>의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을 만큼 케인은 프랑스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 작가 중 하나였다. <오디세이>나 <천일야화>도 당대의 싸구려 통속소설(pulp fiction)이었다. 하지만 근대적 학교 제도의 확립과 문맹률 감소로 인한 독자 대중의 확대, 윤전 인쇄기와 제본기의 발명으로 인한 서적과 신문의 대량생산, 여기에 우편 서비스와 철로를 통한 보급 체제의 확대로 인쇄 분야에 산업 자본이 유입됐고 그로 인해 서적의 각격이 적당하게 저렴해진 것은 19세기였다. <포스트맨>은 실존주의의 대표작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만큼 심미적 깊이가 있는 미국의 대표적인 하드보일드(hard boiled) 소설이다.
하드보일드 계열의 문학에 관한 비평문을 처음 쓴 에드먼드 윌슨(Edmund Wilson)은 1930년대와 1940년대 미국의 선정(煽情) 소설은 “전부 헤밍웨이에게서 유래했다.”고 말한다.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 중 또는 그 직후 성년이 되어, 전쟁 체험과 당시의 사회적 격변의 결과로 문화적 정서적 안정을 잃어버리고 가치관을 상실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대표 작가다. 젊은 시절 케인의 위악적(僞惡的) 삶도 이런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1923년 귀국한 케인은 유년 시절부터 애인이던 메리 클라우와 결혼하고 1924년까지 세인트존스 대학의 언론학과 교수로 일한다. 1924년이 되자 케인은 월터 리프먼을 위해 <뉴욕 월드>의 편집부 기자로 비판적 칼럼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아내를 아나폴리스에 남겨 두고 혼자 뉴욕으로 이주한다. 뉴욕에서 그는 엘리나 티즈제카와 동거하면서 대여섯 명의 여자와 데이트한다. 후원자인 H. L. 멘켄의 “사랑은 여자들이 서로 다르다는 환상이다.”라는 주장에 대해 케인이 “사랑은 여자들이 정말로 서로 다르다는 발견이다.” 라고 주장하는데 이런 냉소적 인생관이 당대의 주류였고 <포스트맨>의 정서적 배경이다. <포스트맨>은 미국 출판업계 최초의 베스트셀러로 양장본, 문고판, 희곡, 영화와 오페라로 현재까지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세인트루이스 오페라 극장의 위탁에 따라 콜린 그레이엄이 대본을 쓰고 스티븐 파울루스가 작곡하여 1982년 6월 17일 초연된 120분짜리 오페라에서 프랭크는 바리톤, 닉 파파다키스는 테너, 코라는 소프라노, 새킷은 베이스, 카츠는 테어였다. 171-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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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마리가 나를 보러 와서는 자기와 결혼할 마음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런다고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녀가 원한다면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가 자기를 사랑하는지 알고 싶어 했다. 나는 이미 한 번 말했듯이, 그건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녀를 사랑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답했다. "그런데 왜 나랑 결혼을 하죠?"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당신이 원한다면 우리가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제안한 사람은 그녀였고 나는 그러자고 말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거라고, 그러자 그녀는 결혼은 진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는 "아니"라고 답했다. 그녀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그녀가 말했다. 자기는 단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나와 얽힌 또 다른 여자가 프러포즈를 해온다 해도 받아들일 것인지를 알고 싶다고. 나는 "물론"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혼잣말로 자신이 날 사랑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점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전혀 알 수 없었다. 또다시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에 그녀는 내가 특이하다고, 아마 그 때문에 내가 싫어질 거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덧붙일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그녀가 내 팔을 잡고 웃으며 나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65-66


늙어 간다는 것은 치유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69


나 자신이 완전히 텅 빈 느낌이 들었고...  71


나는 엄마를 무척 사랑했지만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거다. 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은 많이든 적게든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소원한다.  93


사람이 죽는 이상, 어떻게와 언제냐는 중요하지 않다.  155


때때로 우리는 자기가 확신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157


".. 당신도 한번쯤은 다른 삶을 원했었다는 걸" 나는 물론 그랬다고 답했으나, 그것은 부자가 된다든가 헤엄을 매우 빨리 칠 수 있다든가, 아니면 좀 더 잘생긴 입을 가지게 되기를 원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162


아주 오랜만에 다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녀가 왜 말년에 "약혼자"를 갖게 되었는지, 왜 그녀가 새로운 시작을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 거기에서도, 삶이 점차 희미해져 가는 그곳 양로원에서도, 저녁은 쓸쓸한 휴식 같은 것이었다. 죽음에 인접해서야, 엄마는 해방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됐다고 느꼈음에 틀림없었다. 누구도,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에 울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음을 느꼈다. 마치 이 거대한 분노가 내게서 악을 쫓아내고, 희망을 비워 낸 것처럼, 처음으로 신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 세계가 나와 너무도 닮았다는 것을, 마침내 한 형제라는 것을 실감했기에, 나는 행복했고, 여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위하여, 내가 혼자임이 덜 느껴질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유일한 소원은 나의 사형 집행에 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증오의 함성으로 나를 맞아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165-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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