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책을 시작하며 .. 8

1부 시작하기

  1장 습작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가? ..22

  2장 여행 떠나기 .. 48

  3장 내용에 관한 생각 일깨우기:기초훈련 .. 55

2부 작가의 역량

  4장 창조력 .. 92

  5장 기억과 전문 지식 .. 108

  6장 관찰력 .. 121

  7장 상상력 .. 142

  8장 잠재의식 .. 168

  9장 호기심 .. 177

  10장 셜록 홈스의 글쓰기 학교 .. 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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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시작하며

이 책은 그 흔한 출판 전략 하나 일러주지 않고 독자의 심리를 깊이 파고드는 기술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글 쓰는 데 필요한 문법도 가르쳐주지 않고, 어떻게 하면 불티나게 잘 팔리는 베스트 셀러 소설을 쓸 수 있는지 그 방법 역시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책은 글을 쓰는 모든 작가에게 꼭 필요한, 가장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기술을 어덯게 하면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또한 작가라는 사람들은 글을 쓸 때 아무 거리낌 없이 그저 쓰기부터 시작하는지 아니면 글을 쓰는 내내 보통 사람처럼 답답함을 느끼거나 혼란을 겪는지 그런저런 것들을 함께 보여줄 것이다.  8-9


글을 쓰는 데에는 어떤 기술이 필요할까?

첫째, 글을 쓰려면 한 편의 글에 담길 내용을 찾아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주제를 찾아내고, 주제에 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 없으면 글을 쓸 수 없지 때문이다.

둘째,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독자를 헤아리는 능력이 필요하다. 

셋째, 글을 쓰려면 자신이 소통을 위해 다루고자 하는 장르나 형식에 관해 알 필요가 있다. 

넷째, 글을 쓰려면 내 마음속 생각을 독자의 마음속에 집어넣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10-11


그런 지식을 타고나는 작가는 없다. 종이 위의 소통을 위해 필요한 기술은 기본적으로 학습된 기술이다.  11



습작은 타격 연습이나 악보 연습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한 반복적인 행동이다.

습작이 단지 맹목적인 반복이란 뜻은 아니다. 훌륭한 야구선수라면 타격 훈련을 할 때 무작정 방망이를 반복해서 휘두르기만 하지는 않는다. 타격을 할 땐 한 순간에 온 정신을 한데 모은다. 한 예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순간, 방망이를 잡은 손에 온 정신을 집중한다. 또 공을 치는 순간, 공을 바라보는 눈에 온 정신을 집중할 수도 있다. 종이에 글을 쓰는 것 역시 한 순간, 한 가지 대상에 온 정신을 집중하는 행위다. 바로 이것이 글쓰기으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27


습작을 시작할 때면 자기도 모르게 학창 시절의 사고방식에 빠지는 사람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올바로' 했는지 알고 싶어한다.  28

'이 글은 지난번 것처럼 좋지는 않아. 더 이상 그런 글을 쓸 수는 없을것 같아'하고 생각하게 된다.

습작할 때 마음속으로 평가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30


훈련은 학습을 위한 도구다.

평가하는 태도를 버려라. 그 대신 '이렇게 쓰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군' 하는 식으로 자신에게 속삭이는 것이다.  33


습작은 놀이 같은 것이다.

훈련을 할 때 놀이처럼 하기 위해서는 발견을 통해 배우는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다음번에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34


무엇이든 상관없이 계속 펜으로 끼적거리는 것이다. 이 말은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는 뜻이며, 앞으로 돌아가 단어에 밑줄을 긋거나 단어를 고치거나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35


프리라이팅(freewriting) - 10분 동안 작가가 되는 훈련을 한다는 것.

이제 몇 분의 시간을 더 들여-자신이 원하는 만큼-종이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과연 이 훈련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스스로 골라 쓴 어휘를 볼 때 무엇이 눈에 띄는가? 어떻게 그 단어가 생각났는가? 글을 쓸 때 마음속의 어떤 생각에 주목했는가?  36


훈련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흔히 글을 쓸 때 마음을 편히 먹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글을 쓰면서 새로운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것에 놀랐다고 말하기도 한다. 때로는 한동안 생각해두었던 것에 깊이 빠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사람도 있다.  37


창조적인 기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39

훈련의 요점은 연습 자체에 있지 즉각적인 결과에 있지 않다.  40



프리라이팅을 위한 지침

- 무슨 일이 있어도 적어도 10분 동안은 계속 펜을 놀려라. 시계를 보지 말고 대신 자명종이나 스톱워치를 활용하라.

- 멈추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이 욕구에 따르면 안 된다. 말하고 싶은 것이 생각날 때까지 똑같은 것을 반복하더라도 끝까지 멈추지 말고 펜을 놀려라. 쓰는 도중에 다른 표현이 생각나도 먼저 쓴 것에 줄을 긋거나 편집하지 마라.

- 어디까지나 사적인 일이라는 생각을 분명히 하라. 무엇을 쓰고 싶든지 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 원한다면 한 가지 주제로 시작할 수 있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그리고 한 가지 주제로 시작했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주제로 바꿀 수 있다. 다만 계속 펜을 놀려라. 순서나 단어 선책, 문법의 정확성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마라. 이것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 원하지 않는 부분에서 생각이 뱅뱅 맴돌 때는 방향을 바꿔라. 이 훈련의 주제는 여러분 자신이다.

- 이 글에 대해 아무런 기대를 하지 마라. 원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상관도 없다. '이번에는 어떤 아이디어나 이미지가 떠오를지 궁금하다'는 태도만 유지하라.

-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과 아이디어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종이에 옮겨라. 마음속에 '이건 끔찍해! 무슨 생각이 나든 그걸 쓸 수 있을 것 같아?'라든가 '와우, 대단한데! 곧 스티븐 킹 같은 자가가 될거야'하는 목소리가 들리더라도 무조건 무시하라. 계속 펜만 움직여라.

- 처음에는 자신이 쓴 것을 읽어보지 않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읽고 싶어도 잠시 기다리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행여 읽더라도 너그러운 자세로 읽어라. 편집하거나 비평하지 마라. 단지 종이 위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만 주목하라.  43-44



기초 훈련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단순하다.  46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즉 "재능이란 다른 사람에게만 있다고 생각하는 가정, 그런 생각이야말로 자신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글쓰기 능력이 있다.  50


습작을 위한 준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갖기 바란다. 먼저 다음 질문에 답해보라. 여러분은 어느 시간대에 에너지가 가장 충만한가? 여러분은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고 싶은가 아니면 원할때면 아무 때나 쓰고 싶은가? 혹시 이 두 가지 경우 모두에 해당되는가?

이제 여러분의 이상적인 글쓰기 장소를 상상해보라. 그곳은 어디인가? 하루 중 어느 시간대에 그곳을 이용하는가? 그곳은 어떻게 생겼는가? 그곳에서는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당신이 거기서 보거나 냄새 맡거나 만지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옷을 입었는가? 혼자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가? 무릎에서 고양이가 자고 있는가? 발치에 개가 누워 있는가? 그곳은 조용한가 아니면 음악이 들리는가? 음악이 있다면 어떤 음악인가? 당신 주위에 있는 이 모든 것은 편안한 느낌을 주는가 아니면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가?

이 모든 것을 마음속에 담고 그것을 그림으로 바꾸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52-53


어떻게 하면 가장 편안한 환경을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다른 조명이나 다른 의자, 다른 배치로 실험하고 싶을 수도 있다. 꼭 이런 형태는 아니겠지만 사실 글쓰기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육체적인 활동이다. 육체적으로 편안할 때 글쓰기에 더 많은 힘과 정력을 쏟을 수 있다.

단지 펜과 종이만 준비하고... 시작해 보는 것이다.  54



작가의 정신 : 내용에 관한 생각과 기교에 관한 생각

내용에 관한 생각이란 무엇인가? 글로 쓸 생각과 활용할 재료를 찾아내는 작가의 정신과 관련한 부분이다. 내용에 관한 생각을 잘 단련한, 노련한 작가는 흥미로운 아이디어와 정보, 장면, 이야기, 인물, 세부적인 묘사 같은 내용을 잘 포착해 독자의 관심을 이끌어낼 줄 안다.

기교에 관한 생각이란 무엇인가? 말해야 할 내용을 전달하는 작가의 정신과 관련한 부분이다. 기교적인 생각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큰 기교, 예를 들어 소설을 어떻게 쓸 것인가 또는 기명 칼럼은 어떠해야 하는가 따위이고, 또 하나는 작은 기교, 이를테면 어휘를 선택해서 그것을 문장과 문단에 조합하는 기교다.

각각의 부분을 잘 익히기 위해서는 둘을 분리해서 훈련하는 것이 좋다.  58


프리라이팅의 진정한 목적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번째 목적은 내용에 관한 생각과 친숙해지고 그 생각을 다루는 법을 익히는 데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두번째 목적은 규칙적인 훈련으로 내용에 관한 생각을 강화해서-특정한 정신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재료 제공을 원활하게 하자는 것이다. 

어휘보다 재료에 집중하는 훈련을 하면 할수록 말하고 싶은 것을 찾아내는 것도 그만큼 더 쉬워질 것이다. 

이 훈련을 꾸준히 한다면 자신이 불러낸 재료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라도 결국에는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64



자료 없이 글을 쓸 수없는 사람은 없다.

풍부한 재료.. 재료가 풍부하다면 그 많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66


자료 모으기에는 내부 모으기와 외부 모으기 두 가지가 있다.

내부 모으기란 자기 마음속에 있는 재료를 모으는 것이다. 여러분의 경험과 생각, 꿈, 읽은 책, 시청한 영화를 불러 모으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머릿속에 저장된 것을 떠올린다고 보면 된다.

외부 모으기는 자기 주변에서 불러 모으는 것이다. 읽기로 마음먹은 책이나 관심 있는 것에 대한 조사, 우연히 듣게 된 대화 같은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하는 일임을 명심하라.  67


사실상 자료를 모으는 순간에 그 자료가 훗날 소용이 될지. 안 될지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저 자신의 직관을 믿고 뭔가 매혹적이거나 중요하다고 여겨지면 그것을 적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여러분은 필경 그 느낌을 잊고  말 것이다.   69



연습 : 프리라이팅에서 모으기

온힘을 내용에 집중해서 프리라이팅을 많이 하다 보면 싫증이 날 수도 있다. 이때는 원한다면 자신이 쓴 것을 훑어보고 눈에 띄는 대목에 표시를 할 수도 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 전체 구절 등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표시를 한다. 컴퓨터로 프리라이팅 연습을 했다면 새 문서를 열고 표시한 모든글을 붗이기 하면 된다. 펜과 종이를 사용했을 경우에는 마음에 드는 구절이나 요절에 동그라미를 친다든가 해서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표시를 하면 된다. 원한다면 또한 표시한 자료를 새로 작성해 컴퓨터에 자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여러분은 작가의 또 다른 필수적 훈련인 새로운 차우너의 모으기를 경험해볼 기회를 자기 자신에게 부여한 것이다.  72



나는 학생들에게 분명히 말한다. 많은 독서를 하지 않고서는 작가가, 또는 유능한 작가가 될 수 없다고.

여러분은 작가로서 독서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이 말의 뜻은,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것으로서 즐거움을 위해 독서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74


어떤 것으든 좋으면 읽는 것이다.

기쁨을 위한 독서를 한다면 무의식중에 작가의 문체자 기술을 흡수하게 될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책을 읽을 때 자기 자신을 사로잡는 것에 주목하라.  75


책읽기는 그 어떤 행위보다도 내용에 관한 생각을 키워줄 것이다.  78


연습 : 내용에 관한 생각과 더불어 하는 책읽기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이나 시, 수필을 읽어라(어떤 종류의 글을 좋아하든). 이제 그 글의 내용을 생각해 보고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적어보라.

이 작가는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가?(예를 들면 어떤 인물이나 사건, 어떤 상세한 묘사, 어떤 아이디어를 사용했는가?) 이 재료의 무엇이 마음에 드는가? 작가는 이 재료를 어떻게 얻었다고 생각하는가? 작가가 이 특정한 재료를 사용한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79



습작을 할 때 일어나는 멋진 일 중 하나는 이 훈련이 작가로서의 자신을 아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쓰는 글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글을 쓸 때 마음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주목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은 단순히 종이에 단어를 나열하는 훈련으로 자신이 매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훈련을 할 때 머릿속에서 어떤 커다란 목소리가 '훈련을 방해한다는 것도 알 것이다. 바로 '어떻게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라거나 '어쨌든 프리라이팅이라는 이 한심한 훈련을 왜 하는 거야?' 같은 목소리들 말이다. 또는 글쓰기를 할 때 아침 일찍 쓰거나 라디오를 켜고 쓰거나 조용한 데서 쓰는 것이 더 좋다는 여러 가지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또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거라든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는 것 역시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노트보다는 컴퓨터로 쓰는 것이 더 낫다는 거라든가 자신의 내용에 관한 생각이 더 이상 써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주제들로 꽉 차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이처럼 글쓰기와 작가로서의 자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한도 끝도 없다. 무엇보다 실습 작가가 되려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81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또는 훌륭한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면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자신에게 시간을 제공하여 배울 기회를 허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82


자신의 습작을 돌아볼 때 평가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주요한 것은 자신이 하지 못한 것에초점을 맞추기 보다, 또 그 이상 성취하지 못한 자신을 비판하기보다 훈련 중에 자신이 성취한 것을 주목하고 그 진가를 아는 것이다. 자기가 해낸것, 자기가 배운 것에 주목하고 제대로 인식할 때만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은 우리의 일부가 된다. 바로 이것이 피상적이 아닌, 깊은 의미에서의 진정한 배움이다.  83-84



연습 : 자신의 글쓰기 돌아보기

이 연습은 프리라이팅 훈련처럼 한다. 10분간 또는 그 이상 계속 펜을 놀리는 것이다. 글을 쓰며 지난 몇 주간 글쓰기를 하는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반성해본다. 

자신의 글쓰기 내용이나 자기 자신의 내부에서 또는 이 두 가지 모두에게 무엇을 주목했는가?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훈련 중에 무엇이 도움이 되었나? 또는 무엇이 도움이 되지 않았는가? 다음 단계로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이든 생각나는 것을 적어보라.

자신을 돌아볼 때에는 평가의 생각은 멀리한 채 습작을 하고 또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주목하고 어떤 칭찬이나 비난을 배재한 상채에서 단순하게 그 일을 적는다. 아마 여러분은 스스로 이런 물음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이 훈련은 나에게 무엇을 가르치는가? 나는 글쓰기에 대해서 또는 작가로서의 나 자신이ㅔ 대해서 무엇을 배우는가? 다음 단계의 글쓰기로 나가고 싶거나 나갈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어디인가? 오늘 작가로서의 나의 직관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렇게 하면 자신이 배운 것을 의식하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그러면 이 여행의 어느 지점까지 왔는지 또 다음 단계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훈련을 돌아본다면 '작가의 직관'으로 자신의 생각을 듣는 데 도움이 된다. 작가의 직관이란 보통 의식적인 생각보다 작가로서 발전하는 데 필요한 거을 더 잘 아는 내면의 목소리다.  85-86


나는 작가가 되는 데 재능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끝없이 초보자의 자세를 유지하면서- 기꺼이 배우는 사람이 되겠다는 자세라고 굳게 믿는다. 

배움을 돌아보는 훈련이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마치 어린애처럼 생각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어린아이가 자라고 발전하는 데 필요한 것은 비판이나 지나친 칭찬이 아니라 격려와 지원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훈련은 특정 주체에 대한 글쓰기를 계획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된다. 때로 어떻게 자신을 돌아볼지 성찰하고, 특정 문제에 관해 자기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놀라운 통찰과 해결방법을 찾기도 한다.  87



연습 목록을 관리하는 법

연습하고 싶은 목록을 작성한다면 훈련 시간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지금 하고 싶은 연습은 무엇인가?"라고 자신에게 물어보면서 훈련 돌아보기를 연습한다.

2. 연습하고 싶은 것 서너 가지를 골라서 목록으로 작성한다.

3. 이 목록을 잘 보이는 곳에 붙여놓는다. 컴퓨터에 자장하거나 노트 맨 앞쪽 계획표에 붙일 수 있다.

4. 글쓰기를 할 시간이 조금이라도 잇다면 -단 10분이라도- 이 목록에 적힌 훈련 한 가지를 골라서 한다. 

5. 새 훈련을 시작하면서 친숙한 것을 반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될 때에는 목록을 다시 작성한다.  89



창조적이란 말은 ... 나 자신이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거나 상상하지 목한 것을 찾아낸다는 뜻이다.  93


글쓰기에서의 창조력이란 (또는 다른 행위에서도) 이보다는 재료를 모으고 모은 재료의 '조각'을 선택하고 각 조각을 서로 연결하는 과정을 말한다. 우리의 내용에 관한 생각을 많은 재료로 채우지 않는 한 우리는 창조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료를 모으는 훈련에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있다.  94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찾는다는 것은 작가가 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다.

자신의 주제는 어떻게 찾아내는가?

1. 질문을 제기하라. - 창조적인 기능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거기서 들리는 대답을 적음으로써 주제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시작에 필요한 몇 가지 질문을 예시해보겠다. 이 연습이 마음에 든다면 자신만의 주제를 편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대답이 들릴 때에는 계속 펜을 놀린다. 첫 질문으로 시작하되 싫증이 날 때까지 이 물음에 매달리고 나서 다음번 물음으로 넘어간다. 쓰려고 할 때 뭔가 들리는 소리가 있으면 10분 정도 지날 때까지 편한 마음으로 소리를 듣는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딱히 정답이 없다. 어쩌면 조잉 위로 옮겨지는 글을 보고 깜짝 놀랄 수 있다. 동시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영역을 참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간단히 방향만 바꾸면 된다. 원한다면 그때그때 다른 질문을 선태갛고 대답하면서 이 훈련을 한 번 이상 하도록 한다. 

 -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

 - 최근에 어떤 생각을 했는가?

 - 계속 마음을 사로잡은 생각은 무엇인가?

 - 고민거리가 있는가?

 - 무엇에 관심이 있는가?

 - 무엇을 아는가?

 - 확고한 의견을 지닌 주제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 의견은 무엇인가?

 - 마음속에 담아둔 장소나 사람이 있는가? 그 장소는 어디고 그 사람은 누구인가?

 -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이 과정이 끝나면 자신이 쓴 것을 읽어보고 한 편의 글을 쓸 수 있는 주제로 보이는 것에 동그라미를 치거나 밑줄을 긋는다.

2. 노트를 활용하라. - 작가노트를 활용한다면 노트가 쓸 거리에 관해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해줄 것이다. 가끔씩 거기에 기록된 내용을 훑어보고 '이것에 대해 더 쓰고 싶어'하고 생각나는 항목이나 구절이 있으며 옆에 체크를 해둔다. 간혹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이 어떤 특정 주제에 관해 반복해서 써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도 있다. "나는 정말 산에 관심이 많군"이라거나 "할머니에 대한 글을 많이 쓰고 있다. 계속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하는 식으로 두드러진 주제가 나오면 이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 주제로 쓰고 싶다고 생각되는 것을 적어본다.  95-97


글쓰기란 하나의 과정이다. 이것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단번에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97


초첨화된 프리라이팅  99



연습 : 내부 모으기를 하기 위한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앞서 연습한 '자신의 주제를 찾아라'에서 찾아낸 주제 하나를 고른다. 이것을 새 페이지의 맨 위에 기록한다. 프리라이팅 기초훈련처럼 초점화된 프리라이팅도 아주 간단하다. 적어도 10분간 계속 쓰고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한 아무도 이 글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또 훈련을 하면서 지금 쓰는 것이 완성된 글도 아니요 초고도 아니라는 시실을 염두에 둔다. 그러므로 서론, 본론, 결론 같은 것은 필요 없다. 글의 구성에 신경 쓸 필요도 없고 이 글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여러분이 지금 하는 것은 자신의 내부에서 지금 자신의 주제가 될 것을 모으는 일이다. 정보 조각이라든가 이야깃거리, 사람, 이미지, 아이디어, 어휘, 구절, 질문 등 어떤 것이라도 좋다. 내부 모으기는 수년간 창고 깊숙이 처박아놓고 열어보지 않은 상자를 들여다보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사용하고 싶은 주제를 당장 성택하지는 않는다. 단지 거기에 뭐가 들었는지 알아보는 거이다. 마음속에 떠오른 것을 검열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이 자신의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면-아무리 낯설고 연결고리가 미약해 보이더라도-노트에 적는다. 생각이 또렷하지 않을 때에는 뭔가 말할 생각이 날 때까지 단어 하나나 구절 하나를 계속 반복한다. 

