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가 힘겨움 앞에서 선택한 해결책은 매번 도망이었다. 그러면서도 비겁한 도망자가 되기 싫어 ’여행’ 이라는 말로 포장하며 살아왔다. 7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소설가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에서 인용ㅎㄴ 데이비드 실즈의 말이다. 34

’잘츠부르크의 소금 광산 깊은 곳에 겨울 잎이 떨어진 나뭇가지를 던져둔 후 두세 달이 지나 꺼내 보면 그것들은결정들로 반짝인다. (중략) 나뭇가지의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란 힘들다. 내가 결정화라고 부르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의 모든 모습에서 새로운 장점을 끌어내려는 영혼의 작용이다.‘
"스탕달이 쓴 《연애론》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야. 스탕달은 사랑이란 몇 가지 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하는데, 그 단계 중에 두 번의 ‘크리스탈리자시옹’이 있다고 했어.”
“크리스털 깨지기 쉽다는 소린가?"
“크리스털이 유리냐? 크리스털은 잘 안 깨지거든. 크리스탈리자시옹은 '결정 작용'이라는 의미야. 스탕달은 사랑이란 일곱 단계를 거치며 진행된다고 했어. 상대에 대한 '감탄'으로 시작해 '접근'하게 되고, '희망'을 갖게 되면서 드디어 '사랑이 탄생'하는데, 그다음에 나타나는 감정을 '제1차 크리스탈리자시옹'이라고 했지. 그가 말한 첫 번째 크리스탈리자시옹이란 사랑하는 상대가 무슨 짓을 해도 반짝이는 크리스털처럼 예뻐보이게 된다는 거야. 너도 누군가가 그렇게 보인 경험이 있겠지? 나는 사랑의 단계에서 이 결정화 단계가 정말 좋아.”
“그 단계를 누가 싫어하겠냐? 그다음 단계는 뭐래?"
“의혹. 상대의 사랑을 의심하기도 하고, 자기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진짜 사랑일까 의심하게 되는 단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사실이지. 그래서 많은 연인은 이 여섯 번째 단계에서 이별하게 되지만, 이 고비를 넘기면 제2차 크리스탈리자시옹 단계로 발전한다는 거야. 두 번째 결정화 단계까지 이르면 연인은 서로에 대해 신뢰할 수 있게 된다고 해. 서로가 믿음으로 단단히 묶이는 단계라고 할까?”
먼 산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일곱 번째 단계까지 도착했던 것 같은데…. 그 단계에 정착하지 못한 거였구나. 스탕달이 사랑을 일곱 단계로 정의한것은 그다음 단계, 여덟번째 단계부터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일까? 여덟 번째 단계는 이별일까? 이별 후 남는 감정은 미련일 뿐일까? 미련은 더이상 사랑이 아닐까? 나는 겨우 미련을지우려고 이곳까지 온 것일까? 아니다. 나는 내가 했던 사랑에예의를 갖추고 싶었다. 고작 사랑 따위라고 취급하고 쉽게 털어내면 그 사랑을 한 나도 고작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일 테니까. 39-41

나이를 먹는다는 건 자기 안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품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더 풍요로워지는 것일테다. 89

레이첼 카슨 <침묵의봄> ‘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는 것으르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91

로마에 살면서 이탈리아가 주요 7개국 정상회담인 G7에 속하는 게 황당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이탈리아는 정치 부패가 극심할뿐더러 사회 규범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문화유산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잘 보조한다. 아무리 썩어빠진 정ㅊ치인이라 해도 문화재 관리비에는 절대 손대지 않는 곳이 이탈리아다. 나는 그런 이탈리아가 부럽다. 또 그만큼 영추문 돌담에 시멘트를 발라놓은 게 속상하다. 93

사데크 헤다야트 <눈먼부엉이>
‘삶에는 마치 나병처럼 고독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잠식하는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 고통은 다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다. 타인들은 결코 그런 고통을 믿지 못하고 정신 나간 이야기로 치부할 뿐이다. 만약 누군가 그 고통에 대해서 묘사하거나 언급이라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남들의 태도를 따라서, 혹은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의심 섞인 경멸의 웃음을 지으며 무시해버리려고 한다. 아직 인간은 그런 고통을 치유할 만한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105-106

서로 달ㄹ 낯선 것뿐인데 사람들은 왜 그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세상에는 다른 것보다 틀린 것이 더 많은데, 사람들은 틀린 것보다 다른 것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143

