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한 교사로 자기 차고에서 목을 맸던 나이 지긋한 남자가 "아웃사이더"가 자살을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자살을 두고 누구나 하게 되는 한 가지 행동은 자살에 대해 설명하는 겁니다. 설명하고, 판단을 내리죠. 남겨진 사람들에게 자살이란 매우 무시무시한 일이에요. 자살에 대해 견해가 필요할 정도로요. 어떤 사람들은 자살을 비겁한 행동이라고 생각하죠. 어떤 사람들은 범죄라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영웅적이고 용기 있는 행위로 여기는 관점도 있죠. 그다음으로 결벽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문제 삼는 건 이겁니다. 정당한 자살인가, 충분한 이유가 있었는가? 심리학자들의 견해는 좀더 임상적인데, 징계하려 하거나 이상화하혀 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살자의 정신 상태를, 자살할 때 그가 어떤 정신 상태에 있었는지를 설명해 보려 하죠." 23-24
페긴이 그의 집에 드렀다. 버몬트 주 서쪽에 있는 규모는 작지만 진보적인 여자대학인 프레스콧에 최근 강사 자리를 얻은 페긴은 학교에서 몇 마일 떨어진 곳에 빌린 조그만 집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액슬러가 사는 곳은 거기서 서쪽으로 한 시간 거리로, 주 경계선 건너편의 뉴욕 주 외곽에 있었다. 방학 동안 부모님과 여행을 다니던 발랄한 대학생이었던 그녀를 본 게 벌써 이십여 년 전 일이었다...
지금 그의 눈앞에는 몸이 유연하고 가슴이 풍만한 마흔 살의 여자가 있었다...
그 첫날 오후, 액슬러는 페긴을 집 안으로 들이다 발을 헛디뎌 널찍한 돌계단 위로 세게 넘어졌는데, 손을 짚었다. 손바닥에 상처를 입고 말았다. "구급약은 어디 있어요?" 페긴이 물었다. 그가 말해주자 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가 그것을 찾아들고 나와 과산화수소를 묻힌 솜으로 상처를 씻어내고 반창고 두어 개를 붙였다. 그리고 물도 한 컵 가져다주었다. 누가 그에게 물을 가져다준 것도 몹시 오랜만이었다.
그는 저녁을 먹고 가라며 그녀를 붙들었다. 결국 그녀가 저녁을 준비했다. 누가 그에게 저녁을 차려준 것도 몹시 오랜만이었다. 그가 주방 식탁에 앉아 음식을 만드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그녀는 맥주 한 병을 비웠다. 냉장고에는 파르메산 치즈 한 덩이와 계란, 베이컨, 크림 반 통이 있었는데, 그것들과 파스타 1파운드로 그녀를 둘이 먹을 카르보나라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그의 주방에서 그녀가 자신의 주방인 것처럼 편하게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그녀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던 갓난아기였을 때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몸이 탄탄하고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생기 가득한 존재였다. 이윽고 그는 자신이 재능을 잃은 채 세상에서 고립되었다는 느낌을 더이상 받지 않게 되었다. 그는 행복했다. 뜻밖의 기분이었다. 보통 그는 저녁식사 때 하루 중 가장 우울했다. 그녀가 음식을 만드는 동안 그는 거실로 가서 브랜들이 연주하는 슈베르트 음반을 얹었다. 마지막으로 음악을 들으려 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지만, 결혼생활이 행복했던 시절에는 늘 음악을 틀어놓았었다.
"아주머닌 어떻게 된 거예요?" 스파게티를 먹고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신 뒤 그녀가 물었다.
"아무렴 어떤가. 너무 지루한 사연이네."
"아무도 없이 여기서 혼자 지낸 지 얼마나 된 거예요."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한 외로움을 느끼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 달이 바뀌고 계절이 바뀌는 동안 여기 앉아서 내가 없어도 시간은 계속 흐르리라는 생각을 하면 때로 놀랍기도 해. 내가 죽었을 때도 그럴 테지."