'어디든지 제한 없이 가는' 기초적인 프리라이팅과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이 차이는 창조적 기능에 제공할 방이 몇 개나 되는가와 관꼐가 있다. '제한 없이 가는' 프리라이팅으로는 자신의 창조적 기능이 어디든 향할 수 있다.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할 때에는 활도을 펼칠 특정 공간을 제공하고-자신이 선택한 주제 영역-그곳에 머무르도록 한다. 여러분이 지금쯤은 알고 있을 창조적 기능은 이곳저곳 거침없이 뛰어다니면서 제 맘대로 놀고 제 맘대로 돌아다니는 길들이지 않은 강아지와 같다. 따라서 여러분은 자신의 창조적 기능이 마치 강아지처럼 지정해준 '뜰'을 벗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때로 창조적 기능이 이렇게 할 때에는 여러분이 지정해준 것과는 다른 주제에 대해 놀라운 아이디어를 줄 때도 있다. 이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면 노트 여백에 아이디어를 적거나 한 줄 띄고서 아이디어를 적기도 하고, 아니면 몇 줄 건너뛰고 적도록 한다. 그런 다음에는 곧장 선택 주제에 대한 프리라이팅으로 다시 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때로는 창조적 기능이 갈팡질팡하며 주제와는 아무 상관없는 방향으로 이끌 때도 있다. 그렇다고 다른 주제에 대해 신통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을까 하는 생각이나 잡다한 공상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창조적 기능을 달래며 살며시 주제로 돌려 놓으면 된다. 마음이 주제를 벗어날 때에는 "그래, 잘했어"라고 일단 쓴다. "저녁식사는 생선요리가 좋겠어. 하지만 지금은 할머니에 관한 얘기를 쓰려고 했잖아. 할머니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이 또 뭐가 있지?..."하는 식으로 주제로 돌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성급하게 주제를 벗어났다는 판단을 내리면 안 된다. 때로 창조적 기능은 가치 잇는 통찰이나 정보 조각으로 안내하기까지 구불구불한 긴 경로를 거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녁 식사로 생선요리'라는 생각이 생선을 잡아 요리하는 할머니의 모습 같은, 평소 같으면 찾아낼 수도 없는 놀라운 기억을 되살려줄지도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 적어도 10분간은 계속 펜을 놀려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런 다음 이 연습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잠시 돌아보는 것이다. 이 연습을 했을 때 무엇이 눈에 띄는가? '제한 없이 가는' 프리라치팅 기초훈련보다 '초점을 맞춘' 프리라이팅이 더 어려웠는가? 아니면 더 쉬웠는가?

이 연습이 마음에 든다면 잘 보이는 노트 한쪽에 쓰기 목록을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 기회에 글쓰기를 하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이 목록에서 하나를 골라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100-102


어떤 성과보다는 훈련 자체에 몰두할 때 재료를 탐사하는 데 있어 완벽한 자유를 맛볼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그 재료를 가지고 즐기면 된다.  106


완성된 글을 시도하기 전에 될 수 있으면 많은 재료를 모을 것을 권한다.  107



연습 : 질문하기

재미있게 재료를 기억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들더라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 아주 유용한 재료로 들어가는 문이 열릴 수도 있다. 아래의 질문을 자신에게 제기하면서 답을 적어보거나 자신만의 질문을 해보라. 첫 번째 질문에 답을 적으면서 쓰기를 시작한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 때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한 가지 질문이 여러분의 마음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 때에는 반드시 원하는 만큼 그 방향을 유지하라.

 - 어떤 재로를 기억에 담아두는가? 기억이 일종의 배낭이라면 거기서 어떤 재료를 꺼내고 싶은가?

마음에 어떤 장소가 들어 있는가? 좋아하는 곳인가? 아니면 차라리 잊고 싶은 곳인가? 도시나 집, 방 같은 곳인가? 아니면 산이나 숲, 은밀한 상상속의 장소인가?

 - 기억에 어떤 사람들이 들어 있는가? 기억하고 싶은 사람인가? 당신을 귀찮게 따라다니는 사람인가? 책이나 영화에서 본 인물인가? 만나고 싶은 유명 인사인가?

 - 마음속에 특별한 장면이나 기념품이 들어 있는가? (내가 ~~ 할 때)

 - 기억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가? 그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을 아는가?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했는가?

 - 즐겨 떠올리는 기억이 있는가? 아니면 별로 없는가?

 -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충분한 문답을 했다는 생각이 들면 아무 때나 편하게 중단하라.  110-111



연습 : '나는 ~~을 기억한다'

'나는 ~~을 기억한다'는 말로 프리라이팅 훈련을 시작한다. 한 가지 기억에 대해 싫증이 날 때까지 쓴다. 그러다 생각이 막히면 '나는 ~~을 기억한다'는 말을 다시 쓴다. 훈련 시간이 끝날 때까지 이것을 반복한다. 

단순히 '나는 ~~을 기억한다'는 말로 문장을 끝낼 수도 있다. 그런 다음 구체적인 기억으로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이것만 쓸 수도 있다.  111



연습 : 사진 활용하기

과거의 기억이나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 또는 기념품을 꺼내서 훈련하는 동안 앞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그 사진이나 기념품에 대해 생각나는 것을 적어본다. 원한다면 각 대상에 목소리를 주어 대상이 여러분을 향해 말하게 할 수도 있다.


연습 : 기억을 활용해 모으기

앞의 연습에서 쓴 것을 모두 읽어본다. 눈에 띄는 것은 모두 표시한다. 이제 여러분이 표시한 항목 중에서 탐사하고 싶은 주제를 선택하라. 그 주제를 새 페이지의 맨 위에 써본다.

이제 지난 장에서 설명한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활용하여 선택한 주제에 대해 10분간 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기억하는 사람이나 장소, 경허에 대해 세부적인 내요을 모으려고 노력하라. 그때는 하루 중 어느 때였나?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나? 그들은 무엇을 했거나 또는 말했는가?

이 기억훈련을 할 때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기억이 '올바른' 것인지 걱정한다. 수업 중에 한 학생이 이렇게 물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용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과 똑같다고 확신해야 합니까?" 그러자 다른 학생은 또 이렇게 물었다. "저도 계속 그런 생각이 들어요. 같은 경험을 한 다른 사람도 저와 똑같이 기억할까요?" 그러면서 덧붙였다. "이런 생각이 들면 아치 '삭제 버튼'처럼 쓴 것을 지우게 되거든요."

지금 하는 것은 노트에 기억을 모으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하라. 그것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잘 알다시피 기억이라는 것은 주관적이고 불명확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라. 일어난 사실을 있느 그대로 기억하지 못한다고 잡아갈 '기억의 경찰'은 없다. 토론 수업 중 한 여학생이 이렇게 말했다. "기억은 꿈과 같은 특성이 있어요. 팬웨이 파크 경기장에서 본 할렘 글로브트로터(Haelem Glibtrotter, 농구경기와 연극, 코미디를 섞어 관중에게 보여주는 농구단)의 농구경기를 쓰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잘 쓸 수가 없는 거예요. 머릿속에는 야구의 3루 베이스라인에서 휘날리는 분필가루만 또렷하게 보였거든요." 여러분이 언젠가 회고록을 발간하기로 결심했다면 여러분의 소재가 기억에 의존한 경험일 뿐 입증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들에게 분명히 밝힐 수 있을 것이다.  112-113


"마음속에 모든 재료가 잇다고 생각하지 않아요."라고 주장하는 학생들에게 나는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성인이 된 후 20~3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말할 거리를 엄청나게 모으지 않고서는 이 지구상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기억은 글쓰기 재료를 위한 거대한 원천이다.  114


작가의 꿈을 키우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아는 것을 쓰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아는 것은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억은 자기 자신의 삶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또 다른 재료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내가 한층 더 재미있는 것이라고 표현하곤 하는 이 재료는 바로 우리의 전문적인 지식이다.  115



연습 : 무엇을 아는가?

"여러분이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때로 학생들에게 묻는다. "혹시 증권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나요? 또는 알려지지 않은 르네상스 화가에 관해서는 알고 있나요? 백파이프 연주법을 아나요? 악기의 역사에 담겨 있는 많은 이야기라든가 야구 팬으로서 여러분이 응원하는 팀의 수많은 기록을 아나요?"

10분 정도 시간을 들여 자신이 아는 것을 모두 목록으로 작성해보라.(이런 전문 지식 영역은 꼭 학술적인 주제이거나 '중요한' 주제일 필요는 없다. 여러분은 10대를 양육하는 문제에 관해 아는 것이 있는가? 또는 바(bar) 관리 방법을 아는가? 이런 것들을 목록으로 작성해보라.) 프리라이팅 훈련을 할 때처럼 마음을 편히 먹고 생각나는 것을 검열하려고 하지 마라. 생각이 막히면 그냥 '나는 ~~을 안다' 또는 '나는 ~~하는 법을 안다' 하는 식으로 쓰면서 문장을 완성한다. 생각이 나지 않ㅇ르 때 물결 표시를 채울 필요는 없다. 계속 펜을 놀려라.  116



연습 : 전문 지식을 활용해 모으기

목록을 모두 읽어보면서 눈에 띄는 항목에 표시를 한다. 그중 한 가지 주제를 골라서 노트의 새로운 페이지의 맨 위에 쓴다. 이제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기술을 활용하여 지금 선택한 주제에 관해 생각나는 것은 모두 페이지에 모은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어도 뭔가 새로운 것이 생각날 때까지 쉬지 않고 펜을 놀린다. 주제에 대한 지식 사이사이에 빈틈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제2부 '작가의 역량'의 제9장 '오기심'에서는 더 많은 재료를 모으는 데 도움이 되는 주제에 관해 더 잘 알려면 어떤게 필요한지 알아볼 것이다.  117


아는 것을 진지하게 살펴보라. 그것이 엄청난 재료를 제공해 줄 것이다.  119



내부 모으기를 활용하여 재료 모으는 법

 - 자신의 노트를 쭉 훑어본다. 또는 작가의 역량을 발휘해서 주제가 될 만한 목록을 나열해 본다.

 - 목록을 읽어보고 눈에 띄는 항목에 표시를 한다.

 - 표시된 항ㅁ고에서 하나를 골라 그 주제를 새 페이지의 맨 위에 적는다.

 - 초점화된 프리라이팅 기술을 활용하여 지금 이 주제에 관해 생각나는 것을 모두 적는다.

 - 이것은 완성된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여러분은 단순히 재료를 제공하느 ㄴ내용에 관한 새악에 용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어떤 조각을 사용할 것인지는 이후에 결정할 수 있다. 

 - 모으기 훈련을 많이 할수록 내용에 관한 생각은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120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고 주목하는 관찰력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인간 본래의 능력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관찰력을 별로 사용하지 않아 이 기능이 퇴화된 사람들이 많다. 그렇더라도 관찰력은 훈련으로 언제든지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기능이다.  122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주목하기만 하면 된다. 오늘 본 구름의 모습은 무엇을 닮았나? 지하철에서 옆에 앉은 사람은 어떤 옷을 입었는가? 기차의 소음은 얼마나 시끄러운가? 샌드위치는 맛이 어떤가?

관찰은 판단이 아니다.

관찰하는 법을 배우기 위한 첫 단계는 속도를 낮추는 것이다.  123


외부 모으기는 작가가 해야 할 또 다른 필수 훈련이다. 외부 모으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사람들의 관찰력을 단련시켜주고 써야 할 것에 관한 아이디어와 단편적인 대화, 이미지, 세부 묘사 등 글쓰기에 사용할 재료 또한 제공해준다.  125


특수한 관찰력을 발달시키려면, 할 수 있는 한, 완전히 현재의 시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지능이나 기억력 대신 감각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오로지 감각만을 유지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126



연습 : 감각을 사용하라

노트와 펜을 준비하고 20분 정도 앉아 있을 만한 곳을 찾아보라. 원한다면 집안이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카페라든가 공원 벤치, 즐겨 찻는 강변의 어느 한 곳 등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이다. 이국적인 나비나 식물을 채집하기 위해 야생의 자연을 찾아나서는 과학 탐험가처럼 자신이 탐험여행을 한다고 상상할 수도 잇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는 이 탐험은 단순히 노트에 탐험한 것을 기록하기 위해, 감각으로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므로 집으로 표본을 가지고 올 수는 없다.

장소가 정해지면 그곳을 앉아 관찰하라. 사람에게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감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게 둔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감각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나무를 본다면 가까이 다가간 다음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기 위해 손가락으로 나무 껍질을 만져 볼 수 있다. 또 나무 냄새를 맡아보기 위해 나무에 코를 대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가지를 꺾어 맛을 보면 안 될 것이다. 또 이와는 달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면 커피의 맛은 확실히 모을 수 있는 세부적인 감각이 될 것이다. 

'완벽하게' 관찰하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이때의 관찰이 흔히 하는 행동이 아니라면 처음에는 어렵게 생각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이것은 단순한 훈련이라는 것을 염두에 인내를 가지고 자신의 관찰 기능을 단련하면 된다. 훈련을 하면서 발생하는 일의 하나는 세부적인 감각이 제공하는 것을 여러분이 배우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여러분은 세부적인 색깔과 빛, 모양, 틀, 크기, 거리, 동작과 시각적 구조에 대해 눈이 제공하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또 귀는 소리의 강약과 거칠고 부드러움, 속도, 지속 기간, 리듬, 음의 고저처럼 소리의 질을 주목한다. 손가락과 피부는 무엇보다 대상의 따뜻함과 차가움 같은 구조를 알아낸다. 코와 입은 단막과 쓴맛, 열기와 냉기 같은 질적 특성을 알기 위해 흔히 협동작용을 할 때가 많다.

훈련을 하는 동안 통일성 있는 문장과 문단을 구성하려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하게 재료를 모을 뿐이다. 그것도 오직 자신의 외부에서 모으는 것이다.

정확한 어휘를 찾는 일로 고심하지 마라. 어떤 단어가 생각나든 관찰한 것을 적으면 된다. 문장을 쓰려 하지 말고 그저 세부적인 것을 수집하라. 지금 무엇을 관찰하는가? 될 수 있는 한 특별하고 세부적인 관찰을 시도하라. 또 지금 판단을 하는 게 아니라 관찰을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못생긴 게'라든가 '짜증스러운 소리'같은 말을 썼다면 '못샌긴'과 '짜증스러운'이라는 단어가 판단이 개입된 표현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마음속에 그런 판단을 내리게 한 개와 소리의 특성을 찾아보라. 그 개가 긴 몸에 다리와 머리는 작고 침을 입 밖으로 흘리고 있는가? 소리는 끊임없이 날카로운 기계음향을 내고 있는가?

이 훈련을 적어도 20분 가량 했다면(원한다면 그 이상) 그만 멈추고 휴식한다. 

이 외부 모으기 훈련을 하면서 수집한 것은 모두 잠재적으로 언젠가 여러분이 한 편의 글을 쓸 때 필요로 하게 될지 모르는 재료들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모으기 참험을 하면서 수집한 세부 묘사가 언제쯤 한 편의 시나 소설, 수필에 꼭 필요한 재료가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127-129



연습 : 기억 속의 관찰

기억 목록에서 하나를 고른다. 정신을 내부로 집중해서 장소나 사람,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 다음 앞선 훈련에서 한 것처럼 세부적인 감각을 모으기 위해 관찰력을 활용한다.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감각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세부적인 감각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모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모을 때까지 마음속에 그려진 그림과 노트 사이를 계속 왕래한다.  131


'블랑시는 추한 옷을 입었다.' .. 옷에 관해 말한 것이지 옷을 보여준 것은 아니다.

'블랑시는 오렌지색 바탕에 빨강과 노랑 점이 박힌 옷을 입고 있었다.' 또는 '블랑시는 오렌지색 바탕에 빨강과 노랑 점이 박힌 아주 추한 옷을 입고 있었다.'

세부 묘사를 활용해 독자의 마음에 생생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문장(몇몇 이미지나 시 한 줄)을 한두 개 만들어보라.  132


다양한 세부 묘사로 실험해보라. 시각적인 묘사뿐 아니라 촉각이나 청각, 후각의 묘사를 시도해보는 것이다.  133


한 편의 연설이나 글에서 소통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정보, 특수한 사례, 특후한 세부 묘사처럼 특수성이 필요하다. 

특수성을 얻기 위해서는 관찰에만 의존할 필요가 없다. 특수성은 기억에서 나올 수도 잇고 상상력 또는 책읽기, 자신이 수집한 장소에서 나올 수도 있다.  134



연습 : 특수성의 시선

'그것은 아주 좋은 영화였다' 또는 '파티는 즐거웠다'하는 식으로 될 수 있으면 보편적인 서술을 많이 써본다. 적어도 열 개 정도는 써보라. 그리고 자신을 다른 사람이라고 상상하면서 이것을 큰 소리로 읽어본다. 무엇이 눈에 띄는가? 상상 속의 청취자처럼 거의 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심스러울 것이다.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야?' 보편적인 진술은 흔히 공허한 진술이다. 글을 읽어보다도 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보편적인 진술을 하나씩 골라서 무엇이든 적절해 보이는 세부 묘사를 동원해 특수한 진술로 다듬어보라. '그것은 아주 좋은 영화엿다. 두 번의 자동차 추격 장면과 세 차례의 살인사건이 들어갔다.'(이러면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가? 보편적인 진술을 좀더 특수하게 다듬을 때 작가가 말하려는 것을 독자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보편적인 진술은 독자에게 의미하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

큰 소리로 먼저 보편적인 진술을 읽어보고 이어 특수한 진술을 읽어보라. 차이를 느낄 수 있는가?

창조적인 글, 업무적인 글, 학술적인 글을 막론하고 어떤 종류의 글이라 하더라도 특수성에 기초할 필요가 있다. 무심결에 하는 대화에서도, 특히 아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에는 보편적인 진술을 피할 수 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의 의미는 목소리의 음조나 몸짓으로 강조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글쓰기에서 우리가 전달하는 것은 마르이 내용이 전부다. 누군가를 설득하거나 논쟁을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할 때에는 보편적인 진술만 할 수는 없다. 보편적인 말은 독자의 마음에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하고 그냥 사라져버릴 것이다. 예를 들든가 통계를 제시하든가 일화를 들러줌으로써 자신이 의미하는 것을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 무엇이든 특수한 것을 시도하라.  135-136



연습 : 세부적인 감각으로 피르라이팅하기

자신의 주변세계 또는 기억에서 세부적인 감각을 모은다. 아니면 이미 모아 놓은 것을 적은 노트를 훑어본다.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표시를 하고 현재 시점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추가한다. 이어 프리라이팅을 하면서-초점을 맞춘것이든 '초점을 맞추지 않은 것'이든 원하는 대로- 이 세부 묘사를 가지고 창조적 기능을 발휘하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한다. 그리고 기억이든 상상의 세계든 아니면 내면의 성찰이든 원하는 것이 어떤 방향이든 한 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이 세부 묘사를 스프링보드처럼 활용하라.  139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관찰훈련에 몰두한다면 그 길은 관찰이 가능한 곳으로 여러분을 잘 이끌어줄 것이며, 글쓰기와 일상생활 두 가지에서 모두 풍요로워지게 해줄 것이다.  140



관찰하는 법 : 기초훈련

 - 생활의 속도를 줄여라. 마음을 편하게 먹고 심호흡을 한다. 숨을 쉴 때마다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는 정신적인 잡담을 잊어버려라.

