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투성이의 문 위에 붓질을 할 때마다 더러움이 지워졌다. 송곳으로 그은 숫자들이 사라졌다. 핏자국 같은 녹물들이 사라졌다.  17



배내옷

내 어머니가 낳은 척 아기는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고 했다. 

달떡처럼 얼굴이 흰 여자아이였다고 했다. 여덟 달 만의 조산이라 몸이 아주 작았지만 눈코입이 또렷하고 예뻤다고 했다. 까만 눈을 뜨고 어머니의 얼굴 쪽을 바라보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어머니는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 아버지와 함께 외딴 사택에 살았다. 산달이 많이 남아 준비가 전혀 없었는데 오전에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 아무도 주변에 없었다. 마을에 한 대뿐인 전화기는 이십 분 거리의 정류장 앞 점방에 있었다. 아버지가 퇴근하려면 아직 여섯 시간도 더 남았다.

막 서리가 내린 초겨울이었다. 스물세 살의 엄마는 엉금엉금 부엌으로 기어가 어디선가 들은 대로 물을 끓이고 가위를 소독했다. 반짇고리 상자를 뒤져보니 작은 배내옷 하나를 만들 만한 흰 천이 있었다. 산통을 참으며, 무서워서 눈물이 떨어지는 대로 바느질을 했다. 배내옷을 다 만들고, 강보로 쓸 홑이불을 꺼내놓고, 점점 격렬하고 빠르게 되돌아오는 통증을 견뎠다.

마침내 혼자 아기를 낳았다. 혼자 탯줄을 잘랐다. 피 묻은 조그만 몸에도 방금 만든 배내옷을 입혔다. 죽지 마라 제발. 가느다란 소리로 우는 손바닥만한 아기를 안으며 되풀이해 중얼거렸다. 처음엔 꼭 감겨 있던 아기의 눈꺼풀이, 한 시간이 흐르자 거짓말처럼 방긋 열렸다. 그 까만 눈에 눈을 맞추며 다시 중얼거렸다. 제발 죽지 마. 한 시간쯤 더 흘러 아기는 죽었다. 죽은 아기를 가슴에 품고 모로 누워 그 몸이 점점 싸늘해지는 걸 견뎠다. 더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20-21



하얗게 웃는다

하얗게 웃는다, 라는 표현은 (아마) 그녀의 모국어에만 있다. 아득하게, 쓸쓸하게, 부서지기 쉬운 깨끗함으로 웃는 얼굴, 또는 그런 웃음.

너는 하얗게 웃었지.

가령 이렇게 쓰면 너는 조용히 견디며 웃으려 애썼던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옇게 웃었어.

이렇게 쓰면 (아마)그는 자신 안의 무엇인가와 결별하려 애쓰는 어떤 사람이다.  80



당의정

자신에 대한 연민 없이, 마치 다른 사람의 삶에 호기심을 갖듯 그녀는 이따금 궁금해진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먹어온 알약들을 모두 합하면 몇 개일까? 앓으면서 보낸 시간을 모두 합하면 얼마가 될까? 마치 인생 자체가 그녀의 전진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그녀는 반복해서 아팠다. 그녀가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힘이 바로 자신의 몸속에 대기하고 있는 것처럼. 그때마다 주춤거리며 그녀가 길을 잃었던 시간을 모두 합하면 얼마가 될까?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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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모르는 자가 바다를 얕본다. 바다를 얕보는 자, 바다에 데기 마련이었다.  31


은주는 해질녘 놀이터에 익숙한 아이였다. 아이들과 그들의 활기가 빠져나간 자리에도 익숙했다. 어두운 놀이터의 그네에 앉아 등에 업은 막냇동생을 재우는 일이 갓 여덟 살이 된 그녀의 일상이었으므로, 다섯 살배기 여동생 영주는 가로등 밑에서 혼자 소꿉놀이를 하고, 두 살 배기 기주는 별사탕 같은 손으로 은주의 머리칼을 마구 잡아당기곤 했다. 은주는 그 따분하고 쓸쓸한 시간을 간절한 기도로 보냈다. 시간이 마구 점프하기를, 하루빨리 어른이 되기를, 그리하여 이 지겨운 집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폐차버스를 개조해서 탁자 몇 개 놓고 막걸리를 파는 왕대폿집도 '집'이라 부를 수 있다면.

