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서문(페터 엥겔만(Peter engelman))


이 책은 철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6


두 사람은 중요한 철학적 개념들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사건(the Event)이나 실재(thw Real)와 같은 개념들과 관련해서 그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계의 역할 또는 정치에 대한 이해에서도 서로 의견을 달리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들은 철학적 개입이 철학적 사유의 특유성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고,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한계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한다.  8



1 알랭 바디우 - 사건을 사유하기


진정한 철학자는 중요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  16


철학적 상황으로 분류될 수 있는 세 가지 예를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예....철학은 선택으로서의 사유, 결정으로서의 사유에 직면하게 되고, 철학의 고유한 임무는 선택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 된다. .. 실존의 선택 혹은 사유의 선택  17, 19


두 번째 ...거리에 대해 사유하고 고려하는 것, 또는 이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창안해 내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22


철학적 상황에 대한 첫 번째의 정의 : 선택, 즉 결정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기. 철학적 상황에 대한 두 번째 정의 : 권력과 진리들 사이의 거리를 규명하기.  22


세 번째 ...예외를 사유해야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삶의 변형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4


선택과 거리, 그리고 예외를 다루는 것이 철학이 수행해야 할 세 가지 큰 과업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철학이 삶 속에서 학문적 분과와는 다른 어떤 중요성을 가지려면 말이다.  25


가장 심오한 철학적 개념들은 우리에게 "만약 당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사건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확고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말해 준다.  26


플라톤은 한때 철학이 깨어남이라고 말했다. 이 깨어남이 잠과의 어려운 단절을 함축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잘 알고 있었다. .. 역설적인 관계, 관계 아닌 관계, 균열의 상황이 존재할 때마다 철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은 정당한 것이 된다.

나는, '어떤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철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철학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것에 대한 사유가 결코 아니다. 철학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것에 대한 사유가 결코 아니다. 역설적인 관계들이 존재하기 ㄸ매ㅜㄴ에, 단절들이나 결정들, 거리들, 사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철학이 존재하는 것이고 또 철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28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관계 아닌 관계가 존재하는가? 통약 불가능한 요소들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일 경우 우리는 선택과 거리, 예외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끌어낼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의견에 대한 단순한 고려로부터 철학적 상황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철학적 참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조건들 아래서이다. 이렇게 해서 철학적 참여는 철학적 기준들을 사용하면서 철학이라는 영역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확신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32-33


나는 철학적 참여가 갖는 단독성(singularity)을 강조하고 싶다.  33


철학은 정치적 기호들을 토대로 작동할 수 있으며 정치적 기호들을 사용함으로써 문제들을 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철학이 정치 자체와 혼동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33


일반적인 의미에서 철학적 참여는 이질적인 것이다 이질성을 소유하지 못한 채 그저 진부한 것이 될 때, 이와 같은 역설에 몰두하지 않을 때 철학적 참여는 꼭 철학적일 필요가 없는 정치적 참여, 이데올로기적 참여, 시민의 참여가 된다는 의미이다.철학적 참연느 그것의 내적 이질성에 이해 특정지어진다.  35


보편성이란 정확하게 무엇인가? 나는 보편성에 대한 여덟 개의 명제들로 이 질문에 답해 보려 한다. 

명제 1 사유는 보편성의 고유한 매개이다. 

'사유'라는 개념을 가지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주체, 그러니까 기존의 지식이 갖는 총체성을 중단시키는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 주체이다. 또는 자크 라칸(Jacques Lacan) 식으로 지식 내부에 구멍을 내는 그런 주체를 말한다.  36-37


비추이적 관계 : 추이성은 귀속과 포함의 일치나 균형을 통해 온전히 닫힐 수 있는 하나를 구성한다. 그러나 바디우에게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나 집합을 요소로 귀속될 수 없어 셈할 수 없는 잉여를 포함한다. 셈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집합을 불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내용 없음으로 말미암아 셈을 가능하게 하는 공백이 바로 사건의 자리이다. 상황이 자신의 부분으로 귀속될 수 없는 공백을 품게 될 때, 우리는 비추이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상황의 셈에 따라 규정되거나 지식으로 만들어질 수 업슨 '유적'진리. 특수성이 식별할 수 없는 공백인 단독성. 이들은 모두 상황이 자신 속의 공백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을 온전하지 못하게 하는 고백을 품고 잇는 관계(아닌 관계)가 바로 비우이성인 것이다.  39


명제 2 보편적인 모든 것은 단독적인 것 또는 단독성이다.


명제 3 모든 보편성은 사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사건은 상황의 특수성과 비추이적 관계를 맺는다.


사건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은 보편성과 단독성 사이의 연관 관계를 타깃으로 삼는다.  42


보편성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만남이나 선언이 함축하는 단독성, 다시 말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그러한 단독성이 존재해야 한다.  43


명제 4 보편성은 처음부터, 결정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결정으로서 스스로를 제시한다.   


적절한 신분증명서를 갖추지 못한 채 여기 프랑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나라의 일부분인가? 그들은 여기에 속하는가? '아마도, 그들이 여기서 살고 일하고 있기 때문에', 또는 '아니, 그들이 프랑스인임을, 합법적으로 여기 살고 잇음을 보여주는 서류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법 이민자'라는 용어는 가치의 불확실성 또는 가치의 무가치를 지시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여기 살고 있지만 정말로 여기 속하지는 않는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이 나라 밖으로 쫓겨날 수도 있는 사람들, 프랑스에서 노동자들로서의 그들의 현존이 갖는 가치의 무가치성에 노출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시하는 것이다.  45-46


- 상황의 실재(그것이 이미 거기 있었다는 점에서)로서,

- 그렇지만 가치의 급진적 변화를 경험하는 어떤 것으로서, 이는, 그것이 결정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이제 결정되었다는데 기인한다. 이전에는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이다.  47


명제 5 보편성은 내포적 형식을 갖고 있다.


<메논>에 등장하는 플라톤의 해명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만약 한 노예가 기하학이라는 사건의 토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주어진 정사각형보다 면적이 두 배나 큰 정사각형의 구성을 확증할 수 없는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업삳.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그가 그것을 주체화하는 데 동의한다면 그는 문제가 된 정사각형의 구성 또한 주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사각형의 구성을, 그리스에서의 기하학의 출현에 의해 시작된 현재 속에 각인시키는 내포는 이렇게 해서 보편적으로 합당한 것이 된다.  49-50


명제 6 보편적인 것은 일의적인 것이다.


언표가 사건의 사라짐과 내포적인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는 한, 언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존재나 의미의 질서라기보다는 '행위'의 질서이다. 그리고 바로 이 행위의 영역이 일의적이다.  52


명제 7 모든 보편적 단독성은 완전해질 수 없는 상태 또는 열린 상태로 남아 있다.


명제 8 보편성은 무한한 유적 닷성의 충실한 구겅에 다름 아니다.


유적 다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내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주 단순하게 저일하자면 그것은 상황의 부분집합, 그러니까 백과사전적 지식을 특징짓는 속성들 중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 부분집합을 지시한다. 다시 말해 상황에 소속되거나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이지만 정체성이나 어떤 특수한 자질을 소유함으로써 생기는 결과로 환원돌 수 없는 바로 그 다수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55


이렇게 해서 보편성은 우연적인 대리보충의 기회에 근거해 발생하는 것이 된다. 보편성은, 그것의 토대가 되었던 사건이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흔적으로서 단순하고 사심 업슨 언표를 남긴다. 보편성은 잉ㄹ의적 행위속에서 자신의 절차를 시작하고, 바로 이 일의적 행위를 통해서 가치를 결여한 것이 갖는 가치가 비로소 결정되는 것이다. 보편성은 이러한 해우이를 그것의 결과들을 창안하게 될 주체 - 사유와 연관시키고, 무한한 유적 다수성을 충실하게 구성한다. 그리고 무한한 유적 다수성은 자신의 텅 빔으로 말미암아 투키디데스가 자신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바로 이것(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함축하는 역사적 특수성과는 다른 것이다)이라고 선언했던 '영원한 사로잡힙'(ktema es aiei)이 된다.  56


보편성에 대한 여덟 가지 명제들과 역설적 상황들에 대한 정의를 결합한다면, 여러분은 철학자들이 현재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될 것이다.  56-57




2 슬라보예 지젝 - '철학은 대화가 아니다'


철학은 대화가 아니다.  62


철학적 대화는 없다.  62


우리가 집단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대안들이 이접적 종합을 형성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다시 말해 대안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릇된 것일 수도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 철학자가 취하는 첫 번째 제스처가 되어야 한다. 철학자는 논쟁을 구성하는 바로 그 개념들을 바꿔야만 하는 것이다.  63


내가 보기에 일단의 요구들에 직면해서 철학자가 취해야 하는 첫 번째 제스처는 논쟁을 구성하는 개념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65-66


쾌락주의라는 주제로 넘어가 보자. 쾌락주의와 관련해서도 또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정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가치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버린채 자기중심주의를 키워나가며 쾌락을 추구하는 데에만 삶을 투자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 이에 대한 입장 역시 두 부류로 나뉜다. 이미 굳어진 모든 도덕적 태도들은 폭력 행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디스 버틀러는 독이어로 출간되 그녀의 최근 책 <윤리적 폭력 비판>에서 바로 이 전형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융통성 있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은 다시 한 번 노마드적 주체성이라는 주제와 마주치게 된다. 또 다른 부류에서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으 ㄴ고정된 가치와 연관 관계들이라는 대답을 제공한다. 물로 ㄴ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문제를 직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논의를 구성하는 개념들을 브레히트적 소격 효과의 형태로 표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황 자체는 이렇게 해서 상당히 이상해진다. "아니, 잠깐만. 우리가 지금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지?"철저한 금지로 특징지어지는 소비 사회 속 쾌락주의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즐겨라.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항상 덧붙여진다. "물론 너는 즐겨야 해. 하지만 정말로 즐길 수 있으려며 ㄴ먼저 조기을 하러 가야 하고 다이어트를 해야 해. 그리고 어느 누구도 성적으로 괴롭혀서는 안돼." 결국 이는 총체적인 육체적 규율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다시 오늘날 우리가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상투적 문구로 되돌아가 보자. 오늘날 우리가 전보다 더 믿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 이는 거짓 논쟁이며, 로버트 팔러(Robert Pfaller)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오히려 전보다 더 믿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논쟁을 구성하는 개념들은 그러므로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철학자들 대부분은 이런 높은 수준의 도전을 향해 발을 대닌지 않은 채 우리에게 거짓 대답들을 안겨주고 있다.  67-68


철학적 패스트푸드와 같은 대답, 다시 말해 심오한 설명으로 행세하지만 실제로는 사유 자체를 필요 없게 만드는 대체물에 불과한 그런 대답.  69


유전자공학과 관련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논의할 수 있을까? 유전자공학이 우리의 자유와 자율성을 위협하는가? 내 생각에 이는 잘못된 질문들, 그러니까 여하튼 간에 진정한 철학적 질문들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유일한 철학적 질문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본성, 인간적인 존재 방식이라 이해되는 것을 재규정하도록 강요하는 어떤 것이 유전자공학의 결과물들 속에 존재하는가?  72


지금 나는, 정상적인 철학이 존재할 것이라는 꿈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철학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비정상성에 다름 아닌 것인지도 모르낟. 나는 이런 방식으로 바디우의 이론을 읽고 싶다. (바디우와 나느 ㄴ서로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미워한다. 우리 둘은, 만약 내가 권력을 차지하게 되면 당신은 수용소로 가게 될 것이라는 농담을 자주 주고 받는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나는 또한 철학의 조건들에 대한 바디우의 명제들, 다시 말해 철학은 정의상 과도한 것이라는 명제, 그리고 철학은 말 그대로 외부 조건들(그것들이 사랑, 정치, 과학, 예술 어느 것이든)과의 과도한 연관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그의 명제에 깊은 동의를 표하는 바이다.  80