 - 이제 머릿속의 생각을 벗어나 관심을 외부세계로 돌린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자신의 주변세계로 관심을 돌리는 것이다.

 - 한 번에 한 가지 감각을 사용하면서 관찰을 위해 선택한 것에 대하여 어던 세부 내용을 모을 수 있는지 확인한다.

 - 관찰을 할 때 판단을 내리지 말고 색깔이나 소리 같은 세부적인 감각을 주목한다.

 - 세부적인 감각에 어울리는 정확한 어휘를 고르려고 애쓰지 마라. 관찰 행위에만 정신을 집중하라. 어휘를 찾는 대신 더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라. 

 - 원한다면 이런 세부적인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노트에 모은다.  141


사람들은 상상력이 단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거나 환상을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상상력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니다. 상상력은 감각세계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마음속에 그림으로 그려주는 정신적인 기능이다.  143


많은 사람들은 상상력을 활용하고 단련하는 데 시간을 별로 들이지 않는다. 

외부 대상에 관심을 돌리지 않으면 우리의 두뇌에는 감각적인 이미지가 새겨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상상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이유는 일상의 여러 가지 활동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일을 하면서 상상력을 단련하거나 발전시킬 기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145-146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은 자신의 명저 <동물과의 대화(Animals in Transation)>에서 1960년대 미국 정부의 행정 계획을 언급하면서 가축을 공격하는 치명적인 벌레를 효과적으로 퇴치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어 그랜딘은 오늘날에는 이런 행정이 매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요즘 정부 당국에서 근무하는 관리들이 대개 대학을 나오기는 했지만, 육류를 포장하는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혼자 전체를 관리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리들은 자신의 감각으로 동물을 아는 것이 아니라 동물에 관한 추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랜딘은 말한다. 그랜딘은 한 술 더 떠서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상황에 빠져 '추상화'되었다는 진단까지 내린다. 여기서 그랜딘이 말하는 의미는 사람들 대부분이 현실세계를 직접 알기보다 주변세계에 관한 자신의 아이디어에 매몰되었다는 말이다.  147


상상력을 활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는 대부분 교묘하게 짜인 가공된 이미지로 끊임없이 우리를 폭격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광고판이나 잡지에 쏟아붓는 각종 광고와 빠르게 움직이는 텔레비전과 영화의 이미지를 보면 그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149


상상력을 단련시키려면 먼저 상상력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므로 나는 가능하면 대중매체 이미지의 무차별적인 습격에서 여러분 자신을 보호하라고 권하고 싶다. 텔레지번을 보는 습관을 버려라. 영화감상도 제한해야 한다. 사교계 동정을 다루는 잡지도 구독을 아예 끊거나 줄여라. 인터넷 브라우저의 이미지도 차단하라. 

대중매체 이미지로부터 여러분의 정신을 해방시키면 자신의 상상력을 갈고닦을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151



연습 : 시각적인 상상력 활용하기

눈을 감는다. 머릿속에 백지 한 장을 떠올린다. 이제 검은 줄로 그 종이에 네모 칸을 그려보라. 정확하게 네모를 그리려고 애쓸 것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네모 안을 빨강으로 채운다. 잘되는가? 이제 색깔을 초록으로 바꿔보라. 이어 노랑으로 바꾼다. 

노랑을 유지한 상태로 네모를 원으로 바꾼다. 원의 색깔을 파랑으로 바꿔보라. 이어 어떤 형태든 색깔을 파랑과 노랑으로 채운다. 

다음에는 그 상태에서 다시 네모로 형태를 바꿔보라. 그런 다음 다시 네모 칸을 비우고 백지으 이미지를 지운다. 그리고 눈을 떠보라.

어떻게 되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이 연습을 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상상력을 활용한 것이며 눈앞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특정 색깔을 칠하는 것이 더 수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상관없다. 이 연습을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된다. 또 이 연습이 어려워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 연습을 규칙적으로 자주 하다보면 여러분의 상상력은 어렵지 않게 되살아날 것이다.  154



연습 : 다른 감각 사용하기

우리가 이미지를 시각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는 해도 사실 어떤 감각이든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한다. 훌륭한 요리사는 음식 성분의 맛을 상상할 수 있으며, 음악가는 소리를 상상하기도 한다. 여러분도 훈련을 거쳐 이런 특면의 상상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 소리

고요한 상태를 상상해본다. 이 상태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를 상상해보라. 그리고 이 소리를 개가 짖는 소리로 바꿔본다. 다시 이 소리를 지우고 흐르는 물소리로 바꾼다. 물소리를 누군가 노래 부르는 소리로 바꿔보라. 그리고 다시 고요한 상태로 돌아온다. 눈을 떠보라. 이 연습은 어떤가?

- 촉감

이제 꽃잎을 만진다고 상상해보라. 손가락 끝으로 꽃잎을 느껴본다. 그 느낌을 주목하라. 이제 그 이미지를 지우고 두꺼운 털실로 만든 뭔가를 만지는 이미지로 바꾼다.그리고 그 늒미을 지우고 이번에는 얼음조각처럼 차가운 것을 만지는 이미지로 들어가보라. 얼음이 녹으면 녹은 물을 덥혀보라. 그리고 상상으로 그 물이 피부에 닿는 감각을 느껴본다. 이 느낌이 어떤지 주목해본다. 그 이미지를 지우고 나무로 만든 물건을 만진다고 상상해보라. 다시 이미지를 지우고 눈을 뜬다. 어떻게 되었는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냄새 

눈을 감는다. 비누 향기를 상상해본다. 이 이미지를 나무가 타는 냄새로 바꾸고 이어 다시 자동차 배기가스로 바꿔본다. 이제 여러분이 좋아하는 꽃 향기로 냄새를 바꾸고 다시 좋아하는 음식 냄새로 바꿔본다. 이 연습을 하면서 무엇을 주목했는가?

- 맛

스크램블드에그의 맛(구조를 포함해서)을 상상해보라. 아몬드나 초콜릿, 커피와 차, 무엇이든 여러분이 좋아하는 음식을 상상해보라. 어떠면 특정 감각에서 상상력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약한 감각을 강화할 수도 있다. 관찰하는 동안-또는 실생활에서-여러분의 감각이 말하는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사물을 바라보면서 똑바로 보는 연습을 하라. 좀더 가까이 보라. 그런 다음 눈을 감고 상상 속에서 재창조할 수 있는 것을 주목하라. 마음속 아미지에 만족할 때까지 관찰과 상상을 계속 왕복한다. 다른 감각도 이렇게 연습할 수 있다.  155-156



연습 : 말 없이 상상하라

상상력으 활용하는 연습을 하면서 말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사실 상상력을 훈련할 때에는 이미지에 관한 말이 아니라 이미지 자체를 만드는데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연습을 하다보면 나중에 가서 정신적인 이미지를 말로 바꾸는 데 시간을 들이고 싶을 수도 잇다. 하지만 지금은 상상력을 활요하고 강화하는 데만 정신을 집중하라.

원할 때에는 언제든지 상상력을 활용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그저 편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상상력으로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된다. 그림은 자신이 원하는 어떤 방향에서도 찾아올 수 있다. 개읹거인 경험이라든가 곤찰에서 그림을 그릴 수도 잇고 책읽기에서도 그릴 수 있다. 자신이 훈련 중임을 명심하라. 마음속에 원하지 않는 이미지가 그려지면 단순하게 털어버리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이웃집 고양이처럼 간단한 이미지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고 여러 가지 감각으로 그 그림을 참험해보라. 그림에 관한 말을 찾으려고 하지 마라. 단지 상상력으로 점점 더 이미질르 자세하게 그리려고 해보라. 햇빛이 고양이의 털 하나하나를 비추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는가? 털의 빛깔은 제각기 다른가? 고양이를 쓰다듬는다고 상상해보라. 느낌이 어떤가? 고양이가 기분이 좋아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원한다면 간단한 그림으로 잠시 연습을 해본 다음 하나를 골라서 상상력으로 좀더 자세한 그림을 그려보든가 아니면 다른 대상으로 바꾸든가 아니면 배경그림으로 그려보라. 그리고 단 한 번에 상사으로 얼마나 자세하게 그릴 수 있는지 확인해보라. 일단 정적인 이미지로 마음이 편안했다면 이제 마음속의 그림이 어떻게든 움직이는 상상을 해본다.(고양이가 개에게 쫓기는 상상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식으로 상상력 훈련을 많이 할수록 상상력은 더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원할 때마다 언제라도 이미지를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굳이 이미지에 관한 말을 찾아내려고 애쓰지 않을 때 상상력 훈련이 주는 이점이 또 있다. 이 훈련은 정신적인 안정과 긴장 해소 상태를 읶르어내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157-158



연습 : 모으기와 그림 그리기

상상력의 활용으로 일단 마음이 안정되었다면 상상력이 제공하는 것을 노트에 적으면서 모으기 훈련을 추가할 수 있다. 자신이 관찰할 것 또는 기억에서 모은 재료를 되돌아보면서 상상력 훈련에 사용하고 싶은 것을 고른다. 지금은 간단한 것이 좋다. 경험 전체가 아니라 간단한 장소나 사람, 짦은 순간이면 된다. 

이제 상상력을 활용해서 자신을 그 장소나 사람, 순간에 투입한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하여 상상 속에서 그 사람이나 장소, 순간을 재창조한다. 그리고 밖에서 외부 모으기를 할 때처럼 특수한 세부 내용의 중요성을 기억하면서 세부적인 감각을 가능한 한 만힝 적어본다. 그리고 상사에서 본 것과 기록한 것을 계속 왕복한다. 어희 사용에 집중하기보다는 좀더 명확한 이미지를 제공할 수 있도록 상상력을 홛대하는 데 정신을 집중하라.

지금 여기서 모은 것은 관찰훈련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세부적인 감각이다. 하지만 주변 세계에서 모으는 대신 상상력으로 모은 것이다(기억력이나 관찰력과 협동으로)

이제 모은 것을 훑어보고 상상 속의 그림을 노트에 말로 표현하려 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세부적인 것들을 몇 개 골라본다. 필요한 언어를 찾아낼 수 없을것 같으면 정확한 말을 골르려고 애쓰기보다 마음속 그림을 좀더 명확하게 그릴 수 있는지 확인해보라.

어떤가? 여러분이 연습한 과정을 주목해보라. 처음에는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고, 이어 가능한 많은 세붖거인 내용을 모은 다음, 그것들 중에서 자신의 것을 표현하기 위해 하나를 선택했다. 아마 이 훈련을 반복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이번에는 움직이는 사람(동물이나 사물)을 그려본다. 세부적인 감각을 모은 다음 그중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라 그림을 말로 표현해본다.  158-159



연습 : 그림을 위한 독서

사람들은 학교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책을 읽으라고 배웠고, 또 읽은 것을 분석하는 것도 배웠다. 하지만 상상력을 활용하는 것은 배우지 못했다. 러시아 출신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코넬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할 때 학자로서가 아니라 작가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래서 기말고사를 치를 때면 "<안나 카레리나>에 나오는 기차의 좌석은 무슨 색깔이었는가?"와 같은 질문을 했다. 나보코프가 원한 것은 학생들이 그들 자신의 상상력으로 작가의 글에 참여하는 것이엇다. 현역 작가로서 나보코프는 학생들이 단순한 분석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책을 읽을 때 제대로 책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날 이렇게 감성적인 방식으로 문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범죄나 다름없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여러분 스스로 이런 방식으로 문학을 이해하는 것이 쉽다는 점이다. 아마 여러분은 벌써 대부분 이렇게 책읽기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훈련이 여기에 이삳. 독서를 할 때에는 책에서 나온 말이 상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하라. 그리고 그 글이 마음속에서 감각적인 그림을 그리는지 확인하라. 생생한 그림을 그리는 구절을 찾으면 어떻게 작가가 그런 글을 쓰게 되었는지 파악해본다. 작가는 어떤 종류의 세부적인 감각을 사용했는가? 어떤 순서로 사용했는가? 아마 여러분은 그 구절을 모방하는 글을 쓰고 싶을지도 모른다.(원한다면 소설이나 시, 연극을 테이프나 CD로 들으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단련할 수 있다.)  161-162



상상하는 법 : 기초훈련 

1. 몸의 긴장을 푼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심호흡을 하라. 숨을 쉬면서 마음의 긴장을 완전히 풀고 다른 생각을 떨쳐버린다. 

2. 작가의 능력을 발휘해서 노트에 적은 재료를 읽어본다. 상상하고 싶은 것을 목록으로 작성하라. 한 사람이나 한 장소, 한 가지 사물처럼 간단하게 시작하라. 훗날 전체적인 장면을 상상하는 연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3. 목록을 검토하면서 눈에 띄는 항목에 표시를 하라. 하나를 골라서 새로운 페이지의 맨 위에 써본다.

4. 이제 눈을 감고 선택한 주제를 상상하라. 필요한 감각을 모두 동원해서 그 주제가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한다. 가능하면 그 이미지를 자세하게 만들어본다. 그리고 원한다면 그 그림을 다듬거나 자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다른 재료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5. 정적인 이미지로 시작하라. - 예를들어 한 사람의 모습이 어떤지와 같은 - 이어 원한다면 그 이미지에 동작을 입혀본다. 그 사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6. 원한다면 자신에게 떠오른 상상르 자세하게 적어본다. 생각이 막히면 적당한 말을 찾아내려고 고심하지 마라. 대신 눈을 감고 그 그림을 다시 떠올리면 된다.  163



연습 : 만들어내기

1. 가고 싶은 장소를 상상해본다. 실제로 가본 곳이 아니라 상상력으로 꾸며낸 장소여야 한다. 그곳의 감각적인 세부 내용을 상상하기 위해 협동가능을 활용한다. 상상한 것을 적어보라. 상상의 내용과 토느 사이를 계속 왕복하면서 마음에 드는 세부 내용을 골라 노트에 그 장소를 묘사한다. 이것은 상상력과 창조적 기능이 협동작용을 하는 하나의 예다. 저장된 이미지를 불러 모은 다음 새로운 방식으로 그것들을 조합한다. 어쩌면 나뭇잎이 자줏빛으로 조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상상력이 나무와 나뭇잎, 자주색에 익숙해 있지 않다면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2. 개를 상상해보라. 뼈다귀를 먹는 개를 상상한다. 그리고 거리를 건너가는 상상을 한다. 거리의 모습은 어떤가? 거기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가? 이제 개가 달리는 상상을 한다. 개가 거리를 따라 내려가며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가더니 차를 뛰어넘는다고 상상해보라. 이제는 버스도 뛰어넘는다. 집도 뛰어넘고 10층짜리 건물도 뛰어넘는다. 

이렇게 상상하는 것이 어려운가? 대부분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의 상상력과 창조력은 아마 수월하게 협동하여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상상력과 창조력이 결합한 힘은 먼저 우리 마음속에서 발휘도리 수 있고, 자신이 원한다면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던 것을 노트로 옮길 수도 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나 동물, 사물과 함께 이 연습을 다시 해보고 이어서 거기에 원하는 동작을 입혀보라. 마음속에 한 사람의 입술이 미소로 움직이는 동작을 볼 수 있는가? 강도 사건의 현장에서 도망치는 차 소리를 들을 수 있는가?

3. 현실 속에 잇는 것이든 만들어낸 것이든 사람이나 장소, 사물 주에서 하나를 고른다. 상상력을 활용해서 그 대상을 그려보고 세부적인 내용을 모은다. 이어 상상력을 동원해 자신을 그 사람(또는 장소나 사물)의 내부로 집어넣고 말하게 한다. 그 대상은 주변세계에서 무엇을 주목하는가? 그 대상은 무엇을 보고 들으며 무엇을 만지는가? 그 대상은 이밖에 무슨 할 말이 있는가?

4. 대화 중인 두 사람을 상상한다. 이들이 주고받는 말을 듣는 상상을 하면서 청중의 이미지를 만드는 연습을 하라. 원한다면 그들의 말을 적어볼 수도 있다.

상상력과 창조력이 협동하는 이 훈련이 재미있다면 자기 자신만의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보라.  165-166


시인 A. E. 하우스만은 시를 위한 재료를 마음에 채운 뒤 나무 밑으로 가서 낮잠을 자곤 했다. 그리고 나무 밑에서 잠을 깬 뒤에 보면 마음속에 시가 완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존 업다이크는 글을 쓰던 서재를 자주 비운 채 정원으로 나가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그때 그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을 보고 가족들이 집안일을 부탁하자. 업다이크는 "지금은 일하는 중이라 안 돼"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소설가 루이스 브롬필드는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는 중에 잠재의식을 단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앗따. 브롬필드는 "아침에 잠을 깨보면 오랫동안 나를 괴롭히던 기법이나 구성, 등장인물의 문제가 잠을 자는 동안에 완벽하게 해결된 경우가 아주 많았다."라고 말햇다. 이런 작가들은 창조적 기능의 활동적 리듬과 수동적 리듬을 활용하는 법을 알았으며, 의식과 무의식 두 가지를 활용하는 법도 알았다고 볼 수 있다. 

잠재의식이 여러분에게 선물을 안겨주기를 바란다면 먼저 잠재의식으로 뭔가를 불어넣어야 한다. 잠재의식은 원활한 활동을 위해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유력한 방법의 하나는 작가 능력의 일부나 전부를 활용해서 재료를 모으는 일이다.  171-172


연습 : 관찰에 관해 곰곰이 생각하기

밖으로 나가 관찰훈련을 한 다음 관찰한 것에 대해 여러분의 잠재의식이 숙고해볼 시간을 준다. 또는 기억훈련이나 상상룬련을 한 다음 잠시 쉬었다가 무엇이 떠오르는지 살펴보라. 잠재의식이 여러분에게 제공하는 것을 적는다.



연습 : 수용 상태로 들어가기

주제를 하나 고른다. 주제에 대한 재료를 모으기 위해 초점을 맞춘 프리라이팅을 활용해 적어도 10분간 쓴다. (어느 것이든 여러분이 선택한 작가의 능력을 활용한다) 이렇게 하면 여러분의 잠재의식은 여러분이 이 주제에 대한 재료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다음 자리에 눕거나 산책을 나가거나 집안일을 하면서 마음을 편안하게 먹고 정신이 수용 상태에 들도록 한다. 잠재 읫기이 뭔가 새로운 재료나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그것을 적는다.



연습 : 꾸물대는 습관을 활용하라

여러분이 글쓰기에 대해 꾸물대는 성향이라면 이렇게 하라. 재료 모으기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이 고른 주제에 대해 프리라이팅을 조금 해본다. 그 주제를 고르게 한 자신의 경험에 관해 쓰고, 그 주제에 관해 의문 나는 것을 쓰고, 어떻게 그 주제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써본다. 펜을 계속 놀리기만 한다면 무엇을 쓰든 상관없다. 이렇게 '너절한' 글쓰기로 잠재의식을 위한 준비를 하면서 홍차를 만들거나 집 앞 공원에 다녀와도 좋다. 꾸물대면서 무엇을 하든 상관없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여러분의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번쩍 하고 떠오르는 것을 알고는 놀라운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174



궁금한 일이 있을 때, 답을 알 수 없어 질문을 할 때, 여러분은 작가의 또 다른 능력인 호기심을 훈련하는 거나 마찬가디다. 

