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행을 떠나려 할까?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하려면, 즉 우리의 여행 동기를 정확히 알려면 먼저 여행 동기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다음으로는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한 뒤 자신의 여행 동기가 어떤 특징을 띠는지를 파악해봐야 한다. 얼핏 복잡해 보이지만 질문의 구조는 단순하다. 먼저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질문을 하고 다음으로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고 물은 뒤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라고 자문해보는 것이다.  22


메릴랜드 대학의 이소 아홀라(Sepp.o E. Iso-Ahola)는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유래한 접근-회피 동기 개념을 이용해 "사람들은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질문에 답함으로써 여행 동기 연구에 오랜 기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고 무언가를 하려는 '접근 동기'에 따라 행도에 나서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피하고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는 '회피동기'에 따라 움직이기도 한다. ..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는 언제나 동시에 나타나서 일정한 비율로 조합된다. 세상 모든 일에는 A를 얻는 것과 B를 회피하는 측면이 전부 있기 때문이다. 

이소 아홀라는 여행도 이와 똑같다고 말한다. 여행은 무엇인가를 피하려는 회피 활동인 동시에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는 접근 활동이다. 여행은 도피이지 탐색이며 탈출이자 추구이다. 따라서 여행을 통해 도피하고 탈출하려는 대상과 여행을 통해 탐색하고 추구하려는 대상 사이에는 긴밀한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다.  23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가 각기 어느 정도 비중으로 조합되느냐 하는 것도 나름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두 동기의 조합 양상이 여행의 양상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여행의 양상은 여행자의 성격과 가치, 여행자가 수집한 정보, 여행지의 이미지, 타인의 영향, 여행 기술, 돈, 시간 등 다양한 요인에 따라 결정되는데, 접근 동기와 회피 동기의 비율도 여기에 고유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24


성격 5요인(또는 '빅 파이브').

성실성이란 계획성과 끈기, 목표 지향성을 뜻하는 성격 특성이다. 성실성이 높은 사람은 항상 시간을 잘 지키고, 꼼꼼하고, 인내심이 강하고, 자기 통제력이 강한 사람이다. 성실성이 낮은 사람은 게으르고 주의가 산만하며 의지가 박약한 사람을 뜻한다.

우호성은 대인 관계 상황에서 어떤 감정과 행동을 나타내는지에 대한 성격 특성이다. 우호성이 높은 사람은 상냥하고 친절하며 스스로 솔직하면서 남을 잘 믿는 사람이다. 우호성이 낮은 사람은 냉소적이고 교활하며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신경증 성향은 정서적 안정성/불안정성을 나타내는 성격 특성이다. 신경증 성향이 높은 사람, 즉 정서적 불안정성이 높은 사람은 매사 자신이 없고 건강염려증이 있으며 항상 불안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신경증 성향이 낮은 사람, 즉 정서적 안정성이 높은 사람은 차분하고 강인하며 편안한 사람이자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32


외-내향성은 대인관계나 직장 생활, 여가 활동 등에 폭넓고 강한 영향을 끼치는 성격 특성이고, 당연히 여행의 동기와 여행자의 행동에도 강한 영향을 끼친다. 외향인은 지루한 일상가 답답한 인간관계에서 탈출하여 신나고 자극적인 경험과 강렬한 육체적 활동, 새로운 사람들과의 열렬한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여행을 떠난다. 

반면 내향인은 스트레스를 주는 환경과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평온함을 느끼고 자기를 성찰하며 친밀한 살마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여행을 즐긴다. 

개방성은 특히 새로운 시직을 습득하고 다양한 문화와 상호작용하며 미적, 예술적 생활을 즐기는 양상과 큰 관련이 있는 성격 특성이다. 즉 어떤 사람이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 또는 미술가를 좋아하거나 베스트셀러가 아닌 책을 읽고 있다면 이 사람이 오타쿠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보다는 이 사람의 개방성이 높을 것이라 짐작하는 편이 낫다. 

개방성은 본질적으로 이질적인 문화에 접촉하고 새로운 지식과 현상을 탐사하는 특성을 띠는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여행을 통해 지적, 예술적 호기심을 충족하려 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문화의 틀을 체험하려 한다. 

반면 개방성이 낮은 여행자들은 고향에서 가깝고, 문화적인 차이가 작고, 안전하고 깨끗한 여행지를 찾아내서 그곳을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며 만족스러운 여행을 즐긴다.  37-38


외-내향성과 개방성에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곧 "나는 왜 여행을 떠날까?"라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게 된다.  38


기대감이란 우리가 어떤 기대를 하고 있든 바로 그 기대가 충족되리라는 희망적인 예측에서 오는 것이다.  45


다양한 긍정 정서와 행복감 체험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행은 우리가 인생의 다양한 부분에서 더 큰 만족감을 경험하게 해준다.  46


관계 강화의 측면은 여행의 큰 매력 중 하나이다. 

여행학 연구가 다루는 중요한 여행 행동 가운데 하나로 '반복 방문'(또는 '재이용')이라는 것이 있다. 반복 방문이란 어떤 사람이 자기가 벌써 가봤던 여행지를 다시 찾는 현상으로, 공급자 처지에서는 그 원인과 촉진 조건이 매우 궁금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47


사람들이 어떤 여행지를 두 번 이상 방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좋았으니까" "한번 가본 곳이라 친숙하고 편하니까" "어려움이 없고 별다른 계획을 짜지 않아도 되니까" "이미 검증되었으니까" "다른 곳은 잘 모르니까" 등등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이유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리처드 기텔슨(Richard J. Gitelson)과 존 크럼프턴(John L. Crompton)은 이런 이유들 외에 한 가지 뜻밖의 요인을 밝혀냈다. 이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그곳으로 데려가기 위해 같은 여행지를 반복해서 방문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정말 좋다고 느꼈던 경치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 사람 손을 잡아끌고 그곳으로 돌아간다. 사람들은 자기가 마음에 들어했던 음식을 누군가에게 맛보여주기 위해 그곳으로 돌아간다. 혼자서 봤던 멋진 축제를 함께 감상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고 이를 함께 느끼기 위해 돌아간다. 아름답지 않은가?  48


여행은 우리를 다방면에서 한층 성장하게 한다...

매슈 스톤(Matthew J. Stone)과 제임스 페트릭(James F. Petrick)은 여행이 '경험학습'을 유발하기 때문에 이런 자기 성장의 효과를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경험학습이란 우리가 기존의 지식이나 경험 또는 호기심을 바탕으로 능동적인 실험을 하고, 실험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경험을 하며, 이 경험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곱씹으면서 추상적인 개념을 도출해내는 학습 과정을 뜻한다.  49


여행을 통해 우리의 정서지능이 상승한다.

우리는 각종 정서를 더 확실하게 인식할 수 있고("이게 행복이로구나!") 정서가 발생한 원인을 잘 추론할 수 있으며("날이 더우니까 아무한테나 화를 내게 되네!") 각 정서가 낳는 결과가 무엇인지도 이해하게 된다("아무 데서나 화를 내면 곤란한 상황에 빠지기도 하는구나!"). 마찬가지로 정서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타인을 바라보며 타인의 정서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법을 익힐 수 있다.  50-51


여행은 물론 문화지능의 상승과도 깊은 관계를 맺는다.  51


2011년, 세니자 코셰비치(Senija Causevic)와 폴 린치(Paul Lynch)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여행 산업이 수행하는 역할을 다룬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처럼 전쟁과 학살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지역으로 여행하는 것을 '불사조 여행'이라 정의한다. 여행자들이 여행지의 사회공동체가 잿더미를 딛고 다시 피어나도록 돕기 때문이다.

코셰비치와 린치가 설명하는 불사조 여행의 작동 단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전쟁과 학살을 겪은 장소는 여행자들에게 삶과 인간성, 국가와 공동체에 대해 숙고하게끔 하는 고유한 매력을 지니게 된다. 여행자들은 이러한 통찰을 얻는 동시에 전쟁에 지친 여행지 민중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와 같은 장소를 여행하기로 마음먹는다.

일단 여행자들이 유입되면 여행지 민중은 여행자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공동체를 재생할 수 있다. 여행자와 상호작용하기전, 즉 여행지 민중이 전쟁의 참상을 자기들끼리만 끌어안고 있는 상태에서는 전쟁의 참상이 피가 철철 흐르는 '상처'로만 남아 있다. 즉 무너진 집은 여전히 '무너져버린 내 집'이고 학살의 희생자들은 여전히 '죽어버린 우리 가족'이다. 반면 전쟁의 폐허와 학살의 장소를 여행자들에게 공개하고 나면 여행지 민중은 이제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두 번째 장례'를 치러줄 수 있게 된다. 여행자들과 대화하고, 폐허와 학살지를 관광지로 정비하면서 여행지 민중은 전쟁의 '상처'를 아물어가는 '흉터'로, '살해당한 가족'을 '돌아가신 역사적 인물'로 다시 정의할 수 있다. 즉 여행지 민중은 전쟁과 학살을 비로소 과거의 일로 묻어두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따라서 불사조 여행을 하는 여행자는 전쟁과 학살을 겪은 여행지에 경제적 도움과 심리적 지지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여행지 민중이 자기들의 아픈 경험을 객관화하고 역사화할 수 있게끔 돕는다. 전쟁 후 보스니아를 여행한 사람들은 이렇게 보스니아 사람들이 오늘날 다문화주의와 다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본연의 모습을 되찾고 화합과 재생을 강조하는 공동체를 수립하는 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  54-56


여행의 만족이나 행복은 항상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62


좋은 여행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기가 막힌 궁합만은 아니다.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고, 행복한 여행을 하게 해주는 마음가짐을 체득할 필요가 잇으며, 행복한 여행을 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해주는 행동 규범을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기술과 심리적인 자질을 갖추고 올바른 규범을 익힌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고 여행의 가치과 효과를 최대한 누리며 전파하는 '좋은 여행자'가 될 수 있다. 좋은 여행자가 된다면 우리가 앞서 품었던 마지막 의문인 "여행이 딱히 그런 의미와 가치는 없는 것 같은데?"라는 의구심 또한 자연스럽게 해소될 거싱다.  63




여행은 언제나 모든 사람에게 맞춰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 내가 터득한 요령을 세 가지만 적어보고자 한다.  80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그만큼 공동체의 복지를 증진하고 문명의 진화를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항상 문화적 접촉과 교류를 통해 다채로운 대안을 섭취하고, 이를 변용하거나 자신의 문화와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발명품, 새로운 지식과 이론, 새로운 사회 제도를 창조해왔다. ..

물론 '선진국'으로 떠나는 여행에서도 다양한 지식을 습들하고 많은 문화적 아이디어를 습득할 수 있다. ..

문화적 교류는 상대적으로 덜 발전한 지역이 더 발전한 지역의 문화를 '공부'해서 일방적으로 수입해 쓰는 식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인간은 매우 창조적인 존재이며, 남이 잘 만들어놓은 것을 베껴서 쓰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한테서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서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낼 줄 안다. 피카소는 아프리카의 공예품에서 문화적 아이디어를 취해 입체파를 개창했고, 이로써 서구의 회화 양식에 혁명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현대를 사는 우리도 여전히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것들을 얻을 수 있다.

당장 아시아에만 나가보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다양한 민족과 문화의 공존이라는 가치를 느낄 수 있고, 인도 펀자브에서는 근면과 봉사의 정신을 몸으로 느낄 수 있으며, 태국에서는 관용과 프라이버시를 중시하는 문활르 경험하고, 일본에서는 철저한 질서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목도할 수 있다. 태국과 인도네이사의 색다른 패션, 일본의 아기자기한 공예품, 인도의 색감과 영화, 노래, 춤, 각국의 다양하고 고유한 음식들에 이르기까지 신선한 자극을 주는 문화적 요소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심지어 여행지의 문화에서 이런 장점들을 읽을 수 없다면, 적어도 그곳의 문화에서 안타깝다 싶은 점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는 있다.  87-89


문화충격을 완화하여 생경한 문화를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치료제는 대략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시간, 둘째는 문화 지능, 셋째는 여행자의 성격과 동기이다.

먼저 시간. 고전적인 문화충격 연구자들은 우리의 문화충격 경험이 시간에 따라 4단계로 전개된다고 말한다. 1단계는 새로운 문화에 매력을 느끼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적 장벽에 직면하는 단계이다. 이때 우리는 아직 낯설고 이국적인 문화에 호기심과 흥미를 간직하고 있다. 반면 2단계에 접어들면 이제 낯설고 이국적인 문화에서 적대감과 실망을 느끼고 고국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게 된다. 이때 우리 입에서는 "이 사람들 너무 더러워서 안 되겠어. 역시 한국이 위생 면에서는 최고야" "애들이 너무 싸가지가 없네. 이걸 보면 한국이 그래도 교육은 잘 시킨단 밀이야" 등등의 말이 튀어나온다.

여행 기간이 매우 짧을 경우, 우리는 가히 주화입마(走火入魔 달릴주 불화 들입 마귀마)의 단계라 할 수 있는 이 문화충격 2단계에 접어든 채 여행을 마치게 된다. 여행지의 문화에 대한 반감과 여행에 대한 불만족을 품에 안은 채로. 그러나 여행 기간을 조금만 더 길게 가져간다면 우리는 문화적 적응도가 향상되고 긴장감이 감소하는 문화충격의 3단계에 접어들 수 있다. 어떤 지역을 석 달 이상 장기간에 걸쳐 여행한다면 현지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진정한 다문화주의를 취할 수 있는 문화충격의 4단계(더는 충격이라 표현할 수 없는 상태이다)를 체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시간은 문화충격의 좋은 치료제 중 하나라는 것이 고전적인 이론가들의 견해이다.  

반면 최근의 심리학자들은 단순한 시간 요인보다 문화지능을 더 중시한다. 문화지능이란 상이한 문화에 접촉했을 때 어떤 지식과 행동이 필요한지 파악해서 이런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실제로 적용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즉 문화지능이 높은 사람은 "외국에 나가면 인사법이나 예절을 잘 알아야 해. 난 이번에 일본에 가니까 일본식 예절을 좀 연습해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이를 잘 실천해내는 사람이다. 

문화충격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완화되듯 문화지능 또한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쭉쭉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문화지능의 측면에서도 오직 시간이 약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문화지능은 우리가 여행에 나서기 전에 웬만큼 확보할 수 있는 여행 자원이기도 하다. 아주 간단한 현지어 회화를 익히고 현지 역사에 관한 간략한 소개 글을 읽고 친구들의 심플한 조언에 귀 기울이기만 한다면 우리의 문화지능은 향상되고 여행 첫날의 문화충격은 큰 폭으로 감소한다. 여행지에 흥미를 느껴서 공부하면 할수록 실제 여행에 나섰을 때의 문화적 충격이 신선하고 기분 좋은 놀라움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여행을 오래 할 필요도 없고 여행지를 많이 공부할 필요도 없이 이국 타향의 문화를 그저 즐겁게 향휴하기도 한다. 문화충격에 관여하는 마지막 요인인 성격과 동기의 개인차라는 것 때문이다. 이는 바로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고 다양성을 중시하며 이질적인 것에 관용을 보이는 특성인 개방성의 차이이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이국의 문화와 접촉하는 상황에서 남들보다 훨씬 적은 노력을 기울이고도 훨씬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다.  89-92


우리가 역사 유적을 좋아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깊은 심리적 뿌리가 있다...