전치(displacement)를 통해 출현하는 이런 이질성의 순간에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도록 이끌고 싶다.  81


철학은 항상 유기적 사회의 와해를, 최소한의 틈을 필요로 한다.  81


데카르트 <방법서설>의 두 번째 섹션에서 이와 관련된 데카르트의 유명한 주장을 발견할 수 있는데, 거기서 데카르트는 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다른 나라의 관습들이 갖는 이질성을 목격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눈으로 바라볼 경우 우리 자신의 문화 역시 마찬가지로 이상할 수도, 심지어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바로 이곳이 철학이 시작되는 지점 또는 모든 철학자들이 채택하는 전치의 장소이다.  82


철학이 전하려고 하는 근원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특수한 동일시를 넘어서서 즉각적으로 보편성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83




3 토론 


바디우 : 내가 보기에 철학적 참여와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종종 무엇보다 비판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 의구심을 품다. 비판 정신 등과 같은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철학의 과업은 무엇보다 부정적인 것이 됩니다. 나는 이런 생각이 완전히 뒤집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 개입의 본질은 정말로 긍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죠. 철학적 개입의 본질이 그정적인 것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역설적인 상황에 개입할 경우 또는 관계라고 할 수 없는 관계에 개입할 경우 새로운 사유의 틀을 제안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역설을 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는 것이, 모든 것이 마해지고 행해졌다는 유일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 철학은 근본적으로 개념들의 구성에 다름 아닌 것이라고 들뢰즈는 말하는데,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차원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철학을 비판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에 의심을 품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94-95


지젝 : 공식적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검열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일은 매끄럽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에 속아서는 안돼요.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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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무엇보다도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거야." 

"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  64-65


"아빠, 깜둥이들을 변호하세요?"

"그렇단다. 스카웃, 그런데 '깜둥이'라고 말해선 안 돼. 그 말은 품위 없는 말이거든."

"학교에서는 모두 다 그렇게 부르는데요. 뭐."

"이제부턴 다른 사람이 다 그래도 너만은 그러지마라." ....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변호해선 안 된다고 하는데 왜 하시는 거예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읍내에서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고, 이 군을 대표해서 주 의회에 나갈 수 없고, 너랑 네 오빠에게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다시는 말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야." ....

".. 고개를 높이 들고 주먹을 내려놓는 거다. 누가 뭐래도 화내지 않도록 해라. 어디 한번 머리로써 싸우도록 해봐.. 배우기 쉽기는 않겠지만 그건 좋은 일이란다."

"아빠, 우리가 이길까요?"

"아니."

"그렇다면 왜."

"수백 년 동안 졌다고 해서 시작하기도 전에 이기려는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 까닭은 없으니까."  146-149


"로즈 에일머는 어떻게 지내요?" 오빠가 물었습니다.

로즈 에일머는 잭 삼촌의 고양이 이름이었습니다. 그 고양이는 털이 노랗고 예쁘게 생긴 암컷인데, 삼촌은 그 녀석이 언제까지나 참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여성 중의 하나라고 했습니다.  153


"... 앵무새를 죽이는건 죄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라."

어떤 것을 하면 죄가 된다고 아빠가 말씀하시는 걸 들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디 아줌마에게 여쭤 봤습니다.

"너희 아빠 말씀이 옳아."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앵무새들은 인간을 위해 노래를 불러 줄 뿐이지. 사람들의 채소밭에서 뭘 따 먹지도 않고, 옥수수 창고에 둥지를 틀지도 않고, 우리를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노래를 부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는게 없어. 그래서 앵무새를 죽이는 건 죄가 되는거야."  174


"분별 있는 사람이알면 자기 재능을 자랑하지 않는 법이란다." 모디 아줌마가 말씀하셨습니다.  188


"이제 여름이 오면 넌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에 당면할 텐데 그때도 이성을 지켜야 할 거야... 너와 젬에게 부당하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단다. 하지만 때로 최선을 다해서 극복해야 할 경우가 있어.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 하는건 ... 글쎄,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너와 젬이 어른이 되면 어쩌면 조금은 연민을 느끼면서, 내가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이 문제를 되돌아볼 거라는 사실이야. 이 사건, 톰 로빈슨 사건을 말이다, 아주 주용한 한 인간의 양심과 관계있는 문제야.. 스카웃, 내가 그사람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난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어."

"아빠, 아빠가 잘못 생각하시는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음, 모든 사람들은 자기가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신느 것 같아서요..."

"그들에겐 분명히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존중해 줘야해." 아빠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기 전에 나 자신과 같이 살아야만 해. 다수결에 따르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한 인간의 양심이다."  200


"..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  213




2부


"알고 있는 걸 모두 말할 필요는 없지... 사람들은 자기보다 똑똑한 사람이 옆에 있는 걸 좋아하지 않아. 화가 나는 거지. 올바른 말을 한다고 해도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바꿔 놓을 수 없어. 그들 스스로 배워야 하거든. 그들이 배우고 싶지 않다면 입을 꼭 다물고 있거나, 아니면 그들처럼 말하는 수밖에."(캘퍼니아)  237


"딜, 넌 지금 잘못 말하고 있는 거야.. 네 식구들은 너 없이는 살 수 없어. 다만 너한테 조금 소홀한 것뿐이지. 그 문제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말해 줄게."

어둠 속에서 딜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말이야.. 내가 없으면 그분들은 훨씬 잘 지내신다는 거야. 내가 그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어. 소홀하신 게 아냐.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다 사주시거든. 하지만 '이제 이것 갖고 나가서 놀아라'하는 식이지. 물건들이 방에 가득해. '그 책을 사줬으니 그거나 읽어라'하는 식이란 말이야."...

"아니, 그분들은 소홀하시지 않아. 아침이면 '잘 잤니?', 저녁이면 '잘 자!', 어디 갈 때는 '잘 갔다 와'하시면서 입맞춤과 포옹을 퍼부어 주시거든.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잊지 않으시고.. 스카웃, 우리 아기나 하나 데려오자."  268


"형, 저 아저씨는 봉지에 든 뭔가를 마시고 있는데." 딜이 말했습니다.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가 그러고 있는게 분명했습니다...."저 아저씨는 코카콜라 병에다 위스키를 가득 담아 가지고 조잉 봉지 안에 넣어 둔 거야. 여자들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고 말이지. .."

"그런데 왜 흑인드롸 같이 앉아 계신 거야?"

"언제나 그러셔. 우리보다는 흑인들을 더 좋아하나 봐. 멀리 군경계선 근처에 혼자 사시지. 흑인 여자를 얻어서 온갖 혼혈아들을 낳았어..."

"아저씨는 '백인쓰레기' 처럼 보이지 않는데." 딜이 말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아냐. 강둑 한쪽 땅이 모두 아저씨거야. 게다가 뼈대 있는 가문 출신이거든."

"그런데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하시는 걸까?"

"그게 아저씨의 방식이니까."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아저씨는 결혼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서 그러신단느 거야. 누구더라.. 그렇지. 스펜서네 집안 여자하고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나.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데. 결혼식 예행연습을 마친 뒤 신부가 2층에 올라가서 자기 머리통을 날려 버린 거야. 엽총으로 말이지. 발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겨서."

"왜 그랬는지 밝혀졌어?"

"아니, 돌퍼스 아저씨 말고는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른대." 오빠가 대답했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아저씨 한테 흑인 여자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는 거지. 아저씬 그 여자를 그냥 둔 채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거였고, 그 뒤로 줄곧 아저씨는 술에 절어 지내셔. 하지만 아저씬 자기 아이들에겐 진짜 잘해 주시고."

"오빠 혼혈아가 뭐야?"내가 물었습니다. 

"백인 피가 절반, 흑인 피가 절반인 사람이야. 스카웃, 너도 봤잖아. 잡화점에서 배달하는 빨간 곱슬머리 애. 걔가 바로 혼혈아인데 정말로 비참해."

"뭐가 비참하다는 거야?"

"그 사람들은 어느 쪽에도 속할 수 없으니까. 흑인 들은 반쪽이 백인이라고 배척하고, 백인들은 반쪽이 흑인이라고 배척하거든. 그러니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느 어정쩡한 상태지. 돌퍼스 아저씨는 자기 아이들 중 둘을 북쪽으로 보내 버렸대. 북쪽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상관하지 않는다나 봐." ....  299-300


"그런 식으로 하지는 않았어, 그때는.."

"딜, 그 사람들은 길머 검사님이 세운 증인이었으니까 그렇지."

"어쨌든, 핀치 변호사님은 메이엘라와 유얼 영감을 반대 신문하실 때 그런 식으로 대하진 않았어. 그런데 그 사람은 그를 계속해서 '젊은이'라고 부르며 비웃고 그가 답변할 때마다 배심원들을 휘둘러 보고..."

"그런데 말이야, 딜, 결국 그는 흑인이잖아."

"난 그런 거 손톱만큼도 상관 안 해,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옳지 않아. 옳지 않다고. 어느 누구도 그런 식으로 말할 권리는 없어. 그게 나를 구역질 나게 만드는 거야."

"딜, 그건 길머 검사님의 방식일 뿐이야. 그분은 언제나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대해. 넌 아직 그분이 누군가를 혹독하게 다루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잖아. 그런데 말이야, 그게 언제더라... 오늘 말이야, 긺 검사님은 평소 때보다 반도 안 되었던 것 같아. 내 말은 대부분의 검산느 모두가 다 그런 식이라는 거야."

"핀치 아저씨는 그렇지 않잖아."

"딜, 아빠는 표본이 아니지, 아빤..."

나는 모디 앳킨슨 아줌마가 한 멋들어진 말을 생각해 내려고 더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 말을 생각해 냈지요. "너희 아빠는 큰길에 있을 때나 법정에 있을 때나 늘 한결같으셔"라는 말 말입니다.

"내 말은 그게 아니야." 딜이 말했습니다.

"얘야, 네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우리 뒤쪽에서 들렸습니다. 나무둥치에서 들려오는소리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 주인공은 바로 돌퍼스 레이먼드 아저씨였습니다. 아저씨는 나무 뒤쪽에 있다가 고개를 돌려 돌아보셨습니다. "너희들은 낯가죽이 두껍지 않아. 그래서 구역질이 나는 거지?"  367-369


"자, 여기 있다. 한 모금 힘껏 빨거라. 그러면 좀 진정될 거야." 빨대가 꽃혀 있는 종이 봉지를 딜에게 내밀며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딜은 빨대를 빨고는 씩 웃더니 한참 후에 입을 뗐습니다.

"히히." 레이먼드 아저씨는 분명 아이 하나를 타락시킨 것을 즐거워하는 듯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딜, 너 조심해." 내가 딜에게 경고했습니다.

딜이 빨대를 놓으면서 싱긋 웃었습니다. "스카웃, 이건 그냥 코카콜라야."

...

"아저씨가 종이 봉지에 넣고 마신 것이 콜라였단 말씀이에요? 그냥 콜라였어요?"

"그렇단다, 꼬마 아가씨." ... "평소에 마시는 바로 그거란다." ..

"왜 그렇게 하시는 거예요?"

"아 그건, 내가 왜 사람들을 속이냔 말이지? 글쎄다. 사실 아주 간단하지." 아저씨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말이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거든. 그들에게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 제놈들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ㅇ낳든 개의치 않아. 난 정말이지 제놈들이 좋아하든 좋아히지 않든 상관하지 않아, 정말이야- 그럼에도 그들더러 지옥에 떨어질 놈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무슨 말인지 알겠니?"

우리는 "아저씨, 잘 모르겠는데요."하고 대답했습니다.