호기심은 욕구에서 나온다.  178



연습 : 호기심을 깨워라 

몇 분간 시간을 들여 여러분이 관심을 갖거나 호기심을 느끼는 모든 것을 목록으로 작성해본다. 계속 펜을 놀리다. 여러분은 무엇을 알고 싶은가? 또는 무엇을 더 알고 싶은가? 작성을 마치면 목록을 쭉 훑어보고 당장 눈에 띄는 항목들을 고른다. 이 가운데 어떤 항목이라도 쓰고 싶은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억나는 것이나 관찰한 것에 호기심을 품으면 잠재적인 주제를 찾을 수 있고, 이미 쓰기 시작한 주제에 대해서도 더 많은 재료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관찰 참험' 주엥 거리예술가가 횃불로 곡예를 부리는 장면을 목격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장면을 보며넛 여러분의 호기심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저렇게 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 '어떻게 저런 묘기를 부리지?' , '무엇 때문에 저런 위험한 곡예를 하고 싶어할까?' 

그러면 그것들을 적어보는 것이다 아마 이런 의문이 여러분을 소설이나 시, 기사 거리로 이끌어줄지도 모른다.  180


자신의 호기심을 믿는 법을 배워라. 

사물에 대해 의문을 품고 그 궁금증을 써보라.  181



연습 : 내부 모으기로 자신의 주제를 탐험하라

더 알고 싶은 주제가 생각날 때 첫 번째 할 일은 무엇일까? 아마 여러분은 그것에 대한 재료를 찾아 탐험을 싲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첫걸음의 방향을 바꿔, 그 주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밝히는 일이 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이것을 연습하려면 자신의 관심 사항을 적은 목록에서 하나를 고른다. 그런 다음 적어도 10분간 이 주제에 대해 내부 모으기를 하라(초점화된 프리라이팅 기술을 활용). 예를 들면 그 주제에 대해 여러분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주제에 대해 어떤 경험이 있는가? 그 주제에 관한 생각이나 의견은 무엇인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그 주제에 대한 자신의 의문은 무엇인가? 무엇을 알고 싶은가? 등등.

기억이나 관찰력, 상상력을 활용해 자신이 수집한 재료에 대해 호기심을 발동하게 할 수 있다. 기억으로 이 훈련을 하려면, 기억을 활용해 초점화된 프리라이틴을 한 것 중 하나를 읽는다. 오직 자신이 쓴 것에 대해서만 호기심을 돌린다. 마음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모두 적어보라. 자신이 관찰한 것 또는 상상력에서 나온 재료에 호기심을 돌리고 싶을 때에도 똑같이 한다. 흥미를 느끼는 주제에 대해 처음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한 뒤에는 이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일반적으로 여러분의 주제는 어떻게든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이때는 호기심을 활용하는 것이 발전을 위한 유력한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재료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다 보면 그 다음에느 ㄴ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 지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단 재료에 대한 의문이 생긴 다움에는 그 의문의 일부 또는 전부에 대해 답을 할 필요가 있다.

여러분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작가가 자신의 할머니에 대한 재료를 모으고 '왜 할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셨을까?'하는 의문을 품었다면, 이 작가는 자신의 경험이나 회상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작가는 그 재료를 활용해서 소설의 인물을 창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인물 설정에 도움이 되는 대답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물론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는 외부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182-183


연구 조사는 개개인의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학술적 훈련 과정이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비극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알고 싶은 것을 조사하는 일이야말로 인생의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185


연구조사는 외부 모으기의 다른 이름으로서 관찰력보다는 호기심에 이끌릴 때가 많다. 그리고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고 싶기 때문에 무언가를 찾고 있다면 이 조사는 짜릿한 모험이 될 것이다.  186



연습 : 외부 모으기로 자신으 주제를 탐험하라

좀더 알고 싶은 주제를 골라서 의문 나는 것을 모은다. 이어서 의문 사항들을 하나하나 검토하면서 어떻게 답을 구할지 생각해 본다. 여러분의 의문은 백과 사전이나 온라인 검색에서 해당 주제를 찾으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탐험이 필요한 좀더 폭넓은 의문인가? 가능한 탐사 자원을 생각해보라. 필요한 답을 어디서 찾고 싶은가? 아마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답을 구하기 시작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할머니에 관한 정보나 생각이 어머니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어머니를 통해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의문 나는 것을 미리 적은 다음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자 할 때는 미리 인터뷰 연습을 하고 싶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생활에 관한 것이든 아니면 정보를 공유하거나 전문적인 의견을 나누는 것이든 자신에 관해 말하기를 즐긴다. 대다수의 논픽션 책은 적어도 얼마간은 인터뷰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 소설을 쓰는 사람도 인터뷰를 할 수 있다. 내가 아는 어떠 ㄴ소설가는 자신이 쓰는 작품의 주인공을 수의사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소설가는 수의사에 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인물 설정에 필요한 재료를 모으기 위해 어떤 수의사를 찾아가 그와 인터뷰를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존 그리샴은 재료 모으는 일은 질색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역시 변호사와 인터뷰를 해서 작품을 위한 재료를 수집하기도 했다.  187



연습 : 지식을 넓히기 위해 인터뷰를 활용하라

이 훈련을 하려면 파트너가 필요하다. 인터뷰에서 여러분은 질문자 역할을 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답변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한 차례 연습을 하고 나면 역할을 바꿔서 한다. 답변하게 될 사람은 자신이 아는 몇몇 주제를 골라서 파트너에게 이 주제 목록을 보여준다. 답변자는 원하는 목록에서 어떤 주제를 배울지 결정하고 '나는 이 주제에 대해 무엇을 알고 싶은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런 다음, 잠시 인터뷰의 질문 내용을 적는다. 이 질문을 길잡이 삼아, 파트너에게 다시 인터뷰를 하면서 그 질문에 대한 파트너의 대답을 적고 또 관심 분야에 관해 파트너가 말하는 것도 적는다.

인터뷰는 단순히 정중한 대화가 아니다. 그것은 호기심을 활용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능숙하게 진행하는 살마은 분명한 '예' '아니오'라는 대답을 포함해서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답변자가 자세히 대답하도록 유도하려고 애쓴다. 또 인터뷰 진행자는 가능한 한 많은 재료를 모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인터뷰 진행자라면 답변자의 대답을 들으면서 계속 호기심이 발동할 것이다. 답변자가 새롭게 의문을 주는 말을 할 때에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질문해야 한다. 물로 ㄴ상대가 명확하게 밝히길 꺼리는 화제로 답변자를 몰아붙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여러분은 계속 관심을 유지하면서 인터뷰 도중이나 다른 시간에 더 많은 질문을 해서 관심을 보여주면 된다.

이 훈련을 더 하고 싶다면 여러분이 모은 재료를 쭉 읽어보고 새로 의문이 드는 것을 적는다.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더 많은 질문을 하고 더 많은 대답을 구하라. 이 훈련이 마음에 든다면 또 다른 인터뷰 상대를 찾고 싶을 것이다.  188-189


학습여행의 첫 단계는 혼란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어떤 책을 읽어야하지?' 또는 '자료가 너무 많아!'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발견해나가는 과정이 즐겁다면(결국 이것이 진정한 학습의 전부다) 처음의 혼란을 견디고 학습여행을 계속할 것을 권한다. 

학습여행 중에는 도보여행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에 한 발짝씩만 뗄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자신만의 독립된 학습여행을 한다면 여러분은 다음에 무엇을 배울 필요가 있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학습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다면 처음에 여러분은 선택 방향이 너무도 다양한 탓에 움츠러들 수도 있다. 이때 글쓰기가 여러 갈래 중에 선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며 자신만의 길을 밟도록 해줄 것이다.  192-193


지금은 노트를 컴퓨터 파일로 보관한다. 따라서 노트에 스크랩할 때마다 타자를 치는 시간을 들인다.

인용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구절을 한 자 한 자 그대로 따올 때는 옮겨온 구절에 인용 부호를 찍어야 한다. 자신의 글에 해당 정보를 집어 넣을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이든 그 구절이 들어간 해당 저서나 기사의 페이지를 밝혀야 한다.  194



연습 : 글쓰기로 배우기

글쓰기는 학습에 훨씬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해보라. 자신으 주제에 대해 일정한 정보를 모았다면 방금 배운 것을 프리라이팅 한다. 프리라이팅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이미 주목한 정보는 어떤 것이든 반복하고 요약하면서 학습한 모든 것을 적는다. 그런 다음 배운 것을 음미한다. 방금 배운것에 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적어라.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학습한 다른 재료와 더불어 이 정보는 자신으 주제에 꼭 들어맞는가? 학습한 다른 재료와 더불어 이 정보는 자신의 주제에 꼭 들어맞는가? 여러분이 품은 새로운 의문은 무엇인가? 이런 식의 성찰은 그 원자료에서 진정 무엇을 얻엇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 단순하게 인용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재료를 하나로 묶는 데도 도움을 준다. 또 단순하게 인용할 수 없게 되어 있는 재료를 하나로 묶는 데도 도움을 준다. 그리고 다음 단계는 어디로 향할 필요가 있는지, 자신은 어느 방향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195



연습 : 잠재의식으로 불러 모으기

일단 일정한 외부 모으기를 하고 이에 대해 (원할 경우) 일정한 성찰을 했다면 이 재료에 대해 작업을 하도록 잠재의식에 시간을 부여하라. 사실 여러분은 자신이 수집한 것에 대한 탐사를 시작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잠시 쉬면서 잠재의식이 수집한 것에 대해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 다음 그 주제에 대해 초점화된 프리라이팅을 한다. 아마 여러분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알고 깜짝 놀랄 것이다.  196



연습 : 상상력으로 불러 모으기

여러분은 또 이 학습과정에 상상력을 불러들이고 싶을지 모른다. 처음에는 학습 도구로서의 상상력을 활용하는 것이 어쩌면 낯선 느낌을 줄 것이다. 상상력은 지적 능력을 선호하는 교육 풍토에서 추방되어 왔다. 지적 능력은 인간의 유용한 일종의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제에 관해 일정한 조사를 마친 뒤에는 자신이 학습한 것에 대해 단순히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길을 찾을 수 있는지 확인하라. 예를 들어 남극 대륙에 관해 읽은 것을 상상해보는 것이다. 여러분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 남극이 어떤 곳인지 상상할 수 있는가? 또 섀클턴이나 아문센처럼 초기의 남극 탐험가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 상상할 수 있는가? 아니면 과학 탐사를 위해 펭귄에게 표식을 다는 일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있는가? 그 느낌을 적을 때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추위를 느끼게 해줄 묘사를 해보라. 아니면 탐험가에 관한 이야기를 쓰든가 펭귄의 표식을 바착하는 느낌이 어떤지 써보라.

이런 식으로 상상력과 호기심을 결합하면 자신의 주제를 학습하는 데 학술적인 접근보다 훨씬 더 재미있고 다채로운 결과를 안겨줄 것이다.  197



연습 : 자신이 배운 것을 공유하라

자신만의 주제를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은 다른 사람들-친구나 친구의 자녀들-에게 자신이 배운 것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에게 뭔가를 설명해야 할 때는 자기 혼자 힘으로 그것을 명확하게 들려줘야 한다.(아인슈타인은 '당신이 아는 것을 다섯 살배기 아이에게 설명할 수 없다면 실제로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아마 자신이 아는 것을 가르칠 기회도 생길 것이다. 한 가지 주제를 배울 때 가르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배우는 것이 모험적일 때는 배우는 내용에 흥이 나기 마련이다. 이럴 때는 자신으 배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어진다. 이런 기회를 모색하라. 어쩌면 초등학교나 교회, 노숙자 합숙소에서 자신으 주제에 대해 자발적으로 말하고 싶어질지 모른다.

또한 글쓰기를 활용해 자신이 모은 자료뿐 아니라 자신의 학습과정에 대해서도 성찰할 수 있다. 여러분의 학습여행은 얼마나 진행되었는가? 다음 단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읽고 싶은 책이나 탐험하고 싶은 주제의 특정 부분에 대해 간단한 목록을 만들고 싶은가? 이렇게 성찰할 시간을 가질 때 진정으로 자신만의 배움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학습 계획을 짤 수 있고 원할 때는 이 과정을 아무 때나 바꿀 수 있다.  198



연구조사를 위한 조언

- 연구조사는 낯선 영역으로 들어가는 여행이다. 출발할 때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생각이다. 자신의 주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것과 밝혀내고 싶은 것을 분명히 하려면 내부 모으기를 활용하라.

- 여행 계획을 미리 자세하게 짜는 사람이라면 이 조사여행을 위해서도 같은 계획을 짜고 싶을 것이다. 이 여행이 아니라 자신만의 여해을 떠나고 싶다면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 길을 찾아도 좋다.

- 이 여행에서 어디로 향할 것인지, 도움이 되는 책이나 웹사이트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이렇게 하면 이미 조사한 자료를 다시 찾는 시간 낭비를 막아준다.

- 이 탐사여행이 일정한 장소를 방문하거나 사람들과 대화하는 형태가 아니라면 여러분은 기록된 원자료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때 그 정보가 믿을 만한 것인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저자의 자격증이나 전문적인 식견을 확인하라. 그 책에서 저자가 이용한 자료의 출초를 확인하라. 연구조사를 많이 할수록 해당 저자가 제대로 알고 하는 말인지 더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다. 

- 자료의 신뢰성을 확인하는 또 다른 방법은 동네 도서관의 유능한 사서와 친해지는 것이다.  199


학습여행은 본질상 언제나 능동적인 학습이다.

능동적인 학습자가 되면 자신의 글쓰기에 변화를 줄 수 있고 개인적인 경험의 한계를 뛰어넘을 정도로 시야가 넓어지기도 한다.  201


열정적인 학습에 참여할 때는 - 사랑할 때의 정열과 마찬가지로 - 자신이 진정 살아 있다는 느낌으로 진한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자신과 타인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을 스스로를 느낌으로써 흥분을 맛볼 수 있다. 사랑의 감정은 지속적이지 않다. 반면 작가로서의 여러분은 평생 열정적인 학습자가 될 수 있다.  202


홈스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지만 자신으 임무에 도움이 될 만한 분야를 스스로 공부했다. 화학실험을 하는 가 하면 발자국에 관한 공부를 열심히 했다. 파이프와 시가, 파이프용 담배에 대해서는 과학적인 연구를 했다. 그결과 홈스는 사건 현장에 남겨진 재의 의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홈스는 사람과 사물에 관한 정보를 냉혹할 정도로 수집했으며 그의 거실에는 개인의 백과사전이나 다름없는 자료의 보고(寶庫 보배 보. 창고 고)가 있었다.  204



연습 : 셜록 홈스가 되라-자신의 모든 능력을 활용하라

일정한 장소에서 관찰하는 것으로 훈련을 시작한다.(관찰 내용을 노트에 적는다) 이어 노트를 보며 생각하라. 여러분의 관찰은 관찰한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가?(예를 들어 거리를 빠르게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햇다면 여러분은 그 사람이 몹시 급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을 관찰했든 이에 대해 말해줄 정보를 기억이나 전문 지식에서 찾아보라. 또 계속 호기심을 발동하게 한다. 관찰한 것에 대해 마음에 어떤 의문들이 드는가? 그 의문들에 대한 답을 어떻게 할 것인가?(아마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앗다면 아직도 금연을 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집에 돌아와 인터넷을 뒤질 수도 있다.) 또 관찰한 것에 대해 상상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 여러분의 상상력은 수집한 세부 재료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일단 이런 식으로 여러 기능을 결합해 본 뒤에 잠시 잠재의식이 활동하게 하라. 편한 마음으로 쉬면서 여러분이 제공한 모든 재료를 수용할 기회를 잠재의식에 주는 것이다. 그런 다음 노트로 눈을 돌려 뭔가를 적으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확인하라. 글쓰기는 어떤 방향이라도 상관없다. 그리고 탐험하고 싶은 특별한 방향에 관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계속 그 방향의 글쓰기를 한다. 여기서의 목표는 완성된 글쓰기 재료를 찾는 것이 아니라-이런 생각이 들어도-여러분이 지닌 여러 개의 작가 능력을 결합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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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마음으로 못 갈 곳이 없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은 갈 수 있는 곳만 갑니다. 우리의 생각이라는 게 그래요. 마음은 생각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합니다.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거의 전적으로 마음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이란 이렇듯 한정되고 갇혀 있습니다. 한번 만들어진 관념은 자동적으로 자기방어 메커니즘으로 작용합니다. 되짚어 보는 걸 싫어합니다. 기분 나빠해요. 따지고 보면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지만, 우리는 흔히 스스로가 만든 관념의 장막 속으로 들어가 안주하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우선은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9


지금까지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믿었던 관념들을 한번쯤 되짚어보자는 것이 나의 의도였습니다.  10



나는 여러분이 틀레 박힌 교양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에너지가 충만한 원시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양은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맹점을 안고 있습니다. 문명은 자칫 나른해지기 쉬운 법이거든요.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일탈을 꿈꾸는 괴짜가 되기를 원합니다.

일상은 일탈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6


나는 가장 '나'다울 때 세계적인 인물이 됩니다.  17


우연은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연은 묻고 또 묻는 사람에게 그야말로 우연히 일어납니다. 준비한 사람에게만 의미있는 우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에 대해 묻고 또 묻다보면, 문득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18


힌두교는 인도인의 삶 자체라 할 수 있어요.  27

여러 세대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형성되어 온 종교입니다. 자연발생적인 종교라 할 수 있지요.  27

공통 경전이 없습니다.  29

힌두교인들은 포교나 개종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은 진리에 대한 이들의 독특한 사유방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진리는 하나지만 여기에 이르는 길은 여럿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도인드르이 뿌리 깊은 생각입니다. 진리가 유일하다고 해서 여기에 이르는 길조차도 유일한 건 아닙니다.  30


고대 인도에 어떤 왕이 있었습니다. 좀 괴짜였던 것 같아요. 하루는 왕이 신하에게 명해서 성안에 살고 있는 모든 소경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코끼리 한 마리를 데려다 놓고 소경들이 만져보게 했지요. 각기 다른 부위를 만져본 소경들은 당연히 다른 말을 햇습니다. 머리를 만져본 소경은 뭐라 했겠어요? "코끼리가 마치 항아리 같다"고 했어요. 그러자 귀를 만져본 소경은 "무슨 소리냐, 코끼리는 부채 같다"고 했지요. 배를 만져본 소경은 "웃기는 소리 하지 마라. 코끼리는 벽 같다"고 했지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요? 서로 의견이 다르니까 다투게 되었지요? 코끼리라는 하나의 실체를 놓고 자기가 만져본 부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코끼리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소경들의 잘못은 코끼리 그 자체를 잘못 안 게 아닙니다. 다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부분적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게 잘못이지요? 자기가 안 지식은 전체 코끼리에 대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것을 몰랐기 때문에 서로 다툴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분을 부분으로 알때, 그것은 전체를 바르게 알 수 있는 바른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게 되면, 소경의 지식처럼 그것은 완전히 그릇된 지식이 되고 말아요. 코낄리는 기둥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말이지만, 코끼리의 일부인 다리는 마치 기둥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코끼리에 대한 바른 지식이 됩니다.  31-32


무엇을 종교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지만, 내가 보기에 종교는 우선 무엇보다도 깊이를 추구하는 영역이 아닌가 합니다. 일상적인 삶의 표면을 따라 이리저리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안으로 침잠해가는, 깊이에로의 추구가 곧 종교 아닌가 합니다. 폭보다는 깊이가 훨씬 중요하지요.  32


종교는 없는 것처럼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능하면 종교를 잊어버리고 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종교는 이성으로 따져서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체험으로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4



한 주간 별일 없었어요? 별일이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사실 늘 별일이고 별일이어야 합니다. 

