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서문(페터 엥겔만(Peter engelman))


이 책은 철학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지식인들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6


두 사람은 중요한 철학적 개념들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사건(the Event)이나 실재(thw Real)와 같은 개념들과 관련해서 그들은 서로 다른 입장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상상계의 역할 또는 정치에 대한 이해에서도 서로 의견을 달리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들은 철학적 개입이 철학적 사유의 특유성으로부터 비롯되어야 하고,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한계를 확실하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한다.  8



1 알랭 바디우 - 사건을 사유하기


진정한 철학자는 중요한 문제들이 무엇인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  16


철학적 상황으로 분류될 수 있는 세 가지 예를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예....철학은 선택으로서의 사유, 결정으로서의 사유에 직면하게 되고, 철학의 고유한 임무는 선택에 대해 명료하게 설명하는 것이 된다. .. 실존의 선택 혹은 사유의 선택  17, 19


두 번째 ...거리에 대해 사유하고 고려하는 것, 또는 이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창안해 내는 것이 바로 철학이다. 22


철학적 상황에 대한 첫 번째의 정의 : 선택, 즉 결정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기. 철학적 상황에 대한 두 번째 정의 : 권력과 진리들 사이의 거리를 규명하기.  22


세 번째 ...예외를 사유해야 한다. 일상적이지 않은 것에 대해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아야 한다. 삶의 변형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24


선택과 거리, 그리고 예외를 다루는 것이 철학이 수행해야 할 세 가지 큰 과업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철학이 삶 속에서 학문적 분과와는 다른 어떤 중요성을 가지려면 말이다.  25


가장 심오한 철학적 개념들은 우리에게 "만약 당신의 삶이 어떤 의미를 지니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사건을 받아들여야만 하고, 권력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확고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라고 말해 준다.  26


플라톤은 한때 철학이 깨어남이라고 말했다. 이 깨어남이 잠과의 어려운 단절을 함축한다는 것을 완벽하게 잘 알고 있었다. .. 역설적인 관계, 관계 아닌 관계, 균열의 상황이 존재할 때마다 철학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은 정당한 것이 된다.

나는, '어떤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철학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철학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것에 대한 사유가 결코 아니다. 철학은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것에 대한 사유가 결코 아니다. 역설적인 관계들이 존재하기 ㄸ매ㅜㄴ에, 단절들이나 결정들, 거리들, 사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철학이 존재하는 것이고 또 철학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28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관련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관계 아닌 관계가 존재하는가? 통약 불가능한 요소들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긍정적일 경우 우리는 선택과 거리, 예외가 존재한다는 결론을 끌어낼 것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의견에 대한 단순한 고려로부터 철학적 상황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철학적 참여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조건들 아래서이다. 이렇게 해서 철학적 참여는 철학적 기준들을 사용하면서 철학이라는 영역에 대한 자신만의 고유한 확신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32-33


나는 철학적 참여가 갖는 단독성(singularity)을 강조하고 싶다.  33


철학은 정치적 기호들을 토대로 작동할 수 있으며 정치적 기호들을 사용함으로써 문제들을 구성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철학이 정치 자체와 혼동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33


일반적인 의미에서 철학적 참여는 이질적인 것이다 이질성을 소유하지 못한 채 그저 진부한 것이 될 때, 이와 같은 역설에 몰두하지 않을 때 철학적 참여는 꼭 철학적일 필요가 없는 정치적 참여, 이데올로기적 참여, 시민의 참여가 된다는 의미이다.철학적 참연느 그것의 내적 이질성에 이해 특정지어진다.  35


보편성이란 정확하게 무엇인가? 나는 보편성에 대한 여덟 개의 명제들로 이 질문에 답해 보려 한다. 

명제 1 사유는 보편성의 고유한 매개이다. 

'사유'라는 개념을 가지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주체, 그러니까 기존의 지식이 갖는 총체성을 중단시키는 과정을 통해 구성되는 주체이다. 또는 자크 라칸(Jacques Lacan) 식으로 지식 내부에 구멍을 내는 그런 주체를 말한다.  36-37


비추이적 관계 : 추이성은 귀속과 포함의 일치나 균형을 통해 온전히 닫힐 수 있는 하나를 구성한다. 그러나 바디우에게 하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상황이나 집합을 요소로 귀속될 수 없어 셈할 수 없는 잉여를 포함한다. 셈할 수 없는 것으로 남아 집합을 불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내용 없음으로 말미암아 셈을 가능하게 하는 공백이 바로 사건의 자리이다. 상황이 자신의 부분으로 귀속될 수 없는 공백을 품게 될 때, 우리는 비추이성의 지배를 받게 된다. 상황의 셈에 따라 규정되거나 지식으로 만들어질 수 업슨 '유적'진리. 특수성이 식별할 수 없는 공백인 단독성. 이들은 모두 상황이 자신 속의 공백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을 온전하지 못하게 하는 고백을 품고 잇는 관계(아닌 관계)가 바로 비우이성인 것이다.  39


명제 2 보편적인 모든 것은 단독적인 것 또는 단독성이다.


명제 3 모든 보편성은 사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사건은 상황의 특수성과 비추이적 관계를 맺는다.


사건에 대한 수정주의적 관점은 보편성과 단독성 사이의 연관 관계를 타깃으로 삼는다.  42


보편성을 위한 토대가 마련되기 위해서는 만남이나 선언이 함축하는 단독성, 다시 말해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그러한 단독성이 존재해야 한다.  43


명제 4 보편성은 처음부터, 결정 불가능한 것에 대한 결정으로서 스스로를 제시한다.   


적절한 신분증명서를 갖추지 못한 채 여기 프랑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 나라의 일부분인가? 그들은 여기에 속하는가? '아마도, 그들이 여기서 살고 일하고 있기 때문에', 또는 '아니, 그들이 프랑스인임을, 합법적으로 여기 살고 잇음을 보여주는 서류들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불법 이민자'라는 용어는 가치의 불확실성 또는 가치의 무가치를 지시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여기 살고 있지만 정말로 여기 속하지는 않는 사람들, 그런 의미에서 이 나라 밖으로 쫓겨날 수도 있는 사람들, 프랑스에서 노동자들로서의 그들의 현존이 갖는 가치의 무가치성에 노출될 수 있는 사람들을 지시하는 것이다.  45-46


- 상황의 실재(그것이 이미 거기 있었다는 점에서)로서,

- 그렇지만 가치의 급진적 변화를 경험하는 어떤 것으로서, 이는, 그것이 결정 불가능한 것이었지만 이제 결정되었다는데 기인한다. 이전에는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이다.  47


명제 5 보편성은 내포적 형식을 갖고 있다.


<메논>에 등장하는 플라톤의 해명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만약 한 노예가 기하학이라는 사건의 토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 그는 주어진 정사각형보다 면적이 두 배나 큰 정사각형의 구성을 확증할 수 없는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업삳.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그에게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그가 그것을 주체화하는 데 동의한다면 그는 문제가 된 정사각형의 구성 또한 주체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정사각형의 구성을, 그리스에서의 기하학의 출현에 의해 시작된 현재 속에 각인시키는 내포는 이렇게 해서 보편적으로 합당한 것이 된다.  49-50


명제 6 보편적인 것은 일의적인 것이다.


