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우리는 침묵해서는 안 될 경우에만 말해야 한다 ; 그리고 극복해낸 것에 대해서만 말해야 한다 - 다른 모든 것은 잡담이고 ‘문학’이며 교양의 부족이다. 내 저서들은 오직 나 자신이 극복해낸 것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 거기에는 다른 모든 것과 더불어 한때 나의 적이었던 나, 가장 나 자신과 똑같은 나, 아니 그뿐만 아니라 좀더 자랑스러운 표현이 허락된다면 가장 독자적인 존재인 ‘나’가 있다. 9
1장 혼합된 의견과 잠언들
철학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 만약 너희가 지금까지 삶의 최고 가치를 믿어왔지만 이제는 실망하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도대체 그것을 가장 헐값에 팔아치워야만 한다는 말인가? 23
공상가들에 반대해서 - 공상가는 자신 앞에서 진리를 부인하지만, 거짓말쟁이는 단지 다른 사람 앞에서만 진리를 부인한다. 25
경우에 따른 인식의 유해성 - 참된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탐구가 가져오는 효용성은 끊임없이 다양하고 새롭게 입증되고 있어서, 바로 그 효용성 때문에 개개의 탐구자는 좀더 섬세하며 드물게 나타나는 유해성 때문에 고통받지 않으면 안 된다. 화학자는 실험하면서 때로는 중독이 되고 어쩔 수 없이 화상을 입는다. - 화학자에게 타당성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문화 전체에 대해서도 타당성을 가진다. 덧붙여 말하면, 이러한 이유에서 화상을 입었을 경우를 대비해 문화는 항상 연고와 해독제를 마련해두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28-29
속된 사람의 필수품 - 속된 사람은 형이상학이라는 보라색 누더기의 추기경 외투나 터번을 착용하는 것이 가장 필수적이라고 생각하고 벗기를 원하지 않는다 ; 이러한 치장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훨씬 덜 우스꽝스러워 보일 것이다. 29
좋은 것은 삶을 유혹한다 - 모든 좋은 것들은 삶에 강한 자극제가 된다. 삶을 반박하는 것으로 씌어진 모든 좋은 책들마저도. 30
세 부류의 사상가들 - 광천 중에는 끓어오르는 광천, 흘러나오는 광천 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광천이 있다 ; 사상가도 이에 상응하는 세 부류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물의 양에 따라 평가하고 전문가는 그 속에 있는 물이 아닌 것에 따라 평가한다. 30
무엇에 대해 침묵이 요구되는가 - 극도로 위험한 빙하와 빙해를 건너는 여행에 대해 설명하는 것처럼 자유정신 활동에 대해 설명한다면, 그 길을 가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심함과 약한 무릎을 탓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욕감을 느낀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는 곤란한 일들은 결코 우리 앞에서 언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31
연극의 연속으로서의 박수 갈채 - 빛나는 눈과 호의적인 미소는 아주 훌륭한, 세상의 희극과 삶의 희극에 주어지는 일조으이 박수 갈채이다. -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다른 관객을 “박수 갈채를 보내주이소”라고 유혹하려는 희극 중의 희극이기도 하다. 32
지루함에 대한 용기 -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무료하다고 느낄 수 있는 용기를 지니지 않은 사람은, 그가 예술가이건 학자이건 최고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33
사상가의 가장 내적인 체험으로부터 - 인간에게 사물을 비인격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없다 ; 이는 사룸 속에서 그 사물만을 보고 인격을 보지 않는 것은 어렵다는 의미이다 ; 실로 인격을 형성하고 인격을 창조하는 충동의 시계 장치를 한순간만이라도 풀어놓는 일이 도대체 인간에게 가능한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사상과 관련된 경우조차도 그리고 그것이 추상적인 사상일지라도, 인간은 마치 그 사상이 자신들이 그것과 싸우고 관여하고 보호하고 돌봐주며 키워야만 하는 개인들이기나 한 것처럼 행동한다. 33
학문의 사막에서 - 때로는 사막을 여행하는 것과 다름없는 겸허하고 힘든 여정을 가는 학문적인 인간들에게 우리가 ‘철학적 체계’라고 부르는 저 찬란한 신기루가 나타난다 : 그것은 착각이라는 마력으로 모든 수수께끼의 해답을 보여주고 진정한 생명수인 가장 신선한 음료가 가까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그 지쳐 있는 사람은 가슴을 두근거리며 모든 학문적인 인내와 고통의 목표에 거의 입술이 닿을 정도로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물론 다른 본성을 가진 사람들은 그 아름다운 착각에 마치 마비된 것처럼 멈추어 서버리기도 한다 : 사막은 그들을 삼켜버리고 그들은 학문을 하기에는 이미 죽은 사람과 같다. 그러한 주관적인 위안을 이미 여러 번 체험했던 또 다른 본성을 가진 사람들은, 아마 그 어떤 샘에도 단 한 걸음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채 극도로 불쾌감을 느끼면서, 그 신기루 현상이 입 속에 남겨놓은 주체할 수 없는 갈증을 일으키는 짠맛을 저주하게 될 것이다. 38-39
헌신 - 너희는 도덕적 행위의 특징이 헌신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러나 숙고해서 행해지는 모든 행위에도, 즉 최선의 행위엣와 마찬가지로 최악의 행우에도 헌신이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라. 43
윤리성을 철저하게 조사하는 사람들에 반대하여 - 한 인간이 자신의 윤리적 본성이 얼마나 강한지 그리고 강하게 만들어져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그가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행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최악의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을 체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43
