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여행을 한 뒤 그리운 것은 거대하고 웅장한 유적지가 아니라 뒷골목 어딘가에서 무심코 마주친 소소한 일상들이었다.



자유는 거찰한 게 아니었다. 발길 닿는 대로 어디론가 떠나는 것도 아니었고, 한껏 누린 대가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뚱뚱한 여자도 쫄티를 입을수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도 손 잡고 연애를 할 수 있는 것, 자유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 사소한 것들에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책임을 질 필요는 더 더욱 없었다.  15


혼자 여해을 해본 사람들은 안다... 얼마나 많은 욕심들을 접어야 했는지를.  18


'안정'만이 최고가 아니라 '모험' 또한 삶의 지표가 되어야 한다는 깨달음도 일깨워 주었다. 이런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은 혼자일수록 좋았다.

외롭지 않느냐고? 혼자라고 해서 외로울 이유는 없다. 여행을 할수록 느끼는 건 외로움이란 혼자 일 때 생기는 것이 아니라 '관계'속에서 생기는 병이라는 것이다. 외로움은 늘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은 속도로 달리는 사람들 틈에 파묻혀 있을 때 찾아오곤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때로 쓸쓸할 뿐이다.  20


길은 낯설수록 좋았고 혼자일수록 가슴은 미치도록 뛰었다.  23


여행자 입장에서는 적당히 퇴폐적이고 적당히 자유스런 분위기들이 때론 달가웠지만 그럼에도 관광객들 위주로 재편성되어버린 마을들은 늘 어딘가 2%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럴 때면 관광지의 옆 마을로 들섰다. 역시나 그곳엔 현지인들의 단단한 삶이 있었다. 예정 없이 들렀던 태국의 북부도시 람방도 마찬가지. 관광객이 별로 없다 보니 도시의 주인은 자연히 태국 사람들이었고, 상가가 아닌 주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시에는 평화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처마마다 제 나름대로 치장한 목조 주책들이 살가웠고, 그 골목 사이로 들어앉은 구멍가게와 밥직들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담장 너머론 꽃과 과일로 단장한 여유가 주렁주렁 내걸리고, 골목마다 사람 사는 따뜻한 온기와 함게 작은 공력들이 여실히 묻어나왔다. 그렇게 중심에서 살짝만 비껴나면 늘 뜻박의 풍경들과 에피소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길은 잃어버렸지만 실상 그 길 위에서 잃어버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내 삶의 터전을 떠나면 세상 어느 곳이든 낯설긴 다 마찬가지. 그래서 때론 길으 ㄹ잃어버려도 좋은 것이다.  47


삶의 속도는 무서운 기세로, 너무나 많은 것들을 밀어낸다. 아쉽다. 많은 것들이 너무나 쉽게 빨리 잊혀지기에 늘 그렇게 아쉽고 그립다. 삶의 속도를 딸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도 사람들은 때때로 시계 반대 방향을 따라 걸어보고 싶어한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건 비단 연어떼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 가슴 속 한 켠에 돌아갈 곳을 그리는 연어를 키우고 있다. 사람들은 그 진한 그리움을 가슴에 안은 채 삶의 속도를 딸잡지 못해 안달이다. 우리는 어디를 향해 그렇게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것일까.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던데, 다행히 길 위에도 그리운 것들은 있었다.  111


여행자는 늘 이렇게 관찰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여행의 함정이기도 하고 여행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자의 눈으로 판단을 할 때는 조금 더 조심스러워져야 함을 느끼곤 하지만 결국 여행이란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스쳐 지나는 것이기에 많은 부분이 생략되고 축약될 수밖에 없는 것. 그게 바로 여행의 본질이 아닐까.  153


영화는 늘 현실을 아름다운 색으로만 채색한다. 그런에도 떠나고 싶고 확인하고 싶다. 설혹 현실이 내 판타지를 탈색시킬지라도 허상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인생이 늘 그렇게 드라마틱할 필요도 없고, 다큐멘터리처럼 마냥 무거울 필요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환상과 현실 사이를 교묘하게 줄타기 하는 묘미 때문에 여행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229

Posted by WN1
,



프롤로그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여행을 한다.

자의든 타의든 꺾이는 법부터 배우는 청춘들에게, 얼마든지 즐겁게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88만 원 세대로 원한다면 충분히 글로벌 세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단, 자유와 불안은 한 세트라는 것만 받아들인다면 말이다.