실제로 우리가 역사 유적과 유물에서 매력을 느끼는 메커니즘은 우리가 마법에 혹하게 되는 메커니즘과 맞닿아 있다. 

제임스 G. 프레이저의 유명한 인류학 시리즈인 <황금가지>는 마법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는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이론서 중 하나이다. 프레이저는 특히 마법의 '유사성 원리(law of similarity)'와 '감염 원리(Law of contagion)'에 주목한다. 

유사상 원리는 비슷한 행동이나 현상이 비슷한 결과를 부른다는 인간의 원초적 믿음에 바탕을 둔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서는 가뭄이 들었을 때 땅이나 강에 물을 뿌리는 행동(비가 오는 것과 비슷하다)으로 기우제를 대신하고 부채질(바람만 씽씽 부는 가뭄과 비슷하다)을 금지하기도 했다. 반면 감염 원리란 "한번 접촉한 것은 영원히 접촉된 것이다"라는 믿음을 뜻한다. 즉 세종대왕이 만졌던 물건은 그가 죽고 사라진 뒤 몇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세종대왕의 손길이 남아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108-110


폴 로진(Paul Rozin)을 비롯한 여러 심리학자는 우리가 여전히 유사성 원리와 감염 원리 같은 미신적인 사고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빠르게 쑥쑥 자라는 콩나물을 먹으면 우리 키도 쭉쭉 자랄 것이라 생각하고, 인간의 성기를 닮은 음식을 먹거나 정력이 강하다고 알려진 동물으 ㄹ먹으면 정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험을 보기 전에는 물건이 떨어지는 게 너무 싫고 미끌미끌한 미역국도 먹기가 싫다. 우유로 세수하면 피부가 하얘질 것만 같다. 이처럼 우리는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것이다.  110


이런 생각과 느낌은 모두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런 비합리성을 아름다운 문화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작가가 유사성 원리를 잘 활용하면 멋진 복선과 암시, 상징을 만들어낼 수 있다("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안개다"). 또한 감염 원리를 문화적으로 승화시키면 위대한 역사 유적과 고귀한 유물을 갖게 된다. 우리는 경주 토함산 석굴암에서 장엄함과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신라 사람들의 숨결과 손길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연결의 느낌을 바탕으로 유저고가 유물에 역사적, 사회적,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이에 따라 석굴암은 시날의 역사와 신라 사람들의 수학적인 능력과 한국인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장소가 된다.  111


결론적으로 말해서 역사 유적은 감염 원리에 따라 강한 힘을 부여받은 여행의 요소이며 시각적 경외감, 판타지 세계에 들어간 듯한 느낌, 역사적 의미, 지적 흥미 등의 다양한 만족감을 두루 제공한다. 그러나 모든 역사 유적이 저마다 다른 매력이 있다는 점은 꼭 기억해두자.  112


여행 중에 산 물건은 실용서오가는 거리가 있다. 대신 그 나라 옷을 사 입고 그 나라를 여행할 때는 자신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한 몸에 수용하는 개방적 여행자임을 표현할 수 있다. 예전 여행에서 산 낡은 티셔츠를 여행 떠날 때마다 꺼내 입는 것은 자신이 모허모가 도전을 좋아하는 장기 여행자라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다. ..

기억을 촉진하는 기능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기능은 구입한 물건의 실용서오가는 별 관련이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여행 중에 쇼핑하는 사람들은 물건의 질보다는 어떤 물건이 각 여행지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고유한 물건인지에 더 신경 쓰는 경향이 있다.  124




여행의 사회적 효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여행자들의 행동 또한 여행자 대상 범죄를 낳는 다양한 요인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여행자가 여행지를 평가하는 것을 당연시하면서 가끔 그 반대도 당연한 일임을 깜빡하곤 한다. 현지인들도 여행자를 평가한다는 사실 말이다.  139


세상에는 두 가지 혐오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초적인 의미의 혐오로, 더러운 것이나 썩은 것이 입에 닿거나 입안에 들어오거나 몸에 닿았을 때, 또는 이런 가능성이 감지될 때 우리가 느끼는 강렬한 불쾌함을 뜻한다. 이런 원초적 혐오는 심리학 용어로 '핵심 혐오(core disgust)'라고 하며, 몸에 좋지 않은 썩은 시체나 독극물을 먹지 않게끔 하여 우리의 생명과 건강을 지켜준다. 

이 때문에 우리는 주로 썩거나 맛이 고약한 음식물, 배설물, 사람과 동물이 사체나 장기, 곤충, 쓰레기 등의 모습이나 냄새에서 혐오를 느낀다. ..

핵심 혐오는 공포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타고난 본능과 평생 동안의 학습이 조합되어 나타나는 정서이다.  151-152


두 번째 혐오에 대해 알아볼 차례다. 우리는 썩은 음식과 시체, 배설물 외에 또 어떤 것에서 혐오를 느낄까? 살인자, 강간범, 가정폭력범, 아동성추행범, 동물 학대범, 무식을 자랑하는 자, 예의 없고 상스러운 자,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는 자, 무능한 리더, 혹세무민하는 자와 곡학아세하는 자, 모리배, 시정잡배 등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사회공동체에 해로운 사람들이나 이들의 행동을 혐오하는 마음은 썩은 음식물이나 동물의 사체, 배설물을 혐오하는 마음과는 뚜렷이 구별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회적, 규범적, 인격적 혐오감을 따로 '도덕적 혐오' 또는 '경멸'이라 일컫는다.

대신 경멸의 신체적, 행동적인 반응은 혐오와 똑같다.  154-155




여행을 떠나 최상의 날씨와 만나면, 더는 다른 것이 필요 없을 정도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뜨겁고 습하거나 주야장천 비가 내리는 날씨 등은 여행의 다른 모든 요소를 압도하여 아예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169


좋은 음식은 여행에 만족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음식이 생각나서라도 그걸 먹었던 곳으로 반드시 돌아가게 만들곤 한다. 심지어 오로지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미식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다.  182


진짜 경치가 제공하는 원대하고 깊은 입체감과 우리 피부에 와닿는 그곳의 바람, 나무 향기와 풀 냄새, 강과 폭포의 소리, 그리고 이런 다양한 요소들이 한데 어울리며 자아내는 황홀함은 어떻게 달리 재현할 수가 없다. 결국 그곳에 직접 가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단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멋진 경치와 맞닥뜨리게 된다.  192


일단 경치에 이끌려 어떤 여행지에 도착한 뒤에는 이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어떤 행복한 홀동을 할 수 있는지가 경치 자체보다 훨씬 중요해진다. 즉 경치는 다른 활동과 조합됨으로써 여행의 행복을 증폭시키는 '배경'이자, 문화와 음식 및 각종 액티비티 등 각 지역의 다양한 여행 요소들을 결합하여 여기에 통일성과 주제를 부여하는 '틀'이지 여행의 목적 자체는 아니다.  195


여행자는 자신의 성격, 목표, 자원, 각종 여행 요소를 대하는 태도 등을 종합하여 자신에게 딱 맞는 완벽한 숙소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205


여행 동반자들 사이의 관계에서 동반자들의 성격과 취향의 유사성은 사실 그렇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동반자들이 서로를 존중하고, 자주 소통하고, 서로의 욕구와 취향과 가치를 절충하거나 공유함으로써 좋은 여행을 만들어나가려는 의지가 있느냐이다.  216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심리학자 중 한 명인 앨버트 밴듀라(Albert Bandura)는 .. 지식과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누구보다 강조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지식과 기술 말고도 뭔가를 '잘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심리적 요인들이 있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으로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자기 효능감은 공부건 일이건 분야를 막론하고 매우 중요하다.  228


지식과 기술, 자기 효능감 신념, 목표의 특성, 자기 평가 표준을 중시하는 밴듀라의 이론을 사회인지 이론이라고 한다.  229



여행 중의 기술에는 왕도가 따로 없다. 여행자 한 명 한 명이 여행 경험을 통해서 체득하는 고유한 노하우들이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주누가 여행 중에 활용하면 좋을 기술도 두 가지 정도는 있다. 하나는 '마음을 챙기며 여행하기'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 정서에 휩쓸리지 않기'이다. ..

'마음 챙김(mindfulness 또는 sati)'이란 원래 불교적 명상 수행과 관련한 개념인데.. 핵심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집중하며 마음을 열기'라는 점에는 대략적인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

여행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마음 챙김이란 여행 중 발생하는 모든 상황에 항상 호기심을 품고, 이와 관련된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하여 능동적인 해석을 내놓는 것이다.  245-246


우리가 외향적이든 내향적이든, 개방적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여행 중에는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절대 마음을 닫아서는 안 된다.  247


마르시알 로사다, 바버라 프레드릭슨 같은 연구자는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의 비율이 최소 3 대 1 정도가 되어야 행복하고 번창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248


그런데 주의할 점이 있다. 부정 정서는 긍정 정서보다 더 강렬하게 체험되고, 더 강렬하게 기억되는 편이라는 사실이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부정 정서의 이런 강력한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 정서 경험을 오래도록 간직할 필요가 있다...

감사 편지 쓰기는 고마운 사람을 날마다 떠올려보며 이들에게 감사 편지를 쓴느 것을 뜻한다.  249


만약 여행 중 부정 정서를 경험하는 날이 생긴다면, 그날이 저물어갈 즈음 하루 동안 있었던 긍정적인 경험을 떠올려보거나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해보고 서로의 행복한 여행을 응원해주자.  250


우리는 우리 여행을 여러 편의 재미난 이야기로 만들어야 한다. .. 

우리가 여행 중 겪었던 여러 가지 좋은 일과 여러 가지 나쁜 일의 세세한 의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이야기 안에 배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좋았던 일은 강렬한 추억이 되고, 나빴던 일은 귀중한 배움이 된다. ..

어떤 사람의 여행은 아름답고 의미가 있어서 여행기로 쓸 만하고, 다른 사람의 여행은 그럴 가치가 없어서 여행기로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모든 여행은 여행기로 쓰인 뒤에야 아름다워지고 모두와 공유할 만한 의미를 얻는다. 적어도 우리 마음속에서 크고 작은 여행기로 집대성되지 않은 여행이야말로 진정 무가치하고 의미가 없는 여행이다.  251


"여행은 어떤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는 여행에 대한 우리의 경험과 판단, 취향, 가치관이 묻어난다. "여행에서는 어떤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우리가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지 그렇지 앟은지가 드러나고, 여행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노출된다. 그리고 "나는 여행을 잘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서는 우리가 항상 행복한 여행을 하는 좋은 여행자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중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떤 것을 잘하는 데서 가장 중요한 신념과 기대가 바로 이것이다. 앨버트 밴듀라는 이를 '자기 효능감 신념'이라 표현한다.  253-254


자기 효능감 신념을 증진하는 중요한 메커니즘 가운데 하나는 모델링 학습이라고도 하는 '관찰 학습'이다.  255


여행에 나서면 더욱 다양하고 훌륭한 모델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256


자기 효능감을 높이는 또 다른 대표적인 메커니즘은 작은 성공 경험을 스스로 직접 쌓아나가는 것이다. ..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직접적인 여행 경험을 통해 효능감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바로 무슨 일이든 좋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배워나가려 하는 '학습목표'를 가진 사람들이다.  257


어떤 사람이 학습목표를 지향할 것인지 수행목표를 추구할 것인지는 이 사람이 지니고 있는 '능력이라는 것'에 대한 신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즉 사람의 능력이란 유동적이고 경험에 따라 성장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자연스레 학습목표를 지향하게 된다. 반면 사람의 능력은 고정된 것이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자기가 타고난 능력 한도 내에서 최대한 남들에게 잘 보이며 살아야 하는 법이라고 생각하는 살마은 수행목표를 취하게 된다. 이런 점을 특히 강조하는 연구자는 심리학의 거장 중 한 명인 캐럴 드웩(Caro; Dweck)이다. 드웩은 능력이 향상한다고 믿는 사람을 능력에 대한 '증진 이론'을 가진 사람이라 정의하고, 반대로 능력이 타고난 상태로 고정된다고 믿은 사람을 능력에 대한 '실체 이론'을 가진 사람이라 정의했다.  258


여행은 우리의 능력을 증명하는 활동이 아니다. 여행의 목표는 행복과 성장이다. ...

또한 여해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은 한국에서 가지고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여행을 떠나 하나하나 시도하고 적용해보면서 몸으로 익혀나가는 것이다.  260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뚜렷하지 않은 사람은 평가 표준도 모호해서, 자기가 여행을 잘하고 있는지, 어떤 점을 개선하면 좋을지를 파악하지 못한다. 또한 여행지가 제공하는 다양한 여행 요소와 그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엉뚱한 표준을 엉뚱한 곳에 들이밀 수도 있다. ..

여행에 대한 학습목표가 있는 살마은 늘 "나는 지금 다양한 여행 경험을 통해 여행에 대해 많이 배우고 있나?"라는 기준으로 자기를 평가하는데, 이는 갈수록 좋은 여행을 할 수 있게끔 보장해주는 좋은 평가표준이다.  268


윤리적 여행이란 여행지의 환경을 보호하고 현지의 문화를 존중하며 여행지 경제에 정의로운 기여를 하는 세 가지 요소를 이루어 진다고 볼 수 있다.  269


에밀 저번(Emil Juvan)과 세라 덜니커(Sara Doincar)는 "사람들은 윤리적 여행의 표준을 잘 알고 있으면서 왜 이를 잘 지키지 않을까?"라는 문제를 분석해 보았다. 저번과 덜니커가 내린 결론은 윤리적 표준을 잘 지키지 못하는 여행자들의 행동 패턴에는 '인지부조화'라는 유명한 심리적 메커니즘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인지부조화란 이런 것이다. 우리가 "현지 아이들에게 적선을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이 강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어느 날 캄보디아를 여행하던 중 그 많은 아이들의 공세에 시달리다 못해 볼펜 한 자루와 우리나라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주고 아이들이 그린 그림도 3달러어치 사고 말았다. 그러면 우리 머릿속에서 부조화가 발생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적선을 하는 사람이야 안 하는 사람이야?" 

이처럼 우리의 태도 또는 신념과 우리의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쪽은 우리의 행동이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고 원초적이다. 태도와 신념은 바꾸면 되지만 일단 저질러버린 행동은 없었던 것으로 할 수가 없지 않은가? 이 때문에 우리는 태도와 행동의 부조화가 발생했을 때 간단히 태도를 수정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즉 위의 상황에서는 "사실 아이들한테 적선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라는 식으로 우리의 윤리적 표준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274


저번과 덜니커는 여행자들이 인지부조화에 따라 태도를 변화시킬 때 전형적으로 보이는 여섯 가지 부조화 해소(즉 변명) 양상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는 우리가 기존의 표준에 어긋나는 일을 하긴 했지만, 알고 보면 그게 그렇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결과의 부정' 패턴이라고 한다. .. 

둘째는 '하향 비교'이다. 우리 자신도 뭔가 잘못을 하긴 했지만 우리보다 훨씬 심한 자들이 있으니, 우리 잘못을 잘못 축에도 못 든다는 식의 변명 양상이다...

셋째는 '책임의 부정'으로, 이는 어떤 행동이 현지인들 때문에 발생했다고 변명하는 것을 뜻한다...