"난 그들에게 구실을 주려는 거야. 사람들은 구실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지지. 내가 아주 어쩌다 읍내에 나올 때, 조금 비틀거리며 이 봉지에 든 뭔가를 마시면, 사람들은 돌퍼스 레이먼드가 술의 노예가 되었다고 말하는 거야. 저러니 버릇을 고치지 못한다면서 말이야. 저자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아저씨, 그건 정직하지 않잖아요. 지금보다도 아저씨를 더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데다가 이미.."

"물론 정직하지는 않다만 사람들에게는 아주 도움이 되거든. 핀치 아가씨, 이건 비밀인데, 사실 난 술을 잘하지 못해. 하지만 내가 원해서 지금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전혀, 정말이지 눈곱만큼도 이해하지 못한다."

혼혈아들을 낳았고 누가 그것을 알아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이 죄 많은 아저씨 말을 듣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저씨한테는 아주 매력적인 데가 있었습니다. 고의로 자신을 깎아내리는 사람을 나는 한 명도 만나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도대체 왜 아저씬느 가장 깊숙이 숨겨 둔 비밀을 울리에게 털어놓고 계신 걸까요? 그래서 그 이유를 여쭤 봤습니다.

"너희들은 어리고, 어린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저 애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야."

아저씨는 딜을 향해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직 저 애의 양심은 세상 물정에 물들지 않았어. 하지만 조금만 나이를 먹어 봐. 그러면 저 앤 구역질을 느끼지도 않고 울지도 않을 거야. 어쩌면 세상에서 옳지 않은 일을 봐도 울먹이지 않을 거야. 앞으로 몇 년만 나이를 더 먹어 봐. 그렇게 될 테니."

"아저씨, 내가 도대체 뭐 때문에 운다는 거예요?" 딜의 남자다움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주는 고통 때문에 우는 거지, 심지어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말이야. 흑인도 인간이라는 사실을 일부러 생각한 것도 아닌데 백인이 흑인에게 안겨 주는 그 고통 때문에 우는 거란 말이다."

"아빠는 흑인을 속이는 것은 백인을 속이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나쁘다고 말씀하세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행동이라고 하셨어요." 내가 중얼거리며 말했습니다.  371-373


".. 테일러 판사님이 그 청년을 변호하도록 너희 아빠를 임명하신 게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니? 테일러 판사님이 너희 아빠를 임명하신 데는 다 그럴만한 까닭이 있었다는 걸 말이야." ...

모디 아줌마가 계속 말씀했습니다. " .. 이런 생각을 했단다.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  398-399


"..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넌 일상생활에서 백인들이 흑인들을 속이는 걸 매일매일 보게 될 거다. 하지만 네게 말해 주고 싶은 게 있구나. 이 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흑인을 속이는 백인은, 그 백인이 누구이건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건 아무리 명문 출신이건 쓰레기 같은 인간이야."

아빠는 너무나 조용히 말씀하셨기 때문에 '쓰레기 같은 인간'이라는 말이 우리들 귀에 부딪쳐 바스라졌습니다.  408


아빠가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말이다, 자업자득이란다. 우리는 보통 우리 수준에 맞는 배심원을 갖기 마련이거든. 우선 첫째, 용감한 메이콤 시민들은 재판에 관심이 없지. 둘째, 걱정도 되지. 그러니 그들은."

"왜 걱정을 해요?" 오빠가 물었습니다.

"그게 말이다. 가령 레이첼 아줌마 자동차에 모디 아줌마가 다쳤고, 그 손해 배상금을 링크 디스 아저씨가 결정해야 한다고 치자. 링크 아저씨는 자기 가게에 어느 아줌마 고객도 잃고 싶지 않겠지? 그래서 아저씨는 테일러 판사님에게 배심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할 거다. 배심원석에 앉아 있는 동안 가게를 돌봐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그러면 테일러 판사님은 그 아저씨를 배심원에서 빼줄 수밖에 없거든. 화를 내면서 면제해 줄 때도 있어."  409-410


"그들이 좋은 사람ㄷ르이라면, 도대체 왜 제가 월터에게 잘해 주면 안 되나요?"

"잘해 주지 말라고는 안 했어. 그 애한테 친절하고 정중하게 대해 줘야 한다. 누구한테나 점잖게 행동해야 돼. 하지만 그 애를 집에 초대할 필요까지는 없잖아."

"고모, 그 애가 우리 친척이라면요?"

"일단 그 앤 우리 친척이 아냐. 설령 그렇다 해도 내 대답은 마찬가지일 거야."

그러자 오빠가 내 편을 들고 나섰습니다. "고모, 아빠가 말씀하시길, 친구는 선택할 수 있어도 집안은 선택할 수 없댔어요. 친척은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친척일 수밖에 없으니, 인정하지 않으면 아주 어리석어 보인다고 하셨거든요."

"또 너희 아빠 타령이구나. 다시 한 번 말한다만, 진 루이즈, 넌 월터 커닝햄을 집에 초대해서는 안돼. 만약 그 애가 너의 겹동서의 겹동서라고 해도 일 때문에 아빠를 찾아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집에 들일 수 없어. 이제 이것으로 그 일은 결정된 거야."

고모는 이렇게 "안돼"라고 확실히 말씀하시고 나서 다음번에는 그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고모, 전 월터랑 놀고 싶어요. 왜 놀면 안 된다는 거예요?"

고모는 안경을 벗고 나를 빤히 쳐다보셨습니다. "놀아선 안 되는 이유를 말해 주지." 고모가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 애는 .. 쓰레기 같은 애니까. 그러니까 너는 그 애하고 놀아선 안 되는 거야. 난 네가 그 애하고 어울리며 행동거지나 본받고 다른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게 그냥 놔두지 않을 테야. 지금 현제로도 넌 네 아빠한테 충분히 골칫거리거든."  415-416


"이 읍내에는 공정한 게임이란 백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 있어. 공정한 재판은 우리 백인들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고, 또 흑인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나도 그렇게 태어났을 텐데, 하고 겸손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 모디 아줌마  436


"히틀러를 증오해도 되는 거죠?"

"아니, 그렇지 않아. 어느 누구도 증오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니야." 아빠가 대답하셨습니다. 

"아빠,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어요. 게이츠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히틀러가 지금 하는 행동은 끔찍하다고 하시면서 진짜로 얼굴이 새빨갛게 되셨어요."

"아마 그러셨을 거다."  ...

"뭐 물어볼 게 있어."

"말해 봐." 오빠는 읽던 책을 내려놓고 두 다리를 쭉 뻗었습니다.

"게이츠 선생님은 좋은 분이시지, 안 그래?"

"물론이지. 그 선생님 반에 있을 때 좋았어."

"히틀러를 엄청 싫어하시던데.."

"그게 뭐 잘못이야?"

"그게 말이지. 오늘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그렇게 대하는게 얼마나 나쁜 일인지 말씀하셨거든. 오빠, 누구라도 박해하는 건 옳지 않잖아? 내 말은, 심지어는 어느 누구에 대해서 나쁜 생각을 갖는 것조차 말이야, 안 그래?"

"스카웃, 물론 옳지 않고말고. 그런데 왜 그렇게 안달을 해?"

"그게 말이야. 그날 밤 게이츠 선생님이 법정에서 나오고 계셨거든 - 우리보다 앞서서 계단을 내려가셨기 때문에 오빠는 선생닝을 볼 수 없었지 - 선생님이 스테퍼니 아줌마랑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어. 누군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때가 됐다, 점점 분수도 모르고 주제넘게 군다, 이러다가는 우리하고 결혼할 생각까지 하게 될지 모른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었거든. 오빠, 히틀러를 그토록 끔찍하게 미워하면서도 돌아서서는 어떻게 바로 자기 나라 사람에게 비열하게 대할 수 있냔 말이야."  454-455


아빠의 말이 정말 옳았습니다. 언젠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신적이 있습니다.  514


아빠의 두 손이 이불을 잡아당겨 내게 덮어 주시느라고 내 턱 밑에 있었습니다.

"스카웃, 결국 우리가 잘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멋지단다."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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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편


왜 속으로는 '노'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예스'라고 할까요? 용기가 없어서 그랬던 겁니다.

용기가 먼저 있어서 '노'라고 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노'라고 할 때, 우리에게는 없던 용기가 생기는 겁니다.  18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 이 말은 당나라 때의 백장(百丈)이라는 스님의 말입니다.  27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 이건 일을 하지 않으면, 혹은 일을 못하면 죽겠다는 이야기예요. 혹은 그만큼 목숨처럼 생명처럼 일이 중요하다는 거지요.

복잡하게 읽을 수도 잇지만 이 이야기는 우선 언제 우리가 눈감아야 할지 가르쳐 주는 이야기예요.

아기 기저귀라도 하나 갈고 마당이라도 빗자루로 쓰는 거예요. 그렇게 움직이면 먹어도 된다는 겁니다.  28


일을 안 하고 먹는다는 건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먹는 거예요.  29


백장 스님 머리에 '이 일을 해서 돈을 받아야 된다'라는 건 없어요. 일을 하는 게 소중한 거예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살아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죠.  32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일을 부정하게 됩니다. 일을 폄하하죠. 이건 어느 순간부터 우리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을 노예로 자처하면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일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죠.  35


'내가 원하는 일들을 어떻게 찾을까?', 이게 지금 문제인 거예요. 주인으로서의 삶은 여기서 결정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고민의 대부분은 노예의 투정이에요. 대개 노예는 노예인데 일은 안 하고 밥만 먹고 싶다는 내용이에요. 밥을 먹을 수만 있으면 된다는 노예적 절박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37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노예라고 부르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을 주인이라고 부릅니다.

기껏 대학 나와서 됐다는 게 최고급 노예인데, 이제 돈 좀 들어오니까 찝찝한 거예요.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걸 노예라고 부른다고요. 일하는 걸 싫어하는 게 노예의 근성이에요.  38


제 집필실이 광화문에 있는데, 가끔 광화문에서 사람들을 생태학적으로 관찰하면 패턴이 보여요. 광화문에는 직장이 많죠. 오전 8시에서 9시 사이에 사람들이 막 모여들고 우르르 각자 사무실로 들어가요. 그런데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서 11시 30분이 넘으면 사람들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해요. 밥을 먹으려고. 그러면 밥을 먹다가 12시 30에서 40분쯤 되면 커피 가게로 막 들어가요. 그리고 1시 좀 넘으면 직장에 들어가서 5시가 넘어가가 시작하면 우르르 나와요. 해맑은 모습으로요. 제가 그래서 어떤 분한테 직장인들은 오후만 일하니 오전에 쉬게 하지고 했어요. 그랬더니 그분 이야기가 오전에 불러서 그렇게 뭉그적거리게 해야 오후에 일을 하지. 사람들을 1시에 나오게 하면 일한다고 워밍업하고 인터넷 보고 커피 마시고 어제 포털에 나왔던 거 다 이야기하고 일 시작하면 일하는 시간 달랑 30분밖에 안 된다고요.

우리는 노예로 살죠.  39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 공부하신 분 있어요? 대부분 우리는 영어가 좋아서 공부하는 게 아니죠. 영어 능력을 원하는 자본에 팔려고 영어를 공부하는 거죠. 손님에게 팔리기 이해 화장을 하는 매춘부처럼 말예요. 그래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시대를 '보편적 매춘의 시대'라고 이야기했던 거예요.