"배우 일은요?" 그녀가 물었다.
"난 이제 배우가 아니야."
"그럴 리가요." 그녀가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것도 자세히 이야기하기엔 지루한 사연이지."
"은퇴한 거예요, 아니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을 돌아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녀가 일어서자 키스했다.
그녀는 놀라 미소를 짓더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난 성적으로 평범하지 않아요. 여자랑 자요."
"그건 알아채기 어렵지 않더군."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두번째로 키스했다.
"그런데 뭘 하는 거죠?" 그녀가 물었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안다고 말하진 못하겠는걸. 남자하곤 한 번도 없었나?" 그가 물었다.
"대학 때요."
"지금도 여자와 지내나?"
"대체로요." 그녀가 대답했다. "아저씬요?"
"난 아니야."
그는 근육이 발달된 그녀의 팔에서 힘을 느꼈고, 그녀의 묵직한 가슴을 주물렀다. 그리고 그녀의 탄탄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그녀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다시 한번 키스했다. 그런 다음 그녀를 거실 소파로 이끌어싿.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청바지를 벗었고, 대학 시절 이후 처음으로 남자와 했다. 그는 평생 처음으로 레즈비언과 했고.
몇 개월 뒤 그는 그녀에게 물었다. "그날 오후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차를 몰고 왔지?" "당신이 다른 사람하고 같이 사나 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보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나라고 안 될 게 있나?" "늘 그런 식으로 계산하며 사나?" "계산이 아니에요. 원하는 걸 추구하는 거죠." 그녀는 덧붙였다. "더는 원치 않는 걸 추구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58-65
그녀는 자신의 부모가 그들 사이를 알게 되길 원치 않았다. 그들은 매우 속상해할 게 분명했다. 69
그럼에도 어느 날 아침식사 때 액슬러는 이렇게 말했고, 그 말에 그녀만큼이나 그 자신도 놀라고 말았다. "이게 정말 당신이 원하는 건가, 페긴? 그동안 서로 즐겁게 지냈고, 색다른 기분도 강렬했고, 감정도 격렬했고, 쾌락도 만끽하긴 했지만, 난 지금 당신이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궁금하네."
"그럼요, 알아요. 난 이 생활이 좋아요." 그녀가 말했다. "끝내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내 말뜻을 알겠지?"
"그럼요. 나이 문제, 성적 이력의 문제, 당신과 우리 부모님의 오래된 관계. 이것 말고도 스무 가지는 더 있을걸요. 하지만 그 가운데 날 괴롭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당신을 괴롭히는 게 있어요?"
"여러 사람의 마음을 괴롭게 만들기 전에 우리가 물러서는 게 좋지 않을까?" 그가 대꾸했다.
"행복하지 않아요?" 그녀가 물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 삶은 정말 위태로웠네. 이젠 희망이 산산 조각나는 걸 견뎌낼 힘이 없어. 결혼생활은 불행할 만큼 불행했고, 그전에도 여러 여자와 이별을 경험했네. 그건 늘 고통스럽고, 늘 가혹하지. 그래서 이쯤 살고 보면 그런 걸 자초하고 싶지 않아."
"사이먼, 우린 둘 다 버림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나락에 떨어진 상태였는데, 부인은 당신 혼자 감당하라고 내버려둔 채 짐을 꾸려 떠나버렸죠. 난 프리실라한테 배신당했고요. 나를 떠났을 뿐 아니라, 잭이라는 이름의 수염 난 남자가 되기 위해 내가 사랑했던 몸도 버렸어요. 혹시 우리가 실패한다면, 그들 때문도 아니고 당신이나 내 과거 때문도 아니고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로 해요. 당신에게 모험을 하라고 권하고싶진 않아요. 당신에겐 이 상황이 모험인 걸 알아요. 어쨌거나 우리 둘 다에게 모험이에요. 나도 모험이라고 느끼니까. 물론 당신하곤 종류가 다르지만요.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당신이 날 떠나는 거예요. 이제 당신을 잃으면 난 견디지 못 할 거예요. 그래야만 한다면 견뎌보겠지마, 모험인 게 문제라면, 우린 이미 모험이 기렝 들어섰어요. 이미 저질러버렸다고요. 물러서서 피해가기엔 너무 늦었어요."