'별일 없는 삶'은 '별 볼 일 없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별일이라는 게 뭡니까? 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서양의 어느 철학자가 누구도 같은 강물을 건널 수 없다고 한 것처럼, 우리가 건너는 삶이라는 상물은 순간순간 처음이고 별일입니다. 삶은 늘 처음일 때 최고일 수 있어요. 알다시피 최초는 최고와 통하거든요.  45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변화에 대한 감정입니다. 변화가 없다면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심지어 자연도 마찬가지입니다. 늘 한 모습이라면 아름답지 않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면, 그는 생명 없는 아파트나 다름없어요. 끝장입니다. 생명이 있다는 건 변한다는 것입니다. 늘 새롭다는 것입니다. 늘 새로울 때 사람이든 삶이든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48-49


인도 사회는 전반적으로 나와 다른 것에 대하여 유연해요.  51


다른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될 때, 자유가 있습니다.  53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구호가 혹 각자의 개성은 무시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잇습니다. 

사회적인 차원이든 종교적인 차원이든, 어떤 경우에도 통일은 절대 무차별의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건 죽음입니다. 의미 있는 통일은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하나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화라는 표현이 오하려 적합할 수 있지요. 조화라는 게 뭡니까? 붉은색 일색이라면, 노란색 일색이라면 무슨 조화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겠어요? 파란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하다못해 흰색이라도 섞여야 조화라는 것이 의미를 지니고 아름다움도 생겨나는 법입니다. 모두가 똑같다면 조화도 없고 다름다움도 없습니다. 변화가 없다면 생명 있는 유기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차이가 없다면 조화도 아름다움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인도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자기 고유의 문화와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나'와 다른 것에 대한 유연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6-57


어떤 문화든 그 구성요소의 다양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미 생명을 상실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보아도 괜찮습니다.

너와 나의 하나 됨을 추구하기 이전에, 우선 너와 나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너와 나의 하나 됨은 아무런 의미도 지닐 수 없어요.  57


유행(fashion)이라는 말의 일차적인 뉘앙스는 틀을 깨는 자유입니다.

그러나 요즘 우리에게 유행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일종의 구속이며 병입니다. 주체는 없고 추종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는 수요자만 있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유행이라는 옷을 입고 얼른 대중 속으로 숨어버려요. 그러고는 익명성이 주는 편안함을 즐기지요. 그러나 유행이란 으레 문득 왔다가 문득 가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익명성에 의지한 편안함이라는 것도 당연히 잠깐일 수밖에 없어요. 대중 속에 숨는가 싶으면, 이미 그들은 또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저만큼 가고 있어요. 나의 익명성은 금방 사라지고 말지요. 그러면 다시 허겁지겁 따라갈 수밖에 없어요. 따라 가기의 악순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요즘 우리 주변에서 보는 유행이라는 것은 일종의 병이라고 해도 무방해요. 따라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만드는 편집증입니다. 그것은 남과 다른 것이 두려운 공포증이지요. 우리 사회가 유행이라는 중병을 앓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유행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획일적인 사고방식에 있어요. 판에 박힌 저울대의 눈목으로 모든 사람을 저울질하고, 이 저울대에 맞지 않으면 낙오자로 소외되는 우리 사회의 통념이 문제지요.  59-60


여러분 중에 한 번쯤 체념 안 해본 사람은 없겠지요? 의식하든 않든 여러분 아니 정도면 누구나 체념해 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물론 체념의 순간을 지켜본 사람은 드물 겁니다. 사실 중요한 건 그건데, 내 마음에 어떤 감정 혹은 상태가 일어났을 때 가만히 지켜보는 것, 그게 명상입니다. 명상은 거창한게 아니지요. 내 마음의 변화를, 일렁거림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 그게 명상이지요.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 그걸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놀라운 에너지가 일어납니다.

우리의 감정은 잡아두는 순간, 에너지로 변합니다.

체념의 순간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체념할 때, 나의 마음을 지켜본 적이 있어요? 체념의 순간에 언뜻 편안함이 있습니다. 체념이란 분명히 내가 바라는 게 아닌데, 그런데도 체념하고 나면 오히려 속이 후련해지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66


실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있어요. 차라리 포기하고 체념해버리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67


모든 체념이 다 의미 있는 초월로 통할 리는 없습니다.

체념이 의미 있으려면 우선 가능한 것에 대한 체념이어야 합니다. 다시말해서 자발적인 체념만이 의미를 지닙니다. 그걸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포기하는 것, 그게 체념입니다. 언젠가 신문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 여자 태권도 올림픽 출전자를 뽑는 시합이 있었지요. 이때 재미동포 출신 여자 선수가 결승전에서 부상당한 자기 동료와의 시합을 기권한 적이 있습니다. 평소의 실력으로 볼 때 자신보다는 부상당한 동료가 올림픽에 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게 바로 포기지요. 의미 있는 체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석녀(石女)가 "나는 아이 낳는 것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석녀가 아이 낳는 것은 아예 가능성이 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이 없으면 욕망이 일어날 리가 없고, 일어나지 않은 욕망에 대한 체념 혹은 포기라는 것은 한 마디로 웃기는 일입니다.

우선 가능성이 있어야, 그래야 욕망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흔히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게 욕망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게 않습니다. 욕망이라는 건 그냥 일어나는 게 아니거든요. 가능성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아예 가능성이 없으면 기대하는 마음도 전혀 일어나지 않아요. 가능성이 없으면 아무런 욕망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정말 외로운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아요.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은 함께 해 줄 사람이 있는데 지금 그렇지 않을 때, 누군가가 와 줄 사람이 있는데 오지 않을 때, 그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참으로 '올이도 갈 이도 없는'(날 찾아올 사람도 내가 찾아갈 사람도 없는) 사람은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외로움은 '부재(不在)'를 통하여 '존재(存在)'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사랑이란 것도 바로 이런 감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이별을 통하여 느끼잖아요?  68-69

가능한 것을 포기할 때, 에너지가 일어납니다.  69


일어난 욕망의 결과는 결국 기쁨이냐 또는 열 받는 거냐, 이 두 가지 중에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길게 보면 기쁨이나 노여움은 욕망의 결과라기 보다는 연속입니다. 문제는 기쁨이나 노여움이 일어났을 때, 그때 어떻게 할 거냐 하는 겁니다. 이때 포기가 필요합니다. 체념이 필요해요. 여기서 체념이라는 것, 혹은 포기하는 것은 일어난 감정을 잡아둔다는 것입니다. 일어난 감정을 잡아둘 때, 증폭도니 에너지가 일어나요. 예를 들면 생각해 봅시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남모르는 선행을 했을 때, 그 일을 두고 동네 방네 떠들고 다닌다면 어떻겠어요? 일시적으로는 우쭐해질 수 있겠지만 뒤끝은 허전할 겁니다. 허전하다는 것은 에너지가 한꺼번에 빠져나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가슴속에 묻어둘 때, 더합니다. 기쁨은 내 안에 가두어둘 때, 오히려 새끼를 치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오래 잡아둘수록 기쁨은 배가합니다. 씨앗을 땅에 묻어 둔다고 그게 어디 갑니까?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 것처럼, 감정을 잡아 갈무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71-72


일어난 감정을 잡아 두었을 때, 그 뒤끝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가능한 것대 대한 체념이 모두 의미 있는 체념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잡아둔 데 대한 애프터 서비스라고나 할까요. 그래요 자신이 그 감정에 솔직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야 자발적인 체념이었는가를 알 수 있어요. 그 뒤끝에 후회가 따르는 체념은 초월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인 도피라 할 수 있습니다. 도피는 도피일 뿐이지요. 문제의 해결은 아닙니다.  72-73


추억을 먹고 사는 사람이 자신을 과거에 가두는 것처럼, 꿈을 먹고 사는 사람은 미래에 자신을 가둡니다.  84


업과 윤회는 하나의 믿음이 지니는 두 측면이라 할 수 있지요.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이 둘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닙니다. 업은 윤회로 설명될 수 있고, 윤회는 업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업의 다른 말이 윤회라면, 윤회의 다른 말은 업입니다.  86


<우파니샤드>는 인도의 여러 경전들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경전으로 꼽힙니다.  89


업설이나 윤회설은 숙명론이 아닙니다. 업의 자기책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또한 그 이면에는 항상 업의 초월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힌두교는 '구제(救濟)의 도(道)라 할 수 없어요. 모든 행위는 업을 남긴다고 가르치지만, 또한 어떤 행위는 이미 쌓은 업을 삭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오히려 여기에 핵심이 있습니다.  96


참으로 건강한 사람은 건강문제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건강한 것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건강하지 못할 때, 거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마음공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마음이 비뚫어지고 황폐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육체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마치 눈에 벼이 났을 때 눈을 의식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잘못되고 몸이 병들었기 때문에 마음공부에 대한 관심이나 건강에 대한 욕구가 부쩍 늘어났다 이겁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건강합니까?  107-110


요가는 넓은 의미에서 길(道)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좀더 설명하자면, 해탈 또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요가라고 합니다. 

요가라는 말의 어원을 따지자면, 이 말은 원래 '결합하다' '멍에를 매다'라는 의미의 범어 동사 '유즈(yuj)'라는 말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가라는 것은 '결합' 또는 '멍에를 매는 것'이라는 문자적인 의미를 지니는 셈입니다. 그러면 뭘 결합하느냐? 우선 몸과 마음을 결합하여 하나 되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 몸과 마음이 하나 된 개체가 궁극적 실재와 하나 되는 것, 그게 요가입니다. 그렇다면 결합이란 무엇이냐, 그건 자유를 의미합니다. 

합일은 완성이며 자유입니다. 유기적인 관계에 있어야 할 두 부분이 따로 노는 것, 그것은 갈등이며 구속이지요. 이에 비하여 합일은 자유라 할 수 있어요. 몸 따로 마음따로 논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한마디로 괴롭습니다.

하나로 결합되어 합일될 때 자유가 있습니다. 자유는 기쁨입니다. 해탈은 다른 말로 자유라 할 수 있지요.

자유라는 건 늘 피 냄새를 풍기는 인내를 요구하는 구석이 있지만, 그 끝에는 기쁨이 있어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건 자유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란 하나 됨에 있지요. 둘이 하나로 합일될 때, 거기에 자유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람들 사이에서의 자유란 조화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왜 섹스에 몰두하게 되는지 알아요?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두 사람의 영혼이 하나로 녹아 합일하는 체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 일상 속에서는 쉽게 체험되지 않는 자유가 일어납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조화란 쉽지가 않아요.

인위적으로 만들어가는 조화한 언제나 '투쟁'이 요구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고대의 서양 철학자 중에 여러분이 잘 아는 헤라클레이토스라는 사람은 '투쟁은 조화'라고 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요소가 만나서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든 투쟁을 통하여 가능할 수 있습니다.  110-112


투쟁의 과저을 거친 평화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약속합니다 숱하게 싸우고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둘은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때 그 둘 사이에 자유가 있습니다. 의리라는 것도 생기고 어지간한 일로는 서로 갈라서지 않는 법입니다. 이런 관계에서는 설사 쌍욕을 듣는다 해도 웃고 넘어갈 수 있지만, 그저 그런 사이에서는 당장 안색이 변할 것입니다. 거기에 자유는 없습니다.  113


인도에서 요가의 역사는 무지 무지 길어요. 심지어 기원전 3000년경 인더스 문명 유적에서 출토되는 인장에서도 요가 자세를 취한 수행자를 볼 수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지닙니다. 

장구한 역사를 통하여 힌두교의 각 종파는 각기 제 나름대로 다양한 요가 전통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빠딴잘리(Patanjali)라는 성자가 요가를 일목요연한 체계로 정리하고 <요가 스뜨라>라는 문헌을 남겼습니다.  115


<요가 수뜨라>에 소개된 내용을 중심으로 요가 수행의 8단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대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요가는 다리를 꼬고 앉는 것으로 시작하는 게 아닙니다. 


우선 첫 번째 단계로 윤리적인 준비단계(禁戒,Yama)가 요구됩니다. 윤리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사람은 요가를 닦을 자격이 없다는 겁니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가 생활 속에서 금해야 할 다섯 가지, 즉 살생하지 말 것, 거짓말하지 말 것, 남의 것을 춤치지 말 것, 음란에 빠지지 말 것, 불필요한 소유를 탐하지 말 것 등이 강조됩니다. 이 첫 단계의 다섯 가지 계율은 요가 수행체계가 불교나 자이나교와 상당히 밀접한 관련 속에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불교의 경우오ㅓ 마찬가지로 요가에서도 오계 중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역시 불살생입니다. 불살생은 모든 계율 중의 으뜸이라 할 것입니다. 


요가의 두 번째 단계는 내외의 청정, 시니에게의 헌신 등이 적극적으로 권장되는 단계(勸戒, niyama)입니다. 이 단계 역시 윤리적인 준비단계라 할 수 있지만, 첫 번째 단계가 주로 금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두 번째 단꼐는 일종의 권장사항이라 할 수 있지요. 적극적으로 행해야 하는 덕목들입니다. 알다시피 윤리라는 것은 주변 환경고 나의 조화를 추구하는 과정입니다. 윤리 규볌이라는 것은 나와 주변 사람들이 서로 이해의 지평을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지켜야 하는 룰입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피차 괴롭습니다. 설사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윤리 규범은 은연중에 우리를 강제하는 힘을 지닙니다. 물론 요가는 윤리적인 차원에 머물지는 않습니다. 결국 그 너머로 깨고 나아가는 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초윤리적이라 할 수 있지만, 초윤리는 결코 윤리를 무시하라는게 아닙니다. 윤리적인 단계를 딛고 넘어서야 합니다.


세 번째 단꼐는 어떤 요가 자세를 취할 것인가를 익히는 좌법(坐法, asana)의 단계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요가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가 요가하면 흔히 결가부좌를 틀고 앉은 비쩍 마른 수행자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사실 요가의 여러 단계 중에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단계가 바로 이 좌법의 단계라고 할 수 있어요. 가장 긴 시간을 투자해서 익혀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지요. <요가 수뜨라>에는 수많은 좌법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경전에서는 원래 8만 4천 가지의 좌법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84가지 정도가 전해질 뿐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빠딴잘리는 이상적인 요가의 자세로 적합할 수 있는 기준을 두 가지 들고 있습니다. 우선 요가 자세는 편안해야 하고, 또한 오래 지속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기준에 부합되는 가장 중요한 자세가 바로 결가부좌입니다. 결가부좌 알지요? 어른들은 양반다리라고 하고 아이들은 아빠 다리라고 부르는 그 자세가 바로 가장 대표적인 요가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기 특수한 목적에 따라 여거 가지 자세들이 응용될 수 잇습니다. 경전에서는 이상적인 자세로 권장되지만, 체형에 따라 불가능한 자세도 있을 수 있지요.


네 번째 단계는 호흡조절(調息, Pranayama)입니다. 이 단꼐는 앞의 좌법과 함께 하타요가(hatha-yoga)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는 부분입니다. 요가 수행자가 윤리적인 준비를 하고 좌법을 익히는 것을 결국 우리의 마음을 잠잠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호흡조절이야말로 마음을 가라앉히는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호흡은 마음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음이 급해질 때 저절로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반대로 급해진 마음을 진정시키려 할 때는 요가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심호흡을 합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셔 아랫배까지 밀어 넣었다가 천천히 밷으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진정됩니다. 

이와 같이 호흡은 마음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으므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호흡을 연구하고 제어하는 것이 필수적인 게 당연하지요. 호흡법을 익히는 것도 무척 긴 시간을 요하는 어려운 과정입니다. 우리는 대개 요가에서 가르치는 호흡법과 정반대의 호흡을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숨을 들이쉴 때는 배가 들어가고 숨을 내쉴 때는 오히려 배가 나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습니다. 들숨과 날숨만 있을 뿐 멎는 숨이 거의 없다는 것도 마찬가지 예입니다.

호흡은 마음작용과 관련해서 중요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도 직결됩니다. 한두 주일쯤 밥 안 먹는다고 해서 죽지는 않잖아요? 며칠 동안 잠 안 잔다고 죽나요? 그러나 단 몇 분만 숨을 못 쉬면 죽습니다. 그만큼 호흡은 우리의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육체적인 건강을 위하여 단전호흡을 하고 복식호흡이 권장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건강하려면 밥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숨을 잘 쉬어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할 수 있어요. 중국에서 양생법(養生法)의 하나로 널리 행해지는 기공법도 요가만큼 오랜 역사를 지닙니다.


요가의 다섯 번째 단계는 수행자가 자신의 감관을 제어하는 단계(制感, pratyahara)입니다. 방금 마차의 비유에서 이미 말한 것처럼, 인간의 감관 또는 욕망은 말과 같습니다. 길이든 아니든 갈 수만 있다면 어디든지 내달리는 것이 말입니다. 오죽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있겠어요? 우리의 감관이라는 것도 이와 같아요. 대상이 있으면 곧장 쫓아갑니다. 늘 바깥으로 향해 있는 것이 감관이지요. 제감은 이와 같이 바깥으로만 내닫는 감관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마치 거북이 사지를 두꺼운 갑 속으로 끌어들이듯이 바깥을 지향하느 감관들을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욕망은 제어될 때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어요. 사실 모든 감정이 그래요. 사람의 깊고 얕음은 결국 일어난 감정을 어떻게 잡아 두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기쁘다고 떠벌려 버리면 남는 건 허전함이지요? 그러나 기쁨을 꾹 눌러 뱃속 깊이 넣어 두면 두 배 세 배로 새끼를 칩니다. 어떤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은 씨앗이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씨앗을 땅 위 환한 곳에 보기 좋게 전시해 두면 싹이 트나요? 싹은커녕 말라 버리잖아요? 씨앗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에 묻어 두어야 싹을 틔우고 몇 갑절의 열매를 맺는 겁니다. 우리의 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어나면, 일단 어두운 곳에 묻어둘 필요가 있어요. 묻어 둔다고 그게 어디 가나요? 기쁨을 가슴속에 간직해 둔다고, 보이는 곳에 떠벌리지 않는다고 없어지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마치 묻어 둔 씨앗이 저절로 싹을 틔우듯이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도 잘 묻어 두면 저절로 싹을 틔우고 새로운 차원의 에너지로 승화될 수 있어요. 마치 한 톨의 씨앗이 싹이 되고 꽃이 되고 열매가 되는 과정에서 그 본래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의 감정이라는 것도 묻어 두면, 잡아 두면 새로운 차우너의 에너지로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쁨이라는 감정뿐만 아니라 슬픔이나 노여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어난 감정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일단 잡아 두면 우리에게 득이 되는 에너지로 변합니다.

감정이란 일단 일어나면, 억누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억누를수록 오히려 맹렬하게 덤비는 것이 사람의 감정이잖아요? 억누르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걸 조용히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어난 감정을 일단 잡아 두고 지켜볼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저절로 해결되게 되어 있어요. 애게 일어난 감정을 내가 가만히 지켜본다는 것, 물론 그건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해져야 비로소 우리가 내면의 깊이로 침잠할 수 있는 준비운동이 끝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준지 과정이 끝나면, 다음 단꼐부터는 수행의 중점이 정신적인 영역으로 옮겨갑니다.

여섯 번째 단계인 집지(執持, dharana)는 한정된 심적 영역에 마음을 한정시키는 것입니다. 마음은 오관의 배후에 있는 내적 감관입니다. 마음이 감관에서 떨어져 있으면, 설사 눈이 보고 있다 해도 보는 것이 아니며, 귀가 듣고 있다 해도 듣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따라가지 앟으면 설사 감관이 대상을 향해 있다 해도 인식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바로 앞 단계에서 감관을 거두어들인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이 감관과 분리될 때 완전해진다고 볼 수 있지요.

피상적인 표면을 따라 부유하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하나의 대상에 머물지 않습니다. 마치 나비가 이 꽃 저 꽅을 분주히 옮겨 다니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이런저런 대상들을 끊임없이 옮겨 다닙니다. 집지의 목적은 마음을 지속적으로 한 대상에 집중하도록 하며, 다른 대상으로 옮겨갈 때는 재빨리 원래의 대상으로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이동과 방해의 빈도가 낮을수록 집지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요.