언표가 사건의 사라짐과 내포적인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는 한, 언표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존재나 의미의 질서라기보다는 '행위'의 질서이다. 그리고 바로 이 행위의 영역이 일의적이다.  52


명제 7 모든 보편적 단독성은 완전해질 수 없는 상태 또는 열린 상태로 남아 있다.


명제 8 보편성은 무한한 유적 닷성의 충실한 구겅에 다름 아니다.


유적 다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내가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주 단순하게 저일하자면 그것은 상황의 부분집합, 그러니까 백과사전적 지식을 특징짓는 속성들 중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 부분집합을 지시한다. 다시 말해 상황에 소속되거나 상황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하나이지만 정체성이나 어떤 특수한 자질을 소유함으로써 생기는 결과로 환원돌 수 없는 바로 그 다수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55


이렇게 해서 보편성은 우연적인 대리보충의 기회에 근거해 발생하는 것이 된다. 보편성은, 그것의 토대가 되었던 사건이 사라졌음을 보여주는 흔적으로서 단순하고 사심 업슨 언표를 남긴다. 보편성은 잉ㄹ의적 행위속에서 자신의 절차를 시작하고, 바로 이 일의적 행위를 통해서 가치를 결여한 것이 갖는 가치가 비로소 결정되는 것이다. 보편성은 이러한 해우이를 그것의 결과들을 창안하게 될 주체 - 사유와 연관시키고, 무한한 유적 다수성을 충실하게 구성한다. 그리고 무한한 유적 다수성은 자신의 텅 빔으로 말미암아 투키디데스가 자신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가 바로 이것(이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함축하는 역사적 특수성과는 다른 것이다)이라고 선언했던 '영원한 사로잡힙'(ktema es aiei)이 된다.  56


보편성에 대한 여덟 가지 명제들과 역설적 상황들에 대한 정의를 결합한다면, 여러분은 철학자들이 현재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답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될 것이다.  56-57




2 슬라보예 지젝 - '철학은 대화가 아니다'


철학은 대화가 아니다.  62


철학적 대화는 없다.  62


우리가 집단적으로 대면하게 되는 대안들이 이접적 종합을 형성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 다시 말해 대안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릇된 것일 수도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 철학자가 취하는 첫 번째 제스처가 되어야 한다. 철학자는 논쟁을 구성하는 바로 그 개념들을 바꿔야만 하는 것이다.  63


내가 보기에 일단의 요구들에 직면해서 철학자가 취해야 하는 첫 번째 제스처는 논쟁을 구성하는 개념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65-66


쾌락주의라는 주제로 넘어가 보자. 쾌락주의와 관련해서도 또한 우리는 어떤 입장을 정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가치들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믿음을 잃어버린채 자기중심주의를 키워나가며 쾌락을 추구하는 데에만 삶을 투자하는 상황에서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 이에 대한 입장 역시 두 부류로 나뉜다. 이미 굳어진 모든 도덕적 태도들은 폭력 행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주디스 버틀러는 독이어로 출간되 그녀의 최근 책 <윤리적 폭력 비판>에서 바로 이 전형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우리가 융통성 있는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은 다시 한 번 노마드적 주체성이라는 주제와 마주치게 된다. 또 다른 부류에서는,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으 ㄴ고정된 가치와 연관 관계들이라는 대답을 제공한다. 물로 ㄴ여기서 우리는 또다시 문제를 직접적으로 공략해야 한다. 논의를 구성하는 개념들을 브레히트적 소격 효과의 형태로 표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상황 자체는 이렇게 해서 상당히 이상해진다. "아니, 잠깐만. 우리가 지금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지?"철저한 금지로 특징지어지는 소비 사회 속 쾌락주의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즐겨라. 그러나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이 항상 덧붙여진다. "물론 너는 즐겨야 해. 하지만 정말로 즐길 수 있으려며 ㄴ먼저 조기을 하러 가야 하고 다이어트를 해야 해. 그리고 어느 누구도 성적으로 괴롭혀서는 안돼." 결국 이는 총체적인 육체적 규율에 다름 아닌 것이 된다. 다시 오늘날 우리가 믿음을 잃어버렸다는 상투적 문구로 되돌아가 보자. 오늘날 우리가 전보다 더 믿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 이는 거짓 논쟁이며, 로버트 팔러(Robert Pfaller)가 보여주었던 것처럼 오히려 전보다 더 믿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논쟁을 구성하는 개념들은 그러므로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하지 않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철학자들 대부분은 이런 높은 수준의 도전을 향해 발을 대닌지 않은 채 우리에게 거짓 대답들을 안겨주고 있다.  67-68


철학적 패스트푸드와 같은 대답, 다시 말해 심오한 설명으로 행세하지만 실제로는 사유 자체를 필요 없게 만드는 대체물에 불과한 그런 대답.  69


유전자공학과 관련해서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논의할 수 있을까? 유전자공학이 우리의 자유와 자율성을 위협하는가? 내 생각에 이는 잘못된 질문들, 그러니까 여하튼 간에 진정한 철학적 질문들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유일한 철학적 질문은 오히려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본성, 인간적인 존재 방식이라 이해되는 것을 재규정하도록 강요하는 어떤 것이 유전자공학의 결과물들 속에 존재하는가?  72


지금 나는, 정상적인 철학이 존재할 것이라는 꿈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철학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비정상성에 다름 아닌 것인지도 모르낟. 나는 이런 방식으로 바디우의 이론을 읽고 싶다. (바디우와 나느 ㄴ서로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 미워한다. 우리 둘은, 만약 내가 권력을 차지하게 되면 당신은 수용소로 가게 될 것이라는 농담을 자주 주고 받는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나는 또한 철학의 조건들에 대한 바디우의 명제들, 다시 말해 철학은 정의상 과도한 것이라는 명제, 그리고 철학은 말 그대로 외부 조건들(그것들이 사랑, 정치, 과학, 예술 어느 것이든)과의 과도한 연관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그의 명제에 깊은 동의를 표하는 바이다.  80


전치(displacement)를 통해 출현하는 이런 이질성의 순간에 여러분이 관심을 가지도록 이끌고 싶다.  81


철학은 항상 유기적 사회의 와해를, 최소한의 틈을 필요로 한다.  81


데카르트 <방법서설>의 두 번째 섹션에서 이와 관련된 데카르트의 유명한 주장을 발견할 수 있는데, 거기서 데카르트는 여행을 하면서 어떻게 다른 나라의 관습들이 갖는 이질성을 목격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다른 눈으로 바라볼 경우 우리 자신의 문화 역시 마찬가지로 이상할 수도, 심지어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바로 이곳이 철학이 시작되는 지점 또는 모든 철학자들이 채택하는 전치의 장소이다.  82


