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동전을 넣고 자동판매기에서 꺼내는 '인스턴트 커피'가 아니다. 10
나는 우선 이 이미지의 '간파'와 '유포'의 혐의를 에드워드 사이드릐 오리엔탈리즘에 둔다. 사이드에 따르면,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서양 간의 인식론적 구분을 창조하고 확인하는 데 기여한, 서양의 동양에 대한 연구와 서양에 의해 재현되고 지지된 어떤 이념적 관점"을 말한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서양이 동양에 대해 가진 본질적인 이미지, 서양이 상상하고 날조하는 동양을 말한다. 12
"먹고 먹히느냐가 동물의 왕국의 규칙이듯이 인간 세계의 규칙은 규정되느냐, 규정하느냐이다"라는 말을 기억한다면, 오리엔탈리즘은 힘센 서양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와의 관계 속에서 힘없는 동양을 정의하고 구성한 담론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어떤 대상을 보고 정의하는 자와 그에게 보여지고 정의되는 자는 대등하지 않다. 이 관계 자체가 전자가 후자보다 우월함을 전제한다. 아는 것이 힘이고 지식이 권력이듯이 보고 말하고 판단하는 것도 권력과 연계되기 때문이다. 13
수동적인 동양은 역동적인 서양의 부정적인 '새김장식'으로 정의된다. 곧 서양이 우수하면 동양은 열등하며, 동양이 후진적/비합리적이면 서양은 진보적/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서양에게 동양이라는 타자는 서양의 밖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이른다. 따라서 열등한 동양은 서양의 우월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완성해주는 역할을 한다. 15-16
어쩌면 우리에게 인도는 부정해야 할 '동양'이거나 지우고픈 아픈 기억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서양이 구성한 인도, 인도에 대한 영국의 식민담론을 비판 없이 차용하고 복제하여 우리보다 발전한지 못한 인도를 우리의 '동양'과 타자로 바라보면서 한때 막강한 힘을 가졌던 대영제국의 공범이 되어 심리적 보상을 얻는 것이다. 26
영국이 인도를 버정적을 인식하여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을 강화했듯이, 우리도 인도를 열등한 '동양'으로 타자화하면서 우리 자신을 발전한 서양과 동일시한다. 29
복제 오리엔탈리즘 - 박제 오리엔탈리즘..
이 글에서 나는 영국이 인도를 지배한 시대에 영국이 창조한 인도의 부정적 이미지를 분석하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어떻게 복게되고 재생산되는지 살펴본다. 30
오리엔탈리즘은 말없이 누운 채 서양의 시선에 몸을 맡기는 수동적 동양을 가정한다. 31
나는 우선 이 책에서 영국과 우리 나라에서 출간된 소설과 여행기, 신문과 잡지에 실린 글 등 문자화된 재현 수단인 텍스트를 분석하여 상상력의 렌즈와 보는 자의 '전지전능한' 시선으로 박제(형성)되고,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복제되고 무의식적으로 수용(재생산)되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구성되고 발전했는지 추적한다. 이는 우리가 인도를 보고 규정하는 방식을 따라가는, 우리 자아에 대한 일종의 탐구 여행이 될 것이다. 33
1898년에 길크리스트(John Gil-christ)는 인도의 정치조직과 저항의 잠재력을 감지하고 "우리가 이방에서 온 정복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 것"과 "인도인은 언제나 우리를 이 나라의 이방인으로 여길 것"이며 "때가 오면 이 무해한 인도인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추방할 것"이라면서 인도인을 믿지 말라고 충고했다. 이 불안과 두려움이 영국으로 하여금 인도에 대한 '거리 두기'를 장려하게 했다. 마음소의 불안을 눅이는 방법은 문명화의 사명을 수행하는 영국을 이상적인 지배이념으로 만들고 인도를 부정적인 존재로 이분화하는 것이었다. 42
1885년, 듀퍼린 인도 총독이 런던의 인도부 장관에게 보낸 다음의 편지, "뱅골인 바부(babu; 지식인)들이 우리 영국인을 가장 짜증나게 만들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저도 예전부터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절대로 보여주어서는 안된다는 장관의 말씀에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들에게는 켈트족이 지닌 심술궂음과 교활함, 그리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44
인도와 인도인 역시 영국과 영국인이 아닌, 부정적이고 열등한 이미지로박제되기 시작했다. 46
비교적 인도에 동정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평을 받는 포스터조차도 서구 교육을 받은 인도인은 '인도인답지 않다'고 여겼다. 그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않고 권리를 요구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 곧 "철도와 우체국 그리고 학교 없이....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문명의 사각 지대에 있는 인도인들은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동시에 영국이 가진 문명화의 사명을 정당화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로 도시에 거주하며 영어로 말하고 서구 교육을 받은 인도 지식인에 대한 찬사는 어느 책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65
인도 여성과 영국 남성의 결합 ... 앵글로-인도인(Anglo-Indian)
영국인은 앵글로-인도인을 '검은 백인'이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79
문명의 기준은 늘 영국이었다.
