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섹스'라는 주제에 대해 철학적인 사색을 펴쳐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19
진화생물학에 따르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부분은 종족을 발전시킬 특정 요소의 상징에 불과하다.
진화생물학은 섹스의 존재 이유는 잘 설명하고 있지만, 특정한 사람과 섹스를 하고 싶어지는 의식적인 동기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실마리를 제시하지 못한다. 33
마음속 깊은 곳의 자아는 태어날 때 함께 가지고 나온 원초적인 욕구를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뭔가를 달하건 못하건 상관없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몸을 매개로 사랑받고 싶은 욕구,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고 싶은 욕구, 자신의 살 냄새로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고 싶은 욕구다. 이 모든 선천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로 인해 이상주의적 열망에 사로잡혀 키스하고 싶고 같이 자고 싶은 누군가를 끊임없이 찾게 되는 것이다. 37-38
남자가 여자의 몸 위로 살며시 올라타며 여자의 다리 사이로 삽입을 한다. 남자는 여자가 축축이 첮어 있는 것에 격한 환희를 느낀다. 바로 그 순간, 남자에게 팔을 두르고 있던 여자도 남자의 딱딱해진 페니스에 똑같은 만족감을 느낀다.
이와 같은 생리적 반응들에 큰 만족감을 느끼는 이유, 다시 말해 만족스러운 동시에 아주 에로틱하기도 한 이유는 뭘까? 그러한 생리적 반응들은 논리나 이성의 조종능력이 손톱만큼도 미치지 못하는 승낙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48
현실에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상황이 많다. 그런데 그런 수많은 격식들은 그 자체로서 자연스럽게 뜻밖의 성적 판타지를 싹틔울 여지를 허락한다. 규칙을 깨는 연상작용에 의해 제목이 성욕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남드르이 눈에 잘 안 띄는 도서관 구석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화장실, 또는 열차의 객실 안에서 섹스하는 상상 역시 그와 비슷한 이유로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식의 반항적 일탈은 단순히 성적 판타지의 차원을 넘어서서, 어떤 권한을 느끼게 해준다. 비즈니스 승객들로 가득한 비행기 내의 화장실에서 섹스를 한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상상은 이성이 지배하는 상황에서 통상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위계를 뒤집는다. 그리고 대체로 냉담한 규율이 개인의 소망과 바람을 지배하는 분위기 속으로 열망을 끌어들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고도 1만 600미터 상공의 기내는 사무실처럼 숨 막히는 공간이지만, 그런 성냠갑 같은 곳에서 위계가 아니라 친밀감이 승리했으므로, 그 승리는 더 달콤하고 그만큼 쾌감도 더 짜릿하다. 이와 같은 비행기 화장실 안에서의 시나리오에 대해 흔히 '섹시하다'고들 말하지만, 그 표현에 내포된 진정한 의미는 따로 이싿. 그것은 바로 비행기 안에서 느낀 위압적인 소외감을 극복한 것에 대한 흥분이다.
성적 판타지나 동경은 격식과 친밀감이 만나는 교차점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51-52
연인 사이의 충성스러운 애착은, 무례함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더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거대하고 비판적인 사회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그 무례함이 더 놀랍고 경악스럽게 여겨질수록, 연인들끼리는 두 사람만이 승인한 낙원을 짓는 듯한 기분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이런 무례함은 진화생물학의 관점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심리학의 프레임을 통해 들여다봐야만, 따귀를 맞고, 숨이 반쯤 넘어가도록 목이 졸리고, 침대에 묶여 강간당하다시피 다루어지는 그런 행위가 일종의 승낙의 증거라는 사실이 차츰 이해된다. 56-57
섹스는 고통스러운 이분법, 즉 우리 모두가 유년기 이후에 익숙해지는 '불결함'과 '순수함'의 이분법에서 잠시 벗어나게 해준다. 섹스는 우리의 자아 중에서 가장 명백하게 더럽혀진 측면을 그 과정에 끌어들이고, 그럼으로써 그 불결한 측면을 가치 있는 것으로 거듭나게 해주며, 결국 우리의 자아를 정화시켜준다.