"그러니까, 잘 지내는 동안에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는다는 뜻인가?"
"바로 그거예요. 난 당신을 원해요. 알잖아요. 당신이 내 사람이라고 믿게 됐어요. 나한테서 억지로 떠나려 하지 마요. 난 지금 이대로가 좋고, 이 생활을 끝내고 싶지 않아요. 그것 말고는 할말이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당신이 노력한다면 나도 노력하겠다는 것뿐이에요. 이젠 잠깐의 외도 같은 게 아니에요."
"우린 모험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그녀의 말을 되풀이했다.
"우린 모험의 길에 들어섰어요." 그녀가 대꾸했다.
이 네 마디 말은 그에게 버림받는다면 그녀가 최악의 시간을 보낼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 여자는 필요하다면 연속극에 나올 법한 말이라도 하겠지. 몇 달이나 지났는데도 프리실라가 준 충격과 수차례에 걸친 루이즈의 최후통첩으로 아직도 마음고생을 하고 있으니, 저러는 걸 기만이라고 할 순 없지. 우리가 본능적으로 택하는 전략이니까. 하지만 결국 언젠가 상황이 바뀌면, 액슬러는 생각했다. 그녀는 이 관계를 끝내버릴 수 있는 더 강한 위치에 올라서고 나는 너무 우유부단해서 이 관계를 지금 끊어버리지 못한 탓에 힘업슨 위치로 떨어지겠지. 그리고 그녀가 강해지고 내가 약해졌을 때 가해질 타격을 나는 견뎌내지 못하겠지.
그는 자신들의 미래를 자신이 명료하게 적시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예상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미래를 바꾸기에 지금 그는 무척 행복했다. 71-73
척추 통증 때문에 그는 그녀와 섹스할 때 그녀 위로 올라갈 수 없었고 심지어 옆에서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반듯이 눕고, 그녀는 체중이 그의 골반에 실리지 않도록 무릎과 손으로 바닥을 짚은 채 그의 몸 위로 올라갔다. 처음에 그녀는 남자 위에서 하는 법을 다 잊어버려 그가 두 손을 사용해 그녀에게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줘야 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페긴이 수줍게 말했다. "당신은 말 등에 앉아 있는 거야." 액슬러가 설명했다. "말을 타봐." 그가 그녀의 항문에 엄지손가락을 밀어넣자 그녀는 쾌감으로 한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누가 거기에 뭔가를 집어넣은 건 처음이에요." "그럴 리가." 그가 속삭였다. 그리고 이후에 그가 그곳에 성기를 삽입하자 그녀는 더 밀어넣을 수 없을 정도로 깊숙이 받아들였다. "아픈가?" 그가 물었다. "아파요. 하지만 당신이잖아요." 끝나고 나면 그녀는 자주 손바닥에 그의 성기를 올려놓고 발기가 풀리는 것을 응시하곤 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지?" 그가 물었다. "이건 꽉 채워줘요." 그녀가 말했다. "딜도나 손가락으론 느낄 수 없는 방식으로. 이건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존재예요." 그녀는 곧 말 타는 법에 숙달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위아래로 움직이며 이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날 때려요." 그가 그녀를 때리면 그녀는 조롱하듯 말했다. "지금 그게 때린 거예요?" "얼굴이 이미 빨개졌잖나." "더 세게." 그녀가 말했다. "좋아, 그런데 왜?' "내가 당신한테 그렇게 해도 좋다고 허락했으니까. 그렇게 하면 아프니까. 그렇게 하면 내가 어린 여자애 같은 느낌이 들고, 내가 창녀 같은 느낌이 드니까. 어서 해요. 더 세게."