넷째는 "나도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거기에선 꽁초를 거기에 버렸어야 했다고"라는 식으로 말하는 '통제의 부정'이다. 즉 책임의 부정이 현지인 탓을 하는 패턴이라면, 통제의 부정은 상황을 탓하는 패턴이라 할 수 있다.

다섯째는 "휴가는 예외라고요. 여기 나와서까지 윤리 같은 걸 신경 써야 해요?"라고 말하는 '예외 형성'이다. ..

여섯째 패턴은 "사실 나는 나쁜 일보다는 좋은 일을 더 많이 해요"라고 말하는 '보상'이다. 이는 아주 교묘하고 기가 막히게 잘 먹히는 변명 양상이다.  275-276


우리는 완벽할 수도 없고, 변명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그렇지만 위의 여섯 가지 변명은 그저 변명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적어도 좀 더 나은 여행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을 변명하는 것은 괜찮다. 다음에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다면 말이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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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가 인생 최고의 쾌락으로 인정받는 가운데, 여행은 그중에서 가장 값비싸면서도 가치 잇는 소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4


현대인이 소비를 통해 유토피아로 초대된다면, 그 유토피아의 최정상에는 여행의 장소가 있다.  5


아마 현대사회에서 여행 정도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는 것은 돈과 사랑 외에는 없을 것이다.  6


이전까지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적 탈출구는 '섹스'라 말해져 왔다. 자유주의, 여권 신장, 자본의 확장은 정확히 섹스 산업의 번성과 맞물렸다. 이제 이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여행이 되어가고 있다.  7

 

사랑이나 여행은 모두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 그것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기 시작하면, 즉 모든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권유되고 심지어 '강요'되기까지 할 때는 반드시 왜곡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제대로 사랑하고 제대로 여행하려면, 먼저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사랑과 여행을 분명히 보고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맹목적으로 요구되는 것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어느덧 자기도 모르게 '욕망'하게 된 것들에 대해 의심해야 한다.  8



나는 여행을 다녀왔다거나 여행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꼭 질문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여행에서 무엇을 얻으셨나요? 여행이 왜 가치 있다고 생각하세요? 여행이 왜 좋으세요? 여행을 다니며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19



현대인에게 권태는 일상이 되었다. 그 권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쾌락도 일상이 되었다. 도시는 권태를 조장하고, 그것을 잊게 만드는 일시적 향락을 제공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우리는 깨닫는다. 내가 이 회색의 도시 한가운데에서 탈색되고 있다는 것을, 색채 없는 무미건조한 도시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21



도시는 우리에게 삶의 형식과 안전망을 제공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삶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완벽함 때문에 우리는 도시에서, 그 도시 속에 붙박인 우리의 현시에서 떠나고 싶어진다. 그 이유는 저 태곳적의 자유에 대한 갈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모순적이게도, 변덕스럽게도, 용납하고 싶지 않게도 자유와 안락이라는 두 가지 삶의 방식을 모두 원한다.  22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이러한 '이미지를 향한 갈망'을 인간의 중요한 특성으로 지적한다. 라캉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은 상상계와 상징계로 뒤덮여 있다. 여기에서 상상계란 이미지의 세계이며, 상징계는 언어적 질서의 세계이다. 우리 머릿속은 늘 이미지와 언어로 뒤얽혀 있으며, 영원히 그 두 가지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어떤 이미지나 언어가 우리를 '완벽하게 만족시켜 주리라' 믿으며 욕망하고 나아가지만, 실제로는 무한한 욕망의 연쇄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의 이미지를 가지게 되면, 뒤이어 다른 이미지를 욕망한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언어(의미)를 획득하더라도, 곧 욕망해야 할 다른 언어(의미)가 생긴다.

여행에 대한 갈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특정한 여행지에, 정확히 말해 그 '여행지의 이미지'에 완벽한 만족이 있을 거라는 환상을 가진다. 그 이미지에는 자유, 낭만, 쾌락, 꿈, 희망, 관능, 행복, 열정, 성장, 드라마, 성공, 여유, 휴식, 모험과 같은 온갖 언어가 덧씌워진다. 이렇게 이미지와 언어가 결합한 '그곳'은 우리에게 뜨거운 갈마의 대상이 되지만, 정작 그곳에 도착하더라도 우리가 꿈꾸던 완벽한 향락은 존재하지 않느다. 우리는 다시 다른 여행을, 여행의 이미지를, 여행이 줄 어떤 언어(의미)를 꿈꾼다.  26



'여행은 단순히 여해이 아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가지지 못한 모든 것에 대한 열망들이 집약되어 있다.  27



우리는 자신의 삶에 좀 더 엄밀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 욕망,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식, 결국 우리를 규정하게 되는 존재 방식에 대해 더 엄격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삶은 짧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은 지나가고 나서야 후회로 되돌아오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넘쳐나는 가짜 여행들 속에서, 혹은 온갖 욕망으로 점철된 환영들 속에서 '진짜 여행'을 가려내야 한다.  28



'자유'는 모든 조건과 억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어떤 '순수한 상태'라고 오해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이라는 한계 속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그런 자유를 누리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자유는 자기가 어떤 현실에 속해 있는지를 아는 것이며, 그러한 현실적 조건들을 어떻게 수정할 수 있는지에 관여하는 것이다. ..

여행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유는 나를 조건 지어 왔던 수많은 요소들과 의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할 최선의 기회를 제공한다. 자유롭다는 것은 뭐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을 재정립하고 새롭게 장악하며 수정할 수 있는 기회와 힘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31



여행에는 우리가 살아온 현실, 앞으로도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의 논리가 아니라 다른 논리로 살아 보고자 하는 욕망이 들어 있다. 특히 배낭여행객의 마음은 이 한 번뿐인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의 삶을 체험해 보고자 하는 욕망으로 움직인다. 그 이후에는 다시 이 현실로 돌아올지라도, 조금은 다른 마음으로, 조금은 다른 형태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미한 희망을 가지고 저 '다른 삶'으로 떠나 보는 것이다.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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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들이 여행을 마음먹는 순간, 평범한 사람들이 잊지 못하는 연애, 평범한 사람들의 적당한 자린고비 배낭여행, 평범한 사람들이 바라는 미래라면 쓸 수 있을 거 같았다. ..

나는 길 위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다. 

지치고 고독한 여행이면 더 좋다.  6



잘 살아가기 위한 걱정이 아니라 잘 사는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싶다.

고민하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고민하는 모습은 불안해 보일 수도 있다.  16



가끔 오지선다형 보기 내에서 해야 할 일을 찾는다. 다른 사람의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환호하지만 평범한 삶의 발버둥에는 핀잔을 보낸다. 결과만 인정한다.  39



여행은 객관식의 삶을 주관식으로 바꾸는 여정이다.  40



행복은 저축되지 않는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43



사랑은 이름 붙여 부르지 않아도 사랑이다.  94



가끔 세상에서 혼자 되는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다.  113



여행에서 조심할 필요는 있지만 벽을 두는 것은 좋지 않다. 그 경계를 조율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118



명동의 백화점에서 하지 못할 행동은 외국에 나가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122



언제 어디서든 스승을 만날 수 있다.  139



정성스레 드라이크리닝 된 정장을 입고 간 결혼식장에서 신랑신부의 이름도 모른 채 뷔페 접시를 나르는 것보다 진실 어린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게 아름다운 것처럼 여행도 마찬가지다.  166



시간이 지나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내가 더 여물수록 커지는 감동이 있다.  220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가 더 소중해질 수 있는 것.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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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 누구나 인생에서 한 번은 자기만의 일과 사랑을 발견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야 한다


아메리칸 인디언의 윤리 규범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탐구하라.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길을 대신 만들도록 허락하지 마라. 이 길은 당신의 길이자 당신 혼자서 가야 하는 길이다. 다른 이와 함께 걸을 수는 있으나, 어느 누구도 당신을 대신하여 걸어 줄 수는 없다."  7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생각되는 순간을 맞는다면 그건 뭔가를 얻었을 때가 아니라 잃었을 때일 것이다"라는 소설가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우리는 뭔가를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인생에 대해 절실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23-24


바깥세상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 따윈 무시해 버려. 그건 모두 악마의 장난에 불과해. 진실은 자네 안에 있어. 자네 안에서 답을 찾아, 그리고 자네 영혼에게 영원한 자유를 안겨 주라구! - 호어스트 에버스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  26


사람에게는 때때로 외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무싀식은 스트레스가 심하거나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과 같은 단조로운 일상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33


살면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경우가 있다.  35


스스로를 제대로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된다.  36


영화 <행복을 찾아서>의 주인공 크리스는 아들에게 말한다. "누군가 너에게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게 하지마. 희망이 있다면 그걸 지켜야 해."  42


대화가 인간의 지적 활동에 묘약인 것처럼 고독은 인간의 정신 활동에 묘약이다. - 에밀 시오랑  51


친구를 얻는 가장 좋은 길은 스스로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73


세상과 떨어져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사실 고된 정신 훈련 중 하나다. 혼자 여행을 하면 마음속에 깊이 묻어 두었던 두려움들과 후회들이 미처 방어할 새도 없이 몰려올 때가 많다.  74


사회적 통념이나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우리를 제약하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기존의 문화와 상반되는 문화권으로 떠나 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84


생각할 시간을 가져라. 확신이 설 때까지.  91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않겠다, 내 생각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고 말하면서도 한낱 담배에 연연하고 집착하는 나를 보니 한심스러웠다.  102


"즐거운 추억이 많은 아이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 이라는 소설가 도스토옙스키의 말처럼, 행복한 여행의 기억이 사람을 지켜주는 것 같았다.  107


한 번 불운한 일이 있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여행을 통해 배웠다... 

길을 잃으면 길을 찾아주는 사람을 만났고 발을 다치면 걸을 수 있게 붙들어 주는 사람을 만났다...

아프리카나 아니아 또는 남미처럼 언어가 다른 곳을 여행할 때는 말이 아닌 눈빛으로, 마음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고, '세비야 골목길에서 팔던 그 찻잔을 샀어야 했는데..'하는 후회가 몰려올 때는 원하는 게 있다면 우물쭈물하며 망설이지 말자는 다짐을 한다.  119-120


뜨거운 물에 자꾸만 가까이 가려는 아이를 보호하는 방법은 다치지 않을 정도의 뜨거운 물을 손등에 살짝 찍어 주는 일인 것처럼 인생에 가장 좋은 공부는 직접 경험하는 것이다.  121


17, 18세기 영국의 상류층 자제들에게는 귀족 사회에 입문하기 전 반드시 다녀와야 하는 여행이 있었다. '그랜드 투어'라고 불린 이 여행은 영국에서 시작해 파리, 로마, 피렌체, 나폴리, 폼페이를 거쳐 인스부르크, 베를린, 뮌헨, 암스테르담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코스였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릴 정도로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투자되는 여행이었으나 귀족들은 너도나도 자식들을 떠나보냈다. 그랜드 투어를 하지 않으면 세계의 정치와 사회, 경제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영국의 젊은 후계자들은 가정 교사와 하인과 통역관까지 실은 대규모 마차 부대를 이끌고 전 유럽을 떠돌며 새로운 문화를 몸소 체험했다. 사교계의 중심이었던 파리에서는 귀족 사회의 예법과 언어를 배우고, 로마와 나폴리, 폼페이에서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역사를 공부했으며, 피렌체에서는 문화와 예술을 익혔다. 이후 철도가 대중화되면서 그랜드 투어는 점차 사라졌지만, 나는 '세계를 여행하며 세상을 직접 배워야 한다'는 가치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121-122


나는 여행이 인생의 한 시기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늘 새로운 세계를 배울 준비를 해야 하고, 삶의 어느 시점에서도 성장하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137-138


프랑스 철학자 미셸 옹프레는 <철학자의 여행법>에서 여행이 실제로 시작되는 지점을 "집을 나서면서 현관문을 닫고 자물쇠에 열쇠를 꽂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말했다. 여행의 실질적인 첫 단계는 떠나온 장소에 있지 않으며, 우리가 갈망하던 장소에 도착하지도 않은 '사이'의 시간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144


니콜라스 바로우는 소설 <세상 끝에서 나를 만나게 될 거예요>에서 기차 여행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 옛 시절이 떠오른다. 관광객이 아니라 여행객이라 불리고, 세상이 한없이 크게만 느껴지던 시절. 그 시절 사람들은 기차에 올라 차창밖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이 없다고 초조해하지 않으면서 목적지를 향해 평안하게 나아갔다." 기차가 전 세계적으로 낭만적인 여행 수단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146-147


지혜란 받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여행을 한 후, 스스로 지혜를 발견해야 한다 - 마르셀 프루스트  190


내 생각에 여행에서 느꼈던 감정들이 쉽게 잊혀지는 것은 일상에서 그와 같은 경험을 다시 반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1


짐을 줄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공간을 줄이는 것이다.  201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을 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더많이 가질수록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늘어날 뿐이다. 여행지에서처럼 꼭 필요한 것들만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일상에서도 여행자처럼 자유로워질 것이다.  205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과거 어느 때에도 오늘날처럼 인간에 관해 다양하고도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과거 어느 때에도 오늘날 사람들처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알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인간이나 사회에 대한 지식 외에 별도로 스스로를 탐구하고 존재에 대해 알아가야만 한다.

또 다른 독일의 철학자 아르투르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의 특성을 발휘할 수가 있고, 그래야만 무언가 올바른 것을 이행할 수가 있다." 쇼펜하우어 역시 인간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우선 자기 자신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만, 삶의 여정에서 발전을 이루고자 할 때 자신의 특성과 재능에 적합한 것을 온전히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22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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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 헤르만 헤세가 들려주는 진정한 여행의 의미


1

유럽에서 최초로 여행 열기가 고조된 시기는 18세기였다.  5


로마를 '세계의 대학'이라고 칭한 빙켈만의 저서 <고대 예술사>(1764)가 오래 전부터 이탈리아 여행을 꿈꾸던 괴테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되었다. 빙켈만의 글에는 자신의 로마 탐구를 토대로 다른 여행자들의 안목을 틔워주려는 의도가 강했다. 그가 중시한 것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닌 "깊은 체험을 통한 변화의 힘"이었다. ...

괴테의 경우 여행의 첫 번재 목표는 인간과 예술가로서의 자기수양이었다. 새로운 세계와 만나 새로운 자연과 문화, 새로운 인간상을 천착해 감으로써 자신의 생각과 삶을 확산 심화 고양시키는 것이었다.  6


젊은 시절 많은 여행을 하고 여행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한 헤세의 글이 우리에게 바람직한 여행에 대한 하나의 지침이 될 수도 있겠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 되어야 하니까.  7



2

토마스 만의 장편 <마의 산>에는 여행에 대한 유명한 글귀가 나온다. "여행을 떠나고 이틀만 지나면 사람, 특히 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박지 않은 젊은이는 자신의 의무, 이해관계, 걱정 및 전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 즉 일상생활로부터 아련히 멀어지게 된다. 그것도 마차를 타고 역으로 가면서, 어쩌면 자신이 꿈꾸었을지도 모르는 것보다 훨씬 더 멀어지게 도니다. 여행자와 고향 사이에서 구르고 돌며 도피하듯 멀어져 가는 공간에는 보통 시간에만 있다고 생각되는 힘이 깃들어 있다.

