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위대한 전사 조원제

재귀열의 희생자들은 도당 전체 병력의 4할 정도로 추산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에 8천여 명이 죽어간 것이었다.  28


15 사형 대신 써야 하는 수기

경찰들의 경우 토벌대 참가는 의무적 윤번제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나같이 토벌대에 나가기를 꺼려 꽁무니를 빼려고 했고, 그 윤번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무슨 수를 써서든 뒤빠져 책상을 붙들고 앉아 있으면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었지만, 토벌대에 나갔다 하면 어느 산골짜기에 처박혀 죽을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경찰들은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일수록 어김없이 친일경력의 소유자들이었고, 세상의 물결을 요령 좋게 타고 넘는 기회주의를 이미 몸에 익힌 그들로서는 목숨을 내거는 일에 서로 몸을 사리고 뒤꽁무니를 빼려고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남모르게 뒷손을 쓰고, 서로간에 모함을 해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자기네의 생존보호를 위해 이승만 정권을 떠받치며 반공세력으로 똘똘 뭉쳤던 그들의 집단기회주의는 정작 전쟁이 벌어진 다음부터는 개개인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각자가 개체기회주의를 발동시켜 내부혼란이 야기되고 있었다. 뒷손을 쓰자니 돈이 필요하고, 돈을 마련하자니 부정을 저질러야 하고, 부정을 저지르다 보니 턱없이 민간인들을 괴롭히고, 그런 것을 노려 옆사람이 밀고하게 되고…………. 돈 없고 빽 없는 놈만 토벌대에 나가 개죽음한다는 말은 경찰 내부를 벗어나 세상이다 아는 일이기도 했다. 그것은 경찰의 부패를 조장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113-114



16 항미소년돌격대

화순군당의 '항미소년돌격대'는 30여 명으로, 모두가 열네다섯살에서 열여섯 살의 소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광부의 아들들이었다. 그들이 그렇게 한 덩어리로 뭉쳐지게 된 사연은 해방 다음 해인 1946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했다. 그건 다름 아닌 화순탄광 광부들이 일으킨 생존권투쟁에서부터 비롯되었다. 해방 1주년 기념식을 겸해 3천여 명의 광부들이 1차로 일어났고, 10월 30일 2차로 일어나면서 미군정의 거듭된 무력진압으로 광부들이 피를 뿌리며 죽어가게 되었다. 저공비행으로 위협하고, 탱크의 직사포로 위협사격을 가하며 몰아붙이고, 총을 갈겨대서 광주진입을 막아낸 그 사태에서 공식화된 사상자는 세 명에서 다섯 명이었다. 그러나 집계되지 않은 총 맞은 부상자들은 수십 명을 헤아렸다. 그런데 미군의 엄호를 받으며 경찰들이 주모자 색출을 벌이는 바람에 그 부상자들은 치료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을 숨기기에 급급해야 했다. 병원의 치료를 받아도 문제가 생길 총상을 숨어서 민간요법에 의지했으니 치료가 될 리 없었어떻게 경찰들의 눈을 피해 환자들을 다른 지방 병원다. 그렇다고 으로 옮길 형편도 못 되었다. 그들은 끼니를 끓일 수가 없어 생존권투쟁에 나선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부상자들은 하나씩 둘씩 죽어갔다. 날이 갈수록 그 수는 늘어나고 있었다. 그 수가 얼마인지는 정확하지 않은 채 조심스러운 소문으로만 떠돌았다. 그러나 해가 바뀌고 또 바뀌면서 그 소문마저 안개로 스러지고, 바람에 밀려갔다. 세상을 흔드는 큰일들이 연이어 터지는 데다, 제 살기에 바쁜 세상사람들이 그 일을 잊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 일을 가슴에 한으로 심고, 그 한을 한숨으로 토해내며 씹고 또 씹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남편의 부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애간장 태우며 남편들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여인네들이었다. 그 여인네들은 자식들, 특히 아들들을 붙들어앉혀놓고 시시때때로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느그 아부지럴 죽인 것은 양코배기 미국놈덜이여, 미국놈덜언 우리 웬순께, 니가 후제 커서 아부지 웬수 기엉코 갚아야 써." 여인네들은 그 말을 곱씹으면서 사무치는 한을 달래고, 서러운 신세를 이기려 했는지 모르지만 자라나는 소년들의 가슴에는 원한과 복수심이 벽돌로 차곡차곡 쌓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인공이 되자 그 소년들은 모두가 소년선봉대로 나섰다. 그리고 후퇴길을 따라 입산하게 되었다. 여인네들은 그 길을 막을 수 없었다.  130-131