어느 주말 그녀는 섹스 기구들이 담긴 작은 비닐주머니를 가져와서는 침대에 들려 할 때 시트 위에 쏟아놓았다. 딜도 같은 것이라면 그도 볼 만큼 봤지만, 가죽 벨트로 몸에 딜도를 단단히 고정해서 한 여자가 다른 여자 위로 올라가 삽입할 수 있게 만든, 그 마구처럼 생긴 걸 사진이 아닌 실물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녀에게 그 장난감들을 갖고 오라고 부탁한 것은 그였다. 그는 그 기구를 양 허벅지에 꿰어 엉덩이 위로 끌어올린 다음 벨트처럼 단단하게 몸에 채우는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옷을 입고 있는 총잡이 같았다. 거드럭거리며 걷는 총잡이 같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자신의 음핵 위치에 홈이 있는 벨트에 초록색 고무 딜도를 끼워 넣었다. 알몸에 그것만 입은 채 그녀는 침대 옆에 섰다. "당신 것도 보여줘요." 그녀가 말했다. 그는 팬티를 벗어 침대 가장자리 너머로 던져버렸고, 그녀는 베이비오일을 미리 발라놓은 초록색 음경을 움켜쥐고 남자처럼 자위하는 흉내를 냈다. 그가 감찬조로 말했다. "그럴듯한데." "내가 이걸로 한번 해주면 좋겠죠." "고맙지만 됐어." 그가 말했다. "안 아프게 할게요." 그녀가 어르듯, 교태를 부리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약속해요. 아주 부드럽게 해줄게요." "재밌겠군. 하지만 부드럽게 해줄 것 같진 않은데." "겉모습에 속으면 못써요. 아이, 하게 해줘요."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하게 될걸요. 이건 신천지예요." "당신이 좋아하겠지. 됐어, 난 당신이 내 걸 빨아주면 더 좋겠는데." 그가 말했다. "내 음경을 단 채로." 그녀가 말했다. "좋지." "커다랗고 두꺼운 초록색 음경을 단 채로."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난 커다란 초록7nh 7nh 7nh 7nh 7nh 7nh 7nh 7nh색 음경을 달고 있고, 당신은 내 젖꼭지를 가지고 노는 거예요." "그거 괜찮은데." "그리고 내가 당신 걸 빨아준 다음에는," 그녀가 말했다. "당신도 내 걸 빨아주는 거예요. 내 커다란 초록색 음경을 입안에 넣는 거예요."
"그건 할 수 있지." 그가 말했다. "그러니까, 할 수 있단 말이죠. 희한하게 선을 긋네요. 여하튼 나 같은 여잘 보고 성적으로 흥분하는 걸 보면 당신도 아직 엄청 꼬여 있는 남자라는 걸 알아야 해요." "내가 꼬인 남자일진 모르지. 하지만 당신은 더는 당신 같은 여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는 것 같은데." "이런, 이제 아닌가요?" "이백 달러짜리 머리를 한 채로는 아니지, 그런 옷들을 입고서도 아니지. 당신 어머니가 당신을 따라 구두를 사게 된 이상 아니지." 그녀의 한 손이 계속 딜도를 천천히 아래위로 움직였다. "당신 정말로 지난 열 달 동안 내 안에서 레즈비언을 몰아냈다고 생각해요?" "요즘도 여자하고 잔다는 건가?" 그가 물었다. 그녀는 그저 딜도만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거야, 페긴?" 자유로운 나머지 한 손으로 그녀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였다. "그게 무슨 뜻이지?" 그가 물었다. "두 번요." "루이즈하고?" "미쳤어요?" "그럼 누구하고?" 그녀가 얼굴을 붉혔다. "차를 몰고 학교로 가는데 야구장에서 여자 소프트볼부가 경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차를 세우고 내려 그쪽으로 가서 벤치 옆에 서 있었죠."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가 털어놓았다. "경기가 끝난 뒤 금발을 포니테일로 묶은 투수랑 같이 집으로 갔어요." "그럼 두번째는?" "그 투수의 상대팀 투수요." "그런 식이었다면 꽤 많은 선수들이 언제 자기 차례가 오나 기다렸겠는데." 