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빛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 알아봐준다. 133
참 우스운 얘기라고 다카유키는 생각했다. 잡화점 주인이 뜬금없이 남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된 속사정은 다카유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무튼 주간지에서 취재를 하러 왔을 정도인 것이다. 그 직후에는 상담 건수가 부쩍 늘기도 했다. 진지한 내용도 있지만 대개는 장난 비슷한 것이 많았다. 명백히 해코지로 보이는 편지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했던 것은 하룻밤 새에 서른 통이 넘는 편지가 날아온 일이다. 누가 보더라도 한 사람의 필적이었다. 내용은 모조리 엉터리로 지어낸 것이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하나하나 답장을 해주려고 했다. 그때만은 다카유키도 아버지를 말렸다.
"이건 어떻게 보건 못된 장난질이에요. 진지하게 대해주는 게 바보짓이죠."
하지만 늙은 아버지는 전혀 짜증스러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는 커녕 딱하다는 듯이 다카유키를 바라보며 말하는 것이었다.
"너는 아직도 뭘 몰라."
내가 뭘 모르느냐고 짐짓 불끈해서 따지고 들자 아버지는 서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뜷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로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 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157-159
"내가 몇 년째 상담 글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 대부분의 경우, 상담자는 이미 답을 알아. 다만 상담을 통해 그 답이 옳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상담자 중에는 답장을 받은 뒤에 다시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 많아. 답장 내용이 자신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지." 167
중요한 것은 태어나는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반드시 부모가 있어야만 행복해진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내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설령 남편이 있다고 해도 아이는 낳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하겠다. 204-205
가족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생각은, 좋은 일로 잠시 헤어져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싫어져서, 그만 지겨워져서, 라는 이유로 서로 뿔뿔이 헤어진다는 것은 가족의 참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58
하긴 이별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고스케는 생각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이 끊기는 것은 뭔가 구체적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니, 표면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서로의 마음이 이미 단절된 뒤에 생겨난 것, 나중에 억지로 갖다 붙인 변명 같은 게 아닐까. 마음이 이어져 있다면 인연이 끊길 만한 상황이 되었을 때 누군가는 어떻게든 회복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인연이 끊겼기 때문이다. 269
이름 없는 분에게.
어렵게 백지 편지를 보내신 이유를 내 나름대로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이건 어지간히 중대한 사안인 게 틀림없다. 어설피 섣부른 답장을 써서는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한 참입니다.
늙어 망령이 난 머리를 채찍질해가며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결과, 이것은 지도(地圖 땅지 그림도)가 없다는 뜻이라고 내 나름대로 해석해봤습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력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마 당신은 그 둘 중 어느 쪽도 아닌 것 같군요. 당신의 지도는 아직 백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목적지를 정하려고 해도 길이 어디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일 것입니다. 지도가 백지라면 난감해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누구라도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겠지요.
하지만 보는 방식을 달리해봅시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상담 편지에 답장을 쓰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멋진 난문(難問 어려울난 물을문)을 보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나미야 잡화점 드림 447
옮긴이의 말 - 기적과 감동을 추리한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칭찬받을 만한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끝없이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 힘에 버거워 가장 편한 길로 도망친 것이다.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스스로를 정직하게 바라보았을 때, 기적이 일어난다. 450-451
이 소설은 2012년 '중앙 공론 문예상'을 수상했다. 시상식 자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다.
'어렸을 때, 나는 책 읽기를 무척 싫어하는 아이였다. 국어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서 담임선생님이 어머니를 불러 만화만 읽을 게 아니라 책도 읽을 수 있게 집에서 지도해달라는 충고를 하셨다. 그때 어머니가 한 말이 걸작이었다. "우리 애는 만화도 안 읽어요." 선생님은 별수 없이, 그렇다면 만화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나는 작품을 쓸 때, 어린 시절에 책 읽기를 싫어했던 나 자신을 독자로 상정하고, 그런 내가 중간에 내전지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한다.' 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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