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젝의 월가점령시위 연설 -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지 마라"

서구 사회의 우리는 금지가 필요 없다. 이미 지배체제가 우리가 꿈꿀 능력마저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늘 보는 영화를 생각해보라. 세상의 종말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종말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7

기억하라. 문제는 부패나 탐욕이 아니다. 체제 그 자체가 문제다. 그것은 사람들을 부패하게 만든다. 적뿐만 아니라 이러한 시위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행동에 돌입한 가짜 친구들도 경계해야 한다. 그들은 카페인 없는 커피, 알코올 없는 맥주, 지방 없는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 투쟁을 무해한 도덕적 저항으로 만들고자 할 것이다. .. 노동과 고문을 아웃소싱하고 결혼정보업체가 우리의 사랑을 아웃소싱하게 된 이후, 우리는 오랫동안 정치적 참여 역시 아웃소싱 되도록 내버려뒀다. 이제는 되찾아야 한다.  9

사람들은 종종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진정으로 원하지는 않는다. 갈망하는 것을 진정으로 추구하길 두려워하지 마라.  11

2011년 10월 9일 뉴욕 주코티 공원



감수의 글 - '로쟈' 이현우

현재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거스르며 맞서는 행위  15

"철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정의하는 것"이라는 게 철학에 대한 그의 정의.  15

왜 모든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늘날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손쉬워진 만큼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는 점점 더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15

2012년 초 슬라보예 지젝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주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사유를 시작하라. 단순한 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해 고민을 해야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시작해야 한다."  16




1 와 남 니하단 Wat Nam nihadan


페르시아어에는 '와 남 니하단'이라는 멋진 표현이 있다. "누군가를 살해하려면, 시체를 묻은 다음 그 위에 꽃을 심어 시체를 숨기라."  19

지배이데올로기의 일차적 과제는 이러한 사건들의 진정한 중요성을 무효화하는 것이었다. 언론의 지배적인 반응이야말로 정확히 '와 남 니하단'이 아니었던가?  20

(지젝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핵심 적대'는 크게 네 가지다. "다가오는 생태적 파국의 위협, 소위 '지적 재산권'과 관련된 사유재산 개념의 부적절함, 새로운 기술과학의 발전의 사회 윤리적함의, 새로운 장벽과 빈민가 등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의 생성"(<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창비 2010 p182)  20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결정적인 역사적 순간에는 대다수의 예술적 양식이나 이론적 주장이 모두 합쳐 하나의 체계를 이루는 경향으로 정리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0

현실이 우리의 생각에 부합하지 않으면, 현실은 그만큼 더 악화될 것이다. 반면 우리의 체계가 적합하다면, (불완전하게나마) 현실에 들어맞는 형식적 틀을 구축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이미 인지했듯이, 사회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규정은 곧 현실에 얽매인 주체들의 '주관적인' 생각, 규정이고, (우리 사고의 한계, 즉 사고의 교착상태와 모순이 곧 객관적인 사회 현실의 적대가 되는)이 구별 불가능한 지점에서는 "진단이 그 자체의 증상"이 된다. 우리의 진단(우리의 행동 범위를 규정하는 모든 가능한 입장들의 체계에 대한 '객관적' 해석)은 그 자체가 '주관적'이다. 진단은 우리가 실천하면서 맞닥뜨리는 교착상태에 대한 주관적인 반응 체계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 해결되지 않는 교착상태 자체의 증상을 나타낸다.  21-22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가 말했던 "이성의 공적인 사용"이다. 오늘날의 공산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성의 공적인 사용'과 평등주의적 보편적 사유로, 생각하면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칸트에게 '세계시민사회'의 공적 공간이란 보편적 단독성(unversal singularity)의 역설, 즉 일종의 단락(short-circuit)으로 특수성의 매개 없이 곧바로 보편성에 참여하는 단독적 주체의 역설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칸트가 <계몽이란 무엇인가(What is Enlightenment)?>의 그 유명한 구절에서 '사적'에 대립되는 '공적'이라는 표현으로 의미했던 바다. 여기서 '사적'이란 공동적 연대에 반대되는 개인적 유대가 아니라, 한 사람이 특별히 동일시하는 공동적 제도적 질서를 말한다. 이에 반해, '공적'이란 이성의 행사의 초국가적인 보편성을 지칭한다. 

그러나 이성의 공적 사용이라는 이러한 이분법은 좀더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이성의 공적 사용이 지닌 상징적 효능(또는 수행 능력)을 유보하는 데 의존한 것이 아닐까? 칸트는 "생각하지 말고 복종하라!"라는 복종의 일반적인 공식을 거부하지도 않았고, 이와는 '혁명적인' 대척점에 있는 "(남이 시키는 대로) 복종하지 말고 (스스로 머리를 써서) 생각하라!"라는 말을 지지하지도 않았다. 그의 공식은 차라리 "생각하고 복종하라!"였다. (이성을 자유롭게 사용하여)공적으로 생각하고 (권력의 위계 조직의 일부로서) 사적으로 복종하라는 말이다. 

요컨대, 자유롭게 생각한다고 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공적 사용'을 통해 기존 질서의 약점과 불의를 목격하게 될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통치자에게 개혁을 호소하는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G. K. 체스터턴(G. K. Chesterton)처럼 능동적으로 생각하거나 의심할 수 있는 추상적 자유가 실질적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우리는 대체로 자유사상이 자유를 방지하는 안전 장치 중에서 으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을 현대적인 예로 다시 표현하면, 노예의 정신적 해방이야말로 노예 해방을 막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라는 의미다. 노예로 하여금 자신이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에 관해 고민하도록 가르쳐라. 그러면 그는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23-25

'이성의 공적 사용'의 보편성과 참여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을 접목시킨 접근만이 우리가 처한 상항에 대한 '인식적 지도'를 제공할 수 있다. 레닌의 말처럼 "우리는 '사실만을 말해야 하고', 어떤 경향이 있다는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26




2 지배에서 착취와 저항으로(From Domination to Exploitation and Revolt)


현대 자본주의의 세 가지 특징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이윤 추구에서 지대(rent)(주로 사유화된 '공유 지식'과 천연자원에 기초한 두 가지 형태) 추구로 전환되는 장기적 추세다. 둘째, 더 오랜 기간 '착취'당하는 일이 오히려 특권으로 인식되면서 실업의 구조적 역할이 한층 더 강화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마지막 특징은 장 클로드 밀네(Jean-Claude Milner)가 '봉급 부르주아(salaried bourgeoisie)라고 부른 새로운 계급의 부상이다.  29

밀네의 표현에 따르면, 잉여급여의 필요성은 경제적 의미보다 정치적 의미가 더 강하다. 즉 사회적 안정을 위해 '중간계급'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사회적 위계질서의 자의성은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핵심인데, 평가의 자의성이 시장 내 성공의 자의성과 유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폭력은 너무 많은 우연성이 존재할 때가 아니라 그 우연성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 폭발할 위험이 있다.  34

소설 <아틀라스 : 지구를 떠받치기를 거부한 신>에서 에인랜드(Ayn Rand)가 즐겨 쓰던 이데올로기적 환상, 즉 파업에 나선 ('창의적') 자본가의 환상을 떠올려보자. 특권을 누리던 '봉급 부르주아' 계급이 자신들의 특권(최저임금 이상의 잉여가치)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벌이는 오늘날의 수많은 파업에서도 이러한 환상이 도착적인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들의 시위는 프롤레타리아적 시위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전락할 위험에 저항하는 시위다. 달리 말하면, 정규직을 얻는 것 자체가 특권인 요즘 상황에서 감히 시위를 벌일 수 있는 사람이 누구겠는가? (사양 산업인) 섬유업 등에 종사하는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주로 경찰, 사법 관계자, 교사, 대중교통 근로자 등 주로 공무원직에 근무하여) 직업이 보장된 특권층 노동자일 것이다. 학생시위의 새로운 흐름도 동일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이들이 시위를 벌이는 주된 동기는 고등교육을 받아도 졸업 후 잉여급여를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인 것이 틀림없다. 

물론 아랍권에서 서유럽까지, 월스트리트에서 중국까지, 스페인에서 그리스까지 번져간 대규모 시위의 부활을 단순한 봉급 부르주아 계급의 봉기로 폄하해서는 안 된다.  36

진행중인 경제 위기를 한 측면에 함몰되지 않고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  37

오늘날 우리는 생태자본주의(eco-capitalism)부터 기본소득자본주의(Basic Income capitalism)까지 자본주의를 순치하려는 수많은 공세 속에서 살아간다. 이러한 시도의 배후에는 다음과 같은 추론이 존재한다. 자본주의가 현재로서는 부를 창출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입증되었지만, 동시에 이대로 방치될 경우 자본조의의 재생산 과정에서 착취, 천연자원의 파괴, 집단 고통, 불의, 전쟁 등이 수반된다는 사실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목표는 이윤을 추구하는 재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글로벌 복지와 사회 정의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자본주의를 조정하고 규제해나가는 것이다. 또 시장에는 그 나름의 수요가 있음을 존중하고, 시장 메커니즘을 직접적으로 교란시키면 대재앙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 자본주의라는 짐승이 제 기능을 다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결국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짐승을 길들이는 일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시도는, 실용주의적 현실주의와 정의를 고수하는 원칙주의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이 보통 그러하듯, 선의로 시작하여 조만간 두 가지 차원의 적대라는 실재(the Real)에 직면하게 된다. 자본주의라는 짐승이 자애로운 사회적 규제로부터 도망치는 일이 거듭 반복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시점엔가 우리는 숙명적인 질문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정말로 자본주의라는 짐승과 함께 가는 것만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최선의 방법일까? 아무리 자본주의가 생산적이라고 해도,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커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만일 우리가 계속 이 질문을 회피한 채 자본주의를 길들인다면, 우리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힘을 실어주는 꼴밖에 안 될 것이다.  43-44




3 정치적 대표의 꿈 작업(The 'Dream-Work' of Political Representation)


마르크스는 1848년 프랑스 혁명과 그 여파에 대해 분석한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과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사회적 대표(경제적 계급과 세력을 대표하는 정치적 행위주체(agent))의 논리를 정확히 변증법적인 방식으로 '복잡화(complicate)'했다.  49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줘야 하므로 공공사업에 착수한다. 그러나 공공사업은 국민의 조세 부담을 가중시킨다. 따라서 종래 5부 이자를 4부5리 이자의 공채로 전화하여 금리생활자를 공격함으로써 세금을 낮춘다. 그러나 중간계급에게도 떡고물이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술을 소매로 구입하는 인민에게는 주세를 배로 인상하고, 도매로 사는 중간계급에게는 주세를 반으로 인하한다. 또 현실의 노동자 조합은 해체하면서, 앞으로 꿈같은 조직을 만들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농민도 원조해줘야 한다. 저당은행들 때문에 농민의 부채가 급증하고 부의 편중이 가속화된다. 그러나 이 은행들은 오를레앙가에서 몰수한 영지를 현금화하는 데 이용되어야 한다. 법령에도 나와 있지 않은 이런 조건에 동의할 자본가는 아무도 없고, 그래서 저당은행은 단지 법령으로 남는다, 등.

한마디로 보나파르트는 모든 계급에게 가부장적 은인으로 비쳐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어느 한 계급을 착취하지 않고서는 그 어느 계급에게도 은혜를 베풀 수 없다.  52-53

스스로 대표하지 못하여 누군가에 의해 대표될 수밖에 없는 계급이란 당연히 분할지 소농 계급을 말한다.  54

모든 계급 위에 군림하고, 모든 계급 사이를 오가며, 모든 계급의 비천한 잔여물에 직접적인 기반을 두면서도, 아울러 스스로 정치적 대표를 요구하는 집단적 행위주체가 될 수 없는 계급을 궁극적으로 대표해야 한다. 이 역설이 의미하는 바는 순수한 대표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

라캉 식으로 표현하자면, 계급 적대는 그러한 전체 대표가 실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게 만든다. 계급 적대는 결국 한 사회의 중립적인 '전체'란 없고, 모든 '전체'는 특정 계급에 은밀하게 특권을 부여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55

오늘날 대부분의 '전문가'와 정치가가 따르는 공리를 떠올려보자. 누누이 들어왔듯이, 우리는 적자와 부채로 점철된 위태로운 시대에 살고 있기에, 모두가 고통을 분담하며 생활수준의 저하를 감수해야 한다. 그러니까. (최고) 부유층을 제외한 모두가 말이다. 부유층에 대한 증세는 절대적인 금기사항이다. 세금이 늘면 그들의 투자 의욕이 꺾여 신규 고용 창출이 줄어들므로 우리 모두가 고통받게 된다는 논리다. 결국 이 힘든 시절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빈자는 더욱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욱 부유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부자들의 부가 조금이라도 상실될 위험에 처하면 사회가 나서서 막아줘야 한다. 금융 위기가 과도한 정부 차입과 지출에서 비롯되었다는 금융 위기에 대한 지배적인 시각은 아이슬란드에서 미국까지 위기의 궁극적인 책임이 대규모 민간은행들에 잇다는 사실과 노골적으로 배치된다. 그 은행들의 도산을 막기 위해 정부는 납세자의 엄청난 혈세를 투입하며 개입했던 것이다. 

계급 적대를 부인하고 전체를 대표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는 전형적인 방법은, 그 적대의 원인을 그 자체로 사회를 위협하는 반사회적 요인이자 사회에서 배설된 과잉의 상징인 외국인 불청객들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유대주의는 단지 수많은 이데올로기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자체로 본원적인 이데올로기다. 반유대주의는 기본 좌표를 설정하는 영도(zero-lenel)(또는 순수한 형태)의 이데올로기를 구현한다. 이로써 사회적 적대('곅,ㅂ투쟁')는 신비화되거나 전치되어 그 원인을 외부 침입자에게 투영할 수 있게 된다. 라캉의 '1+1+a'의 공식의 가장 좋은 예가 이러한 계급투쟁이다. 두 개의 계급에 '유대인'이라는 과잉, 대상a(object), 대립쌍의 보충물이 덧붙는 것이다. 이 보충적 요소의 기능은 이중적이다. 계급투쟁에 대한 물신주의적 부인(fetishistic disavowal)인 동시에, 바로 그 자체가 '계급 평화'를 영원히 가로막는 이 적대를 나타낸다. 다시 말해, 만약 보충물없이 '1+1' 상태로 두 계급만 존재했다면, '순수한' 계급 적대 대신 두 계급이 상호 보완하여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는 계급 평화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계급투쟁의 '순수성'을 흐리거나 전치하는 요인이 바로 계급 투쟁의 원동력이라는 데 역설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현실 세계에서 적대적인 두 계급만 존재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주의 비판자들은 핵심을 놓치고 있다. 바로 그러헥 적대적인 두 계급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계급투쟁이 존속하는 것이다.  55-57

소농은 오늘날 악명 높은 중간계급이 되었다. .. 중간계급은 정치화에 반대한다. 이들은 그저 자신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면서 간섭 없이 일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에, 사회의 광적이 ㄴ정치적 동원을 종식시켜 모두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겠다고 약속하는 독재 쿠데타를 지지하는 성향을 보인다.  58

주인 담론에서 대학담론으로 바뀌는 전 세계적 추세의 일환으로 새로운 집단이 등장했다. 특정한 이해관계를 대변하지 않고 중립적이고 탈이데올로기적으로 상황을 지배(또는 차라리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술, 금융) 전문가 집단이다.  58

문화 전쟁이 곧 전치된 양식의 계급 전쟁이라는 뜻이다.  69

모든 이데올로기 체계는 연쇄적인 등가물을 정립하거나 부여하려는 헤게모니 투쟁의 산물이자, '객관적인 사회경제적 입장'등 외재적 참조점으로는 결코 보장되지 않는 철저히 우연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투쟁의 산물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답변에서 이 수수께끼는 간단히 자취를 감춘다.

여기서 첫 번째로 주목할 것은 일단 문화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 양 진영이 있어야 하고, 문화는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근본주의에 저항하고 다문화적 관용을 옹호하는 데 정치를 집중하는 '계몽된'자유주의자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적 주제라는 점이다. 핵심 질문은 이렇다. 왜 '문화'가 우리 생활의 중심 영역으로 등장했는가? 종교에 대해 말하자면, 우리는 더 이상 그것을 '실제로 믿지' 않는다. 단지 우리가 속한 공동사회의 '생활양식'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일부) 종교 의식과 관습에 따를 뿐이다. '전통에 대한 존중심'으로 코셔(kosher-유대인의 율법을 따르는 정결한 음식) 원칙을 지키는 비신도 유대인 등이 그런 예다. "실제로 그것을 믿지는 않아. 그냥 내 문화의 일부일 뿐이야."라는 말이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거부되거나 전치된 신앙의 두드러진 양식인 듯하다. 이렇듯 '실제' 종교, 예술 등과는 구별되는 '문화'의 '비근본주의적' 개념이야말로 버려지거나 특정 개인과 무관해진 신앙의 영역을 보여주는 핵심일 것이다. 우리가 실제로 믿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행하는 모든 일을 가리키는 '문화' 말이다.

두번째로 주목할 점은 자유주의자들이 가난한 자와의 연대를 주장하는 한편, 대립적인 계급 메시지로 문화 전쟁을 코드화하는 방식이다. 다문화적 관용과 여성의권리를 지지하는 이들의 싸움은 '하층계급'의 이른 바 비관용, 근본주의, 가부장적 성차별주의와 대척점에 설 때가 많다. 이 혼란을 해소하는 한 가지 방법은 진정한 구분선을 모호하게 만들기 위해 중재적인 용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최근 이데올로기적 공세에서 '현대화'라는 용어가 사용되는 방식이 그러한 예다. 우선 '현대화주의자'(경제부터 문화까지 모든 측면에서 글로벌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사람)와 '전통주의자(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 사이에는 추상적인 대립관계가 형성된다. 그러고 나면 전통적 보수주의자와 포퓰리스트에서 '구좌파(복지국가, 노동조합 등을 계속 지지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전부 이 세계화에 반대하는 사람의 범주로 분류된다. 이러한 범주와는 분명히 사회적 현실의 일면을 포착한다. 2003년 초반에 독일에서 교회와 노동조합이 연대를 통해 상점들의 일요일 영업 법제활르 막았던 일을 떠올려보라. 그러나 이 '문화적 차이'가 다양한 계층과 계급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사회적 장을 가로지른다고 말하기엔 충분하지 않다. 또 다른 대립관계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될(그래서 글로벌 자본주의의 '현대화'에 저항하는 보수주의의 '전통적 가치'나 자본주의적 세계화를 완전히 지지하는 도덕적 보수주의자가 나올)수 있다는 말도 부적절하다. 요컨대 이러한 '문화적 차이'가 현대 사회적 과정에서 작동하는 일련의 적대 중 하나라고 주장해봐야 별 소요이 없다.  70-72

세번째로 주목할 것은 페미니스트, 반인종차별주의자, 반성차별주의자 등의 투쟁과 계급투쟁 간의 근본적 차이다. 다른 투쟁의 목적은 적대를 차이로 변화하는 것(다양한 성, 종교, 민족 집단의 평화로운 공존)이지만, 계급투쟁의 목적은 정반대로 차이를 계급 적대로 바꾸는 것이다. '빼기'의 요지는 전체적으로 복잡한 구조를 그 적대적인 극호한 차이로 환원하는 것이다. 인종, 성, 계급의 연쇄는 계급의 경우 정치적 입장에 대한 논리가 다르다는 점을 모호하게 만든다. 반인종차별주의자와 반성차별주의자의 투쟁은 상대를 충분히 인정하려는 노력을 지향하지만, 계급투쟁은 서로를 극복하고 진압하며 심지어 근절하는 데 목표를 둔다. 직접적인 물리적 전멸은 아니더라도, 상대의 사회경제적 역할과 기능을 말살하는 것이 목표다. 다시 말해, 반인종차별주의자가 모든 인종이 저마다의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입장을 자유롭게 주장하고 깨닫기 바란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어도,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목표가 부르주아 계급이 그 정체성을 충분히 주장하고 목적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전자의 경우에는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하는 수평적 논리가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적과의 투쟁이라는 논리가 존재한다.  73-74




4 사악한 민족주의의 귀환(The Return of the Evil Ethnic Thing)


중동 협상 역시 평화의 문제가 관건이 아니다. '평화협상'이라는 명칭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점령을 기정사실화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인 사라들의 손을 들어주는 셈이다.  80

반유대주의는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 동성애반대주의 드오가 같은 연장선상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82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는 사람은 '객관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라는 노골적인 암시인 것이다. 