 


내가 나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던 건 여행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 하나 밖에 없었다.  14


자리를 잡고 나면 그때 충분히 할 수 있는 거라고, 돈이 있으면 언제든지 여행은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럴싸하게 들렸다.  19


정말로 중요한 건, 누구든 원한다면 자신만의 방식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여행에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다는 것, 누가 뭐래도 여행은 모험이라는 것!  40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똑같은 가이드북을 손에 쥐어야 길을 나설 수 있는 건 아니다.  41


젊게 사는 것도 연습이 필요해, 몸이든 마음이든, 그래야 젊게 늙을 수 있는 거야.  58


멋지게 늙는 사람들을 볼 때면 얼굴의 표정이 다르다.  60


다른 누군가가 나의 꿈을 알아줄 리 없다. 어차피 우리는 누구나 저마다의 세상을 사니까.  81


누구나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게 관건은 아니다. 그럼에도 넘길 떼가되면 과감하게 넘긴 사람에게선 일종의 자신감이 묻어나온다.


'a place close to your heart!'

"무슨 뜻이야?"

"누가 뭐래도 너의 심장이 닿는 곳이 최고야. 장소든 사람이든!"

나의 심장이 닿는 곳이라? 따지고 보면 모든 건 내 안에 다 있다. 모른 척하거나 헷갈리는 척하거나, 그렇게 애써 부정하려 해서 그렇지 답은 모두 내 안에 있다.  92


좋은 추억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얼굴에 표정을 심어주는 것.  99


자신만의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길 위의 사람들은 모두들 조바심을 냈다. 처음이란 늘 애틋한 법, 순례자들은 처음 함께 걷던 동료들을 잃어버릴까봐 부지런히 재촉한다. 사람들은 실상 지는 것보다 홀로 남겨지는 걸 더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카미노를 찾을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자 한다. 하지만 카미노는 끊임없이 말한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속도라고, 한계를 극복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처음에는 좀 생뚱하다. 우리는 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듣고 자랐으니까, 거기다 우리는 뭉쳐야 산다. 라고 배운 단일민족의 자손들이 아니던가.  125


"우리 여행자들은 인도에서 5루피 10루피 사기 당했다고 난리를 피우지만, 실생활에서는 더 큰 사기를 당하고 있어. 인도 사람들 사기 치는 건 순진해서 금방 눈에 잡히는데 사회가 우리를 조종하는 건 너무 교묘해서 우리가 알아채기 힘들 뿐이야."


시작은 거기부터다. 코카콜라와 펩시를 선택의 자유, 문화의 다양성이라고 빋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자본은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주는 척 하지만 실상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의식을 소비에 집중시키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현대 사회에서는 광고가 빅브라더의 텔레스크린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끊임없이 노출되는 광고는 우리에게 타인의 욕구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인간의 욕구는 소비 하나로 통일되고, '소중한 나'를 위해 우리는 우아한 백화점에서 지갑을 연다. 그 대가로 장시간의 노동을 인간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187-189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 뛰지 않는 것, 속지 않는 것,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  박인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189


일상의 억숙한 것들은 마치 정답인 척 굴러온다.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하지만 실상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실일 뿐, 진실도 아니고 정답은 더더욱 아니다. 모든 건 그저 하나의 사실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202


실상 프랑스 사람들은 프렌치 키스를 모르고 비엔나에는 비엔나 소시지도, 비엔나 커피도 없다. 꿈꾸는 건 자유지만 거기에 그게 없다고 화내면 곤란하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해서 상대도 나를 사랑해야 하는 게 아닌 것처럼, 누구도 나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

어쩌면 장소는 우리의 영원한 짝사랑인지도 모른다.  223


아무것도 깨달은 게 없어도, 무언가 커다란 교훈을 얻지 않아도, 다행히 여행의 순간은 늘 기억으로 남아준다. 기억으로 남아있는 한 추억은 언제든지 내몫으로 돌아온다. 설혹 불쾌했던 감정일지라도 인간은 지나간 시간에는 관대한 법, 인간은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초조해 말라. 그저 기억에 시간을 달라.  254


사진보다 오래 남는 건 몸에 새겨진 여행의 기억이다.  257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이 세상에는 애시 당초 '보통 사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세상 사람 모두 저마다 대단하고, 또 어떤 의미에서는 아무도 대단하지 않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보는 삶이란, 동그란 지구를 네모난 종이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누군가 부정한다고, 몰라준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다.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밀려날 뿐 엄연히 그곳에 존재한다.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272-273


여행에 매료되었던 건 새로움 때문이었다. 일상의 많은 것들은 원래 그랬다는 이유로 나의 의식을 제한한다. 사람들도 마찬가지,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로 나를 아는 척하고 내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변해주길 기대한다. 여행은 그런 익숙한 관계로부터의 일탈이었다. 똑같은 모습에서 벗어난 해방감, 일탈감이 주는 짜릿함. 그런데 여행도 하다 보니 또다시 의식은 우르르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제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내가 체화하지 못하면 관념에 불과할 뿐이다. 갇혀 있던 한 세상을 깨고 나왔는데 또다시 갖힌 기분이랄까.  287


여행에서 배운 게 아무리 많아도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속도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290


Posted by W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