광부들의 아들이 30여 명 입산하게 됨으로써 총상을 입고 죽어간 사람들의 수가 몇 년이 지나서야 그 윤곽이나마 드러나게 되었다. 도당에서는 그 소년들에게 옷을 잘 해입혔고, 나이를 감안해 모두들 가벼운 칼빈총으로 무장시켰다. 그리고 급 대 이름을 ‘항미소년돌격대’라고 명명했던 것이다.  132



17 장마와 함께 온 휴전회담 소식


강동기의 중대도 보리베기를 하려고 조를 짜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문화부 중대장 한상근이 갑자기 말했다.
“그런 일은 남선 동무들이래 다 맡아서 하라요.”
"허먼, 북선 동무덜언 밥 안 묵고 살라요?"
강동기는 농담인 줄 알고 이렇게 말을 받았다.
"그케 말하다 말라요. 그런 따위 일까지 하자고 인민군 전사들이 예까지 와서 고생하는 기 아니니끼니."
한상근의 목소리가 달라졌고, 강동기는 그때서야 농담이 아닌 것을 알았다. 순간적으로 속이 꿈틀 꼬였다. 그러나 그는 꾹 눌렀다.
"허먼, 멀라고 왔습니여?"
강동기는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몰라서 묻는 기요! 남선 동무들이래 해방군을 해방군으로 대접할 줄 알아야디, 이시따위일까지 하라니, 해방군을 뭘로 아는 기요, 이거!"
이새끼, 우리가 느그덜 종이냐! 상전 애겼다고 요 고상 사서허는디 인자 느그가 상전이여! 강동기의 감정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야이 개새끼야!…………”
강동기는 나무에 세워둔 총을 순식간에 낚아잡고 한상근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그의 가슴에는 오랜 동안 참아왔던 감정들이 겹으로 터져오르고 있었다.
“두 동무 들으씨요. 요 일언 나혼자 알아서 덮고 말고 헐 문제가아닌 것 겉으요. 동무덜도 중간간부니께 그만한 것이야 다 알 것인다. 본 눈이 수십인디다가, 말썽 일어난 문제가 당에서 금하고 있는중대헌 것이고, 거그다가 말쌈이 아니고 총까지 들이댔이니 천상상부에 보고럴 혀야 되겠소."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하대치가 착잡한 어조로 차분하게 한 말이었다. 두 사람은 머리만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하대치는 문제의 심각성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었다. 먼저, 이북 출신과 이남 출신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의 문제였다. 그문제는 인공이 시작되면서부터 드러났고, 당에서는 그 바람직하지못한 문제를 근절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당의 선전에 의한 인민군의 또다른 이름은 해방군이었고, 전시하의 당과행정조직을 원활하게 운용하기 위해서 많은 요원들이 북쪽에서 파견되었다. 사실 남쪽에서는 오랜 지하투쟁을 하는 동안에 수많은사람이 희생되어 버려 행정을 중심으로 한 모든 분야를 장악해야하는 당조직을 구축하는 데도 일꾼들이 모자라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이승만 정권의 반동공무원들을 그대로 쓸 수 없는 행정조직의 공백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런 필요에 따라서 북쪽에서 파견된 요원들은 자연스럽게 당과 행정조직의 중간간부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파견은 물론 해방이 완료되고 남쪽 요원들이 확충될 때까지라는 시한부였다. 대학생들이 한두 달 시한부로 남쪽전역에 교양지도원으로 파견된 것도 같은 계획의 하나였다. 면단위 이하까지 인민을 상대로 사상을 조직하고, 당사업을 제대로 선전 선동할 수 있는 일꾼들이 부족한 실정이라서 대학생들까지 동원된 것이었다. 