사랑 속에 있는 기만 - 사람들은 자신의 과거에서 오는 많은 것을 망각하기도 하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생각에서 지워버리기도 한다. 즉 사람들은 과거로부터 미소 짓는 우리의 상이 우리를 기만해주고, 망상이 우리를 기분 좋게 해주기를 바란다. - 우리는 끊임없이 이렇게 자기를 기만하고 있다. - 그런데 ‘사랑 속에 잇는 자기 망각’과 ‘다른 인격 속에 있는 나의 자아의 출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칭송하는 너희는, 그것이 근본적으로 다른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거울을 깨버리고 존경하는 인격 속에 자신을 창작해 넣어, 자신의 자아의 새로운 상을 즐기는 것과 같다. 비록 사람들은 그 상을 다른 인격이라는 이름으로 부르지만 말이다. - 그리고 너희 유별난 자들은 이러한 과정 전체가 자기기만도 아니고 이기주의도 아니라고 말한다! - 나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무엇을 자신 앞에서 감추는 사람드로가 자신 전체를 자신 앞에서 감추는 사람들은 인식의 보고 속에서 도둑질을 한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생각한다 : 이것으로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제가 어떤 잘못에 대하여 경고하는 것인지 명백해질 것이다. 43-44
자신의 허영심을 부인하는 사람에게 - 자신의 허영심을 부인하는 사람은 보통 자신을 경멸하지 않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그것에 대해서 눈 감아버릴 정도로 야만적인 허영심의 양상을 띠고 있다. 44
양심적인 사람들 - 자신의 양심에 따르는 것은, 자신의 오성에 따르는 것보다 더 편하다 : 왜냐하면 양심은 어떠한 실패에도 자기를 변호하고 기분을 전환해주기 때문이다. - 그러므로 이성적인 사람은 항상 매우 적은 데 반하여 양심적인 사람은 매우 많다. 46
불쾌해지지 않기 위한 정반대의 방법 - 어떤 기질을 가진 사람은 말로 자신의 불만을 터뜨려버리는 것이 유익하다 : 말하면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ㄴ기질을 가진 사람은 말을 하면서 비로소 완전히 분노하게 된다 : 그러한 사람은 말할 어떤 것을 삼켜버리는 것이 유리하다 :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는 적이나 상상 앞에서 자제하는 것이 그들의 성격을 개선시키고 너무 날카롭고 불쾌해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방법이다. 46
인간적인 ‘물자체’ - 가장 상처받기 쉬우면서도 가장 이겨내기 어려운 것이 인간의 허영심이다 : 게다가 그것의 힘은 상처받음으로써 자라나 결국에는 엄청나게 커질 수도 있다. 47
쾌감과 착각 - 어떤 사람은 자신의 본성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그의 친구들에게 선행을 베풀고 또 다른 사람은 의식적으로 개별적인 행위들을 통해 선행을 베푼다. 비록 전자가 더 고상한 것이라 할지라도, 거리낌 없는 양심과 쾌감, 즉 행위의 공적에 대한 쾌감과 연결되는 것은 후자일 뿐이다. - 그 쾌감은 우리가 자의적으로 우리의 선행과 악행을 행할 수 있다는 신념, 다시 말하면 착각에 근거한 것이다. 49
부정을 행하는 것은 어리석다 - 사람들에게 가했던 자기 자신의 부정은 낯선 사람이 그에게 가한 부정보다도 더 견디기 어렵다(이것은 도덕적 이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 행위자는 본래, 그가 양심의 가책에 좌우될 경우에도 또는 자신의 행위를 통해 사회를 자신에 반대하도록 무장시키고 자신을 고립시킨 것으로 통찰할 경우에도 항상 고통받는 자이다. 따라서 종교와 도덕이 명하는 것은 차치하고 자신의 내적인 행복 때문에라도, 즉 자신에 대한 만족감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남에게 부정을 행하는 것을 주의해야 하며 나아가 부정한 행위를 당하는 것보다도 더 주의해야 한다 : 왜냐하면 후자는 거리낌 없는 양심, 복수를 향한 희망, 정의로운 사람들과 게다가 악인을 두려워하는 사회 전체의 동정과 박수의 기대라는 위로를 얻게 되기 때문이다. -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부정을 자신에게 가해진 다른 사람의 부정으로 개조하여, 스스로 행한 일에 대한 변명으로 정당방위라는 비상권리를 보류해두는 불결한 자기 기만에 능통하다 : 그들은 이런 방식으로 자신들의 부담을 더 가볍게 짊어지려고 한다. 49-50
위선적인 동정 - 사람들은 자신이 적개심에 대해서는 초연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을 경우, 동정을 가장하게 된다 : 그러나 그것은 보통 헛일이다. 이 사실을 알고서는 적개심이 더 커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52
너무 가까이하지 말 것 - 좋은 생각들이 너무 빨리 연속해서 떠오른다면, 그것은 좋은 생각에 단점이 된다 ; 생각들이 서로 전망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 그래서 가장 위대한 예술가와 저술가들은 평범한 것을 많이 사용했다. 83
가장 나쁜 독자들 - 가장 나쁜 독자들은 약탈하는 군인과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다 : 그들은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몇 가지는 꺼내고, 나머지는 더럽히고 엉클어버리며 전체를 비방한다. 91
훌륭한 저술가의 특징 - 훌륭한 저술가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 그들은 경탄받는 것보다도 이해되는 것을 더 좋아하며 신랄하고 지나치게 예민한 독자를 위해서 글을 쓰지 않는다. 91
냉정한 책 - 훌륭한 사상가는 훌륭한 생각에 들어 있는 행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독자를 기대한다 : 그래서 냉정하고 소박해 보이는 책도 올바른 안목을 가지고 보면 정신의 명랑함이라는 햇빛에 비춰져서 참다운 영혼의 위안으로 보일 수 있다. 92
정직한 책의 가치 - 정직한 책은, 그렇지 않다면 교활한 영리함이 가장 잘 은폐할 수도 있을 독자의 증오심과 적개심을 끌어내준다는 점에서는 적어도 독자를 정직하게 만든다. 인간에 대해서는 매우 소극적인 사람들이 책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내버려둔다. 94-95
비평과 기쁨 - 타당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편파적이고 부당하기도 한 비평은 비평하는 사람에게는 큰 만족을 주는 것이어서 세상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비평하게 만드는 모든 작품과 모든 행위에 감사해야 할 정도이다 : 왜냐하면 그 비평 뒤에는 기쁨, 기지, 자기 찬미, 자긍심, 교훈, 개선책이라는 번쩍이는 옷자락이 끌려오기 때문이다. - 기쁨의 신은 그가 선을 창조한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 악과 중용을 창조했다. 96-97
글 쓰는 것과 승리를 원하는 것 -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승리를 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단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도록 전달되어야만 할 자기 자신에 대한 극복을 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 그러나 그 무엇을 소화할 수 없을 경우에만, 나아가 그것이 이미 입에서 걸려버린 경우에만 글을 쓰는 소화불량증을 앓는 작가들도 있다 : 그들은 독자에게조차 무의식중에 노여움을 품은 채 불쾌한 기분을 털어놓고 폭력을 쓰려 한다. 즉 : 그들 역시 승리를 원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승리를 원한다. 98
