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리스를 정벌하고, 코린토스에 머물 때의 일입니다. 당시 코린토스에는 유명한 어느 괴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정치가나 학자들이 대왕에게 인사를 하러 왔지만 그는 오지 않았고, 결국 알렉산드로스는 코린토스 교외의 크라네이온으로 이 괴짜 철학자를 몸소 찾아 나서기에 이릅니다. 그는 양지 바른 곳에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디오게네스입니다.
자신이 몸소 찾아왔지만 기척도 안하는 디오게네스를 보고, 알렉산드로스는 기분이 상했습니다.
“나는 대왕 알렉산드로스다.”
“나는 개 같은 디오게네스요.”
“내가 무섭지도 않은가?”
“그대는 선한 자인가?”
“그렇다.”
“그렇다면 선한 자를 뭣 때문에 두려워 하겠는가?”
“그대가 바라는 것을 말해 보라.”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 주었으면 하노라.”
이 말을 들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종 무관들은 무례한 디오게네스를 벌하기를 청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태연한 그의 모습에 매력을 느꼈죠. '만약 내가 알렉산드로스가 아니라면, 나는 디오게네스가 되었을 걸세' 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이 철학자는 권력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인간의 행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리나 영혼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세상을 떠나고 몇 년 뒤, 그의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안티스테네스(Antistehnes)가 아테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남루한 옷차림의 젊은 거지 하나가 교실로 들어와 안티스테네스에게 자신을 제자로 삼아달라고 요구합니다. 학생들은 모두 그를 비웃었고, 안티스테네스 역시 단호하게 그 젊은 거지에게 나가 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거지는 막무가내였고 결국 거지의 고집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거지가 바로 디오게네스입니다. 그는 스스로 개와 같은 삶을 살면서 자신을 'Doggish Diogenes' 라고 불렀으며, 세상의 모든 관습과 편견을 조롱하며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지곤 했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그를 '개 같은 철학자', '빈정거리는 사람'(Cynic)이라 불렀습니다.
자신의 집과 재산을 버리고 일생을 작은 통속에서 살면서 인생의 진리를 명상했다는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견유학파 犬儒學派 '의 원조로 불립니다. '견유학파'란 말그대로 개가 유유히 산책을 하는 것과 같은 학파라는 말이죠. 개가 산책을 할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자연의 모든 것을 즐기고 느끼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동양으로 치자면 노자나 장자의 사상과 비슷할테지요. 무위자연, 즉 인위적인 것을 버리고 자연과 하나되는 삶을 사는 거지요.
디오게네스는 흑해 연안의 시노페라는 도시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환전상이었는데요, 디오게네스와 그의 아버지는 돈을 위조하다 걸려 추방을 당하게 됩니다. 고향에서 쫓겨 난 디오게네스는 아테네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테네에 오자마자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안티스테네스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제자가 되었죠.
안티스테네스는 인간이 덕성을 갖추면 행복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돈과 향락 등 외형적인 가치판단을 배척하는 윤리적인 금욕을 제자들에게 요구했습니다. 디오게네스는 스승의 사상에 한발짝 아니 열발짝 더 나아가 결국 세상의 모든 재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냉소적인 철학자가 됩니다. 그는 행복이란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은 부끄러울 것도 없고, 보기 흉하지도 않으므로 감출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가난하지만 부끄러움 없는 자족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그는 독설, 말놀이를 즐기며 반사회적 행동을 일삼았고, 자신을 개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속에서 외톨이로 지냈습니다. 그는 방랑하며 거지와 같은 삶을 살았는데요, 사실 대낮에 램프를 들고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진정한 인간을 찾기도 했다는 그의 일화들은 종종 해학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플라톤이 소크라테스 제자 그룹 중 주류라면, 디오게네스는 비주류에 속할 것입니다. 이 둘은 앙숙이었다고 전해지는데요, 플라톤이 인간을 두 발로 걷는 깃털 없는 짐승이라고 정의하자, 그 소리를 들은 디오게네스는 플라톤에게 털 뽑은 닭을 보내 그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이라고 비판했다고 합니다. 디오게네스는 플라톤이 욕망을 버릴 것을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화려한 집에 사는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해 했고, 비오는 날 플라톤의 화려한 침대위를 진흙 투성이의 발로 더럽혀 놓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플라톤은 디오게네스를 '미친 소크라테스'라고 욕을 했죠. 하지만 플라톤이 디오게네스를 그렇게 부름으로써 그를 소크라테스의 반열에 오르게 하기도 합니다.