우리는 이 논리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는 서로 독립적일 뿐 아니라, 현재와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중립적'이고 비정치적인 테크노크라시의 경제 정책에 대한 대중의 반대 속에서 진정한 민주 정치가 표출된다.  89

지금 단계의 우리는 당연히 충분히 관용적이지 못하거나, 아니면 이미 너무 지나치제 관용적이어서 여성권 등을 방치하고 있다.  94

우리의 과제는 단지 타인에 대한 관용을 넘어 진정한 공존과 다양한 문화의 혼합을 영속시킬 수 있는 적극저깅고 해방적인 지배문화를 추구하는 것이고, 그 지배 문화를 위한 다가올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단순히 타인을 존중하지 말고, 그들에게 공동의 투쟁을 제안하자. 오늘날 우리를 가장 크게 압박하는 문제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문제이니 말이다.  95




5 탈이데올로기의 사막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Desert of Post-Ideology)


최근 캘리포니아를 방문한 동안, 나는 어떤 교수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슬로베니아인 친구 한 명과 함께 참석했다. 이 친구는 골초였다. 늦은 저녁,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 친구는 집주인에게 베란다로 나가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정중히 물엇다. (그에 못지않게) 정중한 태도로 주인이 안 된다고 말하자 친구는 집밖으로 나가서 피우겠다고 말했지만, 그조차도 안 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이면, 이웃들에게 자기 평판이 떨어진다는 것이 주인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놀란 것은 저녁식사가 끝나고 집주인이 우리에게 가벼운 마약을 권했을 때였다. 이러한 종류의 흡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마치 마약이 담배보다 훨씬 덜 위험하기라도 한 듯이.96-97

라캉이 말하는 '향락(jouissance)'(주이상스)은 치며억인 과잉의 쾌락으로, 쾌락원칙(pleasure principle) 너머에 위치한다. ...

한쪽은 즐거움을 연장시키고 자신에게 해가 될 일을 피하기 위해 쾌락을 신중히 계산하는 계몽된 쾌락주의자이고, 다른 한쪽은 치명적으로 과도한 향락 속에서 존재의 절정에 도달하려는 향락주의자(jouisseur)다.  97

계몽된 소비주의적 쾌락주의는 기본적으로 향락에서 그 과잉의 차원, 불온한 잉여, 그리고 아무데도 도움이 안 되는 측면을 박탈하는 기능이 있다. 향락은 용인되고 심지어 권유되지만, 우리의 정신적, 생물학적 안정성을 위협하지 않고 건전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이 붙는다.  98

예카테리나 대제(Catherine the Grest)의 일화. 그녀는 노예들이 뒤에서 술과 음식을 훔치고 심지어 자신을 조롱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그저 미소만 지었다. 가끔씩 향락의 부스러기를 떨어뜨려줘야 그들이 계속 노예 자리를 지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00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선택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부르짖지만 강요된 민주주의적 합의의 대안이라곤 맹목적인 실력행사뿐인 이 사회란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우주인가? .. 유일한 선택이라곤 규칙에 따르는 것과 (자기)파괴적인 폭력 사이 중 하나뿐일 때,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선택의 자유란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Alain Badiou)는 우리가 점점 더 "세계 없음(Worldless)"으로 경험되는 사회적 공간에 살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공간에서 저항이 취할 수 유일한 형식은 의미 없는 폭력뿐이다.  108-109

영국 폭동이 안고 있는 문제는 폭력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진정한 자기주장이 없었다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능동적이지 않고 반동적인, 무력한 분노이자 무력(武力 굳셀무 힘력)의 탈을 쓴 절망이었고, 승리의 카니발의 가면을 쓴 질투였다.  120




6 아랍의 겨울, 봄, 여름, 가을(The Arab Winter, Spring, Summer, and Fall)


도하(Doha)의 이슬람미술관(Museum of Islamic Art)의 PO24.1999번 소장품. 

10세기의 단순한 원형 토기접시로, 직경 42센티미터의 매끄러운 흰색 바탕에는 검은색 글씨로 야히아 이븐 지야드(Yahya ibon Ziyad)가 말했다는 속담이 새겨져 있다. "어리석은 자는 기회를 놓치고 나중에 운명을 탓한다."  122

중앙부의 그림. 자기 꼬리를 먹고있는 유명한 뱀 그림과 유사하다.  124

이 말을 뒤집어 보자. "어리석은 자는 기회를 놓치고도 자신의 실패가 운명의 조화임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세상에 우연이란 없고 모든 것은 불가해한 운명으로 결정된다는 진부한 종교적 문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접시의 속담을 곰곰이 되씹어보면, 이러한 상투적 문구의 반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다시 한 번 이 접시를 사용하는 시간적 차원을 고려해보자. 저녁 식사가 시작될 때 손님은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의 가장자리에 새겨진 글귀를 처음 보고 기회를 붙잡으라는 기회주의에 관란 교훈 정도로 일축해버린다. 그러나 음식을 다 먹은 후 접시 밑에 숨어 있던 진짜 메시지가 상투적 상징임을 알고 나면, 처음 본 글귀에 숨어 있던 진실을 놓쳤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 문구로 되돌아가 다시 읽어본 후에야 그것이 기회와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훨씬 더 복잡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즉 운명을 선택하는 것은 그들의 소관이라는 메시지임을 알게 된다.  125-126

독재정권이 최후의 위기에 다다를 때 보통 그 붕괴는 두 단계를 거친다. 실제 무너지기 전에 불가사의한 파열이 생긴다. 어느날 문득 사람들은 이미 상황이 종료되었음을 깯다고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130




7 월가점령시위, 또는 새로운 시작을 부르는 폭력적 침묵(Occupy Wall Street, or The Violent Silence of a New Beginning)


축제를 즐기기는 쉽다. 그러나 그 진정한 가치는 축제 다음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의 일상생활이 어떻게 바뀌었고 또 바뀔 것인지에 달려 있다. 여기에는 힘들고 끈질긴 노력이 요구되며, 시위는 그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시위의 기본 메시지는 이 정도다. "금기는 깨졌다. 우리는 실현 가능한 최선의 세계에 살지 않는다. 고로 우리는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고, 또 생각해봐야만 한다."  146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식 모티프 - <최악을 향하여>에 나오는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를 의미한다 - 의 이러한 변주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실패 뒤에 남은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  147

시위대는 적뿐 아니라 가짜 친구들도 조심해야 한다. 그들은 시위대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시위를 무해한 도덕적 저항으로 바꾸어 그 의미를 희석시키고자 갖은 애를 쓴다. 복싱에서 '클린치(clinch)'란 상대방의 펀치를 막거나 방해하기 위해 한 팔이나 양 팔로 상대방의 몸을 붙잡는 행위다 월가점령시위에 대한 빌 클린턴의 대응은 정치적 클린치의 완벽한 사례다. 그는 시위가 "종합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일"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대의 모호함에 대해 우려는 표했다. "어떤 일에 반대만 하다 보면 우리가 만든 이 진공을 다른 사람이 채우게 될 테니, 그저 반대만 하지 말고 특정한 어떤 것을 지지해야 한다." 그러면서 클린턴은 "1년 6개월 안에 일자리 200만 개"를 창출하겠다고 주장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일자리 정책을 지지하라고 시위대에 제안했다. 그러나 시위대가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콜라 캔을 재활용하고, 자선단체에 푼돈을 기부하며, 스타벅스 카푸치노를 구매하여 가격의 1%를 제3세계로 보내는 것마능로 만족하는 세계에 질릴 만큼 질렸기 때문이다.  155-156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에 기반을 둔다.  158

마르크스는 자유의 문제를 고유의 정치적 영역에서 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국가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되는가? 사법부가 독립적인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가? 인권이 존중되는가? 등). 실제 자유의 핵심은 오히려 시장에서 가족에 이르는 사회적 관계들의 그물망에 있고, 이 영역을 진정으로 개선하는 데 필요한 것은 정치적 개혁이 아니라 '비정치적'인 사회적 생산 관계의 변혁이다.  161-162

민주주의 기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자본주의 재생산의 원활한 가동을 보장하는 '부르주아' 국가 장치의 일부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적은 제국이나 자본이 아니라 민주주의라고 불린다."라는 알랭 바디우의 언뜻 의아하게 들리는 주장은 정곡을 찌른다. 오늘날 자본주의적 관계의 모든 급진적 변화를 가로막는 주범은 민주주의적 절차 내에서만 모든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민주주의적 환상'인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구체적 강령을 만들어내기 어려운 데는 이처럼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162

월가점령시위의 수많은 (종종 혼란스런) 발언들 기저에는 두 가지 기본적 통찰이 깔려 있다. 첫째, 현재 대중의 불만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 자체이지 그 특정한 부폐 사례가 아니다. 둘째, 현재와 같은 다당제 형태의 대의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해결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다시 발명되어야 한다. 이로써 우리는 월가점령시위의 가장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경제생활의 파괴적 결과 앞에서 속수무책임이 입증된 현행 정치형태를 벗어나 민주주의를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가? 다당제 대의민주주의를 뛰어넘어 이렇게 재발명된 민주주의에 과연 이름이 있을까? 있다.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다.  163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어떻게 민주적 다당제 체계를 넘어 집단적 의사결정을 제도화할 수 있을까? 또 누가 이 재발명이 주역이 될 것인가? 잔인하게 말하자면, 당장 오늘 무엇을 해야할지 아는 사람이 있는가? 지식인이든 일반인이든 그것을 아는 주체가 없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은 장님이 장님에게 길을 안내하는, 좀 더 정확히는 장님끼리 길을 안내하면ㅅ 서로 상대방은 볼 수 있다고 믿는 교착상태인 것일까? 아니다. 각자 모르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중은 답을 가지고 있다. 다만 자신들이 답을 가진(혹은 스스로가 답인) 질문을 자각하지 못할 뿐이다. 존 버거(John Berger)는 내부인과 외부인을 가르는 벽의 잘못된 쪽에 서있는 '대중(multitude)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대중은 아직 제기되지 않은 질문의 답을 알고 있고 벽보다 오래 살아남을 능력이 있다. 질문이 아직 제기되지 않은 것은, 그러자면 진심으로 와닿는 용어와 개념이 필요한데 민주주의, 자유, 생산성 등 현재 사건드을 명명할 때 사용되는 용어와 개념은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곧 새로운 개념과 더불어 새로운 질문이 대두할 것이다. 역사는 바로 그러한 질문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니까. '곧'이라면 언제? 한 세대 내에.'165-166




8 <더 와이어>, 이 아무 일 없는 시대에 해야 할일(The Wire, or What to Do in non-Evental Times)


- 지젝은 이데올로기의 허위적인 종언 이후의 '그저 그런 삶(mere life)'과 '진정한 삶(real life)'을 대비시킨다. '그저 그런 삶'은 자신의 삶에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하는 삶이고, 자신의 기득권이 아무 탈 없이 그대로 대대손손 보존되기를 매일 기도하는 삶이다. 그것의 정치적 버전이 자유민주주의다. 지젝이 보기에 자유 민주주의의 최대 관심사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마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예 "자유민주주의는 무사건의 당(party of non-party)이다."(이현우, <로쟈와 함께 읽는 지젝> 자음과 모음 2011 p72, 슬라보예 지젝, <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자음과 모음 2011 p210 참조  167

금기어를 사용하여 금기를 깨는 효과.  169

'와이어(wire)'에는 다양한 함의가 있지만(철조망을 따라 걷는다거나 도청장치를 착용하는 등) 사이먼에 따르면 이 제목은 주로 "두 개의 미국 사이의 거의 가상적이지만 침범 할 수 없는 경계", 즉 아메리칸 드림에 동참한 사람들과 낙오된 사람들 사이의 경계를 가리킨다. 따라서 <더 와이어>의 주제는 한마디로 계급투쟁이자 그 문화적 결과를 포함한 우리 시대의 실재다.  170

사이먼은 이 급진적인 분열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 매우 명료하게 설명한다. 

'우리는 마약에 대해 전쟁을 벌이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단지 더이상 노동공급원으로 필요가 없어진 도시 최하층계급을 짐승 취급하며 인간성을 말살하고 있을 뿐이다. (중략) <더 와이어>는 미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낙오된 미국에 대한 이야기다. (중략) 마약 전쟁은 현재 최하층계급이 벌이는 전쟁이다. 그것이 전부다. 다른 의미는 없다.'  170-171

운명이 어떻게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고 승리를 거두는지에 대해 <더 와이어>는 체계적으로, 이어지는 각 시즌마다 한 단계씩 분석을 진행해 나간다.

시즌1은 마약상 대 경찰이라는 갈등을 제시하고, 시즌2는 노동 계급의 붕괴라는 갈등의 궁극적인 원인을 파해치며, 시즌3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치 전략 및 경찰과 그 실패를 다룬다. 시즌4는 왜(흑인 노동계급 청소년의) 교육만으로는 불충분한지를 보여주고, 마지막 시즌5는 언론의 역할, 즉 일반 대중이 이 문제의 실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춘다.  173

핵심은 그들 모두 어떤 식으로든 법을 위반해야 한다는 것이다.  178

마르크스도 비록 한정된 주관적 입장에서는 생산의 목적이 생산물, 즉 사람들의 (가상적 또는 현실적) 수요를 충족시킬 물건이고, 다른 말로는 사용 가치지만, 이 시스템 전체라는 '절대적 관점'에서 보자면, 개인의 수요의 충족은 단지 자본주의적 (재)생산 지게를 계속 유지시키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일 뿐이라 말한다.  183

제임슨이 말한 대로 <더 와이어>는 범인이 일개 번죄자(나 범되 단체)가 아니라 사회 전체이자 전체 시스템인 탐정물이다.  183

자본주의 시스템이라는 실재가 추사적이고, 자본의 추상적 가상적 운동이며, 실재와 현실의 라캉식 차이를 동원하자면, 현실이 실재를 가린다는 것이다. '실재의 사막'은 자본의 추상적인 움직임이고, 마르크스가 말한 '실재적 추상(real abstraction)'도 같은 맥락이다.  183

마르크스는 자본의 광포한 자기 증식적 순환을 묘사했고, 자본의 유아론적인 자기 수태적 행보는 오늘날 메타 반영적인 선물 투기에서 절정에 이른다. 아무런 인간적, 환경적 고려 없이 자기 갈 길만 추구하며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이 괴물의 유령이란 이데올로기적 추상성에 불과하고, 그 뒤에는 거대한 기생동물 같은 자본적 순환의 토대가 되는 생산력과 자원을 제공하는 실제 사람들과 자연물이 있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문제는 그 이데올로기적 추상성이 금융 투기자의 사회 현실에 대한 오해의 일부일 뿐 아니라, 물질적 사회 과정의 구조를 규정한다는 의미에서 정확히 실재라는 것이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과 때로는 모든 국가의 운명이 자본의 유아ㅇ론적이고 투기적인 춤사위에 따라 결정되는 판국에, 정작 자본은 자신의 운동이 사회 현실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전혀 무관심한 채 수익성이라는 목표만 추구한다.  183-184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체계적 폭력.

이 폭력은 더 이상 개인이나 그들의 '사악한' 의도에 책임을 물을 수 없이 순수하게 '객관적이고' 체계적이며 익명적이다. 여기서 우리는 현실(reality)과 실재(the real)에 대한 라캉식 구분과 마주하게 된다. 현실은 실제 인간들이 상호작용과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사회 현실인 반면, 실재는 사회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하는 자본의 냉혹하고 '추상적'이며 유령 같은 논리다. 이 간극은 생태적 파괴나 인간의 고통으로 얼룩져 생활이 분명 혼란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경제 보고서상으로는 '재정적으로 건전한'국가로 발표되는 어떤 국가를 방문해 보면 실감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현실이 아니라 자본의 상황인 것이다.  185

마르크스도 <자본론>의 유명한 구절에서 상품의 교환과 순환으 감춰진 논리를 끄집어내기 위해 의인법에 의존한다. "만약 상품들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의 사용가치는 인간들에게 관심사일지는 몰라도 물적 존재로서의 우리에게는 속하지 않는 것이다. 물적 존재로서 우리에게 속하는 것은 우리의 가치다. 상품으로서 우리가 교환되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단지 교환가치로서만 서로 관계를 맺는다.  187

<더 와이어>는 종종 권력과 저항, 또는 법과 그 위반 사이의 관계에 대한 푸코식 주제(topos)의 관점에서 해석된다. 순응을 요구하는 규제 과정이 오히려 '억압'하고 규제하려는 대상을 낳는다.  192

주변부의 주관적 입장에서 지배적인 장치에 '저항'하는 식의 전략을 확산하고자 애쓸 것이 아니라 지배적인 장치 자체 내에서 가능한 파열 양상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저항의 현장'에 대한 모든 이야기에서, 비록 당장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때로는 우리가 저항하는 장치 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경향이 있다.  193-194

삶은 거대한 순환이고, 우리는 기린을 먹고, 기린은 풀을 먹는다. 그러나 그 후 우리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풀에게 먹혀 순환이 종료된다. 이것이 가장 꼭대기에 있는 자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메시지다. 결정적인 것은 우리가 이러한 '지혜'에 부여하는 정치적 해석이다. 이것은 단순한 철수의 문제일까, 아니면 급진적 행동 조건으로서 철수의 문제일까? 다시 말해, 삶은 항상 원을 이루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 위계질서를 오르내릴 뿐 아니라 원 자체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199-200

운명에 저항하는 (그래서 운명의 실현을 돕는, 마치 오이디푸스(Oedipus)의 부모나 바그다드에서 사마라로 도주했던 하인처럼) 것이 아니라, 운명 자체, 그 기본 좌표를 바꾸는 것이다.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는 "무엇인가를 바꾸어야만 모든 것이 그대로 남는다."라는 말을 뒤집어 언젠가 "아무것도 바꾸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지게 하자."는 의견을 제안했다.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혁명화가 요구되는 후기 자본주의의 역동성 같은 일부 정치적 성좌에서는, 어떤 것도 바꾸기를 거부하는 사람이 오히려 진정한 변화의 주체다. 변화의 원리 자체의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200

우리는 오늘날 '전면적인 경제 불황'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한 전망이 진정한 집단적인 반체제주의를 야기할까? 결과가 어떻든 간에,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이먼의 비극적인 비관주의를 오나전히 수용하고 (시스템 내에서는) 미래가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야 비로소 근본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다.  201-202




9 시기와 분노를 넘어서(Beyond Envy and Resentment)


페터 슬로터다이크(Peter Sloterdijk)가 이른바 '복지 국가의 이율배반'이란 문제에 대해 해법으로 제시하는, 단순한 시장 교환을 넘어서는 '기부의 윤리학(ethics of gift-giving)'.  203


그가 말하는 변화를 달성하려면, 민주주의 시대에 이상하게 살아남은 전제정치의 잔재인 국가주의(etatisme)를 탈피해야 한다. 전통 좌파조차 놀랄 만큼 강한 이 개념은 국가가 국민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필요시) 그들의 생산물 일부를 법적 강제력을 동원해 몰수 및 결정할 수 있는 명백한 권리를 보유한다는 것이다. 시민은 자신의 소득 일부를 국가에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날 때부터 국가에 빚을 진 존재처럼 취급받는다.  204

첫 번째 단계는 납세 의무자에서 자원자로의 변경이다. 부자에게 과중한 세금을 매기는 대신, 자발적으로 자신의 부를 어느 정도나 공공복지에 기부할 지 결정할 (법적) 권한을 제공해야 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세금을 급격히 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저 기부자가 스스로 어디에 얼마를 기부할지 결정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작은 여지라도 열어놓아야 한다는 뜻이다.이러한 시작은 아무리 미미하더라도 점차 사회 결속력의 근간이 되는 사회 전체의 윤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화이야 어째됐든 결국 해야만 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게 된다는 오랜 역석레 빠지는 것은 아닐까? 선택의 자유가 실은 강요된 선택에 기초하는 거짓 자유가 아닐까?  205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에서 실시된 연구에 대한 보고 내용.