‘훌륭한 책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 훌륭한 책들은 모두 세상에 나왔을 때 떫은맛을 낸다 : 그 책은 새로움이라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저자가 유명하고 그에 대해 많은 것들이 알려져 있을 경우에는 살아 있는 저자는 그 책에 해를 미치게 된다 :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저자와 그의 작품을 혼동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 영혼, 달콤함, 금빛 광채로 들어 있는 것은 커져가는 존경과 과거의 존경 그리고 마지막에는 전해 내려오는 존경에 의해 다듬어져서 시간의 흐름과 함께 비로소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하고 많은 거미들이 그물을 쳐놓아야만 한다. 훌륭한 독자는 책을 점점 훌륭하게 만들고, 훌륭한 반박자는 책의 문제를 해결해준다. 98
표지에 오른 이름 - 저자의 이름이 책에 오르는 것은 오늘날에는 관례이며 거의 의무이기도 하다 ; 그러나 이것은 책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주원인이다. 즉 만약 책이 훌륭하다면, 그 책은 인격보다 그리고 그의 핵심 사상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다 ; 그러나 표지를 통해 저자가 알려지게 되면 그 핵심 사상은 곧바로 독자에 의해 개인적인 것, 아니 가장 개인적인 것으로 희석되고, 그럼으로써 책의 목적은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더 이상 개인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으려는 지성의 명예심이다. 99-100
애착이 있음과 없음 - 모든 좋은 책은 특정한 독자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위해 씌어진 것이며, 바로 그 때문에 다른 모든 대다수의 독자들에게는 좋게 여겨지지 않는다 : 따라서 좋은 책의 명성은 좁은 토대에 기초하여 서서히 쌓아질 수 있을 뿐이다. 평범한 책과 저급한 책은 많은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하며 또 많은 사람의 마음에드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평번하고 저급한 것이다. 100
비판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 곤충들은 악의에서가 아니라 그들도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물게 된다 : 비판하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그들은 우리의 피를 원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고통을 원하지는 않는다. 102
격언과 성과 - 충분한 경험을 쌓지 않은 사람들은 어떤 격언이 그들에게 자신들의 소박한 진리를 확실히 이해하게 해주면, 항상 그 격언은 진부하고 널리 알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는 격언의 창시자를 마치 그가 모든 사람의 공동 재산을 훔치려 한 것처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 그들은 인위적인 어설픈 진리에서 기쁨을 느끼고 이 사실을 작가에게 인식시키려 한다. 작가는 그러한 눈짓의 의미를 평가하여 그것에게 쉽게 자신이 어떤 점에서 성공하고 실패했는지 알아차리게 된다. 103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쓴다 - 이성적인 작가는 자신의 후세만을 위해 글을 쓰지 어떤 다른 후세를 위해 글을 쓰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자신의 노년을 위해, 즉 자신에게서 기쁨을 느끼기 위하여 글을 쓴다. 103
예술 작품으로서의 예술에 반대해서 - 예술은 무엇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삶을 미화해야 하고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참아낼 수 있고 가능하다면 즐거운 존재로 만들어주어야 한다 : 이러한 과제에 주목하면서 예술은 완화시키는 작용을 하고 우리의 감정을 억누르게 하며, 교제의 형시들을 창조하게 할 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 하여금 예의범정, 순수함, 정중함 그리고 때에 맞는 웅벼노가 침무그이 법칙에 구속받게 한다. 따라서 예술은, 어떠한 노력을 하더라도 인간 본성의 기원에 따라 되풀이해서 솟아 나오게 되는 저 고통스러운 것, 끔찍한 것, 혐오스러운 것과 같은 저 모든 추악한 것을 은폐하거나 새로 해석해야 한다 : 즉 예술은 정열과 정신적 고통과 불아느이 관점에서 꾸려나가야 하고, 피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추악한 것 속에서 의미 있는 것을 투명하게 비추어주어야 한다. 이 위대한, 아니 너무나 위대한 사명을 따르면 이른바 원래의 예술, 즉 예술 작품으로서의 예술은 하나의 부속물일 뿐이다. 113
교육은 왜곡하는 것이다 - 모든 교육 제도에 있는 이상한 불안정성 때문에 오늘날 어른들은 모두 자신의 유일한 교육자는 우연이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 교육 방법과 의도의 변동성은, 오늘날 가장 오래되고 새로운 문화의 힘들이 마치 어수선한 대중 집회에서 그러한 것처럼 이해되는 것보다는 오히려 들리기를 원하며,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목소리와 외침을 통하여 자신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거나 혹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불쌍한 교사와 교육자들은 먼저 이러한 어리석은 소리들에 마비되어 버리고 그 다음에는 침묵을 지키며 마침내 무감각해져서 모든 것을 잠자코 참아내게 되며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학생들에게도 모든 것을 참아내게 한다. 교사 자신이 교육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그들이 교육할 수 있겠는가? 