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
성숙하지 못하다는 것은 마음이 시키는 것이 있을 때에도, 몸이 시키는 일이 있음에도 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마음의 사용법과 몸의 사용법 앞에서 숱하게 주저해왔다. 혼자 헤쳐온 일이 거의 없는 생을 산다면 우리는 자주 난감해할 뿐더러 인생의 그 어떤 무늬도 만들지 못한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는가.
‘사람들은 살면서 큰 위기를 겪기도 하지만 거기서 더욱 성장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아주 작은 일로도 탈진 상태가 된다. 만일 그들 자신에게 의지력이 없거나 자신들의 책임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그들을 쓰러뜨리게 된다
라고.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은 분명 당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어떻게 혼자인 당신에게 위기가 없을 수 있으며, 어떻게 그 막막함으로부터 탈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사람을 괴롭히기 위해 닥쳐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은 그 외로움 앞에서 의연해지기 위해서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면서 써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써야 한다. 그러면서 쓰러지기도 하고 그러면서 일어서기도 하는 반복만이 당신을 그럴듯한 사람으로 성장시킨다. 비로소 자신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다. 물론 자기 안에다 주인을 ‘집사’로 거느리고 사는 사람이다.
오늘밤도 시간이 나에게 의미심장하게 말을 건다. 오늘밤도 성장을 하겠냐고. 아니면 그저 그냥 지나가겠냐고.
인생의 파도를 만드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보통의 사람은 남이 만든 파도에 몸을 싣지만, 특별한 사람은 내가 만든 파도에 다른 많은 사람들을 태운다.
- 이제는 정말로 안녕일까
참 많은 여행을 했다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이제는 어떻게 어떤 여행을 하는가가 중요한 차례가 되었다.
여행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짧은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여행을 하면서도 정주하거나, 여행을 하면서도 그곳 사람들 속에 흠뻑 젖는 것을 선호한다. 거미도 짧게 있으려고 집을 짓지 않는다.
- 나는 능선을 오르는 것이 한 사람을 넘는 것만 같다
누군가에게 산은 무의미일 수 있더라도 나에게는 명백한 의미다. 산을 넘을 때마다 생각한다. 힘겹게 산을 넘을 때마다 힘겹게 한 사람을 여행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산을 넘는 것 같지만 실은 ‘한 사람’을 만나는 과정, 그대로를 따라가보는 것이다. 한 사람을 아느라, 만나느라, 좋아하고 사랑하느라. 그리고 표정이 없어지다가, 멀어지다 놓느라...... 마치 산을 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가졌다는 것은 그 한 사람을 등반하여 끝내 정상을 보겠다는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전부를 머리에 가슴에 이고 지고 오른다.
-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고독을 모르면서 나이들 수는 없다. 혼자인 채로 태어났으면서 애써 고독을 몰른 체한다면 인생은 더 어렵고 더 꼬이며 점점 비틀린다. 고독의 터널 끝에 가보고 고독의 정점과 한계점을 받고 서서 웃는 자만이 ‘혼자를 경영’할 줄 아는 세련된 사람이 된다. ...
종교가 간절한 시대는 지난 것인지 사람들은 이제야 시간을 믿기 시작했다. 시간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시간이 우리에게 보상을 해준다고 믿기로 한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아무렇게나 쓰는 사람 말고 ‘혼자있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만이 혼자의 품격을 획득한다. ‘혼자의 권력’을 갖게 된다.
혼자 해야 할 것들은 어떤 무엇이 있을지 혼자 가야 할 곳도 어디가 좋을지 정해두자. 혼자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혼자 잘 지내서 가장 기뻐할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것도 알아두자. 이것이 혼자의 권력을 거머쥔 사람이 잘하는 일이다.
- 당신이 나를 따뜻하게 만든이유
어떤 이에게 말을 걸어야 할까. 말을 걸어야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세상엔 말하고 싶지 않은 사람만 있다. 많은 사람들은 간단하게 말하는 법, 어떤 상황이 되어도 평균에만 맞춰서 말하는 법, 자기식으로 정리해서 남에게 옮기는 법에만 열심이다.