디오게네스는 90세 가까이 되어 스스로 숨을 멈추어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자신의 유해를 땅에 묻지 말고 맹수들의 먹이감으로 던져주라고 유언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한 말 이외에는 단 한줄의 글도 남기지 않았고, 죽을때는 단 한벌의 옷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상의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보여준 디오게네스는 진정한 '무소유 철학자' 였습니다.
한 번은 누군가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도 지금 운동 경기를 구경하러 가는 길입니까?"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답했다.
"아닙니다. 저는 지금 경기를 하러 가는 중입니다."
물은 사람이 비웃으며 다시 물었다.
"도대체 누구와 경기를 하십니까?"
"바로 나의 기쁨 그리고 고통과 경기를 하지요. 수시로 덤벼 드는 욕망과 한 바탕 붙어 레슬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아십니까?
그 녀석을 붙잡아 땅으로 팽개쳐 버릴 때의 그 상쾌함이란!"
한 번은 누군가가 그에게 적을 이기는 방법에 대해서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 적을 친구로 대접하시오. 우정이란 전염성이 무척 강한 놈이라서,
그 적도 얼마 안가 당신을 친구로 대접하게 될 것이오."
디오게네스의 낡은 누더기야말로 당시 지중해 세계에서 가장 따뜻한 정신을 감싸고 있는 옷이었다.
디오게네스는 어리석음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는 탁월한 지혜를 통해서만이 인간이 보다 큰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가 생각한 탁월한 지혜의 결과는 다름 아니라,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우며, 단순한 삶이었다.
그는 말했다.
"미리 준비하는 자만이 날카롭게 몰아치는 운명의 소용돌이 속을 가볍게 지나갈 수 있다."
이 말로 그가 뜻하고자 한 것은, 삶에서 적게 기대할수록 실망도 적어진다는 당연한 법칙이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진정한 마음의 평안은 많이 소유하는 것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적게 가진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데에서 얻어진다.
적게 구하라, 그러면 너는 얻을 것이요 만족할 것이다.
많이 구하라, 그러면 너의 갈망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것이다."
희대의 달변가이자 괴짜 철학자 디오게네스(Diogenes)는 “행복이란 인간의 자연스런 욕구를 가장 쉬운 방법으로 만족시키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은 부끄러울 것도 없고 보기 흉하지도 않으므로 감출 필요가 없으며, 이 원리에 어긋나는 관습은 반(反)자연적이며 또한 그것을 따라서도 안 된다.”고 역설하면서, 가난하지만 늘 부끄러움이 없는 자족자제(自足自制)의 생활을 몸소 실천하였다고 한다. 그는 평생을 남루한 옷차림으로 백주 대낮에도 항상 램프를 들고 다녔다고 하는데 그에게 있어 그 램프는 정직한 사람을 찾는 하나의 도구였던 것이다.
가짜 돈을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자신의 고향인 시노페에서 쫓겨나 아테네로 가서 세계4대 성인중의 하나라고 일컫는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이자 퀴닉학파(견유학파)의 창시자인 안티스테네스의 문하생이 되었다. 디오게네스는 스승인 안티스테네스에게 인간은 덕(德)을 위해서 살아야하며, 그것을 위해서는 선한 마음만 필요할 뿐 재산과 명성과 외모 따위는 아무것도 필요 없음을 배웠다.