형편이 그렇게 되고 보니 거의 모든 좋은 자리는 이북사람들이 차지한 형국이 되었고, 그런 분위기는 이남사람들에게 상대적 소외감이나 반발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데다가, 북쪽에서 파견된 요원들은 일관된 당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사람이란 각양각색이어서 더러 당의 지시에 어긋나게 '남조선을 해방시켜 주었다'는 우월감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그 우월감은 상대적으로 열등감을 구체화시켰고, 그 열등감은 반발로, 적대감으로 발전하는 갈등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런데 전세가 역전되면서 당이나 행정직 요원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대학생들도 북쪽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입산하게 되었다. 입산을 하면서 그런 갈등은 현저하게 줄어들었지만 그러나 말끔하게 가신 것은 아니었다. 남과 북의 사람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입장이 달라진 데서 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당에서는 학습을 통해서 그런 감정의 일소를 강조하고 있었지만 실생활의 국면국면에서는 미묘한 감정들이 순간적으로 부딪치고는 했다. 극한적인 입산투쟁이 전개되면서 이남 출신들은 대부분의 이북 출신들을 겁쟁이로 비웃고 있었고, 이북 출신들은 또한 이남의 농민이나 기본출들의 사상적 무지에 대해서 경멸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간격은 당이론이나 학습이 좁힐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다음으로 하대치가 중요하게 짚은 것이 중간간부들로서 부하들 앞에서 총을 들이대며 다투었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뒤따르는것이 정치일꾼에게 군사일꾼이 총으로 위협을 가했다는 점이다.
첫 번째 문제는 한상근의 잘못이었고, 두 번째 문제는 강동기의잘못이었다. 잘못은 명백하게 드러났지만 그 일의 중대성이 연대단위의 자기비판토론으로 끝낼 성질이 아니어서 하대치는 상부보고를 결정내릴 수밖에 없었다.
하대치는 두 사람에게 행동통제명령을 내려 따로따로 돌려보낸다음 사태가 그 상태에서 끝난 것을 큰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그 결기 승한 강동기가 삽으로 지주의 등을 찍어버린 것처럼 방아쇠를 당겨버렸다면 어찌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얼어붙는 일이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잘못했더라면 소중한 두 일꾼이 순식간에 없어질 뻔했던 일이었다. 그려, 참을 인자가 셋이먼 살인도 면헌다고 혔어. 잘 참었구먼, 잘 참았어. 하대치는 담배를 빨며 강동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강동기가 그래도 방아쇠를 당기지않은 것은 상대방이 지주가 아니라 동지였기 때문이라고 하대치는생각했다.
한상근은 교양지도원으로 파견되었던 대학생인데, 특히 당이론에 밝았다. 그는 언제나 차가운 인상이었고, 비판적인 말을 잘하면서, 다른 이북 출신들에 비해 우월감이 좀 많은 편이었다. 그런 눈치를 진작 알았으면서도 강동기와 그냥 붙여두었던 것을 하대치는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아무 탈 없이 서로 헤어지게 된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했다. 지구사령부에서 두 사람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지 모르지만,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같은 부대에서 투쟁사업을 할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하대치는 지체하지 않고 지구사령부에 사건보고를 했다.
“그런 일이 벌어지다니, 그거참 큰일날 뻔 했군요. 내일 오후에 회의를 열도록 하지요.”  181-185