공간도 시간과 꼭 마찬가지로 시시각각 내적 변화를 일으킨다. 공간도 시간과 마찬가지로 망각을 낳는다. 공간은 인간을 여러 관계로부터 해방시켜주며, 인간을 원래 그대로의 자유로운 상태로 옮겨놓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 공간은 고루한 사람이나 속물조차도 순식간에 방랑자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걳이다. 시간은 망각의 강이라고 하지만, 여행 중의 공기도 그러한 음료수인 셈이다. 그런데 그 효력은 시간만큼 철저하지 못한 반면 더욱 신속히 나타난다" 이처럼 여행을 통한 공간의 변화는 우리의 정신에 활력을 준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여행을 통해 장소가 아닌 사물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얻게 된다.

한편 소설도 나름대로 여행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루카치에 따르면, 소설은 '자기'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다. 누가 자신을 찾아 떠나는가? 바로 근대적인 개인이다. 홀로 남겨진 근대적인 개인이 자신을 찾아 떠나는 모험의 형식이 소설이다. 그러므로 이 여행은 길이 없는 '길 찾기'다. 

"여행이 끝나자 길이 시작되었다." 혹은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 루카치는 이를 '아이러니'라 칭한다. 모든 근대 소설은 아이러니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7-8


헤르만 헤세 소설의 거의 모든 주인공은 현재의 안일한 상황에서 탈피해 방랑과 여행을 통한 자아의 길 찾기를 하고 있다.

헤세의 여행은 속인 내지는 속물로부터의 탈출이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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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이 여행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자기의 친척과 친구, 이웃도 여해을 가는데다, 또 여행을 갔다 와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들에게 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이 유행이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매우 쾌적하고 안락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헤세의 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치 있는 여행이 되려면 어떻게 여행해야 할까? 헤세의 말은 음미해볼 만하다.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 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떤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멋진 호수 위에서의 증기 기선 여해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이처럼 제대로 된 여행을 해야 하고 그나마 여행하지 않는 자는 책의 한 페이지만 계속 보는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여행은 즐거운 것이 되고 좀 더 깊은 의미에서 하나의 체험이 되려면 확고하고 특정한 내용과 의미를 지녀야 한다. 지루한 나머지 또 김빠진 호기심 때문에 내적 본질에 진정한 관심을 느낄 수 없는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은 잘못되고 우스꽝스런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성껏 가꾸거나 희생의 제물이 되기도 하는 우정이나 사랑처럼, 신중하게 고르고 사서 읽는 책처럼 모든 유람여행이나 연구여행은 좋아하기, 배우려고하기, 몰두하기를 의미해야 한다. 여행은 어떤 나라와 민족, 어떤 도시나 풍경을 여행자의 정신적 소유물로 만들려는 목적을 지녀야 한다. 여행자는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것에 귀 기울여야 하고, 낯선 것에 담긴 본질의 비밀을 끈기 있게 알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연'가까이에서 자연의 힘과 위안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장소로 여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널리 만연한 오류다. 번잡하고 숨 막히는 거리를 피해 달아난 도시민에게 바닷가나 산속의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가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도시민의 그것으로 만족해한다. 그는 더 신선한 기분을 느끼고, 더 심호흡을 하며, 잠을 더 잘 잔다. 그리고 '자연'을 이제 제대로 즐기고 내부에 흡수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그는 그 자연으로부터 가장 피상적인 것, 가장 비본질적인 것만 받아들이고 이해했으며, 가장 좋은 것은 발견하지 못하고 길가에 놓아두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 자는 보고 찾아내며 여행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가만히 앉아서가 아니라 움직이면서 사고할 것을 주장하는 니체는 <인간적인 것,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서 여행자의 등급을 다섯 등급으로 나누고 있다. 그 역시 쥘스 지방을 여행하는 도중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번득이는 아이디어를 얻었다.

"여행자에게는 다섯 단계의 등급이 있다. 가장 낮은 등급은 여행하면서 관찰의 대상이 되는 자들이다. 그들은 본래 여행의 대상이며 흡사 장님과 같다. 다음 등급은 실제로 세상을 구경하는 자들이다. 세 번째 등급의 여행자는 관찰한 결과로 무언가를 체험하는 자이다. 네 번째 등급의 여행자는 체험한 것을 체득해서 몸에 지니고 다닌다.

마지막으로 최고의 능력을 지닌 몇몇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관찰한 것을 모두 체험하고 체득한 뒤 집에 돌아온 즉시, 또한 체험하고 체득한 것을 행동이나 일에서 반드시 실천해 나간다. 

인생의 여로(旅路 나그네여 길로)를 걷는 모든 인간은 이 다섯 종류의 여행자와 같다. 가장 낮은 등급의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으로 살아가고, 가장 높은 등급의 인간ㅇ느 내적으로 체득한 것을 남김없이 실천하며 행동하는 자로 살아간다."

그러면 자연과 풍경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헤세는 이렇게 답한다. 금빛으로 물드느 여름저녁을 한가로이 바라보고, 가볍고 순수한 산악 공기를 느긋하고 기분 좋게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는 아직 크게 부족하다. 양지바른 따스한 초원에 드러누워 한가하게 휴식시간을 보내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그러나 산과 시냇물, 오리나무 숲과 멀리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함께 이 초원에 친숙하고 그것을 잘 아는 자만이 자연과 풍경을 완전하게, 백배는 더 깊고 고상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러한 조그만 땅에서 그 땅의 법칙을 읽고, 그것의 형성과 식생의 필연성을 꿰뚫어보고, 그 필연성을 역사, 건축 양식, 그곳 주민의 기질이나 말투, 의상과 관련해서 느끼려면 사랑과 헌신, 연습리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할 만한 보람이 있다. 여행자가 열성과 사랑으로 친숙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든 나라의 모든 초원과 암석은 온갖 비밀을 여행자에게 알려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베풀어주지 않는 힘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름을 아는 일이 아니라 느끼는 일이다. 학문적 지식은 아무에게도 축복을 안겨주지 않는다.  12-15



5

헤세는 끊임없이 여행과 여행의 의미에 대해 질묺나다. 우리 같은 사람에게 여행을 떠나게 하고, 특히 예술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해마다 여행을 떠나는가? 무엇 때문에 좀 더 풍요로웠던 시대의 건축물과 그림들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거워하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낯선 민족들의 삶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며 흡족해하는가? 무엇 때문에 기차와 배 안에서 낯선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낯선 대도시의 번잡한 거리에 귀 기울이는가? 헤세는 한때 그런 것을 일종의 배움 욕구이자 교양 열기로 여겼다. 여행하면서 그는 옛 교회의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진 벽 위에서 수첩 가득 감상을 적어 넣었고, 식사에서 아낀 돈을 옛 조각품들의 사진을 찍는 데 썼다. 그 후 그런 일에 다시 싫증나게 되었고, 풍경과 낯선 민족성만이 그의 관심을 끄는 좀 더 못사는 나라를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그에게 그러한 수수께끼 같은 여행 욕구는 일종의 모험심으로 생각되었다.  17



헤세도 처음에는 다른 여행객과 마찬가지로 이국적인 민족의 살마과 도시를 그냥 신기한 대상으로서만 바라보았고, 무척 재미있지만 기본적으로 자기와 아무 관계없는 동물 곡예단을 바라보듯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입장을 버리고 말레이인, 인도인, 중국인, 일본인을 인간이자 가까운 친척으로 본 시점부터 비로소 그 여행에 가치와 의의를 부여하는 체험이 시작되었다. 헤세는 여행의 체험으로 서양인과 동양인의 영혼이 같고, 아시아인의 영혼도 유럽인의 영혼처럼 온전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의미에서 "여행이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꾸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꾸어주는 것이다."는 아나톨 프랑스의 말이 우리의 공감을 얻는다.  19-20



7

이 책은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와 여러 여행 기록을 엮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는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 외에 1901년과 1911년, 1913년의 이탈리아 여행, 1904년의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의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21






여행의 노래


태양이 내 마음속 비춰주었네. 

바람이여, 내 걱정과 무거운 마음일랑 날려버리렴!

이 세상을 두루돌아다니는 것보다

더 큰 희열은 없다네.


평지를 향해 서둘러 발걸음 옮기다 보면

햇볕에 몸 그을리고, 바다는 시원하게 해주네.

난 온갖 감각을 활짝 열고

지상에서의 삶을 함께 느끼지.


새날이 올 때마다 

새 친구, 새 형제를 사귀며

온갖 별의 손님이자 친구일지도 모르는 

온갖 힘을 기어코 찬미할 때까지.



누군가가 유람 여행을 계획하고 잇다면 먼저 무엇을 할 것인지, 왜 그 여행을 하는지 아는 것이 좋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여행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도시인이 여행하는 것은 여름에 도시가 너무 덥기 땜ㄴ이다. 그가 여행하는 것은 공기를 바꾸고, 다른 환경과 사람들을 봄으로써 일에 지친 피로를 풀고 푹 쉴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가 산으로 여행하는 것은 자연과 땅, 식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이해되지 않는 갈망으로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가 로마로 여행하는 것은 그것이 교양 여행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여행하는 주된 이유는 그의 모든 사촌과 이웃도 여행을 가는데다, 또 여행을 갔다 와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하는 것이 유행이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무척 쾌적하고 안락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이해할 만한 정직한 동기이다.  32


여행은 언제나 체험을 의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정신적 관계를 가질 수 있는 환경에서만 뭔가 가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회 있을때마다 가는 즐거운 소풍, 어느 음식점 정원에서의 유쾌한 저녁, 임의의 호수 위에서의 증기기선 여행은 그 자체로 체험이 아니고,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주지 못하며, 계속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자극이 아니다.  33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여행의 시학은 호기심의 충족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험에, 다시 말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데에, 새로 획득한 것의 유기적인 편입에, 다양성 속의 통일성과 지구와 인류라는 큰 조직에 대한 우리의 이해 증진에,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는 데에 있다.

내가 특별히 여행의 낭만주의라고 부르고 싶은 것, 다시 말해 인상의 다양성, 명랑하거나 불안한 심정으로 깜짝 놀랄 일을 계속 기다리기,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새롭고 낯선 사람들과의 소중한 교제가 그것에 첨가된다.  36


우연적인 것에 대해 본질적인 것이, 낭만주의에 대해 시학이 망각되어서는 안 된다. 도중에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맡기고, 우연을 신뢰하는 것은 확실히 좋은 방식이다. 그러나 모든 여행이 즐거운 것이 되고 좀 더 깊은 의미에서 하나의 체험이 되려면 확고하고 특정한 내용과 의미를 지녀야 한다. 지루한 나머지 또 김빠진 호기심 때문에 내적 본질에 진정한 관심을 느낄 수 없는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니는 것은 잘못되고 우스꽝스런 일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성껏 가꾸거나 희생의 제물이 되기도 하는 우정이나 사랑처럼, 신중하게 고르고 사서 읽는 책처럼 모든 유람여행이나 연구여행은 스스로 좋아하고, 찾아서 배우려고 하면서, 몰두하는 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여행은 어떤 나라와 민족, 어떤 도시나 풍경을 여행자의 정신적 소유물로 만들려는 목적을 지녀야 한다. 여행자는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낯선 것에 귀 기울여야 하고, 낯선 것에 담긴 본질의 비밀을 끈기 있게 알아내려 노력해야 한다.  40-41


돈과 시간을 아낄 필요가 없고 여행에서 즐거움을 얻는 자는 눈과 마음으로 탐낼 만한 여러 나라를 하나하나 자기 것으로 만들고, 천천히 배우고 향유하는 중에 세계의 일부를 정복하고, 많은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 지구와 지구의 생명체를 폭넓게 이해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짓기 위해 동과 서에서 수석을 수집하려는 욕구를 지니게 될 것이다.  41-42


'자연' 가까이에서 자연의 힘과 위안을 맛보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장소로 여행하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널리 만연한 오류다. 뜨거운 거리를 피해 달아난 도시인에게 바닷가나 산속의 시원하고 깨끗한 공기가 도움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해한다. 그는 더 신선한 기분을 느끼고, 더 심호흡을 하며, 잠을 더 잘 잔다. 그리고 '자연'을 이제 제대로 즐기고 내부에 흡수했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귀향한다. 그런데 그는 그 자연으로부터 가장 피상적인 것, 가장 비본질적인 것만 받아들이고 이해했으며, 가장 좋은 것은 발견하지 못하고 길가에 놓아두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런 자는 보고 찾아내며 여행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한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빈곤해질 것이다.  42-43


여행자는 모든 것을 보거나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스위스 알프스의 두 개의 산과 골짜기를 돌아다니며 철저히 둘러본 자는 같은 시간에 일주 여행 차표로 전 국토를 여행한 자보다 스위스를 더 잘 알게 된다.  44


양지바른 따스한 초원에 드러누워 한가하게 휴식시간을 보내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그러나 산과 시냇물, 오리나무 숲과 멀리 우뚝 솟은 산봉우리와 함께 이 초원에 친숙하고 그것을 잘 아는 자만이 자연과 풍경을 완전하게, 백배는 더 깊고 고상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러한 조그만 땅에서 그 땅의 법칙을 읽고, 그것의 형성과 식생의 필연성을 꿰뚫어보고, 그 필연성을 역사, 건축 양식, 그곳 주민의 기질이나 말투, 의상과 관련해서 느끼려면 사랑과 헌신, 연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할 만한 보람이 있다.  45-46


중요한 것은 이름을 아는 일이 아니라 느끼는 일이다.  46



익숙해지고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지면 가치있는 것의 광채도 떨어지는 법이다.  49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어떻게든 고유한 시학이 있는 법이다.  50



낡은 모자를 쓰고 배낭을 짊어지기 위해 나의 조그만 집, 행복함과 안락을 기꺼이 희생하리라.  74



날이 어두워졌다. 창 앞 골목은 벌써 한 시간 전부터 쥐죽은 듯 고요하다. 높다란 분수만이 꿈꾸며 지치지 않고 계속 재잘거린다. 걸려 있는 놋쇠 등불이 흐릿한 판자벽이 있는 낡은 거실과 벽의 좁은 걸상, 튼튼한 참나무 책상과 벽 가의 희미한 목판화를 비춰준다. 나는 꿈꾸듯 내 집과 내 방의 고요와 정적,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나의 은둔을 즐긴다. 우리는 저녁에 쓸데 없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적에 귀 기울이고 엿듣는 것은 정말 멋지고 놀랍다. 대지는 잠들어 있다. 우물가에 마지막 남은 양동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호수 저 건너편에선 멀리 마지막 기차가 조용히 기적을 울리며 사라진다.  79


불현듯 비눗방울처럼 마음속에 질문이 떠오른다. 넌 정말 행복한가?

그렇다. 물론이다. 하지만 좀 기다려라. 아니, 그리 행복하지는 않다. 아니, 먼저 곰곰 생각해봐야겠다. 곰곰 생각해보니 행복에 관해선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행복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의 단어이자 무의미한 것에 불과하다.  82


향유의 힘과 추억의 힘은 서로 의존하고 있다. 향유란 어떤 열매의 단맛을 남김없이 짜내는 것을 뜻한다. 추억이란 한번 향유한 것을 꽉 쥐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점점 순수하게 완성하는 기술을 뜻한다. 우리 각자는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유년 시절을 생각하고, 그러면서 혼란스런 조그만 사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환상이 된 추억이 자기 위의 복된 푸른 하늘을 펼치며 천 가지 아름다운 기억을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쾌감과 섞는다. 