그런데 여기서 자아를 정화시켜준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구체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면 이렇다. 얼굴, 그러니까 우리 몸에서 가장 공개적이고 고상한 부분인 얼굴을 연인의 가장 은밀하고 '불결한' 부분에 가져다 대고 열정적으로 키스하고 빨고 혀를 집어넣으면서, 상징적으로 연인의 자아 전체를 받아들여줄 때가 바로 그런 정화의 순간인 셈이다. 57
관계가 끝난 후에는 기분이 다소 가라앉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섹스 후에 비참한 기분에 젖어드는 경우는 꽤 흔한 일이다. 한쪽, 혹은 두 사람 모두 곯아떨어지거나, 신문을 읽거나,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기 쉽다.
대체로 이럴 때 문제는 섹스 그 자체가 아니다. 오히려 섹스와 일상의 현격한 대비가 문제다. 섹스는 특유의 다정함, 격렬함, 열정, 쾌락이 지배하는 반면, 삶의 일상적인 특면들은 반복, 지루함, 억압, 어려움, 냉담함으로 가득하다. 이 둘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비참한 기분에 젖어드는 것이다. 69
사랑을 나누는 동안 일어나는 이련의 과정은 우리의 마음속 열마오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성행위는 서로의 성기를 마찰시키는 행동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우리의 흥분은 천박한 생리학적 반응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특별한 누군가를 만남으로써 느끼게 되는 엑스터시다. 70
우리 사회는 사람들을 내면과 외면으로 이루어진 존재로 생각하며 내면을 외면보다 더 특별하게 여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체적인 측면, 즉 겉모습이 운명과 욕망에 있어 대단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73
육체적인 매력이 무의미한 것이라고 덮어놓고 비하하기 전에, 누군가의 외모에 '흥미'가 끌린다고 말할 때 그 말 속에 담긴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를 고찰해보자. 74
한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무작위로 선별된 일단의 사람들에게 여러 남녀의 얼굴이 찍힌 사진들을 보여주며 미모 순위를 정해보라고 했더니, 놀랍게도 일치된 결과가 나타났다고 한다. 사회적 환경이나 문화적 배경이 전부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떤 얼굴이 가장 매력적인지에 대해 전 지구적으로 의견이 일치한 것이다.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진화생물학자들이 내린 결론은 이렇다. 남녀 모두 '섹시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기준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얼굴의 좌우가 대칭적으로 일치하고 균형과 비율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용모라는 것이다. 75
대칭과 균형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대칭과 균형이 맞지 않는 경우, 즉 얼굴이 심하게 비대칭이거나 균형이 맞지 않는다면 자궁속에서 혹은 생후 수년 이내에, 즉 자아의 대부분이 아직 형성되지 못한 시기에 병에 걸렸다는 표시이기 때문이다. 태아일 때 DNA가 세균에 감염되거나, 임신 초기에 엄마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겪으면, 얼굴의 생김새에 이런 불운의 흔적이 그대로 남을 수 있다. 그래서 외모는 우리의 유전적 운명을 보여주는 지침인 셈이다. 77
어떤 사라에게 육체적으로 ㄱ르려 그 사람과 자고 싶어지는 심리에 대해, 우리가 그 사람의 '본질'을 무시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사람의 입술, 피부, 이마, 눈썹을 통해 정확히 분별해낸 흥미로운 미덕에, 즉 사탕달의 표현을 빌리자면, '행복의 약속'에 흥분을 늒미으로써 더 가까워지고 싶어진 것일 수도 있으니까. 83
어떤 옷차림을 '섹시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 그 옷이 대변하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에 흥미가 끌린다고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85
부부 사이에 잠자리가 소원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리고 가장 순수한 관점에서 볼 때, 일상과 성애의 영역 사이를 원만하게 이동하지 못해 애를 먹기 때문이다. 성관계를 할 때 요구되는 자질은, 대다수의 일상적인 활동들을 행할 때 필요한 자질들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결혼 직후부터는 아니더라도 수년 내에)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시간 관리하기,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자제하기, 말 안 듣는 자녀들에게 권위를 세우고 규율을 부과하기 등등, 가끔은 작은 기업체라도 운영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새악이 들 만큼 관료적이고 절차적인 기술이 필요해진다.
