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방랑'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2.09.07 인도방랑 - 후지와라 신야 작가정신 2009 03830



걸을 때마다 나 자신과 내가 배워온 세계의 허위가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좋은 것도 보았다. 거대한 바냔나무에 깃들인 숱한 삶을 보았다. 그 뒤로 솟아오르는 거대한 비구름을 보았다 인간들에게 덤벼드는 사나운 코끼리를 보았다. '코끼리'를 정복한 기품 있는 소년을 보았다. 코끼리와 소년을 감싸 안은 높다란 '숲'을 보았다. 

세계는 좋았다. 대지와 바람은 거칠었다. 꽃과 나비는 아름다웠다.


나는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슬프도록 못나고 어리석었다. 

만나는 사람들은 비참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웠다. 

만나는 사람들은 경쾌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화려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고귀했다.

만나는 사람들은 거칠었다.

세계는 좋았다.


'여행'은 무언의 바이블이었다.

'자연'은 도덕이었다.

'침묵'은 나를 사로잡았다.

그리고 침묵에서 나온 '말'이 나를 사로잡았다.

좋게도 나쁘게도, 모든 것은 좋았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내 몸에 그것을 옮겨 적어보았다.


<인도방랑>은 내가 스물넷의 나이에 대학을 뛰쳐나와 세계 방랑길에 오른 최초의 여행 기록이다. 일본에서는 1972년, 그러니까 꽤 오래전에 출간되었다.  15


저 인도의 자연을 접한다는 건 평온을 얻는 게 아니라 반대로 엄청나게 아나키적 정신이 되어가는 겁니다. 인도의 자연을 모방하면 인간 사회의 관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버리지요. 사실은 대단히 위험한 겁니다.  36


유유상종이란 말을 하는데 여행이 바로 그런 겁니다. 시시한 여행을 할 때는 시시한 사람을 사귀지요. 얽매인 데 없이 좋은 여행을 할 때는 열에 여덟아홉 정도로 격이 높은 사람을 사귀게 됩니다. 나는 최고의 인간을 만나진 못했는지 몰라요. 하지만 높은 인격의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 곧 좋은 여행은 아닙니다. 더없이 시시한 녀석부터 차원 높은 사람까지, 오히려 여행 중에 얼마나 다양하게 만났느냐가 중요하지요. 그것이 여행의 풍성함이라고 생각합니다.  37


명상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겁니다.  48


화장하는 광경을 이십 일쯤 내리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불타고 있는 시신 근처에 가면 불길 때문에 엄청나게 뜨거워요. 나중에 보면 눈썹이 고불고불 그슬려 있기도 해요. 광각 카메라를 들고 머리 같은 게 불타오르는 곳으로 다가갑니다. 연기 속으로 들어가지요. 그렇게 이십 일쯤 기나면 시신 냄새가 몸에 배어버립니다.... 사진을 찍는 것과는 관계없이 모르는 사이에 죽음의 냄새가 들러붙어버립니다. 그런 것도 하나의 명상이지요. 모르는 사이에 한다는 게 좋아요.  49


오랜 여행은 여자와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면 못할 것 같아요. 그런 실감을 근거로 추측해보면 그토록 오랜 세월 여행을 한 마르코 폴로는 분명 호색한이었을 거라고,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그 말을 들은 친구가 마르코 폴로에 관한 역사 기록을 살펴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실이었어요. 베네치아에서 창부와 싸움을 벌여 재판에 부쳐지자 마지못해 국외로 도망쳤다는 겁니다. 호색한이었던 까닭에 그런 위대한 여행이 가능햇다고 할 수 있어요. 역시 마르코 폴로의 여행은 정통이었던 거지요.(웃음)  62

  

질문 : 후지와라 씨의 사진에는 분명 사물이 찍혀 있지만, 그게 자신의 눈 속 스크린과 바깥 세계의 피사체가 이중으로 찍혀 있는 느낌을 줍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카메라를 사용하는데 어떻게 그런 사진이 찍히는 건가요?

--> 보통은 오른쪽 눈으로 찍는 게 표준입니다. 카메라 역시 그렇게 설계되어 있어서 왼쪽 눈으로 찍으면 와인딩 레버가 얼굴에 부딪히게 되지요. 그런데 나는 철저히 왼쪽 눈입니다. 처음부터..  74



비르바탈은 여름굴만 한 크기에 껍질이 플라스틱처럼 단단하고 매끈하다. 속에는 형태가 분명치 않은 끈적끈적한 주황색 과육이 들어차 있는데, 이것이 설사나 그 밖의 위장병에 직방이다.  125


인도에 온 히피는 처음부터 생각하고 화내고 고민하기를 포기한 채 바람에 나불거리는 꽃잎처럼 인도 곳곳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그것은 흡사 울음을 그친 아이가 바람에 눈물이 마르는 것이 기분 좋아 까불며 뛰어다니는 모습 같다.  161


화장터를 이르는 말 .. 일본어는 가소바, 영어는 크리머토리, 힌디어는 스마산.

힌디어는 그 말소리에서 오는 느낌이 실로 상스럽다. 

앗차(좋아)

나힝(아니오)

다히(요구르트)

짤로 짤로(가자 가자, 비켜 비켜)

싸합(선생님, 어르신).  188


<인도방랑>은 열에 들떴던 내 젊은 날의 부끄러운 첫 기록이다.  357










Posted by W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