철학이 전하려고 하는 근원적인 메시지는, 우리가 특수한 동일시를 넘어서서 즉각적으로 보편성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83




3 토론 


바디우 : 내가 보기에 철학적 참여와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것이 종종 무엇보다 비판적인 것으로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 의구심을 품다. 비판 정신 등과 같은 말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철학의 과업은 무엇보다 부정적인 것이 됩니다. 나는 이런 생각이 완전히 뒤집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 개입의 본질은 정말로 긍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죠. 철학적 개입의 본질이 그정적인 것으로 규정되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역설적인 상황에 개입할 경우 또는 관계라고 할 수 없는 관계에 개입할 경우 새로운 사유의 틀을 제안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역설을 사유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는 것이, 모든 것이 마해지고 행해졌다는 유일한 증거가 될 것입니다. .. 철학은 근본적으로 개념들의 구성에 다름 아닌 것이라고 들뢰즈는 말하는데,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차원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철학을 비판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에 의심을 품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옳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94-95


지젝 : 공식적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모든 것이 허용되고 검열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일은 매끄럽게 진행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에 속아서는 안돼요.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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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를 묶어 주는 것은 인권의 보편적 실현, 민주적 참여, 모두를 위한 복지의 원칙에 부합하는 전 지구적 평화라기보다는 악(惡)과 고통.  5


모든 지구민들은 자신의 행동을 책임져야 합니다.  10


이 시대의 정점에서 의식 있게 살기! 그것이 스페탄 에셀의 요구다.  14


바뀌어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유토피아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우리는 꿈꿀 수 있고 꿈꾸어야 합니다! 셰익스피어는 "우리가 실패한 것은 꿈꾸기를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했어요. 멋진 말이죠. 우리는 꿈꾸어야 하고, 또한 우리의 꿈이 우리가 바라는 만큼 실행되지 않았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스스로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미 이룬 것으로 살아가고, 그로써 충분하다고 생각하죠. 그러므로 우리는 분노하고 참여하는 소수를 필요로 합니다. 역사의 시기 시기마다 그런 소수가 있었어요.  50


오늘날 참여할 수 있는 방버은 최소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는 비정부기구, 즉 NGO에 참여하는 방법이죠.  54


지정부기구에 참여하는 것으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정당으로 들어가 정부에 더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합니다.  55


나는 요즘 지구상에 곡물과 식수가 부족해지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기후 변동이 심해지면 어떻게 되는지를 다루는 책들을 많이 읽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이슈에 관심을 갖게 하는 책들을 더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깨어나게 될 겁니다.  74





분노하라


참여하라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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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서문 


에셀의 현실주의는.. 절망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신, 현실이 허락하는 저항의 방식을 찾아내서 밀고 간다.  16


저자의 평생 사명은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어머니로부터의 과제였다.  17


이젠 누구도 개인의 행복을 해방과 승리의 '그날'이 온 뒤에 누려야 할 열매로 밀쳐두고, 대의를 위한 행군에 투신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운동의 경건주의는 운동가의 삶이 연인의 달콤한 살내음에 대한 열정과 뒤섞일 수는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개인의 일상에서 누리는 희열은 내비치지 말아야 할 금기로 가두고 있다.  19


세계 인권 선언 내용


나이가 주는 특권


나는 우리 세대가 건설하고자 했던 보다 나은 세상과 그 세상의 주춧돌로 삼은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우고, 북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이나 산업화된 국가들의 불완전한 민주주의가 그런 가치를 어떻게 조롱했는지를 지적하면서 독자들에게 분노할 것을 요구했다.  27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거부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며, 분노의 당위를 호소하는 격렬한 메시지의 전파자로서.. 나는 유럽 전역을 휩쓸고 다녔다.  28


내가 살아온 삶은 오늘날 내가 누리는 이 순간을 정당화하는가? 이 책을 탄생시킨 것은 바로 이 질문이었다.  28


저항하라, 그것이 창조다. 창조하라, 그것이 곧 저항이다.  32


지난 수십 년 동안 사람들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하고 체념해버렸다. 권력을 쥐기 전에는 모이는 것조차 불가능한 야당 인사들이건, 이미 진 싸움이라 판단해 포기한 채로 위험한 권력이 쟁취한 승리에 무저항으로 일관하는 무리이건 말이다. 그들에겐 늘 부족한 자질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을 존엄한 존재루 구별짓는 일이다.  37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란 곧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것이다. 이는 종종 모종의 술책에 의해 이질적인 것에 대한 거부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그 누구도 위엄을 덜 갖춘 존재로 하등하게 취급될 수는 없다. 그런 취급 자체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분노하는 것이야말로 정당한 행동이다.

이것은 양심의 문제다.  3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양심 교육이다. 

어느 날 장클로드 카리에르가 나에게 인간의 선의와 본성에 대해 장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 일인지를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루소의 자연주의라는 신화가 사람들로 하여금 원하는 방식대로 행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이고, 도덕적 타락의 원천, 즉 사회의 권력구조는 저절로 제거될 것이라 믿게 만든다고 여겼다.  39


현대 민주주의는 특권층의 사유재산을 지키기 위해 탄생한 법이 다수의 진정한 희생자들을 초래하였을 때, 이들의 실존적 요구에 대해서는 무감하게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열의를 갖고 비판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지 않는 경향이 있다.  41


슬로베니아의 대통령 밀란 쿠찬은 카를 마르크스가 했던 이 말을 즐겨 인용했다. "자연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이 갈등에서 우리는 어느 쪽이 유죄인지 잘 알고 있다."  43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거부하는 일은 첫걸음에 불과하다. 우리는 반드시 정신의 진보를 따라야 하며, 창조적인 사고로 고취된 현실공동체의 각성을 향해 진화해가야 한다.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변화에 대한 불안, 하이데거가 말한 것처럼 장차 다가오는 것을 두 팔 벌려 끌어안지 못하게 하는 망설임만이 우리를 여전히 보수적이고 소심한 부정(否定 아닐 부, 정할 정)속에 가둘 뿐이다.  44


과학자와 정치가. 이들 사이에 장사꾼이 끼어들어 상호 간에 득이 되는 비전을 제시한다면, 오늘날 과학의 역할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유명한 경구 하나를 인용하겠다. "양심 없는 과학, 인간을 소외시키는 과학은 과학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의 과학화가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다. 이런 현상은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가진 희망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에 위험하다.  46


나노 기술이 불러올 미래에 대해 들을 때면, 나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노 기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지난 30년간 금융 경제가 지배해온 사고 방식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으며, 불행하게도 이번에는 과학의 탈을 쓴 새로운 형태로 연장되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정부가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분야, 특히 과학적인 발견을 실용화하는 공공 투자의 방향성에 대한 공개 토론이 부재한다는 사실을 통탄한다.  47


삶, 죽음, 도덕, 사랑, 증오는 모두 '양(量)적 지배'를 비켜 간다.