일곱 번째 단계는 정려(靜慮, dhyana)입니다. 범어로는 이 단계를 디야나(dhyana)라고 하는데, 흔히 불교에서 사용되는 선(禪)이라는 말은 바로 디야나에 대한 한자어입니다. 정려는 우리의 마음이 선택된 한 대상을 향하여 아무런 장애 없이 흐르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마음을 더욱 내면으로 거두어들여 한 대상에 대해서만 유지시킴으로써 집지의 단계에서 정려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좀더 상세하게 살펴볼까요?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분주하게 이리저리 움직입니다. 한 대상에 대하여 단 몇 초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지금 당장 눈을 감고 스스로의 마음을 한번 지켜봐 보세요. 어때요? 숱한 대상들이 왔다 갔다 하지요? 친구 얼굴도 떠오르고, 지난번에 갔던 호프집 맥주잔도 떠오르고, 있다가 점심시간에 만나야 할 사람도 떠오르고, 아무튼 온갖 대상들이 왔다가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비하여 집지의 단꼐에서는 그 이동의 빈도가 낮아집니다. 잠잠해진다 이겁니다. 잠잠해지는 정도가 점점 깊어져서 정려의 단계에서는 마음이 더 이상 대상을 옮겨 다니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여 우리의 마음이 오직 한 대상만 그 내용으로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도 우리의 마음은 여전히 가변적이며, 대상의 범위 내에서 이동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요가의 마지막 단계는 삼매(三昧, Samadhi)입니다. 이 말도 우리가 생활 속에서 자주 쓰는 말이지요? 독서삼매니 삼매경에 빠졌다느니 하잖아요? 원래 범어로는 사마디(samadhi)라는 말인데, 한문으로 음역되는 과정에서 삼매가 된 것입니다. <요가 수뜨라>에서는 이 단계를 "선정이 한결같은 상태에 있어서, 그 대상만이 빛나고 자기 자신은 없어진 것같이 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요? 아마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정려의 단계도 그렇거니와 삼매는 사실 말로 설명되는 세계, 혹은 우리의 이성이 논리적으로 분석해 낼 수 있는 단계가 아닙니다. 삼매는 이해의 대상이 되는 지식이 아니라 깨달아 알아야 하는, 증득(證得)해야 하는 언표불가능의 세계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삼매의 단계에서는 수행자의 자아의식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정려의 단계에서는 비록 마음이 오직 하나의 대상에 머물러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자아의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이 수행자 자신과 대상을 가로막는 장애로 작용할 수 있지만 삼매의 단계로 진전되면 이러한 장애가 완전히 제거된다는 것입니다. <요가 수뜨라>에 따르면, 삼매의 상태에서 수행자는 고차적인 직과을 얻습니다. 이러한 직관은 우리가 두뇌에 한정된 사고에서 벗어나는 완전히 새로운 경지라 할 수 있지요. 이때 수행자는 명상의 대상이 지니는 깊고 오묘한 의미를 파악하게 됩니다. 이름과 모양을 갖추고 나타난 세계의 본질을 여실히 들여다볼 수 ㅣ있게 되는 것입니다.  116-125


요가는 반드시 스승이 필요합니다.  125


생각해 보면, 요즘 우리의 삶은 지나치게 분주합니다.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관조할 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어요. 화장실에 앉아 있을 때나 가능할까? 왜 웃어요? 사실 똥을 눌 때 우리의 의식이 맑아져요. 그래서 옛날 어른들이 화장실이야말로 깊은 생각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합니다. 겉모습이 아무리 하려하면 뭐합니까? 내면의 뜰이 황폐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돌아서면 허전한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바깥일에 분주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대게 사람들은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스스로 그 여유를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바빠도 가끔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볼 필요가 잇습니다. 삼식대가 되고 사십대가 되면 이미 늦습니다. 누구나 바깥일에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봅시다.  125-126


후기 힌두교(7~8세기경)의 딴뜨라 전통에 이르면, 남자와 여자의 구분이 단지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인ㅅ기이 뚜렷해집니다. 높이 평가할만한 통찰입니다. 딴뜨라(tantra)는 힌두교의 꽃이라 할 수 있지요. 특히 인산의 성(性)에 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딴뜨라는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차원이 전혀 달라요. 인도사회에서 여자의 지위가 급상승하는 것도 이 시기라 볼 수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이기 이전에 인간입니다. 남자도 마찬가지지요. 남녀의 구분은 마치 칼로 두부 자르듯 그렇게 나눌 수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137-138


칼 융에 따르면 인간의 에고(ego)는 아니무스(animus 男)와 아니마(anima, 女) 모두를 지닙니다.  138

지금까지 우리는 이 점을 무시해왔지요. 남자는 남자고 여자는 여자라고 가르쳤습니다.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고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가능항 한 남자 속에 있는 여자는 무시되고 억눌려왔습니다. 

여자 속의 남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상적인 인간상은 우리와 달라요. 남녀가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남편과 아내가 조화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선 한 개체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남녀 양성을 동시에 구유(具有)한 인간이야말로 조화롭고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140


딴뜨라 전통에서 섹스는 합일을 의미합니다. 합일은 완성이지요. 섹스는 몸을 매개로 남녀의 벽을 허무는 작업입니다. 마침내 너도 없고 나도 없는 무(無)로 떨어지는 순간, 그게 일어납니다. '나'의 상실을 통하여 무한을 체험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러한 합일은 적어도 누적된 상호 교감의 끝에서나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인도 전통에서 남녀의 합일은 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한 개체로서의 남자와 한 개체로서의 여자의 합일이 아니라, 한 개체 속에 있는 남성과 여성의 합일입니다. 각 개인은 우주를 축소한 소우주이기 때문에 갈등과 부조화의 궁극적인 해소는 오직 각 개인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게 딴뜨라의 가르침입니다. 성교는 자기 속에 잠자고 있는 다른 성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지요.  143-144


아무튼 정신적인 기쁨이든 육체적인 쾌락이든 우선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여 '너'에게서 혹은 어떤 대상 속에서 '나'혹은 나의 생각과 동질적인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기쁨이나 쾌락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쁨이나 쾌락의 대상은 지극히 주관적인 측면을 지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동질감을 느끼는 대상에 끌립니다.  144


우선 서로 끌리는 감정이 있어야 합니다 끌린다는 것은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이고, 끌리는 둘의 자연스런 만남을 통하여 합일이 있을 수 있어요. 합일은 절대로 강제적으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자연스럽고 자발적이어야 합니다.  145


우빠니샤드에서는 이른바 브라흐만과 아뜨만의 합일을 해탈이라고 합니다.

원래 그 둘은 하나였는데, 시작 모를 무지 때문에 마치 분리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 윤회 속의 인간이지요. 또한 수행을 통하여 그 본래의 상태를 깨닫는 것이 해탈이며 완성됩니다.  146


우빠니샤드의 범아일여(梵我一如)는 딴뜨라에서 남녀의 성교로 나타나는 셈이지요.  147


한 사람 속에 여자와 남자가 조화를 이룰 때 균형 잡힌 인간이 되는 것처럼, 한 사람 속에 이성과 감성은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지요. 사실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만이 지극히 감성적일 수 있습니다. 한 개인 속에서 그 둘은 변증법적인 발전을 한다고 볼 수 있지요.  148


전통적으로 인도 사람들은 몸과 마음을 연속체로 봅니다.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닙니다. 외적인 마음이 몸이고 내적인 몸이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빠니샤드에서는 인간을 다섯 겹(kosa)의 동심원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제일 바깥에는 '음식으로 된 나'(annamayakosa)가 있어요. 이것은 물질적인 몸이라 할 수 있는데, 외부 세계의 물질적인 대상들을 경험하고 향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안쪽에 '생기로 된 나'(pranamayakosa)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일반적으로 호흡과 신경계통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지요. 다시 그 안쪽에 '의근(意根)으로 된 나'(manomayakosa)가 있고 이보다 내밀한 곳에 '식(識)으로 된 나'(vijnanamayakosa)가 있습니다. 이 두 겹은 우리가 흔히 마음이라고 부르는 층입니다. 그리고 가장 안쪽에 '환희로 된 나'(anandamayakosa)가 있어요. 환희로 된 나의 본질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소 엇갈립니다. 인간의 참된 자아 그 자체라고 보는 견해와, 단지 자아를 둘러싸고 있는 껍질에 불과하는 견해로 양분됩니다. 

아무튼 이 다섯 겹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에서, 우빠니샤드의 인간 이해는 서양의 심신 이원론과 완전히 달라요. 다시 말하여 가장 바깥에 있는 물질적인 몸은 의식 또는 더 나아가서 자아 그 자체와 연속적이라는 것입니다. 몸에는 마음이 반영되어 있어요. 몸에는 마음이 스며있다는 것입니다. 기분이 나쁘면 얼굴에 나타나잖아요? 몸에는 그 사람의 내적인 의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몸은 그 사람의 내적인 성향과 수준에 대한 외적인 표현으로 간주될 수 있지요. 인도 사람들의 사고로 보면 음식으로 된 나로부터 적어도 식으로 된 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심신은 본질적으로 동일해요. 모두가 물질적입니다. 이 문제는 좀 복잡하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물질적인 몸이든 마음이든 모두 쁘라끄리띠라느 근본물질에서 나온다고 봅니다. 물질적인 몸과 마음의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얼마다 더 미세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가 하는 상대적인 차이에 불과합니다.

몸이 마음과 별개가 아니라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될 때, 몸은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다. 몸은 부정되고 배척되어야 할 '똥통'이 아니라, 그것은 거룩함에 이르는 사다리가 되요. 요가가 의미를 지니는 것도 몸과 마음이 연속적이기 때문입니다.  168-170


몸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는 양면성을 지닌다고 봐요.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것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전혀 달라질 수 없어요.  172


대개 사람들은 힌두교 하면 요가와 명상 또는 초월과 신비주의를 생각하기 쉽지만, 따지고 보면 힌두교만큼 현실을 중요시하는 종교도 없어요. 궁극적으로 해탈을 추구하지만, 해탈이란 반드시 죽어서 이루는 게 아닙니다. 몸을 가진 산 사람도 얼마든지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봐요. 또한 해탈의 추구는 철저하게 세속의 삶을 터전으로 합니다. 청빈을 권하는 종교도 아닙니다. 어느 기간까지는 돈을 벌고 경제적인 기반을 다지는 과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물론 그것은 궁극적으로 버리기 위한 것이지만 말입니다.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을 모른 체 하지도 않아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대를 잇는 과정을 통하여 지지고 볶고 싸우는 감정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체험하라 합니다. 그 속에서 욕망의 실체를 지켜보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욕망르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 속에서 욕망을 초월하는 방법을 가르쳐요.

이와 같이 힌두교가 세속의 삶ㅇ르 부정하지 않ㅇ르 뿐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해탈에 이르는 사다리로 이해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연속적인 것으로 보는 사고방식과 관련을 지닙니다.

체화된 삶  172


힌두교의 입장에서 볼 때, 몸은 윤회의 결과인 동시에 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윤회의 원인은 업 때문인데, 업은 체화된 인간의 행위에 그 원인이 있어요. 

요즘 우리 주변에 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잇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억눌렸던 것의 반발이라는 측면도 있고, 알량한 장삿속이 이를 부추기는 점도 있겠어요. 그러나 어떤 점에서 보면, 몸이 뜨는 중요한 이유는 현재 우리의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몸이라는 것은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동안에는 의식되지 않습니다.  173


사람의 이름은 평새을 함께 하는 것이지만, 정작 자기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결정됩니다.  176


이름은 단지 부르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를 책임지자고 있는 것입니다.  180


몸이 마음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마음이 몸을 따라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둘 중에서 마음이 먼저라 해야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마치 닭과 꼐란의 관계처럼 아주 모호한 구석이 있어요. 따지고 보면 몸과 마음이 따로 있는 게 아니지요.

가장 바깥에 있는 마음이 몸이고 가장 안에 있는 몸이 마음이라 할 수 있거든요.  186


어둠이라는 말이 지나치게 부정적인 의미로만 사용되는 것처럼, 맹목이라는 말도 이유없이 푸대접을 받는 게 아닌가 합니다.

순수한 행위는 맹목적입니다. 맹목적인 행위만이 순순할 수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사랑이든 우정이든 목적이 들면 이미 사랑도 아니고 우정도 아닙니다. 다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비즈니스가 있을 뿐이지요. 사고파는 거래가 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사랑은 맹목적이어야 해요.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은 그래요. 남녀 간의 사랑은 모든 사랑의 뿌리지요. 눈멀고 귀먹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다만 맹목적일 때 이해를 따지지 않는 불가사의를 만들어요. 어머니의 사랑이 고귀하다 하는 것도 그런 이유지요. 그것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맹목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순수하고 고귀한 것입니다.  199-200


생각해 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터부시해 온 맹목은 느낌 또는 감정에 대한 맹목이ㅏㄹ 할 수 있어요. 다시 말하여 흔히 우리가 맹목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 그것은 감정이나 느낌에 따라 움직일 것이 아니라 이성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맹목적이지 말라는 말은 이성에 대한 맹목적인 추구를 의미했지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을 맹목적인 것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것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200


만일 느낌에 대한 맹목이 위험을 내포한다면, 극서은 순수와 통하기 때문입니다. 순수한 것은 이미 더럽혀진 것보다 오염되기 쉬워요. 사람이 순수하면 이용당하기 쉽고 물건이 순수하면 사용하기 쉽지요. 이렇게 보면, 느낌에 대한 맹목은 위험하긴 하지만 맹목적인 것 그 자체가 부정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느낌이나 감정에 대한 맹목적인 수용을 무조건 비난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것이 교묘히 이용되고 악용되는 사회가 오히려 문제지요.  201


가능한 것데 대한 체념이 가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맹목은 목적을 잃어버리지 않을 때 가치 있는 맹목일 수 있어요. 목적을 잊어야 맹목적일 수 있는 반면에 목적일 잃어버린다면 이미 그것은 가치 있는 맹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적을 잃어버린 맹목, 나를 잃어버린 맹목의 가장 분명한 징후는, 내가 그것을 그만두고자 했을 때 그만 둘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를 잃어버린 맹목은 끊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지 못하는 것이지요. 빠져든다는 징후는 후회가 일어나는 것, 후회가 점점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주객이 뒤바뀐 것이지요. 사람은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것이지요.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면 이미 그것은 나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나를 잃어버린 맹목의 깊이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본질로 향하는 방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맹목은 깊이에의 추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종교가 중요하고 사랑이 중요하다면, 그것은 맹목적인 사랑이 혹은 맹목적인 종교가 우리를 내면의 깊이로 침잠하게 하기 때문이지요. 종교를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이라고 말하는 것이나, 종교보다 강한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종교나 사랑은 일상사의 표면에 부유하는 이런저런 사실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깊이로 침잠하는 것이지요. 폭보다는 깊이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203


우리 사회에 맹목적인 것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얕고 허전해졌다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203-204


자신의 삶 속에 적어도 한 가지는 맹목적인 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이든 종교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우리의 삶 속에는 목적을 잊어버리고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맹목적인 한 구석이 있어야 합니다. 맹목은 우리에게 남아 있는, 그래도 사람은 순수하다는, 순수할 수 있다는 최후의 흔적이 아닐까 합니다. 만일 우리에게 맹목의 불씨가 꺼지고 없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참으로 희구하는 목적지에 이를 가능성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4


콩나물은 부드러운 만큼 아주 민감해요. 물을 자주 주지 않으면 금방 잔 뿌리가 많아져서 못쓰게 됩니다. 통상 검은 보자기로 시루를 덮어 두는데, 깜박 잊고 그냥 두면 한나절이 지나지 않아서 콩나물 머리가 금방 푸르게 변해요. 보기 흉해지지요. 

미미한 빛이라도 받으면 콩나물은 금방 변해요.

학생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것도 콩나물을 키우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내면의 개안(開眼)은 그래요. 시루에 놓인 콩나물이 하루에 몇 번씩 주는 물을 먹고 자라는 것처럼,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한 것처럼, 여러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나 책에서 얻는 지식이 꼭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콩나물은 절대로 물을 껴안고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콩나물이 자라기 위해서는 물이 꼭 필요하지만, 그럼에도 물이 콩나물 사이로 설렁설렁 지나가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콩나물이 물을 안고 있다면, 금방 썩어버립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주는 지식을 안고 있으면 여러분 자신이 썩어버려요. 

적어도 인간의 내적인 성장을 염두에 둔 지식은 그렇습니다. 콩나물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어요. 아무리 아까워도 그냥 설렁설렁 지나가게 내버려둘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콩나물 사이로 물이 설렁설렁 지나기지만 때가 되면 자라 있는 것처럼, 여러분도 그렇게 자라는 것입니다.

마치 콩나물이 자신의 성장을 위하여 물이 지나가는 그 순간에 충실하듯, 여러분도 순간순간의 느낌에 충실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변화는 순간이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207-209


인도 사람들은 세계의 역사를 순환론적인 입장에서 파악하고 있는데, 이 순환의 주기라는 것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길어요.

흔히 우리가 무지무지 긴 시간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겁(劫)'이라는 말 알지요? 이 말은 원래 '깔파(kalpa)'라는 범어의 한역(漢譯)입니다.

인도 사람들의 시간관에 따르면, 1겁은 우주의 생성, 유지, 파괴가 일어나는 한 주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기간은 86억 4천만 년입니다. 그야말로 겁나게 긴 시간이지요? 우리 인간에게는 겁나게 긴 이 1겁은 브라흐마(Brahma)라는 창조신의 입장에서는 단지 하루에 불과합니다. 브라흐마는 하루를 1겁으로 하는 백 년을 삽니다. 우리의 시간 개념으로는 실로 황당하게 들리는 이야기라 할 수 있지만, 인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이와 같은 우주적인 시간이 흐르고 있어요.  216-217


내가 보기에 인도의 가장 큰 매력은 느리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233


네 단계의 삶을 통하여 부와 욕망 그리고 자기 본래의 의무를 실현함으로써 결국 해탈을 이루자는 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첫 단계(學生期, 1~25세)는 금욕과 학습의 기간이라 할 수 있느넫, 이 기간 동안에는 경전(베다)를 공부하고 카스트의 구성원으로서 각자가 해야 할 의무를 익히는 데 전념합니다. 남녀의 성적인 접촉을 금하는 금욕이 강조되는 기간이지요.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는 단계(家住期, 26~50세)로 접어듭니다. 결혼은 남녀가 정신적 육체적인 사랑을 하고, 이를 통하여 희로애락의 온갖 감정들을 체험한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물론 자식을 낳고 대를 잇는 것도 중요해요.

세 번째 단계(林捿期, 51~75세)는 앞의 두 단계를 통하여 이룬 경제적인 기반과 가업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숲으로 들어가 명상에 임하는 단계입니다. 손자가 생기거나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지면' 대개 이 단계가 시작된다고 봅니다.

마지막 단계(遊行期, 75~100세)는 숲에서 나와 운수(雲水)의 길을 떠나는 시기가 됩니다. 이때는 탁발이 주요 생계수단이 되지요. 모든 집착을 떨쳐버리고 세상을 주유하며 지금까지 자신이 배우고 명상한 내용들을 현실 속에서 다시 몸으로 확인하는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있눈 유행자(遊行者)를 흔히 산야신(Sannyasin)이라 부릅니다. 산야신은 스스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사람입니다. 포기한 자라 할 수 있지요.

