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이페이이야기>, 국내 개봉명은 <타이페이 카페스토리>에는 몇 가지 질문이 나온다.

그 중에 '만약 선책이 가능하다면, 세계여행카드, 공부의카드?'라는 질문이 나온다.

이 영화는 주인공 두얼의 오랜 꿈이었던 카페 개업으로 시작한다. 두얼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여동생 창얼은 언니를 도와 카페에서 일을 하는데, 창얼은 손님이 별로 없자 개업식에서 친구들이 주었던 도움안되는 잡동사니 선물을 물물교환을 제안하고, 그것이 알려지며 타이페이 명소로 자리를 잡게 되기도 한다.

스튜어디어스의 폰 액세서리를 두얼이 갖고 싶어하자 창얼은 자신의 이야기와 액세서리를 교환하기로 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릴때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두 장의 카드를 작성하여 하나의 카드에는 '세계여행'을 다른 한 장의 카드에는 '공부'를 적고서는 자매에게 한 장씩을 뽑게 한다. 

동생 창얼은 '세계여행'카드를, 언니 두얼은 '공부'카드를 뽑게 되고 두얼은 열심히 공부하는 인생을 충실하게 살았고, 창얼은 그때부터 오랫동안 세계 여러 곳을 여행하며 세상을 보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화면은 위에서 표현한 질문을 한다.


(원래는 질문하는 사진을 캡쳐하려 했는데 갑자기 데스크탑의 하드가 날아가버려 영화까지 사라졌다...더 가슴아픈건 최근7년간의 여행에 사진들이 모두 날아갔다...다행이 3년정도는 다른곳에 두어서 찾긴했지만 나머지 4년의 사진들이 모두 ㅠ.ㅠ)


그러면서 인터뷰 화면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답변이 나온다. 공부를 택한 사람, 여행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의 영상이 나오고 다시 영화로 돌아온다.


선택을 위한 질문이란 것은, 우리 삶에 있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다.

그럴때마다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

선택의 기로에서 자기만의 기준을 이용하여 결정하게 되는 것일까?

좀더 근본적인 해결을 주는 선택을 학게 될까?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 교장은 '우리는 옳은 것을 선택하기 보다는 편한것을 선택한다'라고 한 표현처럼 우리는 그 시점에서 편해보이는 선택을 하고 있을까?


물론 상황마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의 선책들을 돌아보고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 비중을 두고 싶다.


세계여행의 카드와 공부의 카드에서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더 많이 하게 될까?

나는 당연히 전자를 훨씬 많이 선택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유는 우선 내가 여행을 좋아하기에 많은 이들이 그럴것이라는 생각에서이기도 하다. 너무 성급한 일반화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근데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연히 공부가 싫어서라도 여행카드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그에 더해 여행은 누구나 동경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탈을 위해서라도 여행을 원하게 된다. 그런데 세계 여행이라는데 싫어할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또한 많은 수의 사람들은 여행을 동경하지만 떠날 용기가 부족하기에 이런 질문이 오면 염원에 대한 두려움에서라도 세계여행을 선택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세계 여행 카드가 더 많은 선택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야기하고 있는 그 질문을 이렇게도 해석해 보고 싶다.

세계여행? => 능동적인 공부

공부?  =>  수동적인 공부

표현만 보더라도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물론 무조건적 의미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미리 말해준다. 

이전의 글(배움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하는가?) 에서 언급한 것처럼 매우 수동적인 배움을 한다는 관점에서 바라본 수동적 공부를 말하는 것이다.

공부를 선택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능동적으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찾아가는 공부를 할 것이겠지만, 꽤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에 표현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았다는 것이다. 오해마시길..


사실 관광이 아닌, 여기서 말하는 관광은 패키지 여행 상품같은 부류를 말하는 것이다. 모든 정해진 일정에 따라 시간 정해놓고 구경하며 사진찍고, 기념품 남기고 대절된 차량에 몸을 싣고 이동하는 짜맞추어진 여행말이다.