바로 여기에 예술의 우월함이 잇다. 초월적 본성을 지닌 시, 현실을 정화해 표현하는 연극, 그리고 상상을 영상으로 전환하는 꿈 같은 연출 방식의 영화, 특히 이 모든 영역을 총괄하는 소설이 그렇다. 소설은 사회과학, 심리학, 사회학보다 훨씬 더 멀리 나아간다. 소설은 구체적인 인간 존재들을 그들의 주관성 속에, 그들이 속한 사회적 그룹 속에 놓고 무대 위에 세운다.  51


메를로퐁티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확고한 반(反)데카르트주의자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고백한 바 있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분리할 수 없는 합성체이다."  52


나는 에드가 모랭이 주장했듯 근본적으로는 모든 것이 다 개혁되어야 한다고 본다. 경직되고 관료화된 행정과 조직들, 경제와 재정 구조, 분배체계만이 개혁의 대상인 것은 아니다. 모든것, 식량, 소비를 비롯한 이 모든 개혁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상호 연대적이기도 하다.  56


교육개혁이 반드시 더해져야 한다. 교육개혁 없이는 다른 개혁들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59


장클로드 카리에르는 "희망은 우리의 적이다"라고 한 <바가바드기타>의 경구를 따를 것을 권한다.  60


투키디데스가 한 말도 생각해 보자. 그는 단호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자유롭거나." 이 말은 자유란 끊임없는 투쟁이 동반될 때 주어지는 권리임을 의미한다.  

소박한 차원일지라도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  61


<분노하라>에서, 나는 분노와 희망을 마주 놓을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분노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드는 방법일 수도 있다. 물론 분노 안에는 희망의 가능성 혹은 소위 말하는 '앙가주망'의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바로 슬로터다이크가 말한 '훈련' 혹은 '고행'이다. 고행은 중요한 몇 가지에 자신을 집중시키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많이 포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런 방법을 통해 당장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방법을 통해 받아들여지고 내면에서 소화되고 천천히 흡수되면서 결국 해결책을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62


외부의 도움을 바라며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의 도래를 기대하는 순간, 우리는 싸움에서 진다.  63


나는 "분노하라"고 말했다. 내가 미래 세대에세 전해주고 싶은 더 근본적인 메시지는 용기와 회복탄련성(resilience)다. 베르나노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그리고 가장 고차원적인 희망은 극복된 절망이다."  64


어리석고 우스꽝스럽고 건강하지 못한 수천 가지의 분노가 존재한다. 

분노는 하나의 명백한 의도와 연결될 때만 가치를 발휘한다.  65


나는 <분노하라>의 몇몇 구절을 통해, 비폭력은 우리가 갈등의 원인들을 제거하고자 할 때 취해야 할 정치적 노선이며 필수불가결한 전략이라는 사실을 말하려 했다.

그럴 때, 분노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 분노는 우리를 자각하게 해주고, 의식을 일깨우고, 체념한 사람을 무관심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좌절로부터 걸어나와 우리의 마음을 자극하는 일에 맞서 저항하고 싸우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해준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의 첫 단계, 붉은 신호등, '길의 시작'에 불과하다.  66


분명한 것은 불확실한 희망뿐일지라도 확신을 갖고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71




측은지심의 힘


지난 10년간 전 지구적 차원에서 중요한 화두로 대두된 '소유욕(libido possidend)' '지배욕(libido dominandi)'. 75-76


이 두 가지 욕망에 대항하여 나는 측은지심(compassion)을 제안한다. 측은지심은 연민(sympathie)보다 더 너그러운 감정이며, 그것을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동정(pitie)보다 덜 불쾌한 감정이다.  76


'바꾼다는 것'은 실은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기 위해 우리가 축적한 경험 속에서 좋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측은지심 속에는 함께하려는 의지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집약되어 있다. 

측은지심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 사회를 바꾸는 데 사회 구성원들의 단단한 의지와 끈끈한 연대보다 더 큰 동력은 없다.  77


상호의존은 다양한 독립체들이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나가며 서로에게 지나치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유연한 개념이다.  80


슬로터다이크는 청소년에 대한 교육을 되살려야 한다고 믿는다.

칸트가 말했듯 우리는 단지 좋은 의도만을 가지고 도덕적인 행동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덕망 있는 행동은 우리로 하여금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을 함께 경험하게 하는 '아비투스(Habitus, Habit-습관에서 비롯된 말)' 안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자아를 초월하는 용기'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마저 초월해, 행동하기를 단념하지 않는 것이다. 각자가 더 높이 올라갈 의지를 북돋는 것이다 .권력이나 소유, 야망을 향해서가 아니라, 도덕적인 아름다움을 향해서.  83-84


"어떻게 길을 바꿀 것인가?" 측은지심은 여기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한다.  89


결과적으로 보면, 가장 잘 구축된 것들은 언제나 일탈에서 시작되었다.

"문제는 오늘 이 자리에서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현실주의자라니, 얼마나 꿈같은 생각인가." 이렇게 말한 사람은 베르나르 그뢰투이젠이다.

불가능한 유토피아에 대해 비판하는데 그쳐서는 안 되고 유토피아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야 하며,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필요하다.  90


에드가 모랭이 그의 저서와 발언을 통해 줄기차게 말해온 탈바꿈(metamorphose)의 사상. 탈바꿈,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는 동시에 다른 것이 되는 것이다.  91


내가 여기서 말하는 핵심적인 주장은 현재의 모습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완전히 탈바꿈시키자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측은지심의 힘이 그렇게 되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그 안에 내포된 사랑으로.  92




사랑을 사랑하라, 감탄에 감탄하라.


감탄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매우 중요하고 내게 활력을 더하는 요소였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교육자들에게 일찌감치 아이들에게 감탄하는 훈련을 시킬 것을 권유한다.  95


우리는 결코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다. 특히 충분히 '잘' 사랑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삶의 단계들에 잊히지 않는 흔적을 남긴 것은 사랑받았던 기억보다 사랑했던 기억이었다.  106




다중 정체성의 시학


진실을 진실로서 인정하는 것, 동시에 실수를 인정하는 것, 순응하지 않고 반대편으로 살아가는 것, 모든 방법을 통해 모든 것을 느끼는 일은 결국 모든 것에 대한 지성을 갖는 일이다. - 페르난두 페소아, <뱀의 길>중에서  142


정체성, 그것은 서류에 찍힌 도장일 뿐이었다.  150


영화는 실제 우리 모습에 대한 변장이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루어진 존재인가? 