'지니네 왕대포'의 여주인 지니는 젓가락장단의 고수였다. '목포의 눈물'을 이난영보다 더 간드러지게 부르는 여자였다. 불망 한복저로기 깃이 다 들릴 만큼 젖가슴이 큰 여자였다. 가슴골로 손이 들어오든, 돈이 들어오든 사내의 것이라면 사양하지 않는 여자였다. 코를 찡긋거리며 잇몸까지 드러내고 웃어주는 여자였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오리처럼 둥싯둥싯 걷는 여자였다.  18


제 몸 간수도 제대로 못하는 어린 딸에게 제각각 씨가 다른 여동생과 갓난쟁이 남동생을 떠안긴 여자였다. 은주를 낳은 여자였다.

은주는 막내인 기주가 잠들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

은주는 지니처럼 살고 싶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아마도 도덕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생은 '자유의지'라는 단어를 칠판에 적더니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는 자는 자기 삶을 지킬 수 있다."

그날 은주는 자신을 꼼꼼하게 평가해봤다. 가진 밑천이 무언지, 잘할 수 있거나, 그럭저럭 해낼 수 있는 일이 뭔지, 무엇을 갖춰야 하고 갖출수 있는지. 손바닥만 한 거울을 들여다보며, 그녀는 자신이 배우가 될 재목이 아님을 인정했다. 귀여운 구석이야 있었지만 지나가는 남자를 기절시킬 만큼 예쁘지는 않았다. 수재가 아니라는 건 성적표를 통해 확인했다. 예술이나 운동에도 재능이 없다는 걸, 수업을 통해 깨우쳤다. 그녀는 음치였고, 몸치였고, 일기 한 줄 그럴싸하게 쓰지 못했다. 그러나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니처럼 살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타고난 근성이 있었다.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는 자존심이 있었다. 그 정도면 자신의 미래를 믿을 근거로 충분한 것 같았다.은주는 계획을 세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열여덟 살까지 지니네 왕대폿집에 붙어 있을 것. 지니의 빨강 브래지어를 훔쳐다 팔아서라도 고교졸업장을 손에 쥘 것. 취직에 필요한 자격증을 모두 따둘 것. 취직하면 바로 튈 것. 3년 안에 전세방을 얻을 것. 폐차버스를 돌아보지 말 것.  131-132



그의 손은 은주의 뺨으로 날았다. 은주는 이삿짐 사이로 날아가 떨어졌다. ...

그는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자신이 뭔 짓을 저지를지 몰라 두려웠다. 무작정 걷다가 도착한 곳이 동네 소줏집이었다. 술이 들어가자 한 남자가 기억났다. 술만 마시면 살림을 뒤엎고 처자식을 죽사발로 만들던 구척 거한. 월남에서 돌아온 용감한 '최상상'. ..

은주 표현에 의하면, 통제가 안 되는 그의 왼손은 힘이 남아돌아 어쩔 줄 모르는 '오랑우탄'이었다. 최상사가 그의 몸에 남긴 유전자였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최상사의 아들임을 상기시키는 저주의 징표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최상사처럼 살지 않았다. 다르게 살아왔다고 믿었다.  142-143



아이들 말로, 세령은 '전교생의 왕따'였다. 5년째 다니는 미술학원에서도 외톨이기는 마찬가지였다. ..

