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멘트

꽤 이른 아침이었다. 거리는 깨끗했고 텅 비어 이었다. 나는 역으로 갔다. 시계탑의 시곗바늘과 내 시계를 비교해보고 이미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늦었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급히 서둘러야만 했다. 늦었다는 사실에 너무 놀란 나머지 나는 길에 대한 확신을 잃게 되었고, 게다가 아직 이 도시에 대해 썩 잘 알고 있지도 않았다. 다행히도 근처에 결찰관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그에게 달려가 급히 길을 물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서 길을 알고 싶은가?"

"네." 나는 말했다. "혼자서는 길을 찾을 수가 없어서요."

"포기해, 포기해!" 그는 이렇게 말하고 몸을 홱 돌려 나를 외면했다.

마치 웃으면서 혼자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처럼.  49-50



인디언이 되고 싶은 소망

내가 인디언이라면, 즉시 채비를 갖추고, 달리는 말 위에 올라, 허공에서 몸을 비스듬히 젖히고, 짧은 전율을 느끼고 또 느끼며 진동하는 대지 위를 내달리리라. 박차를 잃어버릴 때까지. 사실 박차는 애당초 없었다. 고삐를 내던져 버릴 때까지. 사실 고삐도 애당초 없었다. 눈앞에 매끄럽게 풀이 깎인 황야가 펼쳐진 순간, 말의 목도 말의 머리도 이미 흔적이 없었다.  87



여행자 예찬 

열차 안에 앉는다. 신경 쓸 것이 없다.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시간을 보낸다. 갑자기 기억들이 떠오른다. 출발하는 열차의 잡아태는 힘이 몸에 느껴진다. 이제 여행자가 되는 것이다. 가방에서 모자를 꺼낸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더 자유분방하게, 더 많은 인정을 베풀며, 더 간절하게 대한다. 열차는 공치사 하나없이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이런 점을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느낀다. 여인들의 애인이 된다. 창문이 보여주는 끊임없는 매력에 이끌리며, 언제나 최소한 한 손이라도 쭉 뻗어서 창문턱에 올려놓은 채 그대로 둔다. 조금 더 주의 깊게 상황을 보자면, 사람들은 단 한 번의 충격으로 섬광 같은 열차 안에서 혼자 여행하는 아이가 되고, 그 아이 주변에서는 조급함에 몸을 떠는 객차가 마치 요술쟁이의 손에서 튀어나오는 것처럼 놀라울 정도로 너무나도 아주 가볍게 생겨나고 출발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잊고 있었고, 더 심한 것은 자신들이 잊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88-89



골목길 창문

고독하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저기 어딘가에 연결되고 싶어 하는 남자, 낮 동안의 시간의 변화들, 날씨의 변화들, 직업 상태에 따른 변화들과 그와 같은 것을 고려하면서 자신이 의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임의의 힘을 당장 보고 싶어 하는 남자-그 남자는 골목길 창문이 없다면 그것을 아마 오래 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골목길 창문은 그와 그런 사이라서, 그는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친 남자같이 겨우 눈만 관객과 하늘 사이에서 아래위로 움직이며 자신의 창문턱 쪽으로 갔다. 그리고 그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머리를 뒤쪽으로 조금 젖히고 창문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아래에서 마차의 수행원과 소음 속에 있는 말들이 역시 그를 감동시키고 마침매 그럼으로써 인간적인 융화가 되었다.  101



Posted by WN1
,


1장 - 네 멋대로 해라 (청소년 인권)


'지랄 총량의 법칙'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쨋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18


착각할 수 있는 나이에는 착각을 하면 됩니다. 그 착각에 너무 깊이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헤어나올 때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다가 인생이 늦어진다면? 늦어지면 됩니다. 10대나 20대에는 인생이 남들보다 3~4년 늦어지면 큰일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지나고 보면 몇년 빠르고 늦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시기마다 겪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 딸만은 그런 과정을 생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한 욕심입니다. 청소년기에 그런 미망(迷妄 미혹할미 망령망)의 시기를 보내지 않고는 성숙이 있을 수 없으니까요.  24-25


교육을 위한 제약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제약은 필요최소한도에 그쳐야 합니다...

불과 30년 전까지 우리나라는 길 가는 멀쩡한 어른들의 머리를 자르고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쟀습니다. 그때는 그게 모두 정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0




2장 - 왜 이렇게 불편할까? (성소수자 인권)  


'다름'에서 온 것입니다.  59


내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존재함을 최소한 이해는 해야 합니다.  65


특별한 논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주장 중에 논리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 까닭입니다. 동성애자를 차별하려면 우선 어떤 사랑(예컨대 이성애)이 다른 사랑(예컨대 동성애)보다 더 우월하고 가치있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런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증명도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동성애자 차별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주로 내세우는 것은 가정의 가치입니다.  70


동성애자들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쾌락만을 추구한다는 편견도 있습니다.  71


동성애는 일종의 질병이기 때문에 치료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오랜 세월 서구사회를 지배해왔습니다...

동성애자들에 대한 징벌로 AIDS라는 치명적인 질병이 생겨났다는 믿음도 동성애 반대의 유력한 근거가 됩니다.  72


어디까지나 혼인과 가족생활은 오직 양성 사이에서만 보장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헌법은 국민에게 보장된 권리와 제도의 최소한의 규정한 것이지, 최대한을 규정한 것이 아닙니다.  73


결국 동성애자들에게 이성애자와 동일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내가 싫어하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그것은 비윤리적이며, 따라서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76


동성이냐 이성이냐를 떠나서 관계 자체가 지니는 보편성과 개별관계의 특수성을 관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81


순전히 남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도 동성애자들이 받고 있는 제도적, 법률적 차별의 장벽은 앞으로 점점 무너져갈 것이 분명합니다. 차별할 근거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의 장벽입니다.  87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는 것이 바로 인권의 황금률입니다.  88




3장 - 뺨따귀로 사랑 표현하기 (여성과 폭력) 


명절 때 잠깐씩 부엌 근처에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저는 천하에 없는 좋은 남편이 됩니다. 그러나 명절 내내 부엌을 지키는 어머니와 아내의 노동은 언제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작은 차이 같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박은 이런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그 자체로 특권입니다.  94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을 존중하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107


평등권 확보라는 기존의 노력을 계속하되, 여성 개인이 자기 색깔을 찾아가는 다양한 노력도 인정할 필요가 있겠지요.  117




4장 - 공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까? (장애인 인권) 


장애인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는 것도 결국은 권력의 문제, 철학의 문제입니다...

장애용어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장애에 관한 인식의 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는 것입니다.  147


우리나라에서는 유전자검사를 흔히 '기형아'검사하고 부릅니다. 마치 '장애인'과 구분되는, '기형아'라고 하는 범주가 따로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기형'은 장애를 그야말로 기형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 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153-154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한계를 느끼는 것은 근본적으로 장애인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적 편견 때문입니다. 

불가능성 패러다임에 기초한 교육과 근로기회의 박탈이 오히려 장애인들을 일하지 못하는 무능력자로 만들어버린 것뿐입니다.  161




5장 -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는 언제 나올까?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노조원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노조가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고, 노조지도부가 '귀족'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이 급증한 후에는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도 존재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노조의 단결뿐입니다. 그래서 헌법은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돈도 권력도 없는 노동자들이 노조까지 잃게 되면 그의 신분은 노조원에서 노예로 급락합니다. 일단 한번 추락하고 나면 다시 노조원의 지위를 회복하기란 너무도 힘이 듭니다. 영국은 그렇게 노동자들이 다시는 목소리를 회복할 수 없었던 좋은 예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영국의 보수당 정권과 보수언론은 1984~85년의 탄광노조 파업에 대해 '폭력이 난무하고, 민주적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불명료한 선동구호만 넘쳐서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미지를 심어왔습니다. 이 파억이야말로 '영국병'을 상징하는 노조지도자 스카길의 무리수였고, 새처 총리가 이를 과감하게 진압함으로써 영국병을 치유하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그대로 한국까지 전해져 지금도 마치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빌리 엘리어트>나 <브래스트 오프>는 이런 일방적인 선전을 되돌아보게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합니다.  178-179


지능적인 공격  179


어차피 사람들은 진실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180


1980년대 후반부터 대법원은 기업이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음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회사 마음대로 아무 때나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고를 하지 않으면 기업 경영이 위태로울 정도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존재하고, 회사는 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했어야 하며, 합리적이고 공정한 정리기준에 따라 해고대상자를 선별해야 하고, 해고에 앞서 노동조합이나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통지를 하고 이들과 성실한 협의를 거쳐야 합니다. 이런 요건들은 1996년 날치기로 통과된 노동법 개정에 의해 근로기준법 안에 수용되었습니다. 겉으로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해고 자유의 원칙으로 넘어가기 위한 우회로에 불과했습니다.  184


기간제노동자의 고용기간이 2년을 넘게 되면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도록 의무화하여 노동자를 보호하려고 했더니, 기업들은 2년동안 부려먹은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대신 아예 2년이 되기 전에 잘라버리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186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것마저 귀찮아지자 기업들은 '파견근로자제도'라는 편법을 활용하기 시작합니다.  187


우리나라에서도 대기업 노조와 소규모 노조, 남성과 여성,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 자기들끼리 싸우게 하는 '이로제로(以勞制勞 써이 일할로 억제할제 일할로)'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시작한 것입니다.  191




6장 - 1년에 600명의 청년들이 교도소에 가는 나라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종교란 매우 비정상적이지만, 동시에 언제나 인간의 삶과 동행해온 일상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209


헌법이 보장하는 여러 기본권 중에서 종교의 자유가 특별히 더 중요한 이유도 바로 이 '비정상성'에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외형적으로 가장 이상해 보이는 사람들의 자유를 보장한 것입니다. 보면 볼수록 이상한 사람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로 한 것이 근대헌법의 가장 위대한 결단입니다.  210




7장 - 영화 화면을 자르는 사람들 (검열과 표현의 자유) 


시대의 억압이 도피를, 도피는 중독을 낳습니다.  242


지금 대한민국에는 제한상영관이 하나도 없습니다. 

네가 성인이든 아니든 간에 제한상영가 영화를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영화는 등급을 받아야 하고, 그중의 어떤 영화는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는데, 대한민국에는 현재 제한상영가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게 사전검열이 아니라면 세상에 사전검열이란 어예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요.  248


무엇보다 사전검열을 통해 사회의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릴 때가 되었습니다.  251


음란물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길은 그런 수준 낮은 작품들을 구매하지 않는 튼튼한 청소년들을 길러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252


미국은 영화의 역사만큼 오래된 검열의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등장할 때부터 영화는 시나 소설 같은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일종의 비즈니스로 취급되었습니다.  253


영화등급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 알아서 잘 매기고 있겠지' 생각하고 아무 의심 없이 그 등급을 받아들입니다. 