이처럼 최고는 멀리 떨어진 날들의 즐거움을 다시 향유할 뿐만 아니라 매일을 행복의 상징이자 동경의 목표이며 천국으로 드높이면서, 자꾸만 새로 향유할 것을 가르친다. 짧은 시간 내에 얼마만큼의 생활감정, 온기와 광채를 짜낼 수 있는지 아는 자는 이제 모든 새날의 선물도 되도록 순수하게 받아들이려 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고통도 더 공정하게 평가할 것이다. 그는 큰 아픔 역시 큰 소리로 진지하게 맛보려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어두운 날들의 기억도 아름답고 신성한 소유물임을 알기 때문이다.  87-88



우리가 모든 아름다운 것 중 한 봉지 가득 보관해서 필요한 시절을 위해 저축할 수 있다면! 물론 그러려면 인공적인 향기를 지닌 인공적인 꽃이라야 되겠다. 날마다 세계의 충만함이 우리 옆을 서둘러 지나간다. 날마다 꽃이 피어나고, 불빛이 반짝이며, 기쁨이 웃음 짓는다. 때로 우리는 그것에 감사하며 실컷 마시고, 때로 우리는 피곤하고 짜증나서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알고 싶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늘 아름다운 것이 넘쳐난다. 모든 기쁨의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점은 그것이 과분하게 오고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기쁨은 바람에 흩날리는 보리수꽃의 향내처럼 구속을 받지 않고 누구에게나 신의 선물이다. 가지들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보리수꽃을 열심히따는 여자들은 나중에 그것으로 호흡 곤란과 고열에 좋은 차를 만든다. 하지만 그들은 최상의 것과 진정으로 좋은 것은 얻지 못한다. 열므날 저녁 데이트하면서 달콤하고 몽롱한 도취 상태에 있는 한 쌍의 연인들조차 그런 것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지나가며 좀 더 깊이 호흡하는 방랑자는 그런 것을 갖는다. 방랑자가 모든 즐거움 중 최상의 것과 가장 좋은 것을 갖는 이유는 그가 맛을 보는 것 외에 모든 기쁨의 덧없음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방랑자는 어떤 샘에서든 물을 마실 수 있으니 걱정할 일이 별로 없다. 그는 과잉에 익숙해져 있다.

반면 그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개의치 않으며, 한 번 좋았던 곳이라 햇 곧장 뿌리내리려 하지 않는다. 해마다 같은 장소에 가는 행락객들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 곧 다시 오겠다는 결심을 하는 행락객들이 많다. 그들은 좋은 사람들일지는 모르나 좋은 방랑자는 아니다. 그들은 사랑에 빠진 남녀의 몽롱하게 취한 상태에 있다. 보리수꽅을 따는 여인들이 조심스럽게 꽃을 따는 심정과 같다. 하지만 그들은 조용하고 진지하게 기뻐하며 늘 떠나려는 방랑자의 마음은 갖고 있지 않다.  101-103


나는 방랑과 외지의 맛이 어떤지 알고 있다. 그 맛은 아주 달콤하다. 향수와 결핍,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103


또 한 번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로 구속 없이 뻔뻔하고 호기심어린 눈으로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다! 허기지면 길가의 버찌로 식사하고, 네거리가 나오면 상의 단추로 '좌우'를 결정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 또 한 번 짧고 미지근한 향태 나는 여름밤을 방랑 중 건초 더미 속에서 잠자면서 보내고 싶다! 또 한 번 방랑 시절을 숲의 새들, 도마뱀이나 풍뎅이와 사이좋게 지내며 보내고 싶다! 한 여름이나 한 켤레의 새 신발엔 그것이 가치 있으리라.  104


우리 같은 사람을 여행떠나게 하고, 특히 예술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 때문에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해바다 여행을 떠나는가? 무엇 때문에 좀 더 풍요로웠던 시대의 건축물과 그림들 앞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거워하는가? 무엇 때문에 우리와 아무 상관없는 낯선 민족들의 삶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지켜보며 흡족해하는가? 무엇 때문에 기차와 배 안에서 낯선 사람들과 잡담을 나누고, 이상하게도 낯선 대도시의 번잡한 거리에 귀 기울이는가? 한대 내게는 그런 것이 배움에 대한 일종의 욕구이자 교양에 대한 열기로 여겨졌다. 당시네 나는 옛 교회의 프레스코 벽화가 그려진 벽 위에서 수첩 가득 적어 넣었고, 식사에서 아낀 돈을 옛 조각품들의 사진을 찍는 데 썼다. 그 후 나는 그런 일에 다시 싫증나게 되었고, 풍경과 낯선 민족성만이 내 관심을 끄는 좀 더 가난한 나라들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내게 이러한 수수께끼 같은 여행 욕구는 일종의 모험심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엄밀히 따져보면 여행 중에 겪는 모험이 아니다. 잘못된 곳으로 가버린 트렁크, 도난당한 외투, 뱀이 나오는 방, 모기가 있는 침대를 모험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그런 것 역시 제대로 된 것은 아니었다. 내게는 지금 교양에 대한 갈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전체 도시와 교회, 대형 박물관을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것으로는 지금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반면 그러한 사물들에서 발견하고 보는 것을 옛날보다 더 심도 있고 섬세하게 향유하는 지금, 여행에서 모험적이 ㄴ체험을 하게 되리라는 신뢰 역시 내게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나는 15년 전이나 10년 전, 또는 5년 전보다 드물지 않게 여행을 다니고, 여행에 대한 충동과 욕구도 그때보다 줄어들지 않았다.

내 생각에 여행하며 밖으로 돌아다니는 생활은 좀 더 지적으로 된 우리 같은 사람이 더욱 창백하게 체험하는 삶의 한 조각을 일반적으로 대체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 생활은 우리 여러 민족들에게 거의 완전히 사라진 순전히 미적인 충동에 의한 활동도 대체하는 것 같다. 위대한 시기의 그리스인이나 독일인, 이탈리아인에겐 그런 미적인 충동이 있었다. 아시아에서도 어디서나 아직 그런 충동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일본에서는 유치하지 않고 현명한 사람들은 목판화, 나무나 암석, 정원이나 하나하나의 꽃을 관찰하면서 우리에겐 흔치 않고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어떤 감각의 훈련, 원숙함과 전문적 지식을 향유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 같다. 순수한 직관, 어떤 목적 추구나 의욕에 의해 흐려지지 않은 관찰, 자체적으로 흡족한 눈과 귀, 코와 촉각의 훈련, 그것은 우리들 중 좀 더 섬세한 사람들이 짙은 향수를 느끼는 하나의 천국인 셈이다. 우리가 여행할 때 가장 잘 또는 가장 순수하게 추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그러한 천국이다. 미적으로 훈련된 사람은 언제나 그러한 집중을 할 수 있지만, 우리 같은 불쌍한 사람들은 적어도 숙박에서 벗어난 이런 날과 순간에나 그것이 가능하다.

고향과 일상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어떠한 걱정도 하지 않고 일에서도 완전히 해방된다. 이러한 여행 분위기에서 우리는 평소에는 하지 못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몇 개의 훌륭한 그림 앞에서 조용히 감사하며 아무 목적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고귀한 건축물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음을 열린 마음으로 황홀하게 들을 수 있으며, 어느 풍경의 선을 진심으로 즐기며 따라갈 수 있다. 그때 평소 단지 우리의 의욕과 관계, 소망의 흐릿한 그물 속에서만 생각되던 것이 우리에게는 그림이 된다. 다시 말해 골목과 시장의 삶, 태양의 유희와 물이나 땅 위 그림자의 유희, 수관(樹冠 나무수 갓관)의 형태, 동물의 외침이나 움직임, 인간의 걸음걸이와 태도 같은 것이, 목적을 추구하는 삶으로부터의 이러한 해방을 마음속으로 추구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는 자는 아무런 결실 없이 빈손으로 돌아오고, 기껏해야 자신의 교양이라는 주머니를 약간 묵직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뿐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바라보고 사심 없이 받아들이려는 이런 미적 충동은 더 넓고 높은 관계를 갖지 않는가? 그 충동이 막연한 쾌감에 대한 동경에 불과한 걸까? 그 충동이 단지 소홀히 한 힘과 욕구의 복수하고 경고하는 고통에 불과한 걸까? 은폐된 배고픔과 은폐된 에로틱, 은폐된 분노와 은폐된 약함에 불과한 걸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만테냐의 그림을 보는 것이 멋진 도마뱀을 보는 것보다 내게 더 많은 것을 주는 건 무엇 때문일까? 조토나 시뇨렐리의 그림이 그려진 예배당에서 보내는 한 시간이 해변에서 뒹굴면서 보내는 한 시간보다 더 많은 의미가 있는 것은 결국 무엇 때문일까? 

그렇다. 요컨대 우리는 어디서나 인간적인 것을 추구하고 갈망한다. 내가 어떤 아름다운 산에서 즐기는 것은 우연한 현실이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확인한다. 나는 보고 선을 느끼는 능력을 즐긴다. 나는 어느 낯선 아름다운 경치에서 결코 문화로부터 달아나버리지 않고, 경치에서 나의 감각과 사고를 시험해 보면서 순전히 문화를 익히고 사랑하며 즐긴다. 따라서 나는 언제나 다시 감사하며 순순히 예술로 되돌아간다. 따라서 어느 대담한 건축물, 어느 아름답게 그려진 벽, 어느 좋은 음악, 어느 가치 있는 그림은 결국 제어되지 않은 자연을 관찰하는 것보다 더 많은 향유, 막연한 탐색이라는 더 많은 만족을 내게 허용해준다. 내 생각에 미적 충동이 지향하는 바는 가령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나쁜 본능과 습관에서 벗어나 우리 내부의 가장 좋은 것을 확인하고, 인간 정신에 대한 우리의 은밀한 믿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바다에서의 기분 좋은 미역 감기, 즐거운 공놀이, 대담한 눈 속 방랑이 나의 신체적인 자아를 확인해주고, 최상의 욕구와 예감 속에서 자아의 옳음을 인정하며, 별 탈 없는 삶을 통해 자아의 갈망에 답하듯이, 인간 문화와 지적 성과라는 위대한 보물을 순수한 직관으로 인간성 일반에 대한 우리의 강력한 믿음에 답하기 때문이다. 티치아노의 그림들이 내 예감을 실현시켜 주지 않는다면 그의 그림을 보는 즐거움은 무엇 때문에 나의 충동을 확인하고 나의 꿈을 정당화해주겠는가?

그러므로 내 생각에 우리는 깊디깊은 근저에서 인간성의 이상에 대한 구도자로서 외지를 여행하고 바라보며 체험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미켈란젤로라는 인물, 모차르트의 음악, 투스카니아 지방의 성당이나 그리스의 신전이 우리의 생각을 확인하고 굳군하게 해준다. 어떤 감각, 심오한 통일, 인간 문화의 불멸성에 대한 우리의 갈망의 강화와 정당화는 그런 것을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여행하면서 특히 진심으로 향유하는 바로 그것이다.  130-134



저녁이다. 난 호텔 방에 누워 있다. 며칠 전부터 적포도주와 아편으로 살아간다. 장이 형편없이 좋지 않다. 오늘 저녁은 서 있거나 걸어가기에도 용기와 힘이 달린다. 또한 지금은 우기다. 이제 겨우 저녁인데도 바깥은 비에 흥건히 젖어 있고 칠흑같이 캄캄한 밤 같다.  240


지난 몇 달간 받은 무수한 인상들은 나의 젊은 감각을 신선하게 에워싸고 있는 반면 나의 소망과 생각은 벌써 모두 고향에 가 있다. 그럼에도 그것들은 아직 아득히 먼 곳에서 반쯤은 비현실적인 상태에 있다. 그 인상들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면 진정으로 '이국적'인 것은 얼마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인상은 순전히 인간적인 종류의 것이고, 낯선 의상 때문이 아니라 내 자신과 모든 인간 존재와의 친근성에 의해 중요하고 사랑스럽게 되었다.  251


모든 아름다운 광경들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 광경은 인간의 수많은 소소한 일들이다.  253


모든 것보다 더 멋진 것은 언제나 우리가 인간에 관해서 본 것이었다. 어느 힌두인의 꿈결 같은 걸음걸이, 얌전한 스리랑카인의 슬프도록 아름다운 노루 같은 부드러운 눈초리, 검은색을 띤 구릿빛의 타밀족 노동자의 새하얀 눈동자, 고상한 중국인의 미소, 낯선 방언으로 중얼거리는 거지의 더듬는 말, 열 개의 상이한 언어를 지닌 민족들의 사람들끼리 말하지 않고도 이해되는 현상,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우쭐대는 압제자에 대한 조소, 그리고 이들 모두가 우리와 같은 인간이자 형제이며 운명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독특하게 행복한 감정! 낯선 외모를 지니고 본성과 인종이 약간 은폐된 이들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남인도의 이슬람교도는 도도하고 자의식이 있었고, 의젓하게 걸어가는 중국인은 위엄 있고 명랑했고, 작고 날씬한 스리랑카인은 수줍어하는 소녀 같았고, 아담한 말에이인은 영리하고 부지런했고, 근면한 일본인은 작고 현명했다. 그들 모두는 피부색과 외모는 무척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베를린 출신이든 스톡홀름 출신이든, 취리히나 파리 또는 맨체스터 출신이든 상관없이 우리 외국인이 모두 신비롭지만 아주 명백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속하고 유럽인인 것처럼, 그들 모두는 아시아인이었다. 

이것만 해도 멋지고 때로는 놀랍게 보일 수 있었다. 유럽인과 아시아인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긴 하지만, 모든 유럽인에게 뭔가 공통되고 서로를 묶어주는 요소가 있듯이, 모든 아시아인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내게 더 멋지고 엄청나게 더욱 중요한 것은 때때로 온갖 감각 속에서 선명하게 되풀이되는 경험이었다. 그것은 동양과 서양, 즉 유럽과 아시아가 단일체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인류라는 하나의 소속이자 공동체가 있다는 경험이었다. 누구나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사실을 책에서 읽는 것이 아니라 전혀 낯선 민족과 서로 눈을 맞대로 체험하면 그것은 누구에게나 무한히 새롭고 소중하게 된다.  268-269



흰구름


오, 보렴, 다시 두둘실 떠가고 있구나,

잊힌 아름다운 노래들의 

나지막한 선율처럼

푸른 하늘 저쪽으로!


오랫동안 떠돌아다니지 않고

온갖 시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구름을 이해할 수 없지,

방랑의 기쁨을.


해님과 바다와 바람처럼 

난 흰 구름을 사랑하지,

집 없는 사람에겐 

누이이자 천사이기 때문에.