그의 세계에 속한 세령과 세상에 속한 세령의 모습이 딴판으로 다르다는 것. 그가 아는 세령은 제 엄마 축소판이었다. 고집 세고, 영악하며, 당돌한 계집애. 세상 속 세령은 지나치게 내성적인 아이였다.  147



난 말이지, 그때나 지금이나 참는 게 제일 싫은 사람이야. 내 맘대로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고.  289-290



한 집안의 가장 노릇하는 미래가 제 앞에 있었어요. 그것이 삶이긴 하겠지만 과연 나 자신일까, 싶었던 거죠. 나와 내 인생은 일치해야 하는 거라고 믿었거든요.

현수는 자신의 손끝에서 깜박거리는 담뱃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인생과 그 자신이 일치하는 자가 얼마나 될까. 삶 따로, 사람 따로, 운명 따로,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  323


몇 달 전, 유럽여행을 다녀온 처제부부가 집에 들른 적이 있었다. 선물이라고 사온 것이 칼바도스였다. 한국에선 흔하지 않은 술이라 형부 생각이 나서 샀다고 했다. 그는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처제부부가 돌아간 뒤, 은주는 있는 대로 성미를 부렸다. 분노의 몸통은 아니꼬움이었다. '집도 없는 것들이 유럽씩이나 나다니는 정신 나간 행태'에 속이 뒤집혀 있었다.  328



그 시절엔 집안일이 다 내 몫이었어. 동생들 치다꺼리에 집안 청소, 아버지 식사 차려드리는 일. 어머니가 퇴근을 해야 비로소 거기서 해방이 되는 거지. 문제는 내가 야구를 시작하면서 집에 오는 시간이 늦어지고, 그러다 보니 아버지 일상이 불편해졌다는 거야. 운동을 하고 집에 가는 날마다 죽도록 매를 맞았어.  372



어디선가 그런 얘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총을 가지면 누군가를 쏘게 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천성이라고.  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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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누구나 시간, 돈, 청춘, 열정, 건강 등 많은 것들을 하루하루 잃어가고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어떻게 아낄 수 있는지를 고민할 수 있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 수 있다.  4


이제 사라지는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을 생각이다.  6






난 고작 몇 센티미터의 세포덩어리도 이겨내지 못 하는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내가 세상의 정답이라도 되는 것처럼 스스로 판단하고 건방지게 행동했었다. 더 낮아져야겠다고 다짐했다.  32


결혼을 하면 건강은 의무라는 말을 들었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단순히 같이 생활한다는 것을 뛰어넘어, 나의 삶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삶까지도 책임을 지겠다는 무언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가족의 삶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38


어느 장소에서 어떤 일을 하든 노동을 하는 것은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일에 치여 지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은 단 하루만이라도 나처럼 쉬고 싶어 할 것이라 생각하니 나를 처량하다 여겼던 마음이 미안해졌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게 그리운 노동이 어떤이에게는 단 하루만이라도 벗고 싶은 짐이 될 수도 있는것이었다. 

모든 것에는 이중적인 단면이 존재한다.  47


"나는 <Ruby Tuesday> 노랫말처럼 살고 싶어. 가사 중에 '아무것도 얻을 게 없고 잃을 게 없는 세상에 얽매일 수 없어. 허비할 시간이 없어. 꿈이 사라지기 전에 잡아. 항상 죽어 가는데 꿈마저 잃어버리면 미쳐버리게 될 거야' 이런 말이 있어. 나도 내가 원하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살을 살고 싶어. 꼭 집을 떠나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살겟다는게 아니야. 남드이 하니까 똑같이 따라서 적당한 집을 사고 적당한 회사를 다니며 살고 싶지는 않다는 거야.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가고 일을 하고, 일을 하고 싶으면 하고, 집을 만들고 싶으면 만들고, 내 마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있다면 그걸 하며 살고 싶어."