그런데 섹스는 정반대의 덕목들, 즉 자유로움, 상상력, 유희, 통제력 상실이 중요하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통제와 자기억제를 특징으로 하는 일상생활을 방해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일단 욕망이 자연스레 발산되고 나면 야무지게 살림을 꾸린다거나 아이를 키우는 등의 가정생활 임무를 수행하는 데 부적당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적어도 다시 그런 임무를 재개할 생각이 들지 않을 우려가 있다.
우리가 섹스를 회피하는 이유는 그것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섹스가 주는 쾌락이, 그 이후에 부과될 가정생활과 일상의 까다로운 요구들을 견뎌낼 인내력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125-126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의 침체된 성생활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는 해결책은 파트너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바라볼 줄 아는 것이다. 133
고의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수많은 성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간 주범이 바로 문명이다. 인권을 중시하고 인간의 친절과 도덕적 교양을 존중하는 우리의 문명 말이다. 이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과 상냥함의 능력이 진보할수록, 그것이 도리어 우리를 너무 과민하게 만들어 이성을 유혹하려는 시도를 주저하게 만들 수도 있다니.
문명은 남녀 관계에 있어서 관대함, 세심함, 평등의식, 공평한 가사 분담과 같은 굉장한 미덕을 가져다 주었다. 그 점은 누구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인정해야 할 것이 있다. 문명화가 우리의, 아니 적어도 남자들의 성관계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문명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욕망을 막무가내로 요구하거나 거칠게 밀어붙여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을 단지 우리 자신의 욕구충족과 쾌락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150-151
근본적으로 따지자면 발기불능은 지나친 존중이 병이 되어 나타나는 증상이다. 파트너에게 자신의 욕망을 강요하는 무례를 범하거나 파트너의 욕망을 채워주지 못해서 불쾌감을 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발기부전 치료제가 잘 팔리는 시대적 현상은 현대사회 남성드르이 집단적 갈망을 대변해준다. 즉, 상대를 실망시키거나 기분 상하게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그 미묘하고 민감하며 예의 바르고 문명화된 걱정을 무마시켜줄 확실한 메커니즘을 갈망하고 있다는 신호다. 152
우리는 파트터에게 화가 났다는 사실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그 때문에 곧잘 멍하고 우울해져서 잠자리를 피할 때가 많다. 이런 경향이 나타나게 되는 원인은 대체로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화가 치밀어 오른 구체적 사건들이 너무 정신없고 어수선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경우다. 화가 났는지 제대로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에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자신이 기분이 상했다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침식사를 할 때라든가,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는 와중에, 혹은 점심시간에 시끄러운 쇼핑몰에서 휴대전화로 통화하는 상황을 떠올려보라. 화살이 날아와 우리에게 상처를 입혔는데도, 그 화살이 갑옷의 어느 위치를 어떻게 뚫었는지 정확히 눈치 챌 경황도 여력도 없는 상황이다.
둘째, 분노를 알아차린 경우 더라도 그 화난 마음을 말로 표현하기 조차 어려울 때가 많다. 말하자면 기분을 상하게 만든 일들이 너무 사소한 일이라면 입 밖에 꺼내어 따져봐야 본전도 못 찾는다. 대부분은 내가 너무 까다롭거나 별나서 그런 것이라는 결론이 나고, 상대방은 어처구니없어한다. 따지고 나서 스스로 생각해봐도 무안하고 머쓱해지는 그런 경우다.