방랑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원시인이다. 유목민이 농부보다 원시적이듯이 말이다. 하지만 정주(定住 정할정 살주)의 극복과 경계의 무시는 그럼에도 나 같은 유형의 사람들을 미래로 향하는 이정표로 만들 것이다. 나처럼 국경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면 더 이상 전쟁도 봉쇄도 없을 텐데. 경계만큼 보기 싫고 어리석은 것도 없다. 경계는 대포나 장군과 같다. 이성, 인간성과 평화가 지배하는 한 경계에 대해 아무것도 못 느끼고 그것에 대해 비웃는다. 하지만 전쟁과 광기가 발발하자마자 경계는 중요하고 성스러워진다. 전시에는 경계가 우리 같은 방랑자에게 얼마나 고통과 감옥이 되었던가! 그런것은 악마나 잡아 가라지!  281-282


내 눈은 지금있는 것에 만족한다. 그도 그럴 것이 보는 법을 배웠으니까. 세상은 그 이휴로 더 아름다워졌다.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다. 난 혼자지만, 혼자 있는 것에 고통받지는 않는다. 다른 어떤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햇볕에 푹 삶아질 용의가 있다. 나는 푹 숙성되기를 갈망한다. 죽을 용의도 있고, 다시 태어날 용의도 있다. 

세상은 더 아름다워졌다.  288



밤길


먼지 덮인 밤길을 걷는다. 

담벼락엔 그림자 비스듬히 떨어지고

포도덩굴 사이로

개천과 길 위의 달빛이 보인다.


한때 불렀던 노래를

나직이 다시 읊조린다.

숱한 방랑의 그림자가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


여러 해 동안의 바람과 눈, 뙤약볕이

내 귀에 울려온다.

여름밤과 푸른 빛 번개,

폭풍우와 여행의 괴로움이.


갈색으로 그을리고

이 세상의 풍요로움을 흠뻑 마시며

계속 이끌려가는 기분이 든다.

내 오솔길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  



배낭족으로 살아가고 너덜너덜한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게 무척 좋다.  290


나는 여자가 아닌 사랑만을 사랑하는 바람둥이에 속한다.

우리 같은 방랑자는 모두 그런 속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의 방랑벽과 나그네 생활 자체가 대부분 사랑이자 에로틱이다. 여행의 낭만이란 절반은 다름 아닌 모험에 대한 기대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에로틱한 것을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켜 해소하려는 모의식적 충동이다. 우리 같은 방랑자는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랑의 소망을 가슴에 품고 다니는 데 익숙하다. 또 원래는 여자에게 향했던 그 사랑을 놀이하듯 마을과 산, 호수와 협곡, 길가의 아이들, 다리 밑의 거지, 목초지의 소, 새와 나비에게 나누어주는 데 익숙하다. 우리의 사랑을 그 대상으로부터 떼어낸다. 우리는 사랑 그 자체로 충분하다. 마치 우리가 방랑 중에 목적지를 찾지 않고 단지 방랑 자체의 즐거움과 길 위의 생활을 추구하듯이.  291-292


나무는 내게 언제나 가장 감동적인 설교자였다...

나무는 쉬면서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 힘을 다해 하나만을 얻으려 애쓴다. 다시 말해 자신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고유한 법칙을 실현하고 자신의 형상을 완성하며 자기 자신을 표현하려 애쓴다. 아름답고 튼튼한 나무보다 더 신성하고 모범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307


나무는 신성한 존재다. 나무와 대화를 나누고, 나무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자는 진리를 알게 된다. 

나무는 개별적인 것은 개의치 않고 삶의 근본 법칙을 설교한다.  308


비 오는 날씨다. 그런 날씨에 나는 생기가 돌고 명랑해진다. 짙은 대기 속에 습기가 오르락내리락 한다. 구름은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새로운 구름이 계속 나타난다. 우유부단과 언짢은 분위기가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  312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과 사물은 변하게 마련이다. 그 흐름은 어떤 것도 거스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이 몇 십 년 동안 이 몬타뇰라에서 클링조어의 가물거리며 타오르는 열므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좋은 것, 그러니까 놀라운 많은 체험을 했다. 나는 마을과 마을 풍경에 무척 감사해야 한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을 번번이 글로 표현하려고 했다. 나는 산과 숲, 포도밭 언덕과 호수 골짜기를 몇 번이고 시로 노래했다. 또한 클링조어의 거처가 있는 조그만 발코니와 높은 유다나무도 묘사하고 찬미했다.  377


나는 오늘 테신을 떠나 뉘른베르크로 가을 여행을 떠난다. 두달이나 걸리는 여행이다. 그런데 그 여행의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해보자니 무척 당혹스런 기분이 든다. 자세히 살펴볼수록 이유와 동인은 더욱 갈라지고 쪼개지며 나누어져서 결국은 먼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그것들은 단선적인 인과성의 열(列 벌일열)이 아니라 그런 열이 얽히고 설킨 그물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결국은 그 자체로 사소하고 우연한 이 여행이 내 이전 삶의 무수한 점들에 의해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직물에서 가장 거친 몇 개의 매듭뿐이다.  383



나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며칠 정도나 귀향을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인가? 추측건대 아직도 오랫동안 여행할 것이다. 아마 겨울 내내, 어쩌면 평생 동안, 결국은 곳곳에서 이런저런 친구를 만나 저녁이면 포도주를 마실 것이다. 때로는 나의 천사가 어느 어스름한 시간에 다시 내 앞에 나타나리라. 또 내 청춘의 성소(聖所 성스러울성 바소)들이. 그리고 어디서나 내 자유의지로, 차가운 바람을 맞거나 흩날리는 나뭇잎을 보고 단지 슬퍼하지만 않고 웃으리라. 내가 가끔 그렇게 생각했듯이, 아마 내 안에 어떤 해학가가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 그러면 나는 잘 해나갈 것이다. 그 해학가가 아직은 오나전히 발전된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내가 보기에 완전히 나빠진 것도 아니었다.  47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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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 여행하면서 쓰고, 쓰면서 여행한다


나는 실제로 여행하는 동안에는 별로 세밀하게 글자로 기록을 하지 않는다. 대신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때그때 짤막하게 적어 놓을 뿐이다.

가령 '보자기 아줌마!'라고 적어 놓고, 나중에 수첩을 펼쳐 그것을 보면 '아 그렇지, 터키와 이란의 국경 근처의 그 작은 마을에 그런 이색적인 아줌마가 있었지' 하고 쉽게 생각해낼 수 있게 해놓는 것이다.  7


일시나 장소 이름이나 여러 가지 숫자 같은 것은 잊어버리면 글을 쓸 때 현실적으로 곤란하니까 자료로서 가능한 한 꼼꼼히 메모해두는데, 세밀한 기술이나 묘사는 될 수 있는 대로 기록하지 않는다.  8


여행을 하는 행위의 본질이 여행자의 의식이 바뀌게끔 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런 것을 반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본질은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다.  11


재미와 신기함을 나열하듯 죽 늘어놓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읽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 일상에 인접해 있는가'하는 것을 (차례가 거꾸로 되더라도 좋으니까) 복합적으로 밝혀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12





한 달 정도 멕시코를 여행하는 동안 그곳에서 만난 몇몇 사람들에게서 "당신은 뭘 하러 다시 멕시코에 오셨나요?"하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면 그때마다 나는 가벼운 혼란을 경험하곤 했다. 그 질문에서는 '다른 나라도 많은데 왜 일부러 멕시코를 여행의 목적지로 정했소?' 하는 뉘앙스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까지 몇몇 나라를 여행했지만, 어떤 의미에선 근원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런 질문을 받은 기억은 거의 없다. 그리스라든가 터키, 독일에 가 있어도 "당신은 왜 또 그리스에 (혹은 터키에, 혹은 독일에) 왔소?"하고 묻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그들은 대체로,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에 여행을 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로서는 당연한 생각이라 여겨진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자인데, 여행자란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남자 혹은 그 여자가 가방을 들고 표를 사서 어딘가로 가는 것, 그것이 여행 아닌가. 그리고 만약 여행자가 어딘가에 가야만 한다고 할 때 그가 터키에, 그리스에, 혹은 독일에, 그리고 혹은 멕시코에 가서는 안 된다는 법이 있는가? 

이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은 어째서 멕시코에 왔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멕시코에 와선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가?"라고 반대로, 어디까지나 담담하게 반문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딱히 뭐라 말할 수 있는 특별한 목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멕시코를 방문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가령 일본을 여행하고 있는 외국인을 향해 "어째서 당신은 일본에 오셨나요?"라고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아마 갖가지 대답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물론 부득이한 사정이 있어 일본에 와야만 했다고 말하는 사람은 예외겠지만) 궁극적으로 그에 대한 대답은 한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 눈으로 직접 그곳을 보고, 자기 코와 입으로 그곳의 공기를 들이마시고, 자기 발로 그 땅 위에 서서, 자기 손으로 그곳에 있는 물체를 만지고 싶어서 왔던 것이다.  49-51


여행 전에 미국인 저널리스트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내가 "이제부터 4주 정도 멕시코를 여행할 생각입니다"하고 말하자 그는 한 가지 충고를 해주었다. 

"멕시코에 가면 사람들이 반드시 당신에게 질문을 할 겁니다. 무슨 이유로 멕시코를 그토록 오래 여행하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질문해오면 이렇게 대답해주면 됩니다. '나는 멕시코 요리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해. 알겠어? 멕시코 요리 말이야'라고 말입니다. 아마 이것이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 될 겁니다. 그러면 무사통과지요."

"그럴 듯하군요."

"하지만 그렇게 대답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문제지요?"

"한번 멕시코 요리 이야기를 시작하면 그들은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우리 엄마의 요리 솜씨는 이랬단다. 우리 할머니의 자랑거리 요리는 이랬단다... 라는 식으로요."  52-53


혼자 멕시코를 여행해보고 새삼스레 절실히 느낀 것은, 여행이란 근본적으로 피곤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이것은 내가 주자 여행을 해보고 나서 체득한 절대적인 진리다. 여행은 피곤한 것이며, 피곤하지 않은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비참함이 끝없이 이어지고, 예상했던 일이 빗나간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87


인간을 피곤하게 만드는 온갖 것들을 자연스럽게 묵묵히 받아들여가는 단계야말로, 여행의 본질일 것이다.

이 말은 너무 극담적인 말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피곤하다느니 하는 것은 구태여 머나먼 멕시코까지 오지 않더라도 어디서든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90


독일에는 독일 나름대로의 피곤이 있고, 인도에는 인도, 뉴저지에는 뉴저지 나름대로의 피곤이 있다. 하지만 멕시코의 피곤은 멕시코에서밖에 얻을 수 없는 종류의 피곤인 것이다.  91


모르는 지역을 여행할 때는 현지인들의 충고를 들어야 하는건 여행자의 철칙이다.  96


치아파스 주는 원래 그전에 살던 원주민이 아직도 강한 지역 공동체를 유지하고 잇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의 콘키스타도르(침략자)가 쳐들어온 것은 1523년이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원주민들을 무력으로 정복하고 그 토지를 몰수해서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원주민들을 노예로 부려 그 토지를 경작했다. 원주민들은 그때까지 살아왔던 마을로부터 좁은 산지 사이의 정착지로 강제 이주당하고, 거기서 병사들의 엄격한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 강제로 기독교로 개종당하고, 무거운 세금을 물어야 했다. 

원주민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혹사당했는지는 그 인구의 급격한 감소만 보더라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스페인인이 땅을 정복했을 때 치아파스에 살던 원주민의 수는 약 35만명이었으니 1600년에는 그 수가 9만 5,000명으로 대폭 줄었다. 스페인인이 구대륙에서 옮겨 온 전염병도 인구 감소의 주된 원인 중 하나이긴 했지만, 그렇더라도 너무나 극심한 인구 감소였다. 원주민들이 얼마나 '소모품'으로 다루어졌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원주민들의 편을 들어주었던 사람들은 바르톨로메 데 라스카사스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선교사들이었다. 그들은 원주민들을 보호하고, 스페인 본국에 그들의 궁핍한 처지를 호소했다. 그리고 가까스로 노예 제도의 폐지를 실현시킬 수 있었다.

이때가 1550년이었다. 산 크리스토발 데 라스 카사스(긴 이름 이기 때문에 라스 카사스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는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지명이다. 

노예 제도는 없어졌지만, 원주민들의 실질적인 예속 상태는 별로 바뀐 것이 없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반란을 일으키곤 했다.  101-103


멕시코가 안고 있는 두 가지 큰 문제, 즉 인종 간의 뿌리 깊은 대립과 극심한 빈부격차의 문제.  104



하룻밤 묵을 모텔을 선택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간단한 일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어디든 마찬가지니까 어딜 가도 상관없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지만, 막상 구체적으로 어느 한 곳을 선택해야 할 때는 망설여진다.

저녁때만 되면 '이 정도면 괜찮겠지'하며 될 대로 되라는 기분으로 모텔을 선택하게 된다. 매일같이 이런 선택을 계속 하다 보면, 어느새 원래 자신의 내부에 있던 '무엇이 좋고 나쁜가'하는 기본적인 가치 기준이 점점 흐려져간다.  248


나는 여행을 하는 동안 줄곧 여행 일지를 쓰고 있었는데(어떤 여행에서나 반드시 매일 여행 일지를 꼼꼼히 적는다. 나는 인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전혀 믿지 않다. 그중에서도 특히 나 자신의 기억을) ...

특별한 의미를 갖지 못한 특징이라는 것은 배열이 명확하지 않은 사전과 비슷하다. 아무리 뒤적여봐도 시간만 낭비할 뿐 아무런 소득도 없다.  249



내가 일본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동안 때마침 한신 대지진이 일어났고, 2개월 후엔 지하철 독극물 사건이 일어났다...

니시노미야에서 고베까지의 길을 혼자 이틀에 걸쳐 묵묵히 걸으며..지진의 그림자 속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지하철 독극물 사건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하고 줄곧 생각했다. 그 두 사건은 별개가 아니다. 한 가지 사건을 푸는 것은 어쩌면 다른 한 가지 사건을 더욱 명쾌하게 푸는 길로 이어질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은 물리적이면서 동시에 심적(心的 마음심 과녁적)인 일이다. 아니 심적이라는 것은 곧 물리적인 것이다. 나는 거기에 나름대로 회랑을 만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덧붙인다면 '나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더 중대한 명제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아직 그런 명제에 대해 논리적으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구체적으로 어디에도 도달해 있지 못하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의 사고가 (혹은 시선이, 혹은 두 다리가) 더듬어온 현실적인 노정을, 이와 같은 불확실한 산문으로 조금씩 그릇에 퍼 담아서 제시하는 것뿐이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두 다리를 움직이고 신체를 움직이는 과정을 일일이 물리적으로 서툴게 지남으로써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간이 걸린다. 비참할 정도로 시간이 걸린다. 때가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288-289


잊힌 사람들의 잃어버린 이야기들.  292




옮긴이의 말 -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하는 여행


자기 내면의 풍경을 조망하려는 노력,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려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참다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 하루키 읽기의 색다른 맛.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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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길은 내게 잃은 만큼 얻고 버린 만큼 채워진다는 것을, 늘 선택을 강요받고 올바른 선택인지 아닌지 조바심 냈던 삶에 '정답'이란 없음을 가르쳐 주었다. 