인간세상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이 영화등급 역시 논리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력의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권력의 오남용이 시작됩니다. 당장 나 먹고살기도 힘든데 어떻게 남의 일까지 신경쓰나 생각하고 자꾸 넘어가다보면, 어느새 그 일이 내 문제로 바뀌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늦지요. 내 문제에 대해 남들이 외면하는 것을 보고 뒤늦게 가슴을 쳐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인권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누가' 그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주목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261


부모들은 무조건적인 금지가 아니라, 아이가 던지는 질문들에 정직하게 답변할 마음의 준비부터 갖추어야 합니다.  273




8장 - 누가 앵무새를 죽였는가? (인종차별의 문제) 


소설 속에서 애티커스 핀치가 딸에게 주는 가르침의 핵심은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92




9장 - 그냥 다 죽이면 간단하지 않나요? (차별의 종착역, 제노싸이드) 


우리는 수만명이 폭격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별로 충격을 받지 않습니다. 제노싸이드로 부르려면 최소한 100만명쯤은 죽어야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폴란드 출신 유대인으로 국제법 전문가였던 라파엘 렘킨(1900~59)이 처음 만들어 끈질긴 노력 끝에 유엔 제노싸이드 범죄방지 및 처벌에 관한 협약에 포함시킨 정의에 따르면, 제노싸이드는 "민족, 종족, 인종, 종교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로 범해지는 모든 행위"를 의미합니다.  332


제노싸이드가 되기 위해 반드시 '민족, 종족, 인종, 종교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파괴할 의도'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무리한 요구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의도를 입증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량학살이 존재한다면 바로 그게 제노싸이드라고 보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설명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폭격에 대해 그렇게 관대하고 둔감한 이유는 그게 얼마나 무서운지 간접적으로라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333


<살인의 추억>이나 <추격자>에서 연쇄살인 피해자가 늘어날 때마다 공포에 몸을 떨면서도,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10만명이든 100만명이든 일종의 숫자놀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들입니다.  334


약자와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는 그런 숨겨진 비밀은 영웅을 탄생시키는 원동력입니다.  335


국가는 언제든지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

국가는 우리에게 국방, 교육, 사회보장, 치안, 사법 등을 제공하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가를 고마운 존재로만 생각하고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곳에서 인권의 유린이 시작됩니다.  349


우리의 벌거벗은 모습을 혼자 훔쳐본 권력자는 스스로를 '전능한 하나님'으로 착각하게 되고, 한번 맛들인 그 놀라운 정보의 노예가 되기 마련입니다...

우리 모두의 삶에는 은밀하게 감춰져야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권력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알 수 있는 손쉬운 기회를 훨씬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권력자가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끊임없이 감시해야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351


괴물이 된 국가씨스템을 움직이는 데는 많은 악마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한두명의 악마와 수많은 평범한 복종자들이 있으면 충분합니다.  355



Posted by WN1
,




그곳에서 발길을 돌리는 순간 나는 레밍턴 타자기를 다시-꾸준히 자신 있게, 충동적으로, 끝없이-쳐대는 소리를 들었다. 버스를 타고 미라플로레스로 돌아오면서 나는 페드로 카마초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어떤 사회적 환경이, 상황과 사람과 인연과 문제와 사건과 뜻하지 않은 일들 간의 어떤 연쇄 작용이 그처럼 열매를 맺고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되어 청취자들을 끄는 이 문학적(문학적이라? 만일 그게 아니라면 대체 뭐라고 불러야할까?) 재질을 산출해냈을까? 어떻게 그는 작가의 전형인 동시에, 자신의 재능에 바치는 시간과 생산해내는 작품 덕분으로, 페루에서 작가라 불릴 만한 단 하나뿐인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시인이니 소설가니 극작가니 하는 이름으로 통하는 그 숱한 정치가, 법조인, 교수... 문학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활동에 허비되는 삶에서 짧은 막간을 이용해 얄팍한 시집이나 빈약한 단편집을 한 권 냈다고 해서, 그들이 과연 진정한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어째서 문학을 일종의 치장이나 구실로 삼는 사람들이 오직 글을 쓰기 위해 살고 있는 페드로 카마초보다도 더 진정한 작가로 대우받을 권리가 있는 것일까? 그들이 프루스트, 포크너, 조이스의 책을 읽었던(아니면 적어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반면 페드로 카마초는 거의 문맹이나 다름없기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 나는 슬프로 속이 상했다. 날이 갈수록 이 세상에서 내가 하고 싶은 유일한 일은 작가가 되는 것이란 생각이 점점 더 분명해졌고,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과 정신을 오로지 문학에만 쏟아야 한다는 생각 또한 점점 더 굳어져갔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은 절대로 시시한 삼류 작가나 아르바이트 작가가 아니라 진정한 작가였다. 누구처럼? 그때껏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자기 직업에 몰두하고 전념하여 진정한 작가가 되는 데 가장 접근한 사람은 라디어 연속극을 쓰는 볼리비아인 작가였으며, 그것이 바로 그가 나를 그처럼 매혹시킨 이유였다.  13-14



"괴로움은 훌륭한 스승이니까."  100




옮긴이의 말 - 이런 소설 보셨나요?


이 소설은 작가의 실제 결혼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여 개성있는 주인공들과 유머러스한 상황을 적절히 배합해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 일종의 자전 소설이다. 작가는 자신을 모델로 한 주인공이 마침내 집안 아주머니뻘 되는 연상의 여성과 결혼하는 과정을 그림으로써 금지된 사랑의 유혹을 다루는 동시에, 한 젊은이가 세상과 자신의 집안에서 설 자리를 찾고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을 이해시켜가는 성장 소설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훌리아 아주머니와의 사랑 이야기와 더불어 저명한 방송작가 페드로 카마초의 연속극 이야기를 병렬식으로 전개함으로써 현실과 허구를 교묘히 짜맞추고 있다.  363


Posted by WN1
,



"이혼녀 입장에서 제일 못마땅한 건 사내라면 누구나 꼬시려고 든다는 그런 게 아냐." 훌리아가 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보다는, 이혼녀니까 로맨틱하게 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지. 사내들은 이혼녀하고는 시시덕거리지도 않고 달콤한 헛소리를 속삭이지도 않아. 그저 아주 저질스럽게 자기네 욕구가 뭔지를 대놓고 까발린다니까. 정말 넌더리가 나. 그게 바로 내가 나이든 놈팽이하고 춤추러 가기보다는 너하고 영화를 보러 가는 이유야."  29


예술가에게는 온 세상이 다 고향.  86


보르헤스의 작품처럼 엄정히 객관적이고 지적이고, 간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쓰고 싶었다.  90


서머싯 몸의 작품처럼 가볍고 재미있는 것이나 아니면 모파상의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비꼬인 사랑 얘기 같은 것으로.  96


연인과 애인이라는 정반대의 두 범주 중간쯤에 놓이게 되었다.

우리는 애인들의 고전적인 특성-내밀함, 남의 눈에 띌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우리가 대단한 모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공유했지만, 그러면서도 성관계는 가진 적이 없었으므로(그런데 하비에르는 나중에 우리가 서로를 '애무한'적도 없다는 걸 알고 몹시 놀랐다) 정신적인 애인이었다. 동시에 우리는 그 당시 미라플로레스의 청춘남녀들이 지키고 있던 고전적인 연인들의 의례들(영화 보러 가기, 영화 보는 중에 키스하기, 손잡고 길거리 쏘다니기)을 존중했으며 우리의 행동 또한 순결하고 정숙했다. (그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는 미라플로레스의 처녀들 대부분이 결혼식을 올리는 날까지 숫처녀였고, 연인에게 가슴이나 사타구니를 만지도록 허용하는 것도 약혼이 공식적으로 발표되어 연인이 약혼자로 격상된 다음이었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상당한 나이 차와 서로 인척 간이라는 엄연한 사실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겠는가?) 우리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엉뚱하고 애매한지를 알게 되자 우리는 장난 삼아 그런 관계를 빗대기에 적당한 재미있는 이름들을 생각해냈고, 우리의 관계를 영국식 약혼이니 스웨덴식 로맨스니 터키식 드라마니 하고 불렀다.  178-179


마크 트웨인부터 버나드 쇼, 하르디엘 폰셀라, 그리고 페르난데스 플로레스에 이르기까지 손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유머러스한 작품들은 닥치는 대로 다 읽었다.  193

Posted by WN1
,


인생을 겉돌지 않겠다는 다짐은 눈빛을 살아 있게 한다

무구한 눈빛은 사람을 사로잡는다. 그 눈빛과 마주하는 순간 살고 싶어서 일순간 발바닥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그 눈빛이 내가 잃은 지 오래된 것이기도 하고 그 눈빛으로 내가 씻겨지는 기분마저 들기도 해서 마치 좋은 바람 앞에 서 있는 것만 같은 것이다.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사람은 커피콩을 갈고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좋은 눈빛으로 주시하고 집중한다. 그런 사람이 내주는 커피는 이미 마시기도 전에 맛있다는 생각을 머릿속 가득 채워준다. 어떻게 보면 그 좋은 눈빛이 커피에 닿아서일 거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음식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좋은 눈빛을 가진 사람은 잘되게 되어 있다. 잘하겟다는 그 마음이 눈빛으로 옮겨가면서 마침내 좋을 수밖에 없는 결과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눈빛은 그 사람을 가장 절묘하게 드러내주는 설명서이자 안내서 같다...

좋은 눈빛에 흔들렸으면 한다.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쉬지 않는 눈빛과 마주쳤으면 한다. 그것이 다행한 일이다.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서요

우리가 한 편의 시를, 한 명의 좋아하는 시인을 가슴 안에 키울 때 얼마나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일 수 있는지 절감하게 되기를 바랐다.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것은 꼭 이십대에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는 점이다. 이십대에 사랑을 해보지 않으면 골조가 약한 상태에서 집을 짓는 것처럼 불안한 그 이후를 보내게 될 것이며 살면서 안개를 맞닥뜨리는 일이 잦게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 이십대에 혼자 여행을 해보지 않는다면 삼십대에는 자주 허물어질 것이다.

그리고 또 닮은 것은, 사랑도 여행도 하고 나면 서투르게나마 내가 누구인지 보인다는 것이다.

한번 빠지게 되면 중독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도 닮았다.

또 사랑을 하거나 여행을 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많은 사진을 찍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소중한 것을 남기고 간직하고 싶어하는 자연스런 욕구가 그 무엇으로 대체될 수 없듯 사랑의 대상과 사랑의 순간을 찍는 일이나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순간순간들을 담는 일, 그 둘은 차곡차곡 쌓여간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며 그 욕구 또한 강렬해지는 것, 그 또한 사랑이 여행이랑 닮은 점이다. 그리고 왜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져야 하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사랑과 여행이 닮은 또하나는 사랑이 끝나고 나면 여행이 끝나고 나면 다음번엔 장말 제대로 잘하고 싶어진다는 것, 그것이다.  




이 말들은 누구의 가슴에서 시작됐을까

단풍이 말이다, 계속해서 남쪽으로 남쪽으로 물들어가는 속도가 사람이 걷는 속도하고 똑같단다. 낮밤으로 사람이 걸어 도착하는 속도와 단풍이 남쪽으로 물들어 내려가는 속도가 일치한단다. 어떻고 어떤 계산법으로 헤어리는 수도 있다는데 도대체 이런 말은 누가 낳아가지고 이 가을, 집 바깥으로 나올 때마다 문득문득 나뭇가지들을 올려보게 한단 말인가. 말과 말 사이에 호흡이 배어 있는 것 같은 이 말은, 이 근거는 누구의 가슴에서 시작됐을까.