우리는 모순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나라간의 거리는 좁혀졌고 국경은 경제통합으로 인해 사라졌으나, 개인화된 이 세계에서 각 개인이 차지하는 자리는 불안정하기만 하다. 민족적, 종교적 혹은 문화적 공동체의 전통적인 고리가 와해되고, 가족을 포함한 집단이 약화되는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모순 그 자체다. 전통과 종교들이 강제하는 그 모든 억압적 순응주의 속에서 개인이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수많은 살마들이 나날이 더 거대해지고 낯설어지는 세계 속에서 외롭다고 느끼지 앟고 위험을 느끼지 않는 것 또한 어려운 일다. 바로 여기서 정체성을 단순화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151-152


우리가 어떤 개인적인 자유를 갖는지, 우리가 어떤 독창성을 요구하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153


어느날 어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누리는 그 행복을 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퍼뜨려야 한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김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행복을 전할 수 있으며, 더불어 행복한 삶을 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끌어당겨올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아니면 우연히 다가오는 것인가? 어쩌면 나는 내가 대단히 운좋은 사람이라는걸 이미 깨닫고, 내 인생의 몇몇 단계에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넌 행운이 따르잖아. 자, 가봐. 넌 뭔가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적도 매우 많았다. 내 삶을 성공의 연속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곤란하다. 나는 아주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내 전기를 자세히 훑어본다면, 거기에서 아주 작은 몇 개의 성공과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실패를 발견할 거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실패들이 나를 좌절하게 만들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실패들은 내게는 더 멀리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들로 보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회복탄력성이, 즉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다시 길을 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결국 좋은 인생이란 우리가 축적해온 그 모든 실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믿음을 갖는 인생이라고. 그리고 이 믿음은 시적 상상력이 우리를 풍부하게 지탱해줄 때 훨씬 더 강해진다고. 살면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 그리고 너무나도 지겨울때가 있는 일상 옆에는 언제나 예술이라는, 시라는 피난처가 있다.  161-162


사회학자 마르셀 모스가 정의한 기부에 관한 이야기에 귀기울려보면 좋을 것 같다. 모스는 기부의 진정한 의미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보상으로 기부를 불러일으키는 것, 즉 '기부에 대한 보상으로 기부를 받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서로가 가진 것들을 기부하면서 더욱 조화로워질 수 있다. 나는 '조화'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싶다. 인구가 점점 더 많아지고, 사람과 사람 사이가 점점 원자화되고, 조화로운 공동의 삶을 산다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사회에서, 조화에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163


여기에서 작품이라는 개념은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개개인에게 자신의 삶은 하나의 작품일 수 있다. 혹은 개개인은 타인들을 위해 존재할 하나의 작품을 완성시키는 작업자일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들 각자의 삶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나는 목격한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다음의 커다란 두 가지 위험에 의해 억제될 수 있다. 기존의 것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든 목소리를 질식시키는 정치적 억압, 그리고 타인에게서 발현되는 창조성에 대한 질투심에서 비롯된 냉소주의가 그것이다.  164


대립관계에 있는 것들도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인간은 다양한 열정과 모순되는 여러 가지 충동들 속에서 성장하고 단련된다. 나는 인간이란 내적, 외적 반대에 끊임없이 부딪히면서도, 그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지점에서 대립되는 것들로부터 하나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166


철학은 관찰한다.  166


우리에겐 해결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가 우리의 용기를 충분히 신뢰할 수 있는지 아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다. 내가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방관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어려움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우리에겐 충분히 사용하지 않은 에너지가 아직 남아 았다는 사실을, 아직은 너무 멀게만 보이는 가치들에 대한 열망이 우리 안에 들끓고 있음을 스스로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만일 우리가 불가능을 가능이라고 여긴다면, 그곳에 다다를 수 있다고 믿고 충분한 힘이 있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조화를 이룰 수 있다.  167


쉽게 말해 도덕은 공적인 것이고 윤리는 개인적인 것이다.

윤리는 주어진 상황과 관련하여 정의된다. 이것은 일정한 순간에 행한 일정한 행동과 관련된 것이다.  170


윤리는 우리의 현실적인 반응에 근거한다. 이 반응들은 개인의 이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71




참여하는 법을 배우자


우리 늙은이들이 여러분에게 참여하라고 요구할 때, 나는 우선 우리 사회의 작동방식을 통해 이루어진 변화들 가운데, 시민들의 크고 작은 참여 없이 얻어진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싶다.  180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는 다양한 의지를 가진 그룹들이 하나의 점으로 모여드는 현상이다. 이들이 진보를 일궈낸다. 어떤 그룹들은 다른 그룹들보다 더 잘 조직되어 있다.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신뢰를 주는 집단을 찾아라.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의 에너지와 역동성을 보태라. 그렇게 해서 한탄스러운 현재의 상ㅇ태를 뒤흔들어놓는 데 힘을 더하라.  181


지도자란,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모든 사람들이 처해 있는 시대의 의미를 밝혀줄 줄 아는 사람이다. 즉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지고, 거기에 해답이 되는 요소를 제시해야 한다.  182


우리는 사회참여를 할 때, 삶의 행복을 누린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 어떤 참여도 하지 않고, 홀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과연 가능할까?  187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그리고 시민이라는 세 개의 축이 그럭저럭 균형을 이루는 삼각구도 안에서 정부도, 경제권력도 풀지 못한 방정식을 풀 근원적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시민들이다. 시민들이 정치권력의 포로가 되고 정치권력은 경제권력의 노예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시민은 현실적으로 유일한 지렛대이며 시스템의 중심이다. 시민들만이 자신들의 기질에 따라 투쟁에 나설 수가 있다. 그들이 자신들에게 가해진 정치권력, 경제권력의 억압에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이 지닌 권력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공공투쟁의 근본 토대를 재구축하기에 충분하다. 이들은 라 보에티(프랑스의 법률가, 철학자. 18세기 프랑스의 운동과 혁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 <자발적 복종>을 썼다.)가 말한 것처럼 스스로가 원해서 자신을 지배하는 권력에 복종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복종이 자발적이라는 것'을 잘 안다. 이후 가능해지는 이성적 추론의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시민을 상위에 놓기 위해 이 삼각구도를 전복시킨다. 시민들에게 적용되는 권력이 그들 자신을 위해 쓰이도록 노력한다. 바로 이런 이성적 추론이 나로 하여금 오래된 개념인 '분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게 만든 것이다.  192


분노한다는 것은 '긍지를 되찾겠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존엄성이라는 개념이 '분노'의 뿌리인 셈이다. 분노하는 자는 자신이 존엄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식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분노라는 행위는 기억을 재정립시킨다. 