누군가를 자유롭게 하려면 냉정해져야 한다. 그 누군가와 내가 엉키지 않고 분리되어야 가능하다. 쿨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인간의 감성은 끈끈하게 엉키는 데서 생겨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쿨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44

요네하라 마리의 《프라하의 소녀시대》에는 이런 문장도 있었다.
‘다른 나라, 다른 문화, 다른 나라 사람을 접하고서야 사람은 자기를 자기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애를 쓴다는 사실. 자신과 관련된 조상, 문화를키운 자연조건, 그 밖에 다른 여러 가지 것에 갑자기 친근감을 품게 된다고. 이것은 식욕이나 성욕과도 같은 줄에 세울 만한, 일종의 자기보전 본능이랄까 자기긍정 본능이 아닐까.‘
프랑스인들은 누가 뭐래도 꿋꿋하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자신들의 문화를 근사하고 돋보이게 만드는 기술자들이다.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잘난 척한다 싶을 때도 있지만 스스로가 자기 것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그것이 소중한지 알겠는가? 자기가 자기를 보전하고 긍정하지 않으면 누가 그렇게 해줄 것인가? 요네하라 마리의 말대로 그것이 '본능'이라면, 본능을 거스르기보다 깨닫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한 것보다 자신, 가족, 민족처럼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에 더 집착하는 것 같다.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강한 집착이 요네하라 마리가 말하는 '본능'이 아닐까? 여러 외국에서 살아온 나는 점점 본능에 충실하게 된 것 같다. 171-172

사람들은 흔히 알아야만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몰라야 보이는 것들도 많다. 그것은 마치 이성과 감성의 차이와 비슷하다. 알고 봄면 더 많이 볼 수 있어 지식이 늘어난다. 모르고 보면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어 자신만의 시선으로 남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190

가장 강한 사랑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사랑은 세상에서 가장 히세고 무게감이 있어 그 사랑을 받는 사람은 흔들려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276

프랑스는 교육비에 국가 예산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교육열이 대단히 높은 나라이다. 초중고등 교육과정에서 고등학교 졸업시험 이외에는 시험이 따로 없는 프랑스의 학교에서는 각 과목의 선생들이 내주는 숙제의 결과가 성적이 된다. 객관식 문제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데 부모들은 그 모든 숙제를 세세히 체크한다. 아이의 학습능력 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교사나 부모가 면담을 요청해 문제점을 찾아내려 애쓴다. 면담은 아주 빈번히 이뤄진다. 교사와 부모 모두 아이에게 높은 관심이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육열이라면 한국만 한 곳이 없다. 다만 프랑스와 한국 두 나라의 교육열은 상당히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교육관의 차이에서 오는 다름이다. 한국 학부모들의 교육열은 광적이다. 그들은 미치고 싶어 미친 게 아니라 미칠 수밖에 없어 미쳤다며 교육제도를 탓하지만, 내 생각에는 어떤 교육제도를 들이대도 한국 학부모의 광기는 식지 않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어떤 부동산 제도를 시도해도 성공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도를 바꾸기 전에 학부모들의 가치관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무슨 수로 말인가? 320-321

한국 학부모의 교육관에 변화를 주기가 힘들다면 제도라도 잘 만들어야 하는데 한국의 교육제도와 방식에는 문제가 많은 게 사실이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항상 정답이 존재한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답의 반대말은 오답이다. 내 의견이 정답이라 믿으면 나와 다른 의견은 오답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정답이냐 오답이냐 그것이 문제로 다'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사람은 극단적이고 척박해진다.
세상에 정답이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 정답을 찾지 못하면 쉽게 혼란을 겪게 된다. 또 치열한 경쟁 구도는 불행히도권위주의로 나타나는 것 같다. 경쟁에서 이긴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 믿게 되고 그 믿음은 권위적인 태도로 나타난다. 이것이 물질만능주의와 결합하면 갑질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프랑스의 교육제도와 학부모의 교육관에 대해 완전히 긍정하지는 않는다. 프랑스의 논거와 논리를 강조하는 교육은 생각의 폭을 넓히고 명확하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지만 수많은 독불장군을 탄생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논거와 논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다 보면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굽히려 들지 않고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 처음 유럽에 살기 시작하면서 유럽인들은 '미안하다'는 한마디면 될 것을 왜 매번 변명부터 하는지, 왜 매번 핑계부터 늘어놓는지 정말 궁금했다. 내 눈에 ‘변명과 핑계’로 보였던 것이 그들에게는 ‘논거’였던 것이다. 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이 학습을 통해 습관화된 그들은 자기 합리화에 익숙한데, 내게는 그 모습이 그저 뻔뻔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322-323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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