이를테면 헤어스타일을 바꿨는데 파트너가 눈치 채지 못하거나, 바게트를 자를 때 빵 전용 도마를 쓰지 않아서 부스러기를 여기저기 떨어뜨릴 때, 혹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별일 없었는지 묻지도 않고 곧장 텔레비전 앞으로 갈 때 정말 속상하다. 하지만 이런 대수롭지 않은 일들을 건건이 불평하기에는 어쩐지 좀 민망하다. 155
세상의 모든 커플은 객관적으로 보기엔 매우 사소하고 터무니없는 일들을 놓고 비슷비슷한 말다춤을 벌이곤 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우리 자신의 견지에서 본 그 사람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난이도가 상당히 높은 문제(자녀 교육이나 주택 구입에 관한 문제)에서부터 하찮은 문제(소파를 놓는 방향이나, 화요일 저녁의 데이트 계획 같은 문제)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영역에 걸쳐 상대방을 '완벽함의 화신'으로 만들고자 애쓴다. 따라서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자신의 여러 이상들 중 하나가 배신당하는 고통이나 분노를 느낄 가능성이 다분하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게 되면, 더 이상 사소한 일 같은 것은 없어지니까. 156
거의 감지할 수도 없는 그 냉랭함 때문에 한쪽, 혹은 양쪽 모두 상대와의 잠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알다시피 섹스란 일단 화가 나면 건네주기 쉽지 않은 선물이며, 자신이 화가 난 것조차 의식하지 못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157
왜 화가 난 것인지에 대해서 먼저 차근차근 이해하기만 해도 그들은 다시 예전처럼 알콩달콩 지낼 수 있다. 159
성인기의 사랑에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려면, 어린 시절에 사랑 받던 느낌을 기억하기보다는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데 무엇을 감수했는지, 다시 말해 얼마나 큰 노력을 쏟았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에 맞먹는 노력을 쏟아야만, 파트너가 은밀하게 불만의 화살을 쏠 때 그것을 감지하고 그 원인을 해결함으로써 더 행복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또한 애정이 넘치는 분위기 속에서 더 자주 성관계를 갖게 되는 것은 여기에 덤으로 따라오는 행운이다. 165-166
중년의 기혼남이 다른 열자를 유혹할 때 내보이는 대범함을 자신감으로 착각해선 안 된다.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뿐이다. 무슨 말이냐면, 그 나이가 되어 가끔씩 죽음을 의식하게 되면, '내 인생에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올까?'하는 초조함 때문에 대범해진다는 뜻이다. 젊은 독신 남자였을 때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했던 추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삶이 무한대로 펼쳐져 있을 것 같아서 수줍음과 부끄러움이라는 사치를 부릴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197-198
이왕 이렇게 된 것, 과감함 생각도 해보자. 외도에 대한 일반 대중의 견해와는 반대되지만, 진짜 잘못은 그 반대의 경우라고 말이다. 즉 탈선에 대한 어떠한 욕망도 '없는'경우가 더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탈선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오히려 이치에 어긋나고 부자연스러운 반응이므로, 이상할 뿐만 아니라 심오한 의미에서 볼 때 '잘못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외도의 가능성을 전혀 즐길 줄 모른다면, 그것은 심각한 상상력의 결핍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우리 인간이 이 지구에서 할당받은 애처롭도록 짧은 시간에 대한 심술궂은 태연함이자, 우리 몸이 가진 영광스러운 육욕적 본성에 대한 푸대잡이나 마찬가지다. 아니면 회의 중에 탁자 밑에서 유혹하듯 손가락을 감거나, 식당에서 식사가 끝나갈 무렵에 은밀하게 무릎을 접촉해오는 식의 에로틱한 도발에 이성적인 자아가 정당하게 지배당해야 할 권리를 부인하는 셈이다. 199-200
사람들은 외도를 저지른 배우자가 무조건 다 잘못했고, 정절을 지킨 배우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너무도 쉽게 단정한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의 의미를 일부분만 이해한 반쪽짜리 판단이다. 확실히 외도는 조간신문 톱기사감인 것은 맞지만, 배우자를 배신하는 방법으로 말하자면 다른 종류의 배신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지만, 외도에 못지 않은 충격과 실망을 주는 배신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를테면 배우자와의 대화에 인색하게 구는 것, 마음이 딴데 가 있는 사람처럼 구는 것, 괜히 성질을 부리는 것, 스스로를 매력적으로 가꾸는 데 노력하지 않는 것 등등. 202
배신당한 것에 분개한 배우자는 본질적이고도 비참한 한 가지 사실을 회피하기 쉽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전부가 될 수는 엇다는 사실이다. '배신당한' 배우자들은 대개 이런 서글프고도 충격적인 사실을 너른 아량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은 그저 재신자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부추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진짜 큰 잘못은 도덕주의적 결혼관습에 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모든 욕구에 대해 성적으로, 감정적으로 평생의 해결사가 되어줄 수 있을까? 그러한 마도 안 되는 희망을 품게 하는 결혼제도의 비상식적인 야심과 고집이 진짜 문제다.