'... 일정 수준이 충족되면, 사람들은 돈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일에 대해 생각한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을 기꺼이 무료로 하거나 일주일에 20시간, 때로는 30시간을 자원 봉사하는 살마도 대단히 많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것을 팔지 않고 그냥 나눠준다. 대부분 고도의 전문 기술을 보유하고 직업도 있는 이들이 왜 회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무료로, 때로는 업무시간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것일까? 참으로 이상한 경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이 '이상한 행동'은 마르크스의 유명한 구호인 '능력에 따른 노동과 필요에 따른 분배'를 좇는 공산주의자의 행동이다. 이것암ㄴ이 진정한 유토피아적 차원을 갖는 유일한 기부의 윤리학이다.  210

MIT 실험에 어떠한 문제가 있든 간에, 자본주의적 경쟁과 이익 극대화가 전혀 '천성적'이지 않다는 점만은 분명히 입증된다. 기본적 욕구가 일정 수준 이상 충족되면, 사람들은 금전적 보수가 아닌 능력에 따라 사회에 기부해가며 '공산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212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자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건 힘겨운 투쟁을 통해 쟁취하는 것이다. 스파르타인의 가혹한 군사적 규율은 아테네인의 '자유민주주의'와 외적으로 대립하는 동시에 그것의 근간을 이루는 내적 조건이다. 이성이 있는 자유로운 주체는 오로지 혹독한 자기 규율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딸기 케이크와 초코 게이크 중 하나를 고르듯이, 안전한 거리를 두고 행해지는 선택의 자유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필연성과 겹쳐진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걸 때에만,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때에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 조국이 다른 나라에 점령당했을 때 맞서 싸우는 것은 '선택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존엄을 지키고 싶다면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219




10 미래가 보내는 징후(Signs From the Future)


꿈이 사라져버린 듯한 이 우울한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열정이 넘치던 숭고한 순간을 회상하며 향수와 자아도취에 빠지거나,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이러한 시도가 실패로 끝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냉소적이고 현실적으로 설명하는 것 외에 과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가장 먼저 언급할 것은 수면 아래에서 여전히 불만이 들끓고 있다는 사실이다. 분노가 계속 쌓여가고 있으니 새로운 저항의 물결이 뒤따를 것이다. .. 확실한 돌파구가 없는데다, 지배 엘리트는 명백히 통치력을 상실하고 있다. 더욱 불안한 것은 민주주의마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228

월가점령시위, 아랍의 봄, 그리스와 스페인에서의 시위 같은 사건들은 그렇게 미래에서 보내온 징후로 읽어야 한다. 바꿔 말하자면, 맥락과 기원을 바탕으로 사건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역사주의적 관점을 뒤집어야 한다.  229

우리는 공간상으로는 여기에 위치하고 있지만 시간상으로는 공산주의 사상의 미래, 즉 해방된 미래에 위치한 요소를 적극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인식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징후를 포착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한편, 현재 우리의 행동도 미래가 되어야 온전히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오늘날의 사회에서 '공산주의의 싹'을 필사적으로 찾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허비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가설상 공산주의의) 미래에서 오는 징후를 읽는 이과 그 미래의 근본적인 개방성을 유지하는 일 사이에서 미묘한 균형을 잡는 일이다. .. 우리가 추구해야 할 그 균형은 양 극단을 핗는 일종의 현명한 '중도(中道)'와는 무관하다.  229-230

칸트의 이성과 직관의 관계 도식 (-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이다.)  233

오늘날 공산주의자를 규정짓는 특성은 (현대식 버전의) '기적', 즉 타흐리르 광자의 시위와 같은 예상치 못한 사건 속에서 공산주의적 요소를 찾아내고, 그것을 (공산주의적) 미래에서 온 징후로 읽어내게 해주는 '독트린(이론)'이다.  234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미래는 '객관적'이지 않다. 그 미래를 지탱하는 주관적 참여를 통해서만 현실이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일반적인 비난을 되돌아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적어도 장기적으로는)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원하지 않는 것, 즉 현재 누리는 '자유' 중에서 포기할 각오가 된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을까? 우리는 커피를 원하지만, 우유나 크림이 없는 커피를 원할까? (국가가 없는 자유? 사유재산이 없는 자유? 등)  235

우리에게 위기가 임박했다고 설득하려는 생태학자에 대한 유일하게 적잘한 답변은 그의 필사적인 설득의 진짜 타깃은 자신의 비(非)신념이라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대답은 이것이다. "걱정 마, 재앙은 반드시 닥칠 거야! 불가능한 일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어. 하지마 인내심을 가고 지켜봐. 성급한 추측에 굴복하지도 말고, '지금이야! 두려운 순간이 다가왔어!'라고 생각하며 도착적인 기쁨에 빠지지도 마." 생태학에서 이런 종말론적 환상은 다양한 형태를 띤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로 수십 년 내에 모두 물에 잠길 것이라거나, 유전자공학이 인간의 윤리와 책임의식의 종말을 의미한다거나, 벌들이 곧 멸종하고 전 세계적인 기아가 뒤따를 것이라는 등. 물론 이 모든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이러한 주장에 현혹되거나 거짓된 죄책감과 정의감("우리가 만물의 어머니인 대지를 노하게 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에 빠져서는 안 된다. 대신 냉정한 상태를 유지한 채 '지켜보자.'

'그러나 지켜보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하모가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3:33~37)

계속 깨어 있으면서 무엇을 지켜보라는 걸까?  236-238

프랑스어에는 영어로 정확히 옮기기 힘든, '미래'를 뜻하는 두 단어가 있다. '퓌뛰흐(futur, 미래)'와 '아브니흐(avenir, 장래)'다. '퓌뛰흐'는 현재의 연속선상으 미래로, 이미 존재하는 경향성이 완전히 실현된 것을 나타낸다. 반면 '아브니흐'는 보다 급진적인 중단, 현재와의 단절을 가리킨다. 단순히 '앞으로 될 것(hwat will be'이 아니라 '앞으로 닥칠 것(what to come)'을 의미한다.  240

파국에 맞서 싸우는 방법은 파국적인 '고정점'으로 치닫는 이 표류를 중단시키고, '도래할' 급진적 타자성(Otherness)을 야기할 위험을 스스로 떠안는 것이다. 여기서 "미래가 없다(no future)"는 슬로건이 얼마나 모호한지를 알 수 있다. 좀더 깊이 파고들면, 이 슬로건은 종결 혹은 변화의 불가능성을 의미하기보다, 우리가 쟁취해야 할 것, 즉 파국적 '미래'의 영향을 중단시키고 이로써 '다가올' 새로운 것을 위한 공간을 여는 일을 지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분에 기초하면, 마르크스(와 20세기 좌파)의 문제를 알 수 있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는 너무 이상적인 꿈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미래적'이어서 문제였다. 마르크스가 플라톤에 대해 썼던 말(플라톤의 <국가>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기존 고대 그리스 사회의 이상적 이미지였다)은 그대로 본인에게 적용된다. 마르크스가 구상했던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의 이상화된 이미지, 자본주의 없는 자본주의, 즉 이익과 착취가 없는 확대 재생산으로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르크스에서 헤겔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를 인도하는 어떠한 숨은 목적론도 없고, 모든 개입이 곧 미지의 세계로의 도약이며, 따라서 결과가 언제나 우리 기대를 좌절시키는 그러한 사회적 과정에 대한 '비관적' 견해로 말이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기존 체계의 무한한 재생산은 불가능하다는 사실뿐이다. .. 중동의 새로운 전쟁이나 경제적 혼란, 이례적인 환경 참사는 우리 곤경의 기본 좌표를 순식간에 바꿔놓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열린 가능성을 충분히 수용하면서, 미래가 보내는 모호한 징후에 의거하여 스스로를 익르어가야 한다.  24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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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읽기 위한 우회로, 이현우(로쟈)

자신의 주저를 몇 권 꼽아놓은 적이 있다.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 외에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 <까다로운 주체> 그리고 <시차적 관점>까지 네 권의 책이 그것이다... 지젝이 말하는 '시차'란 과학용어로 동일한 대상을 서로 다른 곳에서 보았을 때 서로 다른 위치나 형상으로 보이는 것을 말한다. ..

지젝은 이러한 두 층위 사이에 어떠한 곸통 언어나 기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변증법적으로 매개, 지양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율배반'을 시차로 재정의한다. 그리고 철학과 과학, 정치라는 세 가지 주요 양식에 나타나는 시차적 간극에 개념적 질서를 부여하고자 한다.  8-9


그가 보기에 시차란 개념은 변증법적 사유의 장애물이 아니라 그 전복적인 핵심을 간파하도록 해주는 열쇠다. 이 열쇠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까. 가령 '저항'의 교착상태에 대해 생각해보자. 지젝은 알랭 바디우를 따라서 시스템이 더욱 부드럽게 작동하게끔 만들어주는 국지적 행동에 참여하기보다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오늘날 진정한 위협은 수동성이 아니라 유사행동이며, '능동적'이고 '참여적'이 되려는 이 충동은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9-10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다원적 경합을 허용하며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체제이지만, 지젝이 말하는 레닌주의적 제스처는 어떤 근본주의적 태도를 가리킨다. 오늘날 재발명되어야 할 레닌의 유산은 '진리의 정치'라고 그는 주장하며, 근본적 좌파의 목표는 '원칙 없는 관용적 다원주의'와는 정반대라고 선을 긋는다.  12


지젝은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을 경제와 정치 사이의 시차(視差 볼시 어긋날차)에 대한 고려라고 본다. 예컨대 정치와 경제의 관계는 궁극적으로 '두 옆얼굴이냐 꽃병이냐'라는 시각적 패러독스와 유사하다. 즉, 정치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면 경제는 고작 '재화의 공급'으로 격하되고, 경제에 초점을 맞추면 정치는 한갓 기술 관료주의의 영역으로 축소된다.  12-13


지젝은 이렇게 주장한다. "따라서 두 겹의 싸움을 해야 한다. 첫째는, 그래, 반자본주의이다. 그러니 자본주의의 정치적 형식(자유주의적 의회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반자본주의는 아무리 '급진적'이라 해도 충분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 유산을 실제로 문제로 삼지 않고도 자본주의를 훼손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오늘날의 핵심적인 유혹이다."

가령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나 <인사이더>처럼 무자비한 이윤추구에 몰두하는 대기업에 대한 비판을 다룬 영화들이 아무리 '반자본주의'를 표면상 내세우더라도 "대기업의 음모를 무너뜨리는 정직한 미국인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남아 있는 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 세계의 견고한 중핵(민주주의)자체는 제거할 수 없다.  14


파리코뮌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독재였다는 것이 엥겔스의 주장인데, 지젝은 영겔스의 말을 받아서 1892-94년의 혁명적 폭력 또한 프롤레타리아독재와 함께 '신적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즉 여기서 '신적 폭력 = 비인간적 폭력 =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등가관계가 성립한다. 이때 '신적 폭력'이란 말의 해석은 정확히 '백성의 소리는 신의 소리'라는 고대 로마의 격언을 따른 것이다.  15


그가 도출해내는 결론은 "민주주의적 절차보다 상위에 있는 이런 과잉의 평등-민주주의는 오직 자기 대립물로서 혁명적-민주주의의 테러의 형태로만 '제도화되'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진정한 혁명적 과정은 두 가지 계기를 구성소로 갖는다. 프레드릭 제임슨을 따라서 지젝은 그것을 첫째, '극단적인 부정의 제스처', 그리고 둘째 '새로운 삶의 창안'이라고 말한다. "근본적인 혁명 속에서 사람들은 단지 '그들의 오래된 꿈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꿈꾸는 방식 자체를 다시 창안해야 한다. 요컨대 우리의 꿈을 위해 현실을 변화시키기만 하고 이런 꿈들 자체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조만간 우리는 과거의 현실로 다시 돌아가고 만다."는 것이 요점이다.  16


지젝은 <국가와 혁명>에서 레닌이 주장한 교훈을 상기시켜준다. 혁명적 폭력의 목표는 국가권력을 장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변형시키고 그 기능방식과 토대와의 관계 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는 교훈 말이다. 그가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핵심이 거기에 있다.  17


지젝이 자신의 핵심적인 테제를 끌어내고 있는 농담 한 가지를 음미해보는 것도 좋겠다. 몽골 지배하에 있던 15세기 러시아가 농감의 배경이다. 한 농군이 아내와 함께 시골길을 걸어가다 말을 타고 오던 몽골의 전사를 만나게 됐다. 이 전사는 농군의 아내를 강간하겠다고 이르고는 "땅에 흙먼지가 많으니 내가 네 아내를 강간할 동안 네놈이 내 고환을 받치고 있어야겠다. 거기가 더러워지면 안되니까!"라고 덧붙였다. 몽골군이 일을 마치고 떠나자 농군은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아내가 어이없어 하며 뭐가 기뻐서 난리냐고 묻자 농군은 이렇게 답했다. "그놈한테 한방 먹였다고! 그놈 불알이 먼지로 뒤덮였단 말이야!"  ...

포이어바흐에 관한 제11테제를 그는 이렇게 비튼다. "우리의 사회들에서 비판적 좌파는 지금까지 권력자들에게 때를 묻히는 데에 성공했을 뿐이나, 진정 중요한 것은 그들을 거세하는 것이다." 그 '거세'는 어떻게 가능한가? 일단 '20세기 좌파정치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만 한다. 지젝이 베케트의 말을 인용하며 다시 강조하는 그 교훈이란 "다시 시도하라. 또 실패하라. 더 낫게 실패하라"이다. 혁명의 과정이란 점진적 진보가 아니라 몇 번이고 시작을 반복하는 운동이다.  17-18


현재의 세계자본주의 체제에는 어떤 적대가 내재해 있는가. 지젝은 네 가지를 꼽는다. 다가오는 생태적 파국의 위협, 소위 '지적 재산권'과 관련한 사유재산 개념의 부적절함, 새로운 과학기술 발전의 사회, 윤리적 함의, 새로운 장벽(Walls)과 빈민가라는 새로운 형태의 아파르트헤이트생성. 이러한 파국적 위협과 불평등, 그리고 분리에 맞선 투쟁이 공유하는 것은 '공통적인 것(the comons)'을 둘러막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인류가 파멸해 봉착할 수 있다는 자각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시장의 실패"로도 불리는 기후위기도 빼놓을 수 없겠다. 때문에 '세계시민성'과 '공통관심'을 바탕으로 "시장메커니즘을 조절하고 제압하면서 엄밀하게 공산주의적인 관점을 표현하는 세계적 정치조직을 창설할 필요"가  제기된다. 그것이 '세계의 종말"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다.  

지젝의 공산주의론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구별이다. ..

지젝이 보기에,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내속적인 장기적 적대를 넘어 존속하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적 해결책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종의 사회주의를 재발명하는 것뿐이다. ..

"미국은 더욱더 프랑스처럼 될 것"이라는 일종의 '유러피언 드림'이 그것이다. 또는 빌 클린턴이 추천사를 쓰기도 한 <박애자본주의>같은 책을 그 징후로 간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이 내세운 모토가 "승자만을 위한 자본주의에서 모두를 위한 자본주의로"이다.

하지만 사회주의는 '포함된 자'와 '배제된 자' 사이의 핵심적 적대를 다루지 않는다.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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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의 전체적인 .. 그의 주장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폭력에 대한 관심이 눈에 보이는 '주관적 폭력'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객관적 폭력', 즉 '상징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에 두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폭력이란 말이 즉각적으로 떠올려주는 상투적 '이미지'에서 한걸음 물러날 때만, 우리는 폭력에 대해 본격적으로 사유,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20





서문 


폭력이라고 하면 우리는 즉각, 범죄와 테러 행위, 사회 폭동, 국제 분쟁 같은 것을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물러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직접적이며 가시적인 '주관적(subjective)'폭력, 즉 명확히 식별 가능한 행위자가 저지르는 폭력이라는 유혹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폭력의 분출이 대체로 어떤 배경 속에서 발생하는 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

주관적 폭력은 세 가지 폭력 가운데 가장 가시적인 일부에 불과하다. 이 세 가지 폭력 중 나머지 둘은 객관적(objective)폭력인데, 그 첫 번째는 하이데거가 '존재의 집' 이라고 칭한 언어를 통해 구현되는 '상징적symbilic)'폭력이다. ..

폭력이 언어 자체에 들어 있으며, 언어가 의미 세계를 대상에 부과할 때 따라붙는다. 

두 번째로, 내가 '구조적systemic)'폭력이라 부르고자 하는 폭력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경우 우리의 경제 체계와 정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나타나는 파국적인 결과이기도 하다. ..

주관적 폭력은 '정상적'이고 평온한 상태를 혼란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객관적 폭력은 바로 이 '정상적인' 상태에 내재하는 폭력이다.  ..