"나도 마찬가지야. 나는 무라카미 류같이 살고 싶어.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으면 좀 힘들어도 가볼 거야. 갔는데 끝에 절벽만 남아있다면 그냥 돌아오면 되니까.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사람들은 철이 없다고 하더라. 그런 모험은 아주 어릴 때나 꾸는 꿈이라고, 안전한 길로 나아가도 세상은 힘든 곳이라고.."  52


어쩌면 가치에 있어서 옳고 그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때는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기 보다 왜 여기까지 나와서 소리를 내는 것인지 그 이유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80


겉핥기로 사물을 바라보고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직접 듣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면 그 가치는 결코 인정받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깊이가 있건 없건 하고 싶거나 알고 싶은 것은 부딪쳐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83


외국에서는 친구가 되는 것은 참 쉽다. 지금껏 만난 친구들은 마음을 선뜻 잘 내어주었고 그만큼 나도 내 마음을 잘 내어주었다.  85


소박한 마을 위로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좋다.  93


우리는 왜 타인의 삶을 구경하려 하는 것일까? 그저 예전 방식 그대로 삼삼오오 모여 사는 사람들이 티비 광고 속의 상품처럼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사람이 사람을 구경하는 게 가당키나 한 것일까? 진짜 전통을 배우고 싶고 알고 싶으면 우리는 어떻게 찾아가야 할까? 그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자 독특한 문화를 상품에 끼워 팔려는 사람들의 욕심보다 돈으로 손쉽게 타인의 삶을 엿보려 했던 내 의식이 문제였다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낯선 문화를, 우리와 조금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접할 때는 배우려는 마음과 경외하는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 아마도 편리함을 좇기 위해 모든지 쉽게 버리고 사는 현대인들보다 조금 더 애쓰고 조금 더 부지런히 생활하는 그들에게 경험적인 지혜가 풍부할 것이다. 왜 우리는 세상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높은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도시의 돈문화를 가르치려는 것일까? 여행이 타인의 삶을 망칠 수도 있다면, 우리는 이 여행방법을 버리고 새로운 방법으로 여행을 해야만 할 것이다. 조금 더 대안적인 방법을 찾아보고 싶었다.  106-107


그들의 삶과 비껴선 제3자, 관광객의 눈으로 본다는 것은, 그 삶의 단면만 보고 그들의 삶을 평가한다는 것은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11


왜 어른들은 아이의 행복에 대해서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청소년 자살률이 OECD 국가 중에 제일 높은 반면 행복률은 제일 낮다는 뉴스가 해가 바뀔 때마다 어김없이 똑같이 흘러나오는 데, 왜 우린 남의 일처럼 쯧쯧 혀만 차고 방관하고 있을까/ 바로 제 자식이야기인데도 왜 좌시하고만 있을까. 이곳 아이들을 생각하며 난 여전히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생길 우리 아이는 어떻게 자라게 할 것인가에 대해.  112


어쩌면 우리가 흙을 엎어버렸기에 신발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113


"히피들이 시스템이 싫다고 자유를 찾아 떠나왔지. 인도의 고아 주(州 고을주)에서 여기까지 흘러왔어. 여기서는 자유러웠을까? 아니야, 진짜 자유는 시스템을 넘어서는 게 아니라 너와 나, 우리가 융합될 때 느끼는 거야. 여기 모인 사람들도 모두 다 다르다네. 똑같을 수 없지. 다르기 때문에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어. 그걸 넘어서야 해. 서로 다른 모습 그 자체를 받아들이고 하나될 때 우리는 진짜 자유로울 수 있어."

히피들이 작은 땅을 얻어 전기도, 속세의 더러움도, 부와 배부름도, 그 어떤 것도 들이지 않고 조그맣게 살아가는 곳, 문빌리지. 이곳에서 아이들은 더러운 흙이 온몸에 묻어도 혼나지 않았고 작은 먹거리에도 감사할 줄 알았다. 그리고 어떤 아이들보다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모두 달빛에 반짝이는 별이었다.  114-115


남의 삶을 바라보며 나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순간 삶은 버거워진다. 내가 타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과 똑같이 살 순없다. 그런데도 나는 바람직하다고 배운 그런 삶을 살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워진 살의 목표를 십자가처럼 지고 인생의 행로를 이어간다.