재미있지 않아요? 옛날에 노예를 부릴 때는 때리면서 강제로 노예한테 기술을 가르쳤어요. 자본주의 사회는 묘하게 자유롭습니다. 자본주의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자발적 복종'이에요. 한 단계를 건너뛴 거죠. 누가 시키지를 않아요. 옛날엔 노예가 잡혀 와서 일을 제대로 하나 안 하나 감시당했죠. 그리고 능력 있는 노예가 있으면 가령 그 노예가 배를 만드는 게 좋겠다면서 억지로 배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요. 지금은 거꾸고 됐어요. 이게 참 묘하다니까요.  40


옛날의 노예는 탈출을 하려고 했는데, 우리는 나를 써 다라고 해요. 이게 자본주의의 비법이에요.  41


여러분들이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머릿속에 넣어 두셔야 합니다. '난 노예다' 주인 입장에서 생각하지 마세요. '월급을 받으니 이만큼은 일을 해야지'. 절대 이런 이야기는 하시면 안돼요. 버티면 월급은 나와요. 그렇지만 갑자기 해고되면 막막하니까. 일하는 척 잘 버텨야죠. 게으르지만 잘리지 않게! 마르크스의 사위가 하나 있어요. 라파르그라는 사람이 입니다. 기억해 두세요. 이 사람이 쓴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책이 있어요. 두께도 얇야요. 책의 서두에 있는 얇은 논문이 있는데, 읽어보세요. 이 글이 바로 노예의 지침서예요. 월급은 받되, 잘릴 정도로는 게으르지 않기! 역시 마르크스의 사위다운 글입니다.(라파르그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몸을 잘 움직일 수 없을 때 자살합니다. 백장 스님의 기개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주인 입장에서는 묘한 거예요. 이 노예가 하자는 없는데 일은 진척이 안 되는 거죠. 누구 좋으라고 일을 해요?

때때로 이런 느낌도 들어요. 전시에 포로를 잡아서 포로들에게 땅을 깊게 파라고 해요. 그리고 땅이 다 파지면 포로들을 거기 들어가게 해서 총으로 쏘고 덮어요. 그게 정리해고예요. 일이 다 끝나면 여러분이 회사에서 나가는 논리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삽질하는 척 하기. 너무 노골적이며 죽여요. 그러니까 삽질하는 척은 하는데 땅은 안 파지는 그 묘한 형국을 만드는 거죠. 거기서 살아 있어야지 탈출이라도 하죠. 회사에서 여러분의 에너지를 다 쓰지 마세요. 주인의 일에 에너지를 모두 쓰지 말아요. 회사에서 에너지를 쓰면 여러분이 원하는 일을 찾을 시간과 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직장 다니시는 분들, 반드시 해야 될 일이 뭔지 아시겠죠? 회사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겁니다. 일이 끝나고 나서 그 모든 에너지를 가족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거예요. 보고 싶은 연극을 보세요. 연극 봐서 피곤하니까 그 다음날 오전에 출근해서 또 잘 쉬어요. 하지만 완전히 들키지는 않게. 할 수 있어요? 그러면 고용도 촉진돼요. 사람을 몇 명 뽑았는데 효율이 안 오르면, 또 사람을 뽑아요.  44-45


여러분의 일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부지런해져요.

남이 원하는 일을 할 때는 게을러야 돼요. 게으르되 잘리지 않을 그 미묘한 경계가 있어요.  45


페이비언 소사이어티(Fabian Society). 파비우스 막시무스라는 한니발을 이긴 로마의 장군이 있어요. 파비우스는 한ㄴ발이 워낙 강력하니까 지구전을 사용해요. 그런데 이걸 원로원에서 가만히 두겠어요? 장수로 보내 놨더니 진영은 차지하고 밥만 먹는 것 같잖아요. 로마 대군 5만 명이 매일 밥만 먹어요. 다섯 명도 아니고 5만 명이거든요. 이러니 쇼부를 빨리 쳐야 되잖아요. 그래서 원로원에서 파비우스를 자르고 다른 사람을 장수로 보냈는데, 이 사람은 한니발을 공격하다 박살이 나요. 그래서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또 부르죠. 그랬더니 또 다시 밥만 먹어요. 그리고 나중에 이겨요. 그래서 페이비언이라는 말이 나와요.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는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사회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먹지도 말자라는 사회로 갈때까지 느리게 천천히 사회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급진적인 혁명을 이끌던 지도자가 나중에 일하지 않고 먹으려고만 할 수 있다는 것을 안 거죠.  47


여러분이 즐거워하는 일을 했었을 때 그게 돈벌이가 되면 여러분들은 진짜 제대로 자리를 잡은 거예요.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자신이 하는 일이라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해서 돈을 벌면 '땡큐'고 아니면 좀 힘들게 사는 겁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것이 바로 주인의 삶이다' 이걸 명심해야죠.  48


여러분들 각자의 삶의 시간은 노동하는 시간과 향유하는 시간, 이 둘로 할당이 될 거예요. 노동하는 시간은 대부분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닙니다.(물론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저 같은 사람이요.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거죠. 저는 글을 안 써도 됩니다. 누가 시키는 건 아니에요. 제가 쓰고 싶은 때 쓰는 거예요.) 대개 노동하는 시간과 향유하는 시간이 따로 있어요.  54 


여러분께 지혜를 하나 알려 드릴게요. 보통 사람들은 최저임금을 이야기하거나 가급적 많은 임금을 생각합니다. 이제 '최적임금'을 생각할 때입니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적임금입니다. 나의 최적임금은 얼마인지, 이 정도 벌면 됐다는 걸 정할 수 있어야 해요. 그걸 아는 사람은 내가 돈을 버는 목적이 향유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에요.  55


한 사회가 얼마나 나쁜지의 척도는 노동시간의 길이입니다. 노동 시간이 늘어나는 사회는 나쁜 사회예요.  55


모두 먹고사는 고민만 있어요. 생존만 있고, 향유는 없어요. 거기에는 의무만 있어요. 

여기에 무슨 살 이유가 있어요? 즐거운 것이 있어야 된다고요. 노동은 힘들어요. 유사 이래로 인간이면 다 그래요.  56


다음 공식을 머릿속에 넣어 놓으세요. '삶의 행복은 노동하는 시간보다 향유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커진다'라는 공식 말이에요. 여러분이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행복해져요. 물론 이 시간을 절대적으로 제로로는 만들 수 없어요.  57


가장 행복한 삶은 스스로 하는일, 지금 땀을 흘리고 하는 일이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면서도 즐거운 일이면 됩니다.  59


우리의 가장 큰 착각은 우리가 자본가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84


여러분이 다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본이 원하지 않아도 내가 행복하다면 기꺼이 그 일을 하고, 내가 행복한 일을 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면 또 사냥을 떠나면 됩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이 향유이자 동시에 노동이기도 한 사람이겠죠. 제작하고 창조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죠. 홀로 하는 직업일 때만 가능해요.  85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우리가 가져야 할 지혜는 시간에 대한 것입니다. 삶의 시간은 노동하는 시간과 향유하는 시간 둘로 양분됩니다. 우리의 행복은 가급적 노동하는 시간을 줄이는 데 있는 것이죠.(하지만 노동하는 시간을 아예 없애고 향유하는 시간만 있다고 하면, 그건 누군가의 음식을 빼앗아 먹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어쨌든 우리의 삶에서 일과 노동은 뺄 수 없어요.) 노동하는 시간과 향유하는 시간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하면, 우리는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사회철학자나 정치가들도 모두 이 삶의 시간을 기준으로 주어진 사회를 부넉하고 도래할 사회를 꿈꾸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봤을 때 사람들이 노동하느 시간이 너무 많아서 향유하는 시간이 없다고 하면 그 사회는 나쁜 사회인 거예요. 이런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불행이자 남루함이지요.  85-86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것인지, 그것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 아니 생각하지 말아야 했었다는 것. 그것이 박정희 지배가 독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생각은 오직 최고 통치자만 하면 됩니다.  90


분명 우리는 양적으로 원시인들보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문명의 혜택을 다 누리고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는 불행하기만 합니다. 지금 우리는 향유하는 시간을 위해 일한다는을 까먹고 잇기 때문이지요. 일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것에 젬병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하나에 능숙하다는 것은 다른 것에는 서툴다는 것을 함축하니까요. 그러니 아이들과 노는 것, 아내와 산책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 심지어 가족과 함께 공연장에서 연주에 몸을 맡기는 것, 어느 것 하나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ㅅ브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한다는 것은 항상 가도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일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니 다시 일에 몰입하게 됩니다. 잘할 수 있는 것이 일밖에 없고, 그래서 일할 때 편안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런 식으로 마침내 우리는 구제할 수도 없는 워커홀릭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지요.  98


이제 깊게 생각할 때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는 어떤 덕목이 필요한지. 이제 눈에 들어오시나요?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진정한 덕목이 바로 용기라는 것이. 사랑하고 창조하는 시간, 즉 향유하는 시간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줄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 테니 말입니다.  99




정치 편


이론상 차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삶에서 50보와 100보는 다릅니다.

중요한 건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잇어야 한다는 거죠. 가령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을 뽑을 때, 그냥 누구는 좋고 누구는 싫다. 소녀시대가 좋냐 2NE1이 좋냐가 아니라 민주주의 본령과 원칙을 정확히 알고 그 기준을 통해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기준을 두고 누가 50보를 갔고 누가 100보를 갔는지를 보자는 거예요.  122


대한민국 헌법은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죠? 그리고 그게 맞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요. 하지만 실제의 삶은 어떤가요? 국민이 전쟁을 원하지 않아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즉 대표자에게는 교전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져 잇어요.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전쟁을 원하지 않더라도, 대표자들은 전쟁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어떤 인간은 대통령이 되어서 전쟁을 하려 할 거고, 어떤 인간은 끝내 안 하려고 할 겁니다. 50보와 100보의 차이는 있는 것이죠.  123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민주적인 국가가 프랑스죠. 프랑스 사회는 왜 민주적일까요? 왕을 죽였거든요. 왕을 죽인 국민한테는 축복이 있어요. 왕을 죽였으니 내가 왕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이게 프랑스 전통이에요. 우리의 가장 큰 슬픔은 고종을 못 죽인 데 있어요. 우리가 죽였어야 했는데, 일본이 해결을 한 거죠. 그러면 총독이라도 죽였어야 햇는데 그것도 못 했죠. 그 다음에 보니 이승만이나 박정희와 같은 독재자도 죽이지 못했어요. 한 사람은 죽이기 전에 하와이로 도망가서 죽었고, 한 사람은 죽이기 전에 측근에게 먼저 살해당했으니까요. 단 한 번도 독재자를 죽인 경험이 없는 겁니다. 한 명만 죽이면 되거든요. 딱 한 명만, 그 다음부터는 웬만하면 대통령 안 하려고 할 걸요? 잘못하면 훅 가는데 누가 하려고 하겠어요.  130-131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도 말하잖아요. "어떤 인간이 왕이라는 것은 다만 다른 인간이 신하로서 그를 상대해 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은 그가 왕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신하가 아니면 안 된다고까지 믿고 있다." 완전한 심리적 전도이자 착각이지요. 임제(臨濟)라는 스님이 있어요. 이 스님이 남긴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야 자유인이 된다는 거죠. 멘토를 만나면 멘토를 죽여야 돼요. 멘토는 무슨 멘토예요? 자신이 어리석고 멍청하다고 생각하니, 자꾸 멘토를 찾아서 지침을 들으려고 해요. 하지만 멘토의 지침을 계속 찾으면 우리는 계속 멍청해지는 거예요. 스스로 당당한 주체가 되기를 비겁하게 회피하는 순간, 우리는 점점 더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전락하는 거라고요.  132


좋은 군주, 나뿐 군주를 가르는 건 착각입니다. 중요한 건 군주라는 형식 그 자체니까요. 이 형식을 어떻게 없앨지, 과연 이 형식은 없어진 것인지 이걸 고민해 보시길 바랍니다.  133


한 개인의 독자성 같은 것들은 사람 수가 많아질수록 희생됩니다.  141


보수는 자신을 사랑하고, 진보는 타인을 사랑한다고 정리될 수 있습니다.  147


'인간이 먼저고 이념은 나중'이라는 사람이 진보라면, '이념이 먼저고 사람은 나중'이라는 사람은 보수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보수적인 사람은 높은 자리에 올라 자신의 이념을 관철하려고 하는 겁니다. 물론 이웃과 후손들을 사랑한다고 이야기는 하겠죠.  148


용서요?