구조적 폭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폭력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고려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폭력은 단지 주관적 폭력의 '비이성적' 폭발로만 보일 것이다.  23-24


폭력에 대한 자유주의적 좌파 담론에 만연하는 가짜 급박감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가령 이들의 담론에서 여성, 흑인, 노숙자, 동성애자 등이 당하는 폭력의 장면을 거론할 때에는, 대개 추상적 개념과 사실적인 (거짓)구체성이 공존한다. "이 나라에서는 6초마다 한 여성이 강간당합니다"라는 진술과 "당신이 이 문단을 읽는 동안, 열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을 것입니다"라는 경고는 그저 두 가지 사례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의 뒤에는 도덕적으로 분개하고 있다는 위선적 감정이 깔려 있다. 스타벅스는 바로 몇 년 전에 이런 종류의 거짓 급박감을 써먹은 것이다. 매장 입구에 스타벅스 체인의 이윤 거의 절반이 커피 원산지인 과테말라의 어린이들을 위한 의료시설로 간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여 놓아,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마다 한 어린이의 생명을 살리게 된다는 의미를 은연중에 풍겼던 것이다.

이런 긴급 지령들에는 근본적으로 반(反 되돌릴반)이론주의적 강렬함이 있다. "생각에 잠길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이런 거짓 급박감을 통해, 탈산업화 시대의 부자들은 그들끼리 격리된 가상 세계에서 살아가면서도 자기 세계 외부의 혹독한 현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줄곧 적극적으로 떠들어댄다. ..

"그럼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가요? 그냥 손 놓고 기다리라고요?" 

우리는 주저하지 말고 대답해야 한다. 

"예, 바로 그겁니다!" 어떤 상황에서는, 즉각 참여하고자 하는 충동에 저항하는 것, 끈기 있고 비판적인 분석을 사용하여 '일단 기다리면서 두고보는' 것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진정으로 '실제적인' 일일 때도 있다. 현실참여는 모든 방향에서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 듯하다.  29-31 





1. SOS폭력


1922년 소비에트 정부는 철학자와 신학자에서 경제학자와 역사학자 등 주요 반공산주의 지식인들을 강제 추방했다. ...

니콜라이 로스키는 추방당하기 전까지 가족과 함께 하인과 유모들의 시중을 받아가며 상층 부르주아지의 안락한 삶을 누려왔다. ...

구조적 폭력 ..

"아무런 나쁜 일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에 주관적인 악행은 잔혀 없었다. 다만 이런 구조적 폭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배경이 있었을 뿐이다.  35-37


오늘날 지배적인, 관용적 자유주의자들이 가진 주된 관심사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대량 학살, 테러)에서 이데올로기적 폭력(인종주의, 선동, 성차별)에 이르기까지 모든 형태의 폭력에 반대하는 것인 듯하다. ..

다른 형태들의 폭력을 시야에서 지우고, 따라서 거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우리가 문제의 진정한 중심에 주의를 돌리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37


어느 남편이 일터에서 평소보다 일찍 돌아왔다가 아내가 다른 남자와 침대에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깜짝 놀란 아내는 소리쳤다. "왜 이렇게 일찍 돌아온 거야?" 남편은 화가 잔뜩 나서 맞받아쳤다. "딴 놈이랑 누워서 뭐하고 있는 짓이야?" 아내는 태연히 대답했다. "내가 당신한테 먼저 질문했잖아. 주제를 바꾸면서 내 질문에서 빠져나가려 하지 마!" 이런 농담은 폭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니까 우리의 과제는 바로 '주제를 바꾸는 것', 폭력을 멈추자는 필사적인 인도주의적 SOS 외침에서 벗어나, 다른 SOS에 대한 분석, 즉 주관적 객관적, 상징적이라는 세 가지 방식의 폭력이 복잡하게 벌이는 상호 작요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38


객관적 폭력이라는 개념은 철저히 역사회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본주의와 더불어 새로운 형태를 취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의 자기 증식적 순환을 광적인 것이라고 묘사했다.  39


자본은 자신의 운동이 사회적 현실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무관심하며, 오로지 수익성이라는 목표만을 추구한다.  39


라캉이 말하는 현실과 실재의 차이를 볼 수 있다. '현실(reality)'은 부단한 상호작용과 생산과정을 행하는 실제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적 현실을 말하며, 실재(the Real)'는 사회적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하는, 냉혹하고 '추상적인', 유령과 같은 자본의 논리이다. 생활 상태가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나라를 방문하면 누구든 이런 격차를 분명하게 체험할 수 있다. 우리 눈에는 파괴된 환경과 비참한 인간들로 가득찬 광경이 들어온다. 그러나 이후에 경제학자가 쓴 보고서를 읽어보면 그 나라의 경제적 상황은 '재정적으로 견실하다'고 알려 준다. 현실은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자본의 상황인 셈이다...  40


16세기 멕시코의 비극에서 한 세기 전 벨기에가 콩고에서 저지른 대학살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세계화의 결과로 죽어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주의를 돌릴 때면 이에 대한 책임은 대부분 부인된다. 그 모든 일은 그저 '객관적인' 과정의 결과물로서 일어났을 뿐이며, 누구도 계획하고 실행한 적이 없었고, '자본주의 선언' 같은 것도 없다.(그나마 '자본주의 선언'에 가장 근접한 걸 쓴 인물은 아인 랜드(Ayn Rand)이다.) 콩고 대학살의 주범인 벨기에의 왕 레오폴드 2세는 대단한 인도주의자였으며 교황에 의해 성인칭호까지 받았던 사람이었다. ...

가장 커다란 아이러니는 이런 노력에서 얻은 이윤 대부분이 벨기에 국민들의 복지, 공공사업, 박물관 등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레오폴드 왕은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 들의 선구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41-42


올리비에 말뉘(Olivier Malnuit)는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여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의 십계명을 꼽은 바 있다.

1. 모든 것을 공짜로 줘버려라(저작권이 없는 자유로운 접근...). 단, 부가서비스에만 요금을 받으라. 그러면 부자가 될 수 있다.

2. 물건만 팔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라. 세계혁명과 사회의 변화를 통해 물건의 품질도 나아질 것이다.

3. 나눔에 신경 쓰고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라.

4. 창조적이 되어라. 디자인과 신기술, 그리고 과학에 초점을 맞추라.

5. 모든 것을 말하라, 비밀이란 없어야 한다. 일처리의 투명함과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지지하고 실천하라. 전 인류가 협력하고 소통해야 한다. 

6. 정시 출퇴근하는 직업을 갖지 말고, 노동하지 말라. 다만 스마트하고, 역동적이고, 유연한 즉석 커뮤니케이션에 참여하라. 

7. 학교로 돌아가 평생교육에 참여하라.

8. 효소처럼 행동하라. 시장만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사회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하라.

9. 가난하게 죽으라. 결코 다 쓰지 못할 만큼 가졌으니 재산을 필요한 자들에게 환원하라.

10. 국가가 되라. 기업과 국가의 협력 관계를 맺으라.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실용주의적이다. ..

실제로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인도주의의 위기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그들의 가장 선한 면을 드러내 보일 기회니까!  46-47


몇몇 거대 다국적 기업이 자사의 남아공 지점에서 모든 인종분리정책을 철폐하고 흑인과 백인에게 동일 직업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는 등 인종차별 법규를 무시하는 결정을 내렸는데,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이런 결정이 직접적인 정치 투쟁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과 기업의 이익이 맞아 떨어지는 완벽한 사례 아닌가? 그 회사들은 이제 인종차별정책이 사라진 남아공에서 번창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47-48


무엇보다도,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진정한 세계 시민이다. 그들은 이런저런 것들에 대해 걱정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포퓰리즘적 근본주의와 무책임하고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기업들에 대해 걱정한다. ..

그들의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 과정의 부산물로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누가 그걸 불평하겠는가!  48


속지 말아야 할 점은, 기부하려면 일단 돈을 벌어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49


유명한 앤드류 카네기는 사병(私兵 사사로울사 군사병)을 고용해 자신의 철강소에서 노동자 단결을 잔혹하게 억누르면서도, 많은 재산을 교육, 예술, 인도주의적 대의를 위해 내놓았다. 철강왕으로 알려진 그는 마음만은 황금으로 되어 있음을 입증해 보인 셈이다. 같은 식으로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한 손으로 일단 벌어들였던 것을 다른 한 손으로 내놓는다.  50-51


빌 게이츠.. 지독한 사업가로서의 그는 실질적 독점을 노리며 경쟁사들을 파산시키거나 사들이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온갖 치사한 거래 수법을 동원한다. 반면 인류 역사상 가장 커다란 규모의 자선가이기도 한 그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지 못하고 이질로 죽어간다면 컴퓨터를 가진다는 게 무슨 소용인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의 윤리로는, 자선을 베풀면 무자비한 이윤 추구 행위도 상쇄된다. 자선은 경제적 착취라는 얼굴을 감추고 있는 인도주의적 가면이다.  52


진심이든 위선이든 자선행위는 자본주의적 순환이 논리적으로 낳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는 철저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만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연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선 행위는 진정으로 곤궁에 처한 이들에게 부를 나눠준다는 일종의 재분배를 통해 균형을 재확립하며, 치명적인 덫을 피해간다.  53-54


오늘날 악을 대표하는 좋은 예는 평범한 소비자들이 아니다. 그런 전반적 파괴와 오염을 조성하는 데 전적으로 관여했으면서, 돈을 써서 자기 자신이 저지른 결과로부터 쏙 빠져나오는 자들, 빗장 공동체에 살면서, 유기농 식품을 사다 먹으며, 자연 보호 구역에서 휴가를 즐기는 자들이 바로 악이다.  58-59


니체는 서양 문명이 말인(末人 끝말 사람인, the Last Man), 즉 어떤 열정도 헌신도 없는 무심한 인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말인은 꿈꿀 줄 모르고, 삶에 지쳐 있으며, 어떤 위험도 감수하려 하지 않고 오직 안락함과 안정성만을, 그리고 서로에 대한 관용의 표현만을 추구한다. "이따금 약간의 독을 마시고 유쾌한 꿈을 꾼다. 그리고 최후에는 많은 독을 마시고 유쾌한 죽음을 맞는다. 그들에게는 낮의 쾌락과 밤의 쾌락이 따로 있지만, 건강은 챙긴다. '우리는 행복을 발견해 냈어.' 말인은 이렇게 말하고, 눈을 깜빡인다."  59-61


알랭 바디우는 '무조(無調 없을무 고를조)'의 세계(Monde atone)라는 개념을 전개한다. 이는 주인기표(Master-Signifier, 라캉은 우연적인 표상체계를 단일한 의미의 체계로 만들어낼 수 있는 특권적인 중심기표를 주인기표라 부른다)의 개입이 결여된 까닭에 다양성을 가진 혼란스러운 현실에 어떤 의미 있는 질서도 부여하지 못하는 세상을 뜻한다.  67


우리가 사는 포스트모던 세계의 근본적 특성은 명령(order)을 내리는 주인기표의 이런 작용을 없애려 든다는 점이다. 세계의 복잡성은 무조건적으로 확고히 인정받아야 한다. 그 복잡성에 어떤 질서(order)를 부과하려 드는 주인기표는 모두 해체되고 흩어져야 하는 것이다. "근대는 세계의 '복잡성'을 위해 이런 저런 변명을 늘어놓는데, 그것은 정말 무조(無調 없을무 고를조)에 대한 욕마을 일반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68 


주관적 폭력과 싸우는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구조적 폭력의 행위자가 되는데, 이 구조적 폭력이야말로 주관적 폭력을 낳는 원인이다. 관용의 정신으로 에이즈 치료나 교육에 수백만 달러를 내놓는 자선가는 그 자신이 금융 투기로 수많은 이의 삶을 파괴했던 장본인이며, 그리하여 자신이 타파하고자 하는 불관용 그 자체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

환상은 금물이다.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오늘날 모든 진보적 투쟁의 적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원인 중 부차적인 것만을 해결하고자 한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은 체제 자체의 잘못된 점을 직접 구현하는 화신이다. 인종주의, 성차별, 종교적 반계몽주의 등과 싸우느라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들과 전략적 동맹을 맺고 타협해야 할 때에는 이 점을 반드시 새겨야 한다.

그렇다면, 으리의 자유주의적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물론 그는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사람이고 세계의 빈곤과 폭력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이런 걱정을 할 만한 능력도 되는 사람이다. 사실 그런 사람에게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

또 그는 빈곤과 싸워야 한다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있는데, 그건 그가 그 신념을 바타응로 돈을 벌어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70-71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선한 자에 대한 심문]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앞으로 나오라, 우리는

그대가 좋은 사람이라고 들었다.

그대는 매수되지 않지만,

집을 내려치는 번개 또한

매수되지 않는다.

그대는 그대가 했던 말을 지켰다.

그러나 어떤 말을 했는가?

그대는 정직하고, 자기 의견을 말한다.

어떤 의견인가?

그대는 용감하다.

누구에게 대항하는 용기인가?

그대는 현명하다.

누구를 위한 현명함인가?

그대는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돌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대는 누구의 이익을 돌보는가?

그대는 좋은 친구이다.

그대는 좋은 사람들에게도 좋은 친구인가?


이제 우리의 말을 들으라, 우리는

그대가 우리의 적임을 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이제 그대를 벽 앞에 세우리라. 그러나 그대의 미덕과 장점들을 고려하여 

우리는 그대를 좋은 벽 앞에 세우고 그대를

좋은 총의 좋은 탄환으로 쏠 것이며 그대를 

좋은 삽으로 좋은 땅에 묻어 주리라.  71-72





2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두려워하라!


오늘날은 탈정치적 생명정치(post-political bio-politics)라는 정치 형태가 지배하고 있다. 

'탈정치'란 낡은 이데올로기적 투쟁을 벗어나, 대신 전문적인 운영과 관리에 초점을 맞춘다고 주장하는 정치이다. 그리고 '생명정치'란 인간 생활의 안전과 복지를 제도화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 정치를 가리킨다. 이 두 영역이 어떻게 겹쳐지는가는 자명하다. ..

탈정치화되고, 사회적으로 객관적이 관리와 이해 조정을 정치의 기본적 차원으로 삼게 된 이상, 사람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적극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포뿐이다.

이런 이유에서 생명정치란 궁극적으로 공포의 정치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부당하게 희생자가 될 지도 모른다는, 혹은 괴롭힘을 당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막아내는 것을 중요시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보편적인 공리를 기초로 한 정치와 정치적인 것의 본질적인 부분을 포기해버리는 정치 사이의 차이다. 왜냐하면 후자의 정치는 다음과 같은 온갖 원리들을 동원하면서 공포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민자들에 대한 공포, 범죄에 대한 공포, 성적인 타락에 대한 공포, 많은 세금을 물릴지도 모른다는, 지나치게 개입하는 국가 자체에 대한 공포, 생태적 파국에 대한 공포, 괴롭힘에 대한 공포 등이다... 이러한 (탈)정치는 언제나 피해망상에 사로잡힌 우중(ochlos) 혹은 다중(multitude)을 조종하는 수법에 의존한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무섭게 몰아대는 것이다.  73-74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점차 괴롭힘 당하지 않을 권리가 중요한 인권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이는 타인과 안전 거리르 유지할 권리이다.

게다가 탈정치적 생명정치에는 두 가지 측면.. 하나는 인간을 '벌거벗은 생명', 즉 호모 사케르(Homo sacer)로 환원해 버린다는 면이다. 이른바 신성한 존재라고 불리는 호모 사케르란, 전문지식에 기초하여 관리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관타나모의 죄수들이나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처럼 모든 권리가 배제된 이들을 일컫는다. 이와 같은 극단화는 자신이 취약한 존재이며, 항상 다중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지도 모르는 존재라는 식으로 경험하는 자기애적 태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75


우리는 모두, 지각의 착각(perceptual illusion)과 비슷한 일종의 윤리적 착각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다. 우리가 이런 착각에 빠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추상적으로 추론하는 능력이 엄청나게 발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정서적-윤리적 대응은 아주 오래된 본능적 반응에 길들여져서 고통 받는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 동정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 대부분은 버튼 하나를 눌러 눈에 보이지 않는 수천 명의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 총으로 누군가를 직접 겨냥해 쏘는 일에 대해 더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76-77


똑같은 사람이 어떻게 적들을 향해서는 끔찍한 폭력 행위를 저지르면서 자기 집단에 속한 이들에게는 따뜻한 인간애와 친절을 베풀 수 있는가,...

자신의 윤리적 고려의 범위를 모든 곳에 적용하는 이들은 깊은 모순, 심지어 '위선'에까지 빠진다. 하버마스의 용어를 빌어 표현하자면, 그들은 화용적 모순(pragmatic contradiction)에 휘말린다. 자기 자신이 속한 언어 집단을 지탱하는 윤리적 규범들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의 내부에 속한 사람들에게 부여하는 기초적인 윤리적 권리를 그 외부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부여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83


기독교 윤리를 생각해 보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는 성 바울의 유명한 말처럼 기독교 윤리는 전 인류를 포용한다는 자세를 취하지만, 그럼으로써 동시에 공동체 안에 포함되려 하지 않는 이들을 철저하게 배제한다. ..

"모든 인간은 형제"라는 기독교의 금언은 동시에 형제애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기독교도들은 늘 자신들이 '선택받은 민족' 이라는 유대인의 배타적 신앙관을 극복하고 전 인류를 포용했다고 자화자찬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신과의 직접연결이라는 특별한 은혜를 받은 선민(選民 가릴선 백성민)이라 여기면서, 사신(邪神 간사할사 귀신신)을 숭배하는 다른 민족도 인간이기는 하다고 인정한다. 반면 기독교가 가진 보편주의의 편향적 태도는 비기독교도를 인류의 보편성 그 자체로부터 배제해 버린다.  91-92


프로이트와 라캉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기본 가르침인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에는 본성적으로 문제적인 데가 있다고 주장한다.  ..

이웃이 가진 비인간적 특징으로 인해 이웃은 보편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입장에 선다는 것은 매우 폭력적인 것이며, 심지어 상처를 받는 것이기도 하다.  93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말처럼 "만약 당신이 타인의 꿈속에 갇힌다면, 끝장이다!"인 셈이다.  94


정중함이라는 방어벽의 붕괴가 가장 뚜렷이 드러나는 것은 서로 다른 문화들이 충돌할 때이다.  96



* 주이상스(Jouissance). 쾌락이 고통을 줄이고 쾌감은 늘리려고 하는 쾌락원칙을 따르는 반면에, 주이상스는 고통마저도 감수하는, 혹은 고통 속에서 느끼는 쾌감을 가리킨다. 따라서 주이상스는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즐김이다.  96



오래 전 프로이트가 이미 간파한 바와 같이, 이웃이란 본래 하나의 사물이고, 충격을 안겨주는 침입자이며, 우리와 다른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어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웃은 저 나름의 사회적 관습과 의식에 따라 구체화된, 주이상스를 추구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를 불안케 하는 자이고, 우리 생활방식의 균형을 깨뜨리는 자다. 그렇기 때문에, 이웃이 너무 가까워질 경우 우리는 이 거슬리는 침입자를 없애기 위해 공격적인 반응을 하게 될 수 있다. 페터 슬로터다이크는 "더 많은 의사소통이란, 무엇보다도 우선 더 많은 갈등을 뜻한다"고 했다. 그런 이유에서, '서로를 이해하기'라는 태도에 더해 '서로 비켜서기'라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고, 새로운 '재량 규범'을 도입함으로써 서로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98


뮐레르는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을 구분하려는 시도를 완전히 거부해 버리면서 논의를 시작한다.