힌두교인이라면 누구나 산야신이 되기를 원합니다. 겱구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인 삶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삶은 그 너머의 무엇을 가리키는, 그 너머의 어디엔가 도달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합니다. 이들에게 종교가 곧 삶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닙니다. 삶은 그야말로 철저하게 '자기초월적 상징체계'라 할 수 있어요.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강을 건너기 위한 뗏목에 불과한 것이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현실적인 삶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닙니다. 무소유의 삶을 사는 산야신이 되는 게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들은 부(富)와 몸의 욕망을 삶 속에서 이루는 것도 매우 중요한 것으로 봅니다. 인생의 네 단계 중에서 두 번째 단계는 실상 여기이ㅔ 전념하는 단계라 할 수 있어요.  237-238


욕망은 피하고 억제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바르게 시현될 때 비로소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 힌두교의 입장이라면, 불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부정적입니다. 가능한 한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43


옥상에 있는 물탱크는 물이 가득 차면 저절로 스위치가 올라가서 더 이상 물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욕망은 달라요. 어느 정도 차면 '그만'하고 자동스위치가 켜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욕망은 양적으로 채워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채워도 채워도 '더 채워라'하는 것이 욕망이거든요.  244


정신적인 추구는 분명히 어느 정도의 물질적인 성취를 필요로 합니다.

힌두교의 이상적인 삶의 네 단계가 시사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점입니다. 해탈이라는 고도의 정신적인 욕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경제적인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246


인도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네 단계가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포기의 철학'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삶을 통하여 애써 샇아 올리지만, 그것은 결국 버리기 위하여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만이 벌리 수 있지만, 버리지 앟는 한 가진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각자의 고통이나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이라는 것은 결국 버리지 못하는 자들의 고통이며, 또한 포기하지 못하는 사회의 병통이라 할 것입니다. 일찍이 니체가 경고한 것처럼, 물질의 풍요가 지니는 의미를 곡해하는 한 우리는 '가축 무리의 푸른 목장의 행목'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249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자기 본래의 의무를 지니는데, 각자의 의무는 그가 전생에 쌓은 업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봅니다.

자억자득(自業自得)이라는 업의 논리에서 보면, 카스트에 따른 의무의 차별은 전혀 불평등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여 전생에 아주 못된 짓을 많이한 사람이나 선한 행위를 많이 한 사람이나 이생에서 마찬가지로 잘 먹고 잘 산다면 오히려 그것은 불평등이라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250-251


법 앞에 평등 또는 신 앞에 평등은 '업 앞에 평등'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셈이지요.  251


인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각 개인에게 주어지는 본래의 의무를 당연한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 의무의 실천은 아주 중요시합니다.

의무의 실천이 강조되는 것은 그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인 해탈과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힌두교인이 인생에서 이루어야 할 목표는 의무의 실천, 부, 욕망의 실현, 해탈 이 네 가지 입니다.

따라서 의무의 실천은 자기의 해탈을 위하여 필수적인 권리이며, 나아가서는 신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따라서 인도 사람들에게 의무는 기피하고 싶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존재 자체의 해방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253-254


알다시피 인도는 편안하게 아름다운 곳을 관광하는 데가 아닙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가까운 방콕이나 홍콩이 훨씬 낫지요. 싼 맛에 인도를 여행하려는 것이라면, 차라리 동네 커피숍이 싸고 편할지도 모릅니다. 인도 여행은 적어도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인도 여행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행이지요. 고정관념은 깨부수는 고행이라 할 만합니다. 인도 여행은 계획이 엉망으로 헐클어질수록 오히려 성공적일 수 있습니다. 계획된 시간에 계획된 루트를 따라 비행기로 혹은 기차로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면, 단체 관광이라면 또 모를까 그것은 이미 인도 여행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발길 닿는대로 차편이 허락하는 대로 기차가 가능하면 기차를 타고 버스가 가능하면 버스를 타야 합니다. 이것저것 따져서는 여행이 불가능하지요. 무작정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의 말처럼 자신과 다른 이들을 개선하고자 떠나는 사람은 철학자지만, 호기심이라 불리는 맹목적 충동에 따라 이 나라 저 나라를 찾는 자는 방랑자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도 여행은 목적을 생각하며 떠나는 철학자보다는 차라리 맹목적인 충동에 충실한 방랑자에 어울리는 여행입니다.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그런 여행이 어울리는 곳이 인도라 할 것입니다.

때로는 아무런 예약 없이 삼등칸 기차를 타고, 발 들일 틈 없이 빼곡히 들어앉은 맨발의 사람들 틈에 끼여 함께 짜이를 마시며 그들의 체념과 기다림과 담배연기를 공유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밤기차에 시달리며, 때로는 화장실 입구 통로까지 밀려나와 쭈그려 앉은 채 밤을 새더라도, 그러는 가운데 한 가닥이나마 허망 분별과 이별할 수 있다면, 고정관념에 찌든 나의 현존을 직시할 수만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겠지요. 고생을 무릅쓰고라도 길을 떠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인도 여행이 우리에게 의미를 지니는 것은 오히려 충격과 당혹감입니다. 굳이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습니다. 느낌이 있으면 그것으로 여행은 성공입니다. 충격이 있다면 대성공이지요. 느낌이 일어날 때, 충격으로 몸을 떨 때, 이에 반응하는 나를 내가 지켜보는 것, 그것입니다. 느낌에 충실한 것, 그것으로 여행은 이미 명상일 수 있습니다. 

외부 세계와 나의 내면이 직선으로 대면했을 때 문득 일어나는 충격, 이에 대한 싱싱한 의문에 충실한 것, 그리고 마침내는 내가 내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 서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도 여해에서 잊어버리되 잃어버리지는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262-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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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론' 에 대해 일관적으로 진행하는 내용이다.
저자의 표현처럼 '5천년이 넘는 기가긴 기간동안의 동양 철학의 진수를 호미로 긁는 것일 뿐인 내용'이라는 표현은 있지만, 서양의 존재론과 대조할 수 있는 동양의 관계론에 대한 서술을 하고 있다.
관계 즉 인간관계는 늘 우리에게 숙제로 남겨져 담론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 그리도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우리는 깊은 생각을 해볼 시간이 별로 없다.
세세한 담론을 전개해 나가지는 않지만 경전들의 특징중에 하나인 큰 틀만 언급해도 세세한 가지치기는 스스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인간관계에 관해 우리가 생각해 볼 만한 점들을 담고 있다.

저자가 처음으로 동양고전을 접한것은 어린시절 할아버지의 사랑방에서였다. 그리고 잊혀진 고전은 20여년간의 옥고 생활에서 이어진다.
두껍고 상대적으로 읽기 힘든 동양고전을 선택하게 된 배경은 수형생활에서 3권의 책만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읽어가면서 더욱 빠지게 되고, 급기야 아버지께 부탁하여 여러권을 한 권으로 제본하여 들고 들어오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읽는 것과는 분명 틀렸다.
우리는 종종 철학과 고전은 해설이 없는 책을 보는것이 좋다고 듣는다.
이유는 자신만의 해석을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분명 그러한 시간을 충실히 보냈음을 내용을 통해 깊이 느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좋은 내용 그 내용에 대한 저자의 해설 그리고 독법을 어찌 하는 것이 좋을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본을 배울 수 있었다.

시(詩)와 언(言), 주역(周易), 논어(論語), 맹자(孟子), 노자(老子), 장자(莊子), 묵자(墨子), 순자(荀子), 한비자(韓非子), 불교(佛敎), 신유학(新儒學), 대학(大學), 중용(中庸), 양명학(陽明學) 에 대한 저자의 해설이 담겨 있다.
강의를 한 것을 책으로 엮었기에 제목도 강의다.
자신이 긴 시간동안 고전을 읽으며 생각하고 느꼈던 점들 중에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관계론'에 입각한 해설을 한다.
인간은 누구나 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고전을 통해 우리에게 설파한다.
모든 내용들을 길게 다룬 건 아니고 길게 다룬 내용들도 있고 짧게 언급하면서 넘어간 내용들도 있다.
또한 이 고전들의 모든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자신에게 다가온 내용중에 독자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을 엄선한 내용일 것이다.

다만 읽는 우리는 그의 사유를 통해 새로운 관점을 배우고, 또한 자신도 사유를 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운 것이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생각의 세상을 접하고 새로운 관점을 알아가는 유익한 시간임과 동시에 가까운 것은 가까이 하였으나 멀리 있었던 고전들에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들이 고전을 읽는 이유가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면서 동시에 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짐이기 때문에 지혜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것을 지혜로 만드는 방법이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고전 독법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면서 동시에 미래와의 대화를 선취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

내가 동양고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할아버님의 사랑방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까지였어요.
나로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지요. 너무 어렸습니다. 그러나 유년 시절의 경험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심층의 정서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16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옥방(獄房)에 앉아서 생각한 것이 동양고전을 다시 읽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것이 었어요.  17
고전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중요합니다. 역사는 다시 쓰는 현대사라고 합니다.
우리의 고전 강독에서는 과거를 재조명하고 그것을 통하여 현재와 미래를 모색하는 것을 기본 관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래서 예시한 문안도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선정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1
고전 강독은 기본적으로 사회와 인간 그리고 인간관계에 관한 근본적 담론을 주제로 할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고전 강독의 전 과정이 화두(話頭)를 걸어놓고 진행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걸어놓은 화두는 '관계론(關係論)'입니다.
유럽 근대사의 구성 원리가 근본에 있어서 '존재론(存在論)'임에 비하여 동양의 사회 구성 원리는 '관계론'이라는 것이 요지입니다.  23
근대사회의 사회론(社會論)이란 이러한 존재론적 세계 인식을 전제한 다음 개별 존재들 간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관계론적 구성 원리는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합니다.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關係網)으로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고전 강독은 결코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우리의 당면 과제를 재조명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4

욕심입니다만 고전 예시 문안을 여러분이 다 암기하면 좋지요. 암기는 못하더라도 혼자서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5

최근 동양학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이와 같은 성찰적 동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동양적 구성 원리가 인문주의인 것은 사실이며 과학과 종교의 모순이 없는 구조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동양에 대한 관심은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신대륙에 대한 콜럼버스의 관심입니다. 과도하게 축적된 초국적 자본이 자본주의 시장권에서 분리되어 있던 동구권과 러시아 대룩에 이어서 다시 관범한 중국 시장에 쏟는 관심, 이것이 주된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32-33

동양적 사고는 현실주의적이라고 합니다.
저 혼자 마음대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란 뜻입니다.  34
서양에서는 철학은 Philosophy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지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智)에 대한 애(愛)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양의 도(道)는 글자 그대로 길입니다. 길은 삶의 가운데에 있고 길은 여러 사람들이 밟아서 다져진 통로(beaten pass)입니다. 도(道) 자의 모양에서 알 수 있듯이 착(辵)과 수(首)의 회의문자(會意文字)입니다. 착(辵)은 머리카락 날리며 사람이 걸어가는 모양입니다. 수(首)는 물론 사람의 머리 즉 생각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도란 걸어가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36
도는 길처럼 일상적인 경험의 축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서양의 철학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7

동양에서는 자연이 최고의 질서입니다.  38
자연의 개념과 특히 자연을 생기의 장으로 이해하고 있는 동양적 체계에서 과잉 생산과 과잉 축적의 문제는 바로 생성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근대 사회의 신념 체계인 자본주의의 성장 논리는 물론이고, 더욱 거슬러 올라가서 서구의 인본주의(人本主義)자체가 반자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9

일반적으로 동양 사상의 특징으로서 인간주의라고 하는 경우 그것은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인문적 가치라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40
최고의 가치가 바로 사람과 관련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논어>에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란 글귀가 있습니다. '덕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입니다. 덕성(德性)이 곧 인성입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를 인간관계라는 관계성의 실체로 보는 것이지요.  41
인성을 고양시킨다는 것은 먼저 '기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자기(自己)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닌 것으 ㄹ키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를 키우는 순서입니다.  42

오래된 시(詩)와 언(言)
<시경(詩經>은 동양고전의 입문입니다.  52
<시경>에는 모두 305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그 절반이 넘는 양이 국풍입니다. 국풍은 각국의 채시관(採詩官)이 거리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입니다.
기원전 12세기 말부터 춘추(春秋) 중엽인 기원전 6세기까지 약 600년간의 시(詩)와 가(歌)를 모아 기원전 6세기경에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경>은 제후국 간의 외교 언어로 소통되었으며 이를 통하여 공통 언어가 성립되고 나아가 중국의 문화적 통일성에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56
<서경(書經)>은 2제(요堯, 순舜) 3왕(우왕禹王, 탕왕湯王, 문왕文王 또는 무왕武王)의 주고 받은 언(言), 즉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67
<서경>, <춘추>와 같은 기록 문화는 후대의 임금들이 참고할 수 있는 사례집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어떠한 제도보다도 강력한 규제 장치로 작용하리라는 것은 상상이 어렵지 않습니다.  68

<주역(周易)>의 관계론
<주역>은 대단히 방대하고 난해합니다. <주역>의 관계론에 초점을 두기로 합니다.  87
우리가 보통 점이라고 하는 것은 크게 상(相), 명(命), 점(占)으로 나눕니다. 
상은 관상(觀相) 수상(手相)과 같이 운명 지어진 자신의 일생을 미리 보려는 것이며, 명은 사주팔자(四柱八字)와 같이 자기가 타고난 천명, 운명을 읽으려는 것입니다. 상과 명이 이처럼 이미 결정된 운명을 미리 엿보려는 것임에 반하여 점은 '선택'과 '판단'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 결정된 운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판단이 아려울 때, 결정이 어려울 때 찾는 것이 점입니다.  89
<주역>을 읽고자 할 때는 십익을 먼저 읽는 것이 좋습니다. 십익은 해설서기 때문에 <주역>의 전체 구성과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92
태극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가 사상(四象)을 낳고 사상이 8괘(八卦)를 낳습니다. 여러분은 아마 8괘 중에서 태극기에 있는 네 개의 괘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 8괘를 구성하는 세 개의 음양을 나타내는 부호를 효(爻)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효과 괘를 중심으로 <주역>을 이해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93
<주역>에는 8개의 소성괘와 64개의 대성괘가 있습니다. 이 64개의 대성괘마다 괘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 대성괘를 구성하고 있는 여섯 개의 효마다 효사가 붙어 있습니다. <주역>의 경(經)은 8괘, 64괘, 괘사, 효사의 네 가지라고 했지요.  95
이 8괘의 이름과 성격을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주역>독법의 기본적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97


1년 내내 겨울이 지속되는 극지(極地)나 반대로 상하(常夏)의 열대 지역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사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주역>은 변화에 관한 사상이고 변화에 대한 법칙적 인식이기 때문입니다.
<주역>의 관계론적 철학 사상이 이러한 사회 역사적 지반 위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주역>은 글자 그대로 주(周)나라 역사 경험의 총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나라 역시 그 이전의 여러 문화 사상의 총괄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7
'평탄하기만 하고 기울지 않는 평지는 없으며 지나가기만 하고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어렵지만 마음을 곧게 가지고 그 믿음을 근심하지 마라. 식복이 있으리라.'
'되돌아오지 않는 과거는 없다. 이것이 천지의 법칙이다.'  113
내가 붓글씨로 즐겨 쓰는 구절을 소개하지요.
'목표의 올바름을 선(善)이라 하고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미(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서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선하지 않으면 진미할 수 없고 진미하지 않고 진선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과 수단은 통일되어 있습니다. 목적은 높은 단계의 수단이며 수단은 낮은 단계의 목적입니다.
나는 우리드르이 삶과 사회의 메커니즘을 다시 생각합니다. 무엇 때문에 그토록 바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지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이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소외될 뿐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소외되어 있는 현실을 생각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면 우리는 생산물의 분배에 주목하기 보다는 생산 과정 그 자체를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는 과제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129
<주역>사상을 계사전에서는 단 세 마디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역(易)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가
그것입니다. '역이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는 진리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궁하다는 것은 사물의 변화가 궁극에 이른 상태, 즉 양적 변화와 양적 축적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질적 변화가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질적 변화는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통(通)의 의미입니다. 그렇게 열린 상황은 답보하지 않고 부단히 새로워진다는 것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구(久)라 할 수 있습니다.
계사전에서 요약하고 있는 <주역> 사상은 한마디로 '변화'입니다. 변화를 읽음으로써 고난을 피하려는 피고취락(避苦取樂)의 현실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130
<주역>은 변화의 철학이라고 했습니다. 변화를 사전에 읽어냄으로써 대응할 수 있고, 또 변화 그 자체를 조직함으로써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절제란 바로 이 변화의 조적, 구성과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절제와 겸손이란 자기가 구성하고 조직한 관계망의 상대성에 주목하느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131

