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못한 과거가 마주본다. 그리고 서로에게 묻는다. 

열일곱은 부모가 되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서른넷은 자식을 잃기에 적당한 나이인가 그렇지 않은가.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7


지금도 드센 성격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머니의 말씨가 풀죽은 듯 순해진 건 세상이 남아 있긴 하지만, 어머니의 말씨가 풀죽은 듯 순해진 건 세상이 '시발'로만 해결되는 게 아니란 걸 깨달은 순간부인 듯하다.  13


아버지는 숙맥이 맞았지만 무모하고 모험심 강한 숙맥, 말하지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숙맥이었다.  15


책은.... 읽으려다 이내 때려치웠다. 어떤 상황에서건 태아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된다는 거였다.  35


"어... 나는. 애가 꿈이 있는 아이였음 좋겠어. 너는?"

어머니가 서글서글한 눈망울에 기대를 한껏 담아 말했다.

"음.... 나는 얘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아이였으면 좋겠어."

아버지가 피식 웃으며 어머니를 나무랐다. 

"야, 그거 쉬운일 아니다."

어머니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왜? 아기들한테는 그것만큼 쉬운 일이 없을걸? 그리고 우기가 그렇게 만들면 되잖아."  36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응."

"뭘 잘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말이야."

"응."

"건강하지만 했으면 좋겠다."

어머니는 잠시 눈을 굴렸다. 그러곤 너무 차분해서 어딘가 슬프게 들리기까지 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그거면 되겠다."  37


나의 늙음은 텅 빈 노화였다.  53


두 사람은 배워야 할 게 많았다. 한 존재를 먹이는 법, 재우는 법, 씻기는 법, 그리고 이해하는 법까지 ... 마치 내가 아닌 자기들이 태어난 양,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나하나 깨우쳐가야했다.  60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을까?' ...

'자기가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살고 싶어서.' ...

자기가 보지 못하 ㄴ자기를 다시 보는 것, 부모가 됨으로써 한번 더 자식이 되는것. 사람들이 자식을 낳는 이유는 그 때문이지 않을까?  79-80


"이런 말 하긴 좀 뭣한데, 세상엔 자기 부모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효도하는 살마들도 많아."  90


"그럼 얼마 동안 아팠던 거지?' 

"음, 십사년요."

"그래, 십사년."

"......."

"근데 그동안 씩씩하게 정말 잘 견뎌왔지? 지금도 포기 않고 이렇게 검사받고 있지? 다른 사람들은 편도선 하나만 부어도 얼마나 지랄발광을 하는데. 매일매일, 십사년. 우린 대단한 일을 한 거야. 그러니까...."

"네"

어머니가 목소리를 낮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천천히 걸어도 돼."  101


내가 새끼 노릇 하느라 티를 안 내서 그렇지, 내 어휘가 얼마나 풍부하고 내 문장이 얼마나 유려한지 알면 두 분 모두 깜짝 놀랄 터였다.  107


'데인 것처럼...' 맞아. '늙음'에 데인 것처럼 놀랐다고 했어요.

"저는 잘 이해가 안돼요."

"뭐가?"

"나이 든 사람 피부에 탄력이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잖아요."

"그렇지."

"머리가 세는 것도, 이가 빠지고, 눈이 나빠지고, 주름이 느는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그래."

"그런데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그 짧은 접촉 한번에, 마치 늙음이 자기에게 옮기라도 할 것처럼, 그렇게 정색하고 돌아설 정도면, 그 여자가 상상한 늙음이란 대체 어떤 거였을까요?"  134-135


너무 빨리 먹은 시간들이 네 속에 가득 구겨져 있다고.  183


"제가 저번에 물어봤거든요? 형! 형은 오토바이 탈 때 무슨 생각해요?하고."

"어."

"그랬더니 '아무생각안해' 그러더라고요."

"거봐라! 쯧쯧..."

"그래서 왜요? 하고 물었더니, 그 형이 비장하게 답하더라고요."

"뭐라고?"

"생각하면 죽으니까....하고."

"허, 참!"  206-207


궁금한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물어보는 습관이 든 거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신 물어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조금 더 성급해지고 경솔해져도 좋을 것 같았다. 특히 상대가 장씨 할아버지 같은 분이라면 더할나위없이 좋았다. 그게 정답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대답 속엔 누군가의 삶이 배어 있게 마련이고, 단지 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당신들의 시간을 조금 나눠갖는 기분이었다.  208


'죽음'보다 나쁜 건 '늙음'이다.  211


둘 중 하나를 선택했으면서 아무것도 안 가진 척하는 것도 기만일 수 있다고..  215


엄마와 밥을 먹으며 티브이를 보던 일상적인 풍경이야. 그때 우리는 '이웃에게 희망을'이란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어. 근데 엄마가 숟가락으로 국을 뜨다 말고 갑자기 그런말을 하더라?

저 사람들이 저렇게 된 데는 아무 이유도 없는 것 같지 않으냐고. 나는 영문을 모른채 가만 고개를 끄덕였지. 그랬더니 엄마가 그렇다면 우리 식구한테도 아무 이유 없이. 또 근거없이 저런 일이 생길 수도 있는거 아니냐고 하더라. 자긴 그게 너무 불안하다고.  216


어쨌든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게 나를 두근대게 해.  272


"그럼 현미경으로 찍은 눈 결정 모양도 봤어요?"

"그럼."

"나는 그게 참 이상했는데."

"뭐가?"

"뭐하러 그렇게 아름답나."

"...."

"어차피 눈에 보이지도 않고 땅에 닿자마자 금방 사라질 텐데."  287


"넌 입버릇처럼 항상 네가 늙었다고 말하지. 그렇지만 그걸 선택 할 수 있다고 믿는 거, 그게 바로 네 나이야. 질문 자체를 잘못하는 나이, 나는 아무것도 안 고를 거야. 세상에 그럴 수 있는 부모는 없어."  297


Posted by W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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