아버지 한테 매 맞는 아이가 아버지를 용서하게 돼요. 심지어 자기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를 이해한다고요. 어머니가 나갔으니까 나한테 화풀이 한다고 생각하죠. 그게 용서인가요? 용서는요. 그 사람이 완전히 자립하고 당당해졌을 때 힘이 세졌을 때 하는 거예요. 약한 자가 용서를 할 수 밖에 없는 조건에서, 용서한 것을 용서라고 하진 않아요.

강해서 용서했다고 하지 마세요. 예수의 정신, 이런것도 아니에요. 자비, 이런 것도 아니에요. 어떻게 못하니까 그런 거에요. 슬픈 거죠. 그래서 용서하면 안 돼요. 용서하지 맙시다 약한 자는 용서하는 거 아니에요. 자격 없어요. '더럽게 약하다'를 각인하고 살아야 합니다. '나는 쟤를 때리지도 못하는구나' 이렇게요. 중간에 용서하고 모든 걸 퉁치려고 그러죠. 그냥 그렇게 살려고요. 그럼 안 되는 거 같아요.

누간가 한 명이 '전두환을 죽이자'고 할 수 있어요. 누가 죽일래요? 우리는 그 회의를 합시다. 누군가 죽일 수 있어요. 누가 광주에서 죽었던 사람들 대신 그 복수를 해 줄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들을 공수부대로 잔혹하게 도륙했던 그 인간을 그들 대신 누가 죽일까요? 죽일 수 있어요? 역사에 길이 남는데 죽이실래요? 우리는 불행히도, 역사보다 자신을 더 아껴요. 우리는 감옥에 가는 것도 싫고, 그렇게 약하고 비겁하다고요. 내가 당할 불이익들이 있는 거죠. 이것부터 우리가 아프게 자각해야 돼요. 용서하면 죽이러 갈 필요도 없고 편하잖아요. 이것도 가슴 속에 아프게 넣어 놓으셔야 됩니다.  164-165 




쫄지마 편


'쫀다'라는 표현은 무언가 두렵다는 것을 말하죠. 두려움이라는 건 안해 본 것들을 무서워한다는 겁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해서는 판타지를 가질 수 있거든요.  188


무서운 것이 있어서 쪼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해서 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이걸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그냥 하는 거예요. 모든 판타지의 특징은 우리가 그곳에 걸음을 훅 내딛었을 때 신기루처럼 없어진다는 거예요. 여러분 이혼 무섭죠? 이혼을 한 번 해 보면 더 이상 무섭지 않아요. 해보고 나면 별것 아니란 걸 알게 되죠. 그런데 참 힘든 말이죠? 무서운데 그냥 하라고 하니까요. 사실 하기가 힘들거든요. 그렇지만 뭐든지 한 번의 경험은 필요합니다. 어떤 경험이든 상관없어요. 인생에서 너무나 무서운 것들을 한 번은 눈 질끈 감고, 과감하게 해 보는 경험이 필요해요. 그 경험이 한 번만 잇으면 돼요. 내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걸 한 번 해 보는 거죠. 조금 상처를 받더라도 후유증이 적은 것들을 통해 그런 경험을 조금씩 쌓을 필요가 있스빈다. 쪼는 것이 상당히 줄어들 테니까요.  189-190


너무 많이 안다는게 때로는 축복이기보다는 저주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이 알게 되면 힘들다고요.  191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높은 정상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정상이 어딘지 모르고 무식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 오를 희망이라도 생기는 법이죠. 반면 정상까지 얼마나 힘든 여정인지 정확히 안다면, 우리는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마저ㅓ도 포기할지 몰라요. 냉소적으로 변하는 거죠. 그래서일까요? 과거 사회에도 못 배운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키지 지식인 계층에서 혁명을 일으키지는 않습니다. 사회에 대해 투덜거리지만 바꾸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 겁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죠? 이 말은 우리가 "유식해서 비겁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닐까요?  194


쪼는 사람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은 뻔뻔한 사람이에요. 쪼는 것의 반대말은 당당함이 아니에요. 뻔뻔한 사람이 현실적인 힘까지 얻을 때, 오직 그때만 당당해질 수 있어요. 

다음 순서는 성장해야만 해요. '쪼는 나' -> '뻔뻔한 나' -> '당당한 나'. 그러니까 우리는 당당해질 때까지 뻔뻔해지도록 노력해야 해요. 무모함이나 순박함이 아니라 뻔뻔함이라고요.  195


뻔뻔해지기 실천강령(1):우아하게 거짓말하기

미리 말씀을 드리지만 강한 사람만이 거짓말을 해요. 약자는 정직하게 진실만을 얘기하죠.  197


거짓말이 정당화될 때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나보다 강자인 것처럼 느껴질 겁니다. 애인이 만남을 지속할 수도 있고 끊을 수도 있는 역량이 있는 것처럼 다가오는 경험이 사랑이니까요. 자기와 놀아 달라는 애인에게 '친구와 게임을 하기로 했어'라고 하면, 애인은 내게 크게 실망하고 나를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쿨하게 거짓말을 해야죠. '삼촌이 위독해! 미안해. 삼촌만 아니었다면, 너와 놀 수 있을 텐데.'

그리고 사회에서 여러분보다 더 강한 놈이 정직을 강요하고 압력을 가해 올 때, 여러분들은 거짓말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 돼요. 거짓말이 정당화되는 두 번째 경우죠. 강자 앞에서 약자가 자신만의 삶을 살아내기 위해 쿨하게 거짓말하는 겁니다. 이때 진실을 이야기하면 강자는 우리를 자기 식대로 통제하려고 할 테니까요. 애인이랑 데이트 약속이 정해졌다면, 직장 상사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부장님,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거짓말을 잘 못합니다. 힘 있는 사람이 '너 이거 했지?' 이러면 찔려요. '들킨 거 아니야?' 이런다고요. 그러니 뻔뻔함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연습을 통해서만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덕목입니다.

여러분을 쫄게 만드는 대상들은 대개 뻔뻔해요. 거꾸로 얘기해 보면 여러분들이 '밥'이라는 거예요. 이들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보다 더 뻔뻔해지는 겁니다. 싸우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당당해하지 마세요.  200-201


세상은 우리를 다 쫄게 한다고요. 우리가 쪼는 건, 어린애 같고 정직해서 그래요. 일기장 쓰는 사람처럼 산단 말이에요. 이 태도를 가지면 안 돼요. 일기를 쓰는데, 첫 번째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순 거짓말인 일기를 써 보세요. 그리고 그 일기장을 애인한테 주는 거예요. '나의 마음을 받아 줘' 하실 수 있어요? 못하죠? 이게 교육의 병폐에요. 사회화의 목적은 국가나 권력이 힘 있는 사람한테 복종하도록 만드는 거예요. 교육의 목적이 뭐예요? 기성세대가 편한 거예요. 아이가 대소변을 가리면 누가 편해요? 부모가 편하죠. 어머니는 그런다고요. '얘야, 이제 품위 있게 기저귀에 똥을 누니 얼마나 좋니?' 사실은 이런 거죠. '얼마나 좋니? 나한테 안 맞고' 교육의 목적이 뭐라고요? 기성세대들이 편한 거예요. 

여러분들은 교육을 너무 잘 받은 겁니다. 정직학 까놓고 고발하는 사람들, 자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약해요. 자기의 속내를 이야기했다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요. 여러분드르이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정상적으로 중고등학교를 나왔다는 거예요. 중학교 때 본드도 마시고 고등학교 때 애인과 모텔도 가고, 할 거 다 해 본 다음에 개과천선했으면 여기 상당하러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202-203


그러면 이 뻔뻔함을 어떻게 얻어야 돼요? 바깥에 나와 봐야 돼요. 바깥에 나와서 독립적인 생활도 하고 스스로 선택도 해 봐요. 돈이 많이 들죠. 지비에서 나갈 수도 있고 들어갈 수도 있지만, 뻔뻔스럽게 집에 들어와 사는 사람의 비범함을 아셔야 됩니다. 부모한테도 쫄고 바깥에서도 쫄아서 오갈 데 없이 집에 있는 사람과는 다른 사람인 거예요. 뻔뻔한 사람은 부모님이 더 이상 밥도 안 주고 잠자리도 내주지 않고 구박을 하면, 그때가 되어서야 '음, 이제 떠날 때가 왔네. 지금까지 편했는데. 쩝, 어쩔 수 없지'라고 하면서 자신의 짐과 모아 둔 돈을 챙겨서 집을 나가죠. 

거짓말을 하세요. 거짓말은 뻔뻔하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뻔뻔하기는 해도 쪼는 사람은 아니에요. 편안하게 거짓말을 하세요. 이 능력을 기르면 여러분들은 사회에 물의를 많이 불러일으킬 거예요. 대신 쫄진 않아요. '아, 이 세 치 혀로 인생이 거의 다 해결되는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거예요. '하루에 세 번씩 거짓말을 안 하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각오로 거짓말을 하면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여러분들은 이 세상에 하나도 쪼는 게 없을 거예요. 거짓말 잘하시는 분? 나는 거의 문학적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분 계신가요? 모든 문학은 거짓말이죠. 그들은 당당해요. 문학자들처럼 뻔뻔스러운 사람이 없고 당당한 사람도 없어요. 한국사회에서 민주화운동을 문인들이 끌고 갑니다. 왜죠? 그들은 거짓말쟁이거든요. 거짓말을 한다는 건 우월한 거예요. 이런 세계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뻥을 뻥뻥치면 사람들이 그거에 속아서 또 사회를 만들어요. 미래의 꿈이라는 게 뭐예요? 지금 사회는 우리를 이렇게 착추한다고, 그래서 이렇게 하면 자신이 뻥치고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고, 누군가 막 뻥을 치는 거죠. 그 뻥이 긴가민가하다가 사회가 그걸 받아들이면 그 사회는 변화하는 거예요. 거짓말 속에서 새로운 역사가 열리는 겁니다.  204-205


중국 철학자 송견(宋?)의 테마는 견모불욕(見侮不辱). '모욕을 당해도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게 또 핵심적이죠. 모욕을 당해도 치욕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여러분들은... 예쁜 사람이고 싶고, 고상하고 싶고, 순수하고 싶고요. 우리는 이런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에요. 칭찬해 주면 훅 넘어갈 사람들인 거죠. 그게 거짓된 칭찬이어도요. 이게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문제예요. 그래서 누군가 칭찬해 주면 좋고, 누군가 칭찬 안 할 거 같으면 쫄죠. 인정받고 싶으신 거예요. 