작은 배낭 하나로 충분했던 그나르이 여행은 내게 사는 데 필요한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을 제일 먼저 일깨워주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앟았던 생각은 '너무 많이 가졌다'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살아가는지, 그리고 집과 방을 채우고 있는 대다수의 물건들이 얼마나 쓸모없는 것인지를 말이다. 내 몸의 일부마냥 끌어안고 다녔던 배낭도, 그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수많은 물건들도 사실은 전혀 쓸모없는, 지금 당장 버려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물건이었음을 깨달으며 적지 않은 충격에 휩싸이기도 했다. 없으면 큰 일 날 줄 알았던 전기, 물 같은 것들도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졌다.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니 자연적으로 행복의 기준도 바뀌었다. 여행 전에는지는 대개 갖고 싶었던 물건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행복했었다. 행복의 유효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사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은 넘쳐났으므로 돈만 있으면 언제든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니 행복은 자연스럽게 돈과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은 돈이 많았으면 좋게싿는 얘기였고, 돈이 필요하다는 것은 행복해지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여행을 마치고 난 후의 나는 더 이상 돈과 물질에 얽매이지 않았다. 나 스스로에게서 행복을 찾는 법, 무언가를 굳이 소유하지 앟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돌아오니 그런 것들이 얼마나 하찮고 쓸데없는 시간 낭비엿는지 수도 없이 깨달았기 때문이다.  31-32


여행은 내게.. 비워내지 못하면 새로운 것을 채워 넣을 수 없다는 것, 나는 비우고 버리는 연습이 많이 필요한 어리석고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해주었다.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법, 어딘가로 떠나지 않아도 여행할 수 있는 법, 삶에 대한 의지, 좋은 친구들, 가족의 소중함, 사랑, 삶의 가치 등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아직은 알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이 시간이 흘러 어떤 형태로 내게 가르침을 줄는지도 기대된다. 

여행 중엔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얻는다. 잃는 것 중에 절반 이상이 살면서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지만 얻는 것 중에 거의 대부분은 살면서 힘이 될 만한 것들이다.  33


Q. 하던 일을 접고 훌쩍 떠났을 때 두려움은 없었나요? 돌아온 뒤의 불안함 같은 거?

A. 있었죠. 그러나 그때는 떠나고 싶다는 목마름이 더 커서 두려움이나 불안함이 그리 크게 느껴지진 않앗어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긍정의 자기합리화였을 수도 있겠지요.

Q.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 떠나지 않으면 포기하지 않아도 될 것들에 대해.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똑같은 결정을 할 수 있을까요?

A. 그다지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하로 할 만한 게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포기했다고 한다면,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왔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아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저는 똑같은 결정을 할 것 같아요.

Q. 스물아홉은 긴 여행을 떠나기엔 너무 늦은 나이 아닐까요?

A. 하고 싶은 때가 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해요. 떠나지 못하는 건 아마 떠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이것 때문에 안 되고 저것 때문에 안 되는 건 순전히 자기가 만든 룰이잖아요.  39


이제 여행을 시작한 지 겨우 3일이 지났다. '어디서 잘지, 무엇을 먹을지, 어디로 갈지'만을 생각하며 정신없이 돌아다니니 정작 내가 왜 이곳으로 떠나왔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떠남의 갈증이 해소되고 나니 또 다른 허무함이 찾아왔다. 그저 '떠나라'는 마음속의 외침에 충실하고 싶었지만 여행으로 인해 많은 것들을 놓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은 항상 나를 괴롭혔다. 게다가 이곳 인도는 자꾸만 나를 지치고 힘들게 만들어싿. 맘 편하자고 여행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답답한 생활을 도저히 즐길 수가 없었다.  63


바쉬쉿(vashisht)은 마날리에서 4km정도 떨어진 유황 온천으로 유명한 작은 마을이다.

인도 여인들은 탕 안에서 머리를 감고 때를 밀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았다. 탕속의 물로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탕 속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몸을 꿈쩍할 수가 없었다.

'겨우 며칠 안 씻는다고 죽지는 않는다.'고 위로하며...

탕속의 풍경은 며친 전과 다르지 않았다. 달라져 잇는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었다.

옷을 벗고 탕 속에 들어갔다.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던 이 낯선 풍경이 몸에 찬기가 덜어질수록 서서히 익숙해져갔다.

이제는 물에 뭐가 섞여 있는지, 깨끗한지 아닌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저 따뜻한 물이 끊임없이 나온다는 사실이 고맙고 또 고마웠다.  68-73


'아, 드디어 서른이다.'

뭔가 달라진 공기를 느껴보려 폐 깊숙이 숨을 들이켜 봤지만 별다를 게 없었다. 어제도 그제도 똑같앗던 공기였고 일상적인 아침이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다자고짜 서른이 주는 의미에만 매달려 있던 내가 아무런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왜 그렇게 그 나이에 집착했던 걸까. 무작정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걸까, 특별한 서른을 맞이하겠다며 떠나온 나는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서른이 되면 무언가가, 정말 막연히 그 무언가가 달라져 있을 거란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스스로가 변하거나 노력하지 않으면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85


평범한 일상들이 길 위에선 조금 더 특별해지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렇게 여행을 좋아하는 걸까? 지티고 힘들기만 했던 일상을 떠나 그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이였는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주고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일, 그것 또한 여행의 몫이리라.  90


푸쉬카르에서 머문 3일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걷고, 카트에 앉아 책을 읽고, 공연을 보고 일몰을 본 게 전부다. 무언가에 쫓기듯 이동했던 인도에서 처음 맛보는 휴식다운 휴식이었다. 급할 게 뭐가 있다고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그렇게 떠돌았던 걸까. 인도가 싫고 인도사람이 싫다며 투덜거리기만 했던 내게 '생각했던 것처럼 행복한 여행이 아니어서 싫고, 좋은 것만 기대했던 네가 싫었던 것은 아니었나?' 되물었다.  97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나의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일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남의 일상에 들어와서 무언가를 느끼고 감동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 테다. 다시 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과 함께 했던 또 다른 일상을 추억하며 행복에 젖는 것, 여행자의 몫은 여기까지가 아닐까.  125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매한가지다. 단지 생김새가 다르고 풍습과 문화가 다르다며 신기하게만 생각하고, 특이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라 막연하게 기대했던 내 바보 같은 생각이 문제였다.  186


햇살이 눈부셔 눈을 감고 있던 그때, 바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곧이어 발끝을 간질이는 바다 소리가 들리고 자갈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들렸다. 멀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이파리 소리와 풀벌레 소리도 들려왔다. 순간 생각지도 못했던 소리들에 놀라 눈을 번쩍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소음에 익숙했던 내 귀가 처음으로 자연의 소리를 감지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었다. 여전히 작은 해변에 누워 있는 내가 전부였다. 이렇게 큰 소리를 지금껏 왜 듣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다시 누워 눈을 감앗다. 그리고 자연이 내는 경이로운 소리들을 마음으로 끌어당겼다. 파도를 생각하면 그 소리만 크게 들렸고, 바람을 생각하면 파도 소리가 페이드아웃 되고 바람 소리만 다가왔다. 신기하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듣고자 하면 들렸고 듣길 원하지 않으면 또 들리지 않게 됐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텅 빈 상태가 됐다. 무중력 공간을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분, 이런 게 자유가 아닐까 싶은 편안함을 느꼈다.  200-203


자연이 주는 넉넉한 풍요로움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다음 세대도 이 축복을 공유할 수 있도록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어쩌면 그것은 여행자로서 제일 먼저 깨닫고 실천해야 할 일일는지 모른다. 잠시 머물다가 떠나는 여행자는 물론, 인생이라는 여행길을 걸으며 지구에 잠시 머물다 가는 우리 모두에게도.  212


인도에서도 네팔에서도 태국에서도 보았고 우리의 시골에서도 본 풍경들이지만 캄보디아의 풍경은 유독 슬퍼 보였다. 유난히 붉은 길, 그 길 위에 맥없이 떨어지던 붉은 태양. 마른 먼저를 피워내며 달리는 차에서 바라 본 불투명한 풍경들이 마치 오래된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아주 슬프고 가슴 아픈 영화의 한 장면. 가끔씩 울컥 쏟아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아 내느라 여러 번 거친 호흡을 걸러 냈지만 주책없게 한두 방울이 흘러 나왔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부쩍 눈물이 잦아졌다. 절대로 남들 앞에선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내가 인도사람들과 싸웠다고, 파도소리가 너무 아름답다고, 붉은 흙길이 슬프다고 사람들이 보거나 멀거나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으니 나도 내가 어색해 죽을 지경이었다. 약해 보이면 안된다고 그래서 남의 입에 오르내리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옭아매던 동아줄이 여행을 하는 동안 어느샌가 느슨하게 풀어져버린 것 같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참고 견디고 다지며 살아왔던가. 힘들고 냉정한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하나씩 쌓아올린 벽, 그것이 나를 지키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니 보호가 아니라 고립, 스스로를 가둬놓은 꼴이 되어버렸다.  222-22


세상 어디에도 슬픔만 존재하는 곳은 없다. 행복만 존재하는 곳도, 눈물만 존재하는 곳도 없다. 이렇게 적당히 고통과 상처가 눈물과 환희로 얼기설기 어우러지며 둥글게 굴러가는 것이다. 사람 사는 건 어디건 닮아 있다. 다시 한 번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마음이 놓여진다.  241-242


집에 도착해 내 방에 들어섰을 때 깔끔하게 정리된 침대와 깨끗한 이불을 보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매일 같이 잠자리를 구하느라 힘들게 걸었던 시간들과 더러운 시트에 우비를 깔고 자던 기억, 벼룩이 옮아 고생했던 기억들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더 이상 고생스럽게 잠자리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갈아입을 옷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이번엔 단정하게 접힌 깨끗한 수건들과 커다란 통으로 가득 채워 잇는 샴푸와 린스를 보고 또 가슴이 먹먹해져 버렸다. 매일 빨아 써야 하고 가끔 물이 안 나와 그냥 냄새나는 채로 말려서 써야했던 한 개의 수건, 불량식품처럼 줄줄이 매달려 있어 하나씩 잘라 썼던 일회용 샴푸, 돈 아끼느라 8개월 동안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린스, 이 모든 것이 너무 감격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사치인 듯 느껴져 불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물론 편리하기는 했다. 전기는 항상 연결되어 잇었고 언제든지 수도꼭지를 틀면 시원한 물이 쏟아져 내렸다. 수건은 넉넉했고 샴푸와 린스도 항상 가득차 있었다. 그런 일차원적인 문제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마냥 고맙기는 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당장 없어진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그리고 가족들, 친구들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가졌어.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건 이렇게 많지가 않다고!" "동생아, 양치할 땐 물을 잠가라. 지구 반대편에선 물이 부족해 죽어가는 어린이들도 있다." "친구야, 또 뭘 산거야? 너 죽을 때 그거 다 짊어지고 갈래?"

그러나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물을 틀어놓고 양치를 하고 린스를 듬뿍 짜서 머리를 헹궜다. 다 먹지도 않은 찌개를 지겹다며 다른 것을 끊여 달라 잔소리를 하고 옷을 사야 된다고, 상한 머리칼을 다듬어야 된다고 엄마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편리한 생활은 그렇지 않은 생활보다 적응하기가 더 쉽고 빨랐다.  301-302


물질과의 여행이 아니었다. 마음과의 여행에 필요한 물건은 그리 많지가 않다. 나는 여행을 떠나고서야 그것들을 느낀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꽤 많은 곳을 여행했고 가볍게 짐 꾸리는 데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장기 여행을 준비하며 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잊고 있었다.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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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한 숟갈 더 먹으면 체할 것 같다. 그런데 그 마지막 한 번을 먹고 어김없이 체한다. 내리지 못할 걸 알면서도, 그 무게를  더하는 데 익숙한 삶은 늘 어지럽다. 침대에 누워 천천히 가라앉힌 뒤 차가운 냉수를 한 잔 마신다. 어쩌면 사랑이란, 가라앉힐 수 없음을 미리 알고, 쓸쓸하게 삭히는 것인지도 모를 일, 체를 내린 후 카메라를 들고 길 위로 나선다.


맥주 한 캔을 다 마셔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주를 산다. 마실거라고 우긴다. 숙소에서 깡통을 딴다. 딸 때의 그 느낌은 참 경쾌하다. 마셔본다. 역시나 쓰다. 난 맥주를 마시지 못한다. 결국 버린다. 버릴 걸 알면서 사는 맥주. 내 손에 선택되었다가 버려지는 맥주들은 늘 애틋하다. 그대에게 얻은 경쾌한 울림들이 애틋하게 내 목을 넘어가는 동안.

사랑은 종종 기적처럼 사라진다. 채글 내리는 동안, 쓸쓸함을 삭히는 동안, 그리운 멀미를 다스리는 동안, 맥주 한 모금을 목넘김 하는 동안.

텅...텅... 빈 마음을 일으켜 그대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가라앉히는 것도, 사랑이다.


한 달쯤 지나면 여행은 그냥 일상이 되어버린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지도를 펼쳐놓고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맞이하는 대신, 익숙한 고민을 시작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을 것인가?'


사랑의 추억엔 좋고 나쁨이 따로 없다. 다만 추억과 소통하는 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 화해할 수 없는 것들과 화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경이로운 힘, 그것은 오직 사랑의 영역에서만 가능하다. 


먼 곳을 순례하다 보면 어떤 날은 유유하고 여유로운 기억이 종일을 채운다. 치열하게 걸을 자유가 있는 것만큼 아무것도 안 할 자유도 있는 게 여행자의 특권이리라. 또 어떤 날은 하루 내내 세탁방을 찾아야 하며, 또 겨우 찾아서는 두 시간가량 멍하니 세탁과 건조의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날도 있다. 내게 파리의 첫날이 그랬다. 꼭 10년 만에 다시 찾은 파리, 그 황홀한 재회에 숨 막힌 것도 잠시, 숙소를 찾는 일이며 산더미 같은 빨래를 맡겨야 하는 일이며 부서질 같은 피곤이 몰려든다. 그래도 다시 만난 파리는 사랑스럽다. 고 쓴다. 사랑에 바쳐지는 피곤은 아름답다. 고 고백한다.


아비뇽의 좁다란 골목의 별 하나짜리 '미뇽'호텔.

아침마다 미뇽의 사장님이 직접 따라주는 커피를 마실 수 있고, 배고픈 여행자들을 위해 크라상을 아끼지 않는 곳.

체크아웃조차 "편한 시간에 아무 때나 하세요."라며 웃어주는 곳.

그래서일까,

아비뇽의 거리조차 내내 친절하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

그곳이 아니었다면 별 하나짜리 호텔에 대한 편견을 갖고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

충분히 아늑했고, 충분히 편안했던 곳.

힘든 여정속의 따뜻한 숨구멍이 되어준.

결국 중요한 건 '별의 개수'가 아니었다.

.. 그러고 보니... 중요한 건 너의 웃음보다 뜨거운 가슴미었는데..그만 외면하고 말았구나, 나는.

눈에 보이는 것만 믿었던 시절이 아쉽다.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 말을 하지 못한 대가로 나는 많은 것을 잃었다.

많은 것을 잃은 자의 가방은 늘 무겁다.

마음의 헛헛함을 채우려는 욕심 때문이다.

그대를 갖고 나면 그대의 곁을 갖고 싶었다.

그대의 곁을 갖고 나면 그대의 세계를 갖고 싶었다.

그대의 세계를 갖고 나자 그대를, 잃었다.

잃고 난 빈 자리에서 짐을 싸는 여행자여,

짐 속에서 짐을 싸는 사랑이 있음을...


산 속에 서면 산이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하면 사랑이 보이지 않는다.


딱히 큰 고민은 아니었지만, 작은 고민들이 모여서 내 마음이 그토록 무거웠던 것이었나.