또하나의 믿을 수 없는 것은 식물의 이름에 관련되어 있다. 백리향이라는 풀의 이름에도 그만한 쉼표와 호흡이 장치되어 있다. 백리향은 낮게 자라는 나무의 일종으로 주로 높은 산에서 볼 수 있는데, 이 식물의 향은 가을 풀 향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단지 식물의 냄새만이 아닌 동물적인 냄새까지도 포함하고 있는데다 진하고 또 강렬하여 늦은 밤 책상에 앉은 사람, 마음이 허전한 사람, 종일초록 기력이 없는 사람, 사는 것이 지옥 같아서 자꾸 먼 데만 보는 사람을 자극하는 데 직방이다. 백리향도 발끝에 붙은 향기가 백 리를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세상에나, 다른 데 넣어둔 향기도 아니고 그저 발끝에 붙은 향기라니, 표현 참 아찔하다. 이름에 과감히 비과학을 이어붙인 것은 또 누구일까, 잘 모르긴 해도 감정의 물결이 꾸미고 벌이는 일일 터.




지금으로부터 우리는 더 멀어져야

불을 켜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거나, 불을 켜지 않은 채 가만히 사위가 어슬해지는 바깥에 눈길을 주고 있으면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다. 알지 못할 것이기도 하려니와 알 것만 같은 그 무언가이기도 한 것이 한순간 몰려온다. 그것으로 인해 그 시간이 채워지기도 하며 비워지기도 하는 그 무언가는 맛이 있지 않은, 퉁퉁 부은 눈가 같은, 처방을 허락하지 않는 시간이면서도 어떤 구체적인 덩어리가 아니어서 달리 설명할 길은 없다. 그럼에도 탁 하고 불을 켜면 이내 사라지고 마는 그것의 정체는 느리고 아주 묽은 것임에는 분명하다. 굳이 덧붙이자면 세상의 가치와 속도와는 전혀 다른 화학물질을 닮았다는 정도밖에는 설명할 능력도 없다.




만약 누군가는 사랑하게 되거든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많이 먹지 말고 속을 조금 비워두라.

잠깐의 창백한 시간을 두라.

혼자 있고 싶었던 때가 있었음을 분명히 기억하라.

어쩌면 그 사람이 누군가를 마음에 둘 수도 있음을,

그리고 둘 가운데 한 사람이

사랑의 이사를 떠나갈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라.

다 말하지 말고 비밀 하나쯤은 남겨 간직하라.

그가 없는 빈집 앞을 서성거려보라.

우리의 만남을 생의 몇 번 안 되는 짧은 면회라고 생각하라.

그 사람으로 채워진 행복을 

다시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함으로써 되갚으라.

외로움은 무게지만 사랑은 부피라는 진실 앞에서 실험을 완성하라.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예감과 함께 맡아지는 

운명의 냄새를 모른 체하지 마라.

함게 마시는 커피와 함께 먹는 케이크가 

이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이런 맛이 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라.

만날 때마다 선물 상자를 열 듯 그 사람을 만나라.

만약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거든.




명장면 하나쯤 간직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두 사람은 기차에서 만났습니다. 

여자는 몸이 조금 불편했고 남자는 무심했습니다.

모르는 사이니 괜찮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여자와 남자는 

기차에서 조각 같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았고 기차에서 내릴 때

남자가 여자를 조금 도와준 것을 마지막으로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흐르는 시간도 흐르는 풍경도 여행자라서 괜찮았습니다.


여자와 남자는 숙소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우연이었습니다.

다시 만난 것은 처음과는 달랐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눈 입자만큼 각진 인생 이야기를 들었고

남자는 여자가 만든 뜨거운 감자 수프를 나란히 나눠 먻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물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했던 시간의 냄새도 떠올렸습니다.


주관적인 모든 것들은 사이를 두고 객관화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기류 속에 있어서 같았고

지금 존재하는 모든 것을 고스란히 담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이 또 달랐습니다.

두 사람은 다시 헤어져야 합니다.

여행자이기에 그쯤이야 괜찮을 것이었습니다.


여자가 가방을 끌고 길을 나섭니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2층 창문을 열고 발코니에 나와 서서 손을 흔듭니다.

여자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남자의 손 흔드는 모습을 찍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에게 잠깐만 기다리라 햇습니다.

이번에는 남자가 자기 카메라를 가져와

오래 손 흔드는 여자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우산처럼 기억될 것입니다.

멀어지지만 괜찮을 것이었습니다.




매일 기적을 가르쳐주는 사람에게

사람은 그 자체로 기적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고, 마음 안에 그 한 사람을 들여놓는다는 것은 더 기적이지요.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황홀합니다. 혼자서는 결코 그 어떤 꽃도 피울 수 없다는 것도 황홀입니다.

우리가 기대는 것은 왜 사람이어야 할까요. 왜 사람을 거쳐서 성장하고 우리는 완성되어야 할까요. 혼자여서 불안한 것은 마땅히 이해되는 불안이지만 옆에 아무도 없어서 불안한 것은 왜 그토록 무서운가요.

나는 세상 모든 관계를 사랑으로 풀려는 사람입니다. 사랑이 밑에 깔려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고, 얼굴 붉힐 일도 마음이 뭉치는 일도 없어지거든요. 일도 사람도 사랑한다고 주문을 걸고 사랑을 앞세우면 일도 사람 관계도 나아지는 것을 수도 없이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당신에게 전달하고픈 마음은 그렇고 그런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인생에 몇 번 올까 말까 한 감정임을 알아주세요.


가능하면 사람 안에서, 사람 틈에서 살려고 합니다. 사람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닐 것 같아서지요. 선뜻 사랑까지는 바라지 않지요. 사랑은 사람보다 훨씬 불오나전하니까요. 아, 불완전한 것으로도 모자라 안전하지 않기까지 하네요, 사랑은.

사람만 보고 살려고 하는데 그것도 어렵지요. 사람 냄새 참 좋은데, 사람 냄새 때문에 사람답게 살고 있는데 결국은 사람 냄새 때문에 골병이 들지요. 결국 우리는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으려 하지만 사람이 없는 곳에서의 삶, 그게 어디 가능하기나 한가요. 우리는 사람이 그리워 사람 없는 그곳을 탈출하고 맙니다.

나는 대중적으로 압도하는 풍경 앞에 서서 사진 찍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한 번 본 것으로 강렬했다면 그것은 사진보다 오래 남는 법이지요. 차라리 그게 영원할 수도 있지요.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과도 함께 사진 찍고 싶지가 않아요.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불안을 포함하고 있고 나중에라도 그 좋은 사람과 같이 찍은 사진을 보는 순간 감정이 그전 같지 않으면 어떡하나 무서워서 그래요. 하지만 이 모든 불안과 실망들이 당신 앞에서는 아무 일도 아닌 게  되었어요. 당신으로 잘 살 수 있고 당신으로 잘 일어날 수 있어요.


사람으로 우리는 집을 지어요. 강렬한 사람에 대한 기억을 가져다 뼈대를 짓고, 품이 넓은 사람에 대한 기억을 가져다 지붕을 올리고,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데려다 실내를 데웁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은 인생의 중심을 받칠 만한 사건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것으로 지은 집은 바람에도 약할뿐더러 곧 녹아내리지요. 

그러니 눈을 감지는 말지요. 그건 세상과 친해지지 않겠다는 이야기니까. 세상은 그런 당신에게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어요.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고 눈을 감은 당신에게. 세상은 사람한테로 나 있는 계단을 내 줄 수 없어요.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시간은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새에게도 나무에게도. 모두에게 아름다운 시간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별것 아닌 풍경이고 시간이라 해도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사람이 그래요.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고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 아름다운 사람.

나에게 그만큼인 사람이 바로 당신입니다. 물이 닿은 글씨처럼 번져버릴까. 혹여 인연이 아닐까 나는 목이 마르고 안절부절입니다. 부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되어주세요. 이 간절함으로 그래도 된다면 당신을 세상에 고소할 것이고, 나는 세상이 당신을 가둬놓은 아름다운 감옥으로 이사할 겁니다. 

그러니 내가 밑줄 친 사람이 되어주세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감히 당신에게 그어놓은 그 밑줄을 길게길게 이어갈 것입니다.  




이토록 서서히 퍼지는 광채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을 켜켜이 낱장으로 들어내 펼쳐 놓아보면 일대의 사건이라 할 만한 일들은 모두 처음 일어난 일들이었다.

처음 마셨던 것치고는 잘 마셨다는 생각이다. 처음 저지른 것치고는 그나마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토록 처음이어서 강렬한 것이, 그만큼 강력한 것이 내 생에서 나를 몇 번 더 뒤흔들 것인지를 너무 이른 그때여서 알지 못했던 것이다.




여행은 인생에있어 분명한 태도를 가지게하지

여행을 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너와, 여행을 다녀야 살아지는 나 같은 사람의 간극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래, 너는 여행의 조각이 아닌 다른 것들을 맞추면서 살아온 것일 거야.  

알고 있겠지만, 여행은 사람을 혼자이게 해. 모든 관계로부터, 모든 끈으로부터 떨어져 분리되는 순간, 마치 아주 미량의 전류가 몸에 흐르는 것처럼 사람을 흥분시키지.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는 풍성한 상태로 흡수를 기다리는 마른 종이가 돼.

그렇다면 무엇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먼 곳에서, 그 낯선 곳에서. 

무작정 쉬러 떠나는 사람도, 지금이 불안해서 떠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사람이 먼길을 떠나는 건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겠다는 작은 의지와 연결되어 있어. 일상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저기 어느 한켠에 있을 거라고 믿거든.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다보니 내가 최근에 본 어떤 아름다운 풍경 하나가 떠올라. 혼자라서 밋밋하기만 한 밤을 겨우 보내고 아침을 맞았는데 숙소 앞에 누군가 여러 개의 눈사람을 만들어놓은 거야. 나도 모르는 사이 밤 동안 눈이 내린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군지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존재가 아침 일찍 일어나 눈을 굴려 눈사람들을 만들었다는 건, '그냥'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아름다움이 관여한 '기적'인 거지. 과연 그 사람은 혼자 보려고 눈사람을 만들었을까. 아니지. 단지 그냥 차가운 눈을 굴린 게 아니라 기쁨이며 온기 따위를 굴린 거야. 어쩌면  사람다운 것에 더 가까워지는 연습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그 사람은 자기 인생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가진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자기 인생에 대한 분명한 태도를 갖는것, 그건 여행이 사람을 자라게 하기 때문이야.

사람은 원래 약하고 여리고 결핍되게 만들어졌어. 그건 왜 그런가 하면 그 상태로부터 뭐든 하라고, 뭐든 느끼라고 신은 인간을 적당히 만들어놓은 거야. 그러니까 스스로 약한 게 싫거나 힘에 부치는 게 싫은 사람들은 자신을 그렇게 방치하면 안 되는 몇몇 순간을 만나는 거지. 그래서 불완전한 자신을 데리고 먼길을 떠나. 그걸 순례라고 치자구.

나에게 순례는, 내가 나를 데리고 간 그 길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나와 화해하며, 나에게 잘해주는 일이야. 

높은 산으로 해 지는 풍경을 보러 올라가 넋을 놓고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알 수 없이 차오르는 마음 안쪽의 부드러움을 대면하는 순간, 맨발로 돌길을 걷고 걷다가 문득 푸른 잔디를 만나 발이 고마워하게 되는 순간, 낯선 방에 가방을 내려놓으며 이 방은 어떤 사람들의 어떤 이야기들이 거쳐갔을까 하고 낭만을 상상해보는 순간, 그 자잘한 순간들은 모이고 모여 한 장의 그림이 돼. 그 그림이 중요한 것을 우리가 안절부절하고 아옹다옹하는 일상하고는 전혀 다른 재료로 그려진 것이라는 것. 