'폭력을 정의할 때 필수적인 것은 '좋은' 폭력이란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을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순간, 우리는 폭력이라는 단어의 고유한 용법을 잃고 혼란에 빠져든다. 무엇보다도, '좋은' 폭력이란 무엇인지를 정의하기 위한 기준을 만들어내는 순간, 우리는 모두 그 기준을 매우 손쉽게 이용하여 우리 자신의 폭력 행위를 정당화할 수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투쟁과 공격이 삶의 일부인데 어떻게 폭력을 완전히 거부할 수 있겠는가? 쉬운 해결책은 '공격(aggression)과 '폭력'은 '죽음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폭력'이란, 공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공격이 과도해져 점점 더 많은 것을 욕망하면서 사태의 정상적 흐름을 교란시키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 과도함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102


처음에,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 권력을 추구한다. 그러나 주의하지 않으면, 곧 한계를 넘어 남들을 지배하려 들게 될 것이다... 시몬 베유는 "한계가 분명한 욕망은 세상과 조화를 이루지만, 무한한 욕망은 그렇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103





3 '피로 물든 조수가 범람하다'


2005년 가을, 프랑스 파리 교외에서 폭동이 일어나 수천 대의 차가 불타고 대규모 군중 폭력이 발생했다. 흔히 2005년 8월 29일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치고 간 뒤에 발발한 약탈과 1968년 5월 파리의 68혁명을 이 사건과 비교하곤 한다.  115


알랭 바디우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적 공간이 점차적으로, '세계 없음(Worldless)'의 공간(space)으로 경험된다고 했다. 이런 공간에서, '의미없는' 폭력 말고 달리 취할 수 있는 저항의 수단이 있을 수는 없다.  122



* 세계없음(Worlsless). 우리가 예전에는 지향하고자 하는 바가 있는 '세계(world)'에 살고 있었는데, 유토피아적 전망 자체가 사라져버린 이곳은 이제 세계가 아니라 단순한 장소(place)에 불과하다는, 바디우의 독특한 조어.  122



자본주의는 전지구적이며 전 세계를 포괄하지만, 동시에 엄밀한 의미에서 '세계없는' 이데올로기적 상황을 유지시키며,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인식론적 지도를 그릴 기회가 박탈된 상태로 있다. 그런 면에서 자본주의는 역사상 최초로 의미를 와해시키는(detotalised meaning) 사회경제 질서다.  123



* 대학담론(university discourse). 라캉에 따르면 의미활동이 시작되는 담론의 행위자가 누구냐에 따라 담롬의 성격이 달라진다. 라캉은 이를 주인담론, 대학담론, 히스테리담론, 분석가담론 등 4가지로 도식화했는데, 대학담론은 탄탄한 지식체계로 무장한 교수들의 '지적' 담론을 순진한 학생들이 전수받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125



이기주의(Egotism), 즉 자신의 안녕에 대한 관심은 공익 대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기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이타적인 규범을 도출해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개인주의 대 공동체주의, 공리주의 대 보편적 규범에 대한 고집이라는 이항대립은 그릇된 것이다. 두 대립항이 결과적으로는 결국 같아지기 때문이다. 쾌락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오늘날의 사회에서 진정한 가치들이 없어지고 있다고 한탄하는 비평가들은 완전히 요점을 놓치고 있는 셈이다. 이기주의적이 자기애의 진짜 반대말은 이타주의, 즉 공익에 대한 고려가 아니라 부러움과 원한이고, 바로 이 부러움과 원한이라는 감정으로 인해 나는 나의 이익에 반(反 되돌린반)하여 행동하게 된다. 프로이트는 이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죽음 충동은 현실원칙만큼이나 쾌락원칙과도 대립한다.(프로이트의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프로이트는 모든 본능적 충동이 쾌락을 추구하고 쾌락원칙을 따른다고 봤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아가 그렇게만 행동하면 정상적 인간이 될 수 없으니, 그래서 현실원칙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현실원틱은 쾌락원칙의 반대라기보다는 그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쾌락을 포기했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모종의 보상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쾌락은 현실적으로 양보된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악, 즉 죽음 충동은 자기파괴를 수반한다. 죽음충동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익에 반(反 되돌리반)하여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캉이 설명했듯, 인간의 욕망이 가진 문제점은 그것이 언제나 '타자의 욕망' 이라는 데 있다. 이때 '타자의 욕망' 이란 타자를 향한 욕망과 타자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특히 타자가 욕망하는 것에 대한 욕망, 이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바로 이 '타자가 욕망하는 것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질시가 발생하며, 부러움이라는 감정 속에는 원한의 감정도 들어 있는데, 이는 인간 욕망을 이루는 근본 요소들이다.  131-132


* 프로이트의 현실원칙과 쾌락원칙. 프로이트는 모든 본능적 충동이 쾌락을 추구하고 쾌락원틱을 따른다고 봤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아가 그렇게만 행동하면 정상적 인간이 될 수 없으니, 그래서 현실원칙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현실원칙은 쾌락원칙의 반대라기보다는 그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이 쾌락을 포기햇다는 것은 현실 속에서 모종의 보상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쾌락은 현실적으로 양보된 것이기 때문이다.  132


부러움/원한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런 감정을 갖는다는 것이 단지 내가 이기면 다른 사람은 지게 되는 제로섬 게임의 원칙을 지지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부러움/원한에는 양자 간에 격차가 있다는 점이 함축돼 있는데, 이 격차는 긍정적인 것(아무도 지는 일 없이 모두가 이길 수도 있다)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이다. 내가 얻느냐 내 적이 잃느냐를 두고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내 적이 잃는 편을 택한다. 심지어 그것이 나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말이다. 마치 내 적의 손해에서 오는 나의 결과적인 이득이 내 승리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병적인 요소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평등이 비인격적이고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인해 발생한다면, 그 불평등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더 쉽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자본주의 내에서 시장은 '비합리적'으로 돌아가고, 성공과 실패 역시 '비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데, 바로 이게 시장의 장점이다. 내 성공이나 실패를 '내 책임이 아닌 것', 혹은 우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시장에 대한 오래된 모티프가 '예측 불가능한 운명'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라는 점을 상기해보라. 이 점을 감안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일 만하다고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자본주의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있다. 사람들은 내가 실패한 것이 나의 열등한 자질 때문이 아니라 우연으로 인한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 실패를 훨씬 견딜 수 있다는 얘기다.  133-134


루소는 이기주의를 자기애(amour-de-soi)와 자존심(amour-propre)으로 구분했는데, 전자는 있는 그대로의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인데 반해, 후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도착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후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도착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말한다. 후자가 강한 사람들은 목표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될 법한 것들을 제거하는 데 집중한다.

'이 원초적 정념, 즉 자기애(amour-de-soi)는 그 본질이 사랑스럽고 다정다감한 것이다. 이는 오직 우리의 행복만을 생각하며, 또 덕분에 우리는 우리의 행복과 관련되는 것들만 대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대하는 것이 목표물에서 장애물로 바뀌게 되면 그들은 대상에 닿고자 하는 노력보다 그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온 마음이 사로잡히게 된다. 이제 그들의 본성은 바뀌어 성마르고 증오에 차게 된다. 고결하고 순수한 마음인 자기애가 자존심(amour-propre)으로 바뀌게 되는건 이런 식이다. 여기서 자존심이란 남과 비교를 위해 동원되는 상대적인 감정이고, 편애를 요구하는 감정이다. 그리고 자존심을 향유한다는 것은 순전히 부정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자기 자신의 행복에서 만족을 찾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불행에서 만족을 찾게 된다.'

따라서 악한 사람은 이기주의자(egoist)가 아니다. 이기주의자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진정한 이기주의자는 자기 이익에 신경 쓰기도 너무 바빠서 남들에게 불행을 일으킬 만한 여유가 없다.  136-137


널리 알려진 인류학적 일화에 따르면, 우리는 '미개인'들이 모종의 미신적 믿음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예를 들어 그들이 물고기나 새 등의 후손이라는 믿음), 이런 믿음에 대해 직접 물어 보면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연히 안 믿죠, 우린 바보가 아니라고요! 그런데 우리 조상 중에는 정말 그 얘기를 믿었던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어요..." 한 마디로, 그들은 자신의 믿음을 남에게 전가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대할 때 우리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 가령 우리는 매년 산타클로스 행사를 여는데, 그것은 우리가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를 믿을 것 같다고 여기고, 따라서 아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아이들이 천진난만하다는 우리의 믿음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그리고 물론, 선물을 받으려고)산타클로스를 믿는 척한다. 또 이는 모종의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들이 정직한 척 하면서 말하는 흔해빠진 변명과 뭐가 다른가? "저는 그 사실을(혹은 저를) 믿는 평범한 사람들을 실망시켜드릴 수 없습니다"  143


어떤 높은 차원의 정치적 진리를 위해서 거짓말을 해서도 안 되고, 왜곡해서도 안 되며, 혹은 사실을 묵살해서도 안 된다. 요점은 어떤 높은 차원의 정치적 진리를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시실을 왜곡 혹은 묵살하라는게 아니다. 주관적 입장을 바꾸어 실제 사실을 말하는 행동에 발화 행위의 주관적 입장에서 나오는 거짓말을 포함하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하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이기는 하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기준이 가진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147


2005년 10월 초, 아프리카 이민들이 계속해서 아프리카 모로코 리프 해안의 스페인령 소도시 멜리야로 필사적 잠입을 시도하자, 이들의 유입을 어떻게 막을까 궁리하던 스페인 경찰은 스페인 영토와 모로코 사이에 장벽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표명했다. 이 장벽의 이미지, 전기 시설로 빈틈없이 무장한 복잡한 구조물의 이미지는 베를린 장벽과 섬뜩하리만치 닮았다. 다만 그 기능이 정반대일 뿐이다. 이 벽의 목적은 사람들이 나가지 못하게 하는게 아니라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분리 조치를 강행해야만 했던 스페인의 호세 사파테로 정부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반인종주의적이고 관용적이라 평가받던 정권이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잔인한 역설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국가들은 대부분 이와 같은 분리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151





4 관용적 이성의 이율배반


2006년 가을,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무슬림 성직자, 셰이크 타즈 딘 알-힐랄리의 발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은 격분했다. 무슬림 남성들이 집단 강간을 저질렀다가 수감된 사건을 두고, 그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만일 고기를 포장도 하지 않고 길거리에 내놓았다가..고양이들이 그 고기를 먹었다면.. 누구의 잘못인가, 고양이들인가 고기인가? 포장되지 않은 고기가 문제다." 베일을 착용하지 않은 여성을 포장하지 않은 날고기에 비유한 자체가 엄청나게 도발적인 것이었기에, 알-힐랄리의 주장에 훨씬 더 놀라운 전제가 숨어 있었음에도, 이 전제는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남성의 성적 행위는 여성의 책임인데, 그렇다면 성적 유혹이라 인식하는 것을 잡했을 때 남성들은 완전히 무력하고, 그 유혹에 전혀 저항할 수 없으며, 날고기를 본 한마리 고양이와 똑같이 완전히 성적 욕구의 노예가 된다는 말인가? 남성은 자기 자신의 성적 행동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가정하는 이런 태도와 대조적으로, 서구에서는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대놓고 강조하는데, 이는 남성이 성욕을 자제할 수 있으며, 성적 충동의 맹목적인 노예가 아니라는 전제에 기초한다.  155-156


홀로코스트는 비판이 금기시되는 성역이 아닌가?  157


어떤 때에는 범죄를 직접 인정하는 것이 그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서구의 법률만능주의적 위선..  158


칸트의 논의 속에서 이성개념을 부정적인 용법으로 사용할때는 예지계적 대상(poumenal objects)에 한정되며, 우리 또한 이성 개념을 부정어법으로만 사용해야만 한다. 홀로코스트도 마찬가지다. 이는 반드시 부정어법으로만 언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끌어들임으로써 어떤 정치적 수단을 정당화/합법화하고자 하면 안 된다. 반대로 그것은 오직 그 정치적 수단을 비합법화하기 위한, 즉 우리의 정치적 행위에 일정한 제한을 가하기 위한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홀로코스트와 같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오만한 행동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이다.  163


법을 위반하는 강도짓과 법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도짓은 뭐가 다르냐는 말이다. 이 교훈을 살짝 변형시키면 이렇게 된다. 즉, 국가권력이 벌이는 대테러 전쟁에 비하면 테러 행위는 뭐가 대수인가?  168-170


우리는 불관용에 대해 얼마나 더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가?  184


이브 르 브르통은 루이 9세의 십자군 원정에서 어느 늙은 여인을 만났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여인은 오른손에는 불이 담긴 그릇을, 왼손에는 물이 담긴 사발을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무엇을 하는 거냐고 묻자, 여인은 불로는 천국을 불살라 아무것도 남지 않도록 하고, 물로는 지옥의 불을 모조리 끌 거라 대답했다. 여인은 이어서 말했다.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보상을 받기 위해, 혹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공포 때문에 선행을 하는 이가 아무도 없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직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선행을 베풀기를 바랍니다." 여기에 덧붙일 것은 딱 한 가지밖에 없다. 하느님도 지워 버리고 그냥 선행 그 자체를 위해 선행을 하면 안 될까? 온전히 기독교적인 이 윤리적 자세가 오늘날 대부분 무신론에만 남아 있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196


타인의 믿음에 대한 존중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는 것은 결국 두 가지 의미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타자를 어린애 대하듯 다루며 그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상처주지 않는 편을 택하는 태도이거나, '진리 체계들' 이 복수로 존재한다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하면서 진리를 명백하게 주장하는 행위는 모두 폭력적인 강요라고 깎아내리는 태도이거나, 이렇게 둘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지만(다른 모든 종교도 마찬가지지만) 이슬람을 존중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동시에 엄격한 태도로 비판적 분석을 해보면 어떨까? 이것이, 그리고 이것만이, 무슬림들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들을 자기 믿음에 대해 책임을 지는 진지한 성인들로 대접해야 하는 것이다.  198






5 관용은 이데올로기다


진짜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아미시 청소년들은 모든 선택사항에 대해 제대로 배우고 그런 선택사항들 속에서 교육받아야 한다.  205


'관용적인' 서구의 다문화주의적 관점 속에서 말하는 '자유로운 선택의 주체'는 이들이 속한 특정한 생활세계에서 찢겨지고 그 뿌리에서 절단되는 극심한 폭력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서만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207


나아가 타자의 문화를 두고 관용의 태도가 결여돼 있다거나 야만적이라는 둥 치부해버리는 태도의 대척점에는 타자의 문화가 가진 우수성을 너무도 쉽게 인정해버리는 태도가 있다. 가령 인도에 주둔하던 영국 식민 관리들 중 인도의 심오한 영성을 찬양하던 이가 얼마나 많았던가. 서구에서는 합리성과 물질적 부에 대한 집착 때문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며 말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타자가, 남을 지배하기보다는 조화를 추구하고, 유기적 존재이고자 하며, 덜 경쟁적이고 또 협력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찬양하는 것도 서구 자유주의가 가진 진부한 주제의 목록에 들어가는 것 아닌가? 서구의 자유주의가 타자의 문화를 '존중'한다는 미명하에 억압을 못 본 체 하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기에 심지어는 선택의 자유를 도착적인 방식으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가령 과부를 불태워 죽이는 짓을 한다 해도, 그 사람들은 자기의 생활방식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며, 그것이 우리 눈에 비참하고 불쾌해 보인다 해도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209


전체주의 체제가 즐겨 사용하는 전략 중 하나는,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모두가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극도로 엄격한 법적 규제(형법)를 부과하는 수법이다. 다만 그 엄격한 법을 완전히 집행하지는 않는다. 이런 전략을 통해 체제는 자비로운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알겠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 전부를 체포해 유죄 판결을 내리는 건 일도 아냐. 하지만 무서워 하지마, 우린 관대하니까.." 이와 동시에 체제는 계속적인 위협으로 기강을 잡으며 체제에 종속된 이들을 길들인다. "너무 기어오르면 안 좋아. 잊지 마, 우리는 언제라도 너희들을.."  222


전체주의 체제는 법의 위반에 대해 관용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전체주의 체제라는 틀 속의 사회적 삶에서는 법을 위반하고, 뇌물을 주고, 부정한 짓을 하는 것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223


만일 내가 내 가장 친한 친구와 승진을 두고 경쟁하는 상황에 처했다가 내가 이긴다면, 내가 취해야 할 합당한 행동은 친구가 승진할 수 있도록 내가 물러나겠다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는 모두 우정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이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 바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상징적 교환, 즉 '거절이 기대되는 제스처'이다. 상징적 교환의 불가사의한 마력은, 결과적으로 양자가 모두 교환이 이루어지기 전과 똑같은 지점에 있지만, 그들이 맺은 단결하자는 약속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양자 모두 분명히 무언가를 얻게 된다는 데 있다. 사과를 주고받는 과정 역시 유사한 논리를 따른다. 만일 무례한 말로 누군가를 불쾌하게 했다면 내가 취해야 할 합당한 행동은 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고, 한편 그는 "고맙네, 하지만 난 기분 상하지 않았어. 자네가 그럴 생각은 아니었다는 걸 알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전혀 사과할 필요 없다네!" 정도의 말로 답하는 것이 도리다. 물론 여기서 요점은, 결국에는 사과할 필요 없다는 결말이 났지만, 그에 앞서 먼저 사과의 말을 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는 것이다. '사과할 필요 없다'는 말은 오직 내가 사과를 한 이후에만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비록 공식적으로는 아무 일 아닌 상황이고 사과가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을 했다 하더라도, 그런 사과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만 얻는 것이 생기고, 우정도 깨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거절해야 하는 제안을 받은 사람이 실제로 그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될까? 만일 내가 친구와의 승진 경쟁에서 진 뒤에 자기 대신 그 지위에 올라가라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이는 그야말로 파국적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사회질서의 중핵을 이루는 형식적 자유가 붕괴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 실체 그 자체의 붕괴, 사회적 유대의 해체나 다름없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로베스피에르에서 존 브라운에 이르는 혁명적 평등주의자들은, 적어도 잠재적으로는 습관을 무시하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다. 보편적 규칙이 작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습관 덕분인데, 말하자면 이들은 습관에 대한 고려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225-226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조지 오웨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계급 구분이 사라져야 한다는 바람은 필요하지만, 그럴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그런 바람은 전혀 효력이 없다. 우리가 여기서 맞닥뜨려야 하는 사실은 계급 구분을 철폐한다는 것은 곧 당신 자신의 일부를 없앤다는 의미라는 사실이다. 전형적인 중간계급의 일원으로서의 '나'가 있다고 치자. 내가 '계급 구분을 없애고 싶다'고 말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내가 생각화고 말하는 것은 거의 모두가 계급 구분 덕분에 형성된 결과물이다. (..) 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뒤바꾸어, 결국에는 이전의 내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229-230