그러나 분노는 훨씬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원한, 화 같은 비교적 고결하지 못한 일차적 동기에서 투쟁, 정치참여 같은 고결한 행위로까지 나아간다. 이렇듯 분노가 정치적 연금술이나 대변혁과도 비슷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193


어쩌면 내가 나이 때문에 이렇게 초연해졌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우리 모두가 가능한 한 덜 소유해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꼭 필요한 것들을 충족할 만큼만 소유하면 된다. 우리는 비범함 존재일 필요는 없지만, 일단 강하고 모두를 위해 필요한 존재여야 한다.  197


앙드레 고르의 저서 <노동의 변신>은 내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결국 우리는 인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인간은 노동을 해야만 하는, 노동으로 사는 동물인가? 아니면 즐거움을 누려야 하고, 사랑해야 하고, 생각해야 하고, 또다른 뭔가를 해야만 하는 동물인가? 현실적으로 인간은 이 모든 것을 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서로 다소 모순되어 보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이 모든 활동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배치해야 할까?  199


60억의 인구가 유럽인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두 개의 지구가 필요하고, 미국인의 방식으로 살아가려면 다섯 개의 지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 수학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201


단순명료함(simplicite)은 단순화하는것(simplisme)과는 분명 다르다.  206




민주주의 - 모든 프로그램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가난을 줄이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특권에서 소외된 자들이 행복한 국민이 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가 기울여야 할 노력이며, 요즘 더이상 행해지지 않는 노력이기도 하다.  232


"민주주의의 정확한 의미는 대체 무엇인가?"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한 인터뷰에서 민주주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할 바 있다. "문제는 사람들이 평등해지기보다 특혜를 누리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하찮은 평등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모든 사람에게 특혜를 줄 수 있는 기술을 발명한다면 완벽한 민주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233


모든 사람에게 모든 기회를 제공한다는 야심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에는 전체주의자가 되어버린 사람들이 종종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특히 피하기 힘든 함정이 있다. 바로 보수적인 신자유주의의 함정이다.  234




움직이지 않는 것은 흩어지고 움직이는 것은 지속된다


진정한 현실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능한 행동을 실행하게 하는 것이지, 정해진 한계를 체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246


장클로드 카리에르는 시바교의 성가로 쓰이는 서기 5세기 혹은 6세기의 아름다운 시 한 구절을 인용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흩어지고 움직이는 것은 지속된다."  258


에른스트 윙거는 저서 <반란의 조약>에서 고통받는 세계 속에서는 개인의 평정이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59


행동하려 한다면 매우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집중시켜야 하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하며, 논리를 발전시켜야 한다. 의지를 행동으로 끌어내기 위해 분노가 필요하고, 의식을 평정해야 한다.  259-260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에서 비폭력 저항을 유지시킨 거의 유일한 지도자이다.  260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다.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난다. 그러고는 곳곳에서 쇠사슬에 묶이고 만다."  263





Attristez-vous!(슬퍼하라!) 

스테판 에셀의 죽음 이후 프랑스인들이 트위터에 일제히 올린 추모 메시지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내용


스테판 에셀의 <참여하라> 내용


스테판 에셀의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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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15일 스테판 에셀과 텐진갸초(16세기 중앙아시아에서 비롯된 달라이 라마 계보의 제14대 계승자)의 대화.


달라이 라마 : 현재 경제위기 때문에 엄청나게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국가 지도자급 정치가들에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니, 그들 대부분이 인정하더군요. 앞으로 10~20년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22


스테판 에셀 : 우리는 머리로 생각만 해서는 안 되고, 동시에 연민심으로 행동을 해야 합니다.  26

달라이 라마 : 연민, 그렇습니다. 그건 책임감이기도 합니다... 만약 누가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가고자 한다면, 지도를 길잡이 삼는 것이 당연지사겠지요. 마음의 일부인 연민, 용서 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정신의 지도를 지녀야 합니다.  26-27


달라이 라마 : 통제와 말살의 의도에서 자행되는 검열은 비도덕적입니다.  32


달라이 라마 : 저는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자신의 지성을 올바로 쓰라고 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제 경우를 생각햅면,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나는 조국을 잃었고, 인생의 대부분을 타지에서 망명객 신세로 보냈다." 그러나 또 한편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나는 온 세상을 알게 되엇고, 특별한 의전(儀典)없이도 다른 사람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내가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에 그대로 살았더라면, 현실적으로 별 소용 없는 번거로운 의식 속에 매몰된 삶이었겠지."

둘째, 제가 이야기하는 것은 마음의 따스한 온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우리'와 '그들'의 이분법이 지배하는 체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구분선은 항상 우리 마음속에 각인되어, 우리를 보편적 박애 정신과 갈라놓습니다.  39


달라이 라마 : 명상은 종교적이 어떤 의례가 아니라, 마음을 관찰하고 계발하는 치밀한 연습인 것입니다.  41


달라이 라마 : 일단 마음의 풍경이 명료하게 밝혀지고 통제되면 우리는 연민, 용서 같은 긍정적 감정들까지도 키워갈 수 있고, 그래서 분노, 멸시, 두려움, 증오 같은 파괴적 감정을 줄일 수 있습니다. 즉 기질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41


달라이 라마 : 존엄성을 잃지 앟고 당당히 생존하신 것이지요... '적(敵)이 최고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거듭 외는 방법도 있습니다. 결연함을 잃지 않는 데에 아주 유용한 품성인 관용과 인내, 그것을 실천하는 법을 적으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44


달라이 라마 : 만약 상황이 너무 심각하여 거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라면, 그 어떤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다면, 그때는 설령 이런 행동들이 외관상 폭력적으로 보인다 해도 그 본질은 비폭력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실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폭력과 비폭력을 나누는 구분으로 유일하게 가능한 것이 '동기'입니다.  49


앵디젠 : 간디는 이런 말까지 했습니다. "나는 비겁과 폭력 사이에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면, 폭력 쪽을 권하겠다"라고, 예를 들어 간디의 장남이 어느 날 그에게 물었습니다. 1908년 아버지가 암살당할 뻔했을 때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하느냐고, "나는 아들에게 대답했습니다. '너의 의무는 설령 폭력을 써서라도 나를 지키는 것이었어야 했다'"라고 간디는 말했습니다.


달라이 라마 : 불교에 이와 통하는 비유담이 있습니다. 붓다는 여러 전생 중 한 생에 어느 배의 선장이었는데, 그 배에는 선원이 500명이나 있었습니다. 선장은 선원 중 한 사람이 나머지 499명을 죽이고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으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장은 세 차례나 그러지 말라고 그 선원을 설득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원은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장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저 선원을 죽이지 않으면 다른 499명이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죽이면 나는 499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또한 그가 499명을 죽이는 죄를 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사람을 죽인 죄에 따른 악업(惡業)의 결과를 그대로 받게 된다. 게다가 만약 내가 음모를 꾸미는 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면, 나는 499명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다.' 그래서 선장은 무기를 들고 그 선원을 죽입니다(이 글의 출처는 대승불교 경전인 '대방편경(大方便經)'의 티베트 역(譯)에 나오는 '대비(大悲) 선장 이야기로, 갈등 상황에서 방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이다-옮긴이).  51-52


스테판 에셀 : 제 생각에 한편으로는 비폭력, 다른 한편으로는 단호함, 이 두 가지를 잘 구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완벽히 자신을 신뢰하고 용감하게 행동하면서도 폭력을 거부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분노한' 이들의 움직임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에겐 지키려는 가치들이 있다. 그 가치에 관한 한 우리는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단호하다. 그러나 폭력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  57