스틸은 20년이나 인도에 거주하며 인도에 관해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자부하였고, 수많은 글을 써서 인도의 이미지 형성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 펀잡 주의 한 여학교에서 장학사를 지냈고 여학교를 후원하기도 했지만, 그의 소설이나 글에는 영국과 인도를 분리해서 보는 인종 차별적 시선이 짙게 배어 있다. 100
저자는 제 기준으로 재단하고 판단한 뒤 간단히 '전근대'와 야만의 딱지를 붙였다.
인도를 사랑한 것으로 알려진 포스터도 인도인의 미학적 취향을 낮추어 보았다. 인도의 어떤 마하 라자(왕)가 "멋진 풍경과 건축을 좋아한다"고 언급하면서 "이 모든 것은 인도인에게 아주 드문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치 이런 미감은 영국인만 가지고 있다는 듯한 인종 차별적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포스터는 인도-아리아 양식의 사원 건축의 좋은 예로, 천 년 전 인도인의 일상생활을 정교하게 묘사한 외벽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카주라호의 사원을 '악몽'이라고 표현한 미감의 소유자였다. 10세기경에 만들어진 카주라호 사원군은 건축과 조각, 조각과 건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인도의 훌륭한 문화유산이지만, 19세기의 영국인은 사원의 일부 외벽에 새겨진 외설적인 부조 때문에 그 가치를 낮게 매겼다.
이처럼 인도를 원시 수준으로 끌어내려 보려는 일은 번번했고, 다양했다. 101-102
박제된 이미지는 점차 인도의 본질로 여겨졌다. 106
인도의 캘커타를 무대로 제작된 역설적인 제목과 내용의 영화 <시티 오브 조이>를 보는 우리도 결국 가난한 인도인에게 가부장적 시혜를 베푸는 백인 주인공의 눈을 따라간다. 그러나 영화를 떠나서 직접 인도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백인 못지 않게 냉정하고 오만하다. 우리에게 인도인은 백인의 아프리카 흑(토)인처럼 '새까만 얼굴의 토착민'이고, 우리보다 열등하기 때문이다. 113-114
존재의 분열 없이 그저 인도의 이방인으로 인도를 보고 경험하고 전처럼 이방인으로 귀국할 뿐이다. 인도를 찾은 우리 소설의 주인공들은 모두 교육을 받은 '문명인'이다. 그들은 가난한 원시인을 만나고 후진 사회를 누비면서 그들보다 우리가 낫다는 비교우위의 행복론을 확인하고 위안을 얻는다. 인도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익숙한곳은 이쪽. 낯선 곳은 저쪽 식으로 구분하며 눅이는지도 모른다. 124
인도는 때로 깨달음을 준다
산과 강이 많은 우리나라의 작가들이 왜 인도의 강가나 히말라야에서 깨달음을 얻는가? 인도라는 공간의 영적 우수성 때문으로 볼 수도 있고, 어쩜 이질적인 인도가 주는 문화적 충격의 여파인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깨달음은 순수한 시인의 꾸미지 않은 자연에 동화되는 작용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이미지와 일화가 너무 익숙하게 인도 전체와 연계되고, 그러면서 인도를 반(反)문명, 반(反)현대의 이미지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 131
인도에 가지만 인도인과 소통하지 않는 작가들에게 인도는 깨달을 것 없는 불모의 땅이다.