“.. 한상근 정치지도원에게 ‘엄중경고’를, 강동기 중대장에게 ‘경고’ 처분을 결정하는 바이오. 아울러 두 동무는 연대원들 앞에서 자기비판을 실시할 것이며, 인사조처는 추후에 통고될 것이오. 이상으로써 당무회의를 마치고자 합니다.”
빨치산의 당적 처벌은 다섯 가지였다. 주의, 견책, 경고, 엄중경고, 출당이 그것이었다. 주의, 견책까지는 반성을 통한 재범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행해지는 훈계 정도였다. 그러나 경고나 엄중 경고는 당원에게 출당을 전제로 한 ‘경고’였고, 같은 비중의 과오를 다시 저지르는 경우 출당을 면할 수가 없는 엄벌이었다. 물론 그 경고처분은 앞으로의 당생활에 장애요인이 되는 기록성을 갖고 있었다. 끝으로, 출당은 당원에게 가해지는 마지막 선고였다. 당은 당원을 그 어떠한 경우에도 당원의 상태로 처단하는 일이 없었다. 일단 출당처분을 내려 당적을 박탈한 다음에 처단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출당처분은 곧 ‘사형선고’였다.
이틀 뒤에 문화부 중대장의 자리바꿈이 있었다.
“강 동지, 미안하게 됐어요. 잘 있으라요.”
한상근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한 동지, 내가 미안시럽소. 암 디서나 몸 성허씨요이.”
강동기가 웃으며 한상근의 손을 맞잡았다.  187-188



18 새로 생겨나는 반공세력

"그런데 말씀입니다, 의사들 중에도 좌익사상을 갖고 있다가 입산한사람들이 적지않은데요, 저처럼 아무 편도들지 않고 이렇게 사는게 혹시 잘못된 일은 아닌가요?"
"글쎄요, 그렇게 살기는 나도 마찬가지지요. 허나 그렇게 사는 것을 옳다 그르다 하고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전쟁에서는 특히 그렇지요. 무슨 말인가 하면, 전쟁이란 대개 국가 대 국가가 싸우는 것이고, 그럴 때는 적과 아군이 분명하게 구분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치르고 있는 전쟁은 이념이 작용하고 있는 같은 민족끼리의 전쟁이면서, 또 남과 북이 똑같이 외국군대가 개입된 국제전이거든요. 이런 복잡한 양상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도 여러 갈래로 얽힐 수밖에 없는 거지요. 전쟁은 편을 갈라 싸우는 것이고, 이번 전쟁에서도 그 편갈이는 표나게 나타났지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전 원장님이나 나 같은 사람들이 적잖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건 그게 이념적 민족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친일반민족세력으로 이루어진 이승만 정권이야 절대로 옳을 수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공산주의를 지지할 수도 없고, 그런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한 묶음으로 정치적으로는 중도파라고 부르는데, 그런 사람들은 결국 양쪽에서 다 환영받을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번 전쟁을 계기로 그런 사람들도 많이 양쪽으로 갈라지게 되고, 전쟁 전에 있었던 중도파란 이제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봐야죠. 그렇다고 개인적으로 어느 편도 안 들었다고 해서 죄가 될 것은 없다고 봅니다. 얼마나 바른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가 문제지요.”  226-227



19 어차피 한 번 죽는다

빨치산들은 겨울에 고대했던 여름산의 행복감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었다. 휴전소식은 비밀일 수 없었고, 거기서 비롯되는 불안감이 빨치산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번져나갔던 것이다. 물론 도당에서도 민주원칙에 따라 그 사실을 공개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학습을 강화시켜 나갔다. 그러나 학습만으로 대원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 따라 갖게 되는 불안감을 일소시킬 수는 없었다. 휴전을 받아들이는 감도는 우선 이북 출신과 이남 출신이 달랐고, 이남 출신 중에서도 지식계급과 농민, 기본출이 달랐다. 작년 후퇴 때, 그랬듯이 이북 출신들이 가장 심하게 불안감을 드러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상의 빈약도 아니었고 특별히 겁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그건조직원의 이성이기 이전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본능적 반응이었다. 학습에서도 이 점을 지적하여 이북 출신들의 이성회복을 촉구했다. 그 다음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이 이남의 지식계급 출신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두 가지 양상을 드러냈다. 전혀 끄떡도 않는 축과, 불안을 느끼는 축이었다. 미동도 하지 않는 쪽보다는 불안을 느끼는 쪽이 한결 많았는데, 그불안의 원인은 그들이 머리를 굴려가며 휴전 다음의 상황을 꼬치꼬치 따지는 데 있었다. 지식계급에 비해 농업인민이나 기본출들은 꽤나 태평한 편이었다. 이래 살다 죽으나 저래 살다 죽으나 어차피 한세상인데, 바라는 세상 못 볼 바에는 실컷 싸움이나 하다 죽겠다는 태도였다. 그런 의연함은 기본출일수록 많이 나타났다. 그런 분석은 각 지구의 정치위원회가 일치하고 있었다.  246-247