오웰은 이데올로기적 일상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배적 태도는 우리가 진심으로 믿고 있지만 조롱하는 척 거리를 두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개이 '지식인'들이 내놓는 좌파적 의견은 대부분 거짓이다. 그는 조롱하는 태도를 보이지만, 사실은 그 대상을 진정으로 믿고 있으며, 단지 조롱하는 척만 할 뿐이다. 여러 가지 예가 있지만 하나만 꼽아 보자면, 명문 사립학교에서 강조하는 명예에 대한 예법. '단체 정신', '쓰러진 사람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 등등의 헛소리를 들 수 있다. 이런 예법을 비웃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지식인'을 자처하는 이라면 그 누가 이를 비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외부에서 이를 비웃는 이를 만난다면 문제가 조금 달라진다. 마치 우리가 일상 속에서는 늘 우리 잉글랜드를 욕하지만, 외국인이 똑같은 욕을 하면 크게 분개하는 것과 같다. (..) 당신과는 다른 문화에 속한 사람을 만났을 때에야, 당신은 당신이 실제로 믿고 있는 게 뭔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웰이 전제하는 이 진정한 미데올로기적 정체성에는 '내면적인' 면이라곤 전혀 없다. 내면 깊숙한 믿음은 전적으로 '외부에'있으며, 내 몸이라는 육신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관습 속에 체현돼 있다.  231


아랍 문명과 미국 문명의 충돌은 야만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 사이의 충돌이 아니라, 익명으로 행해지는 잔혹한 고문과 미디어의 구경거리가 된 고문, 피해자의 육체가 고문의 가해자인 '무고한 미국인' 의 미소 짓는 얼굴을 돋보이게 하는 무명의 재경 역할을 고문 사이의 충돌이다.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빌자면, 문명의 충돌은 모두 그 밑에 잠재한 야만끼리의 충돌인 듯하다.  244






6 신적 폭력


알프레드 히치콕의 영화 <싸이코>에서 탐정 아보가스트가 계단에서 살해당하는 장면은 '신의 시점에서 바라본' 히치콕적인 장면이다. 우리는 1층 복도와 계단에서 이루어지는 전체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본다. 한 인물이 괴성을 지르며 화면 속으로 들어와 아보가스트를 난도질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그 인물의 주관적 시점으로 이동한다. 계단으로 추락하는 아보가스트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잡힌다. 마치 객관적 장면에서 주관적 장면으로의 이동을 통해서, 신 자신이 중립적 위치를 버리고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난폭하게 개입하면서 지상에 '강림'한 것처럼 보인다. '신적 폭력'은 이와 같은 난폭한 개입처럼 법을 넘어선 정의를 가리키는 것이다.  245


진정한 원한과 처벌(복수), 용서, 그리고 망각이라는 3항조와 같은, 범죄행위에 대한 일반적 대응방식은 어떻게 연관되는가? 우리가 여기서 첫째로 해야 할 일은 정당한 복수(처벌)라는 유대교적 원칙('눈에는 눈' 이라는 원칙)이 "우리는 당신의 범죄는 용서하겠지만 그것을 잊지는 않겠다"라는 일반적인 정식보다 낫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용서하면서 동시에 망각하는 유일한 방법은 복수 혹은 정당한 처벌을 하는 것이다. 범죄에 대한 합당한 처벌이 이루어진 후 나는 앞으로 나갈 수 있으며 과거의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범죄를 합당하게 처벌하는 일에는 뭔가 해방적인 요소가 있다. 나는 사회에 빚을 갚고 다시 자유로워지며, 과거는 더 이상 나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는 '자비'의 논리는 반대로 훨씬 더 억압적이다. (용서받은 범죄자로서) 나는 영원히 내가 저지른 범죄이ㅔ 시달림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 범죄는 '무효화' 되지 않았고, 소급해서 취소되지 않았으며, 지워지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것이 헤겔이 말하는 처벌의 의미인데 말이다.  262


벤야민의 <폭력비판에 대하여> 마지막 몇 문단.

'모든 영역에서 신화에 대해 신이 맞서듯이 신화적 폭력에도 신적인 폭력이 맞선다. 그리고 신적인 폭력은 모든 면에서 신화적 폭력과 반대다. 신화적 폭력이 법 제정적이라면 신적 폭력은 법 파괴적이고, 신화적 폭력이 경계를 설정한다면 신적 폭력은 경계를 파괴하며, 신화적 폭력이 죄를 부과하면서 동시에 속죄를 시킨다면 신적 폭력은 죄를 면해주고, 신화적 폭력이 위협하는 폭력이라면 신적 폭력은 피를 흘리지 않은 채 죽음을 가져온다. (..) 왜냐하면 피는 단순한 생명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법적 폭력이 소멸된다는 것은 자연적 생명체에 불과한 자들이 지은 죄에서 생겨난 것이다. 결백하고 불행한 생명체였던 이 자연적 생명체는 단지 죄지은 생명체로서 '속죄'해야 하는 징벌을 받은 존재다. 그리고 이 때 죄를 사하여 준다는 것이 죄 자체를 사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사면해준다는 점은 의심할 바 없다. 왜냐하면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법의 지배는 단순한 생명체에서 그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화적 폭력은 폭력 그 자체를 위해 단순한 생명체에 가해지는 유혈의 힘이고, 신적 폭력은 살아있는 자들을 위해 모든 생명체에 가해지는 순수한 힘이다. 신화적 폭력은 희생을 요구하며, 신적 폭력은 그 희생을 받아들인다.

(..) "죽여도 됩니까?" 란 물음에 대한 답변은 십계명의 "너희는 살인하지 말지어다" 말고는 달리 없다. 이 계명은 마치 신이 어떤 행위를 '가로막는' 것처럼 행위 앞에 버티고 서 있다. 그러나 그 계명은 그것을 따르도록 강제하는 처벌에 대한 공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이미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 명령을 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미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서는 그 계명을 바탕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미 이루어진 행위에 대한 신적 판단이나 그 판단의 근거가 됐던 것 모두는 예단할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폭력적으로 살해하는 행위는 그 계명을 근거로 정죄하는 사람들은 잘못이다. 그 계명은 판단의 척도로서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인격체 또는 공동체에 대해 행도으이 지침으로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행동하는 인격체나 공동체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그 계명과 대결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는 그 계명을 도외시한 책임을 스스로 떠안아야 한다.'  271-273


신적 폭력에 의해 제거되는 자들은 명백하게 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희생자(제물)가 아니다.

그들은 희생 없이 죽임을 당하는 셈이다.  273


벤야민은 <폭력비판을 위하여>의 결론부에서 "혁명적 폭력은 인간이 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순수한 폭력"이라고 주장한다.  274


어떤 폭력이 신적 폭력인지 식별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은 없다.  275


신적 폭력은 신(대타자) 자신의 무능을 보여주는 징표다.  276





7 에필로그


우리의 탐구는 한 바퀴를 돌았다. 폭력에 반대한다는 거짓 주장을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해방적 폭력을 승인하는 데 이르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주관적 폭력과 싸운다고 하면서 구조적 폭ㅍ력에 가담하는 자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283


이 책의 교훈은 무엇인가?

세 가지다.

첫째, 폭력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쁜 것'으로 매도하는 것은 하나의 탁월한 이데올로기적 조작이자, 사회적 폭력이 가진 근본형식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일종의 신비화라는 점이다. 다른 형식의 폭력적 학대에 대해서는 그토록 예민한 서양 사회가 우리로 하여금 가장 잔혹한 형식의 폭력에 대해선 무감각하게 만드는 다양한 메커니즘을 동시에 동원해 올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은 대단히 징후적인 일이다. 매우 역설적이게도 그런 일은 종종 희생자들에 대한 인도주의적 동정의 형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두 번째 교훈, 진정으로 폭력적이 되는 것, 사회적 삶의 기본  변수를 폭력적으로 뒤흔드는 행위를 감행하는 것은 어렵다.  284


끝으로(세 번째), 주체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 사이의 복잡한 관계가 말해주는 교훈은 폭력이 어떤 행위의 직접적인 속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폭력은 행위와 그 행위가 이루어진 맥락 사이에, 그리고 어떤 행동이 활동적인 것과 비활동적인 것 사이에도 퍼져 있다. 동일한 행위일지라도 그 맥락에 따라 폭력으로 간주될 수도 있고 비폭력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때로는 공손한 미소도 야수적인 감정의 폭발보다 더 폭력적일 수 있다.  293


오늘날 진짜 위협적인 것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유사 능동성이다. 곧 '행동하라'는 요구, '참여하라'는 요구, 현재 현재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걸 감추라는 요구다. 사람들은 늘 개입하면서, '뭔가를 한다'. 학자들은 학자들대로 무의미한 논쟁에 참여한다. 진정 어려운 일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이고 철회하는 것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설사 그것이 '비판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침묵 보다는 참여와 대화를 더 좋아한다. 우리를 대화에 끌어 들여서 우리가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길한 수동성을 깨뜨려버리기 위해서다. 그런 면에서 유권자들의 기권은 진정한 정치적 행위인 셈이다. 바로 그 행위로 말미암아 우리가 오늘날 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공허함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폭력이란 말을 기본적 사회관계를 발본적으로 뒤집어버리는 것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면, 몰지각하고 정신나간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수백 만 명을 학살한 역사상의 '괴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이 괴물들이 충분히 폭력적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폭력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다고 지젝이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와 관련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부추기고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지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우리가 항상 선거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이콧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급진적인 행동을 조직해야 할 상황도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안흔 것이 가장 좋을 때도 있어서, 이는 실용적으로 접근돼야 한다. 모든 것은 상황에 달려있는 것이다."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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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러시아 문학으로의 초대

러시아. 딱' 세계의 6분의 1'입니다. 연방이 해체된 지금의 러시아만 하더라도 세계의 8분의 1 정도입니다.  12

러시아의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우리보다 상당히 짧지요. .. 러시아는 천 년 조금 넘습니다.  13

최초의 국가를 키예프 루시라고 합니다. '루시'가 '러시아'의 어원입니다. 자기들을 지칭할 때 "우리는 루시인이다"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루시가 나중에 모스크바 시대에 '러시아'로 바뀝니다. ..
그들에 따르면, 루시는 러시아에서 이민족, 즉 이질적인 존재를 뺀 것입니다.
그 다음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 더 정확하게는 1240년에서 1480년까지가 몽골 지배기입니다. 타타르 러시아라고 불리는 시기입니다.  14

몽골의 대제국은 칭기스칸 이후 사한국으로 나뉘어 분할 통치되죠. 러시아는 킵차크한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됩니다. 그러다 15세기 후반 몽골 세력이 약화될 무렵 모스크바 공국 시대가 열립니다... 모스크바 공국의 대공은 러시아를 지배하지만 몽골의 칸에게 충성하며, 매년 공물을 보냈어요. 흔히 러시아의 강력한 전제주의 체제를 몽골 지배의 가장 큰 정치적 유산이라고 합니다.  15

공동체에서는 국가가 생기지 않습니다. 공동체는 평등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사실 러시아는 무척 강한 공동체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농민 공동체인데, 러시아어로 '미르'라고 합니다. 미르는 뜻이 조금 복합적입니다. '세계'라는 뜻도 있고, '평화'라는 뜻도 있습니다.
이 미르가 농민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미르는 결속력이 상당히 강해요.
러시아에 왜 이렇게 강한 공동체 정신이 남아 있을까요? 그들의 심성이 좋아서가 아니라 땅이 척박해서 그렇습니다. 땅이 척박해서 혼자서는 도저히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품앗이를 해야 합니다... 개인주의는 러시아 전통에서 볼 때 상당히 낯선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이라든가 사생활 개념이 좀 약합니다. 서구식 문화와는 차이가 있는 거죠. ..
러시아 사람들은 세계에서 인내심이 가장 강한 민족으로도 꼽힙니다. 또 러시아는 몹시 폭력적인 군대를 가지고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이렇게 폭력적인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것도 러시아 사람들이 잘 참기 때문입니다. .. 이민 족의 오랜 지배 아래에서 또는 위임 권력 아래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갖게 된 인내심입니다.  16-17

타타르 세력이 약화되지 러시아는 그들을 쫓아내고 모스크바 공국 시대를 엽니다. 그러면서 영토를 끊임없이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러시아가 처음부터 방대한 영토를 차지한 게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지속적으로 영토를 확장한 겁니다.
모스크바 공국 시대는 '제정러시아 시대'라고 하는데, 보통 '표트르 러시아'라고도 합니다. 표트르 대제가 세운 러시아라는 말입니다. 영어로는 '피터 더 그레이트(Peter the Great)'라고 부릅니다. 표트르 대제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근대 러시아를 만듭니다. 러시아사 시대 구분은 단순한데 18세기 이후를 모던(modern) 러시아, 즉 근대 러시아라고 하고 그 이전을 올드(old) 러시아, 즉 고대 러시아라고 합니다. 러시아는 고대와 중세를 따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19

러시아사를 크게 보면 '주인'이라고 할 만한 군주가 둘 있습니다. 한 사람은 근대 러시아를 만든 표트르 대제이고, 또 한 사람은 소비에트 러시아를 건설한 스탈린입니다. 거기에 한 명 더 꼽자면 이반 뇌제가 있습니다. .. 이반 뇌제, 표트르 대제, 스탈린이 러시아사의 '주인'입니다. 러시아를 만든 사람들입니다.
이반 뇌제는 이른바 전제군주의 절대 권력을 확립합니다. 피바람이 불었죠. .. 귀족들을 대거 숙청하고 자기 친위대를 만듭니다. 소비에트 시대의 비밀경찰인 KGB 같은 것의 전신이라고 할 만합니다. 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조금이라도 반란의 기미가 있으면 바로 숙청하면서 강력한 일인 지배 체제를 만듭니다.  20-21

표트르 대제. 최초로 해군을 창설하기도 합니다.
농경 국가로,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경제체제를 유지하던 러시아를 무역 국가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에는 항구가 없었어요. .. 표트르 대제에게는 특히 부동항, 즉 겨울에 얼지 않는 항구를 만드는 것이 숙원사업이었습니다. .. 마침내 스웨덴과 싸워 승리를 거둡니다. 이른바 북방전쟁에서 그렇게 승리하면서 어느 정도 교두보를 확보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서유럽 쪽으로 진출하기 위해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페테르부르크로 옮깁니다.
페테르부르크는 순수한 인공도시, 계획도시입니다.
18세기에는 유럽 전체에서 가장 세련된 도시, 새로운 도시였는데 지금은 가장 고풍적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을 정도입니다...모스크바가 목조도시라면 페테르부르크는 석조도시입니다.  21-22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보면 모스크바의 귀족들은 다 점잖고 품위가 있습니다. 반면 페테르부르크의 귀족들은 다 야비하고 음흉하게 그려집니다.
페테르부르크를 건설화는 과정에서 수천 명이 희생됐습니다. 큰 토목 공사였고 공사 과정이 험난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뼈 위에 세워진 도시' 혹은 '악마의 도시'라고 불렸습니다. .. 러시아 문학이나 문화사의 '페테르부르크 신화'입니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신화적 공간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 신화의 시작이 푸슈킨의 <청동 기마상>이고 그다음 이어진게 고골의 '페테르부르크 연작'입니다. 그런 작품들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죠. 이게 20세기에는 안드레이 벨리의 소설 <페테르부르크>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하나의 도시 공간 자체가 신화적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여러 작품에서 소재 이사의 의미를 갖게 된 경우입니다.   23-24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가 이른바 제정러시아입니다. 1917년 2월에 2월 혁명이 일어나고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자리에서 물러납니다. 그게 제정러시아의 끝입니다.  24

우리가 35년간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다면 러시아는 240년간 몽골 지배를 경험했거든요. 그런 역사적 경험을 공유한 점에서 비슷하고, 정서적으로도 비슷한 점이 있어요. 그래서 한국 독자들이 가장 접하기 쉬운, 일체감을 느끼기 쉬운 문학이 러시아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25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는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면서 끝나게 되죠. 그 이후를 '포스트 소비에트'라고 부릅니다. .. 키예프부터 따지면 여섯 개 시대, 즉 키예프 러시아, 타타르 러시아, 모스크바 러시아, 표트르 러시아(제정러시아), 소비에트 러시아, 포스트 소비에트 러시아(러시아 연방) 이렇게 시대 구분이 됩니다.  26-27

러시아 연방을 상징하는 문장은 '쌍수 독수리'인데 제정러시아 때인 15세기에 들어왔다고 하죠. 러시아는 모스크바가 로마와 비잔티움을 뒤이은 제3의 로마라는, 이를테면 기독교 선민사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잔티움의 문장을 갖다 쓰기도 했는데 쌍두 독수리가 그런 기원을 갖고 있죠.  27

톨스토이도 러시어의 거장이지만 톨스토이 문학이 상대적으로 유럽 공통 문학, 보편 문학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면,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은 러시아에서만 나올 수 있어요. 고골도 마찬가집니다.
러시아 작가의 계보는 푸슈킨에서 시작합니다. .. 그 다음 고골이고, 한 사람 더 들면 레르몬토프가 있습니다. 이 3대 작가가 러시어 근대 문학의 퇘를 만듭니다. 이들이 활동했던 시기는 1820년에서 1840년 정도까지입니다.
한 다리 건너뛰어서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 리얼리즘 누학의 3대 작가가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이들 작가가 주로 활동했던 시기가 1856년에서 1880년까지입니다.
마지막이 체호프입니다. 체호프는 19세기를 마감하는 작가입니다. 별명도 '황혼의 작가'입니다. '가을의 작가'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체호프의 몇 년 후배가 막심 고리키입니다. 20세기 러시아 문학을 시작하는 작가입니다. 고리키부터 20세기 작가로 치면 됩니다.  27-28

러시아 문학은 달리 말하면 인텔리겐치아의 문학이었습니다. 러시아의 지식인 계급을 '인텔리겐치아'라고 합니다. ..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는 지식인이되 비판적 지식인을 말합니다.
책을 읽을 줄 알면 인텔리겐치아 자격으로 충분했습니다. 90% 이상이 문맹이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층이 그렇게 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텔리겐치아는 출신에 따라 귀족과 잡계급이 있었습니다. 잡급은 귀족도 아니고 농민도 아닌 부류인데, 대개는 성직자나 상인이나 의사 같은 직종의 사람들이 잡계급을 구성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가장 대표적인 잡계급 출신의 작가입니다. 인텔리겐치아가 사회적 계급 또는 세력으로 대두되는 시기가 1830~1840년대입니다.  28-29

표트르 대제 때까지도 러시아에는 '문명'이 없었어요. 표트르의 사절단이 유럽을 일주하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다 쑥대밭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밤마다 먹고 마시며 광란의 밤을 보낸 거죠. 황실이 그 정도였어요. 게다가 몽골의 침입과 지배 때문에 러시아는 르네상스를 경험하지 못했어요.  30