- 우리 서로가 아주 조금의 빗방울이었다면
‘여행뽕’이라는 말이 있다. 여행중에 우리의 허전함은 어떤 특별한 시간이나 사건을 기대하면서 맥없이 허우적대기도 하는데, 딱히 안 그래도 될 것 같은 상황에서 어느 한 사람(혹은 그곳 분위기)에게 무작정 빠져들고 마는, 그러나 막상 여행지에서 돌아와서는 그 감정을 지속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아무래도 약발이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화들짝, 여행뽕이라는 새로 만들어졌다는 그 말 앞에서 나도 모르게 동공이 열리고 마는 것은, 우리가 한때 같이 지낸 사람들과의 좋았던 시절은 그저 여행뽕이거나 ‘사람뽕’에 취한 상태에 불과한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다.
- 매일 밤, 여행을 마친 사람처럼 굿나잇
누군가와 여행을 함께하려고 하지 말라.
큰일난다.
갑자기 나에게 아무 일도 아닌 일로 붉어진 얼굴을 보이거나 어쩌면 짜증 섞인 소리로 다그칠지도 모른다.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긋나고 만다.
잠자는 시간도 습관도 다르다. 먹는 시간도 먹는 취향도 다르다.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고 어떤 분위기에 휩쓸리는지도, 그곳에서 꼭 하고 싶은 한 가지의 목적마저도 다르다. 아무래도 어긋나고 마는 것이다.
혼자는 왜 안된다고 생각하는지ㅡ 혼자여야만 가능한 단 하나가 있는데 그게 바로 여행이다.
그런데도 같이 가겠는가 외로움과 두려움을 조금 해결해보겠다고 나눠보겠다고, 굳이 누구랑 같이 가겠는가. 아니, 말리고만 싶다. 혼자하는 여행의 긴장이 쌓이면 쌓일수록 외로움과 두려움 따윈 집 안에 아무렇게 굴러다니는 고무줄 같은 게 되고 만다.
혼자 여행을 해라. 세상의 모든 나침반과 표지판과 시계들이 내 움직임에 따라 바늘을 움직여준다. 혼자 여행을 해라. 그곳에는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된고, 더군다나 여기에서도 들었던 똑같은 이야기 따위는 듣지 않아도 된다.
혼자 여행을 한다는 건 나를 보호하고 있는 누군가로부터, 내게 애정을 수형해주며 쓸쓸하지 않게 해주는 당장 가까운 이로부터, 더군다가 아주 작게 나를 키워냈던 어머니의 뱃속으로부터 가장 멀리, 멀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자신 만만히 믿었던 것들을 검은색 매직펜으로 지워내는 일이다.
세상 흔한 것을갖고 싶은 게 아니라면, 남들 다 하는 것을 하고 싶은게 아니라면 나만 할 수 있고, 나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은 오직 혼자여야 가능하다.
혼자 있는 그곳은 속깊은 문장을 알려준다. 내가 숱하게 화를 내야만 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공손하게 손을 모으게 한다.
- 그림으로 사랑의 모양을 그려보세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사랑의 꼴도 다르다. 누구를 사랑하느냐에따라 내가 얼마만큰의 사람인지를 알게 된다. 또한 누구를 어떻게 떠나 보냈는지가 남은 사람을 입체적으로 성장시킨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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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사랑인지 아닌지 모르는 채 애매한 감정으로 만나고 있는 연인들이 많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그 색이 짙지도 않고 감정이 치열하지도 않은 채로 사랑하는 상태를 그들은 사랑이라 한다. 이 또한 시대의 색깔일까. 차오르는 육체의 감정을 해소시킬 대상을 만나는 것이거나, “사귀는 사람 있어요?” 같은 세상의 잦은 질문들에 대답하기 쉬운 상태에 놓이기를 바라는 것일까. 허전한 공백 상태를 못 견디는 세대의 특성이 시대의 물살을 맹물 같은 사랑으로나마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 관계를 통해 위로는 받을 수 있을지라도 요긴하게 성장을 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사랑에 온전히 몸을 박고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 사랑에 몸을 들여놓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줄기가 없으니 사랑의 양분이 가닿을 곳이 없는 형국이다.