이런 작은 느낌들은 한꺼번에 광채로 다가오지. 아무렇게나 살다가 그대로 죽을 수는 없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해주지. 그래, 그로 인해 사람이든 풍경이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를, 사랑이 쓰다듬는 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해주는 것. 그것이 여행인 거야.

걷지 않고도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야. 보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여행을 떠나더라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상태가 아니라면 아무것도 획득할 수 없게 돼. 여행은 신이 대충 만들어놓은 나 같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뻗어야 하는 진실이야. 그 진실이 우리 삶을 뒤엉켜 놓고 말지라도, 그래서 그것이 말짱 소용없는 일이라 대접받을지라도, 그것은 그만큼의 진실인 거야.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했습니까

그나저나 당신은 무엇을 좋아했습니까. 무엇으로 얼굴이 붉어졌습니까. 그런데도 그 좋아했던 것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당신은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지요.

이토록 둔탁하고 뻔뻔해지는 것은 그만큼 대체되는 것들이 많아서겠지요. 이토록 꿈을, 방향을 방해하는 것들의 정체는 무엇일는지요. 이기고자 한다면 좋아하는 것을 늘려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들과 춤춰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은 포기해야 하는 것과 밀당하지 않습니다.

잘 사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면 작은 수첩 하나를 구해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을 채워나가면 됩니다. 수첩에는 <작고 허름한 가게 장부>라는 제목을 달아놓고 말이지요.




사랑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점선처럼 만나 실선처럼 하루를 보냈습니다.




잊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식이란 건 자신이 살아온 범위 안에서지. 자신이 고개 끄덕이고 싶은 방향대로일 걸세. 내가 한 사랑이 어떠했노라고 누구에게 말하려는 순간 나 스스로도 쏟아지는 것들을 다 받아내지 못할까봐 말하지 못한 것도 있지 않겠는가.




겨울나라

겨울만 있는 시간을, 겨울만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찬 온도에서 뜨겁게 사는 것, 그것은 두 배로 사는 삶일 거라는 환상이 내겐 있다...

나는 '이 사람은 왜 이토록 나를 도와주고 있지?' '이 사람은 그저 내가 무사히 이 골목을 빠져나가기만을 바라는 사람일까?' 하는 의문의 힘으로 핸들을 돌려야 했다. '이런 일에 이렇게 나설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아무리 내가 이 지경이라도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는 마음으로 후진해 나오던 끝에 삼거리를 만났고 그곳에서 나는 사내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남기고 떠나는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보탬이 되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

하는 일이 잘되지 않을 때나 되는 일이 없을 때, 할 일이 없을 때도 마찬가지. 그때 시인이 하는 일은 영감을 부르는 일이다. 영감이라는 것이 불러서 오는 것도 아니고 기다려서 제때 맞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시인이 하는 일이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거나 왜 그래야 하는 지 모르지만 마땅히 그래야겠어서' 영감은 이런저런 일들을 지시하고 시킨다. 

영감이라고 해서 늘 굉장한 확신으로 도착하지는 않는다. 명중은 커녕 꽂히지 못할 때도 많으려니와 뭐라도 잡을 듯이 전속력으로 달려오다가 속도를 잃고 그만 숨이 죽어버리는 경우, 또 매혹적으로 다가오더라도 그걸 제대로 받아낼 수 없는 상태인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가만히 기다리는 일이 커다란 일이기도 한 것이 예술하는 사람의 일이다. 무슨 일 하세요, 라고 물으면 절박하게 군색하게 영감의 무엇과 직감의 무엇과 육감의 무엇을 기다리는 일을 합니다, 라고 말해야겠는데 제정신으로는 그 대답을 못하겠으니 직업적 고충이 참 말이 아니다.

그래서 오던 길을 문득 멈춰 서서 한참 뒤를 돌아다보기도 하고, 불쑥 먹던 밥을 중단하고 신발을 신기도 하며, 사람을 앞에 두고 앉아 한없이 아무 말 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사람처럼 탁자에 얼굴을 묻고 앉아 있기도 하는 것이다.

한 예술가가 이상히도 그러고 있는 것은 급히 바꿔놓거나 정돈해야 할 세계가 있어서 잠시 파도를 맞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주시길. 그렇다고 '잠시 파도를 맞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이마에 써붙이고 있을 수는 없어서.




오늘 비행기는 전면 결항입니다

제주.. <내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씌어 있는 카페..




사람이 꽃

"카페 하실 거면 어떤 카페 하실 건데요?"

상인이 나에게 물었다. 두번째 만나던 어느 날 밤, 서로 나눈 이야기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음,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카페요."

삐딱하게 말했지만 상인에게 삐딱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네, 이해합니다."

"뭘요?"

"자기 공간을 가졌단느 게 중요한 것이지 수입 올리는 건 부차적이란 말씀이잖아요? 책도 읽으시고 음악도 듣고 싶은 거죠? 혼자사서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죠? 사람 마음을?"

"누구나 그런 커페를 갖고 싶어하죠. 누구나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말에 슬쩍 귀가 열렸다. 저렇게 일방적인 말을 하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예의를 갖출 수 있는지. 상인은 처음부터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번엔 내가 물었다.

"사람을 좋아하나봐요."

"조금 관심만 있어요. 왜 제가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셨어요?"

"사람을 좋아하니 사람을 잘 읽는 거겠다 싶어서요."

"사람을 좋아한 적은 있었어요. 한때는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어쩌면 나는 수도사나 스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너무 좋아하면 안 되니까, 사람은..."

사람이 아니면 무엇을 좋아해야 할까....


아름다웠던 낮과 밤은 그대로 두어야 한다. 사랑하지 ㅇ낳는 사랑이라면 다른 세계로 옮겨가야 한다. 더이상 감정을 위조할 수 없다면 새로운 시간과 새로운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충격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사랑을 사려드는 이는 있지만 이별은 값이 엄청나서 감히 살 수도 없다. 그래서 이별은 사랑보다 한 발자국 더 경이에 가깝다...


땅만 바라보고 살았던 살마에게 어느 밤의 별들은 그 사람을 다른 세계로 이끌어준다. 이 세계가 아니면 다른 세계는 절대 존재하지 않을거라고 믿게 하는 사랑. 그 사랑은 몇 번의 세계를 거치고 훈련하면서 먼 우주로 나아갈 수 있다. 작은 물이 모여 바다로 간다는 그 말처럼 사랑은 고통을 치른 만큼만 사랑이 된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이 사실을 알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요.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왜 그 사람이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만큼의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는 것을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으나 나는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조만간 다시 보자는 말은 했지만 같이 여행을 가자고 말하기엔 이르다...


정신적인 건강도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강한 호감을 느끼게 된다는 말이 있다.(이 말은 지금의 감정과 그 감정에 따라붙는 불안에 대해 잘 설명해 준다.) 내 정신적인 건강도가 만약 B라면 그 사람 또한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닮은 점이 있다는 것은 좋아하기에 충분하지만 그렇다면 사랑하는 것이 바로 그 'B'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완벽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불온에 가깝다는 말을 하려는 것인데 쓸쓸히 여기까지 왔다.

사랑은 0 이다. 사랑은 감정으로 숫자를 늘리는 일이지만 결국엔 0 이 된다. 0 하고는 상관없는 듯 우리는 100처럼 사랑하지만 결국엔 시간에 의해 바람에 의해 요지부동의 0 에 도착하고 만다. 아무 감정이 없는, 아주 무심한 진공의 상태.

지금 그 사람을 사랑하면서도 먼 훗날의 0 에 대해 생각한다. 아픈 0 에 대해 생각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로 허무에 이르고 마는 그 0 에 대고 얼굴을 부빈다...


사랑은 0 의 그림자다. 사랑 자체로는 그림자를 만들 수 없는데다가 사랑이 0 의 뿌리에 단단히 붙어 있으니 그렇다. 우리가 사랑을 하면서도 끝없이 외로운 것은 0의 그림자를 껴안고 있어서다. 무인도에 같이 가자 해놓고 무인도에 그 사람을 남겨두고 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랑을 하면서 0 의 그림자를 데리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사랑을 조금만 멀리 두려 한다. 너무 멀리는 두지 말고 가까이 있고 싶을 때, 냄새 맡고 싶을 때 달려가려 한다. 느슨한 감정에 숨겨놓은 긴장이 가져다주는 멀리를 당분간 즐기려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좋아한다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랑은 0 이라느니 사랑은 0 의 그림자라느니 또 무엇이라느니 이렇게 멀미를 참지 못하고 허튼소리만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으로도 침묵하지 않는다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사람, 사랑을 통해 인간적인 완성을 이루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명백히 다를 수밖에 없다. 사랑은 사람의 색깔을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게 만들어 사람의 결을 더욱 사람답게 한다. 사랑은 인간을 퇴보시킨 적이 없다. 사랑은 인간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


우리는 사랑에게 엄청난 많은 것을 배웠으므로 그만큼의 빚을 지고 산다. 그것도 갚을 수 없는 아주아주 큰 빚을.




지금 어느 계절을 살고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지금 어떤 계절을 어떻게 살고 있다고 술술 답하는 상태에 있으면 좋게싿. 적어도 계절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어디를 살고 있는지를 조금 많이 알게 해주니까.



Posted by WN1
,


오베는 뭐든 간에 발길질을 하면서 물건들의 상태를 점검하는 남자였다.  15


그는 줄줄이 늘어선, 자기 집과 똑같이 생긴 집들을 따라 차를 몰았다. 그들이 처음 여기 왔을 때 이 동네에 있던 집은 겨우 여섯 채였다. 이제는 수백 체가 있다. 한때 여기에서는 숲이 있었지만 이제는 집들뿐이다. 물론 다 융자를 낀 집들, 그게 오늘날 일을 하는 방식이었다. 신용카드로 쇼핑을 하고 전기차를 몰고 다니며 전구 하나 바꾸려고 수리공을 고용했다. 딸각딸각 맞추는 조립식 마루를 깔고 전기 벽난로를 설치한 뒤 그럭저럭 살아간다. 급박한 상화에도 벽에 못 하나 박지 못하는 사회. 이게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45


오베는 자기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만 이해했다.  57


아마 그녀(소냐)에게 운명이란 '무언가'였을 텐데, 그건 오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베에게 운명이란 '누군가'였다.  103


"자기 원칙을 걸고 싸울 준비가 된 사람들이 더 이상 세상에 없는 걸까?" 루네가 물었다.

"하나도 없지." 오베가 대답했다.  117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더 이상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기립 박수를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다. 범속함을 거리낌 없이 찬양해댔다.

아무도 타이어를 갈아 끼우지 못했다. 전등 스위치 하나 설치 못했다. 바닥에 타일도 못 깔았다. 벽에 회반죽도 못 발랐다. 자기 세금 장부 하나 못 챙겼다. 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타당성을 잃어버린 형태의 지식들만 넘쳐났다.  119


오베는 첫 번째 불꽃이 자기 집을 기어오르는 광경을 봤다. 그는 잔디를 가로질러 뛰어갔지만 이내 소방관들에게 제지당했다. 별안간 그들이 사방을 둘러쌌다. 

그리고 오베를 집에 못 들어가게 막았다.

하얀 셔츠를 입은, 오베가 이해한 바로는 일종의 소방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의 앞에 다리를 쩍 벌리고 서서 오베가 자기 집의 불을 끄도록 놔둘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너무 위험해서라고 그랬다. 그런 뒤 안타깝게도 소방관들 역시 관계당구겡서 적법한 허가가 내려올 때까지는 불을 끌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오베의 집이 정확히 시 경계선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지휘 센터에서 무전기로 승인을 해주어야만 그들이 진화 작업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가가 나고 서류에 도장이 찍혀야 한다고 했다.

