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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12.12 자기 앞의 생(生) - 에밀 아자르 문학동네 2003 03860


"하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왜 매일 웃고 있어요?"

"나에게 좋은 기억력을 주신 하느님께 매일 감사하느라고 그러지, 모모야."  11


내 나이 벌써 아홉 살쯤이었는데, 그 나이면 행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사색이라는 것을 하게 되는 법이다.  28


나이든 사람들은 항상 머릿속에 생각이 많은 법이다.  37


"하밀 할아버지, 나는 영웅 같은 것보다 그냥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빠가 훌륭한 뚜쟁이여서 엄마를 잘 돌봐주면 좋을 텐데 말예요."  47


그녀(로자아줌마)는 사람이 가진 것이 없으면 없을수록 점점 더 믿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54


"엘리 하브 알라라 이브리 기루 수반 아드 다임 라 이아줄." 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신 외에는 아무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58


(지하실)

"모모야, 그곳은 내 유태인 피난처야."

"알았어요."

"이해하겠니?"

"아뇨, 하지만 상관없어요. 그런 일엔 익숙해졌으니까."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69


로자 아줌마는 동물세계의 법이 인간세상의 법보다 낫다고 말하곤 했다. 인간 세상에서는 아이를 입양하는 문제도 쉽지 않다. 입양된 아이가 잘 자라는 것을 보고 친엄마가 아이를 다시 데려가겠다고 나서면 아이를 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럴 땐 위조서류가 최고다. 만약 자기 아이가 남의 집에서 행복하게 잘 자라고 있는데 이 년쯤 뒤에 그 사실을 알고 나타나서 아이를 찾아가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파렴치한 엄마가 있다면, 위조서류를 내보이며 쫓아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친엄마는 절대로 아이를 되찾지 못하고 오히려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로마 아줌마는 동물들의 세계가 인간세계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73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거지."  93


어떤 때는, 파리 중앙 시장의 꽃수레에서 미모사를 한 포기씩 훔치기도 했다. 그 꽃들에서는 행복의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98


나는 마약에 대햇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멸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년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이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하긴 오죽이나 간절했으면 주사를 맞았을까만은 그 따위 생각을 가진 녀석은 정말 바보 천치다...

아무튼 나는 그런 식으로 행복해지기보다는 그냥 이대로 사는 게 더 좋다.  99


언젠가 르 마우트와 함께 경찰을 아버지로 두는 것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르 마우트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그런 상상은 아무 쓸모 없는 짓이라고 말하더니 가버렸다. 약물중독자와는 토론할 수가 없다. 그들은 세상 일에 대해 호기심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121


생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별로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게 한다.  173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174


카이렘. 유태어로 '당신에게 맹세한다'란 뜻이다.  203


네 살을 더 먹지만 않았더라도 그냥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을 것이다.  238


나는 누군가를 인질로 붙잡아 죽이는 것말고는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했었다. 세상에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바강스 장소를 산과 바다 중에서 선택하듯이 사람들도 그렇게 선택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관심을 끌지 못하는 그 많은 사람들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사람을 선택한다. 사람들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듯이,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낸 나치나 베트남 전쟁같은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것을 선택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칠증에 사는, 과거에 너무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유태인 노파 같은 건 누구의 관심사도 될 수 없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몇백만 이상의 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다. 돈이 적게 드는 일 일수록 그만큼 중요하지 않은 일이니까...  245-246


나는 너무나 기뻐서 눈물이 나올 뻔했지만, 네 살이나 더 먹었기 때문에 참았다.  25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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