버거운 무게에 휘청이는 다리로 인해 몇 번이고 쓰러질 때마다 가슴에서 피눈물이 흐른다. 그런데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산다. 어른들은 자신들 역시 그렇게 살았다며 이 고통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그래서 그게 마땅한 줄 알았다...

비교를 하지 않으니 남을 따라 살아야 할 이유도, 남보다 더 잘나야 할 이유도 없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 다른 모습, 서로 다른 생각, 서로 다른 삶, 그것을 잇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무중력의 상태를 느끼는 듯했다. 다시 돌아보니 세상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치열하게 삶을 가꾸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117-118


"장기 여행이 옳다 그르다 할 그런 기준은 없어. 그런데 오래 길 위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것만은 확실히 알더라. 사람 귀한 거 말이야."  121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나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며 마음을 통으로 내어주고 있었다.  123


여행은 좀처럼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어쩌면 여행에서는 계획이라는 것 자체가 오류일 수도 있다.  125


언젠가 책에서 '우연은 없고, 언제나 만나야 할 사람만 만나고, 일어나야 할 일들만이 일어난다'라는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130


독서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은, 서점을 애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든것은, 멕시코처럼 다채로운 서점과 서점다운 서점이 대한민국에 없는 것은, 사람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 삶에 여유가 없는데, 매일매일 삶에 쫓기고 있는데 책이 무슨 소용일까. 그저 순간순간, 하루하루를 이겨내는데 바쁠 것이다.  150-151


어느 곳에서나 화려함 뒤에는 초라함이 숨어있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과 축제에서 돈을 벌려는 사람, 부모님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과 부모님을 기다리느라 외로운 아이들. 어쩔 수 없이 공존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초라함을 불쌍하다거나 불행하다고 여기면 안 된다. 모두가 행복해지려면 이 초라함까지도 같이 수면 위에 올려 함께 누려야 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함께 맞는 비>를 떠올렸다. 비 오는 날 누군가의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 함께 비를 맞으며 동행하고 싶다.  167


어느 도시든 처음 들어섰을 땐 감동받고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없을 거라며 감탄했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곳은 늘 나타났다. 마치 멕시코의 온 도시들이 미인대회에 나온 미녀들처럼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뽐내는 것 같다. 어쩌면 나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 살면서도 땅에 떨어진 먼지만 보며 한숨짓고 살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세상 그 어디를 가도 아름다움이 곳곳에 널려 있는데 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았다.  169


한때는 저것들이 그의 여행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하고 소중한 물건들이었을 것이고,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일 텐데 처음 보는 우리들에게 서슴없이 나눠주는 모습이 조금은 비장해 보였다.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이제 여행의 환상은 접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여행자의 마지막 발버둥일까. 예전에 다른 사람을 통해 이런 도움을 받아서일까. 여행 내내 끈질기게 괴롭혔던 비움과 채움, 그 깨달음의 결실일까. 아니면 그냥 짐을 덜어내려는 걸까.

나는 그 이유를 물어보았고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사실 이 물건들은 두세 달 전부터 내게 필요가 없었어요. 당신들이 강조하는 것처럼 배낭은 미련의 무게라는 생각이 들어서 싸그리 버리려고도 했었고요. 근데 있잖아요. 차마 버릴 수가 없더라고요. 내가 버리려고 하는 이 물건이 누군가에겐 정말 필요한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전 그동안 이 물건들을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배낭에 계속 넣고 다녔어요. 그리고 이제야 당신들을 만나게 된 거예요. 당신들이 남미로 내려가게 되면 제 말을 이해하게 될 겁니다."

나는 망치로 머리를 두드려 맞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비워내기만 중요하게 생각했던 내가 누군가를 위해 채워 넣고 짊어지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때로는 누군가를 위해 짐을 짊어질 수 있다는 것. 그것만큼 숭고한 행위가 또 있을까.  174-175


인간의 욕심이 망가뜨린 건 결국 인간 그 자체였다.  183


자본주의는 경쟁주의 구도를 가져왓고 경쟁은 더 많은 기능을, 더 많은 기능은 시간의 단축을 가져왔지만, 우리는 기계로 인해 줄어든 시간을 인간답게 활용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187


나는 필통 가득 칼로 깎은 연필을 넣어 다니고 싶다.  188


산 페드로에는... 일본인 남편 스스무와 멕시코 산 크리스토발이 고향인 멕시코인 아내 가비...