그들 자신이 꼿꼿이 자라난 힘있고 싱싱한 나무줄기가 아닌데 그들과 연결되는 자가 어떻게 휘어지고 구부러지지 않을 수 없으며 마침내 왜곡되고 기형적인 모습이 되지 않을 수 없겠는가. 118-119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문화의 병사는 되지 말 것 - 사람들이 마지막에, 제일 마지막에 배우게 되는 사실은 젊은 시절에는 어떤 것을 알지 못해서 아주 많은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이다 : 즉 첫째 훌륭한 일을 할 것, 둘째 그것이 어디서 그리고 어떤 이름으로 발견된다 하더라도 훌륭한 일을 찾아야만 한다는 것 : 또한 모든 불량하고 평범한 것과는 싸우지 말고 곧 길을 비켜 가는 것 그리고 어떤 일의 이득에 대해 의심부터 하는 것 - 이러한 의심은 숙련된 취향이 있는 사람에게는 빨리 생긴다 - 은 그 일에 반대하는 논거로서 그리고 그 일을 완전히 회피하려는 동기로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물론 그러한 일에서 오류를 범하게 될 위험과 접근하기 어려운 이득은 곧 불량하고 불완전한 것이라고 혼동하게 될 위험이 몇 번은 있을 것이다. 더 좋은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만 문화의 병사로서 세상의 나쁜 일들의 해결에 몰두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문화의 생산 계층과 성직자 계층이 무장을 하고 나돌아다니면서 자신의 직업과 가정의 평화를 주의와 경계와 악몽을 통해 음산한 불안감으로 바꾸어놓는다면 그 계층은 파멸하고 말 것이다. 120
고대 세계와 기쁨 -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더 많이 기뻐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반면 우리는 덜 우울해지는 방ㅇ법을 알고 있다 ; 그들은 예민한 감각과 풍부한 통찰력으로 기쁨을 느끼고 축제를 누릴 새로운 동기를 발견해냈다 : 반면에 우리는 고통을 받지 않는 것과 불쾌감의 근원을 제거하는 것에 주목하는 과제를 해결하는데만 정신을 몰두하고 있다. 고대인들은 고통스러운 삶에 관해서는 잊어버리거나 어떻게든 그 감정을 즐거운 것으로 돌려놓으려고 노력했다 : 그래서 그들은 그 속에서 고통을 일시적으로 완화하려고 애썼던 반면 우리는 오히려 고통의 원인을 해결하고 전체적으로 고통을 예방하는 쪽으로 행동한다. - 우리는 아마도 후세의 사람들이 다시 기쁨의 신전을 세우도록 기초를 닦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123
존재에 대한 차후의 변호 - 착오와 환상으로 세상에 나오긴 했지만 진리가 되어버린 많은 사상들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차후에 그 사상들에 참된 기초를 밀어 넣었기 때문이다. 124
유행의 원천과 이득 - 자신의 형식에 대한 개개인의 확실한 자기 만족은 다른 사람의 모방심을 자극하고 점차 다수의 사람들의 형식, 즉 유행을 창조하게 된다 : 이 다수의 사람들은 유행을 통해서 그 형식에 대해 매우 유쾌한 자기 만족감에 젖기를 원하며 또 실제로 그러한 즐거움을 얻게 된다. - 누구든지 불안을 느끼고 소심하게 자신을 은폐하고 싶은 이유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러한 이유로 인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에너지와 선의의 4분의 3이 못쓰게 되고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유행에 감사해야만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유행이 이 4분의 3을 해방시켜, 서로 그 유행의 규칙에 매여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확신을 갖게 하고 서로에게 명랑한 친절을 베풀도록 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법칙이라 하더라도 다수의 사람들이 구속되어 있는 한, 그것은 마음의 자유와 안정을 준다. 131
자유로운 정신 - 만약 자유정신이라는 이름이, 자신의 어깨 위에 세상의 질투와 모욕이라는 짐을 일부분 짊어짐으로써 나름대로 자유정신이라는 이름을 욕설로 붙이고 다니는 부류의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중 누가 감히 자유정신으로 불리고자 하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진지하게 (거만하거나 관대한 반항심을 가지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 이라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를 향한 경향을 우리 정신의 가장 강한 충동으로서 느끼기 때문이며, 또한 소극적이고 거의 경멸적인 표현을 쓰자면, 속박되고 뿌리를 깊이 내린 지성인들과는 반대로, 우리는 우리의 이상을 대부분 정신적인 유목 생활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131-132
진부한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 - 진부한 것들과는 너무 거리가 먼 치밀한 정신의 소유자들은, 종종 모든 종류의 우회로와 오솔길을 지나온 후 그러한 진부한 것을 발견하고 크게 기뻐하며 치밀하지 않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133
어디로 여행해야 할 것인가 - 직접적인 자기 관찰도 자신을 알기에는 결코 충분하지 않다 : 우리에게는 역사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과거란 수많은 물결 속에서 우리에게 계속 흘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 우리 자신은 이 흐름에 대하여 매 순간 느끼는 존재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 이 경우에도 역시, 만약 우리가 겉으로 보아 우리의 가장 고유하고 개인적인 본질로 보이는 흐름 속으로 내려가려고 한다면,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이다. - 이것은 차츰 진부한 것으로 남아 있는 지혜이다 : 또 욕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살아 있는 역사적 시기의 잔해들을 찾아야만 하며, 늙은 헤로도토스가 여행한 바와 같이 우리는 여러 국가들을 - 이 국가들은 그 위에 우리가 설 수 있는 견고해진 오래된 문화 단계에 있다 - 즉 거기에서는 사람들이 유럽의 옷을 벗어버렸거나 아직 한 번도 입은 적이 없는 이른바 미개한 그리고 반쯤 미개한 민족을 향해 여행해야 한다는 것도 그러한 지혜이다. 그러나 반드시 이곳에서 저곳으로 몇천 마일을 걸어갈 필요가 없는 좀더 세련된 여행 기술과 여행 목표도 있다. 아마 지난 3백 년의 문화는 그 문화의 모든 색채와 굴절을 간직한 채 우리 가까이에서 아직도 살고 있음이 거의 확실하다 : 그것들은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 문화의 단층들은 여러 가족들 속에, 아니 개개인 속에 아름답고 선명하게 차곡차곡 쌓여 있다 : 물론 다른 곳에는 좀더 파악하기 어려운 암석 단층도 있을 것이다. 