스테판 에셀 : 제 생각도 성하의 의견과 같습니다. 이제는 권좌에서 놓여나 오직 인류의 안녕에만 관심을 두는 고르바초프 같은 인물들로 구성된 '현자(賢者)위원회', 그런 것이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유엔 사무총장에게 "거부권을 없애시오. 사람들을 모으시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현명한 분들로 구성된 위원회 말입니다. 하지만 또 한편 우리에겐 젊은 세대도 필요합니다. 곳곳에서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이런 식으로 통치받는 것을 이제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우리는 진정으로 민주 정부를 원한다"라고 말하는 젊은 세대 말입니다. 그런 젊은이들이 거리에 많이 모인다면, 구제야 비로소 정부들은 현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든가 아니면 젊은이들을 억압해야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71




옮긴이의 말 - 두 그루 거목과 만나다


원제는 '평화를 선언하자!'이고 부제가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로 2012년 5월에 프랑스 앵디젠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91


"피곤하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은 할 것입니다."  94


"'분노하라'의 참뜻은 레지스탕스의 정신과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가치들을 정부나 기업들이 침해할 때 이에 분노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분노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다음엔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96-97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뭔가를 진보시킨다는 것은 아주 경탄스러운 일입니다."  98


마음의 '진보'에도 반드시 지도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지도에는 감정, 정서, 그리고 그 감정과 정서를 비폭력적으로 지켜내는 방법들이 입력되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요체를 두'어른'이 공유했다.  102


바로'연민(compassion)'이다. 'compassion'의 어원은 '괴로움을 함께함'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측은지심. 심리학에서 말하는 공감. 기실 '정신의 지도'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니다. "부디 남이 잘됐으면 하는 배려로 우리 모두가 연결된다면 그때 우리는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109


자기부터 바꿀 수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  111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내용 보기


스테판 에셀의 <참여하라> 내용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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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기능적으로 가장 탁월한 두뇌를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현명하다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 최재천(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  8



저자 소개 - 스테판 에셀은 누구인가?

'세계시민주의'를 온몸으로 실천한 인물이다. 세계시민주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인권, 불법 체류자와 노숙자 문제, 불평등 문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에 맞서 뜨겁게 투쟁해왔다.  14


질문자 : 질 방데르푸텐

답변자 : 스테판 에셀


그 옛날 우리가 제안했던 개혁안들을 지금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물론 없지요. 또한 그 시절을 맹목적으로 따르자는 식으로 추진해서도 결코 안 됩니다.

그러나 당시 우리가 추구했던 가치들은 아직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그 가치들을 소중히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공화국의 가치, 민주주의의 가치들이기 때문입니다.  23


저항이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우리 주위에 터무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에 강력히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입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인 줄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단정하고 체념하는것, 그것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지요.  24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 주로 어떤 것을 꼽을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적인 것들이겠지요. 사회적 불평등 말입니다. 즉 상호연결된 지구촌 안에 극단적인 빈부의 형태가 공존한다는 것이 문제이지요. 단지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가 있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진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불의에 저항하는 일...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성적으로 상황을 개선하려면 깊은 성찰이 필요하고 설득력 있는 글을 써야 합니다. 또한 현명한 정치인이 당선되기를 바라며 민주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야 합니다. 요컨대 이 시대의 레지스탕스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말이지요.  25


인생에 대해 중대한 결저을 앞둔 청소년들을 만나면 저는 이런 말을 하곤 합니다. "무엇이 너희를 분노케 하는지, 무엇이 참을 수 없는 일인지 스스로 한번 물어보라. 그리고 그 답을 찾았다면, 그에 맞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싸울 것인지를 알려고 노력해보라."고 말이지요.  26-27


질 : 저항은 단지 지성(知性)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실천이 있어야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에셀 : 저항이란 단지 문제를 깊이 생각하거나 상항을 조리 있게 서술하는 데서 그치는 일이 아닙니다. 어떤 행동이든 실천으로써 보여주어야 합니다.  27


질 : 명확안 입장을 취하고 참여한다 함은 필연적으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선택인가요? 때로는 표현의 자유마저 포기해야만 하는 것인지요?

에셀 :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면 그건 그만큼 참여하는 여러분의 뜻이 결연하다는 징표일 뿐이지요.  29


진보란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여러 힘드르이 협력에 의해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30


전 지구적인 시민정신이 필요한 때입니다.  32


지구와 환경의 파괴는 지금 세계 어디에서나 부딪히는 두 번째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33


에너지나 자원의 과소비를 줄이는 일에 젊은 세대가 참여하는 것 역시 구체적인 참여 행위에 해당합니다.  34


질 : '발전' 개념에 있어서는 미국이 주도해온 자유주의 사고방식이 아주 오랫동안 세계를 지배해왔는데요.

에셀 : 진정 사람을 잘 살게 하는 발전이란 국민총생산(GNP)의 수치로는 측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경제 발전보다는 우리 스스로 좀 더 나아졌음을 의식할 때 비로소 발전했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게 되지요. 다시 말해 교육, 건강, 개인의 문화나 정체성 보호 면에서 나아졌음을 경험할 때만이 진정 행복한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36


빈곤 국가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들 빈국을 상업적인 다국적 기업의 침탈로부터 보호해야 합니다. 그리고 발전의 토대가 되는 요소들을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해야 하지요. 

학교 교육과 문맹 퇴치, 혹은 건강 보장에 주력해야 합니다. 또한 농업처럼 땅과 가장 가까운 생산을 장려해 최대한 자급자족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부자 나라들이 대폭 지원하는 과잉 수입에 대한 의존성을 줄임과 동시에, 자국의 고유한 자원을 개발하고 지켜내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차츰차츰 실행되어야 합니다. 그 길만이 빈국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점점 더 확신하게 됩니다.  37


저는 '지속가능한(durable)' 발전이라기보다는 '지탱가능한(soutenable)' 발전이라 해야 타당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지속가능한'이라 할 때 그 지속 기간이란 대체 무엇이지요? 

발전의 토대는 천연자원입니다. 그런데 지구가 점점 훼손되고 있으니, 우리는 개발에 필요한 자원들을 더 이상 지구로부터 공급받을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탱가능한 발전이라 한것은 야만적인 방법으로 단기간에 자원을 착취애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쓴 말입니다. 

계속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39


질 : '발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논의 대상 아닌가요?

에셀 : 발전이 기술과 에너지에만 국한된 의미라면  현실적으로 우리는 더 많은 부존자원을 보유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을 뿐더러, 발전 또한 보유한 자원에만 기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우리의 자우너들은 생태적 균형과 양립하여 개발되어야 합니다.

좀 더 지구적인 차원에서 말하자면, 부유해진다는 것은 사용 에너지의 양이나 금전적 수이그이 증가처럼 단지 양적(量的)인 결과로 드러나는 풍요로움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문화, 정신, 윤리 등이 풍부해져야 합니다. '항상 더 많이'라는 말로 촉발되는 생산 위주의 생각은 이제 끊어버려야 합니다.  43-44


생태주의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단지 자연의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연의 기능에 대해 진일보한 배움을 통해 꺄들은 인간이 진정 새로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47


질 : 문화를 완전히 개방했을 때의 역효과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서구 문화와 본질적으로 매우 다른 문화 전통을 지닌 나라들이 서구 발전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소비지상주의 이데올로기에 그냥 침탈당하고만 잇다는 사실을 어떻게 분석하시나요?