혁명은 대가를 예약해 주지도, 보장해 주지도 않는다. 혁명은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이고 과정이며, 혁명에 가담하는 자는 그 연료로써 타오르기를 각오하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하는 것이다. 혁명에서 대가를 바랄 때 목숨에 연연하게 되고, 목숨에 연엲며 투쟁력이 약화되면서 기회주의가 싹트게 된다.  248

혁명투쟁에 나선 자의 가장 영광스러운 죽음은 적과 싸우다가 동지들의 가슴에 영원한 추앙의 괴로움을 남기고 죽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확고하게 믿는 자만이 역사를 짊어질 수 있었다.  249


사상이 말을 통한 논리의 구체성이듯이 사랑도 말을 통한 마음의 구체성이었다.  271




20 포로의 섬, 거제도

미군들은 거제도에 철조망을 치면서 250만 평에 이르는 농토와 임야에 쇠말뚝을 박았고, 자그만치 3천여 채의 집들을 강제로 허물어버렸던 것이다. 물론 미리 통고한 일도 없었고, 단 한 푼의 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한 모든 행위는 ‘공산당을 무찌르기 위해서’ 정당화되었고, ‘작전권 이양에 따른 징발’로 합법화되었다. 그래서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농토를 빼앗긴 수많은 양민들은 얼업죽고 굶어죽어도 어디사서 배상을 요구하기는 커녕 하소연할데 한 곳없었다. 김범우 자신이 물건도 아니면서 징발당하며 속수무책이었듯이. 도처에서 자행된 강간이 아무 문제가 안 되듯이, 과잉된 파괴와 바오하로 저질러지는 초토화도 아무런 시비가 되지 않았듯이. 김범우는 외로운 분노의 불을 끌 수 없어 혼자 지팡이를 짚고 서서 분노를 깨물었다.  304