디오게네스는 스승에게 배웠던 철학적인 지식에 만족하지 않고 가능한 한 작은 욕망을 가지도록 훈련하며, 수치심을 느끼지 않으며, 스스로 만족하는 것들을 실천하며 살게 된다. 아무런 부족도 없고,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신(神)의 특징으로,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그만큼 신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반(反)문명의 사상을 실지실행(實智實行)하며 그는 평생을 단 한 벌의 옷과 한 개의 지팡이와 자루를 메고, 집 대신 커다란 통 속에서 생활했다.
정복 왕 대제 알렉산더와 괴짜 철학자 디오게네스. 이 두 거인들의 운명적인 첫 대면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한데,
『 기원전334년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도시국가)의 대표들이 코린트에서 회합을 갖고 알렉산드로스를 아시아 출정군의 최고사령관으로 선출했다. 이에 명망이 높은 정치가, 유명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알렉산드로스를 알현(謁見)하고자 줄을 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예전부터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디오게네스를 불렀으나 오지를 않자 몸소 그를 찾아간다.
나무통에 기대어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디오게네스에게 대제 알렉산드로스가 다가가 “내가 바로 대왕 알렉산드로스요.”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나는 개(犬)인 디오게네스요.”라고 답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왜 개로 불리느냐?”며 묻자, “내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들에게는 꼬리를 흔들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짖어대며, 악한 자들은 물어뜯기 때문이요.”라고 답했다. 알렉산드로스가 “무엇이건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한 번 말해보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좀 비켜 주시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알렉산드로스는 무안해하며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의 그런 태도에 화가 날 법도 했건만 알렉산드로스는 오히려 그때부터 디오게네스를 존경하게 되었다. 알렉산드로스는 “내가 만일 알렉산더대왕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
훗날 많은 사상가들은 이날의 두 사람의 만남을 일컬어 “얻으려는 자와 버리려는 자,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절묘한 만남”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 이윽고 이 두 사람은 같은 날 죽어 저승으로 가는 길에서 또다시 만나게 되는데, “어리석은 자여, 그대는 허망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구나.” 알렉산드로스는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을 붉히며 중얼거렸다. “저승이란 곳은 정말로 불공평한 곳이로군. 대체 어찌 황제와 거지가 이토록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지?”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웃으며 말했다. “착각하지 마시오. 억울해야 할 사람은 바로 나요. 당신은 평생을 세계를 구걸하며 떠돌았던 거지였지만 나는 내 고향에서 황제처럼 편히 살았다오.” 』
어느 날, 광장에서 쉬고 있는 디오게네스에게 한 상인이 고기를 던져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디오게네스가 그 고기위에다 한쪽 다리를 들고 개처럼 오줌을 쌌다고 한다. 참으로 디오게네스다운 행동이었다. 또 그는 시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선동정치가들에 대해서는 ‘천민의 시중꾼’이라고 놀렸고, 축제 때 벌어지는 경연을 보고는 ‘바보와 말장난꾼들을 위한 잔치’라며 비아냥거렸다.
디오게네스는 평소 사람들은 좋아 보이는 것만 바라고 기원하지, 진실 된 것을 바라고 기원하지 않는 것을 나무랐다.
그는 독설과 말놀이를 즐기며 반(反)사회적 행동을 일삼는 냉소주의자였다. 자신의 관점에서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싫어해 그런 사람들을 늘 비판하였으며 또한 자신은 타인으로부터 개라고 비판받으면서 외톨이로 살았다. 부(富)를 싫어해 평생을 통나무 속에서, 평생을 방랑하며, 거지처럼 아무데서나 침식했지만 89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
이러하듯 디오게네스는 늘 인간허무주의에 빠진 것처럼 묘사되지만 그는 단지 독설로써 인간을 일깨우고 그의 이해받지 못할 행위로써 자신의 철학을 말하려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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