에셀 :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문화의 행복한 다양성을 수호하는 것을 목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특히 농업에서 그런 목표가 필요합니다. 유전자 변형 식품(GMO)과 그것을 유통시키는 다국적 기업들은 정말 위험 요소입니다. 이는 문화의 다양성을 제한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의 다양성을 보호할 뿐 아니라 모두가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저마다 자기 문화를 누릴 권리,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자기 문화를 존중받고 인정받을 권리, 이런 권리가 보장될 때 다양한 문화가 공존할 수 있고, 더불어 대결이 아닌 다른 가치가 창출될 수 있습니다.  62


질 : 경제 위기에 대해 사람들은 규제 부족을 원인으로 지목하는데요.

에셀 : 세계적인 위기기 휩쓸고 간 뒤 우리가 사는 이곳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고달픈 세상이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금융화된 세계 경제에서 막대한 이득을 취하는 자들에 의해 이렇게 된 것입니다.  66


클로드 알팡데리는 사회적 , 연대적 경제를 진흥시키려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에 의하면, 이윤 개념에 갇혀 있는 자본 경제 말고도 다른 경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적 형태 말고도 연대적 경제의 여러 형태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70


우리에겐 레지스탕스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저 저항만 한다고 해서 레지스탕스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항 그것은 창조요, 창조 그것은 저항이다"라고. 

항상 긴장해야 하고 항상 창조적이어야 합니다. 저항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무엇이든 단순화하려는 시도는 굉장히 위험한 사고입니다. 지혜롭게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지혜로운 사고는 지성이나 창의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균형 감각에서만 나옵니다.  73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일보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편이 훨씬 쉬운 법이지요. 전략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곧 맞닥뜨릴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 전략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수립될 수 있습니다.  74


엔지오들은 국제사회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햐 합니다. 

엔지오의 권한이 팽창된다고 위협을 느낄 필요는 전혀 없다고 봅니다. 국가는 엔지오가 가져온 성과 중에서 자국의 이익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76


사르트르의 말.. "사람은 진정으로 참여할 때, 그리고 자신의 책임을 느낄 때 비로소 참된 사람이다."  85


우리가 수많은 장애물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덜 폭력적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86


이제는 혁신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지나친 전통 존중이나 노인들의 권위 때문에 젊은이들의 창의성이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활발한 세대간 교류는 매우 바람직합니다. 노인들은 젊은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잘 배워야 하며, 젊은이들 역시 노인들의 축적된 경험에서 뭔가 배우는 게 있어야 합니다. 

잠재된 여러 뷔험을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위험이든 모두 우리가 맞설 수 있고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 또한 잊어서는 안 됩니다.  92



세계 인권 선언 내용




해제 - 분노하고 참여하라(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스테판 에셀은 무관심은 최악의 태도라고 얘기한다.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내 앞가림이나 잘 할 수밖에"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요소 중 하나인 분노할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테판 에셀은 "무엇이 너를 분노케 하는지, 무엇이 참을 수 없는 일인지 스스로 한번 물어보라. 그리고 그 답을 찾았다면, 그에 맞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싸울 것인지를 알려고 노력해 보라"고 말한다. 사실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참여할 수 있다. 나의 문제, 주위에 있는 사람의 문제, 사회의 문제에 대해 내가 느낀 분노를 드러내는 방법이 바로 참여이기 때문이다.  114-115


에셀이 분노하는 중요한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극단적으로 심각해지는 불평등의 문제이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불평등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는 말이다. 아프리카 등에서는 5초마다 열 살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고 있는 반면, 선진국이라고 하는 국가에서는 너무 많이 먹어서 각종 성인병이 늘어나고 잇다. 기막힌 일이다. 한 국가 내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사람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빈곤이 대물림되는 현상 또한 날로 심각해지고 잇다. 15세 때 가난하면, 그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할 확률이 지극히 높다. 비싼 집값, 점점 벌어지는 임금격차, 점점 줄어드는 일자리... 이런 것들은 많은 청년들에게 절망을 안겨 주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스테판 에셀은 분노한다.

둘째, 지구환경이 위기에 처해 있다. 핵(원자력)발전의 위험,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 식량위기, 자원고갈... 이런 문제들이 인류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잇다. 스리마일, 체르노빌, 후쿠시마로 이어지는 대형 핵발전소 사고는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켰을 뿐 아니라, 넓은 땅 덩어리를 수백 년 이상 오염시키고 있다. 그리고 누출된 방사능이 세계 곳곳으로 퍼져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 또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지구의 온도가 0.8도 올랐을 뿐인데, 전 세계가 홍수와 가뭄, 해수면 상승 등의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앞으로 더 빨리, 그리고 더 높이 온도가 올라갈 것이다.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에 따르면 이번 세기말까지 최대 6.4도의 온도상승이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1~2도만 올라도 재앙이 올 것이고, 3.5~4.5도가 오르면 생물종의 40~70%가 멸종할 상황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와 가뭄, 사막화가 식량위기를 가속화시킬 것이다. 이미 세계의 곡물가격은 널뛰기를 하고 있고 식량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것은 물질과 성장만 추구해 온 선진국들이, 그리고 그동안 물질적 풍요를 누려온 세대가 초래한 사태다. 그 결과 이 사태에 대해 아무 책임 없는 어린이, 청소년들 및 미래세대가 이 모든 문제로 인한 부담을 떠안게 되었다. 스테판 에셀 역시 이런 현실에 분노하는 것이다.  115-117


기후변화의 가장 큰 희생자 역시 가난한 국가, 가난한 사람들이 될 가능성이 높다.  117


에셀은 생태위기를 보면서, 환경문제도 인권문제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인간의 권리와 자연의 권리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태주의자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도 자연의 하나라는 점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118


문제는 정치에 있다. 정책을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대안에 눈을 감고 있는 것이다.  119


구체적으로 에셀은 경제, 사회분야의 안전보장이사회를 만들 것과 세계환경기구(WEO:World Environment Organization)를 만들것을 제안한다.  120


스테판 에셀은 이 시대의 레지스탕스는 기차를 폭파할 것이 아니라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설득력 잇는 글을 가지고 투쟁'하고, '현명한 정치인이 당선되기를 바라며 민주적으로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121-122


우리를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절망이다. "손을 쓰기엔 너무 때늦은 게 아닐까요? 이젠 틀렸습니다. 더 이상 아무 대책도 없어요. 우린 다 끝난 것입니다."

이런 절망이 우리를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좌졸과 불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절망하는 대신 분노하고 참여해야 한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행복과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있다. 그것이 95세의 깨어 있는 한 노인이 지구 위에 사는 청년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다.  122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 내용보기 


스테판 에셀의 <정신의 진보를 위하여> 내용


스테판 에셀의 <멈추지 말고 진보하라> 내용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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