"규칙은 규칙이니까요." 오베가 항의하자 하얀 셔츠를 입은 남자가 단조로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오베는 몸부림을 치며 거기서 벗어난 뒤 분노에 차 호스를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헛된 일이었다. 소방관들이 이제 다 끝났다는 신호를 보냈다. 불길이 이미 집을 삼켜버렸다. 

오베는 정원에 서서 무력함과 슬픔에 휩싸인 채 집이 불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134-135


사람들은 오베와 오베의 아내가 밤과 낮 같다고 늘 말했다. 오베는 당연하게도 자기가 밤 쪽이라는 걸 잘 알았다. 그게 그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반면 누군가 그런 말을 할 때 오베의 아내는 항상 재미있어했는데, 왜냐하면 그럴 때마다 낄낄 웃으면서 사람들이 오베를 밤이라고 생각하는 건 그가 태양 쪽으로 가기에는 너무 못돼먹어서라고 지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녀가 왜 자기를 택했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음악이나 책이나 이상한 단어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사랑했다. 오베는 손에 쥘 수 있는 것들로만 채워진 남자였다. 그는 드라이버와 기름 여과기를 좋아했다. 그는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인생을 살아갔다. 그녀는 춤을 췄다.

"모든 어둠을 쫓아버리는 데는 빛줄기 하나면 돼요." 언젠가 그가 어째서 늘 그렇게 명랑하게 살아가려 하느냐고 그녀에게 물었을 때,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읽는 책 중 하나에 프란체스코인가 하는 수도사가 그렇게 써놓은 게 분명했다.

"날 속이면 안 돼요. 여보." 그녀가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커다란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오베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결코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그는 춤을 춰본 역사가 없었다. 춤이란 너무 무계획적이고 어지러워 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직선과 명료한 결정을 좋아했다. 그게 그가 늘 수학을 좋아하는 이유였다. 수학에는 정답 아니면 오답만 있었다. 수업 중에 '네 입장을 토론해보자'며 사기를 치려 드는 히피 같은 과목들과는 달랐다. 마치 누가 긴 단어를 더 많이 아는지 점검하는 게 결론을 내리는 방법이기라도 한 것인양. 오베는 옳은 건 옳은 것이고 틀린 건 틀린 것이길 원했다. 

그는 몇몇 사람들이 자기를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는 심술궂은 영감탱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건 그들이 오베에게 사람을 다른 식으로 볼 이유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살다보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이 될지 결정을 내릴 때가 오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이 기어오르게 놔두는 사람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때가.  152-154


모든 남자들에게는 자기가 어떤 남자가 되고 싶은지를 선택할 때가 온다.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면, 남자에 대해 모르는 것이다.  159


오베는 그녀를 만나기 전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질문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물어봤다면, 그는 살아도 산게 아니었다고 대답했으리라.  182


"당신이 바라보는 사람이 된다는건 어떤 기분인지 알고 싶었을 뿐입니다."(오베가 소냐에게 솔직히 고백하고나서 일어나면서.)  186


그녀는 그저 "다 괜찮을 거예요, 여보"라고 속삭이며 그의 팔에 자기 팔을 기댈 뿐이었다. 그녀는 집게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을 부드럽게 눌렀다. 그리고 눈을 감은 뒤 죽었다.

오베는 그녀의 손을 몇 시간 동안 그대로 잡고 있었다...

누군가 묻는다면, 그는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기는 결코 살아 있던 게 아니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녀가 죽은 뒤에도.  189


'사람은 자기가 뭘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  273


오베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고 분노에 찬 엘크처럼 턱을 앞으로 내밀고 있었다. 하얀 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아니타와 루네의 집으로 들어갔다.  364


오베의 몸에서 모든 힘이 다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아니타의 기진맥진한 얼굴을 봐서였을 것이다. 더 큰 견지에서 보면 이 단순한 전투에서 이겼다느 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깨달음 때문이었을 것이다.스코다가 갇혀 있건 말건 아무 차이도 없었다. 그들은 언제나 돌아온다. 그들이 소냐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조항드로가 서류들을 들고. 하얀 셔츠의 남자들이 언제나 이긴다. 오베 같은 남자는 언제나 소냐 같은 사람을 잃는다. 아무도 그에게 그녀를 되돌려주지 못한다. 

결국 부엌 조리대에 기름칠을 하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이라곤 하지도 않는 하루하루가 길게 이어지는 것 외에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다. 오베는 더는 극복할 수가 없었다. 그는 그 어느때보다 지금 이 순간 확실히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싸울 수 없었다. 더 이상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모든 게 다 멈추기만을 바랐다.

파르바네는 계속 그에게 반박하려 했지만 그는 그냥 문을 닫았다. 그녀가 문을 쾅쾅 두드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는 현관의 의자에 주저앉아 자기 손이 떨리는 걸 느꼈다. 심장이 정말로 세게 뛰는 바람에 귀가 폭발할 것 같았다. 마치 거대한 어둠이 숨틍을 걷어차기라도 한 것처럼, 가슴의 압박이 20분 넘도록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오베는 울기 시작했다.  368-369


"사람들은 모두 품위 있는 삶을 원해요. 품위란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무언가를 뜻하는 거고요." 소냐는 그렇게 말했다.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에게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할 수 있었다. 스스로를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지를 안다는 자부심. 오베와 루네 같은 남자들은 인간이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물론 소냐는 오베가 자기의 이름 없는 분노를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370-371


어떤 남자들이 갑자기 어떤 일을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기란 때로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때가 올 때까지는 늘 낙관적이다. 다른 사람과 무언가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민원을 제기할 시간도.  387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어렵다. 특히나 무척 오랫동안 틀린 채로 살아왔을 때는.  410


사람들은 늘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빌어먹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내 웃으며 돌아다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게 누군가가 거친 사람으로 취급당해 싸다는 얘긴가? 오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이해했던 유일한 사람을 땅에 묻어야 할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 부상은 치료할 수 없었다.  437



Posted by WN1
,


추천의 글 - 여행자의 생각(짠홍즐)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당신이 원래 속해 있던 세계이다. 당신이 여행 가방을 메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갈 때, 당신은 '고향을 등에 메고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된다...

내가 길을 떠날 때 가져가는 것은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나는 한 트렁크의 '편견'과 '오랜 습관'을 가지고 간다. 나를 속박하는 시선까지도.  7


사물은 달라지지 않았다. 기이하고 이국적인 환경과 낯선 풍습은 관찰자 '스스로의 대조'를 통해서 나온다. 

우리는 등 뒤에 고향의 '감옥'을 메고 다닌다.

'만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만 리 길을 걷는 것이 낫다'  8


당신은 여행을 하면서 변했다. 당신은 '타향을 등에 메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9


돌아온 당신은 원래의 당신을 '부정'한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당신은 원래의 당신을 '포함'하고 있다.  10


'행동하기'의 의미  12





나는 언제나 길 위에 있다. 

여행 가방을 메고, 늘 같은 옷을 입고 있다.  16


이곳에서 나는 제법 괜찮게 생활했지만, 빠르고 투박하게 도시 사람들을 흉내낸 모조품에 불과한 것이다.  18


여행은 우리의 몸을 먼 곳으로 떠날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감각기관에 자극을 주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28


2세기 여행엔, 미처 발견되지 않은 대륙도 없고, 신비롭고 구하기 어려운 향신료도 없다. 특별히 정복해야 할 밀림도 없고, 문명 밖에서 생활하는 인종도 없다. 

그저 당신의 몸으로 직접적이고, 강한 정신적 고통을 견디기만 하면 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당신은 따뜻한 물, 비누, 각종 건강관리 물품, 심지어 수면용 치아 교정기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38


태양 아래에 더이상 새로운 세계는 없다. 오늘날 콜럼버스는 반드시 천진한 영혼과 빈곤한 식견을 갖고 있어야만 계속해서 그만의 여행을 할 수 있다.  39


어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이 꼭 그 도시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57


나는 지금 발리 쿠다 거리에 서 있다. 이곳은 발리 섬에서도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관광객들은 하나같이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히피 슬리퍼를 신고 있다. 그들은 연신 땀을 닦으며, 관광산업 때문에 발리 섬의 순수한 풍토와 인정이 망가진 것에 대해 성토한다.

"이 모든 게 자본주의의 탐욕스러운 팽창 때문이야! 자본주의가 여행의 진정한 묘미까지 파괴하고 있어."

한 프랑스 사람이 분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내가 보고 싶어했던 발리 섬이 아니야!"

"그럼 어떤 발리 섬이 보고 싶었는데?"

"여기 오기 전에 나는 쪽빛 하늘과 백옥 같은 모래사장, 친절한 사람들, 오래된 사원,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공예품을 보고 싶었어. 그리고 그림자극에 나오는 인형을 사서 돌아가고 싶었다는..."  75-76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여행자의 눈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도시를 감상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여행자의 시선은 하루나 이틀 혹은 이십여 일이 지나면 막을 내리지만 현지 사람의 생활은 평생 동안 이어진다는 것을 오랜 여행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현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엿보고 싶어하는 여행자들의 호기심과 욕심을 위해서 생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마땅히 자신과 자손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낟.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도시를 만들어 가야 하지, 여행자의 눈을 의식해서 일상 공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축물을 만들거나 보여주기식의 공연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76-77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여행을 아름답게 만든다.

여행자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현지 사람들에게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뿐이다. 침묵은 적의가 아니며, 가장 아름다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85


같은 언어를 구사한다고 해서 친구 되기가 쉬운 것도 아니었고, 같은 언어를 말하지 않아도 왕왕 아주 빠른 속도로 사랑에 빠져들 수도 있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 여행자와 현지 사람들 간의 차이는 문화성과 비사회성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현지 사람들은 여행자가 자신들의 관념과 부합하지 않은 행동을 하거나 세상의 불합리한 모든 것에 분개하고 증오하는 것을 용인해주고, 특이하다고 받아들여준다. 게다가 여행자가 현지 문화에 동화되지 못하거나 어울리지 못해도, 여행자가 우둔해서 아무론 감동을 주지 못해도 그것들을 당연하게 여겨 조용하고 너그럽고 포용한다. 언어를 벗겨낸다. 언어를 벗겨내면, 언어를 위해 건립된 모든 사유 체계 또한 벗겨진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본성을 드러내며 상대를 순수하게 마주하게 된다. 어떠한 사회의 통념도 개입되지 않는다. 진실하고 평등한 대접만이 남는다.  87-88


언어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유일하게 개인의 영혼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기도 해.  90


여행이란 편견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알아가는 것이다.  106


인류는 점점 더 자유로워지는 것 같지만, 동시에 점점 더 판단력을 잃어간다. 예전에는 쉽게 대답할 수 있었던 많은 문제들도 지금은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없다.  132


현대인들은 큰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들은 농업시대 조상들이 토지에 대해 가졌던 중요한 관념을 뛰어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는 생활 방식을 따르고, 물과 풀을 따라다니며 살고, 자유롭게 이동하고, 일하고 쉬는 데 제약이 없으며, 토지에 얽매이지 않고 산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스스로를 '도시의 유목민' '보보스족' '현대 보헤미아인' '신(新) 집시족'이라 일컫는다.  133-134


"우리는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아요." 여행에서 막 돌아온 다보스맨이 말했다. 하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 역시 방금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이다.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원주민을 봤어요. 가난하게 생활하지만 위엄이 있는 사람들이었죠. 우리는 그동안 바쁘게 돈을 버느라고 진짜 생활을 잊지 않았던가요?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건 그들의 삶이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169


경계(境界 지경경 경계할계)가 여행자의 길을 가로막았다.