분명 외딴 지역과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에 둘러싸인 공동체속에는 훨씬 더 오래된 감정의 표본이 더 쉽게 보존될 수 있고 또 여기서 그것들을 찾아내야만 한다 : 예를 들어 인간이 피폐해지고 깃털이 뽑혀 세상에 나오게 되는 베를린에서는 아마 그러한 것을 발견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여행 기술의 오랜 훈련을 거친 뒤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Argos)가 된 사람은 마침내 자신의 이오(Io) - 에고(ego)를 의미한다 - 를 어느 곳에나 동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집트와 그리스, 비잔틴과 로마, 프랑스와 독일에서, 민족 이동의 시기와 정착기에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시대에서, 고향과 타향에서, 나아가 바다, 숲, 식물과 산 속에서 생성하고 변화하는 에고의 모험의 여행 자취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이렇게 자기 인식은 과거의 모든 것에 관한 총체적 인식이 되는 것이다 ; 여기서는 암시만이 가능한 다른 고찰 관계에 따르자면, 가장 자유롭고 가장 멀리 내다보는 정신의 자기 규저오가 자기 교육은 언젠가는 미래의 모든 인간적인 것에 관한 총체적인 규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41-143
여행자와 그 등급 - 사람들은 여행자를 다섯 등급으로 구분한다 : 가장 낮은 등급의 여행자는 여행하면서 오히려 관찰당하는 사람들이다. - 그들은 여행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며 동시에 눈먼 자들이다 ; 다음 등급의 여행자는 실제로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는 사람들이다 ; 세 번 째 등그브이 여행자는 관찰한 결과에서 그 무엇을 체험하는 사람들이다 ; 그 다음 등급의 여행자는 체험한 것을 자신 속에 가지고 살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지니고 있다 ; 끝으로 최고의 능력을 가진 몇몇 사람도 있다. 그들은 자신이 관찰한 모든 것을 체험하고 동화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곧 그것을 여러 가지 행위와 작업 속에서 기필코 다시 되살려나가야만 하는 사람들이다. - 여행자에 대한 이 다섯 부류에 따라 대체로 모든 사람들은 삶의 모든 여정을 지나간다. 가장 낮은 등급의 여행자는 순전히 수동적인 사람들이고, 가장 높은 등급의 여행자는 남겨져 있는 내면적 과정들을 아낌없이 발휘해나가는 사람들이다. 149-150
깊이 있는 사람들 - 깊이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교제할 때, 자신이 희극배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 늘 먼저 겉모습을 가장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151
자만하는 것처럼 보이려는 것 - 모르는 사람이나 어느 정도만 아는 사람과 대화할 때 선별된 생각만을 말하는 것과 자신의 유명한 지인 관계, 중요한 체험과 여행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은, 그가 긍지를 가잔 사람이 아니라는, 즉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싶지 않다는 표시이다. 자만심은 긍지를 가진 사람이 쓰는 겸양의 가면이다. 154
좋은 우정 - 좋은 우정은 상대방을 지극히 그리고 자신보다도 더 존중하고,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사랑하는 경우에 성립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쉽게 교제하기 위하여 친밀성이라는 부드러운 겉모습과 솜털을 덧붙이는 법을 알고 있지만 그와 동시에 실제적이고 진정한 친밀성과 나와 네가 혼동되지 않도록 현명하게 유지해나갈 경우에만 성립한다. 154-155
정직함 속의 오산 - 우리가 지금까지 침묵해온 사실들은 때때로 우리가 최근에 사귄 친구들이 먼저 알게 된다 : 이때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렇게 신뢰를 증명하는 것이 그들을 단단하게 붙들어 맬 수 있는 가장 강한 사슬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말한 것이 가져올 희생을 충분히 강하게 느낄 만큼 우리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배반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의 비밀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 만다 : 그래서 아마 우리는 오랜 친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 158
너무 이르지 않게 - 너무 빨리 날카로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와 동시에 너무 가늘어져버리니까. 162
영원한 어린아이 - 우리 근시안들은 동화와 놀이는 유년 시절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삶의 어떤 시기에는 동화와 놀이 없이 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물론 우리는 그것을 다르게 부르고 다르게 느끼게 되지만 바로 이 점이 그것을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 왜냐하면 어린아이 역시 놀이를 자신의 일로, 그리고 동화를 자신의 진리로 느끼기 때문이다. 짧은 삶이 우리로 하여금 - 마치 각 연령이 새로운 그 무엇을 가져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 지나치게 꼼꼼하게 연령을 구분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어떤 시인이 정말 동화와 노링 없이 살아가는 2백 살의 인간을 그려 보여주지 않을까. 163
때때로 - 그는 도시 성문 안쪽에 앉아 그곳을 지나는 사람에게 바로 이것이 도시의 성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은, 그것을 사실이지만 감사를 받고 싶다면 너무 당연한 것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오, 나는 감사의 말을 원하지 않는다 ; 그러나 때때로 당연한 것을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연한 것을 유지하는 것도 매우 유쾌한 일이라고 대답했다. 172
부의 위험 -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살마만이 소유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유는 공적으로 위험한 것이 된다. 즉, 소유가 그에게 보장할 수 있는 한가한 시간을 사용할 줄 모르는 소유자는 항상 소유하기 위해 나아갈 것이다 : 이 노력이 그의 즐거움이고, 권태와의 싸움에서의 그의 전략이다. 그래서 정신적인 사람에게 충분할 만큼의 적당한 소유에서 마침내 진정한 부, 더구나 정신적인 비자립성과 빈곤의 찬란한 결과로서 부가 생겨난다. 이제 부는 그의 궁색한 혈통에서 기대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부는 이제 교양과 예술로 가면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 즉 이제 가면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부는 항상 교양을 부러워하고 가면 속에서 가면을 보지 못하는 가난하고 교양이 없는 사람들의 질투심을 자극한다. - 그리고 서서히 사회적 변혁을 준비한다 : 왜냐하면 이른바 ‘문화의 향수’ 속에서 금도금된 저속함과 기만적인 부풀리기 양상은 ‘중요한 것은 오직 돈뿐이다’라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 물론 돈도 약간은 중요하지만, 정신이 훨씬 더 중요하다. 178