이러한 관광은 내가 말하고 싶은 수동적인 부류이다.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은 관광이 아닌 여행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에서 즉 무에서, 하나하나 정해나가는 것 즉 유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말한다.

조사도 필요하고 어느 정도의 계획도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계획이란 표현은 계획이 있더라도 변수의 영향으로 수정, 보완이 수시로 일어난다는 의미도 있다. 이것은 부딪힘 즉, 경험이라는 산물이다. 경험은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유연성을 부여해 주게 된다.

몰개인화(deindividuation) 즉 군중속에서 일어나는 개인 정체성이 상실되어가는 현대에는 더욱더 필요한 경험이 되어 줄것이다.


또한 여행은 과거를 만나게 하고, 현재를 가늠하며 좀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도 한다.

여행을 통해 과거와 만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큰 마력을 가진다. 인간은 대부분 인간의 기원을 궁금해 하기에 종교도 발전해 온 것처럼 말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극중 애드리아나는(피카소 그림의 모델이자 연인이기도함. 실제 피카소의 연인 중에 이 이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음) 주인공 길 펜더와의 만남에서 '나에게 과거는 큰 마력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 우연히 길과 더 이전 시대의 과거로 떠나게 되고, 그 시대를 보며 계속 과거의 시대에 머물러 있을것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내가 경험하지 못할 미래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전해들을 수 있는 내용만으로 이루어진 과거에 대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과거에만 사로 잡혀 있다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여행은 과거에만 묻혀 잇도록 하지 않는다. 과거와의 조우를 통해 현실을 더 현명하게 바라보게 해준다. 영화에서 길은 애드리아나가 과거에 남아 있으려 할때 이렇게 대답하고는 다시금 자신의 시대로 돌아간다.

'여기에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되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속의 황금시대를. 현재란 그런거에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



극중 길은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약혼녀의 부모가 파리로 출장차 방문할때 같이 따라왔다. 그는 파리에 머물고 싶어한다. 시나리오 작가로 인지도가 있지만 그는 소설을 쓰고 싶어하고, 영감을 주는 파리에 살고 싶어하기도 한다.(물론 파리는 과거도 아니며, 여행이지만 소설의 영감을 주는 곳이기에 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연히 시간 여행을 통해 파리의 옛 풍경 속을 여행하게 된 것이다. 그는 여행자로서의 경험을 통해 현실을 제대로 보는 눈이 길러진 것이라 보인다.


여행은 공부다. 그것도 능동적인 공부. 찾아서 할 수 있는 공부. 자신의 현재 위치가 어디이든 여행은 이런 점들에서 일반적인 수동적인 공부에 비하면 좀 더 바람직하며 능동적인 공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리에 앉아서 하는 공부를 폄하하고자 함은 아니다.


이런 능동적인 공부는 즐거움과 기대, 흥분, 짜릿함, 순수함, 감동들까지도 느끼게 한다.

처음 내용으로 돌아가 보면 <타이페이이야기>에서 '당신의 맘속에 가장 큰 가치는 뭔가요?'라는 질문이 있다.

이번에도 인터부 영상이 나오는데 가족, 행복, 평화, 즐거움, 순수함.. 이라는 답들이 나온다.

여기에도 답이 있다고 보았다. 여행이라는 녀석은 위의 답들에 매우 부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행을 통해 가족을? 물론 물리적인 가족을 꾸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은 가까운 사람들, 특히 가족에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일반적으로 추상적인 행복에 대해 생각도 하게되고 새로운 느낌을 가지게도 해준다.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세상에도 자신 안에서도  절실함을 알게 해준다. 더 많은 설명을 할 필요도 없이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글의 제목보다는 여행 예찬론이 되어가는 느낌이 들긴하지만. '선택'이란 기로는 우리에게 생각 아니 고심을 준다. 그 한가지의 예시 질문을 통해 생각하는 짧은 시간을 가져본다.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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