환상의 인도는 있지만 실제의 인도는 없다. 133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인도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명상가 같고 철학자 같다. 그들의 삶은 행복할 것 같다. 비록 먹을 것이 부족하고 집이나 돈이 없다고 해도 세상 모든 것이 자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누가 불행하겠는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의 주인공들은 다른 소설과 달리 인도인들이다. 그러나 류시화가 "다 명상가 같고 철학자 같다"고 한 인도의 하층민들은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다. 정말 가난해도 행복한 걸까? 139
영국의 관점으로 인도와 영국의 차이와 유사성을 재고 판단한 영국인의 여행기처럼 우리 나라의 작가들도 우리의 기준으로 인도를 재고 판단한다. 그래서 우리와 닮은 것들은 진정한 인도의 모습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우리와 다르거나 우리보다 열등하고 혹은 이국적이고 토착적인 것들을 진정한 인도로 선택한다. 이렇게 선정한 진기하며 전설에 가까운 내용을 가지고 기존의 신비한 이미지에 덧붙여 인도를 더욱 신비하고 알 수 없는 나라로 그려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구성된 타자로서의 인도는 점차 본질이 되어 '인도는 늘 그랬고 언제나 그럴 것이다'로 규정된다. 결국,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타문화를 직접 탐사하고 기록해야할 여행기가 상상의 영역인 소설(fiction)과 유사하고 그 기능도 비슷해지는 것이다. 156
우리 여행기들은 한결같이 시간속에 정지된 인도의 이미지만 짝사랑한다. 어느 여행기에도 각 지방의 다양한 계층이 생존을 위해 투쟁하거나 능동적으로 변화의 바람을 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160
인도 여행기들은 그 설명과 묘사는 달라도 인도라는 거울을 통해 자기를 정의한다는 점에선 모두 비슷하다. 매혹이나 불쾌감을 통해 인도를 우리의 대상과 타자로서 확인하고, 타자에 대한 응시를 통해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자기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163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점에선 신문과 잡지와 같은 미디어는 앞에서 살펴본 두 장르, 소설과 여행기와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 165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긍정적인 것은 서양에서, 부정적인 것은 동양에서 기원한다고 여긴다. 206
이 책은 모든 서양을 제국주의자로, 동양을 그 무해한 희생자로 간주하는 본질주의의 시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211
조지 오웰 등의 일부 작가는 영국 제국주의를 야유하고 조소하는 작품을 썼고, 우리 나라에도 균형 잡힌 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인도가 우수하다는 사실의 확인이 아니라, 영국이 창출한 인도의 이미지가 본질적인 것이 되어 우리의 자기 표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오늘날의 문제이다.
무엇보다 수세기에 걸친 근시안을 넘어서 비뚤어진 심상의 지도를 바로잡고 거기에 새로운 이름을 써넣을 수 있는 균형 잡힌 '우리'의 시선이 필요하다. 212
'신비한 인도'라는 정형화한 이미지를 부정하고 깨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냉철한 시각으로 인도의 '신비하지 않은' 요소를 좀더 면밀하고 다양하게 분석하여 내보이는 것이이라.
비록 이러한 움직임은 서양을 변방으로 내몰지는 못한다 해도 "'서양이라는 보편성'에 구멍을 내는 수단"은 되지 않을까.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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