아테네로 향하는 올빼미 - 거대한 국가의 정부는 국민을 두려움과 복종 속에서 자신에게 구속해둘 수 있는 두 가지 수단을 장악하고 있다 : 비교적 조잡한 수단은 군대이며 좀더 세련된 수단은 학교이다. 양쪽 모두가 평범하고 빈약한 재능의 소유자인 활동적이고 건장한 남성들에게는 특유한 것에 불과하지만, 정부는 전자의 도움으로 상류층 국민의 명예욕과 하류층 국민의 힘을 그들 편으로 끌어당긴다 : 그리고 후자의 수단으로는 재능 있는 가난한 자들, 즉 정신적으로 요구하는 바가 많은 중산층의 사람들을 그들 편으로 끌어들인다. 정부는 특히 각 수준의 교사들을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위’를 우러러보는 정신적인 신하들로 만들어버린다 : 또한 사림학교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사교육을 철저하게 방해함으로써 매우 현저한 수에 달하는 교직을 마음대로 할 힘을 확보해간다. 이제는 만족할 수 있는 자리보다 분명 다섯 배는 많은 수의 굶주리고 굴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교직으로 향하게 된다. 그러나 이 직위는 자신들 편의 사람만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부양하기만 하면 된다 : 그러면 그들 속에는 승진을 바라는 열병 같은 갈망이 유지되어 그들을 정부의 의도에 더 긴밀하게 묶어두게 된다. 왜냐하면 적당한 불만감을 가지게 해두는 것은 용기의 어머니이자 자유로운 생각과 긍지의 할머니인 만족을 주는 것보다 항상 훨씬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울타리 속에 가두어진 교사 계층을 매개로 하여, 이제 그 나라의 모든 청년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국가에 유용하고 합목적적으로 분류된 특정한 교육 수준까지 끌어올려진다 : 그러나 특히 국가에 의하여 승인되고 보증된 삶의 방향만이 곧 사회적인 우대를 가져온다는 생각이 모든 계층의 미숙하고 야심만만한 사람들에게 거의 보이지 않게 전염되어 간다. 국가 시험과 국가 자격 칭호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매우 광범위해서, 상업이나 수공업으로 성공하여 독립적이었던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의 지위 역시 위계와 훈장이 너그럽게 수여됨으로써 위에서 인정받고 승인될 때까지는, 즉 ‘사람들에게 내보일 수’ 있게 되기까지는 가슴속에 불만의 가실르 가진 채 살아가야 할 정도이다. 마지막으로 국가는 국가에 속하는 수많은 관직과 영리직의 임명을, 이 문에 들어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국립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우수함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우와 결부시킨다 : 사회에서의 명예. 자신을 위한 양식, 가족의 영위, 위로부터의 보호, 공동으로 교육을 받은 자들의 동질감, - 이 모든 것이 모든 청년이 달려들 희망의 그물을 만드는 것이다 : 도대체 어디서 그들에게 불신감이 생겨나겠는가! 몇 세기가 지나면 결국 모든 사람에게 몇 년 동안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의무는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관습과 전제가 되어버리고, 사람들은 그것에 맞추어 삶의 계획을 설계한다. 이렇게 국가는 학교와 군대, 즉 재능과 명예욕과 힘을 여러 가지 이익에 의하여 서로서로 짜맞추는 장인 기술을 발휘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더 높은 재능을 가진 자와 교양인들을 더 유리한 조건에 의해 군대로 끌어들여 기꺼이 복종하는 군인 정신으로 가득 채운다 : 그 겨로가 그는 아마 언제까지나 국기에 맹세하면서 자신의 재능으로 국각에 새로운 그리고 더 빛나는 명성르 가져오게 될 것이다. - 그러고 나면 거대한 전쟁을 위한 기회 외에는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 기회를 위해 직무상으로, 즉 아주 순수하게 신무노가 거랫 그리고 외교관들을 지원해준다 : 왜냐하면 즉, ‘국민’으로서, 아니 군인 민족으로서 전쟁 시에는 항상 떳떳한 양심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군인 민족을 위해서 그러한 양심을 먼저 만들어줄 필요도 없겎지만 말이다. 182-184
주권 - 사람들은 나쁜 것도 그것이 마음에 들기만 하면 존경하고 편을 든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호의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이것이 크건 작건 주권이라는 것의 특징이다. 190
여러 의견들에 대한 마지막 의견 - 자신의 의견을 감추거나 그 의견 뒤에 숨어버리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세상의 이치를 모르거나, 아니면 무모함을 섬기는 경건한 수도회에 속하는 자이다. 193
칭찬을 받은 자에게 - 사람들이 너를 칭찬하는 한, 항상 너는 자신의 궤도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궤도 위에 있다고 믿어라. 193
결코 헛일이 아닌 - 네가 진리의 산을 오르는 것은 결코 헛일이 아니다 : 그것은 네가 오늘 더 높이 올라가거나, 아니면 내일 훨씬 더 높이 올라갈 수 있기 위해 힘을 단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99
가능하면 편이 없이 사는 것 - 추종자가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사람들은 추종자가 추종자이기를 그만두었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다. 202
너무 비싸게 사지 말 것 - 너무 비싸게 산 물건은 역시 대체로 좋지 않게 사용된다. 왜냐하면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이, 씁쓸한 기억과 함께 사용하기 때문이다. - 이렇게 사람들은 이중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210
창조자와 즐기는 자 - 즐기는 자는 누구나 나무에서 중요한 것은 열매라고 생각한다 ; 그런데 나무에서 중요한 것은 씨이다. - 이것이 모든 창조자와 즐기는 자 사이의 차이다. 213