22 호산댁

"인생이 도대체 뭐요. 짧은 인생 허망하고 허무한 것 아닌가요? 허무하게 살다 가는 건데 사상이고 이념이고 따져서 뭘 하자는 겁니까. 그런 걸 따지나, 안 따지나 인생이 죽음 앞에서 허무한 빈손이기는 매일반 아닌가요. 인생 육십 공수래공수거고, 더욱이 김미선 씨는 애들이 둘씩이나 딸린 여자의 몸 아닌가요. 그저 애들 생각만 하면서 겪었던 대로만 어서어서 쓰세요. 빨리 써버리고 자유의 몸이 되어 아이들 데리고, 어머님 모시고 사는 게 젤이지 그까짓 사상이란 게 다 뭐 말라빠진 겁니까? 더구나 그 사상이 현실로이뤄질 가망은 전혀 없는 판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협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기다리는 것도 한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날짜를 연기하는건 내 능력이나 권한이 아닙니다.”
김미선은 그의 어떠한 말에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내세우는 인생허무주의는 철저한 봉건적 지배논리였으며, 전형적인 기득권 세력의 옹호논리였고, 표본적인 반인민·비역사성을 내세우는 문학논리였다. 어차피 허무한 인생이니 그저 그렇게 한평생 살아가자는 그 말은 무척 초연한 것 같고, 달관한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에는 간교하고 음흉한 함정이 수없이 파여 있었다. 인생은 어차피 허무한 빈손인 공수래공수거가 아니더냐……. 아주 감상적이기도 하고 철학적이기도 한 이 읊조림이 사람들의 의식을 최면시켜 나가면서 깊이 심는 것은 체념과 패배주의였다. 그 대중최면의 체념과 패배주의를 짓밟고 올라서 지배계급은 맘껏 권력을 휘둘러대고, 그와 야합하는 기득권세력은 마음대로 착취를 일삼는 것이며, 이아무개같은 부류의 문학을 한다는 자들은 그런 권력과 세력에 기생하면서 대중을 더욱 눈멀게 하는 체념을 조장하고, 대중을 갈수록 허무주의에 빠지게 하는 글줄을 써대 힘을 빼는 것이었다. 그 반인민적·반역사적 복무의 작태가 사랑을 터무니없이 확대해서 비련의 자살극을 조작하는 삼류 연애소설이었고, 허무가 인생 극치의 멋인 양 과장해 대면서 매일 술 취해 허무타령이나 하는 사내를 미화시키는 퇴폐소설을 써대는 일이었다. 이아무개는 바로 술주정뱅이들이 게걸거리는 꼴들을 낭만적 허무니, 고독한 인생이니 미화시켜 가면서 소설이라고 맡아놓고 써대는 자였다.  360-362



23 지리산

"손 동무, 전에 지리산에 와본 일이 없더라도 혹시한 글을 읽어본 적은 있습니까?”
박두병이 담배연기를 시원하게 내뿜고 나서 물었다.
“아 예, 기행문을 그저 몇 편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게 기억이 납니까?"
“글쎄요………… 다 예찬이었는데 특별한 기억은 없고, 최남선의 글이 제일 낫지 않나 하는 정도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 친일파!"
박두병이 내쏜 소리였다. 그 소리는 전혀 크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가슴에 쿵 부딪혀오는 것을 손승호는 느꼈다. 그건 갑작스러움 때문이 아니라 박두병의 단호함 때문인 것 같았다.  450

“손 동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엔 최남선의 친일은 계급적 기회주의의 표본이오. 그는 돈 많은 중인 집안의 자식이었는데, 그 중인계급의 생리란 게 아주 묘하고도 고약합니다. 중인계급은 지배계급과 기본계급 사이에 끼여 중간착취를 일삼는게 그 계급적 특성 아닙니까. 그 중간착취계급의 대표적인 게 관리로서는 아전 부류고, 도시사회에서는 상인이고, 농촌사회에서는 마름인 건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지배계급에게는 열등감과, 기본계급에게는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 이중성은 위로는 계급상승욕구로 나타나고, 아래로는 지배확대욕구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들은 위를 향해서는 간사한 아부와 아첨을 일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악랄한 횡포와 억압을 자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직접생산을 위해 땀 흘리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두 계급 사이에서 정치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보수집단인 반면에 정치세력의 변동에 따라 언제나 민감하게 변신하는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이중성은 민첩한 현실주의와 교활한 기회주의를 낳게 됩니다. 그들의 그런 기생충과 같은 생리는 일제치하에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제치하까지 거슬러올라갈 것도 없이 지금 우리들 주변을 유심히 살펴봐요. 중간계급출신이 얼마나 있는가. 내가 살펴본 바로는 거의 없어요. 농민들이 그렇게 많은 데 비해 마름이나 그 자식들은 찾기가 어렵다 그 말입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아무런 기대도 걸 수 없는 속물적 집단이고 반역사적 집단입니다. 얘기가 좀 길어졌는데, 내 생각이 어떻습니까?"
박두병은 입을 훔치며 큰 코를 씰룩했다. “예, 저도 중간계급에 대해선 좋지 않게 생각해 오긴 했습니다만, 그렇게까지 논리적으로 정리를 하진 못하고 있습니다. 아주 정확한 파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51-452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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