과거의 어떤 사회에서도 지금의 우리 사회만큼 결혼제도를 엄중하게 여기거나 희망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부지막지한 기대가 없으니, 당연히 그로 인해 엄청난 좌절에 빠지는 일도 없었다.
과거의 사람들은 사랑, 섹스, 가족에 대한 욕구들을 따로따로 구별지을 만큼 현명했다. 203-204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결혼을 사랑, 섹스, 가족이라는 우리의 모든 희망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으로 보는 것이 순진한 착각이라면, 마찬가지로 외도가 결혼 생활의 모든 좌절을 해소해줄 효과적인 해결방법이라는 생각도 순진한 착각이라는 것이다.
외도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에서 찾아볼 수 있는 궁극적인 '오류'는, 결혼에 대한 특정 관념가 마찬가지로 '이상주의'다. 언뜻 생각하기에 외도는 비뚤어지고 절망적인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비밀스러운 모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결혼생활의 결핍을 채우려는 시도다, 외도를 하면 그 상대방이 자신의 결핍이나 과잉을 마법처럼 조절해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믿는다면,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조건들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혼외'의 누군가와 성관계를 가지면서 '결혼생활 내부'의 소중한 것들에 타격을 입히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결혼생활을 충실히 지키는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절박한 감각적 쾌락의 기회를 거머쥐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다. 두 마리의 토끼는 언제나 반대 방향으로 뛰어간다. 211
한마디로 결혼생활은 침대 시트와 비슷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네 귀퉁이가 반듯하게 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완벽을 추구하면 곤란하다. 213
결혼생활에 대한 좀 더 현실적인 태도는 무엇일까? 서로 정절을 지키려면 어떤 결혼서약을 주고받아야 될까? 확실한 것은, 흔히 쓰는 상투적인 결혼서약보다 훨씬 더 엄중하고, 비관적인 경고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가령 이런 식이다.
'당신에게, 오직 당신에게만 실망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로 인한 불만도 당신에게만 털어놓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바람을 피우며 돈후안 같은 호색한으로 살면서 여기저기 그 불만을 퍼뜨리고 다니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여러 가지 불행의 선택을 검토했고 내 일생을 바칠 사람으로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커플이 결혼식장에서 서로에게 하는 서약 치고는 상당히 비관적이다. 하지만 이런 서약을 한 뒤라면, 외도를 저지르더라도 실망에 대해 서로 서약한 부분만을 배반하는 것이지 비현실적인 희망을 배반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배반당한 사람이 상대방에게 "나와 함께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앙칼지게 쏘아붙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대신 정곡을 찌르는 공정한 지적으로 이렇게 큰소리를 치게 될 것이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실망을 느끼더라도 의리를 지켜줄 거라고 믿었어." 213-214
부부가 자신들의 삶이 결혼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외도의 충동에 몸과 마음을 내맡기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것도 두 사람 모두가 날마다 감사해야 할 정도로 엄청난 기적이다. 220
지독한 성적 욕망을 겨냥해 경멸적인(하지만 온당한) 이야기들이 숱하게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그 욕망을 칭송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어쩌면 우리가 실체적인 인간으로서 호르몬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제정신으로 살기 위해서 정말로 필요한 것을 며칠씩이나 잊고 지내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 성적 욕망이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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