여행에서 짐을 하나씩 하나씩 줄여 나가듯, 내 고민도 하나씩 정리해서, 무게도 줄어들었으면.

짐 줄이듯, 고민도 줄일 수 있었으면.

버릴 건 버렸으면. 

그랬으면.


때론 내가 주인공인데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하는...


언젠가 내게 물었지. 너처럼 게으른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여행을 자주가냐고. 왜 그런지 나도 생각해 봤어. 게으른 내가 남들보다 더 자주 떠나는 이유를, 생각해 보니 정말 단순한 결혼이 나오더라, 그건 바로 게을러서야. 혹시 지금 웃고 있니? 이건 정말이거든. 생각해 보렴. 게으르기 때문에 난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없어. 일단 마음을 먹으면, 무조건 떠나는 거지. 남들처럼 준비를 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않아. 그렇다고 걱정이 없는 건 아니야. 나도 알거든. 내가 여행을 가서 언제나 먹던 김치를 그리워하고, 언제나 쉽게 긇여 먹는 라면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을. 막상 피곤하면 카푸치노, 카페라떼, 아메리카노 보다 맥심 모카골드 커피믹스를 더 찾게 될 거란 사실을, 만약 아프거나 할 때, 약국에 가서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막막하다는 사실을 말이야.  


여행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무섭도록 잘 맞는 법칙 하나. 그 여행이 길든 짧든, 

꼭 마지막 날에 좋은 걸 발견하게 되는 것.

오래된 애인과 헤어짐을 감지할 무렵, 그 사람이 징글징글하지만, 진짜 매력을 알게 되는 것처럼

길거나 짧거나 상관없이 여행지에서의 그 마지막 날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

그래서 결국 또 오게 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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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실감이 나질 않아."  9


여행할 때,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섰을 때, 낯선 것들과 조우할 때, 그 설렘. 아무래도 그것이 내게는 '살아 있는 실감'에 가장 가까운 감각이었다.  10


'생활인'인 나에게 충실하기 위해서는 내 방식의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많이 온다. 그리고 나이를 먹을 수록, 현실에 대한 내 책임이 더 늘어날수록 그 순간은 더 자주 찾아올 터였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실과 꿈이 공존하는 방법을, 핏줄에 부는 바람을 안고 생활인으로 사는 방법을, 먹고사니즘과 '내 방식의 행복'이 함께 손잡고 이인삼각으로 비틀거리며 걷는 방법을.  14


여행과 일상의 중간.  21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마흔이 되고 싶다.  37


"평범하게 사는 게 어떤 건데? 먹을 것, 잠잘 곳, 놀 곳, 섹스 상대. 이거 말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뭐가 더 필요한데?"  111


"한국 사람들 늘 그러잖아. 뭐하지? 뭐해야 되지? 안절부절."

왜 시비냐고 버럭 하려다가 참았다. 저날 밤 톰과의 대화에서도 느꼈듯, '인생'이라는 마라톤 경기에 대한 한국 사람들과 빠이 사람들의 태도 차이가 너무도 극명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은 구간 내내 전력 질주를 한다. 빠이 사람들은 경주에 아예 관심이 없어 보인다. 트랙 근처 나무에 해먹 매달아놓고 낮잠 자는 모습이다.

과연 삶이라는 마라톤은 어떻게 달려야 할까. 가장 좋은 건 적당히 속도안배를 하면서 달리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건 반드시 사회 시스템이 받쳐줘야 하는 걸지도 모른다. 구간마다 물컵이 달리는 사람 수만큼 놓여 있어야 할 거고, 어떤 출발점이나 환경에서 시작하더라도 불이익을 겪지 않도록 규칙과 트랙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아예 중간에 트랙에서 내리는 방법도 있을 거다. 조기 은퇴나 조기 퇴직 같은 것. 그러나 그러려면, 달리는 동안은 얼마나 치열하게 달려야 하는 것일까.  113-114


"속 터져요, 한국 같으면 벌써 다 지었어. 진짜 태국 애들 일 못하는 거 상상 초월이야."

"학비는 받나요?"

"아니, 기숙사까지 전액무료."

"학교 다 지으시면 교장선생님 되시는 거예요?"

"아니, 애들이랑 선생님한테 줄 거야. 나는 다시 딴 거 해야지. 여행 가든가. 내가 건물만 올려 주ㄴ면 그담엔 자기들이 지지고 볶고 만들어 나가야지. 밥도 해먹고, 농사도 지으면서."

"그럼 이 건물을 짓는 특별한 이유라도..."

"놀이."  128


난 그냥 내 고산족 친구들한테 해줄 게 없을까 하다 한번 만들어 보는 거예요. 아, 재미있잖아. 일 잘 안 풀리면 홧술도 한잔씩 마셔가며."

"살아 있다는 실감은 제대로 느끼고 사시겠네요."

도인 아저씨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다.  129


차가 읍내로 들어서자 기분이 복잡해졌다. 온천이나 폭포 같은 곳은 갈 생각 없다. 그것은 내게 그저 빠이라는 동네의 장식에 불과 했다. 나는 그냥 좁은 타운 안에서도 충분히 행복했고, 만족했다. 그거면 됐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몸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좁은 타운 안에서 한 발짝 나각자, 내가 몸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왼쪽 겨드랑이나 허릿살 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보였다. 빠이에 좀더 머무르고 싶어졌다. 좀 더 머무르며, 속속들이 이곳을 느끼고 싶어졌다.

"저 며칠 있다가 방비엥 가는 표 끊었거든요. 이거 찢을까요?"

아저씨는 느릿느릿 대답했다. "빠이, 블랙홀이야. 한번 빠지면 나가기 힘들어. 그래서 바람 불었을 때 얼른 떠야 돼요. 여기가 바람이 잘 부는 데가 아니거든."  130


나이가 먹을수록 설레는 일이 줄어간다. '그런 거 예전에도 봤어.' , '다 아는 거야.' 같은 허세와 교만은 조금씩 느는 것 같은데 새로운 것에 대한 발견과 깨달음의 설렘은 나날이 줄어간다. 나는 돈 뎃의 노을 앞에서 너무도 설레었다. 노을 겉은 거 보고 설렐 줄은 나도 몰랐다. 다시 한 번 그 처음 본 붉은 빛을 보고 싶었다. 한 번쯤 더 설레 보고 싶었다.  216


라오스에서 필요한 것은 '비움'이다.  231


누군가 '라오스에서 뭘 하셨어요?'라고 물으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다. '기다렸어요.' 내가 기억하는 라오스 여행의 절반 이상은 기다림이다. 그것도 확실치 않은 기다림.  237


지금까지 나 자신을, 특히 여행할 때의 나 자신을 돌이켜 보고 얻은 결론인데, 나는 고생을 싫어하지 않는다. 내 몸과 내 예금계좌와 내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히지 않는 한도 내어ㅔ서의 고생이나 소동은 오히려 좋아한다. 무탈하고, 평온하고, 고요한 나날이 계속되면, 재미없다. 나이를 먹고 많은 상황에 익숙해져 갈수록 실수할 일도 잘못될 일도 줄지만, 그만큼 흥분하고 떨리고 가슴 졸일 일도 줄어든다. 그러고 보니 마흔은 '불혹'이했지, 흔들리지 않는 나이. 그 나이에 대해, 하나만 소박하게 바란다. 나는 흔들리지 말고, 내 주위의 공기를 조금씩 흔들려주기를, 아무것도 흔들리지 않을 때는 나 스스로 흔들 수 있는 자유를 잃지 않기를.  264


지금까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사실 그것들이 알고 보니 내게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었던 거다. 적어도 '행복'을 위해서는 말이다. 그렇다면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나 나다운 행복을 느끼기 위한 최소공약수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그렇다. 세상을 삼십 년도 넘게 살아왔건만, 나는 단 한 번도 '행복해지는 법'에 대해 배워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두들 주변에서 '잘살아야 한다'라고 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잘산다'는 것은 경제적인 안정과 풍요, 그리고 남들 보기에 번듯한 외적 조건을 갖추는 것. 잘 사는 거, 좋지. 그렇게 살면 참 편할 거다. 거칠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을 거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했을 때 기억과 마음에 남는 건 잘살았던 것보다는 행복했던 것들 쪽인 거 같다.  275


호수를 빙 둘러싸고 울창한 열대 밀림이 우거져 있었다. 날이 흐린데도 물에서는 불쾌한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지독하게 맑은 공기 위로 축축한 밀림의 향기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외국인인 나를 보고 쑥스럽게 웃음을 지어 주었다. 

자, 이제 돌아가자. 어차피 호수에서 굳이 뭘 하겠다고 온 것은 아니니까. 그저 남아도는 한나절과 매너리즘을 쓰임새 있게 버릴 곳이 호수였을 뿐이다. 평소에도 이런 식으로 시간은 자주 버리잖아. 만화책으로, 게임으로, 트위터로, 메신저 수다로. 다만 이번 땡땡이에는 동그란 물, 붉은 진창, 울창한 밀림과 낯선 풀 냄새, 그리고 애물단지 같은 자전거가 하나 있는 거다. 라따나끼리에서 땡땡이는 이런 식으로 치는 거다.  287-288


내가 사는 나라, 얼마 전까지 변두리였다가 신도시가 된 우리 동네에서는 로스(스위스인)의 동네가 꽤나 행복해 보인다고 말한다. 더이상 바랄 것이 없어 보이는 그 부티와 안정감, 우리는 그것을 손에 넣기 위해 오늘도 그토록 치열하고 시끄럽게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막상 그런 '행복'을 손에 넣은 것처럼 보이는 동네 주민은 정작 자기들이 행복을 잃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 땅, 인도차이나의 사람들은 정작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정말 그렇게 마냥 행복할까? 저 부유한 나라에서 온 친구의 말뜻은 결국 이건데, 행복과 소유는 그다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까 결국 행복은 마음의 문제라는 것, 적어도 인도차이나 사람들은 그 '행복'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것 같다. 낙천적이고, 여유롭다. 정확성이니 효율성 따위에 집착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대로 살아간다. 불교라는 사상적 배경 때문에 현세의 괴로움에 너그럽다. 게다가 최소한의 의식주도 해결하지 쉽다. 밖에서 자도 얼어 죽을 일 없고, 바나나며 망고스틴 같은 과일이 지천이니 굶어 죽을 일도 없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땅의 곳곳에서 욕망의 냄새를 맡는다. 생존과 생리에 대한 기본적인 욕망이 아닌, '소유'를 향한 자본주의적 욕망 말이다. 이런 욕망은 아주 쉽게 부도덕 및 몰양심과 결합한다. 나는 그것을 내 나라에서 징그럽게 많이도 보아왔다. 그리고 불행히도, 나는 이 땅에서 그런 '징후'를 몇 차례나 보고 말았다.  297-298


욕망을 가진 자에게는 그 욕망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와 장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좀더 노동과 대가의 의미를 제대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다. 착취당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저 얻는 것도 아닌 제대로 된 대가.  298


솔직히, 도시는 편하다. 나는 도시의 그 컵라면 같은 편리함이 그리웠던 거다. 오지에서 그렇게 행복하다고 느꼈으면서도 말이다.  318


미인이란 상대적 희소성에 대한 동경의 산물이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거 참 허무한 건데.  364


만일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아마 물이 넘칠 기미가 보이는즉시 동네 사람들과 애꿏은 군인들이 총동원되어 물을 퍼내고 둑을 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나라는 달랐다. 세계적인 유산 앙코르와트 해자의 물이 불자, 씨엠립 주민들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곳에서 뜰채와 어망과 낚싯대를 들고 고기를 잡고 계셨다. 

같은 지구, 같은 아시아인데도 이드로가 우리는 삶의 속도와 리듬이 달라도 많이 다르다. 우리는 내일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둑을 쌓는데, 이들은 오늘의 만복과 행복을 위해 고기를 잡는다. 왜냐고? 우리는 내일의 행복을 대비하지 않으면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수 있다. 이들은 그냥 살아가도 먹을 것, 잘 자리는 생긴다. 우리는 죽어라 쉴 새 없이 손을 놀려야 겨우 1년에 한 번 추수하는 쌀, 이들은 두 번도 거두고 세 번도 거둔다. 당연히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는것 아닐까. '저러고 사니까 이렇게 못살지'도, '아, 왜 우리는 이렇게 찌들고 각박하게 살아야 하나'도 아닌 거다. 그녕, 다른 거다. 틀린게 아니라, 다른 거. 게다가 이들은 윤회를 믿는다. 이들에게 진짜 미래란 10년 뒤, 20년 뒤 따위가 아니라 다음 세상일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착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어쩌면 이들에게 진자 미래를 대비하는 방식일 수도 있는 거다. 

그러나 이 '다름'에 조금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다. 정말 그것으로 족하냐고, 그래도 되는 거냐고. 아이들을 보았을 때였다. 현실의 언저리만을 맴돌며 '썸말로이'를 외치는 씨엠립의 아이들을 말이다.  403-405


이 영악하기 짝이 없는 꼬마 사업가들은 과연 어떤 배경으로 탄생하게 되었을까? 이런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킬링필드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어요. 그 당시에 가장 먼저 숙청당한 사람들이 바로 지식인이랑 자산가였거든요. 캄보디아 사람들 아직 은행 잘 안 믿어요. 은행에 저축하는 대신 금을 사서 집에다가 묻어두죠. 그러니까 아이들 학교 보낼 필요성도 못 느끼는 거죠. 가르쳐 봐야 잡혀가서 죽기나 할 테니까요. 그냥 돈이나 버는 게 훨씬 낫다는 거예요. 게다가 애들이 좀 잘 버나요. 그래서 애들 내보내서 돈 벌어오라고 시킨 다음에 부모들이 도박이나 술로 탕진하는 경우도 많아요."  411


장기 여행자들을 보면 두 종류다.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나온 사람들, 아예 처음부터 안정된 생활 같은 게 없는 사람들, 카오산에서도 두 종류로 보인다. 처음부터 안정된 생활 같은 게 없는 사람, 또는 카오산에서만큼은 안정이고 나발이고 버리고 싶어 보이는 사람.  425


시간은 유한한데 지구는 너무 넓다. 그리고 갈 데가 너무 많다.  429


서른다섯,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치열한 나이의 한여름, 그해의 여름, 나는 행복해지겠다며 조금은 억지를 섞어 이렇게 뛰쳐나왔고, 그렇게 긴 여름을 보내며 많이 행복했으며, 몰랐던 것 한 가지를 배웠다. 자잘한 불편과 결핍은 사실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 세상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최소 공약수가 존재한다는 것. 그것을 찾아내고 실천할 수 있는 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가 이 최소 공약수들이 더 이상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것이 덧없고 시시해지고, 무언가에 구속당하고 싶고, 낯익고 좁은 것들 사이에 있고 싶어질 때가, 언젠가는 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올 때를 나는 꿈꾸려 한다. 좀 더 나이가 들고 성숙한 내가, 세상의 한 구석에 정착하여 그곳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는 모습을. 씨엠립에서 꿈꾸었던 모습일 수도 있고, 다른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냥 아줌마가 되어 가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람 앞일이란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어쨌든, 내 인생의 가을은 그런 모습으로 찾아올 것이다. 그때까지는, 나는 열심히 행복하려 한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더 많은 여행을 다니고,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책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욕망을 '성취'라는 이름으로 풀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행복하게, 내 인생의 남은 여름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44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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