인텔리겐치아는 183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서구파와 슬라브파로 나뉘게 됩니다. 둘 다 기본적으로는 러시아를 사랑합니다.
서구파는 러시아를 '아이'로 봅니다. 잘 돌보고 훈육해야 하는 아이로 보는 거죠. 이때 서구파에게 중요한 건 미래입니다. 우리가 러시아를 미래에 어떤 나라로 만들어야 할 것인가? 유럽을 모델로 하자는 거죠.
반면 슬라브파는 러시아를 어머니로 봅니다. 중요한 건 러시아의 과거이고 전통입니다. 유럽 문명은 오염되고 타락했지만 러시아는 아직 순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런 독자적 가치를 보존해나가야 한다는 게 슬라브파의 주장입니다.
고골은 나중에 대단한 보수주의자가 되는데, 슬라브파를 지지합니다. 반면 투르게네프는 대표적인 서구파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골수 슬라브파입니다.  31-32

러시아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푸슈킨의 시를 읽습니다. 거의 이유식 같아요. 러시아는 중등 교육 과정이 11년인데 이 기간에 배웁니다. ..
러시아도 독서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어요. 그래서 하는것이 고전 문학 작품을 영화화하는 겁니다.  32

 


2강 러시아 영혼의 정수 -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읽기

푸슈킨은 1799년에 태어났습니다.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의 관료제 개혁 이후에 세습귀족의 지위가 약화되는데, 푸슈킨 가문이 거기에 해당합니다.
명색이 귀족이었지만, 사치스러운 생활을 감당할 돈은 점점 줄어가던 집안이었어요.
푸슈킨은 러시아 최초의 '전업 작가'였습니다.  39-40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푸슈킨은 상대적으로 부모님의 무관심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혜택이라고 한다면 아버지 서재의 책들을 마음껏 탐독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장서가 3,000권쯤 됐다고 해요.  40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을 계기. 러시아에서 '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이죠. 러시아사에서 보면 1914년 히틀러와의 전쟁과 함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쟁입니다. 이 두 차례의 조국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이 러시아 사람들의 자부심입니다.  44

당시 귀족 청년들 사이에 '돈 후안 리스트'가 유행했는데, 자기가 유혹한 여자들의 목록을 만들어놓은 거예요. 믿거나 말거나 푸슈킨은 결혼 전에 이 목록에 있는 여자가 100명이 넘었습니다.  49


<예브게니 오네긴>
내용은 한마디로 두 주인공 오네긴과 타치야나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입니다.  52

고전주의는 개인의 개성과 자유보다는 규범이나 조화, 모범 등을 강조했습니다. ..
낭만주의는 자유와 개성을 예찬하고 규범보다는 파격을 좋아합니다. 형식을 그리 존중하지 않아요. 규칙에 대한 위반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문학적 유희가 가능하려면 규칙의 준수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만약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 위반이 의미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54-55

 


3강 절대 고독과 자의식의 탄생 -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읽기

레르몬토프는 십대 때부터 시 습작을 합니다. 27세에 결투로 죽은 요절 시인이라 천재라는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푸슈킨은 천재적인 시적 재능을 갖고 있었던 반면 레르몬토프는 노력파였어요. 13세경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서 이십대 중반에 제대로 된 시를 쓰게 되니 10년간 습작한 셈입니다.  75

레르몬토프의 작품에는 내면의 자의식을 가진 주인공이 나타난다는 거죠. 러시아 문학사에서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영웅>의 주인공 페초린은 오늘날의 독자들도 충분히 동일시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그만큼 현대적입니다. 현대인이 갖고 있는 내면이나 자의식을 엿볼 수 있어서 어떤 연속성 같은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근대적 인간의 자의식을 보여주는 셈인데 이걸 계승하는 작가가 바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입니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내면 묘사는 거의 '창자'까지 드러내놓고 묘사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죠. 가장 수치스럽고 치욕스러운 부분까지 다 까발려놓습니다. 그게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현대성인데 그런 현대성의 기원을 바로 레르몬토프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85

<예브니 오네긴>이 '오네긴 연구'라면 <우리 시대의 영웅>은 '페초린 연구' 입니다.  88

러시아 근대 소설의 토대를 마련한 작품으로 흔히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 레르몬토프의 <우리 시대의 영웅> 그리고 고골의 <죽은 혼>, 이 세 작품을 꼽습니다. 그런데 세 작품이 모두 특이합니다. <예브게니 오네긴>이 운문 소설이고, <우리 시대의 영웅>이 '연작소설'이라면, <죽은 혼>은 부제가 '서사시'라고 돼 있어요. 산문소설이지만 작가 고골이 그렇게 주베를 붙입니다. 1830~1840년대에 쓰인 이 작품들이 러시아 근대 문학의 토대를 마련하게 되고, 그 이후에 본격적인 리얼리즘 산문소설들이 쓰이게 됩니다.  92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걸작을 써낼 수 있는 토양을 푸슈킨, 레르몬토프, 고골이 마련한 것인데, 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모델을 만들기 위해 암중모색했던 작가들인지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쓴게 특징입니다. 동시대 작품인가 싶을 정도로 서로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고 생각합니다.  94

 

 

4강 웃음과 공포의 미스터리 - 고골의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읽기

고골의 풀네임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
실제로 '고골은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가' 따져들면 단순해 보이는 작품도 복잡하고 난해해집니다. 사실 작품뿐만 아니라 고골은 생애 자체가 미스터리입니다.  106

고골에게서 작가적 재능은 무엇보다도 유머나 풍자 쪽에 있었습니다.  110

고골은 전형적인 속물드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최고 작가입니다. 문제는 그런 재능과 그가 생각한 작가의 소명이 충돌하는 데 있었습니다.  111

1837년에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푸슈킨이 결투하다 죽은 거예요.
고골 생각에 러시아 문단에는 두 작가가 존재합니다. 푸슈킨과 고골, 푸슈킨과 자신이 러시아 문학을 이끌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10년 연상인 푸슈킨이 앞에서 끌고 가고 자기는 뒤에서 밀고 가고, 푸슈킨이 긍정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자기는 부정적인 군상을 묘사하고, 그런데 푸슈킨이 죽은 겁니다. 고골은 '이제는 나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명 의식이 더 강화됩니다.  116

그전까지 고골은 진보적이고 사회 비판적인 작가로 간주되었습니다. 이는 고골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당시 독자나 비평가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이 '진보적인 작가'가 <친구들과의 서신 교환선>에서는 노골적으로 러시아정교와 전제주의, 농노제를 옹호합니다. 이 세 가지는 제정 러시아를 지탱하는 세 지주입니다. 관제 이데올로기였어요. 차르의 전제적 지배 체제 아래서 지주들의 권한이 강화되면서 자유가 제약당하고 처지가 악화된 농노를 고골이 긍정한 겁니다.
1830~1840년대에 투르게네프를 비롯하여 많은 작가와 인텔리겐치아들이 농노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골은 농노제를 옹호하고 나선 겁니다. 완전히 따돌림당합니다. 고골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던 당대 최고의 비평가 벨린스키는 이에 고골을 신랄하게 비판한느 공개 서한을 발표합니다.
상심에 빠진 고골은 1848년에 팔레스타인 성지 순례까지 갔다 와서 다시 집필에 나서지만 진척이 안 됩니다. 마침내 오프티나수도원을 방문하는데 그곳 수도원장이 고골한테 충격적인 말을 합니다. "네가 지금까지 쓴 것은 모두 악마의 작품이다." 고골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광신적인 신앙 때문에 지옥에 대한 묵시록적인 두려움을 품고 있었는데, 그 공포를 더 부채질한 셈입니다. 그래서 1852년 <죽은 혼> 2부를 태워버리고 열흘 뒤 반미치광이가 되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17-118

고골에게는 양면이 공존합니다. 무척 유쾌한 풍자적인 세계, 유머러스한 세계와 어둡고 음울하고 무서운 세계가 공존하는 것이 고골 문학입니다. 그래서 고골은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미스터리한 작가입니다.  139

 

 

5강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출발 - 투르게네프의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읽기

투르게네프의 장편소설 <루딘>이 발표도니 1856년부터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출간된 1880년까지 25년 정도가 러시아에서 사실주의 문학이 꽃피운 시기입니다. 곧 투르게네프가 러시아 사실주의 장편소설의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죠. ..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는 1818년 러시아 오룔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납니다. 어머니 쪽이 부유한 대귀족이었고 아버지 쪽은 상대적으로 몰락한 가문이었습니다. 이렇듯 가세가 차이나는 경우는 대개 정략결혼이죠. 투르게네프의 아버지가 기울어진 가세를 일으켜세우기 위해 부유한 노처녀와 결혼한 겁니다. 자전적 소설 <첫사랑>의 배경이죠.
아버지 세르게이 니콜라예비치 투르게네프는 장교로서 보로디노 전투에서 수훈을 세워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려한 용모와 여성 편력으로 유명했답니다. 23세의 나이에 부유한 여지주 바르바라 페트로브나와 결혼하게 됩니다. 바르바라는 농노가 5,000명이었다니 상당한 대지주였죠. 아버지 투르게네프 집안은 농노가 100여 명이었으니 꽤 차이가 납니다.  142-143

<첫사랑>의 아버지처럼 투르게네프의 아버지 또한 늘 바깥으로 도는 바람에 부부간에 다툼이 잦았습니다. 그때마다 부모 모두 자식들에게 분풀이를 하곤 했죠. 투르게네프는 여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어머니를 닮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상당히 포악한 성격이어서 어린 투르게네프를 아무 이유 없이 때리기도 했고, 특히 농노들을 많이 학대해서 어린 투르게네프가 마음의 상처를 입습니다. 러시아 농노제를 폐지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이른바 '한니발의 맹세'를 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죠. 실제로 <사냥꾼의 수기>라는 작품집으로 농노제 폐지에 크게 기여합니다.  143

어쨌든 어린 시절 투르게네프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은 단연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나서 크게 영향 받을 기회가 없었던 반면 어머니로부터는 압도적 영향을 받았죠. 어머니 말고 투르게네프의 삶과 문학에 영향을 준 사람이 두 명 더 있는데, 오페라 여가수 폴린 비아르도와 당대의 비평가 벨린스키입니다.  144

1843년, 그러니까 투르게네프가 만 25세 되던 해 모스크바에 공연을 온 프랑스의 오페라 가수 비아르도를 만나게 됩니다. 투르게네프보다 나이는 어렸지만 유부녀였습니다. 당시 오페라 여가수들의 경우 자신의 후원자와 일찍 결혼을 하곤 했죠. 남편 이름이 비아르도입니다. 이 유부녀 오페라 가수에게 누르게네프는 그만 첫눈에 반합니다. ..
투르게네프는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일련의 장편소설을 계속 써나가면서도 사생활에서는 비아르도에게 일생을 바치게 됩니다. 남편과는 친구로 지내면서요.
벨리스키와 교우가 시작된 것도 비슷한 시기였습니다. 모스크바대학 철학부에 입학했다가 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옮겨 그곳에서 고골의 강의도 듣고 셰익스피어 작품 중 일부를 러시아어로 옮기기도 하고, 푸슈킨과 교류를 나누기도 하던 투르게네프가 베를린 유학을 다녀온 뒤 서사시 [파라샤]를 발표할 무렵입니다.
벨린스키는 19세가 전반기 러시아 최고의 비평가입니다. 러시아 문학이 낭만적 서정시에서 리얼리즘 소설의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러시아 문학의 민중성을 강조한 비평가죠. 벨린스키와 교우하게 되면서 투르게네프는 비로소 사회적 문제의식에 눈뜨게 됩니다. 여성적인 데다 내향적이었던 그가 벨린스키를 통해서 사회문제로 눈을 돌리고 작가로서 소명의을 갖게 된 것입니다.  145

투르게네프에게 끼친 벨린스키의 영향은 나중에 투르게네프가 자신의 대표작인 <아버지와 아들>을 벨린스키에게 헌정한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벨린스키는 1848년에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와 아들>은 1862년에 발표됩니다. 투르게네프는 대표작을 벨린스키에게 바쳤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는 벨린스키 옆에 묻힙니다.  147

흥미로운 것은 투르게네프의 생몰 연대와 마르크스의 생몰 연대가 같다는 사실입니다. 둘 다 1818년에 태어나서 1883ㄴ녀에 사망하죠.  147

한 번도 관찰자나 화자가 자기 주장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 못된 지주를 보라는 식의 호소도 없고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거나 주장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게 투르게네프 스타일인데 그저 간결하게 보여주기만 할 뿐입니다. 감정의 찌꺼기를 드러내지 않아요.
그런가 하면 투르게네프는 자전적 소설도 썼습니다. <파우스트>, <아샤>, <첫사랑> 등이죠. 1856년부터 1860년 사이에 쓰인 작품들입니다. 이 작품들은 비록 러서아 사회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는 않았지만 투르게네프를 이해하는 데 요김한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8

<루딘> <귀족의 둥지> <전야> <첫사랑> <아버지와 아들> <연기> <처녀지> 이 장편소설 여섯 편으로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에 자신의 이름을 깊이 새기는데, 이른바 사회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 여섯 편은 1856년부터 1877년까지 20년간 당대 러시아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그러니까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가 어땠는지를 알려면 이 소설들을 보면 됩니다.  149

투르게네프는 가장 서구적 교양을 갖춘 작가입니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실물 크기로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됩니다. '표면의 작가'라고도 불립니다. ..
그런데 깊이 들어가는 않아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가 인물의 추악한 면까지 들추어내는 것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151

작가로서 투르게네프의 대표작은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그의 작품 중 당대의 독자나 문단으로부터 가장 격찬을 받은 작품은 <사냥꾼의 수기>지만, 가장 논란이 됐던 작품은 단연 <아버지와 아들>입니다. 1862년작인데 바자로프라는 니힐리스트를 다루어 화제가 된 소설이기도 합니다. 투르게네프가 니힐리즘이나 니힐리스트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지만, 이 말을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당사자입니다. 그러니까 니힐리즘의 철학자 니체와 함께 니힐리즘이라는 말에 상당한 지분을 갖는 두 사람 중 한 명인 셈이죠.  152

러시아 문학에서 말은 대개 여성을 상징하죠.  157

1840년대를 주름작았던 철학자가 바로 헤겔입니다. 러시아 문학에서는 헤겔이나 셸링 같은 독일 철학자들이 상당히 큰 영향을 끼치는데, 평론가 벨린스키가 대표적 헤겔주의자였어요. 벨린스키가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리얼리즘이고 나머지 하나는 민중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낭만주의의 대표적 장르인 서정시의 시대는 끝났고, 리얼리즘 산문소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거죠. 그리고 벨린스키는 누구를 위한 문학인가, 즉 귀족계급(지배계급)을 위한 문학인가, 아니면 억압받는 민중을 위한 문학인가라느 물음을 제기하면서 민중을 위한 문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벨린스키의 이 두 가지 명제를 자기의 문학에 전적으로 수용한 작가가 바로 투르게네프입니다. 리얼리즘에 입각한 산문소설을 썼고, 민중성을 구현하고자 합니다. 물론 민중이 주인공이 돼야 한다는 건 아니었지만 러시아 사회의 전체적인 변혁을 위해서 중간계급에 해당하는 지식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그 전망을 모색해보려고 했어요.  168-169

파벨이 "그런데 도대체 바자로프는 뭐 하는 사람이냐?" 하고 바자로프에 대해 묻자 아르카디가 "그는 니힐리스트예요" 하고 대답합니다. "뭐라고?" 그는 니힐리스트입니다." 아르카디가 재차 얘기합니다. 그러자 니콜라이가 "니힐리스트라고? 내가 알기로 그건 라틴어 '니힐(nihil)', 즉 '무(無)'에서 나온 말인데, 그러면 그 단어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 아니냐?" 하고 묻자 이번엔 파벨이 "아무것도 존경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해"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르키다가 "모든 것을 비판적 관점에서 보는 사람입니다"하고 말하죠. 그러니까 세 사람의 입을 통해 니힐리스트에 대한 세 가지 정의가 나온 셈입니다.
니힐리스트라는 말이 당시에는 아주 생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한 뒤로 유행어가 되었죠. 1860년대 러시아의 인텔리겐치아, 그러니까 젊은 지식인들은 스스로 니힐리스트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투르게네프가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이들을 니힐리스트라고 부른셈이죠. 그런데 이 말이 보통 허무주의자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좀 어폐가 있습니다. 원래 니힐리스트는 상당히 과격한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위를 부정하죠. 그러니까 여기서의 부정은 파괴적인 부정을 뜻합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의미와 허무주의는 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19세기 후반 니힐리스트라는 말은 테러리스트와 거의 동의어 였습니다.  170

한국인의 사고방식 가장 밑바탕에 흐르는 게 바로 허무주의거든요. '인생 뭐 있어'주의랄까요. 먹는 게 남는 거야, 다 먹자고 하는 거지 하는 식이죠. 정치적으로 진보니 보수니 하지만 대개는 다 껍데기라고 생각해요. 그냥 자기 지방 사람이 나오면 찍잖아요. 그기ㅔ 허무주의예요. 정치적 허무주의죠. 그런데 서구 사람들이게는 그런 세계관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다위니즘이 던진 충격이죠. 그냥 생명의 연속일 뿐이라는 것. 투르게네프에게서도 그런 세계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뭔가 세상을 바꿔보려는 모든 인간적인 노력, 의식적이고 이성적인 노력이 있지만 결국엔 다 패배하고 말잖아요. 한 개체로서의 삶은 유한한 운명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집니다. 그게 투르게네프의 비관적 염세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투르게네프가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자 했던 것은 그와 같은 근본적 허무주의 앞에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것, 그 정도가 최대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183

 

 

6강 러시아적 수난과 구원의 변증법 -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읽기

도스토예프스키는 워낙 유명한 작가이고 톨스토이와 함께 러시아 문학의 간판스타죠.
러시아 문학은 두 작가에 의해서 양분될 수 있습니다. 더 확장하면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의 세계를 두 작가가 양분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상식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은 비극, 톨스토이 소설은 서사시에 견주기도 합니다. ..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시간이 대단히 압축돼 있다는 것입니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방대한 분량임에도 주요 사건은 3일 동안 벌어진 것입니다. <죄와 벌<은 일주일 정도고요.  186

루카치의 유명한 소설 이론서인 <소설의 이론>이 사실은 도스토예프스키론의 서론 격으로 쓰인 것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럽의 근대 소설사 전체에 대한 개관이 필요하다는 판단인 거죠. 그래서 서론을 썼는데, 그 이후에 본격적인 도스토예프스키 이론은 쓰지 못했어요.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보고자 했는데,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루카치는 현실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 현실에서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굳이 문학을 통해 우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책의 마지막 대목에서 루카치는 "도스토예프스키는 단 한편의 소설도 쓰지 않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다른 세계에 속한다"고 썼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려면 먼저 루카치가 소설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는 소설에서 '본질은 시간과 함께 주어진다'고 규정합니다. 세계의 본질을 시간 속에서 파악한다는 얘기입니다. 서사시는 무 시간적 세계인 것과 달리 소설은 철저하게 시간적 세계입니다. 하지만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서는 시간이 별 의미가 없어요. 톨스토이는 서사시적 스케일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루카치가 말한 근대 소설의 정식에 잘 맞습니다. <전쟁과 평화>에서도 주인공 나타샤가 소녀에서 아이 엄마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다루면서 그 안에서 인물들이 변화하고 성숙해가는 과정을 보녀여주니까요. 그런데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에서는 시간이 변수가 되지 않습니다. '다른 세계'라고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런가 하면 나보코프는 상반된 평가를 내리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이류나 삼류 작가로 깎아내렸습니다. 어설프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설교적 문학을 그는 혐오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 부인하면서도 그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188