<논어(論語)>, 인간관계론의 보고
요컨대 과거란 지나간 것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편의를 위한 관념적 재구성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149
덕치주의(德治主義) ... 행정명령으로 백성을 이끌어 가려고 하거나 형벌로써 질서를 바로 세우려 한다면 백성들은 규제를 간섭과 외압으로 인식하고 진심으로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처벌받지 않으려고 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그뿐만 아니라 부정을 저지르거나 처벌을 받더라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덕(德)으로 이끌고 예(禮)로 질서를 세우면 부끄러움도 알고 질서도 바로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153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만 교통순경이 교통법규 위반 차량 네다섯 대중에서 한두 대만 딱지를 끊자 적발된 차량 운전자가 당연히 항의를 하였지요. 저 애도 위반이라는 것이지요. 교통순경의 답변이 압권이지요. '어부가 바닷고기 다 잡을 수 있나요?' 처벌받는 사람은 법을 어긴 사람이 아니라 다만 운이 나쁜 사람인 것이지요.
사카구치 안고의 <타락론(墮落論)>에 의하면 사회적 위기의 지표로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집단적 타락 증후군도 여러 가지 내용이 있습니다만, 우선 이 교통법규 위반 사례와 같이 모든 사람이 범죄자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중의 하나입니다. 적발된 사람만 재주 없는 사람이 되는 그러한 상황입니다. 또 한 가지는 유명인의 부정이나 추락에 대하여 안타까워하는 마음 대신에 고소함을 느끼는 단계가 있다는 것이지요. 부정에 대하여 분노를 느끼거나 추락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한마디로 고소하다는 것이지요. 타인에 대하여 연민을 느끼기보다는 한마디로 고소하다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과 추락에 대하여, 그것도 사회유명인의 그것에 대하여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단계가 집단적 타락 증후군이라는 것이지요. 타인의 부정이 오히려 자신의 부정을 합리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는 부정의 연쇄를 끊을 수 있는 전략적지점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의 본질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가 있습니다만 나는 사회의 본질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인 인간관계에서는 그 다음을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사회란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성 자체가 붕괴된 상태라고 해야 하는 것이지요.  156
동양학에서는 어떤 개념을 설명하는 경우 그 개념 자체를 상술(詳述)하거나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보다는 그와 대비되는 개념을 나란히 놓음으로써 그 뜻이 드러나게 하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160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의 의미는 군자는 자기와 타자의 차이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타자를 지배하거나 자기와 동일한 것으로 흡수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읽어야 합니다. 반대로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의 의미는 소인은 타자를 용납하지 않으며 지배하고 흡수하여 동화한다는 의미로 읽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화의 논리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의 논리이면서 나아가 공존과 평화의 원리입니다. 그에 비하여 동의 논리는 지배, 흡수, 합병의 논리입니다. 동의 논리 아래에서는 단지 양적 발전만이 가능합니다. 질적 발전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화의 논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음과 같이 읽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  163
"극좌(極左)와 극우(極右)는 통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말입니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 격동기에 도처에서 확인되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나는 극좌와 극우가 다 같이 동(同)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국주의적 패권주의라는 극우 논리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극좌 논리는 둘 다 강철의 논리이며 존재론적 구조이며 결국 동의 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점에서 극좌와 극우는 그 근본적인 구성 원리에 있어서 상통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새로운 문명은 이 동의 논리와 결별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화(和)의 논리는 자기오 다른 가치를 존중합니다. 타자를 흡수하고 지배함으로써 자기를 강화하려는 존재론적 의지를 갖지 않습니다. 타자란 없으며 모든 타자와 대상은 사실 관념적으로 구성된 것일 뿐입니다. 문명과 문명, 국가와 국가 간의 모든 차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러한 차이와 다양성이 존중됨으로써 비로소 공존과 평화가 가능하며 나아가 진정한 문화의 질적 발전이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명제가 바로 이러한 논리라고 생각하지요.  164-165
우리의 삶에 잇어서 인간과 관련이 없는 지식이 과연 존재하는가? 없습니다.
자연과학적 지식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적 당파성에 기초해 있는 것이지요. 모든 지식은 사람과 관계되지 않은 것이 없는 법입니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이론(異論)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문제는 타인에 대한 이해입니다. 여러분도 어떤 사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한 적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어떤 측면에 주목할 것인가를 고민하기도 하고 그 사람에 관한 파일을 구하거나 그 살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알려고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그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나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자연의 대상물과는 달리 내가 바라보는 대상이 나를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서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쌍방향으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나와 관계가 있어야 하고 나를 사랑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174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래하 진정한 의미의 지(知)라는 사실입니다.  175
상품미학이란 상품의 표현형식입니다. 상품이 잘 팔릴 수 있도록 디자인된 형식미입니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상품을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통일물로 설명하고 이를 상품의 이중성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상품은 교환가치가 본질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에 종속되는 것이지요. 상품은 한마디로 말해서 팔리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사용가치는 교환가치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에 불과합니다. 상품미학은 광고 카피처럼 문(文), 즉 형식이 승(勝)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감성이 상품미학에 포섭된다는 것은 의상과 언어가 지배하는문화적 상황으로 전락한다는 것이지요.
형식미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미의 끊임없는 변화에 열중하게 되고 급기야는 변화 그 자체에 탐닉하게 되는 것이 상품 사회의 문화적 상황입니다. 상품의 구매 행위는 소비 이전에 일어납니다. 상품의 브랜드, 디자인, 컬러, 포장 등 외관 즉 형식에 의하여 결정됩니다. 광고 카피 역시 소비자가 상품이나 상품의 소비보다 먼저 만나는 약속입니다. 광고는 그 상품에 담겨 있는 사용가치에 대하여 약속합니다. 이 약속은 소비 단계에서 그 허위가 드러납니다. 이 약속이 배반당하는 지점, 즉 그 형식의 허위성이 드러나는 지점이 패션이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사실은 여러번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196-197
지(知)란 진리의 존재를 파악한 상태이고, 호(好)가 그 진리를 아직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한 상태임에 비하여 낙(樂)은 그것을 완전히 터득하고 자기 것으로 삼아서 생활하하고 있는 경지로 풀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상적인 교육은 놀이와 학습과 노동이 하나로 통일된 생활의 어떤 멋진 덩어리(일감)를 안겨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무엇을 궁리해가며 만들어내는 과정이 바로 그러한 것인데 즐거움은 놀이이고 궁리는 학습이며 만들어내는 행위는 노동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 호, 낙의 차이를 규정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 각각을 하나의 통합적 체계 속에서 깨닫는 일이 중요합니다. 지를 대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면 호는 대상과 주체 간의 관계에 관한 이해입니다. 그에 비하여 낙은 대상과 주체가 혼연히 일체화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가 분석적인 것이라면 호는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낙은 주체와 대상이 원융(圓融)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낙은 어떤 판단 형식이라기보다는 질서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 전체와 부분이 혼연한 일체를 이룬 어떤 질서와 장(場)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는 역지사지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호는 대상을 타자라는 비대칭적 구조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와 호를 지양한 곳에 낙이 있다고 생각하지요.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고전 강독의 관점에서 이를 규정한다면 '낙은 관계의 최고 형태'인 셈입니다. 그 낙의 경지에 이르러 비로소 어떤 터득이 가능한 것이지요. 
세계 인식이 정보 형태의 파편적 분석지(分析知)에 머물거나 이데올로지적 가치판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낙의 경지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지에서 호로, 호에서 낙으로, 세계와의 관계를 높여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지요.  199-201

<맹자(孟子)>의 의(義)
<논어>가 선어(禪語)와 같은 함축적인 글임에 비하여 <맹자>는 주장과 논리가 정연한 논설문입니다.  213
오늘나르이 우리 사회는 만남이 없는 사회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서 '차마 있을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자행되는 이유가 바로 이 '만남의 부재(不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만남이 없는 사회에 '불인인지심'이 있을리 없는 것이지요.
식품에 유해 색소를 넣을 수 있는 것은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나지 않기 때문이지요. 식품뿐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얼굴 없는 생산과 얼굴 없는 소비로 이루어진 구조입니다. 당구공과 당구공의 만남처럼 한 점에서, 그것도 순간에 끝나는 만남이지요. 엄격히 말해서 만남이 아니지요. 관계가 없는 것이지요. 관계없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2차대전 이후 전쟁이 더욱 잔혹해진 까닭이 바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 살상이 가능한 첨단 무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237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젊은이들이 노인을 깍듯이 예우합니다. 노인이 타면 얼른 일어나 자리로 안내하고, 노인들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어쩌다 미처 노인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는 그 자리에서 꾸중을 듣는다고 합니다. 의아해 하는 나에게 들려준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이 지하철을 저 노인들이 만들지 않았느냐!'는 것이었어요. 그것도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서 한 젊은이한테 물어보았지요. 물론 잘 아는 젊은이였지요. 이 지하철을 만든 이가 바로 저 노인들인데 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그들의 답변 또한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어요. '자기가 월급 받으려고 만들었지 우리를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 참으로 충격적인 대답이었습니다. 도대체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모스크바의 지하철이건 서울의 지하철이건 젊은이들이 만들지는 않았지요. 노인들이 만든 것이 사실입니다. 똑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모스크바의 젊은이와 서울의 젊은이가 판이한 대답을 하는 까닭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똑같은 사실관계가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는 까닭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241
모스크바의 젊은이와는 판이한 우리나라 젊은이의 대답은 인간관계가 세대간에 어떻게 단절되고 잇는가를 보여주는 예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세대 간의 관계가 그만큼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관계는 종횡으로 단절되어 있습니다.
지속성이 있어야 만남이 있고, 만남이 일회적이지 않고 지속적일 때 부끄러움이라는 문화가 정착되는 것입니다. 지속적 관계가 전제될 때 비로소 서로 양보하게 되고 스스로 삼가게 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남에게 모질게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지속적인 인간관계가 없는 상태에서는 어떠한 사회적 가치도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242

<노자(老子)>의 도와 자연
노자 사상의 핵심은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가는 것 입니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지요. 노자가 가리키는 근본은 자연(自然)입니다. 노자의 귀(歸)는 바로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자의 자연은 천지인(天地人)의 근원적 질서를 의미하는 가장 큰 범주의 개념입니다.  253-254
노자 사상은 상식과 기존의 고정과념을 근본적으로 반성하게 하는 고도의 철학적 주제입니다.  262
'성인은 무위의 방식으로 일하고 무언으로 가르쳐야 한다.
 만물은 (스스로) 자라나는 법이며 간섭할 필요가 없다. 
 생육했더라도 자기 것으로 소유해서는 안 되며
 자기가 했더라도 뽐내지 않으며
 공(功)을 세웠더라도 그 공로를 차지하지 않아야 한다.
 무릇 공로를 차지하지 않음으로 해서 그 공이 사라지지 않는다.'  276
먼저 잘못된 인식을 반성한 다음 올바른 방식으로 실천하기를 요구하는 것이지요. 말없이 실천하고, 자랑하지 말고, 개입하지 말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노자 실천론의 요지입니다.  277
'서른 개의 바퀴살이 모이는 바퀴통은 그 속이 비어있음(無)으로 해서 수레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진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데 그 비어잇음(無)으로 해서 그릇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문과 창문을 내어 방을 만드는데 그 비어있음(無)으로 해서 방으로서의 쓰임이 생긴다. 따라서 유(有)가 이로운 것은 무(無)가 용(用)이 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수레를 타고, 그릇을 사용하고, 방에서 생활하지만 그것은 수레나 그릇이나 방의 있음(有)에만 눈을 앗기어 막상 그 있음의 배후(無)를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숨어 있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지요.  292
현상을 있게 하는 본질을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상과 본질의 관계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293
언어는 소통의 수단입니다 소통은 화자와 청자 간에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 단어가 연상시키는 경험 세계의 소통 없이는 결코 전달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화자의 연상 세계와 청자의 그것이 서로 어긋나는 경우 정확한 의미의 소통은 차질을 빚게 됩니다.
말을 더듬고 느리게 이야기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불일치를 조정할 시간적 여유가 생기는 것이지요. 화자가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전개해가면 청자가 따라오지 못하게 되지요. 느리게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는 언어란 불충분한 표현수단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지요. 언어는 무엇을 지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어가 지시하는 대상을 찾아내고 그 대상에 대한 청자와 화자의 합의가 도출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될 수 있으면 언어를 적게, 그리고 느리게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302

<장자(莊子)>의 소요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를 이야기할 수 없다. 한곳에 매여 살기 때문이다. 메뚜기에게는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 한 철에 매야 살기 때문이다." 이 것은 <장자> 외편(外篇)의 추수(秋水)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309
혹시 나 자신도 우물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성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입니다. 
수많은 담론의 와중에서 우리가 골몰하고 있는 것이 결국은 패권 경쟁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장자> 독법의 핵심적 과제라고 생각하지요.  311
장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물의 필연성을 깨닫는 것이 아니라 즉 도(道)의 깨달음이 아니라 그것과의 합일(合一)입니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이리화정(以理化情)입니다. 도의 이치를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합일하여 소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도를 깨닫는 것은 이론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요. 정서적 공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지요. 머리로 이해하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완전한 이해가 못 된다고 해야 합니다. 정서적 공감이 없다면 그것은 아직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 상태입니다. 장자의 이리화정은 가슴으로 느끼는 단계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있습니다. 사실은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교실과 책과 시험으로 채워진 학교 시절을 끝내고, 싱싱한 삶의 실체들과 부딪치며 살아가기 시작하면 이 말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닿으리라고 생각합니다.  328
"내가 스승에세 들은 것이지만 기계라는 것은 반드시 기계로서의 기능이 있게 마련이네. 기계의 기능이 있는 한 반드시 효율을 생각하게 되고, 효율을 생각하는 마음이 자리 잡으면 본성을 보전할 수 없게 된다네. 본성을 보전하지 못하게 되면 생명이 자리를 잃고 생명이 자리를 잃으면 도가 깃들지 못하는 법이네. 내가 (기계를)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부끄러이 여겨서 기계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네."  329
장자의 논거는 오늘날의 논의와는 그 장을 달리 합니다.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종속적 지위로 전락하고,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경멸적 문화가 자리 잡는 그러한 일련의 반 노동 과정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지요. 좀 더 근원적인 문제를 꿰뚫어보고 있습니다. 일과 놀이와 학습이 통일된 형태가 가장 바람직한 것임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기계는 바로 이 통일성을 깨트리는 것이지요. 노동은 그 자체가 삶입니다. 삶의 지출(支出)이 노동이지요. '지출'이란 단어를 사용하자니 좀 이상합니다. 삶의 '실현'이라고 하지요. 지출 보다는 실현이 더 적절한 어휘라 할 수 있습니다. 노동이 삶 그 자체, 삶의 실현임에도 불구하고 기계로 말미암아 노동이 다른 목적의 수단으로 전락되는 것이지요. 노동을 그 본연의 지위로부터 끌어내리는 일을 기계가 하지요.  331
자본주의적 채용 형식이 아니라면 기계 자체로서는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한마디로 기계가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까? 기꼐는 그 효율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여가를 가지게 하고 그 생산성으로 말미암아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소비를 할 수 있게 합니다. 그로 인한 실업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여가와 소비의 증대가 인간성의 실현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곧 장자의 문제의식입니다.  332
'세상에서 도(道)를 얻기 위하여 책을 소중히 여기지만 책은 말에 불과하다. 말이 소중한 것은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며 뜻이 소중한 것은 가리키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은 그 뜻이 가리키는 바를 전할 수가 없다. 도대체 눈으로 보아서 알 수 있는 것은 형(形)과 색(色)이요 귀로 들어서 알 수 있는 것은 명(名)과 성(聲)일 뿐이다.'  338
'배로 강을 건널 때 빈 배가 떠내려와서 자기 배에 부딪치면 비록 성급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배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면 비키라고 소리친다. 한 번 소리쳐 듣지 못하면 두 번 소리치고 두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세 번 소리친다. 세번째는 욕설이 나오게 마련이다. 아까는 화내지 않고 지금은 화내는 까닭은 아까는 빈 배였고 지금은 사람이 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그를 해칠 수 있겠는가?'
빈 배로 흘러간다는 것이 바로 소요유입니다. 빈 배는 목적지가 있을리 없습니다. 어디에 도달하기 위한 보행(步行)이 아닙니다. 삶이란 삶 그 자체로서 최고의 것입니다. 삶이 어떤 다른 목적의 수단일 수는 없는 것이지요.  343

<묵자(墨子)>의 겸애와 반전 평화
묵가는 유가(儒家)와 함께 당시에는 현학(顯學)이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비주류로 물러났습니다만 당시에는 가장 강력한 주류 학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묵자께서 말씀하기를, 옛말에 이르기를 군자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사람을 거울로 삼는다. 고 했다. 물을 거울로 삼으면 얼굴을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길흉을 알 수 있는 것이다.'  382
순자는 묵자를 비판하여 '실용에 눈이 가려 문화를 모른다' 즉 문화라는 소비가 생산을 증대시킨다는 반론을 폈다. 
절용이 미덕이다. 아니아.. 오늘날도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습니다. 
자본주의 체제하의 생산과 소비 수준은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을 기준으로 하여 그 규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 축적 논리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390

<순자(荀子)>, 유가와 법가 사이
순자는 대학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학문적 권위나 유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하여 남아 있는 자료는 매우 소략합니다. 그가 유가의 이단(異端)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
일반적으로 유학은 객관파(客觀派)와 주관파(主觀派)로 나누어집니다. 사회질서와 제도를 강조하는 순자 계통이 객관파로 분류되고, 반대로 개인의 행위를 천리(天理)에 합치시키고자 하는, 다시 말해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는 맹자 계통이 주관파로 분류됩니다. 이러한 차이는 후에 기학파(氣學派)와 이학파(理學派)로 나누어지기도 합니다.
순자는 예(禮)에 의한 통치를 주장합니다. 바로 이 점에서 덕(德)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주관파와 분명한 차이를 보입니다. 주관파에서도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계승하여 예를 중요시합니다. 그러나 순자의 예는 공자의 예와는 달리 선왕(先王)의 주례(周禮)가 아니라 금왕(今王)의 제도와 법을 의미합니다. 대체로 안정기에는 예가 개인의 수양과 도덕규범으로 해석되고 사회 변혁기에는 사회질서와 제도의 의미로 해석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국 말기가 급격한 변혁기였음은 물론입니다. 순자의 예는 법의 의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순자를 법가(法家)의 시조로 보는 견해가 여기서 나오는 것이지요. 전국 말기의 상황에서는 순자의 주장이 패자(覇者)들의 관심을 더 많이 끌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법가 이론을 집대성한 한비자와 진시황을 도와 천하를 통일한 진나라 재상 이사(李斯)가 순자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들이지요.  404-405
'하늘은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하여 겨울을 거두어가는 법이 없으며, 땅은 사람이 먼 길을 싫어한다고 하여 그 넓이를 줄이는 법이 없다. 군자는 소인이 떠든하고 하여 할 일을 그만두는 법이 없다. 하늘에는 변함없는 법칙이 있으며, 땅에는 변함없는 규격이 있으며, 군자에게는 변함없는 도리가 있는 것이다.'  407
하늘만을 하늘같이 바라보거나 하늘을 칭송하는 숙명론을 벗어던지고 스스로 운명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운명이란 인간의 실천적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순자의 사상 체계입니다.  
순자의 체계에서 하늘을 칭송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늘을 원망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람으 ㅣ도리 여하에 따라서 그렇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409
맹자의 성선설이든 순자의 성악설이든 우리는 본성론 자체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선악 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올바른 태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회로 자연을 재단하는, 이른바 꼬리가 개를 흔드는 격이기 때문입니다.  414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담론 환경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나는 것이 바로 인간 본성 문제입니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는 것이지요. 시장 원리를 뒷받침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제도가 바로 '역사의 종말'이라는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묵자는 인간 본성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지와 같은 것입니다. 묵자는 소염론(所染論)에서 인간의 본성은 물드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416
순자의 성악설..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의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하는 논리의 일환입니다. 순자의 이론 체계는 교육이라는 후천적 훈련과 예(禮)라는 사회적 제도에 의하여 악한 성(性)을 교정함으로써 사회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순자는 모든 사람은 인의(仁義)와 법도(法度)를 알 수 있는 지(知)의 바탕을 갖추고 있으며 또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순자의 성악설은 인간에 대한 불신이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순자는 모든 가치 있는 문화적 소산은 인간 노력의 결정이라고 주장하는 인문 철학자임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417
순자의 인문 철학... 예란 '사람의 욕구를 기르고 그 욕구를 충족시키되, 욕망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거나 물(物)이 욕망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일이 없도록 함으로써 양자가 균형 있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순자의 예론의 기본적 내용은 법과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법과 제도가 안정적으로 작동케 하기 위해서 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이지요. 도량(度量)과 분계(分界)가 안정적으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교육에 의하여 보완되어야 한다는 것이 순자의 교육론입니다.  421
'나는 말한다. 학문이란 중지할 수 없는 것이다. 푸른색은 쪽에서 뽑은 것이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된 것이지만 물보다 더 차다. 먹줄을 받아 곧은 나무도 그것을 구부려서 둥근 바퀴로 만들면 컴퍼스로 그린 듯 둥글다. 비록 땡볕에 말리더라도 다시 펴지지 않는 까닭은 단단히 구부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게 되고 쇠는 숫돌에 갈면 날카로워지는 것이다. 군자는 널리 배우고 날마다 거듭 스스로를 반성하면 슬기는 밝아지고 행실은 허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높은 산에 올라가지 않으면 하늘이 높은 줄 알지 못하고 싶은 골짜기에 가보지 않으면 땅이 두꺼운 줄 알지 못하는 법이다. 마찬가지로 선비는 선왕의 가르침을 공부하지 앟으면 학문의 위대함을 알 수 없는 것이다.'  422
순자가 교육론을 전개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모든 인간은 성인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426
대부분의 유가가 치인(治人)에 앞서서 수기(修己)를 요구합니다. 이 경우의 치인이 순자의 체계에서는 예(禮)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수기보다는 치인을 앞세우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수양에 앞서 제도의 합리성과 사회적 정의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덕성은 선천적인 것도 아니며 개인의 수양의 결과물도 아니며 오로지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순자는 개량주의적 이기보다는 개혁주의적입니다.  424
그에게 일관되고 있는 것이 인간에 대한 신뢰라는 사실입니다.  425

<한비자(韓非子)> 법가와 천하 통일
법가를 읽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법가의 현실성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성이란 점에 있어서 다른 학파와 어떠한 차별성을 갖는 것인가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431
세상이 변화하면 도를 행하는 법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법가의 현실 인식입니다.  433
한비자가 주장한 법의 기본 성격을 종함해보면 첫째 법의 성문화, 둘째 전국적으로 공포된 공지법, 셋째 전국적인 법의 통일성이라는 세 가지 요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444
춘추전국시대란 무도한 시대이며 혼란의 극치를 보이는 시대입니다. 임금을 죽인 것이 36번, 나라를 멸망시킨 것이 52번이었습니다. 이러한 하극상과 혼란이 재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법가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관료에 대한 견제입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관료는 언제든지 제후나 대부의 지위로 바뀔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관료들의 이반(離叛)을 통제하고 견제하지 못하는 한 전기(前期)의 모순과 혼란이 반복되지 않을수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군주의 술치는 군주의 은밀하고 부정적인 권력이라기보다는 관료제라는 새로운 제도의 작동 원리로 이해해도 좋을 것입니다.  46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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