모든 인간관계의 문제는 인정을 받으려고 해서 생겨납니다.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아요. 왜 인정받으려고 그래요? 진짜 위대한 인격은 뻔뻔스러운 거라니까요? 인정받으려는 사람은 항상 정직하려고 한다고요. 많은 우화는 사람들이 거짓말을해서 우울해지고 외로워진다고 그러죠. 사실이에요. 하지만 인정을 받으려는 사람만이 아기처럼 진실을 얘기해요. 그러니까 절대 남한테 인정받으려고 하지 마세요.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이라는 멘트를 하던 개그 프로그램의 코너가 있었는데 기억 나세요? 진짜 좋은 멘트죠. 그 사람이 쫄 거 같아요? 세상에 대해서? 누가 무슨 욕을 하든지 간에 그걸 의식하면 안돼요. 왜냐하면 누군가 욕을 했는데 그걸로 화가 나고 속상하다는 것은 인정받겠다는 걸 드러내는 거거든요. 누가 여러분에게 '야, 이 개새끼야!'라고 욕을 하면, '그래요. 난 개새끼예요. 만세!' 이러면 되는 거예요. 남이 인정하든 안 하든 내가 무슨 상관이에요?  205-206


누군가한테 인정받으려고 그럴 때 또 쫄아요.  207


'거짓말하라' 이후의 두 번째 행동 강령은 '기꺼이 욕을 들으라'는 겁니다. 스스로 내가 어느 정도의 인간인지 시험해 보려면 욕을 들어 봐야 돼요. 남의 험담, 음해를 들어야 돼요. 무슨 소리인지 알죠? 자꾸 남에게 인정받는 이 메커니즘이 우리를 세상에 쫄게 만들어요. 검열하게 만들고요. 예쁜 사람 콤플렉스를 버려야 돼요. 남의 인정을 받으려고 하지 말 것. 어머니의 칭찬 들으려고 하지 말 것. 어머니의 칭찬 들으려면 남자 친구, 여자 친구랑 모텔도 못 가요. 그 칭찬이란 게 나한테 뭔 상관이예요. 여러분들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오만 가지 욕이 달려도 이렇게 생각하세요. '반응이 좋은걸?' 욕 좀 달렸다고 트위터 끊고 페이스북 끊고 뭣들 하는 거예요? 그게 남에게 인정받으려고 그러는 거잖아요. 

친구를 만나시면, 서로 계속 욕을 하세요. 칭찬하지 말고 욕을 해요. '오늘 네 옷은 거의 걸레인 걸?' 이렇게요. 무슨 말인지 알죠? 그걸 견디는 거예요. 좋은 친구 사이에서는 서로 칭찬을 하지 않아요. 병신같고 나약하고 여린 애들끼리만 둘이 모여서 서로 '너는 예쁘네, 고상하네, 지적이네' 그러는 거죠. 그렇게 살다 보니까 바깥에 나갔을 때 욕 한 번 듣고서는 상처받고  또 그 친구한테 가요. 이게 뭐예요? 친구들끼리 서로를 강하게 만들어야 되잖아요. 서로를 욕해 줘요. 만나자마자 허점을 찾아야 돼요. 처음엔 힘들지만 그걸 경디면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심지어 그 다음부터는 화장도 안 할 거예요.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친구들끽 만나서 칭찬하고 서로 위로하지 말아요. 아부하는 사람이랑 아첨하는 사람은 군주를 붕괴시켜요. 회사에 갔을 때도 너무 열심히 일해서 인정받지 말아요.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한 달 동안은 사고를 치세요. 복사기에다 커피 쏟고 복사기를 망가트리는 거예요. 온갖 욕을 다 듣는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회사에서 안 쫄아요. 자기가 정말 잘못을 할 때도 있을 겁니다. 이 경우 보통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야지'라며 자책하죠. 그러면 또 실수할까 봐 쫄게 되어 있어요. 잘못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스스로 검열하지 않는 방법은 누가 나한테 욕을 하거나 뭐라고 할때 그것에 쿨해지는 것입니다. 쿨해지면, 여러분은 세상에 쫄지 않아요. 아시겠죠?  208-209


뻔뻔함의 두 가지 강령, 첫 번째, 거짓말 잘하기. 들키지 않고 부드럽고 우아하게.

두 번째, 기꺼이 욕을 먹기, '하루에 욕을 세 번 안 먹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생각으로 욕듣기. 욕이 부족하면 반드시 나서서 욕먹을 짓을 하기.

뻔뻔스럽고 당당한 사람들, 쫄지 않는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게 아니라 실전무공으로 단련된 거예요.  212


철학자들이나 지식인들 대개는 자기도 경험하지 못했던 얘기를 뻐꾸기처럼 계속 날리는 거예요. 거기에 취어잡히면 안 돼요. 쫄아서는 안 돼요. 지적으로 보이려고 해서는 안 되죠. 그래서 거기 말리는 거예요. '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이렇게 뻔뻔스럽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해요.  220


진짜 위대한 사람은, 혼자 있는 사람이에요.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만나서 주체적으로 사랑할 수도 있어요. 누구든 외로워서 사랑하면 안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도도하게 혼자 있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성숙한지를 알 수 있죠. 힘들거나 외로울 때 친구한테 전화하지 말아요. 아셨죠? 절대 외롭다고 놀아달라고 하지 말기. 강하게 꿋꿋하게 슈베르트 음악을 들으면서 견디는 거예요. 우아하게.

잊지 마세요. 뻔뻔스럽게 대하고 세계와 단절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계에 쫄지 않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이 뻔뻔스러움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는 진정한 친구와 애인을 가질 수 있어요. 잊지 마세요. 그때가 되어서야 진짜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제가 가르쳐 준 대로 하면 왕따 당하고 패가 망신하고 집에서는 쫓겨날 것 같죠? 여러분 주변의 쓰레기 같은 사람들, 내가 결정하지 않은 인간관계들이 다 정리가 되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새로운 관계가 열립니다.  229-230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하나 해 드릴게요. 어느 보살 할머니가 자신이 성불은 안 되니 스님을 한 명 키우기로 하고 10년 동안을 봉양해요. 그러다가 이 할머니가 스님이 깨우침으로 가고 있는지 밥만 처먹고 있는 건지 궁금해졌어요. 시험을 해 봐야 되잖아요. 그래서 마을에서 가장 섹시한 기생을 데려다가 안겨 줬어요. 그러고 나서 스님의 반응을 보는 거죠. 스님이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안아 주면서 기생에게 말해요. "나의 마음은 얼음과도 같다." 그 말을 듣고, 그 보살 할머니가 스님이 있는 암자를 불태워 버려요. 왜요? 억지로 하잖아요. '여자를 탐해선 안 된다. 품어선 안 된다 흔들리면 안 된다.' 그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흔들린 거예요. 흔들리지 않는다면, '얼음'이라는 생각조차 안 들었겠죠. 쫄고 잇는 사람만이 '쫄지 말아야지. 쫄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생각해요. '쫀다'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없어져야 되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죠? 그러니 당당해지지 말고, 뻔뻔해지세요. 그게 안 쪼는 거예요.

그리고 비겁한 걸 받아들이세요. 자신이 어디까지 비겁한지만 알면 돼요. 이 세상에서 제일 바보가 '모 아니면 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중국 한나라에 한신이라는 장수가 있었어요. 한고조 유방을 도와서 한나라를 구축했던 유명한 장수예요. 이 한신이 저잣거리에서 깡패들을 만나요. 칼을 든 깡패 열댓 명을 만난 거예요. 깡패들이 한신에게 자기들 가랑이 사이를 기어가라고 해요. 딱 보니까 게임이 안 돼요. 한신이 어떻게 했게요? 쏘 쿨! 기면 돼요. 뻔뻔하게! 그렇다고 그들에게 굴복하는 건 아니에요. 그게 바로 한신이라는 사람이 가진 능력이라고요. 그리고 나중에 히을 가졌을 때, 나라를 건립한다고요. '완전히 당당해지지 않으면 난 비겁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게 문제거든요. 

여러분 자신을 오버해서 보지 마세요. 여러분이 역사를 바꿀 것 같아요? 집을 바꿀 것 같아요? 어머니를 바꿀 것 같아요? 바꾸지 못해요. 여러분들이 해야 될 일은 내가 얼마나 무능력한지, 얼마나 비겁한지를 아는 겁니다. 이 말은,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안다는 얘기예요.  255-257


자본에게 쫄지 않는 방법은 뭘까요? 자본이나 돈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겁니다. 전셋집도 갖지 마세요. 가지고 잇으면 낚이는 거예요. '최적생계비'만 갖고 있어야 해요. 최저생계비가 아니라 최적생계비예요. 그래야 뻔뻔해져요. 그래야 사장한테 뻔뻔해진다고요. 사장이 밤에 일하자 그래도 이래요. '됐어요. 월급 됐어요.' 최적생계비를 계산하는 거예요. 최대생계비는 끝이 없어요.  265


자본주의는 순수한 게임의 세계입니다. 세상이 모조리 다 투자고 '돈 넣고'로 좌지우지도는 리얼리티 없는 세계. 게임가가되면 그 안으로 들어가게 돼요. 도박사, 도박군들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를 야셔야 돼요. 그게 순수한 자본가의 세계예요....

우리가 돈에 쫄지 않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나의 최적 생계비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거예요. 최적생계비만 벌면 되니까 나머비 시간에는 뻔뻔해질 수 있죠.  266


디오게네스가 왜 당당해요? 옷 한 벌, 지팡이 하나, 자루 하나 들고 통에서 살았잖아요. 통! 통 하나밖에 없잔하요. 집을 갖고 있으면 쫓겨나지만, 처음부터 쫓겨날 데가 없는데 쫄 이유가 없죠.  267


'뻔뻔하다'는 말의 긍정성을 아셔야 된다는 거예요. 이건 소중한 거예요. 

죽을 때까지 인정을 받지 않겠다는 각오로 사시면 돼요. 그러다 진실을 얘기해야 될 때가 올 수도 있어요. 어쩌면 그때는 '모 아니면 도'일 거예요. 진실에 대해서 쉽게 얘기하진 말고요. 그 뻔뻔함으로 상당히 많은 시간을 보냈을 때 여러분들은 쫄지 않는 자아. 뻔뻔한 자아로 만들어져요.

앞서 얘기했지만 쫀다는 것과 당당함을 대척되는 것으로 두면 안 돼요. 쫄다가 뻔뻔스러워 졌다가 그 다음에 마지막에 오는 것들이 당당함이에요. 당당함은 그렇게 쉽게 얻을 순 없어요.  267


라캉도 말했던 겁니다. 주체는 무엇보다도 '자신이 욕망하는 것이 진실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인지 혹은 소망하지 않는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275


'안이건 밖이건 만나는 것은 무엇이든지 바로 죽여 버려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여라' <임제어록>에 나오는 말입니다. 물론 진짜 살인을 하라는 것은 아닐겁니다. 위악은 위악일 뿐, 진정한 악을 행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빈다. 단지 우리 스스로 주인으로 서는 데 방해되는 일체의 권위를 마음속에서 제거하자는 겁니다.  277




에필로그 - 존 레논의 '이매진'을 읊조리며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Imagine there's no countries, It isnt hard to do, 

Nothing to kill or die for, No religion too,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 


Imagine no possesions, I wonder if you can,  

No need for greed or hunger, A brotherhood of man,  

Imane all the people Sharing all the world.