2장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현세의 무기력함과 주요 원인 - 주위를 둘러보면 평생 동안 계란을 먹어왔지만 길쭉한 계란이 가장 맛있다는 것, 뇌우가 아랫배에 효력이 있다는 것, 차고 맑은 공기 속에서 좋은 냄새는 가장 넓게 퍼진다는 것, 우리의 미각은 입 안의 여러 부위에서 다르다는 것, 식사 때 많이 이야기하거나 듣는 것이 위에 나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관찰력의 결여를 나타내는 이러한 실례만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하여 전적으로 잘못 간주되고, 거의 관찰되지도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은 일이란 말인가? - 개개인의 거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무기력함은 이러한 결여에서 유래한다는 사실을 잘 생각해보라 : 생활 양식의 설정, 하루 일의 할당, 교제를 위한 시간과 선택, 직업과 여가, 명령과 복종, 자연과 예술에 대한 감각, 식사, 수면, 반성적 사색에서 무엇이 우리에게 바람직하며 무엇이 우리에게 해로운가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 가장 사소한 것과 가장 일상적인 것에 무지하고 예리한 안목이 없다는 것,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에게 이 땅을 ‘재앙의 초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어디서나 그런 것처럼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비이성이다라고 말하지 말라 :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 이성은 충분히, 지나치게 충분히 존재하고 있지만 그 이성은 잘못된 방향으로 돌려져 사소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것들에서 인위적으로 빗나가버린 것이라고, 신부와 교사들 그리고 조잡하건 섬세하건 간에 모든 부류의 이상주의자들의 미묘한 지배욕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중요한 것은 전혀 다른 그 무엇이라고 설득하고 있다 : 즉 중요한 것은 영혼의 구제, 국가에의 봉사, 학문의 발전, 또는 전 인류에 봉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명망과 재산을 입증해 보이는 것이며, 반면에 개개인의 욕구, 24시간이라는 생활에서 대두되는 크고 작은 필요 등은 경멸스럽고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 이미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편에 서서 인간적인 것을 교만하게 등한시하는 것에 전력을 다해 저항했다. 그리고 배려하고 반성해야 할 모든 사항의 참된 범위와 본질에 대해 호메로스의 말을 빌려 경고하기를 좋아했다 : 소크라테스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집안에서 부딪히는 일’ 이것이야말로 그리고 이것만이 중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223-224
어떠한 새로운 사슬도 느끼지 않는 것 - 우리가 그 어떤 것에 의존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한, 우리는 자신을 독립적이라고 간주한다 : 이것은 인간이 얼마나 교만하고 지배욕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오류추리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일상적으로 독립해서 살고 있고, 만약 그가 예외적으로 그 독립성을 잃게 되면 그 반대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보면, 인간은 구속당하자마자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그 반대가 진리라면 어떻게 될까? : 즉 인간은 항상 여러 가지 구속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오랜 습관으로 인해 사슬의 무게를 더 이상 느끼지 않을 때에만 자신을 자유롭다고 간주한다면 어떻게 될까? 다만 새로운 사슬에서만 인간은 여전히 구속감을 느낀다 : - 그렇다면 ‘의지의 자유’란 본래, 어떠한 새로운 사슬도 느끼지 않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228
근본 오류 - 인간이 어떤 정신적 쾌감이나 불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환상 중 어느 하나에 지배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 중 하나는, 특정한 사실들과 특정한 감정의 동일성을 믿어야만 한다 : 그러면 그는 현재의 상태를 과거의 상태와 비교함으로써, 또 그것들을 동일시하거나 차별함으로써(모든 기억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정신적인 쾌감이나 불쾌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 또 다른 하나는, 의지의 자유를 믿어야만 한다. 예를 들면 “이 일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것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었는데”라고 생각하면 거기에서 마찬가지로 쾌감이나 불쾌감을 느낄 수 있다. 모든 정신적 쾌감과 불쾌감에 작용하고 있는 이러한 오류 없이, 인간적 본질은 결코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230
비도덕주의자들 - 도덕주의자들은 오늘날 비도덕주의자로 비난받는 것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도덕을 해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부하려는 사람은 먼저 죽여야만 한다 :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함으로써 다지 더 잘 알고, 더 잘 판단하고, 더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지 세상 모두를 해루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모든 도덕주의자들이 그 모든 행동으로 다른 사람들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 그들은 도덕주의자를 도덕의 설교자와 혼동하고 있다. 과거의 도덕주의자들은 도덕을 충분히 해부해보지도 않고 설교하는 일이 너무나 흔했다 : 이 때문에 이러한 혼동뿐만 아니라 현재의 도덕주의자들에 대한 유쾌하지 않은 생각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237-238