우주에서 보면 지구는 하나의 완전한 파랑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이사이가 무형의 눈금과 경계선으로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 모든 선(線 줄선) 뒤에는 '자연의 힘'과 '정치 권력'이 동시에 작용한다.

'자연의 힘'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국경을 긋는다. 마치 하느님이 손수 그린 선 같다.  172


현대인들은 국경을 넘기 위해 영사관에 가서 비자를 신청한다. 정치 체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지시를 기다린다. 비자를 신청할 때면 '국가'라는 구조 아래에서 개인은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173


사실 '군중'이라는 존재는 쉽게 매수당하는 존재다. 집권자는 작은 당근을 던져주면서 군중이 사소한 행복에 만족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한다. 실제로 영구에서는 지금까지 프랑스처럼 피비린내 나는 대혁명이 발생한 적이 없다. 영국 정부가 중대한 법률에 있어서는 민중의 권익을 위해 신속하게 양보를 했기 때문이다.  183



여행자는 여행길에서 종종 고독을 느낀다. 또다른 시공간이 사방에서 떠다니고, 중가넹 가로막혀 볼 수 없는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그렇지만 이런 고독은 건강한 고독이다. 세상 사람들은 엄숙하게 가라앉은 특정 시공간을 살아가면서 필사적으로 세상의 보폭을 뒤쫓는다. 여행자는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나태할 수 있는 존재이다.  239


여행자는 좋아하기 때문에 좋아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싫어한다...

여행자는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자유 역시 가상의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240



어디를 가든지 간에 여행자는 여전히 자기 자신이다...

여행을 하는 시간은 공백의 시기이다.  241



여행자는 여행길에서 화려함이 뒤섞인 낯선 환경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고, 이국 문화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관찰하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여행자가 떠나가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는 이유는, 떠남에 '버린다'는 암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242


당신은 어떤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다시 한번 그 사건이 발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여행자의 가장 큰 슬픔은 무언가가 막 좋아지기 시작했거나 익숙해졌을 무렵 그 풍경을 떠나야 한다는 것이다. 여행자는 예전에 둘러본 곳을 다시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한다. 눈앞에서 보았던 풍경, 들이마셨던 냄새, 몸을 스쳐갔던 바람, 사랑하는 연인과 그 나이의 당신..

그 모든 것이 아마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변할 것이다. 당시의 정황, 기분, 감정 그리고 그런것들을 남겨두고 싶은 당신의 주관적인 감정과 객관적인 환경은 한번 지나가고 나면 절대 되돌아오지 않는다.  244-245


여행은 아름다운 경험이다. 아름다운 경험들은 대부분 생명의 가장 깊고 신비로운 감동과 연관되어 있다.  245


재미있는 로맨스 소설도 본인이 직접 경험햇던 견고한 사랑만 못하듯 여행도 그렇다. 여행이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속하기 때문이다.  246


여행 경험은 병에 포장된 와인 같다. 같은 공장에서 생산되어 표면적으로 같은 병에 담기고, 같은 공장 상표가 붙어 있다. 그렇지만 생산 연도에 따라 다른 맛을 가지고 있다. 몇 달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맛의 차이도 아주 크다.

그러나 코르크 마개를 개봉하기 전까지 당신은 그런 세세한 차이점을 알지 못할 것이다. 쌍둥이보다 더 쌍둥이같이 닮은 와인 병은 손으로 만져봐도 프랑스에서 대량생산된 와인처럼 생각된다.

코르크 마개를 개봉한 와인 병에서는 알라딘에서 요정 지니가 램프 속에 갇혀 있다가 밖으로 나온 것처럼 향이 흘러나온다. 술은 담갔던 해의 기억은 빠르게 공기중으로 퍼져가고, 코를 통해 들어가 머릿속에까지 생동감 있게 회복된다. 당신은 이내 그날의 날씨와 공기중의 습도가 포도 생산과 와인의 품질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게 된다. 녹색 넝쿨들이 만들어낸 물줄기가 태양 아래 반짝이고 자홍색 포도가 요트처럼 드문드문 나타나는 모습이, 허리가 굽은 나이 많은 프랑스 농부가 거치고 큰 손으로 포도의 겉을 세심하게 어루만지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모습이 당신의 눈에 선하다.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와인 병에 붙어 있는 라벨은 갑자기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된다.  249-250


여행은 연속된 기다림이다. 휴가철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저금통장 속 숫자가 이상적 수치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적절한 계절을 기다리고, 함께 여행할 사람을 기다리고, 길 위에서 기다리고,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리고, 착륙하기를 기다리고, 수하물 컨베이너 벨트가 운행되기를 기다리고, 택시가 호텔까지 데려다주기를 기다리고, 예약한 호텔 객실이 정리되어 체크인을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미술관 개장을 기다리고, 여행 관련 잡지에서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일출을 기다리고, 버스가 자신을 다른 장소로 데려다주기를 기다리고... 여정 동안 여행자는 늘 기다린다.  260


여행자는 점점 '잘 기다릴 수 있도록' 훈련을 받는다..

그리고 여행자는 언제 어디서나 마음대로 잠들 수 있다. 미소를 지으며 낯선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 

여행자는 하릴없어 보이거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여행자는 당당하다.  261


기다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즐거움이다. 허무는 모든 여행자가 반드시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할 짐이다. 기다림이 습관이 된 그날, 나는 내가 여행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262-263


현대 여행 시스템에서 문화 경험은 하나의 '상품'이다.  280


기계의 시대에서 문화 경험은 수차례 복제될 수 있다.  281


문화 복제는 여행자의 사진첩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다.  284


여행은 한 편의 영화와 같아서 여행자는 주인공이 된다. 그래서 우리가 감상하는 대상은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이나 마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타국의 풍경은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카메라와 비디오는 갈수록 가벼워져 휴대하기 좋아졌고, 가격도 저렴해졌다. 덕분에 우리는 길을 거닐면서 만나는 풍경을 기록하고, 관찰하면서 새로운 환경과 교감한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그 화면을 편집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감상한다. 이런 행위를 통해서 여행은 더 '사유화(私有化 사사로울사 있을유 될화)'된다. 뉴욕은 더이상 뉴욕이 아니고, 파리도 더이상 파리가 아니다. 도쿄 또한 더이상 도쿄가 아니다. '나의' 뉴욕, '나의' 파리, '나의' 도쿄다. 이는 이 시대의 여행서가 대량으로 쓰이고 복제되면서도 전에 없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모든 사람들은 여행을 할 수 있고, 사적이고 은밀한 감상을 할 수 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모든 여행자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것이다. 이런 시대에 여행 사진은 점점 결혼식 사진과 신생아 사진처럼 귀중한 특징을 지니게 되어싿. 삶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계화 시대에 대량생산된 물건같이 무엇인가가 일단 많아지면, 더이상 귀하지 않게 된다. 결혼식 사진, 신생아 사진, 여행 사진을 전시할 때 당사자는 흥미진진하고, 생생하게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하지만 방문객은 예의 있게 참으면서, 틈틈이 시계를 보며 자리를 떠날 기회를 찾는다.  285-286


대중은 우매하고 세속적이기 때무넹 상업 시스템 안에 빠지고도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대중은 매일 매체와 광고의 최면세 걸려 있기 때문에 이런 행동들이 창의적이고 새로운 존재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오해할 수도 있지만, 사실 그들의 행위는 상인이 제공하는 상품을 소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288



후기 - 자유, 독립, 여행 그리고 여행자

만일 갈릴레이가 당시 로마 교황청에 도전하지 않았고, 당시 사람드이 귀족 권력의 합리성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았고, 여자들이 스스로 '제2의 성'이라는 말에 만족했다면,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봉전사회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지구가 사각형이라고 믿고, 끝없는 여해을 하면서 세상의 가장 자리와 마주하고, 연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여자의 몸으로 태어난 나는 아마 전족을 하고 있었을 것이고, 여행을 떠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일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A부터 B까지, B부터 다시 C까지, 다시 C에서 D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명의 과정은 '나'라는 한 주체가 호기심을 갖고, 공부하고자 갈망하고, 탐색하고 싶어하는 대상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여행자의 정신인 것이다. 세계느 ㄴ이렇게나 넓고, 여행자는 한 도시에 머무는 것을 만족하지 않는다. 여행자는 늘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하고,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도시에 가고자 한다. 높은 산을 오르고 나면 더 높은 산에 오르려고 한다. 지도에 표시되었거나 표시되지 않은 장소에서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찾는다. 여행자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고, 무지하지만 용감하고, 미지의 것에 매료된 사람이다. 이 세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자에게 제공한 모든 경이로운 것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어떠한 것이라도.  302-303


여행은 여행가로 하여금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밀란 쿤데라가 묘사했던 것처럼 세상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과 같아서 갑자기 가운데 균열이 생겨나고, 그 틈을 통해서 당신은 또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세상의 뒷면을 보게 된다. 당신이 평소에 볼 수 없고, 조금도 의식하지 못했던 또다른 세계가 존재한다. 눈앞에 펼쳐진 세계의 표면은 평온하고 안정적이며, 결점이 없고 아름다워서 당신의 시야를 가득채웠다. 하지만 추악하고 무서운 틈은 표면적인 세상의 완전함을 파괴한다. 당신이 그동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정보들을 누설한다. 틈은 당신이 과거에 볼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지조차 못했던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틈은 당신이 존재하는 세계가 유일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한다. 당신의 관점은 유일한 관점이 아니다. 당신이 독단적으로 정한 표준은 전 세계의 표준이 아니다. 당신이 안심하고 기대온 지식은 사실 아주 혀뵤소한 일부분에 불과하다.  305-306

Posted by WN1
,


진정한 독창성은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새로운 시각에서 나온다. - 이디스 워턴



추천사

침체의 늪에 빠져 고전 중인 작가든, 아직 시작하지 않은 작가든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자신과 소통할 수 있는 '비법'이다.  9


그녀는 줄곧 작가의 생각과 마음에 초점을 맞춘다.  12


그녀는 진정한 독창성은 오로지 자기 안에서만 나올 수 있다고 거듭 역설한다.  13

                                  1980년 10월 25일 존 가드너




내가 이 책을 쓰는 목적은 자신의 양식과 지성을 믿는 사람들이 문장과 단락의 구조를 익히도록 하고, 글을 쓰기로 결심한 순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써야 하는 의무를 독자에게 진다는 점을 깨닫도록 하고, (영어)산문의 거장들을 공부할 기회를 갖도록 하고, 목표 달성을 위해 부단히 매진해 나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기준을 스스로 세우도록 하는 데 있다.  28


글을 잘 쓴다는 것과 작가가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39


작가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자발성과 아이처럼 예민한 감수성과 화가 못지않게 '순수한 시각'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참신하고 신속하게 반응할 뿐만 아니라, 기존의 환경도 마치 처음 대하는 환경처럼 대한다...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가 2천년 전에 말한 '사물의 연관관계'에 늘 주목한다. 이런 신선한 시각이야말로 작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재능이다.  41