스스무는 방을 안내하곤 숙소에 대해 소개해줬다. 총 3층으로 된 이 건물은 몇 년째 스스무와 가비가 직접 짓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스스무는 "저희 부모님은 제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맞벌이를 하셨어요. 처음에는 형편이 어려워서 할 수 없이 맞벌이를 했지만 나중엔 더 좋은 삶을 위해 계속 맞벌이를 하셨죠. 저희 부모님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좋은 동네, 좋은 집, 좋은 차였어요. 그것을 갖추고 유지하면 저도 행복할 거라 굳게 믿으셨죠. 하지만 저는 아니었어요. 워커홀릭인 부모님보다는 제가 커나가는 모습을 옆에서 항상 지켜봐 주는 부모님이 필요했어요. 다함께 아핌을 먹고, 밤에는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가고, 가끔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내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가정이 필요했어요. 

전 다짐했죠. 제가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살 거라고. 그리고 전 실천했어요. 물론 아내의 생각도 저와 같아서 가능했지만요. 저흰 아이들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겪고 지켜봐 왔어요.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부대끼고 살아가는 중에 많은 것들을 배웠답니다. 자연, 생명, 존중, 책임, 배려, 부모이기 전에는 그저 단어로써의 의미만 알았던 것들의 참 의미를 알게 되었어요. 분명 도시에서의 삶 보다는 물질적으로 매우 열악하지만 그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왜냐면 여기서 누리는 행복이 훨씬 크기 때문이죠. 전 이 생활에 매우 만족합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일테고요."  211-213


갖고 있는 기계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자꾸만 방 안으로 외로이 기어 들어갔다.  217


우리는 점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것 같았다. .. 정보가 넘쳐나는 것이 과연 좋은 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매체를 이용해 소통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시대, 시간의 공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점점 잊게 된 사람들, 공원에 앉아 몇 시간이고 사람들의 웃음을 바라볼 여유를 잊게 된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는 사이버 공간보다 직접 사람을 만나는 광장이, 1초도 안돼 전송되는 메시지보다 몇 번을 구겨버리다 마침내 완성된 편지가, 컴퓨터를 상대로하는 게임보다 다함께 둘러 앉아 하는 놀이가 필요했다. 더 많은 스마트폰을 팔 생각보다 사람과 사람이 더 진실하게 소통할 창구를 만드는 게 시급해 보였다.  245


"요리사는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할 것 같아.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음식과 맛이 존재하는데 많이 맛 보아야 창의적인 메뉴가 나오지 않을까?"

"건축가도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할 것 같아. 동서양의 건축을 합치면 창의적인 건축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진가도 여행을 많이 다녀야지. 세상엔 담아야 할 것이 아주 많잖아?"

"작가도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하지 않겠어? 세상엔 재미있는 이야기가 너무 많아."

"디자이너도 여행을 많이 다녀야 할 것 같아."

식사를 하다가 멋진 정원을 걷다가 하늘을 보고 사람들을 보며,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악가도, 공학도도, 예술가도, 회사원도, 부부도 여행을 많이 다녀야할 것 같았다. 학생들도, 청년들도, 꿈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이야기를 하다 보니 모든 사람이 여행을 많이 다녀야만 했다. 여행이 꼭 해외여행이나 장기여행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든 단 몇 시간이든 상관없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고 낯선 환경과 이야기하며 자신만의 시간을 만드는 것이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 같다. 삶이 조그만 움직임에도 창의적으로 변화하는 작품처럼 느껴졌다.  274


여행 후 나는 더 소박한 삶을 살고 싶어졌다.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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