타인이 자신의 삶을 억압할 때는 저항이라도 가능하지만,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복종하는 경우에는 답조차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깊게 가슴에 아로새겨야만 합니다. 타인의 삶을 흉내 내지 말라는, 그리고 타인에게 내 삶을 흉내 내도록 강요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말입니다. 하긴 다른 팽이의 회전이 멋있다고 해서 그것을 흉내 내는 순간 자신만의 스타일로 돌고 잇는 팽이는 더 이상 돌 수 없을 겁니다. 그 역도 비극으로 끝나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억압뿐만 아니라 모방이나 자발적 복종도 철저하게 거부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모방이나 자발적 복종도 철저하게 거부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인문정신이 가진 소명입니다. 인문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리 '고유명사'를 지향하는 학문입니다.  288-289


"공통된 그 무엇"을 거부해야, 우리는 "스스로 도는 힘"을 지킬 수가 잇습니다. 아니 그 역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스스로 도는 힘"을 강화할 때에만 우리는 "공통된 그 무엇"을 극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공통된 그 무엇'의 자리에는 그 어떤 것이라도 올 수 있습니다. 자본, 종교, 민족, 인종, 정치권력, 스승, 멘토 등등. 우리만의 스타일로 삶을 살아 내는 힘을 빼앗는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통된 그 무엇"이 들판의 야생화들처럼 단독적인 개인들을 '우리'로 만드는 근본적인 계기로 기능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말장난을 조금하자면, 공통된 그 무엇이 만드는 것이 바로 '울(타리)'. 그러니 '우리'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공통된 그 무엇이 만든 '우리'에 갇히는 순간, 개인들은 '우리'로 변한다는 겁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겁니다. '울타리'를 의미하는 '우리'라는 말이 개인들의 단독성을 부정하고서 출현하는 집단적인 '우리'라는 말과 같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공통된 그 무엇의 '우리'에 갇혀 '우리'가 되는 순간, 더 심각한 위기가 먹구름처럼 몰아닥치게 됩니다. 우리와 공통된 것이 없는 타자들을 '적'으로 여기는 후속 사태가 벌어질 테니까 말입니다. 바로 이 순간 개인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슈미트의 말처럼 '정치적인 것'의 범주, 그러니까 '적과 동지'라는 치명적인 범주에 포획되고 맙니다.  290-291


"공통된 그 무엇"을 극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개개인들을 '우리'로 가두는 우리를 부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서 스스로 다시 돌아가야만 합니다. "스스로 돌아가는 힘"을 유지하는 단독적인 개인들로 우리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야만적인 적대와 대립, 그리고 끝내 모두를 절멸시키는 전쟁만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존 레논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모든 종교, 모든 국가, 모든 소유를 철폐하는 꿈을 꾸었던 적이 있습니다. 종교, 국가, 그리고 소유를 통해 적과 동지로 갈라서서 싸우는 인간의 모습이 참담했던 겁니다.  292-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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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여러분 때문에 철학, 즉 필로소피(Philosophy)라는 학문이 앎(Sophos)을 사랑하는(Philo)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사랑해야 그것에 대해 아는 학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5


사랑편


조르주 캉길렘이라는 프랑스 철학자가 있습니다. 미셸 푸코의 논문 지도 선생이기도 한데, 이 사람이 쓴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이라는 책이 있어요....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정상을 정의하는 것은 비정상을 정의하지 않는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26


10년 동안 김수영이 계속 김현경을 때리다가 마지막 때린 날 <죄와 벌>이라는 시를 씁니다.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 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진짜 미워하려면, 내가 죽어도 미워하는 거예요.

감옥에 가거나 사형 당할 각오를 한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고요. 진짜 미우니까요. 나 하나의 이익을 생각하면 누구를 미워하지 못해요.  30-31


타인과 관련된 감정 중에 가장 극단적인 감정이면서 가장 강도가 센 게 미움과 사랑이잖아요.

제대로 미워하면 타인의 시선, 돈, 우산이 눈에 들어오면 안 돼요. 사랑도 미움과 똑같은 거예요. 사랑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요.

남에게 충분히 희생을 당하고 돌을 맞아도 할 수 있는 게 사랑이거든요. 스스로 돌아보세요. 이렇게 죽이고 싶도록 누군가를 미워한 적 없었죠? 그러니 사랑도 못 하는 거예요. 사랑과 미움은 같은 감정이니까요.  33


알랭 바디우라는 철학자는 '사랑은 둘의 경험이다.'  33


다른 게 개입이 되면 안 돼요.

둘의 경험을 한다는 건,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정치적 상황, 경제적 조건, 오만 가지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야 해요.  35


둘의 경험을 유지하는 건 전투고 투쟁이에요. 스스로와도 싸워야 되죠.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인간관계와 다 싸워야 돼요.  39


누군가를 좋아할 때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고 겁을 집어먹으면 죽었다 깨나도 사랑 못해요.

내가 사랑할 수 있다는 건 고통을 감당한다는 거예요.  47


성적으로 궁합이 안 맞는다고, 나중에 헤어지는 부부들 있죠? 섹스만, 성만 달랑 보고 간 거예요. 오히려 관계에서 성적인 영역이 작아져야 돼요. 이건 다시 말하면 성적으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거예요.  51


일단 사랑이라는 느낌이 들면, 그냥 던져요. 최선을 다해요.  52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는 요령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거예요.  53


우리가 어떤 사람을 갖는다는 건 성적인 소유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모든 면에서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거예요. 거기에 성도 포함돼요.  76


우리가 진짜 둘로 섰다는 경험을 하는 순간, 그때 우리는 꽃필 거예요.  78


우리는 헌신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내가 널 주인공으로 만들면 너도 나를 주인공으로 만드니까, 상대방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는 거예요. 상대방에게 헌신을 해서 나에게 그게 돌아도게 하는 거지요. 잊지 마세요. 행복해 집시다.  79



사랑에는 놀라운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타자를 알아서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빠지면서 타자를 알아 가게 됩니다. 

무엇인가를 알아 가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83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규칙이 공유되는 공동체 내부에서는 나와 타자가 대칭적인 관계에 잇고 '교환=커뮤니케이션'은 자기대화(monologue)일 뿐이다. 한편 비대칭적인 관계에서의 '교환=커뮤니케이션'은 끊임없이 '목숨을 건 도약'이 수반된다. 나는 또한 이러한 비대칭적 관계 속의 교통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를 '사회'라 부르고 공통의 규칙을 가진, 따라서 대칭적 관계 속에 있는 세계를 '공동체'라고 불러왔다.' <탐구II>  85


가라타니 고진은 타자와의 대칭적 관계에 있을 때 우리가 공동체에 속해 있고, 반면 타자와 비대칭적 관계에 있을 때 우리가 공동체에 속해 있고, 반면 타자와 비대칭적 관계에 있을 때 우리가 사회에 속해 있다고 말합니다.  86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도는 당혹감입니다. '아! 저사람에대해 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구나!' 이제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 가야 하는 비대칭적인 관계, 즉 사회에 속하게 된 것입니다.  87


타자가 나를 사랑하기로 한 것도, 그리고 나를 버리기로 한 것도 모두 그가 자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 것이지요.  88


타자가 자유롭게 나를 사랑하기로 결정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는 자유롭게 나를 떠나기로 결정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어느 경우든 그것은 타자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실현한 것이니까요.  89


나를 떠날 수도 있는 자유를 가자고 있음에도 타자가 나의 곁에 머물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불행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타자와의 사랑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법입니다.  91




몸편


몸과 정신은 함께 갑니다. 정신 상태가 상당히 안 좋다면, 몸 상태도 상당히 안 좋은 거예요. 정신적 문제를 몸과 나누어서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사람의 모모가 정신은 하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무언가를 의심하거나 우울한 증세가 있다면, 일차적으로는 운동을 하면서 해결을 할 수 있어요. 강건하게 운동을 하면 100펴센트 해결이 되죠. 어렵지 않아요. 정신에 문제가 생기면 몸에, 몸에 문제가 생기면 정신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의 실천적인 조언을 드릴게요.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면, 집에 처박혀 잇지 말고 몸을 움직이고 써야 합니다. 그리고 몸에 문제가 있을 때는 몸에 연연하기보다 정신적인 문제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고요.  99


'몸'이라는 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남자의 몸, 여자의 몸만 존재해요.  100


남자의 몸은 여자의 몸으로, 여자의 몸은 남자의 몸으로 열려 이싿고 해야 할까요? 철학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관계에 열려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이라는 걸, 몸 일반으로 보지 말자고요. 그냥 여자의 몸, 남자의 몸인 거예요. 그리고 지구상에 이게 존재하고, 생명체에게 이게 존재한다는 건 소중한 거계요. 여자 혼자서는 여자의 몸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마찬가지로 남자 혼자서는 남자의 몸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수박에 없는 구조가 바로 우리의 몸이라는 거죠. 흥미로운 일이지요.  101


우리 몸은 기억을 합니다.  108


(제자중에)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를 연주하는 친구인데, 이 친구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악기는 손을 타기 때문에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고 만져 주지 않으면 마치 남남인 것처럼 초기화되어 버린다"라고요.  110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키스를 나누고 나를 만져 주길 바라죠. 나에게서 날 수 있는 전혀 다른 소리들을 기대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을 하지 않게 되면, 어떤 사람의 몸과 부딪히는 관계를 맺지 않게 되면 여러분들은 끝난 거예요. 살아 있어도 끝난 거예요. 썩어 가는 거예요. 리셋이 되고 있는 거예요...

사람 몸은 다 악기예요. 애완견도 악기고, 심지어 돌도 악기예요.  111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우리 몸은 악기와 같으니 악기를 어덯게 유지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겁니다.  112


집중력입니다. 최대한 집중해서 확신이 드는 사람과 관계를 지속하려고 할 때, 거기서 환멸을 느끼든 좌절을 느끼든 경험이라는 것이 되는 거예요. 집중을 했을 때 경험이 되는 거죠. 장비를 갖추고 여행을 가서 고생을 하면 경험이 되지만, 그냥 길 가다 폭풍우 쏟아진다고 폭풍우를 경험했다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냥 당한 거죠. 그건 경험이 아니에요. 아무것도 못 배워요. 경험은 수동적인 게 아닙니다. 경험에서 배운다는 건, 진지하게 직면하는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말이에요. 진지(眞摯), '참될 진(眞)'자에 '잡을 지(摯)'자예요. 특히 여릭서 중요한 것은 '지'라는 글자입니다. 솔개 같은 맹금류가 토끼 같은 동물을 꽉, 혹은 제대로 잡아챈다는 뉘앙스가 있으니까요.

꽉 잡을 때 그게 뜨거운지 시원한지 알아요. 그때 배우는 거예요. 뜨거운 척 하는 게 아니라 꽉 잡아 봐야 돼요. 이 경험이 쌓여야 된다고요.  142


타인을 위해 자기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은 대개 노예들이에요...

타인이 정한 행복과 불행이란 기준이 아니라 나만의 행복과 불행이란 기준으로, 일체 검열하지도 않고 쫄지도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에 따라 판단하라는 겁니다.  145


오로지 나의 느낌에, 내 감정에 유일하게 집중하고 사랑을 할때만이 우리는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해요.  154


직접 대면했을 때 아름다운 풍경은 살아 있는 것 같은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진에 담긴 아름다운 풍경은 그런 생생함이 사라지고, 무엇인가 죽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사진의 풍경은 '시각'만이 추상화되어 박제된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신이 직접 본 풍경은 다섯 가지 감각이 모두 살아 움직였던 구체적인 경험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진이 보여 주는 시각적 풍경은 자신이 직접 경험했던 풍경을 추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당시 경험했던 바람의 산들거리던 촉감이나 호수의 달콤하고 씁쓸했던 물비린내 등등은 기억 속에서 사라지게 되겠지요.  164-165




고독편


우리가 제일 슬픈 건, 나를 항상 의식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렇게 생각해 보면 돼요. 나를 만난 남자가 자꾸 시계를 봐요. 여러분을 만난 어떤 사람이 시계를 자꾸 본다면, 그건 자기가 지금 어디에 있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고 객관적 위치가 어디인지를 파악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불쾌하지 않나요? 백화점도 그걸 알아요. 시계 안 갖다 놓죠. 상품에 몰입하라고요. 백화점은 절대로 창문을 만들지 않아요. 비가 쏟아지면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집으로 가니까요. 불문율이죠. 백화점은 그렇게 몰입을 위한 환경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176


몰입은 시간 가는지 모른다는 느낌인 거예요. 시간을 챙긴다는 건 일정을 관리한다는 거잖아요. 