작가가 성공을 거두려면 위에서 말한 특징 못지않게 중요한 요소가 또 있다. 다름 아니라 어른스러움과 분별력과 절제와 공평함이다.  42


침묵을 현명하게 활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57


오래된 습관일수록 끈질기고 질투가 심하다. 미리 선전포고를 할 경우 오래된 습관은 쉽게 물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교묘한 설득력을 앞세워 맞서려 든다. 그런가 하면 너무 철저하게 공격할 경우에는 복수를 해온다. 하루나 이틀쯤 노력이 기가 막히게 먹히고 나서 우리는 새로운 방법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온갖 이유나, 이런저런 오래된 습관과 보조를 맞추면서 변화를 꾀해야 하거나 완전히 포기해야 하는 온갖 이유를 들이댄다. 그러다 결국에는 새로운 충고가 아무 소용이 엇어지게 도니다. 대신 시도는 좋았지만 실패했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그 이유는 계획이 자신에게 맞는지 아닌지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기력이고 목적 의식이고 모두 써버리기 때문이다.  70


글을 쓰려면 길들지 않는 근육을 써야 할 뿐만 아니라 고독과 칩거를 감수해야 한다.  78


무의식의 비옥한 자양분이 주는 혜택을 온전히 누리려면 무의식이 기선을 잡았을 때 힘들이지 않고 쉽게 글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러한 방법을 터득하려면 평소보다 30분이나 한 시간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 일어나자마자 말을 하거나, 조간 신문을 읽거나, 전날 밤 치워두었던 책을 집어들지 말고 글을 쓰기 시작하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아무 내용이나 쓰라. 기억할 수 있다면 간밤에 꾼 꿈도 좋고, 전날 했던 활동도 좋고, (실제든 상상의 산물이든) 대화도 좋고, 양심의 성찰도 좋다. 어떤 종류든 상관없으니 이른 아침의 공상을 비판의 시각을 들이대지 않고 빨리 쓰는 것이 관건이다. 글의 우수성이나 궁극적인 가치는 아직 중요하지 않다. 나중에는 이러한 내용 속에서 기대 이상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일차 목적은 불후의 명구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헛소리만 아니면 되는 글을 쓰는 데 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기록하면서 수면 상태와 깨어 있는 상태의 중간 지대에서 쉽게 글을 쓸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문단이 일정한 틀 없이 중구난방으로 흐르든, 생각이 모호하거나 터무니없든 훈련의 성패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비평 능력일랑 모두 잊어버리라.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이상 무엇을 쓰든 그 글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에 주목하라. 각자의 편리에 따라 침대에 앉아 공책에 글을 써도 상관없다. 이 기간에 타자기 사용법을 배울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비는 시간만큼, 또는 충분히 썼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가능한 한 오래 쓰는 것이 좋다.  

다음날 아침 전날 써놓은 글을 다시 읽지 말고 시작하라. 글을 다 쓸 때까지는 읽기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훈련의 효과는 나중에 분명하게 나타날 것이다. 지금은 그저 훈련에만 충실하라.  79-81


마음을 정했으면 하고 싶은 일이 있든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든 상관없이 그 시간은 반드시 비워두어야 한다.  85


4시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4시에 꼭 글을 써야 한다! 변명은 있을 수 없다. 4시에 대화에 깊이 빠져 있다면 양해를 구하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한다. 자신에게 한 약속도 물릴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침에 글을 쓸 때처럼 소재는 아무것이든 상관없다. 말이 되든 되지 않든 오행시든 무운시든 무조건 쓰라.  86


이른 아침에 글을 쓰는 훈련과 아무 때고 글을 쓰는 훈련은 글을 자유자재로 거침없이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이루어져야 한다.  88


모방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취향과 장점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것이다. 습관을 들이는 이 기간에 써놓은 글에는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귀한 실험 재료가 들어 있다. 자리에 앉아 맨 처음 떠오르는 것들을 쓸 때 대체로 무엇을 쓰는가? 이제 자신이 쓴 글을 마치 낯선 사람의 작품을 읽듯 읽어나가면서 이 낯선 작가의 취향과 장점은 무엇인지 살펴보라.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선입견은 모두 한쪽으로 치워두라. 지금까지 붙들고 있었던 야망이나 희망이나 두려움이 있다면 모두 잊고 이 낯선 작가가 조언을 청해온다면 그에게 가장 잘 맞는 분야는 무엇이라고 말해줄지 생각해보라.

그 동안 써둔 그렝서 발견되는 반복, 거듭 나타나는 생각, 자주 나오는 산문 형식이 실마리를 제시해줄 것이다. 그런 요소들은 그대의 타고난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줄 것이다. 그대의 장점을 더욱 갈고 닦는 것은 좋지만 자신은 오로지 한 가지 유형의 글만 쓸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유형의 글은 그만큼 잘 쓰지 못랄 것이라고 생각해선 곤란하다. 하지만 이 검토를 통해, 가장 풍성하고 가장 쉽게 흘러나오는 그대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93-94


의심스러운 점은 뭐든 하나도 빼놓지 말고 따져보아야 한다. 짧은 평서문을 너무 많이 사용하거나 감탄 부호를 남발하지는 않는가? 표현이 미사여구로 흐르거나, 아니면 그 반대로 지나치게 간결하지는 않은가? 말을 너무 아껴서 감동적인 장면을 너무 빨리 지나가는 바람에 그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독자가 놓칠 위험은 없는가? 신빙성이 떨어질 정도로 과장에 치우치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말 수가 적은 작가는 앨저넌 찰스 스윈번(1837~1909, 영국의 시인겸 평론가)이나 토머스 칼라일(1975~1881, 영국의 사상가 겸 작가)처럼 근엄하기보다 화려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감정에 지나치게 호소하는 작가에게는 그 반대의 충고가 적용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18세기 영국의 작가들이나 윌리엄 딘 하월스(1837~1920, 미국의 소설가 겸 평론가), 윌라 캐더(1873~1947, 미국 소설가), 아그네스 레플리어(1855~1950, 미국 수필가) 같은 작가를 읽어보라. 단조로운 문체 때문에 고민이라면 길버트 키스 체스터턴(1874~1936, 영국의 소설가 겸 평론가)의 소설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제안에는 거의 끝이 없지만 자신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해 자신에게 가장 좋은 약을 처방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처방전을 찾았다면 겸허하게 읽으면서 자신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보이는 작가들의 장점을 보도록 노력해야 한다. 문체를 단련하는 동안에는 스스로에게 사정을 봐주어선 안 된다. 관심이 끌리는 책은 철저히 멀리해야 한다.  105-106


다음으로 전날 저녁의 상황이 아침의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봐야 한다. 활동을 많이 한 날 다음에 좋은 글이 나오는가, 아니면 조용하게 지낸 날 다음에 좋은 글이 나오는가? 글이 쉽게 써졌다면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난 다음인가, 아니면 짧게 자고 난 다음인가? 친구들을 만나는 것과 다음날 아침의 글쓰기가 활기를 띠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 사이에 어떤 연관관계가 있지는 않은가? 극장이나 미술 전시회, 무용 발표회에 갔다오고 나서 그 이튿날 아침의 글쓰기는 어땠는가? 이런 점에 유의하면서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도록 노력하라  106


다음으로 일상의 규칙에 주목해야 한다. 대부분의 작가는 기분 전환을 위해 가끔 쉬면서 단순하고도 건강한 일상을 꾸려나갈 때 크게 발전한다. 여기서 다루는 내용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어떤 음식이 자신에게 맞고 어떤 음식을 멀리해야 할지와 같은 사안들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생 글을 쓰며 살 생각이라면 자극제에 계속 기대지 않고도 일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경우에 따라선 적절하게 사용해도 되는 자극제가 있는 반면, 완전히 끊어야 하는 자극제도 있다. 일을 몰아서 하는 습관은 좋지 않다. 꾸준하고 착실하게 흐름을 타면서 생산성을 고르게 유지해야 한다. 그럴 경우 가끔 평균 수준을 훨씬 웃도는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하지만 생산성이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두세 달에 한 번, 아니면 적어도 일 년에 두 번은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평가해야 한다.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최대한 끌어내 풍작을 거두려면 이러한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 

자신을 평가할 때는 기질적인 면이 일상의 행동에 너무 많이 관여하게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야 한다. 냉정하고 공정하게 처신해야 하는 상황에서 감정에 치우쳐 제멋대로 굴지는 않는가? 욱하는 기질이나 질투심, 쉽게 낙담하는 성격 때문에 곤란을 겪고 있지는 않은가? 차분히 생각해보면 문제점이 뚜렷이 보이기 마련이다. 질투, 낙심, 분노는 글이 흘러나오는 샘을 오염시킬 뿐이다. 좋은 글을 쓰려면 한시라도 빨리 오염 요인을 찾아 흔적조차 남지 않게 완전히 없애야 한다.

자신을 평가할 때는 철저해야 한다. 자신을 주도면밀하게 분석하는 작업은 그저 '잘'의 수준이 아니라 '아주 잘' 이루어져야 한다. 스스로 엄격하면서 공정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비난은 근거 없는 자화자찬만큼이나 나쁘다. 자신이 잘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점을 인정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격려해야 한다. 잘하는 일을 기준 삼아 다른 데서도 그와 똑같은 수준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107-108


작가가 되는 데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단순히 오락거리가 아니라 본보기로 바라보는 경향이 어느 정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효과를 얻으려면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어떤 부분이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책을 읽어야 한다.  112


작가 입장에서 책을 읽는 법을 터득하려면 처음에는 뭐든 두 번 읽는 길밖에 없다...

다 읽었으면 당분간 책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연필과 메모장을 꺼내라.  

우선 방금 읽은 책의 개요를 짤막하게 작성하라. 마음에 들었는지 아닌지, 믿음이 갔는지 아닌지, 마음에 들었던 부분과 그렇지 않았던 부분은 무엇인지에 비추어 대강의 판단을 내리라. (나중에는 도덕적 판단도 내릴 수 있겠지만 지금의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진술 내용을 계속 늘려나가라. 책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처음에는 모호하더라도 기죽지 말라. 책을 다시 읽어보면 그러한 반응의 원인을 찾게 될 것이다. 책 내용 가운데 더러는 훌륭해 보였던 반면 나머지는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면 작가가 언제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되짚어보라. 등장인물들이 한결같은 솜씨로 그려졌는가, 형편없이 그려졌는가, 아니면 어쩌다 가끔만 일관성 있게 그려졌는가? 이렇게 느낀 이유를 알겠는가?