그가 말했다. "그럴 생각은 없었어요." 여전히 초록색 음경을 애무하며 그녀가 말했다. "아무래도 페긴 마이크." [서부의 플레이보이]에서 연기한 이후 사용한 적 없었던 아일랜드 억양으로 그는 말했다. "다시 그럴 계획이라면 나한테 말해주는 게 좋겠는데. 당신이 그러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녀를 붙잡아두고 독차지하기에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열정이 우스꽝스러워졌다는 걸 알면서도, 아일랜드 사투리 뒤에 애써 감정을 숨기면서 그는 말했다. "말했잖아요.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그러고는 정욕에 사로잡혔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입을 다물길 바랐기 때문인지 그녀는 천천히 그의 성기를 끝까지 입에 밀어넣었다. 그의 시선은 최면에라도 걸린 듯 그녀의 음경에 붙들려 있었고, 그러는 동안 둘의 연애가 헛되고 어리석다는 생각, 페긴이 살아온 내력은 쉽게 바뀔 수 없다는 생각, 페긴이 그의 손에 닿지 않는데 있다는 생각, 새로운 불행을 자초한 것은 자신이라는 생각 들이, 그리고 그의 내면의 무력감이 차츰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대다수 사람은 이런 이상한 결합을 싫어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기이함이 정말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공포도 있었다. 또다시 완전히 끝나버리는 것에 대한 공포. 제2의 루이즈가 되는 것에 대한 공포, 비난하고 발광하고 복수하는 전 애인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 101-105
액슬러는 트레이시를 페긴과 함께 뒷좌석에 태우고 텅 빈 캄캄한 시골길을 따라 집으로 차를 몰았다. 꼭 트레이시를 유괴하는 것 같았다. 페긴이 신속하게 행동에 들어간 것에 그는 놀라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 침실에 들어가자 페긴은 비닐주머니에 든 기구들을 침대에 쏟아놓았다. 그중에는 아주 부드럽고 가느다란 검정 가죽끈 다발이 달린 채찍 같은 기구도 있었다. 121-122
페긴은 그 기구를 입고 가죽 벨트를 조정해 단단히 고정하고는 딜도가 똑바로 앞을 향하도록 끼웠다. 그런 다음 트레이시 위로 몸을 숙이고 그녀의 가슴을 주무른 다음 아래쪽으로 미끄러져내려가 딜도를 부드럽게 트레이시에게 삽입했다. 페긴은 트레이시가 몸을 열도록 힘쓸 필요가 없었다.
초록색 음경이 그 아래 널브러진 풍만한 나신 속으로 처음에는 느리게, 이윽고 보다 빠르고 세게, 그다음에는 한층 더 세게 찌르고 들어갔다 나왔다 했고, 트레이시 몸의 모든 굴곡이 그 움직임과 일체가 되어 움직였다. 123
그의 심장이 흥분으로 쿵쾅거렸다.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음탕한 눈길로 몰래 엿보는 판(그리스 신화에서 호색한으로 묘사되는 반인반수의 목신(牧神 칠목 귀신신)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 페긴은 트레이시 옆에 등을 대고 누워 쉬며 조그만 검정 가죽 채찍으로 트레이시의 긴 머리칼을 빗질하듯 쓸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앞니 두 개를 보이며 예의 그 어린애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액슬러를 건너다보며.. "당신 차례예요. 이애를 더럽혀줘요." 그러곤 트레이시의 한쪽 어깨를 잡고 "조련사가 바뀔 시간이야"라고 속삭이고는 낯선 여인의 커다랗고 따스한 몸을 액슬러 쪽으로 부드럽게 굴렸다. 124
자정 무렵 그들은 트레이시를 그녀의 차가 세워져 있는 호텔 옆 주차장으로 다시 데려다줬다.
"두 분은 이런 거 자주 하세요?" 트레이시가 뒷좌석이ㅔ서 페긴의 품에 안긴 채 물었다.