어른이란 게 뭔가요? 내가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어른은 몰입을 잘 못해요. 아이들은 좋아하거나 꽂히는 게 있으면 거기에 목숨을 걸잖아요. 고독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 아시겠죠? 몰입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176-177


세계와 관련되어 있으면, 내 바깥에 있는 사람, 사물, 사건에 몰입을 하면 고독은 안 느껴져요. 번지점프를 하면서 고독을 느끼지 않잖아요. 절대 안 느껴요. 아주 재밌는 영화를 볼때도 우리는 고독을 느끼지 않죠. 어떤 매력적인 남자를 만나서 그 남자에게 몰입하는 순간 우리에게 고독은 없어요. 내가 몰입할 대상이 존재하면 고독은 없어요. 우리가 느끼는 고독의 정체는 바로 그거예요. 몰입할 게 없는 겁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죠. 사랑하는 게 없다고요. 밤새도록 함께 잇어도 시간이 가는지 모르는, 그런 존재가 없다는 거예요....

세계가 풍겨으로 보일때 우리는 고독한 거예요. 내가 있고, 나머진 다 그림인 거죠.  178


고독을 해소하는 방법, 그러니까 세상을 풍겨으로 보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풍경으로 보이지만 그것들 중 만지고 싶은 것이 있는지, 다시 말해 더 몰입하고 싶고 더 들어가고 싶은 것이 잇는지 살펴보는 거예요. 반드시 있을 겁니다.  179


고독이라는 건 자의식이 강한 상태입니다... 긴장되어 있어 거예요. 이 세계를 풍경으로 보는 겁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 몰입하지 못해요. 나에게만 몰입해요. 나에 대해서만 몰입하는 겁니다. 그런데 몰입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분열증에 빠져요. 우리의 문제가 그거죠.  180


고독은 일회용 반창고일 때에만 의미가 있다는 사실. 상처가 날까 봐 계속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요.

고독은 병에 비유하자면 자폐증과 같은 겁니다. 자폐 증상이 있는 아이들은 세계가 너무 큰 충격을 줬을 때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요.  182


자본은 우리의 낭만적 삶을 부정할 겁니다. 낭만적인 사람은 세상에 대한 몰입도가 높은 사람이니까요. 그러니 자본의 입장에서는 하나씩 하나씩 몰입도를 줄이려고 할 거예요. 그러니 낭만을 위한 싸움을 시작하려면 우리가 먼저 되새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뭐죠? 고독을, 멋이라고 자랑하지 말자고요. 일차적으로 우리는 상처받았어요. 고독하도록 내밀린 겁니다. 이걸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삶의 행복을 찾으려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게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거예요. 몰입을 못하면 죽은 거니까요.  186


사람은 죽을 때 근육이 이완되죠. 죽고 나서 경직이 됐다가 이틀 정도 염을 하고 경직이 풀리면 사람 몸이 처음으로 다 열려요. 잡아뒀던 게 이완되니까 오만 구멍에서 다 쏟아져 나와요. 산다는 건, 사는 것의 정의는 항문을 조이는 거예요. 몰입과 무어의 육체적인 경험은, 드러나는 건 다 열리는 겁니다. 이 경험이 매력적인 게, 완전히 어떤 것에 몰입한다는 거예요. 나를 떠나는 거죠.

생각을 해 봐야 돼요. 나를 놓을 수 있는 기술이 우리에게 필요한데, 그 방법들은 여러분이 찾아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어떻게 증진시킬까?'가 다움 문제인 거죠. 이거 굉장히 소중한 거예요.  190


고독을 벗어나는 기술은 '고독의 상태니 여기서 건너뛰자'는 발버둥보다 일단은 '몰입도를 어떻게 높여야 되는데 이 몰입의 방법이 나에게는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해보는 거예요.  191


여러분에게 세계가 힘든가요? 육체적이든 장소적이든 시간적이든 관념적으로라도 거리를 두세요. 세계를 풍경으로 보는 연습을 하세요. 진짜 편해요. 세계에 그냥 노출되서 마구 상처받는 것보다 고독으로 자기 내면으로 침잠하고 세계를 풍경으로 보는 게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어요. 슬픈 전략이죠. 하지만 우리의 보호막은 또한 우리의 감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고독은 이중적이에요.  192


행운은 아무에게나 오지는 않지요. 스스로 고독을 깨기 위한 적극적인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춤도 춰 보고 노력은 해 볼 수 있어요. 해보는 데까진 해 봐야 되겠죠. 어쨌든 방법은 알았으니까요. 그렇게 하다 보면 나를 가두고 있는 그 감옥의 두께가 좀 얇아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런 어머니 같은 존재가 필요하지 않을까'그런 생각이 들어요. 따뜻한 사람이요. 어쨌든 따뜻한 사람이 여러분을 나올 수 있게 괜찮다고, 여기는 괜찮다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193


눈치를 보는 건 괜찮아요. 압도적인 힘 앞에서 생존하려면 눈치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니까요.  197


삶을 잘 살려면 어떤 것을 결정하든 부모님에게 '이기적이다'는 말을 들어야 해요. 부모님이 여러분에게 이기적이라고 말씀하시면 무조건 자신감을 가지면 돼요. '드디어 내 삶을 사는구나'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199


예쁜 사람 콤플렉스가 그거예요. 한 번의 선택으로 완벽한 스토리로 살고 싶은 겁니다. 그러니 주저하는 겁니다. 지금 선택이 완벽한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결국 어떤 선택도 할 수 없게 되지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하고 행동하세요. 

확신이 아니라 감각만 믿으셔야 해요. 헷갈릴 때 여러분들이 하셔야 될게 감각을 믿는 거예요. 확신이라는 것을, 미래로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감각을 믿으세요  203


독일 관념론이 우리에게 했던 이야기는 타자가 매개되지 않는 자기의식은 없다는 겁니다. 모든 자기의식, 나에 대한 의식은 타자가 매개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쁜 타자를 만나는 게 비극인 거예요. 누군가 나에게 쓰레기라고 비난하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돼요. 그리고 쓰레기를 찾게 되죠. 좋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이유는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나의 모습을 발견해 주기 때문이에요.  205


자신의 감정을 지켜야만 해요. 그만큼 여러분은 삶의 주인이 될 테니까요. 그게 주인 아닌가요? 내가 행복하면 행복한 거예요. 내가 즐거우면 즐거운 거고요. 내가 불쾌한 건 피해야 되죠. 불쾌한데도 억지로 하고 잇다면, 문제가 있죠. 행복한데도 버려야 된다면,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요? 사실 돌아보면 우리는 너무 비겁하잖아요. 내 감정을 지키면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아서 자신의 감정쯤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있으니까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감정이 소중하다고 이야기는 하죠. 이렇게 비겁한 의식들 때문에 우리는 계속 힘들어지는 거예요. 아주 쉬워요. 아주 단순하죠. 제가 왜 단순하게 얘기하는 거 같아요? 별로 타협을 안 보잖아요. 옳은 거는 옳은 거예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더라도 옳은 거는 진짜 똥구먼이 빠져도 옳은 거예요.

사실 저도 그렇게 잘 살지 못하죠. 그런데 제가 철학자니까, 옳은 거는 옳은 거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못 살아도 옳은 것은 옳은 거니까요.  231-232


'왜 사나?'라고 질문하지 말아요... 다 개소리예요.

그 막연한 질문들이 대개는 지금 내가 좋은지 내 느낌이 어떤지를 은폐하기 위해서 던져지는 질문이에요. 그리고 그 막연한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내앞에 있는 사람,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무시할 때 써요.  237


자신의 삶을 하나의 축복으로 생각하려면, 여러분들이 먼저 해야 할 일은 고독과 싸우는 것입니다. 고독해지는 내 모습과의 싸움입니다. 세계를 풍경으로 볼 게 아니라 세계에 몰입할 걸 찾아야 해요. 그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건 맞아요.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커다란 행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상처를 받았다고 떨어져 나오면 아무것도 못 만지는 세상만 남아요. 그 순간 우리는 제대로 몰입할 대상을 만날 가능성마저도 잃게 되겠지요. 그러니 용기를 내야죠. 제대로 살려면, 행복하게 살려면, 우리에게는 몰입할 대상이 반드시 있어야 하니까요.

고독에는 병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고독은 자기에 대해서 몰입하는 거니까요. 그래서 고독은 타인에 대해서 몰입하지 않기로 작정했을 때 쓰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겁니다. 결국 타인을 사랑할 수 없으니 나만을 사랑하기로 작정하는 것이 고독의 숨겨진 메커니즘입니다.  238




에필로그 - 사랑, 손이 데어도 꽉 잡아야만 하는 것

차이의 긍정, 이것은 바로 상대방을 소유하지 않겠다는, 다시 말해 자유롭게 해 주겠다는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252


니체도 <도덕의 계보학>에서 "망각이 없다면, 행복도, 명랑함도, 희망도, 자부심도, 현재도 있을 수 없다. 이런 저지 장치가 파손되거나 기능이 멈춘 인간은 소화 불량 환자에 비교될 수 있다... 이런 망각이 필요한 동물에게 망각이란 하나의 힘, 강건한 건강의 한 형식을 나타낸다."  258


스피노자는 "슬픔은 인간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거나 방해한다. 즉 인간이 자신의 존재에 머물고자 하는 코나투스를 감소시키거나 방해한다. 그러므로 슬픔은 이런 노력에 반대된다. 그리고 슬픔을 느끼는 모든 인간이 노력하느 ㄴ것은 슬픔을 제거하는 일이다. 그러나 슬픔이 크면 클수록 그것은 인간의 활동 능력이 그만큼 큰 부분에 대립한다. 그러므로 스픔이 더 크면 인간은 반대로 그만큼 활동 능력으로써 슬픔을 제거하려고 할 것이다." <에티카>  258-259


스피노자의 말대로 의식적인 노력으로 치유의 시간은 그만큼 단축될 수도 있습니다.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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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있는 사람이 가져야 할 7가지 미덕

1.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주지하라.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보다는 어디를 향하고 있느냐이다”라고 독일의 철학자 괴테는 말한다 . 열정을 다하기 전에 내가 나아야 할 방향을 세우고 나아가라. 절대로 초라한 목적에 열정을 쏟지 마라 .

2. 힘들겠지만 실패를 받아들여라.
자신이 실패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조차 힘든 사람이 많다 . 열정 있는 사람일수록 상처 받기 쉽다.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아파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실패의 그늘에서 진정으로 벗어날 수 있다.

3. 장애물 앞에 더욱더 강해지는 열정을 보여줘라.
진정한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많은 난관이나 장애물까지도 열정으로 녹여버린다 . 장애물이 있을수록 오기가 생기게끔 노력하라. 열정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4. 자신 보다 약한 사람에게 넉넉함을 보여줘라!
자신 보다 힘이 약하거나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넉넉함을 보여줘라 . 비록 지금 자신에게 금전적인 손해가 있더라도 차후에 그 일이 당신을 더욱더 빛나게 할 것이다.

5. 실속만 챙기는 이익을 멀리하고 자신의 일에 매진해라.
너무 자신의 실속만 챙기려 하지 마라 . 넘어진 사람에게는 이유를 묻지 말고 도와줘야 한다. 당신이 내민 작은 손이 당신과 그 사람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6. 흔해빠진 이야기 보다 독특한 이야기를 하라.
해병의 구호를 보면 , “아무나 해병대원이 될 수 있다면 나는 해병대를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아예 하지 마라. 독특한 자신의 열정을 키워라.

7. 작지만 큰 선물을 해라.
세상에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 그러나 너무 부담되지 않게 꼭 주려는 직장 동료에게 필요한 선물을 하라. 받은 분을 고려하지 않은 선물은 안 한 것보다 못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
열정은 아름다움을 더욱더 아름답게 만든다. 열정은 무엇인가에 미치는 것을 뜻한다. 열정은 너무나 뜨겁기에 주위에도 전달되며, 열정을 지닌 자는 눈빛이 살아있다. 그리고, 결국은 한계를 초월한다. 당신의 삶은 지금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열정으로 가득 차 있는가. 그렇다면 그 열정을 느끼는 당신은 행복하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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