도스토예프스키는 출신으로 보면 잡계급입니다. 아버지가 빈민 구제 병원의 의사였어요.
도스토예프스킹게 돈은 평생의 화두였죠. 작춤에서도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21년에 태어났는데, 성장기에 특기할 만한 것은 10대 후반, 그러니까 1839년에 아버지가 농노들한테 맞아 살해된 일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지병인 간질인데, 언제 처음 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191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의 인물들은 감정 기복이 아주 심한데, 알고 보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삶 자체가 그랬습니다. 그의 생애를 고려하면 그런 인물들이 크게 이상하거나 작위적으로 비치지 않습니다. 자기가 겪은 감정을 그대로 묘사한 거니까요.  195

1867년, 도스토예프스키가 안나와 결혼했을 때 장장 4년 동안 신혼여행을 떠납니다. 결혼하고 나서 안나가 생각해보니 이렇게 돈에 쪼들려서는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은 거예요. 바로 짐을 싸서는 남편과 함께 유럽으로 떠납니다. 빚쟁이들 때무에 러시아로 돌아올 수도 없었죠.  202

<죄와 벌>은 1866년 작품입니다.  205

서구에서는 철학을 자기주장을 논리적으로 입증하느 것이라고 규정합니다. 주장하는 내요은 시시해도 상관없습니다. 중세 때 바늘 끝에 천사가 몇이나 올라앉을까, 이런 걸로 논쟁하기도 했다잖아요. 지금 생각하면 실없는 논쟁이지만 당시에는 진지했어요. 현대 영미권의 분석철학에서도 주제 자체는 사소해보이더라도 어려운 개념들을 동원해서 아주 정밀하게 논증해나갑니다. 왜냐하면 이 과정이 철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시시한 문제를 다루면 철학이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게 철학입니다. 방법은 반드시 논증이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룰 수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설가는 언어로, 화가는 그림으로, 작곡가는 음악으로, 영화감독은 영상으로 철학을 할 수 가 있어요. 인간에게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게 바로 철학입니다. 얼마나 논리적으로 엄격하게 입증하느냐는 오히려 부차적입니다. 철학의 개념이나 이미지가 다른 것이죠.  207

러시아 소설에서 가끔 미국 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데, 보통 다 자살합니다.  212

'카라마조프'는 러시아어로 '악에 문드러진'이라는 듯입니다. 그러니 악에 문드러진 집안 이야기입니다.  217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면 전체를 n분의 1로 나눠 가지는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그건 서구식입니다. 우리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책임이 크다는 게 도스토예프스키식이고 러시아식입니다.  230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서는 먼저 러시아인이 되어야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에겐 지름길이란 없었던 것이죠.  231

 

 

7장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읽기

톨스토이는 러시아를 넘어서 세계적인 대문호로 평가받는 거장이기도 합니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통스토이는 1828년 야스나야 폴라냐의 톨스토이 백작 가문의 4남으로 태어난 걸로 돼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유년과 관련해서 중요한 대목은 일찍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겁니다. 어머니는 183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가가 두 살 때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는 세 살 때고, 아버지는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납니다. 말하자면 고아인 셈인데 이 때문에 성장기 대부분을 친척 집을 전전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어머니의 부재가 톨스토이에게 끼친 영향은 매우 커서 단지 불우한 어린 시절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자신의 여성상과 그의 문학에 나타나는 여성상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됩니다. 
1844년 카잔대학교 동양어학부에 들어가는데 이곳에서 톨스토이는 여러 언어를 배우게 됩니다. 거의 10개 국어를 익혔다는군요.  234-235

1852년 잡지 <동시대인>에 [유년시절]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합니다. 이 작품은 톨스토이의 데뷔작이기 때문에 중요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유년시절]에서 톨스토이는 자신이 작가로서 평생 다루게 될 두 가지 주제의 실마리를 보여주는데, 하난는 '죽음'이고, 하나는 '예술'입니다. 죽음은 주인공이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그려 보이죠. 그때의 낯섦, 공포, 슬픔 등을 그 나이의 시선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죽음 문제는 성 문제만큼이나 톨스토이를 평생 따라다니는 주제입니다. 예술 문제는 주인공이 시를 한 편 쓰는데, 운율을 맞추기 위해 자신의 솔직한 감정과는 거리가 먼 거짓된 표현을 집어넣게 됩니다. 그런데 외할머니를 비롯해 주변 사람들에게 친찬을 받죠. 거짓과 기만이 칭찬받는 예술작품을 만든다는 것, 나중에 톨스토이의 예술론으로 이어지는 테마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죽음과 예술 이 두 가지 주제가 데뷔작에 이미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36

젊은 시절엔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결혼도 늦게 하죠. 34세 때인 1862년, 18세의 소피야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합니다. 두 사람의 불화는 워낙 유명해서 관련 책도 많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특이한 것은 두 사람이 평새에 걸쳐 일기를 썼다는 사실입니다. 톨스토이는 이십대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60년 동안 일기를 썼습니다. 아내 소피야도 일기를 썼죠. 처음에는 상대방이 보라는 의미에서 쓰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오해가 해소되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후대 사람들이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자료를 남긴다는 차원에서 썼다고 합니다. ..
시비를 건 쪽은 톨스토이인데 자신이 청년 시절에 썼던 일기를 결혼하자마자 아내에게 읽으라고 보여줬답니다. 보통은 다 태워버리고 깔끔하게 정리하는데, 톨스토이는 아내에게 자신의 치부까지 다 보여줘야 과거 생활이 정화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톨스토이가 가장 싫어했던게 거짓과 기만이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행위라는 것이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는 것이라기보다 자신에게 요구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볼 때, 아무리 부부간이라 해도 지나친 셈이었죠. 현실은 보통 어느 정도의 기만과 가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요.  237-238

톨스토이는 특히 여성 심리의 대가입니다.
토스토예프스키는 여성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
열네 살에 처음 성경험을 갖는데 그때 느꼈던 것까지 빠짐없이 적어놓았어요. 소피야와 결혼하기 전에는 마을의 젊은 아낙과 육체적 관계에 빠지기도 했죠. 지주였던 톨스토이는 경제적으로 보상을 해주면서 뉴부녀인 그 아낙과 계속 관계를 한 것입니다. 매번 자기비판을 하면서도 그런 관계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결혼하게 된 계기도 빨리 그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죠. 그런데 소피야가 갓 결혼해서 남편이 보여주는 일기를 보니 집에서 일하는 여지안 악시냐의 이름이 자주 나오는 거예요. 몸집이 뚱뚱한 악시냐가 바로 톨스토이와 관계를 한 아낙이었으니 소피야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겠죠.
부부 모두 결혼생활이 끔찍했다고 술회했지만, 자녀를 모두 13명이나 낳았습니다. 1862년에 결혼해서 1863년 첫아이를 낳고, 열세 번째 이반을 1888년에 낳았어요. 1888년이면 부부 사이가 아주 안 좋았을때인데 그 이휴에도 부부관계는 계속된 걸로 돼 있습니다.  239

크게 다툰 톨스토이는 1910년 10월 28일 가출해서 11월 7일 객사합니다. ..
톨스토이는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일기에 '나는 구제불능이다'라고 써놓기도 했죠. 그래서 결혼도 일부러 늦게 한 면이 있습니다. 청년 시절 숱한 여성편력을 경험햇으면서도 쉽게 결혼하지 못한 것은 누구든 자기와 결혼하고자 하는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거나 존경해서가 아니라, 자기 지위나 재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외모를 보고는 자신을 사랑해줄 여자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이런 콤플렉스는 결혼하고 나서도 없어지지 않아 아내 소피야와도 문제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자기를 사랑해줄 거라고 믿지 못한 것이죠.  240-241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구상한 것은 1825년 12월의 데카브리스트 봉기가 계기가 되었습니다. 톨스토이의 조상 중에 봉기에 직접 참여한 인사도 있었기에 톨스토이는 데카브리스트의 역사에 대해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데카브리스트 봉기는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데카브리스트 봉기에 대해 쓰려면 1812년 전쟁에 대해 먼저 써야 했던 것이죠. 그래서 쓴 게 <전쟁과 평화>인데 워낙 방대하다 보니 정작 데카브리스트 봉기에 대해서는 쓰지 못했어요. <전쟁과 평화>는 1805년 부터 1820년경까지 15ㅕㄴ 정도를 다룬 대하소설입니다.
<전쟁과 평화>는 러시아라는 국가의 정체성, 통일성을 모색한 작품으로서 의의가 있습니다. 한 나라의 정체성은 자발적으로 형성되지 않습니다. 외부의 자극이나 충격이 있어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거죠. 사춘기가 보통 그렇잖아요. 자기 정체성이 형성되는 기간으로, 비로소 남과 자신을 분리하고 자아 개념이 확고해지죠. 남과 자신을 분리하려면 당연히 타인의 자극이 있어야 해요. 마찬가지로 한 나라의 정체성 또한 외부의 어떤 충격 때문에 생겨나는데, 러시아의 경우 1812년 전쟁이 그런 자극과 충격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나폴레옹 군대와의 전쟁이 바로 타자 역할을 한 셈이죠. 그런 타자에 대한 반응으로 러시아란 무엇인가에 관심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전쟁 이후 러시아의 역사가 처음 쓰입니다.  242-243

톨스토이는 타자보다 '나'의 세계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니힐리즘과 대결했다면, 톨스토이는 에고이즘과 싸웠다고 생각되는데, 톨스토이의 경우 데뷔작부터가 자전 3부작이죠. 자기 이야기였던 셈입니다. 이게 확장되면 러시아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통일성의 문제가 됩니다.  244

자신의 욕망과 도덕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또한 톨스토이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입니다.  244

<안나 카레니나>는 .. 완결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까지 레빈이 품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물음, 즉 죽음에 직면해서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삶의 신비나 의미에 대한 물음이 답변을 얻지 못하고 열린 채 남아 있게 되죠. 톨스토이는 이 작품 이후에 모든 예술로서의 소설을 부정하고 포기 하게 됩니다...
보통은 <안나 카레니나>출간을 기점으로, 즉 1878년을 기점으로 톨스토이를 전기와 후기로 나눕니다. 소설가 톨스토이와 그 이후의 사상가 또는 설교가로서 톨스토이를 대비하죠.  246

미학적 장치라는 것은 우회로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미가 세상을 구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소설가로 남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미를 우회로로 생각한 것이죠. 반면 후기 톨스토이는 미를 기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으로 가는 지금길이 있다고 여긴 겁니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소설이 짧아져요. 도덕적 교훈을 위해서는 방대한 소설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간단하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보 이방 이야기> 등을 쓰게 됩니다. 그냥 그렇게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면 되지 공연히 복잡하게 사유하거나 우회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겁니다.  247-248

<부활>은 1899년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교도들이 캐나다로 이주할 수 있도록 비용을 대주기 위해서 쓴 소설입니다.  248

신에 대한 인간의 관념은 세 가지가 가능합니다. 인간에 대해서 신이 밖에 있는 경우, 즉 절대적 타자로서의 신입니다. 유대교의 신을 보통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와 달리 기독교의 신은 좀 특이합니다.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신, 그리스도가 신이면서 동시에 인간이었죠. 그런가 하면 내안에 신성이 내재하는 것, 즉 범신론적 신이고 불교적 신입니다. 저마다 부처인 거죠. 자기 안에서 신을 발견하는 겁니다. 톨스토이의 신과은 세번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동양사상에 매우 친화적입니다.
후기 톨스토이는 비폭력 무저항주의 사상의원조라 할 수 있습니다. 간디나 헨리 소로보다 톨스토이가 ㅁ너저 이른바 톨스토이즘이라고 불리는 비폭력 무저항주의 사상을 내세우죠. 후기 톨스토이는 국가 폭력에 대해서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국가조차 부정합니다. 대단히 과격한 사상이죠. 이런 부분이 한국에서는 제대로 수용되지 않고 오직 종교적 사상가로만 읽옇는데, 일면적 수용이라고 해야겠습니다.  249

카레닌과의 결혼생활이 그녀에겐 '살이 있는 삶(불륜)'이 아니라 '죽어 있는 삶(결혼)'이었던 것이죠. 삶과 죽음 사이의 선택이라면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겟지만 브론스키와 만난 이후에 안나에게 가로놓인 건 '도덕적이지만 죽어 있는 삶(결혼)'과 '부도덕하지만 살아 있는 삶(불륜)' 사이의 양자택일입니다. 톨스토이는 두 사람이 처음 성관계를 갖는 것을 살인자와 시체의 관계에 비유함으로써 그 부도덕함을 드러내죠. 안나는 자기가 너무 큰 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며 울고 있고, 브론스키는 살인자가 된 기분으로 서 있어요.  264

안나의 경우처럼 욕망이 우리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면, 어떤 해결책이 있을까요? 톨스토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육체노동입니다.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육체노도이고 또 하나는 육식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톨스토이의 생각으로, 그래야 육체적 욕망을 제어할 수 있어요. 적게 먹고 노동으로 열량을 소비하면 그만큼 욕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 거죠.  266

톨스토이는 동양의 우화를 예로 드는데, 나그네가 맹수에 쫓겨 우물에 빠집니다. 빠지는 순간 나무뿌리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밑을 보니까 용이 입을 쫙 벌리고 있어요. 밖에서는 맹수가 으르렁거리고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도 죽고 매달려 있다가 힘이 빠져 떨어져도 죽는 겁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인데 관목 가지에 벌집이 있어서 꿀이 흘러내려요. 나그네는 그 꿀을 핥으며 잠시 도취돼 있습니다. 톨스토이는 이게 삶이라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진리는 죽음입니다. 필연적 죽음. 그런데 자기의 이런 현실을 곧 삶의 진리를 직시하는 게 아니라 망각하고 기만하는 겁니다. 그렇게 기만하게끔 만드는  꿀에 해당하는 게 가정과 예술입니다. 후기 톨스토이는 그래서 가정을 부정하고 예술도 부정합니다.  267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결론적으로 톨스토이가 안나의 죽음을 통해 육체적 열정과 제도적 결혼은 양립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는 점입니다. ..
결혼 제도가 열정을 막을 수 없다면 곧 결혼 제도 안에서는 이 열정 문제가 해소될 수 없다면 비극적인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게 톨스토이의 결론입니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 좋은 결혼과 나쁜 겨혼이 있다는 게 <안나 카레니나>의 서두였지만, 결말은 그런 가능성이ㅔ 대한 회의로 마무리됩니다.  268-269

 

 

8강 코믹과 우수의 작가 - 체호프의 <갈매기>읽기

안톤 체호프는 세계적인 단편 작가이면서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로 평가받는 극작가이기도 합니다. 러시아 문학사에서는 푸슈킨에서 시작한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마감하는 작가이기도 하죠.  272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카간로그라는 지방 항구도시에서 태어납니다.
체호프 가계도 농노였다가 장사로 성공하게 되죠. 하지만 철로가 개통되면서 아버지가 운영하던 잡화상이 장사가 안 되기 시작해 결국 파산하자 김나지움에 다니던 체호프만 남ㄱ두고 가족은 모두 모스크바로 이주합니다. 그 후 5년 동안 체호프는 혼자 학비를 벌어가며 우리 식으로 말하면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죠.
어린 시절 체호프는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많이 맞음 자랐다고 합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알았단가 대학에 가서야 자신이 특별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걸 깨닫게 되죠.
다정다감하고 관대한 성격이었답니다. 용모에서도 그런 인상을 풍기죠.
공부를 열심히 한 데다 잘하기도 해서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합니다. 그러면서 가족과 다시 합류하게 되는데 합류해서도 가족의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어요. 학비 뿐만 아니라 생활비도 벌어야 했죠. 그래서 쓰기 시작한 게 콩트입니다. 신문과 잡지에 아주 짧은, 한두 페이지짜리 콩트를 쓰기 시작합니다 짤막한 작품들이 다 코믹하면서도 뭔가 여운을 남깁니다. 이 시기에만 400여 편 이상의 작품을 썼답니다.  274

이력 중 특이한 것은 1890년 그의 나이 30세 때 사할린 섬으로 여행을 간 겁니다. 1880년에 데뷔해서 딱 10년 동안 작가로 활동한 다음이었죠. 1886년에 첫 작품집을 낸 뒤 문학상도 받고 작가로 인기도 얻었을 뿐 아니라 지명도도 있었는데 난데 없이 사할린으로 가겟다고 지인들에게 얘기하곤 훌쩍 떠났습니다. 당시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개설되기 전이어서 할린으로 가려면 육로로 마차를 타고 가야 했거든요. 가는 데만 6개월이 걸립니다. 3개월 정도 체류하고 돌아올 때는 배를 타고 와서 한 달 정도 걸렸고요. 아무튼 1년을 꼬박 사할린 여행에 바치게 됩니다. 남들은 유배형을 받고 가는 곳을 굳이 고생을 사서 하면서까지 다녀온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체호프는 뭔가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10년 동안 유머 단편을 쓰다 보니 작가로서 매너리즘에 빠진 겁니다. 더는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고 그저 판에 박힌 작품들만 쓰는 것 같다 보니 작가로서 위기의식을 느꼈을 법합니다. 그래서 러시아를 더 알아야겠다고 판단하고 결행한것이 바로 사할린 섬 여행이었건 거죠.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사할린까지 가서 그가 한 작업이 면전 카드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3개월 동안 체류하면서 만든 면접 카드가 8,000장이라니까 거의 하루에 100여 장씩 만든셈입니다. 그만큼의 사람들을 만났다는 얘기예요. 그렇게 석 달 동안 사람을 만나 면접 카드를 만드는 ㅇ리만 하고 돌아왔어요. 여행이 목적이 아니었던 거죠. 그러고는 <시베리아 여행>이란 기행문과  <사할린 섬>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게 됩니다.  275-276

문학사가들은 사할린 여행으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체호프의 관심이 더 넓어지고 깊어진 것으로 평가합니다. 사할린 여행 이후에 쓴 작품 중에 대표작이 [6호실]이라는 단편인데, 체호프 작품을 읽어보신 분들은 특이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을겁니다. 분량도 길고, 아주 어둡습니다. 말하자면 체호프와 도스토예프스키를 섞어놓은 것 같은 작품이랄까요. 체호프에게는 드문 경우인데 사할린 섬 여행의 영향으로 이해됩니다.  277-278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처럼 핵심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대신 곱씹어서 음미해가며 읽어야 하는 게 바로 체호프의 작품입니다.  286

<갈매기>는 간단한 구도로 보자면 트레플료프 형과 니나 형 인물의 대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301

유한한 삶 속에서 순간순간이라도 제 목소리와 빛을 뽐내는 사소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고, 작가 체호프는 이러한 즐거움의 권리는 충분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불행한 경험에 유폐되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삶에 대한 의지로 승화시키는 니나 같은 여주인공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303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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