"아니." 페긴이 말했다. "넌?"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그래서 어땠어?" 페긴이 물었다.
"머리가 안 돌아가요. 머릿속에 생각해야 할 온갖 것이 꽉 차 있어요. 회로가 끊겨버린 기분이에요. 약을 한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하고."
"이런 짓을 할 객기는 어떻게 낸 거야?" 페긴이 트레이시에게 물었다. "술 기운에서?"
"당신이 입은 옷 때문에요. 당신 외모가 주는 인상 때문에요. 두려워할 필요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있잖아요. 남자분, 그 배우 맞죠?" 투래아사눈 액슬러가 그 차 안에 없기라도 한 것처럼 페긴에게 물었다.
"맞아." 페긴이 대답했다.
"바텐더가 말해줬어요. 당신도 배우예요?" 그녀가 페긴에게 물었다.
"이따금은." 페긴이 말했다.
"미친 짓이었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맞아." 페긴이 대답했다. 단순히 서투른 애호가가 아니었던, 상황을 극한까지 몰고 갔던 채찍을 휘두르는 딜도 전문가 페긴이.
작별 인사를 나눌 때 트레이시는 페긴에게 열정적으로 키수했다. 페긴도 열정적으로 화답하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녀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들이 만났던 호텔 옆 주차장에서 두 사람은 잠시 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런 다음 트레이시가 자기 차에 올랐고, 액슬러는 그녀가 차를 몰고 떠나기 저넹 페긴이 그녀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조만간 보자." 125-126
스스로 자신에게 가하던 고통은 끝났다. 그는 자신감을 회복했고, 비통함을 밀어냈고, 지긋지긋한 두려움을 몰아냈다. 그에게서 달아났던 모든 것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인생 재건이 어디선가 시작되어야 했는데, 그의 경우에는 놀랍게도 그 일을 위해 고용된 여자인 듯한 페긴 스테이플퍼드에게 그가 빠져든 순간 시작되었다. 130
그는 자그마한 몸집의 시블 밴 뷰련을, 교외 주택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주부로 체중이 100파운드(45킬로그램)도 안 나가지만 자신이 작정한 일을 해치운, 무시무시한 살인자 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연기해낸 그녀를 떠올려보라고 자신을 다그쳤다. 그래, 그는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악귀 같은 존재였던 남편에게 그토록 끔찍한 짓을 할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면, 나도 최소한 나 자신에게 이 일을 할 수 있을 거야. 그는 무자비한 최후를 계획해 실행한 그녀의 강인함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어린 두 아이를 집에 남겨두고, 오로지 한 가지 생각만 하며 별거중인 남편의 집을 향해 차를 몰아가서, 계단을 걸어올라가고, 초인종을 누르고, 사냥총을 들어올리고, 그리고 남편이 문을 열었을 때 주저 없이 코앞에서 두 발을 발사하기 위해 그녀가 동원한 무정한 광기를.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시블 밴 뷰련이 용기의 기준이 되었다. 마치 간단한 한두 마디가 세상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일을 실행할 수 있게 해주기라도 한다는 듯 그는 그 격려의 말을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마침내 연극에서 자살을 하는 것인 척하면 되겟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까지. 체호프의 희곡을 연기하는 것처럼. 이보다 더 딱 들어맞을 수 있을까? 이것으로 다시 연기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한 레즈비언의 십삼 개월간의 실수이자, 터무니없고 치욕스럽고 허약하고 하찮은 존재이므로 이일을 해치우기 위해서는 그의 모든 걸 걸어야 할 것이다. 149-150
그녀가 할 수 있었다면, 나도 할 수 있다.
그주 후반에 청소를 하러 온 여자가 다락방 바닥에서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의 옆에는 이렇게 적힌 쪽지가 놓여 있었다. "사건의 진상은 콘스탄틴 가브릴로비치가 총으로 스스로를 쏘았다는 것이다." 그것은 <갈매기>의 마지막 대사였다.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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