균형의 원리 - 도둑과 도둑으로부터 지켜주겠다고 사회에 약속하는 권력잔느 아마 근본적으로는 매우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단 후자는 전자가 획득하는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이익을 획득할 뿐이다 : 즉 사회가 그에게 바치는 정기적인 세금에 의해서이지 약탈에 의해 이익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오랜 동안 동일한 인물과 다름없는 무역상과 해적 사이의 관계와 같다 : 그들은 이쪽 역할이 불리하게 보이면 다른 쪽 역할을 했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상인 도덕은 모두 해적 도덕이 영리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 가능한 한 싸게 사서 - 사업비 이외에는 전혀 경비를 들이지 않고 - 가능한 한 비싸게 팔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 저 권력자는 도둑과는 달리 균형을 유지할 것을 약속한다는 것이다 ; 약자들은 그 속에서 살아나갈 하나의 가능성을 찾아낸다. 왜냐하면 약자들은 균형을 유지하는 세력과 함께 일하거나 아니면 균형을 유지하는 자에게 종속되거나 (보수를 받는 대신 그에게 봉사한다)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자의 방법이 즐겨 선택되는데, 그 이유는 그것이 결국 두 가지 위험한 존재의 움직임을 봉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즉 약자는 권력자에 의해서, 또 권력자는 이익의 관점에 의해서 ; 즉 권력자는 종속된 자들을 자비롭게 혹은 적당히 다루어서 그들이 자신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지배자까지도 부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실제로 이 경우는 여전히 가혹하고 무자비하게 대해질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파멸과 비교해보면 사람들은 이러한 상태에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다. - 공동사회란 처음에는 위험한 세력들과 균형을 이루기 위한 약자들의 조직이었다. 만약 그들이 적대 세력을 한 번에 파멸시킬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해진다면, 이 우월한 힘을 유지하기 위한 조직이 바람직 할 것이다 : 이러한 일은 개개의 강력한 가해자가 문제가 되었을 경우에 분명히 시도된다. 그러나 그 개개인이 족장이거나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다면, 신속하고 결정적인 파멸의 가능성이 희박할 것이므로 지속적인 불화를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 그러나 이것은 공동사회에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를 가져오게 된다. 왜냐하면 사회는 그 상태 때문에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반드시 규칙적으로 준비해야 할 시간을 잃게 되며, 모든 노동에 따른 수확이 매순간 위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공동사회는 방어와 공격을 위한 자신들의 힘을 위협적인 이웃의 힘과 같은 수준으로 올려놓고, 이제 저울 위에는 똑같은 쇳덩이가 올라가 있으니 서로 좋은 친구가 되어보지 않겠는가라는 입장을 이해시키려 한다. - 따라서 균형이라는 것은 가장 오래된 법 이론과 도덕론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 된다 ; 정의의 토대가 되는 것이 균형이기 때문이다. 비교적 야만적인 시대에 이 이론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말했을 경우, 이것은 이미 달성되어 있는 균형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그 균형을 보복에 의해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 그 결과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하여 해를 가한다 하더라도, 다른 쪽은 더 이상 맹목적인 분노를 지닌 복수를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같은 형벌에 의해 흐트러진 세력 관계의 균형이 회복되는 것이다 : 왜냐하면 이러한 원시 상태에서는 한 눈과 한 팔이 더 많다는 것은 한 조각의 힘과 무게가 더 많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공동사회의 내부에서는 위반 행위, 즉 균형의 원리를 파괴하는 행위에는 수치와 형벌이 가해진다 : 수치는 부당한 가해로 이익을 얻은 가해자에게 부여되는 무게이며, 과거의 이익을 상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압도하는 손실을 수치로 다시 받게 하는 것이다. 형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 모든 범죄자가 자신에게 허락한 우월한 힘에 훨씬 더 우월한 힘을, 즉 폭행에 대해서는 투옥을, 도둑질에 대해서는 배상금과 벌금을 과하는 것이다. 이렇게 범죄자는 자신의 행동 때문에 공동 사회에서, 또 사회의 도덕적 이득에서 제외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 이 때문에 형벌은 보복일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것, 자연 상태의 가혹함에 관한 그 무엇인 것이다 ; 형벌은 바로 이 사실을 그들에게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239-241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에 대한 해석 -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은, 어느 누구든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관점에서 나쁜 상태에 처할 수 있다는 것과 걱정이나 후회나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유래한다 : 즉 남에겍 닥쳐온 불행이 그를 자신과 똑같은 위치에 두게 되고 질투를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 이와 반대로 그는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낄 경우에도 자신에게 불행이 닥쳐올 때 적용시키기 위해 이웃의 불행을 의식 속에 자본으로 모아두게 된다 ; 이렇게 그는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즉 평등을 지향하는 마음은 행운과 우연의 영역에 자신의 척도를 맞추고 있는 것이다 :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은 평등의 승리와 회복에 대한 가장 비열한 표현이고, 그리고 좀더 고상한 세계 질서를 가진 곳에서도 역시 그러하다. 인간이 다른 사람 속에서 자신과 같은 인간을 관찰하는 것을 배운 후에, 즉 사회가 건설된 후에 비로소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마음이 존재하게 된 것이다.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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