사랑을 하느라 아파하는 것은 성장통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많은 질량의 고통을 포함하고 있는데다, 인류가 사랑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헤어나오질 못하는 것은 고통의 바닥에 고여 있는 단물에 빨대를 대고 있어서다. 이건 마치 성장주스와도 같다. 그 한 사람을 사랑했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 사랑을 자신이 많이 성장햇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혼돈의 대륙을 통과하면서 방황하지 않은 사람에게 삶을 읽어내는 능력이란 없다.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그때부터 성장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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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다른 이름은 ‘생각한다’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이란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 생각한다의 연속선’이다. 오죽하면 ‘사랑’이란 말의 어원이 ‘사량’ 즉 ‘생각의 양’이라는 설도 있겠는가. 어떤 경우에도 한 대상이 생각이 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한 사람을 향한 생각이 불쑥 모든 것을 앞질러 덮는 형편 혹은 경로가 사랑이다. 이 화학 작용 앞에서는 누구도 포로가 된다. 감당이 어렵다. 이런 반복을 통해 대상을 가까이 느끼려 하고 이내 가지려 할 것이므로 결국 ‘생각’은 표적을 거느린 ‘화살’인 것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 줄자가 있다. 사랑은 이 줄자를 놓치지 않으려 하면서 좀더 가까운 거리로 당신다. 안간힘으로 당겨보지만 실제 느낌과는 다르게 좀처럼 가까워지지도 않는다. 우리가 사랑을 하고 있는 상태라면 그 거리가 몇 센티인들 적당하다고 믿겠는가.
사랑을 하려는 마음엔느 사랑을 받으려는 넓은 ‘대륙’이 차지하고도 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려니, 자기 자신을 증명해내는 일이 사랑이기도 하려니 그래서 그 욕망의 대륙은 점점 더 손을 쑬 수 없을 정도로 드넓어져 간다. 그러기에 지독히 앓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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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정답’과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사라은 모든 답을 거부한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가장 유일하 ‘무엇’이 있으니 바로 ‘이것’ 아니겠는가. 사랑.
- 바람이 통하는 상태에 나를 놓아두라
그녀를 안 지 얼마나 됐을 때였을까. L은 독자로 만난 사이였다.
-이병률이 글을 쓰는 것은 뭐 때문일까요?
나는 얼른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했다.
-글을 쓰는데, 그나마 사람들이 그 글을 읽어주는 건요?
역시 더 어려운 질문이었다. 다시 L이말햇다.
-그건 자기를 지키고 있어서예요. 자기를 어디로든 보내지 않고 묵묵히, 굳건히 자기를 지키고 있어서예요. 그걸 신이 저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거고요.
그래서 내가 물었다.
-자기를 지키는 일은 어려운 일인가요?
쉬운 물음 같기도 했으며 물음 같지도 않았지만 나는 어쨌든 물었다. 어쩌면 내가 글이랍시고 쓰는 글을 절대 좋아하지 않기에 나는 물었는지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아닌가요. 어떤 것에 의해 우리는 자신을 쉽게 잃어요. 하늘이 정해준 적당한 범위가 있는데 그걸 자꾸 벗어나려고 하고요. ... 우리 어쩌면 자신을 망치는 일이 더 쉬운지도 몰라요.
내가 숙연해진 것은 그 말이 당연한 말이어서가 아니라 CT 촬영을 해서라도 내가 정녕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를 지키는 삶을 살 수 있을 때 내 머리 위에 늘 나를 지켜주는 새 한마리가 앉아 있을 거라는 걸. 하지만 아직, 내 머리 위에 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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