특별히 마음에 남는 장면이 있는가? 만약 있다면 그 이유가 장면 처리가 뛰어났기 때문인가, 아니면 어이없게도 좋은 기회를 놓쳤기 때문인가?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관심을 끌었던 구절이 있는가? 대화가 자연스러운가, 아니면 틀에 박혀 있는가? 만약 후자라면 그런 딱딱한 형식이 작가의 의도 때문인가, 아니면 작가의 능력 부족 때문인가?  113-114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나가면서 분명해 보이는 대답을 찾는 대로 메모장에 기록하라. 특별히 잘 처리된 구절을 발견하거나, 작가는 솜씨 있게 다루고 있지만 자신이 다루기에는 어려울 것 같은 소재가 눈에 띄면 표시해두라. 이렇게 해두면 나중에 다시 읽을 때 그 부분을 좀더 심도 있게 분석해 본보기로 활용할 수 있다.  115


비판 어린 시선으로 책을 읽을 때 얻을 수 있는 자극과 유익함은 끝이 없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읽어야 한다. 작가가 강조하고자 하는 대목에서 책의 호흡이 빨라지는지 느려지는지에 주목하라. 작가가 버릇처럼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훈련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아니면 너무나 명백히 그 작가만의 것이라 구조를 배워 봐야 헛수고에 그칠지 결정해야 한다. 장면이 바뀔 경우 등장인물이나 시간의 흐름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가? 관심의 중심이 어느 한 인물에 이어 다른 인물에게 옮겨 갈 때마다 어휘와 강조점도 달라지는가? 작가가 모든 일에 개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가. 아니면 특정 등장인물의 의식을 따라가는 가운데 그 인물이 보기에 분명한 것만 말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가? 아니면 처음에는 이 사람, 다음에는 저 사람, 그 다음에는 또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글을 쓰는가? 대비는 어떤 식으로 하고 있는가?  116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다 보면 배울만한 점들이 눈에 띌 것이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활용할 수 있으려면 최소한 두 번은 읽어야 한다.  117


기술적 장점은 얼마든지 모방할 수 있으며, 돌아오는 이득도 아주 크다. 단락이 길든 짧든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그 어떤 기술보다 훨씬 더 나아 보이는 기술이 눈에 띈다면 자리에 앉아 그 기술을 배우라. 

기술을 공부할 때는 본보기로 삼은 책이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공부할 때보다 훨씬 더 주의를 기울여아 한다. 단어를 하나하나 찢어발기듯 그 단락을 철저히 분석하라.  121


당연하게만 여기지 않는다면 약국 진열창도, 우리를 일터로 데려다주는 버스도, 북적이는 지하철도 도원경처럼 신기해 보일 수 있다.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거리를 지날 때 15분만 시간을 내서 눈에 띄는 사물 하나하나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듯 자신에게 말해보라. 버스는 겉이 무슨 색깔인가?(단지 녹색이나 빨간색이 아니라 샐비어 색이나 올리브 그린, 자주색이나 주홍색처럼 구체적으로.) 입구는 어디인가? 차장과 운전사가 따로 있는가, 아니면 한 사람이 차장 겸 운전사 역할을 모두 하고 있는가? 버스 내부, 예를 들어 벽, 바닥, 좌석, 광고 포스터는 무슨 색깔인가? 좌석은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 맞은편에 누가 앉아 있는가? 옆사람들은 어떤 옷차림을 하고 있는가, 서 있는가, 앉아 있는가, 독서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졸고 있는가? 어떤 소리가 들리는가, 어떤 냄새가 나는가, 손잡이 가죽이나 스쳐 지나가는 외투 자락의 느낌은 어떤가? 잠시후 집중력이 떨어지겠지만 장면이 바뀔 때마다 집중력을 다시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음으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을 관찰하라. 어디서 탔으며, 행선지는 어디일 것 같은가? 얼굴, 태도, 옷차림에서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짐작할 수 있는가? 고향은 어디일 것 같은가?(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집 <월요일 또는 화요일(Monday or Tuesday)>에 수록된 단편 [쓰지 않은 소설(Unwritten Novel)] 을 참조하라.)  132-133


정말로 글을 쓰고 싶다면 이런 간단하고 사소한 훈련이 크게 도움이 된다...

물론 알맞은 표현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새로운 느낌에 딱 어울리는 단어를 찾는 작업을 포기해선 안 된다. 올바른 표현을 찾으려 끈질기게 노력하다 보면 정말 필요할 때 바로 이거다 싶은 문구가 저절로 생각날 것이다.  134-135


이런 식으로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곧 아침에 쓰는 글이 전보다 더 원숙하고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될 것이다. 매일 새로운 소재를 쉽게 발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숨어 있는 기억을 불러낼 수 있다. 새로운 사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신의 본성 깊숙이 내려가 감각과 경험, 지나간 기쁨과 슬픔, 자신의 기억 깊은 곳에 자리하는 옛 시절과 완전히 잊고 지냈던 일화를 남김없이 끄집어 낸다.  135


그 동안의 경험을 들어 오늘의 신념이 내일의 신념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고 확신하며 자신을 송두리째 내던지길 망설이는 초보 작가가 너무나 흔하다. 이런 초보 작가는 일종의 주문 같은 것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는 궁극적인 지혜가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주길 기다리다가 그 시기가 너무 늦어지면 자신은 글을 쓰긴 글렀나 보다고 지레 판단해버린다. 이러한 기다림이 (가끔 그렇듯이) 단지 글쓰기를 막연히 미루는 신경과민성 핑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어려움으로 작용할 경우 그는 전력투구하지 않고 건성으로 반쯤 이야기를 쓰다가 거기서 그치고 만다.

이런 작가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혼자만 그런 일을 겪는게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143



- 신을 믿는가? 믿는다면 어떤 측면에서?(영국 소설가 토머스 하디(1840~1928)의 '불멸의 수호신'(<테스>중에서)이라는 측면에서, 아니면 H. G. 웰스의 '현현하는 신'이라는 측면에서?)

- 자유 의지를 믿는가, 아니면 결정론자인가?(예술가가 결정론자라는 생각은 너무도 모순이라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더라도.)

- 남자를 좋아하는가? 아니면 여자? 아니면 어린아이?

-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낭만적인 사랑은 미망이자 올가미라고 생각하는가?

- "백 년이 지나도 모두 똑같을 것이다."라는 말을 심오한 진리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얄팍한 속임수라고 생각하는가?

-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은 무엇인가? 또 가장 큰 불행은? 


이런 굵직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목한다면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 소설을 쓸 준비가 아직 안 된 상태다.  150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여가 활동을 찾으려면 직접 실험해보는 길밖에 없다. 하지만 끝내야 할 작품이 있을 때는 책이나 연극이나 영화는 되도록 피하는 게 좋다. 책이나 연극의 내용이 좋을수록 정신이 흐트러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 기분이 변해 생각이 바뀐 상태에서 다시 글을 쓰게 된다.  155


열정이 넘치는 작가만이 '기분 전환'이라는 매혹적인 이름으로 부를 자격이 있다. 그리고 성공한 작가일수록 작가로서 스스로에 대해 말할 때 좋은 책을 들고 구석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성공한 작가들은 책 읽기를 좋아한다.(사실 모든 작가는 먹는 것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아무리 책 읽는 것을 좋아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 정신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은 말 없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이미 깨달았다.  156-157


다른 사람의 문체에 얼마나 쉽게 빠질 수 있는지 예를 통해 알아보자. 어조와 문체에서 강한 개성을 자랑하는 작가를 한 명 고르라...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라면 누구든 상관없다. 피로가 약간 느껴지면서 처음의 관심이 시들해질 때까지 그 작가의 작품을 읽어라. 이제 책을 한쪽으로 치워놓고 아무 주제든 글을 몇 쪽 쓰라. 그런 다음 그 글과 아침에 쓴 글을 비교해보라. 필시 그 둘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아마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신이 고른 작가의 방향대로 강조저모가 어조를 바꾸었을 것이다. 패러디의 의도가 전혀 없었고, 심지어는 되도록 독자적으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도 너무나 비슷해서 어처구니가 없을 때도 더러 있다.  161-162


무엇보다도 자신만의 문제, 자신만의 주제, 자신만의 어조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162


천재(여기서 '천재'는 '비범한 사람'이 아니라 '하늘이 내린 재능'이라는 의미-옮긴이)의 뿌리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안에 있다.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천재를 갈고 닦는다고 해서 위대한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재능은 구체적인 형태로 나타나며, 의식의 영역 바깥에 기원을 두고 있다.  174


무의식을 흐릿학 우중충하고 형체도 없는 개념들이 어지럽게 떠다니는 지옥의 변방쯤으로 여겨선 곤란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무의식은 형식에 민감하다. 뮤의식은 우리의 이성보다 유형, 양상, 목적을 훨씬 더 빨리 포착해낸다. 하지만 무의식의 활동이 너무 왕성할 경우에는 경로에서 이탈할 수도 있으므로 늘 조심해야 한다. 무의식이 제시하는 자료가 감당 못할 정도로 넘쳐나지 않도록 늘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고 통제해야 한다. 하지만 글을 잘 쓰려면 당면한 지식의 문지방 뒤에 자리하는 우리 본성의 거대하고 강력한 이 부분과 타협해야 한다.  176


계획하고 있는 작품의 형식과 주제를 결정하는 것은 무의식이며, 무의식에 의지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면 훨씬 더 훌륭하고 확실한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다. 그러려면 무의식의 활동에 시도 때도 없이 간섭해선 안 된다.  177


진정한 천재는 자신이 어떻게 일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채로 평생을 살아간다.  177


재능이라는 자원은 그 양이 아무리 미미하다 하더라도 평생을 가도 다 쓸 수 없을 만큼 충만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타고난 재능을 더 늘리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시대와 인종을 초월해 위대한 사람들은, 마치 처음부터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그야말로 순수한 재능을 타고나기라도 한 듯 너무나 위대해서 편의상 우리가 '천재'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삶과 예술 작업에서 나머지 인간들보다 그러한 기능을 좀더 자유롭게 발휘했을 뿐이다.  181-182


어떤 면에서 작가는 요행을 통해서든 오랜 모색을 통해서든 가벼운 상태의 최면에 스스로 빠져든다. 최면 상태에서도 관심은 여전히 유지되지만 그저 유지될 뿐이다. 굳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없다. 이때 작가는 마음의 수면 저 뒤편에 너무 깊이 가라앉아 있어(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마침내 자신을 일깨우지 않는 한) 뭔가 활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이야기가 하나의 통합된 작업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185


집중해서 생각하려면 몸을 움직여선 안 된다. 사람들은 생각을 집중할 때 기껏해야 가볍고 기계적인 일만 한다. 행동에 들어가게 하려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야 한다.

주기성을 띠면서 단조롭고 말 없는 활동이 바로 거기에 해당한다...

몸을 가만히 놔두듯 마음을 가만히 놔두는 법을 익히라.  188-189


이런 방법을 사용해보라. 즉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회색 고무공처럼 단순한 물체를 선택하라.(밝은 색깔의 물체나 눈에 확 띄는 물체는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공을 잡고 가만히 들여다보라. 공에 관심을 집중하고 마음이 어지럽게 돌아다닐 때마다 마음을 다독여 차분히 지정시키라. 한동안 그 물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 눈을 감고 계속 공만 생각하라. 그러고 나서는 그 단순한 생각마저 마음에서 빠져나가게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마음이 가는 대로 그저 지켜보면서 거침없이 질주하도록 내러려두라. 머잖아 마음이 점차 차분해질 것이다. 서두르지 말라. 완전히 차분해지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아마 충분히 고요한 상태에 이를 것이다.  191




옮긴이의 말

도러시아 브랜디의 <작가 수업>이 처음 출간된 연도는 1934년이다. 그 후 한때 절판됐다가 1981년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206


브랜디는 그 비결을 터득하려면 먼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참 모습과 마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글쓰기 기교를 둘러싼 잡다한 방법론이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는 물론 스스로를 판단하려는 경향도 한동안 멀찍이 치워두어야 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안팎을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이런저런 정보를 실어나르는 의식에 연연하지 말고 가공하기전의 다이아몬드 원석처럼 자신의 참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무의식과 친해져야 한다.  

그렇게 자신의 무의식과 친해지면서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했을 때 비로소 생산성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의지대로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브랜디도 이 점을 인정한다.  207-208

Posted by WN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